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부모라 해도 분별해야 한다

한국 신처(心澈)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저는 부모님을 하나님 믿으며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제 기억 속 부모님은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고, 이를 위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엄마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포기하고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엄마는 지식도 있고, 특기도 있었고, 수고하고 대가를 치를 줄도 알아서 계속 교회에서 중요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후에는 유다가 저희 집을 밀고 해서, 중국 공산당의 추적과 체포를 피하기 위해 부모님은 어린 저를 데리고 사방으로 도망을 다녔습니다. 두 분은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본분을 이행했고, 게다가 생활이 소박해서 평상시 모습도 경건하고 영적인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형제자매들로부터 아빠 엄마는 인성이 좋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분들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핍박 때문에 저는 열 살 되던 해에 아빠 엄마와 헤어졌습니다. 비록 그 뒤로 내내 몇 번 만나지 못했지만 두 분의 훌륭한 이미지는 계속 제 마음속에 남아 있었죠. 저는 두 분을 무척 우러러보고 숭배했습니다. 두 분은 신심도 크고, 이렇게 버리고 헌신할 수 있으니 진리를 추구하고, 인성이 좋은 분들임에 틀림없고, 하나님도 인정하실 거라고 생각했죠. 심지어 그런 사람들이 바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한테 이런 부모님이 있다는 생각만 하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후 중국 공산당의 핍박 때문에 저희는 차례로 해외로 도피했습니다. 얼마 후 부모님과 연락이 닿았는데, 두 분은 해외에서도 여전히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죠. 특히 엄마가 여러 가지 사역에서 책임자를 맡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저는 엄마를 더욱 우러러보게 됐습니다. 부모님이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으며 많은 일을 체험하고 지금도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고 계시니, 진리를 추구하고 분량이 있는 분들이 분명하고, 앞으로 내게 어떤 내적 상태나 어려움이 생겨도 언제든지 두 분을 찾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부모님과 가끔씩 각자의 최근 내적 상태를 교류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아빠가 지금 기술이 그리 필요하지 않은 사역을 하고 있어 늘 본분을 바꿨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 공교롭게도 저 역시 당시 그런 내적 상태로 지내던 참이었습니다. 저희는 서로 교제하고 하나님 말씀을 보내 주며 같이 진입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제가 본분을 따지면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명예와 이익이 있으면 기꺼이 이행하려 하고, 명예와 이익을 얻을 수 없으면 건성으로 이행했죠.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한 태도였고, 하나님께 진심도 없었습니다. 저 자신을 어느 정도 증오하고 혐오하게 되면서, 저는 그런 내적 상태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잘못된 상태로 지내면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힘을 내지 못했죠. 저는 속으로 조금 의아했습니다. ‘이치대로라면, 아빠는 십 년 넘게 하나님을 믿어서 당연히 분량이 있을 텐데 어째서 본분을 따지면서 대하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까?’ 또 생각해 보니, 평소에 어려운 점이나 문제점이 있어서 부모님께 구하면 두 분은 비록 저에게 하나님 말씀들을 보내 주고 본인들의 깨달음을 교제해 주지만, 그 교제가 제 문제를 그렇게 잘 해결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어렴풋이나마 두 분이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진리를 잘 깨달은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형제자매들이 간증문을 써서 하나님을 증거할 때 저는 부모님이 하나님을 오래 믿었으니 분명 체험도 많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엄마는 전에 적그리스도에게 억압을 받고 실수로 출교되었지만, 그래도 힘닿는 대로 복음을 전했어. 그리고 다시 교회에 받아들여진 후에는 어느 방면에서 본분을 이행하든 열심히 대가를 치른 데다가 몇 번씩 교체되고 조정된 적도 있으니 분명 체험도 풍부할 거야. 얼른 그 일들을 간증문으로 써서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해야겠다!’ 저는 엄마에게 얼른 간증문을 쓰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회피하면서 본인도 쓰고 싶지만, 본분이 바빠서 마음을 차분히 하고 쓸 시간이 없다고만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또 몇 번을 재촉했는데도 끝내 글을 쓰지 않더군요. 한번은 엄마가 저에게 글을 쓰고 싶은데, 갈피가 잡히지 않아서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저와 얘기를 좀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엄마가 그동안 어떻게 체험해 왔는지 들어 볼 생각에 무척 기대가 되었죠. 그런데 정말 뜻밖에도, 엄마는 본인이 어떤 일을 겪고 어떤 패괴를 드러냈는지는 다 얘기했지만, 정작 진실한 인식은 얼마 없고, 오히려 소극적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말은 많았습니다. 과거의 체험을 회상하면서 그것을 고통스럽게만 생각하는 것이, 마치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것만 같았죠. 정작 엄마가 거둔 참된 수확이 과연 어떤 건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한참 통화하고 났더니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었죠. 만약 정말로 인식과 수확이 있다면, 당시 얼마나 고통스럽고 소극적이었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뜻을 깨닫기만 하면, 자신에 대해서나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어느 정도 생기고, 결국 달콤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요. 그런데 엄마는 지금 그 일들을 얘기하면서 아직도 고통스러워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자신에 대한 인식도 감성적이고, 또 실제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엄마에게 진실한 체험이 없다는 뜻밖에 더 되겠어요? 저는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엄마가 간증문을 써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을 항상 회피하고 시간이 없다고 했던 것은 사실 핑계였습니다. 핵심은, 진리를 얻지 못하고, 진실한 수확을 거두지 못해서 체험 간증을 얘기할 수 없었던 것이죠. 아빠의 경우, 비록 본인은 글 쓰는 훈련을 하고 싶어 했지만, 아빠가 쓴 글은 일에 대한 서술이 많고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과, 체험 후 얻은 수확은 얼마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빠가 하나님을 믿은 기간과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저는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얼마나 관록이 있는지, 얼마나 오래 사역했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며, 경험이 얼마나 풍부한지에 달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너의 추구에 결실이 있는지에 달렸다. 구원받는 사람은 꽃이 흐드러지고 이파리가 무성하더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아니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네가 오랜 세월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한들 그게 어쨌단 말이냐? 너의 증거는 어디에 있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실행 7> 중에서) 저는 갑자기 정신이 좀 들었습니다. ‘그래, 하나님을 얼마 동안 믿고, 사역을 얼마나 하고, 일을 얼마나 겪었는지를 떠나, 겪고 난 뒤에도 진실한 수확이 없고, 진리를 얻지 못해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으면, 그건 생명이 없는 거야. 이런 사람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구원받지 못해.’ 이 부분을 깨달은 순간 온갖 기분이 다 들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진리를 깨닫고’, ‘분량이 있는’ 부모님의 이미지가 처음으로 무너진 것입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두 분은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 그렇게 많이 버리고 헌신했는데도 어째서 진리를 얻지 못했을까요? 저는 견딜 수 없어서 남몰래 한바탕 울었습니다. 그 후로는 비록 전처럼 두 분을 우러러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동안 계속 버리고 헌신하셨다는 것은 최소한 두 분이 인성이 훌륭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말이고, 만약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면서 지금부터라도 진리를 추구하면 그래도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발생한 일로 두 분에 대한 제 생각이 다시 한번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아빠가 본분을 계속 건성으로 이행하고 쉬운 일만 골라서 하고 성과도 좋지 않아서 교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인성이 안 좋고, 교회 이익도 지키지 않고, 성품도 아주 교만하고, 본분에서도 좋은 역할을 못해서 역시 교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요. 저는 정말 놀랐고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드러나서 도태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두 분이 인성이 안 좋다고? 전에는 부모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두 분 인성이 아주 훌륭하다고 칭찬했어. 인성이 안 좋으면 어떻게 그렇게 버리고 헌신할 수 있겠어?’ 무척 심란하고, 온갖 근심 걱정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빠 엄마는 지금 어떤지 모르겠네. 고통스럽고 괴롭지 않을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어둡고 가라앉았습니다. 비록 교회의 이런 안배가 분명 원칙에 근거한 적절한 처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속으로는 반발심이 들었죠. ‘그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아빠 엄마는 고생도 많이 하시고, 중국 공산당에게 박해받아 사방으로 숨어 다니셨어.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오래 떨어져 지내면서 하나님 사역이 끝났을 때 하나님나라에서 다시 만나기를 얼마나 바랐는데, 지금은…. 힘들게 여기까지 오시면서 사역도 그렇게 많이 하신 두 분을, 어쩜 그렇게 쉽게 교체하지?’ 저는 생각할수록 괴로워서 끝내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그 며칠은 내내 한숨이 절로 나오고 본분을 이행할 의욕도 없었습니다. 부모님 일만 생각하면 괴로워서 사람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갑자기 추구할 동력이 사라져 버린 듯했죠.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됐음을 알고 부모님이 교체된 것은 분명 적절했다고, 하나님은 공의롭다고, 이성적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속으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참지 못해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는 교회 사역에 별로 공헌도 하지 않고, 이행하는 본분도 보잘것없어도 본분을 잘만 이행하는데, 왜 우리 부모님은 교체되었나요? 두 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더라도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하셨잖아요. 두 분이 몇 년씩 고생하고 사역한 것을 봐서라도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되나요?’ 저도 제 이런 내적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강퍅한 마음에 진리를 구할 의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당신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깨우치고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한 자매에게 제 내적 상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구했는데, 얘기하다가 결국 못 참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매가 교제했죠. “자매님 부모님은 제명되거나 출교된 게 아니라 단지 교체된 것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괴로워하세요? 여기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봐야 해요. 이건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거라고요.” 자매의 말에 정신이 조금 들었습니다. ‘그래, 하나님은 교체된 것이 곧 드러나고 도태되는 거라고 하신 적이 없어. 많은 형제자매들이 교체된 뒤에야 스스로를 반성하고 뉘우치기 시작해서 진실로 회개하고 변화하고 난 뒤에 다시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했지. 게다가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고 해서 꼭 구원받는다는 보장도 없잖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 눈에는 역시 도태될 대상이야. 사실 부모님이 교체된 것도 하나님이 반성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 건데 난 계속 교체되면 드러나 도태되는 거라고만 생각했네. 이 관점은 진리에 맞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이 일만 생각하면 괴롭고, 부모님을 너무 심하게 처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일수록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진리를 구해야 한다. 네가 이해하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가 필요하며,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기에 더 많은 하나님의 사역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고심이다. 네가 하나님 앞에 자주 나아올수록 네 마음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 네 마음이 하나님과 가까울수록 네 마음속에 하나님이 머물지 않겠느냐?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머물수록 사람이 추구하는 바와 걷는 길, 그리고 사람 내면의 상태가 점점 좋아질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평정심을 조금 되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일수록 하나님께 경외심을 가지고 진리를 구해야 하고, 그러면 내적 상태가 점점 좋아진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교체된 일을 생각해 봤습니다. 저도 교회는 분명 적절하게 처리했고, 원망하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점을, 이치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그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벽이 해결되지 않아서 매번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속상하고 괴로웠죠.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일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진리를 구해야지, 규례를 지키며 자신을 억제하고 얼렁뚱땅 넘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부모님을 그리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버리고 헌신하는, 두 분의 표면적인 모습만 보고, 두 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만 들었을 뿐이죠. 이런 것들은 협소하고 단편적인 부분입니다. 지금 두 분과 함께하는 형제자매들을 통해 많이 알아보고, 두 분에 대한 그 형제자매들의 평가를 들어야지, 정에 이끌려서 일을 바라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이 본분을 이행하는 구체적인 모습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이 쓴 글과 두 분에 대한 형제자매들의 평가를 살펴보았죠. 형제자매들에 의하면 아빠는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고 쉬운 일만 하려고 했지 육이 고생스러운 일은 잘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비록 특기는 있지만, 본분을 이행할 때는 언제나 수동적이고 성과도 좋지 않았죠. 그동안 아빠는 여러 번 교체되고 조정되어 본분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모두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복음을 전할 때도 역시 건성으로 대하며 쉬운 일만 했고, 책임자가 감독을 해야 일을 좀 하곤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본분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지적하면 아빠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항상 따지거나 변명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몸이 좋지 않아서, 지금 이행하는 본분은 본인이 잘하는 일이 아니라서,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본인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본분에 줄곧 뚜렷한 성과가 없어서 교체된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본분을 아주 열정적으로 이행했고, 기꺼이 고생하고 대가도 치렀지만, 겉보기에만 그럴싸하고 실제로는 건성으로 본분을 대할 때가 많았고, 실제 사역도 하지 않아서 사역 진도를 지연시켰습니다. 비록 사역은 많이 했지만, 문제도 많이 일으켜서 하나님 집 이익에 커다란 손해를 입혔고요. 또 언제나 자신을 보전하면서 개인의 이익만 지키고, 교회 이익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고, 엄마가 가는 게 가장 좋은데도 남의 눈 밖에 나는 게 싫어서 그 일을 남에게 미루는 바람에 교회 사역에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또 엄마가 성품이 무척 교만하고 고집이 세다고 평가했습니다. 엄마는 본인의 경험을 내세워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했고, 남들 의견도 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본인 수중의 일은 남들이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 사역을 투명하게 하지도 않아서 엄마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하는지 형제자매들이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죠. 또한 형제자매가 한 일이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혈기를 드러내고 화를 내며 사람을 꾸짖는 바람에 형제자매들이 다들 엄마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는 너무 눈치가 보인 나머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자매님, 제가 자질이 너무 부족해서 같이 협력하면서 자매님을 고생시키네요. 죄송해요!” 또 어떤 형제자매는 본분만 아니라면 그런 사람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안고 있는 문제를 형제자매들이 지적해 줘도 엄마는 받아들이기 싫어하고, 엄마의 사역을 감독하는 자매에게도 커다란 편견이 있어서 무척 반발하고, 늘 다른 사람이 자기를 괴롭히고 공평하게 대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평가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낸 것이 이런 것이라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죠.

그 뒤로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한 사람의 인성에 갖춰야 할 것은 바로 양심과 이성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다. 양심과 정상 인성의 이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개괄적으로 말하면, 인성이 없는 사람, 인성이 몹시 나쁜 사람이다. 자세히 말하면, 이런 사람에게 인성을 상실한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느냐? 이 부류의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분석해 보자.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이기적이고 비열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은 일할 때 건성으로 하고, 자기와 무관한 일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하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않는다. 본분 이행과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아무런 부담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이 훌륭한 인성과 진심, 양심과 이성을 갖고 있을 때 이것들은 공허하거나 막연한 것이 아니며, 만질 수 없거나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실제적인 것들이다. 어떤 사람을 위대하고 완벽하다고 할 때, 너는 그것을 볼 수 있느냐? 네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완벽함과 위대함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이야기할 때, 너는 그의 행위를 볼 수 있고 대조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을 정직하고 진심이 있다고 할 때, 너는 그의 행위를 볼 수 있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을 간사하고 교활하며 비열하다고 할 때, 네가 볼 수 있지 않겠느냐? 너는 눈을 감고서도, 그의 말과 행위를 통해 그 사람의 인성이 정상적인지 비열한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인성의 좋고 나쁨’이라는 이 말은 공허한 표현이 아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함, 교활하고 간사함,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을 예로 들어 보자.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과 접할 때 체득할 수 있는 것들로 인성의 부정적인 부분이다. 그렇다면 인성에서 갖추어야 할 긍정적인 부분, 예를 들어 정직과 진리에 대한 사랑도 사람의 일상생활 속에서 체득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성령의 깨우침이 있는지, 하나님의 인도를 얻을 수 있는지, 성령 역사가 있는지, 모두 알 수 있지 않겠느냐? 모두 분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 누군가 성령의 깨우침을 얻고, 하나님의 인도를 얻어 매사에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겠느냐? 반드시 정직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매사에 진리를 구할 수 있고, 진리를 깨달으면 바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춰야 성령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으며, 쉽게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정직한 사람이 아니고, 마음속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성령 역사를 얻기 힘들다. 설령 그에게 진리를 교제해 주더라도 아무 결실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정직한 사람인지 어떻게 볼 수 있느냐? 거짓말과 기만이 없는지도 봐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 집에서는 줄곧 사람을 도태시킨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도태되었다. 그들은 정직한 사람이 아니고, 모두 간사한 사람이자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조금도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몇 년을 믿었든 진리를 깨달아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며, 진정한 변화도 없다. 그러니 그들이 도태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어떤 사람을 접할 때 무엇을 먼저 봐야 하느냐? 그의 언행에서 그 사람이 정직한 사람인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가 정직한 사람인지,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정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의 본질을 기본적으로 꿰뚫어 본 것이다. 그 사람이 말을 아주 잘해서 입으로는 듣기 좋은 말을 하지만 실제적인 일은 하지 않는데, 실제적인 일을 할 때면 다른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한다면, 이것은 어떤 인성이냐?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인성이 없습니다.) 인성이 없는 사람이 진리를 얻기 쉬우냐? 진리를 얻기 어렵다. … 그가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그가 살아 내는 것과 드러내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가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그의 내적 상태는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그가 자신의 명리를 위하는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뛰어넘고, 하나님 집의 이익과 하나님을 헤아리는 마음을 능가한다면, 이런 사람이 인성을 지닌 사람이겠느냐? 이는 인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그의 태도는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얻기가 몹시 힘들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인성의 좋고 나쁨을 가늠하려면 그가 본분을 대하고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성이 좋은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하나님 마음을 헤아립니다. 본분을 대할 때도 책임감이 있고, 일 처리도 신뢰가 가고, 교회 이익을 지킬 줄 압니다. 반면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은 매우 이기적이고 비열해서 오로지 개인의 이익만 생각합니다.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며 잔꾀를 부리고, 말만 앞서고 실제적인 일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지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교회 이익을 내팽개치고, 교회 이익을 팔아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부모님 모습에 대조해 보니 확실히 두 분은 제가 생각하던, 인성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아빠만 봐도 그렇죠. 아빠는 비록 겉보기에는 버리고 헌신하지만 본분에 부담이 없고, 언제나 건성으로 본분을 대하고, 쉬운 일만 골라서 했습니다. 대가를 치러야 할 때는 온갖 이유를 대며 육을 보살피고 교회 사역의 필요는 생각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항상 누군가 감독하고 재촉해야 하는 등 무척 수동적이었죠. 엄마는 어땠나요? 매일 바쁘게 움직이고, 본분을 위해서 수고도 하고 대가도 치를 줄 알고, 사역도 좀 한 것 같지만, 엄마는 본분 이행에서 이렇다 할 실제적인 성과도 별로 없었고, 그럴싸한 일만 했습니다. 보기에는 열정적이고 효율을 중시한 것 같지만, 사실 당장의 성공과 이익에만 급급하고, 오직 자기 명예와 지위만을 위한 것이었죠. 엄마는 사역을 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고, 교회 이익에도 커다란 손해를 입혔습니다. 교회 이익을 지키는 것과 관계된 일에서 엄마는 자신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기어이 다른 사람을 보내 처리하게 했습니다. 엄마가 중요한 일에서 전혀 교회 이익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과 한마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엄마가 겉보기에 사역을 많이 하고 대가를 많이 치른 것만 봤지 엄마가 대가를 치른 속셈이 무엇인지, 엄마가 한 사역이 과연 성과가 있는지, 정말 교회를 위해 공헌했는지, 아니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았는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이제서야 한 사람의 인성이 좋고 나쁨을 가늠할 때는 표면적으로 얼마나 대가를 치르고 헌신했는가를 볼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일을 하는 의도가 바른지 그렇지 않은지, 진심으로 교회 사역을 생각했는지 아니면 자기 명예와 이익, 지위를 위해 일했는지를 보는 게 관건임을 알았습니다. 진정으로 인성이 좋은 사람은 설령 진리를 깨닫지 못했더라도 마음이 바르고, 양심적으로 일하고, 하나님 집과 한마음이고, 일이 닥쳤을 때 교회 이익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일을 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은 표면적으로 아무리 고생하고 힘들게 일하며 듣기 좋은 말을 할지라도 실제로 일을 할 때는 언제나 건성으로 대하고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고려하고 계산할 뿐, 결코 진심으로 교회 이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역에 구멍이 많아서 실제적인 성과가 별로 없습니다. 아마 일시적으로는 은사와 경험에 기대어 몇 가지 일을 해낼 수도 있겠지만 멀리 보았을 때 이런 사람을 쓰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인성과 인품이 올바르지 않아서 신뢰할 가치가 없고, 실제적인 일을 하지 않아서 언제 교회 사역에 손해를 입힐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인식하고 난 뒤, 저는 부모님 인성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두 분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토록 버리고 헌신했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 조건도 내려놓고 근 이십 년을 고생하며 지금까지 계속 본분을 이행해 왔으니 설령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최소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인성이 좋은 분들이라고요. 사실, 표면적으로 고생할 수 있는 사람은 너무 많지만 고생하는 의도와 본질은 모두가 다릅니다. 저는 두 분이 고생하고 헌신하는 속셈이 무엇인지, 두 분이 본분을 이행해서 과연 실제적인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보지 않고, 그저 표면적으로 버리고 헌신하는 모습만 보고 두 분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인성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바라보는 제 관점은 정말 너무나 얄팍하고 어리석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희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비록 공산당에게 핍박받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고통도 있었지만, 하나님 은혜도 많이 누렸습니다. 하나님은 저희에게 각 방면의 진리를 베풀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것들도 풍부하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정말 양심과 이성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해서 하나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을 오래 믿고 도리는 많이 알지만 본분에 대해 최소한 가져야 할 부담과 책임감이 없었고, 최소한 지켜야 할 교회 이익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교회에서 두 분의 행동을 근거로 당사자를 교체한 것이고,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렇게 처리한 것은 교회 사역에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두 분 자신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만약 두 분이 이번 좌절과 실패를 계기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고, 하나님께 뉘우치고, 본인이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바로잡는다면 이는 본인들 입장에서는 구원이고, 두 분이 하나님 믿는 길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만약 두 분이 여전히 과거와 마찬가지로 전혀 반성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말 드러나 도태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길을 가야 하는지는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라 그 누구도 누구를 도와줄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길 … 6> 중에서)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제가 알게 된 문제를 두 분에게 짚어 주고 최선을 다해 두 분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두 분이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제가 걱정하고 우려할 일이 아니었죠. 이 점을 깨닫자 마음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더 이상 두 분 때문에 괴롭고 마음 아파하지 않았고, 부모님 일을 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또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나라에는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더러운 사람이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오랫동안 많은 사역을 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더럽기 짝이 없다면, 네가 내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하늘의 이치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나는 나에게 잘 보이려고 아첨하는 그 어떤 이에게도 특혜를 준 적이 없다. 이것은 아무도 깰 수 없는 하늘의 규칙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징벌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기준은 바로 진리의 유무, 성품의 변화 여부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해 사역하시고, 많고 많은 진리를 선포하심으로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해서 구원받는 길을 아주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교제해 주셨습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사람은 하나님께 구원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오래 믿고도 그저 표면적으로 버리고 헌신하는 것에 만족하고, 전혀 진리를 실행해서 자신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이것은 결코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 아무리 많이 버리고 헌신했든, 아무리 오래 힘들게 사역했든, 아무리 중요한 본분을 이행했든, 결국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하고, 패괴 성품이 전혀 변화하지 않으며,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할 수 있다면,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온갖 악행을 저지른 사람 역시 하나님께 징벌받게 될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결정되는 일입니다. 여기까지 묵상한 뒤, 저는 부모님이 왜 지금 이 지경까지 왔는지 더욱 확실히 이해가 됐습니다. 비록 가정도 직장도 버리고 고생하며 사역했지만, 두 분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본분도 건성으로, 제멋대로 이행하고, 하나님 말씀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지도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본인들의 문제를 지적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불복하고 따지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다른 사람들의 기준이 너무 높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두 분이 진리를 싫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두 분은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고도 패괴 성품에 별로 변화가 없고, 게다가 하나님 믿은 햇수가 늘고 사역 밑천이 늘수록 교만한 성품도 그만큼 심각해졌던 것이죠. 두 분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서 알 수 있듯, 두 분이 치른 대가와 헌신은 진리 생명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두 분이 했던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거래였고, 두 분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인성이 어떤지, 구원받을 수 있는지 등은 모두 그 사람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로써 가늠해야 합니다. 표면적으로 얼마나 버리고 헌신했는지, 사역을 얼마나 했는지, 어떤 본분을 했는지를 가지고 가늠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비록 교회를 위해 공헌을 많이 하지도 않고, 남들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본분이었지만 마음과 힘을 다해 착실하게 이행했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구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반성하는 데 집중했고, 그 부분을 인식한 후에는 뉘우치고, 진리를 실행하고, 패괴 성품도 조금 변화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 굳게 설 수 있습니다. 묵상할수록 하나님이 정말 공의롭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단지 제가 구원에 대해 늘 요행 심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과거에 저는 늘 표면적으로 많이 버리고 헌신한 사람은 공로가 없더라도 나름 고생했기에 하나님이 절대 버리고 도태시키지 않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진실로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사람의 정이나 관념 상상을 근거로 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진리 기준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평가하고 대하십니다. 그 사람이 전에 하나님 집에서 중용하는 대상이었다 할지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점을 깨닫고 마음이 훨씬 밝아지고,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언젠가 네가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되면 네 어머니, 네 부모가 더는 제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그들 역시 패괴된 인류 중 하나이며 패괴 성품은 모두 같다고, 그들은 그저 너와 혈연관계가 있을 뿐 다른 차이는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이다. 너는 더 이상 가족의 시선으로나 육적 관계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편에 서서 그들을 대할 것이다. 주로 그들의 어떤 면을 봐야 하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봐야 하고, 세상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봐야 하며, 일을 처리하는 그들의 관점을 봐야 한다. 가장 핵심은 하나님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봐야 한다. 이 몇 가지를 분명히 보게 되면 그들이 과연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분간할 수 있다. 언젠가 그들 또한 너처럼 패괴 성품을 지닌 사람임을 깨닫는다면, 나아가 그들이 네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마음씨가 선량하고 너를 진실로 사랑하는 게 아님을, 너를 진리로, 인생의 바른길로 절대 이끌어 주지 못함을 깨닫는다면, 또 그들이 너한테 행한 것들이 너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는 데 조금의 가치도 없었음을 깨닫는다면, 그 외에 그들의 많은 행동과 관점이 진리에 어긋난 육적인 것임을, 그것이 경멸스럽고 역겨우며 증오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너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더는 그들을 그리워하거나 보고 싶거나 염려하거나 떠나지 못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부모로서의 사명을 완수했으니 이제 그들을 가장 가까운 사람, 우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감정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으며, 감정과 혈육의 정에서 진정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진실로 변화할 수 있다> 중에서), 『많은 사람이 감정 때문에 무의미한 고통을 수없이 받는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전부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고통이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겠느냐? 사람은 늘 감정에 얽매여 진리를 실행하거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에 얽매이는 것은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데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생명 진입에도 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감정에 얽매이는 고통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 무의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진리를 깨닫는 한편, 그런 육적인 관계의 본질을 간파하고 밝히 알아야 한다. 그러면 육적인 감정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사탄은 혈육의 정을 이용해 사람을 속박하고 결박하려 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속아 넘어가기 쉽다. 많은 경우 부모나 가족을 위해 괴로워하고 눈물 흘리며 고통받고 대가를 치르는데, 이는 어리석고 무지한 행동이다. 자신이 자초한 일로, 사서 고생이다. 그런 고통은 아무 가치도 없다. 그것은 그야말로 헛수고로, 하나님께 전혀 기억되지 않는다. 생고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아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되면, 너는 거기에서 해방되어 그 고통들을 감내한 것이 무지하고 어리석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누구를 원망할 수 없고 그저 눈먼 자신, 어리석은 자신,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을 밝히 알지 못한 자신을 원망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진실로 변화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한동안 제가 흘렸던 눈물, 제가 받았던 부질없는 고통은 모두 정에 너무 얽매여 일을 꿰뚫어 볼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부모님에 대해 분별이 없어서 항상 두 분을 아주 훌륭하고 대단하게 여기며 제 모델, 제가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심지어 두 분이 진리를 깨달았기에 구원에서 멀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근거로 두 분을 바라보고 나서야 비로소 제 관점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부모님이 대체 어떤 분들인지 분별이 생겼습니다. 두 분에게 제가 납득할 수 없고, 심지어 경멸할 만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저는 더 이상 속으로 두 분을 숭배하고 우러러보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두 분 때문에 고통받고 눈물 흘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두 분을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환경에서 드러난 모습을 통해 저는 제가 정에 너무 얽매여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육과 정에 얽매여 살 때는 오로지 부모님이 그 일을 만나 고통스럽고 괴롭지 않을지만 생각했고, 속으로 교회의 처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크게 반발하고 대항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고 원망했죠. 지금 저는 하나님이 왜 사람 사이의 정을 증오하는지 이해했습니다. 사람이 정으로 살다 보면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저는 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주변의 형제자매들이 가족이 교체되거나 제명, 출교된 것 때문에 괴로워하며 몇 날 며칠을 울면 그들을 우습게 봤죠. 언젠가 내게 비슷한 일이 닥쳐도 절대 저렇게 연약해지지는 않을 거라면서요.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제게 닥치자 누구보다 연약해져 쓰러질 지경이었고, 몇 번을 울었는지 모릅니다. 또 소극적인 정서로 살면서 본분 이행에도 지장을 주었습니다. 정말 어리석고 유치했고, 또한 사리 분별을 못 했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정에 얽매여서 사는 형제자매들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고, 과거의 제 무지하고 호언장담하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아울러 매사에는 구할 진리가 있고, 모든 일이 분별을 키우고 공과를 배울 수 있는 기회임을 깨달았고, 주변의 어느 누구도, 설령 자기 부모라고 해도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해서 대해야 하고, 그래야 정이나 상상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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