Ⅺ 사탄이 인류를 어떻게 패괴시켰는지 보여 주는 말씀

308)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과 하와는 성결한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에덴동산에 있을 때 그들은 성결했고,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으며, 여호와께 충성하고 여호와를 배반할 줄 몰랐다. 사탄 권세의 방해를 받지 않았고 사탄의 독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장 성결한 인류였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살면서 더러움에 물들지도 않고 육에 점유되지도 않았으며, 여호와를 경외했다. 하지만 나중에 사탄의 유혹을 받아 독사의 독소가 생기고, 여호와를 배반하는 마음이 생겼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성결했고 여호와를 경외했다. 그때의 그들이 바로 진정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으며, 사탄에 의해 점점 패괴되어 원래 가지고 있던 사람의 모습을 잃고 말았다. 최초의 인류에게는 여호와의 생기가 있었고, 패역이 조금도 없었으며, 마음속에 사악함이 없었다. 그때의 사람이 진정한 인류였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짐승이 되었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악하고 더러웠으며, 선함도 성결함도 사라졌다. 이런 사람이 바로 사탄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309) 인류에게 사회 과학이 생긴 이래, 과학과 지식은 인류의 마음을 차지했으며, 나아가 인류를 지배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로 인해 인류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유리한 여건을 잃게 되었고, 인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인류의 내적 세계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공허하다. 뒤이어 사회 과학자, 역사학자, 정치가들이 일어나 사회 과학론, 인류 진화론 등을 발표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했다는 진리에 어긋나는 관점을 인류의 머리와 마음에 채워 넣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만유 창조를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반대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또한 갈수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역의 기록과 구약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나 전설로 대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존엄과 위대함은 희미해졌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한다는 믿음도 아득해졌다. 사람은 더 이상 인류의 존망이나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인류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허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이 오늘날 어디에서 사역하는지, 인류의 종착지를 어떻게 주재하고 계획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느덧 인류의 문명은 이렇게 기대와 멀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오히려 죽은 사람이 더 행복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지난날 문명이 발전했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조차 이런 원망을 품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기에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그 누구도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으므로 인류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우지 못하고, 어떤 사회적 담론도 공허의 질곡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과학, 지식, 자유, 민주, 즐김, 안락으로 사람이 얻는 것은 그저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인류는 이런 것들이 있어도 불가피하게 계속 죄를 짓고, 사회의 불공평을 원망한다. 또한 이런 것들이 있어도 인류의 탐구하려는 갈망과 욕망이 멈추지는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기에, 인류의 무의미한 희생과 탐구는 사람에게 점점 더 많은 고뇌를 안겨 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불안에 떨며 인류의 미래와 앞길을 어떻게 직면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과학과 지식을 두려워하고, 공허함을 더욱 두려워하기에 이르렀다. 네가 이 세상의 자유 국가에 있든, 인권이 없는 국가에 있든 너는 인류의 운명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네가 통치자이든, 통치를 받는 자이든 너는 인류의 운명, 비밀, 종착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떨쳐 버릴 수 없고, 영문 모를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도 없다. 사회학자는 인류의 이러한 공통적 현상을 가리켜 사회 현상이라 말하지만,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인은 한 명도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310) 과학은 사람에게 물질세계의 존재만 보게 하고 호기심만 충족시켜 줄 뿐,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법칙을 일깨워 주지는 못한다. 사람은 과학에서 해답을 찾은 것 같지만, 이 해답은 사람을 미혹하고 일시적인 만족감을 준다. 이러한 만족감은 사람의 마음을 물질세계에 가둬 버린다. 사람은 과학을 통해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며 어떤 일이든 과학적인 관점에서 증명하고 받아들인다. 과학이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고 유혹하면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알거나 경배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고,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믿지 않게 됐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답을 얻어야 하는 것 아니더냐? 과학을 믿는 사람일수록 그릇됐다. 그런 사람은 어떤 일이든 과학이나 연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님을 찾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도 않는다. 심지어 하나님을 몇 년이나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한가하게 세균을 연구하거나 어떤 일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자료를 찾는 사람도 있다. 진리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으며, 많은 일에서 과학적인 관점이나 지식, 과학적인 해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존재하겠느냐?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과학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연구하려는 사람도 있다. 일례로, 많은 종교 전문가가 노아의 방주가 정박했던 산에 가서 방주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방주의 현상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없으므로 이야기와 역사(歷史)만 믿게 된다. 이것이 과학과 물질세계를 연구한 결과이다. 물질을 연구하면, 연구 대상이 미생물이든 천문 지리이든, 하나님이 존재하고 만유를 주재한다는 결과는 절대로 얻을 수 없다. 그럼 과학은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느냐?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을 연구하게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의심하게 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사탄은 과학으로 사람의 무엇을 패괴시키려 하겠느냐? 과학적으로 입증된 결과를 가지고 사람을 미혹하고 마비시키려 하지 않겠느냐? 불확실한 답으로 사람의 마음을 점유하여 사람이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를 찾지도, 믿지도 않게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과학 역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중에서

311) 사탄은 소위 말하는 지식에 자신의 많은 처세 철학과 사상을 담아 사람에게 주입한다. 그와 동시에 사람이 그러한 사상, 철학, 관점을 근거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하나님이 만유와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은 지식을 배울수록, 또한 지식을 습득할수록 하나님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탄이 사람의 내면에 관점, 관념, 생각들을 주입했기 때문이다. 사탄이 이런 사상들을 사람의 내면에 주입할 때, 사람은 패괴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사람은 무엇으로 살고 있느냐? 정말 이런 지식에 기대어 살고 있느냐? 아니다. 사람은 지식 속에 숨겨진 사탄의 사상, 관점, 철학에 기대어 산다. 이는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핵심이며 목적이자 방법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중에서

312) 사람이 지식을 습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단순한 특정 지식을 활용하기도 하고,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거나 꿈을 이루게 만들기도 한다. 사탄은 대체 너를 어떤 길로 끌고 가려고 이러는 걸까? 사람은 지식 학습이 비난할 만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게 말해서,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가진다는 것은 패기가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삶의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크게 성공하는 게 더 멋진 삶 아닌가? 가문을 빛내고 이름을 후세에 떨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 이는 좋은 일이고, 정당한 일이고,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있는 사탄이 사람을 그러한 길로 유도하는 것으로 그칠까? 당연히 아니다. 사실,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든,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바람을 가지고 있든, 사람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 두 단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두 단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대체 무엇일까? 바로 ‘명예’와 ‘이익’이다. 사탄은 공격적인 방법 대신 부드럽고 사람의 사고방식에 맞고 온건한 방법을 써서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사탄의 생존 방법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인생의 꿈이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으로 귀결된다. 어떤 위인이나 유명인이든,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좇는 것은 ‘명예’와 ‘이익’ 두 가지뿐이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인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기꺼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확실하게 넘겨 버린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을 이렇게 의지하고 사탄에게 충성하게 된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그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면 광명도, 정의도, 아름다움과 선함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된다. 사람에게 명예와 이익의 유혹이 너무나 강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사람이 평생 동안, 심지어 영원히 좇아도 끝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냐? 혹자는 “지식을 배우는 것은 시대나 세상에 뒤처져 도태되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모르는 것을 공부하는 것일 뿐이에요. 배움이란 자신의 직업, 미래, 생계를 위한 것일 뿐이죠.”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의식주나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동안 힘들게 공부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과 고된 시간을 견디는 것일까? 바로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다. 명예와 이익이 눈앞에서 손짓하며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고 고생하고 싸워야 명예와 이익을 향해 나아갈 수 있고, 이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평탄한 길을 가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그 정도 고생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지식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람이 지식을 습득하면서 깨닫게 되는,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생존 법칙이 아니겠느냐?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인생의 ‘원대한 이상’이 아니겠느냐? 위인의 사상, 유명인의 품격, 영웅의 기개,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협객이나 검객이 가진 강직함과 부드러움을 예로 들 수 있지 않겠느냐? (네.) 이러한 생각이 한 세대 또 한 세대에 영향을 미치고, 한 세대 또 한 세대 이를 받아들이게 만들어,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며 이를 끊임없이 좇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지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법과 수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313) 사탄은 명예와 이익을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만 사로잡혀 이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치욕을 참고, 명예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 놓았다. 족쇄가 채워진 사람은 족쇄에서 벗어날 능력이나 용기가 없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족쇄를 차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신하며, 갈수록 사악해지고 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이 사탄의 명예와 이익에 넘어가 파멸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314) 수천 년의 고대 문화와 역사적 지식으로 사람의 사상과 관념, 정신적 면모는 물샐틈없이 밀봉되었으니, 호추부두[1]와 같다. 사람은 십팔 층 지옥에서 살며, 하나님에 의해 지하 감옥에 던져진 것처럼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 봉건사상에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억눌려 질식당하고, 반항할 여력이 없어 그저 묵묵히 참고 또 참는다…. 지금까지 아무도 정의와 공평을 위해 싸우거나 일어서지 않았다. 그저 봉건적 예교(禮敎)의 가혹한 학대와 속박에 시달리며 개돼지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날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사람은 구타를 당해 늦가을의 낙엽처럼 시들었으며, 누렇게 뜨고 바싹 야위었다.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기억을 잃고, 인간 세상이라 불리는 지옥에서 속절없이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고대하는 종말의 날이 ‘편히 누리는’ 날이기라도 한 양 종말의 날을 기다리고, 지옥과 함께 파멸을 맞고자 한다. 봉건적 예교가 사람의 삶을 ‘저승’으로 이끌어 사람은 더더욱 반항할 힘을 잃어버리고, 온갖 압박 속에서 한 걸음씩 저승으로 추락하여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오늘날, 사람은 하나님과 생면부지의 사이가 되어 얼굴을 마주하면 계속 피하기에 급급하다. 모두가 하나님을 안 적도, 본 적도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한쪽에 고립시켰다. 기나긴 인생 여정이 펼쳐지는 내내 하나님은 줄곧 기다려 왔고,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한 번도 사람에게 퍼붓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침묵하며 사람이 개과천선하기를 기다릴 따름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인간 세상에 와서 사람과 함께 세상의 고난을 겪었고, 오랜 시간을 같이 지냈으나 사람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묵묵히 인간 세상의 쓰라린 아픔을 감내하며, 자신이 가져온 사역을 행할 뿐이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해 인내하며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받고 있다. 또한 사람 앞에서 소리 없이 그들을 돌보며, 자신을 낮추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그리고 인류의 필요를 위해 사역하고 있다. 고대 문화의 지식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몰래 훔쳐 마왕과 그 자손에게 넘겼다. ‘사서오경(四書五經)’은 사람의 사상과 관념을 또 다른 패역의 시대로 끌어갔으며, 사람이 ‘서경(書經)’의 편자를 더욱 숭배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관념은 한층 더 깊어졌다. 어느덧 마왕은 사람 마음속의 하나님을 무정하게 내쫓고, 득의양양하게 사람의 마음을 차지했다. 그때부터 사람은 추악한 영혼을 가지게 되었고, 마왕의 몰골을 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마왕의 사악한 독은 하루하루 사람 안에서 퍼져 나갔고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사람은 더 이상 자유를 누릴 수 없었고, 마왕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마왕에게 사로잡혀 항복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어린 마음에는 오래전에 ‘무신론’이란 암세포가 심어졌다. ‘과학과 기술을 배워 4대 현대화를 실현하자. 세상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릇된 이론을 교육시키고, 말끝마다 “우리의 근면한 노동으로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꾸려 가자.”라고 외쳐 대며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이에 동참하여 조국에 보답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렇게 마왕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자기 앞에 오게 만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공로(하나님이 손으로 온 인류를 받들고 있는 공로)를 자신에게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없으며, 게다가 뻔뻔하게 하나님의 백성을 빼앗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자신은 쥐처럼 책상 위로 ‘뛰어올라’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하나님’으로 간주하고 경배하게 한다. 이 악당들아! 입으로 “세상에는 하나님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은 자연법칙에 의한 변화이고, 비는 안개가 찬 공기를 만나 응결되어 작은 물방울로 맺힌 후 땅에 떨어지는 것이다. 지진은 지형의 변형이 초래한 지각의 흔들림이고, 가뭄은 태양 표면의 핵자가 깨지고 갈라지면서 공기의 습기가 사라진 현상이다. 이것이 자연 현상이지 어떻게 하나님의 행사일 수 있겠는가?”라고 외치며 끔찍한 소문을 퍼뜨리는구나.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고대 유인원에서 진화한 것이고, 지금의 세계는 약 억만년 전의 원시 사회가 교체되며 형성된 것이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국민의 두 손에 달려 있다.”라는 등의 입에 담기도 민망한 논리를 외치는 자도 있다. 그리고 돌아서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화상을 벽에 걸거나 책상 위에 봉안하고 경배하게 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치면서 스스로를 신으로 간주하고, ‘사정없이’ 하나님을 지계(地界) 밖으로 밀어내며,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마왕 노릇을 하려 드는구나. 실로 터무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하나님이 마왕의 원수이고, 하나님과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게 만들며, 하나님을 내쫓고 자신은 법망 밖에서 노닐고자[2] 한다. 이 마왕들아! 어찌 그것의 존재를 용납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여 뒤죽박죽, 엉망진창[3]으로 만들어야 그만둘 태세다. 하나님께 끝까지 맞서려는 듯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달려들며, 고의로 하나님과 대립하고 점점 강한 압박을 가하는구나. 추악한 몰골은 이미 오래전에 낱낱이 드러났고[4], 진퇴유곡[5]의 처지에 이르렀건만 하나님에 대한 증오심은 여전하며, 하나님을 통째로 집어삼켜야 마음속의 원한이 풀릴 것처럼 군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그 원수를 용납할 수 있겠느냐! 그것을 말살시키고 근절해야 금생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 텐데, 어찌 그것이 계속 미쳐 날뛰도록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그것은 사람을 패괴시켜 하늘해(원문: 天日)를 모르게 만들었고, 아둔하고 무감각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상인의 이성을 상실하게 했다. 그러니 어찌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을 바쳐 그것을 쳐부수고 불태워 후환을 없앰으로써 하나님의 사역이 하루빨리 공전의 성황을 이루도록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 악한 무리는 인간 세상에 와서 소란을 일으키고 불안을 조성하며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사람을 벼랑 아래로 떨어뜨려 온몸이 산산조각 나게 한 다음 사람의 시체를 집어삼키려는 속셈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망치고, 하나님과 겨루어 보겠다는 헛된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을 걸었지만[6],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쉽겠느냐! 십자가는 결국 극악무도한 마왕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속하지 않고, 이미 십자가를 마귀에게 던졌다. 하나님은 일찍이 승리하였으며, 더 이상 인류의 죄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다. 그는 온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7> 중에서

315) 사탄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하나님에게 맞서고 있다. ‘오랜 문화유산’이니 소중한 ‘고대 문화의 지식’이니 ‘도가 학설, 유가 학설’이니 ‘공자의 경전, 봉건적 예교’니 하는 것들은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 현대의 선진적인 과학기술과 발달한 공업, 농업, 상업은 그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고대 ‘유인원’이 가져다준 봉건적 예교만을 강조하면서 고의로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고, 대적하고, 무너뜨리며 오늘날까지 사람을 해쳐 왔다. 게다가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키려[7] 한다. 사람은 봉건적 예교의 가르침을 받고 고대 문화의 지식을 물려받아 크고 작은 마귀로 물들어 버린 지 오래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접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오심을 즐겁게 맞이하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얼굴에 살기가 가득하고, 여기저기 독살스러운 기운이 잔뜩 올라와 있으며, 하나님을 육지에서 몰아내려 한다. 손에 칼을 쥔 채 진을 치고 하나님을 ‘말살’하려 한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마귀의 땅에는 우상이 널려 있다. 온 땅의 상공에 종이를 태우고 향을 피우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하여 숨 쉬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것은 마치 독사가 뒹굴며 일으키는 썩은 흙냄새 같아서 구토를 유발한다. 또한, 머나먼 지옥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듯한 악귀의 ‘독경’ 소리는 사람을 몸서리치게 한다. 알록달록한 우상이 빼곡히 진열된 땅은 주지육림의 세상으로 전락했다. 마왕은 음모를 실현한 듯 섬뜩한 웃음을 멈추지 않는데, 사람은 오히려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마귀에 의해 패괴되어 정신이 혼미하고 실의에 빠져 있다는 것 역시 깨닫지 못한다. 마귀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허물어뜨리려 하고, 하나님을 다시 한번 욕보이고 암살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허물고 방해하려고 한다. 그러니 하나님이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땅에서 인간 세상의 일에 ‘개입하는’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자신의 추악한 몰골을 폭로하는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망치는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악에 받친 마귀가 하나님이 땅에서 그것의 정치 기강을 바로잡는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어찌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겠느냐? 추악한 몰골이 남김없이 드러나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고, 언급할 수조차 없다. 이것이 마귀의 본질 아니겠느냐? 그런데도 추한 영혼은 이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 공모자[8]들아! 그것들은 속세에 내려와 쾌락을 추구하고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염량세태를 초래하고, 사람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다. 사람을 농락하여 성결했던 본래의 모습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악하고 사악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세상에 군림하고 세상을 호령하려 하는구나. 하나님의 사역을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가로막고, 사람을 철옹성처럼 둘러싸 가둔다. 이렇게 많은 죄업을 쌓고, 화를 야기하고도 벌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단 말이냐? 잡귀와 요괴가 세상에서 잠시 횡행하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심혈을 물샐틈없이 차단했으니, 정말이지 극악무도하다. 이러할진대 어찌 하나님이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찌 하나님이 크게 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심히 가로막고 대적하니, 패역이 너무도 심하구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7> 중에서

316) 사탄은 국가 정부, 유명인사와 위인들의 교육과 가르침을 통해 사람을 패괴시키며, 그들의 허튼소리는 사람의 생명 본성이 되었다.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는 말은 사탄의 명언으로, 이미 모든 이의 내면에 침투해 생명이 되었다. 이밖에 처세 철학에 관한 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각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이용해 사람을 교육함으로써 끔찍한 재난의 망망대해로 빠뜨리며, 사람은 결국 사탄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멸망당하고 만다. 사회에서 수십 년간 분투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당신은 그 나이까지 세상에서 살면서 엄청난 성공을 이뤘습니다.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 준 명언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가장 중요한 건, 공직에 있으면서 뇌물 준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과 아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이 그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지 않겠느냐? 공직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그의 본성이 되었고, 관직에 머무는 것은 그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의 삶과 행위, 사람됨에는 아직도 사탄의 독소가 많이 들어 있고, 진리는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사람의 처세 철학, 일 처리 방식, 사람의 좌우명에는 모두 큰 붉은 용의 독소가 가득하며, 이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사람의 뼛속과 핏속에 흐르는 것은 모두 사탄의 것이다. 공직에 있는 자, 권세를 잡은 자, 성공한 자에게는 모두 그들만의 성공의 길, 성공 비법이 있다. 그 비법이 곧 그의 본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들이 세상에서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숨겨진 음모와 간계를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의 본성이 매우 음험하고 악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는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되었고, 모든 사람의 혈관에 흐르는 것은 사탄의 독액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의 본성이 패괴되고 사악하고 불온적인 것이며, 사탄의 철학으로 점철되고 뼛속까지 물들어 완전히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적대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317) 하나님은 사람의 미신 활동을 가장 증오하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놓지 못한 채, 그러한 미신 활동이 하나님이 정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날까지도 깨끗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젊은이들이 치르는 결혼 피로연, 혼수, 축의금, 축하 파티 등 결혼과 관련된 허례허식과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말, 죽은 이를 위해 장례식에서 행하는 모든 무의미한 미신 활동들을 더욱 혐오한다. 예배일(종교계에서 지키는 안식일 포함)도 하나님은 혐오한다. 또한 사람들 사이의 인지상정적인 왕래나 세속적인 교류를 더욱 혐오한다. 모두가 다 아는 ‘설날’이나 ‘크리스마스’ 역시 하나님이 정한 것이 아닌데, 명절 기간 동안 마련하는 여러 가지 진열품이나 놀이(대련(對聯), 폭죽, 등롱, 성찬, 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 경축)는 더 사람들의 우상이 아니겠느냐? 안식일에 사용하는 떡, 포도주와 세마포는 이보다 더한 우상이라 하겠다.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용대두(2월 2일)’, ‘단오절’, ‘중추절’, ‘납팔’, ‘양력설’ 등 전통 명절과, 종교계의 ‘부활절’, ‘세례일’, ‘예수 탄생일’ 등 말도 안 되는 명절들은 전부 예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전통이 된 것으로, 사람의 풍부한 상상력과 ‘교묘한 구상’으로 인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것에 불과하다. 마치 빈틈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전부 사람을 가지고 노는 사탄의 속임수일 뿐이다. 사탄이 떼를 지어 거하는 곳일수록, 진부하고 낙후된 곳일수록 봉건적이고 케케묵은 풍속이 더 심하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사람을 꽁꽁 얽어매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한다. 종교계의 수많은 기념일들은 언뜻 독창적으로 보이며, 마치 하나님의 사역에 다리를 놓아 줄 것 같지만, 이는 모두 사탄이 사람을 얽어매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무형의 밧줄이자 사탄의 간계라는 걸 어찌 모른단 말이냐? 사실 하나님은 한 단계의 사역을 끝내면, 당시 그가 사용했던 도구와 ‘풍격’을 흔적도 없이 전부 없애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건한 신자’들은 여전히 형상이 있는 물질을 경배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람은 언뜻 보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을 문밖으로 내쫓고 ‘사탄’을 집 안에 모셨다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사람들은 ‘예수의 초상화’, ‘십자가’, ‘마리아’에서 ‘예수의 세례’, ‘예수의 만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것들을 ‘천주’로 여겨 경배하고 말끝마다 ‘주님,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짖으니 가소로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냐?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이 혐오하는 이와 비슷한 말과 행동들이 수없이 많이 전해 내려와 하나님의 앞길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으며, 나아가 사람의 진입에 더욱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사탄이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패괴시켰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위트니스 리의 이론’, ‘로렌스의 체험’, ‘워치만 니의 개론’, ‘바울의 사역’ 등이 이미 사람의 내면에 가득 차 있어,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디서부터 손을 대 사역을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 돼 버렸다. 사람 내면에 ‘개인주의’, ‘이론’, ‘법도’, ‘규칙’, ‘제도’ 따위가 너무 많이 들어 있는 데다가, 여기에 봉건 미신적인 색채까지 더해져 사람을 약탈하고 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은 마치 감동적인 신화를 다룬 컬러 영화와 같아 뜬구름처럼 허황되고, 상상만 해도 심금을 울리며, 눈이 휘둥그레지게 한다. 사실 오늘날 하나님이 와서 하는 사역은 주로 사람의 이러한 미신적 색채를 다루고 없앰으로써 사람의 정신적 면모를 완전히 바꿔 놓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이 조상들의 유전을 이어받음으로 오늘날까지 지속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친히 시작하고 친히 끝내는 것이다. 영적 위인들의 유전을 계승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이 과거 어느 한 시대에 행한 대표적인 일을 이어받을 필요도 없다. 사람은 이런 것들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늘날 독특한 형태의 말씀과 사역을 하는 하나님이 굳이 사람을 ‘신경 쓰이게’ 할 리가 있겠느냐? 사람은 오늘날의 흐름 속에서 ‘조상’들의 유전을 이어받아 오늘날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길의 끝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연월일을 증오하듯, 사람의 그런 작태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3> 중에서

318) 사탄은 수많은 이야기를 날조하여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역사책에 실어 전통문화나 미신과 관련된 인물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 예를 들면 여덟 신선이 바다를 건넌 이야기, 당나라 승려가 인도에 가서 불경을 구하는 이야기, 옥황상제 이야기, 정의로운 소년 나타와 악을 저지르는 동해 용왕 사이의 대결을 다룬 이야기, 봉신연의 등등, 이런 이야기들은 중국에서 사람들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지 않으냐?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 알고 있다. 대략적인 내용일지라도 마음과 머리에 아로새겨져 잊히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미리부터 마련해 둔 것이다. 사탄이 시대별로 퍼뜨리는 각종 사상이나 전설 이야기는 사람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갉아먹고 망가뜨리고, 사람들을 각종 마법과 저주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즉, 네가 그러한 전통문화와 이야기, 미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마음과 머릿속에 새기는 순간, 마치 마법과 저주에 걸린 것 같다. 즉, 그런 문화와 사상, 전통적인 이야기에 사로잡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너의 삶과 인생관에 영향을 미치고, 사물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삶의 길을 찾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것이 바로 네가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고 떨쳐 내려고 해도 떨쳐 낼 수 없는 마법과 저주이다. 게다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마법과 저주에 걸리면 무의식적으로 사탄을 경배하게 되고, 마음속에 사탄의 형상이 자리 잡게 된다. 즉, 사탄을 자신의 우상 또는 자신이 숭배하고 존경하는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부지불식간에 이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사람의 언행을 지배하게 된다. 너는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나 전설이 가짜라고 생각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이야기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대상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게 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사상과 그것들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마귀와 사탄, 우상을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이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법과 저주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319)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마지막 방법은 사회 풍조를 이용하는 것이다. 사회 풍조는 많은 것을 포함한다. “패션, 뷰티, 헤어, 미식을 가리키는 건가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에 관한 것이냐? 그것도 풍조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런 것은 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사회 풍조가 사람의 생각, 처세 방식, 생존 목표와 인생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이는 사람의 생각을 좌우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풍조에는 사악한 기운이 들어 있다. 사람은 사악한 기운에 물들어 계속해서 타락하고, 양심, 인성, 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도덕성, 인격과 품격도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사람은 인격과 인성, 양심, 그리고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풍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풍조는 눈으로 볼 수 없다. 풍조라는 바람이 불 때 앞장서서 그런 일, 그런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풍조에 물들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그러면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풍조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매몰되거나 지배받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풍조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풍조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부할 힘이나 능력이 없거니와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

… 사탄은 이런 사회 풍조를 이용하여 사람을 악마의 소굴로 조금씩 유인한다. 사회 풍조의 영향으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돈, 물욕, 사악함, 폭력을 숭상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마음에 자리 잡는 순간 사람은 어떻게 변하느냐? 사탄 마귀로 변한다! 사람에게는 어떤 것을 지향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냐? 사람이 무엇을 숭배하느냐? 사악함과 폭력을 좋아하게 되는 반면 아름다움과 선함을 싫어하고, 평화는 더욱 싫어하게 된다. 그리고 정상 인성을 가지고 평범한 삶을 살기보다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육적인 향락을 즐기고 자신의 육을 최대한 만족시키고 싶어 하며, 그 어떤 제약이나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한다. 사람이 이런 풍조에 빠지게 되면 그동안 습득했던 지식이 풍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느냐? 네가 잘 알고 있는 전통문화와 미신이 이런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전통적 윤리 도덕과 예의가 사람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느냐? 예를 들어 ≪삼자경≫이 그런 풍조에서 발을 빼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아니요, 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사람은 갈수록 사악해지고 교만해지며, 안하무인이 된다. 갈수록 이기적이고 악랄해진다.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지고, 가족 간의 사랑이 없어지며, 친척과 친구에 대한 이해심이 사라지고, 사람 사이엔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폭력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며, 폭력적인 방법으로 밥그릇을 차지하고,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다. 또한 폭력적이고 사악한 방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한다. 이 인류가 무시무시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320)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라는 말은 사탄의 철학으로, 인류에게서, 그리고 모든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주입되어 자리 잡고 있으므로 풍조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도 실생활에서 이 말을 접했을 때 차츰 묵인하게 되고 이 말이 사실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과정 아니겠느냐? 이 말에 대한 이해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거나 자신이 직접 겪은 일에 기반하여 각기 다른 정도로 해석하고 수긍한다. 그렇지 않으냐? 사람이 이 말을 얼마나 체험했는지는 차치하고, 이 말이 사람의 마음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무엇이겠느냐? 너희 모두를 포함해 이 세상의 인류에게서 드러나는 성품이 한 가지 있는데, 무엇이라고 보면 되겠느냐? 사람은 돈을 숭배한다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이를 지우기가 쉽겠느냐? 쉽지 않다! 사탄이 사람을 참 심각하게도 패괴시킨 것 같다! 그럼 사탄이 이런 풍조를 통해 사람을 패괴시킨 것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느냐? 너희는 돈 없이는 이 세상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질수록 높은 지위를 누리고 존귀해진다. 기를 펴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과 달리 부자는 높은 지위를 누리고 거만을 떨며 큰소리를 치면서 오만 방자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 말과 이런 풍조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 많은 사람이 돈을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지 않겠느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존엄성과 인격을 포기하지 않겠느냐? 더 나아가 수많은 사람이 돈 때문에 본분을 이행할 기회와 하나님을 따를 기회를 놓치지 않겠느냐? 이는 사람에게 손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탄은 이런 방식, 이런 말로 사람을 이 정도로 패괴시켰다. 사탄의 속셈이 음흉하지 않으냐? 이는 아주 악랄한 수법이 아니더냐? 이런 말이 유행할 때 처음에는 수긍하지 못하던 네가 이를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너라는 사람의 마음은 사탄에게 철저히 빼앗겼다. 그래서 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말대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너는 이 말에 벌써 얼마나 영향을 받았더냐? 참도이고 진리임을 알면서도 추구할 힘이 없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뻔히 알면서도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으며, 진리를 얻기 위해 고난을 감내하려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미래와 운명을 희생하더라도 하나님과 끝까지 맞선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고 어떻게 행해도, 너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게 되어도, 너는 오로지 이 말만 고집하고 집착하며 자신을 바친다. 즉, 이 말이 네 행위와 사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이 말에 네 운명이 좌우될지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고 이런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어 끌려다니는 것은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생긴 결과가 아니겠느냐? 사탄의 철학과 패괴 성품이 네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것 아니겠느냐? 네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사탄이 목적을 달성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너는 사탄이 사람을 이렇게 패괴시키는 것을 보았느냐? 느꼈느냐? (아닙니다.) 보지도 못했고 느끼지도 못했다. 그럼 이제 사탄의 사악함을 알겠느냐? 사탄은 언제 어디서든 사람을 패괴시킨다. 사람은 막으려고 해도 막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사탄의 사상, 관점, 사탄에게서 비롯된 사악한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후에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만 아니라 보물처럼 끌어안고 소중하게 여기면서 사탄의 지배를 받고 농락당한다. 이렇게 사람은 사탄에 의해 갈수록 패괴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중에서

321)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에 물들었고,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뒤처진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삶, 저속한 풍속과 생활, 이러한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심하게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심하게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사람의 성품은 나날이 더 악랄해져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거나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기꺼이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반면에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마음껏 쾌락을 찾아 즐기고, 진흙탕에서 마음껏 자신의 육체를 패괴시키고 있다.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설령 진리를 듣더라도 실천할 마음이 없고, 하나님이 이미 나타난 것을 보아도 찾으려는 마음이 없다. 이렇게 타락한 인류에게 구원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겠느냐? 이렇게 부패한 인류가 어떻게 빛 속에서 살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322)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은 주로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통제와 협박이다. 사탄은 어떻게든 너의 마음을 지배하려 든다. ‘협박’이란 어떤 의미더냐? 위협과 강박으로 그것의 말을 따르게 하는 것이며, 어떤 결과를 연상하게 만듦으로써 두려움을 느껴 사탄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는 순순히 따르게 된다.

둘째는 기만과 현혹이다. ‘기만과 현혹’이란 무엇을 가리키느냐? 사탄은 전설과 거짓말을 지어내어 너를 속이고, 그 거짓말을 믿게 만든다. 또한 사탄은 절대로 너에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다고 알려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너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예 ‘하나님’이란 단어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다. 다른 것으로 이를 대체하고 너를 미혹해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이 ‘기만’이란 것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으며 여러 측면을 포함한다.

셋째는 강제 주입이다. 무엇을 주입하겠느냐? 강제 주입이 사람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겠느냐? 사람의 동의를 거친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네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소용없다. 사탄은 네가 상황 파악을 전혀 못 한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 생존 법칙, 본질을 주입한다.

넷째는 위협과 회유이다. 즉, 사탄은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네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따르며,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만든다. 사탄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작은 선심을 베풀 때도 있고, 너를 범죄로 유인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괴롭힌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너를 공격하고 해를 가한다.

다섯째는 미혹과 마비이다. ‘미혹과 마비’란 사탄이 듣기에 그럴싸하고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는 말과 사상을 퍼뜨리는 것이다. 언뜻 보기엔 사람의 육적인 것과 삶, 미래를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너를 속여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게 마비시킨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꼬임에 넘어가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여섯째는 심신 파괴이다. 사탄이 사람의 무엇을 파괴하겠느냐? (사람의 마음, 사람 전체를 파괴합니다.)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여 거스를 힘을 앗아 간다. 즉, 너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씩 사탄 쪽으로 기울게 하는 것이다. 사탄은 매일 네게 그런 것들을 주입하고, 그러한 사상과 문화로 악영향을 끼쳐 너를 물들인다. 너의 의지를 조금씩 꺾음으로써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거나 소위 말하는 정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말끔히 없애 놓는다. 그렇게 되면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에게 맞설 의지를 상실하고 사탄의 뜻대로 흘러가게 된다. ‘파괴’란 사람을 괴롭혀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상태로 만든 후 기회를 틈타 집어삼키는 것이다.

사람을 패괴시키는 사탄의 이 모든 수단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어 반항하지 못하게 하고 사지로 내몬다. 즉, 사탄이 동원하는 수단은 어떤 것이든 너를 타락시키고, 사탄의 지배를 받게 하며, 죄악의 늪에 빠지게 한다. 이것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사탄의 수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323)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 하나님의 태도와 마음은 사람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반면, 사탄은 사람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느냐? 사탄은 그렇지 않다. 사람을 해할 궁리만 한다. 그렇지 않으냐? 사탄이 사람을 해하려고 궁리할 때, 그 마음은 다급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사람에게 역사할 때, 사탄의 악독하고 사악한 본성을 잘 드러내 주는 두 개의 단어를 통해 너희는 사탄의 가증스러움을 잘 깨달을 수 있다. 바로 사탄은 모든 사람을 대할 때 강제적으로 점령하고 들러붙음으로써 그 사람을 완전히 통제하고 해치려는 목적과 야심을 이루려고 한다는 것이다. ‘강제 점령’은 무슨 뜻이냐? 네가 원하는 상태이겠느냐, 원하지 않는 상태이겠느냐? 네가 알 때이냐, 모를 때이냐? 네가 모를 때이다! 네가 아무것도 모를 때, 사탄은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아무 짓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아무런 전제나 배경도 없이 너의 주위를 맴돌며 기회를 노리다 강제로 점령하고 들러붙음으로써 너를 완전히 통제하고 해치려는 목적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게서 인류를 빼앗기 위한 사탄의 가장 전형적인 속셈과 행동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4> 중에서

324)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불결의 땅은 차마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더럽고 도처에 참상이 난무해 있다. 곳곳에서 유령이 횡포와 협잡을 일삼고, 사시이비[9]한 언행과 악랄한 수법으로 이 마귀의 성을 무참히 짓밟아 시체가 즐비하고 썩은 내가 온 땅의 상공을 뒤덮게 했다. 게다가 경계가 삼엄[10]하니 누가 바깥세상을 볼 수 있겠느냐? 마귀는 사람의 온몸을 꽁꽁 묶고 두 눈을 가렸으며, 입을 단단히 막아 버렸다. 수천 년 동안 횡행한 이 마왕이 오늘날에도 마귀의 성을 이토록 빈틈없이 감시하고 있으니, 마치 난공불락의 ‘마귀 궁전’ 같다. 그리고 이 집 지키는 개들은 하나님이 그것의 빈틈을 노려 그들을 일망타진하면 ‘안락’의 땅을 잃을까 두려워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이런 마귀의 성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었겠느냐? 하나님의 친절함과 사랑스러움을 어디에서 누려 봤겠느냐? 인간 세상의 일을 어찌 알겠느냐?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하나님이 지극히 은밀하게 성육신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어두운 사회의 마귀는 잔인무도하다. 사람을 죽여도 눈 한 번 깜빡하지 않는 마왕이 어찌 사랑스럽고 선량하며 거룩한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하겠느냐? 어찌 하나님의 강림을 손뼉치며 반기겠느냐? 그 개만도 못한 노예들!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오래전부터 하나님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하나님을 학대하고 극히 잔인하게 굴며 하나님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러면서 흉포하게 약탈을 일삼고, 악행을 저질렀으며, 양심을 내다 버리고, 무고한 인류를 유혹해 혼미한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했다. 고대의 계승자니, 경애하는 지도자니 하는 것들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이다! 세상을 농락해 어둠으로 밀어 넣었다! 무슨 종교와 신앙의 자유니, 국민의 합법적인 권익이니 하는 것들은 전부 죄악을 덮으려는 수법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누가 지지하더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피를 흘린 자 그 누구더냐? 조상 대대로 노예로 부림 받던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하나님을 노예로 부린다. 그러니 어찌 분개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천고의 원한이 마음에 맺히고, 만고의 죄악이 가슴에 응어리져 있다. 그러니 어찌 증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위해 원한을 갚고, 하나님의 원수를 철저히 없애 버릴 것이다. 그들에게 계속 미쳐 날뛰고 제멋대로 발광해 보라고 해라! 이제 때가 왔다. 사람은 그 마귀의 추악한 몰골을 벗겨 버리기 위해 일찍이 온몸의 힘을 모아 준비하였고 모든 심혈을 기울였으며 대가를 치렀다. 속임을 당하고 고통과 고난을 받는 사람들이 그 아픔 속에서 떨쳐 일어나 이 악마를 저버리도록 말이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물샐틈없이 가로막는 것이냐? 어찌하여 갖가지 수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는 것이냐? 진정한 자유와 합법적인 권익이 어디에 있느냐? 공평이 어디에 있느냐? 위로가 어디에 있느냐? 따스함이 어디에 있느냐? 어찌하여 간계로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는 것이냐? 어찌하여 하나님의 강림을 강제로 막는 것이냐? 어찌하여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한 땅에서 마음대로 노닐지 못하게 하는 것이냐? 어찌하여 하나님을 머리 둘 곳도 없게 쫓아가 죽이려는 것이냐? 인간 세상의 따스함은 어디에 있느냐? 인간 세상의 환영은 또 어디에 있느냐? 어찌하여 하나님이 간절히 기다리게 하는 것이냐? 어찌하여 하나님이 애타게 부르짖게 하는 것이냐? 어찌하여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걱정하게 몰아붙이는 것이냐? 어두운 사회와 궁지에 몰린 집 지키는 개들은 어찌하여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냐? 고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냐? 하나님은 너희를 위해 크나큰 고통을 감내하고 가슴 아프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골육을 너희에게 주었는데, 어찌하여 너희는 본 체도 하지 않는 것이냐? 너희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강림을 저버렸고, 하나님의 우정을 거절했다. 어찌하여 그리도 양심이 없는 것이냐? 이런 어두운 사회에서 너희는 억울함을 계속 참겠단 말이냐? 어찌하여 가슴에 천고의 원한을 품지 않고 마왕의 ‘배설물’을 채우는 것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8> 중에서

325) 사탄은 사람을 속이고 명예를 훔치면서 늘 자신을 정의의 선봉자나 정의의 본보기로 치켜세운다. 사탄은 정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해하고 사람의 영혼을 집어삼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마비시키고 미혹하고 부추기는 것이다. 사탄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악행을 지지하고 따르게 만들어 사탄과 함께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에 대항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의 음모와 계략, 추악한 몰골을 간파하여 더 이상 사탄에게 짓밟히거나 농락당하는 것을 원치 않고 사탄을 위해 목숨을 걸거나 사탄과 함께 징벌받고 멸망되길 바라지 않을 때, 사탄은 보살 같았던 얼굴을 금세 바꾸고 가면을 벗어던져 사악하고 잔인하고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고 사악한 그 세력에 반항하는 모든 사람을 제거하지 못해 안달이 난다. 그때의 사탄은 더 이상 사람이 믿을 만한 정인군자의 모습으로 가장하지 못하고 양가죽 뒤에 숨겨져 있던 추한 악마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사탄은 음모가 발각되고 본모습이 폭로되면, 즉시 노발대발하며 야만성을 드러내고, 사람을 해치고 집어삼키려는 욕망이 점점 더 강렬해진다. 왜냐하면 사탄이 사람의 깨달음으로 인해 더욱 분노하고, 자유와 광명을 갈망하고 사탄의 농락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의 소망으로 인해 강한 복수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탄이 노발대발하는 것은 사악함을 지키기 위함이며, 또한 사탄의 잔인한 본성이 실제로 드러난 것이다.

사탄은 사악한 본성을 행동 곳곳에서 드러낸다. 사람을 미혹시켜 자신을 따르게 만들고, 사람을 이용해 나쁜 물이 들도록 한다. 나아가 진면목이 폭로되고 간파되어 사람에게 버려진 후에는 복수심을 갖기까지 한다. 사탄이 사람에게 저지른 그 모든 악행에서 사탄의 사악한 본질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고, 사탄이 긍정적인 것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사탄이 모든 사악한 사물의 근원임이 증명되지 않는 것이 없다. 사탄이 행하는 모든 것은 사탄의 사악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악행을 계속하기 위한 것이다. 또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과 어긋난 것이고,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 법칙과 규칙을 깨는 것이며,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탄에게도 분노가 있지만 그것은 사악한 본성을 쏟아 내는 방식에 불과하다. 사탄이 악에 받쳐 격분하는 이유는 사람에게 알릴 수 없는 음모가 드러나서 자신의 계략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고, 하나님을 대신하고 하나님이 되려는 야심과 욕망을 이루는 데에 타격을 받고 방해를 받았으며, 인류 전체를 장악하려는 목적이 물거품이 되어 영원히 실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한 차례 또 한 차례 계속해서 진노를 내려 사탄의 음모가 실현되지 못하도록 저지하였고 사탄의 사악이 자생하고 판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사탄은 하나님의 진노를 증오하면서도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마다 사탄의 추악한 본모습이 폭로되었고, 사악한 욕망이 빛 속에서 드러났으며, 동시에 사탄이 인류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이유도 빠짐없이 드러났다. 사탄이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사탄의 사악한 본성을 실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며, 사탄의 음모가 폭로되는 것이다. 물론, 사탄의 모든 격노는 사악한 것이 파괴되고 긍정적인 것이 보호받고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또한 하나님의 진노는 거스를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1] 호추부두(戶樞不蠹): 문의 회전축은 좀먹지 않는다는 뜻으로, 늘 움직이는 것은 쉽게 부식되지 않으며, 오랫동안 망가지지 않음을 비유함. 여기서는 완고하고 고루한 사람의 지식, 문화, 정신적 면모를 풍자함.

[2] 법망 밖에서 노닐고자[逍遙法外]: 여기서는 마귀가 미쳐 날뛰고, 횡포를 부리는 것을 의미함.

[3] 엉망진창[狼藉遍地]: 여기서는 마귀의 행동이 난폭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음을 가리킴.

[4] 낱낱이 드러났고[暴露無遺]: 여기서는 마왕의 몰골이 하나님에 의해 폭로된 것을 의미함.

[5] 진퇴유곡[焦頭爛額]: 마왕의 추악한 몰골을 비유함.

[6] 모든 것을 걸었지만[孤注一擲]: 마귀의 음흉하고 악랄한 술수를 비유함. 여기서는 풍자적으로 쓰였음.

[7] 집어삼키려[呑噬]: 사람의 모든 것을 빼앗은 마왕의 잔혹한 행위를 가리킴.

[8] 공모자[幫凶]: 흉악한 일이나 나쁜 짓을 돕는 사람으로, 악당 패거리와 같은 부류임.

[9] 사시이비[捕風捉影]: 말을 하거나 일을 할 때 허무맹랑한 것을 근거로 삼음을 비유함. 본문에서는 마귀가 사람을 해치는 수단을 가리킴.

[10] 경계가 삼엄[戒備森嚴]: 여기에서는 마귀가 사람을 해칠 때 매우 악랄한 수단을 사용하여 사람을 꼼짝도 못 하게 통제하는 것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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