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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상 (3)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는데, 이는 그가 하려는 사역과 관련 있다. 은혜시대는 예수의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예수가 직분을 수행하기 시작하자 성령이 그의 이름을 증거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여호와의 이름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고,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그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고, 그를 위해 사역하였다. 구약의 율법시대가 끝났다 함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더 이상 여호와가 아닌 예수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을 하기 시작하였다. 사람이 지금까지도 여호와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율법시대의 사역을 적용하는 것은 규례에 얽매이고 구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세가 이미 도래했음은 너희도 알 것이다. 이 시점에 다시 예수가 온다면 여전히 예수라고 불릴 것 같은가? 지난날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정작 메시아가 왔을 때는 메시아가 아니라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는 자신이 다시 돌아올 것이며, 갔던 그대로 올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너는 예수가 어떻게 갔는지를 보았는가?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갔다고 해서 설마 다음에도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오겠는가? 그렇다면 계속 예수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가 재림할 때는 시대가 그에 의해 바뀌었을 텐데, 그를 계속 예수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이름은 오직 예수로만 불려야 하는가? 새 시대에는 더 이상 새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는 것인가? ‘사람’의 형상과 특정한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전부란 말인가?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 이름으로 불린다. 시대가 다른데 어찌 같은 사역을 행하겠는가? 어떻게 낡은 것을 지키겠는가? ‘예수’란 구속 사역을 위해 취한 이름인데 말세에 그가 재림할 때에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는가? 또다시 구속 사역을 하겠는가?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도 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가? 사역한 시대가 다르기 때문 아닌가?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시대는 이름에 의해 바뀌고, 이름에 의해 대체된다. 어떤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없으며, 또한 시대성을 띤 그의 성품만을 대표하고 사역을 대표할 수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적합한 이름 하나를 택하여 전 시대를 대표할 수 있다. 여호와의 시대든 예수의 시대든 모두 이름으로 시대를 대표하였다. 은혜시대가 끝나고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자 예수도 돌아왔다. 그런데 그를 어찌 또 예수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가 어찌 또 예수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오겠는가? 너는 예수가 단지 나사렛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잊었는가? 너는 ‘예수’가 인류의 구속주일 뿐임을 잊었는가?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말세의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겠는가?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떠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가 어찌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와서 또다시 예수라고 불리겠는가? 그가 정말 흰 구름을 타고 온다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리 있겠는가? 세상의 그 누가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그렇다면 오직 ‘예수’ 자신만이 하나님 아니겠는가? 그 말인즉,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유대인의 모습이고 영원히 바뀔 수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예수는 자신이 갔던 그대로 돌아온다고 했다. 너는 그 말의 진의를 아는가? 그가 너희에게 알려주기라도 했는가? 너는 단지 그가 흰 구름을 타고 갔던 그대로 돌아온다는 것만 알 뿐이다. 너는 하나님 자신이 어떻게 역사할 것인지 예상할 수 있는가? 네가 정말 그것을 안다면 예수가 했던 “말세에 인자가 올 때는 인자도 모르고 천사들도, 하늘의 사자들도 모르고 모든 사람들이 모르며 오직 아버지, 즉 영만 아시느니라”라고 했던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네가 그 모든 것을 예상하고 알 수 있다면 그 말씀은 허사가 되지 않겠는가? 인자 자신도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그것을 예상할 수 있겠는가? 네가 직접 볼 수 있다면, 그 말씀은 허사가 되지 않겠는가? 예수는 당시에 어떻게 말했는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라고 하였다. 그날이 와도 인자조차 알지 못한다. 인자라 함은 성육신한 하나님을 뜻하는데,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다. 그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을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예수는 떠난 그대로 돌아올 것이지만 올 때는 자신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너에게 미리 알려 주겠는가? 그가 오는 것을 네가 볼 수 있겠는가? 이것은 황당한 소리가 아닌가? 하나님은 지상에 올 때마다 이름은 물론, 성별과 형상, 그리고 사역도 바꾼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이므로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가 이전에 왔을 때 예수라고 불렸다 해서 이번에도 여전히 예수라고 불리겠는가? 이전에는 남성이었는데, 이번에도 남성이겠는가? 이전에는 은혜시대의 십자가 사역을 했는데, 이번에도 사람들을 구속하여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겠는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겠는가? 그렇다면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하나님이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모르는가?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이 영원불변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의 이름과 사역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너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의 6천년 경영 계획이 끝날 수 있겠는가?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언제나 새롭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그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영원불변하다면 왜 두 시대의 사역을 했겠는가? 그의 사역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성품을 사람들에게 점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그것은 그의 고유한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처음에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들에게 비밀스러운 것이었고,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공개적으로 나타낸 적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품을 조금씩 나타냈다. 이렇게 사역한다고 해서 시대마다 성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끊임없이 바뀐다고 해서 그의 성품도 끊임없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사역하는 시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모든 성품을 단계적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내어 자신을 알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특정한 성품이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그의 성품 역시 조금씩 바뀐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특정 성품, 즉 자신의 속성을 사람들에게 나타낼 때,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낸다. 한 시대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다’는 말은 그의 사역을 두고 말한 것이고,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는 말은 그의 고유한 속성을 두고 말한 것이다. 너희는 6천년의 사역을 어느 한 곳에 고정해 두거나 케케묵은 말에 묶어 놓아서는 안 된다. 이는 어리석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의 사역은 한 시대에만 머물 수 없다. 이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며, 하나님은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사역했던 것과 같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라 사탄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은 영원히 사탄일 뿐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함, 공의로움, 그리고 위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본질과 그의 속성은 영원불변한 것이지만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심화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고, 새로운 사역을 하며, 피조물에게 그의 새로운 뜻과 성품을 보여 준다. 사람이 새 시대에 새로운 성품의 발현을 보지 못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아 놓지 않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가? 성육신한 하나님이 남자라면, 사람들은 그를 남자로 규정하고 남자의 하나님으로 대하지, 결코 여자의 하나님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자들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같은 남자라고 여길 것이고, 그는 남자들의 머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여자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는 불공평한 일이다. 그러면 차별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자신과 같은 남자만 구원하게 될 것이니, 여자는 그 누구도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할 때 아담도 만들고 하와도 만들었다. 하나님은 아담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 하나님은 남자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여자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말세에 하나님은 새로운 단계의 사역을 하여 더 많은 성품을 나타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 때의 긍휼과 자비가 아니다. 새로운 사역을 하는 이상, 그 사역에는 새로운 성품을 나타낸다. 성육신하지 않고 영이 역사하면서 천둥 소리로 직접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접할 수가 없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의 성품을 알 수 있겠는가? 단지 영의 역사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하나님의 성육신을 통해,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 그의 모든 성품을 육신을 통해 선포해야만 사람은 직접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사람이 그의 성품을 실제적으로 접하고 그의 속성을 접해야만 하나님을 진실로 알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은 “하나님은 남자의 하나님이자 여자의 하나님이다.”라는 사역을 완성하게 되고, 성육신한 하나님의 모든 사역도 성취하게 된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지금이 말세인 이상, 하나님은 말세의 사역을 하고, 자신이 말세에 지닌 모든 성품을 나타내려고 한다. 말세라 함은 다른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때가 되면 너희는 반드시 재앙을 겪을 것이며, 지진과 기근, 그리고 온역을 겪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낡은 은혜시대가 아니라 다른 시대임을 말한다. 사람들이 말하듯, 하나님은 영원불변한 존재이고, 그의 성품은 영원히 긍휼과 자비이며,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여 그 어떤 사람도 구원하고 또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의 사역에 끝이 있겠는가?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모든 죄인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을 제단에 바침으로 구속 사역을 완성했다. 예수가 이미 은혜시대를 끝냈는데, 말세에 또다시 은혜시대의 사역을 행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계속 그렇게 한다면 이는 예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온 하나님이 십자가 사역을 하지는 않더라도 그때처럼 긍휼과 자비를 베푼다면, 그가 이 시대를 끝낼 수 있겠는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 시대를 끝낼 수 있겠는가? 시대를 끝내는 마지막 사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형벌과 심판으로 나타난다. 온갖 불의를 드러내어 만민을 공개적으로 심판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런 성품만이 시대를 끝낼 수 있다. 말세가 되었으니 만물은 각기 종류대로 나뉠 것이며, 각각의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부류로 나누어질 것이다. 이때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귀착지를 드러내는 때이다.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의 결말은 오직 형벌과 심판을 통해서만 오롯이 드러나고, 사람은 형벌과 심판을 받아야만 본색이 드러난다. 사람은 악한 자는 악한 자끼리, 선한 자는 선한 자끼리 각기 그 부류대로 나뉠 것이다. 형벌과 심판을 통해 만물의 결말을 드러내어 착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준다. 이로써 모든 백성은 하나님의 권능에 복종하게 된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들의 타락 성품과 패역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오직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는, 말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으며 악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로써 모든 불의한 자들을 강력히 징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품은 모두 시대적 의미가 있다. 성품을 나타내고 공개하는 것은 새 시대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아무 의미 없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다.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는 말세에도 여전히 끝없는 긍휼과 자비를 베풀며 사랑해 주고, 공의로운 심판 없이 사랑하기만 하면서 관용을 베풀고 인내하고 죄를 사해 주며,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언제나 용서만 해 주고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지 않는다면, 전체 경영은 언제 마무리할 수 있겠는가? 그런 성품으로 언제 사람들을 인류에게 적합한 귀착지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사람들을 언제나 사랑하기만 하는 한 법관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이 무슨 죄를 저지르든 모두 사랑해 주고, 그 누구라도 아껴 주고 감싸 준다면, 공정한 판결은 언제 할 수 있겠는가? 말세에는 오직 공의로운 심판만이 인류를 부류대로 나뉘게 할 수 있고, 더 새로운 경지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심판과 형벌을 지닌 공의로운 성품으로 전체 시대를 끝내야 한다.

전체 경영 사역에서 하나님이 행한 모든 사역은 매우 분명하다. 은혜시대는 은혜시대이고, 말세는 말세이듯,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있기 때문에 시대마다 뚜렷한 차이가 있다. 말세의 사역을 하여 시대를 끝내려면 반드시 불사름과 심판, 형벌, 진노 그리고 훼멸이 함께해야 한다. 말세라고 하면 마지막 시대를 가리킨다. 마지막이라면 시대를 끝내는 것이 아닌가? 시대를 끝내려면 반드시 형벌과 심판이 함께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대를 끝낼 수 있다. 예수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한 것은 그들이 계속 생존하고 계속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잘 생존하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또한 그들이 계속 타락하여 음부, 지옥에서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음부, 지옥에서 구원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말세가 도래하여, 하나님은 사람들을 멸절시키고 인류를 완전히 훼멸시키려고 한다. 다시 말해, 인류의 패역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긍휼과 자비의 성품으로는 시대를 끝낼 수 없고 6천년의 경영 계획을 완성할 수도 없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특별한 성품이 있고, 시대마다 하나님이 해야 할 사역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에는 시대마다 자신이 나타내는 진정한 성품이 있고, 그의 이름과 사역은 모두 시대에 따라 바뀌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오롯이 갖춰진 새로운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시대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류를 인도하는 사역을 하였고, 지상에서 첫 단계의 사역을 하였다. 그 단계의 사역은 성전을 짓고 제단을 쌓으며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며, 그들 가운데서 사역한 것이다. 그들을 인도한 것은 하나님이 사역할 지상의 근거지를 넓히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그 근거지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이외의 사역을 확장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에서 밖으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그가 천지 만물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음을 점차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스라엘 밖으로 사역을 확장한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지상에서 역사한 첫 성지이다. 하나님이 지상에서 처음으로 역사한 곳은 이스라엘 전역이고, 그것은 율법시대에 한 사역이다. 은혜시대의 사역에서 예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었고, 그의 속성은 바로 은혜와 자비, 긍휼, 포용, 인내, 겸손, 사랑 그리고 관용이었다. 그가 와서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한 이유는 구속을 위한 것이었다. 그의 성품은 어떠했는가? 그의 성품은 긍휼과 자비였다. 그는 자신의 긍휼과 자비에 따라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으며, 그것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인류를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사탄은 “당신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상 끝까지 사랑해야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그들을 십자가에서, 곧 죄에서 구해 내야 한다. 자신을 바쳐 온 인류와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탄이 “당신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인 이상, 그들을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을 십자가에 바쳐야 한다.”라며 내기를 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는 “인류를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내놓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십자가에 올라 온 인류를 구속하였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 즉,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자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구원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 주었다. 사람은 오직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해야만 평안과 희락을 누릴 수 있고, 그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지극히 크고 지극히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그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구원과 죄 사함을 받았다. 은혜시대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이었으며, 은혜시대의 사역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는 구약성경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역을 행하였지만,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의 사역은 끝이 났다. 이것이 예수가 한 모든 사역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에는 여호와가 하나님의 이름이었고, 은혜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을 대표하였으며, 말세에는 그의 이름을 전능하신 하나님, 곧 전능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인도하고 정복하고 얻으며, 마지막에는 시대를 끝낸다. 모든 시대와 모든 단계의 사역에서 다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다.

처음에 구약 율법시대의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생활을 인도하는 것과 비슷했다. 최초의 인류는 여호와가 처음 만든 인류,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해야 하고, 지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해, 여호와가 아담과 하와라는 인류를 창조했지만,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하고 어떻게 지상에서 여호와의 법도를 따라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관(器官)은 만들어 주지 않았다. 여호와가 직접 인도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이를 직접 알 수가 없다. 사람들에게는 처음부터 이런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는 것은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사실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해야 그를 경외하는 것인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그를 경외하는 것인지, 무엇을 바쳐야 그를 경외하는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호와가 창조한 만물 가운데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는 법은 알고 있었지만, 지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피조물이라 칭해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인류를 아무도 이끌지 않고, 직접 인도하지도 않는다면, 인류는 영원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사탄에게 몰래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여호와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지만, 그들에게 총명과 지혜를 특별히 더 베풀어 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지상에서 생활했지만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리하여 인류를 창조하는 여호와의 사역은 전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절반만 완성되었다. 여호와가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고 그 형상에 생기도 불어넣어 주었지만, 사람이 그를 경외하도록 충분한 의지는 베풀어 주지 않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만 알았지 지상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식과 보편적인 법칙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여호와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고서 칠일간의 일을 완성했지만,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하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껍데기만 있고 사람으로서의 실제는 전혀 없었다. 또한 사람은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였다는 사실만 알았지, 어떻게 그의 말씀과 법도를 따라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인류가 생겨났음에도 여호와의 사역은 완성되지 않았다. 여호와는 또 인류를 그의 앞으로 철저히 인도한 후 사람들이 지상에서 무리를 지어 살면서 그를 경외하도록 하고, 그가 인도한 후에도 지상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역이 모두 끝나는 것이다. 즉, 여호와의 창세 사역이 모두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인류를 창조한 이상, 그들을 인도하여 지상에서 수천 년을 살게 하면서 그의 율례와 법도를 따르게 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가 지상에서 행하는 모든 활동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게 해야 했다. 그때서야 여호와의 사역이 모두 끝이 나는 것이다. 그는 인류를 창조한 후 바로 이 사역을 시작했다. 야곱 시기에 이르자 야곱의 열두 아들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구성되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가 지상에서 정식으로 인도하는 인류가 되었고, ‘이스라엘’은 그가 역사하는 지상에서 특정 장소가 되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상에서 정식으로 역사하는 첫 무리로 정하고, 이스라엘 전역을 사역의 발원지로 삼아 더 큰 사역을 했다. 이로써 그에게서 난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그를 경외하고, 지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한 것은 이방의 족속들에게 모범이 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한 것은 이방의 족속들이 따라야 할 것이 되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과 계명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어떻게 그의 말씀을 경외해야 하는지도 가장 먼저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알게 된 인류의 조상이자 그에게 선택받은 인류의 대표가 된 것이다. 은혜시대에 이르자 그는 사람들을 더 이상 그렇게 인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 죄악의 굴레를 쓰게 되자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책망의 말씀이 뒤따르고, 사람들을 죄에서 철저히 구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지금 사람들의 타락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자, 심판과 형벌로 이 단계의 사역을 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여러 시대의 사역이다. 바로 하나님의 이름과 그가 하려는 사역, 그리고 서로 다른 형상을 통해 시대를 구분하고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사역은 그의 시대를 대표하고, 그의 각 시대의 사역을 대표한다. 하나님이 시대마다 하는 사역이 모두 똑같고 모두 동일한 이름으로 불린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겠는가?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려야 하고, 여호와만이 하나님이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하나님이 아니라고 인식할 것이다. 혹은 예수만이 하나님이고 예수라는 이름 이외의 다른 이름으로는 불릴 수 없으며, 예수 외에 여호와나 전능하신 하나님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고 예수라 불려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의 이런 생각은 규례를 지키는 것에 불과하고, 하나님을 어떤 범위 내에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시대마다 행한 사역과 불렸던 이름, 그가 지닌 형상과 그가 행한 각 단계의 사역은 지금까지 어떤 규례도 따르지 않고 어떤 제한도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여호와이지만 예수이기도 하고 메시아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의 사역이 바뀜에 따라 그의 이름도 변하지만, 어떤 이름도 그를 완전하게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모두 그를 대표할 수 있고, 시대마다 하는 사역은 모두 그의 성품을 대표한다. 말세가 왔을 때, 네가 본 하나님이 여전히 예수이고, 또한 예수의 모습으로 흰 구름을 타고 와서는 “너희는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금식기도를 해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되 제 목숨을 아끼듯이 사랑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포용할 줄 알고 인내하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행해야만 내 제자가 될 수 있다.”라고 예수가 이전에 했던 말을 한다고 하자. 너희가 이렇게 행하여 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은혜시대의 사역이 아니겠는가? 그 가르침도 여전히 은혜시대의 말씀이 아니겠는가? 너희가 그런 말씀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그것은 여전히 예수가 행한 사역이라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반복되지 않는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겠는가? 너희는 하나님이 행한 사역이 지금 이 수준에 그칠 뿐 더 이상 발전이 없고, 그의 능력도 이게 전부라 새 사역을 행하지도 않고 능력을 다 써 버렸다고 느낄 것이다. 2천 년 전이 은혜시대였는데, 2천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은혜시대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한다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전에는 정말 지혜롭다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사람을 포용하고 인내를 가르치거나 원수를 사랑할 줄만 알았지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영원히 은혜시대에 국한하고, 영원히 하나님이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여길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의 사역이 되풀이되겠는가?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으며, 너희가 보고 듣게 되는 것은 너희의 상상과 전해 들은 전설과는 완전히 다르다. 오늘날에는 바리새인과 접촉하지도 않고 세상 사람들을 모르게 하므로 이를 아는 사람은 그를 따르는 너희밖에 없다. 그는 또다시 십자가에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은혜시대에 도처에서 공개적으로 전도한 것은 그의 복음 사역을 위한 것이고, 바리새인과 접촉한 것은 십자가의 사역을 위한 것이다. 그가 바리새인과 접촉하지 않았다면 권세를 잡은 자들이 아무도 알 리가 없는데, 그가 어찌 정죄당한 후 배반당하고서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예전에 바리새인과 접촉한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함인 반면, 오늘날 은밀하게 역사하는 것은 시험받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육신한 두 단계의 사역과 의의가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른데, 행하는 사역이 어찌 완전히 같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의 의미를 지닌 예수라는 이 이름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예수라고만 불려야 하고 더 이상 다른 이름이 있을 리 없다고 말한다면, 이 말이야말로 모독인 것이다!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예수’라는 이름이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많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중에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의 전부를 개괄할 수 없고,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이 많은 이름들조차도 그의 모든 성품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들이 완전히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을 개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류는 자신들이 인식한 하나님의 성품을 위대와 존귀, 기묘, 헤아릴 수 없음, 지고지상, 거룩, 공의 그리고 지혜 같은 몇 안 되는 한정된 어휘로 개괄할 수 있을 뿐이다. 참 많기도 하구나! 한정된 이 몇 개의 어휘로는 사람들이 본 하나님의 유한한 성품마저도 묘사할 수가 없다. 훗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럽다!’와 같이 마음속의 격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지어 내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와 유사한 언어 표현력이 절정에 이르렀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는 어떤 이름도 없다. 하나님의 속성은 너무나 많은데, 사람들의 언어는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단어 하나와 특정한 이름 하나로 하나님의 전부를 전혀 대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말해 보아라. 하나님의 이름이 고정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그처럼 위대하고 거룩한데, 너는 그가 시대에 따라 이름을 바꾸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대마다 친히 역사할 때면 시대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지닌 특정한 이름으로 시대별 성품을 대표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인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영적 체험을 했거나 하나님을 직접 본 많은 사람들은 겨우 특정한 이름 하나만으로 하나님의 전부를 다 대표할 수 없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할 수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직접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사람의 마음은 사랑이 충만한 듯하지만 모순도 심한 듯하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속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의 성품을 개괄할 수 없고, 그 어떤 이름으로도 그의 속성을 묘사할 수가 없다. 누군가 나에게 “대체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하나님은 바로 하나님이다!”라고 알려 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좋은 이름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잘 개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너희는 하나님의 이름을 계속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이름 하나 때문에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굳이 머리를 싸매 가며 궁리할 필요가 있겠는가?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님은 여호와로도, 예수로도, 메시아로도 불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바로 ‘창조주’이다. 그때가 되면, 그가 지상에서 불렸던 이름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가 지상에서 하는 사역이 끝나면서 그의 이름도 따라서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물이 모두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는데, 그가 아주 적합하면서도 완전하지 않은 이름으로 불릴 필요가 있겠는가? 너는 아직도 하나님의 이름을 따지고 묻는가? 아직도 하나님을 오직 여호와로 불러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하나님을 오직 예수로 불러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너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본래 이름이 없다. 단지 사역을 하고 인류를 경영해야 했으므로 한둘 혹은 더 많은 이름을 취했을 뿐이다. 그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모두 자신의 마음대로 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피조물인 네가 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이름은 사람의 수용 능력과 인류의 언어에 따라 정해지지만, 사람이 이 이름을 개괄할 수는 없다. 너는 단지 “하늘에 하나님이라는 분이 계신다. 그분은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 자신으로서, 참으로 지혜로우시고 너무나 위대하시며, 참으로 기묘하시고 신비로우시며 너무나 전능하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 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다. 너는 그 정도밖에 모른다. 그렇다면 예수라는 이름 하나로 하나님 자신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말세가 와도 여전히 하나님이 역사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그의 이름도 바뀌어야 한다.

온 우주에서 하나님이 가장 큰 존재인데, 육신 하나의 형상만으로 하나님 자신을 모두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육신을 입은 것은 한 단계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육신의 형상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시대의 변천이나 하나님의 성품과도 관계가 없다. 당시에 예수가 왜 그의 형상을 남기지 않았겠는가? 왜 사람들이 그의 형상을 그려 영원히 전하도록 하지 않았겠는가? 왜 사람들에게 예수의 형상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임을 인정하도록 하지 않았겠는가? 사람의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은 맞지만, 사람의 모습이 어찌 하나님의 위대한 형상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성육신함은 그가 하늘로부터 하나의 특정한 육신에 온 것일 뿐이다. 이는 그의 영이 육신에 임한 후, 육신을 통해 영의 사역을 하고, 영이 육신을 통해 발현하는 것이다. 또한 영이 육신을 통해 역사하는 것이다. 육신이 행하는 일은 오롯이 영을 대표하고, 육신은 사역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육신의 형상으로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형상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목적과 의의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가 성육신한 목적은 단지 영이 역사할 적합한 거처를 찾아 육신의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또한 사람들이 그의 사역을 보고 그의 성품을 접하며,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기묘한 사역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의 이름은 그의 성품을 대표하고 그의 사역은 그의 신분을 대표한다. 하지만 그는 육신의 모습이 그의 형상을 대표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것은 사람들의 관념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의 핵심은 바로 그의 이름과 사역, 성품 그리고 성별이며, 이로써 그 시대의 경영을 대표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성육신한 모습은 단지 당시 사역을 위한 것일 뿐 그의 경영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성육신한 하나님에게는 특정한 모습이 있어야 했기에 그는 적합한 가정을 택하여 그의 모습을 결정했다. 모습에 대표적 의의가 있다면, 그와 비슷하고 용모가 단정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말인데, 이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 아닌가? 예수의 초상화는 사람들이 스스로 경배하려고 그렸다. 당시에 성령도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 초상화를 오늘날까지 전해 온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원뜻에 따른다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했지만, 사람들의 지나친 열성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초상화가 오늘날까지 전해 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므로 사람들은 영원히 그가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를 개괄할 수 없고, 그의 성품으로 그의 형상을 대신할 뿐이다. 그의 코와 입, 눈은 어떻게 생겼고, 그의 머리카락은 어떠한지, 너는 이러한 것들을 개괄할 수가 없다. 요한은 당시에 계시를 받아 인자의 형상을 보고서는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었느니라”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아주 구체적으로 말했지만, 그가 묘사한 하나님의 형상은 결코 피조물의 형상이 아니다. 그가 본 것은 물질세계의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환상일 뿐이다. 요한이 환상을 보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의 ‘모습’을 참으로 본 것은 아니다. 성육신한 하나님의 육신의 형상은 피조물의 형상에 속하므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표할 수 없다.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할 때에 그는 자신의 형상대로 인류를 창조했다고 했는데, 이는 바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 것이었다. 당시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다고 말했지만, 사람들의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과 비슷하다고 해서 사람의 모습을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네가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하게 개괄해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너무나 높디높고 크디크고, 너무나 위대하며, 너무나 기묘하여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예수는 성령이 그에게 지시하고 성령이 행하려는 대로 사역을 한 것이지, 구약 율법시대나 여호와가 행한 사역에 따라 한 것이 아니다. 예수가 와서 한 사역은 여호와의 율법을 따른 것도, 여호와가 정한 계명을 따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근원은 하나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은 예수의 이름을 대표한 것이자 은혜시대를 대표한 것이고,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여호와를 대표한 것이자 율법시대를 대표한 것이다. 그들의 사역은 한 분의 영이 서로 다른 두 시대에 행한 사역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은 은혜시대만 대표하고,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구약 율법시대만 대표할 뿐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외의 족속들도 인도했을 뿐이다. 신약의 은혜시대에 예수가 행한 사역은 하나님이 예수의 이름으로 사역하며 시대를 인도한 것이다. 네가 예수는 여호와의 사역을 바탕으로 사역했을 뿐, 새로운 사역을 하지 않고 완전히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행하였으며 또한 여호와가 행한 사역과 이사야가 한 예언에 따라 사역했다고 말한다면, 예수는 성육신한 것이 아니다. 그가 그런 사역을 했다면, 그는 율법시대의 사도나 일꾼에 불과하다. 네가 말한 대로라면, 예수는 시대를 열 수 없고 다른 사역을 할 수도 없다. 이는 성령은 반드시 여호와를 위주로 역사하지 않으면 안 되고, 여호와가 아니라면 성령이 새로운 사역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의 사역을 이렇게 알고 있다면, 모두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는 오직 여호와의 말씀과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사역을 했다고 여긴다면, 네가 보기에 예수는 성육신한 하나님인가, 아니면 선지자인가? 이런 논리대로라면 은혜시대는 존재하지도 않고, 예수를 성육신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행한 사역은 구약 율법시대만 대표할 뿐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가 되려면 오직 예수가 와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로운 시대를 펼쳐야 했다. 또한 이전에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에서 벗어나면서도 이스라엘에서 여호와가 행한 사역과 그의 낡은 규례에 얽매어 행하지도 않아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어떤 규례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새로운 사역을 해야 했다. 하나님은 와서 스스로 시대를 열고 시대를 끝내지만, 사람들은 시대를 펼치는 사역도 시대를 끝내는 사역도 행할 수 없다. 예수가 여호와의 사역을 끝내지 않았다면 그는 사람일 뿐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예수는 와서 여호와의 사역을 끝냈고 여호와의 사역을 이었으며, 그 자신의 더 새로운 사역을 했다. 이는 그의 시대가 새로운 시대이고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증명한다. 그들은 각 단계에서 전혀 다른 사역을 했다. 한 단계의 사역은 성전 안에서 이루어지고 다른 단계의 사역은 성전 밖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한 단계의 사역에서는 율법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인도했고 다른 단계의 사역에서는 속죄제로 바쳐졌다. 전혀 다른 두 단계의 사역이 곧 신시대와 구시대의 구분이며, 아주 분명하게 두 시대를 나타낸다. 그들이 사역한 장소와 내용 그리고 목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두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신약과 구약은 곧 신시대와 구시대를 가리킨다. 예수가 와서 성전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여호와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예수가 성전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성전 안에서의 여호와 사역이 이미 끝나 사역을 더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 하게 되면 되풀이되는 것이다. 오직 성전 밖으로 나와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야만 하나님의 사역을 절정에 달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성전에서 나오지 않고 사역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영원히 성전이라는 바탕에 머물게 되어 새롭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성전에 들어가지도, 성전 안에서 사역하지도 않았고, 성전 밖에서 사역하면서 제자들을 인도하며 자유롭게 사역했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전에서 나와 역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또 새로운 계획이 있음을 의미했다. 그는 성전 밖으로 나와 사역을 하고자 했다. 더 나아가 성전 밖에서 새로운 사역을 자유롭게 하려고 했다. 그는 오자마자 구약시대에 여호와가 행했던 사역을 끝내 버렸다. 서로 다른 두 이름으로 불렸지만, 한 분의 영이 두 단계의 사역을 한 것이다. 그 사역은 계속 이어진 것이었다. 이름과 사역의 내용이 다르기에 시대 역시 다르다. 여호와가 오면 여호와의 시대이고, 예수가 오면 예수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일단 오게 되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그 단계의 새로운 길이 하나의 이름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고,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함을 의미한다. 역사(歷史)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끊임없이 발전한다. 6천년 경영 계획을 완수하려면 반드시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날마다 해마다 새로운 사역을 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길과 신기원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역과 더 큰 사역도 개척해야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사역이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의 영은 언제나 새로운 사역을 한다. 옛것을 따른 적이 없고 규례도 지키지 않지만, 그의 사역은 중단되지 않고 시시각각 행해지고 있다. 너는 성령이 행하는 사역이 영원불변하다고 한다. 여호와는 왜 제사장에게 성전 안에서 그를 섬기라고 했는가? 예수가 왔을 때, 사람들은 그를 대제사장이라고도 하고, 다윗 집안의 사람이자 대제사장이나 대군왕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예수는 왜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왜 제사를 드리지 않았는가? 성전에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모두 하나님 자신이 행하는 사역이 아닌가? 사람들의 상상대로라면 예수가 다시 와야 하고 말세에도 여전히 예수라고 해야 한다. 또한 흰 구름을 타고 와서 예수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임해야 한다. 그러면 사역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성령이 낡은 것을 계속 따르겠는가?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관념에 불과하고,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자신들이 상상하는 대로 받아들인다. 이는 성령이 역사하는 원칙과 하나님의 뜻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어리석거나 멍청하지도 않다. 그의 사역은 네가 생각하듯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람들이 행함과 생각대로라면, ‘예수는 흰 구름을 타고 오거나, 너희 가운데 임한 그를 너희가 본다거나, 흰 구름을 타고 와서 너희에게 자신을 예수라고 말하거나, 너희가 그의 손에 난 못 자국을 보고서 예수임을 알아보거나, 다시 너희를 구원하여 능력이 매우 큰 하나님이 되거나,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에게 새 이름을 주고 흰 돌을 하나씩 준 다음 너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거나 천국으로 받아들이거나’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사람들의 관념이 아니겠는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람들의 관념대로 역사하겠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관념에 반하여 역사하겠는가? 사람들의 관념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닌가? 사람은 모두 사탄에 의해 타락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사람들의 관념대로 한다면 하나님이 사탄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피조물과 같은 부류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피조물은 사탄에 의해 이 지경까지 타락해 모두 사탄의 화신이 되었다. 그렇다면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탄의 것에 따라 행한다면 사탄과 한패가 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어찌 하나님의 사역을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관념대로 행하지도, 너의 상상대로 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리라고 한 것을 그가 친히 한 말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인 것은 맞지만, 너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신비를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너는 성령이 너를 깨우쳐 주고 빛을 비춰 준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설마 성령이 너에게 그렇게 직접 지시했다는 말인가? 성령이 지시한 것인가, 아니면 너의 관념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가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관념과 머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이사야가 한 말일지라도 네가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감히 그의 말을 해석할 수 있는가? 이사야의 말도 해석하지 못하면서 어찌 감히 예수의 말씀을 해석하는가? 예수가 대단한가, 아니면 이사야가 대단한가? 예수가 대단한데, 왜 그가 한 그 말씀들을 모두 해석하려 하는가?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미리 너에게 모두 알려 주겠는가? 피조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늘의 사자도 모르고 인자도 모르는데, 네가 알 수 있겠는가? 사람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다. 지금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3단계 사역을 인식하는 것이다. 여호와부터 예수까지, 그리고 예수부터 이 단계의 사역까지 세 단계 사역이 이어져 오면서 완전한 경영이 되었는데, 모두 한 분의 영이 행한 사역이다. 창세 이래 하나님은 끊임없이 역사하면서 인류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처음과 나중이고, 시작과 끝이며, 시대를 펼치는 존재이자 시대를 끝내는 존재이다. 3단계 사역은 시대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지만, 한 분의 영이 행한 것임에 틀림없다. 3단계 사역을 따로 갈라놓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이제 첫 단계부터 지금까지 행한 사역은 의심할 바 없이 한 분의 하나님이 행한 것이고, 한 분의 영이 행한 사역임을 너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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