매일의 하나님 말씀 ― 성육신 | 발췌문 119
2020.08.06
성육신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이유는 전적으로 패괴된 사람의 필요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며, 이 모든 대가와 고통은 인류를 위한 것이지 하나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득실과 보답이라는 말이 없다. 그가 얻는 것은 그가 나중에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인류를 위해 행한 모든 것과 지불한 모든 대가는 더 많은 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인류를 위한 것이다. 육신으로 사역하면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어려움이 많지만 결국에는 영이 직접 사역하는 것보다 성과가 훨씬 더 크다. 육신으로 사역하면 상당히 많은 어려움이 있다. 영과 같은 위대한 신분을 가질 수 없고, 영과 같은 비범한 행사가 있을 수도 없으며, 영과 같은 권병은 더더욱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육신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영이 직접 하는 사역의 본질보다 훨씬 뛰어나다. 이 육신 자체는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구원받는 사람에게 있어 영의 사용 가치는 육신의 사용 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영의 사역은 우주 전체로 널리 퍼질 수 있고 산천 호수에 널리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육신의 사역은 그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더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형상이 있는 육신은 사람의 이해와 신뢰를 더 잘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에 깊이를 더하고, 하나님의 실제 행사에 대해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영의 사역은 매우 신비로워서 평범한 사람은 예측하기 어렵고, 눈으로 보기는 더욱 어려우며, 그저 터무니없이 상상할 뿐이다. 반면 육신의 사역은 정상적이고 실제적일뿐더러 풍부한 지혜가 있으며, 평범한 사람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이다. 모두가 하나님이 사역하는 지혜를 직접 깨달을 수 있어 풍부한 상상을 펼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육신으로 하는 하나님 사역의 정확성이자 실제적인 가치이다. 영은 단지 사람이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만 할 수 있다. 영의 깨우침, 영의 감동, 영의 인도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영의 이러한 사역들은 사고력을 가진 사람에게 명확한 뜻을 알려 줄 수 없고, 말로 분명하게 가리켜 줄 수 없으며, 그저 감동이나 대략적으로 비슷한 뜻만 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이와 전혀 다르다. 육신으로 사역하면 정확한 말씀의 인도, 명확한 뜻, 그리고 명확한 요구와 목표가 있으므로 사람이 모색할 필요도 없고 상상할 필요도 없으며 더욱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의 명확성으로, 영의 사역과는 크게 다르다. 영의 사역은 일부 제한적인 범위에만 적합할 뿐, 육신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육신이 사역하면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정확한 목표와 사람이 얻는 인식의 실제 가치는 영의 사역이 지니는 정확성이나 실제 가치를 크게 뛰어넘는다. 패괴된 사람에게는 정확한 말씀과 명확한 추구 목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사역만이 가장 가치 있는 사역이다. 현실적으로 사역하고 제때 인도해야만 사람의 기호에 맞출 수 있고, 실제적으로 사역해야만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한 성품에서 구원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 성육신 하나님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한 옛 성품에서 구원할 수 있다. 영은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이지만, 이런 사역은 오직 육신으로만 할 수 있다. 오직 영이 단독으로 역사한다면 사역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육신으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해도, 이 육신이 자신의 사역을 끝낼 때면 그와 적대 관계였던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원수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증인이 될 것이며, 그에게 정복된 증인이 되고, 그와 합하여 헤어지기 힘든 증인이 될 것이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육신으로 하는 사역이 사람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육신이 사람의 생존 의의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또 사람의 생명 성장에 있어 육신이 가진 실제 가치를 알게 되고, 더욱이 이 육신이 사람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생명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하나님의 신분이나 지위와 크게 다르고, 사람이 보기에 그의 실제 신분에도 걸맞지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본래 형상을 지니지 않고 본래 신분도 없는 이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성육신한 본래의 의의와 가치다. 하지만 사람은 이 의의와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못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영을 우러러보고 하나님의 육신을 내려다본다. 사람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든 육신의 실제 의의와 가치는 영의 실제 의의와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다. 물론 이것은 패괴된 인류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현현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영의 사역이 그저 감동이나 묵시를 줄 뿐이고, 또 신묘막측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신기한 느낌과 위대하고 비범하며 모든 사람이 우러르면서도 닿을 수 없고 이를 수 없는 느낌을 줄 뿐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영은 그저 아득히 멀리서 서로 바라볼 수밖에 없어 마치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영원히 서로 같아질 수 없는 것 같으며, 꼭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영에 대한 사람의 착각에 불과하다. 이런 착각은 그저 영과 사람이 같은 부류가 아니고 영과 사람이 절대로 같은 세계에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또 영은 사람이 가진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영이 아니다. 영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사역을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신의 사역은 사람에게 실제적인 추구 목표와 명확한 말씀을 주고, 실제적이고 정상적이라는 느낌과 자신을 낮추고 평범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대다수 사람에게는 접촉하기가 상당히 쉽다. 사람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므로 아득히 멀리서 서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이 육신은 사람에게 아득히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측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이 육신이 사람과 같은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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