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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진리 실제에 진입할 것에 관한 말씀

12)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관한 말씀

(570) 하나님의 본질은 사람에게 믿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이 이 ‘비밀’을 발견하지 못해 하나님을 사랑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줄도 모른다.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님에게 사랑스러운 면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사랑할 하나님이라는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면은 그의 사역에서 드러난다. 사람은 오직 체험을 통해서만 그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고, 오직 실제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체험할 수 있다. 실생활에서 세심하게 살피지 않는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면은 아주 많지만, 사람이 그와 실제로 접촉하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과 실제로 접촉할 수 없고, 하나님과 실제로 접촉하지 못하면 그의 사역도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에 너무나 많은 거짓과 상상이 섞이게 된다. 사람은 하늘의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땅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실제적이다. 하늘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사람의 상상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사람이 직접 본 것도, 직접 체험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땅에 올 때 사람은 하나님의 실제 행사와 그의 사랑스러운 면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모든 성품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하늘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보다 몇천 배는 실제적이다. 하늘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사랑은 조금도 실제적이지 않으며 사람의 뜻으로 가득하다. 땅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 사랑은 모두 실제적이다. 설령 그것이 아주 미미한 사랑일지라도 실제적이다. 하나님은 실제 사역을 통해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고, 이런 인식들을 통해 사람의 사랑을 얻는다. 베드로처럼 말이다. 그가 예수와 함께 생활하지 않았다면, 예수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에 대한 그의 충성심 역시 예수와의 접촉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를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 친히 세상에 임하여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실제를 보게 하고 체험하게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것이다> 중에서

(57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깊이 배워야 할 공과로, 사람이 한평생 하나님을 믿으면서 배우는 공과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한 번도 가슴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한 적이 없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어도 헛일이다. 하나님을 믿으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일생을 헛사는 것이요, 네 일생은 가장 미천한 일생이 될 것이다. 평생 하나님을 사랑한 적이 없고, 한 번도 하나님을 만족게 한 적이 없다면, 네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헛일이 아니냐? 바꿔 말해서,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대가를 치러야 하고, 겉으로 무엇을 하려고 추구할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참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찬양을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은 재미있어 하지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냐?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무슨 일에서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어떤 일에 부딪히든 깊이 파고들어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일에서의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네게 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이 닥쳐 네가 고통을 겪어야 할 때, 너는 그 일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너는 자신을 만족시킬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육은 가장 비천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방법을 찾고 네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네가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은 그 일에서 특별히 너를 깨우칠 것이요, 네 마음도 위안을 얻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572) ‘사랑’이란 티 없이 순수한 감정이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느끼고 헤아리는 것이다. ‘사랑’에는 조건도 간격도 거리도 없다. ‘사랑’에는 의심도 추측도 없고 기만도 간교도 없다. ‘사랑’에는 거리도 어떠한 불순물도 없다. 너에게 사랑이 있다면 기만도 원망도 하지 않을 것이고, 배반도 거역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무엇을 얻고자, 얼마큼 얻고자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너에게 사랑이 있다면 기꺼이 바치고, 고난을 감내할 것이다. 또한 나와 마음을 합할 것이며, 나를 위해 너의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다. 너의 가정과 앞날, 청춘과 결혼까지도 포기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기만이고 배반이다! 너에게는 어떤 사랑이 있느냐? 참된 사랑이냐, 거짓된 사랑이냐? 너는 얼마나 포기하였느냐? 얼마나 바쳤느냐? 내가 너에게서 얻은 사랑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너는 알고 있느냐? 너희 마음속에는 악과 배반, 기만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너희의 사랑에는 얼마나 많은 불순물이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위해 충분히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고, 나에 대한 사랑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어째서 너희의 언행은 늘 패역과 기만을 띠고 있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를 저버린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를 믿지 못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신분에 걸맞게 나를 대하지 않고 늘 나를 난처하게 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매사에 나를 속이고 기만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섬기면서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사사건건 내게 반기를 든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너희가 바친 것은 많지만 정작 내가 요구한 것들은 단 한 번도 실행한 적이 없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자세히 따져 보면, 너희에게서는 나를 사랑하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역했고 이토록 많은 말씀을 공급했는데, 너희가 얻은 것은 과연 얼마나 되느냐?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중에서

(573)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으면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너는 얼마나 변화하였느냐? 너희가 모두 알고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과 육체의 편안함,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등의 이유 때문도 아니다. 현재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육체의 편안함이나 잠시적인 향유를 위해서라면, 설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최고조에 달해 더 이상 무언가를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네가 추구하는 그 ‘사랑’은 불순한 사랑이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이용해 무료한 삶을 풍부하게 하고 마음속의 공허함을 채우려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안일을 탐하는 사람이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한 사랑은 마지못해 하는 사랑이고, 정신적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에 속하느냐? 너는 왜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지금 너는 하나님을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하느냐? 너희 중 대다수의 사랑은 앞에서 언급한 사랑이다. 그러한 사랑은 기껏해야 현상 유지나 가능할 뿐, 영원불변할 수 없고 내면에 깊이 뿌리내릴 수도 없다. 그러한 사랑은 피고 시든 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한 송이 꽃과 같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한 번 사랑한 후에는 누군가 너를 앞길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너는 이내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에만 하나님을 사랑할 뿐 그 후에 너의 생명 성품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너는 여전히 흑암 권세의 그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탄의 결박과 농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온전히 얻어지지 못하고, 결국 영과 혼과 몸이 여전히 사탄에게 속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하나님께 온전히 얻어지지 못한 자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즉, 사탄에게 돌아가고 유황불 못에 던져져 하나님의 다음 단계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얻어진 자는 사탄을 저버리고 사탄의 권세에서 빠져나온 자이기에 정식으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백성의 유래이다. 너는 이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원하느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싶으냐? 지금 너는 사탄에게 속해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어떤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 중에서

(574) 사람은 계속 흑암 권세의 그늘에 살고 있다. 사탄의 권세에 얽매여 자유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사탄에게 가공된 성품은 점점 더 패괴되고 있다. 사람은 늘 사탄의 패괴 성품 안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독선적이고, 우쭐거리고, 교만하고, 자만하는 등 사탄에게 속하는 모든 성품을 반드시 벗어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의 사랑은 전부 불순물이 섞인 사랑이자 사탄의 사랑이기에 절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성령에게 직접 온전케 되고 책망받고 깨지고 훈계와 징계, 채찍질, 연단을 받지 않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패괴된 사람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중에서

(575)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접하고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면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우선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네가 마음속으로 추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했다고 할 수 있다. 네 마음속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외 다른 것(가정, 돈, 남편, 아내, 자녀 등)이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네 마음을 차지하지 못하거나, 네가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만 추구한다면, 네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한 것이다. 만약 네가 아직도 마음속으로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늘 ‘언제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할까? 우리 집은 언제쯤 부유해질까? 어떻게 하면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을까?…’라는 상태에 빠져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너의 마음이 아직 하나님께로 온전히 향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네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만 있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이 너와 매우 가까워 하나님이 네 안에 계시고 너도 하나님 안에 있는 것 같은 이런 내적 상태에 있다면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놓여 있음을 말해 준다. 네가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항상 교회의 사역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의 마음을 만족게 한다면 네 마음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이다. 만약 많은 사물이 네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면 네 마음이 여전히 사탄에게 점령당해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향해 있다면 하나님을 참되게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마음을 쓰게 된다. 우매하고 비이성적일 때도 있으나 하나님 집의 이익과 하나님의 사역, 그리고 성품의 변화에 마음을 쓰며 마음이 완전히 올바른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은 자발적인 것이다> 중에서

(576)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다. 또한 사람의 안배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과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그 배후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었지만 욥에게 닥친 것은 사람의 행위요, 사람의 방해였던 것과 같다. 너희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고, 모두 싸움이 있다. … 어떤 일을 하든 일정한 피땀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실제로 받는 고통이 없이는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을 만족게 한다는 말이 아예 성립되지 않으니 빈 구호를 외치는 격이다! 빈 구호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느냐? 사탄이 영계에서 하나님과 싸울 때,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할까? 일이 닥칠 때마다 네게는 그것이 큰 시련이자 하나님이 네가 증거하길 바라는 때임을 알아야 한다. 겉으로 봤을 때 큰일이 아닌 것 같아도, 일단 그런 일이 닥치면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하지 않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자요, 진리도 생명도 없는 쭉정이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일이 닥칠 때마다 그때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할 때이다. 지금 네게 큰일이 닥치지 않아 별로 크게 증거한 것은 없지만, 일상의 사소한 부분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이 탄복하고, 가족이 탄복하고, 주위 사람들이 탄복하게 하여라. 이방인이 와서 네 모든 행위에 탄복하며 하나님이 행한 것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보게 되는 날이 오면, 너 자신이 바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네가 식견이 없고 자질이 부족해도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면, 너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자질이 가장 부족한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이렇게 엄청난 사역을 보고 사람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사탄 앞에서 이기는 자가 된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이들은 가장 기개 있는 자들이 된다. 이것이 최고의 간증이다. 너는 큰 사역을 하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고정 관념을 내려놓지 못해도 너는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이 실제 체험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어도 너는 자신의 실제 분량과 실제 행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며 하나님을 크게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577) 진리를 실행할수록 진리를 갖추게 되고, 진리를 실행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며, 진리를 실행할수록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 항상 이렇게 실행한다면 하나님은 네게 그의 사랑을 조금씩 보게 할 것이다. 베드로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께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지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실제 사역을 행하시는 지혜가 있나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하나이다. 더욱이 사람을 창조하고 구원하며 온전케 하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실 수 있어 사람이 사랑하나이다. 하나님께는 사람이 사랑할 만한 면이 아주 많나이다.” 베드로는 예수에게 “당신이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실 만한 것이 어찌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만이겠나이까? 당신께는 사랑스러운 면이 더 많이 있나이다. 실생활에서 일을 처리하시는 것, 행동하시는 것과 당신의 영이 제 안에서 감동시키고 저를 징계하고 책망하시는 이런 것들은 더욱 사랑할 가치가 있나이다.”라고 했다.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체험하려면, 실생활에서 모색하고 구해야 하며 기꺼이 육을 버리려는 이런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의지 있는 사람이 되어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나태하지 않고 육적인 즐거움을 탐하지 않으며, 육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번에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니, 다음번에는 힘을 좀 쓰더라도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지, 육을 충족시켜서는 안 된다. 이렇게 체험하는 과정에서 너는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할 수 있고, 성육신하여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실제로 접할 수 있게 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영은 실생활에서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그의 사랑스러운 면을 보게 하고, 그의 징계와 채찍질, 그리고 축복을 체험하게 한다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늘 이렇게 체험한다면 실생활에서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게 된다. 어느 날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이 된다면, 너는 가책을 받고 자신을 뉘우치게 될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다면 너는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하나님이 너를 버린다고 말하면,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 버림받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할 것이다. 이런 느낌이 있으면 너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기초가 생긴 것이고,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것이다> 중에서

(578) 지금 너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나님이 네게 행한 일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이는 모두 네가 배워야 할 공과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에게 행하고 보여 준 것은 전부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고 그를 진실로 알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의 구원, 나아가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심판, 형벌 사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고난이 없었다면, 솔직히 말해 너희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이 클수록 사람은 더욱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그럴수록 하나님의 사역이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은 더 참되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공과는 무엇을 통해 배울 수 있느냐? 만약 하나님이 고난과 연단, 고통스러운 시련을 주지 않고 은혜와 자비와 긍휼만 베푼다면 네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시련을 주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자신이 얼마나 미미하고 비열하고 천박한 존재이며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사람에게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예비한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분인지를 더 잘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과정은 몹시 고통스러워 이겨 내지 못할 때도 있고, 극도의 비통함에 잠기기도 하겠지만, 사람에게 하는 사역에서 하나님이 실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이것을 토대로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기만 하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기만 한다면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을 알 수 없고, 인간의 본질은 더더욱 알 수 없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거듭된 심판과 연단이 있어야만 그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연단과 심판을 토대로 세워진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579) 현재 많은 이들이 그 가치를 알지 못한 채, 고난받는 것은 무가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가정은 평안하지 않으며 하나님 역시 기뻐하지 않으니 앞날이 막막하다고 말이다. 또 어떤 이들은 몹시 괴로운 마음에 죽고 싶어 하는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자들은 의지가 없고 유약하며 무능한 겁쟁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를 사랑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사람은 그를 사랑할수록 더 큰 고통과 시련을 겪게 된다. 그를 사랑하면 갖가지 고난이 네게 임하겠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고 주변 환경도 평화롭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간, 너는 주변의 많은 일들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며, 자신의 미미한 분량으로 인해 연단을 받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한다고 느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높아 사람이 이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일들로 연단을 받고, 또한 자신에게 연약해지는 요소가 많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지 못하는 면이 많은 것으로 인해 연단을 받겠지만, 너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연단을 통해서만 정결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 아무리 큰 고난이 닥쳐도 끝까지 가야 하며, 마지막 숨이 붙어 있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의 지배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굳세고 힘 있게 증거하는 것이다. 사탄의 시험이 닥칠 때면 “내 마음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은 이미 나를 얻으셨다. 그러니 나는 너를 만족시킬 수 없다. 나는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것이다.”라고 말하여라. 네가 하나님을 만족게 할수록 하나님은 너를 축복할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네 힘은 더욱 커질 것이다. 따라서 믿음도 생기고 의지도 굳세지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임을 더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 근심과 슬픔이 없어진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해 많은 실질적 어려움을 겪기도 하겠지만, 그럴 때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영이 위로를 받아 편안하고 든든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낼 수 있으며, 네가 겪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고, 찬양하고 춤추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교제하고 싶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안배한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이 모두 적절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보든 네 뜻에 어긋날 것이며, 눈에 거슬릴 것이다. 영적으로 압박을 느끼고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늘 하나님께 원망을 품으면서 자신이 겪는 고난이 너무 많다고,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네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기 위해 추구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실행하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실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흡족게 하기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다. 또한 언제든지, 다른 사람들은 다 식어도, 너만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속 깊이 하나님을 사모하며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제 분량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580) 사람은 고통스러운 연단 속에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 떨어지기 가장 쉽다. 너는 연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느냐? 의지를 북돋워 하나님 앞에 네 마음을 내놓고 마지막 남은 시간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연단하든 계속 진리를 실천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구해야 하며 자발적으로 교통하기를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럴 때, 네가 수동적으로 대응할수록 더 쉽게 소극적이 되고 더 쉽게 후퇴하게 된다.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 비록 잘하지 못하더라도 네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붓고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한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잘했다고 하든 못했다고 하든, 어쨌든 네 마음은 옳은 것이며 독선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너를 오해할 때 너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거나 잘 대해 주길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이 저를 이해해 주거나 지지해 주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저는 오로지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할 수 있고 마음이 안정되며 양심이 평안하기만을 바라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칭찬하고 높여 주기를 바라지 않으며 제가 당신을 흡족게 해 드릴 수 있기만을 마음속으로 바라옵니다. 제가 가진 능력을 모두 쏟아부어 이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제가 어리석고 자질이 부족하고 눈멀었지만 저는 당신의 사랑스러움을 알고 있습니다. 제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고 싶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네 마음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우러나와 마음이 많이 편해질 것이다. 이것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581) 연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로 하나님의 연단을 받아들이고, 연단 속에서 고통받고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도 육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흡족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마음은 괴롭고 고통이 심하더라도 너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를 하기 원한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떠날 수 없습니다. 비록 저는 흑암에 빠져 있지만 당신을 흡족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 제 마음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당신의 사랑을 더 많이 심어 주시길 바라옵니다.” 이것이 연단 속에서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연단을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친해질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먼저 하나님께 마음을 맡겨야 한다. 네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놓으면 너는 연단 속에서 결코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점점 가까워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정상적으로 바뀔 것이며, 하나님과의 교통도 점점 빈번해질 것이다. 네가 늘 이렇게 행하면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사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시간도 많아질 것이며, 너의 성품도 점점 변화되고 너의 인식도 나날이 늘어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너에게 하나님의 시련이 닥칠 때 네가 하나님의 편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면, 그때는 네가 욥과 베드로처럼 될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한다면 너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다. 연단받은 사랑이라야 강하다.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시련을 주든 네가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고 모든 것을 인내할 수 있다면 너의 사랑은 순결해질 것이고, 너의 믿음도 실질적인 믿음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자 진정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 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582) 하나님이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에 필요한 일이며, 사람에게는 더욱 필요하다. 사람은 형벌과 심판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지금은 너희가 진심으로 탄복하지만 조그마한 좌절을 겪게 되어도 참지 못한다. 분량이 너무 작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형벌과 심판을 더 많이 겪어 더 깊이 알아야 한다. 지금은 너희가 그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참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별로 없고 순결한 사랑에는 더더욱 이르지 못했다. 너희의 인식이 너무 얕고 분량도 아직 부족하다. 정말 어떤 환경이 닥치면 굳게 서지 못하고, 적극적인 면에서의 진입이 너무 적으며,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소극적이고 피동적이며 속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할 뿐, 실행할 길이 없고 목표도 명확하지 않다. 온전케 된 사람은 정상적인 인성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그가 갖춘 진리는 양심의 범위를 넘어섰고 양심의 기준보다 높은 것이다. 그런 사람은 양심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사랑스럽고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께 사랑스러운 점이 많아서 사람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보게 되었다. 온전케 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다짐한 것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자발적인 사랑이고 대가를 따지지 않는 사랑이자 거래가 없는 사랑이다. 또 그는 오로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든 말든 하나님을 만족하게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께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양심적 판단에 의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베풀어 주면 하나님께 사랑을 돌려 드리고, 하나님이 주지 않으면 돌려 드릴 것이 없다는 식이 아니다. 온전케 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이 사역을 하셨다. 이왕에 내게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있는 이 기회와 조건, 자격이 있다면,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583) 베드로는 일생 동안 수백 번의 연단을 받았으며, 수많은 고통의 단련을 받았다. 그런 연단은 모두 그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그의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체험이 되었다. 베드로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연단과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고, 자신이 겪은 그 고초들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 연단의 고통을 겪지 않으면 사람의 사랑에 사람 본연의 것과 기호가 가득 차게 된다. 이런 사랑에는 사탄의 뜻이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흡족게 할 수 없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다. 설령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이 사람 자신의 뜻은 전혀 없이 다 하나님을 위한 것처럼 보여도, 그것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설령 사람이 모든 진리를 분명히 알고 깨달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징이라고는 할 수 없고, 그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도 할 수 없다. 사람이 비록 연단을 받기 전에 많은 진리를 깨달았다 해도 그런 진리를 다 실천할 수는 없다. 사람은 연단에 들어갔을 때에야 그런 진리의 참뜻을 깨달을 수 있고, 진정으로 그런 진리에 내포된 뜻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사람이 다시 그런 진리를 실천한다면 정확하게 실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할 것이다. 그때의 실천에는 개인의 뜻이나 사람 본연의 것과 사람의 감정이 적어진다. 그때의 실천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진리는 사람이 입으로 안다고 말하고 마음으로 원한다고 해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깨닫는다고 해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연단 속에서 많은 고통을 받아야만 사람의 사랑이 순결해지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584) 베드로가 온전케 된 후, 즉 세상을 떠날 무렵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제 수명이 몇 년 더 연장될 수 있다면 당신을 더 순수하게, 더 깊게 사랑하고 싶나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도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 당신의 때가 되었나이다. 바로 당신이 저에게 예비하신 때가 되었나이다. 저는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올라 이 증거를 해야 하나이다. 제 사랑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기를, 제 사랑이 더 순수해지기를 바라나이다. 제가 오늘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고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음에 마음속으로 위안과 평안을 느끼나이다. 이것은 제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고, 당신이 바라시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옵나이다. 당신께 제 자신을 전부 바치고 제 생명까지 바칠 수 있음에 더없는 기쁨과 위안을 느끼나이다. 하나님, 당신은 참으로 사랑스럽나이다. 앞으로 좀 더 살 수 있다면 저는 당신을 더 사랑할 것이나이다. 살아 있는 한 저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나이다.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하길 원하옵나이다. 저는 불의와 죄로 인해 당신의 심판과 형벌, 시련을 받았고, 그러면서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더 많이 보게 되었나이다. 이것이 저의 복이옵나이다. 이 때문에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해도 저는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고 싶나이다. 저는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고 싶나이다. 그래야 제가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사옵니다. 저는 지금처럼 사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끼나이다. 저는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오르나이다.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나이다. 하지만 저는 만족하지 못하나이다. 제가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나이다. 저는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완전히 충족시켜 드릴 수 없고, 당신께 보답한 것이 너무 적다는 것을 알고 있나이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당신에게서 받은 사랑에 다 보답해 드리지 못했나이다. 제가 너무 부족하나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죄스러운 마음이 더 드나이다. 제 모든 잘못과 당신께 보답해 드리지 못한 모든 사랑을 그저 이 한순간으로 메울 수밖에 없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585) 사람은 현 상태에 만족하지 말고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베드로의 모습으로 살려면 베드로의 인식과 체험을 가져야 한다. 더 높고 더 깊은 것을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더 깊고 순결한 사랑을 추구해야 하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생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다. 너는 일시적인 편안함에 만족하며 그렇게 소극적이 되어 후퇴하지 말고, 또한 더 깊고, 더 세밀하고, 더 실제적인 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적극적인 면에서 자발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 너는 실제적인 사랑을 갖추어야 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짐승처럼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사는 그런 타락한 삶에서 벗어나야 하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우롱하지 말고, 자기 삶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얻지 못할 진리도, 서지 못할 정의도 없다. 너는 일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하겠느냐? 이런 것은 모두 네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다. 가장 주된 것은 너에게 이런 의지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개가 없는 나약한 자가 되지 말라. 너는 의미 있는 인생과 의미 있는 진리를 체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에 대해 그렇게 무책임해서는 안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생이 지나가 버리는데,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느냐? 사람이 죽은 후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너는 베드로와 같은 의지와 양심이 있어야 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을 우롱하지 말라.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네 일생을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 자신을 어떻게 하나님께 바칠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더 의미 있게 믿을 수 있는지,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더 순결하고, 더 아름답고, 더 선하게 사랑할 수 있는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586)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직접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 헌신하려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글귀와 상상으로 그를 사랑하게 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이 억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랑하게 한다. 그의 사역과 말씀에서 그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한 뒤 사람의 마음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우러나오게 한다. 그래야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증거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이가 선동해서가 아니고 일시적인 감정의 충동 때문도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면을 보았고, 하나님께 사람이 사랑할 만한 면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지혜와 놀라운 행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찬미가 우러나오고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모의 마음이 우러나오며,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격정이 일어나게 된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증거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과 사모의 마음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또 감정적인 충동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인식에 근거해 증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기에 반드시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하나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하나님의 실제를 알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증거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발적이고 실제가 있으며 실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지, 피동적인 것도,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사는 사람이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고, 하나님의 사역과 경영을 위해 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빛 속에서 살고,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축복받은 삶을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증인이며, 하나님께 축복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기(知己)이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영원히 사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영원토록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랑할 만한 분이요,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증거하거나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온 힘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천하를 두루 다녀도 아무도 대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이 사람들은 모두 땅에서 왕권을 잡고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세계 각지에서 함께 모인 사람들이고, 언어와 피부색은 달라도 같은 삶의 의미를 갖고 똑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또 모두 똑같은 증거가 있는 사람들이고, 공통된 의지와 소망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천하를 두루 다니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은 전 우주를 횡단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축복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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