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법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나라 건축은 직접 영계를 향한다. 즉, 영계의 교전 상황이 곧바로 백성들 가운데서 드러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모든 사람은 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서도 계속 싸우고 있다. 비록 육체를 가지고 살고 있지만, 직접 영계가 드러나고 영계의 생활을 접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를 위해 충성하기 시작할 때, 다음 부분 사역을 잘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을 전부 바쳐야 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나는 없던 일로 할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나의 계획에서 시종일관 내 뒤를 따르고 있다. 사탄은 나의 지혜의 부각물로서 내 원래 계획을 교란하기 위해 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사탄의 간계에 굴복할 수 있겠느냐? 하늘과 땅 가운데의 어느 누가 나를 위해 봉사하는 존재가 되지 않겠느냐? 설마 사탄의 간계라고 예외겠느냐? 이것이 바로 내 지혜의 교점이고, 내 행사의 기묘한 점이며, 나의 전체 경륜의 실행 원칙이다. 하나님나라 건축 시대에도 나는 사탄의 간계를 회피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우주 만물 가운데서 사탄의 모든 행위를 골라 나의 부각물이 되게 하였다. 이것이 나의 지혜가 아니냐? 바로 내 사역의 기묘한 점이 아니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8편> 중에서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에는 다 그 필요성이 있으며, 평범하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가 사람에게 하는 일들은 모두 그의 경영, 그리고 인류의 구원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이 욥에게 행한 일도 예외는 아니다. 욥이 하나님 눈의 순전하고 정직한 자라고 해도 말이다. 즉, 하나님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하든, 무엇을 대가로 삼고 무엇을 목표로 하든, 그가 하는 일의 근본 취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근본 취지란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 그러니까 하나님이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절차에 따라 사람 마음에 심어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이 행하는 일의 근본 취지 중 하나이다. 또 한편으로 사탄은 하나님 사역의 부각물이자 봉사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은 항상 사탄에게 넘겨진다.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이 사탄의 시험과 공격 속에서 사탄의 사악함과 추함과 비열함을 보게 함으로써 사탄을 증오하고 부정적인 것을 인식하고 분별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점차 사탄의 통제와 참소, 교란과 공격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순종, 믿음과 경외심으로사탄의 공격과 참소를 전부 이겨 내면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완전히 구출될 것이다. 사람이 구출된다는 것은 사탄의 패배 선언을 의미한다. 또한 그 사람은 더 이상 사탄의 먹이나 사탄이 삼키려는 대상이 아닌, 사탄이 포기한 대상임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은 정직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 경외심을 지녔으며, 사탄과 철저하게 결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사탄에게 수치를 주고, 사탄의 간담을 서늘케 하며, 또한 완전한 실패를 안겨 준다.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심으로 사탄을 물리쳐, 사탄이 완전히 손을 놓게 만든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사람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최종 목표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구원받고 완전히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사탄에게서 오는 크고 작은 시험과 공격에 직면해야 한다. 거기에서 벗어나 완전히 사탄을 이기는 사람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준 시련과 사탄의 무수한 시험, 공격을 겪은 사람이다.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를 이해하는 자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사탄의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포기하지 않은 자다. 또한, 하나님께 구원받은 자는 정직하고, 선하고, 애증이 분명하고, 정의감이 있고, 이성이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사탄의 속박, 염탐, 참소, 상해 등을 받지 않으며,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를 얻고 해방받은 자이다. 욥이 바로 이러한 자유인이었다. 하나님이 욥을 사탄에게 넘긴 의미가 여기에 있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구원받기 전까지 사람의 삶은 항상 사탄의 방해를 받고, 심지어는 사탄에게 통제되기도 한다. 즉, 구원받지 못한 자는 사탄에게 구금된 자, 자유가 없는 자, 사탄에게서 해방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자격과 권리가 없는 자이며, 사탄에게 바짝 쫓겨 맹렬한 공격을 받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존엄성은 물론이고, 행복이나 정상적인 생존 자격을 논할 가치도 없다. 사람은 스스로 일어나 사탄과 싸워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과 경외심을 무기로 사탄과 결사전을 벌여 철저히 물리쳐야 한다. 그리하여 사탄이 너를 보면 간담이 서늘해져 도망가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탄은 너에 대한 공격과 참소를 완전히 포기할 것이고, 그때 너는 구원받아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사탄과 철저히 결별할 결심만 할 뿐, 사탄을 물리칠 유리한 무기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너는 여전히 몹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너는 사탄에게서 오는 괴롭힘으로 기진맥진하여 굳게 서지도, 사탄의 참소와 공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면 구원받을 희망은 요원해진다. 마지막 순간, 즉 하나님의 사역이 끝을 알리는 순간에도 네가 여전히 사탄에게 꽉 잡혀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영원히 기회도 희망도 없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런 사람은 완전히 사탄에게 사로잡혔다는 뜻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욥은 처음의 시련에서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었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 냈고, 재산과 자녀, 나아가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는 시련을 이겨 냈다. 다시 말해, 욥은 하나님의 거두어 감에 순종했고, 그로 인해 감사와 찬양까지 드릴 수 있었다. 이것이 사탄의 첫 번째 시험에서 욥이 보여 준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첫 번째 시련에서 욥이 증거한 것이다. 두 번째의 시련에서 사탄은 손을 뻗어 욥에게 갖은 해를 가했다. 욥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고통을 겪었지만, 그의 증거는 오히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강인함과 믿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심으로 또 한 번 사탄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가 보여 주고 증거한 것은 또다시 하나님께 인정받고 열납되었다. 이번 시험에서 욥은 자신의 실제 행동을 통해 사탄에게 선포했다. 육체의 고통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과 순종을 바꿔 놓을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과 경외심을 빼앗아 갈 수도 없다고 선포한 것이다. 또한 그는 죽음이 다가왔다고 해서 하나님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순전함과 정직함을 버리는 일 또한 없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욥의 의연함을 본 사탄은 겁이 났다. 사탄은 욥의 믿음에 두렵고 간담이 서늘해졌으며, 사탄과 사생결단하겠다는 욥의 기세를 보고 침통해졌다.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 앞에 사탄은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래서 욥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짓도 그만두었다. 이는 욥이 세상을 이기고, 육체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죽음을 이겨 하나님께 속한 완전한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욥은 두 차례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섰으며, 순전함과 정직함을 실제로 살아 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의 생존 법칙의 범위 역시 확장될 수 있었다. 그 두 번의 시련을 겪은 후, 욥의 인생 경험은 더욱 풍부해졌다. 이 ‘경험’으로 인해 그는 더 성숙하고 원숙해졌으며, 더 강인해지고 더 믿음 좋은 사람으로 바뀌었다. 나아가 욥은 자신이 지킨 순전함의 정확성과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으로 인해 욥은 사람을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느끼게 되었으며, 하나님 사랑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심에는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이 더해졌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에 욥은 천 리 밖으로 밀려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으로 하나님께 더 다가갔다. 육체의 고통이 극한에 달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보살핌을 느낀 욥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다. 그런 모습은 그가 일찍이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다. 욥의 그 자연스러운 발현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욥은 자신을 미워했고, 하나님이 고통받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잊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때의 욥은 오랜 세월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데서 하나님을 헤아리고 사랑하는 경지로 자신을 승화시켰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순종과 경외심을 헤아림과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욥은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상처 주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신의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을 슬프게 하거나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자신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눈에 욥은 여전히 똑같은 욥이었지만, 그의 믿음과 순종,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하나님께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드릴 수 있었다. 그때의 욥은 하나님이 기대했던 완전함에 이르렀으며, 하나님 눈에 명실공히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욥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으로 사탄을 이겼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섰으며, 온전하게 되었고, 자신의 생명 가치를 승화시켰으며, 초월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더 이상 사탄에게 공격받지 않고 시험당하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욥은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에게 참소당하고 시험당했으며,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의 손에 넘겨졌지만, 또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이기고 물리치고 굳게 설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욥은 더 이상 사탄에게 넘겨지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으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빛 속에서, 그리고 사탄의 감시와 해가 없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눈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고, 자유로워졌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욥이 사탄의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자, 가장 먼저 그의 아내가 나서서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사탄의 역할을 하며 욥을 공격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이는 사탄이 사람의 모습으로 한 말로, 공격과 참소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유혹과 시험과 훼방의 의미도 띠고 있었다. 사탄은 욥의 육체를 공격해도 소용이 없자 직접 욥의 순전함을 공격하였다. 이를 통해 욥이 그의 순전함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려 계속 살아가지 못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사탄은 또한 ‘여호와의 이름을 버린다면 그 모든 고통을 참지 않아도 되고 그 육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느니라.’라는 말을 통해 욥을 유혹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내의 권고를 들은 욥은 이렇게 질책하며 말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 이 말은 욥이 오랫동안 쌓아 온 인식이었다. 다만 이 인식에 대한 진실성이 이때 입증되었을 뿐이다.

욥의 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권했다. 그 의미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이렇게 대하는데 어째서 그 하나님을 버리지 않느냐? 그렇게 살아서 뭐 하냐?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렇게 불공평한데도 당신은 계속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라고 말하다니, 그의 이름을 찬송하는데 왜 당신이 화를 입게 하느냐? 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고 다시는 그 하나님을 따르지 마라. 그렇게 하면 당신의 재앙은 사라지리라.’라는 것이었다. 이때 하나님이 보고자 했던 욥의 증거가 다시 한번 나왔다. 이런 증거는 보통의 사람에게 없는 것이며, 성경의 그 어떤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욥이 이러한 말을 하기 전부터 하나님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이번 기회에 욥을 통해 하나님이 옳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실증하고자 했을 뿐이다. 아내의 권고를 듣고도 욥은 자신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았고, 하나님을 버리지도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이 말은 매우 무게가 있지 않으냐? 이 말이 무게를 지녔음을 입증해 주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마음으로 칭찬하는 것이며, 또한 원하고, 듣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했던 결과라는 것이다. 이 역시 욥의 증거 중 정수로 꼽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욥의 귀함은 그가 시험을 받아 온몸에 악창이 났을 때, 즉 가장 고통스러울 때 아내와 친족들의 권고를 듣고도 여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마음속에는 어떤 시험, 어떤 환난과 고통이 찾아와도, 설사 죽음이 찾아올지라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로써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가장 크며,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욥에 대한 다음과 같은 평가를 볼 수 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욥은 입술로 범죄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미움을 사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다. 그의 마음과 입은 일치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본 참된 욥이었으며, 또한 하나님이 욥을 귀하게 여겨 사랑하는 이유였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욥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사탄을 이긴 증거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도움과 격려가 되었다. 사람들은 욥에게서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 경외심을 통해 사탄을 완벽하게 물리쳐 이길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아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겠다는 결심과 믿음만 있다면, 사탄에게 실패와 수치를 안겨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또한, 목숨을 버릴지언정 굳게 서겠다는 다짐과 의지만 있다면, 사탄은 소문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져서 황급히 도망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욥의 증거는 후세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이 경고는 사탄을 이기지 못하면 영원히 사탄의 참소와 방해, 공격과 상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욥의 증거는 또 후세 사람들에게 계시하고 있다. 사람은 이 계시를 통해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야만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해야만 영원히 사탄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욥의 인품, 그가 인생에서 추구한 것은 구원받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욥이 일생 동안 살아 낸 것과 그가 시련 속에서 보여 준 행동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소중한 자산인 셈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베드로는 내 앞에서 오랜 세월 충성을 다하면서도 입에 불평을 담은 적이 없었고, 원망의 마음을 품은 적도 없었다. 욥도 그에게 미치지 못했고, 역대의 성도들 또한 베드로보다 훨씬 뒤떨어졌다. 베드로는 나를 알기를 추구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이 간계를 부릴 때에도 나를 알려고 했다. 그리하여 그의 오랜 섬김이 다 나의 뜻에 부합하였고, 그로 인해 사탄에게 이용당한 적이 없었다. 그는 욥의 믿음을 본받았으나 욥의 단점도 파악하였다. 욥은 믿음이 컸지만, 영계의 일에서는 인식이 부족하여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말을 많이 했다. 이는 그의 인식이 얕아 완벽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언제나 영적인 느낌을 찾는 것과 영계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살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의 간계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역대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베드로의 체험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듯이, 사람이 나를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영적으로 세심하게 살피는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 너에게 나를 위해 겉으로 얼마를 ‘헌신’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모두 부차적인 일이다. 네가 나를 알지 못한다면, 네가 말하는 믿음과 사랑, 충성심은 전부 환상이고 물거품이다. 너는 분명 내 앞에서 큰소리치지만,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또다시 사탄의 올무에 빠지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침륜의 자식이 될 것이고 멸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말에 냉담하다면 의심할 것도 없이 너는 나를 대적하는 자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네가 영계의 문을 통해 그 안에서 나의 형벌을 받는 각양각색의 영들을 보는 것도 좋겠다. 어느 누가 나의 말에 냉담하지 않고, 소극적이지 않았으며, 또 나의 말을 거부하지 않았더냐? 어느 누가 나의 말을 조소하고 비아냥거리지 않았더냐? 어느 누가 나의 말에서 꼬투리를 잡지 않았더냐? 어느 누가 나의 말을 자신의 ‘호신용 무기’로 삼아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았더냐? 그들은 나의 말에서 나를 알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말을 ‘이용’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을 뿐이다. 이것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대적한 것이 아니더냐? 내 말은 누구냐? 내 영은 누구냐? 나는 너희에게 이런 질문을 몇 번이나 했다. 그런데 너희는 더 높은 차원에서 분명하게 깨달은 적이 있더냐? 진실한 체험이 있었느냐? 다시 한번 일깨워 주겠다. 나의 말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실행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내 형벌의 대상이 될 것이며, 사탄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8편> 중에서

“영계의 교전 상황이 곧바로 백성들 가운데서 드러난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정상 궤도에 진입해 하나님을 알기 시작할 때, 사람의 내면에만 사탄의 시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도 사탄의 시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니 아무도 당황해할 필요는 없다. 사탄의 시험에는 몇 가지 상태가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냉담하고 말씀을 포기하며 소극적인 말로 다른 사람의 적극성을 꺾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무리를 짓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간파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나는, 그는 계속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예배하지만 이상이 모호하다. 경계하지 않으면 온 교회가 다 그의 소극적인 상태 때문에 하나님에게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지 않게 된다. 이런 상태는 사탄의 시험에 빠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해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이미 자신을 버렸으며, 그로 인해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떠나고 싶지만 약간의 두려움을 가진다. 또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악령 역사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왜 베드로를 여러 번 언급했겠느냐? 또 왜 욥도 베드로에게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겠느냐?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베드로의 행적을 중시하게 되고, 또한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든 본보기들을 없애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믿음이 컸던 욥도 본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야만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고,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베드로를 본받게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알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베드로가 하나님을 알아 간 실행의 길을 사람들에게 소개해 준 목적은 그것을 참고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 후에 하나님은 먼저 사탄의 한 가지 시험 방식을 예언했다. “그러나 나의 말에 냉담하다면 의심할 것도 없이 너는 나를 대적하는 자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사탄의 간계를 예시하여 사람에게 마땅히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말씀에 냉담하지는 않겠지만, 일부는 이러한 시험으로 노략당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에 다시 한번 강조하며 말씀했다. “나의 말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실행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내 형벌의 대상이 될 것이며, 사탄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사람에 대한 충고의 말씀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한 것처럼 결국 일부 사람은 분명 사탄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 해석ㆍ제8편> 중에서

마 4:8~11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사탄 마귀는 앞에서의 두 가지 방법이 통하지 않자 또 다른 방법을 택했다. 바로 예수에게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자신을 경배하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마귀의 어떤 본모습을 알 수 있느냐? 사탄 마귀는 참으로 뻔뻔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떻게 뻔뻔하냐?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께 역으로 만물을 보여 주며 “만국의 이 부귀영화를 보라. 당신이 내게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라고 말하다니,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니냐? 뻔뻔하지 않으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다고는 하나 그 모든 것을 누리더냐? 하나님은 만물을 인류에게 주었다. 사탄은 이를 삼켜 버릴 속셈을 품고 있었고, 그다음 하나님께 보여 주며 “내게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탄의 추악한 몰골 아니겠느냐! 사탄은 ‘수치’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모른다. 여기서 또 사탄의 사악함을 볼 수 있다. 사탄은 수치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사탄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며, 주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만물은 하나님의 것으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며 더욱이 사탄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마귀 사탄은 뻔뻔하게 하나님께 이 만물을 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사탄이 또 한 번 어이없고 낯 두꺼운 일을 저지른 것 아니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증오심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그렇지 않으냐? 하지만 사탄이 어떤 짓을 하든 예수가 그 꼬임에 넘어갔더냐? 예수는 어떻게 말씀했느냐?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실제 의미가 담겨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떤 실제 의미가 있겠느냐? 사탄의 말에서는 사탄의 사악함과 뻔뻔함을 알 수 있다. 그럼 인류가 사탄을 경배한다면 어떤 결말을 맞겠느냐? 만국의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도 사탄처럼 뻔뻔하고 가소로워지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사탄과 똑같이 될 것이다. 그래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한 예수의 말씀은 모든 이에게 매우 중요하다. 즉 주님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섬기거나 사탄 마귀를 경배한다면, 너는 사탄과 한패가 되는 것이며, 사탄과 똑같이 뻔뻔하고 사악해질 것이고, 사탄처럼 하나님을 시험하고 공격하게 될 것이다. 그럼 네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께 혐오받아 죽임을 당하거나 멸망되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몇 번의 시험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을 때, 사탄은 계속해서 시험했더냐? 더 이상 시험하지 않고 떠나갔다. 이로써 무엇이 증명되었느냐? 사탄의 사악한 본성, 악독함, 그릇되고 황당무계한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단 세 마디로 사탄을 물리쳤다. 그리하여 사탄은 수치를 당하고 풀이 죽어 도망갔으며, 더 이상 예수를 시험하려 들지 않았다. 예수는 이미 사탄의 그 시험을 이겼으므로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사역, 담당한 사역을 순조롭게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예수가 한 이러한 말씀과 일들을 오늘날로 가져와도 모든 이에게 실제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실제 의미가 있겠느냐?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 쉬운 일이냐? 그러려면 사람이 사탄의 사악한 본성을 분명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사탄의 시험을 정확히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사탄의 시험에 들었을 때, 사탄의 사악한 본성을 간파할 수 있다면 사탄을 이길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사탄의 그릇되고 황당무계한 면을 알게 되면 사탄의 편에 서서 사탄과 같이 하나님을 공격할 수 있겠느냐? 너 자신에게서 사탄의 뻔뻔함과 악독함이 발로될 때, 이를 확실히 깨닫고 의식한다면 계속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공격하고 시험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느냐? (사탄을 저버리고 내칠 것입니다.) 그것을 쉽게 할 수 있겠느냐?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사람은 항상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성찰해야 하며,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과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사탄의 미혹과 통제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중에서

현재 사람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며 마주하는 시험이 많지 않으냐? 곳곳에 시험이 존재한다. 각종 사악한 풍조와 말, 사상과 관점, 다양한 사람들의 갖가지 미혹과 유혹, 다양한 사람들의 마귀의 몰골, 이런 것들이 네게는 전부 시험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네게 혜택을 주거나, 너를 끌어들여 돈을 벌게 해 주거나, 너와 친구가 되거나, 너와 연애를 하거나, 네게 돈을 주거나, 네게 일자리를 구해 주거나, 너를 끌어당겨 춤을 추게 하거나, 너를 따뜻하게 대해 주거나, 네게 선물을 준다면, 이 모든 것이 시험일 수 있고, 잘못하면 이 모든 것이 함정일 수도 있다. 만약 네가 내면에 진리를 갖추지 않고 실제 분량이 없다면 그러한 것들을 꿰뚫어 보지 못할 것이며, 그것들은 너에게 전부 함정이자 시험일 것이다. 한편으로 네게 진리가 없으면 사탄의 간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사람이 가진 온갖 사탄의 몰골을 간파할 수 없으며, 사탄을 이기고 육을 저버릴 수 없고,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 너는 진리 실제가 없다면 갖가지 사악한 풍조와 사악한 관점, 그릇된 사상과 말을 막아 내지 못한다. 이러한 것들이 일단 네게 닥치면 그것은 네게 한파와 같다. 가볍게는 감기에 걸리고 심할 경우 중한증에 걸려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고 어쩌면 너는 믿지 않을 수도 있다. 네게는 진리가 없기에 이방 세계의 사탄과 마귀들이 몇 마디 말로 미혹하면 머리가 멍해져서 과연 하나님을 믿어야 할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오늘 예배에서는 내적 상태가 매우 좋았을지라도 내일 집에 돌아가서 드라마를 두 편 보면 마음이 현혹되어 밤에 자기 전에 기도하는 것도 잊어버릴 것이다. 머릿속이 온통 드라마 줄거리로 가득 차 있고, 이틀 정도 보고 나면 네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도, 진리를 교제하는 것도, 기도도 하기 싫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항상 ‘언제 큰일을 이루고 업적을 세울 수 있을까? 그러면 인생을 헛 산 건 아니지!’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겠느냐? 원래는 진리를 많이 깨닫고 복음을 잘 전하여 하나님을 증거할 생각을 했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변한 것이겠느냐? 그저 영화와 드라마를 보았을 뿐인데 사탄에게 네 마음을 빼앗겼다. 네 분량이 너무 작은 것이다. 네가 지금 이런 사악한 풍조를 막아 낼 분량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지금 하나님이 너를 후하게 대하여 너를 하나님 집으로 데려와 본분을 이행하게 한 것이다. 네 분량이 어떠한지 잊지 마라. 지금 너는 온실 속의 화초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이 이런 시험들을 견디지 못하고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언제 어느 때든 사탄에게 사로잡힐 수 있다. 사람의 분량은 이렇게 작고 이렇게 가련하다. 너는 진리 실제가 없고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탄에 속한 이런 모든 말들은 네게 독이다. 네가 그것을 들으면 네 마음이 그 속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다. 너는 속으로 ‘나는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사탄의 유혹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네가 진공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일단 들으면 저항하지 못하고 빠져들게 된다. 네가 기도를 하고 자신을 저주해도 소용없으며 막아 낼 수가 없다. 이런 것들이 네 사상과 행동을 좌지우지하고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제약할 수 있으며, 심지어 네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통제하고 가로막음으로써 네가 소심하고 연약해져서 하나님을 떠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너는 철저히 폐기되어 희망이 사라지게 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묵상해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어떤 국가에서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따를 때는 많든 적든 어느 정도 핍박과 환난이 있으니 신중하게 행동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하나님을 앙망해야 할 뿐 아니라 총명과 지혜를 갖춰야 한다. 어느 국가에 있든, 어떤 사회 환경 속에 있든 하나님이 너에게 적절한 환경을 안배했으니 이는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안락한 환경이든, 고문과 박해든 사람에게는 모두 시험이며, 시련도 있다. 그럼 안락한 환경에서는 시련이 있겠느냐?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시련이 있다. 하나님이 너에게 이런 안락한 환경을 마련해 주었는데, 네가 어떻게 체험하는지에 달려 있다. 네가 곳곳에서 사탄의 속박과 시험에 빠지는지, 아니면 모든 방면에서 사탄을 이기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자신의 충성심과 본분을 지키는지, 이는 네가 어떻게 체험하고 선택하는지에 달려 있다. 중국의 형제자매들이 체험하는 환경은 좀 더 힘들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부담은 좀 더 무겁고, 그들에게 마련한 환경은 좀 더 고생스럽기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풀어 준 것도 많다.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이 어렵고 시련이 클수록 사람이 얻는 것은 더 많다. 그런데 안락한 환경에서도 사람은 곳곳에서 시험과 시련을 겪기에 하나님은 너에게도 마찬가지로 많은 것을 준다. 만약 네가 매번 닥친 시험 속에서 그것을 이길 수 있다면 네가 얻는 것은 고문과 박해를 겪은 형제자매가 얻는 것보다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역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분량이 있어야만 이길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고 잘 먹고 잘 마시며 놀고 즐기는 것, 그리고 육체의 안일함을 누리게 하고 타락하게 하는 일부 사회 흐름 등 이런 것들은 모두 너에 대한 시험이다. 이런 시험들이 너에게 닥쳤을 때 한편으로는 너의 눈이 볼 수 있게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너의 마음을 교란하여 동하게 한다. 네가 세속과 사회의 흐름을 따를 때 사탄의 시험이 닥친다. 하나님의 시련이 닥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시험과 시련을 어떻게 대할지는 네가 선택해야 한다. 이는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검증하는 때이자 사람을 드러내는 때다. 하나님이 너에게 한 말씀과 네가 깨달은 진리가 역할을 발휘할 때다. 만약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너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다면 너는 이 시험을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이 너에게 마련한 시련 속에서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만약 네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세상과 사회의 흐름을 사랑하며 안락을 탐하고 육체를 만족시키기를 좋아하며 공허한 삶을 좋아한다면, 너는 세속을 따르고 마음속으로 이런 것들을 부러워하며 이런 것들에 끌리고 점유될 것이다. 그런 다음 마음속에서 조금씩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흥미를 잃고 진리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그럼 너는 시험 속에서 사탄에게 사로잡히고, 이런 시련 속에서 증거를 잃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도를 많이 들었고 본분도 이행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공허함을 느끼고 연예인, 사회의 흐름, 유명 인사를 좇으며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데다가 심지어 드라마를 보느라 밤낮이 바뀌기도 한다. 게다가 게임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아무튼 그들은 어떤 대가라도 감내하고 심취한 듯 이런 세상의 흐름에 속하는 것들을 좇는다. 어째서 이러겠느냐? 바로 그들이 진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느낀다. 마음속은 여전히 공허하고 사는 게 의미 없다고 느낀다. 세상의 흐름을 좇으면 삶이 조금은 충실해지고 삶의 내용이 좀 더 풍부해지며 매일 조금은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만약 하나님을 믿고 세상의 흐름을 좇지 않게 돼도 여전히 사는 게 의미 없고 공허하다고 느낀다. 이는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는데 이 사람은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했고 진리 실제가 없기 때문에 세상의 흐름을 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시종일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하고 있어도 안심하지 못하며, 일단 시험이 닥치면 굳게 서지 못해 조만간 물러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본분을 이행하는 데 꽤 열성을 보이고 의지도 있지만, 시험이 닥치면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하고 건성으로 대충 하며 마음을 들이지 않는다. 이는 간증이 없는 것이다. 만약 시험이 하나 닥친다고 본분을 내려놓고 자신의 취미를 선택한다면 이는 간증이 없는 것이다. 만약 시험이 하나 더 닥친다면 하나님을 부정하고 세상의 흐름을 좇아 교회를 떠나려고 할 수도 있다. 만약 시험이 하나 더 닥친다면 그는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도대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마음속으로 확신하지도 못하며, 스스로가 유인원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믿기도 할 것이다. 이는 사탄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것이다. 매번 시험 속에서 그는 하나님에게 기도하지도 진리를 구하지도 않고 육체의 운명만을 생각한다. 결국, 그는 굳게 서지 못하고 사탄에 의해 한 걸음 한 걸음 지옥과 죽음의 심연으로 끌려간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주었으므로 더 이상 구원받을 기회도 없다. 너희가 보기에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겠느냐? (중요합니다.) 진리는 아주 중요하다. 진리는 어떤 역할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 최소한 시험이 닥쳤을 때 네가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도록 한다. 네가 해야 할 게 무엇인지, 하지 말아야 할 게 무엇인지, 네가 선택해야 할 게 무엇인지, 최소한 네가 이런 것들을 알도록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네가 시험 속에서 굳게 서서 입지를 굳히고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준 본분과 너의 본분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고 사탄을 버려 시련 속에서 욥처럼 굳게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최소한 얻어야 하는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온갖 악령들이 땅에서 시시각각 안식할 곳을 찾고 있고, 삼킬 자의 시체를 찾고 있다. 내 백성들아! 너희는 반드시 나의 보호와 보살핌 아래에 있어야 한다. 절대 방종하지 마라! 절대 제멋대로 행하지 마라! 마땅히 내 집에서 충성을 바쳐야 한다. 충성심이 있어야만 마귀의 간계에 반격할 수 있다. 더는 예전처럼 내 앞뒤에서 서로 다르게 행해선 안 된다. 그러면 구제 불능이 된다. 내가 이런 말을 적게 했느냐? 누누이 타일러도 사람의 옛 성품이 고쳐지지 않기에 누차 일깨워 주는 것이다. 지겹다고 하지 마라! 전부 너희의 운명을 생각해 말하는 것이다! 사탄은 불결하고 더러운 곳을 원한다. 구제 불능이 될수록, 절제하지 못하고 방종할수록 온갖 더러운 귀신이 기회를 틈타 침입한다. 그 지경에 이른다면 너희의 충성심은 조금도 실제적이지 않은 허튼소리가 될 것이다. 또한 너희의 ‘의지’도 더러운 귀신에게 삼켜져 ‘패역’이 되고 사탄의 ‘간계’로 변질돼 나의 사역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 일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전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 전혀 신중히 대하지 않는다. 나는 네 지난 행실을 기억하지 않는다. 설마 그래서 내가 또다시 ‘기억하지 않고’ 관용을 베풀어 주길 기다리는 것이냐? 사람이 나에게 대항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기 때문에 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절제하며 방종하지 말라고 할 뿐이다. 이것조차 못 하겠단 말이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0편> 중에서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고, 사람의 안배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과 일의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 이는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그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었지만 욥에게 닥친 것은 사람의 행위요, 사람의 방해였던 것과 같다. 너희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고, 싸움이 있다. 예를 들어, 네가 형제자매에게 편견이 생겨 어떤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러자니 하나님이 기뻐할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말하지 않자니 내적으로 괴로울 때가 있다. 이때 내면에서 싸움이 시작된다. ‘말할까, 하지 말까?’ 이것이 바로 싸움이다. 그래서 일이 닥칠 때는 늘 싸움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네 내면에서 싸움이 벌어질 때, 하나님은 너의 실제적인 협력과 네가 실제로 받는 고통을 통해 네게 역사한다. 결국 너는 내면에서 그 일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 화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 역시 네가 하나님과 협력한 결과이다. 어떤 일을 하든 일정한 심혈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실제로 받는 고통 없이는 하나님을 만족게 한다는 말 자체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것은 공허한 구호를 외치는 것에 불과하다! 공허한 구호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사탄이 영계에서 하나님과 싸울 때,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겠느냐? 일이 닥칠 때마다 네게는 그것이 큰 시련이고 네가 하나님을 증거해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한다. 겉으로 봤을 때 큰일이 아닌 것 같아도, 일단 그런 일이 닥치면 너라는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겠지만, 하나님 사랑하기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자요, 진리도 생명도 없는 쭉정이임을 보여 줄 것이다! 일이 닥칠 때는 언제나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할 때이다. 지금 네게는 큰일이 닥치지 않아 별로 크게 증거한 것이 없겠지만, 일상의 사소한 부분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이 탄복하고, 가족이 탄복하고, 주위 사람들이 탄복하게 해라. 언젠가 이방인이 와서 네 모든 행위에 탄복하며 하나님이 행한 것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오면, 너에게 간증이 있게 될 것이다. 네게 식견이 없고 자질이 부족해도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면, 너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자질이 가장 부족한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이 엄청난 사역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사탄 앞에서 이기는 자가 된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이들은 가장 기개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간증이다. 네가 큰 사역을 하지는 못해도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고정 관념을 내려놓지 못해도 너는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이 실제 체험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해도 너는 자신의 실제 분량과 실제 행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며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없다면 너는 가족들 사이에서,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간증이 없는 것이다. 사탄 앞에서 증거하지 못하면 사탄은 너를 비웃고, 노리개 취급하고, 항상 너를 농락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앞으로 큰 시련이 닥친다 해도 지금 네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또 앞으로의 시련이 아무리 클지라도,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굳게 서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면, 너는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장차 어떤 큰 시련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앞의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며, 그저 지금의 상황에서만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너희는 뭔가 큰 사역을 할 수도 없지만 실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 체험을 중요시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며, 강인하고 힘 있게 증거함으로써 사탄을 수치스럽게 해야 한다. 비록 육이 만족을 얻지 못하고 고통받겠지만 너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사탄에게 수치를 안겨 주게 될 것이다. 네가 항상 이렇게 행한다면 하나님이 네 앞에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러면 어느 날 큰 시련이 닥쳐 다른 사람은 다 넘어져도 너는 굳게 설 수 있다. 너는 대가를 치렀으니 하나님은 네가 넘어지지 않고 굳게 설 수 있도록 보호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지금 너희는 어떤 시련을 견딜 수 있느냐? 자신이 이미 기초를 갖추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느냐? 시험이 임하면 굳게 설 수 있느냐? 사탄의 추격과 박해의 시험, 지위와 명예의 시험, 결혼의 시험, 그리고 금전의 시험과 같은 것들을 너희가 이겨 낼 수 있느냐? (어느 정도는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시험은 몇 개의 레벨로 나뉘느냐? 너희는 어느 레벨의 시험까지 이겨 낼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잡혀갔다는 말을 들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잡혀가 고문을 받는 것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너 자신이 잡혀서 직접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굳게 설 수 있겠느냐? 이는 커다란 시험이 아니냐? 또 예를 들어 네가 아는 사람, 인성이 괜찮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이 집과 사업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잡혀가 판결을 받는다면, 그리고 훗날 또 그가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이는 너에게 시험이 아니냐? 이런 일이 닥치면 너는 어떻게 대할 것이냐? 어떻게 체험해야 하겠느냐? 진리를 구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진리를 구할 것이냐? 어떻게 해야 이런 시험에서 자신이 굳게 설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속에서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너는 이런 일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이런 시험을 이겨 내기 쉽겠느냐? 이는 특수한 일이 아니냐? 특수한 일, 그리고 사람의 관념 및 상상과 부합되지 않는 일을 너는 어떻게 체험하겠느냐? 만약 너에게 방법이 없다면 원망의 말을 하겠느냐?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진리에 근거해 적합한 실행 원칙을 확정 지을 수 있겠느냐? 이는 진리를 추구할 때 마땅히 갖춰야 하는 것 아니냐?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겠느냐? 어떻게 체험해야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어떤 진리를 깨달아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여러 가지 관념과 원망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 어떤 진리들로 무장해야 가장 유용하며 각종 시험에서 사람이 굳게 설 수 있겠느냐? 지금 너의 분량은 얼마나 되느냐? 어느 레벨의 시험까지 이겨 낼 수 있느냐? 자신감이 있느냐? 만약 자신감이 없다면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방금 전 너희가 “어느 정도는 이겨 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어리석은 말이다. 너희는 자신이 어느 정도의 분량을 갖추고 있는지, 자신이 어떤 진리로 무장하였는지, 어떤 시험을 이겨 낼 수 있는지, 어떤 시련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하며, 어떤 시련에서 어떤 진리를 갖추고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인식하고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이런 일들을 다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너의 관념 및 상상과 부합하지 않는 일이 닥치면, 너는 어떻게 체험하겠느냐? 이 일에서 어떻게 진리로 무장하고 어느 방면의 진리로 무장해야 네가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고, 관념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진실로 알 수 있는지, 이는 마땅히 구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평소 너희가 겪는 시험은 모두 어떤 것들이 있느냐? (지위, 명예와 이익, 금전, 남녀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두 자주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지금 너희의 분량으로 볼 때, 너희는 어떤 시험에서 자신을 파악하고 굳게 설 수 있느냐? 너희는 이 몇몇 시험을 이겨 낼 진정한 분량을 갖고 있느냐? 너희가 진정으로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진리에 위배되는 일을 하지 않으며, 방해와 교란을 하지 않고, 대적하거나 거역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한편으로는 모든 일에서 자신을 성찰하여 자신이 한 것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 자신이 한 것에 대충 건성으로 한 것이 있는지, 거역하고 대적한 것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만약 있다면, 반드시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을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약 책망과 훈계를 받는다면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 사실에 부합한다면 절대로 이치를 따지거나 궤변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이렇게 실행해야만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다. 사람은 마땅히 이 두 가지 측면의 요구를 달성해야 하며, 모두 진실하게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할 수 있으며, 또한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여러 사람과 일, 사물과 마주친다. 그런데 사람이 진리가 없고, 그런데도 기도하고 구하지 않는다면 시험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남녀 관계에서 그러한 시험을 이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일만 닥치면 무너지는데 이것은 분량이 너무 작은 탓이 아니냐? 진리가 없는 사람은 이렇게 가련해 간증이 전혀 없다. 어떤 사람은 돈과 관련된 일에서도 시험에 빠질 수 있는데, 그는 돈 많은 집안을 보며 불평을 쏟아낸다. ‘남들은 저렇게 돈이 많은데, 왜 나는 이렇게 가난할까? 정말 불공평해!’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불평을 쏟아낸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한다. 늘 지위에 집착한 나머지 이와 관련된 시험이 닥치면 이겨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많은 혜택을 제시하면서 한자리 주겠다고 하는 이방인의 제안에 갈까 말까 고민하며 마음이 흔들렸다. 수차례 기도하고 고민한 끝에 도저히 이겨 내지 못하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가 이미 마음을 정하고 나서 구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분명 가서 관직에 앉아 혜택을 받았을 텐데,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 복을 잃을까 봐 걱정이 돼서 돌아와서 하나님을 믿고 싶어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저에게 시련을 주십시오.’ 이제 와서 무슨 시련이냐! 너는 이미 관직을 택했다. 이 일에서 굳게 서지 못하고 넘어져 놓고서 또 시련이 필요하겠느냐? 너는 하나님께 시련을 받을 자격도 없다. 가련할 정도로 분량이 작은데, 감당할 수 있겠느냐? 더 나아가 비열한 소인들은 콩고물만 보면 바로 달려든다. 이럴 때 성령은 옆에서 너를 관찰한다. 너란 사람이 어떤 관점,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보고 너를 검증하기 시작할 것이다. 누군가는 속으로 말한다. ‘난 필요 없어. 하나님이 후대해도 필요 없어. 내가 가진 것으로 이미 충분해. 하나님은 날 너무 많이 후대하셨어. 나는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고, 오로지 진리를 추구해서 하나님을 얻는 것을 중요시할 거야. 하나님에게서 얻은 진리도 그분이 대가도 없이 내게 베풀어 주신 거야. 나는 그런 걸 얻을 자격이 없어.’ 성령은 사람 마음을 감찰하고 그를 더 많이 깨우쳐 준다. 그는 덕분에 더 많이 깨닫고, 더 의욕이 넘치고, 진리를 더욱 밝히 알게 된다. 그러나 소인들은 무슨 이득이라도 보이면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면 내가 먼저 달려들어야지. 다른 사람에게는 주고 나한테는 안 주면 욕을 한바탕 퍼붓고 궁지에 몰아서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 줄 거야. 다음에는 나한테 주나 안 주나 두고 보겠어!’ 그가 이런 인간임을 보고 성령이 그를 드러내면 그는 추악한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징벌받아 마땅하다.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소용없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사람은 대개 생각지도 못할 때 성령이 베푼 은혜를 얻게 된다. 만약 너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면 네가 받는 징벌 역시 생각지도 못할 때에 닥칠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위험하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진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시험이 닥쳤을 때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그런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고, 이런 시험들이 너를 괴롭고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형제자매가 네게 의식주의 측면을 비롯해 특별한 물질적 대우를 해 주었을 때, 네가 이미 그가 주는 것보다 좋은 것을 쓰고 있다면 너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받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부자를 만나서 그가 자신이 입지 않는 것이라며 좋은 옷을 준다면 너는 그 시험을 견뎌낼 수 있겠느냐? ‘그는 돈이 많으니까 이 옷이 별 것 아니잖아. 어차피 그는 입지 않는 옷이니까 내게 주지 않아도 버릴 텐데 그냥 내가 받자.’ 네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어떻겠느냐? (지위의 복을 누린 것입니다.) 어째서 이것이 지위의 복을 누린 것이겠느냐? (이런 좋은 물건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네게 좋은 물건을 줄 때 그걸 네가 받는다면 그것이 지위의 복을 누리는 것이냐? 만약 좋은 물건은 아니지만 때마침 네게 필요한 것이어서 받았다면, 그 역시 지위의 복을 누렸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남의 물건을 받은 것은 모두 다 해당합니다.) 이런 일은 아마 꿰뚫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네가 리더가 아니고 지위도 없었다면 그가 네게 물건을 주었을지 생각해 보았느냐?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었을 리 없다. 네가 리더이기 때문에 네게 준 것이므로 성질이 변하게 된다. 그것은 정상적으로 베푼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다. 네가 그에게 “제가 리더가 아니라 평범한 형제자매라면 그래도 제게 이걸 주겠어요? 어떤 형제자매에게 이것이 필요하다면 그에게 줄 수 있겠어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그렇다면 줄 수 없어요. 아무에게나 줄 수는 없잖아요. 당신이 리더이기 때문에 주는 거예요. 당신에게 특별한 지위가 없다면 제가 줄 수 있겠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너는 이런 상황도 모른 채 그것이 입지 않는 옷이라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은 그가 너를 속인 것이다. 네가 그걸 받은 뒤 그에게 잘해 주고 그를 특별히 대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그는 그런 속셈으로 네게 그걸 준 것이다. 사실 네게 지위가 없다면 그가 네게 주지 않았을 것임을 너도 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받은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저를 후하게 대하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너는 지위의 복을 누렸을 뿐 아니라 그럴 듯한 명분을 붙여 하나님 선민의 물건을 누렸다. 이것은 몰염치한 행동이 아니냐? 사람이 양심과 지각이 없고 염치도 없는 것은 문제다. 설마 이것이 그저 행동 방식의 문제겠느냐? 설마 남의 물건을 받으면 옳지 않고, 받지 않으면 옳겠느냐? 그러면 너희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원칙에 부합하는 일인지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 하나님 말씀이나 교회의 행정 법령 규정을 찾아보고,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원칙에 부합하는지 알아봅시다.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면 저는 이 물건을 받을 수가 없어요.” 네가 이렇게 말하자 그가 찾아보고 난 뒤 그것이 원칙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았지만 그래도 네게 주려고 하면 너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일을 이겨 낼 수 없고, 남에게 더 많이 받고 특별 대우를 더 누릴 수 있기를 갈망한다. 네가 옳은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오늘 이런 일이 닥친 것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자 하나님께서 제게 배치해 주신 공과일 것입니다. 저는 진리를 구하여 원칙에 따라 실행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사람에게 지위가 있으면 시험이 너무 커서 일단 시험이 닥치면 이겨 내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하므로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하며 또 진리를 구하고 항상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하고 평안해질 것이다. 그런데 네가 물건을 받은 뒤에 기도하면 편안하고 평안한 기분이 들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보겠느냐? 하나님이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겠느냐, 혐오하겠느냐? 하나님은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혐오한다. 이것이 물건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무엇이냐? 문제는 바로 이런 일이 닥쳤을 때 네가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갖고 있는지, 네가 자의적으로 행동하는지 아니면 진리를 구하는지, 네게 양심의 기준이 있는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일이 닥쳤을 때 네가 하나님에게 기도했는지, 먼저 너 자신의 욕망을 충족했는지 아니면 먼저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했는지에 문제가 있다. 이 일은 사람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러면 이런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느냐? 실행 원칙이 있어야 한다. 먼저 겉으로 이런 특별한 물질적 대우를 거절하고, 이런 시험을 거절해야 한다. 네가 특히 좋아하는 물건이나 네게 때마침 필요한 물건이라도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에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의식주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특별한 물질적 대우는 반드시 거절해야 한다. 어째서 거절해야 하느냐? 이것이 그저 행동 방식의 문제이겠느냐? 이것은 협력하는 태도다.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시험을 멀리하고자 한다면 우선 이렇게 협력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네게 이런 태도가 있으면 시험에서 떠날 수 있고 네 양심이 평안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네가 좋아하는 것이라서 받은 뒤에 네 마음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다소 느끼기는 하지만, 네 나름대로 이유와 핑계가 있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하고 또 당연히 받을 것을 받았다고 말한다면, 그때 양심의 느낌이 그리 정확하지 않고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어떤 이유나 사상, 관점의 영향 때문에 양심이 그리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이 양심의 기준을 믿을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다. 이것은 사람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무슨 경종이겠느냐? 양심의 느낌만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고, 진리 원칙을 구해야만 믿을 수 있다. 진리의 구속이 없으면 사람은 시험에 빠질 수 있고,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로 지위의 복을 누릴 수가 있다. 그러므로 리더는 마음속으로 반드시 한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 원칙이란 나는 모든 특별 대우를 일절 거부하고 멀리하며 절대적으로 거절한다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거절할 수 있으면 악을 떠나는 선결 조건에 도달한 것이다. 네가 악을 떠나는 선결 조건을 갖추면 어느 정도는 이미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이다. 이런 실행 원칙을 갖고 이런 원칙을 지킨다면, 너는 이미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있는 것이고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네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있는데 또 무슨 양심을 검사할 필요가 있겠느냐?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진리를 실행하면 양심의 기준을 넘어선다. 사람에게 협력할 뜻이 있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이것은 이미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 기준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지위의 시험과 결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중에서

사람은 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징계와 인도를 받아들이고 순종의 공과를 배워야 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배치한 모든 환경, 사람과 일, 사물에 순종하고, 또한,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항상 기도하며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실행할 길을 얻게 된다.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고 늘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되 방종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닥치면 기본적으로 먼저 마음을 평온히 한 뒤 빨리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고 구하고 기다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 아니겠느냐? 하나님께 경외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협력하고 실행하면 보호받아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이며,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다.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진리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증오받지도, 혐오받아 버림받지도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시험이 닥치면 전전긍긍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것이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실행하면서 늘 이러한 내적 상태로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자신도 모르게 시험과 악행을 멀리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거나 네 마음이 하나님 앞에 있지 않다면, 너는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네게 패괴 성품이 있고 너 스스로 자신의 패괴 성품을 통제하지 못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일단 네가 악행을 저지르면 방해와 교란이 되는데 그 결과가 심각하지 않겠느냐? 가벼우면 책망과 훈계를 받겠지만, 심하면 하나님께 혐오받아 버림받고 교회에서 출교될 것이다. 하지만 네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한다면, 너는 수많은 악행에서 떠날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하나님께 죄를 지을까 봐 두렵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해 하나님께 혐오받을까 봐 두렵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정상적인 태도이자 정상적인 내적 상태가 아니겠느냐? 이런 두려움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이겠느냐?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네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악행을 보았을 때 곧 멀리하거나 피하게 된다. 그러면 너는 보호받을 수 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느냐? 악을 떠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간이 커지지 않겠느냐? 사람이 간이 커지면 구속받을 수 있겠느냐? (구속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구속받을 수 없으면 일시적인 충동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제 마음대로, 열성으로 또는 패괴 성품에 따라 행하는 일이 무슨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보기에 그것들은 모두 악행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며 그래야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음을 지금 너희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람이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으면 악행을 떠날 수 있다. 그런 사람만이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경외해야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중에서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공급해 주고 붙들어 주는 사역을 하는 동안, 하나님은 그의 뜻과 요구를 모두 알려 주었다. 또한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보여 주었다. 그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의 분량을 갖추고,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다양한 진리를 얻도록 하는 데 있었다. 그러한 진리가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사탄과 싸울 수 있는 예리한 무기이다. 사람이 이러한 장비를 갖추려면 하나님의 검증에 직면해야 한다. 하나님의 검증에는 여러 가지 방식과 경로가 있지만, 그 모든 경로와 방식에는 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협력’이 들어간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탄과 싸울 예리한 무기를 준 다음, 사람을 사탄의 손에 넘겨 사탄이 그 사람의 분량을 ‘검증’하게 한다. 사람이 사탄이 쳐 놓은 진영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포위 공격에서 살아 나오면 그 검증을 통과한 것이다. 그러나 사탄의 진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탄에게 항복한다면,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어떤 부분을 검증하든, 검증의 기준은 그 사람이 사탄의 공격 가운데서 굳게 설 수 있는지, 사탄의 올무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무기를 버리고 사탄에게 굴복하는지 등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은 사탄을 이기고 물리치는 것에 달려 있다. 또한, 사람의 해방은 사람이 독립적으로 하나님이 준 무기를 들고 사탄의 결박을 끊어 사탄이 완전히 단념하고 포기하게 하는 데에 달려 있다. 사탄이 사람을 단념하고 포기한다는 것은 더는 그 사람을 두고 하나님과 싸우지 않고, 그 사람을 참소하거나 방해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그 사람을 해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진 자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한 사람을 얻는 전 과정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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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

완전히 사탄을 이긴 자만이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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