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의 이면

한국 팡강(方剛)

몇 개월 전, 리더는 우밍(吳明) 형제와 제가 협력하여 양육 사역을 함께 담당하도록 안배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우밍 형제가 사역을 대할 때 별로 부담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문제가 있어도 제때에 교제로 해결하지 않고, 사역을 상의할 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알게 된 리더가 저에게 귀띔했습니다. “우밍 형제가 그런 식으로 사역을 하는 건 건성으로 임하고 무책임한 거예요. 형제님이 가서 교제 좀 해야겠어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일이 바빠서 사역이 좀 지연됐을 거야. 됐어, 형제가 사역을 전혀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너무 무리하게 요구하면 안 되지. 형제가 해결하지 않은 문제는 내가 해결하지, 뭐.’ 이런 생각에 저는 우밍 형제에게 사역 상황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몇몇 형제자매와 예배를 드려야 해서 저는 우밍 형제에게 조언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는지 미리 파악해 보세요. 그래야 거기에 맞게 하나님 말씀을 찾아서 교제하고 해결하기가 수월해요. 예배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고요.” 얼마 후 저는 형제자매 몇 사람에게 우밍 형제가 당신들의 내적 상태와 어려움을 알아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들 아니라고 하더군요. 저는 우밍 형제가 너무나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할 때는 어려움도 많고 부족한 부분도 많아서 자주 예배를 드려 교제하고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너무나 건성으로 대한 것이었죠! 이번에는 정말 그에게 본인의 문제를 좀 얘기해야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그가 받아들이지 않고 내 요구가 너무 높다면서 나에게 선입견을 갖기라도 하면 내가 너무 가혹하고 이해심이 없는 것처럼 비치겠지? 게다가 우밍 형제는 젊으니 육적인 것을 좇을 수밖에 없겠지. 나도 때로는 건성으로 임하고 육적인 것을 좇는데 그에게 그렇게 많이 요구하지 말고 내가 가는 게 낫겠어.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잖아. 좀 바쁘면 어때? 좀 덜 쉬면 되지.’ 그래서 저는 우밍 형제를 찾아가 그의 문제를 교제하고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역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늘 무작정 포용하고 용인했습니다. 때로는 상대의 모습에 속으로 무척 반감이 들고 화도 났지만, 결국에는 참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됐어, 저들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남은 것은 내가 좀 더 하면 되지.’ 그러다 보니 형제자매들은 무슨 어려움만 생기면 제가 해결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다들 저를 좋게 보니까 억울하거나 괴롭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계속 남과 협력하고 같이 지낼 때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할 수 있으니 저는 비교적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시시콜콜 따지느라 누구와도 협력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말에 대해 폭로하신 말씀을 보고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덕행에 관한 말에 대해 교제하도록 하겠다. 이 말은 무슨 의미겠느냐?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요구하고, 남에게는 관대하게 대해 큰 너그러움과 넓은 도량을 보여 주라는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정상 인성의 자연스러운 표출이겠느냐? (아닙니다.) 사람이 이 말대로 행동하려면 얼마나 많은 억울함을 참아야겠느냐! 욕심도 바람도 없어야 하며, 또한 적게 누리면서 많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고 일해야 하는데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불평하고 원망하거나 제대로 하지 못해도 지나치게 요구해서는 안 되며, 그럭저럭 괜찮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이것이 고상한 덕행의 모습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리도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까? 이는 가식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의 인성의 자연스러운 표출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것인데, 이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볼 때는 다 알 수 있다. ‘저 사람은 교만해.’, ‘저 사람은 못됐어.’, ‘저 사람은 이기적이야!’, ‘저 사람은 대충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해.’, ‘저 사람은 너무 게을러!’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자신을 대할 때는 어떻겠느냐? ‘조금 게을러도 괜찮아. 나는 자질이 좋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잘한다고!’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단점을 꼬치꼬치 따지고 트집을 잡지만, 자신을 대할 때는 유달리 관대해서 대충 넘어갈 수 있으면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성의 자연스러운 표출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사람에게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고 요구한다면 이것 때문에 얼마나 괴롭겠느냐? 사람이 견딜 수 있겠느냐? 몇 명이나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누구도 해낼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사람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모두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라는 말을 신봉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인 본성을 갖고 있고, 이기적인 존재로,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라는 사탄 철학을 신봉하는 데 열을 올린다. 또 사람은 스스로를 위해 생각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이기적으로 굴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신봉한다. 만약 사람에게 이기적으로 굴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요구를 하고 무슨 일이 닥치든 손해를 볼지언정 남의 이익을 탐하지는 말라고, 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네 이익을 취할 때 기쁘게 “제 몫을 취하셨군요. 저는 당신과 따지지 않을 겁니다. 저라는 사람은 속이 넓어 당신을 뭐라 꾸짖지도 않을 거고, 보복도 하지 않을 거예요. 충분히 이득을 취하지 못하셨다면 더 가져가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라고 요구한다면 이것이 현실적이겠느냐? 몇 명이나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패괴된 인류의 정상적인 모습이겠느냐? 단언컨대 이 현상은 좀 비정상적이다. 어째서 비정상적이라고 하겠느냐? 패괴 성품이 있는 사람, 특히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이익을 쟁취하지, 절대 다른 이를 생각해 주면서 만족을 느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현상이 비정상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덕행에 관한 말은 사회 도덕 학자가 인성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의 상상 관념으로 사람에게 제시한, 사실과 인성에 부합하지 않는 요구임이 분명하다. 이는 쥐한테 구멍을 파지 말라고 하고, 고양이한테 쥐를 잡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요구가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법칙에 어긋납니다.) 이런 요구는 분명 현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무척 공허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6)> 중에서) 처음에 이 말씀을 보았을 때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이 말을 긍정적인 사물이라고 믿으며 속으로 그런 사람을 숭배하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면서 그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고 느끼면서 진심으로 승복했습니다. 특히 “패괴 성품이 있는 사람, 특히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이익을 쟁취하지, 절대 다른 이를 생각해 주면서 만족을 느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현상이 비정상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덕행에 관한 말은 사회 도덕 학자가 인성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의 상상 관념으로 사람에게 제시한, 사실과 인성에 부합하지 않는 요구임이 분명하다. 이는 쥐한테 구멍을 파지 말라고 하고, 고양이한테 쥐를 잡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신 부분을 보고 더욱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고수하던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말은 인성에 어긋나고 실제와 맞지 않는 말이었고, 사람이 결코 닿을 수도 없는 것으로, 사람이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준칙이 될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자신과 대조해 보니 확실히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제가 어떤 일에서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게 요구하고 남에게는 관대할 때, 속으로는 무척이나 억울하고 괴로웠습니다. 설령 그렇게 했더라도 본심에 어긋났고, 기꺼이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밍 형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저는 그가 본분을 이행할 때 명백히 건성으로 임하고, 꾀를 부리고, 본분을 무책임하게 대한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무척 화가 났습니다. 또한 그의 문제를 폭로해서 그가 제때 바로잡고 달라지게 해 주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너무 가혹하게 대해서는 안 되고, 본인에게는 엄격하게 요구하고 남에게는 관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밍 형제의 문제를 지적해 주려던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냥 제가 좀 더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지언정 그에게는 너무 많이 요구하지 말자고, 그렇지 않으면 너그럽지 못하고 시시콜콜 따지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저는 몇 개 팀의 사역을 책임지느라 사역량이 이미 많은데도 그가 사역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야 해서 속으로는 무척 억울하고 불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기 위해,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속으로 울분을 삼켜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실제 내적 상태이자 마음속에 담고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과 같았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인 본성을 갖고 있고, 이기적인 존재로,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라는 사탄 철학을 신봉하는 데 열을 올린다. 또 사람은 스스로를 위해 생각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이기적으로 굴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신봉한다.” 사람의 본성은 모두 이기적이고,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일하게 되면 힘들고 고단해서 싫기도 하고, 속으로 억울하고 괴롭기도 해서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본심을 거스르며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요구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할까?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말의 이면에는 과연 어떤 패괴 성품이 숨겨져 있을까? 그렇게 할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저는 이런 의문을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 구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말은 ‘재물을 주워도 갖지 말라’나 ‘기꺼이 남을 도우라’는 말처럼 사람의 덕행에 대한 전통문화의 요구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이 측면의 덕행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지, 실행 가능한지 등을 차치하고 이것 또한 사람에게 인성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나 준칙이 아니다. 어쩌면 너는 정말로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를 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하게 요구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게 행동하며,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생각할 수 있고, 자기 이익을 도모하지 않아 매우 공평무사해 보이며, 사회적 책임감과 도덕심까지 있어서 주변 사람들, 심지어 집안사람들에게까지 네 고상한 인격과 인품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너의 언행은 어떤 비판이나 지적도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십분 동조하고 탄복하여 그들 눈에 너는 진정으로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부 겉모습에 불과하다. 설령 겉모습이라 할지라도 아무도 해내지 못하는데, 사람 마음속 깊은 곳의 생각이 이런 겉모습, 표면적으로 살아 낸 행위와 일치하겠느냐? 절대 일치하지 않는다. 학자, 전문가, 통치자들이 이 도리들을 장려하는 데는 다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전부 사람을 기만하고 미혹하여 숭배하게 하고, 그들을 성인으로 여겨 경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 이런 속셈과 목적을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여기에서 그 목적이 입에 담을 수 없는 것, 음침하고 사악한 것임이 증명된다. … 단언컨대, 무릇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덕행을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위욕이 매우 강하다. 그들은 패괴 성품에 지배되어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 마음속의 지위와 명망, 사회적인 인지도를 추구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의 지위욕과 관계가 있으며, 그들이 좋은 덕행에 가려진 가운데서 추구하는 것들이다. 그러면 그들이 추구하는 이러한 것들은 어떻게 생겨났겠느냐? 전부 그들의 패괴 성품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며, 패괴 성품에 지배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어쨌든, 누군가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덕행을 행할 수 있든 없든, 제대로 해낼 수 있든 없든 그의 인성 본질을 조금도 바꿔 놓을 수 없다. 이 말의 뜻은 바로 그것이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을 조금도 바꿔 놓을 수 없으며, 다양한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을 주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일수록 위장과 가식에 능한 사람이고, 듣기 좋은 말과 좋은 행위로 남을 미혹하는 사람일수록 본성이 간사하고 사악한 사람이다. 또 이런 사람일수록 지위와 권력과 세력을 깊이 사랑하고 추구한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덕행이 아무리 위대하고 영광스러우며 옳아도, 아무리 보기 좋아도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차마 밝힐 수 없는 추구와 본성 본질, 심지어 야심은 언제든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들의 덕행이 아무리 훌륭해도 본래의 인성 본질을 가릴 수는 없고, 그들의 야심과 욕망을 가릴 수도 없으며,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추악한 본성 본질을 가릴 수도 없다. 이런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듯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말은 더없이 황당하다. 또한, 야심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말과 행위로 차마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야심과 욕망을 숨기려 시도한다는 사실이 더욱 드러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말은, 얼핏 보기에는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너그러운 듯 보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넓고 도덕성이 높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는 말하기 껄끄럽고, 엉큼하고, 사악한 목적이 숨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런 좋은 행위를 통해 자신을 치켜세워서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숭배를 받고, 사람들 사이에서 높은 지위와 명망을 얻기를 꾀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겉으로 남들로부터 인정받을지라도 실제로는 위선자이고 외식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는 우밍 형제와 협력할 때의 제 모습과 표출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가 사역을 아무리 건성으로 임하거나 무책임하게 해도 저는 교제로 일깨워 주지도 않고 책망과 훈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계속 이해해 주고, 양보하고, 용인했습니다. 제 사역이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아무리 부족해도 그가 하지 않은 사역이 있으면 가서 했습니다. 제가 조금 힘들고 고단해도 억지로 버텼습니다. 사실 제가 그렇게 한 것은 제가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그보다는 제 나름의 속셈과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직접적으로 얘기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미움을 받으면 그가 저를 어떻게 볼까 걱정했던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제 너그러움을 드러내서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기 위해 속으로는 무척 내키지 않았지만 매번 참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점점 교활하고 간사해졌습니다. 겉으로는 남에게 관대하지만, 뒤로는 그릇된 속셈을 감춘 채 거짓 이미지로 남들을 속여 가며 사람들을 기만했습니다. 순간,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말의 본질에 대해 조금은 분별이 생기면서 제 내면에 숨은 비열한 목적이 정말 역겹게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 무척 감사했습니다. 그분께서 전통문화의 본질을 폭로하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계속 기만당하면서 스스로를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할 수 있으니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그것이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황당한 논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진리도 아니고, 인성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과 준칙도 아니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두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류 가운데서 소위 사람의 품행 방면에 대한 이러한 요구와 주장이 아무리 규범적이고 대중의 입맛과 관점, 염원, 나아가 이익에 부합해도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너는 이 점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리가 아닌 이상, 되도록 빨리 그것을 부정하고 버려야 하며, 그 본질은 무엇인지, 사람이 그것으로 살아갈 때 과연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해부해야 한다. 그것이 정말 네가 자신을 인식하도록 해 줄 수 있겠느냐? 너를 진실하게 회개하도록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할 수 있겠느냐? 전부 불가능하다. 그것은 너를 외식하는 사람,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 되게 할 뿐이며, 너를 더 교활하고 사악하게 만들 뿐이다. “예전에 저희는 전통문화에서 나온 것들을 고수하면서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저희의 모습을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사실 저희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어떤 악을 행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 좋은 일을 좀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위장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전통문화가 요구하는 좋은 행위를 포기한다면,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요? 어떤 행동과 모습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할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질문이 어떠하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떤 진리들을 실행해야 하는지도 모른단 말이냐?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했고, 사람이 실행해야 할 진리는 더없이 많거늘 어째서 진리를 실행하지는 않고 하필 좋은 사람인 척하고, 외식하는 사람이 되려 한단 말이냐? 너는 어째서 위장하려는 것이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5)> 중에서), 『종합하자면, 전통문화 중 덕행에 관련된 말들을 열거하긴 했어도 그 목적은 이러한 것들이 그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며, 사탄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것만이 아니다. 나아가 이러한 것들의 본질이 거짓되고 가식적이며 사람을 기만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설령 사람이 이러한 행위를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정상 인성을 살아 냈다는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가식적인 행위로 사람의 속셈과 목적을 가리고, 또 패괴 성품과 본성 본질을 가리는 것이다. 그 결과, 인류는 점점 더 가식적이고 기만적으로 변하고, 그리하여 패괴된 인류는 갈수록 더 패괴되고 사악하게 변한다. 패괴된 인류가 지키는 전통문화의 도덕 기준은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와 전혀 맞지 않으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르친 어떤 말씀과도 부합하지 않고,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만약 네가 마음속으로 여전히 전통문화에 속한 것들을 고집한다면 그것에 철저히 미혹되고 해를 입을 것이다. 네가 어떤 일에서 전통문화를 지키고 전통문화의 원칙과 관점을 준수한다면, 그 일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위배하며 하나님과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네가 덕행에 관련된 말 중 어느 한 조목이라도 지키고 충성하고, 그것을 준칙이나 근거로 삼아 사람과 일을 대한다면, 거기에서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사람을 심하게 판단하고 해칠 경우,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 언제나 전통문화의 그 덕행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판단한다면 네가 정죄한 사람, 억울하게 만든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나아가 너는 하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게 될 것이다. 그럼 너는 죄의 원흉이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5)>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속으로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역을 건성으로 대하고, 꾀를 부리고, 무책임하게 대하는 것을 발견하면 지적해 주거나 책망하고 훈계해서 그가 건성으로 임하는 성질과 결과를 인식하고 제때에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성이 좋은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지위와 이미지를 보전하기 위해 무조건 용인하고 양보하느라 문제를 발견하고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우밍 형제는 자신의 패괴 성품도 인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본분도 줄곧 건성으로 임하거나 무책임하게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사람의 생명 진입에 손해를 끼치고 과오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형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해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전혀 진정한 좋은 사람도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를 해쳤을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을 지체시키고 영향을 주었으니까요. 그 순간 저는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말은 진리도 아니고,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준칙도 아니며,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오도하고 패괴시키는 사설과 황당한 논리이었음을요. 더 이상 거기에 우롱당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에 따르고,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해야 했습니다. 그 후로는 우밍 형제에게서 어떤 문제를 발견하면 더 이상 무작정 관대하게 대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그가 그 문제를 인식하고 바로잡도록 지적해 주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또 사무 사역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사역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한 형제가 본분을 불성실하게 이행하고 일을 엉성하게 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문제를 지적해서 형제를 민망하게 만들지 말고 내친김에 그냥 제가 처리해 버리면 되겠거니 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표출하는 사상 관점이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려 하는 것임을 불현듯 의식했습니다. 남에게 미움 살까 봐 문제를 지적하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비열한 속셈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동시에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진입에 이롭지 못한 일과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최소한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말고,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고, 교회 사역과 교회 생활을 교란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광명정대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한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저에게 일을 처리하는 원칙을 밝혀 주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유익하고 도움이 되어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형제가 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것을 보면 마땅히 그가 자신의 문제를 의식하고 제때 바로잡을 수 있도록 지적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형제의 생명 진입에도 유익이 되고, 교회 사역에도 유익이 되죠. 만약 그것을 얘기하지 않고 혼자 뒤에서 묵묵히 대신 처리해 주면 그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고, 본분 이행도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저는 형제의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랬더니 형제도 바로잡으려고 하더군요. 이렇게 실행하고 나자 마음이 무척 편안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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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천광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패괴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섬기기란 불가능하다. 너의 성품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 성품은 여전히 사탄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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