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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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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진리 실제의 진입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14)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겪는 데 관한 말씀

173. 하나님은 사람의 상태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맞추어 새로운 사역을 하고, 이로써 사람이 그를 알고 그에게 순종하며 그를 사랑하고 증거하게 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연단을 겪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훈계와 책망을 겪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영영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진실하게 사랑하거나 증거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연단하는 것은 한 측면의 성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측면의 성과를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진리를 구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연단의 사역을 하고, 이로써 사람의 의지와 사랑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연단은 진리를 구하기 원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의의 있는 일이자 큰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므로 어쨌든 사람과 같은 성품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의 성품을 알기가 쉽지 않다. 진리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진리가 갖추어져 있지 않고, 진리를 실천하려는 의지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사람이 고난과 연단을 받지 않고 심판도 받지 않는다면 사람의 의지는 영원히 실현될 수 없다. 연단은 모든 사람에게 상당히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주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하며, 또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깨우침을 주고, 더 많이 실질적으로 책망하고 훈계한다. 이렇게 사실과 진리를 대조함으로써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알게 하고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게 한다. 이를 통해 사람이 하나님을 더 참되고 순수하게 사랑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연단의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의가 있다. 그는 무의미한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도 하지 않는다. 연단하는 것은 사람을 그의 앞에서 없애 버리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멸하여 지옥에 보내려는 것도 아니다. 이는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또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사람에게 연단은 실제적인 검증이자 실제적인 훈련이다. 연단 속에서만이 사람의 사랑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174. 사람은 다 하나님을 믿을 때 나중에 복을 얻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으로, 모두들 이러한 속셈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있는 패괴된 것들은 반드시 시련으로 해결받아야 하며, 사람의 내면에 정결케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그 부분에서 연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배이다. 하나님은 환경을 배치해 네가 그 환경 속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의 패괴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도와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몇 년간의 연단과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은 사상과 마음속에서 패괴된 육체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사탄에게 통제되는 부분, 자신의 욕망과 요구가 있는 부분에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오직 고난 속에서만이 공과를 배울 수 있다. 즉, 진리를 얻으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수많은 진리는 다 고난과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안일하고 순탄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알아 가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시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흡족게 해야 하는가> 중에서

175.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모른다면, 너는 시련 속에서 필히 쓰러질 것이다. 네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시련이 닥쳤을 때 네 고정 관념에 맞지 않으면 너는 설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은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다.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 사람에게 분명히 나타나면 너의 육에 무엇을 가져다주겠느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사람에게 분명히 나타나면 사람의 육은 필연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런 고통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을 바칠 수도 없다.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한다면 필히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네게 나타낼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모든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낸 적은 한 번도 없다. 말세에 하나님은 예정하고 택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성품을 나타내고, 사람을 온전케 할 때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며, 이로써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든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체험하기 위해 사람은 엄청난 고통을 겪고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사람은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고,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도 흡족해한다.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을 완전히 바치고 싶다면, 반드시 많은 고통과 환경의 시달림을 겪어야 한다. 너를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해야 결국 마지못해 하나님께 진심을 돌려 드릴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는 고난과 연단 속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이 사람의 사랑을 순결하게 만드는 것도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176. 사람의 성품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고난과 연단, 또는 책망과 훈계, 징계를 겪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거나 기만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으로 연단을 받아야 성품에 변화가 보인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그리고 징계와 책망을 겪은 사람만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침착하며 진중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현재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이 생겨도 그 관념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순종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 중에서

177. 패괴가 정결케 되고 생명 성품이 변화되려면 반드시 진리를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 어떻게 진리를 받아들여야겠느냐? 네게 어떤 패괴 성품이 있든, 네 본성에 큰 붉은 용의 어떤 독소가 있든, 하나님 말씀이 그것을 드러내면 인정하고 순종하며,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이유도 대지 말고 선택도 하지 마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해도, 그 말씀이 아무리 마음을 찔러도, 어떤 어휘를 사용해도, 그것이 진리라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사실과 진상에 부합한다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것을 얼마나 이해했든 순종해야 한다. 형제자매가 성령의 깨우침으로 인한 빛을 교제한다면 받아들이고 순종해라. 이런 사람이 어느 수준까지 추구하면 진리를 얻어 성품 변화를 이룰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178.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받아들일 때, 고생스럽지 않을까 또는 고통스럽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마라. 나아가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찌르지 않을까 겁낼 필요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말씀, 우리의 패괴된 본질을 폭로하는 말씀을 많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많이 비추어 보되 그 말씀을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에게 비추어 보아라. 우리에게는 어떤 것이든 적지 않게 존재하므로 전부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해 볼 수 있다. 믿지 못하겠으면 체험해 보아라. … 하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고 확신해야 한다. 그의 말씀이 진리인 이상,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이성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것을 알 수 있든 없든, 인정할 수 있든 없든, 우리가 가져야 할 첫 번째 태도는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 말씀은 그에 상응하는 내적 상태를 겨냥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표면적인 현상을 다루는 것도, 더욱이 외적인 규례나 사람의 단순한 행위에 대해 폭로하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네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사람의 단순한 행위나 표면적인 현상을 폭로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너는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며, 무엇이 진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오하다. 어떤 점이 심오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폭로하는 것은 사람의 패괴된 성품과 사람의 생명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본질적인 것이다. 이는 본질적인 것이지 표면적인 현상도 더욱이 외적인 행위도 아니다. 표면적인 현상만 보면 모든 사람이 훌륭한 것 같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악령이고 어떤 사람은 더러운 귀신이라고 하겠느냐? 이것이 바로 네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현상이나 표면적인 모습을 하나님의 말씀과 맞춰 볼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추구의 중요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길> 중에서

179. 만약 네가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다면, 너는 매일 일어나는 일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연히 발생한 것은 없다는 것을, 누군가 일부러 너를 괴롭히거나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전부 하나님이 안배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안배했겠느냐? 그것은 너의 추한 모습을 들춰내기 위함도, 너를 드러내기 위함도 아니다. 최종 목적은 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너를 온전케 하고 구원하는 데에 있다. 어떻게 너를 온전케 하고 구원하겠느냐? 먼저 너에게 패괴 성품이 있음을 알게 하고, 너의 본성과 본질, 부족함, 결점 등을 알게 할 것이다. 마음속으로 이러한 것들을 깨달아야 비로소 진리를 추구하고 패괴 성품을 차츰 벗어 버릴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이 네게 준 기회이다. 너는 기회를 잡아야지, 하나님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 특히 하나님이 네 주변에 안배한 사람과 일, 사물이 늘 네 뜻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벗어나려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오해해선 안 된다. 그런 식으로 대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므로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떤 일이 임해 밝히 알지 못하고 어려움을 느낄 때, 너는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땅히 먼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많이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너도 모르는 사이에 내적 상태가 변하고,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기간에 진리의 실제가 내면에 만들어져 너는 성장할 것이며 생명의 상태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변화가 생기고 이러한 진리의 실제를 갖추면, 너에게 분량이 생기며, 분량이 생기면 생명이 생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180.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든,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을 통해 힘쓰게 하든, 사람에게 어떤 어조로 말씀하든,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단 하나, 바로 너를 구원하려는 것이다. 너를 구원하기 전에 너를 변화시켜야 한다. 고통 없이 변화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너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이 고통에는 많은 것이 포함된다. 어떤 때 주변 사람과 일, 사물을 일으켜 네가 너 스스로를 알게 할 것이다. 혹은 직접 책망하고 훈계하고 들춰낼 것이다. 수술대에 오른 것처럼 고통을 좀 겪어야만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매번의 책망과 훈계, 그리고 매번 일으키는 사람과 일, 사물이 모두 네 마음과 영혼을 흔들고 너에게 촉진제가 되면, 옳은 것이다. 그러면 네가 분량이 생기고 진리의 실제에 진입한 것이다. 모든 책망과 훈계, 매번 일으키는 환경이 너에게 어떤 느낌도 감각도 주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기도하지도 않고 진리를 찾지도 않는다면, 너는 너무 무감각한 사람이다! 사람이 지나치게 무감각하고 영 안에 지각이 없다면 하나님도 역사할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 자는 너무도 무감각하고 심하게 패괴되었구나. 내가 이토록 많은 일을 하고 이토록 많은 공을 들였건만 그의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그의 영을 일깨울 수도 없으니 심각하구나. 역사하기 쉽지 않구나.”라고 말씀할 것이다. 만약 너에게 배치한 환경, 사람과 일, 사물, 혹은 책망과 훈계 속에서 공과를 배운다면, 하나님 앞에 오고 진리를 찾고 구하는 법을 배워 자기도 모르는 새에 깨우침과 빛 비춤을 입고 진리를 얻게 된다면, 그 환경 속에서 변화되고 성과를 거두며 성장하여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도 조금씩 이해하고, 원망하지 않게 된다면, 다시 말해 그러한 환경과 시련 속에서 굳게 서서 시험을 견디게 된다면, 너는 시험에 통과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181. 사람의 패괴 성품은 사람의 모든 생각과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의 속셈 안에 숨어 있으며, 매사에 대한 사람의 관점 안에 숨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을 대하는 사람의 견해와 깨달음, 관점, 바람 안에도 숨어 있다. 바로 이런 것들 안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할까? 사람의 이런 점들을 어떻게 대할까? 바로 환경을 마련하여 너를 드러낸다. 너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너를 심판한다. 네가 패괴 성품을 드러낼 때, 너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이 생길 때, 너에게 하나님과 대립하는 영적 상태와 관점이 생길 때, 너에게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하나님과 맞서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영적 상태가 생길 때, 하나님은 너를 꾸짖고 심판하고 형벌을 내리며, 심지어 너를 징벌하고 징계한다. 너를 징계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네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함이다. ‘내가 생각한 것은 사람의 관념이고, 틀린 것이구나. 내 본심은 사탄에게서, 그리고 사람의 뜻에서 나왔어. 그러니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합하지도 못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릴 수도 없어. 그저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 분노, 나아가 저주를 받을 뿐이야. 그러니 나는 내 본심을 바꾸어야 해.’라고 말이다. 그럼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느냐? 먼저 하나님이 너를 대하는 방식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이 네게 배치해 준 환경과 사람, 일, 사물에 순종하고, 트집을 잡거나 객관적인 이유를 대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마라. 그다음으로는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할 때 사람이 실행하고 진입할 진리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자신의 패괴 성품과 사탄 본질을 인식한 다음 하나님이 너에게 마련한 환경에 순종하고, 결국 하나님 뜻에 따라 하나님이 네게 요구한 것을 실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만족시키도록 한다. 이러면 통과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실한 순종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이다> 중에서

182.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는 것도, 드러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든 드러나든 이것을 명심해라. 드러나는 것은 정죄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일이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그것은 네게 생명 체험의 전환점이 되어 줄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너는 자신의 패괴된 본모습을 깨달을 기회도 조건도 배경도 얻지 못한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 깊이 숨겨진 면면들, 인식하기도 찾아내기도 힘든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진실로 스스로를 깨닫는 것은 개과천선하여 새사람이 되고 새 삶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진실로 자신을 알면 진리가 생명이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게 되고, 진리를 갈망하여 실제에 진입하게 된다. 이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다! 네가 이 기회를 잡아 실패하고 쓰러졌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집중하여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면, 소극적이고 연약한 상태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 고비를 넘기면 한 걸음 더 성장하여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183. 하나님이 연단할수록 사람은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이 고통받으면 사람의 생명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더 평온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친밀해질 수 있으며, 하나님의 지극히 큰 사랑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연단을 수백 번 겪었고, 욥도 여러 번 시련을 겪었다. 너희도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연단을 수없이 겪어야 하고 또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드시 이 절차를 거쳐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연단은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오직 연단과 고통스러운 시련을 통해야만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이 우러나올 수 있다. 고난이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할 수 없다. 내면에 시련이 없고 진실한 연단을 겪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이 항상 밖에서 떠돌게 된다. 하지만 많은 연단을 받으면 너는 자신의 연약함과 어려움을 알게 되고, 자신이 너무 부족해 많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겨 낼 수 없음을 알게 되며, 자신에게 패역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련 속에서만이 자신의 실제 상태를 진정으로 인식할 수 있다. 시련은 사람을 더욱 온전케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184. 하나님이 사역을 통해 사람을 연단하면 사람은 고통을 받는다. 사람이 받는 연단이 많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큰 능력이 더 많이 나타난다. 반대로 받는 연단이 적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작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큰 능력도 더 적게 나타난다. 연단을 많이 받을수록, 큰 고난을 받을수록, 많은 시달림을 받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과 믿음이 더 생기며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다. 체험하는 과정에서, 너는 커다란 연단과 고통을 받고 책망과 징계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해 더 깊고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책망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인식이 매우 얕은 관계로 “하나님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어 그분을 누리게 하십니다.”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책망과 징계를 겪어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기묘할수록 더욱 가치와 의의가 있고, 네가 헤아릴 수 없고 너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을수록 더욱 너를 정복할 수 있고 얻을 수 있으며 온전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역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사람을 이렇게 연단하지 않고 이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사역은 효과가 없을 것이고 의의도 없을 것이다. 말세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택하는 것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예전에 하나님은 이 무리의 사람들을 택하였고 또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너희에게 큰 사역을 행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사랑이 더 깊어지고 순결하게 되며, 하나님이 큰 사역을 행할수록 사람이 그의 지혜를 더욱 깨달을 수 있고 그에 대한 인식도 더 깊어진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185.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에는 사람이 협력해야 하는 길이 있다. 즉, 하나님이 사람을 연단하는 것은 사람이 연단 속에서 믿음을 갖게 하려는 것이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연단, 책망, 훈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역사하여 깨우쳐 주고 빛을 비추어 주는 것은 사람이 협력하고 실천하게 하려는 것이다. 연단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고 음성을 발하지 않아도 사람에게는 해야 할 사역이 있다. 너는 원래 있는 것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이러면 너는 자신의 본분을 이행한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분명히 보았겠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검증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더 많이 기도하고 더 자주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누려야 한다. 하나님이 너를 깨우쳐 주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어도 네가 전혀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실천할 때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을 누릴 때도 늘 하나님 앞에서 구하면, 내면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만하고 실망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예배할 때는 힘이 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어둠에 빠진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예배하는 것조차 싫어한다.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네가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모르더라도 자기 본분을 이행할 수 있고,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고 진리를 실천해야 할 때 진리를 실천하면서 사람이 해야 할 것을 다 하고 원래의 이상을 지킨다면,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을 받아들이기 쉽다. 하나님이 은밀하게 역사할 때 네가 추구하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하나님이 음성을 발하고 예배에서 설교할 때는 힘이 나서 듣다가도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면 어느새 힘이 빠지고 뒷걸음질 친다면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이들은 대세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자기 주관이 없고 증거도 없으며 이상도 없다! 이런 사람들이 많다. 계속 이대로 하다가 어느 날 큰 시련이 닥치면 너는 징벌 속에 떨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주관이다. 네가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의심하지 않고, 사람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이 실천하라고 한 것을 진심으로 지킨다면, 다시 말해 하나님의 당부를 기억하고, 지금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하나님의 당부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의심하지 않으며 자기 주관을 지키고 증거를 지키면서 계속 승리해 나가면, 최종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이긴 자로 온전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주는 모든 시련에서 네가 굳게 서고 최종적으로 굳게 설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이긴 자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을 지키라> 중에서

186.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의 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다 정상이다. 하지만 한마디로 말해,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지게 된 모든 것은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것도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떻게 시련을 주든 그의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가 체험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연단을 받든 하나님은 믿음을 원한다. 그가 그렇게 함으로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이자 사람의 의지다. 그는 네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게 하는데, 네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는 너의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며,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모를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분명한 입장을 갖고 굳게 서야 할 필요가 있다. 욥이 이 정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말씀했다. 다시 말해, 네가 믿음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네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며, 네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너를 온전케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네가 바라는 것을 베풀어 준다. 너에게 믿음이 없으면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전능은 더더욱 볼 수 없다. 네가 믿음이 있어 실제 체험 중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나 안에서 너를 깨우쳐 주고 인도할 것이다. 반대로 네게 그런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희망을 잃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그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어야 네가 체험 중에서 그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을 수 있고, 그의 행사를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연단이 있어야 믿음이 있게 되고, 연단이 없으면 믿음이 생길 수 없다. 믿음이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을 때,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과 맞지 않아 이를 수 없을 때 갖춰야 하는 참된 신뢰와 진실한 마음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믿음이다. 사람은 고난받을 때 믿음이 필요하고, 연단받을 때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있으면 그에 따라 연단도 있게 된다. 이 둘은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187. 연단 사역은 주로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떠나려고 해도 떠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이 모든 희망을 잃었을 때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자기 앞날에 대해 아무런 소망도 갖지 않는 정도에 이르게 된다. 바로 이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연단이 끝나게 된다. 사람이 죽도록 힘든 지경에 이르러 죽음의 기분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이 연단이 끝나지 않는다. 봉사자의 단계에서도 연단은 극한에 이르지 않았다. 욥의 경우는 의지할 곳이 전혀 없을 정도로 극한의 연단을 받은 것이다. 사람이 아무런 희망도 없고 의지할 곳도 전혀 없는 지경까지 연단을 받아야만 그것이 참된 연단이다. 봉사자일 때 네가 언제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평온히 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 계속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면, 최종적으로 너는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네가 욥의 시련을 겪는 것은 베드로의 시련을 겪는 것이기도 하다. 욥이 시련을 받을 때 굳게 서자 마침내 여호와가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굳게 섰기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생긴 것이다. 어째서 “나는 거룩한 나라에는 나타나지만 더러운 땅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말했겠느냐? 다시 말하면, 네가 성결하게 되고 굳게 서야만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있는 것이지, 굳게 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연단으로 인해 떠나거나 원망하고 굳게 서지 못해 사탄의 조롱거리가 된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만약 욥처럼 시련 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저주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를 증오할 수는 있어도 절대 불평하지 않고 입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굳게 선 것이다. 네가 심하게 연단을 받을 때에도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에게 다른 요구를 하지 않으며 관념도 없다면, 그때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188.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의 구원, 나아가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심판, 형벌 사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고난이 없었다면, 솔직히 말해 너희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이 클수록 사람은 더욱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그럴수록 하나님의 사역이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은 더 참되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공과는 무엇을 통해 배울 수 있느냐? 만약 하나님이 고난과 연단, 고통스러운 시련을 주지 않고 은혜와 자비와 긍휼만 베푼다면 네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시련을 주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자신이 얼마나 미미하고 비열하고 천박한 존재이며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사람에게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예비한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분인지를 더 잘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과정은 몹시 고통스러워 이겨 내지 못할 때도 있고, 극도의 비통함에 잠기기도 하겠지만, 사람에게 하는 사역에서 하나님이 실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이것을 토대로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기만 하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기만 한다면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을 알 수 없고, 인간의 본질은 더더욱 알 수 없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거듭된 심판과 연단이 있어야만 그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연단과 심판을 토대로 세워진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189. 욥은 처음의 시련에서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로 인해 무너지지 않았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 냈고, 재산과 자녀 그리고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는 시련을 이겨 냈다. 다시 말해, 욥은 하나님이 그의 소유를 거두어 간 것에도 순종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감사와 찬양까지 드릴 수 있었다. 이것이 욥이 사탄의 첫 번째 시험에서 보여 준 것이며, 또한 욥이 하나님의 첫 번째 시련에서 증거한 것이다. 두 번째의 시련에서 사탄은 손을 뻗어 욥에게 갖은 해를 가했다. 욥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고통을 겪었을지라도 그의 증거는 오히려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는 그의 강인함과 믿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심으로 또 한 번 사탄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가 보여 준 것과 증거한 것 역시 또 한 번 하나님께 인정받고 열납되었다. 이번 시험에서 욥은 자신의 실제 행동을 통해 사탄에게 선포했다. 육체의 고통으로도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순종을 변하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과 경외심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선포한 것이다. 또한 죽음에 이르렀어도 하나님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버리는 일 또한 없을 것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욥의 의연함을 본 사탄은 겁이 났다. 욥의 믿음으로 사탄은 두렵고 간담이 서늘해졌으며, 사탄과 사생결단하겠다는 욥의 기세를 보고 침통해졌다.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에 사탄은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래서 사탄은 욥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짓을 그만두었다. 이것은 욥이 세상을 이기고, 육체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사망을 이겨 하나님께 속한 완전한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욥은 그 두 차례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섰으며,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실제로 살아 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의 생존 법칙의 범위 역시 확장될 수 있었다. 그 두 번의 시련을 겪은 후, 욥은 인생에 더욱 풍부한 경험이 생겼다. 이 ‘경험’으로 인해 그는 더 성숙해지고 원숙해졌으며, 더 강인해지고 더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또한, 자신이 지키고 있는 순전함의 정확성과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으로 욥은 사람을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게 되었으며, 하나님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로부터 욥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이 더 추가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에 욥은 천 리 밖으로 밀려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 욥은 육체의 고통이 극한에 달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보살핌을 느끼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게 되었다. 그런 모습은 욥이 일찍이 계획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다. 욥의 그 ‘자연스러운 발현’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욥은 자신을 미워했고, 하나님이 고통받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잊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때의 욥은 오랜 세월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데서 헤아리고 사랑하는 경지로 자신을 승화시켰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순종과 경외심을 헤아림과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상처 주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이 슬퍼하거나 상심하는 것은 물론, 괴로워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눈에 욥은 여전히 변함없는 욥이었지만, 그의 믿음과 순종,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하나님은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되었다. 그때의 욥은 하나님이 기대했던 완전함에 이르렀으며, 하나님 눈에 명실공히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욥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으로 사탄을 이겼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섰으며, 온전하게 되었고, 자신의 생명 가치를 승화시켰으며, 초월하게 되었다. 또한, 더 이상 사탄에게 공격받지 않고 시험당하지 않는 사람의 첫 사례가 되었다. 욥은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에게 참소당하고 시험당했으며,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의 손에 넘겨졌고, 또한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이기고 사탄을 물리쳤으며 굳게 섰다. 그로부터 욥은 더 이상 사탄에게 넘겨지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으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빛 속에서 살고, 사탄의 감시와 해가 없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눈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고, 자유로워졌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190.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의 급소를 찔러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두렵게 하였다. 그는 우리의 관념과 상상, 우리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셨다. 일언일행, 일거수일투족부터 모든 생각까지, 우리의 본성과 본질은 그의 말씀을 통해 드러났다. 이에 우리는 겁에 질려 전전긍긍하고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는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마음가짐, 목적,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 발견하지 못했던 패괴 성품까지 하나하나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우리는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 들었고, 철저히 인정했다. 그는 그를 대적한 우리를 심판하시고, 그를 모독하고 정죄한 우리에게 형벌을 내리셔서, 그의 눈에 우리는 옳은 것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사탄임을 느끼게 해 주셨다. 우리의 희망은 깨졌다. 우리는 더 이상 그에게 감히 그 어떤 지나친 요구도 생각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우리의 꿈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우리 중 누구도 상상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마음은 순식간에 균형을 잃어 어떻게 전진해야 할지,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계속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우리의 신앙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았고, 우리는 한 번도 예수와 ‘만나거나 알고 지내지’ 못한 것 같았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이 모든 것들로 인해 미망에 빠지고 방황했다. 우리는 낙담하고 실망했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이 치밀어 올랐다. 우리는 그것을 쏟아 내려고 시도했고, 또 다른 출구를 찾아보려 했으며, 더더욱 우리의 구주 예수를 계속 기다려 보고, 그에게 속마음을 하소연하고자 했다. 때로 우리의 겉모습은 자연스럽고 의연해 보였으나 마음은 전례 없는 실의에 빠져 있었다. 때로 우리의 겉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 보였지만, 마음속에서는 폭풍우가 치듯 몹시 괴로웠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의 모든 꿈과 희망을 앗아 갔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 이상은 헛된 기대를 품지 못하게 되었고, 그가 바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구주라는 것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그와 우리 사이에는 깊은 골이 생겼으며, 나아가 그것을 넘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그의 심판과 형벌로 우리는 난생처음 이러한 좌절과 굴욕을 맛보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진정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과 하나님의 존귀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비천하고 더러운 존재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인해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교만함과 자만심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동일 선상에 설 수도, 함께 논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이 패괴 성품으로 살지 않고, 한시바삐 이러한 본성과 본질에서 벗어나 더는 그의 역겨움과 증오를 불러오지 않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인해 우리는 그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고 더는 그의 지배와 안배에 거역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삶의 희망을 주었고, 우리는 기꺼이 그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정복 사역에서 나오게 되었다. 지옥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오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얻으셨다! 그는 사탄을 이기고 모든 원수를 물리치셨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다> 중에서

191. 그렇게 수년을 겪으며 보냈다. 인류는 연단과 형벌의 고난을 통해 풍상고초를 다 겪어 본 사람으로 거듭났다. 비록 과거의 ‘광채’와 ‘낭만’은 잃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됨의 이치를 깨닫고, 하나님이 오랫동안 사람을 구원한 그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차츰 자신의 야만성을 증오하고, 길들이기 어렵고 하나님을 수없이 오해하며 분에 넘치는 것을 바랐던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지나간 일은 사람이 참회하는 기억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은 사람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람은 상처가 날마다 조금씩 아물고 몸이 건강해지면서 우뚝 일어나 전능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줄곧 내 곁에 있었다. 그의 미소와 아름다운 얼굴은 여전히 감동적이고, 그는 여전히 자신이 만든 인류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며, 그의 두 손은 여전히 처음과 똑같이 따뜻하고 힘이 있었다. 사람은 마치 에덴동산에 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사람은 더 이상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더 이상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지 않으며, 무릎 꿇고 하나님을 경배한다. 또한 하나님의 웃는 얼굴을 보며 가장 귀한 제물을 바친다.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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