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하나님 알아 가기 | 발췌문 119

2020.07.31

다섯 부류의 사람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관한 주제는 여기까지 나누도록 하겠다. 이제 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한 사람의 인식과 체험에 기반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분류하겠다. 이를 통해 너희에게 지금 자신이 처한 단계와 분량을 알게 하려 한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한 깨달음을 놓고 볼 때, 사람이 처한 단계와 각 단계의 분량을 대략 다섯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 주제는 유일무이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아는 것에 기반하여 제시된 주제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다음의 내용을 읽을 때, 자신이 하나님의 유일무이함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고,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세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너희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 너희의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너희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가늠해 보아야 한다.

첫 부류, 강보에 싸인 아기 단계

무엇을 강보에 싸인 아기라고 하느냐? 강보에 싸인 아기는 바로 이제 갓 태어난 아기, 신생아를 가리키는데, 이는 사람이 가장 어릴 때를 가리킨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일에 관해 인식이나 지각이 거의 없고, 모든 것에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모호하고 불명확한 상태와 실제 분량으로 그들은 강보에 싸인 아기 단계로 결정된다. 강보에 싸인 아기 단계에 처한 사람의 상태를 정확히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얼마가 되었든 시종일관 어리둥절하고, 흐리멍덩하며, 무지몽매하여 왜 하나님을 믿는지 모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며, 누가 하나님인지 모른다. 하나님을 따르긴 하지만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고, 자신이 따르는 분이 하나님인지 분명히 할 수 없으며, 더군다나 자신이 정말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 확신이 없다. 이것이 바로 이 부류 사람들의 실상이다. 이 사람들은 마음이 혼탁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혼탁하고 텅 빈 상태에 있으며, 어리둥절하고, 흐리멍덩하며, 무지몽매하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본 적도, 느껴 본 적도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면 마치 무자천서(無字天書)를 읽듯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전설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혼탁하면서도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쓸데없는 헛수고라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부류인 강보에 싸인 아기 단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부류, 젖 먹는 아기 단계

이 단계의 사람들은 강보에 싸인 아기 단계에 비해 조금의 발전은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나 깨달음이 없으며,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분명한 생각과 속셈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옳든 옳지 않든, 그들의 목적과 목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평안과 기쁨이 있고, 윤택한 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아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있고 또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더 많은 축복을 받기를 바라며, 금생에 백배를 얻고 다음 생에 영생을 얻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이 생각하고 헌신하고 대가를 치르고 고생하는 목표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며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평안하게 하고 은혜를 베풀어 줄 수 있다는 것만 확신한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구원하는지, 하나님이 말씀과 사역으로 어떤 효과를 보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또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알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고 관심도 없으며 상관하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하나님의 뜻,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에 관해 물어보려 하지 않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실질적 이익과 관련된,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에게만 관심이 있으며 그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얼마나 되든 그들은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을 자주 양육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들은 계속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예전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면, 그들은 매우 쉽게 떠나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부류로, 젖 먹는 아기 단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 부류, 젖을 뗀 아기 단계, 즉 유아 단계

이 단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뚜렷한 인식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자신에게 참된 체험이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평안과 기쁨을 추구하고 은혜받는 것에 몰두하거나 다른 사람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체험을 나누고 하나님이 베푼 축복을 찬양하며 간증한다 해도 그것이 사람에게 생명이 있고 진리의 실제가 있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따라야만 한다는 지나친 욕망을 품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과 동시에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어 하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며, 기꺼이 고생하고 수고하며 또 하나님과 동역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마음에는 불순물이 지나치게 많다. 자신의 속셈과 욕망이 너무 크고 성품이 너무 교만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기 어렵고, 하나님께 충성하기도 정말 쉽지 않다. 그러므로 항상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고, 하나님께 한 맹세도 지킬 수 없다. 그들은 늘 최대한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강력하게 대항하는 모순적인 상태에 있다. 그들은 늘 하나님에게 맹세하지만, 또 금방 자신의 맹세를 번복하는 모순적인 상태에 있다. 그들은 늘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만, 또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부정하는 모순적인 상태에 있다. 하나님의 깨우침, 인도, 공급, 도움을 간절히 바라지만 또 스스로 활로를 찾는 모순적인 상태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가길 원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피하며, 하나님을 향한 마음도 닫혀 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해 글자 그대로 어느 정도의 얕은 이해와 체험이 있고,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얕은 개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잠재의식 속에 하나님이 진리인지에 대한 확신이나 확정이 없고,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인지 확신하지도 못한다. 또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의 진실성을 확정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참된 존재에 대해서는 더욱 확정하지 못한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에는 늘 의심과 오해, 상상과 관념이 섞여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과 동시에 마지못해 그들이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진리를 조금씩 체험하거나 실행한다. 이로써 그들은 믿음을 충족시키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얻는 경험을 풍부하게 하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확립한 인생의 길을 걷고, 인류의 정의로운 사업을 완수하겠다는 허영심을 만족시키며, 동시에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인류의 큰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에게 도박을 걸며,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다’는 원대한 포부와 평생의 염원을 이루고자 한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들에게는 욕망과 복을 얻으려는 속셈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내려놓기를 꺼리고 아까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복을 받으려는 욕망과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다’는 숙원이 사라지면 하나님을 믿는 원동력을 잃게 될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마주하지 않으려 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직시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더더욱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하나님,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그들의 상상을 대체하게 되는 순간, 그들의 꿈이 깨지기 때문이다. 또한 소위 순수하고 올바른 신앙과 오랜 시간 고생하면서 쌓은 ‘공덕’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물거품이 되고, 그들이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쌓은 ‘강산’이 곧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오랫동안 고생하고 대가를 치렀던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그들이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들에게 심적으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자 가장 맞이하고 싶지 않은 결과이다. 따라서 그들은 계속해서 대립하고 뉘우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부류로, 젖을 뗀 아기 단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앞서 언급한 세 부류의 사람들, 즉 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 그리고 공의로운 성품을 참되게 믿지 못하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인정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이 세 단계의 사람들은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기 무척 어렵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기도 어려우며,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기도 쉽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방법과 그들의 잘못된 태도로 인해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속에 역사할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의심, 오해, 상상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인식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몹시 위험한 세 부류이자 몹시 위험한 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신분, 또 하나님이 진리인지, 하나님이 진실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의심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이때,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진리, 길, 생명이라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구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이러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참된 인도와 공급을 받을 수 있겠느냐? 이 세 단계에 처한 사람들은 언제든 하나님에게 대항할 수 있다. 언제든 하나님을 판단하고 모독하며 배신할 수 있고, 또한 참진리를 등지고 하나님을 저버릴 수 있다. 이 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위험한 시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 번째 부류, 유아의 성장 단계, 즉 유년 단계

사람은 젖을 뗀 후, 다시 말해 충분히 은혜를 누린 후 하나님을 믿는 의미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하나님이 사람에게 사역하려 하는지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 알려고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풀리지 않는 의문과 문제가 생긴 후, 사람들은 이 의문들을 가진 상태에서 끊임없이 양육을 받으며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에 하나님의 참된 존재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사라지고, 하나님을 믿는 의미도 정확히 깨닫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하나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해서도 점차 어느 정도 답을 찾게 된다. 이 시기의 사람은 성품의 변화이든 하나님을 알아가는 측면에서든 모두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하고 전환점에 들어서게 된다. 이때부터 사람은 비로소 생명이 생기기 시작한다. 생명이 생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갖는 오해, 상상, 관념, 그리고 하나님을 막연하게 정의하는 것 등의 하나님을 알아가는 부분과 관련 있는 문제들이 점차 해결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된 존재를 진정으로 믿고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하나님의 지위를 확정하게 되며, 하나님을 진실로 따름으로써 막연한 신앙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고 추구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진리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채찍질, 징계를 사모하며, 성품이 변화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또한 이 시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여러 관념과 상상을 점차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서 하나님에 대해 순수하고 올바른 기본 인식을 어느 정도 갖게 된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어떤 부분은 아직도 그리 구체적이거나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의 관념, 잘못된 인식,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점차 내려놓기 시작하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을 더 이상 고수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포기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관념의 것, 지식적인 것, 사탄에게서 온 것을 버리기 시작하고, 옳고 긍정적인 것에 순종하려고 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과 진리에 맞는 것에 순종하길 원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실천해 보려고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행동 원칙으로 하고, 성품이 변화하는 근거로 삼는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이 되도록 한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마음속으로 믿는 하나님이 참으로 존재하는 분임을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닫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의 체험과 삶에서 하나님이 언제나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고, 사람을 인도하고 있고, 사람에게 공급하고 있음을 점차 깨닫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류 속에서 점차 하나님의 존재를 실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잠재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고 확신하며, 하나님의 말씀도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인정하게 될 때,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부인하게 된다. 자신의 관념과 지식, 자신의 상상을 부인하게 되고 또한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계속해서 구하게 된다. 이 성장 시기에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깊이가 매우 얕고, 심지어 자신의 언어로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으며, 감성적인 깨달음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세 단계와 달리, 이 단계 사람들의 어린 생명은 양육과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아 이미 싹트기 시작했다. 땅에 심어진 씨앗 하나가 물과 양분의 공급을 받은 후 땅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이, 싹이 텄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사람들은 생명의 조짐을 알 수 있다. 사람에게 생명이 생기면 성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발을 내디디고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으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면 이를 기초로 사람의 생명은 필연적으로 점차 성장한다. 이 성장은 무엇을 근거로 가늠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험,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한 참된 체험으로 가늠할 수 있다. 이 성장 시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정말 어렵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더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구원 대상이 되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성장 단계에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불분명하고 구체적이지 않다. 분명하게 말하지는 못할지라도 속으로는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중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만 이해의 깊이가 얕아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대함에 있어 이 단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관점이 있다. 이는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방식이 변하고 있는 것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요구와 폭로를 통해 만약 사람이 더 이상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실제에 진입하지 않는다면, 또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아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무리 많이 누린다 해도 성품이 변화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알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만약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산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장할 수 없고, 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실한 체험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영원히 아기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명이 성장하는 단계로 발을 내딛지 못할 것이다. 네가 영원히 아기 단계에서 살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며, 하나님 말씀을 생명이 되도록 하지 못하고, 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과 인식이 없다면,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될 희망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이 되도록 하는 사람,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사람, 타락한(직역: 패괴된) 성품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고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염원이 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려는 소망이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 네 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유아의 성장 단계, 즉 유년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다섯 번째 부류, 생명의 성장 단계인 성년 단계

비틀거리며 부딪치고 넘어지는 유년 단계를 겪고 반복해서 성장하는 단계를 지나 사람의 생명은 안정화된다. 더 이상 전진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지만 더 이상 연약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더 이상 모색할 필요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방향을 잃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체험하는 과정에서 기반이 단단해졌고, 마음은 하나님의 존귀함과 위대함에 이끌린다. 그래서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며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고자 간절히 바란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를 믿고 있는지, 자신이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자신이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하나님이 한 말씀이 모두 진리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이들은 오랜 시간 체험을 통해 만약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없다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올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 단계의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시련이 임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고, 더 순결하게 사랑할 수 있길 바라며, 동시에 더 진실하게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단계의 사람은 이미 아기 단계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떡으로 배를 불리는 단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들은 더는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지나치게 바라지 않고, 오히려 타락한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끊임없이 임하길 바라고 또 받아들일 자신감도 있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나 추구 혹은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그들은 마음속으로 모두 명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년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막연한 신앙 단계, 은혜로 구원 얻는 단계, 생명이 어려서 시련을 감당할 수 없는 단계에서 벗어났고, 모호한 단계, 모색하는 단계, 늘 행할 방법이 없는 단계를 떠났으며, 변덕스러운 불안정기와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단계와 결별하였다. 이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고, 하나님과의 진실한 교류와 소통이 있다. 이 단계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일할 때 진리의 원칙을 찾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을 찾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간증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점차 성장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 인류를 창조한 하나님의 뜻,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점차 깨닫고 알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깨닫고 알게 되는데, 이는 사람의 그 어떤 관념이나 상상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다섯 번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완전히 성숙하였다고 말할 수 없고, 의인이라 부를 수 없으며, 완전한 사람이라 칭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생명이 성숙한 단계로 이미 들어섰고, 하나님 앞에 이르러 하나님 말씀과 대면하고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수없이 체험하였고, 무수한 시련을 겪었으며,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 형벌도 셀 수 없이 겪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순종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잠재의식에서 정확하고 뚜렷한 인식으로, 얕은 인식에서 깊은 인식으로, 모호한 인식에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인식으로 바뀌었으며, 또한 힘들게 모색하고 수동적으로 구하던 데서 쉽게 깨닫고 자발적으로 간증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의 진리의 실제를 갖추었고, 베드로처럼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다섯 번째 부류의 사람으로, 생명이 성장하는 삶을 사는 단계, 성년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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