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가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 사이에는 매우 밀접하면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연관성이 있으며, 이 둘의 관계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악에서 떠나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해야 하며,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을 진실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싶으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해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 형벌과 심판을 겪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대면하고, 하나님과 마주해야 하며,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사람, 일, 사물과 각종 환경을 마련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하나님과 마주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대면하려면 반드시 먼저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 고통을 감내하려는 의지, 악한 일을 멀리하려는 결심과 용기, 그리고 참된 피조물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면 너는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네 마음은 점점 더 순결해질 것이다. 또한, 너의 인생과 삶의 가치는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과 함께 점점 더 의미를 갖게 되고, 점점 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너는 창조주가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님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창조주가 너를 피해 숨거나 얼굴을 가린 적이 없고, 너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더 이상 네가 밤낮으로 그려도 느낄 수 없었던 그분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분명히 너의 곁을 지키고 있고, 너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있으며, 네 운명을 주관하고 있다. 그는 아득한 하늘 끝이나 구름 사이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주변에서 너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다. 그는 너의 모든 것이자 너의 유일한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은 너에게 사모의 마음이 들게 하고, 그리워하게 하며, 가까이하게 하고, 앙모하게 하며, 잃을까 두려워하게 하고, 더는 포기하려고도 거역하려고도 하지 않게 하며, 멀리 떠나거나 숨으려고도 하지 않게 한다. 너는 오직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에게 순종하며, 그가 네게 준 모든 것에 보답하고 그의 권세 아래에 돌아와 복종하기만을 원하게 된다. 너는 더 이상 너에 대한 그의 인도와 공급, 보살핌과 보호를 거절하지 않고, 너에 대한 그의 주재와 안배에 저항하지 않게 된다. 너는 오로지 그의 곁을 따르고 그와 함께하기를 바라며, 그를 너의 유일한 생명이자 유일한 주, 유일한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게 된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서문> 중에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의미하는 것도, 숨고 멀리하고 숭상하고 미신하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 앙모하고 숭경하고 신뢰하고 이해하고 헤아리고 순종하고 헌신하고 사랑하는 것이며, 조건도 불평도 없이 경배하고 보답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앙모도, 신뢰도, 이해도, 헤아림도, 순종도 없으며, 단지 두려움과 불안, 의심, 오해, 회피, 그리고 멀리함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헌신과 보답도 없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경배와 복종도 없으며, 맹목적으로 숭상하고 미신할 뿐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도, 하나님을 경외할 수도, 악한 일을 멀리할 수도 없다. 반면, 사람이 종사하는 모든 활동과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대적, 비방과 논단으로 가득할 것이며, 또한 진리를 위배하고 하나님 말씀의 참뜻에 어긋난 악행으로 가득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면, 진실로 따르고 의지할 수 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의지해야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이해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진실로 이해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진실로 헤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진실로 헤아려야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해야 진정으로 헌신할 수 있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헌신해야 조건도, 불평도 없이 보답할 수 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고, 이해하고 헤아리고, 순종하고, 헌신하고 보답해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알 수 있고, 창조주의 신분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창조주를 알아야 진정으로 경배하고 복종할 수 있으며, 진실로 창조주께 경배하고 복종해야 진정 악행에서 벗어나고 악에서 떠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전 과정이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의 모든 내용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서문> 중에서

먼저 하나님의 성품은 위엄과 진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아무에게나 죽임을 당하는 온순한 양이 아니고, 사람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꼭두각시는 더더욱 아니며, 사람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공기도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본질을 거슬러 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거슬러 노하게 한다’는 것은 아마 한 마디 말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생각 때문일 수도 있으며, 어떤 악랄한 행위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어떤 아주 온화한 행위, 사람의 관점에서나 사람의 도덕 윤리적 관점에서 봤을 땐 넘어갈 수 있는 행위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학설이나 이론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네가 일단 하나님을 거슬러 노하게 하면 너의 기회는 사라져 버리고, 그에 따라 너의 마지막 날도 다가오게 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걸핏하면 하나님을 거스르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하나님의 도를 어떻게 준행해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일단 네 마음속에 하나님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생기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인지 알게 된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은 살아 있는 하나님이다. 어떤 일에 부딪히면 사람들은 각기 다른 행실을 보인다. 하나님은 사람의 각기 다른 행실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하는데, 이는 그가 목석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태도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태도를 알아 가면서 조금씩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다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을 쉽게 규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게 되면 하나님을 쉽게 거스르지 않을 것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너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알게 해 줄 것이다. 이로써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더 이상 자신이 알고 있는 글귀와 도리 혹은 이론을 하나님께 씌우지 않고,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보지 못하고 짐작하지도 못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의 행위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볼 수도 있다. 이는 사람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부분이다. 만약 네가 속으로 늘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고 해 보자.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하는 걸 하나님이 아실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하나님이 아실까? 아실 수도 있고 모르실 수도 있을 거야.’ 네가 한편으론 이런 관점을 가진 채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또 한편으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한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을 거슬러 노하게 할 것이다. 너는 이미 위험한 경계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으면서도 진리 실제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은 더더욱 모르며, 생명과 분량이 전혀 자라지 않는 사람, 얕디얕은 수준의 도리밖에 지키지 않는 사람 말이다. 그렇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그들은 지금껏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직시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보면 기뻐하겠느냐? 마음에 위로가 되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고 하나님을 대하는지, 사람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을 공기처럼 여겨 뒷전에 미뤄 두지 말고, 네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 있고 확실히 존재하는 하나님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는 셋째 하늘에서 할 일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시각각 사람들의 마음과 모든 언행을 감찰하고 있으며, 너의 행실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감찰하고 있다. 너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기 원하든 원치 않든 너의 모든 행위와 마음과 생각은 다 하나님 앞에 놓여 있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고 있다. 너의 일거수일투족으로 인해, 너의 태도로 인해 하나님은 끊임없이 너에 대한 견해를 바꾸고 있고, 너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일부 사람들에게 충고하고자 한다. 자신을 하나님 손안의 귀염둥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를 매우 총애하고 하나님에겐 네가 없으면 안 된다고 착각하지 말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고정불변이라고 착각하지도 말아라. 꿈꾸지 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의롭게 대한다. 그는 아주 신중하고 엄숙하게 정복 사역과 구원 사역을 한다. 이것이 그의 경영이다. 그는 모든 사람을 엄격하고 진지한 태도로 대한다. 사람을 애완동물처럼 어르고 달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총애나 지나친 애정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긍휼과 관용은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방임이 아니다. 반대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아끼고, 가엾게 여기며,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긍휼과 관용에는 그의 기대가 깃들어 있으며, 그의 긍휼과 관용은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밑천이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분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다. 사람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은 바뀔 수 있는 것이지 절대로 규례가 아니다. 인류에 대한 그의 마음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점차 바뀌고 달라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질은 변함이 없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아마 너는 이 일을 그리 심각하지 않게 여기면서 너의 고정 관념으로 하나님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상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일은 너의 관념과 정반대이다. 네가 자신의 관념으로 하나님을 가늠하는 순간, 너는 이미 하나님을 거슬러 노하게 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네 상상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고, 절대로 너의 말처럼 일을 대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신중하게 대하라고 일깨워 주고자 한다. 또한 범사에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것,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원칙에 따라 실천하는 법을 배우라고 일깨워 주고자 한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태도에 관한 일을 대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올발라야 하고, 분별이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며 성실히 구해야 한다. 네가 믿는 하나님을 장난감처럼 여겨 함부로 판단하거나 결론을 내리거나 오만불손한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고 너의 결말을 정하는 과정에서 너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든, 심판과 형벌을 주든 결론적으로 너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너의 태도와 인식에 달려 있다. 네가 하나님의 어떤 면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영원히 하나님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죽은 하나님을 믿지 말고 살아 있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기억했겠지?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그래도 행정 법령의 내용을 잘 파악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분명히 알라고 권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희는 입을 단속하지 못하고 함부로 지껄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되어 어둠 속에 떨어질 것이며, 성령의 함께함과 빛을 잃게 될 것이다. 너희는 일을 할 때 원칙이 없기 때문에, 네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기에, 그에 상응하는 보응을 받게 된다. 너의 말과 행동에는 원칙이 없지만, 하나님의 행사와 말씀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네가 보응을 받는 것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득죄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거슬렀다면 너는 분명히 지옥의 자식일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단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몇 번 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느냐? 하나님 눈에 너는 이미 속죄 제물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네가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른 것이 한 번이 아닌 데다가 회개하려는 태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람을 벌하는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은 하나님을 따를 때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얼마간 하긴 했어도, 나중에 책망과 인도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패괴를 발견하고 실제의 정상 궤도에 들어서 지금까지 착실히 행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마지막에 살아남을 사람들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사람은 정직한 자다. 네가 정직한 데다가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또 일을 함에 있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너의 ‘믿음’은 합격일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르기 쉽다. 많은 사람이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알지 못할뿐더러 하나님 말씀에 내포된 뜻은 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좋은 마음이 종종 하나님의 경영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심한 자는 하나님 집의 문밖으로 쫓겨나 하나님을 따를 기회를 잃고 지옥에 떨어져 하나님의 집과는 무관하게 된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 집의 사역을 무지한 호의로 대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진노를 유발한 사람들이다. 사람은 다 양반 나리를 받들던 수작을 하나님 집에서도 부리며 자기 뜻대로 휘두를 망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이 양이 아니라 사자 같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처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들은 다 하나님과 ‘소통’이 되지 않는데,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과 다르기 때문이다. 너는 수많은 진리를 깨달아야만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있다. 그러한 앎은 글귀와 도리가 아니라 너와 하나님이 서로의 마음을 알게 해 주는 보배가 될 것이고,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너의 앎에 실제가 결여되고 진리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열심만 가득한 너의 섬김은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훈언 3칙> 중에서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두려워할 수 없고, 무심하게 넘기거나 얼버무리고, 더욱이 구제 불능일 정도로 모독하게 된다.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이 물론 아주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파고들어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걸 보면, 너희는 내가 반포한 행정 법령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쉽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되는데,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노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네가 최종적으로 얻는 결과는 행정 법령을 범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하면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면 동시에 행정 법령 자체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행정 법령에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이 행정 법령 속에 모두 구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성품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나의 모든 말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 있으니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틀림없이 큰 수확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헤아리기가 몹시 어렵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대략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는 일을 많이 하여 내게 보여 주길 바란다. 그러면 나도 마음을 놓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언제든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일을 할 때는 그의 말씀에 따르며, 매사에 그의 뜻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께 불경한 일을 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하나님을 뒷전에 두고 미래에 대한 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를 것이다. 또 일생 동안 하나님을 모독하거나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일을 착실하게 하며 나아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한다면, 너는 행정 법령을 거스르지 않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나는 왜 그분이 하나님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이런 말씀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해”, “내가 보기에 하나님이 하신 것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어”, “하나님의 인성은 나보다 뛰어나지 않아”, “하나님 말씀은 정말 믿을 수가 없어” 등의 판단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나는 네가 죄를 많이 인정하고 회개할 것을 권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는 영영 사함 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이는 네가 노여움을 산 대상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어떤 사람을 판단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그의 육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그를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네가 한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영이 하는 모든 일은 그가 육신으로 행하는 사역을 수호하고, 육신으로 행하는 사역을 더 잘하기 위한 것임을 명심하라. 이 점을 간과한다면, 너는 하나님을 믿어도 영원히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으므로 하나님은 그에 상응하는 벌로 너를 훈계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본질에는 사랑이라는 요소가 있어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푼다. 하지만 사람은 그의 본질에 존엄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잊어버린다. 그에게 사랑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그를 제멋대로 거슬러도 아무 느낌과 반응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에게 긍휼이 있다고 해서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원칙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고 진실로 존재하는 분이지, 사람이 상상해 낸 목석이나 어떤 물체가 아니다. 그가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마땅히 매 순간 그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태도를 중시하며, 그의 느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상상으로 하나님을 규정해서는 안 되고,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라는 바를 하나님께 강요하여 사람의 방식과 상상대로 사람을 대해 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 네가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을 거슬러 노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노를 시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존엄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이 심각성을 알았다면 너희 모두 조심스럽게 행하고, 말하며, 하나님을 대할 때 부디 신중하고 또 신중하며 조심하고 또 조심하기를 권고한다! 하나님의 태도가 어떤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함부로 말하지도, 일을 하지도 말며, 함부로 딱지를 붙이지 말고, 함부로 결론짓는 일은 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기다리면서 구해야 한다. 이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행실이다. 네가 우선 이렇게 행할 수 있고 이런 태도를 갖출 수 있다면, 하나님은 네가 무지몽매하고 사리를 모른다고 탓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는 너의 태도로 인하여 너를 기억하고 인도해 깨우쳐 주거나 혹은 어리고 무지한 너에게 관용을 베풀어 줄 것이다. 그와 반대라면, 함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며 정의를 내리는 너의 오만불손한 태도 때문에 하나님은 너를 정죄하고 징계할 것이다. 나아가 너에게 벌을 주거나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 결론은 아마 너의 결말과 관련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너희 모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대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일해서도 안 된다.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해 봐야 한다. 단순한 일일지라도 마음속으로 많이 되새겨 보고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 네가 정말 언제 어디서나 매사에 이런 원칙에 따라 실천하고, 특히 네가 모르는 일에서도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너를 인도하며 실천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사역하면서 사람에게 말씀을 베풀어 주고 진리를 알려 주었다. 이 진리들은 사람이 지키고 준행해야 할 도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하는 도이다. 또한 사람이 삶 속에서, 인생 역정 속에서 실천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을 선포하는 목적이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포된 것으로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켜야 하고, 지키면 생명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의 이 말씀을 지키지 않고 실천하지 않고 삶 속에서 살아 내지 못한다면 그는 진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결말이 없어진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도를 준행한다는 것은 외적인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일이 닥쳤을 때 먼저 그것을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책임이나 부탁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이 닥쳤을 때 너는 그것을 하나님이 너에게 준 시련으로 여겨야 한다. 일이 닥쳤을 때 네 마음속엔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온 일이니 어떻게 해야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노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을지 생각해야 한다. …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려면 우리 곁이나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일단 우리의 입장에서 중요한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무시하지 말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너에게 이런 태도가 있다면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해 준다. 너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너에게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싶다는 이런 소망이 있다면, 네가 실천해 내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다’라는 이 기준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일이나 평소 사람들이 아예 언급하지 않는 일은 작은 일로 여기고 진리의 실천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일이 닥치면 가볍게 생각해 그냥 흘려보낸다. 사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가 바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때이다. 또한 너는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더더욱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너의 곁에서 너의 언행을 관찰하고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저는 왜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네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도를 가장 중요한 도로 삼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하나님이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에 기반해 사람에게 행하는 미묘한 사역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너는 정말 부주의한 사람이구나! 무엇이 큰일이고 무엇이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것과 관련된 일에는 크고 작음의 구분이 없이 다 큰일이다. 이 말을 너희는 받아들일 수 있느냐? (네.) 사람이 보기에 매일 닥치는 일 중에 어떤 일은 아주 크고 어떤 일은 아주 작다. 흔히 사람들은 큰일을 아주 중요한 일로 간주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막상 큰일이 주어져도 사람의 분량이 작고 자질이 부족한 탓에 하나님의 뜻에 이르지 못하고,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하며, 가치 있는 실제적 인식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가 하면 작은 일은 무시하면서 조금씩 흘려보낸다. 그렇게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검증받고 시련받을 무수히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네가 계속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사람과 일, 사물과 환경을 소홀히 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고 인도하려는 것을 네가 날마다, 더 나아가 매 순간 저버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너에게 어떤 환경을 마련해 너를 은밀히 관찰하고 네 마음과 모든 생각을 감찰한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하려고 하는지를 본다. 만일 네가 경솔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한 번도 참답게 대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너는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환경에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에게 주어진 사람과 일, 사물이 진리나 하나님의 뜻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너에게 이렇게 여러 차례 환경과 시련을 주었음에도 너에게서 아무런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느냐? 너에게 수차례의 시련이 주어졌음에도 네 마음이 하나님을 크게 높이지 않고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하나님이 준 시련이나 검증으로도 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내려 준 기회를 지속적으로 밀어내고 흘려보낸다면 그것은 엄청난 패역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일로 슬퍼하겠느냐? (슬퍼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희는 또 크게 놀랄 것이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늘 슬퍼하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하나님께서 슬퍼하지 않으신다고? 그럼 하나님은 언제 슬퍼하시는 거지?’ 어쨌든 하나님은 이 일에서는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면 앞서 언급했던 사람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사람이 하나님이 주는 시련과 하나님의 검증을 밀어내고 도피하려 할 때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태도만을 취한다. 어떤 태도일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이런 사람을 증오하고 버린다. ‘증오와 버림’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석할까? ‘증오’에는 극도로 혐오하고 미워한다는 의미가 있다. ‘버림’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 있어서는 포기한다는 뜻이다. ‘포기’가 어떤 뜻인지 너희는 다 알고 있겠지? 결론적으로 증오와 버림이란 하나님이 위에서 말한 일들을 행하는 사람에게 취하는 마지막 반응이자 태도로, 사람에게 크게 혐오감과 반감을 가져 포기하기로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의 도를 전혀 준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며 악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이 내린 최종 결단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욥은 어째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었던 것이냐? 그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였던 것이냐? 그는 어떻게 그런 악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냐?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느냐? 바로 그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해 하나님을 크게 높일 수 있었으며,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거나 화를 낼까 봐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크게 높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 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다.”라는 말은 할 줄 알지만, 욥이 어떻게 해냈는지는 모른다. 사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마치 계명을 지키듯이 이 말을 지킬 수 있었다. 그가 하나님 말씀을 따른 것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크게 높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리 보잘것없고 평범한 하나님 말씀이라도, 욥의 마음속에서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며, 가장 크고 가장 무거운 말씀이었다. 설령 사람이 업신여기는 말씀이라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사람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 설사 다른 사람의 조소와 비방을 받는다 하더라도, 환난을 겪고 박해를 당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지켜야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모든 말씀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규정한 일과 혐오하는 일을 네가 모른다면 할 수 없지만, 일단 알게 되면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설령 가족이 버리고, 이방인이 비웃으며, 심지어 주변 사람들이 비꼬고 조롱해도 여전히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너는 어째서 지켜야 하느냐? 너의 출발점과 원칙은 무엇이냐? 바로 ‘나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해. 만약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라면 끝까지 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은 단호하게 포기해야 해. 하나님의 뜻을 내가 모른다면 몰라도, 내가 알고 깨달았다면 끝까지 말씀을 따르고 순종해야 해. 어느 누가 가로막아도 소용없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거야.’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다.

사람이 악에서 떠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 바로 하나님을 크게 높여야 한다. 하나님을 크게 높인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바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모든 일을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이자 준칙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크게 높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크게 높인다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바로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근본을 잊거나 자신이 나서지 않고, 하나님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서 ‘나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보잘것없는 피조물이야. 나의 뜻에서 나온 주장, 건의, 결단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도록 해야 해.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자 중심이시며, 또한 내가 모든 일을 할 때 길을 인도해 주는 등불이셔. 나는 ‘자신’을 우선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고 하나님 뜻에 따라 해야 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네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충동적이거나 경솔하게 굴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떻게 말했는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혐오할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경솔하게 굴지 말고, 먼저 마음속으로 질문하고, 생각하고, 묵상해 보아라. 경솔함은 충동적인 것으로, 혈기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네가 늘 경솔하고 충동적이라면, 이는 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크게 높인다고 할 때 너의 그 말은 빈말 아니겠느냐? 너의 실제는 어디에 있느냐? 너는 실제가 없어 하나님을 크게 높일 수 없다. 무슨 일이든 다 자신이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뜻대로 하는데,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헛소리 아니겠느냐? 이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을 크게 높인다. 하나님을 크게 높이는 구체적인 모습은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는 것인데, 하나님이 그의 마음속에서 첫 번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속에서 결정권과 권세를 잡게 한다. 그는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다. 무모하거나 경솔하게 굴지 않고 또 혈기대로 하지도 않으며, 냉정하게 직면하고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진리 원칙을 구할 수 있다. 일을 할 때, 네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뜻을 따르는지, 자신의 뜻에 따라 결정하는지 아니면 하나님 말씀에 따라 결정하는지는 너라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너는 너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지만, 일이 닥치면 하나님은 한쪽에 내버려둔 채 맹목적이고 멋대로 하며 자신이 결정을 한다. 이것이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 모습이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기는 하지만, 기도한 후에 ‘내가 볼 때는 그러면 될 것 같아. 내 생각에는 이러면 될 것 같아.’라며 곰곰이 궁리를 하는데, 이는 모두 네 개인의 뜻이다. 어느 누가 너에게 교제를 해 주어도 듣지 않는데,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모습 아니겠느냐?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았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았으니, 하나님을 크게 높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면 너의 그 말은 모두 빈말이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으며 하나님을 크게 높이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과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모두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이다. 만약 정말로 양심과 이성이 있다면, 일이 닥쳤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진리를 구할 수 있다. 그는 먼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구원받기를 추구하러 온 거야. 패괴 성품이 있어 무슨 일을 하든 늘 자신이 결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배해. 반드시 회개해야 해. 더 이상 이렇게 하나님을 거역해서는 안 돼.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해. 하나님 말씀에서 뭐라고 했었는지, 진리 원칙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구해야 해.’ 이것이 정상 인성의 이성에서 나온 생각과 의지이자, 일을 하는 원칙과 태도이다. 네가 정상 인성의 이성을 갖췄다면 이런 태도를 갖추게 되지만, 네가 정상 인성의 이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이런 태도를 갖추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 인성의 이성이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구원받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욥이 보여 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순종은 인류의 모범이 된다.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은 사람이 갖춰야 할 최고 수준의 인성이었다. 욥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로 인해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하나님께 순종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거두어 가도 전혀 원망하는 바가 없었으며, 게다가 땅에 엎드린 채 하나님이 자신의 육체를 당장 거두어 갈지라도 원망 한마디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욥의 이러한 모든 행동은 순전하고 정직한 인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욥은 순수하고 정직하며 선하기에 자신이 체험하고 느낀 하나님의 존재를 굳게 믿으며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을 토대로 욥은 하나님의 인도와 만물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행사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생각과 행실, 태도와 일 처리 원칙을 자신에게 요구하고 규범화했다. 그것이 오랜 세월 지속되면서 욥은 자신의 체험으로 인해 하나님께 진실하고 실제적인 경외심을 갖게 되었고, 아울러 악에서 떠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욥이 지킨 ‘순전함’의 유래이다. 욥은 정직하고 단순하며 선량한 인성을 갖췄고,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악에서 떠난 실제 체험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탄의 이 같은 공격 속에서도 굳게 설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만족스러운 답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욥은 하나님을 본 적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는 상황에서 그러한 것들을 갖추고 추구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그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과 그 지혜를 깨달았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은 없지만, 그는 사람에게 복을 주고 그 복을 거두어 가는 행사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그가 지나온 세월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지만,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의 일상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는 데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의 눈에 하나님의 행사는 만물의 운행 법칙 가운데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주재 역시 사람의 삶 속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행사의 무소부재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평범한 나날 속에서,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비범하고 오묘한 행사를 보고 체험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기묘한 안배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숨겨진 모습’과 ‘침묵’은 욥이 하나님의 행사를 체험하는 데 어떤 방해도 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도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욥의 일생은 평범한 삶 속에서 만물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욥은 평범한 나날 속에서, 만물 가운데 침묵하고 계시지만 만물의 운행 법칙을 주재하면서 전하는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 사람이 욥과 같은 인성을 갖추고 욥처럼 추구하면, 그와 같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고, 욥처럼 하나님의 만물 주재를 이해하고 깨닫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지도, 말씀하지도 않았지만,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가 될 수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거나 말씀하지 않아도 사람은 만물 가운데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행사와 주재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큰 능력과 권병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또한,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사람이 얼마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게 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너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의 내적 상태를 대조하고 성찰하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다양한 일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관점과 태도를 바꾸고, 결국에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며, 자기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욕망대로 일하지 않으며, 패괴 성품 속에서 살지 않고, 모든 면에서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해 말을 하고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단계적으로 생길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지 자제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제해서 생기는 것은 그저 일종의 행위, 겉으로 보이는 제약일 뿐이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여 도달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패괴된 본모습을 보게 되면, 진리의 귀중함을 알게 되고 진리를 향해 노력할 수 있게 된다. 패괴 성품 표출이 점점 줄어들면, 정상적으로 하나님 앞에 살 수 있게 되어 매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다. 본분 이행 중에 항상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징계를 받은 적이 있거나 수많은 훈계와 책망을 겪었던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래서 패괴를 드러낼 때,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무서워 벌벌 떨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도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경외심이 생기게 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본분을 이행하든, 사람과 교류하든, 혹은 처리해야 할 어떤 특수한 문제가 생겼든 간에 항상 구하고 순종하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 네게 구하고 순종하는 태도가 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진리를 구하고 진리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이다. 만약 구하고 순종하는 태도 없이 자신을 고집하며 완강하게 맞서고 진리를 거부하고 진리를 싫어한다면, 당연히 수많은 악을 저지르게 된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종일관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국 얼마나 많은 일을 경험했든지, 얼마나 많은 환경을 겪었든지, 하나님이 마련해 준 공과를 얼마나 많이 체험했든지 상관없이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할 것이며, 결국 진리 실제에도 진입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 없고, 하나님의 도를 계속 준행할 수 없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항상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을 따르겠노라 외치는데 그것이 간단한 일이겠느냐? 전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는 인생에서 큰일이다! 본분을 잘 이행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실행 원칙을 알려 주겠다. 즉, 네게 닥친 일에서 구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갖춘다면, 너는 보호받게 될 것이다. 너를 보호받도록 하는 게 최종 목적이 아니고 네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며,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최종 목적이다. 모든 일을 이런 태도로 체험한다면,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것이 더 이상 헛된 말이나 구호가 아니고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네가 이렇게 체험한다면 반드시 수확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인지, 나이가 얼마인지, 지식수준이 어떤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는지,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와 관계없이 구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갖추기만 하면, 이렇게 체험하기만 하면, 결국엔 분명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어떤 일에서든 구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진리를 깨닫거나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사람은 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징계와 인도를 받아들이고 순종의 공과를 배워야 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배치한 모든 환경, 사람과 일, 사물에 순종하고, 또한,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항상 기도하며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실행할 길을 얻게 된다.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고 늘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되 방종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닥치면 기본적으로 먼저 마음을 평온히 한 뒤 빨리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고 구하고 기다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 아니겠느냐? 하나님께 경외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협력하고 실행하면 보호받아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이며,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다.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진리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증오받지도, 혐오받아 버림받지도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시험이 닥치면 전전긍긍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것이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실행하면서 늘 이러한 내적 상태로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자신도 모르게 시험과 악행을 멀리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거나 네 마음이 하나님 앞에 있지 않다면, 너는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네게 패괴 성품이 있고 너 스스로 자신의 패괴 성품을 통제하지 못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일단 네가 악행을 저지르면 방해와 교란이 되는데 그 결과가 심각하지 않겠느냐? 가벼우면 책망과 훈계를 받겠지만, 심하면 하나님께 혐오받아 버림받고 교회에서 출교될 것이다. 하지만 네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한다면, 너는 수많은 악행에서 떠날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하나님께 죄를 지을까 봐 두렵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해 하나님께 혐오받을까 봐 두렵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정상적인 태도이자 정상적인 내적 상태가 아니겠느냐? 이런 두려움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이겠느냐?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네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악행을 보았을 때 곧 멀리하거나 피하게 된다. 그러면 너는 보호받을 수 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느냐? 악을 떠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간이 커지지 않겠느냐? 사람이 간이 커지면 구속받을 수 있겠느냐? (구속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구속받을 수 없으면 일시적인 충동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제 마음대로, 열성으로 또는 패괴 성품에 따라 행하는 일이 무슨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보기에 그것들은 모두 악행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며 그래야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음을 지금 너희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람이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으면 악행을 떠날 수 있다. 그런 사람만이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경외해야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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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된 하나님 말씀: 『현재 많은 이들은 알지 못해, 고난받는 것이 무가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가정은 평안하지 않으며 하나님 역시 기뻐하지 않으니 앞날이 막막하다고 말이다. 어떤 이들은 몹시 괴로운 마음에 죽고 싶어 하는데, 이는...

2. 하나님이 시대마다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이유

관련된 하나님 말씀:『하나님은 시대마다 새 사역을 하고 새 이름으로 불린다. 시대가 다른데 어찌 같은 사역을 행하겠느냐? 그가 어찌 낡은 것을 지키겠느냐? ‘예수’란 구속 사역을 위해 취한 이름인데, 말세에 재림해서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느냐?...

질문 (6)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목양하고 있는데, 이렇게 고생하면서 사역하는 것이 바로 천부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설마 우리가 이렇게 실행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단 말입니까?

답: 사람이 주의 복음을 전파하고 고생하면서 사역하는 건 천부의 뜻대로 행하는 걸 뜻하지 않습니다. 진정 천부의 뜻대로 행한다는 건 주의 도를 행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네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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