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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마지막 구간의 길을 어떻게 갈 것인가

지금 너희는 마지막 구간의 길을 가고 있다. 이 구간의 길은 매우 중요한 길이다. 너는 예전에 적잖이 고난받고, 많은 사역을 하고, 쉴 틈 없이 뛰어다니고, 수많은 설교를 들었을 수도 있다. 가까스로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눈앞의 작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예전처럼 행동한다면 온전케 될 수 없다. 이는 너에게 엄포를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하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많은 사역을 체험하면서 식견이 다소 넓어졌고, 분별력이 많이 향상되었으며, 섬김의 원칙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예수가 맡긴 일에 충성을 다했다. 그가 크나큰 연단을 받는 이유는 대부분 자신이 갚을 수 없을 만큼 하나님께 빚진 것이 많다고 느꼈으며, 사람이 심히 패괴되었음을 알게 되어 양심에 참소를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많은 말씀을 했으나 베드로는 그 당시에 아는 것이 일천하여 예수를 대적하고 거역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야 그나마 조금 깨닫게 되면서 크게 가책을 받았다. 나중에는 마음속에 올바르지 않은 생각이 떠올라도 못 견디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잘 알았고 또 주님의 거룩함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강해졌고, 자신의 생명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극심한 고통을 참고 견뎠다. 가끔 죽을 것처럼 큰 병을 앓기도 했지만 그렇게 몇 차례의 연단을 겪으면서 그는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일생을 연단과 형벌 속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체험을 했고, 그의 사랑은 온전케 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사랑보다 컸다. 그를 본보기로 세운 이유는 그가 평생 동안 가장 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의 체험이 가장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마지막 구간의 길을 정말 베드로처럼 갈 수 있다면 그 어떤 피조물도 너희의 복을 앗아 갈 수 없을 것이다.

베드로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인성을 가졌음에도 처음 예수를 따를 때에는 대적하거나 거역하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수를 따르는 동안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가책을 느끼지도 않았고 그로 인해 책망을 받지도 않았다. 예수는 베드로의 그런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 베드로나 다른 사람에게 시시콜콜 따지는 법이 없었다. 어쩌면 너는 예수님이 아무렴 그들의 생각을 몰랐겠냐고 할 수 있다. 분명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수는 베드로를 잘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는 인류를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긍휼히 여겼다. 지금 너희 중에도 다수가 바울처럼 대적하고, 베드로가 처음에 예수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지 않으냐? 나는 너에게 자신의 제3의 감각을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너의 감각은 믿을 만한 구석이 없고, 이미 오래전에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형편없는 정도로 망가졌다. 너는 네 감각이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느냐? 바울이 예수를 수차례 대적하였으나 예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예수가 바울 몸 속의 ‘귀신’을 쫓아낼 수 없어서 그랬겠느냐? 예수는 왜 자신이 부활 승천한 후 바울이 예수의 제자들을 대거 잡아들일 때에야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에게 나타나 그를 쳤을까? 예수의 반응이 더디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그가 육신으로 있을 때는 그럴 권병이 없었기 때문이란 말이냐? 너는 네가 뒤에서 몰래 사역을 허물고 나를 대적하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너의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성령의 깨우침으로 나를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어렸을’ 때 예수에 대해 그렇게 많은 생각을 품고 있었어도 가책을 받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일을 저지르고도 가책을 받지 않으며, 심지어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일러 주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는 모두 사람의 패역 때문이 아니냐? 지금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데도 너의 양심은 깨어날 기미조차 없다. 이래서야 어떻게 마지막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겠느냐? 너는 이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사람은 정복되면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하고,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로 하나님을 따르게 된다. 그럼 마지막 구간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하겠느냐? 환난을 겪는 동안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고난받을 의지가 있어야 이 구간의 길을 잘 갈 수 있다. 이 구간의 길이 가기 쉬워 보이느냐? 너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알고, 자질을 향상하며, 진리를 충분히 갖추어야 한다. 이 사역은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마지막 길을 가는 것은 네가 가진 믿음과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 어쩌면 너에게서 성령의 역사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또는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를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관하고 낙담하거나, 앞길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게다가 과거의 대단한 용사들도 쓰러졌으니 이 모든 것이 너에게 타격이 되지 않겠느냐? 이런 일을 너는 어떻게 보아야 하겠느냐? 도대체 너에게 믿음이 있기는 한 것이냐? 오늘날의 사역을 분명히 알고 있느냐? 바로 이런 것들에 의해 네가 마지막 구간의 길을 잘 갈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된다.

지금 너희가 마지막 구간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이는 너희가 깨달아야 할 것을 모두 깨달았고, 내가 너희에게 사람이 갖춰야 할 것과 너희에게 맡겨 준 일들에 대해 일러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오늘날 가는 길은 내가 인도하는 마지막 구간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독립적으로 살아갈 능력을 갖추는 것 하나뿐이다. 즉, 언제든 행할 길이 있고, 변함없이 자질을 향상하며,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정상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너의 삶을 이끌어 주고 있지만, 앞으로 내가 이끌어 주지 않아도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겠느냐?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 다음은 베드로가 경험한 과정이다. 예수가 그를 이끌어 줄 때, 그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항상 아이처럼 아무런 걱정이 없었고,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예수가 떠난 후에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예수가 떠나고 난 후에야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역시 정상 인성에 맞는 이성과 정상인이 가져야 할 것들을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진정한 체험과 추구는 예수가 떠난 후에야 새로이 시작되었다. 그럼 지금 너희는 어떠하냐? 오늘날 이렇게 인도를 받고, 환경과 시련이 임하지 않아 굉장히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너의 분량이 어떤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고, 네가 도대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다. 네가 자신의 본질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빈말이다. 사실이 임해야 너의 인식을 증명할 수 있다. 네가 지금은 깨달음을 얻어 “저는 육적으로 몹시 패괴되었고, 인간의 육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본질을 가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는 것도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 것임을 오늘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쉽게 내뱉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환난, 시련, 고통이 닥치면 이를 겪어 나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매일 이렇게 따르면서도 겪어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너희를 내버려 두기라도 한다면 더 말이 아닐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실족하여 소금 기둥이 되고 치욕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는 모두 가능한 일이다. 너는 이 때문에 몹시 애타지 않느냐? 베드로는 그런 환경과 고통을 겪고도 굳건히 섰다. 하지만 네가 그 환경에 처한다면 굳건히 설 수 있겠느냐? 예수가 땅에 있을 때 했던 말씀과 사역이 베드로에게는 초석이 되었으며, 베드로는 이를 기반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너희들도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 과거에 걸은 길과 현재 깨달은 진리가 네가 앞으로 굳건히 서기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느냐? 네가 앞으로 굳게 서기 위한 이상(異象)이 될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겠다. 지금 사람이 깨달은 것은 모두 도리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알고 있는 전부가 체험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새 빛의 인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너의 분량이 그만한 정도가 되어서가 아니라 나의 말로 너를 오늘날까지 인도한 것이다. 너의 믿음이 컸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말의 지혜를 따라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금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너는 즉시 움직이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너희의 실제 분량이 아니냐? 너희는 어디서부터 진입해야 할지, 자신의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굳세고 힘 있게 증거할 수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너희가 이를 해내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너희는 모두 게으르고 미련하다! 너희는 기댈 줄밖에 모른다. 새로운 빛에 기대고, 앞에서 이끌어 주는 자에게 기댄다. 네가 지금까지 버티며 올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새로운 빛과 최신 음성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참도를 추구했던 베드로와는 전혀 다르다. 또한 여호와가 어떤 시련을 주든 아니면 축복을 내리든, 오직 충성하는 마음으로 그를 경배하며 그를 하나님이라고 굳게 믿었던 욥과도 다르다.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너희는 어떻게 정복된 것이냐? 심판, 형벌, 저주뿐만 아니라 비밀에 의해 정복되었다. 너희는 모두 나귀와 같아서 깊이 있게 말하지 못하고 심오한 비밀까지 없으면 정복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약 사람이 설교하고, 일정 기간 같은 범주의 내용으로 설교했다면 너희는 2년도 되기 전에 전부 흩어졌을 것이고, 따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너희는 깊이 진입해야 하는 법도 모르고, 어떻게 진리와 생명의 도를 추구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오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만 신경 쓴다. 비밀이나 이상에 관한 것, 또는 하나님이 예전에 어떻게 사역했는지, 베드로의 체험이나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의 상황 등 이런 이야기만 들으려고 하고, 점점 더 신이 나서 듣는다. 너희는 이런 이야기들로 무료함을 달래려고 한다! 너희는 전적으로 새롭고 신기한 것에 의존하여 삶을 유지해 왔다. 너의 믿음으로 네가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느냐? 이것이야말로 너희의 볼품없는 분량이 아니냐? 너희의 인격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의 인성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에게 삶이 존재하기나 하느냐? 너희에게 온전케 될 만한 요소가 얼마나 있느냐? 내가 말한 것들이 사실이 아니냐? 너희는 아직도 이런 말과 사역을 거들떠보지 않고, 따르면서도 기웃거린다. 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항상 끌려 다니기만 한다. 너희 모두 이렇게 걸어왔으며, 이는 순전히 형벌, 연단, 채찍질이 너희를 오늘까지 이끌어 온 것이다. 생명 진입의 길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면 너희가 일찌감치 줄행랑을 놓지 않았겠느냐? 너희 모두 하나같이 속물이고, 솔직히, 속에는 더러운 물로 가득 차 있다! 너는 비밀에 눈을 뜨고, 다른 이들이 깨닫지 못했던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마지못해 오늘날까지 따라온 것이다.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에 뻔뻔하게 대세를 따랐으나 이는 말씀으로 얻은 성과일 뿐 너희의 공로가 아니다. 너희에게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 단계의 사역은 주로 말씀으로 너희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너희 가운데 누가 복종했겠느냐? 누가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겠느냐? 너희는 일찌감치 떠나고자 했으나 감히 떠나지 못했고, 떠날 용기도 없었다. 너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딴마음을 품은 채 따르고 있다.

베드로는 예수가 십자가의 사역을 마치고 떠난 다음에야 자신의 여정을 시작했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결핍을 깨달은 후에야 진리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미약하기 그지없고, 고난을 감내할 의지가 부족하며, 식견과 이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자신에게 예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고,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과 사람의 뜻에 해당하는 불순물이 많음을 깨달았다. 이를 깨달은 후에야 모든 측면에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가 이끌어 주던 시절에도 그의 상태를 짚어 주면, 베드로는 그것을 인정하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깨닫게 된 것은 그 시기 후였다. 당시에 베드로는 실제로 체험한 것이 없어 자신의 분량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말씀으로만 너희를 이끌고 너희에게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게 할 뿐, 단기간에 너희를 온전케 하지 않는다. 지금 해야 할 사역은 너를 정복하여 마음으로 승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정복이 끝난 다음에야 온전케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네가 깨달은 이상(異象)과 진리는 앞으로의 체험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의 환난 속에서 이 같은 말씀을 실제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시련이 임하거나 환난을 겪게 되면 지금 네가 “어떤 환난과 시련이나 큰 재앙에 직면하든 저는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말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베드로와 욥의 체험을 생각해 보면 너는 오늘의 이 말에 고무될 것이다. 그래야만 너의 믿음을 더 불태울 수 있다. 당시 베드로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때가 되면 너 역시 모든 이들이 너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기를 바라고, 기꺼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자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 형벌, 저주를 위안으로 삼을 것이다. 지금 너는 진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굳게 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을 제대로 겪어 나가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리되면 너는 도태되고 징벌받을 대상이 되지 않겠느냐? 아직 실제적인 일들이 닥친 것도 없다. 게다가 나는 너의 부족한 부분에 따라 일일이 공급해 주고 여러 면으로 말해 주고 있다. 그러니 너희는 그다지 고난받은 것도 없으며, 그야말로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격이다. 직접 대가를 치른 것도 없고, 자신의 진정한 체험이나 깨달음도 없다. 그러므로 너희가 알고 있는 것은 너희의 실제 분량이 아니다. 너희는 이해하고 알고 깨닫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을 뿐 큰 수확을 얻지는 못했다. 너희들을 상관하지 않고 집에서 혼자 겪어 나가게 내버려 두었다면 너희는 진작에 넓은 세상으로 도망가 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앞으로 가게 될 길은 고난의 여정이다. 만약 이 구간의 길을 잘 간다면 앞으로 더 큰 환난을 겪을 때 굳게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네가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인생의 바른길에 들어서고 하나님이 앞으로 어떤 처분을 내리든 그의 지배를 따르고, 불평을 하거나 선택을 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지금은 환난을 겪고 있지 않으니 모든 것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든 모두 좋습니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형벌하시든, 저주하시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네가 지금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너의 분량도 그 정도라고 할 수는 없으며, 지금 그렇게 바란다고 해서 네가 끝까지 따를 수 있음을 증명할 수는 없다. 큰 환난이 임할 때나, 박해나 핍박, 더 큰 시련을 겪게 되면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도 이런 인식을 가지고 굳게 설 수 있다면 그것은 너의 분량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베드로는 어떠했느냐? 그는 “주여, 저는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이렇게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당신을 끝까지 사랑할 것이며, 언제든 당신을 따르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막상 시련이 임하자 눈물만 줄줄 흘렸을 뿐 말대로 하지 못했다. 너희는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시련이 닥치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이런 것은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스스로를 어떻게 할 수 없다. 오늘은 매우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상황이 잘 맞기 때문이다. 내일 가서 상황이 갑자기 바뀌면 너의 나약함과 무능함은 물론 비열함과 옹졸함도 드러날 것이며, 너의 ‘대장부 기개’는 일찌감치 사라져 없을 것이다. 심지어 책임을 내팽개치고 손을 떼기도 할 것이다. 이는 네가 당시에 인식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너의 실제 분량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반드시 실제 분량에 근거하여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지, 하나님의 지배를 따를 수 있는지, 하나님이 요구한 것이면 온 힘을 다해 해낼 수 있는지, 목숨을 걸더라도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바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너는 “앞으로 더 큰 환난과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라는 지금 한 이 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온전케 되는 것은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욥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며, 나아가 욥보다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한다. 너는 앞으로 닥칠 시련은 욥이 겪은 시련보다 더 크고, 게다가 장시간의 형벌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간단한 일이겠느냐? 너의 자질이 향상되지 않고, 깨닫는 능력이 형편없고, 아는 것이 거의 없다면 그때에 이르러 증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탄의 웃음거리나 노리개가 될 것이다. 네가 지금 이상을 지킬 수 없다면 근간이 통째로 무너져 무용지물로 전락할 것이다! 어느 단계의 길이든 모두 가기가 쉽지 않다. 이 일을 가볍게 보지 말라. 마지막 구간의 길을 도대체 어떻게 갈 것인지를 잘 생각해 보고, 미리 준비하여라. 이는 앞으로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고, 모든 이가 가야 할 길이다. 지금의 이런 깨달음을 허투루 흘리지 말라.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쓸데없는 말로 치부하지 말라. 언젠가는 쓰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나는 쓸모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지금은 진리를 갖출 때이며, 앞날을 위해 길을 닦아야 할 때이다. 네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예비하고, 네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굳건히 설 수 있을지에 대해 애태워야 한다. 식충이처럼 살지 말고 앞날의 길을 위해 잘 예비해야 한다! 최대한 모든 시간을 아껴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얻어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주어 깨닫게 할 것이다. 너희는 내가 3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했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를 직접 보았다. 이렇게 사역하는 이유는 사람에게 결여된 것이 너무나 많고,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생각한 방법대로 반드시 사람들이 다 분명하게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 주고, 그다음에 증거하고 사용해야 한다면 너무 늦지 않겠느냐? 그러려면 내가 언제까지 너와 함께해야 하겠느냐? 내가 백발때까지 너와 함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 큰 환난을 겪게 하여 사람의 내면에 참된 깨달음이 생기게 하는 것이 사역의 절차이다. 오늘 교제하고 있는 이상을 온전히 깨닫고 진실한 분량을 갖추면 앞으로 어떤 고난을 겪든 어려움을 이겨 내고 굳건히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해야 할 말을 다 한 후에는 사람이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러면 예전에 “성령은 모든 이에게 사명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해야 할 사역이 있다.”라고 했던 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앞으로는 성령의 인도하에 각자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이다. 환난을 겪는 와중에 누가 누구를 보살필 수 있겠느냐? 모두 자기만의 고통이 있을 것이며, 사람마다 분량이 달라 각자의 분량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때는 남편이 아내를 신경 쓸 겨를이 없고, 부모도 자녀를 챙겨 주지 못하며, 지금처럼 서로 챙겨 주고 붙들어 주는 것과 달리 누가 누구를 챙겨 줄 형편이 못될 것이다. 그때는 각 부류의 사람이 드러나는 시기이다. 즉, 하나님이 목자를 치는 때가 되어 양떼가 흩어지는 것이다. 그리되면 너희는 참된 리더가 없으니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지금처럼 단체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능하기나 하겠느냐? 앞으로 성령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모두가 본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남편은 아내를 팔고, 아내는 남편을 팔며, 자식은 부모를 팔고, 부모는 자식을 핍박할 것이므로, 사람의 속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 마지막 구간의 길을 올바르게 가는 수밖에 없다. 오늘날 너희는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있다. 이 단계의 사역을 잘 체험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환난의 시간은 1년 이내여야지 지나치게 길어서는 안 된다. 1년 동안 지속되면 다음 단계의 사역을 그르치게 되고, 사람의 분량으로는 또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의 분량은 제한적이기에 환난의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사람이 견딜 수가 없다. 내가 나의 일을 끝내고 나면 그다음은 사람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야 하기에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아야 한다. 이 길은 고난의 길이자 고난의 여정이며,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너의 의지를 단련시키는 길이다. 너는 자신이 어떤 진리에 진입해야 하는지, 어떤 진리를 갖춰야 하는지, 어떻게 체험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진입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지금 갖춰야지 환난이 임한 후 준비를 하면 그때는 늦다. 모두가 자신의 생명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항상 다른 사람이 일깨워 주기를 기다리거나 날마다 귓가에 대고 말해 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내가 이렇게 말을 많이 했는데도 아직 자신이 어떤 진리에 진입해야 하고 어떤 진리를 갖춰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데 힘쓰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자신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조금도 없어서야 되겠느냐? 진입해야 할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깨달아야 할 것도 깨닫지 못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어리둥절해하고 있다면 네가 못 쓰게 된 물건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이냐? 무슨 쓸모가 있다는 말이냐? 지금 너희가 하고 있는 일 역시 자신의 길을 평탄케 하고 자신의 길을 닦는 것이다. 너는 사람이 도달해야 할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기준을 알아야 한다. 반드시 ‘나는 비록 심히 패괴되었지만 어떻게든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해.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 주지 않으셨을 때에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오늘날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셨고, 내가 이를 깨달은 이상 서둘러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해. 정상 인성으로 살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야 해. 베드로처럼 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정상 인성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려야 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 구간의 길, 즉 지금부터 앞으로 환난이 끝날 때까지의 길은 사람의 참된 분량을 드러내는 시기이자 사람에게 참된 믿음이 있는지의 여부를 보는 시기이다. 이 구간의 길이 예전에 이끈 그 어떤 길보다 힘들고 험난하기에 ‘마지막 구간의 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환난을 겪은 후에는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을 체험하게 되고, 또한 쓰임 받는 사역을 체험하게 되는 이들도 있으므로 사실은 마지막 구간의 길이 아니다. 따라서 ‘마지막 구간의 길’은 단지 사람을 연단하는 환난과 열악한 환경에 비추어 하는 말일 뿐이다. 예전에는 행복한 여정을 마칠 수 있도록 내가 너를 친히 이끌어 주면서 차근차근 가르치고, 직접 먹여 주었다. 형벌과 심판을 여러 번 겪었으나 너에게는 매번 작디작은 매질이었을 뿐이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너의 관점이 많이 바뀌었고, 네 성품도 많이 안정되었으며, 나를 다소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이 이 구간의 길을 가며 치른 대가나 쏟은 정성은 극히 미미하고, 내가 너를 오늘날까지 이끌어 왔다고 말한다. 나는 너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너에게 높은 차원으로 요구하지도 않으며, 오직 네가 이미 이루어진 것을 누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너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끊임없이 공급해 왔고, 너희에게 지나친 요구를 한 적이 없다. 너희는 형벌을 누차 겪고도 내가 기존에 요구한 것을 해내지 못했고, 뒤로 물러나거나 낙담했다. 그러나 나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친히 사역하는 기간이고, 너의 ‘헌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가게 될 길에서 나는 더 이상 사역하지도,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더 이상 너희가 무료하게 보내지 않게 할 것이고, 공과를 충분히 배울 수 있게 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너희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의 너의 실제 분량이 다 드러날 것이다. 너희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 맺지 못할지는 마지막 구간의 길을 어떻게 가느냐에 달려 있다. 예전에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일이 식은 죽 먹기라고 느낀 것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진지하게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떠하냐?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일이 쉽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아직도 하나님을 믿는 일이 어린아이가 큰길에서 노는 것처럼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너희가 양인 것은 확실하나 스스로 가야 할 길을 감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고, 자신이 믿고자 하는 하나님을 온전히 얻어야 한다. 스스로를 속이거나 우롱해서는 안 된다! 네가 이 구간의 길을 잘 넘기면 나의 복음이 온 우주로 확장되는 공전의 성황을 보게 될 것이며, 너도 나의 지기(知己)가 되는 행운을 누리고, 전 우주로 확장되는 나의 사역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계속 네가 가야 할 길을 즐겁게 갈 것이다. 앞에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지만 지금 네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마지막 구간의 길을 올바르게 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마지막 구간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을지 찾고 구하며, 예비해야 한다. 지금 너에게는 이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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