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외식하는 바리새인을 분별하는 법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너희는 대체 어떤 자가 바리새인인 줄 아느냐? 너희 주변에 바리새인이 있느냐? 그들은 왜 ‘바리새인’이라 불리는 것이냐? ‘바리새인’이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 바로 외식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가식적이고 위장한다. 어떻게 위장하느냐? 훌륭한 사람인 양, 선하고 긍정적인 사람인 양 위장한다. 사실, 그가 훌륭하고 선하고 긍정적인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다. 가식이라고 하면 모든 모습과 드러내는 것이 거짓되고 위장한 것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한 면은 어디 있느냐? 드러내지 않고 속에 깊이 감춰둔 것이다. 겉모습은 전부 위장한 것이고 모조리 거짓된 것이다. 이는 사람만 속일 수 있을 뿐 하나님을 속이지는 못한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그러면 그가 하는 말은 아무리 듣기 좋아도 다 진리 실제가 아닌 글귀와 도리이다. 어떤 사람은 글귀와 도리를 떠들어 대는 것만 중요시한다. 누가 수준 높은 설교를 한다면 바로 따라 한다. 그 결과,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도 글귀와 도리를 말하는 수준이 점점 높아져 많은 사람이 탄복하고 숭상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언행에 각별히 신경 쓰며 무척이나 경건하고 영적인 척한다. 그는 이런 소위 영적인 이론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어디를 가든 그따위 것들을 말하는데, 진리 실제가 전혀 없이 모두 사람의 관념에 맞는 사이비한 것들이다. 그는 사람의 관념과 입맛에 맞는 그런 것들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을 미혹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그의 경건함과 겸손함은 실은 가짜다. 그의 포용과 인내, 사람을 향한 사랑은 꾸며 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의 말도 거짓된 것이다. 사람은 그를 성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성결함 역시 가짜다. 진정으로 성결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전부 거짓된 것으로, 전부 꾸며 내고 포장한 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연기한 것이다. 사람 뒤에서는 전부 건성으로 일을 하는데, 충성심이라고는 전혀 없다. 또한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가정과 직장을 버렸지만 뒤에서는 무엇을 하겠느냐? 교회에서 개인의 사업과 경영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한다는 기치하에 교회 밥만 먹고 제물을 훔쳐 먹는다…. 이런 자들이 바로 외식하는 현대판 바리새인이다. 바리새인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겠느냐? 이방인 가운데서 생겨났겠느냐? 그렇지 않다. 전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겨났다. 그럼 그런 사람들이 왜 바리새인으로 변할 수 있었겠느냐? 어느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겠느냐? 분명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들의 본성 본질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고, 또한 그들이 가는 길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하거나 공밥을 얻어먹기 위한 도구로 삼는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의 머리와 혀를 무장하고, 거짓된 영적 이론을 전하여 자신을 성인(聖人)으로 포장함으로써 그것을 밑천으로 공밥을 얻어먹으려는 목적을 이룬다. 그들은 도리를 전했을 뿐, 진리를 실행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도를 준행한 적이 없으면서 글귀와 도리까지 전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이는 바로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다. 그들의 그 소위 좋은 행위와 모습, 버림과 헌신 등은 다 사람의 의지로 억누르고 꾸며 낸 것으로, 전부 거짓된 것이며 위장한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티끌만큼도 없고 참된 믿음도 전혀 없다. 나아가 그들이 바로 불신파이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이런 길에 들어서서 바리새인이 되고 만다. 이것이 아주 끔찍하지 않으냐? 바리새인들이 모여 있는 종교적 장소는 매매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그곳을 하나님의 교회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곳도 아닌, 종교로 본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말씀의 글귀나 표면적인 도리를 아무리 많이 갖춰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이 주로 어디에서 나타나느냐? 그들은 성경을 파고들기만 했을 뿐 진리를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기도하거나 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한 말씀과 행한 것을 연구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일종의 이론으로 바꾸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학설로 이용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파고든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했겠느냐? 그들은 무엇을 파고들었던 것이냐? 그들이 보기에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발현이 아니었으며 진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학문의 한 형태였다. 그들의 눈에는 그러한 학문은 전승되어야 하고 널리 전파되어야 하며, 오직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소위 ‘전도’이며, 그들이 전도한 것은 신학이었다.

… 바리새인은 그들이 꿰고 있는 신학적 이론을 하나의 지식이자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도구로 삼고는 그 잣대를 주 예수에게까지 들이대 정죄했다. 그들은 한 사람의 본질, 그가 말하는 도의 진리 여부, 그의 말의 근원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하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이 꿰고 있는 구약 성경의 규례나 글자, 도리로만 판단하고 정죄했다. 그들이 속으로는 주 예수가 말하고 행하는 것이 죄가 아니란 것을 알고 율법을 어기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정죄하려 했던 것은 주 예수가 선포한 진리와 행한 이적과 기사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주를 따르고 찬양하니 바리새인이 그를 점점 더 증오하고 심지어 제거하려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주 예수를 메시아의 강림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주 예수의 말씀에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주 예수의 행사가 진리에 합한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 예수가 주제넘는 말을 한다고, 마귀 왕을 등에 업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주 예수에게 이런 죄명을 씌운 것은 주 예수를 속으로 얼마나 증오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이 주 예수가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라는 것을 사력을 다해 부인했던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이랬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사하신다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실 거였으면 대단한 지위의 가문에서 태어나셨어야죠. 그리고 서기관, 바리새인에게 훈련받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파고들어 성경 지식을 꿰어서 성경의 모든 지식을 섭렵해야 ‘성육신’이라는 호칭을 감당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주 예수는 이런 지식을 갖추지 않았으니 그들이 다음과 같은 말로 그를 정죄했던 것이다. “첫째, 당신은 이런 자격을 갖추지 못했으니 하나님이 아닙니다. 둘째, 당신이 이런 성경 지식을 쌓지 못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을 테니 당신은 더더욱 하나님일 리 없습니다. 셋째, 사역할 때 성전을 나가서는 안 되는데 당신은 지금 성전 안에서 사역하지 않고 항상 죄인의 무리 속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사역은 성경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당신은 더더욱 하나님일 리 없습니다.” 바리새인이 이렇게 정죄하는 근거는 어디서 비롯되었느냐?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람의 머리와 사람이 받은 신학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관념과 상상, 지식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이런 지식이 옳은 것이고 진리이며 근거라고 생각한다. 언제든 하나님도 이를 어겨가며 사역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진리를 구하느냐?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을 구하느냐? 초월적인 신, 영체의 현현을 구한다. 그러니 그들이 사람의 관념과 상상, 지식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하고 부인하며, 하나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결과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는 것도 모자라 말씀을 입은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관념과 상상, 지식으로 하나님을 판단한 결과이자 그들의 사악한 점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3)> 중에서

도리를 말하고 구호를 외치는 데 가장 능한 바리새인들은 항상 큰 거리 어귀에서 “위대한 하나님이시여!” “존귀한 하나님이시여!”라고 외쳤기에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경건해 보였으며, 그들은 율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칭찬했느냐? 칭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정죄했느냐? 하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라고 불렀다. 옛날에 이스라엘에서 존중받는 계층이었던 바리새인들이 어째서 지금은 그런 꼬리표가 붙은 것이겠느냐? 그들은 한 부류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됐는데 그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느냐? 외식하고 포장하고 위장하는 데 능하여 매우 고상하고 거룩하며 정직하고 떳떳한 사람인 척하고 그럴싸한 구호를 외치지만, 결과적으로 진리를 조금도 실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좋은 행위를 했느냐? 성경을 읽고 설교하고, 사람들에게 율법과 규례를 지키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런 것들이 모두 좋은 행위였다. 하지만 그들은 말만 번드르르할 뿐 뒤에서는 제물을 훔쳐 먹었다. 예수는 그들을 보고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 23:24)라고 했다. 바로 그들이 행한 것은 모두 외적인 좋은 행위라는 것이다. 그들이 당당하게 구호를 외치고, 거창한 이론을 얘기하며 말도 번드르르하게 잘했지만, 행하는 것은 모두 엉망이고 전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다. 외적인 행위는 모두 가식적이고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며, 속으로는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 하나님에게서 나온 모든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무엇을 사랑하겠느냐? 공의와 공평함을 사랑하겠느냐? (사랑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들이 그런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느냐? (예수께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지만 그들은 받아들이기는커녕 되레 정죄했습니다.) 그들이 정죄하지 않았다면 알아챌 수 있겠느냐? 알아챌 수 없다. 예수의 현현 사역으로 바리새인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들이 예수를 정죄하고 대적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로소 그들의 외식을 알아차렸다. 예수가 나타나 사역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바리새인을 분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외적인 행위만 보았다면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가식적인 좋은 행위로 사람을 속여 신뢰를 얻었다. 이것은 위선이자 간사함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간사한 사람이 진리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들이 이렇게 좋은 행위를 보여 주는 그 이면에 어떤 목적이 있겠느냐? 한편으로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회유해서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만들고 마지막에는 상을 받으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사기극이냐! 고단수가 아니냐? 이런 사람들이 공평함과 공의를 사랑하겠느냐? 분명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위와 명리를 사랑하고, 상과 면류관을 원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가르치는 그 말씀들을 그들은 한 번도 실행하지 않고, 진리 실제를 전혀 살아 내지 못한다. 모두 좋은 행위로 포장하고, 외식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속이고 회유해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확고히 한 다음, 이런 것들을 이용해 자본과 밥그릇을 손에 넣는다. 이것은 비루한 짓이 아니냐? 그들의 모든 행동을 통해 그들이 본질적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결코 진리를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보고 그들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느냐? 제일 큰 일은 이것이다. 예수가 구속 사역을 하러 왔고, 예수가 하는 모든 말은 진리이고 권병이 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대했느냐? 그들이 예수의 말에 권병과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정죄하고 모독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이겠느냐?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가 한 말이 옳고 권병과 능력이 있으며 틀린 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들은 그 어떤 꼬투리도 잡지 못했으면서도 예수를 정죄하려고 의논하고 음모를 꾸몄으며 “그를 못 박아 죽여라. 그가 있으면 우리는 없고, 우리가 있으면 그는 있을 수 없다.”라고 했다. 이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예수와 적이 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예수가 성육신한 하나님임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는 많은 진리를 선포하고 사람을 위해 귀신을 쫓고 병을 치료해 주었으며, 수많은 이적을 행하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였을 뿐 아니라,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사람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 이만큼 훌륭하고 의로운 사람이 없는데도 바리새인은 어째서 예수를 정죄하려고 한 것이냐? 어째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만 했던 것이냐? 그들은 죄인을 석방할지언정 예수는 풀어 주지 않았다. 이것으로 종교계의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사악하고 악독한지 알 수 있다. 이들은 너무 악하다! 바리새인이 드러낸 사악한 얼굴과 그들이 겉으로 위장한 선량함이 너무도 달라서,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수의 현현 사역을 통해 그 바리새인들을 완전히 드러낸 것이다. 바리새인이 평소에 얼마나 잘 위장하고 겉보기에 얼마나 경건하게 보였는지, 그들이 그토록 잔혹하게 예수를 대적하고 박해할 수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진상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면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는 사람을 너무도 명백하게 드러낸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새로운 빛은 받아들이지만 실행법을 바꾸지 않는 일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오늘날의 하나님 말씀을 과거의 종교 관념과 결합해 받아들인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 관념을 띤 도리이지, 순전한 오늘날의 빛이 아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실행에는 불순물이 끼어 있으며, 형식만 바꿨을 뿐 내용은 그대로이다. 그들이 아무리 훌륭하게 행해도 그것은 외식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매일 사람을 인도하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사람에게 낡아 빠지고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닌, 날마다 새로운 견해와 인식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네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겉으로만 열정적이고 바쁠 뿐, 행실이 조금도 바뀌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고도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 않고, 새로운 실행법에 따라 실행하지 않으며, 더 새로운 인식을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처럼 옛것을 고수하고 제한적인 새 빛만 받아들일 뿐 실행법이 그대로라면, 그런 사람은 명목상으로는 이 흐름 안에 있는 사람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종교 바리새인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정상적인 영 생활에 관하여> 중에서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는 이들은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지만, 뒤에서는 진리를 실천하지 않고 다른 꿍꿍이를 부린다. 이들이 종교 바리새인과 다를 바 있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들은 어떤 일에 맞닥뜨렸을 때 기꺼이 진리를 실천하며, 양심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모든 일을 지혜로이 해결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원칙 있게 일한다. 이런 자들이 바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말로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면서 온종일 울상을 짓고, 능청스럽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니 정말 못 봐줄 노릇이다! “왜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합니까?”라고 물어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 마디도 못 하면서 말이다. 네가 하나님께 충성한다면 겉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줘야 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무성의하게 말로만 하나님을 대하는 자들은 모두 위선자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기도하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며, 성령의 감동이 없음에도 울음을 터뜨리려 한다. 이들은 종교 의식과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그것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이 겉으로 보이는 경건함이나 슬픔의 눈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그릇된 자들이 발전성이 있겠느냐? 어떤 자는 겸손해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얌전한 척 말한다. 또 어떤 자는 순한 양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춰 아무 힘도 없는 양 행동한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정말 그렇단 말이냐?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활발하고 자유로우며, 순수하게 마음을 열어 놓는다. 또한, 정직하고 사랑스러우며, 자유로운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인격과 존엄성을 갖추어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기에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새 신자들은 형식적인 것이 너무 많아 한동안 훈계와 깨뜨림을 받아야 한다. 반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겉으로는 티 나지 않지만,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는 사람이다. 네가 매일 여기저기 복음만 전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데에만 급급해하면서 정작 자신은 규례와 도리 속에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종교 인사에 속하며 외식하는 사람이다. 종교인들은 함께 모이면 “자매님, 요즘 어떠세요?”라고 묻곤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지 못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저도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가 없네요.”라고 따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몇 마디, 몇 자의 말로 마음속 깊이 자리 잡힌 더러운 것을 뱉어 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장 혐오스럽고 극도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그들의 본성은 모두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실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마음을 열고 교제한다. 거기엔 솔직함만 있을 뿐 거짓도, 체면치레도, 꾸밈도 없고 세속적인 규율도 없다. 하지만 겉면의 열정이 많고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은 누가 찬송가를 부르면 춤추느라 밥솥의 밥이 다 타 버린 것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함과 존귀함이 없고 너무나 경박하다. 이런 것들이 모두 실제가 없음을 보여 준다. 반대로 영적인 생명의 일을 교제할 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지 않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가 죄스러워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얘기를 입에 달고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표면적인 열의나 행동이 아닌, 실제에 진입하는 것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외적인 좋은 행위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육을 의미한다. 외적인 행위는 제아무리 훌륭해도 그 사람의 성품만을 의미할 뿐, 생명을 의미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네가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고 영적인 것이라 여기겠지만, 사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너는 자신이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 곧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너의 기호가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성격이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네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요, 너의 습관은 하나님이 혐오하여 버리는 것들이다.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거든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도 드리지 않고 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보여 주기만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겉으로만 행동을 취하는 것은 네가 누구보다 가식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외적인 좋은 행위만 있을 뿐 실제가 없는 자들이 어떤 사람이냐?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요, 종교 인사이다! 외적인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한다면, 가식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가식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을 더욱 대적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결국 도태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종교 의식이 아닌 실제를 중요시해야 한다> 중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나아가 진리를 실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사역하고 설교하며 다른 이에게 공급하기 위해서 일부 진리를 갖추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교제하는 말을 보면 순수하게 이해하고 있고, 또 진리에도 부합하지만 스스로에게 그 말을 대입하지 않으며, 실행하거나 체험하지도 않는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그가 정말 진리를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았겠느냐? 그렇지 않다. 도리를 아무리 순수하게 말한다고 해도 진리 실제를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진리를 갖추려면 먼저 자신부터 진입해야 하고, 진리를 깨달으면 실행해야 한다. 자신의 진입에 집중하지는 않고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전함으로써 스스로를 뽐내려고 한다면 이는 마음가짐이 잘못된 것이다. 수많은 거짓 리더가 이렇게 사역한다. 그들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교제하고,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 공급하며, 남들에게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라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는 모두 옳은 말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 자신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생명 진입을 하지 못했겠느냐? 이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이겠느냐? 이런 사람이 정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겠느냐? 이는 단정 짓기 어려운 것이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도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성경을 강론했지만,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했다. 예수가 나타나 사역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주를 대적했으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 그러므로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정죄될 대상이다. 이 얼마나 가련한 자들이냐! 그들이 말하는 글귀와 도리가 남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왜 그들 스스로는 돕지 못하는 것이냐? 우리는 이런 사람을 실제가 없고 외식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들은 진리의 글귀를 남들에게 공급하여 실행하게 하지만, 막상 자신은 조금도 실행하는 법이 없다. 이런 자는 몰염치한 사람 아니겠느냐? 그들은 진리 실제가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글귀와 도리를 말함으로써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인 양 꾸민다. 이는 고의로 사람을 미혹하고 해치는 것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드러나 도태되는 것은 자업자득이니 동정할 필요도 없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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