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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생사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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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생사윤회우리 먼저 이방인의 생사윤회부터 말해 보자. 한 사람이 죽으면 영계의 심부름꾼 하나가 와서 데려간다. 무엇을 데려가는 걸까? 육체가 아닌 영혼이다. 그 영혼을 어떤 곳에 데려가게 되는데, 그곳은 영계의 한 기관이고, 전문적으로 방금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응대하는 곳이다. [주: 어떤 사람이든 죽은 후 첫 번째로 도착하는 곳인데, 그 영혼에게 있어서는 낯선 곳이다.] 그곳으로 데려온 후, 집행관이 첫 번째 관문을 지키는데, 그 사람의 이름, 주소, 나이를 확인하고, 그 사람이 생전에 한 일들과 일생 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책에 기록하고 또한 그것을 정확하게 대조해 확인한다. 각 항목을 정확하게 대조해 본 후, 그 사람의 일생 동안의 행위와 일생 동안에 행한 모든 것에 근거해 그 사람이 징벌받을지 아니면 계속 환생하여 사람이 될지를 정한다. 이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 첫 번째 관문이 무섭지 않으냐? 아직은 그렇게 무섭지 않다. 단지 컴컴한 낯선 곳에 도착한 것뿐이니 그리 무서운 것은 아니다.

두 번째 관문, 만약 그 사람이 일생 동안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고 악을 많이 행했다면 징벌받는 곳에 끌려가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는 처벌받는 곳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그곳은 전문적으로 사람을 징벌하는 곳이다. 그 사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징벌하는지는 그 사람이 생전에 저지른 죄와 악행의 다소에 근거해 결정한다. 그것은 두 번째 관문의 첫 번째 상황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전에 한 어떤 일과 저지른 어떤 악행으로 인해 징벌받은 후 다시 윤회하면, 즉 다시 환생하여 물질세계로 오게 될 경우,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동물로 태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이 영계로 돌아갔을 때 그는 저지른 악으로 인해 징벌을 받게 되고, 더더욱 그가 저지른 악으로 인해 다음번 윤회에서는 더 이상 사람이 되지 못하고 동물이 된다는 것이다. 동물의 범위는 소일 수도 있고, 말일 수도 있고, 돼지일 수도 있고, 개일 수도 있다. 아마 어떤 사람은 환생하여 새가 될 수도 있고, 오리나 거위가 될 수도 있다… 그가 동물로 태어났다가 죽어 다시 영계로 돌아가면, 영계에서는 다시 그의 생전 행위에 근거해 윤회하여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지의 여부를 결정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한 짓을 너무 많이 저지르고 범죄한 것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재차 윤회할 때 동물로 7~12번 환생해야 한다. 7~12번이면 무섭지 않으냐? 무엇이 너희를 무섭게 하느냐? 사람이 동물이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동물이 되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일까? 그것은 언어가 없고 간단한 생각만 있으며, 동물이 하는 짓만 하고 동물의 먹이만 먹으며 동물의 간단한 생각과 간단한 몸짓 언어만 할 뿐, 직립 보행할 수 없고 인류와 소통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인류와 관련되는 모든 행위나 활동은 다 동물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즉, 만물 중에서 동물이라면, 그것은 아주 저속한 생물이므로 사람보다 고통이 훨씬 많다. 그것은 갖은 악을 행하고 범죄가 너무 심한 일부분 사람들에 대한 영계의 한 방면의 처벌이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처벌의 경중도 그가 환생하는 동물의 종류에 따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돼지가 되면 개가 되는 것보다 좋을까? 돼지는 개보다 살기가 좋을까, 아니면 고달플까? 틀림없이 고달프다. 소나 말이 된다면 돼지보다 살기가 좋을까, 아니면 고달플까? (좀 낫습니다.) 보아하니 너희에게 선택하라고 하면 너희도 무엇이 나은 줄 아는구나! 고양이가 된다면 조금은 편안하지 않을까? 소나 말이 되는 것보다는 많이 편안하다. 똑같이 동물이 된다면 고양이가 되는 것을 선택하면 좀 편안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시간에 늦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소나 말이 되면 비교적 고생스럽다. 그러므로 환생하여 소나 말이 되면 그것은 고생하는 것이다. 보아하니 그 징벌은 가볍지 않다. 개가 되면 상대적으로 소나 말보다는 좀 낫다. 왜냐하면 개와 주인과의 관계는 어쨌든 소나 말의 주인과의 관계보다는 좀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많은 사람들이 개를 기르고 있는데, 3~5년 기르면 개가 사람의 말을 많이 알아들을 수 있다! 개가 주인의 말을 많이 알아듣고, 주인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주인의 심정과 요구에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주인도 개를 좀 잘 대해 준다. 그러면 개는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실 수 있고, 병에 걸렸을 때 많은 보살핌을 받게 되는데, 그럼 그 개도 복을 누리게 되지 않느냐? 그러므로 개가 되는 것이 소나 말이 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좀 낫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을 징벌하는 정도에 근거해 그가 동물로 환생하는 횟수와 환생할 동물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이다. 알았겠지?

사람이 세상에서 너무 많이 범죄한 것으로 인해 7~12번 동물로 태어나는 징벌을 받은 후 그 사람이 징벌받은 횟수가 다 차서 다시 영계로 돌아가면, 그 사람은 어떤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곳의 각 부류 영혼은 모두 이미 징벌을 받았고, 모두 다시 윤회하여 사람으로 태어나게 될 부류이다. 그곳에서도 각 영혼을 부류로 나누는데, 어떤 가정으로 갈 것인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후 맡아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등등에 근거해 나눈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 와서 가수가 될 사람이라면 그런 유형의 무리에 두고, 세상에 와서 상인이 될 사람이라면 상인 무리에 배치한다. 만약 그 사람이 사람이 될 때 과학 연구를 할 사람이라면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무리에 둔다. 그들을 부류별로 나눈 뒤에 각기 다른 시기에 따라, 정해 놓은 날에 따라 하나씩 보낸다. 마치 지금의 사람들이 전자 메일을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면 하나의 윤회 과정이 완성된다. 여기에는 아주 극적인 면이 있다. 한 사람이 영계에 도착한 그날부터 그 사람이 징벌을 다 받거나 혹은 여러 번 동물과 서로 윤회한 후 다시 사람으로 윤회하기 직전까지, 그런 하나의 과정이 바로 완전한 과정이다.

징벌을 다 받아 더 이상 동물과 서로 환생하지 않는 그런 일부 사람들은 아주 빨리 사람으로 물질세계에 보내지는 것일까? 혹은 그들은 얼마나 오래 있어야 인간 세상에 올 수 있을까? 그 빈도는 어떠할까? 그 빈도에도 시간 제한이 있다. 영계에서는 일을 할 때마다 정확한 시간 제한이 있고, 정확한 시간 규정이 있다. 그 규정을 숫자로 설명하면 너희는 알게 될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환생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그 사람이 죽을 때 그곳에서는 이미 그 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환생시킬 준비를 해 놓은 것이다. 제일 짧은 시간은 3일부터 시작이다. 어떤 사람은 3개월이고, 어떤 사람은 3년이며, 어떤 사람은 30년이고, 어떤 사람은 300년이며, 어떤 사람은 심지어 3,000년 등등이 있다. 그럼 그 시간 규정에 어떤 법칙이나 논법이 있을까? 바로 그 영혼이 이 물질세계, 인류의 세상에 와야 할 그 필요성에 근거하고, 이 세상에서 맡아야 할 그 사람의 역할에 근거하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이 급히 필요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으로 환생될 거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주 빠르게 환생할 수 있어 3일 후면 또 보내지는데, 자신의 생전 때와 완전히 다른 가정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반드시 특수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는데, 이른바 ‘특수하다’는 것은 이 인류 가운데서 그런 사람에 대한 수요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고, 이 세상에 와서 그런 역할을 맡을 사람이 별로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아마 30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즉, 그런 영혼은 300년에 겨우 한 번 오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3,000년이 되어야 겨우 한 번 올 수 있다. 왜 그럴까? 바로 그 300년 혹은 3,000년 동안 인간 세상에는 그런 인물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영계의 어떤 곳에 가두어 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자와 같은 사람은 중국 전통문화에 심원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이것은 아마 사람마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그때 그 시대 사람의 문화, 지식, 전통 그리고 사람의 사상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시대마다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영계에 있어야 한다. 300년 혹은 3,000년의 기간이 차야 겨우 한 번 윤회할 수 있다. 인간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늘 한가하게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의 역할이 아주 적고 해야 할 일이 아주 적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반드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다 영계의 어떤 곳에 갇혀 한가하게 있어야 한다. 인간 세상에 그런 사람이 필요할 때가 되면 언제든지 보낸다. 이것이 바로 대다수 사람의 윤회 빈도에 대해 영계에서 정한 시간상의 규정이다. 평범한 사람이든 아니면 특수한 사람이든, 영계에서 그들의 윤회에 대해 처리하는 것은 모두 적합한 규정과 정확한 방법이 있다. 그러나 그런 규정과 방법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모두 하나님에게서 하달된 것이지, 그 어떤 심부름꾼이나 영계의 그 어떤 생령도 결정하거나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알아들었겠지?

그 어떤 영혼이든 윤회하여 맡을 역할이 무엇인지, 즉 그가 금생에 맡을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 그의 이번 생은 어떠할지, 이러한 것들은 전생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각 부류 사람들은 인간 세상에 와서 담당할 역할이 다르고 담당할 임무도 다르다. 어떤 임무일까? 어떤 사람들은 빚을 갚으러 오는데, 전생에 남에게 빚진 것이 너무 많아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빚을 받으러 오는 것인데, 전생에 남에게 너무 많은 물건과 돈을 사기당했기 때문에 영계로 갔을 때 영계에서 그에게 공정하게 처리해 주어 금생에 와서 빚을 받게 해 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은혜에 보답하러 오는데, 전생에 다른 사람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생에 아주 좋은 기회를 얻어 다시 환생하여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금생에 윤회하는 것은 목숨을 취하기 위함인데, 누구의 목숨을 취할까? 바로 전생에 그의 목숨을 앗아간 그 사람이다. 어쨌든 각 사람의 금생은 모두 전생과 아주 큰 관계가 있고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또한 각 사람의 금생은 전생의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전에 장씨가 이씨의 돈을 많이 사취했다면 장씨가 이씨에게 빚진 것이 아니냐? 만약 장씨가 이씨에게 빚을 졌으면 이씨가 당연히 장씨에게서 빚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럼 두 사람이 죽은 후에 그들 둘은 계산할 장부가 있게 된다. 다시 윤회할 때 장씨가 환생하여 사람이 되면 이씨는 그에게서 어떻게 빚을 받을까? 그중의 한 가지 방식은, 이씨는 장씨의 아들이 되어 빚을 받으러 오고 장씨는 이씨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생, 금생의 일이다. 이씨의 아버지 장씨는 돈을 많이 번다. 그다음 이씨가 장씨의 아들이 되어 장씨의 돈을 탕진한다. 즉, 장씨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든, 아들 이씨가 ‘도와’ 돈을 물 쓰듯 하여 아무리 벌어도 모자란다. 장씨의 아들은 어찌 된 일인지 항상 다른 방식과 수단으로 장씨의 돈을 허비한다. 그리하여 장씨는 답답해한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내가 어떻게 저런 망할 놈을 낳았지? 다른 집의 아들은 왜 다 그리 좋을까? 내 아들은 왜 포부도 없고, 기술도 안 배우고, 땡전 한 푼도 안 벌어 오고, 늘 내가 먹여 살려야 하지? 내가 먹여 살리는 건 괜찮은데, 왜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모자랄까? 왜 바른 일을 하지 않을까? 왜 빈둥거리고 방탕한 생활만 하며 무슨 짓이든 다 할까? 이게 어찌 된 일일까?’ 그러고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전생에 저놈에게 빚진 게 아닌가? 에휴, 전생에 빚졌을지도 모르니 갚자! 말끔히 갚지 않으면 끝이 없어!’ 언제 이씨가 40살이나 50살이 되었을 때 빚을 다 받게 되면,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된다. ‘나는 전반생에 좋은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버지가 번 돈을 내가 다 허비하였구나. 이젠 사람답게 살아야지! 다시 뜻을 세우고 본연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잘 살아야지. 더 이상 아버지 마음을 괴롭게 해서는 안 돼!’ 이씨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왜 갑자기 좋아졌을까? 그것은 원인이 있지 않으냐?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사실은 빚을 다 받아 낸 것인데, 장씨가 빚을 다 갚은 것이다. 그 일은 전후사연이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에 발생한 것으로, 그 두 사람이 전생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래서 전생의 이야기를 금생까지 가져오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무도 그 누구를 탓할 수 없는 것이다. 장씨가 자기 아들을 아무리 교육해도 아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바른 일을 하지 않았지만, 빚을 다 갚은 그날이 되니 더는 교육할 필요도 없이 그 아들이 자연히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간단한 예인데, 이런 예는 적지 않다. 이 예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 주느냐?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악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악한 짓을 하면 보응이 있다! 이방인들을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한 악은 모두 적지 않은데, 그들의 악행은 모두 보응을 받았다! 그 보응은 아무렇게나 오는 것일까? 보응을 받은 사실은 모두 배경이 있고 원인이 있는 것이다. 너는 남의 돈을 사취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느냐? 남의 돈을 사취하고 남의 돈을 얻어 내도 그 결과를 감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선행에는 선과가 있고 악행에는 악과가 있다. 조금도 틀리지 않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든 믿지 않든,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행위에 책임져야 하고, 모두 자신의 행위로 초래한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이런 간단한 예, 즉 장씨가 징벌을 받고 이씨가 빚을 받아 낸 일은 공평하지 않으냐? 그것은 공평한 것이다.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질러 그런 결과가 있게 된 것은 영계에서 그런 일들을 관리하는 것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영계를 관리하는 것과 떼어 놓을 수 없다. 설령 이방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이런 천상의 계율과 법령 아래에서 살아가는데, 아무도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이 인간 세상에서 얼마나 큰 벼슬을 하든, 아무도 이런 현실을 피하지 못한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존재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 사람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늘 그렇게 여긴다. 그들은 ‘생사윤회’가 없고 ‘징벌받는다’는 이런 설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방자하여 거리낌 없이 악을 저지르고 죄를 짓는다. 그런 후, 징벌을 받거나 동물과 서로 윤회한다. 이방인의 각 부류 사람들은 대부분 다 그런 악순환 속에 빠져 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그들은 영계에서 그 어떤 생령(生靈)에 대해서도 다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그 사실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이 감찰하는 범위 내에서, 그런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은 없고, 천상의 계율을 벗어나거나 하나님의 법령의 규정과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간단한 예는 각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죄를 짓고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책임져야 할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남의 돈을 사취한 사람이 그런 징벌을 받았는데, 그것은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공의로운 것이다. 이처럼 흔히 볼 수 있는 행위도 영계의 제재를 받고, 하나님의 법령과 천상의 계율이 규정한 대로 제재를 받는다. 그러므로 강간하고 약탈하고, 남을 속여 재물(財物)을 빼앗고, 도둑질하고 강탈하며 살인 방화하는 등등 엄중한 범죄, 악한 짓을 저지르는 행위는 더욱더 정도가 다른 갖가지 징벌을 받게 된다. 그 정도가 다른 징벌은 어떤 것들이 포함될까? 어떤 것은 시간으로 그에게 징벌받는 정도를 정하고, 어떤 것은 각기 다른 징벌 방식으로 그에게 징벌받는 정도를 정하며, 또 어떤 것은 그가 환생 윤회하여 갈 곳으로 그에게 징벌받는 정도를 정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입버릇이 나쁘다. ‘입버릇이 나쁘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할까? 늘 남을 욕하고 악독한 말을 하며, 저주의 성질을 띠고 있는 것이다. 악독한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 사람의 마음이 악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주의 성질을 띤 악독한 말은 늘 그런 사람의 입에서 나오고, 또한 그의 악독한 말로 인해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죽은 후 상응한 징벌을 받은 다음에 다시 환생하게 되면, 아마 벙어리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세세하게 타산해 가며 늘 부당한 이득만 챙기는데, 자기 이익은 아주 꼼꼼하게 따지고 남을 해치는 짓을 많이 저질러 다시 환생할 때는 아마 바보, 얼뜨기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늘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데, 즉 그의 눈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보았고 알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환생하면 아마 맹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발놀림이 재빨라 늘 치고 박고 싸우며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면, 다시 환생할 때 아마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절름발이라든가, 한쪽 팔이 없다든가, 곱사라든가, 목이 비뚤어졌다든가, 한쪽 다리는 길고 한쪽 다리는 짧은 까치발이라든가 등등, 그것은 그 사람이 생전에 악을 저지른 정도에 근거해 받는 각기 다른 징벌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팔뜨기는 어떻게 된 일일까? 사팔뜨기가 많지 않으냐? 지금 봐도 적은 편은 아니다. 어떤 사팔뜨기들은 전생에 나쁜 짓을 하는 데에 눈을 너무 많이 써 금생에 비뚤어진 것인데, 심한 자들은 맹인이 된 것이다. 사팔뜨기가 보기 좋으냐? 미관에 영향을 주지 않느냐? 그 사람을 보면 얼굴은 매우 예쁘고 말쑥하게 생기고 눈도 크고 쌍꺼풀도 있지만, 아쉽게도 한쪽 눈이 비뚤어졌다. 그러면 보기에 어떠하냐? 그 사람의 기품에 완전히 악영향을 주지 않느냐? 그렇게 악영향을 주면 그 사람은 한평생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 다른 사람과 만나기만 하면 생각한다. ‘아, 내 눈이 비뚤어져 있으니 다른 사람이 내 눈을 보지 못하도록 적게 쳐다봐야지. 똑바로 보지 말고 머리를 숙여 말해야겠어.’ 눈이 비뚤면 물건을 보는 데에 영향을 받고, 다른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데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눈을 적게 쓰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눈을 적게 쓰는 것인데, 전생에 불필요하게 쓴 그 부분을 되찾아 오는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그는 내세에 다시는 감히 똑같은 짓을 저지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보응이다!

어떤 사람은 생전에 대인 관계가 괜찮고, 주변 사람, 즉 친척이나 친구, 동료 혹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 주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베풀어 주고 보살펴 주거나 구제하여 다른 사람에게 아주 좋은 기억을 남겼다. 그런 사람은 영계로 돌아가면 아무런 징벌도 받지 않는다. 아무런 징벌도 받지 않으면 이방인에게 있어서 그런 사람은 아주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믿지 않고 천지신명만 믿고 ‘머리를 쳐들면 석자 위에 신령이 있다’라는 것만 믿었고 그 신조만 믿었다. 그 결과 어떠하냐? 나쁜 일을 많이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사람은 마음씨가 착하고 선행을 잘 베풀어 나중에 영계로 돌아갔을 때, 영계에서 그를 아주 좋게 처리하여 그 사람은 아주 빨리 다시 윤회하고 다시 환생하게 된다. 어떤 가정으로 올까? 그 가정은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생활이 평안하고, 가족이 화목하고 평온하여 즐거운 생활을 보내며, 온 가족이 화기애애하여 삶이 괜찮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의 후반생은 자녀가 많고 집안이 번성하며, 자녀가 출세하고 인재가 되며, 집의 가운과 운세도 괜찮다. 이런 결과 또한 그 사람의 전생과 아주 큰 관계가 있다. 사람의 일생을 놓고 말하면, 죽은 후 다시 환생하여 어디로 갈지, 남자일지 여자일지, 그의 사명이 무엇일지, 일생 동안 어떤 일을 겪을지, 어떤 좌절을 당할지, 복을 얼마나 누리게 될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어떤 일에 부딪힐지, 그것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아무도 피할 수 없고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너의 이 일생이 정해진 후 일생 동안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는, 네가 어떻게 피하든, 어떤 방식으로 피하든, 모두 하나님이 영계에서 너에게 정해 준 그 일생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환생할 때 일생의 운명이 모두 정해졌기 때문이다. 좋든 나쁘든, 사람마다 직면해야 하고 앞으로 가야 한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또한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다. 이런 것을 다 알아들었겠지?

이런 것을 알게 된 후, 너희는 하나님이 이방인의 생사윤회에 대해 모두 아주 정밀하고 아주 엄격하게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느냐? 우선, 하나님은 영계에서 각 항목의 천상의 계율, 법령, 제도를 제정하였다. 그런 천상의 계율과 법령, 제도를 반포한 후, 영계의 여러 직위에 있는 생령들은 모두 하나님이 정한 규정에 따라 그것을 엄격히 집행하고 있는데, 아무도 감히 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류 세계에서 인류의 생사윤회 혹은 동물이나 인류의 상호 윤회는 다 법칙이 있는 것이다. 그 법칙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타파하지 못하고, 아무도 그런 법칙을 타파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그런 주재로 말미암아, 그런 법칙이 있음으로 인하여, 사람이 보게 되는 이 물질세계는 질서 정연하고 문란하지 않고 조리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런 주재가 있기에 인류는 비로소 인류가 전혀 보지 못하는 다른 세계와 평화롭게 공존하고, 화목하게 함께 생활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떼어 놓을 수 없다. 한 영혼의 육체 생명이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은 계속 살아 있는데, 만약 그 영혼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영혼은 이리저리 돌아다닐 것이고 여기저기 휘젓고 다닐 것이며, 심지어 인류 세계의 생물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그 ‘해’는 단지 인류에게만 미칠 뿐만 아니라, 아마 식물들을 해칠 수도 있고 동물들을 해칠 수도 있다. 그러나 맨 처음으로 해를 입는 것은 인류이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고, 그런 영혼들이 관리를 받지 못하고, 정말 인류에게 해를 끼치며 정말 어느 정도 악한 짓을 저질렀다면, 영계에서도 그런 영혼에 대한 정당한 처리가 있다. 만약 심각하면 그 영혼은 곧 멸망되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 영혼을 한곳에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윤회하게 한다. 즉, 영계에서 각 부류의 영혼을 관리하는 것은 모두 층차 있게 절차와 규정에 따라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 관리가 있기 때문에 인류의 이 물질세계는 혼란스럽게 되지 않고, 이 물질세계에 있는 인류에게 정상적인 사유와 정상적인 이성(理性), 그리고 질서 있는 육체 생활이 있는 것이다. 인류에게 이런 정상적인 생활이 있게 된 후, 육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로소 한 세대 또 한 세대씩 번성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이 이방인에 대해 일하는 원칙은 ‘하나님은 상선벌악(賞善罰惡)한다’라는 이런 원칙이 아니냐? 그럼 하나님이 일하는 데에 원칙이 있지 않으냐? 너희는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배에 순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도 모르며, 더욱이 하나님을 시인하지도 않는다. 더욱 심한 자들은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런 태도로 대해도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데, 하나님의 원칙과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그렇게 질서 있게 그들을 관리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적대시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 즉 이방인 중의 대부분 사람들을 모두 동물과 서로 윤회하게 한 적이 있다. 그럼 하나님이 보기에 그 이방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짐승입니다.) 하나님이 보기에 이방인들은 모두 그런 부류이고 모두 짐승이다. 하나님은 짐승도 관리하고 인류도 관리하는데, 그 부류 사람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원칙을 갖고 있다. 설령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관리하고, 그 사람들에게 행하는 일일지라도 거기에서도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법칙을 볼 수 있다. 그럼 너희는 방금 말한, 하나님이 이방인을 관리하는 원칙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보았느냐?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주재를 보았고 하나님의 성품도 보았다. 즉, 하나님은 만물 중의 어느 하나를 대할 때에도 모두 자신의 원칙과 자신의 성품에 따라 일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그 부류 사람들을 짐승으로 여긴다고 해서 자신이 정해 놓은 천상의 계율과 법령을 마음대로 깨뜨리지 않는다. 즉, 하나님이 일하는 데는 원칙이 있어 전혀 함부로 하지 않으며, 또한 그 어떤 요소로 인해 방해를 받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든 다 자신의 원칙을 지킨다. 그런 것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로 말미암아 결정된 것이고, 그것 또한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갖추어지지 않은 독특한 본질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만물 중의 어떠한 것, 어떠한 사람, 어떠한 생물도 다 진지하고 책임지는 태도로 처리하고, 대하고, 경영하고, 관리하고, 주재하며 지금까지 소홀히 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착한 사람에게는 은총을 베풀 것이고 선대할 것이며, 악인에게는 조금도 사정없이 징벌할 것이다. 그러나 각 부류의 생령에 대해서는 인류 세계의 각기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필요에 따라 제때에 정기적으로 적합하게 안배하여 각 부류의 생령들을 자신이 맡은 역할에 따라 규칙적으로 윤회하게 하고, 규칙적으로 물질세계와 영계 사이에서 오가게 한다. 이것은 인류가 마땅히 깨닫고 알아야 할 것들이다.

한 생령의 죽음, 한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것은 한 생령이 물질세계에서 영계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육체의 새 생명의 탄생도 한 생령이 영계에서 물질세계로 와서 자신의 역할을 담당하고, 자신의 배역을 맡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한 사람이 가든지 아니면 한 사람이 오든지, 그런 것은 모두 영계의 일과 떼어 놓을 수 없다. 한 사람이 오면 어떤 가정에 올지, 어느 시대에 올지, 어느 시각에 올지, 어떤 역할을 맡을지, 영계에서 하나님은 모두 적합한 안배와 규정을 해 놓았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일생, 그 사람이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은 영계에서 그를 위해 안배한 것에 따라 조금도 오차 없이 진행(직역: 발전)된다. 그리고 한 육체의 생명이 언제 끝날지, 어떤 방식으로 끝날지, 어떤 곳에서 끝날지에 관한 것도 영계에서 분명하게 알고 있고, 영계에서 다 속속들이 관찰하고 있다.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주재하고 있고, 영계도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의 정상적인 생사윤회를 지체하지 않고, 한 영혼의 생사윤회를 잘못 안배하지도 않는다. 영계의 각 직위에 있는 심부름꾼들도 모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이 정한 것에 따라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세계에서 사람이 보게 되는 물질 현상마다 다 질서 정연하여 그 어떤 혼란도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규칙적인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권능이 이 모든 것을 주재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이 주재하는 이 모든 것은 인류가 생존하는 물질세계를 포함하고, 더욱이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인류 배후의 그 영계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인류에게 좋은 삶이 있고 좋은 생존 환경이 있게 하려면, 사람이 볼 수 있는 물질세계의 이 모든 것으로 인류에게 공급하는 것 외에, 인류에게는 사람이 볼 수 없는, 인류를 위해 각 생령을 관리하는, 질서 있는 그 영계의 공급이 더욱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만물’에 대해 또 한 가지 더 알게 되었고 깨닫게 되지 않았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