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11)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270. 하나님을 아는 것이란 어떤 것이냐? 사람이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희로애락과 성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그의 공의와 긍휼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으며, 그가 무엇을 증오하는지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꼭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할 수 없는데, 구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네가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깨닫거나 알 수 있고, 그의 마음도 알고 있다면 진실로 그를 믿고, 진실로 그에게 순복하고, 진실로 그를 사랑하고 경배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육신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271.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작이다. 맨 처음 하나님을 믿고서부터 가장 깊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이르는 이 과정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만 믿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면, 너의 ‘믿음’은 실제가 없고 순결해질 수 없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점차적으로 알아간다면, 사람의 성정은 점차적으로 변화되고, 사람의 믿음 또한 갈수록 ‘참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성과’에 도달할 때에는 완전하게 하나님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이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역사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고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단계 역사는 하나님이 사역을 끝마칠 때에 도달하게 될 최종 효과이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요구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최후 증거를 위해, 또한 인류가 최후에 하나님께로 철저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272.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 자신을 아는 이 방면의 진리가 가장 깊다. 하지만 사람이 이 방면의 진리에 대해 찾고 구하기를 중요시한다면, 마음이 환해지고 편해질 것이며 나아갈 길이 생길 것이다. 이 방면의 진리를 무엇에 비유하자면 사람의 심장과 같다. 이 방면의 진리가 없다면 힘이 나지 않을 것이고, 이 방면의 진리에 대한 인식이 있으면 있을수록 힘이 커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육신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273. 실제의 하나님을 안다는 것에는 그의 말씀을 인식하고 그의 말씀을 체험하며, 성령 역사의 법칙과 원칙을 더듬어 내고, 하나님의 영이 육신 중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더듬어 내는 것이 포함되고, 또한 육신 중의 하나님의 일거일동은 모두 영의 지배를 받는 것이고, 그가 한 말씀은 영의 직접적인 발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실제의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주로 하나님이 인성과 신성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접촉하는 영의 발표와 관련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274. 하나님은 실제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성품을 발표하고,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며, 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전능한 면이다. 그가 친히 하는 것은 실제적인 면이다. 이 두 방면은 서로 결합되어 있다. 하나님이 말씀을 하는 것에 그의 전능한 면이 있다. 그에게 권병이 있기에 이루어지라고 말씀하면 바로 이루어지는데, 최종 효과에 대해 말할 필요 없이 말씀하는 동시에 전능이 나타난다. 이것을 잊지 말라. 즉, 하나님 자신의 실질은 전능이고 또한 실제인데, 이 두 방면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매사에서 자신의 성품을 발표하고 자신의 소시를 유로하는데, 그 소시에는 전능과 공의와 위엄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라고 알려 준 것은 하나님께 실제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요나가 듣지 않아 나중에 물고기 배 속에 사흘이나 갇혀 있게 되었는데, 그래도 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전능이다. 요나에게 한 일에서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역사하면서 언제나 자신의 실질을 유로하고 있고,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고 있다. 하나님의 그 실질은 바로 이 두 방면인데, 하나는 전능한 면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적인 면이다. 어느 단계의 역사에서 보든 다 이 두 방면이 있다. 하나님이 하는 매사에 이 두 방면이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전능과 실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서 발췌

275.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저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뵌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야 되나요?”라고 말한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 등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말씀은 사람을 통해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발표한 것인데, 하나님 자신이 친히 발표한 것이고,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의 말씀을 발표하고 마음의 소리를 발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 마음의 말이라고 할까? 바로 마음 깊은 곳에서 발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하고, 하나님의 뜻과 생각, 인류에 대한 사랑과 구원, 인류를 향한 기대를 발표한 것이다. …하나님이 부드럽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각도에서 말씀할 때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고, 엄한 각도에서 말씀할 때면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은 더럽기 그지없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자격도 없다. 그러기에 지금 하나님 앞으로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방식과 역사하는 의의에서 하나님의 지혜로운 면을 보게 되는데, 사람은 하나님과 접촉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육신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276.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은 토대가 있고 이상(異象)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육신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고 말씀하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방해하든 자기의 입장을 세울 수 있고, 하나님의 증거를 굳게 설 수 있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다. 그가 늘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면,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인식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영원히 간증을 굳게 서려는 심지(心志)가 있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277.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확히 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다. 이것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각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바이고,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각 사람이 반드시 체험해야 할 과정이다.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상을 인식하는 것도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을 인식하는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인식하는 것도 포함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所是)를 인식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278. 네가 경험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든,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고 진리를 떠날 수 없다. 네가 알게 된 하나님의 성품과 인식하게 된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표된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 진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 그 자체가 바로 진리이다. 다만,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에서 유로되는 진실한 체현으로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모두 구체화하고 명문화하여 더욱 직설적으로 너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것을 허락하고 어떤 것을 허락하지 않는지를 알려 주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증오하고 어떤 사람을 기뻐하는지를 알려 줄 뿐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발표한 그런 진리 뒤에 있는 하나님의 희로애락과 하나님의 실질을 보게 되었다. 그런 것은 하나님 성품의 유로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는 것 외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도 체험하는 중에서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실생활을 떠나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어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서 인식을 어느 정도 얻었을지라도 도리와 글자 표면에만 국한되었을 뿐, 진정한 하나님 자신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79.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중에서 나타난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수록 하나님의 영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사람은 영의 역사 원칙을 찾게 됨으로써 실제 하나님 자신을 알게 된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얻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실제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며, 바로 실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사람으로 말씀이 육신 된 실제 의의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영이 실제적으로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280. 비록 네가 체험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실제적인 일이고, 주위에 임하는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이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의인의 길 가기를 추구하거나 하나님의 말씀 실행하기를 추구하는 것은 트랙을 달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은 종점에 도착하는 것이다. 지금 네가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이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는 것이든, 어쨌든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이고, 너에게 행한 하나님의 사역이 헛되지 않게 하고, 너로 하여금 마지막에 하나님의 실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인식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비미은장을 인식하고 너에게 행한 하나님의 많은 사역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281. 너희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반드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를 따르고 나서야 예수에게 행한 영의 많은 사역에 대해 점차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사람의 체험으로는 완전한 인식에 이르지 못하기에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해 주는 하나님 역사의 많은 새 사물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예수를 하나님이 보낸, 사도와 같은 분이라고 알았고 그리스도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베드로는 한동안 체험한 후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많은 행사와 사랑스러운 점을 보았고, 예수에게 하나님의 많은 소시가 있다는 것을 보았으며, 예수가 한 말씀은 사람이 말할 수 없고 예수가 한 사역도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과 행사에서 하나님의 많은 지혜와 신성의 사역을 보았다. 베드로는 체험 가운데서 자신만을 안 것이 아니라 예수의 모든 행사를 중요시하며 관찰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베드로는 많은 새 사물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에게 실제 하나님의 많은 표현이 있었고, 예수가 한 말씀과 행한 일 그리고 뭇 교회를 목양한 것과 행한 사역이 보통 사람이 행한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에게서 배워야 할 많은 공과를 배웠고, 예수가 곧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을 때에는 예수에 대해 인식이 좀 있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그가 일생 동안 예수에게 줄곧 충성하고 예수를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토대가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282. 왜냐하면 베드로는 무엇보다 먼저 천지 만물은 다 전능자의 손에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긍정적인 것도 다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직접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지 사탄의 ‘가공’을 거친 것이 아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부모가 역방향으로 부각시킨 것으로 인해 나의 자비와 긍휼을 더욱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에 대해 찾고 구하려는 마음이 더욱 타올랐다. 그는 내 말을 먹고 마시는 것을 중요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내 뜻을 더듬는 것은 더욱 중요시하면서 마음속으로 늘 신중하였기에 영 안이 시종일관 매우 예민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내 뜻에 맞을 수 있었다. 그는 평소에 자신이 실패의 올무에 들까 봐 몹시 두려워하여 지난날에 실패한 사람들의 교훈과 결부시키기를 중요시하며 자신을 격려하였다. 그는 또 역대 이래 하나님을 사랑한 모든 사람의 믿음과 사랑을 본받는 것을 중요시하여 소극적인 방면에서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적극적인 방면에서 더 빨리 성장하여 내 앞에서 가장 인식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6편 말씀>에서 발췌

283.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늘 자신의 행사를 나타내 사람에게 보여 주며, 그는 인류와 대화를 멈춘 적이 없고 인류를 향해 숨거나 피한 적도 없으며, 그의 마음과 생각, 그의 말씀과 행사는 인류에게 다 공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하나님을 알려고 하기만 하면 여러 가지 경로와 방식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 수 있다. 인류가 계속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인류를 피하고, 인류에게 숨고, 사람이 이해하고 아는 것을 싫어한다고 여기는 까닭은 인류가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고,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더욱이 창조주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행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이 한가한 시간만에라도 창조주의 말씀이나 행사에 관심을 돌리거나 알아보고, 창조주의 생각과 마음의 소리에 조금만 유의한다면, 창조주의 모든 생각과 모든 말씀과 행사는 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창조주가 항상 인류 가운데 있고 만물과 인류와 늘 대화하고 있고 매일 새로운 행사가 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인류에 대한 그의 살뜰한 보살핌, 그의 특별한 ‘감정’, 그의 참된 염려와 사랑은 그가 니느웨 성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나타났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과 요나의 대화에서 그가 친히 만든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연민의 정이 더욱 완전하게 유로되었다. 여기에서, 너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참된 마음을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84.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공과는 하루 이틀 만에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체험과 고생, 진실한 순복이 필요하다. 우선 하나님의 역사로부터 착수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착수해야 한다. 너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 모두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어떻게 체험 가운데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각 사람이 인식하기 전에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아무도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없고, 아무도 짧은 시간 내에 하나님의 전부를 인식하는 데에 도달할 수 없으며, 모두 필요한 체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아무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지 못한다. 하나님의 역사가 많을수록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성분도 더 많아지며,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수록 더욱 사람에게 그에 대해 더 새롭고 더 깊은 인식이 있게 한다. 만일 하나님의 역사가 고정불변하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율법시대에 한 것은 무엇이고, 은혜시대에 한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나라시대에 한 것은 또 무엇인지 이런 이상에 대해 너희는 반드시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285.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성품은 모두 하나님이 인류에게 한 말씀에서 발표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때, 사람은 실천하는 중에서 하나님이 말씀한 목적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말씀한 근원과 배경을 알게 되며, 하나님이 말씀하여 이루려고 하는 효과를 알고 체험하게 된다. 사람에 대해 말하면,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진리와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정 변화에 도달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함에 있어 반드시 체험해야 하고, 깨달아야 하고, 얻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런 것을 체험하고 깨닫고 얻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점점 이해하게 되고, 동시에 각기 다른 정도의 인식도 있게 된다. 이 이해와 인식은 상상해 낸 것이 아니고, 지어낸 것도 아니라, 사람이 깨닫고 체험하고 느끼고 실증해 낸 것이다. 사람에게 이런 깨달음과 체험과 느낌과 실증이 있어야만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내용이 있게 되는데, 그때의 인식이야말로 실제적이고 진실하며 정확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체험하고 느끼고 실증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진실로 알고 인식해 가는 이 과정이 바로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이다. 사람은 이렇게 교제하는 가운데서 진정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하나님의 실질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인식하게 되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도 점차적으로 알고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사실에 대해 실제적으로 확신하고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게 되며,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에 대해 실질적으로 확정하고 인식하게 된다. 사람은 이렇게 교제하는 가운데서 점차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더 이상 근거 없이 상상하지 않고, 더 이상 자기 뜻대로 추측하지 않으며, 더 이상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을 논단하거나 의심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하나님과의 논쟁이 점점 적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저항이 점점 적어지며, 패역이 점점 적어진다. 반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점점 더 실제적이 되고 또한 점점 더 깊어지게 된다. 사람은 이렇게 교제하는 가운데서 진리를 공급받고 생명의 세례를 얻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인식도 얻게 된다. 이렇게 교제하는 가운데서 사람은 성정이 변화되고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피조물로서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286. 하나님의 실질을 알아가고 인식하는 것은 각 사람의 생명 진입에 크나큰 도움이 된다. 너희가 소홀히 하지 말고 또한 그것을 장난으로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기를 추구함에 있어 기초 중의 기초이고 토대 중의 토대이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글귀나 도리 속에서 살고 있다면, 설령 사람이 소위 진리의 표면적인 말에 따라 행하면서 산다고 해도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 다시 말해, 네가 만일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믿는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텅 빈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5>에서 발췌

287.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모른다면, 사람의 마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해 열어 놓을 수 없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게 된 후이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음미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음미하는 동시에, 그 마음은 점차 조금씩 하나님을 향해 열릴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았을 때, 자신이 하나님과 거래하고 있는 것과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요구나 사치한 욕망이 얼마나 몰염치하고 비열한 것인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마음을 진정 하나님을 향해 열어 놓았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비할 바 없이 큰 세계인지를 보게 될 것이고,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느껴 본 적이 없는 경지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경지에는 기만과 궤사가 없고, 흑암과 사악이 없으며, 오직 진실한 것과 신실한 것만 있고, 오직 광명과 정직만 있으며, 오직 공의와 선한 것만 있다. 또한 하나님께는 사랑과 보살핌이 가득하고 긍휼과 관용이 가득하여 삶의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다. 이것이 네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열어 놓았을 때 하나님이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비할 바 없이 큰 세계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전능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권병(역주: 권세)도 가득하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각 방면의 소유소시를 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무엇으로 기뻐하고 무엇으로 염려하는지, 하나님이 무엇으로 슬퍼하고 무엇으로 노하는지… 이런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마음을 열어 놓아 하나님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사람마다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열어 놓아야 하나님이 너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으며, 하나님이 너의 마음속에 들어가야만 네가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볼 수 있고 너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하나님의 소유소시가 얼마나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와 대조적으로 네 주변의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 심지어 너의 가족, 너의 동반자, 네가 애착하는 물건이 너에게 있어 얼마나 언급할 가치도 없고, 얼마나 보잘것없고 비천한 것인지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너는 그 어떤 물질적인 것도 더 이상 너를 매료시킬 수 없고, 더 이상 그것을 위해 그 어떤 대가도 지불하게 할 수 없다고 느껴질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자신을 낮춘 일에서 하나님의 크고 위대함을 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지고지상함을 보게 될 것이다. 더욱이 너는 네가 전에 하나님이 했던 일 중에 매우 작은 것이라고 여겼던 일에서도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를 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관용을 보게 될 것이며, 너를 향한 하나님의 인내, 포용, 양해도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너에게는 하나님을 애모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날이 되면, 너는 사람이 얼마나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느끼게 될 것이고, 주변의 사람이든 아니면 주변에서 발생한 일이든, 심지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 사랑과 소위 너를 향한 ‘보호’나 걱정이 다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너의 최고의 사랑이자 가장 귀중한 보물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에, 나는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위대하시고, 하나님의 실질은 정말 거룩하십니다. 하나님께는 궤사나 사악이 없고, 질투나 분쟁이 없으며, 오직 공의만 있고 진실만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소유소시는 다 사람이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이 마땅히 추구하고 동경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라 믿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88. 네가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참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싶다면, 단지 하나님의 3단계 역사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이전에 했던 사역의 이야기에만 국한되어서도 안 된다. 네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한 범위에 국한시킨 것이고, 하나님을 너무 작게 본 것이다. 그 결과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초래하겠느냐? 그것은 네가 하나님의 기묘와 하나님의 지고지상을 늘 인식하지 못하고, 영원히 하나님의 능력과 전능 그리고 하나님 권병의 범위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인식은 네가 하나님이 만물의 주재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영향을 주고, 또한 하나님의 참된 신분과 진정한 지위를 인식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 네가 하나님을 한정된 범위에서 알아간다면, 한정된 것만 얻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범위를 확대시키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 너는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 하나님의 경영, 하나님이 주재하는 범위, 하나님이 주재하고 관리하는 만물에 대해 마땅히 인식해야 하고, 마땅히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해야 한다. 사람은 그렇게 인식하는 가운데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 만물 중에서 만물을 주재하고 관리하고 있고, 또한 만물에게 공급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동시에 사람은 또 자신이 만물 중의 하나이고, 만물 중의 일원임을 진정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하는 동시에, 너 또한 하나님의 주재와 공급을 받고 있다. 이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8>에서 발췌

289.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만유를 창조하고 주재하는지 상상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만유를 관리하고 만유에게 공급하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전제의 제한을 받아 사람은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고 만유를 주재하고 만유에게 공급하고 있음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들도 단지 율법시대와 은혜시대, 하나님나라시대에만 국한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행사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을 단지 하나님의 선민에게만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것이고, 이것 또한 사람을 매우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누리고 있는 동시에 또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모든 것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천지 만물에 그것의 자연법칙과 자연적인 생존 법칙이 있고, 그것을 관리하고 공급하거나 유지하는 그 어떤 주재자도 없다고 믿고 있다. 설령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행사임을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각 사람,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각 사람,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의 가장 큰 사각지대이다.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함에 있어 비록 우리가 천문학을 말하지 않고 지리를 연구하지 않고 생물도 연구하지 않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고 만유에게 공급하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임을 인식하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할 공과이고 반드시 배워야 할 공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7>에서 발췌

290.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얼마만큼 있으면 하나님의 지위도 그만큼 있고,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얼마만큼 깊으면 하나님의 지위도 그만큼 높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텅 빈 것이고 막연한 것이라면, 네 마음속의 하나님도 텅 비고 막연한 것이다. 네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너의 범위에만 국한되어 있다면, 너의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하나님이고, 참된 하나님 자신과는 연결되지 않고 무관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실제와 전능한 면을 인식하고, 하나님 자신의 참된 신분과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를 인식하고, 만물 중에서 선명하게 나타내는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각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각 사람의 생명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각 사람의 실제 생명과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알아가는 것을 문자에만 제한하고, 너의 작은 체험이나 네가 헤아린 하나님의 은혜에 제한하며, 하나님에 대한 너의 작은 간증에만 제한한다면, 나는 너의 하나님은 전혀 참된 하나님이 아니고, 전혀 참된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네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하나님 자신은 만유를 주재하는 분이고, 만유 가운데서 다니며 만유 가운데서 관리하고 있는 그분이고, 전 인류의 운명을 장악하고 만유의 운명도 장악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행사는 소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행사는 지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만물 속에서, 만물의 생존에서, 만물의 변화 법칙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그 어떤 행사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그 어떤 행사도 인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행사를 전혀 증거하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을 전혀 증거하지 못하고,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보잘것없는 하나님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면, 너의 생각 속에, 너의 좁은 마음속에 국한되어 있는 그런 하나님을 계속 이야기한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너의 믿음을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9>에서 발췌

291.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물건을 해부하는 것도 아니며,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거나 사람을 알아가는 관점이나 방식으로 하나님을 인식한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인식하는 데에 도달할 수 없다. 하나님 인식하는 것을 경험이나 상상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너는 절대로 자기의 경험과 상상을 하나님에게 더해서는 안 된다. 너의 경험과 상상이 아무리 풍부해도 다 유한한 것이다. 게다가 너의 상상은 사실에 부합되지 않고, 더욱이 진리에도 부합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참된 성품과 실질에도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너의 상상으로는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데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 유일한 경로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 다음 천천히 체험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언젠가, 너의 협력과 진리에 대한 갈급으로 인해 하나님이 너를 깨우쳐 주어 하나님을 참되게 이해하고 인식하게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92. …네가 지식이나 자신이 배운 모든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다면, 영원히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네가 진리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그 각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한다면, 어느 날엔가 하나님의 행사가 무소부재(無所不在)하고 하나님의 지혜가 무소부재하다는 것을 시인하게 될 것이고, 왜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이고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너에게 그런 인식이 있을수록 너는 왜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라고 하는지 알게 되고, 너를 포함하여 만물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공급을 계속 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또 너는 이 세상에서, 이 인류 중에서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만물의 생존을 주재하고 관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그런 능력과 실질이 없다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그 정도로 인식할 때면 하나님이 곧 너의 하나님임을 진정으로 시인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에 도달할 때에야 너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받아들여 너의 하나님으로 여기고, 너의 주재자로 삼게 될 것이다. 너에게 그런 인식이 있고 생명이 그 정도에 도달할 때면, 하나님은 더 이상 너를 시련하거나 심판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너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진정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8>에서 발췌

293. 어느 날, 너는 창조주가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니고, 창조주가 지금까지 너를 향해 숨거나 얼굴을 가린 적도 없으며, 창조주가 너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더 이상 네가 밤낮으로 생각만 하고 느낄 수 없는 분이 아니라 분명하게 너의 곁을 지키고 있고, 너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있으며, 너의 운명을 주관하고 있고, 아득히 먼 하늘가에 있지 않고, 구름 사이에 숨어 있지도 않으며, 너의 곁에서 너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가 너의 전부이자 너의 유일한 분이라는 것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은 너의 마음에 애모(愛慕)가 생기게 하고, 그리워하고 가까이하고 앙모하게 하며, 잃을까 봐 두려워하게 하고, 더 이상 포기하고 싶지 않고 거역하고 싶지 않게 하며, 더 이상 멀리하거나 피하고 싶지 않게 한다. 결국 너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만 하고, 그에게 순복하기만을 원하며, 너에게 준 그의 모든 것에 보답하기만을 원하고, 그의 권세 아래에 귀복하기만을 원하게 된다. 너는 더 이상 그가 너를 인도하고 공급하고 보살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을 거절하지 않고, 더 이상 그가 너를 주재하고 안배하는 데에 항거하지 않으며, 오로지 그의 곁을 따르면서 함께하기만을 바라고, 오로지 그를 너의 유일한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너의 유일한 주, 유일한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만을 원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294. 하나님을 알아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든, 무엇을 얻으려고 추구하든 모두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경외 그리고 진실한 순복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과 경외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방면을 인식하든지,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순복하려는 심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관념에 너무나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는 사람이 인식하기에 너무나 어려우며, 하나님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은 실로 사람으로 너무나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께 기꺼이 순복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295. 만약 정말 ‘하나님을 아는’ 창시자가 된다면, 그것은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영광이 있는 자가 아니겠는가? 이런 사람은 인류 중에서 하나님께 가장 칭찬받는 피조물이 아니겠는가? 이 일은 비록 이루기 쉽지 않지만 마지막에는 그래도 결실을 맺을 것이다. 어떤 성별을 가진 사람이든, 어떤 국적을 가진 사람이든,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최종에 하나님의 최고 영광이 있는 사람이고, 유일하게 하나님의 권병(역주: 권세)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것은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이자 앞으로 해야 할 사역이고, 6천년 사역 중에서 맨 마지막에 이루려는 최고의 사역이자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는 사역 방식이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이 사역으로 각 부류 사람 간의 차등을 드러낸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기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다고 칭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지기는 하나님의 그 어떤 축복도 다 받을 수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지기가 아니라면 그 어떤 사역도 감당할 수 없다. 환난이든, 연단이든, 심판이든 모두 사람들이 마지막에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최종에 도달하게 될 유일한 효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에서 발췌

─────────

①소시(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②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③비미은장(卑微隱藏): 낮추고 드러내지 않다.

④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⑤정직: 여기서는 정의롭고 솔직하다의 뜻.

⑥귀복(歸服): 돌아와 복종함.

이전 말씀:(10)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다음 말씀:(12)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실행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