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하나님 알아 가기 | 발췌문 37

2020.06.16

하나님이 소돔을 멸하려고 하다

(창 18: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창 18:29)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0) “아브라함이 가로되 …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1)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 거기서 이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그가 보살피는 자에게는 크게 긍휼을 베풀고 혐오하여 포기하는 자에게는 크게 노한다

성경 기록을 볼 때, 소돔 성에 하나님의 종이 10명이라도 있었느냐? 없었다! 하나님께 그 성은 남겨 둘 가치가 있었느냐? 성에서는 롯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자를 영접했다. 이는 그 성에 하나님의 종이 한 사람뿐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롯만 구원하고 소돔 성을 멸한 것이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가 보기에는 아주 간단하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매우 원칙 있게 일을 한다는 것이다. 결정 하나를 내리기 전에 장기간의 감찰과 생각의 과정을 거치며, 때가 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결정이나 판단도 단호하게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는 그 결정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일찍이 성안에는 의인이 40명도, 30명도, 20명도 없으며, 10명조차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안의 의인은 롯 한 명뿐이었다. 성에서 일어나는 일, 성안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은 감찰하고 있었으며,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결정은 잘못될 리가 없었다. 그에 비하면, 하나님의 전능 앞에서 사람은 매우 무감각하며, 더없이 우매하고 무지하며, 근시안적인 존재라는 것이 더 두드러진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에서 우리가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발현되어 왔다. 그러므로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 숫자는 아주 간단하며 어떤 문제도 설명하지 않지만,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의인이 50명 있다면 그 성을 멸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로 인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관용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하나님의 이 부분의 성품을 보았느냐? 더 나아가 의인이 10명밖에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의인 10명으로 인해 그 성을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관용과 사랑이 아니냐? 하나님은 그 의인들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고, 그들을 염려하여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용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결과는 무엇이냐? 아브라함이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멸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였다. 그 후, 아브라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성에는 그가 말한 의인이 10명도 없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기로 뜻을 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어떤 결정을 하였느냐? 그 성에 의인이 10명도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성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으며, 반드시 그 성을 멸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노가 아니냐? 그 ‘노’는 하나님의 성품을 대변하지 않느냐? 그 성품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의 발현이 아니냐?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본질의 발현이 아니냐? 하나님은 의인이 10명도 없다는 것이 확정되면 반드시 그 성을 멸할 것이며, 게다가 그 성에 있던 사람들을 엄하게 벌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했고 또한 그들이 너무 더럽고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이 대화들을 분석할까? 이 간단한 몇 구절에 크게 긍휼을 베풀고 크게 노하는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인을 귀하게 여기고 긍휼히 여기며 관용으로 대하고 염려하는 동시에, 그 성안의 모든 패괴된 자들을 마음속 깊이 증오하였다. 이것이 크게 긍휼을 베풀기도 하고 크게 노하기도 하는 것 아니냐?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그 성을 멸하였느냐? 불로 멸하였다. 하나님은 왜 불태우는 방법으로 그 성을 멸했을까? 네가 어떤 물건이 불에 타는 것을 볼 때, 혹은 네가 어떤 것을 불태워 버리려고 할 때, 너는 그 물건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 왜 그것을 불태우느냐? 더는 필요 없고, 더 이상 그 물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으냐? 그것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있지 않으냐? 하나님이 불로 태우는 방식에는 포기한다는 의미가 있고, 증오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불로 소돔 성을 멸할 때 바로 이런 심정이었다. 불태우는 방식은 하나님의 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은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노할 때에도 사람에게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의 면을 보여 준다.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에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은 크게 긍휼을 베푼다. 사람이 심히 패괴되고 하나님을 매우 적대시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은 크게 노한다. 그리고 그 노는 어느 정도로 분출될까? 그 사람의 대적과 악행이 더 이상 하나님께 보이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 눈앞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노가 사라지게 된다. 즉,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의 몸과 생각이 외적으로, 또 주관적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따르고 순종하고 싶든지 간에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노는 끝없이 분출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을 때, 하나님이 크게 노할 때, 하나님의 노는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분출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에게는 영원히 더 이상의 긍휼도 관용도 베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 성품의 일면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성 하나를 멸하려고 했을 때, 그 일이 사람에게는 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 성이 죄악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의 눈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남아 있을 수 없으니 하나님이 그 성을 멸하는 것은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기 전후에 발생한 일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보았다. 그는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관용과 긍휼을 베풀며, 악한 것과 죄에 속한 것, 사악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노하며, 그 노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 성품의 가장 주된 부분이자 가장 두드러지고, 더욱이 하나님이 시종 나타내고 있는 주요 2가지 측면이다. 즉, 크게 긍휼을 베풀고 크게 노하는 것이다. 너희들 대다수는 하나님의 긍휼은 어느 정도 느낀 적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노를 체험한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일찍이 크게 긍휼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희 중 그 어떤 사람이나 일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크게 노한 경우는 아주 드물고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마라! 하나님의 노는 조만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이냐?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노를 표출할 때, 다시 말해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크게 노할 때는 하나님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 사람을 혐오하고 버렸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존재를 증오하며 더 이상 그 사람의 존재를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노가 임하면, 그 사람이 소멸됨을 의미한다. 지금은 하나님의 사역이 아직 그 정도까지 진행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크게 노하면, 너희 중에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이 이 시대에 너희 모든 사람에게 크게 긍휼을 베풀어 주었을 뿐, 아직 크게 노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노가 임하기를 구해도 된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노와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이 정말 존재하는지를 체험해 보면 된다. 너희는 감히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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