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바리새인들은 종종 회당에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해석하고, 사람들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이 매우 경건해 보여서, 사람들이 보기에도 성경에 어긋난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께 저주를 받았습니까? 그들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대적했으며, 무슨 이유로 하나님의 노기를 불러일으켰습니까?
성경 참고: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 15:3~9)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마 23:13~36)
관련된 하나님 말씀: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만 믿었을 뿐 생명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하고,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패괴된 사람은 모두 사탄의 올무에서 살아가고, 자신의 육, 그리고 사욕으로 살아가며, 내 마음에 합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내 마음에 합했다고 자칭하는 자들은 모두 막연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의 이름을 거룩하다 칭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도는 나와 상반된다. 그들의 말에는 교만함과 자신감이 가득 배어 있다. 그들은 본래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이고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날마다 성경에서 나의 종적을 찾으며, 내키는 대로 ‘적합한’ 구절을 찾아 하염없이 읊조리는가 하면, ‘경전’으로 삼아 외우기까지 한다. 그들은 내 마음에 합하는 방법을 모르고, 무엇이 나와 적대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성경’만 읽을 뿐이다. 그들은 아예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막연한 하나님을 성경에 국한시키고, 여유가 생길 때면 꺼내어 보곤 한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 안에서 내 존재를 믿는다. 그들은 ‘성경’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도 없다며 ‘나’와 ‘성경’을 동일시한다. 그들은 내 존재와 내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은 매우 각별하다. 심지어 적지 않은 이들이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경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글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성경 장절로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가늠하고,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성경 글귀에 부합하는 길이지, 내 마음에 합하는 길이나 진리와 합하는 길이 아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다 나의 사역이 아니라 여기니, 이런 자들은 바리새인의 충실한 자손들 아니겠느냐?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당시 예수의 마음에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찾지도 않으면서 율법 구절 하나하나는 진지하게 대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에게 구약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 메시야가 아니라는 죄명을 씌워 죄 없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진리와 합하는 길을 찾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 그들은 성경의 글귀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내 뜻과 내 사역의 절차와 방식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고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종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의 이익과 존엄성, 그리고 성경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인자하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단지 성경을 옹호하고, 또 성경의 글귀가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앞날을 망칠지라도, 속죄 제물을 얻을 수 없을지라도, 성경의 규정을 따르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성경 글귀의 앞잡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예수에 대한 바리새인의 판단
막 3:21~22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다
마 12:31~32(중국어성경 직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사람이 말로써 인자를 거스르는 것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
성경을 보면, 바리새인은 예수와 그가 행한 일에 대해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막 3:21~22)라고 평가했다. 예수에 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판단은 다른 사람을 따라 말하거나 터무니없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예수의 행사를 직접 보고 듣고 내린 결론이다. 비록 그들이 정의를 견지한다는 간판을 내걸어 그 결론에 근거와 이유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졌을지라도, 예수를 판단하는 그들의 위세는 그들 스스로도 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고만장했다. 예수를 증오하는 그들의 광기 어린 기세는 그들의 야심과 그들이 지닌 사악한 사탄의 몰골,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악독한 본성을 드러냈다. 그들이 예수를 판단한 그런 말들은 바로 그들의 야심과 질투, 그리고 진리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추하고 악독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행한 일의 근원, 예수의 말씀과 행사의 본질을 살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미친 듯이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예수의 모든 행사를 공격하고 비방했다. 심지어 예수의 그 영, 즉 성령이자 하나님의 영을 함부로 비방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입에서 나온 ‘그가 미쳤다’, ‘바알세불’, ‘귀신의 왕’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 하고,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의 사역을 미쳤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고 모독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모독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본질은 사탄, 악마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본질과 완전히 같다. 그들은 패괴된 인류를 대변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사탄의 화신을 대변했다. 그들은 인류 가운데 있는 사탄의 출구이자 사탄의 공범자이며 심부름꾼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비방하는 본질은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고 하나님과 맞서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본질,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그들의 태도, 그들 입으로 말한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한 모든 것들은 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고 노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 그들의 행위를 성령 모독죄로 정했다. 그 죄는 다음 성경 구절과 같이 금세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사함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바리새인은 과거 이스라엘에서 일종의 직함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일종의 꼬리표가 되었느냐? 그것은 한 부류 사람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냐? 구호만 외치고, 거짓과 포장, 위장에 능하다. 자신을 아주 고상하고 성결하고 올바르고 광명정대한 사람으로 가장하지만, 결국 진리는 전혀 실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행위를 하느냐? 성경을 읽고, 설교하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고 나쁜 일은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하나님께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착한 행동을 하고 뒤에서는 제물을 훔쳐 먹는다. 예수는 이들을 가리켜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라고 했다. 바로 그들이 행한 것은 모두 겉면의 좋은 행위라는 말이다. 그럴듯하게 구호를 외치고 고상한 이론을 떠들며 듣기 좋은 말만 하지만 정작 하는 짓은 엉망인데, 온통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뿐이다. 행위와 겉모습은 전부 거짓된 것이고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속으로는 전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싫어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싫어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의와 공평을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디에서 알 수 있느냐? (예수께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실 때 그들은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정죄했습니다.) 그들이 정죄하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겠느냐? 예수가 사역하러 오기 전에는 어떤 일들에서 그들이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느냐?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들의 행위를 보면 온통 가식적이다. 이런 가식적인 좋은 행위로 사람들을 속여 신임을 얻은 것이다. 이것은 허위적이고 간사한 것 아니냐? 이렇게 간사한 사람이 진리를 좋아할 수 있겠느냐? 그런 좋은 행위 뒤에 숨은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는 사람을 속이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을 미혹하고 구슬려 사람에게 높임 받고, 마지막에는 상까지 받으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속임수이냐. 수완이 대단하지 않으냐? 그런 사람들이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겠느냐?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지위, 명리 그리고 포상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가르친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실행하지 않고, 그중 단 하나도 살아 내지 못한다. 그저 가장하고 포장하여 사람들을 기만하고 구슬리고, 자신의 지위와 명망을 공고히 할 뿐이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자격을 만들고 밥그릇을 얻는다. 이것이 비열하지 않으냐? 이런 행위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본질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전혀 진리를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일에서 알 수 있느냐? 가장 큰 일, 예수가 사역하러 와서 한 말은 모두 옳은 말이고 진리인데, 그들은 어떻게 대하였느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느냐, 아니면 옳은 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느냐? (옳은 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그들이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씀은 모두 옳고 어느 하나 틀린 데가 없고 흠잡을 데도 없다. 그러다가 아무런 약점도 찾지 못하자 예수를 정죄하려 하였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자. 그를 살리면 우리가 죽으니, 우리가 살고 그를 없애야 하느니라.”라며 음모를 꾸몄다. 이렇게 겨룬 것이다. 예수를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도 예수는 좋은 사람이고 법을 어긴 것도 율법을 범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왜 예수를 정죄하려고 했겠느냐? 왜 예수를 그렇게 대했겠느냐? 그걸 보면 그들이 얼마나 사악하고 악독한지 드러난다. 그자들은 너무나 악한 자들이다! 그 바리새인들이 드러낸 사악한 몰골은 그들이 겉으로 꾸며낸 선량한 모습과 너무 거리가 멀다. 많은 사람이 그 진면목과 가면을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수의 현현과 사역으로 그들의 모습이 낱낱이 드러났다. 바리새인들이 평소에는 좋은 사람인 척하고 겉으로는 너무나 선량해 보이기 때문에 만약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진실을 꿰뚫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이 주로 어디에서 나타나느냐? 그들은 성경을 파고들기만 했을 뿐 진리를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기도하거나 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한 말씀과 행한 것을 연구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일종의 이론으로 바꾸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학설로 이용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파고든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했겠느냐? 그들은 무엇을 파고들었던 것이냐? 그들이 보기에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발현이 아니었으며 진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학문의 한 형태였다. 그들의 눈에는 그러한 학문은 전승되어야 하고 널리 전파되어야 하며, 오직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소위 ‘전도’이며, 그들이 전도한 것은 신학이었다.
…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습득한 신학과 이론을 일종의 지식, 사람들을 정죄하고 그들이 옳고 그름을 측정하는 도구로 취급했다. 그들은 심지어 신학과 이론을 예수님에게도 사용했다. 예수님은 그렇게 정죄받았다. 그들은 사람들의 본질이나 말하는 내용의 옳고 그름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하거나 대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하는 말의 출처나 유래에 따라 평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습득한 죽은 글귀나 이치에 근거해 사람들을 정죄하고 가늠했다. 그래서 이러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행한 일이 죄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말씀한 것이 그들이 익혔던 지식과 학문 그리고 그들이 상세히 설명했던 신학 이론과 상충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정죄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단어와 구절에 대한 집착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고 이러한 지식에 매달려 그것을 내려놓지 않았다. 결국 필연적인 결과는 무엇이었느냐? 그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올 메시아라는 것도, 예수님의 말씀에 진리가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았고 주 예수가 행한 일이 진리와 일치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한 근거 없는 죄명들을 찾았지만, 사실 그들은 마음속으로 그분을 정한 이러한 죄들이 타당하지 않음을 알고 있지 않았느냐?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여전히 그분을 정죄했겠느냐? (그들은 마음속에 있는 높고 큰 하나님이 평범한 인자의 모습을 가진 예수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것은 어떤 성격이냐? 여기에는 하나님과 이치를 따져보려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으냐? 그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럴 리가 있을까? 만약 하나님이 성육신 되었다면 틀림없이 출중한 가문에서 태어났어야 한다. 게다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지식을 배워야 하고 성경도 많이 읽어야만 해. 이러한 지식을 갖춘 후에야 ‘성육신’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거야.” 그들은 이렇게 믿었다. 첫째, 당신은 그와 같은 자격이 없다. 따라서 당신은 하나님이 아니다. 둘째, 이러한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행할 수 없다. 결국 당신이 하나님일 리 만무하다. 셋째, 당신은 성전 밖에서 사역할 수 없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성전에 있지 않고 항상 죄인들 가운데 있다. 따라서 당신이 한 일은 하나님의 사역 범위 밖에 있다. 그들이 정죄하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성경에서, 인간의 마음에서, 그리고 그들이 받은 신학 교육에서 나왔다. 그들은 관념과 상상 그리고 지식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지식이 옳으며 진리이고 근거가 되며 하나님이라면 이러한 것들을 결코 위배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그들은 진리를 구했느냐? 그들은 진리를 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구한 것은 그들 자신의 관념과 상상 그리고 그들 자신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규정하고 하나님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데 이러한 것들을 사용하려고 시도했다. 그 궁극적인 결과는 무엇이냐?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3)>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