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저는 예전에 분별력이 없어서 목사와 장로를 따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하는가 하면, 그들을 따라 모독하는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실까요?
성경 참고: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10)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사람에게 사역하는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도록 하는 것이며,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는 사람을 징벌하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는 상선벌악(賞善罰惡)을 하지 않고 각 부류 사람들의 종착지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다 한 후에야 상선벌악의 사역을 하고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낸다. 징벌받는 사람들은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 반면 구원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하나님께 구원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다. 구원 사역을 하는 기간에 하나님은 구원 가능한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최대한 구원한다. 그의 사역 목적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성품의 변화를 받지 못한 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지 못한 자는 모두 징벌받을 대상이 된다. 이 단계의 말씀 사역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비밀과 도를 모두 사람들에게 열어 주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를 알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줌으로 성품 변화에 이르게 한다. 하나님은 그저 말씀으로 사역할 뿐 사람이 조금 거역한다고 해서 사람을 징벌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구원 사역을 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역한다고 해서 사람을 징벌한다면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모조리 징벌받아 음부에 떨어질 것이다.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목적은 사람을 징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다. 말씀 사역을 하는 기간에 많은 사람은 거역과 대적, 성육신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일일이 징벌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구원받을 수 없을 정도로 심히 패괴된 사람들만 버리는데, 그 육체를 사탄에게 넘겨줄 것이며 어떤 경우는 육체를 없애 버릴 것이다. 그 외의 사람들은 계속 따르면서 책망과 훈계를 겪게 될 것인데, 따르는 기간 동안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점점 타락한다면, 그런 사람은 이미 구원받을 기회를 잃은 것이다. 말씀으로 정복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구원받을 기회가 여러 번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함에 있어 최대한 너그럽게 대한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최대한 관용을 베푼다. 사람이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돌아온다면, 즉 회개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구원받을 기회를 줄 것이다. 사람이 처음에 하나님을 거역할 때 하나님은 사람을 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구원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말로 구원의 여지가 없다면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단 한 사람도 쉽게 징벌하지 않는 것은 구원 가능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말씀으로 심판하고 말씀으로 깨우치고 인도할 뿐, 형벌의 막대기로 치지는 않는다.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마지막 단계 사역의 목적과 의의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한 죄는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사함받을 수 없으며, 영원히 환생하지 못한다.” 이 말씀은 곧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를 수 없다는 의미이다. 잘 모르는 상황에서, 혹은 타인에게 미혹되거나 통제되거나 억압받는 상황에서 매몰찬 말이나 심한 말을 했지만, 훗날 참도를 받아들이고 크게 후회하며, 그 후로는 충분한 선행을 예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이렇게 인식과 변화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지난 과오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전면적으로 알아 가야 한다. 너희는 이 말씀이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지, 또 이 말씀이 어떤 상황에서 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아무 데나 적용하지 말고,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규정하지도 말라. 체험이 없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자신에게 대조해 보는 법이 없고, 또 얼마간 체험과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쉽게 예민해져서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하거나 증오하고 내치는 말씀을 들으면 무작정 자신에게 대입한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늘 하나님을 오해하는 행동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본 적도, 알아본 적도 없고, 하나님의 새 사역을 이해하는 자의 교제를 들어 본 적도 없으며, 더구나 성령의 깨우침도 없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판단하는 말을 했다가 나중에 누군가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지난 일을 몹시 후회하며 회개하고자 했다. 이럴 때는 그의 이후 행동이 어떤지를 봐야 한다. 만약 그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매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어쨌든 나는 예전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심한 말을 한 적이 있어.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정죄한다고 하셨으니 어차피 난 끝이야.’라고 하면서 자포자기한다면, 그 사람은 철저히 끝난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과오가 좀 있으면 ‘하나님이 나를 드러내어 도태시키려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나를 치시려는 것은 아닐까?’라고 추측을 한다. 하나님이 이번에 사역하러 온 것은 사람을 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구원하기 위해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오가 있는데, 다 친다면 구원이라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일부러 과오를 범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과오를 범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범한 과오를 스스로가 인식하고 변화할 수 있는데도 하나님이 그것을 기다리지 않고 너를 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원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범한 일이든 패역 본성에서 비롯된 일이든 너희는 명심하여라. 범한 후에는 재빨리 깨닫고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므로 자신이 구원하려는 사람을 함부로 치지 않는다. 네가 어느 정도로 변화할 수 있든, 설령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너를 치더라도, 하나님은 틀림없이 공의로우며, 때가 되면 네가 알도록 할 것이다. 지금 너희는 오로지 진리에 닿도록 노력하고, 오로지 생명 진입만 중시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을 추구하기만 하면 된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지 틀림없이 공의롭다. 너는 이를 의심해서는 안 되며,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공의를 지금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네가 수긍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은 광명정대하게 일을 하고 공개적으로 모든 것을 드러낸다. 너희가 이 방면을 곰곰이 되새겨 보면 결국 하나님이 하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이기에, 사람이 패괴를 드러내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사람이 패괴를 드러낸 후 전혀 회개하지 않고 계속 그렇게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강도로 보응하고, 사람 또한 자신의 과오로 인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
예전에 과거 일을 없던 일로 하고, 미래로 과거를 대체하니, 하나님의 도량이 끝없이 넓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말에도 원칙이 있다. 네가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하나님이 없던 일로 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에는 모두 원칙이 있다. 과거 이 방면의 행정 법령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기 전 저지른 죄는 하나님이 모두 사면하고 용서해 주지만, 교회에 들어온 후에도 계속해서 죄를 저지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죄가 가벼울 경우 회개할 기회를 주지만, 또다시 죄를 지으면 출교시킨다. 하나님의 사역은 늘 사람에게 최대한의 관용을 베푼다는 점을 통해 하나님이 행하는 것은 진정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이 사역에 이르러서도 네가 여전히 사함받을 수 없는 죄들을 저지른다면, 정말 구제할 수 없고 변화할 수 없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태는 천태만상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며,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도 다양하고 각양각색이다.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과거에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했든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깨닫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하나님은 과거의 죄를 다 탕감해 준다. 사람이 진리를 구하고 실천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저지른 모든 일을 마음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실천함으로 인해 그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보기 전이나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든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 후에는 사람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사서(史書)’에 기록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의 사역 속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하나님의 지존 무상함을 보고, 하나님의 사역을 진정으로 알고, 옛 성품에 변화가 생겼을 때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 성품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한 적이 있지만, 네가 성육신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며, 네가 행해야 할 진리를 실천하고, 너의 본분을 이행하며, 네가 지켜야 할 규정을 지킨다면, 너는 패역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사람이자,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사람이다. 반대로 네가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뉘우치는 마음이 없이 패역 행위를 계속해 나가면서 하나님과 협력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 너와 같이 고집불통인 사람은 확실히 징벌받을 대상이지 온전케 될 대상은 절대 아니다. 그러면 너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여전히 하나님의 원수로 남게 될 것이다. 네가 영원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 하나님의 원수로 남는다면 하나님이 과연 너 같은 사람을 용서하겠느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지금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과거의 일을 하나님이 기념하든 안 하든, 사람은 어떤 마음을 품어야겠느냐? “나는 성품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해야 해. 다시는 사탄의 꾐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짓도 하지 말아야지.” 지금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는 관건은 무엇에 달렸느냐? 바로 네가 설교를 들은 후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해 변화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이것이 관건이다. 네가 잘못을 뉘우치기만 할 뿐 막상 일할 때는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과거에 하던 대로 진리를 찾기는커녕 낡은 관점과 낡은 방법을 고수한다면, 인식이 있기는커녕 오히려 원래보다 상태가 더 심해졌다면, 너라는 자는 가망이 없으니 폐기 처분되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많이 알수록 너 자신을 많이 알게 되고, 자신의 본성을 더 밝히 알수록 자신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경험을 종합 정리한 후에는 이 일에 있어서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사람마다 조금씩 오점은 있다. 그저 추궁하지 않을 뿐 모든 사람에게 있다. 어떤 것은 가벼운 반면, 어떤 것은 심각하고, 어떤 것은 노골적으로 말해지는 반면, 어떤 것은 노골적으로 말해지지 않고, 어떤 사람이 한 일은 다른 사람이 아는 반면, 어떤 사람이 한 일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누구든 오점이 있으며, 누구든 교만이나 독선 같은 패괴 성품, 약간의 과오, 혹은 약간의 잘못, 사역 실수, 약간의 패역을 드러낸다. 이것들은 다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일로, 패괴된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대신, 진리를 깨달은 후에 피하면 된다. 사람이 늘 과거의 일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다만, 사람이 진리를 깨달은 후에도 변하지 않고, 이렇게 하는 것이 부적절한 걸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그렇게 할까 걱정이다. 그런 사람은 구제할 방법이 없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우리는 이런 다짐을 해야 한다. 즉, 아무리 커다란 환경이 임하더라도,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우리가 아무리 연약해지고 소극적이 되더라도 성품 변화에 대해서는 믿음을 잃으면 안 되고, 하나님이 한 말씀에 대해서도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을 줬으니 사람은 그 약속을 받을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겁쟁이를 싫어하고 의지가 굳은 사람을 좋아한다. 네가 수많은 패괴 성품을 드러냈더라도, 네가 굽은 길을 간 적이 많더라도, 혹은 도중에 많은 과오를 범하고 하나님을 대적했더라도, 혹은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마음을 품었거나 원망했거나 반항했더라도,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사람이 언젠가 변화할 수 있을지만 본다. 성경에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있는데, 어째서 예수가 그런 비유를 들었을까?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은 진실하다. 그는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와 변화할 기회를 준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이해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과 패괴된 정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사람이 넘어지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치 어렸을 적 걸음마를 배울 때 신체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발이 걸리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도 모든 사람을 잘 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어려움과 모든 사람의 나약함, 그리고 모든 사람의 필요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성품 변화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고 어떤 연약함이 생겨나고, 어떤 실패를 겪을지 잘 알고 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한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아무리 연약하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이 도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너는 언젠가 성품이 변화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성품이 변화될 기회가 있다면 살아남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살아남을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 변화를 위한 실행의 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