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창조주시며, 하나님의 권병은 유일무이하다

2017.05.31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다

창 1:3~5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6~7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창 1:9~11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창 1:14~15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창 1:20~21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4~25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첫째 날, 인류의 낮과 밤이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세워지다

먼저 첫 번째 단락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3~5). 이 단락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하면서 행한 첫 번째 일이자 하나님이 보낸, 저녁이 있고 아침이 있었던 첫 번째 하루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평범하지 않은 하루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위해 빛을 예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다. 이날 하나님은 말씀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씀과 권병은 공존한다. 그의 권병은 만물 가운데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의 능력은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만물 가운데서 펼쳐졌다. 이날부터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권병,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세워지고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권병,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운행되기 시작했다. “빛이 있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빛’이 생겼다. 하나님은 어떠한 공사도 벌이지 않았지만, ‘빛’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겼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이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에 의해 낮이라 명명된 ‘빛’이다. 하나님의 결정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자신의 본질과 가치를 바꾼 적이 없고, 또한 사라진 적도 없다. 그것의 존재는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을 나타내고 있고, 또한 창조주의 존재를 알리고 있으며, 반복적으로 창조주의 신분과 지위를 입증하고 있다. 그것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짜로 볼 수 있는 빛이다. 이로부터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텅 빈 이 세계에 첫 번째 물질이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 것이며, 하나님의 권병으로 인해,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만물이 만들어지는 제1막에 출현하였다. 이어서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변화하고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빛’을 ‘낮’이라 명명하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였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만들고자 한 세계의 첫 번째 저녁과 첫 번째 아침이 생겼으며, 하나님은 이날을 첫째 날이라 칭하였다. 이날은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한 첫째 날이며, 또한 만물 창조의 시작이고,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이 그가 만든 이 세계에 첫 번째로 나타난 날이다.

이 단락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권병을 보여 주고, 하나님 말씀의 권병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준다. 하나님만이 그러한 능력을 지녔으므로, 하나님만이 그러한 권병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그러한 권병을 지녔기에 하나님만이 그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누가, 그 어떤 것이 그러한 권병과 능력을 갖출 수 있겠느냐? 너희 마음속에 이에 대한 답이 있느냐? 하나님 외에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이 그러한 권병을 가지고 있느냐? 너희는 어떤 책이나 간행물에서 이러한 사례를 본 적이 있느냐? 유사 이래로 누가 만물을 창조했다는 기록이 있느냐? 그것은 책이나 어떠한 기록에도 없으며, 성경에서도 물론 그것은 유일한 기록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세상 창조에 관한, 위세가 드높고 권병과 위력을 지닌 일부 말씀인데, 이 부분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권병을 대변하며,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신분을 대변한다. 그러한 권병과 능력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신분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으냐? 하나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으냐? 그것은 하나님 자신만이 지닌 권병과 능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권병과 능력은 그 어떤 피조물과 비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며 대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만의 특징이 아니냐? 너희는 이것을 보았느냐? 이 부분의 말씀을 통해 아주 빠르고 명확하게 하나님이 유일무이한 권병과 유일무이한 능력을 가졌고, 지극히 높은 신분과 지위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상의 교제를 통해,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으냐?

둘째 날, 하나님이 권병으로 물을 지배하고 궁창을 창조함으로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공간이 만들어졌다

계속해서 두 번째 단락의 성경 구절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창 1:6~7). 하나님이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라고 말씀한 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느냐? 성경에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일을 하자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 바로 이 단락의 마지막 말씀이다. “그대로 되니라”.

짧은 이 두 구절에 기세가 웅장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물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인류의 생존 공간을 창조하였는지, 이 놀라운 위업, 멋진 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 장면에서 물과 궁창은 순식간에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들은 하나님 말씀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갈라졌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위와 아래로 나뉘었다. 즉, 하나님이 창조한 궁창이 아래쪽 물 위를 덮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위쪽 물까지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창조주가 물을 움직이고 물을 다스리고 궁창을 창조할 때의 장관이나 그가 보여 주는 권병의 위력은 놀랍고 찬미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과 권병으로 말미암아 또 한 번의 위업이 달성되었다. 이것이 창조주 권병의 위력이 아니겠느냐? 성경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행사를 해석해 보자.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물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궁창이 생겼고, 아울러 이 공간에는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이 변화는 일반적 의미의 변화가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일종의 교체로서, 그것은 창조주의 생각으로 생겨난 것이다. 창조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인해 무에서 유가 창조되었고, 그때부터 그것은 창조주를 위해 존재하고 세워지며, 창조주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며 새로워진다. 이 단락에서 기록한 것은 창조주가 행한 천지 창조의 두 번째 사건으로서,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이 또 한 번 발현된 것이자 창조주의 위대한 행사이다. 이날은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하며 보낸 둘째 날이자, 창조주가 보낸 또 하나의 멋진 하루였다. 그가 빛 속을 거닐며 궁창을 가져오고 모든 물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날 속에서 그의 행사, 그의 권병과 능력이 행해졌다….

하나님이 말씀하기 이전에 물 가운데 궁창이 있었느냐? 물론 없었다! 하나님이 물 가운데 궁창이 있으라고 말씀한 후에는 어떠했느냐? 하나님이 원하던 것이 나타나 물 가운데 궁창이 생겼고, 물 또한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위아래로 나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만물 가운데에 신선하고 새로운 두 가지 사물이 출현하였다. 그러면 그 두 가지 새로운 사물의 출현에 대해 너희는 어떤 느낌을 받았느냐? 창조주 능력의 대단함을 느꼈느냐? 창조주의 유일무이하고 비범한 기개를 느꼈느냐? 그러한 기개, 그러한 능력의 대단함은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 권병은 하나님 자신의 대언이자,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징인 것이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너희는 또 한 번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을 감명 깊게 느끼지 않았느냐?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직 너무 부족한데,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유일무이함은 그의 본질이 그 어떤 피조물의 본질과도 다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이 비범하고 무한하여 모든 것을 초월하며 모든 것의 위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권병과 소유와 어떠함이 생명과 기적을 만들 수 있고, 멋지고 특별한 매 순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가 자신이 창조한 생명을 주관하며, 자신이 만든 기적과 일분일초의 매 순간을 주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날, 땅과 바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겼으며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생기로 가득 찼다

계속해서 다음 단락 창세기 1장 9절에서 11절 말씀의 첫 구절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하나님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라고만 했을 뿐인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느냐? 빛과 궁창 이외에 그 공간에 또 무엇이 생겼느냐? 성경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는 바로 그 공간에 또 육지가 생기고 바다가 생긴 것, 다시 말해 물과 육지가 나뉜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사물의 출현은 모두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에 ‘그대로 되었다’. 성경에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하던 기간에 바쁘게 보냈다고 기록된 것이 있더냐? 하나님이 손을 댔다고 기록된 것이 있더냐?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한 것일까? 하나님은 어떻게 그 새로운 사물이 생겨나게 했을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 모든 것을 이루었고, 그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이상의 세 구절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 큰 사건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타나고 생겨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순차적으로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났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이루어지라 하면 반드시 이루어지고, 세워지라 명하면 그대로 세워진다.”라는 이 말씀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이 본질은 하나님의 생각이 시작되던 그 순간에 확증되었으며, 하나님이 말씀하는 가운데 충분히 구현되었다.

계속해서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겨났다. 순식간에, 형태가 각각인 여린 작은 생명들이 흙 속에서 꼬물꼬물 올라와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몸에 묻은 흙을 채 털어 내기도 전에 너도나도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그들은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명에 감사를 표하고, 그들 모두가 만물의 일원임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또한 그들은 창조주의 권병을 나타내기 위해 그들 각자의 생명을 바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땅에는 풀들이 파릇파릇 돋아났고, 사람들에게 제공될 각종 채소가 흙을 뚫고 무럭무럭 자라났으며, 산과 들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숲이 울창하였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이 밋밋하던 세상이 순식간에 풀, 채소와 나무 등 각종 식물들로 둘러싸여 초록빛을 한가득 머금게 되었다…. 공기는 풀꽃 향기로 그윽하고, 흙 내음이 물씬 풍기며, 각종 식물들은 공기를 통해 숨을 쉬면서 자신들의 성장 과정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과 생각에 따라 모든 식물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싹트고 자라서 꽃피고 열매 맺고 번식하는 일련의 생명 여정을 시작하였다. 각자 생명의 궤적을 지키며, 만물 중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모두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나고,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된다. 또한 창조주에게서 계속 자양분을 공급받을 것이고,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이 땅 곳곳에서 강인하게 살아갈 것이며,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명력을 영원히 세상에 나타낼 것이다….

창조주의 생명은 비범하고 그의 생각은 비범하며 그의 권병은 비범하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이 있자 최후의 결과는 늘 ‘그대로 되었다’. 확실히 하나님은 일을 할 때 손댈 필요 없이, 그의 생각으로 지휘하고 말씀으로 명령했을 뿐인데, 일은 곧 그대로 되었다. 그날 하나님은 물을 한곳으로 모아 뭍이 드러나게 한 다음, 뭍에 풀이 자라나게 하였고,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도 자라게 하였으며, 그것들을 각기 종류대로 분류하고 열매마다 씨를 품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루어져 계속해서 이 새로운 세상에 나타났다.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그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그 그림의 내용을 말씀으로 표현할 때,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그의 권병을 어떻게 행하든, 일은 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한 단계씩 이루어졌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한 단계씩 변화되었다. 그 모든 변화와 발전은 창조주의 권병을 나타내고, 또한 창조주 생명력의 비범함과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단순한 구상도, 공허한 그림도 아니며, 생명력과 엄청난 능력을 지닌 권병이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소생시키고, 새롭게 하고, 소멸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은 다 그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며, 동시에 그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물이 아직 생겨나기 전에,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이미 완전한 구상과 아주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져 있었다. 비록 셋째 날 땅에 각종 식물들이 자라났을지라도, 하나님은 천지 창조의 발걸음을 멈출 이유가 없었다. 그는 계속 말씀으로 자신이 창조하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새로운 사물을 만들었다. 그는 말씀하고 명령하고 그의 권병을 행하고 그의 능력을 보이고자 하였으며, 자신이 만들고자 한 만물과 인류를 위해 구상한 모든 것들을 예비하고 있었다….

넷째 날, 하나님이 또 한 번 권병을 행하자 인류의 절기와 날짜와 연도가 탄생되었다

창조주는 말씀으로 자신의 계획을 이루면서 그렇게 자신이 계획했던 처음 3일을 보냈다. 그 3일 동안, 그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기진맥진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계획했던 첫 3일을 멋지게 보냈고, 상전벽해처럼 변화무쌍하게 위대한 업적들을 이루었다. 새로운 세상이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나고, 하나님의 생각 속에만 봉인되어 있던 아름다운 그림이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조금씩 펼쳐졌다. 모든 새로운 사물의 출현은 마치 신생아가 태어나는 것과도 같았다. 창조주는 그의 생각 속에 있던 것이 막 현실이 된 그 광경을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마음에 작은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창조주의 그 새로운 페이지의 계획은 또 무엇이었을까? 그는 또 무슨 말씀을 하였을까? 그의 권병은 또 어떻게 행사되었을까? 아울러, 또 어떤 새로운 사물이 이 새로운 세상에 왔을까? 창조주의 인도에 따라 우리의 눈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에 머무는데, 이 하루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물론 창조주에게 있어 그것은 틀림없이 또 하나의 멋진 하루이자 현 인류에게도 역시 대단히 중요한 하루이며,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하루였다. 그날이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중요하며, 또 헤아릴 수 없는 그 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먼저 창조주의 말씀을 들어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창 1:14~15). 이것은 하나님이 뭍과 그 위의 식물을 만든 후에, 또 하나의 피조물에서 보여진 하나님 권병의 행사이다. 이런 일이 하나님께는 마찬가지로 아주 쉬운 일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하면 책임지고, 책임지는 이상 반드시 이룬다. 하나님이 하늘 궁창에 광명체가 있으라고 명령하니, 그 광명체는 하늘에서 빛을 발해 땅을 비추었을 뿐만 아니라 낮과 밤, 절기와 날짜와 연도를 구분하는 기호가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말씀하는 순간, 하나님이 이루고자 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과 지정 방식대로 이루어졌다.

‘하늘 궁창의 광명체’는 상공에서 빛을 발하는 물체로서, 그것은 하늘도 비추고 땅과 바다도 비춘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한 리듬과 빈도로 회전하며, 땅을 비추어 서로 다른 시간대가 형성되게 한다. 이와 같이, 지구 동서쪽의 낮과 밤은 이 광명체의 회전 주기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낮과 밤에 대한 표시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서로 다른 회전 주기로 인류의 절기와 각종 날짜에 대한 표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명한 춘하추동의 사계절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인류에게 절기와 날짜와 연도를 나타내는 규칙적이고 정확한 기호가 된다. 인류는 경작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가 구분해 주는 절기, 날짜, 연도를 알아보고 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인류가 오늘날 알고 있는 절기, 날짜, 연도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부터 있었고, 인류가 경험하는 춘하추동의 교체 주기 역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에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로 인해 사람들은 낮과 밤을 규칙적이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구분하고 날짜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고, 절기와 연도를 아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달이 둥글어지는 날, 즉 달이 차서 한 달이 되는 날에 사람들은 광명체가 비추는 새로운 주기의 시작을 알게 되고, 달이 이지러지는 날, 즉 한 달의 절반이 되는 날이면 사람들은 새로운 절기의 시작을 알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며칠이 하나의 절기를 이루고, 몇 개의 절기가 하나의 계절을 이루며, 몇 개의 계절이 한 해를 이루는지 매우 규칙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인류는 광명체의 운행으로 표시되는 절기, 날짜, 연도를 매우 쉽게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인류와 만물은 자연스럽게 광명체의 운행으로 만들어지는 낮과 밤의 교체, 사계절이 바뀌는 규칙 가운데서 살게 되었다. 이 역시도 창조주가 넷째 날에 광명체를 만든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창조주가 그 일을 통해 이룬 목표와 의의도 그의 권병과 능력을 떠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와 그 광명체들이 장차 인류에게 가져다줄 가치 역시 창조주가 행한 권병의 또 하나의 걸작인 것이다.

인류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신세계에서, 창조주는 이미 자신이 곧 만들 새 생명을 위해 ‘저녁과 아침’, ‘공기’, ‘땅과 바다’, ‘풀과 채소, 그리고 각종 나무’, ‘광명체와 절기, 날짜, 연도’를 예비하였다.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은 그가 창조한 모든 새로운 사물 가운데서 발현되었고, 그의 말씀과 사실은 오차도 간격도 전혀 없이 병행된다. 그 모든 새로운 사물의 출현과 탄생은 다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을 증명하고 있다. 즉, 말씀하면 반드시 책임지고, 책임지는 이상 반드시 이루며,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영원까지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바뀐 적이 없으며,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지금 다시 성경의 이 말씀을 보면, 너희는 매우 새롭게 느껴지지 않느냐? 너희는 새로운 내용을 보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것은 창조주의 행사가 너희의 마음을 움직여 그의 권병과 능력을 알도록 인도하고 또한 너희에게 창조주를 알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며, 그의 행사와 권병이 이런 말씀과 생명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사람들은 창조주의 권병이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고, 창조주의 지고지상함을 보게 되었으며,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의 뛰어남을 보게 되었다.

창조주는 권병과 능력으로 하나 또 하나의 기적을 창조하고 있고, 사람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 권병으로 행한 창조주의 하나하나의 놀라운 행사를 주목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비범한 능력은 인류에게 계속 놀라움과 기쁨을 선사하여 사람들이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를 정도로 기뻐하고, 찬양하며, 기묘함에 감탄하고, 갈채를 보내게 만들었다. 더욱이 사람들을 감동시켜 하나님을 사모하고 경외하는 마음과 그리움의 정이 생기게 했다. 창조주의 권병과 행사는 사람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고,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였으며, 더욱이 사람의 마음을 흡족게 하였다. 그의 모든 생각, 모든 음성, 발현된 그의 모든 권병은 다 만물 가운데의 걸작으로서, 창조된 인류가 가장 깊이 알고 인식할 가치가 있는 놀라운 위업인 것이다. 창조주의 말씀으로 탄생된 모든 피조물을 하나하나 짚어 보면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기묘한 능력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창조주의 발자취를 따라 다음날, 즉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다섯째 날에 이르렀다.

계속해서 다음 성경 구절을 보면서 창조주가 또 어떤 일들을 했는지 살펴보자.

다섯째 날, 다양한 형태의 생명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창조주의 권병을 보여 주었다

성경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0~21). 성경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날 하나님은 각종 수중 생물들을 만들고, 땅 위에는 각종 새들을 만들었다. 즉, 어류와 날짐승들을 만들고, 아울러 하나님이 그들을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하니, 땅 위와 하늘과 물속이 하나님의 창조로 말미암아 풍요로워졌다….

하나님이 말씀하자, 순식간에 형태가 각기 다른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이 창조주의 말씀 속에서 생생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깡충깡충 뛰면서 기쁨에 차 환호하며 이 세상에 왔다…. 물속에서 각종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각양각색의 패류들이 갯벌에서 자라며, 비늘 달린 생물, 갑각류, 그리고 각종 연체 생물들이 물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하듯 자라났다. 그들은 크고 작고 길고 짧은 것들로 어우러져 크기도 다양했다. 또한 각종 해조류들도 마찬가지로 서로 앞다투어 자라났으며, 수중 생물들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그들은 마치 그 고요한 물에 다그치듯 말하는 것 같았다. “힘차게 흘러라! 네 친구들과 함께. 이제 너는 외롭지 않아!” 하나님이 만든 수중 생물들이 물속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그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은 오랜 세월 침묵하던 바다에 생기를 불어넣고 신기원도 열어 주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서로 의지하고 함께하면서 서로를 구분 짓지 않았다. 물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위해 존재하며, 자신이 품고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하고, 그 각각의 생명들 또한 물이 공급해 주는 자양분으로 말미암아 물을 위해 존재한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각자의 생명을 바치며, 동시에 같은 방식으로 창조주의 창조의 오묘함과 위대함을 증거하고, 창조주의 권병에 깃든 초월할 수 없는 능력을 증거하고 있다….

바다가 더 이상 고요하지 않게 되었고, 공기 중에도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새들이 땅에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들이 수중 생물과 다른 점은 깃털이 가득 나 있고, 두 날개가 있으며, 자태가 우아하고 몸놀림이 가볍다는 것이다. 새들은 두 날개를 퍼덕이며 의기양양하게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화려한 겉모습, 특별한 능력과 재주를 한껏 과시하고 있다. 그들은 자유롭고 능숙하게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다니고, 들판과 숲속을 누비고 있다…. 새들은 하늘의 총아이자 만물의 총아이다. 그들은 곧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연결 고리가 되어 만물에게 소식을 전할 것이다…. 그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날아다니며 휑하니 비어 있던 세상에 기쁨과 웃음소리를 채워 넣었고, 생기와 활력도 불어넣었다…. 그들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마음의 소리로,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부여해 준 생명을 찬미한다. 그들은 즐거운 춤사위로 창조주의 완벽하고 놀라운 창조를 자랑하며, 창조주로부터 받은 특별한 생명으로 창조주의 권병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들의 일생을 바친다….

수중 생물이든 공중을 날아다니는 생물이든, 다 창조주의 지시에 따라 구조가 다른 생명체로 살며, 또 창조주의 지시에 따라 무리 지어 그들 각자의 부류 속에서 살아간다. 그 규칙과 법칙은 그 어떤 피조물도 바꿀 수 없다. 그들은 감히 창조주가 정해 준 영역을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하며, 또한 그 범위를 벗어날 수도 없다. 그들은 창조주가 정해 준 숙명 속에서 대를 이어 번식하며, 창조주가 그들에게 정해 준 생명의 궤적과 법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또 창조주의 무언의 명령과 창조주가 그들에게 준 천상의 법칙과 계율을 오늘날까지 자발적으로 지키고 있다. 그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창조주와 대화하고, 창조주의 뜻을 깨닫고, 창조주의 명령에 순종한다. 그 어떤 피조물도 창조주의 권병을 초월한 적이 없다. 창조주는 생각으로 그들을 주재하고 주관하고 있다. 말씀은 하지 않더라도, 창조주만이 갖고 있는 권병으로 이 인류와 다른, 말하지 못하는 만물을 소리 없이 주관하고 있다. 이런 특별한 방식으로 권병이 행해짐으로 사람은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을 새롭게 알게 되고, 새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나는 새날에 행한 창조주의 권병으로 그의 유일무이함이 다시 한번 드러나게 되었다고 말하겠다.

계속해서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을 보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말씀을 너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가 창조한 만물은 이미 그의 말씀으로 인해 세워지고 이루어졌으며, 모든 것이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각종 사물과 성취한 갖가지 일들에 대해 아주 흡족해하지 않았느냐? 그에 대한 답이 바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여기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무엇을 상징하느냐? 이 말은 하나님은 그가 계획한 일과 정해 놓은 일, 그리고 그의 목표를 성취할 능력과 지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다 마친 후 후회한 적이 있느냐? 그 답 역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즉, 하나님은 후회는커녕 아주 흡족해했다. 후회하지 않았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또한 완벽하다는 것과, 그의 권병이 완벽한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근원임을 의미한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나서 하나님처럼 보기에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사람이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완벽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한 번으로써 영원히 이룰 수 있겠느냐? 사람들이 “더 좋은 것만 있을 뿐 가장 좋은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하는 일은 영원히 완벽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이 행하고 이룬 모든 일이 하나님 보기에 좋았을 때, 하나님이 만든 모든 것은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고정불변의 법칙이 생겼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을’ 때,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그 한 번으로써 영원히 형태가 고정되고 유형이 구분되며 위치와 용도와 기능이 정해졌다. 동시에, 만물 가운데 맡은 역할과 하나님이 만물을 경영하는 기간 가야 할 여정이 이미 하나님에 의해 정해져 영원히 바꿀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창조주가 만물에게 정해 준 ‘천상의 법칙’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워낙 단순하여 사람들이 관심을 갖거나 중시하지 않는 말씀이지만, 사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내린 천상의 규칙, 천상의 법칙이다. 이 말씀에서 창조주의 권병이 또 한 번 더 실제적이고, 더 깊이 있게 구현되었다. 창조주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가 얻고자 한 모든 것을 얻었고, 그가 이루고자 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가 만든 모든 것을 그의 수중에서 주관할 수 있고, 그의 권병 아래 질서 정연하게 주재할 수 있었다. 동시에 만물도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소멸되며,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그가 정한 법칙 안에서 생존한다.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법칙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 법칙은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존재하고, 지속되고, 운행될 것이다. 창조주가 그 법칙을 폐기하는 그날까지 말이다!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은 그가 만물을 창조하고, 만물을 그의 명대로 세울 수 있다는 사실에서 묻어날 뿐만 아니라, 만물을 다스리고 주재하며 만물에게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또한 창조주가 자신이 창조하려 계획한 만물이 완벽한 형식, 완벽한 생명 구조, 완벽한 역할을 가지고 그가 만든 세계에 한 번으로써 영원히 나타나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데서도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은 구현되고 있다. 또 창조주의 모든 생각이 그 어떤 조건의 제한이나 시간, 공간, 지리적인 제한도 받지 않는 데서도 구현된다.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신분은 그의 권병처럼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권병은 영원히 그의 유일무이한 신분의 대언과 상징으로서, 영원히 그의 신분과 공존할 것이다!

여섯째 날, 창조주가 말씀하니 그의 생각 속 각종 생물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부지불식간에,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하는 사역이 벌써 닷새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곧이어 그 여섯째 날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날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자 또 하나의 평범하지 않은 날이었다. 새날이 왔을 때, 창조주는 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까? 또 어떤 새로운 피조물이 생기고 만들어졌을까? 들으라. 이것은 창조주의 음성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4~25). 이들 생물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느냐?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말하자면, 이날 땅 위에는 각종 생물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모두 그 종류대로 분류되었는데,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다’.

앞의 다섯 날과 마찬가지로, 창조주가 여섯째 날에도 똑같은 어조로 그가 원하는 생물이 생겨나라 명하니 그들이 땅 위에 나타났으며, 각기 종류대로 되었다. 창조주의 권병이 행사되자, 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에 창조주가 만들고자 계획한 모든 생물들이 예정대로 생겨났다.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라는 창조주의 이 말씀이 있자, 뭍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땅 위는 순식간에 각종 생물들이 내뿜는 기운으로 가득 찼다…. 초록 풀빛을 잔뜩 머금은 들판에는 튼실하게 살찐 소들이 꼬리를 흔들며 속속 등장하고, 양들이 메에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무리를 짓고, 말들이 울부짖으며 질주해 왔다…. 순식간에, 고요하던 광활한 들판이 시끌벅적해졌다…. 각종 가축들의 출현으로 조용하기만 하던 초원에 아름다운 볼거리가 더해졌고 더없는 활기가 넘쳤다…. 그들은 초원을 벗 삼고, 초원의 주인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 것이고, 들판의 파수꾼이 될 것이다. 들판 역시 그들의 영원한 서식지가 되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그들이 영원히 생존하게끔 자양분을 공급해 줄 것이다….

이들 가축들과 같은 날에 태어난 각종 곤충들도 창조주의 말씀에 따라 잇따라 나타났다. 비록 그들이 피조물 중 가장 작은 생명체일지라도 그들의 생명력 역시 창조주의 오묘한 창조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결코 늦게 온 것이 아니다….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도 있고, 천천히 기어 다니는 것도 있으며, 또 어떤 것은 폴짝폴짝 뛰어다니기도 한다. 비틀거리며 걷는 것도 있고, 힘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재빠르게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옆으로 걷고, 어떤 것은 위로 뛰어오른다…. 그들은 각자 바쁘게 자신의 집을 찾고 있는 중이다. 어떤 것은 풀숲에 들어가고, 어떤 것은 땅에 굴을 파느라 분주하고, 어떤 것은 큰 나무에 날아올라 숲속에 몸을 감춘다…. 몸집은 작아도 그들 모두 배고픔을 참지 못하니, 각자 집을 마련하고는 배를 채울 먹이를 급하게 찾아 나선다. 어떤 것은 여린 풀잎에 기어올라 먹고, 어떤 것은 흙을 물어 한 입씩 삼키는데,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 정말 즐거워한다(흙은 오히려 그들의 맛있는 먹이가 되었음). 어떤 것은 숲속에 숨어서도 결코 쉬지 않는데, 나무 위 진초록 잎사귀의 진액은 그들 입맛에 맞는 아주 좋은 음식이 되었다…. 배를 실컷 채운 후에도 그들의 활동은 계속된다. 그들은 작지만 에너지도 활력도 아주 넘쳐 난다. 그러므로 그들은 만물 가운데 가장 많이 활동하고 가장 부지런한 피조물이다. 그들은 게으름 피우거나 편안함을 탐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배를 채운 후에도 여전히 앞으로 살날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그들의 내일과 생존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그들은 다양한 선율과 다채로운 박자의 노래들을 조용히 흥얼거리며 스스로에게 힘찬 기운을 북돋아 준다. 또한 온 풀숲, 숲속, 모든 토양에도 즐거움을 선사하며, 언제나 특별한 하루, 남다른 한 해를 만들어 준다…. 그들은 각자의 언어와 각자의 방식으로 땅 위의 각종 생물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또한 각자 특별한 생존의 궤적으로 다른 만물에게 이정표가 되어 주며 족적을 남긴다…. 그들은 흙과 풀과 숲과 매우 친밀하여 이들에게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창조주가 각각의 생물에게 한 당부와 안부를 전해 주기도 한다….

창조주가 자신이 만든 만물을 두루 살피고 있던 그 시각, 그의 두 눈은 숲에, 큰 산 사이에 머물렀으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말씀이 있고 난 후, 무성한 숲속에, 그리고 산속에는 이전의 피조물과는 다른 부류의 피조물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짐승’이다. 그들은 예사롭지 않은 얼굴을 하고서 머리와 꼬리를 흔들며 어슬렁어슬렁 걸어온다. 보라. 털이 난 것이 있는가 하면 딱딱한 껍질이 있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이를 드러내고 어떤 것은 입을 벌리고 있다. 또 목이 긴 것이 있는가 하면 꼬리가 짧은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두 눈에 살기를 띠고 있고, 어떤 것은 두려워하는 눈빛을 띠고 있다. 몸을 굽히고 풀을 뜯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입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두 발로 뛰어다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네 발로 움직이는 것이 있고, 또 나무에 기어올라가 멀리 바라보는 것도 있다. 어떤 것은 숲속에 숨어 기다리고 있고, 어떤 것은 쉴 만한 동굴을 찾는가 하면 어떤 것은 또 평원을 내달리며 장난치고, 어떤 것은 수풀을 헤치며 다닌다. 포효하는 것도, 으르렁대는 것도 있고, 미친 듯이 짖어 대는 것도, 울부짖는 것도 있다. 그들이 내는 소리는 높은 것도, 나지막한 것도 있고, 우렁찬 것도, 맑고 청아한 것도 있다. 어떤 것은 무섭게 생겼고, 어떤 것은 예쁘장하고, 어떤 것은 역겹게 생겼는가 하면 어떤 것은 아름다워 호감 가게 생겼고, 어떤 것은 그 생김새가 공포감을 주고, 어떤 것은 귀여움이 철철 넘친다. 그들이 하나하나 속속 걸어 나온다. 보라. 그들 모두 의기양양하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며, 누구를 상대하려 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눈길 한 번 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특별한 생명을 받아, 거친 야수성과 난폭성을 지니고 숲과 산속에 나타났다. 그들이 그렇게 ‘안하무인’ 격으로 기세가 등등해도 그들이 산과 숲의 진정한 주인인 것을 어쩌겠느냐? 창조주가 그들에게 나타나라 명령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숲과 산을 ‘강점’했다. 창조주가 이미 그들의 경계를 정하고 그들의 생존 범위를 정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산과 숲의 진정한 제왕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처럼 야수성을 지니고 ‘기고만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야수’로 불리는 까닭은, 만물 가운데 그들만이 진정으로 야수성과 난폭성을 지니고 있는 길들이기 어려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길들여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사육될 수 없고, 인류와 화목하게 살 수 없으며, 인류를 위해 일할 수 없다. 그들이 사육될 수 없고 인류를 위해 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인류를 멀리해야 하고, 인류도 그들을 가까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인류를 멀리하고 인류가 그들과 가까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창조주가 부여한 책임, 즉 산과 숲을 지키는 일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야수성으로 산과 숲을 지키며, 야수성으로 번식을 위한 최적의 보장을 받게 된다. 아울러, 그들의 야수성은 또 만물의 균형을 보장하고 유지하게 만들 것이다. 그들의 출현은 산과 숲에 의지처를 제공했으며, 적적하고 쓸쓸하던 산과 숲에 생기와 활력이 넘치게 하였다. 그때부터 산과 숲은 그들의 영원한 서식지가 되었고, 그들은 영원히 자신들의 집을 잃지 않게 되었다. 산과 숲은 그들을 위해 생기고 존재하며, 그들은 장차 산과 숲을 지키기 위해 맡은 책임을 다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당부한 것, 그들의 영토를 지키고 그들의 야수성을 유지함으로 창조주가 정한 만물의 균형을 유지하고,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을 엄격하게 준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주 권병 아래의 만물은 다 완전무결하다

새와 어류, 나무와 화초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과 움직일 수 없는 것, 그리고 여섯째 날에 만들어진 집짐승, 곤충, 들짐승을 포함하여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하나님이 보기에 다 좋았던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이 보기에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였다. 창조주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하고자 한 사역을 순서대로 하나씩 이루었다. 그가 창조하고자 한 것들이 한 가지씩 나타났고, 나타난 것마다 모두 창조주 권병의 구현이자 그의 권병이 가져온 결정체였다. 이 결정체는 모든 피조물들로 창조주의 은혜와 공급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가 나타남으로 이 세계는 점차 하나님이 만든 만물로 풍요로워졌다. 혼돈하고 캄캄했던 세계가 맑고 깨끗하게 변화되었고, 적막하던 세계가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세계로 변화되었다. 창조된 만물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세한 것까지,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모든 피조물은 그것만이 갖는 정해진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다르든지 간에, 창조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면, 그것은 모두 창조주의 권병 아래에 생존하게 된다. 간혹 사람은 못생긴 곤충을 보면 “왜 이리도 못생겼어? 하나님이 절대 이렇게 못생긴 것을 만드셨을 리 없으니 이건 절대 하나님이 만드신 게 아니야.”라고 한다.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관점이다!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곤충은 유난히 못생기긴 했지만, 이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니 분명히 이것만의 특별한 쓰임새가 있을 거야.” 하나님은 그가 만들려는 모든 생물들이 다양한 생김새를 가지고 각양각색의 기능과 용도가 있도록 다 생각해 두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천편일률적이지 않으며, 외형부터 내면의 구조까지, 생활 습관부터 각자 차지하고 있는 위치까지 다 다르다. 소는 소의 생김새가 있고, 나귀는 나귀의 생김새가 있으며, 사슴은 사슴의 생김새가 있고, 코끼리는 코끼리의 생김새가 있다. 누가 제일 예쁘고 누가 제일 못생겼다고 하겠느냐? 누가 가장 쓸모가 있고, 누가 가장 불필요한 존재라고 하겠느냐? 어떤 이는 코끼리의 모습을 좋아하지만 코끼리를 이용해 밭을 가는 자는 없다. 어떤 사람은 만물 가운데 가장 위엄 있게 생겼다며 사자, 호랑이의 모습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사자와 호랑이를 애완동물로 키울 수 있느냐? 요컨대, 만물을 대함에 있어, 사람은 창조주의 권병에 순종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즉, 창조주가 만물에게 정해 준 규칙에 순응하는 이런 태도야말로 가장 현명한 것이다. 또한, 창조주의 초심을 찾고 순종하는 태도야말로 창조주의 권병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에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

이때에 이르러, 창조주 권병 아래의 만물은 창조주의 주재에 새 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창조주의 새날의 사역에 눈부신 서막을 열 것이며, 창조주도 그 순간 자신의 경영 사역에 새로운 장을 열 것이다! 만물은 창조주가 정한 ‘봄에 싹트고 여름에 무성해지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저장하는’ 이 법칙과 창조주의 경륜에 따라 서로 함께 호응할 것이다. 그들은 각자 새로운 날과 새로운 시작, 그리고 새로운 생명 여정을 맞이할 것이고, 또한 창조주 권병의 주재 아래에서의 하루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쉼 없이 성장하고 번성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만물을 창조하면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했기 때문에 그가 어떤 방식으로 만유를 창조했든, 그가 어떤 이유로 만유를 창조했든 간에, 어쨌든 만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기고, 세워지고,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이다. 인류가 이 세상에 아직 출현하지 않았을 때, 창조주는 그의 능력과 권병으로 인류를 위해 만유를 창조했고, 그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인류를 위해 적합한 생존 환경을 예비했다. 그가 행한 이 모든 일은 다 장래에 자신의 생기를 얻게 될 인류를 위해 예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권병은 인류와는 다른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나타났는데, 크게는 천체, 광명체, 바다, 육지가 있고, 작게는 날짐승과 길짐승 및 각종 곤충과 미생물이 있다. 또한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각종 균류까지 그 어느 것도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 어느 것 하나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번식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 어느 것 하나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주의 주재 아래 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들은 비록 창조주의 생기를 얻지 못했지만, 다양한 형식과 구조로 창조주가 그들에게 부여한 생명력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부여한 언어 능력을 받지 못했지만, 그들 각자는 창조주에게서 인류의 언어와는 또 다른, 생명의 표현 방식을 얻었다. 창조주의 권병은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사물에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어 그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살아 있는 존재에게 번식 능력을 주어 영원히 자취를 감추지 않고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존 법칙과 규칙을 대를 이어 전하게 할 수 있다. 창조주가 권병을 행하는 방식은 거시적, 미시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고, 어떠한 형식에도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하늘의 운행을 주관하고 만물의 존망을 주재하며, 만물을 움직여 자신을 위해 봉사하게 할 수 있다. 그는 산천과 호수의 운행을 주관하고, 그 가운데 있는 만물도 주재하며, 만물이 필요로 하는 바를 공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이외의 만물 가운데서 나타나는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이다. 이는 한 번의 생이나 하나의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영원히 멈추지 않고 쉬지 않는다. 또한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를 바꾸거나 파괴할 수 없고, 더하거나 제할 수 없다. 창조주의 신분은 아무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피조물도 창조주의 권병을 대체할 수 없고, 그 어떤 비피조물도 그 권병에 이를 수 없다. 예컨대, 하나님의 사자나 천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갖지 못했고, 창조주의 권병은 더더욱 갖지 못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권병이 없는 까닭은 그들이 창조주의 본질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피조물 가운데, 예컨대 하나님의 사자와 천사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어떤 일들을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그들이 인류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권병은 갖지 못했다. 하나님처럼 만유를 창조하고 주관하고 주재하는 권병은 갖지 못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은 그 어떤 비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 역시 그 어떤 비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다. 성경에서 만물을 창조했다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았느냐? 하나님은 왜 그의 사자와 천사를 보내 만물을 창조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권병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병을 행할 능력이 없다.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창조주의 주재 아래 있고, 창조주의 권병 아래 있으며, 창조주는 그들에게도 하나님이자 주재자이다. 신분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 능력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그들 가운데 그 어떤 자도 창조주의 권병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창조주의 신분을 대체할 수 없으며,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이라고 불릴 수 없고, 영원히 창조주가 될 수도 없다.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이며 사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인류가 오늘날까지 발전해 오면서, 인류의 과학은 ‘일취월장’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룩한 성과가 ‘과히 놀랄’ 정도이니, 인류의 기량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유독 한 가지만은 인간의 과학이 돌파하지 못했다. 인류는 비행기를 만들고, 항공 모함을 만들고, 원자 폭탄을 만들고, 우주로 날아가고, 달에 착륙하고, 인터넷을 발명하여 첨단 과학 기술 시대에 살고 있지만, 숨 쉴 수 있는 생물은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인류의 과학은 생물의 본능과 생존 법칙, 각 생물의 생사윤회를 통제할 수 없고 여기에 대해선 속수무책이다. 그렇기에 인류의 과학이 아무리 높은 수준에 도달했어도 창조주의 생각 하나에 비할 수 없고, 창조주의 만물 창조의 오묘함과 창조주 권병의 위력을 측량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구상의 바닷물이 그렇게 많아도, 하나님이 각각에게 경계를 정해 주었기 때문에 바닷물은 지금껏 함부로 자신의 범위를 넘어 육지로 올라온 적이 없다. 그들은 정해 준 대로 있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움직이라고 말씀할 때에야 움직일 수 있고, 그들이 어디로 가고 어디에 머무를지는 하나님의 권병으로 결정된다.

‘하나님의 권병’을 늘 하는 말로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할지 결정할 권리가 있고, 하나님은 하고자 하면 그대로 한다. 만물의 법칙은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지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명령으로 바뀌는 것이지 사람의 의지대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천지 만물, 우주, 별, 1년 사계절,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은 다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한 당시의 법칙에 따라 조금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권병 아래 존재하고 운행되며 변화한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것의 법칙을 바꿀 수 없으며, 그것 본래의 운행 궤적을 바꿀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그 권병으로 말미암아 소멸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이다. 여기까지 말했는데, 너희는 이제 하나님의 권병이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상징한다고 느껴지지 않느냐? 하나님의 권병이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이 갖출 수 있는 것이냐? 그 어떤 사람이나 일, 사물이 모방하고 사칭하고 대체할 수 있는 것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그 어떤 형식의, 생명 있고 활력 넘치는 것이라도 다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생명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권병은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게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겨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생존하며 지속되게 한다. 그 후에는 하나님이 모든 생명체를 주재하고 주관한다. 지금껏 여기엔 오차가 없었으며,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이런 것들은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갖추지 못했으며, 창조주만이 이러한 능력을 소유하고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권병이라 일컫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주의 유일무이함이다. 그러므로 ‘권병’이라는 이 단어 자체나 권병의 본질은 오직 창조주와만 관련이 있다. 이는 권병이 창조주만의 신분과 본질의 상징이기 때문이며, 창조주의 신분과 지위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창조주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권병’이라는 이 단어와 관련이 있을 수 없다. 이 역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에 대한 해석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이것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한 원래의 말씀이다. 그가 말씀함과 동시에 무지개가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너희 모두 무지개를 본 적이 있을 텐데, 무지개를 보았을 때 그 무지개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았느냐? 과학으로는 이 사실을 논증할 방법이 없다. 과학으로는 그 근원을 찾지 못했으며, 행방도 찾지 못했다. 이는 창조주가 사람과 세운 언약의 증거이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는 필요 없다. 이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창조주의 말씀이 있고 난 후 권병이 지속되는 결과인 것이다. 창조주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과 세운 언약과 약속을 지켜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출현시켜 하나님이 세운 언약의 증거로 삼은 것은 창조주에게나 창조된 인류에게 있어,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천상의 규율이자 법칙인 것이다. 변함없이 지속되는 이 법칙은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난 후 그의 권병이 또 한 번 진정으로 구현된 것이며,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은 무한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지개’를 그 언약의 증거로 삼은 것은 창조주 권병의 지속이자 연장선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또 한 번 말씀으로 행한 일이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세운 언약의 증거이다. 이는 그가 무엇을 이루고자 결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루고 성취하겠다고 하면, 그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사람에게 알려 준다. 하나님만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런 말씀이 있고 난 몇천 년 후인 오늘날에도 인류는 하나님이 말씀한 무지개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로 인해, 이 일은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변함이 없다. 그 누구도 그 무지개를 없어지게 할 수 없고, 그것의 규칙을 바꿀 수도 없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이다. “하나님은 말씀하면 반드시 책임지고, 책임지는 이상 반드시 이루며,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영원까지 지속된다.” 이 말은 여기서 아주 명확하게 구현되는데, 바로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확실한 증거이자 특징이다. 이러한 증거와 특징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고, 그 어떤 피조물에게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어떤 비피조물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와 특징은 유일무이한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 고유의 신분과 본질을 피조물과 구분시켜 준다. 아울러, 그것은 하나님 자신 이외의 모든 피조물과 비피조물이 영원히 초월할 수 없는 증거이자 특징인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사람과 언약을 세운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그는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줌과 동시에 그의 뜻도 알려 주었다. 이를 위해 그는 고유한 방식으로, 특별한 증거를 사용해서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그 증거로 그가 사람과 세운 언약에 확신을 준 것이다. 이 ‘언약’을 세웠다는 건 큰 사건이 아니냐? 얼마나 큰 사건일까? ‘언약’의 특별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이 아니며, 단체와 단체 간의 언약도, 한 국가와 또 다른 국가 간에 세운 언약도 아니다. 이건 창조주가 인류 전체와 세운 언약이다. 이 ‘언약’의 유효 기간은 창조주가 만물을 폐기하는 그날까지이며, 이 ‘언약’의 시행자는 창조주이고, 그것의 수호자 역시 창조주이다. 요컨대, 인류와 세운 ‘무지개 언약’의 모든 것은 창조주와 사람의 대화에 따라 응하고 이루어졌으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병에 순종하고, 따르고, 신뢰하며, 그 권병을 깨닫고, 목도하고, 칭송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느냐? 유일무이한 하나님 이외에 이러한 언약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매번 나타나는 무지개는 인류에게 창조주가 사람과 세운 ‘언약’을 알려 주고 상기시켜 준다. 창조주가 인류와 세운 언약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가운데, 그것이 인류에게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은 ‘무지개’와 ‘언약’ 자체가 아니라, 창조주의 영원불변의 권병인 것이다. 무지개의 출현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창조주가 은밀한 곳에서 행하는 놀랍고도 오묘한 행사이며, 창조주의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변치 않는 권병의 생생한 구현이다. 이런 것들은 창조주의 또 다른 면에서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권병의 구현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네 씨로 크게 성하게 하리라고 한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이다. 이 언약은 ‘무지개 언약’처럼 영원히 이뤄질 것이며,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기도 하다. 이 약속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사람이 믿든 안 믿든, 받아들이든 못 받아들이든,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어떤 식으로 보고 대하든 상관없다. 이 모든 것은 장차 하나님의 말씀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의지나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며, 그 어떤 사람이나 일, 사물의 변화에 의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만물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만물이 사라지는 그 날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이뤄지는 날이다. 그는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주의 권병을 지녔으며, 창조주의 능력이 있고, 만유와 모든 생명을 주관한다. 그는 무에서 유를, 유에서 무를 가능케 하며, 모든 생과 사의 전환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손을 번성케 하는 것은 하나님께 있어선 지극히 간단한 일이다. 사람이 듣기에는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 같은 일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이 하고자 결정한 일이나 사람에게 약속한 일은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하나님이 이미 목격한 사실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다. 너희는 여기에 대한 체득이 있느냐? 아브라함의 후예가 많은지 사실이 증명하고 있지 않으냐? 얼마나 많으냐?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과 같지 않으냐? 각 나라, 각 지역, 세계 각지에 널리 퍼져 있지 않으냐? 이러한 사실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냐? 하나님 말씀의 권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난 후,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동안 그 말씀은 계속해서 이뤄지고, 끊임없이 현실화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자 하나님 권병의 증거이다.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이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 일의 성취와 응답은 시간 차 없이 그 즉시 이루어졌다. 이 또한 다 하나님의 권병이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한 일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 권병의 또 다른 면의 본질을 보고, 창조주의 권병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과, 그 권병의 더 실질적이고 훌륭한 면도 알 수 있게 하였다.

하나님이 말씀하자마자 하나님의 권병은 그 사역을 주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한 것들이 점차 현실이 되기 시작하였다. 만물의 모든 것이 다 이로 인해 다양한 변화를 맞았다. 일례로, 봄이 오면 풀이 파릇파릇해지고 꽃이 피고 나무에 싹이 튼다.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하고 기러기들이 돌아오며, 논밭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에 발맞춰 만물도 다시 소생한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놀라운 행사이다.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이룰 때, 하늘과 땅의 만물이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새로워지고 변화되는데, 그 어떤 것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이루기 위해 만물이 다 힘쓰며 움직이게 된다. 모든 피조물이 다 창조주의 권세 아래 지배되고 안배되어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각자의 기능을 다한다. 창조주의 권병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너는 하나님의 권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권병에 정해진 범위가 있느냐? 시간적 제약이 있느냐? 하나님 권병의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을 논할 수 있느냐? 크고 작음과 강함과 약함을 논할 수 있느냐? 사람의 기준으로 헤아릴 수 있느냐? 하나님의 권병은 사라졌다 나타나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 아니며, 아무도 그의 권병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복을 내리면, 시간이 얼마 걸리든지 간에 그가 내린 복은 지속된다. 그 지속됨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권병을 증거하고, 창조주가 가진 영원불멸의 생명력이 수없이 재현되는 것을 사람에게 보여 준다. 그의 권병은 나타날 때마다 그의 말씀을 완전하게 구현해 내어 만물과 인류에게 보여 준다. 그리고 그의 권병이 이룬 일은 하나같이 더없이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완전무결하다. 그의 생각, 그의 말씀, 그의 권병과 그가 이룬 일은 전부 그 어떤 것도 비할 수 없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피조물에게 있어서 그 의의와 가치는 인류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한 후에는,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든, 무엇을 하든, 약속받기 전후로 그의 사정이 어떻든, 그의 생존 환경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든, 하나님은 모두 환히 알고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다 방금 일어난 일과 같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인류에게 한 모든 약속을 추진하고 주관하고 실현시키는 능력과 권병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무엇이든 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간에, 시간, 장소, 종족 등 그 약속의 실현이 관련된 범위가 얼마나 넓든 상관없이, 그 약속은 이루어지고 실현된다. 게다가 이는 하나님께 있어서 전혀 힘들지 않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느냐?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이 주관하는 범위는 우주 전체, 인류 전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빛을 만들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빛만 관리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물을 만들었으니 물만 관리하고, 나머지 일은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한다면 오해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몇백 년 후, 그 일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그 약속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여전히 이루어져 가는 과정 중에 있고,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그 기간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권병을 행하였는지, 만물을 어떻게 지배하고 안배했는지,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는지, 인류는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권병과 그의 행사에서 나타난 탁월한 면면들은 만물 가운데 전해지며 칭송되고 있고, 만물은 창조주의 놀라운 행사를 나타내며 전하고 있다. 창조주가 만물을 주재하는 갖가지 미담들은 만물을 통해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하나님이 어디에나 항상 존재함을 만물에게 보여 준다. 네가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어디에나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시간, 지리, 공간, 그리고 그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범위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며, 사람이 헤아릴 수 없고 상상하기 어려우며, 영원히 다 알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은 권병과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매우 신중하고 원칙 있게 일하며 신용을 지킨다. 그의 신중함과 그가 일하는 원칙은 창조주의 거스를 수 없음과 뛰어넘을 수 없는 창조주의 권병을 나타내고 있다. 그가 지고지상한 권병을 가지고 있고, 만물이 모두 그의 권세 아래 있을지라도, 그리고 그가 만물을 주재하는 능력을 갖추었을지라도,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계획을 파괴하거나 혼란을 야기한 적이 없다. 그는 권병을 행할 때마다 항상 자신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그가 말씀한 대로, 그가 계획한 절차와 목표대로 정확하게 진행한다.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는 만물 역시 하나님 권병의 행사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의 권병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의 권병이 행사하는 원칙을 바꿀 수 없다. 그가 보기에 복받는 자는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게 되고, 저주받는 자 역시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 권병의 주재 아래,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하나님 권병의 행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하나님 권병이 행사하는 원칙을 바꿀 수 없다. 창조주의 권병은 그 어떤 요인의 변화로도 바뀌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권병이 행사하는 원칙 역시 그 어떤 원인에 의해서도 바뀌지 않는다. 천지가 격변한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병은 변하지 않는다. 만물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영원히 바뀌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창조주 권병의 본질인 것이다. 이 역시 창조주의 유일무이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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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창세기 1장에서는 ‘사시’로 번역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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