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알아 가는 데 관한 말씀

2017.05.31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께는 하나님 자신의 어떠함과 소유가 있고, 하나님이 선포하고 드러내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본질과 신분을 대변한다. 그런 어떠함과 소유, 본질, 신분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성품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 위로, 증오도 있고, 더욱이 인류에 대한 철저한 이해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에는 명랑함, 활발함 혹은 무감각함이 있다. 하나님의 성품은 만물 생령을 다스리는 주재자가 갖고 있는 성품이자 창조주가 갖고 있는 성품이다. 그의 성품은 존귀함과 권세를 대변하고, 고상함과 위대함을 대변하며, 더욱이 지고지상함을 대변한다. 그의 성품은 권병의 상징이자 모든 정의와 아름다움, 선함의 상징이며, 더욱이 모든 적대 세력과 흑암이 압도하거나 침해할 수 없음을 상징하고, 또 그 어떤 피조물도 거스를 수 없음(또한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음)을 상징한다. 그의 성품은 최고 권력을 상징하며, 어떤 한 사람이나 어떤 사람들도 그의 사역과 성품을 방해할 수 없고 또 그럴 능력도 없다. 사람의 성격은 동물보다 조금 우월함을 상징할 뿐 사람 자체는 권병도 없고, 자주적이지도 못하며, 자아를 초월하는 능력도 없다. 그저 나약하게 모든 사람, 일, 사물의 지배를 받는 본질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정의의 존재와 탄생, 광명의 존재와 탄생에 기뻐하고, 흑암과 사악이 멸해지는 것 때문에 기뻐하며, 그 자신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광명과 아름다운 삶 때문에 기뻐한다. 그의 ‘희(喜)’는 정의로운 것으로,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존재를 상징하고, 더욱이 상서로움의 상징이다. 하나님은 정의롭지 않은 사물의 존재와 교란이 그의 인류를 침해하는 것 때문에 노하고, 사악과 흑암의 존재, 그리고 진리를 몰아내는 일의 존재 때문에 노하며, 더욱이 아름답고 선한 사물에 대항하는 사물의 존재 때문에 노한다. 그의 ‘노(怒)’는 모든 부정적인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상징하고, 더욱이 그가 본래부터 거룩함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그가 기대했던 인류가 흑암 속에 떨어지고 그가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이 그의 뜻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슬퍼하고, 그가 사랑하는 인류 전체가 광명 속에서 살지 못하는 사실에 슬퍼한다. 또 그는 무고한 인류 때문에 슬퍼하고, 정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 때문에 슬퍼하며, 선량하지만 주관이 없는 사람 때문에 슬퍼한다. 그의 ‘애(哀)’는 그의 선량함과 긍휼의 상징이자 아름다움과 인자함의 상징이다. 그는 원수를 물리치고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얻는 것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은 물론, 모든 적대 세력을 몰아내고 멸하는 것 때문에 즐거워한다. 또 그는 인류가 아름답고 평안한 삶을 얻는 것으로 인해 즐거워한다. 그의 ‘낙(樂)’은 사람의 희열과 달리 아름다운 열매를 얻는 즐거움이며, 이는 희열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이다. 그의 ‘낙’은 인류가 앞으로 고난받지 않음을 상징하고, 또 인류가 광명의 세계로 들어감을 상징한다. 반면 인류의 희로애락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지 정의나 광명, 아름다운 사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내리는 은혜를 위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인류의 희로애락은 이기적이다. 그것은 어두운 세계 속에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결코 하나님과 나란히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고지상하고 존귀하며, 사람은 영원히 미천하고 한 푼의 가치도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류를 위해 대가를 치르고 헌신하지만, 사람은 모두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요구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류의 생존을 위해 힘써 일하지만, 사람은 결코 정의와 광명을 위해 무언가를 바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잠시 노력한다 해도 작은 일에도 견디지 못한다. 사람의 노력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사심이 없다. 하나님은 모든 정의와 아름다움, 선함의 시작이고, 사람은 모든 추함과 사악함의 계승자요, 발현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정의롭고 아름다운 본질을 영원히 바꿀 리 없지만,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정의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나는 공의롭고, 신실하며,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내가 곧 드러낼 것이다. 당황하지 말라. 모든 것에는 다 나의 때가 있다. 누가 진심으로 나를 원하는지, 누가 진심으로 나를 원하지 않는지, 내가 하나하나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너희는 잘 먹고, 잘 마시고, 내 앞에서 나를 가까이하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된다. 나의 일은 내가 직접 할 것이다. 속히 일을 이루려 하지 말라. 나의 사역은 단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그 속에는 나의 절차와 지혜가 있다. 그러므로 나의 지혜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내 손이 하는 일, 즉 선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를 벌하는 것을 보여 주겠다. 나는 절대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자라면 나 역시 진심으로 사랑할 것이며,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면 내 진노가 영원히 그와 함께할 것이다. 이로써 내가 바로 참하나님,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보이지 말라. 나는 너의 모든 행위를 낱낱이 보고 있다. 너는 사람을 속여도 나를 속이지 못한다. 내가 전부 꿰뚫어 보고 있는데도, 나를 속이려 들다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것은 내 손안에 있다. 너 자신이 총명하다고, 이해타산에 능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너에게 알려 주겠다.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결국에는 내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 만사와 만물은 다 내 손안에 있거늘, 사람 하나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 피하지도 숨지도 말고, 속이거나 감추지도 말라. 내 영광의 얼굴과 진노, 심판이 공개되고 드러났건만, 아직도 보지 못한 것이냐? 진심으로 나를 원하지 않는 자들을 나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즉시 심판할 것이다. 나의 긍휼은 한계에 도달해 더는 존재하지 않으니, 더 이상 외식하지도, 함부로 날뛸 생각도 하지 말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44편> 중에서

나는 말을 하면 반드시 책임을 지고, 책임지는 이상 반드시 이루며, 아무도 바꿀 수 없다. 이는 절대적인 사실이다. 예전에 한 말이든, 앞으로 하게 될 말이든, 하나하나 다 이루어질 것이고, 모든 사람이 이를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 사역하는 원칙이다. … 온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중에 내가 결정하지 않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 내 손에 달려 있지 않은 일이 있느냐? 내가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사람 중에 나의 뜻을 바꿀 수 있는 자가 있느냐? 땅에서 세운 나의 언약으로 가능하겠느냐? 그 무엇도 내 계획이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나는 한순간도 나의 일을 행하지 않거나 나의 경영을 계획하지 않은 적이 없다. 사람 중에 참견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다는 말이냐? 내가 친히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냐? 오늘 이 경지에 들어선 것도 나의 계획과 예상대로 된 것이다. 이는 내가 일찍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너희 중에 이 단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나의 백성은 나의 음성을 들을 것이고,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편> 중에서

나는 맹렬한 불이니 거스르는 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내가 만든 존재이므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 반항하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내 일에 간섭할 권리가 없으며, 내 사역과 내 말의 옳고 그름을 분석할 자격은 더더욱 없다. 나는 창조주이다. 피조물은 마땅히 나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내 모든 요구에 부응해야 할 것이며, 이치를 따져서도, 나아가 나를 대적해서도 안 된다. 나는 나의 권병으로 내 백성들을 다스리니, 내가 만든 피조물들은 모두 내 권병에 순종해야 한다. 오늘날, 너희가 비록 내 앞에서 겁 없이 방자하게 굴고, 너희를 훈계하는 나의 말을 거역하면서도 두려운 줄 모르고 있지만, 나는 오직 인내로 너희의 패역에 대응할 뿐이다. 나는 보잘것없는 구더기들이 거름 더미를 뒤집는다고 해서 크게 화를 냄으로 내 사역에 영향을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위해 내가 심히 증오하고 혐오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를 참고 있다. 이는 내 말이 끝날 때까지, 내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낙엽이 뿌리로 돌아갈 때 네가 행한 모든 악행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중에서

네가 나를 섬기기로 다짐한 이상, 나는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악을 증오하는 하나님이자, 사람을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네가 너의 말을 내 제단 앞에 놓은 이상, 나는 네가 내 눈앞에서 도망치는 꼴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며, 두 주인을 섬기는 것 또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네 말을 내 제단 위에, 내 눈앞에 놓은 후에는 다른 것을 사랑해도 된다고 생각했느냐? 사람이 그런 식으로 나를 놀리는 것을 내가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함부로 네 그 혓바닥을 움직여 내게 소원을 빌고 서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네가 어찌 나, 지극히 높은 자의 보좌를 가리키며 서원할 수 있단 말이냐? 너는 네 서언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느냐? 내가 알려 주겠다. 너희의 육체는 사라져도 너희의 서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 때에 나는 너희의 서원에 따라 그 죄를 정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말만 늘어놓고 대충 넘어가면서 마음으로는 그 더러운 귀신과 악령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분노가 어찌 그 개돼지 같은 놈들의 기만을 용납하겠느냐? 나는 나의 행정 법령을 집행할 것이다. 낡은 틀에 박혀 나를 믿는 그 ‘경건한’ 자들을 더러운 귀신의 손에서 되찾아 와 순순히 나를 ‘섬기게’ 하고 언제든 내게 도살될 수 있는 내 우마가 되게 할 것이다. 나는 네가 과거의 다짐을 모두 찾아 다시 나를 섬기게 할 것이고, 어떤 피조물도 나를 기만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내 앞에서 함부로 요구하고 거짓을 입에 담아도 된다고 생각했느냐? 내가 네 말을 듣지 못하고 네 행위를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네 언행이 어찌 내 눈을 벗어날 수 있겠느냐? 사람이 그런 식으로 나를 기만하는 것을 내가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나는 유일한 하나님 자신이고, 유일한 하나님의 본체이다. 나, 곧 이 육신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완벽한 발현이다. 누가 감히 나를 경외하지 않겠고, 누가 눈빛으로 나와 맞서겠으며, 누가 입으로 나를 대적하겠느냐? 그런 자는 반드시 내 저주와 진노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진노가 있으므로 저주함). 또 누가 감히 나에게 불충하고 불효하며, 허튼수작을 부리겠느냐? 그런 자도 반드시 나의 증오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다. 나의 공의와 위엄, 심판은 영원히 세세토록 존속할 것이다. 처음에 나는 자비와 긍휼이었지만, 이는 내 완전한 신성의 성품이 아니다. 공의와 위엄, 심판이야말로 나, 완전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이다. 은혜시대에 나는 자비와 긍휼이었다. 그때 내가 자비와 긍휼을 지녔던 것은 완성해야 할 사역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는 더 이상 자비니 긍휼이니 할 필요가 없어졌다(앞으로도 없을 것임). 오직 공의와 위엄, 심판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정상 인성에 완전한 신성이 더해진 완전한 성품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79편> 중에서

선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를 벌하며, 나의 공의를 시행하고 나의 심판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말로 모든 것을 이루고, 모든 사람과 사물로 하여금 형벌을 내리는 내 손맛을 느끼게 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나의 모든 영광과 모든 지혜, 나의 완전함을 보게 하리니, 아무도 감히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내게는 모든 것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로써 모든 사람에게 나의 모든 존귀를 보게 하고, 나의 온전한 승리를 직접 보게 할 것이다. 내게는 모든 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의 큰 능력과 권병을 볼 수 있다. 감히 범할 자가 아무도 없고, 감히 막을 자가 아무도 없다. 내게는 모든 것이 열려 있거늘 누가 감히 덮어 가리겠느냐? 그런 자는 내가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나는 천박한 자들을 반드시 중형으로 처벌할 것이고, 그러한 인간 말종을 반드시 내 시야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다. 또한 그런 자를 철장(鐵杖)으로 다스리고, 나의 권병으로 인정사정없이 심판할 것이다. 나는 인간처럼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며, 위엄 있고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가 이 점을 인식하고 깨달아 ‘아무 이유 없이’ 내게 죽임을 당하거나 파멸되는 일을 피해야 할 것이다. 나의 채찍은 나를 거스르는 모든 이를 친다. 그자가 나의 행정 법령을 알든 모르든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나의 본체는 거스르는 자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사자라고 일컫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자는 내가 반드시 칠 것이다. 지금에 와서 나를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는 원래 양이 아니라 사자이니 누구도 거슬러서는 안 된다. 누군가 나를 거스른다면 사정 봐주는 일 없이 당장 죽일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20편> 중에서

나의 음성이 바로 심판이고 진노이다. 그러니 누구에게든 사정을 봐주는 일이 없고 누구든 가차 없이 대할 것이다. 나는 공의로운 하나님 자신이며, 진노와 불사름, 정결함, 그리고 파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숨김도, 감정도 없이 전부 공개하며 공의롭고 공평무사하다. 나의 장자들이 이미 나와 함께 보좌에 올라 만국 만민을 다스리므로 불공정한 일들과 불의한 자들이 심판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철저히 조사하여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드러낼 것이다. 나의 심판이 이미 남김없이 드러났고, 모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뜻에 맞지 않는 자를 무저갱에 내던져 그 속에서 영원히 멸망하게 하고, 불사름 당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공의이자 정직이다. 이는 아무도 바꿔 놓을 수 없으며, 반드시 내 것에 따라 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03편> 중에서

나는 일찍이 각종 악령의 행위를 하나하나 철저히 조사하였으며, 악령이 쓰는 대상(불순한 의도를 지닌 자, 육체를 탐하는 자, 재물에 연연하는 자, 자신을 높이는 자, 교회를 교란하는 자 등) 또한 전부 똑똑히 보았다. 악령을 쫓아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알려 주마! 나는 지금부터 이런 자들을 하나하나 처단할 것이며, 절대로 쓰지 않을 것이다. 즉, 악령이 패괴시킨 자라면 단 한 명도 쓰지 않고 단번에 차 버리겠다는 말이다. 나를 몰인정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명심해라! 나는 거룩한 하나님이므로 절대 더러운 전에 거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내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충성하는 자, 내 부담을 생각하는 정직하고 지혜로운 자만을 쓴다. 이들은 내가 예정한 자들이므로 악령 역사는 절대 없다. 설명을 덧붙여 보겠다. 지금부터 성령 역사가 없는 자는 모두 악령이 역사하는 사람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악령이 역사하는 대상은 단 한 명도 원하지 않는다. 그런 자는 그 육체와 함께 음부에 떨어질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76편> 중에서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과 하나님의 위엄은 하나님 자신만의 본질이고,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 자신만의 성품이다. 하나님이 노하는 원칙은 하나님 자신만의 신분과 지위를 뜻하며, 그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상징한다는 것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의 본질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고 지리적 위치로 인해 바뀌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고유의 성품은 하나님의 고유의 본질이다. 그가 누구에게 사역하든 간에 그의 본질과 공의로운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노하게 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 원래의 성품이다. 이때 하나님이 노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고, 그의 유일무이한 신분과 지위도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노하는 이유는 그의 본질에 변화가 생기거나 그의 성품에 다른 요소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사람이 공공연히 하나님께 도발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하나님이 봤을 때, 하나님에 대한 도전은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자 하나님의 노를 시험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할 때, 하나님과 겨룰 때, 계속해서 하나님의 노를 시험할 때가 바로 죄악이 범람할 때이며, 이때 하나님의 진노가 자연스럽게 발현하고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다는 것은 모든 사악한 세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모든 적대 세력이 멸망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이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진노이다. 하나님의 존엄과 거룩함이 도전을 받을 때, 정의의 힘이 저지당하고 사람이 정의를 찾아볼 수 없을 때는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낼 때이다. 하나님의 본질 때문에 땅에서 하나님과 겨루고 대적하고 맞서는 세력들은 모두 사악하고 패괴되고 정의롭지 않은 세력이며, 사탄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사탄에 속하는 세력이다. 하나님은 정의롭고 빛이며, 흠이 없이 거룩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악하고 패괴되고 사탄에게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게 되면 모두 소멸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은 니느웨 성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바뀌는 과정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모호함도 없었고, 순수한 진노에서 순수한 관용에 이르렀다. 여기서 하나님의 본질이 참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사역에 있어 단 한 번도 우유부단한 적이 없다. 그의 사역 원칙과 목적은 흠 없이 순결하고 투명하며, 여기에는 절대 그 어떤 계략과 음모도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본질에는 어둠과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노한 것은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안중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거두고 그들에게 다시 관용을 베풀었을 때도 하나님이 나타낸 것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었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로 인해 바뀐 것이다. 그 기간에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은 변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고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본질도 바뀌지 않았다. 사람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노하지만, 사람이 참된 회개를 하면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려 진노를 거둔다. 그러나 사람이 완고하게 하나님께 계속 대항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멸할 때까지 노를 멈추지 않는데, 하나님의 진노는 그렇게 조금씩 사람에게 가까워진다. 이 또한 하나님 성품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나타내는 성품이 진노든, 긍휼과 자비이든 모두 사람의 태도와 행동,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난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 기인한다. 만약 하나님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노한다면,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 사람이 참된 회개를 하거나 하나님께 ‘머리를 숙인’ 적이 없고 진심으로 신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항상 하나님의 보살핌 안에 있고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진실로 신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적대시한 적이 없을 것이다. 늘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늘 임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노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간단한 성경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 본질의 참됨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진노하는 것과 마음을 되돌리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진노할 때와 마음을 되돌릴 때 극명한 대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관용, 두 측면의 본질에 차이와 대비가 크다고 느꼈다. 하지만 니느웨 성 사람들의 회개를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보면서 사람은 또 한 번 하나님의 참된 성품의 다른 면을 느낄 수 있었다. 인류는 하나님이 마음을 되돌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진실성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으며, 진실하게 발현된 하나님의 본질을 알 수 있었다. 인류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전설이나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그때 하나님의 마음이 진실했고, 마음을 되돌린 것도 진실했으며, 하나님이 확실히 또 한 번 인류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어 주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요나 4장 10절에서 1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이 내용은 여호와 하나님의 원래 말씀으로, 요나와의 대화이다. 이 대화는 짧고 간결하지만, 인류를 아끼고 염려하는 창조주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피조물에 대한 진실한 태도와 감정을 나타냈고, 또한 인류가 들어 보기 어려운, 명확한 언어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심을 표현했다. 이 대화는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보여 준다. 어떤 태도겠느냐? 회개하기 전후의 니느웨 성 사람들에 대한 태도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류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도 있고 하나님의 성품도 있다.

……

니느웨 성 사람들도 소돔 성 사람들처럼 패괴되고 사악하고 아주 폭력적이었지만, 회개했기에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려 그들을 멸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를 대하는 태도는 소돔 성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순종하고 회개하였고, 여러 면에서 진실하고 간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에 하나님은 다시 한번 그들을 아끼는 마음이 우러났고, 그들에게 상응하는 보답을 해 주게 되었다. 그 누구도 하나님처럼 인류에게 보답을 해 주고 인류를 아낄 수 없고, 그 누구도 하나님처럼 긍휼과 관용, 그리고 인류에 대한 진심을 지닐 수 없다. 네가 생각하는 위인이나 초인 중에 높은 위치, 즉 위인의 입장이나 지고한 위치에 서서 인류나 피조물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가 있느냐? 인류 중에 누가 인류의 생존 현황을 제 손금 보듯 환히 알 수 있겠느냐? 누가 인류의 생존에 부담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겠느냐? 누가 성을 멸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겠느냐? 또 누가 성의 죄를 사할 자격이 있겠느냐? 누가 자신이 창조한 만물을 아낀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오직 창조주밖에 없다! 창조주만이 이 인류를 어여삐 여기고, 이 인류를 사랑하며, 이 인류를 내치지 못하는 참된 마음을 갖고 있다. 또 오직 창조주만이 이 인류를 긍휼히 여기며 모든 피조물을 아낀다. 그의 마음은 인류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끌린다. 그는 인류의 사악하고 패괴된 모습에 분노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인류가 회개하고 신복하는 모습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마음을 되돌리고 축하한다. 그의 모든 마음과 생각은 인류를 위해 생기고 움직이며, 그의 소유와 어떠함은 인류를 위해 발현된다. 또한 그의 희로애락은 인류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인류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인류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생명을 전부 희생하며, 인류를 위해 생명의 매분 매초를 기여한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아낄 줄 몰랐지만 자신이 손수 창조한 인류는 늘 아껴 왔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인류에게 주었다…. 그가 조건도 보상도 없이 긍휼과 관용을 베푸는 것은 오로지 인류가 그의 눈 아래에서, 그의 생명의 공급 아래에서 계속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언젠가 인류가 다시 그의 앞에 돌아와 그가 바로 인류에게 생존을 위한 자양분을 공급하고 만물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그분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본질이 흠 없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 즉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심 없이 모든 것을 내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흠잡거나 비난할 만한 구석이 없다. 하나님의 이러한 본질은 하나님이 자신의 신분을 자랑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로 묵묵하고 진실하게 모든 사람을 대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본질은 공허하지 않고, 이론이나 학설이 아니며, 지식이나 사람에 대한 교육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님 자신이 일할 때 참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하나님 자신이 드러낸 소유와 어떠함의 본질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육신이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므로 그의 육신 역시 마찬가지로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이 같은 육신은 오로지 공의로운 일, 인류에게 유익한 일, 거룩하고 빛나며 위대한 일만 할 수 있다.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할 리 없고, 하나님의 영을 배반하는 일을 할 리는 더더욱 없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므로 그의 육신 또한 사탄에 의해 패괴될 수 없으며, 그것은 사람과는 다른 본질을 가진 육신이다. 사탄이 패괴시키는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며, 게다가 사탄은 하나님 자신의 육신을 패괴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과 그리스도가 같은 공간에서 살아도 사람만 사탄에게 점령되고, 이용당하고, 해를 입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는 절대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는다. 사탄은 영원히 가장 높은 곳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께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희는 나를 배반하는 존재는 오직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뿐이며, 이 문제는 그리스도와 영원히 하등의 관계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으며, 하나님의 본질은 선하다. 그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의 발현이자 모든 사랑의 발현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하지, 다른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독선적이거나 자만하는 성분이 없고, 오만 방자하거나 교활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이 사탄과 같은 속성을 갖게 된 이유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을 뿐, 사탄의 속성은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에게서는 인류가 특정 사물에 대해 갖는 관점 같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인류의 관점이나 지식, 과학, 철학, 상상으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반대로 하나님이 행하고 나타낸 모든 것은 진리와 관련이 있다. 즉,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과 모든 일은 다 진리와 관계가 있다. 그 진리는 터무니없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다. 그러한 진리와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과 생명으로 인해 발현된 것이다. 그런 말씀과 하나님이 행한 일들의 본질이 진리이므로 하나님의 본질은 거룩하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모든 행사나 말씀은 사람에게 생기와 빛을 가져다준다. 그리하여 사람에게 긍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의 실제를 보게 하고 길을 알려 줘 바른길을 가게 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중에서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한 후, 인류가 패괴된 이후든 인류가 그를 따랐던 때든 상관없이 인류를 자신의 절친한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니까 인류가 말하는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여겼지, 장난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 스스로는 창조주이고 인류는 피조물이라고 한 이 말씀은 계급이 나뉘어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하나님이 실제로 인류를 위해 한 모든 행사는 이런 관계를 한참이나 넘어서 있다. 인류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염려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인류에게 공급하는 일까지, 그의 마음은 이런 것들을 가욋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공로가 큰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에게 공급하며 베푼 모든 것이 인류에게 엄청난 공헌을 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식과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조용하고 묵묵히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공급과 도움을 받았든지 그는 사람에게 공을 요구할 생각이나 행동이 전혀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로 인한 것이자 진실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 부분이기도 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장면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신분으로 아담, 하와와 함께 있었느냐? …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을 창조하여 그들을 동반자로 삼았고, 그들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의식주를 돌보았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부모 신분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한 그 일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지고지상함도 보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신묘막측함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오로지 하나님의 낮춤과 자비,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근심과 책임과 보호만 보았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은 흡사 자식을 두고 걱정하는 부모와 같았다. 또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진실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대한 지위를 가진 자라 자처하지 않고 가죽으로 직접 인류에게 옷을 지어 입혔다. 이 가죽옷으로 치부를 감추든 추위를 막든 어쨌든 하나님은 손수 그 일을 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생각이나 이적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옷을 지어 사람의 몸을 가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을 실제로 한 것이다. 이 일은 단순해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언급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을 통해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상상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신실함과 낮춤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기며 안하무인이었던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낮춤 앞에 부끄러움을 느껴 한없이 높이 쳐들었던 머리를 떨구었다. 여기서 사람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낮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한층 느끼게 되었다. 마음속 ‘위대한’ 하나님, ‘사랑스러운’ 하나님, ‘무소불능한’ 하나님은 반대로 아주 미미하고 추하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에는 사람이 가장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인이나 좋은 사람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나,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는 ‘하나님’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심 없음이다. 사심 없음이라 하면 너는 자신도 매우 사심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네 자녀에 대해 한 번도 대가를 바라거나 셈을 따진 적도 없었고, 부모를 대할 때도 사심 없는 마음으로 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너는 최소한 ‘사심 없음’이라는 말에 대해 어떤 개념은 갖고 있을 것이다. ‘사심 없음’은 긍정적이고, 사심 없는 사람이 되는 건 무척 훌륭하다고 여긴다. 만일 너 자신이 사심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스스로를 아주 위대하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만물 속에서나 사람, 일, 사물 속에서나 하나님의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사심 없음을 본 사람은 없다. 무엇 때문일까? 사람이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사람은 물질세계에서 살고 있어서 하나님을 따른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어떻게 너에게 공급하고 사랑을 주고 염려하는지 영원히 보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네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보는 것은 너와 혈연관계에 있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너를 몹시 아끼는 그 사람이다. 네가 본 것은 너에게 육적으로 유리한 것들이고, 네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물질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사심 없음이다. 바로 이렇게 ‘사심 없는’ 사람이 오히려 그에게 생명을 준 하나님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하나님과 비교해 볼 때, 사람의 ‘사심 없음’은 오히려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사람이 생각하는 ‘사심 없음’은 실제적이지 않은 공허한 것이고 불순물이 들어 있다. 하나님과 부합하지 않고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다. 사람의 ‘사심 없음’은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사심 없음’은 하나님의 본질이 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사심 없음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끊임없는 공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오늘 내가 말하는 이 주제에 대해 깊이 느끼지 못하고 그저 머리를 끄덕여 인정하는 수준에 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면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네가 느낄 수 있는 사람과 일과 사물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사심 없음만이 진정한 것이고 실제적인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직 너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만이 무조건적이고 흠결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의 소위 사심 없음도 진실이 아닌 거짓되고 표면적인 것이다. 그것은 목적과 속셈이 있고 거래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검증을 이겨 낼 수 없는 것이다. 추하고 비열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은 인류를 위한 사역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는지 모른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고, 사람이 살고 있는 생지옥에 내려와 하늘 끝까지 사람과 함께하면서도 궁상맞은 인간 세상을 원망한 적 없고, 사람의 패역을 질타한 적도 없으며, 도리어 크나큰 치욕을 참으면서 자신이 친히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찌 지옥에 속할 수 있겠느냐? 어찌 지옥의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그는 전 인류를 위해서, 인류 전체가 하루빨리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치욕과 억울함을 참고 땅에 내려와 친히 ‘지옥’과 ‘음부’,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사람을 구원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단 말이냐? 무슨 이유로 또 하나님을 원망한단 말이냐? 무슨 낯짝으로 다시 하나님을 마주한단 말이냐? 하늘의 하나님은 가장 더럽고 음란한 땅에 와서 단 한 번도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히 사람의 박해[1]와 억압을 감내하고 있다. 그는 한 번도 사람의 무리한 요구에 반항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지나친 요구나 무리한 요구를 한 적도 없으며, 아무리 힘들어도 원망 한 마디 없이 가르침, 깨우침, 책망, 말씀의 연단, 일깨움, 권면, 위로, 심판, 폭로 등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사역을 할 뿐이다. 사람의 생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비록 사람의 앞날과 운명을 거두어 갔다고는 하나, 하나님이 하는 일 중에서 사람의 운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사람의 생존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이 고난과 칠흑처럼 어두운 흑암 세력의 압제에서 사람을 구해 내려고 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사람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인자한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 하나님의 그 절박한 심정을 누가 이해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9> 중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더럽고 패괴된 사람들에게 사역하며 이들을 온전케 한다. 또한 성육신하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목양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 극도로 패괴된 사람들에게 크나큰 구원 사역과 정복 사역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큰 붉은 용의 심장부에 와서 가장 패괴된 사람들을 구원하고 새롭게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극심한 고통은 성육신하여 받는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크나큰 수모를 받은 것, 바로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감추어 평범한 인간이 된 것이다. 그는 육신을 입고 육신의 형상을 취함으로써 사람에게 그가 정상 인성의 생활을 하고, 정상 인성에 필요한 것을 갖추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는 하나님이 이미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하나님의 영은 육신에 실체화되었다. 그의 영은 더없이 높고 위대하지만 그는 평범한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의 형상을 취하여 그의 영이 하는 사역을 한다. 너희 각자의 자질, 식견, 이성, 인간성, 삶을 놓고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이런 사역을 받아들이거나,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희를 위해 이토록 큰 고통을 받게 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더할 나위 없이 높고 크다. 하나님은 더할 수 없이 높고, 사람은 비천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역한다. 성육신하여 사람에게 공급하고 말씀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함께 생활하기까지 한다. 자신을 한없이 낮춘 하나님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것은 공허하지 않고 실제적이며, 전부 그가 직접 체험한 것들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체험한 고통을 대가로 인류의 종착지를 바꾸어 오니, 이것이 실제적인 사역이 아니겠느냐? 자식을 위해 치르는 부모의 참된 대가는 부모의 진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렇게 행하는 것도 당연히 인류에 대한 가장 큰 진실함이요, 신실함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신실하다. 그는 말씀한 이상 반드시 행하며, 행한 이상 반드시 이룬다. 사람에게 행한 그의 모든 것은 다 진실되다. 단순히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치르겠다고 하면 실제적으로 대가를 치르고, 사람의 고통을 감당하고 사람 대신 고통을 받겠다고 하면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살면서 그러한 고통을 받으며 직접 그 고통들을 체험한다. 그리고 전 우주 위아래의 만물로 하여금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이 옳고 공의롭다는 것을, 그것은 전부 현실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이는 강력한 증거이다. 한편, 인류에게는 훗날 아름다운 종착지가 있다.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행사가 확실히 사람에 대한 사랑임을 찬미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춰 평범한 한 사람으로 인간 세상에 왔다. 그는 사역과 말씀을 마친 후에 바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없이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 와서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한다. 그는 그 고통들을 전부 체험한 후에야 떠날 것이다. 하나님은 이토록 현실적이고 실제적으로 사역한다. 이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찬미할 것이며,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과 선량한 면을 보게 될 것이다. 성육신에 관한 의의를 보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선함의 본질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떤 일을 하든 참되게 하고 모든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진실되게 하며, 모든 것이 신실하다. 그는 말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려는 일을 모두 실제적으로 행하며, 대가를 치르는 것 역시 실제적으로 치른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요, 신실한 하나님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육신의 두 번째 측면의 의의> 중에서

하나님은 땅에 왔지만 본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누리기 위해 성육신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역하여 자신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는 곳, 또 가장 의의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곳에 강생한다. 거룩한 곳이든 더러운 곳이든, 어떤 곳에서 사역하든 그는 거룩하다. 세상 만물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그저 만물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만물은 여전히 그에게 속하고 모두 그의 손안에 있다. 그가 더러운 곳에 와서 사역하는 것은 그의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러운 곳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극도의 굴욕을 참으며 이렇게 사역하는 것이다. 이는 증거를 위한 것이자, 전 인류를 위한 것이다. 이런 사역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지고지상한 존재임을 더 확실히 증명해 준다. 그의 위대함과 정직함은 모두가 업신여기는 비천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서 드러난다. 그가 더러운 곳에 강생했다고 해서 비천한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모든 피조물에게 그의 위대함과 인류를 향한 참된 사랑을 보여 줄 뿐이다. 그가 이렇게 할수록 인류에 대한 그의 흠 없이 깨끗한 사랑을 더 잘 보여 줄 수 있다. 더러운 곳에 강생했더라도, 더러움이 가득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더라도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이다. 은혜시대에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생활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가 행한 그 모든 사역은 전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 아니었더냐? 인류가 크나큰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아니었더냐? 2천 년 전에 그가 죄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생활한 것은 구속을 위해서였다. 오늘날 그가 또다시 더럽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구원을 위해서이다. 그의 모든 사역은 다 너희, 이 인류를 위한 것 아니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어찌 말구유에서 탄생했으며, 오랫동안 죄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함께 고난을 받았겠느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어찌 두 번째로 육신을 입고 마귀들이 무리 지어 사는 곳에 강생하여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신실하지 않더냐? 그가 한 사역 중에 인류를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너희의 운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하나님은 거룩하다. 이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 더러운 곳에 왔다고 해도 그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일말의 사심도 없고, 그가 너무나 큰 고통과 굴욕을 참아 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너희를 위해, 너희 운명을 위해 그가 얼마나 큰 굴욕을 참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냐? 그는 높고 대단한 사람들과 돈 많고 세력 있는 자들을 구원하지 않고, 비천하고 남들에게 멸시당하는 사람들만 구원한다. 이 모든 것이 그의 거룩함 아니겠느냐? 그의 공의로움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모압의 후손을 구원하는 의의> 중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게 될 때, 너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게 될 때, 너는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란 말의 진실한 함의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너에게 예비해 준 모든 것을 더는 저버리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본질은 거룩하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너에게 밝고 바른 인생길을 걷게 하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너에게 진정한 인성으로 살게 하고 진리를 깨닫고 갖추게 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너에게 진리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한다. 또한,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멀리하고 사탄의 박해와 지배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도 네가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나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구원할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또 오직 하나님만이 사심 없이 너를 구원하고, 너의 미래, 운명, 인생을 끝까지 책임지며,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다. 이는 그 어떤 피조물과 비피조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본질을 지닌 피조물과 비피조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사물도 너를 구원하고 인도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질이 사람에게 갖는 중요성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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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해[摧殘]: 여기서는 사람의 패역을 폭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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