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 변화를 위한 실행의 길 (제 1 부)

성품 변화란 무엇이냐? 대부분의 사람은 잘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성품 변화는 중요한 이상(異象)이다. 성품 변화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은 이제 막 창조되고 사탄의 패괴를 겪지 않은 인간이 아니라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사탄의 독소와 성품으로 점철된, 사탄과 똑같으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은 마치 암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 과정이 복잡하지 않겠느냐? 수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화학 요법을 받아야 하고, 일정 기간 후에는 재검도 받아야 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그러니 성품 변화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사람이 상상하는 행위나 성격의 변화가 아니다. 성품 변화는 사람이 도달하고 싶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은 하나님 말씀에 분명히 설명되어 있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을 믿는 그날부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 사람을 구원하여 어떤 성과에 이르려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진리를 추구하여 성품 변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는 잘못된 관점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착실하게 좋은 사람이나 법과 기율을 지키는 사람, 또는 좋은 일을 많이 해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믿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무골호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표면적으로 사람다운 모습을 보이고 교양과 인내심을 갖추는 것, 또는 경건한 겉모습에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 남을 도울 수 있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요컨대 사람의 관념과 상상 속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 이런 관념이 있으며,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데, 이 또한 일종의 사탄 독소이다. 예전에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 중 성품 변화 문제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하나님 믿는 일을 낯설어했는데, 이는 선천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기독교를 몇 년 믿었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그때까지 이 측면의 사역을 하지 않았고, 이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와 행동 방식, 그리고 명백하게 잘못된 관점이 다소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일은 고생을 많이 하고, 좋은 것을 먹지 않고, 좋은 옷을 입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과거 서양 국가의 천주교 수녀들처럼 말이다. 그녀들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 평생 고통을 많이 겪고, 좋은 것을 적게 누리며, 돈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거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다른 사람을 많이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들은 평생 고통을 겪는 것을 중시했기 때문에 좋은 음식을 먹지 않았고 좋은 옷도 입지 않았으며, 죽을 때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은 고작 몇 달러어치에 불과했다. 그녀들의 행적은 아마 전 세계에서 뉴스로 보도되었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런 자가 바로 모두의 마음속 좋은 사람이고 선한 사람임을 의미한다. 또 이래야만 종교계가 인정하는 선행하는 사람이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며, 변화가 있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신앙이 있는 사람임을 의미한다. 그러니 아마 너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너희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으며 상스러운 말이나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사람, 겉모습만 봐도 하나님을 믿는 자 같은 그런 사람,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이제 막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의 심리 상태이다. 그들은 이것이 바로 성품 변화이며,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관점이 옳으냐? 이제 막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만이 이렇게 유치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진리를 조금만 깨달아도 이런 생각은 일찌감치 사라지게 된다. 이런 관점이 여태까지 네 마음속에 아무리 깊이 뿌리를 내렸을지라도 너희는 이 관점의 잘못된 점과 치우친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얼마나 되든 그 잘못된 관점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 일을 통해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지, 대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사람이 되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열납하며 얻고자 하는지를 참으로 아는 사람은 몇 명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참도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 주관적인 생각들이 여전히 네 사상과 관점을 주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저는 지금까지도 제가 변화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남편이 하는 일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내거든요. 또 이방인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을 증오하게 되고요. 이는 여전히 패괴를 드러내는 것 아닐까요? 여전히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이 말이 어디가 잘못되었느냐?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을 중시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말하는 성품 변화가 사람의 성격과 성질의 변화를 지칭하는 것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품 변화가 곧 성격 변화이며, 잘 참고 절대 성질을 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성품 변화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틀려도 단단히 틀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성품 변화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졌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가끔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 닥치면 여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성질을 부리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반성하고 인식하며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회개할 수 있으니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해 보아라. 이런 변화가 성품 변화를 의미하겠느냐? 너희는 이런 내적 상태를 어떻게 분별하느냐? 성품 변화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느냐? 성품이 변화한 사람의 내적 상태와 태도는 어떻겠느냐? (성품 변화란 저희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자신의 패괴 본질을 인식하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며, 그리하여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품 변화는 성질을 부리지 않거나 제약받고 성질을 덜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품 변화와 상관없습니다.) 올바르고 순수하게 이해했다. 우선 내가 질문을 하나 할 테니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만약 네가 성품 변화를 이루고 진리를 깨달았다면 일을 바라보는 네 관점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것이다.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때, 패괴된 인간과 합할 수 있겠느냐? 합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마음속으로 사탄과 마귀를 증오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패괴된 인간에 대해 거부감, 반감, 혐오가 생기게 된다. 각종 부정적인 사물을 몹시 미워하게 되고, 마귀에 속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더더욱 원치 않게 되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깨달아 얻게 되는 성과이다. 네가 진실로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본성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패괴된 인간의 공통된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괴된 사람들을 혐오하게 된다. 그들의 그릇되고 터무니없으며 황당한 관점을 보면 그들과 접하기 싫어지고 반감을 갖게 되며 그들을 버리게 된다. 특히 종교계가 미친 듯이 성육신을 정죄하며 극단적으로 진리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적그리스도 세력을 혐오하고 완전히 버리게 된다. 만약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인식한 사람이라면, 자연히 하나님과 적대하는 그런 사람과 하나님을 거역하고 저버리고 배반하는 사람을 혐오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런 사람들과 합할 수 있겠느냐? 그렇기에 생명 성품에 변화가 생기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나 이방인들에게 특히나 혐오와 반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패괴된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저 참으면서 지혜롭게 생활할 수밖에 없다. 진리를 깨달았고 성품이 변화했다고 해서 그들을 버리거나 떠날 수는 없으며, 그들을 무시하거나 그들 앞에서 큰 소리로 소란을 피워서도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되고 지혜롭게 굴어야 한다. 너희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너희 중 일부는 성품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것이란 성질이 없어지는 것이며, 사탄 마귀에게도 웃음을 띠고 온화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이런 게 바로 성품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이해가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이해는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왜 옳지 않다고 하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많은 말씀과 사역을 했는데, 그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진리가 생각을 주도하고 진리를 생존의 좌우명으로 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생각 없는 목각 인형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며, 성질도, 정상적인 희로애락도 없는 식물인간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을 혐오할 수 있는 그런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제 너희는 하나님이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을 변화시키려는 것인지 분명히 알 것이다.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하였고 수많은 진리를 선포하였다. 그는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고 각각의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너희는 그가 어떤 모습의 사람을 만들고자 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 나는 많은 형제자매가 “저는 하나님을 이렇게 오래 믿었는데도 여전히 많은 외부적인 일에 속박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떤 자매는 “이방인이 입은 것을 보면 저도 입고 싶고, 누가 예쁘게 꾸민 것을 보면 더 보고 싶어요.”라고 하고, 어떤 형제는 “돈이 많고 부유한 집을 보면 저도 돈을 벌고 싶고, 예쁜 여자를 보면 더 보고 싶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성질을 부리고 싶어지고요. 이런 패괴 성품이 지금까지도 변화하지 않아 일이 닥치면 잡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야 통제할 수 있을까요? 언제 변화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한다. 너희의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너희가 성품 변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희는 오직 행위, 겉면의 행동 방식, 너희의 성질과 성격적인 면에서 스스로를 단속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는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없다. 자유롭게 말하거나 희로애락을 갖거나 성질을 부리는 등의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고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서 그러더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더냐?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사람의 패괴 본질을 대거 폭로하고, 어떻게 사람의 패괴 성품을 인식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그런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는지를 알려 줄 뿐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빠져나온 다음에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하여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사람이 되라고 알려 줄 뿐이다. 성품 변화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알게 된 후에도 계속 겉면의 행동 방식에 신경 쓰겠느냐? 계속 겉면의 이런 일들에 얽히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성품 변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영원히 성품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영원히 성품 변화에 이르지도 못할 것이다. 특히 이제 막 종교계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경우,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아직 종교계의 사상 관념에서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영적인 사람, 경건한 사람, 겸손하고 인내하는 사람,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무골호인, 선행을 즐겨 하는 사람이 되고자 추구하는데, 이는 틀려도 단단히 틀린 것이다! 이런 영적인 사람이나 무골호인이 되고자 추구한다면, 너는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이다. 무골호인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자신을 인식하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무골호인이 되고자 추구한다면 영원히 진리를 얻을 수 없으며, 영원히 자신을 인식하고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없고, 영원히 하나님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품 변화에 이르려면 먼저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리 추구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성품 변화는 의식이나 규례상의 변화가 아니며 표면적인 차림새, 또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성격, 성질의 변화는 더더욱 아니다. 성격이 느긋한 사람을 성격이 조급한 사람으로, 또는 성격이 조급한 사람을 성격이 느긋한 사람으로 바꾸는 것도 아니고, 내향적인 사람을 외향적인 사람으로, 말이 많은 사람을 말이 없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 역시 아니다. 성품 변화는 이런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요구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고 차이가 너무도 크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관념과 상상에만 기대어 일을 처리하게 되는데 결국 바른길에서 벗어나고 진실한 수확이 없이 몇 년의 세월을 허비하게 된다. 사람은 그때는 아직 하나님을 믿으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몇 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하나님을 믿을 때 가장 주요한 것은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여 구원받는 것임을,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때야 하나님이 말하는 성품 변화는 표면적인 행위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우선 자신과 자신의 패괴 본질을 인식하고 사람의 본성 본질을 인식하는 데 애쓰며 근원을 찾고, 그런 다음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진리를 실행해 내어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생명 성품의 변화인 것이다. 너희는 이제 너희가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었음에도 성품에 변화가 없는 근원이 무엇인지 깨달았느냐? 그건 바로 너희가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여 이루려는 성과와 도달하려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방면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는 알아요. 하지만 스스로 자제를 못 해서 늘 자신이 좋아하거나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만 하게 돼요.” 네가 어떻게 주장하든 결국 그렇게 주장한다는 것은 네가 여전히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갖가지 관념과 상상이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성품 변화에 대해 얘기할수록 너는 성품 변화가 너에게서 점점 더 먼 것 같고, 성품 변화에 이르기가 어렵고 이르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느낌이 더 들게 된다. 성품 변화와 사람의 본성 본질을 폭로하는 일에 대해 얘기할수록 너희는 자신의 성품이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다는 느낌, 스스로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지 않느냐? 내가 왜 너희에게 성품 변화에 대해 묻겠느냐? 사실 나도 너희가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저희를 일부러 괴롭히시는 것 아닙니까? 저희가 대답하지 못할 걸 아시면서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너희를 일부러 괴롭히는 게 아니라 너희가 질문 하나하나 다 마음속에 새기길 바라는 것이다. 내가 교제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 또는 주제 하나하나 모두 단순히 생각만 좀 해 보고는 깨달은 것 같다고 여겨 그냥 넘어가 버리면 안 된다. 내가 지금 교제하는 모든 말, 모든 방면의 내용은 전부 너희가 앞으로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그중 어느 것 하나도 빠져선 안 된다. 너희는 이런 것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묻는 것은 너희도 자신의 마음속에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있지는 않은지 한번 반성하고 성찰해 보길 바라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일을 대할 때 사람의 관념과 그릇된 사상 관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반성해 봐야 한다. 사실, 사람은 모두 생각과 사상이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상 관념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한번 성찰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는 종교계에서처럼 형식만 거치는 것이 아니다. 즉,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설교를 듣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주제는 모두 인류가 나눌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주제이며 그 어떤 주제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금 얘기하고 있는 주제는 앞으로의 인류의 종착지에 관한 것이자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요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주제를 탐구하고 있고 이런 주제들을 매일같이 교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제했는데도 여전히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주제들을 지금까지 교제했는데도 여전히 교제를 끝내지 못했다. 그 어떤 주제도 완전히 다 말하거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생명에 관련된 일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설교를 많이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필기를 많이 한다고 해서, 유명한 구절들을 외우고 예배에 참석해서 이런 것들로 형제자매와 교제한다고 해서 끝나는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말한 모든 방면의 진리는 다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자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진리라는 사실을 너는 중시해야 한다. 네가 만약 하나님이 왜 사람에게 성품 변화를 이루도록 요구하는지 깨닫는다면 너는 마음속으로부터 진리를 중시하기 시작할 것이고 진리에 닿도록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성품 변화가 무엇인지 간파하지 못한다면 너는 진리를 사랑하지도, 중시하지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진리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결국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은 깨우쳐 주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모습을 감춘다. 네가 갈망하고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너를 깨우쳐 주고 너에게 역사하여 네가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해 조금씩 분명하게 깨닫도록 할 것이다. 너희가 보기에 성품 변화라는 이 주제는 중요하겠느냐, 중요하지 않겠느냐? (중요합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너희는 지금 시급히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신이 진리가 없고 변화가 없어 재난이 닥치면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고 재난 속에서 고통받을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지금 깨달은 진리가 너무 적어 나중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시련을 줄 때 굳게 서지 못하고 넘어지게 되면 지금까지의 공로가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마지막 단계의 사역이기 때문에 사람이 만약 이 단계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완전히 실패해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생애도 끝나 버려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성품 변화에 이르고 싶다면 우선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조금 전에 나는 일부 사람들이 관념적으로 상상하는 성품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고, 너희들도 이런 사람들의 주장과 관점이 옳지 않고 잘못됐으며 하나님이 원하는 성품 변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너희는 성품 변화를 어떻게 인식해야겠느냐? 어떻게 해야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겠느냐? 성품 변화에 이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만약 이 방면의 자질을 갖추지 않았다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인식할 수 없으며 결국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성품 변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여러 가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 행위, 태도를 분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내적 상태를 대조해 보고, 그런 다음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이런 패괴 성품들의 본질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점차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다. 너희가 보기에, 깊이 패괴된 인류가 만약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괴 성품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인류가 깊이 패괴됐다는 진실을 깨달을 수 있겠느냐? 패괴된 인간은 모두 교육을 권장하고, 지식을 받아들이고 지식을 겨루고 있지만 인간 세상은 오히려 갈수록 사악해지고 어두워지고 있다. 이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도록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자는 누구겠느냐? 그래서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여 정결케 되지 않는다면 성품 변화에 이르러 사람다운 모습으로 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시고 폭로하시는 말씀은 읽고 싶지 않아요. 이런 말씀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괴롭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하면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하면 성품 변화에 이르기 쉽겠느냐? 네가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말씀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다. 하나님 집에는 하나님 말씀 찬양과 체험 간증 영상이 있으니 보고 배우면 된다. 너는 그런 찬양을 많이 부르도록 해라. 찬양은 멜로디가 있어서 배우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쉽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 찬양을 부르는 법을 배우면 효과가 조금 더 좋고 일부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우선 이런 말씀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진리에 대한 자신의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 흥미를 불러일으키기까지 해야 하니 사람은 도대체 하나님의 요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겠느냐? 찬양으로 사람의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하니 이는 사람이 정말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도 훌륭하기 때문에 어느 방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사람에게 이롭다. 그런데도 사람은 먹고 마시기 싫어하니 사람은 정말이지 하나님의 요구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우선, 매번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마다 하나님에게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도 성품 변화를 추구해서 좋은 종착지를 얻고 싶어요. 저는 재난에 빠질까 봐 두렵거든요. 저도 당신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고 싶지만 당신이 사람을 심판하고 폭로하시는 말씀은 너무 가혹해요. 그걸 보면 마음이 아파서 읽고 싶지 않아요. 제가 당신의 말씀을 깨닫고 당신의 말씀이 바로 제 생명에 필요로 하는 것이자 제가 얻어야 할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저를 깨우쳐 주시고 도와주세요.” 네가 만약 이렇게 성심성의껏 기도한다면 어느덧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여 네가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해 어려운 것으로 나아가며 점차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깨닫도록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게 좋아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었어요. 하지만 주로 어떤 진리들을 깨달아야 하는지, 어떤 진리 실제에 진입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추구해야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느냐? 우선 하나님의 말씀에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몇 번 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반드시 진지하게 여러 번 읽어야 하고 자주 묵상하고 교제해야 할 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제 체험이 있을 때까지 실행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밖에 명확하게 교제하지 못하는 주제들은 너희가 교제할 수 있는 정도로만 교제하면 된다. 도저히 명확하게 교제할 수 없는 주제는 우선 제쳐 놓고 너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금의 체험 정도로 이를 수 있는 주제를 먼저 골라 쉬운 것에서부터 어려운 것 순으로 교제하면 된다. 생명 진입은 간단한 일이 아닌데, 3년, 5년 믿었다고 해서 깊이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어른이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자라고 조금씩 쌓여 20~30년을 거쳐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 또한 그렇게 오랜 기간을 거쳐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련된 진리는 평생에 걸쳐 체험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데, 스스로 성품 변화가 있는지는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요?” 이는 많은 형제자매가 관심을 갖는 문제이다. 갓난아이가 막 태어나면 어머니는 그에게 젖을 먹이고 그를 보살핀다. 그 아이가 자신이 언제 클지에 관심을 갖겠느냐? 그럴 리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도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볼 필요 없다. 네 분량이 커지면 자연스레 깨달을 것이고, 네가 변화할 때가 되면 자연스레 변화할 것이다. 네가 체험하는 모든 단계, 모든 시기에 하나님은 네가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어떤 일들을 하고 너에게 어떤 환경들이나 사람과 일, 사물을 마련해 준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 네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지, 지금 너는 또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아라. 그 둘을 대조해 보면 대체 자신에게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는 것, 많이 교제하는 것, 설교를 많이 듣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많이 공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관건이자 성품 변화에 이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도 읽지 않고 진리도 교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성령의 감동을 느낄지, 어떻게 해야 영 안에서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영적일지만 중시한다면 성과에 도달할 수 있겠느냐? 늘 이런 것들만 중시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이런 것들은 모두 부차적이다. 그럼 무엇이 가장 중요하겠느냐?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설령 매일 예배드리고 종교 의식을 아무리 잘 치른다고 해도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진리를 실행해 내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진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떠나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고 이방인에 속한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행위를 해도 너는 구원받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공들인다면 너는 공을 들이는 만큼 수확을 거둘 것이다. 그 수확이 도대체 얼마나 클지는 네가 따질 필요도, 가늠할 필요도 없으며, 관심을 가질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것은 너의 책임이 아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할 것이고, 네가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에게 설명해 주고 너를 깨우쳐 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누군가 또 “하나님은 언제 저에게 시련을 주실까요? 저는 과연 굳게 설 수 있을까요? 제 성품은 도대체 얼마나 변화했을까요? 하나님은 저에게 확답을 주실 수 없는 걸까요?”라고 묻는다면 이는 전혀 사리 분별을 못하는 말이다. 너는 이런 것들에 관심 가질 필요 없다. 언젠가 너에게 분량이 생기고 너의 성품에 정말로 변화가 있다면 어떤 환경이 닥쳐도 너는 이겨 내고 올바르게 대할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이 요구하는 방식에 따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도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겉면의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이고, 성품과 본질의 변화이다.

성품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몇 년 체험한다고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초반에 나쁜 버릇을 고칠 때부터 자주 실패하고 넘어져서 이렇게 생각한다. ‘글렀어. 난 구제 불능이야. 성품 변화는 이제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변화할 수 있을 리 없어. 이 정도로 작은 결점과 나쁜 습관을 바꾸는 것도 이렇게나 어려운데 성품 변화는 더 어렵지 않겠어?’ 그는 소극적으로 변하고 자신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려고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를 책망하고 훈계하면 그는 바로 반감을 가지고 소극적으로 변하여 본분도 이행하려고 하지 않고 진리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이는 어떤 내적 상태이겠느냐? 이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너희도 이런 적이 있었느냐? 너희는 자신이 생명 체험의 과정에서 늘 소극적이고 연약하며 실패하고 넘어질까 봐 두려우냐? 두렵든 두렵지 않든 성품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품 변화는 인류의 패괴 본성이라는 근원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는 것으로, 사람이 환골탈태하며 완전히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암에 걸려 종양이 자라면 수술대에 올라 그 종양을 잘라 내야 하는 것처럼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고 매우 복잡한 과정이 있다. 성품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너는 아마 많은 일을 겪고 나서야 진리를 조금 깨닫고 한 방면의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과 일, 사물, 여러 환경을 체험하고 굽은 길을 많이 걷고 나서야 미세한 변화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변화가 얼마나 생기든 그 변화는 귀중한 것이고, 하나님은 그 변화를 소중히 여기고 기념한다. 왜냐하면 네가 고생도 많이 하고 대가도 많이 치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기 때문에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소망하는지 알고 있고, 사람의 연약함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으며,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더더욱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실제의 하나님을 따르려면 이런 의지가 있어야 한다. 즉, 아무리 커다란 환경이 임하더라도,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아무리 연약하고 소극적이 되더라도 성품 변화에 대해서 믿음을 잃으면 안 되고, 하나님이 한 말씀에 대해서도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을 줬으니 사람은 그 약속을 받을 의지와 믿음, 끈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겁쟁이를 싫어하고 의지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설령 네가 많은 패괴를 드러냈어도, 설령 네가 굽은 길을 많이 걸었더라도, 혹은 과오가 많고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혹은 종교계에 있었을 때 하나님을 대적한 적이 있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이런 것 등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언젠가 변화할 수 있는지만을 본다. 성경에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있는데, 어째서 예수가 그런 비유를 들었겠느냐?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은 진실하며, 하나님은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와 변화할 기회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이해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과 패괴된 정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사람이 넘어지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치 어렸을 적 걸음마를 배울 때 신체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발이 걸리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도 모든 사람을 잘 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어려움과 연약함, 필요를 알고 있다. 더욱이 사람이 성품 변화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고, 어떤 연약함이 생겨나고, 어떤 실패를 겪을지 잘 알고 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한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연약하더라도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이 도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성품이 변화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너에게 성품이 변화될 기회가 있다면 살아남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살아남을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께 구원받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품 변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성품 변화를 위해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아주 깊이 패괴되었습니다. 진리란 무엇인지 모르고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는 더더욱 알지 못합니다. 당신의 구원과 도움, 공급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당신의 말씀을 깨닫고 실행할 수 있는지 알게 해 주시고, 제가 당신의 말씀을 깨닫고 체험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말씀을 저의 생활에 적용하여 생활 속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일거수일투족, 마음가짐 하나하나, 하는 일 모두에 당신의 깨우침과 인도가 있게 해 주십시오. 저는 그러기를 바라고 그러기를 갈망합니다. 저는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 내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삶으로써 당신을 흡족하게 할 수 있길 갈망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너무 많이 패괴되었고 아직 스스로 인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저를 드러내시고 도와주시고 저에게 공급해 주세요. 저에게 지금 필요한 건 바로 그것입니다.” 너는 이렇게 기도해야 하고 이런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너의 마음과 너의 생활은 너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의지는 네가 어떻게 기도하고 구하는지에 따라 변하고, 하나님도 그에 따라 너의 의지를 실현시켜 주기 때문이다. 너는 늘 실패를 두려워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실제로 무슨 일이 닥치기도 전에 너는 두려워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네가 성품 변화라는 일에 대해 의지도, 믿음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선, 성품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이토록 깊이 패괴되었는데, 너희가 보기에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지는 이미 몇천 년이나 되었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남김없이 드러났고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사람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사탄의 본성은 사탄과 비교했을 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하나님과 적대되는 정도에 이르렀고, 진리,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사람은 관심이 없고 반감을 가지며 혐오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사람이 이 정도로 패괴되고 무감각해져 진리를 깨닫는 것만 해도 쉽지 않고 성품 변화에 이르는 것은 더욱 어렵다. 성품 변화는 행위를 바꾸는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품 변화라는 일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고 올바른 태도로 대해야 한다. 엉뚱한 생각을 하며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있어요. 하나님의 그 많은 말씀을 계속 먹고 마셔 왔고요. 하나님께서 사역을 조금 더 하시고 이적과 기사를 조금 더 행하시면 제가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관점은 비현실적이고, 그저 사람의 상상일 뿐이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대로라면 하나님은 심판 사역을 할 필요도 없고, 이토록 많은 말씀을 하여 인류의 패괴를 폭로할 필요도 없으며, 사람에게 시련과 연단을 줄 필요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의 경륜에서 하나님은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탄과 싸우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탄과 싸우시는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러니 앞으로는 “하나님은 왜 사탄을 멸하지 않으실까요?”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말은 하지 마라. 사탄의 패괴가 없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고자 이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할 수 있었겠느냐? 우리가 오늘날 이토록 많은 진리를 얻을 수 있었겠느냐? 만약 사탄의 패괴가 없었다면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경륜은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이 말세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여 그들이 살아남도록 할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얻기 위해 사탄과 싸우는 것이다. 순전히 우리 이 무리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 성육신하여 사탄과 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경륜의 취지와 핵심은 바로 진정한 사람 한 무리를 얻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이다. 이로써 하나님을 믿고 성품 변화를 이루고, 온전히 하나님이 사랑하고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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