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하나님을 섬기고 증거하는 데 관한 말씀

615) (하나님 말씀 전편 발췌)

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너희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어떤 조건을 갖추고 어떤 진리들을 알아야 하는지, 너희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어떤 오류들을 범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너희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어떻게 성령이 인도하는 길로 나아가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 하나님이 너희에게 행한 모든 사역을 알 것인지와 관련된다. 너희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것에 절대 복종하고, 어떠한 원망, 판단, 분석과 그 어떠한 연구도 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게 될 것이다. 마치 양처럼 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죽음까지도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모두는 90년대의 베드로가 될 수 있고, 십자가에 달리면서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일말의 원망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래야만 90년대 베드로의 풍격으로 사는 것이다.

의지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에게만 하나님을 섬길 자격과 권리가 주어진다. 나는 너희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것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은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전도하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는 등등 이러한 것들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종교 인사들은 성경을 받쳐 들고 곳곳에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복하고 회개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여긴다. 또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신학교에서 심도 있는 교육과 훈련을 받은 후 여러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고 성경 구절로 사람들을 교훈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빈곤 지역’의 사람들은 형제자매들을 위해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며, 중보 기도를 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여긴다. 너희 중에 많은 이들은 매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사역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형제자매들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가정을 이루지 않으며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다 바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은 매우 적다. 비록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별처럼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직접 섬길 수 있는 자,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물며 턱없이 부족하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시급히 알아야 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기고자 한다면 우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뻐하고 어떤 사람을 증오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것은 너희가 최소한 갖추어야 하는 것들이다. 너희는 또한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현재 하고자 하는 사역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난 후에, 너희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받아 먼저 진입하고, 먼저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아야 한다. 너희는 하나님 말씀을 실제로 체험할 때,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진실로 알게 될 때, 하나님을 섬길 자격을 갖게 된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를 섬길 때 너희의 영적 눈을 뜨게 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사역을 더 잘 알고 더 분명히 이해하게 한다. 네가 이 실제에 진입할 때, 너의 체험은 더욱 깊어지고 더 실제적이 된다. 이런 체험이 있는 사람은 교회들을 다니면서 형제자매들에게 공급할 수 있어 너희가 다른 사람의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하고 영적인 앎이 더 풍성해지게 한다. 이 효과에 도달한 후에야 너희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고, 또한 섬기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지기(知己)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이며, 하나님께 일편단심 충성하는 자여야 한다. 사람 뒤에서 한 일이든 사람 앞에서 한 일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설 수 있으며,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대하든 너는 항상 네가 가야 할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지기인 것이다. 하나님의 지기가 직접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중임을 맡고 하나님의 짐을 함께 지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부담을 자신의 부담으로 생각하며, 전망과 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설사 아무런 미래도 없고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라도, 그는 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지기인 것이다. 하나님의 지기는 곧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한다. 비록 육체는 고통스럽고 연약할지라도 그 고통을 인내하며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더 많은 부담을 주며,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런 사람을 통해 증거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만이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을 수 있다.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지기가 될 때가 바로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게 되는 때이다.

예수가 하나님이 맡긴 일을 완수하고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을 위해 계산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너희가 가장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의 지기이자 하나님 자신이다(사실, 그는 하나님이 증거한 하나님 자신이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이유는 이 사실을 통해 한 가지 일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는 하나님의 경륜을 중심으로 늘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였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만일 당신의 뜻이라면 이루소서. 제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계획대로 하소서. 사람이 연약하긴 하나 당신께서 어찌 그것까지 헤아리시나이까? 당신 손안의 개미와도 같은 사람이 어찌 당신의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겠나이까? 저의 마음은 오직 당신의 뜻을 이루기 원하오니, 원컨대 당신의 뜻에 따라 제게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소서.”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가슴이 칼로 에는 듯 아프고 괴로웠으나 마음속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그는 계속 어떤 큰 힘에 이끌려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될 곳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인의 형상으로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수하고, 모든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사망, 지옥과 음부는 그의 앞에서 위력을 잃고 그에게 패하였다. 그는 33년의 생애 동안, 언제나 하나님의 당시 사역에 맞춰 하나님을 흡족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개인의 득과 실을 따지지 않고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가 세례를 받은 뒤에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그에게 맡겨 완수하게 한 것이다. 그는 그 중임을 완수할 자격과 권리가 있었다. 그는 일생 동안 하나님을 위해 수많은 고통과 사탄의 시험을 받았지만, 낙담한 적이 없었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사랑하였기에 그 크고 중요한 임무를 그에게 맡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친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오직 예수만이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행한 인류 구속 사역 실상의 일부이다.

너희도 만약 예수처럼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여 너희 육을 저버릴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의 중책을 너희에게 맡겨 너희가 하나님을 섬기는 조건에 이르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만 너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이고,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는 자이며,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너는 네가 하나님의 지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지금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네가 하나님의 지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네 스스로 생각해 보아라. 네가 섬기는 대상이 하나님이냐, 아니면 너 자신이냐? 너는 사탄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우기고 있다. 이 또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많은 사람들은 내 뒤에서 지위의 복을 탐하고, 먹는 것과 자는 것을 탐하며, 늘 육체가 편하지 못할까 걱정하기에 급급하다. 교회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공밥을 먹거나 나의 말로 형제자매를 훈계하고, 높은 위치에 서서 사람들을 속박한다. 이런 사람들은 말끝마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고 떠들어 대고, 또한 자신을 하나님의 지기라고 한다. 이는 황당무계한 논리가 아니고 무엇이냐? 만약 네가 마음 자세는 바르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기지 못한다면, 너는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마음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 나는 이런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공짜로 밥을 먹고 항상 육적인 안락만을 탐하며, 하나님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도모한다. 또 하나님의 뜻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행동에서 하나님 영의 감찰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늘 간교하게 형제자매들을 기만하고, 사람들 앞과 뒤에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마치 여우가 포도원에 들어가 포도를 훔쳐 먹고 포도원을 짓밟는 것과 같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지기가 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자신의 생명과 교회에 대해 부담이 전혀 없는 네가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이런 자를 누가 과연 신뢰할 수 있겠느냐? 너처럼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이 더 큰 임무를 맡길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한다면 일을 그르치지 않겠느냐?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섬김을 행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지 너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너희가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예수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린 것처럼 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하나님의 신임을 얻기 어려우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너희에게 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네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항상 하나님을 기만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네가 하나님을 기만하면 가차 없는 심판이 너에게 임할 것이다. 너희는 지금 막 하나님을 섬기는 정상 궤도에 들어선 이 기회에, 마음부터 하나님께 드리고, 한 마음으로 두 가지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너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예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은 너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기는 자로 온전케 할 것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에 의해 진정으로 온전케 되고, 하나님 뜻에 맞게 섬기고 싶다면,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예전의 관점을 바꾸고,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예전의 구태의연한 방법을 바꾸어, 네 안에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지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너는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선구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네가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한다면, 결국 유다와 같은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616) 하나님은 전 우주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그를 섬길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을 예정했다.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땅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순조롭게 완수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여 그를 섬기게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러한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하는 원칙은 물론,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까지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실제로 땅에 와서 사역하며, 사람과 접촉하여 사람이 그의 행사를 더욱 분명히 알게 한다. 오늘날 너희가 운 좋게 실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너희의 무한한 복이며, 그야말로 하나님의 높여 줌이다. 하나님이 그를 섬길 사람을 택하는 데는 언제나 원칙이 있다. 사람의 상상대로 열정만 있다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늘날 너희가 보다시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인도로 성령 역사가 있어야 하고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반드시 없애야 할 종교적 섬김> 중에서

617) 사역이라 하면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곳곳에서 전도를 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옳긴 하지만 아주 단편적인 인식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더 많이 섬기고 공급하는 것이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체험했음에도 하나님을 위한 사역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람의 관념 속 사역과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도 일치하는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역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진입도 매우 단편적이 되었다. 너희는 모든 측면에서 더 잘 체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에서부터 진입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너희가 마땅히 진입해야 할 것이다. 사역이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 내는 것과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역이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충성심과 인식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사람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사람의 책임이자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다. 너희의 진입이 곧 너희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너희는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과정에서 진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섬길 줄 알며, 사람을 돌보고 공급할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사역이자 너희의 진입이며, 모든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바이다. 많은 이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곳곳에서 설교하는 것만을 중시한 나머지 개인의 체험을 망각하고, 영 생활에 진입하는 것을 간과한다. 이로 인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다. …

사역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하는 사람을 전부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기 위함이며,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또한,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인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여 하나님 사역의 성과를 완벽하게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너희는 반드시 사역의 본질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할 자격이 있다. 즉, 모두에게 성령께 쓰임 받을 기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사람이 하나님이 맡겨 준 사역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기회를 얻은 것이지만 사람이 말한 것과 깨달은 것이 전부 사람의 분량은 아니라는 점이다. 너희는 오직 사역하는 과정에서만 너희의 부족함을 더 잘 알 수 있고, 더 많은 성령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으며, 더 잘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2> 중에서

618) 교회들을 이끌 수 있는 사람,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사람들을 이끄는 사도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실제 체험이 있어야 하고, 영적인 것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하며,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체험 또한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일꾼이나 사도가 되어 교회들을 이끌 자격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작은 따르는 자가 될 수 있을 뿐, 이끄는 자가 될 수 없으며,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사도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사도의 역할은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도, 싸우는 것도 아닌, 생명을 돌보고 사람의 성품 변화를 이끌어 내는 사역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명과 중임을 맡은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이지, 아무나 담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역은 생명의 어떠함이 있는, 즉 진리의 체험이 있는 사람들만 맡을 수 있는 것으로, 포기할 수 있고 열심히 뛰어다닐 수 있고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의 체험이 없고 책망과 심판을 받지 않은 사람은 이 사역을 할 수 없다. 체험이 없는 사람, 즉 실제가 없는 사람은 실제에 대해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에게는 이 측면의 어떠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인솔하는 사역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진리가 없을 경우 도태될 대상이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619) 자격을 갖춘 일꾼이 하는 사역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에 깊이 진입하게 할 수 있다. 그가 하는 사역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고, 게다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일을 할 수 있으며, 규례의 제약 없이 모든 사람에게 해방과 자유를 줄 수 있고, 또한 생명이 점차 성장하고 진리에 더 깊이 진입하게 할 수 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일꾼이 하는 사역은 이와 크게 다르다. 그는 어리석게 사역을 하며 사람을 규례 속으로 인도할 뿐이다. 그는 사람에 따라 요구를 달리하지도 않고, 사람의 실제 필요에 맞춰 사역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역에는 규례와 이론이 너무 많아 사람을 실제 속으로 이끌 수 없으며, 생명이 성장하는 정상적인 실행 속으로 이끌 수도 없다. 그저 사람들에게 가치 없는 규례를 지키게 할 뿐이다. 이러한 인도는 사람을 치우치게 만든다. 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너를 어떻게 인도할지가 결정되며, 그는 너를 그의 소유와 어떠함 안으로 이끌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620) 교회의 리더와 일꾼이 사역을 할 때는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 사역지침에서 규정한 원칙을 정확히 따라 행하되, 원칙을 어기거나 마음대로 상상하거나 자기 뜻대로 행동해선 안 된다. 모든 일에 있어 하나님 집의 사역을 생각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둘째, 매사에 성령의 인도를 따르도록 신경 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엄격히 따라 실행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성령의 인도를 어기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뜻과 상상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가장 심각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다. 늘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에서 어긋나면 막다른 길에 들어서게 되며, 성령 역사를 잃어버리면 사역을 할 수 없게 된다. 설령 사역을 할지라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사역 전개에는 이렇게 두 가지의 원칙이 있다. 하나는 정확히 상부의 안배에 따라 사역하고, 상부에서 안배한 원칙에 근거하여 일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내면의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파악하면 사역할 때 쉽게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리더와 일꾼이 사역하는 주요 원칙> 중에서

621) 성령의 현재 말씀에서 벗어난 섬김은 전부 육적인 것과 관념에 속하는 섬김이다. 그러한 섬김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 사람이 종교 관념 속에서 살아가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섬긴다 해도 상상에 따라, 관념에 따라 섬길 뿐, 전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 성령의 역사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의 뜻에 맞는 섬김이지, 관념적이거나 육적인 섬김이 아니다.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관념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섬김은 방해이자 교란이고, 그러한 섬김은 하나님과 반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으며,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알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야 한다> 중에서

622)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 마음에 부합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 합당한 사람이자 종교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 결실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종교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먼저 종교 관념을 내려놓고, 어떤 일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갖춰야 할 것이다. 이런 인식이 없다면 섬김이 방해가 되고 교란이 된다. 계속 고수한다면 하나님에 의해 ‘쓰러져’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만 보더라도 많은 방식과 사역이 성경과 맞지 않고, 하나님이 예전에 행한 것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네게 순종하는 마음이 없다면 언제라도 쓰러질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기려면 먼저 종교 관념을 내려놓고, 자신의 관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앞으로는 예전의 방식과 다른 방식이 많이 있을 것이다. 네가 지금 순종하려는 의지를 갖추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 네 안에 뿌리박힌 하나님의 사역 방식을 계속 고수하면서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 방식은 너의 종교 관념이 될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어떠함이 네 안에 뿌리내렸다면 너는 진리를 얻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네 생명이 된다면 하나님에 대해 다시는 관념을 갖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사람은 관념이 없고 규례를 지키지도 않는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중에서

623) 많은 사람이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의 행정을 알지 못할뿐더러 하나님 말씀에 내포된 뜻은 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좋은 마음이 종종 하나님의 경영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심한 자는 하나님 집의 문밖으로 쫓겨나 하나님을 따를 기회를 잃고 지옥에 떨어져 하나님의 집과는 무관하게 된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 집의 사역을 무지한 호의로 대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진노를 유발한 사람들이다. 사람은 다 양반 나리를 받들던 수작을 하나님 집에서도 부리며 자기 뜻대로 휘두를 망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이 양이 아니라 사자 같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처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들은 다 하나님과 ‘소통’이 되지 않는데,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과 다르기 때문이다. 너는 수많은 진리를 깨달아야만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있다. 그러한 앎은 글귀나 도리가 아니라 너와 하나님이 서로의 마음을 알게 해 주는 보배가 될 것이고,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너의 앎에 실제가 결여되고 진리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열심만 가득한 너의 섬김은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훈언 3칙> 중에서

624)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패괴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섬기기란 불가능하다. 너의 성품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 성품은 여전히 사탄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너의 섬김은 선의에서 나온 것임을 말해 준다. 이는 사탄의 본성으로 섬기는 것이다. 너는 타고난 개성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자신의 취향대로 하나님을 섬긴다. 그러면서 네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도 기뻐할 것이고,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도 싫어할 것이라고 여기며 완전히 자기 취향대로 사역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냐? 계속 그렇게 한다면, 너의 성품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은 채 도리어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더욱 완고해지고 패괴 성품이 더 깊이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네 내면에는 네 개성을 위주로 한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들과 네 성품대로 섬기면서 정리된 경험이 형성될 텐데, 이는 사람이 경험으로 얻게 되는 교훈이고, 또 사람의 처세술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바리새인과 종교 관원에 속한다. 이런 사람들이 각성하지도, 회개하지도 않는다면, 반드시 말세에 사람을 미혹하는 거짓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가 된다. 이른바 거짓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부류에서 나온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개성에 따라 자기 뜻대로 행한다면 언제라도 도태될 위험성이 있다. 또 여러 해 동안 종합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사람들을 농락하고, 높은 자리에 서서 훈계하고 통제하며, 회개하거나 죄를 자백한 적도 지위의 복을 포기한 적도 없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쓰러지고야 말 것이다. 이런 자들은 바울과 같은 존재로, 나이를 내세우고 경험이 많다고 거들먹거리는데, 하나님은 이런 자를 온전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섬김은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늘 낡은 것과 고루한 고정 관념, 그리고 과거의 모든 것을 고수하는데, 이는 섬김에 크나큰 걸림돌이 된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네 일생은 이로 인해 망가질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뛰어다니고, 허리가 끊어질 만큼 고생하며, 심지어 순교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칭찬은커녕 도리어 너를 가리켜 악을 행한 자라고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반드시 없애야 할 종교적 섬김> 중에서

625) 많은 종교인이 평생 적지 않은 고난을 받았다. 그들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거나 십자가를 졌으며, 심지어는 죽기 전까지 고난을 받고 인내했다! 어떤 이는 죽는 날 아침까지도 금식했고, 평생 좋은 음식을 먹지 않고 좋은 옷도 입지 않았으며, 고난받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들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거나 육을 버릴 수 있었다.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그들의 정신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 관념, 정신적 면모, 나아가 그들의 옛 성품은 전혀 다듬어지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그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전통적 관념 속의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으려는 그들의 의지는 그들의 열정과 인성의 좋은 성격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도 알지 못했다. 무작정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고난만 받았을 뿐 전혀 분별할 줄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들이 섬긴 하나님은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해 내거나 타인에게서 들었거나 혹은 글에서 찾아낸 전설 속의 하나님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풍부한 상상과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았고,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을 담당하고자 했다. 그들의 섬김은 정확도가 너무 떨어져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 자가 거의 없었다. 얼마나 고난을 달게 받았든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섬김의 관점과 그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연단, 온전케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또 진리로 그들을 이끌어 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구주 예수를 믿기는 했지만 구주에 대해서는 전설과 풍문만 들었을 뿐 구주를 본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섬김은 소경이 제 아버지를 모시듯 두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섬긴 것에 불과했다. 그런 섬김이 최종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또 누가 칭찬할 수 있겠느냐? 그들의 섬김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 인위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타고난 천성과 기호대로 섬겼는데 무슨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예수를 본 베드로조차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지 모르고 지내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즉 늙어서야 깨달았다. 그러니 어떤 책망도 훈계도 받지 않고 인도자도 없는 소경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 오늘날, 너희 많은 사람의 섬김도 소경의 섬김과 같지 않으냐? 심판을 받지 않고 책망 훈계를 받지 않으며 아무 변화도 없는 사람들은 모두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자들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너의 사상, 인생에 대한 인식,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변화가 없고 진정한 수확이 조금도 없다면, 너의 섬김은 영원히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3> 중에서

626) 너희가 체험하고 본 것들은 역대 성도들과 선지자들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너희가 그들의 말보다 더 훌륭하게 나를 증거할 수 있겠느냐? 지금 내가 너희에게 베푸는 것들은 모세보다 많고 다윗을 뛰어넘는다. 또한 나는 너희의 증거가 모세를 뛰어넘고 너희의 말이 다윗보다 훌륭하기를 바란다. 내가 너희에게 백배를 주었으니 너희도 나에게 백배로 갚아야 한다. 인류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는 이는 나이며, 내 생명을 받아들이고 나를 증거해야 하는 존재는 너희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내가 너희에게 준 본분이자, 너희가 마땅히 나를 위해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모든 영광을 주었고, 이스라엘 선민들도 얻지 못한 생명을 주었으니, 너희는 마땅히 나를 증거해야 하며, 나를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쳐야 한다. 내게서 영광을 받는 자는 나를 증거해야 하고,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 이는 내가 일찍이 정해 놓은 것이다. 나의 영광을 받는 것은 너희의 복이며, 나의 영광을 증거하는 것은 너희의 본분이다. 너희가 그저 복 때문에 나를 믿는다면 나의 사역은 별 의미가 없어지며, 너희 역시 너희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본 것은 나의 긍휼과 자비, 위대함뿐이었고, 유대인들이 본 것은 나의 인내와 구속뿐이었다. 그들은 내 영의 역사를 아주 조금밖에 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의 만분의 일에 불과하다. 너희가 본 것은 그들 가운데 있는 대제사장보다 더 많다. 오늘 너희가 깨달은 진리는 그들보다 더 높으며, 오늘 너희가 본 것은 율법시대보다 더 많고 은혜시대를 뛰어넘는다. 또 너희가 체험한 것은 모세와 엘리야보다 더 많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율법만 알고 여호와의 뒷모습만 보았기 때문이다. 또 유대인들은 예수의 구속만 알고 예수의 은혜만 받았으며 유대 족속의 형상을 지닌 예수를 본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희는 ‘여호와의 영광’과 ‘예수의 구속’과 오늘날 내 모든 행사를 보았다. 또한 직접 내 영이 하는 말을 들었고, 나의 지혜를 느꼈으며, 나의 기묘함을 깨닫고, 나의 성품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너희에게 내 경륜의 전부를 알려 주었다. 너희는 자비롭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공의가 충만한 하나님을 보았고, 나의 놀라운 역사를 보았다. 또한 내게 진노와 위엄이 가득함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집에 진노를 쏟았던 내가 오늘날 그 진노를 너희에게 내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희는 하늘의 내 비밀에 대해 이사야와 요한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며, 내 사랑스러움과 존경스러움에 대해 역대 성도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너희는 나의 진리와 길과 생명뿐 아니라 요한보다도 더 큰 이상(異象)과 계시를 받았다. 너희는 더 많은 비밀을 깨달았고, 나의 본모습도 보았다. 너희는 나의 심판을 더 많이 받았고, 나의 공의 성품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너희는 말세에 태어났지만 예전 것과 지난 것들을 깨닫고, 오늘날 내가 친히 행한 것까지 체험했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에 대한 내 요구는 과하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주었고, 너희도 내게서 매우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역대 성도들을 향해 나를 증거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바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627)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지금의 충성심과 순종이며, 지금의 사랑과 증거이다. 설령 네가 지금은 무엇을 증거라고 하는지, 무엇을 사랑이라고 하는지 모를지라도 마땅히 너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너의 유일하고 보배로운 충성심과 순종을 내 손에 바쳐야 할 것이다. 내가 사탄을 물리친 증거는 사람의 충성심과 순종에 있고, 내가 사람을 완전히 정복한 증거 또한 사람의 충성심과 순종에 있음을 너는 알아야 한다. 나를 믿는 이상 너의 본무는 나를 증거하고, 내게 일편단심으로 충성하며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내가 다음 단계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너는 나를 어떻게 증거할 것이냐? 너는 또 어떻게 내게 충성하고 순종할 것이냐? 너는 네가 하고 있는 기능에서 충성을 다할 것이냐, 아니면 뿌리치고 그만둘 것이냐? 너는 내 모든 안배에 순종할 것이냐(설령 죽거나 멸망할지라도), 아니면 내 형벌을 피하려고 중도에 도망칠 것이냐? 내가 너를 형벌하는 것 또한 너로 하여금 나를 증거하며, 내게 충성하고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의 형벌은 다음 단계 사역을 펼치기 위함이고, 앞으로의 사역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자신의 생명과 생존의 의의를 가치 없는 한 줌의 흙처럼 여기지 말고 현명하게 행동하라고 권하겠다. 앞으로 나의 사역이 대체 어떤 것일지 네가 알 수 있겠느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사역할지, 사역을 어떻게 전개할지 네가 알 수 있겠느냐? 너는 내 사역을 체험하는 의의를 알아야 하며, 더욱이 나를 믿는 것이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역을 했는데, 어찌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중도에 포기할 수 있겠느냐? 내가 이토록 큰 공사를 시작했는데, 어찌 허물 수 있겠느냐? 내가 시대를 끝내기 위해 온 것은 맞다. 하지만 내가 시대를 여는 자이자 사역을 전개하는 자이며 더구나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확장하는 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는 지금의 사역이 그저 시대를 여는 것이고, 앞으로 복음을 확장하기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이며, 또 앞으로 시대를 끝내기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의 사역은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고, 또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혀 가치 없고 무의미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한번 너에게 알려 주겠다. 너는 내 사역을 위해 헌신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 영광을 위해 너 자신을 바쳐야 한다. 나를 증거하는 것은 내가 일찍부터 바랐던 것이며, 나의 복음을 확장하는 것은 더더욱 내가 오랫동안 바라 왔던 것이다. 너는 내 마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628) 너희의 믿음은 아주 진실하지만 너희 중에 나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본 사실을 전부 증거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생각해 보아라. 지금 너희 대다수는 본연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육을 좇고, 육을 만족시키고, 육을 탐하고 누리면서 진리는 얼마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본 것을 전부 증거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진정 나의 증인이 될 자신이 있느냐? 나중에 네가 오늘 본 모든 것을 증거할 수 없다면 너는 피조물의 기능을 잃은 것이다. 그러면 너라는 사람은 존재할 의미가 조금도 없고, 사람이 될 자격도 없다. 심지어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너희에게 수많은 사역을 했지만 네가 지금 배운 것도, 얻은 것도 전혀 없는 연고로, 나의 사역을 확장해야 할 때 어리둥절해하며 말문을 못 열고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한다면, 너는 역사의 죄인 아니겠느냐? 그때가 되면 심히 후회하지 않겠느냐? 낙심하지 않겠느냐? 내가 지금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는 것은 한가하고 무료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할 사역을 위해 기초를 닦는 것이다. 절대 ‘궁여지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마땅히 내가 하는 사역이 길거리 개구쟁이가 아니라 내 아버지를 대표하여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를 대표하여 하는 것이며, 너희의 기능은 그저 따르고, 순종하고, 변화하고, 증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은 너희가 왜 나를 믿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너희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내 아버지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창세 때부터 내게 너희를 예정해 주었다. 그가 너희를 예정한 것은 나의 사역을 위해서이고 또 그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너희는 내 아버지로 인해 나를 믿고, 내 아버지의 예정으로 인해 나를 따르는 것이다. 이는 결코 너희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너희는 나를 증거하기 위해 내 아버지가 내게 준 자들임을 알아야 한다. 내 아버지가 너희를 내게 주었기 때문에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베푼 도를 지키고, 너희에게 가르친 도와 말을 따라야 한다. 너희의 본분은 나의 도를 지키는 것이고, 너희가 나를 믿는 본뜻도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너희는 내 아버지가 나에게 준, 나의 도를 지키는 사람에 불과하다. 하지만 너희는 나를 믿기만 할 뿐 내게 속하지는 않는다. 너희는 본래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라 옛 뱀의 부류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를 증거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너희는 나의 도를 행해야 한다. 이는 앞으로의 증거를 위한 것이다. 너희가 나의 도를 듣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별다른 가치가 없다. 그러면 내 아버지가 너희를 내게 준 의미도 사라진다. 내가 변함없이 너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희는 나의 도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629) 너는 시대적 의미가 있는 적합한 언어로 하나님이 각 시대에 나타낸 성품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 너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성품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증거할 수 있느냐? 너는 너의 목양을 기다리고 있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가련하고 가난하고 경건한 그 종교 신자들에게 자신이 보고 체험한 것을 어떻게 알려 줄 것이냐? 너의 목양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어떤 ‘인물’일지 상상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짊어진 중책과 너에게 맡겨진 사명, 너의 책임을 너는 모두 알고 있느냐? 너의 역사적 사명감은 어디에 있느냐? 너는 어떻게 다음 시대의 주인이 될 것이냐? 너는 주인 의식이 강렬하냐? 만물의 주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정말로 생물과 세상 모든 물질의 주인이겠느냐? 너는 다음 단계 사역의 진전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 너의 목양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너의 임무가 무척 무겁지 않으냐? 가난하고 가련하고 눈먼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흑암 속에 떨어져 흐느끼고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느냐? 밝은 빛이 문득 유성처럼 내려와 오랫동안 인간을 억압한 이 흑암 세력을 몰아내길 얼마나 갈망하고 있겠느냐? 간절히 기대하고 밤낮으로 생각하지만 누가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겠느냐? 심한 고난에 빠진 그 사람들은 빛이 가로지르는 날에도 여전히 흑암의 감옥에 갇힌 채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이면 더 이상 애곡하지 않겠느냐? 한 번도 안식을 취한 적이 없는 그 연약한 영들은 그렇게 참혹한 불행을 겪고 있다. 비정한 밧줄과 굳어 버린 역사(歷史)가 일찍이 그들을 그 속에 가둔 것이다. 그 흐느낌을 누가 들은 적이 있느냐? 그 근심하는 모습을 누가 본 적이 있느냐? 너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손수 지은 무고한 인류가 그렇게 고통받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느냐? 어쨌든 인류는 해를 입은 불행한 자들이다. 비록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기는 했지만 일찍이 악한 자에게 해를 입었음을 누가 알겠느냐? 설마 너는 자신이 그 피해자 중의 하나임을 잊은 것이냐?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 생존자들을 모두 힘써 구원해 오고 싶지 않으냐? 네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어, 사람을 자신의 골육처럼 사랑하는 하나님께 보답하고 싶지 않으냐? 너는 하나님께 쓰임 받음으로써 평범하지 않은 일생을 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느냐? 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사람’으로 의미 있는 일생을 살 의지와 믿음이 있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앞으로의 사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중에서

630)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너의 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그가 어떻게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며 변화시키는지, 어떻게 사람을 진리의 실제 속으로 이끌어 가는지, 따라서 그에 의해 정복되고 온전케 되며 구원받게 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증거한다는 것은 바로 그의 사역과 너의 모든 체험을 말하는 것이다. 그가 한 사역만이 그를 대변할 수 있고, 그의 사역만이 그의 모든 것을 명확히 공개할 수 있으며, 그의 사역만이 그를 증거할 수 있다. 그의 사역과 음성은 직접적으로 영을 대변한다. 그가 한 사역은 영이 한 사역이며, 그가 한 말씀은 영이 한 말씀이다. 그저 말씀으로 된 육신을 통해 선포된 것일 뿐, 사실상 그것은 영의 선포이다. 그가 한 사역과 말씀은 그의 본질을 대변한다. 만약 육신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 온 하나님이 말씀도, 사역도 하지 않으면서 너희에게 그의 실제와 정상적인 면, 전능을 인식하라고 한다면 알 수 있겠느냐? 영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그의 육신의 성질이 어떤지 알 수 있겠느냐? 너희가 그의 사역을 일일이 체험했기에 그를 증거하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너희가 어떤 체험도 하지 못했다면 그런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을 증거할 때는 정상 인성의 겉모습은 물론이요, 그가 한 사역과 인도한 길까지 증거해야 한다. 네가 그에게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어떤 면에서 온전케 되었는지를 증거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에 관해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7> 중에서

631) 하나님을 증거할 때에는 주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지, 어떤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지, 너희가 체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내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결국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얼마나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말해야 한다. 너희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때 공허한 이론을 말하지 말고 사실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말하며, 마음속 말을 솔직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체험하면 된다. 심오하고 공허한 이론으로 자신을 뽐내려 하지 말라, 그러면 너무 교만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실제적인 말, 마음에 있는 말을 많이 해야 사람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고 사람들 보기에도 가장 적절하다. 지난날, 너희는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한 자들이었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정복되었다. 이 점을 영원히 잊어선 안 된다. 이 방면의 일을 많이 묵상하고 생각해서 확실히 이해한다면 어떻게 증거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뻔뻔스럽고 비이성적인 일을 저지르기 쉽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632) 네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형벌, 심판, 연단, 시련, 좌절, 환난을 겪고 정복되어 앞날에 대한 기대와 자신의 속셈, 그리고 모든 육체적 이익을 내려놓는다면, 너의 마음이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정복된 것이다. 너의 생명이 그가 요구한 정도까지 성장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네가 이러한 것들을 모두 깨닫고 그가 한 일을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증거이다. 이는 실제적인 증거인 것이다! 그가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러 온 것은 사람을 정복하기 위함이지만, 그는 또한 사역을 끝마치고 시대를 끝내며 마무리 사역을 하는 자이다. 그는 모든 시대를 끝내고 전 인류를 구원한다. 또한 인류를 죄악 가운데서 철저히 구원하여 그의 피조물인 인류를 완전히 얻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네가 해야 할 증거이다. 너는 하나님의 많은 사역을 직접 보고 직접 체험했음에도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못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복음을 확장할 때가 되면 너는 자신의 인식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얻은 것을 전부 증거함으로써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번 단계 사역의 의의는 대체 무엇인지, 어떤 성과를 내려고 하는지, 사람에게서 이뤄진 것은 얼마나 되는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성육신한 하나님이 땅에서 행한 모든 사역을 너희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완벽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그가 행한 사역의 의의와 내용, 본질, 그리고 대변하는 성품과 사역 원칙, 이 다섯 가지 측면을 전부 밝히 말할 수 있다면, 이는 네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고, 진실로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너희에 대한 내 요구는 그다지 크지 않다. 진심으로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를 수 있다. 하나님의 증인이 되겠다는 결심이 서 있다면, 너는 그가 증오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너 자신이 그의 사역을 얼마나 체험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역을 통해 그의 성품을 알고, 그의 뜻과 인류에 대한 그의 요구를 알아야 한다. 이것으로써 그를 증거하고, 너의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7> 중에서

633)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려면 너의 체험과 인식, 네가 치른 대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는 사람이냐? 너에게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있느냐?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할 수 있고,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이 요구한 백성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의 증인이다! 너는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증거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기를 갈망하며, 너의 입으로 증거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해야 한다. 네가 정말로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는 목적이 결국 복을 받기 위함이라면, 이런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순수하지 못하다. 너는 실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하나님의 뜻이 너에게 나타날 때 어떻게 그를 만족게 할 것인지, 하나님의 기묘함과 지혜를 어떻게 증거하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을 어떻게 증거할 것인지를 추구해야 한다. 이런 것이 모두 지금 네가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네 마음이 단지 하나님께 온전케 된 후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고자 하는 것에서 비롯됐다면, 그것으로는 아직 부족하고 아직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을 실제적으로 증거하고, 그의 요구를 실제적으로 충족시키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사역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고난을 받든, 눈물을 흘리든, 근심으로 슬퍼하든 모두 실제로 체험해야 한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증인이 되도록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634) 실제 체험 속에서 굳게 설 수 있고, 입장을 지킬 수 있으며, 하나님 편에 서서 절대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정상 관계가 있다면, 일이 닥쳐도 하나님께 완전히,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진리가 있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실행하고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증거다. 즉, 사람이 살아 내는 모습이요, 하나님의 증거이다. 그러면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이다. 네가 이 정도까지 체험했다면 성과를 거둔 것이다. 자신에게 실제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 있어 일거수일투족은 다른 사람의 탄복을 자아낸다. 다른 사람이 볼 때 겉면의 차림새는 평범하지만 매우 경건하게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때는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이 있다. 또 말할 때는 하나님의 뜻을 얘기할 수 있고 실제를 나눌 수 있으며 영적으로 섬기는 많은 일에 대해 알 수 있다. 대범하게 말하고, 단정하고 올바르며, 다툼을 벌이지도 방종하지도 않고, 일이 닥치면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고 굳게 설 수 있다. 무슨 일을 처리하든 믿음직하고 침착하다. 이런 사람은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어리지만, 겉면의 행동이 중년처럼 성숙하고 진리가 있어 모두가 탄복한다. 이런 사람은 간증이 있으며, 하나님을 나타내는 존재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것이다> 중에서

635) 오늘날,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도 좋고, 외적인 인성 변화와 자질 향상을 추구해도 좋다. 하지만 가장 주된 것은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이 의미 있고 이로운 일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네가 더러움에서 벗어나고 더러움을 떨쳐 버리게 해 주며,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또한 네가 그 일들을 중시하게 함으로써 더러운 땅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해 준다. 궁극적으로 네게 어떤 간증을 하라는 것이겠느냐? 그러니까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거룩해질 수 있고 더 이상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태어났지만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탄에게 점령되지 않고, 사탄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지 않으며, 전능자의 손안에서 살 수 있는 것, 이것이 간증이요, 사탄과 싸워 이긴 증거이다. 네가 사탄을 저버릴 수 있으며 네가 살아 내는 것에는 더 이상 사탄의 성품이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 즉 사람에게 요구한 정상 인성, 정상적인 이성과 정상적인 식견,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정상적인 의지,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이 해야 할 간증이다.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우리에 대한 정복으로 인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복하심으로 얻은 성과이지, 우리 자신이 훌륭해서도,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고 예정하셨기에 우리가 오늘 그분께 정복되고, 그분을 증거하며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그분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보호하셨기에 우리는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받았으며,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더러움을 벗어던지고 정결케 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2> 중에서

636)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너에게 간증이 있을 것이다. 그럼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 한 단계 한 단계 사역에서 저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을 얻고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되었지요. 그분의 형벌이 저를 구원했습니다.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이 임하여 축복과 은혜를 받게 되었고요. 바로 그분의 심판과 형벌로 보호를 받고 정결케 된 것이지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없고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 저에게 임하지 않았다면, 저는 하나님을 알지도, 구원받지도 못했을 겁니다. 오늘날 저는 피조물로서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공의로운 심판을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누릴 가치가 있기에 사탄에게 패괴된 피조물은 마땅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누려야 합니다.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심판과 형벌도 있지만 크나큰 사랑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얻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그 사랑을 깨달았어요. 이건 제 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케 되는 것을 체험한 사람이 가는 길이자 말하는 인식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고, 베드로의 체험을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이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마지막까지 체험하면 반드시 심판을 통해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께 얻어지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637) 지금 너는 어떻게 해야 정복되는지, 또 정복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너는 네가 정복되었다고 말하지만,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느냐? 너는 앞날에 희망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르고, 어떤 환경에서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마지막에는 두 가지 증거, 즉 죽기까지 순종했던 욥의 증거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베드로의 증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욥과 같아야 한다. 욥은 물질적인 것을 다 잃고 육체에 질병의 고통이 임했어도 여호와의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이것이 욥의 증거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사랑했다. 그는 자기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스러운 생각들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기를 추구했다. 네가 이런 기준에 도달해야 증거했다고 할 수 있고,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2> 중에서

* 너는: (직역) 한 방면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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