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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여 성정이 변화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지의 대표적인 말씀

427. 성령 역사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단계마다 높아져 가며, 내일의 계시는 오늘보다 더 높고 한 걸음에 한 계단씩 더 높이 나아간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역사를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한다. 사람이 만약 따라가지 못한다면 수시로 도태될 것이고, 만약 순복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끝까지 따를 수 없다. 낡은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지금은 새로운 시대이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사역을 한다. 특히 사람을 온전케 하려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은 더 빠르게 더 새로운 사역을 하려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순복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어렵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지 않으며 어느 한 단계 사역도 영원불변한 사역으로 여기지 않고 시종일관 더 새롭고 더 높은 사역을 한다. 그의 사역은 단계마다 더 실제적이며, 사역할수록 사람의 실제적인 요구에 부합된다. 사람은 오직 이러한 역사를 체험해야만 최종의 성정 변화에 도달할 수 있다. 생명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갈수록 높아지므로 하나님의 사역 또한 갈수록 높아지는데, 이래야 사람이 온전케 될 수 있고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한 방면으로는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여 바로잡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이끌어 더 높고 더 실제적인 경지에 진입하고 하나님을 믿는 최고의 영역에 진입하게 하여 최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을 통해 너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네가 순복하고 받아들인다면, 성령은 반드시 너에게 역사할 것이다. 성령은 내가 말하는 대로 역사하므로, 너희가 내 말대로 행하면 성령은 바로 너희에게 역사한다. 나는 새로운 빛을 내보내어 너희로 보게 하고, 너희 모두를 현시(現時)의 빛 속으로 이끌어 들어간다. 네가 현시의 빛 속으로 들어가면 성령은 즉시 네게 역사한다. 어떤 사람은 불복하며 “저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네가 지금 길이 없고 메마르며 생명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정 변화를 체험하고 현시의 빛을 따르는 것이 가장 관건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에서 발췌

428. 생명을 추구함에 있어 반드시 두 가지를 중시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는 근본적인 것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생명이 없고 진리도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진리를 찾겠느냐? 세상 어디에 진리가 있느냐? 세상에서 출판된 책은 다 마귀 사탄의 이론이 아니냐? 어디 조금이라도 진리를 논할 만한 것이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는 것에는 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알고, 인생을 알고, 각 방면의 진리를 아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알고, 삶의 의의를 찾아내는 것이다… 모든 진리는 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으므로 진리에 진입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가 없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가장 주요하게 도달해야 할 효과이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면 진리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429. 사람이 생명 진입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는 것이다. 이전에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하였지만 사람은 모두 사실을 보지 못하였다. 오늘날 네가 이 단계에 진입해 체험하게 되면 완전히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이후의 시련을 위해 기초를 잘 다지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그 말씀에 진입하기만 하여라. 하나님이 사람을 형벌한다고 말씀하면 너는 형벌을 받고, 하나님이 사람을 죽게 한다고 말씀하면 너는 시련을 받아라. 네가 늘 하나님의 최신 말씀으로 살면 나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진입할수록 더욱 빨리 온전케 된다. 왜 너희에게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고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라고 거듭 교통하겠느냐?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추구하고, 체험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해야만 성령이 너에게 역사할 기회가 있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에서 발췌

430.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너에게 어떤 패괴 성정이 있든, 또는 너의 본성에 큰 붉은 용의 어떤 독소가 있든, 하나님이 말씀으로 드러내면 인정하고 순복하며, 두말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을 어떻게 하든, 그 말씀이 얼마나 마음을 찌르든,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진리이면 받아들이고 사실의 진상에 부합되면 인정하는 것이다. 무릇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깨달은 것이 얼마나 되든 순복해야 하는데, 성령이 깨우쳐 준 빛 비춤을 형제자매가 교통한다고 해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느 정도 추구하면 진리를 얻고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431. 이전에 성정이 변화된 것에 대해 말했는데 주로 자신을 배반하고 육체적인 고통을 받고 자신을 극복하고 육체적인 취향을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한 가지 성정 변화이다. 지금 다 알다시피, 성정이 변화된 실제 표현은 하나님의 현실적인 말씀에 순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새 사역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이전의 관념적인 인식을 제거하여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다. 이야말로 성정이 변화된 진실한 표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에서 발췌

432. 성정 변화란 무엇을 말할까? 너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각종 고난과 연단을 겪어 사람 안에 있는 사탄 독소가 정결케 되면, 이것을 성정 변화라고 한다. 만일 사람의 본성이 아주 나빠 악인이라면 하나님은 구원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는 성령이 역사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과 같다. 만일 사람이 폐렴에 걸렸다면 치료가 가능하지만, 폐암에 걸렸다면 그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 하나님 집에서 말하는 성정 변화란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여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음으로 인해 마침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고, 사람이 너무 깊이 패괴되었음을 인식하며, 사람의 그릇됨과 궤사함, 사람의 빈궁함과 가련함을 인식하게 되는 것인데, 결국에는 사람의 본성 실질을 인식하여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고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며, 범사에 진리를 실행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433. 성정 변화란 주로 너의 본성 방면의 변화를 가리킨다. 본성의 것들은 겉면의 행실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성의 것들은 사람 삶의 가치, 삶의 의의, 인생의 가치관에 직접 관련되고, 영혼 깊은 곳의 것들과 관련되며, 사람의 실질과 관련된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사람의 이런 방면에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이 완전히 진리에 진입하여 사람의 가치관, 생존관, 인생관에 다 변화가 일어나고, 일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과 일치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할 수 있어야만 성정이 변화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434. 본성이란 무엇이냐? 본성은 사람의 실질이다. 성정은 사람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성정 변화는 원래의 패괴된 것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게다가 그것이 진리로 대체되었음을 가리킨다. 본성의 근원적인 것은 변하지 않고 유로되는 패괴된 것이 변하는데, 본성에서 유로되는 성정 방면의 것이 변화된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켜 사람은 이미 사탄이 되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100% 배반할 수 있게 되었다. 왜 사람에게 성정 변화를 요구하겠느냐? 마지막에 온전케 되는 사람은 안에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많이 더해진다. 이전에 사람은 패괴 성정이 있어 일을 하기만 하면 틀리고 일을 하면 대적했지만, 지금은 사람에게 진리가 있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일을 많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에서 유로되는 것이 변화될 수 있는데, 변화된 그 부분은 진리에 따라 실행한 바로 그 부분이다. 네가 지금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고 해서 너의 본성이 변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 변화된 그 방면은 어떤 것을 가리키느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때 순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너의 뜻에 따라 하게 되는데, 너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것이 배반이고, 이것이 본성 안의 것이다. 물론 성정 변화도 끝이 없다. 얻은 진리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더 적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더 적다.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주로 진리를 추구함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 실질을 인식하는 것도 진리를 깨달아 도달하는 것이다. 사람이 정말로 진리를 얻게 될 때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에서 발췌

435. 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고, 이런 일은 모두 꿰뚫어 보아야 한다. 진리를 깨달은 것이 너무 적으면 쉽게 착오가 생기고 치우친 길에 들어서게 된다. …네가 참으로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광명정대한 사람이 되고 진솔한 사람이 될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될 것인지 하는 이런 진리를 깨달은 후에는 더 이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짓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적그리스도나 거짓 목자의 역을 맡지 않을 것이다. 설사 어떤 사람이 너를 부추긴다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너를 핍박해도 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 안에 진리가 있고, 사람이 사악한 것을 싫어하고 부정적인 것에 대해 반감을 갖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었기에 해내기 어렵다. 정말 너에게 진리가 있으면 가는 길도 자연히 정확할 것이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악을 저지르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다. …사람이 나쁜 짓 하는 것을 해결하려면 먼저 사람의 본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사람의 패괴를 보고 교만 자대의 비열함과 추함을 인식하게 되면, 너는 역겹게 느껴져 마음이 괴로울 것이다. 네가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일을 좀 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면 마음에 누림이 있을 것이며, 의식적으로 자신을 파헤쳐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면 마음이 매우 홀가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정 변화를 추구하려면 첫째는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고 진리에 진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진리를 깨달아야 분별력이 있게 되고, 분별력이 있어야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일을 꿰뚫어 보아야 육체를 배반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려는 심지가 어떠한가에 달렸다. 참으로 심지가 있다면, 6개월에서 1년을 추구하면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하고, 3년에서 5년을 추구하면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자신도 생명이 자랐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10년을 믿어도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나중에는 “하나님을 믿어도 그저 그렇구나, 별로 큰 의미가 없고 전에 세상에 있을 때와 큰 차이가 없구나. 사는 재미가 없어.”라고 말할 것이다. 정말로 진리가 없으니 살아도 공허하고, 글귀 도리를 좀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위로가 되지 않고 여전히 편하지 않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으면 어떻게 살아야 의의 있는지를 알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일을 좀 할 수 있으며, 마음속으로 이것이 진정한 인생이고 이렇게 살아야 의의 있다고 느낄 것이다. 또한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해야만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고, 마음이 편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436. 진리가 없으면 절대로 성정 변화가 없다. 인성이 노련해졌다고 해서 성정이 변화된 것은 아니다. 성정 변화란 주로 사람의 본성 안에 있는 사탄의 독소들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진리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것임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그런 독소가 정결케 되고, 하나님이 발표한 진리가 그 사람 안에 뿌리내려 그의 생명이 되고 그의 생존 토대가 되어 그가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성정이 변화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겉면의 성정이 이전보다 온순해지고, 이전에는 비교적 교만했지만 지금은 말하는 것에 이지가 있으며, 이전에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겉면의 변화는 아직 성정 변화라고 말할 수 없다. 성정 변화에는 당연히 이런 정형이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내적 생명이 변화되고, 하나님이 발표한 진리가 그 사람의 내면에서 생명이 되고, 그 사람 안의 사탄 독소가 없어지고 일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어 세상의 관점과 부합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큰 붉은 용의 음모와 독소를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인생의 참뜻을 알게 되었으므로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는데, 이것은 가장 근본적인 변화이고, 실질적으로 성정이 변화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겉면의 달라짐과 성정 변화의 구별>에서 발췌

437. 행위의 변화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못한다면 조만간에 흉한 몰골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행위의 변화는 열심에서 나온 데다가 그 당시에 성령 역사도 좀 있었으므로 사람이 열심을 내고 잠시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하는 말과 같다. “좋은 일을 한 번 하기는 쉽지만 평생 하기는 쉽지 않다.” 한평생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 해내지 못한다. 사람의 행위는 다 생명의 지배를 받는다. 생명이 어떠한 것이면 행위도 그러한 것이다. 자연적으로 유로(역주: 흘러나옴)되는 것이라야 생명을 대표하고 본성을 대표하며, 위장한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역사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의 좋은 행위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킴으로 사람을 환골탈태하게 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며 시련하고 연단하는 것은 다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켜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하며,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취지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겉면의 달라짐과 성정 변화의 구별>에서 발췌

438. 사람에게 좋은 행위가 있다고 해서 꼭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열심이 있으면 그저 도리에 근거해 규례만 지킬 뿐이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실질적인 문제에 관련되면 해결하지 못한다. 도리는 진리를 대체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다르다. 그런 사람은 내면에 진리가 있어 모든 일을 분별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진리의 원칙에 부합되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유로한 패괴가 어떤 성질인지도 알고 있다. 또한 사람의 뜻과 사람의 관념이 유로될 때는 그것을 분별할 수 있어 육체를 배반할 수 있다. 이것은 성정이 변화된 표현이다. 성정 변화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내면에 진리가 있고, 내면이 환하며, 일을 할 때에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비교적 정확하고, 패괴를 유로할 때가 비교적 적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정이 변화된 사람의 표현은 특별히 이지적이고 분별력이 있는 것이다. 진리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교만방자하고 독선적인 것을 적게 유로한다. 그런 사람은 어떤 일이든 다 꿰뚫어 보았기에 더 이상 교만해질 수가 없다. 사람이 마땅히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이지가 있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본분을 지키는 것인지,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은 해서는 안 되는지,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는 이런 일을 꽤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에게는 비교적 이지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라야 참으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내게 된다. 그런 사람은 진리가 있어 다른 사람에게 좌우되지 않는다. 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변덕이 없다. 어떤 환경에서든 그런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본분을 잘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다. 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겉면으로 어떻게 하면 사람에게 잘 보일지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속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열정이 얼마 없어 보이는 것 같고 큰일을 얼마 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이 한 일은 다 의의가 있고 가치가 있으며 실제적인 효과가 있다. 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틀림없이 많은 진리를 갖추었을 것인데, 그런 것은 그 사람이 일을 보는 관점과 일 처리하는 원칙에서 실증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겉면의 달라짐과 성정 변화의 구별>에서 발췌

439. 너는 사람에게 성정 변화가 있는지 혹은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지를 하나님이 요구한 근원에서 찾아야 한다.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상상과 뜻에 부합되거나 자신의 구미에 맞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네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지, 네가 한 것이 진리가 있는지,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였는지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가늠해야 정확하다. …하나님이 칭찬하는지, 칭찬하지 않는지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느냐? 최소한 너는 일을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매우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네가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거나 어떤 사역을 할 때 또는 평소에, 너는 성령이 너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고 성령이 너에게 역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너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볼 수 있어야 한다. 네가 어느 정도까지 체험하였을 때, 너는 네가 이전에 한 모든 것이 그래도 비교적 적합하다고 느낄 것이다. 만일 네가 한동안 체험하였을 때, 자신이 이전에 한 어떤 일들이 자신이 보기에도 적합하지 않고 자신이 보기에도 만족스럽지 않으며 확실히 진리가 없었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네가 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대적한 것임을 증명하고, 너의 섬김에 거역과 대적이 가득하고 사람의 행실이 가득하였음을 증명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440. 성정이 변화된 것이란 바로 진리에 대해 인식이 있고 체험이 있어 진리가 너의 생명이 된 것이다. 예전에 이 일에서 네가 진리를 알아도 실행하지 못했던 것은 진리가 너에게는 도리와 같아 네가 진리를 도리처럼 여겨 다 지나쳐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의 성정이 변화되어 진리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또 진리대로 실행할 수 있고, 이전에 좋아하던 것을 이제는 내려놓을 수 있고,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것과 너 자신의 상상과 관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으며, 이전에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을 지금 내려놓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성정이 변화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성정이 변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441. 성정 변화는 성격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성정을 변화되게 하는지, 어떤 것을 변화되게 하는지 깨닫고 이해해야 한다. 문화 지식이나 객관적인 사상 방면에서 변화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각 사람의 사상 관점을 바꾸려는 것인데, 이것이 한 방면이다. 그리고 사람됨의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너의 인생관을 가리킨다. 이것이 또 다른 한 방면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깊이 뿌리박힌, 사람이 유로하는 사탄의 패괴 본성도 있다. 대체적으로 말해서, 성정 변화는 바로 이 3가지 방면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란 무엇인지와 성정 변화의 길>에서 발췌

442. 생명 성정 변화는 가장 주요하게 그 사람 안에 진리가 있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어 인생관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 사람의 가치관이 그전과 달라져 내면으로부터, 생명으로부터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이지, 절대로 곁면의 변화만이 아니다. …어떤 때는 사람에게 성령 역사가 있어 열심을 내고, 겉면이 달라져 좋은 일을 하는데, 그것은 성정이 변화된 것과는 다르다. 너에게 진리가 없으면 일을 보는 관점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심지어 이방인처럼 너의 가치관과 인생관에도 여전히 변화가 없으며, 최소한 갖추어야 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마저도 없다. 그러면 성정 변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성정이 변화되려면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여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주된 것이다. 베드로를 보아라. 하나님이 그를 사탄에게 넘겨 준다고 하니 그는 “당신이 저를 사탄에게 넘겨 주셔도 당신은 하나님이시니 전능하시고 모든 것이 다 당신 손에 있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행사를 위해 찬미하지 않으리까? 하지만 제가 당신을 알게 된 후에 죽으면 더욱 좋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첫째이고, 하나님을 알게 된 후에는 어떻게 죽어도 다 괜찮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다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진리를 얻지 못한다면 영원히 만족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에 대해 원망은 없었다. 베드로의 이런 정신, 그가 이렇게 갈급해하며 하나님 알기를 추구한 것에서 볼 수 있는바, 그의 인생관은 확실히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에서 그의 성정이 변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다. 그가 마지막까지 체험했을 때, 하나님은 “베드로는 하나님에 대해 가장 인식이 있는 사람이고, 베드로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겉면의 달라짐과 성정 변화의 구별>에서 발췌

443.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려면 사람의 실질을 아는 것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하고, 사람의 사상, 사람의 본성, 사람의 정신 면모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하며, 근본상에서 변화되어야 한다. 이래야 사람의 성정이 진정한 변화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의 패괴 성정의 근원은 사람이 이미 사탄의 독한 해를 받고 사탄에게 짓밟혀 사람의 사상, 도덕, 식견, 이지가 사탄에게 심각하게 파괴된 데에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의 근본적인 것들이 이미 사탄에게 패괴되어 하나님이 만든 본래의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려면 우선 사람의 사상, 식견, 이지에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야 하고, 또한 진리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에서 발췌

444. 성정이 변화되는 데에 있어, 가장 관건이 되는 것은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드러낸 것에 근거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서만이 자신의 추악한 본성을 알고, 자기 본성에 있는 각종 사탄의 독소를 알고, 자신의 무지몽매함을 인식하고, 자기 본성의 취약함과 소극적인 요소를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밝히 알고 난 후에 참으로 육체를 배반하게 되고,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 실행하는 것을 견지하게 되고, 참으로 절대적으로 성령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할 심지가 있게 된다면, 너는 베드로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가 없다면, 이 길은 가기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자신을 배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온전케 되는 길을 가려면, 주로 자신에게 심지와 믿음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순복해야 하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안 된다. 이것이 중요한 몇 가지 방면인데, 모두 어겨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아는 것은 주로 사람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에서 발췌

445. 네가 어떤 진리를 들었든, 어떤 실제에 대해 들었든, 자신에게 대조해 보면 틀림없이 진보하게 될 것이다. 네가 이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 구체화하고 자신의 실행에 구체화한다면, 틀림없이 성과를 얻을 것이고, 변화가 있을 것이다. 네가 이 말씀을 뱃속에 채워 넣고 머릿속에 기억해 둔다면 영원히 변화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솔한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446. 성정 변화는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과 매우 크게 관련된다.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 인생을 어떤 식으로 보고 대해야 하는지 하는 여기에 대한 진리를 네가 깨닫는다면 너의 인생관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느냐? 여기에는 더욱더 찾고 구해야 할 진리가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는 어떤 진리가 있는지, 사람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의는 무엇인지 등,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리에 대해 분명하게 깨달아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좀 있으면 그것은 진정한 인생을 가진 것이고, 그런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범사에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은 생명이 매우 빨리 자라고 성정도 변화될 수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바로 범사에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다. 만약 사람이 모든 일에서 관념에 따라 도리에 따라 규례를 지킨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이고 영원히 진리가 없을 것이며, 그런 사람은 조만간 도태될 물건짝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가장 혐오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447. 진입하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일이든 알아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비춰 보아야 한다. 그 일을 잘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부합되는지를 알게 되면, 자신의 뜻에서 나온 것을 버릴 수 있고, 어떻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인지를 알면 그렇게 행할 것인데, 마치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긴 것처럼 매우 홀가분하고 쉽다. 진리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일을 처리한다. 사람들에게 네가 참으로 성정이 변화되었고 확실히 선행을 좀 갖추었다는 것을 보게 하고, 네가 일을 처리함에 참으로 원칙이 있고 모든 것이 다 적합하다는 것도 보게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인데, 이들에게는 확실히 사람의 모습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사람에게서 효과를 본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448.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를 깨달으려면 우선 너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한 일의 실질이 무엇인지, 어떤 문제인지, 어느 방면의 진리에 관련되는지 하는 이런 것을 찾고 구해야 한다. 그런 후, 너의 그 실제적인 어려움에 따라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한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체험하면 너는 너의 주변에서 발생한 매사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이 하려는 것과 너에게서 이루려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너의 주변에서 어떤 일이 발생해도 너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무관하고 진리와 무관하다고 여기며 ‘내겐 처리할 방법이 있어. 진리도, 하나님의 말씀도 필요 없어. 예배드릴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나 본분을 할 때, 진리로 맞추어 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맞추어 보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자신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일이며, 자신의 가정이며, 직업이며, 자신의 결혼이며, 자신의 앞날이며, 주변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들은 모두 진리와 무관하다고 여기고 스스로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만약 그렇게 체험한다면 너는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하나님이 너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기나긴 과정인데, 여기에는 간단한 면도 있고 복잡한 면도 있다. 간단한 것은 먼저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매사에서 관찰하고, 먼저 매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얻어야 할 진리와 추구해야 할 진리가 너무 많은데, 각 방면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보게 된다. 본분을 하는 사람이나 섬기는 사람 혹은 인솔자만이 매사에서 진리에 따라 실행해야 하고, 아래에서 따르는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 하나님이 발표한 그런 말씀은 소용이 없게 되고, 별로 큰 의의가 없게 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하는 중요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 발췌

449.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네가 일을 처리할 때 첫째로 성찰하고 해야 할 것인데, 이것은 마땅히 네가 일을 처리하는 원칙과 범위여야 한다. 일을 할 때 진리에 부합되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까닭은 진리에 부합되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너에게 일의 잘잘못을 판단하라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의 비위에 맞는지, 네 자신의 욕망에 부합되는지를 판단하라는 것도 아니라, 진리에 부합되는지, 교회의 사역과 이익에 좋은 점이 있는지를 판단하라는 것이다. 이런 방면을 고려하면, 네가 하는 일들이 갈수록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것이다. 네가 이런 방면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한다면 틀림없이 다 잘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뜻은 진리가 아니므로 당연히 하나님과 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어떤 일을 처리하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든 아니면 네 사적인 일을 하든, 너는 그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일이 인성 있는 사람이 해야 할 것인지, 네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이런 것은 네가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이렇게 한다면, 너는 바로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모든 일과 모든 진리를 참답게 대해야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진리를 최대한 실행해야 한다>에서 발췌

450. 하나님께 의지하여 자기 안에 있는 어려움부터 해결해야 하고, 자신의 타락된 성정을 제거해야 하며, 참으로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 하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많이 교통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을 알지 못하면 안 되니 자기 병부터 치료해야 한다. 나의 말을 많이 먹고 마시고 묵상하며, 나의 말대로 생활하고 처신하며, 집에서든, 어디에서든 하나님이 네 안에서 주권을 잡게 해야 한다. 육체와 천성적인 것을 벗어 버리고 안에 늘 하나님의 말씀이 주권 잡게 하면, 너의 생명이 변화되지 않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차츰차츰 너는 자신의 성정이 많이 변화되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전에 얼굴을 내밀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에게도 불복하며 혹은 야심이 있고 독선적이며 교만방자한 것이 있다 해도 점차적으로 그런 것을 벗어 버릴 수 있다. 즉시 벗어 버리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것들이 참으로 깊이 뿌리박혀 다른 사람이 조금도 건드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주동적으로 노력하고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성령 역사에 순복해야 하며 너의 의지로 하나님과 협력하고 기꺼이 나의 말을 실행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22편 말씀>에서 발췌

451.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사실 별로 신비한 일이 아니다. 진리를 얻게 되는 것도 사실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일이 아니고 힘들지 않으며 어려움이 없다. 가장 간단한 길은 바로 네가 하나님 말씀의 글자 표면상 뜻에서 무엇을 깨달았든지 너는 이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네가 진리를 사랑하며, 진리를 실행하기 원하고 진리를 얻기도 원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를 원하면 너는 하나님 말씀에서 진솔한 사람이 되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보았을 때 진솔한 사람은 바로 솔직한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럼 좋아, 난 우선 내가 이해한 이 점에서부터 시작해 진솔한 사람이 되고 거짓말을 안 할 거야.’ 그러면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거짓말을 하지 않느냐? 모든 일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어떤 사람과도 거짓말이나 허튼소리를 하지 않으며 어른이나 아이 모두 속이지 않고 특히 하나님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람이 여기는 진솔한 사람이 되는 기준인데, 사람이 최소한 도달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첫 번째 항목이다. 너는 이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된다>에서 발췌

452. 하나님이 실행하라고 하는 진리마다 사람이 대가를 치러야 하고 그것을 현실 생활 속에 가지고 가서 아주 실제적으로 하고 실행하고 체험해야지 구호를 외치고 입에 달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매일 자신이 궤사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 수단을 잘 쓰는 사람, 일마다 속셈이 있는 사람이라고 입에 달고 있지만 일이 임할 때마다 여전히 자신의 원래의 그 수단을 쓰고 여전히 자신의 원래의 그 방식대로 하는데, 그 방식과 수단이 전혀 바뀌지 않았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바뀌지 않았으며 일을 하는 방식도 바뀌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변화될 수 있겠느냐? 변화될 수 없다. 영원히 변화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솔한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453. 네가 실생활에서 진입하기를 훈련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패역과 우매를 인식하고, 자신의 비정상적인 인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연약한 면을 인식할 수 있고, 이런 인식을 모두 너의 실제 정형과 실제 어려움에 결부시킬 수 있으면, 이런 인식이야말로 실제적인 것이고, 너로 진정 자신의 정형을 파악하게 할 수 있고 성정이 변화되게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교회 생활과 실생활에 대해 말해 보자>에서 발췌

454.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성정이 변화되려면 실생활을 떠나서는 안 된다. 네가 실생활에서 자신을 알고 자신을 배반하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사람됨의 원칙을 배우고 사람됨의 상식과 규범을 배울 수 있어야 점차 변화될 수 있다. 단지 도리적인 인식만 중요시하고 종교 의식에서만 생활할 뿐 실제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실생활에 진입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실제에 진입할 수 없고 영원히 자신에 대해, 진리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을 수 없으며, 영원히 눈멀고 무지한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교회 생활과 실생활에 대해 말해 보자>에서 발췌

455. 네가 단순하게 마음을 터놓고 자신을 인식하려고 하고 진리를 실행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네가 그렇게 하려는 것을 보고는 네가 연약해지고 소극적이 될 때 갑절로 깨우쳐 주어 자신을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하고, 자신을 통회하는 마음이 더 있게 하며, 자신이 실행해야 할 것을 더 잘 실행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마음이 평안해지고 든든해진다. 평소에 하나님 알기를 중요시하고, 자신 인식하기를 중요시하고, 실행하기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항상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설사 소극적인 정형이 있더라도 양심의 역할로 말미암아, 또는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말미암아 즉시 돌려세울 수 있다. 사람의 성정은 모두 자신의 실제 정형과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를 인식함과 동시에 변화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456.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실제가 있어야 하고, 사람에게 훈련받게 하는 실물, 실사, 실제 환경이 있어야 한다. 만약 교회 생활을 하는 것에만 의지한다면 진정한 훈련을 받을 수 있겠느냐?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실생활에 진입할 수 없으면 사람의 낡아 빠진 행실과 생활 방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사람이 나태하거나 의뢰심이 강한 것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생활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고, 더욱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정상 사람의 모양은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이르러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사람은 모두 이야기하고 말하고 교통하고 심지어 모두 ‘연설가’가 되어 아무도 생명 성정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높고 깊은 이론만 추구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종교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이런 삶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 일에 겨누어, 물건에 겨누어, 사람에 겨누어 훈련에 들어가고, 목표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효과가 있게 된다.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실질에서 변화시켜야 한다. 사람의 실질에 겨누어 하고 사람의 생활에 겨누어 하고 사람의 나태, 의뢰심, 노예근성에 겨누어 사역을 해야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교회 생활과 실생활에 대해 말해 보자>에서 발췌

457. 성정상의 변화에는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옳은 것과 진리에 부합되는 것에 순복할 수 있는 것이다. 누가 의견을 내든지, 그가 연장자이든 아니면 연소자이든, 너와 마음이 맞는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둘 사이의 관계가 좋거나 나쁘든, 가깝거나 멀든, 둘 사이가 서로 익숙하거나 낯설든, 둘 사이에 원한이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그가 말한 것이 옳고 진리에 부합되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유리하면 네가 들을 수 있고 채택할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떤 요소의 영향도 받지 않는데, 이것이 한 방면의 표현이다. 우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옳은 것과 진리에 부합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 외에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있다. …또 한 방면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느냐? 네가 어떤 본분을 하고 어떤 일을 하든지 이 방면의 원칙을 장악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며 어떤 효과에 도달해야 되는지를 알고 이 방면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 밖에 너는 또 책임을 다하고 충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진입을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458. 하나님이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는 과정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자신을 과시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이 끊임없이 유로하고 변화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본성이니 실컷 다 드러내야지! 그런 후 다시 인식하고 다시 진리를 실행하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만약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있는 어려움이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보았을 때 되도록 그것을 피하고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간접적인 변화가 아니냐? 혹은, 어떤 때는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식하고 배반할 수 있다. 이것도 구원받게 된 효과가 아니냐? 어떤 진리를 실행하든 거기에는 다 과정이 있다. 사람이 이제 막 실행하기 시작했을 때, 착오 없이 정확하고, 자신의 뜻과 뒤섞임이 조금도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일들은 여전히 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훈계와 책망의 과정을 거쳐 나중에는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좋은 방향으로 바뀐 것이고 변화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최대한 구원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459. 성정 변화는 일조일석에 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정 변화는 사람의 패괴 실질의 근원을 파헤쳐야 하는 이런 변화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암환자가 종양 제거 수술을 받으려면 수술대에 올라가야 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았느냐? 수술대에 올라가야 하고 해부해야 하고 배를 갈라야 하며, 그다음 칼로 그 종양을 떼어 내야 하고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복잡한 과정이 있다. 이 과정에서 너는 아마 많은 일을 겪어야만 한 가지 일에 대해 깨닫게 될 것이고, 많은 일을 겪어야만 한 방면의 성정이 변화될 것이며, 많은 인ㆍ사ㆍ물을 겪고 서로 다른 많은 환경을 겪고 굽은 길을 많이 가야만 조그마한 변화가 있게 될 것이다. 얼마나 큰 변화가 있든, 그 변화는 소중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귀중히 여기고 기념할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많은 고통을 겪고 많은 대가도 치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기에 너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너의 연약이 무엇인지도 알며 더욱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란 무엇인지와 성정 변화의 길>에서 발췌

460. 사람 육체의 패괴 성정 안에 있는 오만한 성정, 독선적인 것들은 고질병이다. 마치 사람 몸에서 자라나는 악창이나 악성 종양과 같아서 네가 고생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우연하게 생기는 작은 부스럼이나 여드름처럼 혈액 순환이 정상적이면 며칠 안 돼 다 가라앉는 것과는 같지 않다. 고질병은 잔병이 아니어서 극한 방식으로 대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내막을 너희가 알아야 한다. 즉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는데, 사람의 각 방면의 패괴 성정은 진리를 추구함에 따라, 생명이 자라남에 따라, 진리에 대해 인식하고 체험한 정도에 따라 점차적으로 적어진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로 적어지면 없다고 할 수 있느냐? 네가 이것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어떤 때에 유로되긴 하지만 네가 그것을 따르지 않고 배반할 수 있으면 된다. ‘유로될 거면 되라지. 내가 어떻게 본분을 다해야 하고 어떻게 일해야 하고 어떻게 충심을 다해야 하고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렇게 하면 돼. 그것의 통제를 받지 않을 거야.’ 이런 성정이 유로되고 이런 뒤섞임이 있는 줄 스스로도 알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이 방면의 성정은 너에게 있어서 이미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것을 이기고 초월한 것이다. 이러면 자라난 것이다.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존엄 있는 삶을 살게 된다>에서 발췌

461. 성정이 변화되는 과정은 바로 네가 깨달은 진리로써 너의 원래 패괴 성정과 겨루고 사탄과 겨루는 것이고, 네가 깨달은 진리로써 네가 원래 인정하던 사설과 그릇된 이론들을 점차적으로 대체하고 너의 패괴 성정 안에 존재하던 것과 사탄에게서 온 것 즉 사상 논리와 처세 철학 그리고 사람의 관념과 상상, 사람의 사악한 속셈과 간사함을 대체하는 것이다. 너의 성정이 어느 정도 변화되었는지를 가늠하는 것은 네가 진리를 얼마큼 깨닫고 얼마큼 실행했는지, 진리를 얼마큼 살아낼 수 있는지, 네가 깨닫고 얻은 진리가 패괴 성정을 얼마큼 대체하고 어느 정도까지 네 안의 패괴 성정을 통제할 수 있는지, 즉 네가 깨달은 진리가 어느 정도로 너의 사상과 본심 그리고 너의 매일의 생활과 실행을 주도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너의 패괴 성정이 우세를 점하는지 아니면 네가 깨달은 진리가 우세를 점하고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는지, 이것이 바로 너의 분량과 생명 진입을 가늠하는 표준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존엄 있는 삶을 살게 된다>에서 발췌

462. 사람이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배반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이런 일을 다 의식적으로 할 수 있다면, 이것을 정확하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하고, 참으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전처럼 그렇게 상상에만 따르고 도리와 규례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을 하면 가장 힘들고, 도리와 규례를 지키면 가장 힘들며, 목표 없이 맹목적으로 일을 하면 가장 힘들다. 진리가 있어야 자유가 있게 된다는 것은 참말이다. 진리가 있으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수월하고 즐겁다. 이런 정형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리가 있는 사람이고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463. 만일 네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패괴 성정이 있을지라도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면 너는 육체를 배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할 수 있다. 네가 시련을 어느 정도 겪은 후에 성정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온전케 되는 베드로의 길에 차츰차츰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464. 하나님은 오늘날 한 무리 사람들을 얻으려고 한다. 즉, 하나님께 힘써 협력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한 말씀을 확신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요구한 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마음속에 진실한 인식이 있는 사람이고, 온전케 될 대상이며, 또한 꼭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도 않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온전케 될 수 없다. 성육신 하나님을 의심하면서 계속 확신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늘 흐리멍덩하고 하나님을 늘 기만하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사탄에게 속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온전케 될 수가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맞는 사람을 온전케 한다>에서 발췌

465.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함에 있어, 우선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이란 어떤 것이고, 온전케 되는 데에는 어떤 조건들을 갖추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것을 알고 난 후 실행 길을 찾아내야 한다. 온전케 되려면 일정한 정도의 소질을 갖추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본래 소질이 낮다. 그러면 대가를 치러야 하고, 주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소질이 낮은 사람일수록 더욱 주관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닫고 많이 실행할수록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에 더 빨리 들어설 수 있다. 너는 기도하는 것을 통해 기도에서 온전케 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더듬어 내어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면 온전케 될 수 있다. 네가 평소에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더욱이 자신의 치명점과 연약한 점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 차츰차츰 온전케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온전케 되다>에서 발췌

466. 네가 참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원한다면 너는 육체를 버릴 용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으며, 소극적이거나 연약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것에 순복할 수 있으며, 앞에서 한 것이든 뒤에서 한 것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다. 네가 진솔한 사람이 되고 모든 일에서 진리를 실행하면 바로 온전케 된 사람이다. 앞에서 이런 수작을 부리고 뒤에서 저런 수작을 부리는 궤사한 사람들은 온전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고, 모두가 침륜(沈淪)과 멸망의 자식들이며, 사탄에게 속한 자들이고,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택하는 자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 만약 네가 모든 행위를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없고 하나님 영의 감찰을 받을 수 없다면, 너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너는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성정 변화를 중요시해야만 온전케 되는 길로 갈 수 있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 원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원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순복해야지 그 어떤 원망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사역을 제멋대로 논단하거나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데에 있어 최소한 갖춰야 할 조건이다.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은 매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너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 앞에 내놓는 것이다. 너의 속마음이 바르기 때문에, 네가 행한 것이 옳든 그르든 용기 있게 내놓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형제자매에게 보여 줄 수 있으며 담대히 하나님께 서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속마음, 하나하나의 마음과 생각을 다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이 살피도록 해야 한다. 만일 네가 이렇게 실행하고 진입한다면 생명의 진보가 빠를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에서 발췌

467. 하나님은 사람의 순종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누리는 것으로, 삶의 고난과 연단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 오직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만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추구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라 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에서 발췌

468.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너의 먹고 마심이나 기도는 모두 종교적 신앙이다. 이러한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없고 얻어질 수도 없다. 하나님께 얻어지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얻는 것은 사람의 육체가 아니고 사람의 소속물(所屬物)도 아니라 사람 안의 하나님께 속한 그 부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한다는 것은 사람의 육체를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온전케 하여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얻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한다는 그 말의 실질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온전케 한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된 사람에 대한 약속>에서 발췌

469. 하나님께 쓰임받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무엇이든 다 갖추어야 하는데, 즉 고난 받으려는 심지, 믿음, 인내, 순복 등을 갖추어야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더듬을 줄 알고 하나님의 괴로운 심정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단이 임할 때마다 믿음과 사랑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뛰어다니기만 해도 안 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만 해도 안 된다. 많은 것들을 갖추어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너의 실제 분량이 어떻든, 너는 우선 이런 고난을 받으려는 심지와 진실한 믿음을 갖춰야 하고, 육체를 배반하려는 심지를 갖춰야 하며, 자신이 고난받고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볼지언정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하고, 또한 자신을 통회하는 마음을 갖춰야 하며, 이전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했을지라도 지금은 자신을 통회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한다. 이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면, 너는 온전케 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470. 온전케 되는 경로는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더듬어 내며,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데에 진입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며, 너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고 육체를 배반하며, 또 형제자매들과 늘 교통하는 것을 통해 너의 체험이 더 풍부해지게 하는 것이다. 너는 단체 생활에서든 개인 생활에서든, 대예배에서든 소예배에서든, 다 체험할 수 있고, 훈련을 받아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온전케 되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이란 네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수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고, 너에게 하나님에 대해 더욱 믿음과 사랑이 있게 되는 것이며, 이런 경로를 통해 점차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너의 바르지 못한 속셈을 벗어 버리고, 정상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는 것이다. 네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분이 갈수록 많아지면, 즉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부분이 갈수록 많아지면, 사탄이 패괴시킨 요소는 갈수록 적어진다. 너의 실제 체험을 통해 차츰차츰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므로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려면,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온전케 되다>에서 발췌

471. 온전케 되는 길은 네가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할지 모르고,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통해 너로 얻게 하고 깨닫게 할지도 모른다.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희망이 크다는 것을 설명하고, 네가 이 길에 들어서지 못한다면 너의 앞날은 어둡고 막막하고 빛이 없을 것임을 설명한다.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면 너는 모든 일에서 계시를 받을 수 있다. 성령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계시하든지 네가 그의 인식에 따라 체험하면 그것은 너의 생명이 될 것이다. 너는 그 체험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남의 말을 그대로 옮겨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는 사람은 체험이 없는 사람이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깨달음과 일깨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아야 하고, 또 자신이 실제로 직접 체험한 것과 인식한 것을 말하면 자신의 생명에 더욱 도움이 된다. 너는 이렇게 체험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에 순복하며, 매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매사에서 공과를 배워 너의 생명이 자라나게 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면 가장 빨리 진보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에서 발췌

472. 현재 너희가 가장 주요하게 추구해야 할 것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인데, 임하는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하나님의 소시를 더 많이 너희들 안에 만드는 것이다. 먼저 땅에서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은 후에야 하나님의 더 많고 더 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게 된다. 이런 것은 모두 너희가 추구해야 할 바이고, 너희가 먼저 깨달아야 할 바이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할수록, 모든 일에서 더욱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각도와 서로 다른 일에서 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소시에 진입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기를 추구해야지, 범죄치 않고 관념이 없고 처세 철학이 없고 사람의 뜻이 없는 이런 소극적인 정형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방식은 다종다양하다. 그러므로 매사에서 너로 하여금 온전케 되게 할 수 있는데, 적극적인 방면에서만이 아니라 소극적인 방면에서도 너를 온전케 하여 너로 더 풍부해지게 할 수 있다. 날마다 온전케 될 기회가 있고, 하나님께 얻어질 시간이 있다. 이렇게 한동안 체험하면 너는 크게 변화될 것이고, 이전에 깨닫지 못한 많은 일들을 지금은 자연히 꿰뚫어 볼 것이며, 사람이 교훈할 필요 없이 부지중에 하나님이 너를 깨우쳐 주어 모든 일에서 깨우침이 있게 하고 모든 체험의 세부에 진입하게 할 것이며,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노정에 들어선 것이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만 온전케 되는 데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그 체험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포괄하는 면도 작아서 다만 사람을 작디작은 범위 내에 제한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사람은 영 안에 필요한 많은 영양이 결핍하게 된다. 너희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모든 일에서 체험할 줄 알아야 하고, 임하는 일에서 모두 깨우침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한 가지 일이 임할 때마다 좋은 일에서든 나쁜 일에서든 다 유익을 얻어야지 소극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너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문제를 보아야지, 사람의 각도에 서서 분석하거나 연구해서는 안 된다(이것은 체험의 편차이다). 만일 이 방법에 따라 체험한다면 너의 마음이 자신의 생명에 대한 부담에 점유되고, 시시로 하나님의 얼굴 빛 속에서 살게 될 것이며, 실행할 때 쉽게 편차가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전도가 양양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된 사람에 대한 약속>에서 발췌

473. 참으로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받으려면 자신에게 심지(心志)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깨우침이나 하나님 말씀의 인도 혹은 하나님의 훈계나 하나님 말씀의 연단이 많이 있어야 한다. 이런 기초 위에서 너희가 평소에 주의하여 관찰하고 사색하고 상고하고 총결하고 또는 받아들이거나 걸러 내는 것은 모두 너희가 실제에 진입하는 경로인데,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 역사의 방식이다. 네가 하나님의 이 역사 방식에 진입한다면 날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가 있게 된다. 환경이 열악하든 순조롭든, 시련이든 시험이든, 사역하든 하지 않든, 개인 생활이든 단체 생활이든, 어느 때를 막론하고 모두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너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어떤 경우에서나 다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비결을 찾게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쓰임받기에 합당한 목자는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가>에서 발췌

474. 사람이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선 후에는 사람의 옛 성정이 변화될 수 있고, 또한 생명이 부단히 자라 진리 속으로 점차 깊이 진입하고, 세상을 혐오할 수 있으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분명한 인식까지 하게 되어 진리에 따라 살기를 원하고 진리 추구를 목표로 하며 자신의 사유로 살기를 원치 않게 된다. 그리고 사람의 독선과 교만, 자대(自大)에 혐오감을 느끼고, 말을 분수 있게 하며, 일이 닥치면 분별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순복이 있게 된다. 한 차례 형벌과 심판을 겪어도 소극적이 되지도, 연약해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형벌과 심판에 감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떠날 수 없어 하고, 형벌과 심판으로 보호받을 수 있으며, 평안과 희락과 떡으로만 사는 신앙을 추구하지 않고 잠시적인 육체의 누림도 추구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다 온전케 된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4)>에서 발췌

475. 베드로의 길을 간다는 것을 요약하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간다는 것이고, 진실로 자신을 알고 성정이 변화되는 길을 간다는 것이다. 오직 베드로의 길을 가는 것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로 가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지, 여기에는 어떤 실행 방법이 있는지 하는 이것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선, 자신의 속셈과 부당한 추구, 나아가 가정 및 육체의 모든 것까지도 전부 다 내려놓고 온 몸과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몰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를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기를 중요시하며,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실행 방법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만난 후로부터 이렇게 실행했었다. 또한 이렇게 실행해야만 가장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에 몰입한다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더듬기를 중요시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매우 많은 진리를 깨닫고 얻는 것을 말한다. …베드로의 섬김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것은 주로 이런 것을 해냈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이 요구한 일, 요구한 말씀에서 진정 말씀의 실제에 진입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그 사람에게서 완전히 효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생명이 된 것이다. 그 사람은 진리를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그 사람 육체의 본성, 즉 원래의 생존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야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역사의 이상(異象),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에 대한 폭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참된 인생의 표준이 사람에게 생명이 되어 그런 말씀으로, 그런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거듭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476. 온전케 된 사람은 정상 인성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갖춘 진리는 양심의 격(格)을 넘어 양심의 기준보다 더 높아졌다. 그런 사람은 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사랑스러운 분이고 사람에게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분임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에게는 사람이 사랑할 만한 면이 너무나 많아 사람이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보게 되었다. 온전케 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심지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자발적인 사랑이고, 보수를 따지지 않는 사랑이며, 거래가 없는 사랑인데, 오직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 사랑하기만을 중요시한다. 그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든 안 주든,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온전케 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이 사역을 하셨다. 내게 그분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있는 이런 기회와 조건이 있고 자격이 있게 된 이상,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기를 추구하면서 마땅히 그분을 만족게 해 드려야 한다.’라고 여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477. 너는 앞날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를 수 있어야 하고,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복한 욥의 간증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베드로의 간증, 이 두 방면의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방면은 욥과 같아야 하는데, 물질적인 것들이 없어지고 육체에 질병이 임했지만, 욥은 여호와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간증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는데, 죽음에 이르렀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 달려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으며,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한 생각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추구하였다. 너는 이 기준에 도달해야 간증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2)>에서 발췌

478. 어느 날까지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토대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는 있으나 없으나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성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479.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또 진리가 있어야 광명 속에서 사는 것이고, 사람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어야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이다. 또한 사람은 인생의 목표가 있고 진리로 처신하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서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평안하고 밝아지는 감을 느껴야 하고, 마음에 흑암이 전혀 없고 완전히 해방받아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네게 있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데, 온 우주 만물의 주재자인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너를 진정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즉 네가 진정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다면, 이것은 가장 의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바로 진리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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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③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④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⑤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⑥소시(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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