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새 이름을 알게 되다

2022.01.29

대만 자오신

전 부모님 따라 어려서부터 주님을 믿었어요. 그래서 대학교도 교회에서 운영하는 데로 갔죠. 한번은 강의 시간에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성경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으니까 유일하신 구세주는 예수님뿐이고 예수의 이름은 영원불변하다면서 구원 얻을 수 있는 이름은 오직 예수라고 했죠. 저도 그 말을 굳게 믿었어요.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얻을 수 있으니까 예수의 이름은 절대 부인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성경 공부 모임이나 복음 소그룹 활동에도 열심히 갔고 예배나 설교 강의는 하나도 안 빠졌어요. 근데 점점 보니까 목사님이나 장로님 설교는 새로운 게 없고 고리타분만 한 게 영적으로 전혀 얻는 게 없었죠. 어떤 형제자매들이 소극적이 돼서 예배에 안 와도 붙들어주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또 어떤 사람은 예배 시간에 졸기만 하다가 끝나면 형제자매들한테 보험이나 물건을 팔았어요. 교회가 그렇게 돌아가는 걸 보니까 조금 화도 나고 실망도 컸어요. 제가 볼 땐 크리스천이 영적 생명이 자라길 추구해야지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좇는 게 무슨 크리스천인가 싶었어요. 게다가 목사님은 그런 걸 보고도 모른 척 하시더라구요. 그건 주님의 뜻이 아니죠. 그게 무슨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겠어요? 저도 오랫동안 갈급함을 해결받지 못해서 영적으로 메말라 갔고 거기다 일도 바쁘고 하니까 나중엔 아예 교회를 안 나갔어요. 그러니 좀 가책이 돼서 혼자 집에서 성경도 보고 기도하면서 지냈어요. 근데 목표와 소망이 없으니까 허전하고 막막했어요.

그러다 2017년 10월쯤에 온라인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자매님 두 분을 알게 됐어요. 두 자매님의 교제를 들었는데, 실제적이고 좋더라구요. 저도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주님의 말씀을 그렇게 분명하게 교제해주는 건 처음 들어봤어요. 확실히 성령 역사와 인도가 느껴졌어요. 그래서 자주 그분들과 온라인 예배를 드렸어요.

그러다 제가 좀 늦게 예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리 자매님이 교제를 하고 있었어요.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은 세 개 시대로 나뉘어요.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 사역을 하시고 새 이름을 지으시는데, 하나님은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시고, 사역을 대변하세요. 하나님의 사역이 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이름도 달라진 사역에 따라서 바뀌는 거죠. 예를 들면, 율법시대에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는 사역을 하셨는데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을 하실 때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가 아닌 ‘예수’로 바뀌신 거죠. 지금은 말세가 됐고, 하나님의 사역은 또 앞으로 발전했어요. 하나님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기초에서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 사역을 하셨어요. 은혜시대를 끝내시고 하나님나라시대를 여셨고,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도 바뀐 거죠. 이제는 예수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세요.” 전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 거부감부터 들었어요. 성경에 그랬잖아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예수님의 이름은 영원불변한 건데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게 성경에도 안 맞잖아?’ 이런 생각을 하는데, 리 자매님이 예를 하나 들어줬어요. 저보고 “자매님, 만약 회사에서 1년간 부장으로 일하셨다가 또 1년동안 상무로 일을 하시고 지금은 본부장이 됐다고 해보죠. 그럼 부장이든 상무든 본부장이든 그냥 업무에 따라서 직함만 바뀐 거잖아요. 업무가 바뀌니까 직함도 바뀌면서 예전에는 부장님, 상무님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본부장님이라고 부르겠죠. 그럼 직함이 바뀌었다고 사람도 바뀐 걸까요? 자매님은 그대로잖아요? 하나님께서 시대 별로 이름을 지으시는 것도 그런 거라구 하나님의 사역이 바뀌고 이름이 바뀌었어도 하나님은 같은 분이라구요.” 그러고 보니까 일리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긴 해도 예수님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건 못 받아들이겠더라구요. 그래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절대 설득당하지 않고 예수의 이름을 굳게 지키겠다고 다짐했죠. 그날 예배를 마치고 리 자매님 계정을 차단했어요.

근데 신기하게 다음 날 저녁에 어떤 분들이 와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하는 거에요. 근데 전 예수님의 이름이 바뀔 리 없다고 믿어서 그분들한테 반감만 들고 저한테 뭐라고 하든 대꾸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분들이 가시면서 그러더라구요. 주께서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고 하셨다고 제가 왜 거부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게 좋지 않겠냐구요. 그분들이 가고 나서 그 말이 계속 생각나 마음이 편하질 않더라구요. 돌아보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분들의 교제를 많이 들으면서 영적으로 정말 많은 걸 얻었거든요. 또 읽어줬던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역시 분명 진리고 성령의 말씀이었어요. 근데 이렇게 거절하는 건 진리를 구하는 자세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리고 예배 시간에 리 자매님이 교제했던 게 생각났죠. 그때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안다고 재림 주를 맞이하려면 주님의 음성을 알아야 한다고 했거든요. 슬기로운 처녀가 주님을 따르게 된 건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라구요. 은혜시대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른 것도 주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걸 알아들었기 때문이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얼른 성경 책을 펼치고 계시록 3장 20절 22절을 봤어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 두 구절 놓고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주님은 말세에 성령께서 말씀하시니 성령의 말씀이면 들으라고 하셨어요. 전 다행히 주님이 오셨다는 걸 듣게 됐는데, 계속 저만의 관념에 묶여 가지고 제가 모르는 거고 제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귀를 닫고 있었죠. 하나님 이름이 바뀌었다는 게 당장 이해가 안 돼도 확실히 알아보고 제대로 이해한 다음 결정해도 되잖아요. 그리고 마태복음 7장 7절을 봤어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정말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리는데, 제가 제 관념 때문에 마음 닫고 귀를 닫아버리고 귀 멀고 눈 먼 사람이 돼서 주님을 밀어낸다면 전 버림받게 되잖아요. 그날 밤엔, 복음을 거부한 게 마음에 걸려서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였어요. ‘내가 틀린 건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 재림주신가?’ 이런 생각에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주께 기도했어요. 절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달라구요.

그다음 컴퓨터를 켜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사이트를 검색했죠. 그리고 들어가서 봤는데, 하나님 이름에 관한 말씀을 찾았어요.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뀌었겠느냐?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왔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이 왜 바뀌게 되었느냐? 이는 이미 했던 사역이 아니냐? 그런데 하나님이 오늘날 새로운 사역을 하면 안 된단 말이냐? 과거의 사역도 바뀌었다. 여호와의 사역은 예수가 이어 갔건만, 예수의 사역은 또 다른 사역으로 이어질 수 없겠느냐?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뀔 수 있으면 예수의 이름도 바뀔 수 있지 않겠느냐?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머리가 너무 단순한 탓에 그렇게 느낄 뿐이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그의 사역이 어떻게 변하든, 그의 이름이 어떻게 변하든, 그의 성품과 지혜는 영원히 변치 않는다. 하나님은 반드시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네 식견이 너무 부족한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생각되는 게 많았어요. 율법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셨고 하나님은 그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이끄셨죠. 그러다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하실 때 하나님 이름은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뀌었잖아요. 그럼 이건 뭘까? 정말 주께서 재림하시면 새 이름이 있으실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 재림하신 예수신데 제가 알아보지 않아서 주님을 맞이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그건 너무 어리석잖아요.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다음엔 온라인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천 형제님이랑 연락이 됐어요. 그리고 예배 드릴 때, 제가 궁금했던 걸 물어봤어요. “형제님,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고 했으니 예수님의 이름은 바뀔 수 없잖아요. 그래서 재림하셔도 ‘예수’여야지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전 지금까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었는데, 어떻게 다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죠?” 천 형제님이 하나님 말씀을 보내주셨어요.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이 영원불변함을 뜻한다. 그의 이름과 사역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며, 이 사실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다. 너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의 6천 년 경륜이 끝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이 또한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그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할 수 있었겠느냐? 그가 영원불변하다면 왜 두 시대의 사역을 했겠느냐? …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다’는 말은 그의 사역을 두고 한 것이고,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는 말은 그의 고유한 소유와 어떠함을 두고 한 것이다. 어찌 됐든 너는 6천 년 사역을 어느 한곳에 고정해 두거나 케케묵은 말에 묶어 놓아서는 안 된다. 이는 사람의 어리석음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의 사역은 한 시대에 머물 수 없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사역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말씀을 다 읽고 형제님이 그러시더라구요. “‘하나님의 영원불변’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본질을 두고 한 말이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분이셔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계속 앞으로 발전하고, 그에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도 계속 바뀌는 겁니다. 근데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뀌든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은 영원히 바뀌지 않고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세요. 그건 변하지 않죠. 우리가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시다’라는 게 실제로 뭘 말하는지 모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늘 새롭다는 것도 모르면 자기 관념대로 쉽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단정 짓게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할 수 있어요. 과거 바리새인을 보면, 그들은 성경만 붙들고 메시야를 기다렸는데 정작 주님이 오셨을 때, 주의 이름이 메시야가 아니라 예수라는 이유로 주님을 부인하고 정죄했어요. 아무리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사역에서 권병과 능력을 보았어도 찾고 구하는 자세가 없었고 오히려 대적했고 나중엔 로마 정부와 손잡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죠. 오늘날 우리도 계속 성경만 붙들고 예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고 구주는 예수뿐이라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정죄한다면 바리새인이랑 똑같지 않겠어요? 그러면 쉽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성품을 거스를 수 있어요.”

이렇게 듣고 나니까 이해가 됐어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는 건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말하는 거지 하나님의 이름이 변함없다는 게 아녔어요. 보니까 목사님도 자기 관념에서 나온 걸 가르친 거였고 그들도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그러면서 형제님이 또 하나님 말씀을 읽어줬어요.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 사역을 하고 새 이름으로 불린다. 시대가 다른데 어찌 같은 사역을 행하겠느냐? 그가 어찌 낡은 것을 지키겠느냐? ‘예수’란 구속 사역을 위해 취한 이름인데, 말세에 재림해서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느냐? 또다시 구속 사역을 하겠느냐?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도 왜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겠느냐? 사역한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더냐?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그렇기에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고, 이름으로 시대를 대변한다. 어떤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하게 대변할 수는 없으며, 시대성을 띤 하나님의 성품만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역만 대변하면 충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적합한 이름 하나를 택해 한 시대 전체를 대변할 수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 제물임을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변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변할 뿐이다. …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이 거듭나고 구원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과 은혜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 대표적 의의가 있다. 즉, 각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표하며, 이스라엘 사람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다.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표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의 하나님 이름이다. 사람이 말세에도 구주 예수가 강림하기를 소망하고, 유대인의 모습 그대로 강림하기를 소망한다면, 전체 6천 년 경륜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구속시대에 머물 것이다. 또한 말세가 영영 도래하지도 않고, 시대를 끝내지도 못할 것이다. ‘구주 예수’는 단지 인류를 속량하고 구원하는 분이고, 내가 택한 ‘예수’란 이름은 단지 은혜시대의 모든 죄인을 위한 이름이지 온 인류를 끝내기 위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형제님이 이렇게 교제해줬어요. “하나님의 경륜은 세 개 시대로 나뉘는데, 하나님은 시대별로 한 단계의 사역만 하시고, 하나님의 한 부분 성품만 선포하시죠. 하나님이 각 시대에 지으신 이름도 해당 시대에 하나님이 하실 일과 나타내실 성품만 대표하는 거지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하는 건 아녜요. 율법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였어요.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을 대변하고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 긍휼과 저주의 성품을 상징하죠. 하나님은 그 이름으로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 사람의 삶을 이끄셨어요. 그래서 사람의 행동은 질서가 잡혔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을 알게 됐죠. 근데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사람은 사탄에 의해 더 심하게 패괴되면서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지경이 됐고, 정죄받고 죽어야 할 위기에 놓인 겁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율법 아래에서 구원하기 위해 말씀이 육신 되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하시면서 은혜시대를 여시고 율법시대를 끝내신 겁니다. 예수님은 회개의 도를 전하시면서 사람을 치유해 주시고, 죄를 사해 주셨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보여주셨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려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이루셨어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주의 이름으로 죄를 자복하는 자는 죄를 용서받게 됐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됐어요.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구속 사역일 뿐이지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말세 사역이 아니라서 우린 주님께 죄 사함을 받았어도 죄짓는 본성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죄를 자복하고 다시 죄짓는 생활을 반복하는 거죠. 또 계속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세상의 시류를 좇고 남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등 죄를 지으면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죄에서 완전히 건져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려고 말세에 또다시 육신으로 오셔서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시며 하나님나라시대를 여시고 은혜시대를 끝내셨어요.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바뀐 겁니다. 이로써 계시록의 예언이 이뤄진 겁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그제서야 제대로 알았어요. 말세에 주님이 오시면 새 이름이 있으시더라구요. 이 두 구절은 예전에도 봤는데, 그때는 왜 이걸 몰랐는지 여기서 보면 분명 주님이 말세에 오시면 새 이름이 있는데, ‘전능자’라고 하셨어요. 근데 전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이걸 붙들고 주의 이름은 불변하다고 규정하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거부하고 대적한 거에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너무 무지했어요. 하나님은 새 사역을 하실 때마다 새 이름을 지으시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고, 그 시대에 맞는 하나님의 사역과 성품을 대변하시는 거였죠. 하나님이 각 시대에 지으신 이름에는 깊은 의미가 있더라구요. 근데 제 관념대로 이름은 영원불변해서 말세에도 예수라고 불리면 하나님의 사역은 앞으로 발전할 수 없게 되고 영원히 은혜시대에만 머물게 되잖아요. 이걸 깨닫고 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하나님의 새 이름을 의심하지 않게 됐어요.

그리고 형제님이 또 하나님 말씀을 읽어줬어요. 『나는 여호와라고 칭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야로 불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 구주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예전에 알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와 시대를 끝내는 하나님이자 나의 모든 성품과 권병, 존귀, 영광을 가득 지니고 땅끝에서 나타난(원문: 興起)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도 없고, 나를 안 적도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이가 바로 말세에 사람들 앞에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생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마치 뜨거운 해 같고 불꽃 같으며,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다. 세상의 온갖 것이 나의 말에 심판받고, 불사름 속에서 정결케 될 것이다. 최후에 만국은 반드시 나의 말로 말미암아 복을 받기도 하고 산산이 부서지기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말세의 모든 사람은 내가 바로 돌아온 구세주이고, 온 인류를 정복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된 적이 있지만, 말세에는 또 만물을 불사르는 뜨거운 해와 같은 불꽃이자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태양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세에 행하는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택하고 이런 성품을 지닌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이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뜨거운 해이자 불꽃임을 알게 하고, 유일한 참하나님인 나를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도 아니고 구속주만도 아니라, 천지와 바닷속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인 내 본래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형제님이 계속 교제했어요.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나라 시대의 심판 사역을 하시면서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셨는데, 하나님의 인류 구원 경륜에 관한 비밀을 밝혀 주셨고 사탄에 의해 인류가 패괴된 실상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해부하셨고 패괴된 인류의 패역과 불의를 심판하셨어요. 또 말씀으로 사람이 성품 변화가 될 수 있는 길과 방향을 주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 시련 연단을 통해 죄악에서 정결케 된 사람은 대재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어요. 근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거부하고 심지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고 모독한 악인이나 적그리스도, 불신파들은 대재난을 피하지 못하고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징벌과 멸망을 맞이하죠.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하신 건 인류에게 공의와 위엄,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이시면서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벗겨서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기 위한 거에요. 또 각 사람을 부류대로 나누고 이 사악한 세대를 끝내시고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6천년 경륜을 이루신다는 의미에요. 또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고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말씀과 사역으로 인류를 인도하시고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실 수도 있고, 사람을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실 수도 있는 분이란 걸 보여주시기 위한 거에요. 하나님은 처음이시자 나중이시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와 전능과 지혜는 측량할 수 없어요. 이게 하나님나라시대에 이름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하신 의미에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 그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생명의 생수를 공급받을 수 있어요. 지금 은혜시대 교회를 보면 유례없는 기근 현상이 나타났어요. 신자들의 믿음은 식었고, 설교자는 할 설교가 없고, 기도해도 감동이 없고 점점 많은 사람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다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해서고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아서죠. 그래서 생명의 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어둠에 빠져서 헤매고 있는 거에요.”

이걸 듣고 깨달았어요.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예수님은 한 분이셨어요. 다만 각기 다른 시대에 행하신 사역이 다르고 이름이 다를 뿐이었죠.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뀌든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은 변치 않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이 각 시대에 다른 이름을 지으신 것도 의미가 있었어요. 하나님나라시대에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하시고 말세에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 사역을 하셨는데, 이건 우리가 죄악에서 벗어나 구원받는 데 너무 중요한 거였어요. 그동안 제가 예배를 가도 얻지를 못하고 형제자매들의 믿음은 식고, 설교자가 할 설교가 없게 된 건 다 성령의 역사가 옮겨졌기 때문이었어요. 우리가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지 못하고, 하나님 현재의 말씀을 공급받지 못해서 어둠에 빠져 있었던 거더라구요. 그제서야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재림 예수라고 확신하게 돼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였어요. 그 뒤로, 매일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생명의 생수를 부음받게 됐고, 어린양의 잔치에 참석하게 됐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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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커무 2017년 초에 아내랑 아이가 한국에 왔어요. 전 너무 좋았죠. 근데 언어나 생활 환경이 다르니까 아내가 한동안 적응을 못하더라구요. 나이 드신 부모님을 두고, 직장까지 그만두고 친구두 없구 친척도 없는 이국 땅에 오니까 다 낯설고 힘들...

나는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찾았다

멍아이(蒙愛) 대만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예수는 인간 세상에 와서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열었다. 말세에 하나님은 다시 성육신하였으며, 이번 성육신은 은혜시대를 끝내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를 열었다. 두 번째 성육신을...

성경이 주님을 대변하는가?

샹왕(向往) 말레이시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곧 생명이고 진리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공존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면 절대로 생명도 얻지 못한다. 진리로 인도하고 붙들고 공급하는 일이 없다면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하며

Mikha 인도 전 어려서부터 평생 주님을 섬기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3년간 신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거기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됐죠. 복음을 받아들이고 빨리 주의 재림 소식을 아버지한테 전하고 싶었어요. 저희 아버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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