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천주교 신부가 돌아온 과정
저는 몇 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0세가 되던 해 수도하고 헌신하며 하느님을 섬기기로 결심했죠. 저는 신학원에 들어가 7년간의 신학 교육을 받고 27세 때 축성을 받아 신부가 되었습니다. 30세 때는 수도원장으로 발탁되었고요. 저는 무척 교만해졌습니다. 젊은 나이에 수도원장이 된 데다가 신부며 수사들 모두 제 설교를 듣고 도움이 된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하느님께도 인식이 있다고, 하느님이 오실 때 분명 인정받아 천국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01년 6월의 어느 날 저녁, 왕 회장이 급히 저를 찾았습니다. 기독교인 둘이 찾아왔는데 신앙 측면에서 보통이 아닌 것 같다고 했죠. 저는 ‘기독교인’이라는 말에 한 수 아래로 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 천주교는 정통 교회야.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와 관련된 모든 진리를 갖추고 있지. 또 나는 오랜 세월 신학을 배우면서 성경의 모든 장절을 다 공부했고. 마침 잘 왔네. 그들하고 신앙에 관련된 문제들을 토론한 다음 우리 천주교로 오라고 해야겠다.’ 잠시 후, 왕 회장은 저와 함께 청스(程實)와 샹광(向光) 형제를 만나러 갔습니다. 저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지 6~7년밖에 안 되었다는 말을 듣고 더더욱 무시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천주교로 이끌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천주교의 역사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죠. 그러면서 천국에 갈 확신을 얻고 싶다면 우리 정통 천주교회로 오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습니다. 샹광은 한술 더 떠 “천주교든 기독교든 오늘날의 교회들은 다 몹시 황폐합니다. 설교자의 성경 강론에는 빛 비춤이 없고, 새롭거나 깊이 있는 설교를 찾아볼 수도 없죠. 심지어 많은 설교자가 섬김의 길을 걷지 않고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자들은 소극적으로 변해 연약해졌으며, 믿음이 냉담해졌고요. 예배 때 한담을 늘어놓기 일쑤고,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떠들어 대며, 서로 일자리나 연애 상대를 소개해 주곤 하죠. 또 많은 신자가 세상의 흐름을 좇고 있고, 심지어 일부는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교회의 이런 모습이 율법시대 후기의 성전 상황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율법시대 후기, 성전은 눈에 띄게 황폐해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성전에서 돈을 바꾸고 소와 양, 비둘기를 사고팔았죠. 성전은 도적들의 소굴로 전락했습니다. 이는 성령이 성전에서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럼 성령은 어디에서 역사하셨을까요? 그때 예수님은 이미 성전 밖에서 새로운 사역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령 역사도 예수님의 사역으로 옮겨 간 거죠. 이는 겨울날 집 안에 난로가 있으면 따뜻하지만 난로를 치우면 조금씩 추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에 성령 역사가 있으면 형제자매들이 믿음을 갖고 열심히 추구하지만, 성령 역사를 잃으면 교회가 조금씩 황폐해집니다. 지금 각지 교회는 율법시대 후기의 성전 상황처럼 황폐합니다. 성령 역사가 옮겨 간 것은 아닌지, 지금 성령은 과연 어디에서 역사하고 계실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그의 말을 듣고 좀 놀랐습니다. 율법시대 후기 황폐해진 성전과 예수님의 사역을 한데 묶어서 이야기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그런 이해는 무척 신선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한 번도 그런 인식을 가져 본 적이 없었죠. 게다가 그들이 언급한 오늘날 교회의 상태에 대해서는 저도 동감하는 바였습니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성경을 읽고 주일을 지키는 것만 봐도 많은 교우가 해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까요. 모두 이방인처럼 재물과 세속적인 누림을 추구했고, 교회당에 사람들이 점점 적어졌습니다. 교회가 황폐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죠. 저는 그들의 말이 성경에도, 사실에도 부합하며 인식 면에서 봤을 때도 깊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성경을 읽고 연구했지만 저런 인식을 갖지는 못했어. 저들은 고작 몇 년 믿은 게 전부인데 저런 인식을 말할 줄 아네. 내가 저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아.’ 저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간단하게 몇 마디 동조한 후 먼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저 역시 성령 역사가 옮겨 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또 ‘성령은 성교회의 영혼인데, 성령이 교회에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어디에서 역사하신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많이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청스와 샹광은 그 후로도 저를 두세 번 더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시고,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한 단계의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의 결박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나라로 인도하시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반발심이 치솟았습니다. ‘당신들이 성경에 대해 알기나 해? 예수님은 이미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어. 말세에는 영체로 구름을 타고 오셔서 사람들의 결말을 정하신다고. 그런데 어떻게 성육신으로 새로운 사역을 하신다는 거야?’ 그때, 요즘 ‘동방번개’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게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이미 육신을 입고 돌아오셨으며, 새로운 사역을 행하셨다고 증거한다 했죠. 또 그들이 말하는 도는 꽤 고매하다고 들었던 기억도 났습니다. 아무래도 청스와 샹광은 ‘동방번개’를 믿는 사람들인 것 같았습니다. 우리, 천주교는 정통 교회인데, ‘동방번개’라는 교파는 여태까지 들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정통 교회에 속하지 않으니, 그들이 전하는 도 역시 옳지 못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죠. 저는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끊으며 말했습니다. “두 분은 ‘동방번개’를 믿고 있죠? 방금 하느님이 다시 성육신하셔서 한 단계의 새 사역을 행하셨다고 했는데,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믿을 수 없어요! 제게 복음을 전하겠다면 헛수고하지 말라고 하고 싶네요!” 청스와 샹광은 인내심을 갖고 계속 교제해 주었지만, 당시의 저는 관념이 너무 커서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를 냈습니다. “당신들이 하는 말은 우리의 신앙과 충돌합니다. 더는 듣고 싶지 않네요!” 그들은 제 태도를 보고 저와 더 이상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로도 그들은 저에게 두 번 더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저는 거부감이 들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제게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책 한 권을 주면서 한번 살펴보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간절한 태도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책을 받았고요.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두꺼운 책을 보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 책에 과연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 궁금했죠. 그래서 목차를 훑어본 후, 대충 한번 넘겨 보았습니다. 책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과연 존재하는지, 사람의 훗날 결말과 종착지는 무엇인지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교의와 같지 않았기에 저는 책을 덮고 다시는 열어 보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수도원장으로서 양들을 지킬 책임이 있다고, 신부와 수사들이 미혹되지 않도록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피정 때 신부와 수사들에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말세입니다. 말세에는 수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등장하죠. 며칠 전, 저는 ‘동방번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돌아오셔서 한 단계의 새로운 사역을 행하셨다고 하더군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을 들고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보세요. 이게 바로 그들의 책입니다. 제가 대충 한번 훑어봤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신앙과 많이 다르더군요. 감히 단언하건대, 이건 절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경계심을 갖고 그들의 책을 보지도, 그들과 접촉하거나 그들의 설교를 듣지도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교우들이 그들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신부와 수사들은 제 말을 듣고 이는 영혼을 구하는 큰일이라며 반드시 교우들을 지키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들의 순종하는 모습에 저는 무척 정의로운 일을 했다고, 수도원장으로서 양들을 지키는 의무와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대적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죠.
그 일이 있고 며칠 안 돼 샹광이 저를 찾아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교회의 전통적인 교의와 다르니, 저는 그것을 살펴보지 않을 겁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살펴보라고 하지도 않을 거고요. 그것은 신앙과 관련된 문제이니까요. 우리는 절대 하느님을 배반하고 다른 도를 들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샹광은 인내심 있게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의 전통적인 교의와 다른 점 한 부분만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단정 지으며 살펴보기를 거부하신다면, 이는 너무 경솔한 것 아닐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충고하겠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고 함부로 단정 짓지 마라. 또한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적어도 겸손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다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고, 진리를 듣고도 멋대로 단정 짓거나 정죄하는 자들은 다 교만한 자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두 다른 이를 저주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자기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다고 맹목적으로 정죄해서는 안 되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구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늘 자기 머리와 상상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과 말씀을 판단한다면, 하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는 큰 죄를 짓기 쉽습니다. 지난날, 예수님이 사역하러 오셨을 때, 그분의 말씀과 사역이 율법의 범주를 넘어선다며 고의로 꼬투리를 잡아 예수님을 정죄하고, 결국 사람들을 미혹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크게 거슬러 결국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마주하게 됐죠. 이는 피의 교훈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재림을 신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 정죄했다가는 성령을 모독할 수 있으니까요. 예수님은 일찍이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마 12:31)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 죄를 짓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타나 사역하신 후로 각 종교 각 교파의 많은 지도자가 맹목적으로 그분의 말세 사역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는 헛소문을 지어내는 자도 있죠. 하나님을 심각하게 대적한 그들은 대부분 징벌을 마주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신중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자기 결말을 망치게 될 것입니다.” 당시 저는 ‘나는 교우들을 위해서 그렇게 한 거야. 그들이 미혹되지 않게 보호한 거라고. 그런데 어떻게 하느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죠. 저는 확실히 ‘동방번개’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죄하면서 신부와 수사들에게 경고했죠. 만에 하나 샹광의 말처럼 제가 잘못 정죄한 거라면 이는 하느님을 거스른 것이니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샹광에게 말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생각해 보지 못했네요. 앞으로는 신중하게 대하겠습니다.” 그 후, 교회에 이런저런 일이 생겨 이 문제에 대해 반추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주교를 만났는데, 그가 상심한 모습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교구의 많은 신부가 핑계를 대면서 헌금을 상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신부들도 있는데, 아무리 타일러도 회개하지 않고요. 또 나이 많은 한 신부는 몰래 제게 고백했는데, 헌금을 빼돌려 다른 사람한테 공장을 여는 데 사용하라고 줬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신부가 돼서 헌금을 마음대로 쓰고 빼돌리는 걸로 모자라 부적절한 남녀관계까지 맺다니. 이건 하느님을 거스르는 큰 죄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똑같이 망할 것이라.’(루카 13:3)라고 하느님은 말씀하셨어. 신부들이 죄 속에서 살면서 도무지 회개를 하지 않는데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어?’ 예전에는 이런 문제들이 몇몇 소수의 신부들에게만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타락한 신부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샹광이 이야기한, 황폐해진 교회의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성령이 교회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면 늘 성령의 징계를 받았어. 지금 이렇게 많은 신부가 죄를 짓고 하느님을 대적하고 있는데, 왜 성령의 징계를 받지 않는 걸까? 설마 진짜 성령이 더는 교회에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걸까?’ 하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얼마 후, 샹광과 팡이(方毅) 형제가 다시 저를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반발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하느님이 다시 육신을 입고 새로운 사역을 하신다고 증거하는데,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이 있어? 당신들도 증거 같은 건 없잖아! 이번에는 내가 먼저 질문하겠어. 답하지 못 하면 얘기는 여기서 끝이야.’ 그래서 저는 물었습니다. “성경에는 말세에 하느님이 영체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주님이 또 한 번 성육신하여 한 단계의 새로운 사역을 하셨다고 증거하죠.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그러자 팡이가 침착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주님이 말세에 육신을 입고 오시는 것은 일찍이 계획하고 안배해 놓으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예언하신 기록도 있고요. 먼저 성경을 몇 구절 볼까요? 루카 복음서 17장 24절과 25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그리고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라는 부분도 있죠. 이 구절들에는 다 ‘인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인자’란 무슨 의미일까요? 모두 알다시피 예수님이 곧 인자, 즉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죠. 인자란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고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육신을 의미하는 거죠. 그러니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인자의 임함’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성육신으로 오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밖에도 성경에는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도, 인정하지도 않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그분을 정죄하고 저버린다는 거죠. 그러니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인자이시며, 그분이 곧 수많은 고난을 겪고 세상에 버림받게 되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만약 예수님이 영체로 다시 오신다면, 또 지난날 유대인의 모습으로 위엄을 갖추고 뭇사람 앞에 영광을 지니고 오신다면, 엎드려 경배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럼 그분이 어떻게 수많은 고난을 겪으실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실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육신을 입고 인자가 되시어 다시 오신다고 하는 겁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팡이의 교제를 들으며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교제가 맞아. 예수님이 영체로 다시 오신다면, 또 큰 영광을 지니고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사람들은 보자마자 엎드릴 거야. 그럼 누가 감히 그분을 저버릴 수 있겠어? 또 하느님이 어떻게 수많은 고난을 겪으실 수 있겠어? 육신이라야 고난을 겪을 수 있는 거지. 이건 하느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다는 말이잖아. 팡이의 교제는 합리적이고 이치에도 맞아! 예수님의 그 예언에 대해 종교계의 신학자들이며 영적 인물 그 누구도 제대로 설명한 사람은 없었어. 모두 그 구절은 하느님의 비밀이라서 사람이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지. 나는 오랜 세월 성경을 연구했지만, 이 예언을 볼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았어. 주님께서 영체로 다시 오신다면 왜 또 수많은 고난을 겪으셔야 하는지 말이야. 그런데 ‘동방번개’ 사람들이 이 예언의 비밀을 명확히 설명해 줄 줄은 꿈에도 몰랐네.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다니 다시 보게 되는걸! 설마 주님께서 정말 성육신으로 다시 오시는 걸까? 하지만 성경의 많은 예언이 주님은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말하고 있잖아.’ 그래서 저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성경의 예언에는 대부분 주님이 영체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때 인자의 표징이 하늘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땅의 모든 민족이 애곡하며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으로 구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태 24:30)라는 예수님 말씀도 있고, 또 ‘보세요, 그가 구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입니다.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며, 세상 모든 민족이 그로 인해 애곡할 것입니다.’(묵시 1:7)라는 묵시록의 예언도 있죠. 만약 하느님께서 육신을 입고 다시 오신다면, 이 예언들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거죠?”
팡이는 계속 교제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세에 구름을 타고 오셔서 공개적으로 만국 만민을 심판하신다고 분명히 예언하셨어요. 이 예언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겁니다. 다만, 먼저 성육신으로 은밀히 강림하신 후에 다시 구름을 타고 오셔서 공개적으로 만민에게 나타나실 뿐이죠. 다시 말해서, 주님이 오시는 방식은 두 가지라는 뜻입니다. 먼저 성육신으로 진리를 선포하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는 사역을 행하시며 이긴 자들을 만드시죠. 그 후에 대재난이 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은밀히 행하시는 사역은 마무리됩니다. 대재난이 지나가고 나면 하나님은 영광을 지니고 만민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 상선벌악하실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은밀히 사역하시는 기간에 그분을 대적하고 정죄하며 끝끝내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구원받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채 재난 속에 떨어져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되는 거죠. 이는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이라는 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팡이의 교제를 듣자 머릿속이 순간 환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은 공개적으로 구름을 타고 강림하시는 것 한 가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 먼저 성육신으로 은밀히 오시는 거였죠. 이는 하느님이 현현하시는 두 가지 방식이었습니다. 여태까지 저는 하느님이 나타나시는 한 가지 방식에 관해서만 알고 있었는데, 제가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동방번개’가 성경에서 예언한 비밀을 전부 밝혔으며, 또한 매우 합리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자 그것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커 그 도는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날 이후, 제 태도는 180도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교제를 듣고자 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도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에 저는 하느님이 성육신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고민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 천주교는 정통 교회로,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와 관련된 모든 진리를 갖추고 있어. 오직 천주교에서만 영혼을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였다가 만에 하나 잘못 믿은 거라면 하느님을 배반하는 게 되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확실히 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즈음, 위안융진(袁永進) 신부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를 무척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 역시 천주교 신자였고, 우리의 교의와 관점은 같았으니까요. 저는 그가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위안 신부를 만나 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위안융진은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신부님과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인 것이 예수님을 배반하는 일이 될까 봐 걱정했죠. 그런데 이 문제에서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이 같은 영인가, 한 분의 하나님이 사역하시는 것인가 하는 겁니다. 율법시대에 하느님 야훼께서 사역하셨고, 은혜시대에도 하느님 예수께서 사역을 행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다르고, 그분이 행하신 사역도 다르지만, 예수님과 야훼 하느님이 한 분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야훼 하느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같은 이름을 쓰는지를 보고 한 분의 하나님이 맞는지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이 진리를 선포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을 할 수 있는가를 보는 거죠. 진리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발할 수 있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행할 수 있다면 그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으로, 야훼 하느님, 천주 예수님과 같은 한 분의 하나님이신 겁니다. 우리는 모두 율법시대에 야훼 하느님께서 율법 계명을 반포해 인류의 삶을 인도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무엇이 죄인지, 어떻게 제물을 바치고 속죄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알게 됐죠. 하지만 율법시대 후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죄를 짓게 되었고, 더는 바칠 만한 속죄 제물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율법에 의해 정죄되고 죽음을 맞이할 위험에 처하게 된 거죠. 그러자 야훼 하느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보라, 동정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다.’(마태 1:23),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을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왕권이 메어질 것이며….’(이사 9:5)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시아가 강림하실 것이며,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어 인류를 구속하겠노라고 알려 주신 거죠. 그 후, 하느님은 약속대로 성육신하셔서 예수님이 되셨고, 율법 사역을 기초로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행하셨어요. 예수님은 수많은 진리를 선포하시고 인류에게 회개의 도를 주셨으며,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죠. 또 그렇게 하심으로써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셨죠. 그 후,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죄를 지은 후 예수님께 깊이 회개하기만 하면 하느님은 그들의 죄를 사면해 주셨어요. 그래서 사람은 율법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됐고, 하느님 앞에서 기도할 자격을 얻었으며, 하느님께 은혜와 평안을 얻을 수 있게 됐죠. 예수님의 사역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사람이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고 율법시대를 끝마쳤으며, 인류를 은혜시대로 이끌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곧 구세주이시자 메시아의 강림이심이 충분히 증명되죠. 예수님과 야훼 하느님은 같은 영이자 한 분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다.’(요한 14:11),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 10:30)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한편,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마친 후 사람은 주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지만, 내면의 죄짓는 본성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죄를 짓고 주님을 대적하는 등 죄의 결박에서 철저히 벗어나지 못했죠. 예를 들어,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기만행위를 하며 남을 질투하고 증오합니다. 권력과 이익을 두고 다투고요. 병고와 우환에 시달릴 때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하죠. 심지어는 하느님을 부인하고 배반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든지 죄의 노예이다. 노예는 그 집에서 살 수 없지만 아들은 영원히 살 수 있다.’(요한 8:34~3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마땅히 거룩해야 한다.’(1베드 1:16)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이 마지막에 원하시는 건 그분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여 성결케 된 사람들이죠. 지금 우리는 여전히 수시로 죄를 짓고 있으며, 더러움과 패괴로 점철돼 죄의 결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요. 그러니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전혀 없죠. 그래서 예수님이 반드시 다시 오실 거라고 여러 차례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말세에 진리를 선포하시고 심판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인류를 완전히 구원하셔서 죄악과 사탄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고,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알려 줄 것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속으로 이끄실 것이다.’(요한 16:12~13),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게 아니라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나를 거부하고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실 이가 있으니 바로 내가 한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요한 12:47~48)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첫째 서간 4장 17절에서도 ‘하느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죠. 예수님은 말세에 그분의 예언처럼 다시 육신을 입고 돌아오셨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죠. 그분은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기초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사람의 죄짓는 본성을 해결하고, 사람이 모든 진리에 진입하도록 인도하고 계시죠. 이는 예수님의 예언이 완벽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위안융진은 또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겨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 다시 성육신하여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인도했다. 그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얻고,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며, 진리와 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서문> 중에서) 위안융진은 계속 교제했습니다. “은혜시대에 예수님이 행하신 것은 구속 사역이었습니다. 사람의 죄를 사면하는 거였죠. 이것은 구원 사역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 사역이야말로 인류를 철저히 구원하는 사역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말세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패괴가 정결케 되고 죄에서 벗어나 더는 마귀의 미혹과 통제를 받지 않아야 철저히 구원받고, 하느님의 인도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세 전능하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 사역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잇는 것이자, 말세에 시대를 끝내는 사역이기도 하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돌아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은 같은 영, 한 분의 하나님이시죠.” 위안융진이 교제해 준 세 단계 사역이 성경 내용에도, 사실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깨닫자 마음속이 밝아졌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강림하셔서 말세 심판 사역을 행하시는 건 우리의 죄짓는 본성을 해결하고, 우리가 죄의 결박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죄 속에서 살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를 저지른 후에 고해성사를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서 또다시 죄를 저지르기를 반복하죠. 평범한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신부들마저도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건 전부 사실이었죠. 여태까지 저는 그 원인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분명 주님이 다시 오셔서 행하시는 사람을 철저히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이 필요한 거죠. 전능하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말세 심판 사역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그 후, 위안융진은 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하는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이 앞으로 나아간 것이자, 전체적인 6천 년 경륜에 포함된 사역이 앞으로 발전한 것이다. 은혜시대는 끝났으나, 하나님의 사역은 앞으로 나아가며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 이 단계의 사역을 은혜시대와 율법시대의 기초 위에서 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오늘날의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율법시대 사역의 발전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세 단계의 사역은 고리에 고리가 맞물리듯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번 단계 사역을 예수가 행한 사역의 기초 위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겠느냐? 예수의 사역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면 이번 단계에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앞 단계의 구속 사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므로 사역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발전한 것이며, 이에 따라 지금의 사역 또한 예전보다 더 발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단계의 사역은 율법시대의 기초 위에, 그리고 예수가 이룬 사역의 반석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렇게 한 단계씩 세워진 것이지, 이 단계 사역이 따로 새롭게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 단계의 사역을 종합해야 비로소 6천 년 경륜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이 단계의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을 기초로 하는 것이다. 이 두 사역에 연관성이 없다면, 어째서 이 단계 사역에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겠느냐? 어째서 사람의 죄를 담당하지 않고 곧바로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겠느냐?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사역을 하고 또한 이번에도 성령으로 잉태되어 온 것이 아니라면,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할 자격이 없다. 나는 예수와 하나이기에 친히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이 단계의 사역은 전부 앞 단계 사역의 기초 위에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한 걸음씩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와 나는 같은 영에서 왔다. 육신은 서로 관련이 없지만 영은 하나이며, 사역의 내용과 담당하는 사역이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서로 다른 모습의 육신을 취한 이유는 시대가 다르고, 사역의 필요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직분이 다르기에 가져온 사역도 다르고, 사람에게 보여 주는 성품 역시 다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이 보고 이해하는 것 역시 예전과 다르다. 이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차이이다. 두 육신은 성별도, 모습도 다르고, 같은 가문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며, 같은 시기에 태어난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들의 영은 하나이다. … 여호와의 영이 예수 영의 아버지가 아니고, 예수의 영 또한 여호와 영의 아들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결국 하나의 영이다.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과 예수 역시 그 어떤 혈연관계도 없다. 그러나 둘의 근원은 하나이다. 이는 둘의 영이 원래부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사역을 할 수 있고, 공의로운 심판의 사역도, 사람을 형벌하거나 저주하는 사역도 할 수 있으며, 마지막에는 세상을 멸하고 악인을 징벌하는 사역 또한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직접 하는 것 아니더냐?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이 아니더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 중에서) 위안융진은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느님이 행하신 세 단계 사역의 내용은 각기 다르고, 각 시대에 하느님이 불린 이름도 다르지만, 모두 같은 영이자 한 분의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입니다. 세 단계 사역은 한 단계 한 단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매 단계가 이전 단계 사역의 기초 위에 세워지며 조금씩 높아지고 깊이를 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람을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 하나님나라로 인도하죠.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역을 따르는 것입니다.” 제 마음은 더욱 환해졌습니다. 세 단계의 사역은 각기 긴말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단계별로 조금씩 높아지고 깊이를 더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 단계의 사역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죠. 이것이 바로 한 분의 하나님이 행하신 세 단계의 사역 아닐까요? 야훼 하느님, 예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근원은 모두 같습니다. 지난날 저는 늘 천주교가 정통 교회이며 오직 천주교에서만이 영혼을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천주교를 벗어나면 하느님을 배반하는 것이니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킨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구속 사역에 불과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는 일이지, 하느님을 배반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지금 제가 천주교에 계속 머물면서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만을 지킨다면 하느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럼 마지막에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겠죠. 여기까지 생각하자 전능하신 하나님이 행하신 심판 사역이 곧 하느님이 말세에 행하신 새로운 사역임을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위안융진은 이어서 하나님 이름의 의의와 성경의 실상, 하느님이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를 규정하시는 방법 등의 진리를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의 교제를 들으며 진심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 하느님을 믿어 왔지만, 이렇게 좋은 설교는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큰 수확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전까지 오랜 세월 하느님을 믿으면서 이해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됐죠!
위안융진 형제는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 주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밝혀 주신 수많은 진리의 비밀을 보며, 그분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보았습니다. 『이런 일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 각 사람이 먼저 알아야 할 진리는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어떠함을 나타낼 것이며,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혹은 참도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겉모습을 살피느라 그 본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무지몽매한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서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 예수님의 현현 사역인지 판단하려면 그분이 선포하신 말씀과 그분이 행하신 사역을 봐야 합니다. 만약 진리를 선포할 수 있고, 사람을 구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주님이 나타나 사역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를 통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나타나 말씀하고 사역하시는 게 아니라면 누구도 진리를 선포할 수 없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매일 시간을 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 저는 성육신의 비밀과 하나님 이름의 비밀,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의 차이,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 등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풍부하며 제 식견을 크게 넓혀 주었습니다. ‘만약 돌아오신 하느님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고 이렇게 많은 진리의 비밀을 밝혀 줄 수 있겠어? 하느님이 돌아오셔서 인류를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새로운 사역을 행하신 게 분명해.’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 바로 하느님이 행하신 새로운 사역임을,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돌아오신 주님이심을 마음속 깊이 확신했습니다. 저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예수님이 정말 돌아오셨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다니 너무나 복이 있다 싶었죠. 하지만 문득 형제자매들이 일 년 넘게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도 줄곧 대적하고 거부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이 형제자매를 통해 한 번, 또 한 번 제게 복음을 전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구하거나 살펴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며, 심지어는 교회를 봉쇄해 교우들이 참도를 구하고 살펴보지 못하게 가로막은 것을 생각하니 죄책감이 느껴졌습니다. 눈이 멀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전혀 갖지 않은 채 그분을 대적한 스스로가 증오스러웠죠. 지난날 예수님을 대적한 바리새인과 제가 무엇이 다를까요? 저는 오랜 세월 신학을 공부했고 또 줄곧 하느님을 섬겼으니, 하느님께 인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느님과 조우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죠. 저는 무척 불안했습니다. ‘하느님을 대적하고 이렇게 큰 죄를 지었으니 하느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죄를 인정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가 너무 교만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알지 못한 채 당신의 사역을 대적하고 판단했으며, 교회를 봉쇄하여 교우들이 참도를 구하거나 살펴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제약했습니다. 제 모든 행동은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께 징벌받아 마땅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며칠간, 저는 후회와 불안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자를 폭로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마다 저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죠. 또 제가 이미 정죄되었으며 하나님은 저를 구원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솔직하게 제 내적 상태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어 주었는데, 그 말씀은 제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정복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구원받을 기회가 여러 번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함에 있어 최대한 너그럽게 대한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최대한 관용을 베푼다. 사람이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돌아온다면, 즉 회개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구원받을 기회를 줄 것이다. 사람이 처음에 하나님을 거역할 때 하나님은 사람을 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구원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말로 구원의 여지가 없다면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단 한 사람도 쉽게 징벌하지 않는 것은 구원 가능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말씀으로 심판하고 말씀으로 깨우치고 인도할 뿐, 형벌의 막대기로 치지는 않는다.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마지막 단계 사역의 목적과 의의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은 후 한 형제가 교제해 주었습니다.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는 모두 패괴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우리의 관념에 맞지 않는 것을 볼 때면 거역하고 대적하며, 너무 쉽게 부정하고 정죄합니다. 하지만 진리를 깨달아 뉘우치고 올바른 길로 돌아오고, 하나님께 진실로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다시 주십니다. 고집불통으로 죽어도 회개하지 않으면서 목을 빳빳이 세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정죄받겠지만요. 그들은 마지막에 전부 징벌받을 대상이 될 것입니다.”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너무도 큰 악을 행했어. 그런데도 하나님은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신다니, 하나님의 사랑은 참으로 크구나! 앞으로 널리 복음을 전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겠어. 주님이 돌아오셨다는 이 기쁜 소식을 교우들에게 알려 모두가 그분의 음성을 듣고 하느님을 맞이할 수 있게 해야지.’ 그 후, 저는 교우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한 교우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증거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주교가 전화를 걸어 저를 소환했습니다. 교회당에 간 저는 먼저 80대의 연로한 원장을 만났습니다. 그는 제가 ‘동방번개’를 믿는 것을 주교가 격렬히 반대하고 있으니,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관대한 처분을 구하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는 이 일을 어떻게 직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저를 지켜 주시어 제게 믿음과 의지를 주십시오. 앞으로 어떤 환경이 닥치든 제가 참도에서 굳게 설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기도를 마치자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습니다. 잠시 후, 주교는 제게 ‘동방번개’를 믿느냐고 물었고,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크게 화를 냈습니다. “예전에 ‘동방번개’ 사람들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신부이고 전문적인 신학 교육을 받았으니 ‘동방번개’를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정말 그 신앙을 받아들였을 줄이야!” 저는 “저는 흐리멍덩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이미 반년 넘게 살펴봤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도 정말 많이 읽어 봤고요. 그 말씀들은 전부 진리입니다. 어떤 사람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돌아오신 예수님이십니다….”라고 말했지만, 주교는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참지 못하고 대꾸했습니다. “‘동방번개’가 돌아오신 주님이 맞는가 하는 것은 교황 성하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 성하는 신앙과 관련된 일에 있어 잘못된 판단을 내리실 리가 없죠. 성하께서 인정하시면 우리도 인정하는 거고, 성하께서 인정하지 않은 채 ‘동방번개’를 이단이라고 하시면 믿어선 안 되는 거예요!” 주교의 말을 들으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교황 역시 패괴된 한 사람에 불과해. 주교에게는 구하려는 마음이 없으니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도, 하느님이 행하신 새로운 사역을 알 수도 없을 테지. 주님을 믿는 사람이 주님의 음성을 듣지는 않고 시종일관 사람이 하는 말, 교황이 하는 말을 듣는데 그게 어떻게 주님을 믿는 거야? 그건 그냥 사람을 믿는 거 아니겠어?’ 저는 주교에게 몇 번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했지만, 그는 전혀 귀담아듣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동방번개’가 돌아오신 주님이 행하는 사역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는 한 믿어선 안 됩니다. 참도인지 아닌지는 성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저도 교황을 숭배하며, 교황은 주님을 대표한다고, 무슨 일이든 교황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관념이 달라졌죠. 그 말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단락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몇 개의 큰 종교로 나뉜다고는 하나 종교마다 교주와 통솔자가 있고, 따르는 사람 또한 지구상의 서로 다른 국가와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한 국가에도 여러 종교가 존재한다. 대국이든 소국이든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나라가 그러하지만, 세계 각지의 종교 종류가 얼마나 되든 결국 전 우주의 모든 사람은 한 분의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어떤 종교의 교주나 통솔자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인류를 이끄는 이는 어느 교주나 통솔자가 아니라 천지 만물과 인류를 창조한 창조주이다. 이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몇몇 큰 종교가 있지만, 그 종교가 얼마나 크든 모두 창조주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며, 그 어떤 종교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류의 발전과 사회의 교체, 자연 과학의 발전은 다 창조주의 안배를 떠날 수 없다. 이 사역들은 어느 한 교주가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주는 어느 종교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을 대표하지도, 천지 만물을 창조한 이를 대표하지도 못한다. 교주는 그 교파의 모든 인사를 통솔할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통솔할 수는 없다. 이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교주는 통솔자일 뿐이므로 하나님(창조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만물은 창조주의 수중에 있기에 마지막에는 모두 창조주의 수중으로 돌아올 것이고, 인류는 본디 하나님이 창조한 존재기에 어느 교파든 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올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 가운데 지극히 높은 분이므로 피조물 중의 최고 통치자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사람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한들 인류를 적합한 종착지로 인도할 수 없고, 누구도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눌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교황은 지도자에 불과합니다. 그 역시 창조된 인류로, 주님을 대표할 수 없죠. 반면, 하느님은 창조주로 천지 만물과 인류를 창조하고 사람들을 오늘날까지 이끄셨으며 인류의 운명을 주관하십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진리를 선포해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고 인류를 아름다운 종착지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이 사역은 어떤 피조물도, 종교계의 어떤 지도자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황의 지위가 무척 높기는 하나 그 역시 패괴된 사람입니다. 그는 진리를 선포할 수 없으며,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더더욱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주님을 대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새로운 사역을 행하실 때 구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마지막에 하느님께 버림받고 도태되겠죠. 지난날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의 지위는 무척 높았지만,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조금도 구하지 않은 채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해 하느님의 저주와 징벌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 후, 주교는 제게 다시는 ‘동방번개’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제가 말을 듣지 않자 그는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수도원장 직위를 내려놓고 수도원 장부를 인계하십시오. 그리고 지하실로 가서 잘 반성하세요.” 이렇게 빨리 제 직위를 거둘 줄 몰랐던 저는 좀 놀랐습니다. 그리고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근 몇 년 동안 수도원장 자리에 있었습니다. 제가 어디를 가든 신부와 수사들이 주변을 에워쌌고,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순종하고 따랐죠. 그런데 주교가 제 직위를 거뒀으니 그들도 더는 예전처럼 저를 존중하지 않을 게 분명했습니다. 수도원장과 신부의 직위는 제가 몇 년 동안 고생해서 얻은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정하자마자 더는 수도원장도, 신부도 아니게 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확신하기는 했지만, 천주교를 영영 떠나려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선택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더 깊이 생각해 본 후에 결정을 내리기로 하고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오(趙) 신부를 만났습니다. 그는 음란한 짓을 해서 지하실에서 반성하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지하실에 오게 되었다고 말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제가 저지른 죄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이건 한때의 연약함으로 인한 거죠. 하느님께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의 문제는 정말 심각하네요. 그건 신앙의 문제니까요. 잘못 믿었다간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말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삼일 후, 왕(王) 신부와 회계사가 지하실로 내려와 장부를 대조했습니다. 왕 신부는 경멸의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고, 장부에 관해 물어볼 때는 꼭 범죄자를 심문하는 듯했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울적하고 괴로워진 저는 풀이 죽은 채 침대 위에 누웠습니다. 수도원을 관리할 때, 모두가 제게 공손한 태도를 취하던 게 떠올랐죠. 접대 가정을 방문할 때면 신부며 수사들 모두 기쁘게 저를 맞이했습니다. 접대 가정에서는 과일을 가져오며 따뜻하게 대접해 주었고요. 신부와 수사들은 제가 더 많이 설교해 주었으면 했고, 평소 무슨 일에 관해 의논하든 제 결정을 기다렸습니다. 또 저는 수시로 신부나 수사들에게 업무를 배정해 주었는데, 그들은 언제나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수도원장 직위에서 해임되자마자 그들은 저를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신부는 더 이상 저를 존중하지 않았고요. 지하실에 있는 저를 신경 써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수도원장으로 있을 때와 차이가 너무 컸죠! 이게 바로 지위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인가 싶었습니다! 앞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면 더는 수도원장의 삶을 누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모든 지위와 대우가 사라질 거라는 생각에 실의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돌아오신 예수님이 분명했습니다. 만약 제가 지위나 누림을 위해 그분을 따르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저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제가 지위와 명예에 결박되거나 속박되지 않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를 수 있도록 저를 깨우치고 인도해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구했습니다. 기도를 마쳤을 때, 형제자매들이 읽어 준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더럽고 패괴된 사람들에게 사역하며 이들을 온전케 한다. 또한 성육신하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목양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 극도로 패괴된 사람들에게 크나큰 구원 사역과 정복 사역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큰 붉은 용의 심장부에 와서 가장 패괴된 사람들을 구원하고 새롭게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극심한 고통은 성육신하여 받는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크나큰 수모를 받은 것, 바로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감추어 평범한 인간이 된 것이다. 그는 육신을 입고 육신의 형상을 취함으로써 사람에게 그가 정상 인성의 생활을 하고, 정상 인성에 필요한 것을 갖추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는 하나님이 이미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하나님의 영은 육신에 실체화되었다. 그의 영은 더없이 높고 위대하지만 그는 평범한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의 형상을 취하여 그의 영이 하는 사역을 한다. 너희 각자의 자질, 식견, 이성, 인간성, 삶을 놓고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이런 사역을 받아들이거나,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희를 위해 이토록 큰 고통을 받게 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더할 나위 없이 높고 크다. 하나님은 더할 수 없이 높고, 사람은 비천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역한다. 성육신하여 사람에게 공급하고 말씀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함께 생활하기까지 한다. 자신을 한없이 낮춘 하나님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 중에서) 그렇습니다. 중국은 하나님을 가장 심각하게 대적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큰 붉은 용의 나라에 성육신하셔서 말씀하고 사역하시면서 공산당의 핍박과 비방을 마주했고, 종교계에 정죄받고 버림받으셨죠. 그렇게 지고하고 존귀하신 분이 크나큰 굴욕을 감내하고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것은 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더없이 낮추셨고, 또 더없이 사랑스러우십니다! 그런데 저는 지위의 복을 누리기만을 바라며 사람들의 지지와 숭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것을 확신했으면서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지 않았죠. 이는 참도를 알면서도 고의로 대적한 것 아닐까요?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닐까요? 여기까지 생각하자 자책과 부끄러움이 밀려들어 지위를 내려놓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제 사촌 동생이 지하실로 내려와 잘 반성하라며 권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교가 제 교적을 박탈할 거라고 했죠. 사촌 동생의 말에 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여태까지 그 수도원에서 교적을 박탈한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만약 제가 교회에서 출교된다면 제 주변 교우들과 모든 교구의 사람들이 저를 버릴 게 분명했습니다. 사촌 동생이 떠나고 며칠 동안 제 마음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습니다. 하느님을 믿은 후로 제가 교적에서 제명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이유로 주교가 저를 출교시킬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고요. 며칠 동안 저는 수없이 그 일을 되새겼습니다. 성경에서 주님의 말세 사역과 관련된 예언을 볼 때마다 형제자매들이 증거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이 떠올랐고, 제가 읽은 하나님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그 장면들은 영화처럼 제 머릿속에 펼쳐졌죠. 전능하신 하나님은 돌아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전능하신 하나님 따르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에서 출교될 거라고 생각하면 도저히 결심을 내리기 힘들었습니다.
얼마 후, 주교가 지하실로 내려와 반성을 좀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그는 매우 불쾌해했습니다. “신부님이 ‘동방번개’를 믿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대로 반성하세요. 진정으로 깨닫고 후회하며 앞으로는 ‘동방번개’에 등 돌리겠다고 하면 지난 잘못은 묻지 않겠습니다. 계속 수도원장 직무를 수행하게 해 드리죠.” 주교가 떠난 후 자오 신부도 권유했습니다. “진지하게 반성하고 인식하는 글을 쓰세요. 그러면 계속 수도원장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쓰지 않는다면 주교님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겁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교는 나한테 최후통첩을 했어. 아무래도 반성하고 인식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수도원장 직위를 박탈당할 것 같아. 그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출교되겠지.’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괴로워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따르기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지위를 포기하자니 내키지 않았죠. 저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는 지금 최후의 선택 앞에 서 있습니다. 부디 제가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저를 돕고 인도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쳤을 때, 형제자매들이 읽어 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일은 절대로 없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온 우주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현하러 오고, 땅의 하나님께 경배하러 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곳에서의 사역을 모두 중단했으니, 사람은 참도를 찾을 수밖에 없다. 예전에 먹을 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양식을 가지고 있던 요셉에게 가서 그를 경배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굶주림의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도를 찾을 수밖에 없다. 종교계 전반에는 심각한 기근이 들었다. 오직 오늘날의 하나님만이 생수의 원천이고 사람에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을 베풀어 주기에 모두가 그에게 의탁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천년하나님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 중에서) 그렇습니다. 지금 각지의 교회는 황폐해져 성령 역사를 잃었습니다. 주교와 신부의 설교에는 빛 비춤이 없고요. 그저 신학 이론과 종교적 이치만을 가르칠 뿐입니다. 게다가 틀에 박힌 듯 종교적 의식과 인위적으로 만든 규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지켜 봤자 사람의 생명에 조금의 공급도,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날마다 죄를 짓고 그 죄를 고하며, 그 후에 다시 죄를 짓기를 반복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죄짓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죠. 심지어는 성직자들조차 제물을 훔쳐먹 부적절한 남녀 관계를 맺는 등 심각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제 앞에 있는 자오 신부처럼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도 부끄러운 줄 모를 정도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지금의 천주교는 그야말로 썩은 물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다릅니다. 예배를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할 때마다 진리를 깨닫게 되고, 생명에 공급과 도움을 얻게 되니까요. 만약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이 말세에 선포하신 진리를 얻지 못한다면, 또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날마다 죄 속에서 살면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종교계에 남아 사람들의 지지를 얻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말세에 하나님나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도에 순종해야 한다.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생명의 공급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복받을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말세에 그리스도가 온 이유는 그를 진심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이 사역은 옛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로 들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사역이며, 새 시대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네가 인정하지 않고 정죄하거나 모독하거나 핍박을 가한다면, 반드시 영원히 불태워질 것이며,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이 그리스도는 성령의 발현이자 하나님의 발현이며, 땅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이다. 그러므로 말세 그리스도가 행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다. 성령을 모독한 사람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명심해라. 네가 말세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저버린다면 아무도 너 대신 그 대가를 치러 주지 못할 것이다. 그때부터 너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더는 없을 것이고, 나아가 만회하고자 해도 다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네가 대적하고 저버린 이는 보잘것없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너는 이런 결과를 알고 있느냐? 너는 작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권하노니, 진리 앞에서 거들먹거리지 말고, 사실을 외면한 채 함부로 말하지도 말라. 너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너를 소생시켜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보게 할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리와 길, 생명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이 진리는 우리가 정결케 되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죠.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이 진리들을 받아들여 패괴 성품이 변화되는 길을 얻게 된 것은 하느님의 은혜이자 높여 주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 천주교에 남는 것을 선택해 지위와 누림을 탐하며 하느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거부한다면, 주님께 영원히 정죄받고 구원받을 기회를 철저히 잃게 될 것입니다. 지난날의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매우 높은 지위가 있어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분의 설교에 권병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지위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죠. 그 결과 마지막에 하느님의 영원한 저주와 징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리새인의 전철을 밟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따르게 되면서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며 죄짓는 근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또 패괴가 정결케 되는 길을 알게 됐고요. 이 길을 따라가야만 구원받고 주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높은 지위에 있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종교계에는 더 이상 미련을 가질 만한 게 없으며,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 또한 없다는 것을 완벽하게 깨달았죠. 그래서 저는 신부와 수도원장 직위를 버리고 결연히 천주교를 떠났습니다.
지하실에 있던 시간 동안 심적으로 괴로웠지만, 하나님 말씀의 인도 덕분에 지위는 제가 추구해야 할 것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눈앞의 길 역시 더 분명해졌고요. 그전까지 저는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을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배운 그 신학 이론들이 전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자 상상이며, 진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죠. 그것은 견고한 보루처럼 늘 하나님을 규정하고 그분의 사역을 대적하게 했습니다. 또 저를 점점 더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고집스럽게 만들었고요. 저에게는 겸손한 태도로 추구하는 마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었다면 그분의 구원을 얻을 수도 없었겠죠! 제가 지위와 누림에 연연하며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하나님은 몇 번이나 말씀으로 저를 깨우치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역을 따르도록 이끌어 주셨죠. 하나님이 이렇게 돌봐 주고 붙들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영원히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로 실제적이며 진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