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생명 진입 | 발췌문 569
2020.10.10
사람은 자신의 본성에 대해 인식한 것이 너무 얕아 하나님이 심판하고 폭로한 말씀과 차이가 아주 크다. 이는 하나님이 폭로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본성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충분히 깊지 않은 까닭이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 근원적이고 본질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행실이나 겉으로 드러낸 것에 대해서만 신경 쓰고 공을 들인다. 비록 가끔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하더라도 그 인식은 그다지 깊지 못하다. 자신이 어떠한 일을 했거나 자신에게서 어떤 측면의 패괴 성품이 드러났으니 자신이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고 그런 본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이 폭로한 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인데, 사람이 인식한 것은 사람의 행실이나 말하는 방식의 잘못이나 결점이다. 그래서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기 상당히 힘들어한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은 그저 조심하지 않아 일시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으로, 본성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이렇게 인식한다면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진리를 진리로 여기지 않고 진리를 사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리를 실행할 때 건성으로 규례만 지킬 뿐이다. 사람은 자신의 본성이 그다지 나쁘지 않아 멸망하거나 벌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어쩌다 한 번 거짓말을 하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고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기준에 따르면, 아직 멀었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행실만 있을 뿐이지, 실제로 진리를 실행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위와 행실의 변화가 본성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행실이 사람의 옛 모습이나 본성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수 없으며, 오직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깨달아야만 실행에 깊이가 생기고 규례를 지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사람의 진리 실행은 기준치에 이르지 못하고, 진리가 요구하는 바에 완벽하게 도달하지도 못한다. 사람은 그저 진리의 일부만 실행하고, 어떤 상태나 환경 속에서만 실행할 뿐, 모든 환경 속에서, 그리고 모든 배경 속에서 진리를 실행하지는 못한다. 가끔 즐겁고 내적 상태가 좋을 때, 또는 함께 교제하며 내면이 비교적 자유로울 때, 일시적으로 진리에 부합하는 일을 해낼 수 있지만, 소극적인 사람, 추구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실행에 부족한 점이 있고, 그다지 적절하게 해내지 못한다. 이는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때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한때의 감정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아 실행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내적 상태나 본성을 파악하지 못해 때때로 자기가 예상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너는 자신의 일부 상태에 대해서만 알 뿐, 자신의 본성을 파악하지 못했기에 네가 나중에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즉, 굳게 설 수 있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없다. 때로 어떤 상태에서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얼마간 변화도 있는 것 같지만, 또 다른 환경에 처하면 실행해 내지 못한다. 이는 네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떨 때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지만 어떨 때는 실행해 내지 못하고, 어떨 때는 깨닫지만 어떨 때는 흐리멍덩하며, 이번에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할 수도 있다. 이는 내면에 패괴된 것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진실로 스스로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 패괴된 것을 없애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자신의 패괴 성품을 똑똑히 알지 못한다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을 또 할 수 있다. 이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네가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 보고 증오할 수 있다면, 스스로를 통제하고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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