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마침내 본분을 이행하는 법을 깨닫다

샤오롄(小練) 이탈리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할 뿐 진리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에 도태될 것이다. 그런 자는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변화되지 않은, 화를 입을 대상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것에는 불순한 것들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악으로 가득 차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마음을 들여 본분을 다하고 책임을 질 수 있으려면 고통을 겪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말로만 떠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본분을 이행하는 데 마음을 들이지 않고 대신 항상 힘만 쓰고자 한다면 분명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그저 형식만 갖추었을 뿐 본분을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들여 본분을 이행한다면 점차 진리를 이해하게 될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마음을 들이면, 점차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발견하며 자신의 다양한 내면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을 쏟지 않고 겉으로 힘만 쓴다면, 자신의 다양한 내면 상태에 일어나는 변화나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내면 상태의 반응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마음의 문제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본분을 잘하려면 마음을 다하고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예전에 전 뭘 하든, 다 그냥 대충 했는데 하나님 집에서도 그랬어요. 최고의 효과를 내야 했지만 좀 힘들고 어렵고 복잡한 일을 하게 되면 무책임하게 건성으로 해서 결국은 본분에서 계속 문제가 생겼어요. 그러다 하나님 말씀으로 제 패괴 성품을 조금 알게 되고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찾게 되면서 좀 더 책임감있고 꼼꼼하게 본분을 하게 됐어요.

저는 교회에서 이탈리아어 번역을 감수하는 걸을 맡았었는데 처음엔 성실하게 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죠.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계속 밀리고 쌓이니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특히 온갖 색깔로 표시된 주석이 달리고 마침표에, 쉼표에 갖가지 문장 부호가 수두룩한 글들을 보면서 전부 다 형식이나 배치가 맞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니까 숨이 턱 막히더라구요. 이걸 다 하려면 엄청 신경 써야 하는데 넘 힘들 것 같았어요. 그때부턴 꼼꼼하게 하기 싫어졌구 대충 읽어 보고 맞다 싶으면 넘어갔어요. 가끔 번역이 정확한지 집중해서 잘 확인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문장이 좀 복잡하면, 잔머리를 굴렸죠. '이거 하나하나 다 검토하려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그러다가 아무 문제도 발견 못 하면, 시간만 헛 쓴 게 되잖아? 모르겠다, 뒷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뭐' 전 그렇게 본분을 얼렁뚱땅 대충대충 했어요.

그러니까 갈수록 문제가 계속 생기더라구요. 제가 감수한 걸 뒷 사람이 볼 때면 계속 대문자 소문자 틀리고, 문장부호 실수가 나오고, 게다가 번역이 누락된 부분까지 나오는 거에요. 그럴 때마다 너무 속상했어요. 다른 사람은 쉽게 발견하는 간단한 문제인데 전 보고도 잡아내지 못했잖아요. 거기다 문장 누락 같은 쉬운 것도 못 잡아냈으니까요. 생각할수록 괴로웠어요. 그리고 어느 날 점심 때 메시지를 받았는데, 제 감수본에서 단수 복수가 틀린 문제가 나왔다는 거에요. 그때 정말 창피하고 괴로웠어요. 얼마나 건성으로 했으면 그런 기본적인 문제까지 놓쳤나 싶었죠. 그렇게 되니까 다른 파일은 문제가 없을지 자신이 없는 거에요. 실수투성이로 본분을 했으니 눈앞이 캄캄하더라구요.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면서 본분에 임했었던 제 태도를 반성했어요.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봤어요. 『본분을 이행하면서 마음을 다하지 않고 건성으로 임하며, 쉬운 방향으로만 행동한다면 그것은 어떤 태도겠느냐? 무성의하게 행동하며 본분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 책임감도 사명감도 없는 태도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마다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애쓰며, 불성실하게 임하고 대충대충 넘어간다면, 본분 이행을 놀이처럼 가볍게 대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그런 사람은 결국 “당신은 본분을 별로 잘 이행하지 못하는군요. 그저 대충 형식만 갖추고 넘어가는군요.”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뭐라고 말하겠느냐? 하나님은 너를 믿을 수 없는 자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사역을 맡겼는데, 너는 그것이 중요한 책임이든 일반적인 책임이든 상관 않고 마음과 책임을 다하지 않고, 그 일을 하나님이 네게 준 일이나 사명으로 여기지도 않으며, 또한 그것을 너의 본분이나 의무로 여겨 행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의 본분 이행을 ‘믿을 수 없다’라는 말로 정의 내릴 것이고, 너라는 사람의 인품이 부족하다고 말씀할 것이다. 네게 일을 맡겼는데 너는 그런 태도로 임하고, 그런 방식으로 처리한다면, 나중에 네게 또 본분을 맡길 수 있겠느냐? 큰일을 맡길 수 있겠느냐? 어쩌면 네 태도에 따라 네게 본분을 맡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불안하고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곤란하지 않겠느냐?』(≪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제 마음속을 찌르셨어요. 그제서야 전 본분을 쉽게 쉽게 하려는 건 건성으로 하는 태도고 전혀 마음을 들이지 않는 거고 무책임한 태도로 대하는 거란 걸 좀 깨닫게 됐어요. 제가 본분할 때를 보니까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때마다 가장 빠르고 손쉽게 끝낼 수 있는 지름길만 택하고 있더라구요. 무조건 가장 편하고 덜 힘들게 일한 거죠. 새로운 단어가 많이 나오거나 문법이나 구조가 어려운 문장이 나올 땐 찾아보면서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고 표시해 뒀다 남한테 맡기곤 했죠. 복잡한 주석이 나오거나 문장부호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할 때도 전 대충 훑어보고는 웬만한 문제는 그냥 넘어갔어요. 이게 제 본분이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데 성의가 없고, 제 책임을 회피한 거에요. 어떻게 하면 고생을 덜 할까만 생각한 거죠.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어요.

나중에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인성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그들에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한다는 것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인성이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매우 힘든 과정이다. 다른 사람이 항상 그들을 걱정하고, 감독하고, 진행 상황을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맡겨질 때마다 물건 하나를 망쳐놓을 것이다. 요컨대,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나는 이 본분을 올바르게 이행했는가? 마음을 들였는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대충대충 하려는 내적 상태는 없었는가?” 그러한 내적 상태가 있다면 좋지 않다.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좁게 보면, 그러한 사람은 신뢰성이 없고 사람들이 그를 믿을 수 없다는 의미다. 더 넓게 보면, 그러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항상 형식적으로만 하고 계속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한다면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알면서도 속이면 그 결과는 어떻겠느냐? 단기적으로는 패괴된 성품이 있고, 자주 과오를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으며, 진리를 실천하는 방법을 모르고 진리를 실천하지도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계속 그렇게 하면 미래가 사라질 것이고, 결국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소위 큰 실수는 하지 않지만 사소한 실수를 끊임없이 거듭하는 경우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아주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본분을 건성으로 한 결과를 말씀하신 걸 보니까 저도 모르게 두려웠어요. 본분을 건성으로 하는 건 사람은 물론, 하나님도 속이는 거고 이건 하나님께 정죄받는 태도잖아요.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큰 과오를 저질러 버림받을 것 같았어요. 교회에서 저한테 본분을 맡겼을 땐 정말 잘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었죠. 근데 정작 제가 노력을 많이 들여야 할 때는 고생하기 싫어 귀찮아하고 꺼려했어요. 그래서 감수본을 대충 보고 넘겼는데, 결국 간단한 문제도 잡아내지 못한 거죠. 그것도 다 기만행위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와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하나님! 당신이 증오하시는 무책임하고 속이는 태도로 본분을 했습니다. 정말 양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회개하고 싶습니다. 절 이끌어주세요. 고생을 감내하면서 본분을 잘할 수 있게 힘을 주세요."

그 후에는 번역문 감수를 맡으면 어색한 단어는 사전 여러 개로 확인하고 애매할 때는 주변의 형제자매나 전문 번역가에게 물어봐서 문장을 확실하게 파악했어요. 내용이 어렵고 긴 문서를 하더라도 더는 대충 하면서 넘어가지 않고, 문장을 여러 번 생각하고 하나 하나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더 정확한 번역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죠. 감수를 마무리할 땐 확인할 사항들을 목록으로 작성했고, 또 빠진 게 없이 꼼꼼히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마무리 전에 다시 훑어보고 실수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확실히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고 실수도 줄게 되더라구요.

나중에, 팀에 자매 한 명이 들어왔는데 번역의 형식을 통일하는 작업을 맡게 됐어요. 근데 수시로 물어보는 거에요. 뭐 이 문장 부호는 맞느냐, 저긴 왜 저 문장 부호를 쓰냐, 계속 물으니까 저도 좀 귀찮았죠. ‘저걸 언제 다 일일이 설명해? 최종본대로 넘어가면 되지.’ 그래서 이렇게 둘러댔죠. "아, 이건 최종본이니까, 문장부호는 틀린 데 없을 거에요. 영어나 이탈리아어나 용법은 비슷하니 거의 영어대로 하시면 돼요. 예외가 있긴 한데, 의미를 보면 돼요." 자매는 또 우리 참고서가 전문가용 수준이라서,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이탈리아어 문장부호에 관해 간단하게 정리된 자료가 없냐는 거에요. 전 아직 없다고 했죠. 그런 말을 들으니까, 새 팀원이 참고할 자료를 만들어야겠다 싶었지만 이탈리아어 문장부호는 너무 많은데, 그걸 또 정리하려니까 너무 귀찮은 거에요. 그래서 담 기회로 미뤘죠. 그 일은 그걸로 끝난 줄 알았어요. 근데 자매가 제가 말한 대로 이탈리아어 문장부호를 영어랑 똑같이 쓰는 바람에 15만 자가 넘는 문서에 나온 대시 기호 앞뒤 공백을 다 삭제해 버린 거에요. 그 일을 알고 전 멍해졌어요. 이탈리아어에서는 대시와 하이픈이 구분되게 대시의 앞뒤를 한 칸씩 띄워야 하거든요. 그 점이 영어랑 다른데 제가 미처 말하지 않았던 거에요. 결국은 그 자매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고쳐야 했어요. 그 일로 속상하고 후회스럽고 제가 미웠어요. “그때 참고 자료를 만들었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텐데. 왜 난 육을 아끼고 노력을 하지 않을까?” 제가 대충 한 것 때문에 자매가 다 다시 수정하고 검토도 새로 해야 했어요. 고생한 건 놔두고, 사역 진도까지 늦어져서 결국은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한 게 된 거에요. 이런 생각에 자책감과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어요. 정말 제 뺨이라도 때리고 싶더라구요. 또 건성으로 대하다니, 대체 난 왜 그러는지...

어느 날 묵상하다가 이런 말씀을 보게 됐어요. 『그렇게 경솔하고 오만하며 무책임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패괴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건달 기질이다. 모든 일에서 그들은 “대충 맞는 것 같아”, “그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아마도’, ‘십중팔구’ 식의 태도이다. 형식적으로 일을 하며, 최소한의 일만 하고 할 수 있는 한 일을 대충 해 나가는 수준에서 만족한다. 일을 진지하게 대하거나 정확함을 추구할 필요도 없으며 원칙을 구하는 것은 더욱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패괴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정상 인성의 발현이겠느냐? 그러한 태도를 오만함이라 해도 옳고, 방종함이라 해도 아주 적절하지만, 그러한 태도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유일한 어휘는 ‘건달 기질’이다. 그러한 건달 기질은 대다수 사람의 인성에 존재한다. 모든 일에서 가능한 한 최소한의 노력만 하고, 어떤 일을 대충 할 수 있을지 눈치를 본다. 하는 모든 일에서 기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요령을 피우며, 문제를 살피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이거나 깊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발각되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책임을 지지 않는 한, 괜찮다고 생각하며 얼렁뚱땅 넘어간다. 번거로움을 무릅쓰면서까지 일을 굳이 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무엇이든 숙달하는 경지까지 배우는 일이 없으며 배우는 일에 전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어떤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개요만 대충 알고서는 전문가라고 자칭하면서 이러한 지식에 의존한 채 계속 어물쩍 넘어가려고만 한다. 사람들이 매사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지 않으냐? 이것이 과연 옳은 태도겠느냐? 그러한 사람들이 사람, 사건, 사물에 대해 취하는 이런 태도는 한마디로 ‘대충 되는대로 해 나가는 것’이며, 그러한 건달 기질은 패괴된 모든 인류에게 존재한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제가 본분을 건성으로 대하는 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불량스런 기질 때문이었어요. 이런 사탄 성품으로 사니까 뭐든 대충 속여 넘기려는 태도인 거죠. 자매가 정확한 문장부호 사용법을 물었을 때도 귀찮아서 신경 쓰지도 않았고 질문도 피하고 싶어서 방법을 대충 알려주면서 했던 거에요. 또 자매가 참고 자료가 있냐고 물었을 땐, 만들어줄 수 있었지만 제가 힘들 것 같으니 모른 척하고 그냥 넘어간 거죠. 실수가 드러날까봐 걱정되면서도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구요. 문제 없이 넘어가면 그게 더 편하니까요. 계속 그렇게 대충대충, 운좋게 넘어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잔머리를 굴리면서 쉽게 하는 방법만 찾았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고 본분을 잘 이행할지 꼼꼼히 생각하지도 않고,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어요. 겉으로는 열심히 하고 질문에 대답도 잘 해줬지만, 사실 전 잔머리 굴리면서 자매를 속인 거죠. 그래서 제 말을 믿었던 자매는 큰 실수를 저질렀고 시간만 낭비하고 헛고생만 한 거죠. 더구나 재작업 양도 많아서, 전체 진도도 느려졌구 교회 사역도 지체됐어요. 결국 최대한 편하게 일하고 번거로운 걸 피하자는 저의 행동은 해만 끼치는 게 돼버렸어요. 한순간 잔꾀를 굴려서 몸은 좀 편했지만 본문을 이행한다면서 계속 과오만 범했으니 결국 하나님 집 사역을 방해한 거죠. 자신까지 해치게 됐구요. 그 중요한 사역을 저한테 맡겼는데, 그 사역을 대하는 제 태도는 정말 경솔하고 무책임했어요. 기만하고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가장 기본적인 양심조차 없었구요. 그때 보니까 전 불량스런 기질에다 비열하고 가치가 없더라구요.

나중에 하나님 말씀 영상을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섬기는 과정에서 표현해야 할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하며, 속이고 대충 하기까지 한다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은 것이다. 그런 자는 이른바 ‘둔재’이자 쓸모없는 폐물이다. 그런 자를 어찌 당당한 피조물이라 칭하겠느냐? 겉보기는 화려하나 속은 썩어 문드러진 자가 아니겠느냐? … 너희의 언행이 떳떳하냐? 설마 너희의 그 작디작은 희생으로 내가 베풀어 준 모든 것에 떳떳하단 말이냐? 너희에 대한 나의 마음은 한결같아서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너희는 나에게 음흉한 속셈과 딴마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고 얼마 되지도 않는 너희의 기능이다. 그렇지 않으냐? 설마 너희는 자신들이 아예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음을 모른단 말이냐? 그렇다면 너희가 어찌 피조물이라 불리겠느냐? 너희가 무엇을 말하고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는 자기 자신이 잘 알지 않느냐? 너희는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관용과 풍성한 은혜를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은혜는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너희 소인배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라는 것 없이 기꺼이 헌신하는 이들을 위해 예비된 것이다. 너희 같은 사람들, 너희 같은 둔재들은 하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전혀 없다. 오직 고난의 나날과 끝없는 징벌만이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너희가 나에게 충성을 다할 수 없다면 너희의 운명은 곧 고통이고, 나의 말과 사역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면 너희의 결말은 곧 징벌이다. 그 어떤 은혜와 축복,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삶도 너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너희가 누릴 몫 또한 없다. 너희에게 이것은 당연한 결말이며 자업자득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말씀에서 『너희에 대한 나의 마음은 한결같아서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너희는 나에게 음흉한 속셈과 딴마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다.』라고 하셨는데 마음이 너무 찔렸어요. 절 구원하시려고 본분을 주신 거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얻어서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라고 하신 건데, 전 진리를 추구하긴커녕, 몸만 사리면서 하나님을 속이고 있었죠.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육신으로 세상에 오셔서 갖은 수모와 고통을 당하시고 세상 정권에 핍박당하고 사람에게 정죄당하셨지만 계속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구원하고 계세요. 또 우리가 부족해서 진리를 잘 깨닫지 못해도 하나님은 무시하지 않으시고 다방면적으로 진리를 교통해 주시면서 모든 진리를 자세하게 알려주셨어요.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예를 들고, 이야기도 들려주시면서요. 또 관련되는 내용이 많은 어려운 진리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나눠 설명해주시면서 우리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천천히 이끌어주셨구요. 그렇게 책임감 있게 우리 생명을 대하셨어요. 근데 본분을 하는 저를 보면 많이 생각하고 노력하면 손해보는 것 같아서 문서를 검토할 때 대충 하고 무책임했고, 어떤 결과가 올지 생각도 안 하고, 편한 길만 택했죠. 하나님의 부탁을 가볍게 여기면서 하나님을 기만한 거에요. 양심도 없었죠. 하나님께 벌받아 마땅해요. 그래도 하나님은 절 계속 구원하시려고 제가 제 자신에 대해서 알고 하나님 뜻을 알 수 있게 이끌어주셨어요. 그런데도 계속 게으름 피우고 건성으로 본분을 한다면 정말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없잖아요. 그래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전 너무 비열한 인간이에요. 더 이상 이렇게 수치스럽고 존엄성 없이 살고 싶지 않아요. 제게 진리를 행할 수 있는 힘을 더해 주세요. 정말 사람답게 살면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요."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봤어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들이면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일편단심으로 충성해야지, 건성으로 해서는 안 되며, 책임을 지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이나 기분에 따라 행동해서도 안 된다. 이는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충성하는 것이겠느냐?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기분, 환경, 사람, 일, 사물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사명을 받아들이겠어. 하나님께서 이 사명을 나에게 주신 거야.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러니까 이걸 내 일로 간주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 어떤 식으로든 좋은 결과를 낼 거야.” 네게 이러한 내적 상태가 있으면 양심의 지배를 받을 뿐만 아니라 충성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효율성과 결과 달성을 위한 노력 없이 일을 끝내는 것에 만족하면서 그저 힘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양심의 기준에 지나지 않으며 충성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기준은 양심의 기준보다 약간 높다. 이것은 단지 힘을 다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까지 다해야 한다. 항상 본분을 자신이 해야 할 일로 여기고, 이 일에 대해 부담을 가지며, 사소한 실수라도 저지르거나 조금이라도 대충대충 하려는 생각이 들면 가책을 받고 ‘난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 하나님께 정말 죄스러워.’라고 생각해야 한다. 진정으로 이성이 있는 사람은 누가 감독하든 안 하든 마치 자신의 일처럼 본분을 다한다. 하나님이 그들에 대해 기뻐하든 아니든, 그들을 어떻게 대하든, 그들은 항상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것이 바로 충성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 길을 찾았어요. 본분을 이행할 때는 내 기분에 따라 하거나 하고 싶은대로 해선 안 되고 어려운 게 싫다고 얼렁뚱땅 대충 해도 안 되죠. 본분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자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면서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여야죠.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도, 일이 많이 어려워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완수해야 하구요. 이걸 깨닫고 전 하나님께 회개하고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기도했어요. 그 후에 새 팀원이 오면 참고할 수 있도록 이탈리아어 문장 부호 용법을 자료로 만들어놨어요. 그리고 번역할 때 자주 나오는 문제들을 요약 정리하고, 주의할 점을 다 목록으로 만들어 놨다가 파일을 검수할 때 대조하면서 꼼꼼하게 확인했어요. 또 형제자매가 본분에 관련해서 물어보면, 대충 보고 그냥 얼렁뚱땅 대답하지 않고 그 질문을 잘 생각해 본 다음에 원칙에 따라 관련 지식을 참고해서 대답해 줬어요. 또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땐 이렇게 실제적으로 협력하고 또 하나님이 인도도 해주시니까 어느새 깨닫게 되더라고요. 또 잘못된 마음으로 본분을 하는지 자주 성찰했고, 문제에 부딪혀 대충 넘어가고 싶을 때면 기도하면서 육을 이겨냈어요. 이렇게 해결하려고 실제로 노력했어요. 그러니 본분을 이행하는 자세도 바뀌고 건성으로 하는 일도 줄고 성실하게 하게 되더라구요. 작은 변화긴 하지만, 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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