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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증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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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증거는 무엇인가?

성경 참고: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욥 1:20~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 22:2~3, 9~10)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5)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가 하나님이 맡긴 일을 완수하고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위해 계산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너희가 가장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의 지기이자 하나님 자신이다(사실 그는 하나님이 증거한 하나님 자신이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은 그 사실로 한 가지 일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경륜을 중심으로 늘 아버지께 기도하고 아버지의 뜻을 구하였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만일 당신의 뜻이라면 이루소서. 제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계획대로 하소서. 사람이 연약하긴 하나 당신께서 어찌 그것까지 헤아리시나이까? 당신 손안의 개미와도 같은 사람이 어찌 당신의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겠나이까? 저의 마음은 오직 당신의 뜻을 이루기 원하오니, 원컨대 당신의 뜻에 따라 제게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소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예수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그는 계속 어떤 큰 힘에 이끌려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될 곳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인의 형상으로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수하고, 모든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사망, 지옥, 음부는 그의 앞에서 위력을 잃고 그에게 패하였다. 그는 33년의 생애 동안, 하나님이 그 당시에 했던 사역에 맞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개인의 득과 실을 따지지 않고 항상 아버지의 뜻을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가 세례를 받은 뒤에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전 인류를 속량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그로 하여금 완수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완수할 자격과 권리가 있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마땅히 하나님의 지기(知己)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이고, 하나님께 일편단심 충성하는 자여야 한다. 사람 뒤에서 한 일이든 사람 앞에서 한 일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더 굳건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너에게 어떻게 하든 너는 항상 네가 가야 할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해야 비로소 하나님의 지기인 것이다. 하나님의 지기가 직접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그에게 하나님이 맡겨 준 중책과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간직하고, 하나님의 부담을 자기의 부담으로 생각하며, 앞날을 고려하지 않는다. 설사 아무런 미래도 없고 앞날에 그 무엇도 얻지 못할지라도, 그는 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의 지기인 것이다. 하나님의 지기는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이다. 하나님의 지기만이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한다. 비록 육체가 고통스럽고 연약할지라도 그 고통을 인내하며 하나님을 흡족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더 많은 사명을 주며, 하고자 하는 것을 이런 사람을 통해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기는 자이다. 이러한 자만이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을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중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고자 했으며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에 순종하고자 했다. 그는 형벌,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연단, 환난, 궁핍한 생활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것이 아니냐? 이것이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한 것이 아니냐? 형벌이든 심판이든 환난이든 너는 죽기까지 순종하는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도달해야 하는 경지이자, 사랑 안에 있는 순결함이다. 사람이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그것은 합당한 자격을 가진 피조물이다. 이것이 창조주의 마음을 가장 흡족하게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사람들은 베드로라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 그는 내 말을 먹고 마시는 것을 중시했고, 더욱이 내 뜻을 찾는 것을 중시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늘 신중했기에 영은 언제나 민첩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내 뜻에 부합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실패의 사슬에 매이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에 평소에 지난날 실패한 사람들의 교훈을 중시하며 자신을 다그쳤다. 그는 또한 역대로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을 본받는 것을 중시했다. 그런 까닭에 부정적인 면을 통해, 더 중요하게는 긍정적인 면을 통해 더 빨리 성장하였으며, 나아가 내 앞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손에 맡기고 의식주마저도 자신의 성미대로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에서 나를 만족게 하고 내 풍요로움을 누렸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베드로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베드로 또한 그 시련 속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 베드로는 수백 번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믿음을 잃고 나에 대해 실망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고 말했을지라도, 그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 원칙에 따라 나를 실제로 사랑했다. 나는 베드로에게 그가 나를 사랑할지라도 칭찬하지 않을 것이고 마지막에는 그를 사탄의 손에 내버릴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육신에 실제로 임하지는 않는 이러한 말씀의 시련 속에서도 베드로는 여전히 나에게 기도했다. ‘하나님, 천지 만물 중에 어떤 사람, 어떤 사물, 어떤 일이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겠나이까? 당신이 저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 저의 마음은 당신의 긍휼로 매우 기쁘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려 하실 때, 저는 자격이 없지만 당신의 행사가 얼마나 심오한지 더욱 느끼나이다. 이는 당신께 권병과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나이다. 제 육체는 고통받지만 영은 위로를 받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와 행사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제가 당신을 알고 난 후에 죽게 된다 해도 어찌 기꺼이 원하지 않겠나이까? 전능자시여! 당신은 정말 저에게 보이기 싫어하시나이까? 저는 정말 당신의 심판을 받을 자격이 없나이까? 혹시 저에게 당신이 보고 싶지 않으신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니나이까?’ 베드로는 그런 시련 속에서 나의 뜻을 정확하게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쓰임 받는 것으로(나에게 심판받아 사람들이 나의 위엄과 진노를 볼지라도) 스스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고, 시련으로 고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내 앞에서 보인 충성심, 그리고 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모범과 본보기가 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6편> 중에서

『욥은 처음의 시련에서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로 인해 무너지지 않았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 냈고, 재산과 자녀 그리고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는 시련을 이겨 냈다. 다시 말해, 욥은 하나님이 그의 소유를 거두어 간 것에도 순종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감사와 찬양까지 드릴 수 있었다. 이것이 욥이 사탄의 첫 번째 시험에서 보여 준 것이며, 또한 욥이 하나님의 첫 번째 시련에서 증거한 것이다. 두 번째의 시련에서 사탄은 손을 뻗어 욥에게 갖은 해를 가했다. 욥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고통을 겪었을지라도 그의 증거는 오히려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는 그의 강인함과 믿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심으로 또 한 번 사탄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가 보여 준 것과 증거한 것 역시 또 한 번 하나님께 인정받고 열납되었다. 이번 시험에서 욥은 자신의 실제 행동을 통해 사탄에게 선포했다. 육체의 고통으로도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순종을 변하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과 경외심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선포한 것이다. 또한 죽음에 이르렀어도 하나님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버리는 일 또한 없을 것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욥의 의연함을 본 사탄은 겁이 났다. 욥의 믿음으로 사탄은 두렵고 간담이 서늘해졌으며, 사탄과 사생결단하겠다는 욥의 기세를 보고 침통해졌다.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에 사탄은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래서 사탄은 욥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짓을 그만두었다. 이것은 욥이 세상을 이기고, 육체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사망을 이겨 하나님께 속한 완전한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욥은 그 두 차례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섰으며,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실제로 살아 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의 생존 법칙의 범위 역시 확장될 수 있었다. 그 두 번의 시련을 겪은 후, 욥은 인생에 더욱 풍부한 경험이 생겼다. 이 ‘경험’으로 인해 그는 더 성숙해지고 원숙해졌으며, 더 강인해지고 더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또한, 자신이 지키고 있는 순전함의 정확성과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으로 욥은 사람을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게 되었으며, 하나님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로부터 욥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이 더 추가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에 욥은 천 리 밖으로 밀려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 욥은 육체의 고통이 극한에 달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보살핌을 느끼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게 되었다. 그런 모습은 욥이 일찍이 계획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다. 욥의 그 ‘자연스러운 발현’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욥은 자신을 미워했고, 하나님이 고통받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잊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때의 욥은 오랜 세월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데서 헤아리고 사랑하는 경지로 자신을 승화시켰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순종과 경외심을 헤아림과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상처 주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이 슬퍼하거나 상심하는 것은 물론, 괴로워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눈에 욥은 여전히 변함없는 욥이었지만, 그의 믿음과 순종,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하나님은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되었다. 그때의 욥은 하나님이 기대했던 완전함에 이르렀으며, 하나님 눈에 명실공히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욥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으로 사탄을 이겼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섰으며, 온전하게 되었고, 자신의 생명 가치를 승화시켰으며, 초월하게 되었다. 또한, 더 이상 사탄에게 공격받지 않고 시험당하지 않는 사람의 첫 사례가 되었다. 욥은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에게 참소당하고 시험당했으며,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의 손에 넘겨졌고, 또한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이기고 사탄을 물리쳤으며 굳게 섰다. 그로부터 욥은 더 이상 사탄에게 넘겨지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으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빛 속에서 살고, 사탄의 감시와 해가 없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눈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고, 자유로워졌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너는 네가 정복되었다고 말하지만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느냐? 너는 앞날에 희망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를 수 있고, 어떤 환경에서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두 가지 증거, 즉 죽기까지 순종했던 욥의 증거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베드로의 증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욥과 같아야 한다. 욥은 물질적인 것을 다 잃고 육체에 질병의 고통이 임했어도 여호와의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이것이 욥의 증거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다.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도 하나님을 사랑했다. 그는 자기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스러운 것들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기를 추구했다. 네가 이런 기준에 도달해야만 증거했다고 할 수 있고,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2> 중에서

『도대체 참된 간증이란 무엇이냐? 여기에서 말하는 간증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정복된 간증이고, 다른 하나는 온전케 된 간증이다(물론 이것은 미래에 더 큰 시련이나 환난을 겪은 후의 간증을 말함). 즉, 네가 환난과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다면 두 번째 부분의 간증을 하는 것이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첫 번째 부분을 간증하는 것이다. 즉, 연이은 형벌과 심판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복된 간증이다. 지금은 정복되는 기간(너는 지금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성육신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주된 사역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심판과 형벌로 정복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이기 때문이다. 네가 정복되었음을 간증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다. 또한, 더 중요하게는 네가 각 단계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는지, 이 모든 사역을 진정으로 알 수 있는지에 달렸다. 끝까지 따른다고 해서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한번 또 한번 반복되는 형벌과 심판에 기꺼이 복종하고, 네가 체험하는 단계별 사역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최종적으로 해야 할 정복된 것에 대한 간증이다. 정복되었음을 간증한다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해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간증의 핵심은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한 것이다. 네가 세상 사람이나 집권자들 앞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사역에 순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이 단계의 간증은 사탄과 모든 원수를 ―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하여 더 큰 사역을 한다는 것과 하나님이 육신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모든 마귀와 원수, 즉 모든 적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는 모든 원수를 ―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의 간증은 네가 온전케 될 수 있는지를 간증하는 것이다. 즉, 네가 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이해한 다음, 하나님을 알고, 확신하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살아 냄으로 하나님이 너에게 요구하는 ‘베드로의 풍격’, ‘욥의 믿음’, 이런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죽기까지 순종하고 자신을 온전히 바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겪어 정복되고 온전케 된 사람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종적인 간증이고, 궁극적으로 온전케 될 사람이 해야 할 간증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4> 중에서

『하나님을 위해 힘 있게 증거하는 것은 주로 네게 실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지, 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에게 순종할 수 있는지, 나아가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지와 관계된다. 네가 정말 이러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한다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뜻한다. 죽기까지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한 마디의 원망도 하지 않고, 판단도 비방도 하지 않으며, 관념도 다른 속셈도 갖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영광을 얻을 것이다. 사람들이 경시하는 평범한 사람에게 죽기까지 순종하고 전혀 관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참된 증거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입하라고 요구하는 실제는 그가 하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그것을 실행하며, 실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의 패괴를 깨닫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이러한 말씀을 통해 그에게 얻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에 네가 정복되어 그에게 완전히 순종한다면, 그때 하나님은 영광을 얻게 되며, 그것을 통해 사탄에게 수치를 주고 사역을 끝마칠 것이다. 성육신한 하나님의 실제에 대해 관념이 없다면, 즉 네가 그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다면, 너는 잘 증거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실제’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중에서

『하나님이 왔으니 사람은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엄하든,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서 왔다.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고,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며, 시련이 있을 때마다 사람에게 있어야 하는 간증을 지키고, 하나님을 위해 힘 있게 증거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기는 자다. 하나님이 어떤 연단을 주든 너는 믿음이 넘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바로 사람이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고 항상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기는 자다.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탄의 포위 공격 아래에서, 즉 흑암 세력 속에서도 굳게 설 수 있고 원래의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킬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을 지킬 수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을 지키라> 중에서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다. 또한 사람의 안배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과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그 배후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었지만 욥에게 닥친 것은 사람의 행위요, 사람의 방해였던 것과 같다. 너희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고, 모두 싸움이 있다. 예를 들어, 네가 형제자매에게 편견이 생겨 무슨 말을 하고 싶지만 하나님이 기뻐할 것 같지 않고, 또 말하지 않으면 내적으로는 괴롭다. 이때 내면에서 싸움이 시작된다. ‘말할까, 하지 말까?’ 이것이 바로 싸움이다. 그래서 모든 일이 임할 때마다 싸움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면에서 싸움이 벌어졌을 때, 하나님은 너의 실제 협력과 실제로 받는 고통을 통해 네게 사역한다. 결국 너는 내면에서 그 일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 화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 역시 네가 하나님과 협력한 효과이다. 어떤 일을 하든 일정한 피땀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실제로 받는 고통이 없이는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을 만족게 한다는 말이 아예 성립되지 않으니 빈 구호를 외치는 격이다! 빈 구호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느냐? 사탄이 영계에서 하나님과 싸울 때,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할까? 일이 닥칠 때마다 네게는 그것이 큰 시련이자 하나님이 네가 증거하길 바라는 때임을 알아야 한다. 겉으로 봤을 때 큰일이 아닌 것 같아도, 일단 그런 일이 닥치면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하지 않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자요, 진리도 생명도 없는 쭉정이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일이 닥칠 때마다 그때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할 때이다. 지금 네게 큰일이 닥치지 않아 별로 크게 증거한 것은 없지만, 일상의 사소한 부분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이 탄복하고, 가족이 탄복하고, 주위 사람들이 탄복하게 하여라. 이방인이 와서 네 모든 행위에 탄복하며 하나님이 행한 것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보게 되는 날이 오면, 너 자신이 바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네가 식견이 없고 자질이 부족해도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면, 너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자질이 가장 부족한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이렇게 엄청난 사역을 보고 사람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사탄 앞에서 이기는 자가 된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이들은 가장 기개 있는 자들이 된다. 이것이 최고의 간증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지금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도 좋고, 외적인 인성의 변화, 자질 향상을 추구해도 좋다. 하지만 가장 주된 것은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이 의미 있고 이로운 일임을 아는 것이다. 그래야 너는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더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더러움을 떨쳐 버릴 수 있으며,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사탄의 어두운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너는 그 일들을 중요하게 여김으로써 더러운 땅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너는 궁극적으로 어떤 간증을 해야 할까? 네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거룩해질 수 있고 더 이상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태어났지만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탄에게 점령되지 않고, 사탄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지 않으며 전능자의 손안에서 살게 되었다는 간증이다. 이것이 바로 간증이고 사탄과 싸워 이긴 증거이다. 네가 사탄을 저버릴 수 있으면 네가 살아 내는 것에서 사탄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 즉 사람에게 요구한 정상 인성, 정상적인 이성과 정상적인 식견,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정상적인 의지,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이 해야 할 간증이다. 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하나님이 우리를 정복하심으로 인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났습니다. 지금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복하심으로 인해 얻은 효과이지, 우리 자신이 좋아서도 아니고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고 예정하셨기에 우리가 오늘 그분에 의해 정복되고, 그분을 증거하고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그분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보호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받고,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더러움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었습니다.” 또 너의 겉모습에 정상 인성이 드러나는지, 이성적으로 말하는지, 정상인의 모습으로 사는지 보아라. 또 다른 사람들이 너를 보고 “이건 큰 붉은 용의 모습이 아닌가?”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여라! 자매가 자매답지 못하고 형제가 형제답지 못하고 성도로서의 품위가 하나도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쩐지 하나님께서 저들을 모압의 후손이라고 하시더니 그 말이 틀림없구나!”라고 말할 것이다. 만일 누군가 너희를 보고 “하나님이 당신들을 모압의 후손이라고 하셨지만 당신들이 살아 낸 것은 당신들이 이미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났음을 증명해 주는군요. 또한 당신들 안에 그런 것이 있기는 하지만 사탄을 저버릴 수 있어 당신들이 철저히 정복되었음을 말해 주는군요.”라고 말한다면, 정복되고 구원받은 너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모압의 후손인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비록 과거에는 모압의 후손이 버림받고 저주받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방으로 쫓겨났지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심하게 패괴된 사람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권세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을 증오하며 조상을 저버리고 싶습니다. 그들을 철저히 저버리고 하나님의 모든 배치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모압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아 하나님께 미움받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므로 다시는 하나님을 배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옛 조상을 저버려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2> 중에서

『하나님이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기만 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행사가 아니냐? 이것이 가장 강력한 증거다! 하나님이 사역한 결과, 봉사만 하게 한다는 말씀이나 형벌한다거나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사람이 떠나가지 않게 된다면, 그 사람은 정복된 것이다. 실제 체험 중에 굳게 서거나 입장을 지킬 수 있고, 하나님 편에 서서 절대 떠나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정상 관계가 있고, 일이 닥쳐도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진리가 있는 것이다. 실생활에서의 실행과 발로가 바로 하나님의 증거다. 이것이 사람이 살아 내는 모습이요, 하나님의 증거이면,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체험하면 효과를 본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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