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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

만인이 주시하고 있을 때, 만물이 모두 새롭게 되고 다시 소생할 때,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할 마음을 먹고 하나님의 부담을 넘겨받아 중임을 짊어지고자 할 때, 동방번개도 동방에서 서방까지 번쩍이며 비추었다. 온 땅은 그 빛이 오니 크게 놀랐는데, 그때에 하나님은 또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다시 말해, 그때에 하나님은 땅에서 새 사역을 시작해 전 우주 사람에게 “번개가 동방에서 번쩍일 때는 바로 내가 음성을 발하여 말하기 시작할 때이다. 번개가 번쩍일 때, 온 하늘이 다 밝게 비취고 모든 별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난다.”라고 선포한 것이다. 그러면 동방에서 번개가 번쩍일 때는 언제겠느냐? 천지가 어두워질 때는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고 이 세상을 보지 않을 때이고, 또한 하늘 아래에 폭풍우가 덮치는 때이다. 하지만 바로 이때, 모든 사람이 당황해하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상태에 머물러 있고, 천둥소리를 두려워하고 번개의 빛을 두려워하며 더욱이 폭우의 침습을 두려워하고,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고 하나님의 진노가 자신들을 격살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이런 각종 상태와 더불어 동방번개도 번쩍인다. 즉, 세상의 동방에서 하나님 자신이 증거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역을 하기까지, 신성이 온 땅에서 왕권을 잡기까지는 동방번개의 빛줄기인데, 계속 전 우주를 비출 것이다. 세상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는 전 우주가 밝게 비췰 때이다. 지금은 동방번개가 번쩍이는 때이니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역사하기 시작하고 또한 신성에서 직접 말씀한다. 하나님이 땅에서 말씀하여 음성을 발하기 시작할 때는 동방번개가 번쩍이는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보좌에서 생수가 흘러나올 때, 즉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이 시작될 때는 바로 ‘일곱 영의 말씀’이 정식으로 시작된 때이다. 그때 동방번개가 번쩍이기 시작하였는데, 시간 차이로 인해 비춰지는 정도도 다르고 비춰지는 범위도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이 이동됨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이 변동됨에 따라, 즉 뭇 아들과 자민들에게 하는 사역이 달라짐에 따라 번개는 갈수록 그 고유한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데, 전 우주 아래가 다 밝게 비취어 잔존하는 쓰레기는 하나도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의 결정체이며, 하나님은 바로 이 열매를 누리는 것이다. ‘뭇별’은 하늘의 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모든 뭇 아들과 자민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대표하기 때문에, 또한 피조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뭇별’로 불린다.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신분과 지위의 변화를 가리킨다. 땅의 사람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또한 하나님의 함께함이 있으며 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신해 왕권을 잡게 되고 또한 속에 있던 ‘독소와 불순물’이 하나님의 사역으로 정결케 되어 최후에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하고, 하나님 뜻에 맞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그 말씀의 한 방면 의의이다. 하나님의 빛줄기가 온 땅을 밝게 비출 때, 하늘과 땅의 만물은 다 각기 다른 정도로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하늘의 별들도 변화될 것인데, 태양과 달도 새롭게 바뀔 것이고, 땅의 사람도 바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에서 하는 사역이므로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할 때는 ― 물론 선민 외의 사람들은 당연히 가리키지 않는다 ―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정결케 하고 심판할 때인데, 모든 사람이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침대에 쓰러지거나 땅에서 격살되어 사망의 지옥에 떨어진다. 하나님이 음성을 발하였기 때문에 사람도 자신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사람은 다 두꺼비 눈처럼 치켜뜨고 아무에게도 굽히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자기 자신을 알지 못했을 것인데, 자기가 몇 g이나 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사람은 정말 사탄에게 심하게 패괴되었다. 하나님의 전능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추악한 몰골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는데,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진면모와 대조해 볼 수 있었다. 사람도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사람 머리의 뇌 분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훤히 꿰고 있는데, 하물며 사람의 추악한 몰골이나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 “전 인류는 깨끗이 정리된 듯하다. 모든 사람은 동방에서 온 이 빛줄기에 본색이 드러나고, 눈이 부셔 어찌할 바를 모른다.”라는 이 말씀에서, 어느 날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온 인류는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아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전 인류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일일이 ‘처리’할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은 마음에 만족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또한 동물처럼 나의 빛 속에서 도망쳐 동굴 속으로 피한다. 하지만 나의 빛 속에서 소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씀하였다. 사람은 다 천박하고 비천한 동물이다. 사탄의 손아귀에서 사는 것은 깊은 산속으로 피난 간 것 같다. 하지만 만물은 하나님의 불사르는 화염 속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사탄 세력의 ‘수호’ 속에 있다고 한들 어떻게 하나님께 ‘잊혀질’ 수 있겠느냐? 하나님 말씀이 임할 때,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의 괴상망측한 갖가지 모양이 또다시 하나님의 펜으로 묘사되었는데, 하나님은 바로 사람의 필요에 따라, 심리에 따라 말씀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은 심리학에 능통한 것 같았고, 심리학자 같았으며, 또 하나님은 내과 수술 전문의 같기도 했는데, 그러기에 ‘복잡’한 사람을 그렇게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수록 하나님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마치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하늘의 경계’가 있는 것 같았고, 또 어쩌면 ‘초하’ 양쪽에서 서로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쌍방은 서로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즉 땅에 있는 사람은 눈으로 하나님을 보기만 했지 자세하게 연구할 기회가 없어 그저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만 남게 되었다. 마음으로는 계속 하나님이 사랑스럽다고 느꼈지만 또 ‘하나님’의 ‘매정함’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고초를 토로할 기회가 없었다. 마치 애교 많은 아내가 올곧은 남편 앞에서 심정을 토로할 기회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은 모두 자신을 아낄 줄 모르는 천박한 존재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애교’ 때문에, 사람의 ‘자존감이 없는 것’ 때문에 어느새 사람에 대한 증오가 어느 정도 더해졌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는 절로 노가 생겼으며, 상처라도 난 것처럼 생각 속에는 벌써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또 “나의 날이 다시 한 번 전 인류에게 다가왔고, 인류를 또 한 번 불러 깨워 인류에게 또 새로운 출발이 있게” 하였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전 인류를 정복하고, 큰 붉은 용을 노획하고, 큰 붉은 용을 패배시킬 것이다. 하나님의 본뜻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단지 큰 붉은 용의 자손을 정복하는 것이다. 그래야 큰 붉은 용을 패배시키고 큰 붉은 용과 싸워 이겼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이 온 땅에서 왕권을 잡았음을 충분히 증명하고, 하나님이 큰 공을 이루었고, 땅에서 새로운 출발이 생겼고, 땅에서 영광받았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마지막의 미경(美景)으로 인해 하나님은 저절로 호쾌한 심정을 “내 마음은 뛰고 있다. 내 심장 박동에 따라, 산도 리듬을 타며 기뻐 뛰고, 물도 즐겁게 춤추며, 파도도 바위에 부딪쳐 물보라를 일으킨다. 나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라고 토로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계획한 것은 하나님이 이미 이룬 것이고 하나님이 이미 예정해 놓은 것이며, 사람이 체험할 수 있고 볼 수도 있게 하는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앞날은 아름답고, 하나님 나라의 군왕은 승리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와 살로 이어짐이 없이 전부 신성(神聖)한 요소이고, 온몸은 신성한 빛을 비추고 있으며, 사람의 뜻이 하나 없이 전신은 공의와 천상의 기운으로 충만하며, 매력적인 향기를 풍기고 있는데, <아가>의 사랑하는 자와 같이 뭇 성도보다 아름답고, 옛 성도보다 위대하며, 모든 사람의 본보기이고, 인간이 비교할 수도 바로 볼 자격도 없는 자이다. 하나님 영광의 얼굴,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형상은 아무도 갖출 수 없는 것이고,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며, 아무도 입으로 쉽게 찬양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궁무진하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원천같이 영원히 마르지 않고 흘러넘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영 계획의 심오한 비밀은 아무도 측량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 있어서는 또 끝없이 말씀할 수 있다. 하나님이 전 우주를 새롭게 바꾸고 철저히 변화시킨다는 이 일에서만 해도 하나님은 각기 다른 방식과 다른 표현으로 몇 번이고 말씀했다. 하지만 매번 더 깊어졌다. “나는 모든 불결한 것들을 내 눈앞에서 잿더미가 되게 할 것이고, 모든 패역의 자식들을 내 눈앞에서 사라져 영원히 존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왜 여러 차례나 이렇게 말씀했겠느냐? 설마 하나님은 사람이 싫증을 느끼는 걸 염려하지 않았단 말이냐? 사람은 그저 하나님 말씀에서 모색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 그러나 항상 자신을 반성하는 것을 망각하다 보니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사람에게 주의를 주어 자신을 알게 하고, 자신에게서 사람의 패역을 알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패역을 제거시키려고 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깨끗이 정리한다’는 말씀을 보게 되자 마음이 긴장되어 근육도 움직임을 멈춘 듯하였는데, 곧바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반성하였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이 결심을 내리자 하나님은 단김에 쇠뿔 빼기로 사람에게 큰 붉은 용의 본질을 보게 하여 직접 영계를 접촉하게 했는데, 심지가 작용을 하다 보니 열정도 작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친밀감이 더 증진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에 더 유리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은 어느새 과거를 돌아볼 마음이 생겼다. ‘지난날, 오랫동안 막연한 하나님을 믿어 왔고, 오랫동안 마음은 언제나 해방을 받지 못했었고, 진정한 즐거움도 없었지. 비록 하나님을 믿었지만 삶은 규칙적이지 못했고, 믿기 전과 매한가지인 것 같았어. 삶 속에서 여전히 허무함과 가망이 없는 느낌을 받았었고, 그때의 믿음은 왠지 짐이 된 듯 믿지 않기보다 못한 것 같았어. 오늘날 실제의 하나님 자신을 보게 되면서부터 천지가 다 바뀐 듯했고 삶에 광채가 더해져 더 이상 실망하지 않게 되었으며, 실제 하나님의 임재로 마음이 든든하고 영 안이 평안하여 어떤 일을 해도 더 이상 뜬구름 잡는 듯하지 않았고, 더 이상 목표 없이 추구하지 않게 되었고 허공에 주먹질하지 않게 되었지. 오늘날의 삶은 더 아름답고, 이렇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자민이 되다니. 앞으로는…’ 사람은 생각할수록 즐겁고 생각할수록 흐뭇해졌는데, 그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더욱 불태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우의(友誼)’가 증진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알게 될수록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역하기가 더 쉬워져 더 이상 강박과 강제가 아니라 순리에 따라 사람의 특유한 기능을 발휘시킬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점차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는데, 전혀 힘들이지 않고 사람의 본성에 따라 합당한 부분을 발휘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하나님은 또 “내가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왔을 때,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이끌려 오늘까지 오게 되었고, 자신도 모르게 나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앞에 놓여진 길을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이후의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더욱 없다. 오직 전능자의 보살핌 아래에 있어야만 끝까지 갈 수 있고, 동방번개의 인도 아래에 있어야만 내 나라의 문에 들어설 수 있다.”라고 말씀하였다. 이 말씀이 바로 위에서 서술했던 사람의 마음을 총괄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말씀하는 방식의 절대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이 속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입으로 말씀했던 것이고, 하나님이 입으로 말씀한 것이 바로 사람이 간절히 바랐었던 것이다. 이것 또한 하나님이 사람의 속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다 심복구복했던 것이 아니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큰 붉은 용을 정복하여 이룰 효과가 아니냐?

사실, 많은 말씀에서 하나님의 본뜻은 글자 표면의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많은 말씀에서 하나님은 일부러 사람의 관념을 돌려세우고 사람의 주의력을 돌릴 뿐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런 말씀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말씀은 해석해 줄 가치가 없다. 사람이 모두 하나님 말씀에 정복되어 오늘의 이 경지까지 이르렀을 때, 사람의 힘도 어느 한계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또 그에 따라 경고의 말씀을 해 주었다. 즉, 자민에게 반포한 헌법이다. “땅에 있는 사람이 별처럼 많을지라도 나는 손금 보듯 환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지만 나의 선택을 받을 만한 사람은 얼마 보이지 않는데, 그들은 단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 외의 밝은 빛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확실히, 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약소(略少)한데, 눈을 감고도 찾아낼 수 있을 듯하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세계의 전체 실상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때에 또 사람을 깨끗이 정리하는 사역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만족하는 것이 오늘의 교회가 아니라 깨끗이 정리된 나라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때에 또 모든 ‘위험물’에게 경고를 주었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몰라도 하나님이 역사를 시작하면 그들은 다 제거되어 하나님 나라 밖에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대충 하는 법이 없다. 일을 하면 항상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의 원칙으로 한다. 만일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백방으로 깨끗이 정리해 그자를 내보내 후환을 없앨 것이다. 그것을 ‘쓰레기를 정리하고 철저히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정을 공포할 때가 사람에게 자신의 기묘한 행사를 소개하고 자신의 내적 소시를 소개할 때이다. 그러므로 그 후에 하나님은 또 “산속에 수많은 맹수가 있지만 내 앞에서는 다 양같이 순하고, 바닷속에는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신비함이 있지만 내 앞에서는 땅 위의 만물처럼 모두 드러난다. 천우에는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경지가 있지만 나는 그 경지에서 곳곳을 다니고 있다.”라고 말씀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사람의 마음이 만물보다 궤사하여 사람 관념 속의 지옥처럼 ‘끝없이 신비한’ 듯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의 실정을 손금 보듯 환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만물 중에서 인간은 맹수보다 더 흉악하고 포악한 동물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정복하였는데, 아무도 감히 일어나 반항하지 못하는 정도였다. 사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보면,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만물 중의 만물보다 더 복잡하여 가늠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눈앞의 자그마한 벌레로 보는데, 어떤 말로도 정복할 수 있고, 언제든지 격살할 수 있고, 손쉽게 형벌할 수 있고, 간단하게 정죄할 수 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다 흑암 속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오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보게 되어 빛의 실질을 인식할 수 있었다. 온 세상이 커다란 검은 솥을 땅에 엎어 놓은 듯하여 모든 사람은 다 갑갑해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형세를 바꿔 보려고 하지만 검은 솥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이 성육신해서야 사람은 눈앞이 확 트여 모두 실제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에게 질문하는 어조로 물었다. “사람은 빛 속에서 나를 알지 못했고 어둠의 세계에서 나를 보았다. 오늘날 너희가 바로 이런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냐? 나는 큰 붉은 용의 광폭함이 최고조에 이를 때 육신에서 나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영계의 실제 상황을 감추지 않고, 사람 속의 실정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나는 자민에게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뭇 자민을 정결케 한다. 나의 행정이 엄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서 도태될 위험이 있다. 만일 전력을 다해 자신을 다스리지 않고 자신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내게 버림받는 대상이 되어 지옥에 떨어질 것인데, 바울처럼 내 손에 형벌받아 해방되지 못할 것이다.”라고 수차례 주의를 주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할수록 사람은 자기의 발걸음을 더 조심하게 되고, 하나님의 행정을 더 두려워하게 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권병을 발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의 일을 재차 언급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형벌받는 사람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 사람으로 모두 두려움 속에서 지난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세웠던 심지는 하나님을 전혀 만족게 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돌아보게 할 수 있고, 그것으로 더 통회하고, 실제의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육신에 거하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육체에서 살고 있는 자신도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사람은 계속 나를 기만하고 계속 나를 나그네로 여기면서 얼마나 많이…” 이 ‘얼마나 많이’로 사람이 형벌받은 실례를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을 대적한 실제를 나열해 주었는데, 그것은 죄증이라 더 이상 변명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을 가정 생활용품으로 생각하며 사용하는데, 가정의 ‘필수품’이라도 되듯 마음대로 가져다 사용한다. 하나님을 보배롭게 여기는 자는 아무도 없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알려고 하는 자도 아무도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알려고 하는 자도 아무도 없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자는 더더욱 없다.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의 애물(愛物)로 대한 적이 없었는데, 다 필요할 때나 끌어오고, 필요치 않을 때는 한쪽에 버려두고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은 ‘꼭두각시’ 같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하나님께 요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일 내가 성육신 기간에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이 다 내가 성육신한 이 일로 인해 혼비백산하여 음부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한 말씀에 따라 보면, 하나님이 성육신된 의의가 얼마나 큰지를 충분히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은 육신에서 전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지 영계에서 전 인류를 훼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 될 때 아무도 알지 못했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의 연약함을 상관하지 않고 성육신될 때 천지를 뒤집었더라면 모든 사람은 훼멸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새것을 좋아하고 옛것을 싫어하다 보니 행복하면 고생을 잊어버리고 복 속에서 살면서도 복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수차례 사람에게 쉬이 오지 않는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며, ‘높은 곳에 오르면 주인도 몰라 보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 복 속에서 살면서도 복도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온순해지고 자화자찬하지 않고 오만해지지도 않게 되었으며, 사람의 본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사람에게 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모두 형벌받을까 두려워하다 보니 더 이상 무엇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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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 초하(楚河): 중국 장기판 가운데 경계로 삼은 강의 이름.

③ 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④ 소시(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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