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하나님을 알아 가는 데 관한 말씀

554)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만고불변의 이치이다. 특히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직접 사역하는 시대는 하나님을 알아 갈 좋은 기회다.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면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깨달음을 기반으로 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런 인식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반드시 지녀야 할 이상(異象)이자 토대이다. 사람에게 이런 인식이 없다면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는 것이고, 공허한 도리 속에서 믿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따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 흐름 속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자는 훗날 도태될 대상으로, 공밥을 먹는 사람이다. … 하나님 말씀을 알아 가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을 알아 가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 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상을 아는 것은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을 아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아는 것도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첫걸음이며, 하나님을 처음 믿을 때부터 가장 깊게 믿을 때까지의 과정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과정이자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네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을 믿기 위해 믿는 것이라면, 네 ‘믿음’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실제가 없고 순결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차츰 하나님을 알게 되면, 조금씩 성품에 변화가 생기게 되고, 믿음도 점점 진실해진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믿게 되면 하나님을 온전히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이토록 심혈을 기울여 두 번째로 육신을 입고 직접 사역하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알고 보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사역을 마칠 때 거둘 최종의 성과이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요구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마지막 증거를 위해서이며, 궁극적으로 인류가 철저히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고, 무엇을 얻기 위해 추구하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알아야만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생기고, 참된 경외와 순종도 생길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영원히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거나 경외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어떠함을 아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것에 포함되지만, 어느 측면을 알든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순종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마지막까지 따를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중에서

555) 하나님을 아는 공과는 하루 이틀 만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은 체험하고 고난받고 참되게 순종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체험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 전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아무도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없고, 또 단시간 내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자도 없다. 그러므로 모두 필요한 체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알거나 진심으로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사역이 많아질수록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요소도 많아지고,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고정 관념에 부합하지 않을수록 사람은 그에 대해 더 새롭고 깊게 알게 된다. 하나님의 사역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앎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한 것은 무엇이고, 은혜시대에 한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한 것은 또 무엇인지, 이런 이상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중에서

556) 3단계 사역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전체 사역이다. 사람은 구원 사역에서 하나님의 사역과 성품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알아 간다는 것은 근거 없는 헛소리이자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그런 앎은 사람을 설득할 수도, 정복할 수도 없으며, 실정에 맞지도 않고 진리도 아니다. 설령 네가 아는 것이 많고 게다가 다른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수 있을지라도 그 앎이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너의 앎을 칭찬하기는커녕 그를 모독한 죄를 물어 보응을 받게 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앎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네 언변이 뛰어나 청산유수 같은 말로 죽은 것을 산 것으로 둔갑시킬 수 있고, 산 것을 죽은 것이 되게 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앎을 얘기할 때면 너는 바로 문외한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마음대로 평가하거나 칭찬할 수 있는 분도, 네가 마음대로 폄하할 수 있는 분도 아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라도 칭찬할 수 있지만, 적당한 단어로 하나님의 ‘크나큰 은덕’을 함부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모든 실패자의 깨달음이다. 수많은 언어 전문가들이 하나님을 한바탕 묘사할지라도 그 묘사의 정확성은 오히려 언어가 풍부하지는 않지만 체험이 풍부하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설명하는 진리의 1%밖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앎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성과 실제에 있는 것이지, 언어의 교묘함이나 단어의 풍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겠다. 사람의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이 공과는 인류의 그 어떤 자연 과학을 배우는 것보다 높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지, 재능이 있다고 해서 모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을 개구쟁이 어린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어쩌면 너는 가정이나 사업 또는 결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을 수도 있지만, 진리와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이 공과에서는 백지상태로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너희에게 있어 진리 실행은 큰 난제이며,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보다 더 큰 난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너희의 애로 사항이자, 모든 인류의 애로 사항이다. ‘하나님을 아는’ 이 사업에서 성과를 거둔 사람 가운데 합당한 자격을 가진 사람은 거의 한 명도 없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지, 도대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인류의 난제이자 가장 큰 수수께끼로서 그 누구도 답하지 못하고, 또 답하기를 원치 않는 문제이다. 인류 중 지금까지 이 일을 연구하여 성과를 거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 정말로 ‘하나님을 아는’ 창시인이 된다면, 그것은 피조물 가운데 가장 높은 영광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바로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께 가장 칭찬받는 피조물 아니겠느냐? 이 사역을 이루기는 쉽지 않겠지만, 마지막이 되면 성과를 거둘 것이다. 성별이나 국적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가장 높은 영광을 받는 사람이자 유일하게 하나님의 권병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사역이자 이후의 사역이고, 6천 년 사역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이루려는 최고의 사역이며, 또한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는 사역의 방식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이 사역을 통해 각 부류 사람들의 등급을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약속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는 자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거나 약속을 이어받을 자격이 없는 자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기(知己)이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지기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지기는 하나님의 어떤 축복이든 다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지기가 아니라면 그 어떤 사역도 감당할 수 없다. 환난이든 연단이든 심판이든 모두 사람이 마지막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마지막에 거두어야 할 유일한 성과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557) 하나님이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그의 증거를 위한 것이다. 그가 사람의 패괴 성품을 심판하지 않으면 사람은 그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낡은 인식에서 새로운 인식으로 바꿀 수도 없다. 그의 증거와 그의 경영을 위해, 그는 자신의 전부를 사람들에게 공개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의 공개적인 현현으로 그를 알게 하고, 성품 변화를 이루며, 그를 힘 있게 증거하게 한다. 사람의 성품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을 통해 변화된다.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도 없다. 사람의 성품 변화는 사람이 이미 사탄의 속박과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나님 사역의 모델과 표본이 되었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으며,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사역하며 사람들에게 한 요구는 바로 그를 알고, 그에게 순종하고, 그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사역을 알라는 것이요, 사람의 고정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그의 모든 말씀과 사역에 순종하라는 것이요,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모든 사역과 사람을 정복하는 모든 행사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증거야말로 정확하고 실제적이며, 사탄을 수치스럽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겪고 그를 알게 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탄에 의해 패괴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하고, 성품 변화로 그의 축복을 받은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람의 입에 발린 찬양을 바라지 않고, 그에게 구원받지 못한 사탄의 부류가 그를 찬양하고 증거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성품이 변화된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고의로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중에서

558) 하나님을 아는 것이란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희로애락과 성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공의와 긍휼, 그가 좋아하는 것과 증오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른다고 해서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네가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그의 뜻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면, 진실로 그를 믿고 사랑하고 경배하며 그에게 순종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네가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너는 그저 따르는 자일 뿐이다. 즉, 따라다니며 심부름이나 하고 시류에 영합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진실한 순종이나 경배는 말할 여지도 없다. 진실한 경배는 어떻게 생겨나느냐?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본 사람 중에 하나님을 경배하거나 경외하지 않는 자는 없다. 모두 엎드려 경배를 한다.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이 사역하는 기간에 성육신 하나님의 성품, 소유, 어떠함에 인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것들을 더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을 더 경외한다. 일반적으로 인식이 없는 사람일수록 건성으로 행동하고, 하나님을 사람으로 대하는 법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을 보았다면 두려움에 전전긍긍할 것이다. … 현재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그리스도의 본질을 모르고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진실로 경배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평범하고 정상적인 겉모습만 보고 그의 본질은 알지 못한다면 그리스도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고 거만한 태도를 취하기 쉽다. 이렇게 되면 그를 기만하고 대적하고 거역하고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자기가 옳다고 여기며 그의 말씀과 사역을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고, 하나님께 관념을 갖거나 정죄하거나 모독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리스도의 본질과 신성을 알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알아 가는 중요한 측면이자, 실제의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진입하여 도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성육신 하나님을 알 것인가> 중에서

559) 베드로는 예수를 따를 때 예수에 대해 많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항상 자신의 시각으로 판단했다. 그는 영에 대해 조금 인식이 있기는 했지만 분명히 알지는 못하였기에, “당신을 하늘의 아버지께서 보내셨다면 꼭 따를 것이고, 성령께서 증거하셨다면 인정하옵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는 예수가 행하는 것을 이해하지도, 명확히 알지도 못했다. 그는 한동안 예수를 따른 후 예수가 하는 사역과 말씀에 관심이 생겼고,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흥미가 생겼다. 베드로는 예수가 친근하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하여 그와 접촉하고 함께하기를 원했으며, 예수의 말씀을 듣고 공급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베드로는 예수를 따르는 동안 예수가 한 일과 말씀, 행동, 표정 등 예수의 모든 생활을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겼다. 그는 예수가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예수는 겉보기에 매우 평범한 인성을 지닌 것 같았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과 긍휼, 관용이 넘쳤으며, 그가 행하는 것과 말씀하는 것은 모두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베드로는 예수에게서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한 번도 갖지 못했던 것을 얻었다. 그는 예수에게 위대한 외형이나 비상한 인성은 없어도 예사롭지 않은 특별한 기운이 가득하다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는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예수의 행동이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다는 점을 알았다. 예수가 행하는 일이 평범한 사람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와 접촉하면서 예수의 성격도 일반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수는 일을 행함에 있어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했으며, 과장하거나 축소시켜 말씀하지도 않았다. 일상에서도 평범하지만 사람들의 선망을 자아내는 그의 성격이 표출되었다. 예수는 언행이 솔직하고 대범하며 쾌활하고 침착했지만 사역할 때는 존엄을 잃지 않았다. 베드로가 본 예수는 때로는 말씀을 아끼고 때로는 유창하고 막힘없이 말씀했다. 때로는 아주 기뻐했는데, 그럴 때면 흰 비둘기처럼 기운차고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때로는 슬퍼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럴 때면 온갖 고생을 겪은 어머니처럼 슬퍼하였다. 때로는 용맹한 전사가 적을 무찌르는 것처럼, 때로는 심지어 포효하는 사자처럼 분노하였다. 또 때로는 환히 웃었고 때로는 슬피 울며 기도하였다. 예수가 어떻게 생활하든 베드로는 그를 끝없이 존경하고 사랑했다. 베드로는 예수가 기뻐하는 모습에 즐거워했고, 예수가 우울해하는 모습에 비통해했으며, 예수가 노여워하는 모습에 전전긍긍했다. 예수의 긍휼과 용서, 사람에 대한 엄격한 요구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경외하고 사모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들은 전부 베드로가 예수와 여러 해를 함께 보내며 차츰 알게 된 것이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가 ‘예수’를 알아 간 과정> 중에서

560)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성품은 모두 인류에게 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타난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때, 실천 과정에서 하나님이 말씀한 목적과 근원, 배경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성과를 알고 체득하게 된다. 사람에게 있어 이것들은 모두 진리와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성품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 위해 반드시 체험하고 깨닫고 얻어야 하는 것들이다. 사람은 이런 것들을 체험하고 깨닫고 얻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차츰 이해하게 되고, 동시에 또 서로 다른 정도의 인식을 갖게 된다. 이 이해와 인식은 상상해 내거나 지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깨닫고 체험하고 느끼고 실증한 것이다. 사람에게 이런 깨달음과 체험, 느낌, 실증이 있어야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내용이 생기게 된다. 이때의 인식이야말로 실제적이고 진실하며 정확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체험, 느낌과 실증을 통해 하나님을 진실로 이해하고 알아 가는 이 과정이 바로 사람과 하나님의 진정한 사귐이다. 사람은 이러한 사귐 속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해하게 되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본질에 대해 알고 이해하게 되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도 점차 알고 이해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실제적으로 확신하고 정확한 정의를 내리게 되며,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본질적으로 확정하고 알게 된다. 사람은 이러한 사귐 속에서 점차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더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지 않고, 더는 자기 멋대로 추측하지 않으며, 더는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더는 하나님을 판단하거나 의심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항변은 갈수록 적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반발심과 패역 또한 점점 줄어든다. 반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헤아림과 순종은 점점 많아지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점점 실제에 가까워지고 깊어진다. 사람은 이러한 사귐을 통해 진리의 공급과 생명의 세례를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인식을 얻게 된다. 또한 이러한 사귐 속에서 성품이 변화되고 구원을 받게 되며, 동시에 피조물로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배하게 된다. 이러한 사귐이 있으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은 더 이상 백지도, 구두 약속도 아니며, 맹목적인 추종과 숭배도 아니다. 이러한 사귐이 있어야만 사람은 생명이 나날이 자라고, 성품도 점차 변화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이 막연한 신앙에서 점차 참된 순종과 헤아림, 나아가 참된 경외에 이르게 되며, 하나님을 따르는 것 또한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것에서 점차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사귐이 있어야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며 인식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이다> 중에서

561)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 하나님 자신의 신분,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은 너의 상상력으로 인식 가능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상력으로 알 수 없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야 하나님의 권병을 진정으로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과 교제를 통해,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을 통해, 점차적으로 체득하고 실증해 가며 깨달으면서, 한 걸음씩 깊이 있게 알아 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병을 알아 가는 유일한 길이며, 이 외에 다른 지름길은 없다. 너희에게 상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저 앉아서 기다리라는 말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상상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논리로 추리하지 말고, 지식으로 분석하지 말며, 과학을 근거로 삼지 말라는 뜻이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통해, 삶 속에서 접하게 되는 모든 일을 통해, 네가 믿는 하나님이 권병을 가진 분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증명하고 실증하라는 뜻이다. 또한 그가 너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으며, 그의 능력은 항상 그가 진정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음을 실증하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혹자는 더 간단한 방법으로 이 목표에 이르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런 간단한 방법을 너희는 생각해 냈느냐? 내가 말하지만 다른 길은 없다! 그러니 너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행한 모든 일을 통해, 성실하고 착실하게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인식하고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아 가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하나님의 모든 것은 공허하지 않고 실제적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562)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너는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의 본질을 점점 더 알게 되고, 그와 동시에 더 높고 아름다운 경지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너 자신의 추악한 영혼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게 되고, 더욱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너의 행위는 점점 적어지고, 너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점점 가까워지며 나아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도 점차 생기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감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너희들은 아직 이르지 못했다. 너희가 모두 자신의 운명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는데 어느 누구에게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하려는 마음이 있겠느냐? 이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너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정을 범하는 일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이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 너희가 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기 위한 기초를 닦고 있는 것이 아니냐?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알라고 하는 것은 나의 사역과 무관하지 않다. 너희가 늘 행정을 범한다면, 너희 중에 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그러면 나의 사역이 모두 헛수고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자신의 행위를 점검하고, 걸음을 신중히 내디디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에 대한 나의 더 높은 요구이니 너희 모두가 신중하게 고려하고, 진지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날 너희의 행위가 나를 노기충천하게 한다면, 너희를 대신해 벌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니, 그 결과에 대해서는 오로지 너희 스스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563)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싶다면 하나님의 3단계 사역과 하나님이 이전에 행했던 사역의 그런 이야기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인식한다면, 하나님을 한 범위에 국한시킨 것이고 하나님을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 영향을 초래하게 될까? 하나님의 기묘함과 지고지상함을 전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전능 그리고 권병의 범위를 영원히 알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영향을 주고 하나님의 참된 신분과 지위를 인지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인식한다면 그 한정된 만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범위를 넓히고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경영, 하나님이 주재하는 범위, 하나님이 주재하고 관리하는 만물에 대해 알아야 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그러한 인식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 만물 중에서 만물을 주재하고 관리하며 또 만물에게 공급해 준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너는 자신이 만물 중의 하나이고 만물의 일원임을 진정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에게 공급하고 있고, 너 또한 하나님이 주재하고 공급하는 것을 받고 있다. 이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8> 중에서

564)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인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하나님은 사람 마음속에서 그만큼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높은 인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도 그만큼 커진다. 네가 아는 하나님이 공허하고 막연하다면 네가 믿는 하나님 역시 공허하고 막연하다. 네가 아는 하나님이 너의 범위에만 국한되어 있다면 참된 하나님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아는 것, 하나님의 실제적이고 전능한 면을 아는 것, 하나님 자신의 참된 신분을 아는 것,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아는 것, 하나님이 만물 가운데서 나타내는 행사를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는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지 여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너의 앎이 글귀에만 국한되고, 네 소소한 체험이나 네가 따져 본 하나님의 은혜, 혹은 하나님에 대한 네 보잘것없는 증거에만 국한된다면, 나는 네가 믿는 하나님은 애초에 참된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겠다. 네가 믿는 하나님은 상상 속의 하나님이지 참된 하나님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참된 하나님은 만유를 주재하고, 만유 가운데서 거닐며, 만유 가운데서 다스리는 분이자, 전 인류의 운명을 주관하고, 만유의 운명을 주관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이 하나님, 그의 사역, 그의 행사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다시 말해 지금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의 행사는 만물 가운데, 만물의 생존 가운데, 만물의 변화 법칙 가운데 뚜렷하게 나타난다.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어떤 행사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너는 하나님의 행사를 조금도 증거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전혀 증거하지 못하면, 너는 예전처럼 계속 네가 안다는 그 보잘것없는 하나님을 논하고, 네 사상과 네 좁은 마음속에 국한된 그 하나님을 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계속 이런 하나님을 논한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너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징계와 채찍질을 받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누렸는지 등을 가지고서만 하나님을 증거한다면, 이런 증거는 너무 부족한 탓에 영원히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진정한 하나님 자신을 증거하고 싶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행사에서 그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권병을 알고, 하나님이 어떻게 전 인류를 공급하는지 알아야 한다. 네 일용할 양식과 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만 인정하고, 하나님이 만물 가운데서 만물을 통해 전 인류에게 공급한다는 사실, 그리고 만물을 주재함으로써 전 인류를 인도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런 말들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겠느냐? 너희가 소홀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내가 말한 주제들이 너희 개인의 생명 진입과 무관하다고 생각해 지식이나 학설로만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너희가 이를 지식이나 학설로만 여긴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9> 중에서

565) 사람이 아무리 과학을 연구하고 만물의 법칙을 탐구한다 해도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무한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한 아주 작은 일을 사람에게 연구하라고 한다면, 평생의 시간을 쏟아도 진정한 성과를 얻기에 역부족일 것이다. 따라서 네가 배운 지식으로 하나님을 연구한다면 영원히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영원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진리를 찾는 방식과 하나님께 구하는 방식으로 또 하나님을 알아 가는 측면으로 하나님을 대한다면, 어느 날 하나님의 행사가 어디에나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왜 만물의 주재자라고 하는지, 왜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생길수록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라고 칭하는 이유를 알게 되고, 너를 포함한 만물 모두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공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만물의 생존을 주재하고 관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능력과 그 본질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생겼을 때, 너는 하나님이 곧 너의 하나님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너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여 너의 하나님이 되게 하고 너의 주재자가 되게 할 것이다. 그런 인식이 생기고 생명이 그런 경지에 이르면, 하나님은 두 번 다시 너에게 시련을 주거나 심판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네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8> 중에서

566) 사람들은 늘 하나님을 아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항상 자신의 행사를 나타내어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류와의 대화를 멈춘 적이 없고, 인류를 피해 숨거나 감춘 적도 없으며, 그의 마음과 생각, 말씀과 행사를 인류에게 다 공개하였다. 그러므로 인류가 하나님을 알고자 하기만 한다면 다양한 경로와 방식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 가고 이해할 수 있다. 인류는 늘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인류를 피하고 숨는다고, 사람이 그를 알아 가고 이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가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으며, 더욱이 창조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말씀하고 무엇을 행했는지 등등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틈날 때만이라도 창조주의 말씀이나 행사에 관심을 두고 알려고 하고, 창조주의 생각과 마음의 소리에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인다면, 창조주의 모든 생각과 말씀과 행사가 공개적이고 투명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창조주가 항상 인류와 함께 있고, 만물, 그리고 인류와 대화하고 있으며, 매일같이 새로운 행사를 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본질과 성품은 인류와의 대화에서 나타나고, 그의 마음과 생각은 그의 행사에서 남김없이 드러난다. 그는 언제나 인류와 함께하며 인류를 관찰하고, 소리 없는 언어로 조용히 만물과 인류에게 알려 준다. ‘나는 하늘 위에 있다. 나는 만물 가운데 있다. 나는 수호하고 있다. 나는 기다리고 있다. 나는 바로 네 곁에 있다.’ 그의 두 손은 따뜻하고 힘이 있으며, 그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의 음성은 감미로우며, 그의 그림자는 끊임없이 사람의 주변을 맴돈다. 그의 얼굴은 아름답고 온화하다. 그는 떠난 적도 사라진 적도 없으며, 줄곧 그림자처럼 인류와 함께하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567)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면, 하나님께 진정으로 마음을 열지 못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나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새겨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믿음도 생기게 된다. 너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새겨보는 과정에서 점차 조금씩 하나님께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께 마음을 열었을 때, 자신이 하나님과 했던 거래, 하나님께 했던 요구, 혹은 자신의 분에 넘치는 욕망이 얼마나 부끄럽고 비열한 것인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진정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열었을 때, 너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큰 세계인지 보게 될 것이며, 네가 그동안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경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경지에는 기만도 간사함도 없고, 어둠도 사악함도 없으며, 오직 진실함과 신실함, 광명과 정직함, 그리고 공의로움과 선함만 있을 뿐이며, 사랑과 배려, 긍휼과 관용이 충만하여, 너에게 사는 것의 행복함과 즐거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네가 하나님께 마음을 열었을 때 하나님이 너에게 보여 주는 것들이다. 그 어마어마하게 큰 세계는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으로 가득하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권병으로 충만하다. 거기에서 너는 하나님의 다양한 측면의 소유와 어떠함을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왜 기뻐하는지, 왜 근심하는지, 왜 슬퍼하는지, 왜 노하는지 등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마음을 열어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네가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야만 하나님이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있고, 하나님이 너의 마음속에 들어와야만 너는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볼 수 있으며 너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 또한 볼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너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이 얼마나 사랑할 만한 것인지를 발견하게 되고, 이에 반해 네 주위의 사람과 일, 사물, 심지어 너의 가족, 너의 반려자, 네가 사랑하는 것들이 얼마나 언급할 가치가 없고 보잘것없으며 비천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너는 그 어떤 물질적인 것에도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것들을 위해 더 이상 대가를 치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또한, 너는 자신을 낮춘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높고 큼과 지고지상함을 보게 되고, 더욱이 네가 예전에 별것 아닌 일로만 생각했던 하나님의 행사에서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와 하나님의 관용, 너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와 포용과 배려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너에게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너는 사람이 얼마나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주변 사람과 주변에서 일어난 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너에 대한 사랑과 이른바 ‘보호’ 혹은 너에 대한 걱정 모두 언급할 가치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너의 최고의 사랑이자 최고의 보물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나는 일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고, 하나님의 본질은 참으로 거룩하며, 하나님께는 간사함도, 사악함도, 질투도, 분쟁도 없고, 오로지 공의와 진실함만 있으며,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모든 소유와 어떠함을 사모하고 추구하고 동경해야 한다고 말이다. 사람이 여기까지 이를 수 있는 토대는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아 가는 것은 모든 사람이 평생토록 배워야 하는 공과이자, 성품 변화와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모든 이가 평생 추구해야 하는 목표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568)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에 대한 인식은 모두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이 더 커지게 하고, 하나님에 대해 참된 순종과 경외심이 생기게 함으로써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숭배하지 않게 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도, 부화뇌동하는 자도 아니라,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분명하게 알고 인식하여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자들이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지도 저버리지도 않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네가 하나님의 참된 존재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에 대해 아직도 어렴풋하고 애매모호하고 흐리멍덩하다면 너의 믿음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이 자신을 따르는 것을 싫어하고, 그런 사람이 자신의 앞으로 나오는 것도 싫어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께 마음이 닫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에는 불순물이 가득하고, 그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맹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이해와 인식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따를 수 있다. 아울러, 하나님에 대한 참된 순종과 경외심이 생길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비로소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바이다. 그가 행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검증을 이겨 내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569) 그러면 언젠가 너는 창조주가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님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창조주가 너를 피해 숨거나 얼굴을 가린 적이 없고, 너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더 이상 네가 밤낮으로 그려도 느낄 수 없었던 그분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분명히 너의 곁을 지키고 있고, 너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있으며, 네 운명을 주관하고 있다. 그는 아득한 하늘 끝이나 구름 사이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주변에서 너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다. 그는 너의 모든 것이자 너의 유일한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은 너에게 사모의 마음이 들게 하고, 그리워하게 하며, 가까이하게 하고, 앙모하게 하며, 잃을까 두려워하게 하고, 더는 포기하려고도 거역하려고도 하지 않게 하며, 멀리 떠나거나 숨으려고도 하지 않게 한다. 너는 오직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에게 순종하며, 그가 네게 준 모든 것에 보답하고 그의 권세 아래에 돌아와 복종하기만을 원하게 된다. 너는 더 이상 너에 대한 그의 인도와 공급, 보살핌과 보호를 거절하지 않고, 너에 대한 그의 주재와 안배에 저항하지 않게 된다. 너는 오로지 그의 곁을 따르고 그와 함께하기를 바라며, 그를 너의 유일한 생명이자 유일한 주, 유일한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이다> 중에서

*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직역) ‘하나님을 아는’ 이 단계 사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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