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예수님의 이름은 영원불변하기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 여전히 예수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라는 교계의 관념

교계는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의 이름은 영원불변하기에 주님이 돌아오실 때 다른 이름으로 불리시지 않을 것이며, 다른 이름으로 불리시면 재림주가 아니라고 규정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

“여호와 …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 3:15)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사 62: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 11:16~17)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계 15:3~4)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뀌었겠느냐?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왔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이 왜 바뀌게 되었느냐? 이는 이미 했던 사역이 아니냐? 그런데 하나님이 오늘날 새로운 사역을 하면 안 된단 말이냐? 과거의 사역도 바뀌었다. 여호와의 사역은 예수가 이어 갔건만, 예수의 사역은 또 다른 사역으로 이어질 수 없겠느냐?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뀔 수 있으면 예수의 이름도 바뀔 수 있지 않겠느냐?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머리가 너무 단순한 탓에 그렇게 느낄 뿐이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그의 사역이 어떻게 변하든, 그의 이름이 어떻게 변하든, 그의 성품과 지혜는 영원히 변치 않는다. 하나님은 반드시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네 식견이 너무 부족한 것이다. 너는 예수라는 이름이 영원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예수로 불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예수’라는 이름이 율법시대도 끝내고 마지막 시대도 끝내는 이름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예수의 은혜가 시대를 끝낼 수 있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중에서

하나님은 땅에 올 때마다 이름은 물론, 성별과 형상, 그리고 사역도 바꾼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이므로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이전에 왔을 때 예수라고 불렸다 해서 이번에도 그대로 예수라고 불리겠느냐? 이전에 왔을 때는 남성이었다고 해서 이번에도 남성이겠느냐? 이전에 은혜시대의 십자가 사역을 했다고 해서, 이번에도 사람을 속량하여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겠느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겠느냐? 그렇다면 같은 사역을 되풀이하는 것 아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모르느냐?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이 영원불변함을 뜻한다. 그의 이름과 사역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며, 이 사실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다. 너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의 6천 년 경륜이 끝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이 또한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그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할 수 있었겠느냐? 그가 영원불변하다면 왜 두 시대의 사역을 했겠느냐?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다시 말해, 그의 성품을 사람들에게 점차적으로 나타내는데, 이는 다 그의 고유한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처음에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들에게 감춰져 있었고,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공개적으로 나타낸 적이 없었기에 사람은 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사역을 통해 사람에게 자신의 성품을 조금씩 나타냈다. 그가 이렇게 사역한다고 해서 시대마다 성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끊임없이 바뀐다고 해서 그의 성품도 끊임없이 바뀌지는 않는다. 사역하는 시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성품을 전부 단계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내 그를 알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 특정한 성품이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그의 성품 역시 조금씩 바뀐다는 것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인식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특정 성품, 즉 자신의 어떠함을 사람에게 나타낼 때,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내지, 한 시대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다’는 말은 그의 사역을 두고 한 것이고,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는 말은 그의 고유한 소유와 어떠함을 두고 한 것이다. 어찌 됐든 너는 6천 년 사역을 어느 한곳에 고정해 두거나 케케묵은 말에 묶어 놓아서는 안 된다. 이는 사람의 어리석음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의 사역은 한 시대에 머물 수 없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사역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일 뿐 사탄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은 영원히 사탄일 뿐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함, 공의, 그리고 위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은 영원불변하지만,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심화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고, 새로운 사역을 하며, 피조물에게 그의 새로운 뜻과 성품을 보여 준다. 사람이 새 시대에 새로운 성품의 발현을 보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아 놓지 않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 아니겠느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 이상 3> 중에서

은혜시대는 예수의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예수가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하자 성령이 그의 이름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이에 여호와의 이름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고,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새로운 사역을 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고, 또 그를 위해 사역했다. 구약 율법시대의 종결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이름은 더 이상 여호와가 아닌 예수라 불렸으며,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니 사람이 지금까지도 여호와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율법시대의 사역을 적용하는 것은 규례에 얽매이고 낡은 것을 지키는 것 아니겠느냐? 지금 말세가 이미 도래했음은 너희도 알 것이다. 설마 예수가 다시 온다면 여전히 예수라고 불리겠느냐? 지난날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왔을 때는 메시야가 아니라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는 자신이 다시 올 것이며, 갔던 그대로 올 것이라고 했다. 예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너는 예수가 어떻게 갔는지 보았느냐?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갔다고 해서 설마 다시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오겠느냐? 그렇다면 계속 예수라고 불려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가 재림할 때는 이미 시대가 바뀌어 있을 텐데, 그를 계속 예수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은 오직 예수로만 불려야 한단 말이냐? 새 시대에는 더 이상 새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는 것이냐? 한 ‘사람’의 형상과 특정한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전부가 된단 말이냐?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 사역을 하고 새 이름으로 불린다. 시대가 다른데 어찌 같은 사역을 행하겠느냐? 그가 어찌 낡은 것을 지키겠느냐? ‘예수’란 구속 사역을 위해 취한 이름인데, 말세에 재림해서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느냐? 또다시 구속 사역을 하겠느냐?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도 왜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겠느냐? 사역한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더냐?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그렇기에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고, 이름으로 시대를 대변한다. 어떤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하게 대변할 수는 없으며, 시대성을 띤 하나님의 성품만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역만 대변하면 충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적합한 이름 하나를 택해 한 시대 전체를 대변할 수 있다. 여호와의 시대든 예수의 시대든 모두 이름으로 시대를 대변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 이상 3> 중에서

예수가 행한 사역은 예수라는 이름을 대변한 것이자 은혜시대를 대변한 것이었고,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여호와를 대변한 것이자 율법시대를 대변한 것이었다. 그들의 사역은 한 분의 영이 서로 다른 두 시대에 행한 사역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은 은혜시대만 대변하고,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구약 율법시대만 대변할 뿐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을 인도했고, 이스라엘 외의 족속들도 인도했다. 신약의 은혜시대에 예수가 행한 사역은 하나님이 예수의 이름으로 사역하며 시대를 이끈 것이었다. … 비록 서로 다른 두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는 한 분의 영이 두 단계의 사역을 행한 것이며, 그 사역은 계속 이어진 것이었다. 이름과 사역의 내용이 다르기에 시대 역시 다르다. 여호와가 오면 여호와의 시대이고, 예수가 오면 예수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한 번 오게 되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그 단계의 새로운 길이 하나의 이름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고,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함을 의미한다. 역사(歷史)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끊임없이 발전한다. 6천 년 경륜을 끝내려면 반드시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날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고, 해마다 새로운 사역을 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길과 새로운 기원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사역과 더 큰 사역을 개척해야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사역이 나타나게 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 이상 3> 중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를 지닌 예수라는 이 이름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해 전부 설명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예수라고만 불려야 하고 더 이상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말이야말로 모독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의 ‘예수’라는 이름 하나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많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중에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의 전부를 개괄할 수 없고,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이 많은 이름조차도 그의 모든 성품을 전부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너무나 많아서 사람이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을 개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류는 그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위대함, 존귀함, 기묘함, 측량할 수 없음, 지고지상함, 거룩함, 공의로움, 그리고 지혜로움 등 몇 안 되는 한정된 어휘로 개괄할 뿐이다. 참 많기도 하구나! 한정된 이 몇 개의 어휘로는 하나님의 성품 중 사람이 본 그 얼마 안 되는 부분조차 묘사해 낼 수 없다. 시간이 흘러 많은 사람이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럽다!’와 같이 마음속의 격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지어냈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와 같은 언어 표현은 절정에 이르렀지만, 사람은 아직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이 아주 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에게는 또 어떤 이름도 없다. 하나님의 어떠함은 너무나 많은데, 사람의 언어는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단어 하나와 특정한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고정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그처럼 위대하고 거룩한데, 너는 그가 시대에 따라 이름을 바꾸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대마다 친히 사역할 때, 시대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지닌 특정한 이름으로 그의 해당 시대의 성품을 대변한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인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 체험을 했거나 하나님을 직접 본 많은 사람은 특정한 이름 하나만으로는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에 사람은 할 수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바로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충만한 듯하지만 모순도 심한 것 같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어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의 성품을 개괄할 수 없고, 그 어떤 이름으로도 그의 소유와 어떠함을 다 묘사할 수 없다. 누군가 나에게 “대체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하나님은 바로 하나님이다!”라고 알려 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좋은 이름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잘 개괄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어찌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계속 따지고 드느냐? 이름 하나 때문에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굳이 머리를 싸매 가며 궁리할 필요가 있겠느냐?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님은 여호와로도, 예수로도, 메시야로도 불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바로 ‘창조주’이다. 그때가 되면, 그가 땅에서 불렸던 이름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가 땅에서 하는 사역이 끝나면서 그의 이름도 함께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물이 모두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왔는데, 그가 아주 적합하기는 해도 완전하지 않은 이름으로 불릴 필요가 있겠느냐? 너는 아직도 하나님의 이름을 따지고 있느냐? 아직도 하나님을 여호와로 불러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아직도 하나님을 오직 예수로 불러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너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본래 이름이 없다. 단지 사역을 하고 인류를 경영해야 했으므로 한두 개, 혹은 더 많은 이름을 취했을 뿐이다. 그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모두 자신의 마음대로 택하는 것 아니겠느냐? 피조물인 네가 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은 사람의 수용 능력과 인류의 언어에 따라 불리지만, 사람이 이 이름을 개괄할 수는 없다. 너는 단지 “하늘에 하나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능력이 무한한 하나님 자신으로서 참으로 지혜롭고 너무나 위대하시며, 더할 나위 없이 기묘하고 신비롭고 전능하십니다.”라고만 말할 수 있을 뿐, 더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다. 네가 알 수 있는 건 그 정도뿐이다. 그러한데 예수라는 이름 하나로 하나님 자신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 말세가 와도 여전히 하나님이 사역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그의 이름도 바뀌어야 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 이상 3> 중에서

사람이 말세에도 구주 예수가 강림하기를 소망하고, 유대인의 모습 그대로 강림하기를 소망한다면, 전체 6천 년 경륜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구속시대에 머물 것이다. 또한 말세가 영영 도래하지도 않고, 시대를 끝내지도 못할 것이다. ‘구주 예수’는 단지 인류를 속량하고 구원하는 분이고, 내가 택한 ‘예수’란 이름은 단지 은혜시대의 모든 죄인을 위한 이름이지 온 인류를 끝내기 위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호와, 예수 그리고 메시야는 모두 나의 영을 대표하지만, 이 이름들은 내 경륜 중의 서로 다른 시대를 대표할 뿐, 나의 모든 것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땅의 사람들이 부르는 나의 이름이 나의 모든 성품과 어떠함을 다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단지 시대마다 나에 대한 호칭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시대, 즉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면 나의 이름은 또 바뀌게 된다. 여호와라고도 예수라고도 칭하지 않고, 메시야라고는 더욱 칭하지 않는다. 대신 크나큰 능력을 지닌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라고 칭하는데, 이 이름으로 전체 시대를 끝낸다. 나는 여호와라고 칭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야로 불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 구주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예전에 알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와 시대를 끝내는 하나님이자 나의 모든 성품과 권병, 존귀, 영광을 가득 지니고 땅끝에서 나타난(원문: 興起)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도 없고, 나를 안 적도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이가 바로 말세에 사람들 앞에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생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마치 뜨거운 해 같고 불꽃 같으며,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다. 세상의 온갖 것이 나의 말에 심판받고, 불사름 속에서 정결케 될 것이다. 최후에 만국은 반드시 나의 말로 말미암아 복을 받기도 하고 산산이 부서지기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말세의 모든 사람은 내가 바로 돌아온 구세주이고, 온 인류를 정복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된 적이 있지만, 말세에는 또 만물을 불사르는 뜨거운 해와 같은 불꽃이자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태양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세에 행하는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택하고 이런 성품을 지닌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이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뜨거운 해이자 불꽃임을 알게 하고, 유일한 참하나님인 나를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도 아니고 구속주만도 아니라, 천지와 바닷속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인 내 본래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관련 영화 발췌본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불리시는가?

관련 설교

구세주가 강림하실 때 여전히 ‘예수’란 이름으로 불릴까

관련 찬양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

하나님 이름의 의의

하나님은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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