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탄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받는 법에 관한 말씀

488)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피조물로서의 기능을 잃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원수가 되었다. 사람이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사탄의 지배를 받기에 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서 사역할 수 없었고, 피조물의 경외는 더더욱 받지 못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었으므로 하나님께 경배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을 등지고 사탄을 경배하며 사탄을 마음속 우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리를 잃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사람을 지은 의의를 잃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의의를 되찾으려면 반드시 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키고, 패괴 성품을 없애야 한다. 또한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되찾아 오려면 필히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을 조금씩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키고 원래 기능을 회복시키며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에 패역한 자식들을 철저히 멸하는 까닭도 사람이 하나님을 더욱 잘 경배하고 땅에서 더욱 잘 살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지은 이상 사람이 그를 경배하게 할 것이고, 사람의 원래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이상 불순물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도록 철저히 회복시킬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권병을 회복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그를 경배하고 순종하게 하며, 그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그의 원수가 모두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멸망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그의 모든 것을 사람 가운데 남기며, 그 누구도 대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가 세우려는 나라는 그 자신의 나라이며, 그가 원하는 인류는 그를 경배하고 그에게 완전히 순종하며 그의 영광을 가진 인류이다.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지 않는다면 그가 사람을 지은 의의는 사라지고,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가졌던 권병은 없어질 것이며, 땅에는 더 이상 그의 나라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님을 거역한 원수들을 멸하지 않는다면 그는 완전한 영광을 얻을 수 없고,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지도 못할 것이다. 인류 가운데의 패역자들을 철저히 멸하고 온전케 된 자들을 모두 안식으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그의 사역이 완성되고 그의 대업이 이루어졌다는 표징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489) 최초의 인류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과 패괴로 사람은 사탄에게 속박당해 악한 자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로 인해 사탄은 경영 사역에서 물리칠 대상이 되었다. 사탄이 사람을 점령했고, 사람은 또 전체 경영의 밑천이기에 사람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와야 한다. 즉, 사탄에게 사로잡혀 간 사람을 다시 빼앗아 와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켜 본래 이성으로 회복시킴으로써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 이렇게 하면 사로잡혀 간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다시 빼앗아 올 수 있다. 사람이 사탄의 권세와 결박에서 벗어나면 사탄은 수치를 당한다. 결국 사람을 빼앗아 오고, 사탄은 패하게 된다. 사람은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남으로써 모든 싸움의 전리품이 되겠지만, 사탄은 싸움이 끝난 후에 징벌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사역도 끝을 맺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490) 어둠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모두 죽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사탄에게 점령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형벌을 겪지 않고서는 그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 산 사람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죽은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산 사람의 증거이지 죽은 사람의 증거가 아니다. 그는 산 사람이 그를 위해 사역하기를 원하지 죽은 사람이 사역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죽은 사람이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사람이며, 영 안이 무감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또한, 진리를 행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이다. 죽은 사람들은 진리와 대립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비천하고 비열하고 악독하고 야만적이고 교활하고 음험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도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낼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산송장으로, 숨만 쉬는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흡족하게 할 수 없고, 나아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도 없다. 그저 하나님을 속이고 모독하고 배반할 뿐이다. 죽은 사람은 언제나 사탄의 본성을 드러내며 살아간다. 산 사람,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기꺼이 순종하고,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요구한 모든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으며, 진정으로 산 사람이 될 수 있다. 산 사람은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겪은 사람이다. 또한 자신을 바치며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평생 헌신하는 사람이다. 산 사람이 하나님을 증거해야 사탄에게 수치를 줄 수 있고, 산 사람만이 하나님의 복음을 확장할 수 있다. 또한 산 사람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진정한 사람이다. 본래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죽음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되었으며, 사탄의 도구, 사탄의 포로로 전락했다. 하나님이 창조한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이 되면서 하나님은 증거를 잃게 되었고, 유일하게 그의 숨결을 불어넣어 준 인류를 잃게 되었다. 하나님이 자신의 증거를 되찾고 직접 그의 손으로 만들었으나 사탄에게 끌려간 사람을 빼앗아 오려면, 사람을 부활시켜 산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며, 모든 사람을 되찾아 그의 빛 속에서 살게 해야 한다. 죽은 사람은 영이 없는 사람이며, 극도로 무감각해진 사람이다.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며, 나아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다. 이런 사람에게는 오직 대적과 패역만 존재할 뿐 충성심은 찾아볼 수도 없다. 반면 산 사람은 영이 소생한 사람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며, 진리와 간증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살아난 사람인가?> 중에서

491) 흑암의 권세란 무엇이냐? 흑암의 권세란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고 결박하고 통제하는 사탄의 권세를 가리킨다. 사탄의 권세는 죽음의 기운을 지닌 권세이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은 모두 멸망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을 믿게 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흑암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여 너의 마음이 오롯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면, 너는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게 되고, 따라서 마음을 완전히 드리려고 할 것이다. 바로 그때 너는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행하고 그 일이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살고 하나님의 돌봄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고 늘 하나님을 기만하고 성의 없이 대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그는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지 못하면 사람은 모두 사탄의 권세, 즉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다. 불신자들은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부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사는 사람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사는 사람은 아니며,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만 할 뿐이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낡은 규례와 죽은 글귀에 빠져서 살고, 막연하고 어두운 삶 속에서 살게 될 뿐, 하나님께 완전히 정결케 되지도, 얻어지지도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산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라 해도 성령의 역사가 없으므로 여전히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지 못한 사람,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한 사람은 모두 흑암의 권세 아래에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일생 중 대부분의 시간을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산다면 삶의 의미를 잃은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떻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을 뿐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지는 못하는 사람은 모두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으며,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유를 얻지 못하고 늘 어떤 일로 속박을 받으며,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사탄에게 결박되어 죽음의 분위기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다. 자신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에 충성하지 않고, 하나님이 맡겨 준 사명에 충성하지 않으며, 교회에서 역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다. 의도적으로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형제자매들 간의 관계를 끊어 놓거나 당을 짓는 자들은 더더욱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자, 사탄에게 결박된 사람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이고 늘 지나친 욕망을 품으며, 이익만을 얻으려 하고 성품의 변화는 전혀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다. 진리 실행에서 언제나 참답지 못하고 건성으로 대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기를 추구하지도 않고 그저 육을 만족시키는 자 역시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며 죽음이 드리운 사람이다. 하나님을 위해 사역할 때 교활하고 간사한 수작을 부리고, 하나님을 무성의로 대하거나 기만하고, 자신만을 위해 생각하는 자는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다.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 성품 변화를 중요시하지 않는 자도 모두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면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중에서

492) 사람이 육으로 사는 것은 인간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다. 심판과 형벌이 없으면 사람은 모두 사탄처럼 더러운데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느냐? 베드로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보호이고 가장 큰 은혜야. 하나님이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해야만 사람이 깨어날 수 있고 육과 사탄을 증오할 수 있지. 하나님의 엄한 징계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탄의 권세와 자신만의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얼굴빛 속에서 살게 해. 심판과 형벌은 가장 좋은 구원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있는 한 저는 당신께서 아직 저를 떠나지 않으신 줄로 알고 있나이다. 당신이 제게 기쁨도 평안도 주지 않고 저를 고통 속에서 살게 하시며, 수없이 채찍질하시더라도 저를 떠나지만 않으시면 제 마음이 편안할 것이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은 오늘날 저에게 가장 좋은 보호이자 가장 큰 축복이 되었나이다. 당신이 제게 베푸신 은혜는 저에 대한 보호이나이다. 당신은 지금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나이다. 이 은혜는 당신이 보여 주신 공의로운 성품이고, 형벌이요 심판이며, 더욱이 시련이고 고난의 삶이나이다.’ 그가 육적인 즐거움을 내려놓고 더 깊은 사랑과 더 큰 보호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형벌과 심판 속에서 얻은 은혜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정결케 되고 성품이 변화되며 의미 있는 삶을 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려면,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징계와 매가 떠나지 않게 함으로써 사탄의 지배와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아야 한다. 너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빛임을,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빛이고, 사람에게 가장 좋은 축복이며, 가장 큰 은혜이자 가장 좋은 보호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육으로 살면서 정결케 되지 못하고 보호를 받지 못하면 점점 타락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정결케 되어야 하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베드로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대하실 때 저는 기쁨과 위안을 얻었으며, 저를 형벌하실 때는 제 마음에 더 큰 위안과 기쁨이 있었나이다. 비록 제게 연약함과 말 못 할 고충이 있고 또 눈물과 슬픔이 있지만, 당신은 제 슬픔이 저의 패역과 연약함 때문임을 아시나이다. 저는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릴 수 없어 울고, 당신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슬퍼하고 통회하나이다. 하지만 저는 그 경지에 이르기를 원하고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기를 원하나이다. 당신의 형벌은 저에 대한 보호이자 가장 좋은 구원이 되었나이다. 당신의 심판은 당신의 포용과 인내를 뛰어넘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없다면 저는 당신의 긍휼과 자비를 누릴 수 없나이다. 지금에 이르러 저는 당신의 사랑이 하늘보다 더 높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의 사랑은 긍휼과 자비일 뿐만 아니라 형벌과 심판이라는 것을 보았나이다. 저는 당신의 형벌과 심판 속에서 너무도 많은 것을 얻었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없다면 아무도 정결케 될 수 없고, 아무도 창조주의 사랑을 체험할 수 없나이다. 저는 온갖 시련과 환난을 겪고 구사일생했지만 그로써 진정 당신을 알고 크나큰 구원을 받게 되었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 징계가 저를 떠난다면 저는 어둠 속에서 살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될 것이나이다. 사람의 육이 무슨 도움이 되겠나이까?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저를 떠나면 당신의 영이 저를 버린 것과 같고, 또 당신께서 더 이상 저와 함께하시지 않는 것과 같나이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나이까? 당신이 저에게 질병을 주시고 저의 자유를 빼앗아 가셔도 저는 살아갈 수 있지만,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저를 떠난다면 살아갈 수가 없나이다. 저에게 형벌과 심판이 없다면 당신의 사랑을 잃은 것이나이다. 당신의 사랑은 너무도 깊어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나이다. 당신의 사랑을 잃으면 저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볼 수 없게 되나이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나이까? 그런 어둠, 그런 삶을 견딜 수가 없나이다. 당신이 저와 함께하시면 제가 당신을 보는 것과 같은데 어찌 당신을 떠날 수 있겠나이까?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저의 가장 큰 위안을 거두어 가지 마옵소서. 설령 그것이 당신의 아주 작은 위안의 말씀일지라도 그리해 주시옵소서. 당신의 사랑을 누리고 이제는 당신을 떠날 수 없게 되었는데, 제가 어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당신의 사랑 때문에 슬픔의 눈물을 수없이 흘렸지만 저는 항상 이런 삶이 더 의미 있고, 저 자신을 더 충실하게 하며, 스스로를 더 변화시키고, 피조물이 갖춰야 할 진리에 더 잘 도달하게 한다고 생각하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493) 사람의 육체는 사탄에게 속하여 패역의 성품으로 가득하고 더럽기 그지없는데, 그것은 불결한 것이다. 사람은 육적인 것에 지나치게 탐닉하고 육적인 모습이 너무 많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육체를 매우 증오한다. 사람이 사탄의 더러움과 패괴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더러움과 패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계속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것이다. 사람의 아귀다툼, 간사함, 교활함 같은 것들은 모두 사탄의 것이며, 이런 사탄의 것들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틀릴 리가 없으며, 모두 사람을 어둠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너의 믿음이 육체의 패괴에서 벗어날 수 있고 패괴된 육체에 통제당하지 않을 정도에 이르면 너는 구원받은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고, 너는 여전히 더러운 것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을 수 없다. 네가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되면, 너는 거룩한 사람이자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축복하고 기뻐하는 자가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2> 중에서

494) 사람은 한평생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며, 그 누구도 스스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두가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패괴 속에서 살고 공허함 속에서 살며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 모두 육을 위해, 정욕을 위해, 사탄을 위해 그렇게 아무 근심 없이 살아가며, 생존의 가치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은 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진리를 찾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볼지라도 어떻게 해야 사탄 권세의 통제에서 벗어날지 알지 못한다. 역대로 이런 비결을 발견한 사람이나 찾아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은 사탄을 혐오하고 육을 혐오한다고 해도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권세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너희는 지금도 사탄의 권세 아래 있지 않더냐? 패역한 짓을 저지르고도 참회하지 않고, 더욱이 자신을 더럽고 패역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대적하고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매우 편안하게 느낀다. 너의 편안함은 너의 패괴로 인한 것 아니더냐? 그 편안한 느낌은 너의 패역에서 나온 것 아니더냐? 사람은 모두 인간 지옥에서 살고 있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살고 있다. 곳곳에서 유령이 사람과 함께 살면서 사람의 육체를 부패시키고 있다. 네가 이 땅에서 사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천당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네가 머물고 있는 곳은 바로 마귀의 영역이고, 인간 지옥이자 음부이다. 사람이 정결케 되지 않으면 모두 더러운 존재에 속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여전히 사탄의 포로이다. 심판과 형벌을 겪지 않으면 사람은 더더욱 사탄의 이 흑암 권세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네가 드러낸 패괴 성품과 네가 살아 낸 패역한 행위는 네가 아직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충분한 증거다. 너의 마음과 생각이 정결케 되지 않고 너의 성품이 심판과 형벌을 겪지 않으면, 네 전체가 계속 사탄의 권세에 좌지우지된다. 너의 마음이 사탄에게 통제당하고 너의 생각이 사탄의 조종을 받으며 네 전체가 사탄의 손아귀에 좌지우지된다. 너는 지금 베드로의 기준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고 있느냐? 너는 자질을 갖추었느냐? 너는 오늘날의 심판과 형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너는 베드로가 알게 된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네가 지금도 알지 못하는데 앞으로는 알 수 있겠느냐? 너처럼 나태하고 나약한 사람은 결코 형벌과 심판을 알 수 없다. 네가 육적인 평안과 향락을 추구한다면 정결케 될 수 없을 것이고, 결국에는 사탄에게 돌아갈 것이다. 네가 살아 낸 것이 사탄이요, 육이기 때문이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조금도 추구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정결케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더 깊은 생명 체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온전케 될 수 있겠느냐?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 자에게는 온전케 될 기회가 없으며,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고 성품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자는 모두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495) 하나님을 믿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됨이 솔직하지 못하고 앞에서 하는 행동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며, 겉으로는 겸손하고 인내하며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그 본질이 음험하고 교활하며 하나님께 조금의 충성심도 없는 사람은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전형적인 예이자 독사의 부류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자신을 위해 계책을 세우고, 독선적이고, 잘난 척하고, 스스로를 드러내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자는 사탄을 사랑하고 진리에 반하는 사람이자, 하나님을 대적하고 완전히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며, 언제나 자신과 가정의 이익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려 헌신하지 못하며,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은 자는 하나님 말씀 밖에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풍부함을 누리고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을 창조했다. 그래서 사람은 그의 빛 속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지 못하는 자,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지 못하는 자,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여기지 못하는 자, 하나님의 부담을 자신의 부담으로 여기지 못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빛 비춤이 없으며, 그로 인해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에서 진리를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사탄과 더러움에 물든 자이며 흑암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다. 만약 네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사는 사람이다.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고 싶으냐? 네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살면 성령이 역사할 기회가 생긴다. 그러나 네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산다면 성령이 역사할 기회가 없다. 성령이 사람에게 역사하고, 빛 비추며, 믿음을 더해 주는 것은 모두 순간적이다. 사람이 마음을 쓰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성령 역사는 바로 사라지고 만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살면 성령의 함께함과 성령의 역사를 얻을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살지 않으면 사탄에게 묶여 살게 될 것이다. 사람이 패괴 성품에 빠져 살면 성령의 함께함과 역사는 없다. 네가 하나님 말씀의 범주 안에서 살고, 하나님이 요구한 상태 가운데서 살고 있다면, 너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네게 역사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이 요구한 범주 안에서 살지 않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다면, 너는 분명 사탄의 패괴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살고,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야만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로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이 네 삶의 토대와 삶 속의 실제가 되어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된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실행한다면 하나님은 네게 역사할 것이다. 그때면 너는 하나님의 축복과 얼굴빛 속에서 살게 되고, 성령의 역사를 찾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함께하는 기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면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중에서

496)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과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영적 상태에 있게 된다. 올바른 영적 상태 가운데서 사는 것은 바로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전제 조건이다. 올바른 상태가 없으면,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과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론할 여지도 없다. 사람이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려면 나의 말에 기반해야 한다. 내 말에 따라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흑암 권세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올바른 영적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진리를 구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는 실제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과 실제 속에서 사는 사람은 진리에 깊이 진입하고 사역에 더 깊이 진입하면서 조금씩 변화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지는 사람,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난 사람은 점차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으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어떤 관념이나 패역 행위도 없어질뿐더러 과거의 관념과 패역을 더욱 증오하게 되며,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우러날 것이다.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육적인 것과 패역한 것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는 사람의 관념과 처세 철학, 그리고 자신의 속셈과 타산뿐이다. 하나님은 한결같이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원하고, 사람의 내면이 그의 말씀과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점유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며 말씀에서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달려가며,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 응당 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세워져야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갖추지 못한다면 사람은 그저 사탄에게 점령당한 구더기에 불과하다! 너 스스로 가늠해 보아라. 하나님의 말씀이 네 마음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느냐? 너는 어떤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느냐? 어떤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느냐? 하나님 말씀에 완전히 점유되지 않았다면, 너의 마음은 무엇에 의해 점유되었느냐? 매일의 삶 속에서 너는 사탄에게 통제되고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 말씀에 점유되고 있느냐? 네 기도는 전부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이뤄진 것이냐? 너는 하나님 말씀에서 깨우침을 받아 부정적인 상태에서 나올 수 있었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토대로 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진입해야 할 부분이다. 만약 네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너는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며 순전히 방해만 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가 몇 번이나 되느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는 또 몇 번이나 되느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네게 요구한 것 중, 어떤 것들이 네게서 이뤄졌느냐? 어떤 것들이 네게서 허사로 돌아갔느냐? 너는 이러한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려면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이 온 힘을 다해 협력해야 한다. 어째서 사람이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고 말하겠느냐? 정상 궤도에 진입한 사람은 먼저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는데, 이것은 오랜 시간을 들여 진입해야 할 공과이다. 인류는 줄곧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수천 년이나 사탄에게 결박당해 왔기 때문에 이 진입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 오늘 이 일을 언급하는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영적 상태를 알게 하기 위함이다. 무엇이 흑암 권세에 속하는 것인지, 또 무엇이 빛 속에서 사는 것인지에 대해 분별하면 진입하기가 쉽다.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기 전에 반드시 사탄의 권세가 무엇인지 알아야 조금씩 벗어날 길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는 사람 자신의 몫이다. 모든 것을 소극적으로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인 면에서 진입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면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중에서

497)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에는 다 그 필요성이 있으며, 평범하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가 사람에게 하는 일들은 모두 그의 경영, 그리고 인류의 구원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이 욥에게 행한 일도 예외는 아니다. 욥이 하나님 눈의 순전하고 정직한 자라고 해도 말이다. 즉, 하나님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하든, 무엇을 대가로 삼고 무엇을 목표로 하든, 그가 하는 일의 근본 취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근본 취지란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 그러니까 하나님이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절차에 따라 사람 마음에 심어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이 행하는 일의 근본 취지 중 하나이다. 또 한편으로 사탄은 하나님 사역의 부각물이자 봉사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은 항상 사탄에게 넘겨진다.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이 사탄의 시험과 공격 속에서 사탄의 사악함과 추함과 비열함을 보게 함으로써 사탄을 증오하고 부정적인 것을 인식하고 분별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점차 사탄의 통제와 참소, 교란과 공격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순종, 믿음과 경외심으로 사탄의 공격과 참소를 전부 이겨 내면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다. 사람이 사탄의 권세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은 사탄의 패배 선언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사탄의 먹이나 사탄이 삼키려는 대상이 아닌, 사탄이 포기한 대상이다. 그런 사람은 정직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 경외심을 지녔으며, 사탄과 철저하게 결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사탄에게 수치를 주고, 사탄의 간담을 서늘케 하며, 또한 완전한 실패를 안겨 준다.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심으로 사탄을 물리쳐, 사탄이 완전히 손을 놓게 만든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사람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최종 목표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구원받고 완전히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사탄에게서 오는 크고 작은 시험과 공격에 직면해야 한다. 거기에서 벗어나 완전히 사탄을 이기는 사람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준 시련과 사탄의 무수한 시험, 공격을 겪은 사람이다.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를 이해하는 자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사탄의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포기하지 않은 자다. 또한, 하나님께 구원받은 자는 정직하고, 선하고, 애증이 분명하고, 정의감이 있고, 이성이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사탄의 속박, 염탐, 참소, 상해 등을 받지 않으며,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를 얻고 해방받은 자이다. 욥이 바로 이러한 자유인이었다. 하나님이 욥을 사탄에게 넘긴 의미가 여기에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498) 욥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사탄을 이긴 증거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도움과 격려가 되었다. 사람들은 욥에게서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 경외심을 통해 사탄을 완벽하게 물리쳐 이길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아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겠다는 결심과 믿음만 있다면, 사탄에게 실패와 수치를 안겨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또한, 목숨을 버릴지언정 굳게 서겠다는 다짐과 의지만 있다면, 사탄은 소문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져서 황급히 도망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욥의 증거는 후세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이 경고는 사탄을 이기지 못하면 영원히 사탄의 참소와 방해, 공격과 상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욥의 증거는 또 후세 사람들에게 계시하고 있다. 사람은 이 계시를 통해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야만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해야만 영원히 사탄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욥의 인성과 품격, 그가 인생에서 추구한 것은 구원받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욥이 일생 동안 살아 낸 것과 그가 시련 속에서 보여 준 행동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소중한 자산인 셈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499) 구원받기 전까지 사람의 삶은 항상 사탄의 방해를 받고, 심지어는 사탄에게 통제되기도 한다. 즉, 구원받지 못한 자는 사탄에게 구금된 자, 자유가 없는 자, 사탄에게서 해방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자격과 권리가 없는 자이며, 사탄에게 바짝 쫓겨 맹렬한 공격을 받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존엄성은 물론이고, 행복이나 정상적인 생존 자격을 논할 가치도 없다. 사람은 스스로 일어나 사탄과 싸워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과 경외심을 무기로 사탄과 결사전을 벌여 철저히 물리쳐라. 그리하여 사탄이 너를 보면 간담이 서늘해져 도망가게 해라. 그렇게 되면 사탄은 너에 대한 공격과 참소를 완전히 포기할 것이고, 그때 너는 구원받아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사탄과 철저히 결별할 결심만 할 뿐, 사탄을 물리칠 유리한 무기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너는 여전히 몹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너는 사탄에게서 오는 괴롭힘으로 기진맥진하여 굳게 서지도, 사탄의 참소와 공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면 구원받을 희망은 요원해진다. 마지막 순간, 즉 하나님의 사역이 끝을 알리는 순간에도 네가 여전히 사탄에게 꽉 잡혀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영원히 기회도 희망도 없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런 사람은 완전히 사탄에게 사로잡혔다는 뜻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500)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공급해 주고 붙들어 주는 사역을 하는 동안, 하나님은 그의 뜻과 요구를 모두 알려 주었다. 또한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보여 주었다. 그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의 분량을 갖추고,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다양한 진리를 얻도록 하는 데 있었다. 그러한 진리가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사탄과 싸울 수 있는 예리한 무기이다. 사람이 이러한 장비를 갖추려면 하나님의 검증에 직면해야 한다. 하나님의 검증에는 여러 가지 방식과 경로가 있지만, 그 모든 경로와 방식에는 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협력’이 들어간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탄과 싸울 예리한 무기를 준 다음, 사람을 사탄의 손에 넘겨 사탄이 그 사람의 분량을 ‘검증’하게 한다. 사람이 사탄이 쳐 놓은 진영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포위 공격에서 살아 나오면 그 검증을 통과한 것이다. 그러나 사탄의 진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탄에게 항복한다면,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어떤 부분을 검증하든, 검증의 기준은 그 사람이 사탄의 공격 가운데서 굳게 설 수 있는지, 사탄의 올무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무기를 버리고 사탄에게 굴복하는지 등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은 사탄을 이기고 물리치는 것에 달려 있다. 또한, 사람의 해방은 사람이 독립적으로 하나님이 준 무기를 들고 사탄의 결박을 끊어 사탄이 완전히 단념하고 포기하게 하는 데에 달려 있다. 사탄이 사람을 단념하고 포기한다는 것은 더는 그 사람을 두고 하나님과 싸우지 않고, 그 사람을 참소하거나 방해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그 사람을 해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진 자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한 사람을 얻는 전 과정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501) 오늘날,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도 좋고, 외적인 인성 변화와 자질 향상을 추구해도 좋다. 하지만 가장 주된 것은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이 의미 있고 이로운 일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네가 더러움에서 벗어나고 더러움을 떨쳐 버리게 해 주며,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또한 네가 그 일들을 중시하게 함으로써 더러운 땅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해 준다. 궁극적으로 네게 어떤 간증을 하라는 것이겠느냐? 그러니까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거룩해질 수 있고 더 이상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태어났지만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탄에게 점령되지 않고, 사탄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지 않으며, 전능자의 손안에서 살 수 있는 것, 이것이 간증이요, 사탄과 싸워 이긴 증거이다. 네가 사탄을 저버릴 수 있으며 네가 살아 내는 것에는 더 이상 사탄의 성품이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 즉 사람에게 요구한 정상 인성, 정상적인 이성과 정상적인 식견,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정상적인 의지,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이 해야 할 간증이다.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우리에 대한 정복으로 인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복하심으로 얻은 성과이지, 우리 자신이 훌륭해서도,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고 예정하셨기에 우리가 오늘 그분께 정복되고, 그분을 증거하며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그분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보호하셨기에 우리는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받았으며,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더러움을 벗어던지고 정결케 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2> 중에서

502) 너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어느 날 이 사역이 전개되는 것을 전부 보게 되면 그때는 후회하고 아연실색할 것이다. 있는 복도 누릴 줄 모르고, 있는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겠느냐? 비록 아직은 다음 단계의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너에게 요구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그 사역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과 진리가 모두 네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냐? 형벌과 심판은 너의 영을 깨어나게 할 수 없느냐? 형벌과 심판이 너로 하여금 너 자신을 증오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503) 하나님은 이렇게 큰 규모의 사역을 하여 이 사람들을 완전히 구원한다.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거룩한 땅에서 살고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며 빛의 인솔과 인도가 있으면 너의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너희가 먹고 입는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과 다르다.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의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을 누리고 있느냐? 그들은 단지 ‘조상의 유산’과 ‘민족적 기개’만 누릴 뿐 그 어떤 인간미도 없다! 너희들의 차림새와 언행은 모두 그들과 다르다. 궁극적으로 너희는 불결한 것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시는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고 매일 하나님의 공급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늘 신중해야 한다. 더러운 땅에서 살아도 더러움에 때묻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으며, 크나큰 보호를 받았다. 이 황토의 땅에서 너희만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으니 너희는 누구보다 복받은 사람이 아니냐? 너는 피조물이기에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더러운 육체 속에서 살고 있다면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된 것이 아니냐? 네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너는 자신이 지금 받고 있는 이 작은 고난을 마땅히 기쁘고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욥이나 베드로처럼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사람은 세상에서 마귀의 옷을 입고, 마귀가 주는 밥을 먹으며, 마귀의 밑에서 일을 하고 충성하면서 마귀에게 짓밟혀 온몸이 더러워졌다. 네가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참도도 얻지 못한다면, 그렇게 평생을 살아도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너희는 바른길을 추구하고, 진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큰 붉은 용 나라에서 떨쳐 일어난 너희는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이다.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인생이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2> 중에서

이전: 12. 하나님을 섬기고 증거하는 법에 관한 말씀

다음: 14. 성품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법에 관한 말씀

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콘텐츠

3. 자신을 알고 참된 회개에 이르는 법에 관한 말씀

358) 사람은 수천 년의 패괴를 겪고 나서 모두 무감각하고 우둔해졌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가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 역사(歷史)는 모두 ‘사기(史記)’에 기록되었고, 심지어 사람의 패역한 행위는 사람 스스로도 다 이야기할 수...

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것에 관하여

성령의 특별한 지시나 인도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사람은 전혀 독립적으로 생활할 능력이 없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섬김과 목양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대마다 서로 다른 사람을 일으켜 그의 사역을 위해 분주히 오가며 교회들을...

후 기

이 말씀들이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의 전부는 아니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성품의 변화를 받기에는 충분하다. 혹자는 중국에서 행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끝났으니 하나님이 할 말씀을 다 끝냈다고, 더는 새로운 말씀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앞서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이야기하였으니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으리라 믿는다. 너희가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 얼마나 알 수 있는지는 너희의 노력에 달려 있으니, 건성으로 대하지 말고...

설정

  • 텍스트 설정
  • 테마

색상

테마

폰트

폰트 사이즈 조정

줄 간격 조정

줄 간격

페이지 너비

목차

검색

  • 페이지 내 검색
  • 도서 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