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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패괴된 인류의 사탄 성품과 본질을 폭로하신 대표적인 말씀

1.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원은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사람의 양심이 무감각하고 도덕이 부패하고 사상이 진부하며 정신 면모가 뒤처졌다.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기 전에는 본래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순종했으며, 이성과 양심이 건전하고, 인성이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에는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이성과 양심, 인성이 무감각해지고 사탄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게 되었다. 사람의 이성이 정상에서 벗어나고, 사람의 성품이 짐승처럼 변해 하나님에 대한 패역도 점점 많아지고 심해졌지만, 사람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무턱대고 대적하고 거역하기만 한다. 사람의 성품이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이성, 식견, 양심이 발현되는 것이다. 사람의 이성과 식견이 건전하지 못하고 양심이 극도로 무감각해졌기 때문에 사람의 성품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성품이 되었다. 사람의 이성과 식견을 바꿀 수 없으면 성품의 변화는 물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은 언급조차 할 수 없다. 사람의 이성이 건전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도 적합하지 않다. 정상적인 이성이란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스러우며,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이고 양심적이며, 하나님에 대해 일편단심이고,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이성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고 충성심이 사라지고 사모하지 않게 되었다. 양심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할 뿐만 아니라 뒤에서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인 줄 뻔히 알면서도 뒤에서 판단한다. 순종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고, 계속 하나님께 달라고 하고 요구하기만 한다. 이처럼 이성이 비정상적인 사람은 자신의 비열한 행위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패역한 행위를 통회하지도 못한다.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이성이 조금은 회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면서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성이 더 건전하지 못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2. 사람의 패괴 성품이 드러나는 근본 원인은 사람의 무감각해진 양심과 악독한 본성, 건전하지 못한 이성에 있다. 사람의 양심과 이성이 정상으로 회복된다면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의 양심이 줄곧 무감각한 상태에 있고, 사람의 이성이 한 번도 건전했던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점점 더 무감각해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가 점점 많아지고, 심지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말세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문전 박대 하고, 하나님의 육신을 정죄하며, 또 하나님의 육신이 비천하다고 여긴다. 사람에게 인간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이렇게 잔혹하게 대할 수 없고,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이렇게 악독하게 대할 수 없으며, 정말로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성육신 하나님께 이같이 ‘감사’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성육신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이 온 것을 욕하거나 하나님이 성육신한 사실을 부정하는 듯, 귀찮아하는 듯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나님이 온 것을 사람이 어떻게 대하든, 조금도 환영하지 않고 오로지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만 해도, 어쨌든 하나님은 싫은 기색 없이 계속 자신의 사역을 한다. 사람의 성품은 극도로 악독해졌고, 사람의 이성도 극도로 무감각해졌으며, 사람의 양심은 이미 악한 자에게 짓밟혀 진작에 원래 가지고 있던 양심이 아니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인류에게 이처럼 많은 생명과 은혜를 베풀어 준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진리로 인해 하나님을 혐오한다. 사람은 진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조차 혐오감을 갖게 된 것이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서 ‘기름을 짜내고’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것보다 수십 배나 많은 이자를 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양심과 이성을 가졌으면서도 사람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너무 많이 헌신했으나 하나님은 자신에게 너무 적게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물 한 그릇을 주고는 우유 두 그릇의 금화를 달라고 손을 내밀고, 내가 그의 집에서 하룻밤 묵으면 이보다 몇 배가 넘는 숙박비를 요구한다. 너희는 이런 인성과 양심을 갖고도 생명을 얻으려 하느냐? 정말 비열한 소인배들이구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3. 수천 년 패괴된 사람들은 모두 무감각하고 우둔해졌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가 되었다. 게다가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 역사(歷史)는 ‘사기(史記)’에 기록되었으며, 또한 패역한 행위는 사람 스스로도 다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원인은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패괴되었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지금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 하나님을 보고도 배반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도 배반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보고도 계속 하나님을 배반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이성과 양심이 원래의 기능을 잃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모든 사람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자 독사다. 사람이 내 앞에서 얼마나 가련한 척하든 나는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베풀지 않는다. 사람은 흑과 백의 차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진리와 비진리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성이 이렇게 무감각함에도 여전히 복을 받고 싶어 하고, 이렇게 비열한 인성을 가지고도 권력을 잡고 왕 노릇을 하고 싶어 한다. 이런 이성을 가지고 누구에게 왕 노릇을 하겠느냐? 이러한 인성으로 어떻게 보좌에 오를 수 있겠느냐? 정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모두 제 주제도 모르는 소인배로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권하는데, 우선 거울을 찾아 자신의 추한 몰골을 비춰 보아라. 네가 왕이 될 재목이냐? 너는 복받을 만한 오관을 가졌느냐?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진리를 조금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아름다운 앞날을 생각하다니 참으로 망상이구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4.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민족 기상’이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악영향과 봉건사상을 남겨 조금의 자유도 느낄 수 없게 옭아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패기도, 의지력도, 진취 정신도 없이 소극적이고 뒷걸음질 치며, 노예근성에 젖게 되었다. 이러한 객관적 요소들은 사람의 사상적인 풍격, 개인의 이상(理想), 도덕, 성품을 씻을 수 없는 더러운 추한 몰골로 만들었다. 이에 사람들은 공포의 암흑세계에 갇힌 양 벗어날 생각도, 이상적인 세상도 꿈꾸지 못한 채, 그저 현실에 안분지족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노력하고 땀 흘려 일하며, 안락하고 원만한 가정을 꿈꾸고, 부부간에 사랑하며, 자녀는 효도하고, 즐거운 노년을 보내며 일생을 편안하게 보낸다…. 수십 년,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아니 심지어 지금도 사람은 이렇게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그 누구도 최고의 인생을 만들지 못했다. 그저 어두운 세상에서 서로 죽고 죽이고, 이익을 두고 다투며, 아귀다툼을 했을 뿐이다. 그들 중 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더냐? 누가 하나님의 사역에 신경을 썼더냐? 흑암 권세에 점령당한 사람의 이 모든 것들은 이미 고질화되어 하나님의 사역을 전개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사람은 하나님이 오늘날 맡긴 일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3> 중에서

5. 사람의 본성과 나의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의 패괴된 본성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되고, 사람의 본성은 사탄에 의해 가공되고 패괴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사탄의 사악함과 추함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진리의 세상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광명 속에서 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본성에 선천적으로 진리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본질을 가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반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며 진리를 싫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 본성이 바로 내가 말하려는 문제, 즉 배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6. 사람의 생존은 영혼의 반복적인 환생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 즉, 모든 사람은 영혼이 환생할 때 육의 생명을 가지게 된다. 그 생명은 육의 탄생과 함께 시작하여 육체의 최후, 즉 영혼이 빠져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된다. 사람의 영혼은 왔다 가고, 갔다 오는 것을 반복하며 전 인류의 생존이 유지된다. 육의 생명은 곧 사람 영혼의 생명으로, 사람의 영혼은 사람 육의 존재를 지탱한다. 즉, 모든 사람의 생명은 영혼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육이 본래 가지고 있던 생명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의 본성은 사람의 육이 아닌 영혼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어떻게 사탄에 의해 유혹되고, 괴롭힘을 당하고, 패괴되는지는 오직 사람의 영혼만이 알고 있고 사람의 육은 이를 알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인류가 자신도 모르게 갈수록 불결해지고, 사악해지며, 어둠에 빠지는 것이다. 또한, 인류는 나와 거리가 점차 벌어지고, 더욱 암담한 날을 보내게 된다. 사람의 영혼이 사탄의 손아귀에 묶여 있으므로 사람의 육도 당연히 사탄에게 점령당해 있다. 이런 육, 이런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과 대적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떻게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내가 사탄을 반공중으로 쫓아낸 이유가 나를 배반했기 때문인데 인류라고 다르겠느냐? 이것이 바로 배반이 사람의 본성인 이유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7. 나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행위는 배반이고, 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지 못하는 행위는 배반이며, 나를 속이고 거짓말로 나를 기만하는 행위는 배반이다. 관념으로 가득하고 또한 이를 사방으로 퍼트리는 것은 배반이고, 나를 위한 증언과 이익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배반이며, 마음속으로는 나를 멀리하면서도 웃는 얼굴로 배웅하는 행위는 배반이다. 이는 너희가 으레 할 수 있는 행위이고,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행위이다. 너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배반하는 일을 애들 장난으로 치부할 수 없고,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다. 지금 내가 너희 가운데서 사역해도 너희가 이럴진대, 상관하는 이가 없는 날이 오면 너희는 산을 차지하고 왕 노릇을 하는 마적이 되지 않겠느냐? 그때 너희가 하늘이 무너져 내릴 정도의 큰 화를 부른다면 그 뒷수습은 또 누가 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중에서

8. 너희 모두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해서 자신에게 배반의 본성이 없지 않을까 하는 요행을 바라지 말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몹시 역겨운 일이다. 나는 매번 특정인이나 특정 부류의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상대로 말을 한다. 네가 어떤 일에서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일에서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결혼에 실패하여 진리 추구에 대한 믿음을 잃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정 파탄으로 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는 의무를 저버린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일시적인 쾌락과 짜릿함을 즐기고자 나를 떠나고, 어떤 사람은 어둠의 절벽에서 구르는 한이 있어도 광명 속에서 살며 성령의 역사가 주는 기쁨과 위안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돈 욕심을 채우고자 친구의 만류도 뿌리치고 지금도 여전히 길을 헤매며 올바른 길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도 있다. 나의 보호만을 노리고 내 이름 아래 잠시 머무르는 사람도 있고, 삶에 대한 미련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억지로 나에게 조금 봉헌하는 사람도 있다. 이같이 사람의 부도덕하고 비인격적인 행위가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배반하는 행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물론 나는 사람의 배반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닌 사람의 본성이 자연스레 드러난 것임을 알고 있다. 나를 배반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를 배반하는 일을 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으며, 오히려 전전긍긍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럼 너희는 이런 배반을 어떻게 만회할지, 오늘날의 상황을 어떻게 전환시킬지 생각하고 있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중에서

9. 사탄에 의해 패괴된 영혼은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만을 구별하고 사탄의 진영에서 구원하여 오늘의 하나님나라로 데려왔다. 이들은 더 이상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본성은 육에 뿌리박혀 있다. 즉, 너희의 영혼이 이미 구원되었음에도 본성은 예전 그대로이며, 너희가 나를 배반할 가능성은 여전히 백 퍼센트이다. 따라서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역하는 것도 너희의 본성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 너희 모두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애를 쓰고 고난을 견디고 있으나 한 가지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즉, 너희 모두가 나를 배반하고 다시 사탄의 권세 아래로, 사탄의 진영으로 돌아가 예전의 삶으로 돌이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될 때는 너희가 지금처럼 인간미가 있고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을 리 없다. 심각한 경우 멸망에 이르고, 더 나아가서는 영원히 재생하지 못하고, 영원히 다시 환생하지 못하며 중벌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너희 앞에 놓인 문제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10. 너희는 본디 진흙에서 분리되어 나온 존재다. 어찌 됐건 너희는 더러운 악의 잔당 가운데서 골라낸 자들로, 원래부터 불결한 존재이며, 하나님이 혐오하는 자들이다. 너희가 원래 그것에 속했고, 그것에 의해 유린되고 더럽혀졌으므로 진흙에서 분리되어 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는 결코 성결하지 않으며, 일찍이 사탄에게 농락당한, 사람 같지도 않은 자들이다. 이런 평가야말로 너희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너희는 본디 고인 진흙탕 속의 불순물이지, 진흙 속에서 사는 물고기나 새우와 같은 좋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에게는 기쁨으로 삼을 만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툭 터놓고 말해서, 너희는 본래 가장 비천한 하류 사회의 개돼지만도 못한 짐승들이다. 솔직히 너희에게는 이런 호칭이 전혀 지나치지 않다. 이는 과장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단순화한 것이다. 이런 표현은 너희에게 존칭이라 할 수 있다. ‘사람’으로서의 식견이나 언행, 그리고 모든 생활과 진흙 속에 있는 너희의 지위만 봐도 너희의 신분이 ‘남다르다’는 것을 십분 증명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원래 신분과 가치는 어떠한가> 중에서

11. 사람이 하나님을 추구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자기 재물을 쓰길 원치 않으며, 하나님을 위해 자기 일생의 정력을 쓰려고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하나님이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사람의 생각에 맞지 않는 점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너희 같은 이런 인성으로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도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다. 너희는 자신이 인류 중의 불량품이라는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인성이 가장 비천하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존칭’이 무엇인지 모른단 말이냐?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희를 늑대의 아비나 어미, 늑대의 자식이나 손자라고 한다. 너희는 늑대의 후예, 늑대의 민족이다. 너희는 자신이 상등급의 인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자기 신분을 알고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한다. 너희는 인류 가운데 가장 악랄한 한 무리의 비인류이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모른단 말이냐? 내가 너희들 가운데서 사역하면서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너희의 이성이 정상을 되찾지 못하고 너희의 양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늑대’라는 호칭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고 저주와 징벌의 날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너희는 출생이 비천하고, 본래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한 무리 굶주린 늑대이고, 한 무더기 잡동사니나 쓰레기다. 내가 너희에게 사역하는 것은 너희처럼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역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계속 이렇게 거역한다면 나는 나의 사역을 그만둘 것이며, 앞으로 다시는 너희에게서 사역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에게 옮겨 가서 사역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영원히 너희를 떠나게 된다. 나는 나와 적이 되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의 마음에 합하길 원하느냐, 아니면 나와 적이 되길 원하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12. 인류는 내 원수요, 나를 대적하고 거역하는 악한 자요, 내게 저주받은 악한 자의 후예요, 나를 배반한 천사장의 후손이요, 일찍이 내게 버림받고 나와 첨예하게 맞서는 악마의 유산이다. 전 인류의 상공은 혼탁하고 어두워 맑은 느낌이 전혀 없으며, 인간 세상 또한 칠흑같이 캄캄하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 살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고, 고개를 들어도 햇빛을 볼 수 없다. 길은 질퍽거리고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하며, 도처에 송장이 즐비하다. 어두컴컴한 구석에는 죽은 자의 해골이 가득하고, 음산한 구석에는 온갖 귀신이 머물고 있다. 인류 가운데에는 어디서나 귀신들이 출몰하고 있다. 더럽기 그지없는 온갖 짐승의 후손들이 서로 참혹하게 싸우고 죽이고 있는데, 그 소리는 간담을 서늘케 한다. 이러한 시대, 이러한 세상, 이러한 ‘인간 낙원’ 가운데 어디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겠느냐? 사람은 또 어디에서 인생의 종착지를 찾겠느냐? 일찍이 사탄에게 짓밟힌 인류는 본래 사탄의 형상을 연기하는 존재이며, 더욱이 사탄의 화신이고, 사탄을 위해 ‘힘 있는 간증’을 하는 증거물이다. 이러한 인류, 이러한 인간 말종, 이렇게 ‘패괴된 인류 족속’의 자손이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느냐? 내 영광이 어디에서 나오겠느냐? 내 증거는 무엇으로 논하겠느냐? 나와 맞서며 인류를 패괴시킨 그 원수는 내가 일찍이 창조한, 내 영광과 나를 살아 내는 모습이 충만했던 인류를 더럽히고 또 내 영광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사람을 사탄의 추태와 선악과의 과즙만 가득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중에서

13. “하늘에서는 사탄이 나의 원수이고, 땅에서는 사람이 나의 철천지원수이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으니 나는 한 명도 빠짐없이 구족을 멸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한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원수이다. 사탄이 하나님의 원수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큰 은덕에 보답하기는커녕 ‘거슬러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이 하나님께 ‘효심’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부모’가 길러 준 은혜에도 보답하지 않으니 땅에 있는 사람이 바로 하늘에 있는 사탄과 한 핏줄이란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는 사람이 사탄과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족을 멸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38편> 중에서

14. 하나님은 날마다 꿈속에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려고 불러 깨우고 있지만, 모든 백성은 수면제를 먹기라도 한 듯 계속 혼미한 상태에 있다. 잠시라도 일깨우지 않으면 다시 잠이 들어 지각을 잃어버린다. 또 모든 백성은 전신의 2/3가 마비되기라도 한 듯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부족한지를 모르고, 심지어 무엇을 입고 먹어야 하는지조차도 모른다. 여기에서 큰 붉은 용이 사람을 패괴시키려고 얼마나 애썼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것의 추악한 몰골은 중국 각지에 두루 퍼졌고, 심지어 사람을 진저리나게 하여 더 이상 이 부패하고 속된 나라에 머물고 싶지 않게 하였다.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는 것은 큰 붉은 용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날마다 솟구치는 분노 속에서 사람을 일깨워 주고 있고, 사람은 날마다 분노 어린 하나님의 눈길 아래에서 살고 있다. 그러한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찾을 줄도 모르고 그냥 보고만 있으면서 떠먹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굶어 죽을지라도 스스로 밥을 찾아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의 ‘양심’은 오래전에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얼음장’으로 변질되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일깨우지 않았다면,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냉동’ 상태나 ‘동면’ 상태에 있기라도 한 듯 말이다.”라고 말씀했다. 사람은 모두 동면에 들어간 동물이 겨울을 나는 것처럼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요구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백성의 현재 상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에게 빛 속에서 성육신 하나님 자신을 알기만 요구했을 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변화하거나 생명이 얼마나 많이 성장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더럽고 불결한 큰 붉은 용을 물리치기에 충분하며, 이로써 하나님의 큰 능력을 더 잘 나타낼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13편> 중에서

15. 내 사역이 완성될 때, 나는 더 이상 사람에게 ‘생계 보조금’을 요구하지 않고 나의 본래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리하여 ‘내 집의 것’을 사람에게 쏟아부어 누리게 할 것이다. 오늘날 사람은 나의 시련 속에서 검증을 받고 있다. 내 손이 본격적으로 사람에게 닿을 때 사람은 더 이상 나를 감탄하는 눈으로 보지 않고, 미움으로 나를 대할 것이다. 이때 나는 사람의 마음을 즉시 채취하여 표본으로 삼는다. 내가 ‘현미경’으로 사람의 마음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사람의 마음에는 진정 나를 사랑하는 성분이 없었다. 수많은 세월, 사람은 나를 속이고 기만해 왔다. 알고 보니 사람의 좌심방, 우심실에는 나에 대한 ‘미움’이라는 독소가 꽉 차 있었다. 그러니 내가 사람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내가 사람에게 조사 결과를 보여 줘도 사람은 여전히 각성하지 않는다. 사람의 뇌리 속에 이런 것들은 오늘 다시 언급하기에는 불편한 과거의 일인 듯했다. 그래서 사람은 냉랭하게 ‘화학 실험 결과’를 본 후 결과표를 내게 건네고 아무렇지 않게 훌쩍 떠난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내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지 못해요.”라는 따위의 말을 한다. 사람은 경멸하는 미소를 짓고 ‘압박하는’ 눈빛을 희미하게 내비칠 뿐이다. 마치 내게 너무 성실하게 하지 말고 대충대충 하라고 암시하는 것 같았고, 내가 사람의 ‘민낯’을 들춰내어 사람의 ‘법’을 위반한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은 나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사람의 미움이 어디서 오는지 똑똑히 보았다. 내가 봤을 때 흐르는 사람의 피가 온몸의 동맥을 통과해 곧장 심장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여기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듯 굴며 자신의 득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여기서 사람의 ‘사심 없는’ 희생 정신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나를 위해 ‘바삐 뛰어다닐 수 있으니’ 이 역시 사람의 ‘충성심’이며, ‘매우 갸륵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또 사람이 기뻐하도록 ‘칭찬’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사람은 ‘편지’를 보고 문득 약간의 불쾌감을 느낀다. 사람의 모든 행위가 나의 소리 없는 편지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의 모든 행동을 계속 지도하지만 사람은 내 말을 귀찮아하는 듯하다. 그래서 내가 입만 열면 사람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귀를 막는다. 그리고 내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계속 미워한다. 내가 사람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사람이 가진 전부를 들춰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람은 밑지는 장사를 했고, 더는 생존의 길이 없어졌다. 그래서 나에 대한 사람의 증오는 더 심해졌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32편> 중에서

16. 사람은 본성에 따라 한 가닥 희망이라도 보이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면서 자연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찾는다. 사람은 본성이 원래 독선적이어서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다 얕잡아 본다. 그래서 하나님은 “편안할 때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평안하고 행복할 때에도 자신과 더불어 즐기자며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씀했다. 말을 꺼내고 나니 가슴이 시리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지만, 사람은 인간 세상에 온 하나님을 전력으로 대적하면서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하나님은 사방을 떠도는 고아 같기도 했고, 또 국적 없이 세상을 떠도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그리워하거나 진실로 사랑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돌아온 하나님을 환영하지 않았다. 돌아온 하나님을 보았을 때, 웃음 가득했던 얼굴엔 삽시간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마치 폭풍우가 곧 휘몰아치기라도 할 듯, 하나님이 사람의 집에 있는 행복을 빼앗아 가기라도 하는 듯,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람에게 축복은 주지 않고 재해만 주기라도 한 듯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고 계속 사람을 저주하기만 했다는 인상만 남아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외면하고 반기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쌀쌀맞게 대하는 태도가 바뀐 적이 없었다. 사람의 마음속에 그런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이성도 없고 도의도 모르며,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인정’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씀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매정했으며, 이른바 ‘공의’를 취하여 하나님을 건성으로 대했다. 수많은 세월, 사람은 언제나 그랬으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성품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씀했다. 여기에서 사람의 무게가 깃털 몇 개의 무게밖에 되지 않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14편> 중에서

17. 하늘의 하나님은 가장 더럽고 음란한 땅에 왔으면서도 단 한 번도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히 사람들의 박해[1]와 억압을 감내할 뿐이다. 그는 한 번도 사람의 과한 요구에 반항하지 않았으며, 사람에게 지나친 요구를 한 적도, 무리한 요구를 한 적도 없다. 그저 불평하지 않고 가르침, 깨우침, 책망, 말씀의 연단, 일깨움, 권면, 위로, 심판, 폭로 등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사역을 열심히 할 뿐이다. 이런 것 중 사람의 생명을 위하지 않는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비록 사람의 앞날과 운명을 거두어 갔다고는 하나, 하나님이 하는 일 중 사람의 운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사람의 생존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고난과 칠흑처럼 어두운 흑암 세력의 압제에서 구해 내려고 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사람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인자한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 하나님의 그 절박한 심정을 누가 이해하겠느냐? 불처럼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기대의 대가로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마음과 무정하고 냉혹한 눈동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의 훈계와 욕설, 냉소와 조롱, 비방과 무시였다. 또한, 비웃음과 유린, 저버림, 오해와 원망, 거부와 회피였다.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전부 기만이었고, 공격이었으며, 쓰디쓴 결과뿐이었다. 따뜻한 말씀은 ‘차디찬 시선과 손가락질’로 돌아왔으니, 하나님은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며[2]’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수많은 세월, 하늘의 별과 마주하며 지새운 밤이 얼마였고, 전전반측하며 하늘의 달과 함께 철야한 적 얼마였던가! 아버지와 이별하는 것보다 천배나 더한 고통을 참아 내고, 사람의 공격과 ‘깨뜨림’을 견디고, 사람의 ‘훈계’와 ‘책망’을 감당했다. 하나님이 ‘낮추고 감춘’ 대가로 얻은 것은 사람의 차별[3], 그리고 불공평한 시선과 대우였다. 하나님의 소리 없는 인내와 포용은 사람의 탐욕 섞인 시선으로 돌아왔다. 사람은 인정사정없이 하나님을 밟아 죽이려 했고, 하나님을 갈라진 땅 틈 사이에 밀어 넣으려 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보기 드물게 똑똑했다’. 사람은 자신이 업신여기고 별 볼 일 없다 생각하는 하나님을 만인의 발아래 깔아뭉개고는 스스로를 추켜올렸다. 마치 ‘자기가 왕좌를 차지’하려는 듯 보였고, ‘독재하며[4]’ ‘수렴청정’하려는 듯 보였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고분고분 순순히 ‘무대 뒤의 감독’ 역할이나 하게 하며, 반항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였다. 즉, 하나님께 ‘마지막 황제’처럼 조금의 자유도 없는 ‘꼭두각시[5]’ 역할을 시킨 것이다. 사람의 작태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이런저런 요구를 한단 말이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건의’를 한단 말이냐? 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연약함을 헤아려 달라고 요구한단 말이냐? 사람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있더냐? 끝없이 이어지는 하나님의 관대함을 누릴 자격이 있더냐? 계속되는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을 자격이 있더냐? 사람의 양심은 어디에 있느냐? 일찍이 하나님의 마음을 더없이 아프게 하였고,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하나님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가슴 가득 기쁨을 안고 세상에 왔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아주 작은 온정이라도 베풀기를 원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늘 사람들의 위로를 얻지 못했으며, 돌아온 것이라고는 설상가상[6] 식의 공격과 괴롭힘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 탐욕스럽고, 사람의 욕망은 너무 커서 하나를 얻으면 둘을 갖고 싶어 했으며, 무리한 트집을 잡으면서 하나님께 조금의 자유도, 발언권도 주려 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은 묵묵히 울분을 참으며 사람의 조종을 받아야만 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9> 중에서

18.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고, 얼마나 많은 이의 공격을 받았더냐!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요구를 늦추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연구’하고 있으며, 조금의 관용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를 ‘가르치고’, ‘질책하고’, ‘혼낼’ 뿐이다. 마치 하나님이 길을 잘못 들까 걱정하는 것 같고, 하나님이 땅에서 함부로 행동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며, 막무가내로 굴어 일을 그르칠까 겁내는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가 항상 이런 식일진대, 하나님이 상심하지 않을 리 있겠느냐? ‘성육신’한 것만으로도 이미 크나큰 고통과 치욕을 감내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가르침까지 받으라고 하는 것은 어떠하겠느냐? 세상에 왔는데도 조금의 자유조차 없어 마치 저승에 갇힌 것 같고, 반항도 못 한 채 사람들의 ‘해부’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이 전부 치욕이 아니더냐? ‘예수’가 정상인의 가정에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크나큰 굴욕이다. 자신을 지극히 낮추사 이 풍진세상에 임할 때 지극히 평범한 육신을 취한 것은 더더욱 큰 치욕이다. 지고지상한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었으니, 그것이 고통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인류를 위한 일이 아니더냐?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생각한 것이 한 번이라도 되더냐? 유대 족속에게 버림받고, 죽임 당하고,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하늘을 원망하지도 땅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수천 년 전의 비극이 다시 한번 유대 족속과 비슷한 이방의 족속 가운데서 재연되고 있으니, 모두가 같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단 말이냐? 하나님을 대적한 후에 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사람이 아니냐? 어째서 사람은 항상 정의를 향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지 않는 것이냐? 어째서 사람은 늘 하나님이 하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냐? 사람의 의로움은 어디에 있느냐? 사람의 공평함은 어디에 있느냐? 사람이 무슨 낯짝으로 하나님을 대표한단 말이냐? 사람의 ‘정의감’은 어디에 있느냐? 사람이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은 얼마나 있느냐? 사람은 모두 보배를 알아보지 못하고[7], 흑백을 가리지 못하며[8], 정의와 진리를 깔아뭉개고, 불공평과 불의를 높이 들어 올린다. 또한, 사람은 밝은 빛을 몰아내고 어둠 속에서 환락을 좇는다. 진리와 정의를 찾는다는 사람이 오히려 빛을 쫓아내고, 하나님을 찾는다는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을 발로 짓밟으며, 자기 자신을 높이 추켜올린다. 사람은 모두 비적[9] 같다. 그런데 무슨 이성이 있단 말이냐? 누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겠느냐? 누가 정의를 지키겠느냐? 누가 진리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겠느냐? 전부 흉악무도한 자들이다!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고, 또 광란의 환호성을 멈추지 않았으니, 닭이나 개 같은 부류다. 당을 지어 독립 왕국을 세우고, 곳곳에서 바람 잘 날 없이 일을 만들고 있다. 무턱대고 미친 듯이 짖어 대는데, 닭도 울고 개도 짖으니, 온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어 ‘시끌벅적’하다. ‘부화뇌동[10]’하는 사람들은 끝도 없이 튀어나와서는 자기 조상들의 ‘위대한 이름’을 높이 떠받들고 있다. 그 짐승 같은 것들은 오래전에 하나님을 뇌리에서 지워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람은 모두 개와 닭 같아 한 마리가 짖으면 백 마리가 따라 짖는다[11]”라고 말씀한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의 사역을 이처럼 ‘요란’하게 오늘날까지 해 왔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정의가 있는지, 하나님께 발붙일 곳이 있는지, 내일이 어떻게 될지, 자신의 비루함과 더러움은 어떻게 될지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한 번도 미래를 걱정한 적이 없다. 모든 이익과 보물은 전부 품에 끌어안고 하나님에게 던져 주는 것은 그저 잔배냉적[12]뿐이니, 이 얼마나 잔인한 인류냐! 사람은 하나님께 조금의 인정도 베풀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모든 것을 몰래 훔쳐 먹고는 하나님을 멀리 차 버리고 그의 존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나님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짓밟으면서 입으로는 감사하다 말하고 하나님을 찬미한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기만한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떠받들고’ 하나님의 얼굴을 우러러보면서도 으스대고,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서는 하나님의 ‘불의’를 ‘심판’한다. 입술로는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고 눈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욕한다. 하나님께 ‘관용’을 보이면서도 하나님을 억압하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또, 손에는 하나님의 물품을 들고 있고 입으로는 하나님이 준 음식을 씹으면서 눈으로는 냉혹하고 무정하게 하나님을 주시하는데, 마치 하나님을 통째로 삼켜 버리려는 것 같다. 진리를 보고도 ‘사탄의 간계’라고 우기고, ‘정의’를 보고는 그것을 ‘자기희생’으로 둔갑시킨다. ‘사람의 행위’를 보고는 ‘하나님의 어떠함’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사람의 재능’을 보고는 ‘진리’라고 우긴다.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는 “오만 방자하다”, “거만을 떨며 잘난 척한다”라고 억지를 부리고, ‘하나님’에게 기어이 ‘사람’이라는 표식을 붙이고는 강제로 그를 끌어다가 사탄의 더러움에 물들어 버린 ‘피조물의 자리’에 앉히려 든다.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명히 알면서 기어이 ‘사람의 글’이라고 말한다. ‘영이 육신 되었고’, ‘성육신 하나님’임을 확실히 알면서도 기어이 ‘사탄의 후예’라고 말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고 감춘 것’을 알면서도 “사탄이 치욕을 당하고 하나님은 이미 승리했다”라고 말한다. 이 폐물들아! ‘집 지키는 개’보다도 못하구나! 흑백을 분변치 못하는 것도 모자라 짐짓 흑백을 전도하고 있다. 사람의 세력과 포위 공격 속에서 어찌 하나님이 빛을 볼 날이 허용되겠느냐?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고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을 죽음으로 밀어 넣으며 얼굴을 조금도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 의로움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사랑은 또 어디에 있단 말이냐? 사람은 하나님의 곁에 앉아 하나님을 자신의 발아래에 짓누르고는 자신에게 용서를 빌게 하고, 자신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게 하며, 자신의 모든 지시를 따르게 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눈치를 보고 행동하게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노발대발[13]하며 고함을 친다. 이렇듯 흑백이 뒤집어진 흑암 권세하에서 하나님이 비통해하지 않을 리 있겠느냐? 근심하지 않을 리 있겠느냐? 왜 하나님의 이번 사역을 천지개벽과 같은 일이라고 하겠느냐? 사람의 행위는 참으로 ‘풍부하다’. ‘끊임없이 흐르는’ ‘생수의 근원’은 사람의 마음을 ‘적시고’, 그 ‘생수의 근원’은 또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어 ‘겨루기’를 마다하지 않는다[14]. 게다가 거리낌 없이 하나님 대신 사람에게 공급하고, 사람 또한 ‘제 몸을 돌보지 않고’ 그것에 협력하고 있다. 그러니 무슨 성과가 있겠느냐? 냉정하게도 하나님을 사람들의 이목에서 벗어난 외진 곳에 치워 놓고는, 누군가 주목할까 봐 심히 걱정하고, 하나님의 생수의 근원이 사람을 황홀한 경지로 이끌고 사람을 얻을까 봐 겁낸다. 그래서 사람은 오랜 세월, 세상사들을 겪은 후 하나님과 아귀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비판 투쟁’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눈 속에 있는 들보라도 되는 양, 어떻게든 잡아서 불 속에 넣어 몽땅 단련시키려고 안달이며, 하나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포복절도하며 기뻐 날뛴다. 그러면서 하나님도 연단에 들어갔다고 하며, 하나님의 불결한 불순물들을 몽땅 태워 버리겠다고 말한다. 마치 그렇게 해야만 이치에 들어맞고 ‘하늘’의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의 이런 폭력적이고 비열한 행위는 고의 같기도 하고 무의식적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추악한 몰골을 드러내고 또 그 추악하고 더러운 영혼을 내보이며, 불쌍한 거지의 모습까지 드러낸다. 또한, 곳곳에서 횡포를 부린 뒤에는 가련한 모습을 하고 하늘의 용서를 구하며, 극도로 불쌍한 아첨꾼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은 언제나 방심한 틈을 타서 허를 찌르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임기응변하는데, 하나님의 마음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신분과 비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하나님께 맞설 뿐이다.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억울하게 한 양, 처음부터 이렇게 대하면 안 됐다는 양, 하늘이 보는 눈이 없어 자신을 괴롭혔다는 양 군다. 그래서 사람은 늘 몰래 악랄한 수단을 쓰고, 하나님에 대한 요구를 매우 엄격히 하며, 눈을 부릅뜬 채 호시탐탐 하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원수이자 적수라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으며, 언젠가 하나님이 뿌연 안개를 걷어 내고 사실을 밝혀 자신을 ‘호랑이 아가리’에서 구하고 원통함을 풀어 주기를 소망한다. 오늘날까지도 사람은 자신이 역대에 수많은 사람이 맡았던,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할을 맡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어찌 자신의 행함이 이미 오래전에 잘못된 길에 들어섰고, 자신의 깨달음이 진작에 깊은 물 속에 잠겨 버렸다는 것을 알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9> 중에서

19. 인류는 오늘날까지 발전해 오면서 공전의 성황을 누리게 됐으며,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진입 또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진 중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사역 또한 전례 없는 성황을 이룩하였으며, 인류의 진입 역시 과거에는 사람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경지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사역이 절정에 이르자 사람의 ‘진입’[15]도 그에 따라 최고 경지에 다다랐다. 하나님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었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류나 우주 만물을 향해 항의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은 하나님을 억압하며 하나님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설 정도로 절정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절정에 이르렀으니 공의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 그러니 어둠이 계속 대지와 만민을 덮고 있게 둘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미 수천 년, 아니 수만 년을 지켜봤다.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인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인류의 불의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켜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에 무감각해진 사람은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누가 하나님의 행사를 살폈더냐? 누가 눈을 들어 먼 곳을 보았더냐? 누가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더냐? 누가 전능자의 손안에 있었더냐? 인류는 전부 초목개병[16]이다. 초목과 지푸라기들을 어디에 쓰겠느냐? 오로지 성육신하여 생생히 살아 있는 하나님을 괴롭혀서 죽일 줄밖에 모른다. 인류가 이미 지푸라기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그래도 ‘탁월한 재주[17]’는 있다. 바로 하나님을 몹시 괴롭혀 죽이는 것이다. 그러고는 ‘속이 후련하다’며 쾌재를 부른다. 그야말로 오합지졸들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하필이면 하나님을 ‘눈에 들어’ 하여 물샐틈없는 공격을 퍼붓고 있다. 사람은 조급한 나머지 불 난 집에 부채질하듯[18], 하나님을 포위하여 옴짝달싹 못하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손에는 별의별 무기를 움켜쥐고는 원수라도 보듯 눈을 부릅뜨고, 당장이라도 하나님을 ‘찢어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어째서 사람은 하나님을 철천지원수처럼 대하는 것인지 아무도 그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사랑스럽기 이를 데 없는 하나님이 사람과 원수라도 졌단 말이냐? 하나님이 하는 일들이 전부 사람에게 무익하기라도 하단 말이냐? 사람을 상처받게 했단 말이냐? 사람은 하나님이 포위망을 뚫고 셋째 하늘로 돌아가 사람을 다시 저승으로 던져 넣을까 봐 두려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하나님을 노려보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계하고 안절부절못하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포복 상태로 손에 든 ‘기관총’으로 세상에 와 있는 하나님을 조준하고 있다. 하나님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온몸을 ‘일망타진’하여 흔적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릴 생각인 듯하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부러 눈을 감은 채 어물쩍 넘어가며, 전혀 나의 존재를 보려 하지 않고, 나의 ‘심판’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경계를 늦춘 틈을 타서 조용히 떠나가 더는 사람과 높고 낮음을 ‘겨루지’ 않는다. 인류는 가장 비천한 ‘동물’에 속하니, 더 이상 인류를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나는 오래전에 내 모든 은혜를 내가 몸 누이는 곳으로 거둬들였다. 인류가 이처럼 나를 거역하는데, 내 귀한 은혜를 더 누릴 이유도 없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10> 중에서

20. 하나님의 사역이 지극히 풍성하기는 하지만, 사람의 진입은 몹시 빈약하다. 하나님과 사람이 손잡고 만든 ‘공정(工程)’을 보면 거의 전부가 하나님의 사역이고, 사람의 진입은 얼마 되지도 않아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빈궁하고 눈먼 사람이 손에 ‘고대의 무기’를 들고 와서는 현대의 하나님과 겨루고 있으니, 직립보행도 못 하는 ‘원시의 유인원’이 알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고 수치심조차 모르는 셈이다.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평가한단 말이냐! 사족보행하는 ‘유인원’들은 두 눈이 시뻘게져서는 고대 석기를 들고 하나님과 겨루려 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원시인 격투 시합’을 열어 떠들썩하게 ‘유인원과 하나님의 종말의 날 격투 시합’을 진행하려는 것이다. 반쯤 직립한 유인원들은 더욱 득의양양해하며 솜털이 촘촘한 얼굴에 살의를 띤 채 다리를 꼬고 있다. 아직 완벽한 현대인의 모습으로 진화하지 못했기에 두 발로 섰다가 엎드렸다가를 반복하는데, 얼굴에 이슬처럼 잔뜩 맺힌 땀방울이 그들의 절박한 심리를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은 격투 무대 위에서 사족보행하고 있는 완전한 원시인, 즉 그들의 동료가 굵고 굼뜬 사지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공격을 막아 낼 힘도 없는 것을 보고는 더욱 초조해져서 안절부절못하며 뺨을 긁적거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경기 링 위의 ‘영웅’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지 않은가. 오랫동안 땅에 붙어 있던 사지가 하늘을 향하고 있으니, 더는 반항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이때부터 ‘가장 오래된 유인원’은 지상에서 사라졌다. ‘오래된 유인원’이 이렇게 순식간에 가 버리다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째서 이렇게 빨리 이 아름다운 인간 세상을 떠난단 말이냐? 왜 동료들과 다음 ‘계책’을 상의하지 않았단 말이냐? 하나님과 겨룰 비책을 남기지도 않고 세상을 떠났으니 아쉽기 짝이 없구나! 그 오래된 유인원이 그렇게 조용히, 자손들에게 ‘고대의 문화 예술’을 물려 주지도 못하고 그대로 가 버리다니, 너무도 마음을 몰라주는구나!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불러다 사랑을 속삭이지도 못했고, 돌판에 유언을 새기지도 못했으며, 하늘해(원문: 天日)를 분별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고충을 말하지도 못했다. 또한 사경을 헤매는 시체 곁으로 자손들을 불러 “시합 경기 링에 들어가 하나님과 겨루지 마라”라는 말을 하지도 못하고 두 눈을 감았다. 굳어 버린 사지는 곧게 뻗은 나뭇가지처럼 영원히 ‘솟아’ 있었다. 마치 원한을 품고 죽은 것처럼…. 순간, 링 아래에서는 박장대소가 터지니 반쯤 직립해 있던 ‘유인원’은 뚜껑이 열린 듯했다. 손에는 영양이나 다른 동물들을 사냥할 때 쓰던, 고대 유인원의 무기보다 발전한 ‘석창’을 들고 분노하며 성큼성큼 링 안으로 들어섰는데, 승산[19]이라도 있는 듯했다. 그리고 ‘석창’의 ‘위세’를 빌려 겨우 ‘3분’을 직립하고는 마치 무슨 공이라도 세운 것처럼 굴었다. 확실히 세 번째 ‘다리’가 ‘위력’은 있어 보이는구나! 이렇게 커다랗고 둔하고 굼뜬 유인원을 3분이나 지탱해 주다니. ‘늙은 유인원’이 위풍당당[20]하고 오만 방자하다 했더니, 고대 석기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칼자루도, 칼날도, 칼끝도 있지 않느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칼날에 광택이 전혀 없다는 것 정도였다. 링 위에 선 이 고대의 ‘작은 영웅’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링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마치 다른 이들은 전부 무능한 소인배이고, 자신은 영웅호걸이라도 된 듯 속으로 링 아래에 사람들을 증오하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법인데, 어째서 너희는 물러서 있느냐? 나라가 어려움에 직면한 것을 보면서도 목숨 걸고 싸우지 않겠단 말이냐? 눈앞에 국난이 닥쳤는데 어째서 너희는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천하가 즐거워진 다음 즐거워하지 못하느냐? 이대로 나라가 패망하고 민족이 몰락하는 것을 보고만 있겠단 말이냐? 정녕 망국의 치욕을 감내하겠단 말이냐? 이 쓰레기들아!’ 그것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격투 링 아래는 이미 시끌벅적해졌다. 그러자 그것이 불이라도 뿜을 듯[21] 두 눈을 붉히며 하나님이 알아서 쓰러지지 않는 것이, 통쾌하게 하나님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천추의 한인 것처럼 굴었다. 그것의 ‘석기’가 아무리 명불허전이라고는 하나, 하나님을 대적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어찌 알겠느냐! 제대로 공격 몇 번을 막아 내지도 못하고, 쓰러지고 일어나기도 한 번 못한 채 바로 휘청이더니, 두 눈은 벌써 ‘멀어’ 버렸다. 그리하여 ‘조상’ 쪽으로 나가 떨어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고는 ‘고대 유인원’을 꽉 끌어안은 채 울음소리조차 못 내고 패배를 인정했다. 더는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불쌍한 ‘유인원’ 둘은 쌍으로 그렇게 링 아래에서 죽은 것이다. 오늘날까지 대대로 이어진 ‘사람의 선조’가 공의로운 해가 나타난 날에 어이없게 죽었으니 정말 너무나 ‘불행’한 일이다! 이렇게 큰 복을 그대로 흘려보내다니. 수천 년을 기다린 ‘유인원’들이 뜻밖에도 복을 얻는 날에 그 복을 저승으로 가져가 마왕과 ‘함께 누리게’ 되었구나. 너무 어리석도다! 왜 그 복을 이승에서 ‘아들딸’과 함께 누리지 않는 것이냐? 고생을 자초하는구나! 너무나 무가치하도다. 그렇게 작은 지위와 명예, 허영을 위해 ‘죽음의 화’를 당한 것은 물론, 남보다 한발 앞서 지옥의 문을 열고 지옥의 자식이 되다니. 참으로 부질없는 대가였다. 이렇게 ‘민족의 기개가 넘치는’ ‘조상’이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여’ ‘무능한 후배들’을 지옥문 밖으로 밀어내고 스스로를 지옥에 단단히 가두었다니 참으로 아쉽구나! 이런 ‘민족의 대표’를 또 어디에서 찾겠느냐? ‘자손들의 안녕’과 ‘후손들의 태평무사’를 생각하여 하나님이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의 목숨마저 돌보지 않았다. 그렇게 ‘민족의 대업’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헌신하면서 아무 말 없이 저승으로 들어갔다. 이런 민족의 기상을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 죽음도, 피 흘리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과 싸우며,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바로 전쟁터에 몸을 던졌다. 다만 ‘헌신의 정신’으로 얻은 것이 그저 ‘천고의 한’과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의 고통이니 그것이 안타깝구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10> 중에서

21. 나는 사람과 함께 수없이 많은 날을 보냈고, 사람과 함께 이 세상에 살았지만, 사람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한 적은 없다. 늘 사람을 이끌어 앞으로 나아가고, 사람을 인도하며, 항상 인류의 운명을 위해 일을 마련할 뿐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누가 깨달았더냐? 누가 천지 사이를 오갔더냐? 나는 더 이상 사람과 함께 사람의 ‘말년’을 보내고 싶지 않다. 사람은 너무도 ‘구식적’이며, 아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차려 놓은 잔칫상에서 허겁지겁 먹을 줄만 알 뿐, 그 외의 일들은 전부 ‘나 몰라라 하며’,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인류는 너무 인색하며, 인간 세상은 너무 소란스럽고 처량 맞으며 너무도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날에 승리로 거둔 아름다운 열매를 사람과 함께 누리고 싶지 않다. 사람은 자기가 만들어 낸 복이나 누리라고 해라. 인류가 나를 환영하지 않는데, 내가 왜 인류에게 억지 미소를 강요하겠느냐? 세상 구석구석을 봐도 온기가 있는 땅은 단 한 곳도 없고, 산천 여기저기를 봐도 봄기운이라고는 찾을 수도 없다. 사람은 전부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조금의 따스함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 같다. 심지어 몸에 흐르는 피까지도 얼어 버린 얼음처럼 ‘가슴 시리게’ 할 뿐이다. 그런데 온기가 어디에 있겠느냐? 아무 이유 없이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도 무사태평이었으며, 그 누구도 후회하지 않았다. 잔인한 폭군이 또 한 번 인자를 ‘생포[22]’하여 형장에서 총살함으로써 마음의 원한을 풀려고 하는데, 이렇듯 위험한 땅에 내가 남아 있어 본들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이냐? 내가 남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건 전쟁과 총검, 끝없는 후환뿐이다. 내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싸움일 뿐 화평을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의 마지막 날은 분명 전쟁으로 점철될 것이고, 인류의 종착지는 반드시 총검이 난무한 전쟁 속에서 무너질 것이다. 나는 이 전쟁의 ‘환락’을 사람과 ‘함께 즐길’ 마음이 없다. 또한, 나는 사람의 옆에서 피 흘리는 희생을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미 사람에게 버림받아 ‘풀이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인류의 전쟁을 지켜볼 마음이 없으니, 사람끼리 마음껏 싸우게 내버려 두고 편히 쉬면서 편히 자겠다. 마귀더러 인류의 마지막 날을 함께하라고 해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10> 중에서

22. 너희의 추구에는 자기만의 관념과 기대, 미래에 대한 바람이 너무나 많다. 현재 이렇게 사역하는 것은 바로 지위에 대한 너희의 마음과 지나친 욕망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기대와 지위, 관념은 모두 전형적인 사탄 성품을 대변한다. 사람의 마음에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탄의 독소가 사람의 사상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종일관 사탄의 그 유혹을 벗어던지지 못하여 죄 속에서 살면서도 죄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사람은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알맞게 마련해 주셔야 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야 하는 거야. 어떤 사람보다도 지위가 높고 앞날이 밝아야 해.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축복을 주셔야 해.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잖아.’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사람의 생존에 토대가 된 사상이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좀먹어 사람은 간사하고 나약하며 비열하게 변해 버렸다. 사람은 끈기도, 의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고 거만하게 변했다.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지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 흑암 권세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용기는 더더욱 없다. 사람의 사상과 삶은 썩어 문드러졌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관점 또한 추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해 말하자면 귀에 담을 수조차 없을 정도다. 사람은 모두 나약하고 무능하며 비열하고 연약하다. 흑암 권세에 대해 어떤 증오심도 느끼지 못하고, 광명과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쫓아낸다. 현재 너희의 사상과 관점이 이렇지 않으냐? 하나님을 믿는 이상 복을 받아야 하고,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아야 하며, 믿지 않는 사람보다 높은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관점이 너희 머릿속에 자리 잡힌 건 1~2년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랜 세월 그래 온 것이다. 너희는 장삿속이 아주 발달했다.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지위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 채 바득바득 ‘추궁’하고 있다. 게다가 매일같이 그것을 관찰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런 것을 잃게 되지 않을까 심히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사람은 안일을 탐하는 마음을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중에서

23.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에게서 적합한 종착지와 무궁한 은혜를 받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사람의 종으로 삼으려는 것이며, 언제든 하나님과 아무런 충돌이 없이 평화롭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사람의 모든 요구를 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너희가 구하는 것은 내가 다 들어줄 것이다”라는 성경의 말처럼 사람이 무엇을 요구하든 무조건 다 베풀어 줄 것을 요구한다. 또 하나님은 항상 인자한 구주 예수이므로 언제 어디서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사람을 심판하지도 훈계하지도 말 것을 요구한다. 사람이 믿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뻔뻔스럽게 하나님께 달라고 해도 하나님은 무조건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거역하든 순종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또한 사람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빚을 독촉해도’ 하나님은 아무런 반항 없이 사람에게 ‘빚을 갚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곱절로 갚아야 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얻는 것이 있든 없든 그저 사람이 지배하는 대로 따라야 할 뿐 사람을 마음대로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오랫동안 감추어 온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로운 성품을 마음대로 ‘사사로이’ 사람에게 나타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되고, 하나님은 싫어하지 말고 언제까지나 사람의 죄를 사해 주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사람은 하나님에게 시키기만 하고 하나님은 오로지 순종하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이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사람의 종이 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너희가 지금까지 계속 이런 식으로 믿고 있지 않느냐? 하나님에게서 무언가를 얻지 못하면 도망치려 하고,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노발대발 화를 내고 심지어 욕설까지 퍼붓는다. 너희는 전혀 하나님이 자신의 지혜와 기묘함을 나타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일시적인 안일만 탐할 뿐이다. 하나님을 믿는 너희의 태도는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낡은 관점에 머물러 있다. 너희에게 조금이라도 위엄을 드러내면 싫어한다. 이제 너희는 자신의 분량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를 보았느냐? 너희는 자신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말라. 사실 너희의 낡은 관점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을 때는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 같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절정에 달하지만, 작은 일만 생겨도 음부까지 추락해 버린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24. 내가 행한 일이 해변의 모래알보다 많고, 내 지혜가 높디높아 모든 ‘솔로몬의 자손’을 능가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그저 하찮은 의사라고 믿고, 또 사람을 가르치는 무명의 스승이라고 믿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있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고 있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있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며 나를 믿고 있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있다.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고 있을 뿐이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그들을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내게 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고, 나를 믿으면 득이 많기 때문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25. 너희가 지금 깨달은 것이 시련에 대한 인식이든 또는 믿음에 대한 인식이든, 온전케 되지 않은 역대의 그 누구보다 높다. 너희가 깨달은 것은 모두 환경의 시련을 겪기 전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희의 실제 분량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으며 모든 깨달음이 실천에 앞선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복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기만을 원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너희가 삶에서 보여 주는 행동은 그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고 불순물도 너무 많다. 많은 이가 평안과 이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익이 없으면 믿지 않고 은혜를 받지 못하면 입을 비쭉거리니, 너의 말이 어찌 너의 실제 분량을 대표하겠느냐? 아이의 질병, 가족의 입원, 농작물의 수확 감소, 가족의 핍박 등 평소에 벌어지는 피할 수 없는 가정의 변고, 즉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을 너는 감당하지 못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너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부분 하나님을 원망하곤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너를 속였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너를 조롱했다고 원망한다. 너희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지 않느냐? 이런 일들이 너희 가운데서 드물게 발생한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온종일 이런 일들에 빠져 살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있을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너희의 실제 분량은 너무나 작아서 그야말로 병아리만큼도 되지 않는다. 사업이 손해를 봐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도 원망하고, 심지어 집에 있는 병아리가 죽거나 외양간의 소가 병들어도 원망하고, 아들이 장가를 가는데 집에 돈이 없어도 원망한다. 사역자가 집에 와서 밥을 두 끼나 더 먹었는데 교회에서는 아무도 돈이나 채소를 주지 않는다며 또 원망한다. 너의 뱃속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어 때로는 그것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도 않으며, 기약 없이 부정적인 상태로 지낸다. 지금 임한 이런 일들은 너의 미래나 운명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일어났을 일들이다. 그러나 너는 이 일들의 책임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고는 하나님이 너를 도태시켰다고 우긴다. 너의 믿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정말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느냐? 오늘날 나를 따르는 너희에게 욥과 같은 시련을 준다면 단 한 명도 굳게 서지 못하고 다 넘어질 것이다. 너희와 욥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 오늘날 내가 너희의 재산 중 반을 빼앗는다면 너희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것이다. 내가 너희의 자녀를 거둬간다면 길거리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욕할 것이고, 얼마 안 되는 네 생계의 길을 막아 버리면 하나님과 결판을 내려고 할 것이다. 애초에 왜 그렇게 많은 말로 엄포를 놓았느냐며 너희는 무슨 일이든 저지를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너희는 참된 깨달음이 없고, 참된 분량 또한 전혀 없다. 그러므로 너희가 받는 시련이 큰 것이다. 아는 것은 지나치게 많은데 진정한 깨달음은 너희가 알고 있는 것의 천 분의 일도 안 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깨닫고 이해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말고, 자신이 얼마나 참되게 실행할 수 있는지, 자신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얻은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실행으로 자신의 의지를 실현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너는 자신의 분량과 실행을 참답게 대해야지, 하나님을 믿는 일에서 어물쩍 넘어가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네가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3> 중에서

26.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전혀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이 아니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이 아니냐? 내가 너희들 가운데에서 얼마나 많이 말했느냐? 너희들 가운데에서 행한 사역이 적단 말이냐? 너희들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냐? 네가 이 복을 얻지 못했으면서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 되길 바란다. 너는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이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어도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이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 있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삶이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이 아니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살아 봤자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참도를 너에게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너 자신이 얼마나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27. 종착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너희들은 매우 진지하며, 게다가 종착지에 관한 일에서는 몹시 예민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머리를 조아려서라도 좋은 종착지를 얻고 싶어 한다. 나는 너희들의 간절한 마음을 잘 알고 있으나 일일이 말하지는 않겠다. 사실 너희는 그저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며, 자신의 육체가 재난에 빠지지 않고, 또한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징벌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종착지에 대해 얘기하면 너희는 어느 때보다 마음을 기울인다. 자칫 부주의로 하나님께 죄를 지어 그에 따르는 응보를 받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너희는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서라면 굽신거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종착지를 위해 능구렁이 같던 자들도 갑자기 매우 성실해지고 온순해지는데, 그 성실한 모습은 실로 소름이 끼칠 정도다. 어찌 됐든, 너희의 마음은 다 ‘정직’하다. 원망이든, 기만이든, 충성심이든, 처음부터 하나도 숨김없이 너희의 마음속 비밀을 내게 털어놓았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너희는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적인 것들을 내게 솔직하게 ‘고백’했고, 나 역시 그러한 것들을 피하지 않았다.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상황이니 말이다. 너희는 최후의 종착지를 위해서라면 불바다라도 뛰어들려고 하지만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는 머리카락 한 올도 바치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교조주의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너무나도 충실하지 않은 마음으로 내가 행한 모든 것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내가 간단히 설명을 하겠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진리와 생명, 사람됨의 원칙이 아니고, 내가 고심을 들여 행한 사역은 더더욱 아니다. 반대로 너희들의 육에 속하는 모든 것들(재물, 지위, 가정, 결혼 등)이다. 내가 하는 말과 사역에 대해 너희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나는 너희들의 믿음을 ‘무성의’라는 말로 요약하겠다. 너희들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일에는 대가를 아끼지 않으나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고 있다. 적당한 선에서 충성하고 참답게 대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지극 정성이 없는 사람은 모두 믿음에서 실패한 자라고 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너희 중에 실패한 자들이 많지 않으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사람의 모든 행위에 달렸음을 알아야 한다. 이와 반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 역시 사람의 모든 행위로 초래된 것이지 결코 그 어떤 다른 원인은 없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일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도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해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매우 진지하게 대하며 심지어 그 어떠한 오차도 원치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 개개인이 자신의 생활을 위해 부단히 기울이는 노력이다. 심지어 너희는 자신의 혈육은 속이지 않아도 나의 육신은 속인다. 이것이 너희들의 일관된 행위이자 처세의 원칙이다. 너희는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서, 아름답고 이상적인 종착지를 얻기 위해서 여전히 거짓된 모습으로 나를 속이고 있지 않느냐? 나는 너희의 충성심이 일시적이요, 정성도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가 다짐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도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더냐? 너희는 오로지 마지막 한 번의 노력으로 있는 힘을 다해 아름다운 종착지를 쟁취할 생각만 하는데, 그 목적은 교환하는 것일 뿐 진리에 부응하기 위함도 아니요, 나의 대가에 보답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각고의 노력은 싫고 머리만 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너희의 본심이 아니더냐? 자신을 위장하지 말라. 더욱이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 식음을 잊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애쓰며 머리를 쥐어짜지도 말라. 결국 너희의 결말은 정해진 것이 아니더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종착지에 관하여> 중에서

28. 각 사람이 날마다 행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분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으며, 이는 또한 자신의 앞날을 위해 예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거쳐 가야 할 길이며, 내가 각 사람에게 예정해 놓은 것이다. 아무도 이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런 전례를 깨뜨릴 수도 없다. 나는 많은 말을 하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역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사람마다 자신의 원래 본성과 심해진 본성에 따라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하지만 또 부지불식간에 많은 사람이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 이 궤도는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설정한 것이다. 나는 일찍이 각 부류의 사람을 서로 다른 환경 속에 두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원래 속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누가 속박하지도, 유혹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것이 자유로웠고, 드러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유독 그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말이었다. 그러므로 그들 중 일부는 ‘죽지 않는’ 결말을 얻는 것이 목표였기에 나의 말을 마지못해 읽어 보기는 했지만 그대로 실천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또 다른 일부는 내 말의 인도와 공급을 받지 못하는 날들을 견디기 어려워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내 말을 늘 받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인생의 비밀과 인류의 종착지, 그리고 사람됨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게 되었다. 인류는 내 말 앞에서 이런 상태에 머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길 뿐, 내 말을 생존의 토대로 삼으라고 강요하는 어떤 사역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양심도 없고 생존할 가치도 없는 자들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과감하게 내 말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진리와 더불어 내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싫어하기 시작하였고, 내 집에 머무는 것은 더욱 싫어하였다. 그들은 봉사자로 일하고 있을지라도 종착지를 위하여, 그리고 징벌을 피하기 위하여 잠시 내 집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변함이 없었고, 행위도 변한 적이 없다. 그리하여 복을 받으려는 그들의 욕망은 더욱 커졌고, 단번에 영구히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 하고, 심지어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 욕망도 더욱 커졌다. 이렇게 나의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랄수록, 그들은 진리가 장애물과 걸림돌이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단숨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천국의 복을 누리기를 몹시 바란다. 그리하여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도 되고, 심판과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되며, 더욱이 내 집에서 굽신거리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내 집에 들어온 것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나의 경륜에 협력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다음 시대에 멸망되지 않는 일원이 되려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에는 진리가 무엇이고,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진리를 실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도, 또한 자신이 심하게 패괴되었다고 여기지 않으면서도 처음부터 내 집에 머무르며 ‘종’이 된 이유이다. 그들은 ‘인내심’ 있게 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내 사역 방식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든, 어떠한 대가를 치렀든 그들이 진리를 위해 고난을 받고 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옛 시대를 폐하는 그날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하는 마음뿐이며, 내 능력과 권병이 얼마나 큰지 알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바꾸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서두른 적이 없다. 그들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며, 내가 증오하는 것을 소망하고 내가 혐오하는 것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이 사악한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을 증오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게다가 또 내가 그것을 멸해 버릴까 봐 몹시 두려워한다. 그들에게는 모순되는 마음이 있다. 내가 혐오하는 이 세상을 좋아하면서도 내가 이 세상을 하루빨리 멸하기를 ‘바라는’ 그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바라는 것은 진리를 떠나기 전에 재난을 피할 수 있는 행운을 얻어 한순간에 다음 시대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바로 그들이 참도를 사랑하지 않고, 내게서 온 모든 것을 싫어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복을 잃지 않으려고 일순간 ‘순한 백성’이 될지도 모르지만, 복을 받으려는 다급한 심리와 멸망되어 불 못에 던져질까 봐 두려워하는 속마음은 지금껏 감출 수가 없었다. 나의 날이 임박할수록 그들의 욕망은 더욱 강렬해지고, 재난이 커질수록 그들은 더욱 발을 동동 구르며,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내 기쁨을 얻을 수 있고, 오랫동안 바라 마지않던 복도 잃지 않을 수 있는지를 몰라 한다. 나의 손이 일을 시작하면, 그들은 바로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며 선봉이 되려고 한다. 행여 내 눈에 띄지 못할까 봐 두려워 대오의 가장 앞쪽으로 나설 궁리만 하며,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진리와 무관하며, 그들의 행위가 내 계획을 파괴하고 방해한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비록 그들이 있는 힘을 다할지라도, 고통을 감내하려는 의지와 속내가 아주 진실할지라도,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은 나와 무관하다. 나는 그들의 행위가 선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느낀 적이 전혀 없거니와 그들이 내 제단에 무엇이라도 올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바로 그들이 오랫동안 내 면전에서 행한 것이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 중에서

29.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과 경영을 언급하면 그들은 묵묵부답이며,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지루한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이 더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렇게나 대할 뿐 보배로 여기지 않을뿐더러 생명의 일부로는 더더욱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자신의 목표와 무관한 일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생각은 얼핏 들으면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하고 봉헌하고 자기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먼 곳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미도 바꾸고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도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며, 그 길이 얼마나 멀든,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토록 끊임없이 헌신하게 하는 걸까? 그들의 양심일까?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일까?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심일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그들의 믿음일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충성심일까? 아니면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는 그들의 희생 정신일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피나게 노력하고 수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헌신했는지는 차치하고, 그들의 행위만 놓고 보아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일 뿐이다. 즉,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다. 솔직히 말하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혈육의 정은 없이 거래만 있고,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 가엾게 여기는 것밖에 없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누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까? 또 이런 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확신컨대, 사람들이 복을 받고 즐거움에 도취된 나머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난감하고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30. 많은 사람들이 훗날의 종착지나 일시적인 향유를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다듬어지는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온전케 되기 위한 것이나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이자 상을 받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자신의 직책을 이행하거나 본분을 완수하는 데 두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의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실 이것은 천경지위(天經地緯)이자 사람의 천직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추구하는 목표는 제각각이지만 목적과 속셈은 모두 비슷하며, 다수 사람이 숭상하는 대상도 대부분 비슷하다. 수천 년을 지나오면서 수많은 신도들이 죽었고 또 수많은 신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고 1, 2천 명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개인의 앞날이나 훗날의 아름다운 소망을 위해 추구했을 뿐, 그리스도를 위해 충성을 다한 사람은 몇 안 된다. 적잖은 경건한 신도들이 자기 올무에 걸려 죽었고, 이긴 자는 언급할 가치도 없을 만큼 적다. 사람이 실패한 원인이나 이긴 비결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열성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비밀의 근원이 과연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정말 모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심혈을 다해 추구하고 있지만 그들이 가는 길은 앞사람들이 갔던 성공의 길이 아니라 실패의 길이다. 그러니 어떻게 추구하든 간에 그들이 가는 길은 모두 어둠으로 통하는 길이 아니겠느냐? 그들은 쓰디쓴 결과만 얻은 것이 아니겠느냐? 과거에 성공한 사람들을 따라 해도 최종적으로 복을 받을지 화를 입을지 예측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실패한 사람들의 전철을 밟으며 추구하는 사람들은 어떠하겠느냐? 더더욱 실패하고도 남지 않겠느냐? 그들이 가는 길이 또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 모두 헛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쨌든, 사람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거기에는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렇게나 추구하여 득실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31.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본질은 종교적 신앙이라 결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람은 그저 로봇처럼 하나님을 뒤따를 줄만 알 뿐, 하나님을 진실로 흠모하거나 사모하지는 못한다. 다만 묵묵히 하나님을 따를 뿐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많고 많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아주 적다. 그들은 그저 재앙이 닥치는 것이 두려워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하나님이 위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탄할’ 뿐이다. 사람의 경외와 감탄에는 사랑이나 진실한 흠모는 조금도 들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다 체험하면서 진리의 구체적인 부분을 찾거나 사소한 비밀들을 찾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하나님을 따르면서 복을 받기 위해 기회만 노리고 있을 뿐,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을 믿는 생애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으며, 모두가 개인적인 타산과 추구가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제멋대로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하나님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실한 믿음도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것이다> 중에서

32. 인류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에서 자기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의 경영을 등한시한다는 사실이고, 가장 실패한 일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종착지를 구상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을 받고 가장 좋은 종착지로 돌아갈 수 있는지 계산한다는 것이다. 설령 모든 사람이 스스로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하다는 것을 안다 해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 이익을 계산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경영을 완성하는 데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이다. 날마다 하나님께 두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조금 바치고 빚을 받아 내려는 사람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조금 봉헌한 뒤 그것을 밑천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려는 사람을 증오하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에 올라가 복받는 일에만 관심 있는 냉혈 인간을 증오한다.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기회를 틈타 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더더욱 증오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을 통해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사역하는 틈을 타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반감을 품고 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 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무관심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 사역 밖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기억해 주지 않고 칭찬하지 않으며, 더욱이 좋아하지도 않는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33. 사람들은 생명 체험 과정에서 늘 이런 생각들을 하곤 한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가정도 직장도 내려놓았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주셨지? 그동안 내가 무슨 복을 받았는지 한번 계산해 보고 따져 봐야겠어.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헌신하고 노력을 들이며 많은 고난을 받았는데, 하나님은 그동안 내가 한 것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해 주실까? 하나님은 나의 선행을 기억해 주실까? 나의 결말은 도대체 어떨까? 복은 받을 수 있을지?…’ 모든 사람은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계산하고, 저의와 야심을 품고, 또한 하나님과 거래하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으로부터 뭘 얻어 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상대로 계산하고, 자신의 결말을 두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논쟁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며 하나님께 구두 증거를 구걸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거래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에게서 뭔가를 얻어 내려고만 한다. 심지어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욕심이 한도 끝도 없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동시에, 또 끊임없이 하나님과 논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련이 임하거나 어떤 환경에 처하면 늘 나약해지고 일을 태만히 하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은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약속을 얻어 내는 것이 생득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고, 반면에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며 사람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해야 할 책임이라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한 가장 깊은 이해이기도 하다. 사람의 본성과 본질로부터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하나님께 경배한다’는 것과는 아예 관련시킬 수도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고,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러한 상태를 볼 때, 사람의 본질은 뻔한 것이다. 이 본질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씨가 악독하고 음험하고 간사하며,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지 않고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게다가 비열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태껏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으며, 사람의 경배를 받지 못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든지,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행하든지,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급하든지 간에, 사람은 봐도 못 본 척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시종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자신이 주관하고 자신이 결정하려고 한다. 그 뜻인즉,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고 싶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싶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사람들의 상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34.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므로 끝까지 따르기만 하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가장 공의로우신데, 끝까지 따른 사람을 어떻게 뿌리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공의로운 성품으로 모든 사람을 심판한다. 하지만 내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에는 적합한 기준이 있어서 누구든 그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나는 네가 얼마나 대단한 경력이나 관록을 갖고 있는지 보지 않고, 네가 도를 행하는 사람인지 또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인지만 본다. 너에게 진리가 없고 오히려 내 이름을 모욕하며 도에 따라 행하지 않고 그저 아무 생각도 없이 따르기만 한다면, 그때는 내가 너의 악을 이유로 너를 치고 징벌할 것이다. 그때 네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오늘 내가 한 말을 네가 다 지킨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칭찬할 것이다. 너는 네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따르면서 고난을 받고 비바람 속에서 하나님과 동고동락하며 환난을 함께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지 못했다. 또 너는 날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거나 헌신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 또 너는 “어쨌든 저는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라는 걸 믿어요. 제가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헌신했는데,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했잖아요. 그러니 하나님은 꼭 저를 기억하실 거예요.”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공의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고, 사람의 뜻이 전혀 없으며, 육적인 것도, 사람처럼 거래하는 것도 섞여 있지 않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와 하나님의 도를 지키지 않는 자는 모두 징벌을 받아야 한다. 하나도 용서하지 않고 누구도 예외가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35. 하나님의 사역에 항상 새로운 진전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역이 생기면 그에 따라 시대에 뒤처진 낡은 사역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낡은 사역과 새로운 사역은 충돌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 서로 보완하고 한 단계씩 이어진 것이다. 새로운 사역이 있기 때문에 낡은 것은 당연히 도태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사람의 실행과 관례적인 견해에 다년간의 경험과 교훈이 더해져 사람의 마음에는 형형색색의 고정 관념이 생겼다. 하나님이 자신의 본모습과 고유의 성품을 사람에게 전부 공개하지 않은 데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전파된 전통 학설까지 더해져 사람의 관념은 더 쉽게 형성되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각종 고정 관념의 영향으로 하나님에 대한 여러 관념적 인식이 끊임없이 형성되고 발전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수많은 종교 인사들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그러므로 종교 관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언제나 새롭기에 규례를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다양한 정도의 변화와 새로움을 낳는다. 이런 사역은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의 발현이자 고유의 사역 원칙이고, 그의 경영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다. 이렇게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은 변화될 수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사탄을 물리칠 수 없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에는 규칙이 없는 듯하나 주기적인 변화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방법에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낡고 익숙한 규례와 제도를 고수하고, 낡으면 낡을수록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두드려도 꿈적하지 않는 돌같이 어리석은 사람의 머리로 어찌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이렇게 많은 새로운 사역과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사람은 낡아 빠지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백발이 성성한 하나님을 좋아할 뿐, 항상 새로운 하나님은 싫어한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각각의 ‘취향’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심지어 수많은 모순이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되었다. 하나님이 6천 년 가까이 새로운 사역을 행한 오늘날, 이런 모순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완고하여 변하지 않은 것인지, 하나님의 행정이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종교 관료들과 그 부인들은 여전히 낡아서 곰팡이가 핀 옛날 책과 신문을 붙들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 끝나지 않은 경영 사역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비록 적대적 모순이 있고 이를 조절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런 모순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대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믿음’과 ‘생각’을 붙잡고 놓지 못한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하나는 아무리 사람의 ‘입장’이 굳건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발’은 언제나 움직이며, 상황에 따라 그의 ‘입장’을 바꾼다는 점이다. 사람은 결국 스스로 패배하는 대상이며, 하나님은 모든 패장의 가장 큰 ‘원수’이고 패배하거나 패배하지 않은 모든 인류의 ‘우승자’이다. 누가 하나님과 겨루어 승리할 수 있겠느냐? 많은 고정 관념이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점차 생겼기 때문에 마치 사람의 관념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 같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을 양해하지 않으며,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사역 외의 산물을 무더기로 만들어 낸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사람의 고정 관념과 낡아 빠진 경건한 신앙에 극도로 반감을 가지며 그런 고정 관념이 생긴 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그런 고정 관념들이 자신의 사역으로 인해 만들어졌다고는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의 고정 관념은 사람에게서 전염되었을 뿐이고, 발원지가 사람의 사고와 머리이고 하나님이 아닌 사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사역의 참뜻은 본래 새롭고 살아 있는 것이지 낡고 죽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지키도록 한 것은 시대별 단계별로 나누어진 것이지 영원한 것이나 한 번 이루어지면 불변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는 사람을 죽게 하고 낡게 하는 마귀가 아니라 사람을 살게 하고 새롭게 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너희는 아직도 모르겠느냐? 네가 하나님에 대한 고정 관념을 잡고 놓지 못하는데, 이는 네 머리가 트이지 않은 것이지 하나님의 사역에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뜻과 맞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네가 고정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네 순종이 매우 부족한 것이고 피조물의 모습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것이지, 하나님이 너를 괴롭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모두는 네가 초래한 것으로,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모든 고통과 화근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그는 너에게 고정 관념이 생기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시대에 따라 새로워지고 변화하길 원한다. 그러나 너는 사리에 어둡고 연구나 분석에만 매달린다. 하나님이 너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너의 패역한 마음이 너무 큰 것이다. 일개 자그마한 피조물이 감히 하나님이 전에 준 보잘것없는 것으로 하나님을 공격하다니, 이것이 사람의 패역이 아니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아예 없으며, 더구나 자신의 아무 가치도 없는 썩어 문드러진 말과 글을 제멋대로 뽐낼 자격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곰팡이가 핀 고정 관념은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더욱 아무 가치도 없지 않으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중에서

36.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사역의 근본 취지는 바뀌지 않지만 사역 방식은 부단히 바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부단히 변화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하나님을 더 전반적으로 알게 되고, 사람의 성품도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해 성령의 역사를 모르는 자, 진리를 모르는 그릇되고 망령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역은 언제나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의 사역은 항상 새롭기 때문이다. 그는 옛 사역을 반복하지 않으며, 과거에 한 적 없는 사역을 행한다. 하나님이 중복 사역을 하지 않고 또 사람은 늘 하나님이 과거에 했던 사역으로 오늘날의 사역을 가늠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새 시대의 사역을 전개할 때마다 언제나 많은 난관을 겪어야 했다. 사람에게는 문제점이 너무나 많고, 사람의 생각은 너무나 보수적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하면서 규정하기까지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생명과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까지 잃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은 생명도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보다 큰 축복은 더욱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을 얻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이 바뀌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이 고정불변한 것이며, 영원히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하나님을 그저 율법 아래의 하나님,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며, 하나님은 성경을 벗어나서는 안 되고 벗어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런 ‘생각’은 그들을 낡은 율법과 죽은 규례에 단단히 못 박아 놓았다.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느 단계의 새 사역을 하든 예언의 근거가 있어야 하며, 새 사역을 할 때마다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계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고 한다. 가뜩이나 하나님을 알기가 어려운데, 그릇된 마음과 스스로를 높이는 패역한 본성까지 지녔으니 사람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려워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새 사역을 자세히 살피거나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멸시하는 태도를 취하며 하나님의 계시와 인도만 기다린다.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중에서

37. 관념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규정하면서 그를 영원히 변치 않는 조각상인 양 완전히 성경 안에 국한시키고 유한한 사역에 정해 놓는다면, 이는 너희가 하나님을 정죄한 것임을 증명한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정해진 우상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메시야라고 불려야만 하고, 또 그렇게 불려야만 하나님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하나님을 생명이 없는 조각상처럼 여기면서 섬기고 경배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하여 죄 없는 예수가 사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죄가 없지만, 사람들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뿐더러 기어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예수는 이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고불변의 존재로 생각하며 한낱 성경 한 권에 기대어 그를 규정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경영을 모조리 꿰뚫어 보고 그의 모든 행사를 파악한 것처럼 말이다. 인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터무니없고 거만하며, 모두가 과장해서 떠벌리기를 좋아한다. 네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안다고 생각하든, 내가 보기에 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가장 많이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을 전혀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해 왜 늘 못마땅해할까?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한 고정 관념이 너무 많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실제에 완전히 어긋나고 천편일률적이며 억지로 모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중에서

38. 하나님이 시기마다 새 사역을 전개하므로 시기마다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이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어느 한 시대에 적합한 이런 진리만 지킨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라갈 수도, 얻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든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바짝 따라간다면, 사람이 어찌 성령에 의해 도태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걱정 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대로 한다면, 사람이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멈추지 않으며 그의 발걸음도 멈춘 적이 없다.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완성하기 전에는 늘 바쁘게 보내며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성령의 사역을 조금 얻으면 영구불변한 것으로 삼고, 인식이 조금 생기면 하나님의 더 새로운 사역을 ‘뒤좇아’ 앞으로 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역을 조금 보면 하나님을 특정한 조각상으로 규정하기 바쁘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영원히 그가 본 형상대로일 것이고, 예전에 어땠으면 이후에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라고 여긴다. 얄팍한 인식이 조금 생기면 우쭐거리면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을 제멋대로 퍼뜨리기 시작한다. 한 단계 성령의 역사를 확신하고 나면 누군가 하나님의 새 사역을 아무리 전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성령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이고, 지나치게 옛것을 고수하고 새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저버리는 자들이다.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만 믿고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여호와만 믿으면서 예수를 저버리는’ 역할과 ‘메시야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예수라 칭하는 메시야를 대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한 단계 성령의 사역을 받아들였음에도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패역으로 초래된 것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39. 사람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만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런 것은 신묘하기 그지없고, 상상하기도 어려우며, 평범한 사람들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더 분석하며, 만사를 제쳐 두고 추구하면서 그것을 얻으려는 망상까지 한다. 또한, 그런 비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더 자세히 생각하고 분석하며, 심지어 치밀하게 구상하기까지 한다. 이와 반대로, 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심지어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날 행하는 나의 현실적인 사역에 대한 너희의 태도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냐? 이렇게 현실적인 것일수록 너희는 더 경시하고, 그것을 알아볼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며, 아예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는다. 너희는 기준이 낮은 이런 현실적 요구를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심지어 가장 실제적인 하나님에 대해서도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그의 실제와 정상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너희의 믿음은 모두 막연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이전의 막연한 하나님은 그토록 굳게 믿었으면서도 오늘날의 실제 하나님께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전의 하나님과 지금의 하나님이 두 시대의 하나님이기 때문이 아니냐? 이전의 하나님은 높디높고 크디큰 하늘의 하나님이고, 지금의 하나님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땅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냐? 사람이 숭배하는 하나님은 고정 관념 속의 하나님이고, 지금의 하나님은 땅에 나타난 실제적인 육신이기 때문이 아니냐? 결국, 지금의 하나님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사람이 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의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사람이 가장 하기 싫어하고 또 난감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난처하게 하고, 또 일부러 자신들의 허물만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래서 현실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의 원수, 즉 적그리스도가 되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 중에서

40.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무엇으로 믿어 왔느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공기로 믿어 왔다. 그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대해 답이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느끼지도 의식하지도 못했고, 분명한 깨달음과 인식은 더 말할 나위도 없으며, 잠재의식상에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람으로 믿어 왔다. 즉,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은 하나님도 하지 못한다고 여기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목석으로 믿어 왔다. 그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께는 희로애락이 없다고 여긴다. 하나님은 석상 같아서 어떤 일이 생겨도 태도나 관점이나 생각이 없고, 사람의 뜻대로 지배당한다고 여긴다. 자기 믿고 싶은 대로 믿어서 그를 위대한 존재로 여겼다가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겼다가 한다. 그리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과 사랑이 필요할 때는 하나님이 마땅히 긍휼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부류의 사람들은 머리로 ‘하나님’을 상상해 낸다. 그렇게 상상해 낸 ‘하나님’이 자신들의 필요를 공급할 수 있게 하고, 자신들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게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그런 상상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을 믿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으면서도 하나님이 구원해 줄 것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량없고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로우니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거슬러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잘못, 과오, 거역은 일시적으로 드러난 성품이니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관용을 베풀고 인내할 것이고 예전처럼 사랑할 것이므로 구원받을 희망이 매우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믿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부정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동안 하나님 말씀 책을 아마 보배처럼 여기면서 날마다 보고 읽었겠지만, 진정한 하나님은 오히려 한쪽에 방치해 두면서 하나님을 공기로 삼고 하나님을 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아예 목석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내 눈으로 본 너희는 일이 주어지든 아니면 어떤 환경이 닥치든 너희의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과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너는 그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자신의 관점이 무엇인지만 안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억지로 하나님께 씌워 하나님의 관점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그 관점을 준칙으로 여겨 고수한다. 그렇게 오래 가다 보면 너는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41. 사람이 나와 함께할 때 내 마음은 매우 기쁘다. 그러므로 나는 즉시 인간 세상에 복을 내려 사람이 나와 함께하게 한다. 사람은 나를 거역하는 원수가 아닌 내 마음에 합한 친구라 나도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 내 사역에서 사람은 상급 기관에 종사하는 존재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게 좀 더 신경을 쓴다. 사람은 본래 나의 사역 대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나를 앙망하게 하기 위해 사람의 마음속에 내 자리를 예비하였다. 하지만 사람은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기다리기만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내가 예비한 자리가 있지만 사람은 내가 내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자기 마음속의 ‘거룩한 자’가 갑자기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나는 신분이 너무 ‘미천한’ 관계로 사람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여 사람에 의해 ‘도태’되었다. 사람이 원하는 것은 지극히 높고 큰 ‘나’인데 내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더니 사람은 아직도 먼 곳만 바라보며 자기 마음속에서 그리는 그분만을 기다린다. 내가 사람 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거절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공손히 서서 사람의 ‘처분’을 기다리며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상품’인 나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 봤다. 나는 사람의 상처는 보지 않고 사람의 온전한 부분을 보며 기쁨을 얻었다. 사람의 눈에 나는 단지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별’이고, 하늘에서 가장 작은 자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오늘날 땅으로 내려온 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람은 ‘나’와 ‘하나님’이라는 이 두 단어에 ‘해석’을 덧붙였다. 하나님과 나를 하나로 볼까 봐 몹시 두려웠던 것이다. 내 ‘형상’에 ‘하나님’의 모습이 전혀 없기에 사람은 나를 하나님의 가족이 아닌 하인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형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땅에 있는 나는 식견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난’ 적이 없는 것 같다. 혹은 나의 ‘믿음’이 너무 작아서 사람에게 비천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진짜 하나님이라면 분명 인류의 언어에 능통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 이유가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인류의 언어에 능통하지도 않고, 심지어 때로는 사람의 ‘결핍한 것’을 ‘공급’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나도 ‘죄책감’이 약간 든다. 나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부족함’에 따라 그 부족한 재료를 넣어 주며 일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나의 요구가 높지 않지만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서 ‘겸손’이 드러난다. 사람은 언제나 앞서 걸으며 나를 ‘안내’하기 좋아한다. 내가 ‘방향을 잃을까’,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몹시 두려워서다. 그래서 사람은 내가 지하 감옥으로 들어갈까 봐 몹시 두려워 계속 나를 ‘끌고’ 앞으로 가고 있다. 사람의 믿음에 대해 나도 자못 ‘호감’이 있다. 사람은 나를 위해 침식을 잊고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를 위해 한숨도 못 자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다’ 머리가 하얗게 세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믿음이 온 우주를 ‘초월’하고, 역대 사도와 선지자를 ‘초월’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32편> 중에서

42.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는 자, 즉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믿지 않는 자, 볼 수 있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볼 수 없는 하늘의 하나님을 숭배하는 자는 모두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인성과 이성은 물론, 진리조차 갖추지 못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을 미덥지 못한 존재로 보며,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을 가장 미쁘고 또한 마음을 후련하게 하는 존재로 여긴다. 그들이 찾는 것은 자극적인 것이지 실제적인 진리도 아니고, 인생의 참뜻도 아니며, 하나님의 뜻은 더욱 아니다. 그들의 욕망을 가장 잘 채우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이 신앙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까닭은 단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악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들은 아주 자신만만해하면서 하늘의 하나님이 그들같이 ‘좋은 사람들’을 멸하리라고는 전혀 믿지 않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수없이 많은 일을 하고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리어 그들을 남겨 둘 뿐만 아니라 큰 상까지 내려 줄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을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욕망이 어그러지면 그 즉시 하나님께 반격하거나 노발대발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소인배’들이지 진리를 추구하는 ‘정인군자’가 아니다. 이런 부류의 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악한 자들이다. 진리를 찾지 않는 자들은 진리를 믿을 수 없으며, 이후에 인류에게 닥칠 결말에 대해서는 더욱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앞으로 인류에게 있게 될 종착지는 물론, 볼 수 있는 하나님의 그 어떤 사역과 말씀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을 따른다 할지라도 여전히 악을 행하고, 진리를 찾지 않으며, 내가 요구하는 진리도 실행하지 않는다. 자신이 멸망하리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오히려 멸망할 대상이다. 그들은 스스로 너무나 똑똑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또한 자신의 악행을 진리로 삼으면서 귀하게 여긴다. 이런 악인은 모두 자신을 지나치게 믿으면서 진리를 이치로 삼고 자신의 악행을 오히려 진리로 삼는데, 결국에는 자신이 행한 그대로 죗값을 받을 것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사람일수록, 교만한 사람일수록 더욱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대적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모두 징벌받을 대상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43.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용품으로 간주하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실행에 옮기지 않고, 진리를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천박한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사람이 가진 이 결점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은 사람을 오랫동안 혐오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누차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분석하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할까? 우리를 애꿎게 꾸짖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은 나의 한 번의 분석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주인의 말에 알랑거리는 삽살개처럼 굽실거린다. 또한, 자격이 없음을 실감하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개과천선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가면 즉시 양에서 늑대로 탈바꿈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내팽개친다. 언제나 자신의 일을 우선시하며 하나님의 일을 뒷전으로 미룬다. 사람이 이러한 행동을 일삼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이 임할 때 팔이 밖으로 굽는, 배은망덕이라고 불리는 행동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두고 “늘 내가 주는 밥을 먹으면서 ‘외도’를 한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완전한 사실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분량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작아 도리어 사실을 축소한 듯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36편> 중에서

44.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읽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을 마음에 새기며 귀한 보물로 여긴다. 또한,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도움을 준다. 그들은 이런 행동이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또 이런 행동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 온전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한 적이 없으며, 지금까지 하나님이 폭로한 말씀으로 자신을 맞춰 본 적도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숭상과 신임을 편취하고, 개인적인 경영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사취하고 도둑질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기회를 이용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사역하게 하고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망상한다. 시간이 흘렀으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를 찾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자신을 돕고 공급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거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이 생기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점점 더 깊어졌고, 하나님에 대한 추측이 점점 더 심해졌으며, 하나님에 대한 상상은 갈수록 과장되어 갔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이론적 공급과 인도하에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양, 식은 죽 먹기인 양, 그들의 인생 목표와 사명을 찾은 양, 새 삶을 얻은 양, 구원을 받은 양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낭랑하게 외우는 과정에서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을 찾은 듯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하나님과 대면하는 듯했고,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면서 늘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의 고심을 끊임없이 깨닫고 있는 듯했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경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을 알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도 알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확신한 듯했고, 하나님의 존귀함을 더욱 깨달은 듯했으며, 하나님의 위대함과 비범함을 더욱 느낀 듯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표면적인 인식에 심취되어 있는데, 마치 그들의 믿음이 증가하고, 고난받겠다는 다짐이 견고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 듯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체험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생각은 다 그들의 일방적인 상상과 추측에서 비롯되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어떤 검증도 견뎌 내지 못하고, 그들이 말하는 영적인 것과 분량은 하나님이 준 시련과 검증을 전혀 감당해 내지 못한다. 그들의 의지는 모래 위에 지어진 공중누각에 불과하며,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상상해 낸 성과에 불과하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많은 공을 들인’ 이 사람들은 무엇이 참된 믿음이고 무엇이 참된 순종인지, 무엇이 참된 헤아림인지, 무엇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인지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이론, 상상, 지식, 은사, 전통과 미신, 심지어 사람의 도덕관까지 모두 가져다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밑천과 무기, 심지어 토대로 삼는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또 이러한 밑천과 무기를 하나님을 알아 가는 비법으로 삼고, 하나님이 주는 검증과 시련, 형벌과 심판을 맞이하고 대처하는 비법으로 삼는다. 결국 그들이 얻는 것은 여전히 종교적 색채와 봉건 미신, 전설과 기이함, 비밀스러움으로 가득 찬 하나님에 대한 정론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정의는 하늘과 하느님(원문: 老天爺)만 믿는 사람들과 찍어 낸 듯 똑같다. 하나님의 실제,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등 진실한 하나님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은 그들의 인식과 어긋나고, 그 어떤 관계도 연관도 없으며, 심지어 완전히 상반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자양’ 아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지 못한다. 그 진정한 원인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과 알고 지낸 적이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접하고’ 사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며 경배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대하는 이러한 관점과 태도로 인해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갈 수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은 그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임을 뜻하고, 그들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이다> 중에서

45. 나는 너희의 삶 속에 나타나지만 너희는 이를 알아차리는 법이 없고, 심지어 나를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하는 말의 거의 절반이 너희에 대한 심판이고, 효과는 절반에 불과한데도 너희는 모두 넋을 잃었다. 나머지 절반은 삶에 대한 것이나 올바른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이지만, 너희는 이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의 말을 들은 것처럼 언제나 ‘은근슬쩍’ 웃고는 그냥 넘어간다. 너희는 나의 말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고,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나의 행사를 살펴본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모두가 흑암에 빠져 빛을 찾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슬피 울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희의 순종, 무조건적인 순종을 원한다. 또한, 너희가 나의 말을 등한시하지 않고 굳게 믿기를 바란다. 나의 말을 이렇게 선별적으로 대하며 대충 넘어가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그러니 너희가 나의 말과 사역에 늘 무관심한 것은 어떻겠느냐? 나의 사역은 너희 가운데서 이루어졌고, 나는 말로 너희에게 수많은 것을 베풀었다. 그런데 너희가 이렇게 무성의하게 나를 대한다면 나는 너희가 얻은 적이 없거나 실행한 적이 없는 것 모두를 이방 족속에게 줄 수밖에 없다. 내 손안에 있지 않은 피조물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너희 중의 다수가 ‘연로하여’ 나의 사역을 받아들일 기력이 없다. 항상 한고조(寒苦鳥)처럼 계획 없이 살아갈 뿐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참답게 대하는 법이 없다. 또한, 젊은이들은 허영심과 방종함으로 가득하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잔칫상의 진수성찬을 맛보려 하지도 않으며, 새장을 벗어난 작은 새처럼 ‘타향’으로 멀리 날아가 버린다. 이런 노인과 젊은이가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나이 든 자와 젊은 자들에게 전하는 말> 중에서

46.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 사람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른 시간이 얼마나 되었든 그들의 생각과 관점은 바뀐 적이 없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처세 원칙과 방식을 지키고 있고, 이방인과 같은 생존 법칙과 신념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믿은 적이 없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려고 한 적도 없고,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시인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취미로만 믿을 뿐이고, 하나님을 정신적 의지처로만 여길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은 알아 갈 가치도 없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모든 참된 것은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려고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라는 강렬한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고,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입으로만 시인하면서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그 어떤 실제적인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똑똑한 것이라고 여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47. 너희가 오랜 세월 내 면전에서 행한 행위로 나는 지금껏 얻지 못했던 답을 찾았다. 그 답의 질문은 바로 ‘사람은 진리와 참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이다. 내가 사람에게 쏟은 심혈로 사람을 향한 내 사랑의 본질이 실증되었다. 또한 사람이 내 면전에서 행한 모든 행위로 진리를 증오하고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의 본질도 실증되었다. 나는 언제나 나를 따르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나를 따르는 각 사람은 언제나 내게서 비롯된 말을 깨닫지 못하며, 심지어 내게서 비롯된 ‘제안’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일이다. 내 태도가 진실했고 내 말이 부드러웠을지라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욱 없었다. 저마다 내가 맡긴 일을 자기 뜻대로 하면서 나의 뜻을 찾지 않고, 나의 요구도 묻지 않는다. 그들은 다 나를 거역하면서도 충성을 다해 섬긴다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며, 자신이 실천하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진리는 그들에게 부인당하고 버림받는 것이 되었다. 또한 나는 사람이 입으로는 하나님이라 인정하지만 진리, 길, 생명은 아니라고 여기는 제3의 존재가 되었다. 아무도 내 말은 영원불변한 진리이며, 나는 사람의 생명 공급자이자 인류의 유일한 인도자라는 이치를 알지 못한다. 내 말의 가치와 의의는 인류가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말 자체의 본질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다. 설령 이 세상에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내 말의 가치와 인류에 대한 도움은 그 누구도 측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말을 거역하고 반박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나의 태도는 오직 하나뿐이다. 시간과 사실이 나를 증거할 것이다. 내 말이 곧 진리, 길, 생명이며, 내가 한 모든 말들은 옳은 것이고,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하고 또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실증할 것이다. 나는 나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즉, 나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에서 목표를 찾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내 말에 정죄받을 사람들이고, 더욱이 내 구원의 은혜를 잃은 사람들로, 내 채찍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 중에서

48. 나를 따른 지 그렇게 오래되었으면서도 너희는 나에게 ‘충실한’ 적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너희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에는 바쁘기 그지없었으며, 심지어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그것을 버린 적이 없었다. 나를 따르고 있거나 내 말을 듣고 있을 때조차도 너희는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이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충성심을 이용해 너희의 ‘애완물’에 충실하고, 너희의 ‘애완물’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다소 바쳤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너희의 전부를 뜻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충실했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너희는 열렬히 좋아하는 활동에 몸담고 있다. 어떤 자는 자녀에게, 어떤 자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어떤 자는 금전이나 업무에, 어떤 자는 직속상관이나 지위에, 어떤 자는 여자에게 충실하였다. 너희는 자신이 충실하던 것들에 피로를 느끼거나 근심한 적이 없고, 갈수록 자신이 충실하던 것들을 더 많이 더 쉽게 가질 수 있기를 갈구하며 그것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여태까지 너희는 나와 내가 한 말을 너희가 열중하는 모든 것의 끝자리에 놓아두었지만, 그것도 마지못해 그렇게 한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자는 그 끝자리마저도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던, 충실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위해 남겨 두었다. 그들은 나에게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너희는 어쩌면 내 요구가 너무 지나치고 내가 너희를 억울하게 한다고 여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희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워할 때 너희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충실한 적이 없었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그때 너희는 이로 인해 괴로워한 적이 있느냐?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수고의 대가를 받을 때 진리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해 낙담한 적이 있느냐? 너희는 언제 나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느냐? 자녀를 위해서는 온갖 지혜를 다 짜내고 애쓰면서도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으며, 게다가 자녀에게 세심하지도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다고 여기는데, 내게는 어떠하였느냐? 너희는 지금까지 나를 진지하게 대한 적이 없다. 단지 기억의 편린으로만 남길 뿐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간직하지는 않았다. 너희는 지금까지 너희에 대한 나의 각별한 마음을 느낀 적도 이해한 적도 없이 단지 조금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런 ‘충실’은 내가 오래도록 기대해 온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증오해 온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실한 사람인가?> 중에서

49. 지금 너희 각자 앞에 돈을 얼마 놓아두고서 너희가 어떤 선택을 해도 정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너희 가운데 많은 자가 진리를 버리고 돈을 선택할 것이다. 그보다 좀 나은 자는 돈을 버리고 마지못해 진리를 선택할 것이고, 그 두 부류 사이에 있는 자는 한 손으로는 돈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진리를 붙들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진면목이 어떠할지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느냐? 너희는 자신이 충실히 대하는 모든 것과 진리 사이에서 다 이렇게 선택할 것이고, 너희 태도 또한 여전히 이럴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많은 자가 옳고 그름 사이에서 망설이지 않았느냐? 가정과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화목과 파탄, 부와 빈곤, 지위와 평범함, 지지받는 것과 버림받는 것과 같은 모든 정(正)과 반(反), 흑과 백의 싸움에서 너희가 무엇을 선택하였는지를 모를 리 없지 않겠느냐? 가정의 화목과 파탄 사이에서 화목을 선택하는 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으며, 금전과 본분 사이에서 또 금전을 선택하는데, 심지어 뉘우치고 바른길로 돌아서려는 의지조차 없었다. 사치와 빈곤 사이에서는 사치를, 자녀와 아내와 남편과 나 사이에서는 자녀와 아내와 남편을, 고정 관념과 진리 사이에서는 고정 관념을 선택하였다. 너희의 온갖 악행에 나는 너무 놀랐고, 너희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으며,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누그러지지 않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얻은 결과는 너희가 나를 포기하거나 막무가내로 대한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모든 날들을 이미 너희 앞에 펼쳐 보였기 때문에 너희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너희는 지금도 어둡고 사악한 것을 추구하며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희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는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그래도 앞의 것을 택하겠느냐? 나에게 여전히 실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 주겠느냐? 너희의 온화한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도 작은 것이더냐? 어떻게 해야 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실한 사람인가?> 중에서

50. 나는 사람이 바삐 보낼 때 감추고, 사람이 한가할 때 그들에게 나타난다. 사람은 내가 ‘만물박사’이고, 구하면 반드시 들어주는 하나님 자신이라고 상상한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오는 이유는 단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지, 내 앞에서 나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은 병세가 위중할 때는 지체할세라 내게 도움을 청하고, 환난 속에 있을 때는 역경에서 벗어나려고 최대한 내게 고충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편안할 때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평안하고 행복할 때에도 자신과 더불어 즐기자며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안’에 행복이 가득할 때, 사람은 일찌감치 나를 한쪽에 내버려 두거나 문전 박대 하고서는 즐겁게 온 집안의 행복을 누린다. 사람은 옹졸하고 속이 좁아 자비와 긍휼을 베풀며 이토록 사람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하나님인 나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 즐겁게 웃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이 그들에게 버림받았는지 모르고, 사람이 넘어졌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이 그들의 지팡이로 사용되었는지 모른다. 또한 사람이 병마에 시달릴 때, 나는 얼마나 많이 그들의 ‘의사’로 불려 갔는지 모른다. 얼마나 잔인한 인류이냐! 그야말로 이성도 없고 도의도 모른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인정’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인간미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가 어려웠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4편> 중에서

51. 내가 하나님나라에서 왕이 되었지만 사람은 나를 왕으로 대하지 않고 ‘하늘에서 떨어진 구세주’처럼 대한다. 그래서 사람은 내가 은덕을 베풀길 바랄 뿐 나를 알고자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내 앞에 와서 거지처럼 ‘간청’하고, 많은 사람이 ‘자루’를 가져와 나를 향해 벌리며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구한다. 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늑대처럼 탐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를 한입에 삼켜 배를 채우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죄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조용히 고개를 숙이거나 내게 관용을 간구하거나 기꺼이 나의 형벌을 받아들인다. 내가 음성을 발할 때 사람의 온갖 추태와 천태만상이 빛 속에서 본모습을 드러냈다. 빛이 비치는 가운데 사람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급히 내 앞에 엎드리며 죄를 자복한다. 나는 사람의 ‘정직함’을 보고 또 한 번 인류를 구원 열차에 태운다. 이 때문에 사람은 내게 감격하며 애정의 눈빛을 보내지만 여전히 진심으로 내게 귀의하겠다는 마음은 없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내게 주지 않는다. 나를 ‘자랑’할 뿐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몸은 내 앞에 있지만 마음은 내 뒤에 있다. 사람이 너무 버릇없는 데다 내 앞에 올 마음도 없기 때문에 나는 사람에게 적당히 ‘후원’해 주어 잘못을 깨닫지 못하던 데서 내게로 돌아서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사람에게 베푸는 긍휼이자 최선을 다해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2편> 중에서

52. 나의 집에 거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 오늘날 이 세상 사람 가운데 누가 내게 진심으로 의지하였더냐? 누가 마음으로 나의 대가를 얻었더냐? 누가 나의 집에서 편히 거했더냐? 누가 내 앞에 진심을 바쳤더냐? 내가 사람에게 요구할 때 사람은 그 즉시 자기의 ‘작은 창고’를 닫아 버린다. 그러나 내가 사람에게 베풀 때 사람은 냉큼 입을 벌려 나의 풍요로움을 빼먹고는 내가 자신에게 ‘반격’할까 봐 몹시 두려워하며 속으로 늘 벌벌 떤다. 그러니 사람은 입을 ‘어중간하게 벌린’ 상태로 내가 주는 풍요로움을 진심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사람을 쉽게 정죄하지 않지만 사람은 늘 ‘내 손을 잡고’ 내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한다. 사람의 간청에 나는 다시 ‘긍휼’을 베푼다. 즉,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매서운 말을 해 준다. 그러기에 문득 부끄러움을 느낀 사람은 직접 내 ‘긍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다. 사람이 나의 모든 말을 먹고 완전히 소화하게 되면 사람의 분량은 내 뜻을 충족시키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러면 사람의 간청은 헛되고 쓸모없는 일이 아니라 효과를 보게 된다. 나는 인류가 ‘거짓’이 아니라 ‘진정’으로 ‘간청’할 때에 축복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8편> 중에서

53. 사람이 모두 나를 알지 못하고, 사람의 본성이 나를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나를 위해 충성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누림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손해 보는 일이 생기면 즉시 마음이 변하여 나를 떠나려고 하는데 이는 사탄의 본성이다. 스스로를 옳다 생각하지 말며 충성을 다한다고 여기지 말라! 조금의 이익도 없다면 짐승 같은 너희가 나를 위해 충성할 리 없다. 만약 내가 나의 행정을 선포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벌써 떠났을 것이다. 지금은 나를 위해 힘쓰고 싶지도 않고, 내 손에 죽임 당하고 싶지도 않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여 있을 뿐이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든 대재난이 임할 거라고 내가 선포하지 않았더라면 너희는 진작에 나갔을 것이다. 아무렴 내가 사람의 옹졸함을 모르겠느냐? 현재 많은 사람이 일말의 희망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이 실망으로 바뀔 때, 그들은 하던 일을 팽개치고 물러가겠다고 할 것이다. 내가 말했듯이, 나는 그 누구도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하지만 네 결말에 대해서는 신중히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것은 협박이 아니라 사실이다. 사람의 본성은 나 외에 누구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 사람은 다들 자신이 나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충성’에 불순물이 섞여 있음은 모른다. 그 불순물이 사람을 망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나에게 간파된 큰 붉은 용의 음모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거늘, 그 단순한 일을 모를 리 있겠느냐? 나는 너의 피와 살을 뚫고 너의 속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파악하는 것이 내게는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은 스스로 똑똑한 척 굴며, 자신의 속셈은 혼자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천지 만물 가운데 전능한 하나님이 존재함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18편> 중에서

54.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시련을 주든지 하나님에 대한 충정이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일단 하나님의 사역이 자기 육에 불리해지면 즉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간다. 이런 자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굳게 설 수 없는 자들이고, 모두 복만 받으려 할 뿐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자신을 바칠 마음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소인배들은 사역이 끝날 때 모두 ‘쫓겨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조금도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인간성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다가도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깨어질 때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악마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우환거리가 되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55.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나를 찾고, 시련이 닥쳤을 때 나를 앙망하며, 평안할 때 나를 누리다가, 위험할 때 나를 부정하고, 바쁠 때 나를 잊고, 한가할 때 나를 무성의하게 대한다. 일생 동안 나를 사랑하는 자는 없다. 나는 사람들이 내 앞에서 진지하기를 바란다. 나는 사람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나를 기만하지 않고 중시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사람의 진심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퍼져 있고 내가 기울인 심혈이 스며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의 모든 행위의 ‘진상’과 나를 향한 기만이 차 있다. 마치 사람은 모태에서 ‘기만의 성분’을 갖고 나온 듯하고, 독특한 ‘사기술’을 타고난 듯하다. 그 ‘사기술’은 지금까지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 아무도 그 근원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기만 속에서 살면서 본인이 원해서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 이는 그저 ‘하나님의 안배’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나를 기만하는 근원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간계가 아니겠느냐? 나는 사람의 감언이설에 속아 우왕좌왕한 적이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질을 일찌감치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혈액에 불결한 성분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의 골수에 사탄의 독소가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세월을 거듭하며 그것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은 사탄의 괴롭힘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하게 사는 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1편> 중에서

56. 나의 영은 사람을 수없이 불렀다. 그러나 사람은 나에게서 자상이라도 입은 듯 먼발치에서 나를 바라만 보았다. 내가 다른 세계로 인도할까 몹시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나는 사람의 영을 통해 사람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사람은 이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내가 사람의 집에 들어가 모든 물건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를 문밖에 세워 두었다. 내가 마주한 것은 굳게 닫힌, 차가운 ‘대문’뿐이었다. 나는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을 수없이 구했다. 그러나 사람은 정신이 든 순간 나를 떠났다. 나의 자비에 감동하기는커녕 나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일 수 없었다. 사람은 감정이 없는 냉혈 동물이다. 나의 품에서 따뜻함을 느껴도 감동하지 않는다. 사람은 산속의 야만인 같아 내가 사람을 ‘아껴’ 주는 것을 귀하게 여긴 적이 없다. 나를 가까이하느니 차라리 산속에 묻혀 살려고 한다. 산짐승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나에게 의지하고자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사역을 행할 뿐이다. 모든 사람이 망망대해에서 나의 곁으로 헤엄쳐 와 육지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바닷물에 삼켜질 위험에서 벗어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0편> 중에서

57. 나는 너희 마음속에 자리한 간사한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너희 대부분은 호기심 때문에 나를 따르고, 공허함으로 인해 나를 찾는다. 너희의 세 번째 소망인 평안하고 행복한 삶이 산산조각 날 때 너희의 호기심도 함께 사라진다. 너희 모두가 품고 있는 간사한 마음은 언행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솔직히 말하면, 너희는 나에 대해 호기심만 느낄 뿐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말을 가려서 하거나, 행동에 신중을 기하는 법이 없다. 너희의 믿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진실한 것이냐? 너희는 내 말을 그저 근심을 해소하고,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 허전함을 채우는 데 쓸 뿐이다. 내 말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누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냐? 너희는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라고 외치지만 너희가 마음으로 부르짖는 하나님이 나이긴 한 것이냐? 너희는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냐? 이것이 너희가 내게 보답하겠다고 하는 사랑이란 말이냐? 너희가 말로는 많은 것을 바쳤다. 그런데 너희가 바친 ‘제물’과 ‘선행’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너희의 말이 내 귀에 상달되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너희를 이토록 증오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믿는다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궁색한 처지로 전락했겠느냐? 너희는 음부에서 심문을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낙담하여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맥없이 진심을 이야기하는데 온통 원망과 악담뿐이다. 너희는 내가 하는 일에 믿음을 잃은 지 오래고, 너희가 원래 가졌던 믿음조차 모두 사라졌다. 이래서야 어떻게 끝까지 따를 수 있겠느냐? 어떻게 ‘구원 얻을’ 수 있다는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나이 든 자와 젊은 자들에게 전하는 말> 중에서

58.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나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으며,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사람은 늘 하나님을 피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멀어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사실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간 것도 아니다. 자기가 간직한 채 하나님께 드리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보여 드리지도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저의 마음을 감찰하소서. 당신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라고 늘 기도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감찰을 받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하고, 그 서원을 어기면 벌을 받겠다고 맹세할지라도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감찰하라고 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앞날과 운명과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께 어떤 맹세를 하고 다짐을 했든지 간에, 하나님이 보기에 너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 있다. 너는 하나님께 너의 마음을 살피는 것만 허락했지, 너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너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놓지도 않았으며, 그저 듣기 좋은 말만 하고는 각종 간사한 속셈은 다 감춘 것이다. 너는 자신의 의도와 타산, 계획을 전부 숨기고, 앞날과 운명을 하나님이 빼앗아 갈까 두려워 자기 손안에 꼭 쥐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라 사람이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볼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으며, 사람은 마음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단지 살펴볼 권리만 있지 다스릴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주관적인 의식 안에 자신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길 생각이나 계획이 없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폐쇄적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갖은 방법을 다해 마음을 감추고, 감언이설로 허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신임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실한 모습은 감추어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하는 목적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고, 자신이 간수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일을 생각하든 다 자신이 계획하고 타산하며 결정하고 싶은 것이지 하나님의 ‘참여’와 간섭이 필요치 않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이나 당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대할 때는 자신의 속셈과 이익, 그리고 그 당시의 자신의 상태와 처한 환경에 따라 선택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늘 자신의 지식과 식견을 바탕으로, 자신의 머리로 자기가 나아갈 길을 판단하고 선택하며, 하나님이 간섭하고 다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본 사람의 마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59. 사람은 하나님의 시련이 임할까 봐 늘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사람은 언제나 사탄의 굴레에 묶여 살고, 사탄의 공격과 상해의 위험 속에서 살면서도 두려운 줄 모르고 걱정하지도 않는다. 이는 어찌 된 일이냐?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은 그저 보이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배려에 대해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는 시련,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에 대해서 공포와 두려움을 조금 느낄 뿐, 하나님의 고심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시련을 언급하면, 사람은 하나님께 아마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알 수 없는 저의를 품고 있어 사람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오히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극력 반발하고 저항한다. 이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사람이 조심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잘못 인도’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빼앗길지도 모르며, 심지어 목숨도 위태로워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탄의 진영에 있으면서도 사탄이 사람을 해칠까 걱정한 적이 없었고, 사탄에게 해를 입으면서도 사탄에게 잡혀가는 것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반면, 사람은 말끝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겠다고 외치지만 하나님을 신뢰한 적이 없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람을 사탄의 마수에서 구원하리라는 것을 믿은 적도 없었다. 사람이 욥처럼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면서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긴다면, 사람의 결말은 욥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순종한다고 해서 사람에게 무슨 손해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권고하는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너의 신변에 임하는 모든 일들을 신중히 대하라. 경솔하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혈기와 천연적인 본능, 혹은 상상과 생각만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사람이나 일, 사물들을 대하지 마라.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구하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60. 너희는 믿음이 아주 훌륭하여 내 사역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겠다느니, 기꺼이 목숨을 걸겠다느니 하는 말을 내뱉지만, 성품은 별로 변화하지 않았다. 그저 교만한 말만 할 뿐, 실제 행동은 형편없다. 마치 입술과 혀는 천상에 있고, 양발은 지상에 붙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사람의 언행과 명성은 여전히 볼품없기 짝이 없다. 너희의 명성은 망가졌고, 너희의 행동거지는 비천하며, 너희의 말은 저속하고, 너희의 삶은 천박하다. 심지어 너희는 인성마저 저열하다. 너희는 사람에 대해 속이 좁고 무슨 일이든 옥신각신 따지고 들며,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 다투고, 그것을 위해 지옥이나 불 못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늘날, 너희의 이런 언행만으로도 너희를 정죄하기에 충분하며, 내 사역에 대한 너희의 태도만으로도 너희를 불의한 사람으로 규정하기에 충분하다. 또 너희의 모든 성품은 너희를 가증스러운 것들로 가득 찬 더러운 영혼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며, 너희가 나타내는 모든 모습은 너희가 더러운 귀신의 피로 배를 채운 사람임을 보여 준다. 천국에 가는 일에 대해 말하면 너희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현재 너희는 그런 모습으로 나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게 언행을 검증받지 않고도 너희는 자유로이 내가 사역하고 말하는 성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누가 내 두 눈을 속일 수 있겠느냐? 너희의 비천한 행동거지와 저속한 말투가 어찌 내 눈을 피할 수 있겠느냐? 나는 너희의 삶을 더러운 귀신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삶이라 규정했다. 너희는 날마다 내 앞에서 그 더러운 귀신의 몰골을 흉내 내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앞에서 더없이 저열한 작태를 보이는데 내가 어찌 혐오감이 들지 않겠느냐? 너희의 말에는 더러운 귀신의 불순물, 즉 사기와 기만, 아첨이 들어 있다. 그것은 사술(邪術)을 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간사한 짓을 벌이며 불의한 자의 피를 마시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모든 모습이 극도로 불의한데, 어떻게 그런 자들을 의인들이 거하는 그 거룩한 땅에 들일 수 있겠느냐? 너는 그 비열한 행위를 보이면서도 불의한 자들 가운데서 거룩하게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독사 같은 혓바닥이 결국에는 너의 그 멸망의 가증한 육체를 망칠 것이며, 더러운 귀신의 피로 물든 네 그 두 손이 결국에는 네 영혼을 지옥으로 끌어갈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이 기회에 더럽혀진 두 손을 깨끗이 씻지 않는 것이냐? 어찌하여 이 기회에 불의한 말을 하는 네 혀를 ‘잘라 내지’ 않는 것이냐? 네 두 손과 혓바닥 때문에 지옥 불에 불사름 당하겠다는 것이냐? 내 두 눈은 만인의 마음을 감찰한다. 나는 인류를 만들기 전부터 사람의 마음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전부터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거늘,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어찌 내 눈을 피할 수 있겠느냐? 또 어찌 내 영의 불사름을 피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61. 네 입술은 비둘기보다도 선량하지만, 네 마음은 옛 뱀보다도 음험하다. 더 나아가 네 입술은 레바논의 여인처럼 아름답지만, 네 마음은 가나안 사람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레바논의 여인만큼도 선량하지 않다. 네 마음은 너무나 간사하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불의한 자의 입술과 마음이다. 사람에 대한 내 요구는 거룩한 자보다 높지 않다. 나는 다만 그 불의한 자들의 악행에 혐오감을 느낄 뿐이다. 나는 그저 그 불의한 자들이 더러움을 벗어던지고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나, 그 불의한 자들에게서 구별되고 의인들과 함께 거하며 함께 성결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너희는 나와 같은 경지에서 함께하지만 더러움으로 가득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태초에 지음 받았을 때의 모습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너희는 날마다 더러운 귀신의 꼬락서니를 흉내 내고, 더러운 귀신의 작태를 행하며, 더러운 귀신의 말을 입에 담는다. 그로 인해 너희의 온몸은 물론, 너희의 혓바닥까지 전부 그것의 오물로 더럽혀졌으며, 너희 전체가 그 얼룩으로 뒤덮였다. 너희에게는 내 사역에 사용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으니 참으로 가슴 아프구나! 그런데 너희는 이 짐승 같은 세상에서 살면서도 근심과 고뇌를 느끼기는커녕 환희로 가득 차 자유롭게 살고 있다. 또, 이 오물 속에서 헤엄치면서도 자신이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매일 더러운 귀신과 왕래하고, ‘분뇨’와 왕래하는 저질스러운 삶을 살고 있음을 모르는구나. 네가 정녕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너 스스로를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인생은 진작에 그 더러운 귀신에게 유린당했음을 왜 모른단 말이냐? 네 인격은 이미 오래전에 그 오물로 더럽혀졌음을 왜 모른단 말이냐? 너는 네가 인간 낙원에서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하느냐? 자신이 평생 더러운 귀신과 함께 살아왔고, 그 귀신이 너를 위해 예비한 모든 것들과 일생을 함께했음을 왜 모르는 것이냐? 네 삶이 의의가 있겠느냐? 네 인생이 가치가 있겠느냐? 너는 그 더러운 귀신 아비 어미를 위해 지금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녔으면서도, 너를 해한 자가 실은 너를 낳고 길러 준 그 더러운 귀신 아비 어미임을 모르고, 너의 더러움은 그것이 네게 공급해 준 것임은 더더욱 모르는구나. 네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네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뿐이다. 그것은 너를 형벌하지도 심판하지도 않으며, 더욱이 저주하지도 않는다. 또한 한 번도 네게 노발대발한 적이 없이 늘 ‘온화하고 상냥하게’ 대했다. 그것의 말은 네 마음을 적시고 네 정신을 쏙 빼 가 방향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게 빠져들어 기꺼이 그것을 위해 힘쓰게 되었고, 그것의 대변인, 그것의 노예가 되었다. 그럼에도 너는 어떤 원망조차 하지 않고 기꺼이 그것을 위해 온갖 충성을 다한다. 너는 그것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랬기에 내 사역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 그랬기에 줄곧 내 손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감언이설로 내 환심을 사려 했던 것이다. 너에게는 다른 타산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나, 전능자의 행사에 대해 얼마간 알고 있지만, 나의 심판과 형벌에 대해서는 추호도 알지 못한다. 너는 내 형벌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저 나를 기만할 줄만 알 뿐, 내가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62. 나는 너희 가운데서 몇 해를 다녔고, 또한 오랜 세월 너희 가운데서 생활하였다. 내가 너희와 함께 생활했는데, 너희의 비열한 행위가 내 눈앞에서 얼마나 사라졌느냐? 너희의 마음속 말은 내 귀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너희의 다짐은 내 제단 위에 첩첩이 쌓여 그 수를 셀 수도 없다. 그러나 너희의 봉헌과 헌신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너희의 진심은 내 제단 위에 전혀 놓이지 않았다. 나에 대한 너희 믿음의 열매는 어디에 있느냐? 너희는 나에게서 한없는 은혜를 얻고, 한없는 하늘의 비밀을 보았다. 나는 너희에게 하늘의 불길까지 보여 주었으나 차마 너희를 불사르지는 못했다. 그런데 너희는 내게 얼마나 돌려주었느냐? 너희가 기꺼이 내게 준 것은 얼마나 되느냐? 내가 베풀어 준 음식을 다시 내게 바치는 주제에, 힘들게 피땀 흘려 얻은 것이라느니, 너의 모든 것을 바친다느니 하며 지껄이는구나. 네가 ‘바친’ 것이 전부 내 제단에서 훔쳐 간 것임을 모른단 말이냐? 오늘 그것을 다시 내게 바치니 이는 나를 기만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오늘 내가 누리는 것은 전부 내 제단 위에 놓인 제물이지, 네가 피땀 흘려 얻은 것을 내게 바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어찌 모르는 것이냐? 너희가 이렇게 나를 기만하는데, 내가 어찌 너희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어찌 계속 참을 수 있겠느냐? 나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었다. 나는 전부 공개하며, 너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여 너희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 그런데 너희는 양심을 저버리고 나를 기만하는구나. 나는 사심 없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베풀어 주었다. 너희는 비록 고통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하늘에서 가져온 모든 것을 얻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희는 조금도 봉헌하지 않는구나. 설령 조금 공헌했다고 해도 조금만 지나면 또 내게 ‘장부를 들이대니’, 너의 공헌이 전부 헛되지 않겠느냐? 네가 내게 바친 것은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 한 톨이지만, 내게 요구한 것은 황금 만 냥이다. 이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냐? 나는 너희 가운데서 사역하지만, 많은 제물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십일조마저도 받지 못했다. 또 경건한 사람들이 바친 십일조마저 전부 악한 자들에게 빼앗겼다. 그러니 너희는 모두 나와 함께 모이지 않는 자들이 아니겠느냐?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이 아니겠느냐? 내 제단을 파괴하는 자들이 아니겠느냐? 그런 자들이 어찌 내 눈에 귀하게 보이겠느냐? 그런 자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혐오하는 개돼지가 아니냐? 내가 어찌 너희의 악행을 귀히 여기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63. 나는 타인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아주 좋아하며,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매우 사랑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특별히 보살펴 준다. 나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네가 매우 간사한 사람이라면 너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과 추측하는 마음으로 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너의 믿음 역시 의심의 토대 위에 세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나는 영원히 인정할 수 없다. 참된 믿음이 없다면 참된 사랑은 논할 것도 못 된다. 네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도 모자라 제멋대로 추측하기까지 한다면, 너는 틀림없이 누구보다 간사한 사람일 것이다. 너는 하나님도 사람처럼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사람처럼 속이 좁으며, 사람처럼 공평하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하지 않을지, 사람처럼 정의감이 없고, 사람처럼 악랄한 수단을 쓰며 음험하고 간교하지 않을지, 또한 사람처럼 사악과 어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지 등등의 의심을 한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조금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러한 믿음은 그야말로 죄업을 쌓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내가 나에게 잘 보이려고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그들처럼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집에서 환대를 받지도, 제대로 서지도 못할 것이라고 여긴다. 이것이 바로 오랜 기간 너희가 깨달은 인식이더냐? 이것이 바로 너희가 얻은 수확이더냐? 너희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런 오해에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경우는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고 하늘을 모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그런 믿음이 너희와 나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나와 적대적으로 만들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64. ‘하나님’과 ‘사람’은 동일 선상에서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사역은 가장 측량하기 어렵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지 않고 말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러면 하나님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헛수고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간파’했다는 사람들은 다 무능한 자, 교만하고 무지한 자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해서는 안 되며, 더군다나 규정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실로 개미보다 작은 존재이거늘 어찌 하나님의 사역을 측량할 수 있겠느냐? 입만 열면 “하나님은 이렇게 저렇게 사역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렇다 저렇다”라고 하는 사람은 다 허황된 말을 늘어놓는 자가 아니냐? 육에 속한 사람은 다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과 대등해질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계책을 낼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인도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할 일이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사람은 그저 먼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이상, 자기 관념을 하나님이 사역하는 데 참고해 달라며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패괴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의도적으로 극력 대적하는 것은 더 안 될 일이다. 이런 사람은 적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이상,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싶고 하나님을 보고 싶은 이상, 진리의 도를 찾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찾아야지 목을 뻣뻣이 하고 하나님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무슨 좋은 결과가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65.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의 사역을 가로막는 것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하고 또한 얼마 안 되는 지식과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재단했기 때문이 아니냐? 그들은 체험이 얕으면서도 또 천성이 교만하고 제멋대로라 성령의 사역을 가볍게 여기고 성령의 징계를 등한시한다. 또한 자신의 미약하기 짝이 없는 낡은 이론으로 성령의 사역을 ‘확증’하고, 게다가 스스로 학식이 높다고 믿으며 온 세상을 주름잡을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런 자는 모두 성령께 버림받는 자이고 새 시대에 도태되는 자임을 어찌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 앞에 와서도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모두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경망을 떠는 소인배들이 아니냐? 얼마 되지도 않는 성경 지식으로 온 세상의 ‘학술계’를 주름잡으려 하고, 겨우 사람이나 가르칠 수 있는 보잘것없는 이론만으로 성령의 사역을 자기의 생각에 맞춰 움직이게 하려는 야심 찬 생각을 하며, 좁은 안목으로 하나님의 6천년 사역의 풍모를 한눈에 다 꿰뚫으려고 한다. 그런 자에게 무슨 이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사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사역을 쉽사리 평가하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대해 아는 것을 조금만 말할 뿐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교만하고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또한 하나님의 어떠함에 대해 실증도 전혀 없는 이론만 멋대로 떠벌릴 뿐이다. 이런 사람은 가장 가치 없는 자이다. 성령의 사역을 아이들 장난으로 치부하는 자들은 모두 경박한 자들이다! 이들은 성령의 새 사역을 마주하고도 신중하게 대하기는커녕 오히려 함부로 지껄이고 멋대로 평가하며, 자기 성미대로 성령 사역의 정확성을 부인한다. 게다가 모욕적인 말과 모독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오만불손한 자들은 모두 성령 사역을 알지도 못하고, 천성이 거만하고 교만 방자한 자들이 아니냐? 그런 자는 언젠가 성령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관용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기까지 한다. 그런 악당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사함 받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지옥에 있을 멸망의 대상이다! 오만하고 방종한 자들은 또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건 자들이다. 그런 자들일수록 하나님의 행정을 더 쉽게 거스른다. 천성적으로 방종하고 복종할 줄 모르는 교만한 자들은 모두 그런 길을 가지 않느냐? 모두가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을 이렇게 매일매일 대적하지 않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66. 너희가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거나 자신의 관념으로 오늘날의 사역을 판단하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사역 원칙을 모르는 데다가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경솔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 역사를 가로막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일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너희의 관념과 천성적인 교만 때문이고 너무도 패역한 천성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뒤에도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감히 공개적으로 성령 사역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고 이야기하며, 게다가 또 성령의 새로운 사역이 있는 사도들을 훈계하고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불손하게 말하는데, 인성이 참으로 저급하고 이성이라고는 그야말로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자는 모두 언젠가 성령 사역에 의해 버려지고 지옥의 불에 태워질 대상이 아니냐? 하나님의 사역을 모르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평가하고, 게다가 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해야 한다고 지휘할 생각까지 하는데, 이렇게 비이성적인 자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모두 구하는 과정에서, 체험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이지 제멋대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깨우침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줄어든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쉽게 대적한다. 너의 관념과 옛 성품, 인성, 품성, 도덕 사상은 모두 네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밑천’이다. 또한 도덕이 부패하고 품성이 악랄하며 인성이 저급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관념에 심각하게 사로잡힌 자와 성품이 독선적인 자는 성육신 하나님의 원수인데, 이런 부류의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네가 관념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 관념은 영원히 하나님과 적대될 것이다.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며 영원히 하나님과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67. 네가 뭐든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게 알려 주겠다. 지금까지 네가 보고 체험한 것으로는 내 경륜의 천분의 일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런데도 너는 뭐가 그리 잘났느냐? 네가 가진 보잘것없는 재능과 앎은 예수가 행하는 사역에 1초도 이용될 수 없다! 너의 체험이 얼마나 되느냐? 여태까지 네가 본 것에 네가 평생 듣고 상상한 것을 더해도 내 한순간의 사역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흠잡을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교만하게 굴어도 너는 개미만도 못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네 배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은 개미 배 속에 들어 있는 것보다도 적다! 네가 경험이 많고 관록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지껄여도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 그 경험과 관록 또한 다 내가 한 말에서 비롯된 것 아니더냐? 설마 그게 너의 성실과 근면의 대가라 생각하고 있느냐? 너는 오늘날 나의 성육신을 보았기에 그렇게 풍부한 상상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관념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내가 성육신하지 않았더라면, 너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지금처럼 그렇게 많은 상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네 관념 또한 그로 인해 생긴 것 아니더냐? 만약 예수의 첫 번째 성육신이 없었다면, 성육신에 대해 네가 알기나 했겠느냐! 첫 번째 성육신을 알게 됐다고 그렇게 방자하게 두 번째 성육신을 평가하는 것 아니더냐?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망정, 또 무엇을 따지는 것이냐? 네가 이 흐름에 들어와 성육신 하나님 앞에 온 이상 네가 연구하는 것을 그가 용납하겠느냐? 네 집안의 가족사를 따져 보는 것은 상관이 없겠지만, 네가 지금 하나님의 ‘가족사’를 따져 보고자 한다면, 오늘날의 하나님이 그것을 용납하겠느냐? 너는 눈이 먼 것이 아니냐? 화를 자초하는 것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 중에서

68. 오늘날의 길을 가면서 어떻게 추구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겠느냐? 너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간주하고 추구해야 하겠느냐? 너는 오늘날 네게 임한 모든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시련, 고난, 무정한 형벌, 저주, 이 모든 것이 임할 때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오늘 너에게 임한 것은 한 번씩 되풀이되는 짧은 시련이므로 정신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네가 이를 내팽개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소중한 자산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너는 조심성이 없기 짝이 없구나! 이 소중한 자산을 눈앞을 스쳐가는 구름이라고 생각하다니. 되풀이되는 호된 매질에 크게 아파하지 않고, 이를 일시적인 고통으로 치부하며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관심 없이 냉담하게 바라보며 어쩌다 직면한 한 차례의 난관으로 간주할 뿐이다. 너는 거만하기 짝이 없구나! 거듭하여 밀어닥치는 거센 비바람을 하찮게만 여긴다. 심지어 싸늘하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는 네가 계속 이런 ‘불행’을 겪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내가 오로지 너의 허물만 들춘다는 말이냐? 너의 생각이 내가 말한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해도 너의 그 ‘태연한’ 표정과 태도는 너의 내면을 여실히 드러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너의 마음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은 불만에 가득 찬(원문: 不近人意) 욕설과 사람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끝없는 슬픔일 뿐이다. 너는 시련을 겪는 것이 몹시 불공평하다고 느끼기에 욕설을 퍼붓는다. 시련으로 인해 세상의 쓸쓸함을 느끼고, 이로 인해 낙담한다. 연거푸 이어지는 매질과 징계를 최고의 보살핌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늘이 생트집을 잡거나 합당한 보응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무지하기 짝이 없구나! 너는 무정하게 절호의 시기를 어두운 곳에 봉하고, 되풀이되는 아름다운 시련과 징계를 원수의 공격으로 간주한다. 너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황에 적응할 생각도 없다. 네가 잔혹하다고 여기는 이 거듭되는 형벌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 하거나, 구하거나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식으로 운명에 맡길 뿐이다. 네가 잔혹하다고 여기는 채찍질은 너의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점유하지 못하고 네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너는 ‘잔혹한 형벌’을 금생의 원수라고 생각할 뿐 거기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너는 독선적이기 짝이 없구나! 너는 자신이 비열하기 때문에 이런 시련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법이 거의 없다. 도리어 자신이 더없이 불행하다고 여기고, 내가 항상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말한다. 이 지경에 이르렀건만 너는 도대체 내가 한 말과 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이냐? 네가 하늘보다는 약간 낮고 땅보다는 훨씬 높은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지 말라. 너는 결코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지 않다. 지구상의 어떤 이성적인 사람보다 어리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여 열등감을 느낀 적이 없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군다. 사실 너는 전혀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다. 너는 아예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도 하늘의 축복만을 바라보며 경작하는 농부만도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너는 네 인생을 몹시 하찮게 여기고, 자신의 평판도 알지 못하며, 주제 파악을 못한다. 너는 정말 ‘대단’하구나! 나는 너 같은 도련님이나 곱게 자란 양갓집 규수가 어떻게 거센 바람과 거친 파도를 이겨 낼지 몹시 걱정이다. 오늘날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도련님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소극적이지 않으며, 자신이 비천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거리’에서 부채질을 하며 거들먹거리고 돌아다닐 뿐이다. 불학무식한 ‘인물’들은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모른 채, 잔뜩 화난 모습으로 스스로를 알아 가는 듯하다가도 그 후에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 그는 나를 떠나간 후에도 제멋대로 행동하고 사기를 친다. 아직도 순식간에 표정을 바꿔 가며 나를 속이다니, 너는 대담하기 짝이 없구나! 곱게 자란 아가씨들은 더욱 가관이다. 나의 급해하는 소리를 듣고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린다. 또한, 누군가를 유혹하듯 몸을 배배 꼬아 대니 역겹기 그지없다! 자신의 분량을 알고는 침대에 엎어져 곧 숨이 끊어질 것처럼 끊임없이 통곡한다. 이 같은 말을 통해 자신의 미숙함과 비천함을 깨닫고는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변한다. 두 눈은 넋이 나간 듯 빛을 잃는다. 나를 원망하거나 증오하지도 않고, 그저 소극적인 모습으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불학무식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나를 떠난 후 다시 시시덕거리며 장난을 치고, ‘은방울 공주’와 같은 ‘웃음소리’를 낸다. 그녀들은 연약하기 짝이 없고, 스스로를 불쌍히 여길 줄 모른다! 인류 중의 불량품과 같은 너희는 모두 인성이 글렀다! 너희는 자신을 사랑하거나 보호할 줄 모르고, 사리를 모른다. 참도를 찾지 않고, 참빛을 사랑하지 않으며, 너희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줄도 모른다. 너희는 내가 몇 번이고 되풀이한 훈계의 말을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다. 심지어 한가로울 때에 즐기는 심심풀이용 오락 거리로 삼기도 한다. 너희는 언제나 훈계의 말을 자신의 ‘부적’으로 여긴다. 사탄이 참소할 때는 기도하고, 소극적일 때는 늘어지게 잠을 잔다. 기쁠 때는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기 바쁘고, 내가 책망할 때는 굽실거린다. 그랬다가 나를 떠나자마자 험상궂은 모습으로 깔깔 웃어 댄다.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가장 높게 평가하면서도 자신이 교만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항상 거들먹거리고, 스스로 득의양양하여 날뛴다. 이렇게 불학무식한 ‘도련님’, ‘아가씨’, ‘나리’, ‘마님’들이 나의 말을 어찌 보물처럼 귀히 여길 리 있겠느냐? 내가 다시 너에게 묻겠다. 내가 오랫동안 말을 하고 사역을 했건만 너는 대체 무엇을 배운 것이냐? 너의 속임수가 더욱 그럴듯해진 것이냐? 너의 육이 더욱 노련해진 것이냐? 네가 나를 더욱 업신여기게 되지 않았느냐?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해서 오늘날 너의 작았던 배짱만 커진 것 같구나. 네가 나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은 점점 줄어만 가고 있다. 내가 인자하기 그지없고, 폭력을 동원하여 너의 육을 제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불손한 말만 일삼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너를 대할 때가 더 많고, 너의 면전에서 대놓고 질책한 적이 거의 없으며, 너의 연약함을 항상 너그러이 헤아려 주었다. 그래서 오늘날 네가 선한 농부를 대하는 뱀처럼 나를 대하게 된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의중을 살피는 인류의 현란하고 능란한 기교에 실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내가 너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겠다. 오늘날 네가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떨리지도 않고, 조급하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너같이 불학무식한 ‘천재’도 결국 자아도취에 빠지는 잔머리 때문에 망하게 될 것임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고통을 받는 것도, 형벌을 받는 것도 너 자신일 것이다. 나는 너와 같은 부류가 아니기 때문에 너와 함께하며 지옥에서까지 고통받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너는 내게 저주받고 나의 가르침으로 구원받은 피조물이라는 것과 내가 미련을 가질 만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라. 나는 어느 때든 사람과 일, 사물에 구애받으며 일하지 않는다. 내가 인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와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는 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너는 본래 내 경영의 부속물일 뿐 다른 어떤 존재보다 나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항상 네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해도 너는 네 신분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말라. 내가 너를 책망하거나 훈계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대한다고 해도 이것이 너와 내가 같은 부류라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너는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이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는 항상 나의 말에 따라 변화해야 하며, 이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같은 절호의 시기에 소중한 기회가 찾아온 만큼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좋겠다. 나를 속이지 말라. 나는 나를 기만하는 너의 아첨 따위는 필요 없다. 네가 나를 찾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 스스로를 위해서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불학무식한 자는 짐승이 아닌가?> 중에서

69. 사람이 본분을 이행한다는 것은 사실 자신에게 원래 있는 것, 즉 자신이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사람은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것이 된다. 섬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폐단은 체험하는 과정과 심판받는 과정에서 점점 줄어들므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거나 본분에 영향을 받는 일은 없다. 섬기는 과정에서 폐단이 생길까 봐 섬김을 멈추거나 섬기지 않으려 물러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자야말로 가장 나약한 자다. 사람이 섬기면서 표현해야 할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지도 못하며, 속이고 대충 하기까지 한다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은 것이 된다. 그런 자는 이른바 ‘둔재’이자 쓸모없는 폐물이다. 그런 자를 어찌 당당한 피조물이라 칭하겠느냐? 겉보기는 화려하나 속은 썩어 문드러진 자가 아니겠느냐? 만일 자신을 하나님이라 말하면서도 신성의 어떠함을 나타내지 못하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행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대표하지도 못하는 자가 있다면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이 아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못했으며, 하나님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약 자신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사람’이라 할 수 없고 피조물의 자리에 설 자격도 없다. 또한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을 섬길 자격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와 보살핌, 보호, 그리고 온전케 함을 받을 자격은 더욱 없다.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임을 잃은 후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증오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의 도가 정확하지 않다고 제멋대로 떠들어 대었다. 더 패역한 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패역한 자가 어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있겠느냐?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함은 이미 하나님을 상당히 거역한 것이고 하나님께 매우 죄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은 도리어 하나님이 한 것이 옳지 않다고 떠들어 대며 욕한다. 그런 자가 어찌 온전케 될 자격이 있겠느냐? 그것은 도태되고 징벌받을 징조가 아니겠느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자는 그 죄악이 극에 달해 죽어도 마땅하다. 그런데도 뻔뻔스럽게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고 하나님과 겨루니, 이런 자가 어찌 온전케 될 가치가 있겠느냐?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 수 없으면, 당연히 그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 그리고 패역과 패괴 성품을 증오하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한 몸을 바쳐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피조물이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누릴 자격이 있고,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자격도 있다. 그런데 너희 대부분은 어떠하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살고 있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 그의 앞에서 또 어떻게 너희의 본분을 이행하느냐? 성심성의를 다하고 기꺼이 한 몸을 바쳤느냐? 봉헌은 어떠하냐? 너희가 나에게서 얻은 것이 아직 적으냐? 너희는 분별할 줄 아느냐? 나에 대한 충성심은 어떠하냐? 나를 섬기는 것은 또 어떠하냐? 내가 너희를 위해 베풀어 주고 행한 것은 또 어떠하냐? 너희는 가늠해 본 적이 있느냐? 자신들의 쥐꼬리만 한 양심으로 가늠하고 비교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의 언행이 떳떳하냐? 설마 그 작디작은 봉헌으로 내가 베풀어 준 모든 것에 떳떳하단 말이냐? 너희에 대한 나의 마음은 한결같아서 다른 선택이 없었다. 하지만 너희는 오히려 나에 대해 음흉한 심보와 딴마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고 얼마 되지도 않는 너희의 기능이다. 그렇지 않으냐? 설마 너희는 자신들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음을 모른단 말이냐? 그렇다면 너희가 어찌 피조물이라 불리겠느냐? 너희가 무엇을 말하고 있고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는 스스로가 잘 알지 않느냐? 너희는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관용과 풍성한 은혜를 얻기 바란다. 하지만 그런 은혜는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너희 소인배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라는 것 없이 기꺼이 헌신하는 이들을 위해 예비된 것이다. 너희 같은 사람들, 이러한 둔재들은 하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전혀 없다. 오직 고난의 나날과 끝없는 징벌만이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너희가 나에게 충성을 다할 수 없다면 너희의 운명은 곧 고통이고, 나의 말과 사역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면 너희의 결말은 곧 징벌이다. 그 어떤 은혜와 축복,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삶은 너희와 아무 상관도 없으며 너희가 누릴 몫 또한 없다. 너희에게 이것은 당연한 결말이며 자업자득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70. 계속해서 아래의 구절을 보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 12:6~8). 여기에서 ‘성전’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성전’은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을 의미한다. 율법시대에 ‘성전’은 바로 제사장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였다.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에서 주 예수가 말하는 ‘이’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성육신한 주 예수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주 예수만이 성전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사람에게 무엇을 알려 주느냐? 사람에게 성전에서 나와야 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미 성전에서 나와 거기서 사역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마땅히 성전 밖에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새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가 이 말씀을 한 이유는 율법하의 사람들이 성전을 하나님보다 크게 여긴 것, 즉 하나님이 아닌 성전이란 장소를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사람에게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하나님은 지고지상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라고 한 것이다. 예수가 봤을 때, 율법하에 있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여호와를 경배하지 않고, 오직 제사를 드리는 형식만 차렸을 뿐이었다. 예수는 이 형식을 ‘우상 숭배’로 정한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성전을 하나님보다 더 크고 높게 생각했다. 그들 마음속에는 성전만 있을 뿐 하나님은 없었다. 그들은 성전이 없으면 삶터도, 경배할 곳도 없고, 제사를 드릴 수도 없다고 여겼다. ‘삶터’란 그들이 여호와를 경배한다는 명목으로 머무르는 성전을 가리키는데, 자신들의 일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또한, ‘제사를 드리는 일’이란 성전 안에서 섬긴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떳떳하지 못한 수작들을 은폐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당시에 사람들이 성전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생각했던 원인이다. 그들이 성전을 눈가림으로, 제사를 핑계로 삼아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을 기만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이런 말씀으로 사람들을 일깨워 준 것이다. 이 말씀은 현재에 적용해도 효과가 있고, 지금 상황과도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지금 사람들과 율법시대의 사람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사역이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사람의 본성과 본질은 같은 것이다. 현재 이러한 사역의 배경하에서, 사람은 또다시 ‘성전을 하나님보다 크게 여기는 것’과 같은 성격의 일들을 저지를 수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은 본분 이행을 직업으로 삼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큰 붉은 용과 싸우는 것을 인권 보호와 자유ㆍ민주 쟁취를 위한 정치 운동으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약간의 기술을 요하는 본분을 자신의 사업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종교적 교리로 간주하고 지킨다. 또한…. 이러한 행동이 ‘성전을 하나님보다 크게 여기는 것’과 성격이 같지 않으냐? 단지 2천 년 전의 사람들은 유형적인 성전에서 개인의 경영을 했고, 오늘날의 사람들은 무형적인 성전에서 자신의 경영을 할 뿐이다. 규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규례를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고, 지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위를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며, 사업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사업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본다. 사람들의 여러 가지 행동을 보면서, 나는 “사람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장 높다고 칭송하나 모든 것을 하나님보다 크게 본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는 길에서 일단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찾거나 자기 경영과 사업을 할 기회가 생기면, 하나님을 멀리 버려두고 자신이 열중하는 사업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맡긴 소임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이 2천 년 전 성전에서 각종 개인적인 경영을 했던 사람들과 뭐가 다르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71. 많은 자들이 내 뒤에서 지위의 복을 탐하고, 먹는 것과 자는 것을 탐하며, 늘 육체가 편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기에 급급하다. 교회에서는 자신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서도 공밥을 먹거나 나의 말로 형제자매를 훈계하고, 높은 곳에 서서 사람들을 누르려 한다. 이러한 자들은 말끝마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고 떠들어 댄다. 또한 자신을 하나님의 지기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릇된 논리가 아니냐? 만약 네가 마음 자세는 바르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기지 못한다면, 이것은 네가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네 마음 자세가 바르지 못함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공짜로 밥을 먹고 항상 육체의 안일만을 탐하며,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지 하나님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의 행위는 다 하나님 영의 감찰을 받지 않은 것이고, 그들은 늘 간교하게 형제자매들을 기만하며, 사람들 앞과 뒤에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는 여우가 포도원에 들어가 포도를 훔쳐 먹고 포도원을 짓밟는 것과 같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지기가 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자신의 생명과 교회에 대해 책임감이 전혀 없는 네가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이러한 자들을 누가 과연 신뢰할 수 있겠느냐? 너처럼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이 더 큰 임무를 맡길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한다면 일을 그르치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중에서

72. 잔혹한 인류야!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이냐?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느냐?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이 강제로 사형 선고를 받은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또 얼마나 많은 잔인한 재판관들이 하나님을 정죄하여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 모른다. 진정 하나님을 위함으로 의인이라 칭함 받을 자가 몇이나 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중에서

73. 오늘날의 너희의 소행을 알고 있기는 한 것이냐? 너희는 제멋대로 행동하고, 아옹다옹 싸우며, 서로 속고 속인다. 서로를 기만하고 숨기며, 수치를 모르며, 진리를 알지 못한다. 교활하고 간사하며, 아부에 능하다. 독선적이고 거만하고 교만할 뿐만 아니라 산짐승처럼 야만적이고, 백수의 왕처럼 난폭하다. 너희에게 사람의 모습이 있기는 하냐? 너희는 상스럽고 경우가 없다. 나의 말을 진귀한 보물로 생각하기는커녕 경멸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렇게 행동하는데 성과, 진정한 삶, 아름다운 소망이 어디에서 올 수 있겠느냐? 지나친 상상이 정말 너를 범의 아가리에서 구해 낼 수 있느냐?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너를 구할 수 있느냐? 네가 정말 나의 사역을 보물처럼 귀히 여긴다면 이 지경에 이르렀겠느냐? 네 운명은 정녕 바뀔 수 없다는 말이냐? 이렇게 억울하게 죽기를 원한다는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본질과 신분> 중에서

74. 너희 각자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높이 올라 모든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 너희는 또한 매우 난폭하여 모든 구더기 속에서 제멋대로 활개 치며 안락한 곳을 찾고, 자기보다 작은 구더기들을 삼키려고 망상한다. 너희의 마음은 음험하고 악랄해서 창해의 깊은 물 속을 떠도는 유령들보다도 더하다. 너희는 거름 더미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위아래의 모든 구더기들을 편안할 틈도 없이 방해하며, 서로 살육전을 벌인 후에야 조용해진다. 너희는 자신의 지위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거름 더미 속에서 서로 공격을 일삼는다. 하지만 그렇게 싸운들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이냐? 너희에게 진실로 나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나를 등지고 서로 아귀다툼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너희의 지위가 아무리 높아 봤자 거름 더미 속에 사는 작디작은 버러지가 아니냐? 설마 날개라도 돋아 하늘을 나는 흰 비둘기가 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낙엽이 뿌리로 돌아갈 때 네가 행한 모든 악행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중에서

75. 너희들이 자신을 아는 진리에 힘을 쓰면 좋겠다. 하나님이 왜 너희를 알아주지 않을까? 왜 너희의 성품을 혐오할까? 왜 너희의 언사를 증오할까? 너희는 충성심이 좀 있으면 뽐내고 봉사를 좀 하면 보답을 바란다. 또 조금 순종하면 타인을 업신여기고 사역을 좀 하면 하나님은 안중에 두지도 않는다. 너희는 하나님을 대접하고는 돈과 물질을 달라고 하고 칭찬해 달라고 하며, 동전 두 닢을 내놓고는 아까워하고, 동전 열 닢을 내놓고는 축복해 달라고 하며 자신은 특별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너희의 이런 인성은 정말 입에 담기 민망하고 듣기조차 거북하다. 너희의 언행에 자랑스러울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본분을 하는 자나 하지 않는 자, 인도하는 자나 따르는 자, 하나님을 대접하는 자나 하지 않는 자, 헌금하는 자나 하지 않는 자, 전도하는 자나 받는 자 등등의 모든 사람이 자기 자랑만 하는데 우습지 않으냐?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을 자랑하는데, 너희들의 이성이 자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되지 않는단 말이냐? 이런 이성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접할 수 있단 말이냐? 너희는 이런 자신이 걱정스럽지 않으냐? 너희의 성품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런 믿음이 우습지 않으냐? 너희의 믿음이 터무니없지 않으냐? 너는 너의 미래를 어떻게 대할 것이냐? 네가 가야 할 길을 어떻게 선택할 것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76. 현재 나는 땅에서 살고 있고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다. 사람은 나의 사역을 체험하고 있고 나의 말을 보고 있다. 이에 발맞춰 나는 나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진리를 베풀어 내게서 생명을 얻게 하고, 이를 통해 행할 길을 얻게 한다. 그것은 내가 생명을 베풀어 주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나의 오랜 사역 속에서 사람은 많은 것을 얻기도 하였고, 많은 것을 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 나를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입으로만 나를 하나님이라고 시인할 뿐, 내 입에서 나온 진리는 수긍하지 않고 내가 요구한 진리는 더욱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만 인정할 뿐, 진리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생명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만 인정할 뿐 하나님의 본질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사람의 열정 때문에 사람을 혐오한다. 사람은 듣기 좋은 말로 나를 기만하기만 할 뿐, 그 누구도 나를 진심으로 경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의 말은 독사의 유혹을 띠고 있는 데다가 극히 교만하기까지 하여 흡사 천사장의 ‘표현’ 같다. 너희의 행위는 아주 볼품이 없고, 너희의 사치스러운 욕망과 탐욕스러운 속셈은 아주 듣기조차 민망하다. 너희는 내 집의 좀벌레가 되었고, 내가 혐오하여 내버리는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너희 모두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늘나라에 가기 좋아하는 사람이며, 그리스도가 땅에서 권세 잡는 성황을 보기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같이 극도로 패괴되어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을 따를 자격이 있을지,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지, 전례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 대성황을 이루는 것을 볼 자격이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의 입에는 나를 기만하는 말과 더러운 말이 가득하고, 나를 배반하는 말과 교만한 말이 가득하다. 너희는 진실한 말로 나에게 간절히 말한 적이 없으며, 깨끗한 말이 없고, 나의 말을 체험하여 순종하게 된 말도 없다. 이런 너희의 믿음은 과연 어떠하냐? 너희의 마음속은 욕망과 돈으로 가득 찼고, 너희 머리는 물질로 가득 찼다. 너희는 날마다 어떻게 하면 나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고, 날마다 내게서 얻은 돈과 물질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고 있다. 너희는 날마다 더 많은 축복이 너희에게 임하여 더 많고 더 좋은 물질을 누릴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너희가 매 순간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내게서 온 진리도 아니라, 너희의 남편(아내)과 아들딸이고, 너희가 먹고 입는 것이다. 너희가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즐길 수 있고 더 좋은 것을 즐길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너희가 자신의 배를 가득 채운다고 해도 여전히 시체가 아니냐? 너희가 외모를 아주 화려하게 꾸민다고 해도 생기 없는 산송장이 아니냐? 너희는 모두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머리가 희어지도록 고생하면서도 나의 사역을 위해서는 털끝 하나 바치려고 하지 않는다. 너희는 자신의 육체와 아들딸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고생하고 머리를 쥐어짠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위해 조급해하고 근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너희는 내게서 또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중에서

77. 너희 마음속에는 악이 가득하고 배반과 기만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너희의 사랑에는 불순물이 얼마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위해 충분히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고 여기고, 나에 대한 사랑도 이미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어째서 너희의 언행은 늘 패역과 기만의 색채를 띠고 있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를 저버린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를 믿지 못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신분에 걸맞게 나를 대하지 않고 늘 나를 난처하게 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매사에 나를 속이고 기만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섬기면서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어디서든 매사에 나와 적이 된다. 그것도 다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무척 많이 헌신했지만 정작 내가 요구한 것들은 지금까지 실행하지 않았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자세히 따져 보면, 너희에게서는 나를 사랑하는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역했고 이토록 많은 말씀을 공급했는데, 너희가 얻은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한번 곰곰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으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중에서

78.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도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위배하는 사람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고정 관념을 가지고 그를 의도적으로 거역하는 사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판단하는 사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증거하지 못하는 사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이 길을 갈 수 있는 믿음이 정말 있다면 계속해서 따르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일찌감치 떠나라고 권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본성이 너무도 패괴되어 위험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너희에게서는 충성심과 순종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공의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엉망진창인 상태로 하나님을 마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며,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자기의 기능마저 발휘하지 못한다. 마땅히 갖추어야 할 충성심, 있어야 할 양심과 순종, 있어야 할 의지도 없다. 겪어야 할 고난을 회피하고 마땅히 가져야 할 믿음도 갖추지 못했다. 좋은 점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으면서 무슨 낯짝으로 살아가고 있단 말이냐?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차라리 빨리 눈을 감으라고 하고 싶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심려하지 않고 고난받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도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며, 삶에는 분투 목표도 없고, 무의미하고 가치 없는 삶을 살아간다. 사람임에도 일말의 양심도, 인격도, 신용도 없다. 이런데도 너희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를 기만하고, 그의 돈을 욕심 내고, 그의 제물을 먹는다. 그러고도 결국에는 하나님을 인정 없이 대하고 일말의 양심도 없이 대하며, 하나님의 작은 요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런데도 너희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밥을 먹고, 하나님의 공기를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결국에는 하나님을 알기는커녕 하나님을 대적하는 쓸모없는 얼간이로 전락했다. 이것이 개보다도 못한 짐승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동물 중에 너희보다 더 악독한 존재가 어디 있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79. 너희들의 충성은 입술에만 머물고, 너희들의 앎은 머릿속 관념에만 머물며, 너희들의 수고는 하늘나라의 복을 위한 것에 있다. 그럼 너희의 믿음은 또 어떠하냐?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너희는 이 진리들을 무시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너희는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또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해야 하는지, 어떻게 성령 역사에 진입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미혹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 중 한 마디라도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정죄하기만 한다. 너의 겸손은 어디에 있느냐? 너의 순종은 어디에 있느냐? 너의 충성은 또 어디에 있느냐? 진리를 찾는 태도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분명 멸망될 부류이며,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분명 지옥의 자손이고, 천사장의 후손이며, 영원히 멸망될 부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80. 남녀를 막론하고, 너희 각자가 늘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너희가 누구 덕에 밥을 먹고 있는지 모르느냐? 네가 입고 있는 옷과 네 손에 들린 수확물, 그리고 너의 그 배를 만져 보아라. 이렇게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심혈의 대가로 얻은 결실은 무엇이냐? 그런데도 여기저기 놀러나 다니고 냄새 나는 몸뚱이를 꾸밀 생각이 드느냐? 거기에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이냐! 정상인이 되라고 했거늘, 지금의 너는 정상은 고사하고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그런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내 앞에 서는 것이냐?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육체를 드러내며, 늘 육체의 정욕 속에서 살고 있는 그런 인성을 보면 네가 바로 더러운 귀신과 악령의 후예가 아니냐? 나는 이런 더러운 귀신을 오래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네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를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 네가 정욕과 육체를 방종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네가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네 눈이 무엇을 탐내고 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으냐? 너희 아씨들이 꽃처럼 단장하는 이유는 자신의 육체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냐? 남자들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되느냐? 그들이 진정 너희를 이 고해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줄 수 있겠느냐? 또한, 너희 한량들이 번지르르하게 멋을 내는 것은 전부 자신의 ‘멋들어진 용모’를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냐? 그것은 또 누구를 위함이냐? 여인들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되느냐? 너희를 죄짓게 하는 근원이 아니더냐? 나는 너희 모든 남녀 족속들에게 적지 않은 말을 했지만, 너희가 듣고 따른 것은 극히 적다. 너희는 귀가 먹었고, 눈이 흐려졌으며, 마음은 강퍅하고, 나아가 온몸은 정욕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속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는구나. 오물 속에서 굴러다니는 너희 구더기들에게 누가 다가가고 싶겠느냐? 명심해라. 너희는 내가 분토 속에서 들어 올린 존재로, 원래 정상 인성이 없었다. 내가 너희에게 요구한 것은 정욕을 과시하라는 것도, 마귀에게 오랜 세월 조련된 그 냄새 나는 육체를 방종하라는 것도 아니라 너희가 원래 갖추지 못한 ‘정상 인성’을 갖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치장하는데, 더 깊이 빠질까 두렵지 않으냐? 너희는 본디 죄에 속한 자들이다. 그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온몸은 정욕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도 모른단 말이냐? 나아가 그 정욕이 너희의 옷을 적시며 스며 나와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귀신의 몰골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너희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 아니냐? 너희의 마음, 너희의 눈, 너희의 입술은 모두 더러운 귀신에게 더럽혀지지 않았느냐? 전부 불결한 것이 아니냐? 너는 일만 저지르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보다 성결한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겉으로 화려한 옷을 차려입으면 너희의 그 더러운 영혼을 가릴 수 있다고 여기느냐? 어림없다! 거짓을 꾸며 낼 생각도, 자신의 용모를 뽐낼 생각도 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라. 너희는 서로 정욕을 드러내지만, 그 대가로 얻는 것은 영원한 고통과 무정한 채찍질이다! 그런데 서로 추파를 던지며 연애질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것이 너희의 올곧음이냐? 그것이 너희의 강직이며 절개더냐? 나는 너희들 중 술객 따위들과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는 젊은 남녀들을 혐오한다. 그러니 가능한 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상 인성을 갖추라는 것이지, 정욕을 드러내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는 틈만 나면 언제든 기회를 이용하려 하는데, 그것은 너희에게 육적인 것이 너무 많고, 정욕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7> 중에서

81. 내가 사역하는 동안 너희는 늘 내게 반기를 들었고, 한 번도 내 말대로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사역을 하고 너는 자신의 ‘사역’을 하며,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세웠다. 짐승 같은 너희들은 극력 내게 맞서 왔다! 언제나 너만을 사랑하는 사람을 품으로 끌어들이려 하는데, 너희의 경외심은 어디로 간 것이냐? 속임수뿐이구나! 기만과 모독뿐, 순종과 경외는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 음란한 것을 좋아하는 호색한들은 늘 요염한 음녀들을 품으로 끌어와 ‘누리려’ 한다. 나는 그런 음란한 귀신들을 절대로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처럼 더러운 귀신들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한다. 너희의 ‘색정’과 너희의 ‘요염’이 너희를 지옥에 떨어뜨릴 텐데,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더러운 귀신, 악령 같은 너희는 한없이 가증스럽다! 보기만 해도 역겹구나! 그런 천한 것들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죄 가운데 빠져 있으면서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오늘날 이러한 진리와 길, 생명은 너희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고, 오히려 그 죄악과 재물, 지위, 명리, 육체의 쾌락, 남자의 용모, 여자의 요염함이 너희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내 나라에 들어오겠단 말이냐? 너희의 형상은 하나님보다 크고, 너희의 지위는 하나님보다 높다. 사람들 가운데서의 위세와 명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너희는 사람들이 숭배하는 우상이 되었다. 그러니 너희가 천사장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결말을 드러낼 때가 되면, 즉 구원 사역이 막바지에 이르면, 반드시 너희 중 수많은 사람이 도태될 것이다.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시체들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7> 중에서

82. 사람은 모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천박한 존재이다. 사람은 자신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설마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망치는 짓이 가치 있는 것이란 말이냐? 사람은 모두 음녀처럼 스스로를 우롱하고, 자신을 임의로 다른 자의 손에 넘겨주어 유린하게 했다. 그럼에도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비천함을 모르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해 주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여 자신을 다른 사람이 장악하게 그들에게 넘겨 주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더러운 부분이 아니냐? 나는 인간 세상의 생활을 겪어 보지 않았고, 인생을 진정으로 체험해 보지도 않았어도 사람의 말과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는 오히려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다. 심지어 사람을 몸 둘 바 모를 정도로 해부할 수 있고, 나아가 두 번 다시 자신의 수작을 과시하지 못하고 두 번 다시 자신의 정욕을 방종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또한 달팽이가 껍질 안으로 움츠러드는 것처럼 두 번 다시 자신의 추태를 드러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사람이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가장 큰 허물은 바로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용모와 추악한 몰골을 자랑하기 좋아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장 혐오한다. 사람 간의 관계가 비정상이고, 서로 정상적인 대인 관계도 없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 말할 나위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한 주목적은 그것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사람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전 인류 가운데서 권세를 잡아 하나님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을 이룬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14편> 중에서

83. 내가 너희들 가운데서 이렇게 사역하고 말하며 얼마나 많은 정력과 심혈을 쏟았더냐? 하지만 내가 분명히 알려 준 것을 너희가 언제 청종한 적이 있더냐? 너희가 나 전능자에게 엎드린 적이 있더냐?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냐? 너희는 어찌하여 나의 분노를 사는 언행만 일삼는 것이냐? 너희는 어찌하여 이리도 마음이 강퍅한 것이냐? 내가 너희를 친 적이 있더냐?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슬프고 애타게만 하느냐? 설마 나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임할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냐? 내가 너희의 패역으로 인해 솟구친 분노를 쏟아 낼 때까지 기다리려는 것이냐? 내가 너희에게 한 것은 모두 너희를 위한 것 아니더냐? 하지만 너희는 나 여호와를 계속 이런 식으로 대하고 있다. 나의 제물을 훔쳐 먹고, 나의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훔쳐 집으로 가져가서는 이리 굴 속에 있는 이리의 자손들에게 먹인다. ‘백성’과 ‘백성’ 간에 서로 싸우고 죽이며, 분노의 눈길과 총칼로 서로를 대하고, 나 전능자의 말은 배설물로 가득 찬 변소에 던져 더럽힌다. 너희의 인격은 어디에 있느냐? 인간성을 잃고 모두 짐승이 되었구나! 너희의 ‘마음’은 이미 단단한 돌로 변했다. 내 분노의 날이 닥치면, 지금 나 전능자에게 행한 너희의 악행이 심판받게 된다는 것을 어찌 모르느냐? 너희는 이렇게 나를 속이며, 내 말을 청종하기는커녕 더러운 진흙에 던져 버린다. 그렇게 내 뒤에서 행동하면 내 분노의 눈길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너희가 나의 제물을 훔쳐 먹고 나의 재물을 탐낼 때 나 여호와가 두 눈으로 보고 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내 제물을 훔쳐 먹은 곳이 제물이 바쳐진 제단 앞이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어찌 잔머리를 굴리며 나를 기만할 수 있느냐? 나의 분노가 하늘에 사무치는 너희의 죄를 어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나의 진노가 너희의 악행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오늘 저지르는 악행은 자신의 살길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 받을 형벌을 쌓는 것이고, 나 전능자에게 형벌받을 짓을 하는 것이다. 너희의 그 악행과 악담이 어찌 나의 형벌을 피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간구하는 것이 어찌 나의 귀에 전해질 수 있겠느냐? 내가 어찌 너희가 불의를 저지르도록 길을 열어 줄 수 있겠느냐? 내가 어찌 나를 거역한 너희의 악행을 용서할 수 있겠느냐? 내가 어찌 독사 같은 너희의 입술과 혀를 자르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희는 자신의 의를 위해 내게 간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불의로 인해 나의 분노를 쌓고 있다. 그런데 내가 어찌 너희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나 전능자의 눈에 너희의 언행은 더럽고, 너희의 불의는 끝없는 형벌을 받을 대상이다. 그런데 내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이 어찌 너희를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너희가 이렇게 나를 대하므로 나는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런데 내가 어찌 너희가 내 수중에서 달아나고 나 여호와의 형벌과 저주의 날을 피하게 할 수 있겠느냐? 너희의 모든 악한 말들이 이미 내 귀에 전해졌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불의가 이미 내 거룩한 의의 두루마기를 더럽혔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패역이 이미 가득 쌓인 내 분노를 자극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내가 너희 때문에 분노하고 또 인내한 지 오래되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내가 거하는 육신을 심하게 망가뜨렸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나는 지금까지 인내해 왔지만 이제는 분노가 폭발해 더 이상 너희를 용납해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희는 내가 이미 너희의 악행을 보았음을, 내 아버지가 나의 간청을 들었음을 알고 있느냐? 너희가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을 그가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행한 사역 중 너희를 위하지 않은 것이 단 하나라도 있더냐? 그런데 너희는 어떠하냐? 나 여호와의 사역을 위해 선한 마음을 쓴 자가 있느냐? 내가 어찌 나의 연약함과 받은 고난을 이유로 아버지의 뜻에 충성을 다하지 않겠느냐? 너희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냐? 여호와가 너희에게 알려 주었던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말하겠다. 너희를 위한 내 헌신이 부족한 것이냐? 나는 아버지의 사역을 위해 이 모든 고초를 기꺼이 감내하고자 한다. 하지만 내가 고난을 겪었다고 해서 너희가 어찌 내가 너희에게 내릴 형벌을 피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나의 것을 누린 것이 아직도 부족하더냐? 내 아버지가 오늘날 나를 너희에게 주었거늘, 너희가 누리는 것이 어찌 나의 풍성한 말뿐이겠느냐? 너희의 생명과 너희가 누리는 것이 모두 내 생명으로 바꾸어 온 것임을 어찌 모르는 것이냐? 내 아버지가 나의 생명으로 사탄과 싸우며, 나의 생명을 너희에게 베풀어 백배로 얻게 하고 많은 시험을 면케 하였거늘, 너희는 어찌 모르는 것이냐? 나의 사역 덕에 많은 시험과 불의 형벌을 면케 되었건만, 너희는 어찌 모르는 것이냐? 내 아버지가 나를 생각해서 너희에게 지금까지 누리게 한 것임을 어찌 모르는 것이냐? 어찌하여 지금까지도 마음이 그렇게 강퍅한 것이냐? 그렇게 악행을 저질러 놓고, 내가 이 땅을 떠난 후에 닥칠 분노의 날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내가 어찌 이 강퍅한 무리가 여호와의 분노를 피하게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육에 속한 자는 누구도 그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없다> 중에서

84. 보잘것없는 너희 버러지들이 나 여호와의 제단에 있는 제물을 훔쳐 먹었다. 그런 너희가 바닥에 떨어진, 깨진 명성을 주워 이스라엘의 선민이 될 수 있겠느냐? 염치없고 천박한 것들아! 그 제단에 있던 제물은 사람들이 나에게 바친 것으로, 나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표시한 것이다. 그것은 원래 내가 지배하고 사용해야 하는 제물이었다. 그런데 네가 어찌 사람들이 내게 바친 작은 산비둘기를 훔쳐 간단 말이냐? 너는 유다가 되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 너의 밭이 ‘피밭’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 부끄러움을 모르는 물건짝들아! 사람들이 바친 산비둘기가 너, 구더기의 더러운 배를 채우라고 준 것으로 생각했느냐? 내가 너에게 베푸는 것은 기꺼이 원해서 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주지 않는 것은 마땅히 내가 지배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함부로 내게 바쳐진 공물을 훔쳐 먹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역사하는 이는 나 여호와, 곧 창조주이다. 사람들은 나를 위해 제물을 바쳤다. 너는 그것이 네가 열심히 뛰어다닌 대가라고 생각하느냐? 정말 수치심도 없구나! 너는 누구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느냐? 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냐? 어째서 내 제물을 훔쳐 먹는 것이냐? 왜 내 주머니 속의 돈을 훔쳐 가는 것이냐? 너는 ‘가룟 유다의 자손’이 아니냐? 나 여호와의 제물은 제사장이 누릴 수 있게 주는 것들이다. 네가 제사장이냐? 감히 득의양양하게 나의 제물을 먹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 위에 차려 놓기까지 하다니, 정말 값어치 없는 존재구나! 쓸모없는 천것이구나! 나 여호와의 불길이 너를 깨끗이 불태워 버릴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낙엽이 뿌리로 돌아갈 때 네가 행한 모든 악행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중에서

85. 어쩌면 네가 하나님을 여러 해 믿으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악담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네가 그리스도를 접했을 때 정직한 말과 참된 일을 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다면, 나는 너를 세상에서 가장 음험하고 악랄한 사람이라고 한다. 네가 친지와 친구, 아내(남편)와 자녀, 부모에게 매우 자상하고 충실하며, 여태껏 이를 상대로 부당한 이득을 챙긴 적이 없어도 네가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너의 모든 것으로 이웃을 구제하거나 부모와 가족을 세심하게 돌본다 하더라도 나는 네가 여전히 악인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간계가 많은 악인이라고 할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맞는 것을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 좋은 일을 좀 했다고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한다고 여기지 말라. 선심을 쓰는 것으로 교묘하게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좋은 일을 좀 했다고 순종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모두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정상적인 인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면서도 입으로는 순종한다고 하는데, 너희들의 그런 믿음은 그에 상응하는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분량이 너무 작아서 그리스도를 만날 자격조차 없기 때문이다. 네가 패역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 때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다. 책망이나 심판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너는 반드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어 멸망하게 된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하나님께 적대적이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된 존재이므로 만약 패괴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낸다면 모든 언행에서 패괴 성품을 드러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접할 때, 곳곳에서 패역을 드러내어 부지중에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기만하고, 저버리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처지는 더욱 위험해지고 결국 징벌을 받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86. 내가 많은 말을 하고 내 뜻과 내 성품까지 나타내었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알지도, 믿지도 못하고 나에게 순종하지도 못한다. 성경만 따르며 사는 사람, 율법만 따르며 사는 사람, 십자가에만 기대어 사는 사람, 규례만 따르며 사는 사람, 오늘날 나의 사역만 따르며 사는 사람, 이들 가운데 그 누가 내 마음에 합하는 사람이겠느냐? 너희는 복받거나 상받을 궁리만 하였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와 적이 되지 않고 내 마음에 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바가 전혀 없다. 나는 너희가 너무나 실망스럽다. 너희에게 셀 수 없을 만큼 베풀어 주었지만, 그 대가로 내가 얻은 것은 너무나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너희의 기만과 교만, 탐욕과 사치스러운 욕망, 배반과 불복,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내 눈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무성의하고 불성실하게 대하고 모욕한다. 또한 기만하고, 사기 치며, 나의 제물을 강탈한다. 이런 악행들이 어떻게 내 징벌을 피해 갈 수 있겠느냐? 이 악행들은 너희가 나를 적대시하며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 증거이다. 너희는 저마다 자신이 내 마음에 합하는 부분이 아주 많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이 확실한 증거는 또 누구에게 해당하는 것이란 말이냐? 너희는 나에게 진심을 다하고, 변치 않는 마음으로 충성한다고 여긴다. 또한 너희는 자신들이 더없이 착하고, 동정심도 넘쳐 난다고 여긴다. 이뿐만 아니라 나에게 셀 수 없이 많이 바쳤고, 나를 위해 행한 것도 충분히 많다고 여긴다. 하지만 너희는 자신들의 행위를 돌아본 적이 있느냐? 내가 말해 주겠다. 너희는 교만으로 가득 찼고, 너무나 탐욕스러우며, 건성으로 하는 일이 많다. 게다가 나를 속이는 데 탁월하고, 속셈과 수단이 야비하다. 너희는 충성심과 진심이 한없이 부족하고, 양심은 더욱 없으며, 심보 또한 너무나 악랄하여 어떤 사람도 그냥 두지 않는다. 심지어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너희는 자녀와 남편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를 문전 박대 한다. 너희의 가정과 자녀, 지위와 앞날, 그리고 누리는 데에만 관심을 둘 뿐, 나에게는 신경 쓰지 않는다. 너희가 말을 할 때, 일을 할 때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날이 추울 때도, 더울 때도 너희는 자녀와 남편(아내) 그리고 부모를 생각하지 나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네가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안전, 그리고 너의 가족이다. 네가 행한 일 중에 나를 위한 것이 있었느냐? 언제 나를 생각한 적이 있었느냐? 나와 내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은 적이 있었느냐? 내 마음에 합하는 증거는 어디에 있느냐? 실제로 나에게 충성하였느냐? 실제로 나에게 순종하였느냐? 복을 얻으려는 마음을 갖지는 않았느냐? 너희는 모두 나를 건성으로 대하고 기만하고 있다. 또한 진리를 우롱하고, 진리의 존재를 덮어 감추며, 진리의 본질을 배반하고 있다. 나를 이토록 적대시한 결과가 무엇이겠느냐? 너희는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며, 막연한 신앙만을 추구하지, 그리스도의 마음에는 합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악행을 저지르고 있으니 악인과 똑같은 보응을 받지 않겠느냐? 그때가 되면, 너희는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한 자는 그 누구도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적대시하는 자가 어떤 보응을 받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87. 너희는 모두 하나님께 상을 받고 하나님의 눈에 들기를 원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다. 사람은 항상 더 높은 것을 추구하는 존재이므로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 중 많은 이들이 시종일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잘 보이려 한다. 하지만 사실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충성심과 진심은 너희 자신에 대한 충성심과 진심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나는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충성심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너희 마음에 있는 그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너희가 경배하는 하나님, 너희가 앙모하는 막연한 하나님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내가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너희가 진정한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졌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런 충성심을 지닌 이유는 너희 마음속에 또 다른 우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가 보기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 같은 나, 하나님을 너희는 입으로만 인정할 뿐이다.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말은 진정한 하나님과의 거리는 한없이 멀고, 막연한 하나님과는 눈앞에 있는 듯 가깝다는 의미이다. ‘크지 않다’는 것은 오늘날 너희가 믿는 이 하나님이 별다른 ‘능력’이 없어 보이고 그다지 위대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작지 않다’는 것은 이 사람이 비바람을 불러오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영을 불러 경천동지할 사역을 하였고, 그것은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너희가 땅에 있는 이 그리스도에게 충실히 복종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너희는 그를 믿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 바꿔 말해, 너희가 정말로 믿는 존재는 너희 마음속에 있는 그 막연한 하나님이고, 너희가 정말로 사랑하는 존재는 너희가 밤잠 못 이루고 그리워하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 하나님이다. 이 그리스도에 대한 너희의 믿음은 미미하기 짝이 없으며, 그에 대한 너희의 사랑은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믿음이란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사랑이란 마음속으로 연모하고 앙망하면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에 대한 너희의 믿음과 사랑은 이러한 것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믿음에 대해 말하면 너희는 어떻게 그를 믿고 있느냐? 사랑에 대해 말하면 너희는 또 어떻게 그를 사랑하고 있느냐? 너희는 그의 성품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의 본질은 더더욱 모르는데, 그러면 너희는 어떻게 그를 믿게 된 것이냐? 너희가 그를 믿은 실제는 어디에 있느냐? 너희는 그를 어떻게 사랑하느냐? 너희가 그를 사랑하는 실제는 어디에 있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88. 예수를 만나기 전, 다시 말해 성육신 하나님을 만나기 전, 너희는 예수의 모습이 어떨지, 말씀은 어떤 식으로 할지, 생활 방식이 어떨지 등에 대해 생각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정말로 만났을 때 너희의 생각은 곧바로 바뀔 것이다. 어째서 그럴까? 알고 싶으냐? 사람의 사유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의 본질은 더더욱 사람이 바꿀 수 없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신선이나 성인(聖人)으로 여기지만, 그리스도를 신적 본질을 지닌 정상인으로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래서 밤낮으로 생각하며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이 사람의 잘못이 아니란 말이냐? 지금까지도 너희는 자신의 믿음과 충성심이 그리스도의 얼굴을 뵙기에 충분하다고 여기는데, 나는 너희에게 실제적인 것들을 더 많이 갖추라고 충고하고 싶다! 과거와 현재에 그리스도와 접한 많은 사람들이 모두 바리새인의 역할을 하여 실패했고 이후에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너희들이 실패한 까닭은 무엇이냐? 그것은 너희의 고정 관념 속에 사람들이 앙모할 만큼 위대한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의 바람과 다르다. 그리스도는 위대하기는커녕 아주 보잘것없으며, 사람인 데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하늘에 올라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행동이 자유롭지 않다. 이렇게 사람은 그리스도를 일반인처럼 대하고, 그와 편하게 지내며, 그에게 막말을 하는 동시에 여전히 ‘진정한 그리스도’가 오기를 기다린다. 너희는 이미 온 그리스도를 보통 사람으로 대하고 그의 말씀을 보통 사람의 말로 여기므로 그리스도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빛 속에서 자신의 추한 모습만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89. 그리스도와 아직 만나지 않았을 때 너는 자신의 성품이 완전히 변화되었고, 자신이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자라 여기며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기에 가장 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많은 길을 열심히 뛰어다녔고 많은 사역을 행하여 많은 결실을 맺었으므로 자신이 나중에 꼭 면류관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역, 대적은 그리스도를 만날 때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때 드러나는 패역과 대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적나라하다는 사실을 아느냐? 그리스도가 인자이며 정상 인성을 지닌 인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불경스레 대하고,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패역이 남김없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임함으로 인류의 패역이 모두 파헤쳐졌고, 그리스도의 임함으로 인류의 본성이 부각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맹수를 굴 밖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너는 감히 자신이 하나님께 충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너는 감히 자신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너는 감히 자신이 패역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어떤 자는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에 아무 불평 없이 순종하고, 하나님에 대한 고정 관념이 전혀 없다고 말할 것이다. 또 어떤 자는 하나님이 맡긴 일을 언제나 최선을 다해 완수하고 건성으로 넘어가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생활할 때 그의 마음에 합할 수 있느냐? 합하는 날은 얼마나 계속될 것이냐? 하루? 이틀? 한 시간? 두 시간? 너희의 믿음은 가상하나 너희의 의지력은 결코 강하지 않다. 네가 정말로 그리스도와 함께 생활하게 될 때는 너의 독선과 자만이 언행에서 조금씩 드러나게 될 것이다. 또한 그 뒤를 이어 너의 사치스러운 욕망과 불복하고 불만스러워하는 마음 또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결국 오만함이 나날이 심해져 물과 불처럼 그리스도와 상극이 될 때면, 너의 본성이 전부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때 너의 고정 관념은 감출 수 없게 되고, 너의 불평도 자연스럽게 ‘표출’되면서 너의 그 비열한 인간성이 전부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여전히 자신의 패역을 인정하지 않고, 그런 그리스도는 너무 냉혹하여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렵기에 더 나은 그리스도가 있으면 완전히 순종할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패역에 이유가 있다고 여기며, 그리스도가 너희를 그렇게 거역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한다. 너희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진심으로 그에게 순종하지 않았음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한사코 그리스도에게 너의 뜻에 따라 사역하길 강조하며, 한 가지 일이라도 너의 뜻에 따라 사역하지 않으면 그를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으로 여긴다. 너희 중 많은 사람이 이렇게 그와 힘겨루기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믿는 분은 대체 누구이냐? 너희는 어떻게 추구했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90. 너희는 늘 그리스도를 만나길 원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자신을 너무 높이 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누구나 그리스도를 만날 수는 있지만 아무도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인간의 본성은 악과 교만, 패역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만날 때 그 본성이 너를 망치고, 네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네가 형제(자매)와 접할 때에는 네가 어떻다고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를 만날 때는 너의 고정 관념이 수시로 뿌리를 내리고, 너의 교만함이 수시로 싹이 트고, 너의 패역이 수시로 무화과를 맺을 것이다. 너희 같은 인성으로 어찌 그리스도를 접한단 말이냐? 너는 진정 그를 언제나 하나님으로 대할 수 있느냐? 너에게는 정말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제가 있느냐? 너희는 마음속의 위대한 하나님을 여호와로 여겨 경배하고 보이는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대하니 이성이 너무도 없고, 인간성 또한 몹시 저열하다! 너희는 가끔 기쁠 때에만 그를 끌어와 하나님으로 여겨 경배할 뿐, 영원히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악당이라고 한다. 타인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도 보답을 받는데, 그리스도는 너희 가운데서 이렇게까지 사역하면서도 사람들의 사랑과 보답, 순종을 받지 못한다. 이는 마음이 미어지고 눈물이 날 일이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91. 신성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보다 높으므로 그는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권병을 갖고 있다. 그 권병은 신성이자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어떠함이다. 그 성품과 어떠함으로 그의 신분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이 아주 정상일지라도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든, 그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은 흔히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그리스도의 결점으로 간주한다. 그리스도가 아무리 신성의 어떠함을 나타내도 사람은 그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리스도가 순종하고 자신을 낮출수록 어리석은 자들은 그리스도를 더욱 경시한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멸시하면서 거대한 형상을 한 ‘위인’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숭배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까닭은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다. 만약 그리스도가 인성에 가려져 있지 않고, 피조물의 입장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지 않으며, 비범한 인성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누구도 그를 거역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늘 하늘에 계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한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인성이 없고 피조물의 속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리스도는 멸시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92. ‘믿음’이란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왜 구태여 이러한 고난을 받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묻겠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 왜 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또한 조금도 생기지 않느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인정하면서 왜 그를 멸시하고, 그에게 함부로 말하느냐? 왜 그를 공개적으로 판단하느냐? 왜 늘 그의 행적을 캐느냐? 왜 그의 안배에 순종하지 않느냐? 왜 일을 행할 때 그의 말씀을 준칙으로 삼지 않느냐? 왜 그의 제물을 강탈하고 훔치느냐? 왜 그리스도의 지위에 서서 말하느냐? 왜 그의 사역과 말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느냐? 왜 그를 뒤에서 모독하느냐? 이런 것들이 이른바 너희의 ‘믿음’이냐?

너희의 언행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티가 전혀 나지 않고, 너희가 일을 행하는 동기와 목표에는 ‘불신’의 덩어리가 가득하다. 심지어 너희의 눈빛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이 섞여 있다. 너희는 일분일초도 불신의 덩어리를 버린 적이 없었고, 언제든지 그리스도를 배반할 공산이 농후하다. 성육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혈액이 전신을 타고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길에 내디딘 발자국은 참된 것이 아니고 착실하게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너희는 그리스도가 한 말씀을 언제나 반신반의할 뿐 곧장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이는 너희가 그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대해 언제나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는 것도 그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행한 사역을 믿으려는 마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그의 말씀도 늘 귓등으로 흘려보낸다. 또한 편견으로 인해 그가 행하는 일들을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무리 설명을 해 줘도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기 어려워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너희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는 불신의 덩어리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역을 따르면서 아직 뒤처진 적이 없긴 하지만, 너희의 마음속에는 패역의 기운이 완연하다. 이 패역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는 불순물이다. 너희는 이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에서 자신의 속셈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반드시 훼멸될 존재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사람은 그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지, 하나님에 대해 반신반의하거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면서 억지로 따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93. 세력이나 재물을 좋아하지만 심판은 말할 것도 없고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세력파라고 한다. 그들은 세상에서 세력이 대단한 교파만을 골라 찾아다니고, 신학교를 나온 목사와 강사를 찾느라 분주하다. 또 진리의 도를 받아들였음에도 반신반의한 탓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지 못한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주시하는 사람은 큰 교파의 목사와 강사일 뿐, 그리스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밖에 없다. 그들은 이토록 작디작은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정복할 수 있고, 이렇게 볼품없는 사람이 사람들을 온전케 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또한 먼지와 거름으로 뒤범벅된 곳에 사는 이 변변찮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그들은 이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이라면 천지가 뒤바뀔 것이고 그야말로 배꼽 잡고 웃을 일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들을 택하여 온전케 한다면, 저 대단한 인물들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의 관점에는 불신의 덩어리가 섞여 있다. 어찌 불신뿐이겠는가. 그들은 진정 이치로는 깨우칠 수 없는 짐승들이다. 그들은 지위와 명망, 세력, 그리고 거대한 단체와 파벌만 중시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이끄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진리와 생명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배반자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94. 너는 높디높은 지위를 가진 저 거짓 목자들을 숭상하지, 그리스도의 낮춤을 앙모하지는 않는다. 또한 세상과 야합하는 저 음탕한 자들을 좋아하지, 그리스도의 사랑과 지혜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는 제물을 약탈하고 주색에 빠져 사는 저 시체들에 감탄할 뿐, 머리 둘 곳 없는 그리스도의 고통은 비웃기만 한다. 또한 제멋대로 날뛰는 저 적그리스도의 품에 안기길 원하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너에게 공급하는 것이 육체와 글귀, 그리고 속박뿐일지라도 말이다. 지금도 너의 마음은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명예와 지위를 바라보고 있다. 또한 그들의 세력을 바라보면서도 그리스도의 사역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이려는 마음조차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너에게는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믿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지금까지 나를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다. 너의 마음속에는 높디높고 크디큰 형상이 우뚝 솟아 있다. 너는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잊지 못하고, 권세를 지닌 그들의 말과 두 손도 잊지 못한다. 너희 마음속의 그들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원한 영웅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너희 마음속의 그는 영원히 초라하고, 영원히 경외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권세라 할 만한 것도 거의 없으며, 흠모할 만한 곳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95. 너희에게는 아직도 적지 않은 불신의 덩어리가 남아 있으니 한번 진지하게 찾아보는 게 좋겠다. 그러면 틀림없이 답을 찾을 것이다. 네가 올바른 답을 찾게 되면,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그를 기만하는 사람이며, 그를 모독하고 배반하며 그에게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리스도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너희는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진실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지금 너희의 심령에서 의심이 차지하는 비율은 70%나 되지만, 믿음은 30%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가 사역하고 말씀할 때마다 그에 대한 고정 관념과 편견이 생길 것이다. 그것들은 너희가 그리스도를 전혀 믿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너희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하나님만 앙모하고 두려워하지, 땅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이 또한 너희의 불신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지난날에 사역했던 하나님만 그리워할 뿐,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전혀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이 오늘날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믿음’으로, 너희 속에 영원히 섞여 있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너희에게는 불신의 덩어리가 너무 많고, 파헤쳐야 할 불순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 불순물은 너희에게 ‘믿음’이 전혀 없다는 표시이자 너희가 그리스도를 저버렸다는 표식이다. 또한 너희가 그리스도를 배반했다는 낙인이자 너희가 그리스도를 알아 갈 때 그의 얼굴을 가렸던 수건이다. 또한 그것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얻어지는 데의 장벽이자 너희와 그리스도를 어우러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며,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칭찬받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96. 오랜 세월의 사역을 통해 너희도 수많은 진리를 보았다. 그러나 내 귀에 들리는 것들이 전부 무엇인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너희 중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자가 몇이나 되느냐? 너희는 하나같이 자신이 진리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진리를 위해 고난받은 자가 몇이나 되느냐? 너희의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는 불의뿐이다. 그래서 너희는 누구나 다 똑같이 간사하고 교활하다고 생각하며, 심지어는 성육신 하나님까지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선한 마음과 인자한 사랑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너희는 고상한 품성이나 긍휼, 인자함 등의 본성은 오직 하늘의 하나님께만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런 성인(聖人)은 존재하지 않고, 이 세상은 어둠과 사악한 무리가 권력을 잡고 있으며, 하나님은 사람이 아름다운 것을 지향하는 정신적 존재이자 사람이 만들어 낸 전설 속 인물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너희 마음속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매우 정직하고 공의로우며, 너무도 위대하여 경배하고 앙망할 가치가 있는 분이지만, 땅에 있는 이 하나님은 그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대역이자 도구일 뿐인 것이다. 너희는 이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과 절대 같은 분이 될 수 없으며, 같은 선상에서 논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의 위대함과 존귀함을 얘기할 때면 그것이 전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의 본성과 패괴에 대해 논할 때면 땅에 있는 하나님 또한 거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하늘의 하나님은 영원히 위대한 반면, 땅의 하나님은 영원히 미미하고 연약하며 무능한 존재다. 하늘의 하나님은 사사로운 감정 없이 언제나 공의로운 반면, 땅의 하나님은 공평무사함 없이 사사로운 마음뿐이다. 하늘의 하나님은 조금의 교활함도 없이 영원히 신실한 반면, 땅의 하나님은 정직하지 못한 면이 있다. 하늘의 하나님은 사람을 지극히 아끼는 데 반해 땅의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보살핌에 부족함이 있고, 심지어는 내버려 두기도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그릇된 인식은 너희 마음에 이미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었으며, 너희는 앞으로도 이 잘못된 인식을 품고 있을 것이다. 너희는 불의한 자의 입장에서 그리스도가 하는 모든 일을 바라본다. 또한, 악인의 자리에 앉아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과 그의 본질을 평가한다. 너희는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고, 옛사람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면류관을 쓰고 계신 하늘의 위대한 하나님만을 섬길 뿐, 이 보잘것없어 눈에 들지 않는 하나님을 ‘시중든’ 적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의 죄행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전형적인 사례가 아니겠느냐? 너희는 하늘의 하나님을 매우 숭경하고, 위대한 형상을 숭상하며, 비범한 말재주를 가진 사람을 존경한다. 또한, 너희의 두 손에 재물을 가득 안겨 주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어 하며, 무엇이든 너희 뜻에 딱 맞아떨어지는 하나님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네가 유일하게 숭경하지 않는 대상은 바로 이 대단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며, 유일하게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이 대단할 것이 없어 보이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며, 유일하게 원치 않는 것은 평생 너에게 한 푼도 쥐여 주지 않는 이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또한, 네가 그리워할 수 없는 대상은 바로 이 사랑스럽지 않은 하나님이다. 이런 하나님은 너의 시야를 넓혀 주지도, 너에게 보물을 가득 안겨 주지도 못하며, 네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지도 못한다. 그런데 너는 왜 그를 따르느냐? 너는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의 행위는 이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도 죄를 짓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97. 너희는 몹시 하나님의 기쁨을 사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이냐? 너희는 그의 말씀만 받아들일 뿐, 그의 책망과 훈계는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의 모든 안배 또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아가 그를 완전히 믿지도 못한다. 이것은 또 어찌 된 일이냐? 결국 너희의 믿음은 속이 텅 빈 달걀과 같다. 그 달걀에서는 영원히 병아리가 나오지 못할 것이다. 너희의 믿음이 너희에게 가져다준 것은 진리와 생명이 아니라 뜬구름과도 같은 기대와 희망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진리와 생명이 아닌, 그 기대와 희망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이 한없이 비굴하며, 부끄러움도 모른 채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만 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참된 믿음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러한 믿음에서 어떻게 병아리가 나오겠느냐? 다시 말해, 그러한 믿음이 어떻게 결실을 맺겠느냐?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해 너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것은 더더욱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존재는 믿으면서 땅에 있는 하나님의 존재는 부정한다. 나는 너희의 그런 관점을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착실하게 땅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만을 인정하며, 땅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자를 인정한 적이 없다. 그런 자들은 하늘의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하든, 결국에는 악인을 징벌하는 내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바로 악한 자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 한 번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순종한 적이 없는 악한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부정하는 사람들 또한 당연히 그 안에 포함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98. 교회마다 교회를 교란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다 사탄이 위장하여 하나님 집에 들어온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특히 외식을 잘해서 내 앞에서는 더없이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굽히며 쥐새끼처럼 군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만, 형제자매들 앞에서는 또 추한 모습을 드러낸다.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을 보면 공격하거나 배척하고, 자기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면 아첨하고 치켜세우며, 교회 안에서 제멋대로 날뛴다. 거의 모든 교회에 다 이런 ‘불량배’와 ‘앞잡이’들이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들은 함께 모여 몰래 못된 짓을 하고, 서로 눈짓하면서 아무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그중에서 독액이 많은 자가 ‘우두머리’가 되고, 신망이 두터운 자가 깃발을 날린다. 이들은 교회에서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마구 날뛰면서 부정적인 것과 죽음을 퍼뜨리고 있다. 아무도 감히 이들을 제지하지 못하는데, 이들은 사탄의 성품으로 가득하다. 이들이 이렇게 교란을 하면 교회에는 죽음의 분위기가 드리운다. 교회에서 진리를 행하는 사람들은 버림받아 자신의 능력을 다하지 못하고, 반대로 교회를 교란하며 죽음의 기운을 퍼뜨리는 자들은 교회에서 마구 날뛴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들을 따른다. 이런 교회는 그야말로 사탄이 권세 잡고 마귀가 왕 노릇 하는 곳이다. 만약 그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마왕들을 내치지 못한다면, 그들도 언젠가는 망가지고 말 것이다. 이런 교회에 대해서는 향후 마땅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조차 찾고 구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제거되어야 한다. 만약 어떤 교회에 진리를 실행하려는 사람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는 사람도 없다면, 그 교회는 철저히 차단해 다른 교회와의 왕래를 끊어 버려야 한다. 이것이 사망을 묻어 버리고 사탄을 내치는 것이다. 한 교회에 불량배들이 존재하고 또한 분별력이 전혀 없는 ‘작은 파리들’까지 따르고 있는 경우, 교회의 사람들이 진리를 보고도 불량배들의 속박과 통제를 끊어 버리지 못한다면, 최종 결과는 그런 멍텅구리들도 다 도태되는 것이다. 작은 파리들은 큰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간사하고 교활한 자들이다. 이런 유형에 속하는 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도태시킬 것이다! 사탄에 속하는 자는 사탄에게로 돌아가고, 하나님께 속하는 자는 필히 진리를 구할 것이다. 이는 사람의 본성에 달린 것이다. 사탄을 따르는 자들은 모조리 멸망케 하라! 그런 자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 진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모두 공급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하여라. 하나님은 공의로우니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네가 마귀라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할 것이고, 네가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사탄에게 끌려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 중에서

99. 진취적이지 않은 자는 늘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부정적이고 게을러지기를 바란다.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는 진리를 행하는 사람을 질투하며, 분별력이 없는 어리석은 이들을 늘 미혹하려 한다. 이런 자들이 퍼뜨리는 것은 너를 타락시키고 뒷걸음치게 하며,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게 하고, 내면이 어두워지게 한다. 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육을 사랑하게 하며, 자신과 타협하게 한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는 자는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다. 이런 자는 다른 사람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유인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진리를 행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까지 진리를 행하지 못하게 한다. 또 그는 죄를 사랑하고 자신을 증오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알려고 하는 것과 진리를 갈망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런 자에게 미혹된 사람은 광명을 보지 못한다. 어둠에 빠져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확실히 깨닫지 못해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그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진리 실행까지 방해하면서 분별없는 자들을 전부 자기 앞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니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조상, 그의 마음속 우상을 믿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말로만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자신이 도대체 누구를 믿고 있는지, 하나님을 믿는지 아니면 사탄을 믿고 있는지를 봐야 할 것이다. 네가 믿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너의 우상임을 알았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네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말은 모독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강요하지 않으니 너희는 나를 믿는다고 하지 말라. 그런 말은 신물이 날 정도로 들었으니 더는 듣고 싶지 않다. 너희가 믿는 것은 모두 너희 마음속 우상이나 너희 가운데 있는 불량배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죽음의 말을 들으면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는 자들은 모두 사탄의 자손이자 도태될 대상이다. 교회에는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사람을 미혹시키는 일이 생기면 그들은 꼭 사탄의 편에 선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사탄의 종이라 하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들에게 분별력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매번 진리가 아닌 쪽에 서고, 비상시에 단 한 번도 진리의 편에 선 적이 없으며, 진리를 위해 일어나서 변론한 적도 없다. 그들에게 정녕 분별력이 없는 것이냐? 그렇다면 어째서 꼭 사탄의 편에 서는 것이냐? 어째서 단 한 번도 진리를 위해 공평하고 합리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이냐? 이것이 정말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인한 일이냐? 분별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느냐?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죄악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말해 주지 않느냐?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사탄의 충실한 후손임을 말해 주지 않느냐? 어째서 그들은 늘 사탄의 편에 서서 사탄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냐? 그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표정 하나가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증오하는 사람임을 증명해 준다. 그들이 사탄의 편에 선 것은 사탄이 자신을 위해 평생 분투하는 이 작은 마귀들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전부 눈앞에 훤히 드러난 사실이 아니냐? 네가 진정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째서 진리를 행하는 사람을 눈에 담지 않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가 약간의 눈짓만 해도 즉시 따르는 것이냐? 이는 어떤 문제이냐? 나는 너에게 분별력이 있는지, 네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너의 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네가 불량배인지 아니면 우두머리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너의 세력이 커 봤자 그것은 사탄의 힘을 빌린 것에 불과하고, 너의 명성이 높아 봤자 그것은 네 주변에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일 뿐이다. 네가 지금까지 출교되지 않은 이유는 지금은 출교 사역을 하는 때가 아니라 도태 사역을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너를 출교시키는 것은 아직 급하지 않다. 너를 도태시키고 징벌할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누구든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는 도태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 중에서

100.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는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는 자 역시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며, 진정으로 진리의 편에 서는 사람이다. 간교한 짓을 하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모두 진리가 없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들이다. 교회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사탄의 종이자 사탄의 화신이다. 이런 사람은 몹시 악독하다. 또한, 분별력이 없어서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하는 자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진리를 모독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더 전형적인 사탄의 상징이자, 구제 불능이다. 이들도 물론 도태될 대상에 속한다. 하나님의 집은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들과 고의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자들을 남겨 두지 않는다. 단, 지금은 사람을 출교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므로 나중에 드러내고 도태시킬 것이다. 이런 자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공을 들이지 않겠다. 사탄이라면 진리의 편에 서지 않을 것이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진리의 편에 설 것이다.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의 도를 들을 자격도, 진리를 증거할 자격도 없다. 진리는 전혀 그들을 향해 말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행하는 사람에게 말한 것이다. 모든 사람의 결말이 드러나기 전까지, 교회를 교란하고 사역을 방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리는 유보하겠다. 사역이 끝날 때 그들을 하나하나 드러낸 후 도태시킬 것이다. 진리를 공급하는 기간에는 일단 그들을 상대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진리를 사람에게 분명히 알려 준 후에는 사람을 도태시킬 것이다. 그때가 곧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때이다. 분별력이 없는 자들은 자신들의 잔꾀로 인해 악인의 손에 떨어질 것이고, 악인에게 속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마땅히 이렇게 처리해야 한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의 편에 서지 않았으며 악인을 따랐기 때문에 악인의 편에 서서 악인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했다. 그들은 악인들이 퍼뜨리는 것이 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진리를 등지고 악인을 따라갔다. 진리를 행하지 않고 멸망의 가증한 짓을 하는 자들은 전부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들 중에는 ‘왕’ 행세를 하는 자가 있고 부화뇌동하는 자가 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은 모두 같지 않으냐? 그들이 무슨 핑계로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또 그들이 무슨 핑계로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들의 악행이 그들을 파멸시킨 것이 아니더냐? 그들의 패역이 그들을 지옥으로 끌고 간 것이 아니더냐? 진리를 행하는 자는 최종적으로 진리로 인해 구원받고 온전케 될 것이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는 결국 진리로 인해 자멸할 것이다. 이는 진리를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않는 자의 결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 중에서

101. 기왕에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을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기왕에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이것조차 할 수 없다면 믿고 안 믿고는 거론할 수도 없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하나님께 순종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네게 순종하고 너의 관념에 따르게 한다면, 너는 가장 패역한 사람이며 불신파다. 이런 사람이 어찌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느냐? 가장 패역한 사람은 일부러 하나님께 불복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원수이며 적그리스도다. 그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을 항상 적대적인 태도로 대하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기꺼이 순종하거나 자신을 낮춘 적도 없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가장 대단하다고 여기며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순종한 적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도’에 대해 가장 잘 나눌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일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보배’를 전혀 버리지 않고 가보로 삼아 섬기면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고, 이로써 자신을 우러러보는 아둔한 이들을 훈계한다. 교회에 확실히 이런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굴복을 모르는 영웅 세가’이며 대대로 하나님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도’(리)를 얘기하는 것을 자신의 최고 직책으로 삼고, 한 해 또 한 해, 한 세대 또 한 세대 이어 가며 그들의 신성불가침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누구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누구도 감히 그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하지 못한다. 하나님 집에서 ‘거물’이 된 그들은 시대마다 권세를 믿고 제멋대로 힘을 휘두른다. 이 악마의 무리가 연합하여 나의 사역을 허물려고 하는데, 내가 어찌 이런 산 귀신이 내 눈앞에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느냐? 내게 절반만 순종하는 사람들도 마지막까지 갈 수 없는데 하물며 순종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이 악한 자들은 어떻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전력을 다해도 그중 일부만 하나님께 얻어져 최종적으로 온전케 될 수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천사장의 후손들은 어떻겠느냐? 그들은 더더욱 하나님께 얻어질 희망이 없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중에서

102.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것만 믿으며 생명과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한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커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다시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예수를 털끝만큼도 알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너희도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쉽게 저지르지 않겠느냐? 너는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느냐? 정말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증할 수 있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느냐?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다면, 너는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103.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알면서도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대예배당에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성경을 외우지만,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깨닫거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이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인배이고, 높은 곳에서 ‘하나님’을 가르치는 자들이며, 하나님을 내세우면서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하에 사람의 살을 먹고 사람의 피를 마시는 자들이다. 이들은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악마이며, 사람이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마왕이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의 걸림돌이다. 이들이 비록 ‘건장하고 튼튼할’지라도, 이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찌 이들이 사람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이끌어 가는 적그리스도임을 알겠느냐? 어찌 이들이 전문적으로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산 귀신임을 알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104. 잡귀와 요괴가 세상에서 잠시 횡행하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심혈을 물샐틈없이 차단시켰다. 이토록 말할 수 없이 극악무도하거늘 어찌 하나님이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찌 하나님이 크게 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심히 가로막고 대적하니 이보다 더한 패역이 어디 있겠느냐! 크고 작은 잡귀조차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덩달아 풍파를 일으키며, 진리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대적한다. 패역한 자식들! 그것의 염라대왕이 ‘왕’이라고 새겨진 보좌에 오르기라도 한 듯 유유자적[23]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구나. 진리를 찾고 정의를 따르는 자가 몇이나 되느냐? 개돼지,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 역겨운 파리 떼를 이끌고 거름 더미 속에서 의기양양해하며 못된 수작을 부린다[24]. 자신의 ‘염라대왕’이 가장 대단한 ‘왕’이라고 생각하며 우쭐한다. 자신이 역겨운 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는 것이냐? 개돼지만도 못한 부모의 힘에 기대어 하나님의 존재를 모독한다. 보잘것없는 파리가 자신의 부모는 이빨고래[25]만큼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보잘것없이 작고, 제 부모는 자신보다 수억 배나 큰, 더러운 개돼지임을 어찌 알지 못하느냐? 자신의 비천함을 모른 채 개돼지의 ‘썩은 냄새’를 믿고 곳곳에서 횡포를 일삼고, 후대를 번성하겠다는 헛된 생각에 빠져 부끄러움도 모른다! 초록색 날개를 달고(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을 가리킴) 잘난 체하며, 여기저기서 자신의 아름다움과 뛰어남을 뽐낸다. 자신의 더러움을 슬그머니 사람에게 내던지고, 오색찬란한 날개로 자신의 더러운 것들을 감추었다는 듯 득의양양해하며 참하나님의 존재를 핍박한다(종교계의 실상을 가리킴). 파리가 날개는 아름답고 매혹적일 수 있어도 배 속은 불결함으로 가득 차 있고, 온몸은 독을 가진 균으로 들끓는, 작디작은 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이 어찌 알겠느냐? 파리는 개돼지 부모에 기대어 횡포를 부리고(하나님을 핍박하는 종교계의 관계자들이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믿고 참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리를 배반하는 것을 일컬음), 미쳐 날뛴다. 마치 떠돌던 유대 바리새인의 영혼이 하나님을 따라 큰 붉은 용의 나라, 자신의 소굴로 되돌아와 또다시 핍박을 시작하고, 수천 년 동안 해 온 일을 이어 나가는 듯하다. 이 인간쓰레기들은 결국에는 땅에서 멸망할 것이다! 수천 년 후 더러운 귀신은 더욱더 ‘교활하고 간사해진’ 듯하다. 속으로 늘 하나님의 사역을 허물겠다는 생각을 품고, 온갖 술수를 쓰며, 수천 년 전의 비극을 자신의 고국에서 ‘재연’하려 한다. 하나님은 핍박을 받다 못해 큰 소리로 부르짖을 뻔했고, 당장이라도 셋째 하늘로 되돌아가 당장 그것을 멸해 버리고 싶게 만든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7> 중에서

105. 성경을 보면, 예수와 그가 행한 사역에 대해 바리새인은 “…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막 3:21~22)라고 평한다. 예수에 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판단은 다른 사람을 따라 말하거나 터무니없는 상상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의 행사를 직접 보고 듣고 내린 결론이다. 이러한 판단은 정의를 위한 것인 양 나름의 근거와 이유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를 논단하는 이러한 오만 방자함은 그들 스스로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예수를 향한 광기 어린 증오심에서 그들의 야심과 사악한 사탄의 몰골,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독한 본성이 드러났다. 예수를 판단하는 그런 말은 야심과 질투, 그리고 진리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추하고 악독한 본성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예수가 행하는 일의 근원과 말씀과 행사의 본질을 살펴보지는 않고, 안달이 나서 무턱대고, 미친 듯이, 의도적으로 악의를 품고 예수의 모든 행사를 공격하고 비방했다. 심지어 예수의 영, 즉 성령이자 하나님의 영을 함부로 비방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는 그들의 입에서 나온 ‘그가 미쳤다’, ‘바알세불’, ‘귀신의 왕’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 하고,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 사역하는 것을 보고 미쳤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모독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본질은 사탄 악마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것과 완전히 같았다. 그들은 패괴된 인류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탄의 화신이고, 인류 가운데 있는 사탄의 대변자이자 심부름꾼이며, 사탄과 한 패거리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훼방하는 행위의 본질은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고 하나님과 맞서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질과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태도, 그들 입으로 말하는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고 거슬러 진노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합당한 결론을 내려 그들의 행위를 성령 모독죄로 규정했다. 그 죄는 아래 성경 구절과 같이 금세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106. 네 마음에는 크나큰 비밀이 존재한다. 그러나 네가 빛이 비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왔기에 여태껏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너는 마음과 영을 악한 자에게 빼앗겼다. 너의 두 눈은 어둠에 가려져 하늘의 태양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지 못하며, 너의 두 귀는 거짓된 말에 막혀 여호와의 천둥 같은 음성과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물소리를 듣지 못한다. 너는 가지고 있어야 할 모든 것과 전능자가 너에게 베푼 모든 것을 잃고 끝없는 고통의 바다에 빠져 스스로를 구원할 힘도 없고, 살아서 돌아갈 희망도 없다. 그저 발버둥 치며 정신없이 돌아다닐 뿐…. 그 순간부터 너는 악한 자에게 시달릴 운명에 처하게 되었고, 전능자의 축복과 공급에서 멀어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었다. 천만번 불러도 너의 마음과 영을 깨울 수가 없다. 너는 악한 자의 손에서 깊이 잠들었고, 그의 꼬임으로 끝없는 나락에 떨어져 방향과 이정표를 잃어버렸다. 그때부터 너는 원래의 순진무구함을 잃고, 전능자의 보살핌을 피하기 시작했다. 악한 자가 너의 마음속에서 네 모든 것을 조종하며 너의 생명이 되어 너는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거나, 피하거나, 의심하지 않게 되었고, 그를 마음속의 하나님으로 삼아 섬기고 숭배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했다. 너는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왜 태어났는지, 왜 죽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또 너는 전능자가 낯설게 느껴지고, 그의 근원과 그가 네게 행한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너는 그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적대시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그 가치를 알지도 못한다. 전능자의 공급을 받은 날부터 너는 악한 자와 동행해 왔고, 수천 년 동안 그자와 함께 풍파를 겪으며 네 생명의 근원이었던 하나님께 같이 ‘맞섰다’. 그러고도 회개할 줄 모르고, 자신이 파멸에 이르렀음은 더더욱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너는 악한 자가 너를 유혹하고 괴롭혔다는 사실을 잊고 자신의 근원을 망각한 채 오늘날까지 그 악한 자에게 잔인하게 짓밟혀 왔다. 마음과 영이 마비되고 부패한 너는 더 이상 세상의 번뇌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전능자의 존재 여부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너는 오래전부터 악한 자를 친아버지로 여기고, 그를 떠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네 마음속 ‘비밀’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전능자의 탄식> 중에서

107. 동이 틀 무렵 동쪽에서 샛별 하나가 반짝였다. 지금껏 없었던 그 별은 고요한 별하늘을 밝게 비추고, 꺼져 있던 사람들 마음속의 등불을 환히 밝혔다. 그 등불은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고, 너와 그를 밝게 비추었다. 그러나 너는 여전히 그 칠야 속에서 깊이 잠들어 음성을 듣지 못하고, 빛을 보지 못하며, 새 하늘과 새 땅,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네 아버지가 너에게 “얘야, 일어나지 말거라. 아직 때가 이르잖니. 날씨도 몹시 추우니 밖으로 나가지 말아라. 나갔다가는 칼과 창에 눈이 찔린단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너는 네 아버지만 옳다고 믿고, 그가 너보다 연장자이며 진심으로 널 사랑한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당부에만 귀를 기울인다. 이 같은 당부와 사랑으로 인해 너는 세상에 광명이 존재한다는 전설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이 세상에 진리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며, 전능자의 구원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 안주할 뿐, 더 이상 광명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고, 전설 속 전능자가 강림하는지를 더 이상 살펴보지 않는다. 너는 모든 아름다운 것이 소생하거나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인류의 내일과 미래는 네 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너는 함께 걸어갈 동반자를 잃지는 않을까, 가야 할 먼 길의 ‘방향’을 잃지는 않을까 심히 두려워 아버지의 옷자락을 꼭 붙들고 그와 함께 고난을 견디려고 한다. 막막한 세상은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의지로 이 세상에서 각각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너 같은 이들을 줄줄이 길러 냈고,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들을 잇따라 키워 냈다. 또한, 왜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무감각하고 병약한 사람들을 대거 배출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인류를 하나하나 살펴본 전능자는 고통으로 울부짖는 사람의 소리를 들었고, 상처를 입은 인간의 뻔뻔한 모습을 보았으며, 구원을 잃은 인류의 무력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인류는 전능자의 보살핌을 뿌리치고 제 갈 길을 가며, 그의 감찰을 피하면서 오히려 원수와 함께 심해의 쓴맛을 맛보고자 했다. 전능자의 탄식은 더 이상 사람들의 귀에 들리지 않고, 그의 두 손은 더 이상 비참한 인류를 어루만지려 하지 않는다. 수없이 되찾고 수없이 잃어버리며 그는 그렇게 사역을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치고 싫증이 난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더는 사람들 가운데서 오가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이 모든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전능자의 오고 감, 그의 슬픔과 실망 또한 알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전능자의 탄식> 중에서

108. 밤이 살며시 찾아올 때,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은 밤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이 살그머니 달아날 때 사람은 낮을 맞이한다. 사람의 마음은 낮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밤을 몰아냈는지 알지 못할뿐더러 느끼지도 못한다. 이렇게 계속 순환하는 낮과 밤에 따라 인류는 다양한 시기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의 사역과 계획도 시기별로, 시대별로 하나씩 이루어졌다.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이처럼 다양한 시기를 지나왔으나 하나님이 만물 생령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또한, 하나님이 만물을 어떻게 다스리고 지휘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는 오늘날과 과거의 사람들이 모두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 은밀해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지 않아서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영이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면서’ 사탄을 섬기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의 발자취와 하나님의 나타남을 자발적으로 찾아 나서는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아가려는 사람도 없다. 도리어 자신을 갉아먹는 사탄과 악한 자에게 몸을 맡겨 이 세상과 사악한 인류의 생존 법칙에 순응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사람의 마음과 영이 사탄에게 바치는 공물, 사탄의 먹이로 변해 버렸고, 더 나아가 사탄이 오랫동안 머무르는 곳, 사탄의 당연한 놀이터로 전락한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의 도리뿐만 아니라 생존의 가치와 의미를 망각하게 되었으며, 마음에서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과의 약속은 점점 퇴색되었다.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찾거나 상대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의미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율법과 법도에 맞서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무감각해졌다…. 그렇게 하나님은 처음에 만든 사람을 잃게 되었고, 사람 역시 본래의 뿌리를 잃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슬픔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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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해[摧殘]: 여기서는 사람의 패역을 폭로함.

[2] ‘차디찬 시선과 손가락질’,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며’: 원래 문장은 ‘사나운 눈초리로 뭇사람들의 질타에 맞서고[橫眉冷對千夫指], 머리 숙여 기꺼이 어린아이의 소가 되다[俯首甘爲孺子牛]’는 한 구절로 되어 있지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문제를 더 정확히 설명하고 있음. 앞 구절은 사람의 ‘행위’를, 뒷 구절은 하나님이 받는 고난과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것을 가리킴.

[3] 차별[歧視]: 본문에서는 사람의 패역 행위를 가리킴.

[4] 독재하며[獨攬大權]: 사람의 패역 행위를 비유함. 즉, 자신을 추켜올리는 한편, 다른 사람이 자신을 따르고 자신을 위해 고통받도록 통제하는,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대한 표현. 원뜻은 절대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을 말함.

[5] 꼭두각시[傀儡]: 본문에서는 이 어휘를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롱함.

[6] 설상가상(雪上加霜): 본문에서는 이 어휘로 사람의 비열한 행위를 더 두드러지게 함.

[7] 보배를 알아보지 못하고[明珠暗投]: 본문에서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사탄적인 것으로 비하하는 것, 나아가 하나님을 저버리는 사람의 모든 행위를 가리킴.

[8] 흑백을 가리지 못하며[黑白混淆]: 진리와 허상, 정의와 추악함이 섞여 있는 것을 가리킴.

[9] 비적[土匪]: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식견이 없음을 가리킴.

[10] 부화뇌동[吠影吠聲]: 본문에서는 다른 사람의 장단에 맞추고 시류를 좇는 자를 가리킴.

[11] 한 마리가 짖으면 백 마리가 따라 짖는다[一犬吠形, 百犬吠聲]: 부화뇌동[吠影吠聲]과 같은 뜻.

[12] 잔배냉적[殘羹冷炙]: 먹다 남은 음식. 하나님을 억압하는 사람의 행위를 가리킴.

[13] 노발대발[怒髮衝冠]: 격분하여 제정신이 아닌 추태를 가리킴.

[14] 마다하지 않는다[毫不顧忌]: 여기서는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음을 가리킴.

[15] 사람의 ‘진입’: 여기에서 ‘진입’이란 올바른 생명의 진입이 아닌 사람의 패역을 가리킴. 즉, 사람의 부정적인 행실과 작태를 가리키며,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행동을 의미함.

[16] 초목개병(草木皆兵): 놀라서 당황할 때, 모든 것을 의심한다는 뜻. 본문에서는 사람의 비정상적인 인성 생활을 풍자하며, 귀신과 함께 사는 인류의 추한 삶을 가리킴.

[17] 탁월한 재주[一技之長]: 본문에서는 풍자의 의미로 사용.

[18] 불 난 집에 부채질하듯[火上澆油]: 본문에서는 사람의 추태를 풍자하는 의도로 사용됨.

[19] 승산[胸有成竹]: 본문에서는 풍자적으로 사용되어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실제 분량을 알지 못하는 것을 가리킴. 부정적인 의미로 쓰임.

[20] 위풍당당[威風凜凜]: 본문에서는 풍자의 의미로 쓰임.

[21] 뿜을 듯[迸發]: 본문에서는 하나님에게 ‘패배한’ 사람이 분노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추태를 가리킴. 하나님에 대한 대적의 정도를 의미함.

[22] 생포[生擒活捉]: 산 채로 잡는 것. 본문에서는 사람의 포악하고 비열한 행위, 즉 하나님에게 잔인무도하게 굴고 조금도 경계를 늦추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리한 요구만 하는 것을 가리킴.

[23] 유유자적[悠閑自得]: 여기에서는 표정이나 태도가 오만하고 무례하여 혐오감을 유발하는 것을 의미함.

[24] 못된 수작을 부린다[興妖作怪]: 여기서는 마귀에 속한 자들이 곳곳에서 횡포를 부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것을 가리킴.

[25] 이빨고래[齒鯨]: 여기서는 작디작은 파리가 ‘개돼지’를 ‘고래’로 생각한 것을 풍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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