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사람은 나이가 들면 더더욱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중국 진루(進入)

저는 크리스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60세가 되던 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죠. 저는 무척 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세에 주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 구원받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겠다는 소망도 곧 이뤄질 것 같았죠. 본분을 많이 이행하고, 많이 헌신하기만 하면 훗날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에서 안배한 본분을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이행했습니다. 70세 때도 자전거를 타고 사무적인 일을 했죠. 본분을 이행하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도 힘든 줄 몰랐고요. 그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신체 기능이 조금씩 떨어졌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교회에서는 제 건강을 고려해 집에서 접대 본분을 이행하도록 안배해 주었습니다. 저는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시력도 예전 같지 않아졌어. 자전거를 타고 나가 본분을 이행할 수도 없어졌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접대 본분뿐이야. 앞으로 나이가 더 들면 아예 본분을 이행할 수 없을 텐데, 그래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좀 더 젊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밖에서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헌신할 수 있는 젊은 형제자매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2022년 3월, 리더는 제게 위신(于辛) 자매를 도와주도록 안배했습니다. 78세의 위신 자매는 병환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 어떤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는 상태였죠. 저는 위신 자매의 상태를 보며 상실감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미 여든을 넘겼고, 위신 자매보다도 나이가 많았습니다. 몸도 예전 같지 않았고요.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려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폐물이 되는 것 아닐까? 본분을 전혀 이행하지 못하면 구원받을 희망이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도 병에 걸렸습니다. 하루는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머리가 어지럽더니 아침에는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하고 머리가 어지러워 눈을 뜰 수가 없었죠. 구토와 설사를 해댔고, 물을 마셔도 토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딸에게 전화를 걸어 저를 돌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서야 조금씩 몸이 회복되었죠. 본분에는 지장을 주지 않았지만, 몸이 너무 약해져서 뭘 하려고 해도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밥도 삼킬 수 없었고, 어지럼증과 구역질이 났습니다. 저는 무척 걱정됐습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하루하루가 달라. 이후에 또 이렇게 병에 걸리면 그때도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을까? 바로 좋아지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돌봐줘야 하는 건 둘째 치고, 어떤 본분도 이행할 수 없게 돼. 그럼 폐물이 되는 것 아니겠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좀 더 젊었다면, 20년 전에 이 단계 사역을 막 받아들였을 때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는 뭘 하든 두렵지 않았어.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안배하든, 그곳이 멀든 가깝든 개의치 않고 갈 수 있었지.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으니 복받을 희망도 컸고. 하지만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 뭘 할 수도 없으니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 보내는 수밖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는 소극적이고 오해하는 내적 상태로 살게 되었습니다. 내적 상태가 점점 침울해졌고, 하나님 말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죠. 뭘 하든 기운이 없었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예전처럼 의욕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나이가 든 것이 느껴집니다. 본분도 많이 이행할 수가 없네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희망이 사라져 마음이 무척 우울합니다. 하나님, 제가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당신의 뜻을 깨닫고 이 내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디 믿음을 더해 주시고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내적 상태가 좀 좋아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중 일부 연로한 사람들, 다시 말해 60대에서 80, 90대의 사람들도 많은 나이로 인한 고충을 가지고 있다. 굳이 나이가 많다는 것을 보지 않더라도 그들의 생각이 그렇게 정확하거나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고 생각과 관점이 진리에 부합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들 연로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고충이 있으니 그들은 항상 이렇게 걱정한다. ‘이제 몸도 따라 주지 않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한정적이구나. 이 정도 본분만 이행해서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려나? 병에 걸려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할 때도 있을 텐데 돌봐 줄 사람이 없을 때는 홀로 본분을 이행할 수도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나이를 먹으니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기억이 안 나고 진리를 깨닫기도 쉽지 않다. 진리를 교제할 때 횡설수설하며 논리적이지 않고 이렇다 할 체험도 없구나. 나이를 먹으니 기운도 없고 시력도 나빠지고 체력도 달린다. 다방면으로 고충이 많으니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툭하면 깜빡하고 실수한다. 때로는 흐리멍덩해서 교회나 형제자매에게 폐를 끼치니, 이래서는 구원받고 싶어도,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도 힘들겠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 특히 일부 연로한 사람은 풀타임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지만 병을 앓고 있다. 혈압이나 혈당이 높거나 위장병이 있어 체력도 달리니 근심한다. 청년들이 잘 먹고 마시며 잘 뛰고 달리는 것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니 이런 청년들을 볼수록 근심만 깊어진다. ‘본분을 잘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고도 싶은데 어쩌면 이렇게도 어렵기만 할까? 정말 늙으면 쓸모가 없어지는구나! 설마 하나님에게 노인은 필요 없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 정말 쓸모없어지는 걸까? 구원받지 못하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도 괴롭고 즐겁지 않다. 이렇게 좋은 시기와 기회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지만 청년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연로한 사람들은 자기 나이 때문에 깊은 근심과 염려, 걱정에 빠진다. 고충과 좌절, 우여곡절과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의 나이를 원망하고 심지어 자신을 미워하며 싫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별수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다. 진정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냐? 방법이 없겠느냐? (노인도 힘닿는 데까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노인이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냐? 노인이 설마 늙었다는 이유로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노인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느냐? 그들도 부분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청년들도 전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이 항상 착각하는 한 가지는 자신이 흐리멍덩하고 기억력도 없으니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정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청년은 노인보다 기운이 넘치고 체력도 좋지만 이해하고 깨닫고 인식하는 능력은 사실 노인과 똑같다. 노인도 청년을 거쳐 온 것이 아니더냐? 태어날 때부터 늙은 것도 아니다. 청년 역시 결국은 늙기 마련이다. 노인은 자기가 늙어서 체력이 달리고 건강하지 않으며 기억력이 나쁘다고 청년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차이가 없다. 여기서 차이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하는 말이더냐? 노인이든 청년이든 패괴 성품이 같고 여러 사물을 대하는 태도, 관점이 같으며, 여러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 역시 같다는 말이다. 그러니 노인은 자기가 늙었으니 청년에 비해 지나친 욕망이 적어 침착할 수 있다거나, 자기에게 야심과 욕망이 없다거나 패괴 성품이 적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착각이다. 청년이 지위를 놓고 경쟁한다면, 노인은 지위를 두고 경쟁하지 않겠느냐? 청년이 원칙을 위반하고 독단적으로 일 처리한다면, 노인은 안 그러겠느냐? (그럽니다.) 청년이 교만하면 노인도 교만하지 않겠느냐? 단지 노인이 교만할 때는 나이가 들어 그렇게 날뛰거나 흥분하지 않을 뿐이다. 청년은 몸과 사고가 유연하기에 교만한 모습이 좀 더 확연한 데 반해 노인은 몸이 굳고 사고도 유연하지 않다 보니 교만한 모습이 그렇게 확연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교만한 본질과 패괴 성품은 똑같다. 노인이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나 되었든 몇 년간 본분을 이행했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패괴 성품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 그러니 노인이 할 일이 없는 것도,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진리를 추구할 수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이다. 네가 현세에서 축적한 여러 그릇된 견해와 황당한 논리 그리고 여러 전통적인 생각과 관념, 우매하고 완고한 것, 보수적인 것, 비이성적인 것, 치우친 것들이 마음속에 너무 많이 쌓여 있다. 청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이것들을 파헤치고 해부하여 인식해야 한다. 너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네 임무도 아니고 네 책임도 아니다. 먼저, 노인은 올바른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비록 나이는 많고 몸도 상대적으로 더 노화되었지만 마음가짐은 젊어야 한다. 비록 네가 늙어 생각도 느리며 기억력도 나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이는 네가 늙지 않았고 자질이 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70, 80대가 되어서도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분량이 너무 작아 아직 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진리 앞에서 나이의 구분은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저는 이 단락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제 마음속을 파고들었죠. 이 말씀은 바로 제 내적 상태를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자신이 늙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지난날처럼 밖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본분을 이행하는 건 불가능했죠.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집에서 접대를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특히 위신 자매가 병에 걸려 집에서조차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을 보자 제 나이가 걱정됐습니다. 언젠가 아예 거동이 불가능해져 어떤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구원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죠.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훗날의 종착지를 걱정하면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상태로 살아갔고, 뭘 하든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보자, 감동을 받는 동시에 마음속이 밝아졌습니다. 노인이라고 해서 갈 길이 없는 것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이나 본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늙었다고 해서 마음까지 늙은 것은 아니며,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 또한 아니었죠. 노인들도 젊었을 때처럼 하나님 말씀을 볼 수 있다면 보고, 기도할 수 있다면 기도하며,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정상적으로 이행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나이가 들어 이행하는 본분이 적어지면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고요. 또 젊은이나 노인이나 모두 패괴 성품을 지니고 있기에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합니다. 특히 저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평생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서 각종 사상과 관념, 처세 철학을 쌓아 왔습니다. 이 사탄 철학과 사설, 궤변들은 제 머릿속에 너무도 많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런 사탄의 독소들은 여전히 제 내면에 뿌리내려져 있으며, 제 생존 법칙이 되었습니다. 가끔 형제자매와 함께 예배를 드릴 때, 어떤 자매가 옳지 못한 내적 상태로 살거나 소극성을 퍼뜨리는 것을 보면, 그녀가 하는 말이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인간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침묵을 지켰습니다.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사탄 철학으로 살아가면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려 하고, 남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한 거죠. 또 예배 시간에 성경 인물 이야기가 나올 때 거기에 대해 모르는 형제자매가 있으면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며 ‘나는 오래된 크리스천이야. 내가 아는 건 저들보다 많지.’라고 생각하면서 형제자매들에게 장광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것을 밑천으로 스스로를 뽐낸 것이죠. 제게는 해결되지 않은 패괴 성품이 이렇게 많이 있으니, 더더욱 긴박감을 갖고 진리 추구에 공을 들이는 한편, 살아 있는 동안 진리를 많이 구해 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 진입해야 할 진리는 너무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젊은이들을 보면서 몸이 좋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많아 구원받을 희망도 크겠다며 부러워했습니다. 저는 힘이 없어 거동이 편치 않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제한적이다 보니 하나님나라에 분깃이 없을까 봐 걱정이 됐습니다. 부정적인 정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정말 너무도 어리석었습니다. 마음가짐을 바로잡아야 했죠. 비록 나이가 들어 육체는 늙었지만, 저는 여전히 하나님 말씀을 보고 이해할 수 있고, 머리와 이성도 정상적이었습니다. 그러니 진리 추구에 박차를 가해야지, 계속 근심 걱정 속에서 살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비록 네가 늙어 생각도 느리며 기억력도 나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이는 네가 늙지 않았고 자질이 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라는 하나님 말씀을 보자 마음이 확 밝아지면서 다시 의욕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늙지 않았다고 하셨으니, 살아 있는 동안 더 열심히 진리를 추구해야 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온전케 되어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정결케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보고 뒤떨어졌다고 한 것도, 자질이 부족하다고 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너희를 버린다거나 너희에게 희망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며, 너희를 구원하기 싫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내가 온 것은 바로 너희를 구원하는 사역, 즉 구원을 이어 가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온전케 될 기회는 있다. 원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모두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자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그에 맞춰 너에게 요구한다. 네가 무지하고 글을 모르면 그런 조건에 맞춰 요구할 것이며, 네가 글을 알면 그 기준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또 네가 나이가 많으면 나이에 맞게 요구하고, 네가 접대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네가 접대는 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업무적인 사역을 하는 등 한 부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고 하면, 또 그 역할에 맞춰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오직 충성하고, 끝까지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네가 이르러야 할 세 가지로, 최고의 실천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무척 감동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자질과 나이, 이행하는 본분의 양으로 사람의 결말을 규정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충성심과 순종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보시죠.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누구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저는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며,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사람의 분량과 사람이 이를 수 있는 수준을 보고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접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접대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음 전파를 하는 식으로, 자신이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을 이행하면 되는 겁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만 있으면 구원받을 기회가 생기는 거고요. 하지만 저는 나이가 많고 본분도 이행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속세의 회사 사장처럼 생각한 거죠. 일할 수 있고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은 남기지만, 일할 수 없는 사람은 도태시킬 거라고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제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이가 많은 사람은 구원받을 수도, 온전케 될 수도 없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출교된 적그리스도나 악인을 떠올려 보면, 저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도 있었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가정과 직장을 포기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고생하면서 큰 공을 세운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패괴 성품에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사탄 본성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하나님 집에 방해와 교란이 되었는데도 줄곧 회개하는 마음을 품지 않다가 결국 하나님께 도태되었죠. 나이가 많은 사람 중 어떤 이는 집에서 접대하는 일을 하고, 어떤 이는 교회 서적을 보관하는 등 모두 정상적으로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으며, 하나님 또한 그들이 나이 때문에 본분을 많이 이행하지 못한다고 싫어하시고 내치신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사람을 내치실 때 나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본성 본질에 근거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저는 늙어서 예전처럼 그렇게 교회를 도와주지 못하고 집에서 접대를 합니다. 그렇다면 접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이 안심하고 오가도록 예배 환경을 안전하게 지킴으로써 본분 이행에 충성을 다해야겠죠. 이웃에 사는 위신 자매가 몸이 좋지 않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제 능력껏 그 자매와 함께 예배하며 교제해야 하고요. 어려움이나 문제가 생기면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해결해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있는 힘을 다해 임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죠. 여기까지 깨달은 저는 더없이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탓에 하나님 말씀대로 일을 바라보거나 처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오해했으니 정말 너무도 패역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왜 항상 나이가 들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 도태될까 봐 걱정하는 걸까? 이 생각의 이면에는 어떤 속셈이 있는 거지?’ 그렇게 구하던 중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복을 받을 수 있겠다 싶으면 바로 열의가 생겨나고, 연단받는 것을 보면 바로 열의가 사라지는 이들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하나님을 믿으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고, 수많은 종교 관념을 버리지 못하며, 개인적인 이익을 놓지 않고, 육적인 복이 내리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께 너의 육과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한다면, 이는 전부 관점이 바르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육적인 이익만 추구할 뿐,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종교 신앙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이는 전혀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겠다는 마음과 자기를 버리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고, 성품이 변화될 수도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과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고 심판하신 것은 바로 제 내적 상태였습니다. 정말이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제 마음 깊은 곳의 복받으려는 속셈과 욕망을 폭로하셨습니다. 저는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처음 이 단계 사역을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닫자 힘이 났고, 교회에서 뭘 시키든 기꺼이 임했습니다. 비바람이 쳐도 개의치 않고 본분을 이행했고, 그러면서 많은 대가를 치르고 헌신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 거라고, 훗날 구원받아 천국의 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서 예전에 이행하던 본분까지 이행하지 못하게 되자 언젠가 병에 걸려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될까 봐 근심하면서 상실감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특히 몸이 안 좋았던 며칠간 거동이 힘들어지자, 언젠가 또 병에 걸려 바로 좋아지지 않는다면 아예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될까 봐, 그래서 구원받지 못할까 봐 더더욱 걱정이 되었고요. 마음속이 공허해지고 영적으로도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고 기도해도 기운이 나지 않았죠. 그렇게 하루, 또 하루를 흘려보낼 뿐이었습니다. 저는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제 내면 깊숙이 뿌리내려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복받으려는 속셈으로 고생하며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것 같았지만, 사실 본분 이행을 빌미로 천국의 복을 얻으려 했고, 종착지를 위해 본분을 이행했던 겁니다. 제 본성은 너무도 사악하고 간사했습니다! 저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60세 때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얻었죠. 하나님은 말세에 모든 측면의 진리를 분명히 교제해 주시는 한편,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제가 스스로의 패괴 본성과 사탄 독소를 어느 정도 깨닫고 자신을 증오하며 패괴 성품이 어느 정도 변화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하여 얻은 성과였죠. 이는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였습니다! 이렇게 큰 구원의 은혜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제 목숨을 거둬 가신다고 해도 아무 여한 없이 감사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아직 살아 있고 숨을 이어 가고 있으니, 일심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앞으로 복을 받을지 화를 입을지 개의치 말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하죠. 이건 피조물로서 제가 마땅히 지녀야 할 이성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많은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얻고서도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줄 모르고, 본분 이행을 빌미로 천국의 복을 얻어 내려 했습니다. 얻지 못할 것 같자 소극적으로 변해 하나님을 오해했고요. 이렇게 양심도, 이성도 없는 저에게 인성이 있을까요? 저는 정말이지 너무도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제 속셈과 관점은 올바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오직 천국에 들어가는 것, 육적인 이익과 복받는 것만을 추구했는데, 바울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많은 사역을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오직 상과 면류관을 얻기만을 바랐습니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사역하는 것을 빌미로 하나님과 거래하려 하고, 천국의 복을 얻어 내려 했지 하나님을 알아 가려고 하지 않았죠. 그가 걸어간 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징벌받게 되었고요. 제가 추구한 것은 바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성품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를 추구하지 않고,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했으니까요.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는 것 같았지만, 그 본질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을 알아 가고 사랑하기를 추구합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조건을 따지지 않고, 거래를 하지 않으며, 개인적인 속셈과 목적, 지나친 욕망 없이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요.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그는 바울보다 많은 사역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인식하며, 하나님을 알아 가고 사랑하기를 추구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종하여 하나님을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하나님을 증거하고 영화롭게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줄곧 비열한 속셈과 욕망을 품고 하나님을 믿었으니, 아무리 오래 믿어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할 게 뻔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버림받고 증오받게 될 뿐이겠죠. 만약 회개하지 않은 채 계속 거래하고 뭔가 얻어 내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다면, 마지막에는 진리를 얻지 못하고 성품 변화를 이루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의해 드러나고 내쳐질 것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이제 저는 본분이 피조물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이며, 복이나 화를 받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집의 사람인 이상 하나님께 조건을 내밀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집안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 일하는 자녀가 부모에게 그 값을 따지고 보수를 요구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그 집안사람이 아니라 고용인입니다. 그러니 제가 하나님 집의 일원으로서, 한 명의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위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 어떤 조건이나 보수도 요구하지 않고 충성을 다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이었죠. 지금 저는 나이가 들었고 몸도 좋지 않지만, 하나님은 저를 버리시지 않고 여전히 말씀으로 공급하고 인도해 주십니다. 저는 비양심적으로 굴 수 없었습니다. 더는 부정적인 상태로 살아가면서 자포자기할 수도 없었죠. 정상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머리와 이성이 정상적일 때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으면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며 지금 할 수 있는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질이 어떻든, 나이가 어떻든, 믿음을 가진 지 얼마나 되었든 진리 추구의 길을 향해 노력해야 한다. 객관적인 이유를 내세우지 말고 무조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허송세월 보내지 마라. 네가 진리 추구를 인생의 큰일로 삼고 추구하며 노력했는데도 최종적으로 얻고 도달한 진리가 네가 바랐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진리를 추구하는 너의 태도와 진심을 보고 적절한 종착지를 준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제부터는 종착지니 결말이니, 훗날이 어떨지, 미래는 어떨지, 재난을 피할 수 있을지, 죽지 않을 수 있을지 등을 중시하지 마라. 이런 것을 생각하지도, 구하지도 마라.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대로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여라. 그리고 하나님의 육천 년의 기다림과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하나님께 약간의 위로를 주어 하나님이 네게서 희망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염원이 네게서 실현되게 하여라. 그럼 하나님이 너를 박대하겠느냐?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설령 최종의 결과가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피조물로서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개인의 계획은 없어야 한다. 이것이 피조물로서 지켜야 할 자세가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옳은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왜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 중에서), 『진리 추구는 인생의 큰일이다. 진리 추구보다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고, 진리를 얻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을 따라 지금까지 오는 것이 쉬웠느냐? 어서 진리 추구를 중요한 일로 삼거라! 말세의 이 사역은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6천 년 경륜 중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진리 추구는 하나님이 택한 사람에게 거는 최고의 기대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바른길을 걷기를 바란다. 이 바른길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왜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자 힘이 났고, 또 무척 감동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기대를 우리에게 알려 주었죠. 하나님은 사람의 자질이나 나이, 이행한 본분의 양을 보지 않으시며, 오직 진리를 추구하는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심을 보이고 순종하는지를 보십니다. 은혜시대에 동전 두 닢을 바친 과부가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전부를 하나님께 바쳤기에 하나님은 그녀의 진심을 보셨습니다. 저는 나이가 많고, 여러 부분에서 젊은이들과 견줄 수 없지만,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 말고 분발해서 따라가야 했습니다. 하루하루 흘려보내지 말고 머리와 이성이 정상적일 때 더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 말씀을 많이 봐야 했죠. 깨달은 만큼 실행하고,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한다면 죽을 때도 마음이 편안할 것이고, 평생 제게 생명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말세에 태어나 60세 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현현을 보고 그분의 음성을 직접 듣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저에 대한 더없는 은총이자 축복입니다. 만약 제가 계속 나이 때문에 고민하면서 진리를 추구할 기회를 붙잡지 않으며,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친다면, 나중에는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 후회막급일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회개하고자 합니다. 더 이상은 나이 때문에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거나 근심하고 고뇌하거나 오해하는 상태로 살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한편,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걸으며,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만큼 실행하겠습니다. 또 제 본분을 이행해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릴 것입니다. 복을 받든 화를 입든 당신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많이 보고 묵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교회에 제가 이행할 본분이 있으면 온 힘을 다해 임했고요. 이 밖에도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체험을 통한 인식을 얻었으니, 글쓰기 연습을 해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지금은 복음 전파 과정에서 좋은 글로 교계 사람들의 관념을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었으니 글을 써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확장되는 데 일조하고 싶었죠. 한편, 저는 성품이 교만한 편이라 가족들 앞에서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 남을 통제하기 일쑤입니다. 저는 진리를 구해 이러한 패괴를 해결하고자 했으며, 집에 있을 때도 정상 인성을 살아 내는 훈련을 했습니다. 이 밖에도 저는 평소 형제자매들과 함께할 때, 상대가 일 처리에서 원칙을 어기는 것을 봐도 체면에 얽매였습니다. 말을 했다가 상대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줄까 봐 걱정했죠. 이에 대해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탄의 철학으로 살아가지 않고, 진리 실행에 집중하며, 교회의 이익을 지키겠다고, 무골호인이 되지는 않겠다고 말입니다. 지금 저는 모든 작은 일에서도 진리를 실행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졌죠. 제가 우려와 근심,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하나님의 인도이자 은총 덕분입니다.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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