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본분 이행이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하는 이유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지금 하나님의 선민들은 모두 본분을 이행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본분 이행을 통해 사람들 중 일부는 온전케 하고 일부는 도태시킨다. 그러므로 본분 이행으로 온갖 사람들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이다. 갖가지 간사한 자, 불신파, 악인은 모두 본분 이행 중에 드러나 도태된다.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든 건성으로 대충 하는 사람은 간사한 사람이자 교활한 사람이며 불신파다. 본분 이행 과정에서 방해하고 교란하는 자는 악인이고 적그리스도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늘 아주 수동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기대기만 하는 것은 무슨 태도이냐? 무책임한 태도다. 하나님 집에서 너에게 한 가지 본분을 이행하도록 안배했지만, 너는 며칠 동안 생각만 할 뿐 구체적인 일을 하지 않았고, 일하는 장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너를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너를 찾을 수가 없었고, 너는 그 일을 맡지 않았다. 만약 리더가 사역에 대해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지금 너는 아무 사역도 하지 않았다. 그 사역이 모두 네가 해야 하는 일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하지 않았다.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이냐? 할 수 없어서 못한 것이냐, 아니면 안일함을 탐하여 하지 않은 것이냐? 너는 본분 이행을 어떤 태도로 대한 것이냐? 너는 글귀와 도리만 이야기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할 뿐, 실제적인 사역은 전혀 하지 않는다. 본분을 이행하기 싫으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실제적인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리를 차지하고만 있지 마라. 이것은 하나님 선민에게 피해를 주고, 교회 사역에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니냐? 네가 하는 말을 들으면 마치 어떤 도리든 다 아는 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네게 본분을 맡기면 전혀 마음을 쓰지 않고 건성으로 대충 이행한다. 이것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냐? 너는 하나님께 진심도 없으면서 진심인 척한다. 네가 하나님을 속일 수 있겠느냐? 평소에 네가 하는 말을 들으면 마치 커다란 믿음이 있는 것 같고, 또한 교회 기둥이 되고 초석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성냥 한 개비의 역할조차 하지 못한다. 이것은 빤히 눈 뜨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속인 결과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건 바로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되는 것이다! 본분 이행은 모든 사람을 드러낸다. 그 사람이 과연 정직한 사람인지, 간사한 사람인지는 본분을 이행해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본분 이행을 통해 드러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 집 사역을 지킬 수 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집 사역을 전혀 지키지 않고, 본분 이행에도 책임감이 없다. 눈치 빠른 사람은 보기만 해도 금방 알 수 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도, 정직한 사람도 아니다. 이들은 모두 드러나 도태될 대상이다.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책임감과 부담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사역을 잘 해낼 수 있다. 제일 두려운 상황은 사람에게 부담과 책임감이 없어서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며, 건성으로 대충 하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떠넘겨 문제가 계속 해결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역을 잘 해낼 수 있겠느냐? 그런 본분 이행이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어떤 일을 안배하든 하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 일하는 데 도움이 필요한 것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명령하고 바짝 몰아붙여야만 어쩔 수 없이 조금 한다. 이것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된 머슴이다! 머슴이 주인을 위해 일하면 하루 일하고 하루 품삯을 받고, 한 시간 일하면 한 시간 품삯을 받는다. 품삯을 받기만 기다리는 것이다. 일을 조금 해 놓고 주인이 못 봤을까 봐 걱정하고, 상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언제나 겉치레로만 일한다. 이는 충성심이 없는 것이다. 사역상 존재하는 문제들을 물어보면 너희는 많은 경우 대답하지 못한다. 일부 사람들은 참여하지만,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을 두거나 신경을 쓴 적도 없다. 사실, 너희의 자질과 식견을 보면 아무것도 모를 정도는 아니다. 너희 모두가 참여자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 대부분은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이냐? 너희는 정말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고, 대체 그 일이 잘된 건지 아닌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너희가 그 일들에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그저 임무로만 대하며 완수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너희가 무책임하고 그 일들에 관심을 두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정말 관심을 두고 신경을 썼다면, 각각의 사안에 대해 관점과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관점과 생각이 없는 건 대부분 무관심, 냉담함, 무책임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이행하는 본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책임감을 갖지 않는 것이다. 대가를 치르기 싫어하고, 관심을 두려 하지 않으며, 애태우려고도 하지 않고, 더 많은 에너지를 쓰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보조 역할만 하려 하는데, 이건 이방인이 사장을 위해 일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고 열납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지 아닌지는 본분을 이행하는 데서 드러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본분 이행에 원칙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전혀 원칙 없이, 늘 자기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이행한다. 이는 건성으로 하는 게 아니냐?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너희는 생각해 보았느냐? 너희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고, 무얼 하든 효율이 없고, 마음과 힘을 전혀 쏟지 않는다. 그러고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마지못해 본분을 이행하고 오래가지도 못한다. 조금만 고생해도 견디지 못하고, 크게 손해를 본다고만 생각하고, 무슨 어려움이 있어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데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겠느냐? 무슨 일이든 건성으로 하면 되겠느냐? 양심적으로 볼 때 넘어갈 수 있겠느냐? 사람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도 불합격이라면 이것을 합격한 본분 이행으로 볼 수 있겠느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너는 영원히 진리를 얻을 수 없고, 너의 힘쓰는 것에도 불합격인데, 어떻게 하나님께 인정받겠느냐?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 고생을 두려워하고, 너무나 게으르고, 육적인 편안함만 탐하고 있다. 업무를 배우는 일에 대가를 치르지도 않고, 열심히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를 묵상해 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대충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수고를 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료를 찾을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알아볼 필요도 없고, 머리를 쓰거나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육적으로 전혀 고생하지 않고도 아주 손쉽게 일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네가 그를 책망하면 그는 꼭 불복하고 따진다. “저는 꾀를 부리거나 한가하게 보낸 것도 아니고, 일도 다 마쳤는데, 왜 또 흠을 잡으려 하세요? 공연히 트집 잡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본분 이행한 것만으로도 잘했는데, 왜 아직도 불만이세요?” 너희가 볼 때 이런 사람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 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면서 핑계만 가득하고, 문제가 생겨도 지적도 못 하게 하는데, 이는 어떤 성품이냐? 사탄의 성품이 아니냐? 이런 성품으로 본분을 이행하면 합격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본분을 이렇게 이행하는 것이 아니냐? 겉으로는 바빠 보이고, 협력도 척척 하고, 다투지도 않지만, 본분 이행에 누구도 공을 들이지 않고, 누구도 마음을 쓰지 않고,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이도 없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구하고 원칙을 지키는 이도 없다. 다들 건성으로 어영부영 지나는데, 진정 본분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너무도 적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같이 열심히 기도하지도 않고, 함께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하지도 않는다. 아무도 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일만 마치면 그만이다. 결국에는 다시 해야 한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순전히 건성으로 하는 것으로, 이방인이 일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이 바로 힘쓰는 자의 마음가짐이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으면 드러나 도태되는 수밖에 없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중에서

어떤 이들은 몇 년 동안 힘쓰고 조금의 변화도 없으며, 어려움이 닥치면 언제나 소극적이고 불평을 하고, 언제나 패괴 성품을 드러낸다. 또 책망과 훈계가 닥치면 이치를 따지고 궤변을 늘어놓고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다가 결국에는 본분 이행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어떤 자는 본분을 이행할 때 사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도 사람들의 질책을 받아들이지 않고, 뻔뻔하게 자신은 잘못이 없다면서 조금도 회개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 집에서 그의 본분을 박탈하고 내쫓으면 그는 울고불고 원망하며 본분을 이행하던 곳을 떠난다. 이렇게 도태되는 것이다. 본분 이행으로 사람을 드러낸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평소에는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우렁차게 구호를 외치면서 어째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사람답게 일하지 않고 마귀로 변하는 것이냐? 인성이 없어서 어딜 가든 마귀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어디서도 굳게 설 수 없는 것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건성으로 대충 하고, 책망과 훈계가 닥쳐도 이치를 따지고 궤변을 늘어놓다가, 여러 번 책망을 겪은 뒤에 회개하는 마음이 조금 생기면 그때부터 억제 방법을 쓰기 시작했지만, 결국 전혀 억제하지 못한다. 심지어 맹세하고 자신을 저주해도 소용이 없다. 이렇게 건성으로 대충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치를 따지고 궤변을 늘어놓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다가, 결국 모두가 그를 혐오하고 질책해서 하는 수 없이 인정한다. ‘내게 확실히 패괴 성품이 있어. 회개하고 싶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또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자기 이익과 체면, 명예를 고려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어. 진리를 실행하고 싶지만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내려놓지도 저버리지도 못하고, 항상 내 마음대로 하고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려 하고, 안일함과 즐거움을 탐하고, 책망과 훈계가 닥쳐도 받아들이지 않고 또 내 이치만 따지고 있어. 나도 힘을 내고 고생했으니 이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누가 책망하면 이치를 따지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마음속으로 순종하지 않아. 나는 정말 다루기 힘든 사람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진리를 구해야 할까?’ 이런 일들을 묵상하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사리를 알고 이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힘쓰는 사람이 언젠가 본연의 일을 하고 성품 변화를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면, 자신도 본래 패괴 성품이 있고 교만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어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또 언젠가 이런 일들을 생각하고 묵상할 수 있으며, 문제를 발견했을 때 진리를 구해 마주할 수 있다면, 이는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 아니겠느냐? 돌아서기 시작하면 변화될 희망이 있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할 마음이 없고, 진리에 공을 들일 생각도 없이, 그저 힘을 들여일만 할 줄 알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마치면 임무를 완수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힘을 들이면 본분을 이행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인지 전혀 묵상하지 않는다면, 본분 이행을 이런 태도로 대하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구원받는 길에 전혀 들어서지 못한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지 못한 것이며,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하나님 집에서 힘을 들이거나 힘쓰는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만약 네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더러운 일, 힘든 일, 어려운 일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마음가짐이 다를 것이다. 어려운 일은 무엇이든 선택하고, 무거운 짐만 고를 것이고,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고를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할 것이다. 마음속은 즐거움으로 가득해 절대 일말의 원망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더러움, 힘듦, 어려움이 사람을 드러낸 것이다. 쉽고 얼굴을 알리는 일만 골라서 하는 그런 사람들과 네가 다른 점이 무엇이겠느냐? 너도 그들과 별 차이가 없다. 그렇지 않겠느냐? 이 일은 이렇게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분 이행이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 말은 매우 그럴듯하게 하는데, 입만 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본분 이행에서 어려움이 닥치면 온갖 원망과 소극적인 말들이 다 튀어나오는데, 그런 자는 틀림없이 외식하는 자이다. 만약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본분 이행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본분이 적합하지 않게 안배되었어도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며, 마음을 다해 본분을 대할 것이다. 설령 힘든 일, 더러운 일, 어려운 일이라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일과 본분을 제대로 해낼 것이다. 그의 마음속은 즐거움으로 가득하고, 하나님도 이를 보고는 마음속으로 위안을 받는다. 이런 사람이어야 하나님께 인정받는다. 더러운 일, 어려운 일, 힘든 일이 닥쳤을 때 호저로 변해 가시를 곤두세우고 아무도 말도 못하게 하고 건드리지도 못하게 한다면, 이런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아니니 드러나 도태될 수밖에 없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의 유대를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이 네게 어떤 일을 하라고 부탁하고 어떤 본분을 주었을 때 네가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지, 네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가장 직관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바로 이런 문제이다. 하나님은 너의 태도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빨리 하나님에게 너의 태도를 밝히고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여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이 핵심을 잡고 하나님이 맡긴 부탁을 제대로 완수한다면 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정상적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사역을 맡기거나 어떤 측면의 본분을 이행하라고 했는데, 네가 무성의하고 진지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며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면, 이는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과는 상반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분명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 네가 이행하는 본분은 분명 합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는 정말 중요하며, 선택하는 방식과 길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든, 본분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도태되어야 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본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본분 이행은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지 거짓으로 믿는지, 진리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옳은 길을 선택했는지 잘못된 길을 선택했는지, 양심과 이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본분 이행을 통해 드러난다. 본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본분이 무엇인지, 어떻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하는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원칙을 따르고 어떤 진리에 따라 실행할 것인지, 또 네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거나 자기 의도를 내려놓을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네가 알아야 한다. 또 본분 이행 과정에서 너는 항상 자기 마음속의 어떤 잘못된 사상들이 사탄의 사상과 관점에 속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그런 사상들이 너의 본분 이행에 영향을 미치고 본분 이행을 가로막을 수 있고, 네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신하게 하며, 네게 맡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수 없게 한다는 사실을 너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사람에게 본분이 중요하냐, 중요하지 않으냐? 아주 중요하다. 너희는 지금 본분 이행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이 이상(異象)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금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분 이행이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아무런 실제도 있을 수 없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점차적으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차츰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과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 또 그와 동시에 자신을 반성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차츰 알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이제 너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것은 진리를 믿고 진리를 얻는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면 진리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진리 생명을 얻을 수가 없다.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에 실제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실제가 없다. 그러므로 네가 본분을 잘 이행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일단 도태되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일에서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설령 네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이미 하나님을 믿는 의의를 잃은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지금은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때이고, 하나님이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키는 때다. 너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진리를 잘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 네가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다면, 네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진리 실제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는 증거이고,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없다면 너는 힘만 쓰는 사람이며 도태될 위험이 있다. 만약 네가 본분을 잘 이행하고 책임감과 충성심을 가졌다면, 너는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이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가 아니면 모두 도태될 것이다. 그러므로 본분을 잘 이행해야만 하나님 집에서 굳게 설 수 있고, 큰 재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 집에 있는 사람은 적어도 정직한 사람이고,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부탁을 받을 수 있고, 충성심을 가지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진실한 믿음과 양심, 이성,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본분 이행에 적합하지 않다. 설령 본분을 이행한다고 해도 대충 건성으로 한다. 그들은 힘쓰는 자인데 진실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힘쓰는 자들은 언제든 도태될 것이다.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는 비록 진리 실제가 없어도 양심과 이성이 있고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살아남도록 허락하였다. 진리 실제를 갖추었으며 하나님을 위해 힘 있게 증거할 수 있고, 백성에 속하는 사람들도 모두 살아남을 수 있으며 하나님나라로 인도될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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