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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생사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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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생사윤회에 대해 계속 말해 보자. 이것은 너희와 관련되는 것이다. 너희는 정말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먼저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을 믿는 이 부류의 사람들은 크게 몇 가지 부류로 나뉠까? 바로 하나님의 선민과 힘쓰는 자, 이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다. 우선 하나님의 선민, 이 부류에 대해 말해 보자. 이 부류 사람의 수는 많지 않다. ‘하나님의 선민’은 어떤 사람을 가리킬까?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을 때, 인류가 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선정한,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는 일부 사람들을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약칭한다. 하나님은 그 일부 사람들을 택하였을 때, 특별한 범위가 있었고 특별한 의의도 있었다. 그 범위는 바로 그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이 중요한 사역을 할 때마다 반드시 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특수성이다. 그럼 그 의의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선정한 일부 사람들인 이상, 그 의의는 아주 중대하다. 즉, 하나님은 그 일부 사람들을 만들고 그 일부 사람들을 온전케 하여 하나님의 경영 사역이 끝날 때 그 일부 사람들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의의는 중대하지 않으냐?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일부 선민들은 하나님에게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힘쓰는 자는 어떨까? 우리 우선 ‘정하심’에 대한 일은 제쳐 두고, 먼저 힘쓰는 자의 근원부터 말해 보자. ‘힘쓰는 자’란 글자 표면의 뜻만 딱 봐도 힘을 쓰는 것이다. 힘쓰는 것은 임시적인 것이지 장구(長久)한 것이 아니고 영원한 것도 아니며, 임시 고용한 것이고 임시 불러온 것이다. 그 일부 사람들의 근원은 대부분 이방인 중에서 선출한 것이다. 그가 태어날 때, 즉 그 사람을 하나님의 역사에서 힘쓰는 자가 되도록 정할 때, 아마 그는 전생에 어떤 동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 그는 전생에 이방인 중의 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이것이 힘쓰는 자의 근원이다.

우리 다시 하나님의 선민에 대해 말해 보자. 하나님의 선민도 죽은 후 어떤 곳에 가야 하는데, 그곳은 이방인 그리고 신앙이 있는 각 부류 사람들이 가야 할 곳과 완전히 다른 곳이다. 그곳은 천사가 있고 하나님의 사자가 동반하는 곳이고, 하나님이 친히 관리하는 곳이다. 비록 그곳에서 하나님의 선민들이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곳은 영계의 그 어떤 곳과도 다르다. 그곳은 그 일부 사람들이 죽은 후에 가야 할 다른 곳이다. 그들도 죽은 후에 하나님의 사자들의 엄격한 심사를 받는다. 무엇을 심사할까? 그들이 일생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간 길에 대해 심사하는데, 그 기간에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한 적이 있는지, 하나님께 악담을 한 적이 있는지, 어떤 엄중한 범죄나 악행이 있었는지를 심사한다. 그렇게 심사를 한 후, 한 사람이 떠나거나 머무는 문제를 결정한다. ‘떠나다’는 무엇을 가리킬까? ‘머물다’는 무엇을 가리킬까? ‘떠나다’는 바로 그 사람의 행위에 근거해 그가 계속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그 대오 범주에 머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머물다’는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이 말세에 만들고자 하는 그 인류의 범주에 계속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머무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특별한 안배를 한다. 하나님은 사역을 하는 각 시기마다 그런 사람들을 보내 사도가 되게 하거나, 교회를 부흥시키는 사역을 하게 하거나, 교회를 목양하는 사역을 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방인처럼 아주 빈번하게 한 세대씩 그렇게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역의 필요와 하나님 사역의 절차에 따라 윤회한다. 그런 사람은 자주 환생하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럼 ‘온다’라고 하는 것에 법칙이 있지 않으냐? 몇 년에 한 번씩 오는 걸까? 그 정도의 빈도가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무엇에 근거하느냐? 하나님의 역사에 근거하고 하나님의 역사 절차에 근거하며 하나님의 필요에 근거하는데, 규정은 없다. 유일한 규정은 무엇일까? 바로 말세에 하나님이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을 할 때, 그 선민들은 다 인간 세상에 온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 온다’는 것은 마지막 한 번의 윤회를 가리킨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하나님이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을 하면서 이루려고 하는 효과에 근거해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이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그 선민들을 모두 완전히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일부 사람들이 마지막 이 단계에서 만들어지고 온전케 된다면, 더 이상 이전처럼 윤회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람이 되는 그 과정이 철저히 끝난 것이고, 윤회의 과정도 철저히 끝난 것이다. 이것은 머물러 있게 된 사람이다. 그럼 머물 수 없는 사람은 어디로 갈까? 머물 수 없는 사람에게도 적합한 곳이 있다. 우선, 마찬가지로 그 사람은 악행으로 인해,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과 죄악으로 인해 똑같이 징벌을 받아야 한다. 징벌을 받은 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이방인들 가운데 보내는데, 적합한 상황에 근거해 그 사람을 이방인 중에 안배하거나 신앙이 있는 각 부류 사람들의 범위에 안배한다. 즉, 그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징벌을 받은 후 아마 일부 교파에서 살아갈 수도 있고, 하나는 이방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이방인이 된다면 아무런 기회도 없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사람이 된다면, 예를 들어 기독교인의 일원이 된다면 하나님 선민의 대오에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여기에는 아주 복잡한 관계가 있다. 어쨌든, 하나님의 선민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을 했다면 마찬가지로 징벌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전에 언급했던 바울 같은 경우이다. 바울은 징벌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한 가지 예이다. 그 일에서 너희는 갈피를 좀 잡을 수 있느냐? 하나님 선민의 범주는 고정된 것이냐? (대부분은 고정된 것입니다.) 대부분은 고정된 것이다. 소부분은 왜 고정되지 않았을까? 그 소부분은 악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언급한 가장 뚜렷한 한 가지는 바로 악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은 받지 않는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면 그 사람을 각 인종, 각 부류의 사람들 속에 보낸다. 그럼 희망이 없고 다시 돌아오기 아주 어렵다. 이것이 하나님 선민의 생사윤회에 관한 것이다.

다음은 힘쓰는 자의 생사윤회에 관한 것이다. 힘쓰는 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좀 전에 언급했는데, 힘쓰는 자는 어디에서 온 것이었지? (어떤 사람은 이방인이었고, 어떤 사람은 동물이었습니다.) 그 힘쓰는 자에 대해 말하자면, 그 사람의 전생의 몸은 이방인이나 동물로 서로 전환하면서 환생했던 것이다. 마지막 이 단계에 이르러 하나님은 그 이방인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을 일부 선정하였는데, 그들은 특별한 무리이다. 그런 사람들을 일부 선정한 목적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힘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힘쓰다’, 이 단어는 듣기에 별로 우아하지 않고, 각 사람의 소망에도 별로 부합되지 않는다. 하지만 힘쓰는 대상이 누군지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힘쓰는 자라면 그 일부 사람들의 존재 역시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맡은 역할은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선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존은 의의가 있는 것이다. 힘쓰는 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의 선민들을 위해 힘쓰는 것인데, 주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게 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선민들을 온전케 하는 데에 협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힘을 내든 아니면 일부 사역을 하거나 일부 직무를 맡든, 그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일까? 아주 높은 요구가 있느냐? (충성된 힘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힘쓰는 자가 되어도 충성해야 한다. 너의 근원이 무엇이든, 하나님이 왜 너를 택했든, 너는 충성해야 하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너에게 부탁한, 네가 맡은 사역과 하는 ③본분에서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힘쓰는 자가 충성하여 하나님을 흡족게 한다면 어떤 결말을 얻을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살아남는 힘쓰는 자라면, 그것은 복이 아니냐? 살아남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 복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지위를 보면 하나님의 선민과 어느 정도 다르고 차별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힘쓰는 자와 하나님의 선민이 금생에 누리는 것은 같지 않으냐? 최소한 금생에 누리는 것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부인하지 않겠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공급, 하나님의 축복을 어느 누가 누리지 못했느냐? 누구나 다 아주 풍성하게 누렸다. 힘쓰는 자의 신분은 힘쓰는 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그 사람은 피조물의 일원인데, 단지 그가 맡은 역할이 힘쓰는 자일 뿐이다. 그럼 피조물의 일원으로서 힘쓰는 자와 하나님의 선민은 차별이 있을까? 사실상, 차별이 없다. 이름에서 차별이 있고 본질에서 차별이 있고 맡은 역할에서 차별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 일부 사람들을 차별 대우 하지 않았다. 그럼 왜 그 일부 사람들을 힘쓰는 자로 정했을까? 그것은 너희가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힘쓰는 자, 그 일부 사람들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온 것이다. 이방인들 가운데서 왔다고 하면, 그 일부 사람들의 밑바탕은 좋지 않은 것이다. 그 일부 사람들은 모두 무신론자이다. 그들의 밑바탕은 무신론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그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말해, 그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동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왜 그렇게 요구하는지를 알아들을 수 없다. 즉, 알아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그런 원인들을 감안해 볼 때, 그 일부 사람들에게는 전에 말했던 그런 생명이 없는 것이다. 그런 생명이 없으면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진리를 갖출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체험과 인식을 갖출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갖추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힘쓰는 자의 근원이다. 그러나 그 일부 사람들로 힘쓰게 한 만큼, 하나님은 그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도 요구 기준이 있는 것이다. 결코 그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적당히 대하는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그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생명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일부 사람들을 선대하고, 그들에 대한 요구 기준이 있다. 너희도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그 요구 기준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있어야 하고, 순종해야 하며, 힘써도 효과적으로 해야 하고, 또한 끝까지 힘써야 하는 것이다. 네가 끝까지 힘쓸 수 있고, 충성된 힘쓰는 자가 되어 마지막까지 힘쓰면서 하나님이 맡겨 준 부탁을 아주 훌륭하게 완성할 수 있다면, 너의 그 일생은 가치 있게 산 것이고, 너는 살아남을 수 있다. 만약 너 자신이 좀 더 힘을 내고, 좀 더 노력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서 좀 더 힘을 내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좀 말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좀 더 깨닫고,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더 헤아릴 수 있다면, 너 같은 힘쓰는 자에게는 전환점(원문: 轉機)이 있게 될 것이다. 그 전환점은 무엇일까? 더 이상 단순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너의 표현에 근거해, 너 자신의 소망과 추구에 근거해 너를 하나님의 선민 가운데에 넣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환점이다. 그 전환점이 힘쓰는 자에게 가져다주는 가장 큰 좋은 점은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이 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것은 그 사람이 더 이상 이방인들처럼 동물과 서로 윤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지 않으냐? 그것은 좋은 일이라 할 수 있고, 또한 기쁜 소식이다. 즉, 힘쓰는 자는 ④고정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힘쓰는 자에게 힘쓰도록 정해 놓았다고 해서 영원히 힘만 쓰는 것이 아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표현에 근거해 각기 다르게 처리를 할 것이고, 서로 다른 답변을 줄 것이다.

하지만 힘쓰는 자로서 끝까지 힘쓰지 못하는 자, 즉 힘쓰는 기간에 어떤 사람은 포기하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떠났으며, 어떤 사람은 그 기간에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에 엄청난 파괴를 초래했고 커다란 손실을 초래했다. 심지어 어떤 자는 하나님을 욕한 적도 있는데, 이런 등등의 만회할 수 없는 그 모든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 모든 악행은 힘쓰는 그 사람의 역할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즉, 힘쓴 내용이 너무 부족하고, 선을 넘은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네가 힘쓴 것이 형편없는 불합격이기 때문에 그 자격을 취소하여 힘쓰지 못하게 하고, 너를 하나님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고, 하나님의 집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네가 힘쓰기 싫어하지 않았느냐? 너는 늘 나쁜 짓을 저지르고 싶어 하지 않았느냐? 너는 늘 충성심이 없지 않았느냐? 그럼 좋다. 그 일은 해결하기 쉽다. 너의 힘쓸 자격을 취소하면 된다. 한 사람의 그 자격을 취소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런 자의 결말이 이미 선포되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하나님을 위해 힘쓸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사람이 힘쓰게 두지 않는다. 그 어떤 듣기 좋은 말을 해도 소용없다. 그런 정도에 이르게 될 때는 국면을 만회할 수가 없으며, 그런 자에게는 되돌아올 길이 없다. 그럼 하나님은 그런 자를 어떻게 처리하겠느냐? 단지 힘쓰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겠느냐? 아니다. 혹은 그저 그 사람을 살아남지 못하게 할 뿐이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한쪽에 내버려 두고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겠느냐? 그렇게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힘쓰는 자에 대해 그렇게 큰 사랑이 없는데, 이것은 사실이다. 그럼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일에서 한 사람의 태도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태도로 인해 하나님은 그 사람의 힘쓸 자격을 취소하고, 계속하여 그런 자를 이방인들 가운데로 보내 버릴 것이다. 이방인들 가운데 보내지면 그런 자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동물과 서로 윤회하면서 이방인이 영계에서 받는 처벌을 받게 된다. 어떻게 처벌할지에 관해서는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사람이 이미 하나님의 역사와 아무런 관련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생애가 끝난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운명도 끝난 것이고 운명이 판결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힘쓰는 자의 역할을 잘하지 못한다면 사람은 그 결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만약 힘쓰는 자가 끝까지 힘쓸 수 없거나 도중에 힘쓸 자격이 취소되었다면, 그 힘쓰는 자는 이방인들 가운데로 보내질 것이다. 이방인들 가운데로 보내지면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고, 생각과 이성(理性)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확실히 알겠지?

이것은 하나님의 선민들과 힘쓰는 자의 생사윤회에 대한 하나님의 처리이다. 듣고 난 후, 너희들은 어떤 소감이 드느냐? 내가 방금 말한 이런 화제들, 하나님의 선민과 힘쓰는 자에 관한 이 화제를 이전에 말한 적이 있느냐? 사실, 이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너희가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민에 대해, 힘쓰는 자에 대해 다 공의롭다. 어느 방면에서 말하든 다 공의롭다. 이것은 틀림없다. 아마 어떤 사람은 “그럼 하나님께서 선민들에게는 왜 그렇게 큰 관용을 베푸십니까? 힘쓰는 자에게는 왜 그만한 인내밖에 베풀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힘쓰는 자를 위해 하소연하려는 사람이 있느냐? “힘쓰는 자에게 시간을 좀 더 주실 수 없나요? 힘쓰는 자에게 인내와 관용을 좀 더 베풀어 주실 수 없나요?”라는 이 말이 맞느냐? (틀립니다.) 왜 틀리느냐? (사실 힘쓰는 자가 되는 것도 우리가 운 좋게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힘쓰는 자는 사실 운 좋게 얻은 것이다! 만약 힘쓰는 자란 그 호칭이 없다면, 만약 힘쓰는 자의 사역이 없다면, 그 일부 힘쓰는 자들은 어디에 있겠느냐? 이방인들 중에서 짐승들과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지금 그 일부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오게 하고 하나님의 집에 오게 하였는데, 사람이 얼마나 큰 은혜를 누리고 있느냐! 그건 정말 엄청난 은혜이다! 만약 하나님이 힘쓸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 앞에 올 그런 기회가 없다. 한 걸음 물러서서 말하자면, 설령 네가 불교 신자 중에서 수행하여 성과를 얻은 그 부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너는 영계에서 기껏해야 잔심부름꾼이다.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너에게 주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느낄 수 없으며,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이 직면하는 것은 단지 간단한 직무일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 수가 없는데, 그저 무작정 따르고 순복할 뿐이다. 하지만 힘쓰는 자는 이 단계 사역에서 얻는 것이 너무나 많다! 우선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느낄 수 있으며, 더욱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누릴 수 있다. 그것은 정말 얻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얻는 것이 너무도 많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힘쓰는 자로서 힘쓰는 것조차도 잘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남겨 두겠느냐? 너에 대한 요구도 높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너를 남겨 둘 수 없다. 너에게 뭘 시켜도 네가 잘하지 못하고 자신의 본직 사역을 지키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너를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다. 하나님은 너를 총애하지 않지만 차별 대우 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을 하는 원칙이다. 그 어떤 사람이나 피조물을 대하든 하나님은 다 이렇게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