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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하나님이 패괴된 인류의 사탄 성정과 본성 실질을 드러내신 말씀

1.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본 원인은 모두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의 패괴로 인해 사람은 양심이 마비되었고, 도덕이 패괴되었으며, 사상이 부패해졌고, 정신 면모가 낙후해졌다. 사탄의 패괴를 겪지 않은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순복하는 사람이었으며, 본래 이지와 양심이 건전하고 인성이 정상인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탄의 패괴를 겪은 후에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이지와 양심 그리고 원래 있었던 인성은 마비되었고, 모두 사탄에게 파괴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사랑마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사람의 이지가 정상이 아니고 사람의 성정도 짐승의 성질처럼 변하여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 갈수록 많아지고 갈수록 심해지지만, 사람은 여전히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 한사코 대적하고 거역하기만 한다. …정상적인 이지란 하나님에 대해 순복과 충성심이 있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며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이고 양심이 있음을 가리키며, 하나님에 대해 일편단심이고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대적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비정상적인 이지는 그렇지 않다.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된 후,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겼고 충성심이 없으며, 사모하지도 않고 양심은 더 말할 나위가 없으며,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논단할 뿐만 아니라 뒤에서 하나님을 욕하며, 하나님인 줄 뻔히 알면서도 뒤에서 논단하며, 순복하려는 뜻은 아예 없고 줄곧 하나님께 토색하고 요구할 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에서 발췌

2. 그것은 사람의 사상과 도덕이 패괴되고 교양이 없고, 봉건 미신에 사람의 심령이 심각하게 점령되었으며, 타락되고 부패한 생활 방식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많은 폐단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식이 천박하고, 98%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지식 교육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으므로 사람은 영이란 무엇이고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모른 채 그저 봉건 미신으로 모호한 하나님의 형상만 있게 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천 년 동안의 ‘민족 기개’로 마음 깊은 곳에 남겨진 해독과 봉건사상에 아무런 자유도 없이 속박당하여 패기가 없게 되었고, 의지력이 없게 되었으며, 향상하기를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후퇴하게 되었고, 노예근성이 아주 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와 같은 객관적인 요소들에 의해 사상적 풍모와 자신의 꿈, 도덕, 성정에 지워 버릴 수 없는 더러운 추한 몰골이 만들어졌다. 사람은 모두 공포의 암흑세계에서 생활하는 것 같고, 아무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무도 이상적인 세계를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안분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자녀를 낳아 기른다든가, 힘을 내고 땀을 흘리며 일한다든가, 편안하고 행복한 가정이 있기를 꿈꾼다든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자녀가 효도하고 노년을 즐겁게 지낸다든가, 자기의 일생을 편안히 보낸다든가 하는 것이다. 몇만 년, 몇천 년, 몇십 년 전, 심지어 지금도 사람은 여전히 이렇게 허송세월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창조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저 어두운 천지간에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서로 명리를 다투고, 서로 암투를 벌일 뿐이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한 적이 있는가? 어느 누가 하나님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흑암 권세에 점유된 사람의 이 모든 것들이 이미 본성이 되어 하나님이 사역을 전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게 되었고, 사람은 하나님의 오늘날의 부탁에 대해 더욱더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3)>에서 발췌

3. 사실,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중에 사람은 가장 미천하다. 비록 만물 가운데서 사람이 주인이기는 하지만, 만물 중에서 사람만이 사탄에게 우롱을 당하고 있고, 사람만이 사탄의 온갖 수단에 패괴되었기에 자주권이 전혀 없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사탄의 더러운 땅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탄에게 조롱을 당하고 있다. 반죽음이 되도록 희롱당하면서 인간 세상의 온갖 풍파를 다 겪었으며, 인간 세상의 고난을 다 겪었다. 하지만 사탄은 사람을 우롱한 후 사람의 운명을 끝낸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은 박삭미리하기만 하여 하나님이 사람에게 누릴 수 있게 예비해 놓은 것을 누린 적이 없으며, 반대로 사탄에게 짓밟혀 만신창이가 되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사람은 더욱더 기진맥진하고 생기가 없어 아예 하나님의 사역에 관심을 가질 마음도 없다. …

…하나님은 이 사람들의 소질, 마음가짐, 관점에 극도로 혐오감을 느낀다. 터득 능력이 부족하고, 극도로 마비되고, 부패하고도 속되며, 노예근성이 너무나 강하고, 연약하여 의지력이 없는데, 우마처럼 끌고 가야 한다. 영 안의 진입에 대해, 하나님 사역의 진입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고, 진리를 위해 고난받으려는 심지(心志)가 전혀 없는데,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만들어진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1)>에서 발췌

4. 사람의 성정은 극도로 악독해졌고, 사람의 이지도 이미 극도로 마비되었으며, 사람의 양심은 일찍이 그 악한 자에게 전부 짓밟혀 이미 원래의 그 양심이 아니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인류에게 이처럼 많은 생명과 은혜를 베풀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진리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해 혐오감이 생겼다. 사람이 진리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은 또 하나님에 대해 혐오감이 생겼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서 부당한 이득을 ‘짜내고’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것보다 몇십 배나 높은 이자를 하나님에게서 받아 내려고 한다. 이같은 양심과 이지인데도 사람은 그렇다고 여기지 않고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너무나 많이 헌신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에게 너무나 적게 베풀어 주었다고 여긴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물 한 그릇을 주고는 우유 두 그릇의 금화를 달라고 손을 내밀며, 내가 그 집에서 하룻밤 묵으면 그보다 몇 배나 넘는 숙박비를 요구한다. 너희는 이러한 인성과 양심으로 그래도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가? 정말 비열한 소인배들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또 조건을 건다. 그들은 그분이 하나님이든 사람이든 상관치 않고, 자신의 조건만 걸며,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만을 추구한다. 너희는 나에게 밥을 지어 주고는 요리비를 요구하며, 나를 위해 뛰어다니고는 수고비를 요구하며, 나를 위해 일하고는 사역비를 요구하며, 나에게 빨래를 해 주고는 세탁비를 요구하며, 교회에 공급하고는 몸 보양비를 요구한다. 말하는 자는 강의료를 요구하며, 책을 배송하는 자는 책 배송비를 요구하며, 글을 쓰는 자는 원고료를 요구한다. 심지어 내가 훈계한 적이 있는 사람은 또 나에게 위자료를 요구하며, 집으로 돌려보낸 사람은 또 명예훼손비를 요구하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또 나에게 혼수비를 요구하고 청춘비를 요구하며, 닭을 잡는 자는 닭 잡는 수고비를 요구하며, 볶음 요리를 하는 자는 요리하는 수고비를 요구하며, 국을 끓이는 자는 국 끓이는 수고비를 요구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너희의 고상하고도 위대한 인성이고, 너희가 너희의 그 따뜻한 양심의 지배를 받아 해낸 일이다. 너희의 이지는 어디에 있는가? 너희의 인성은 어디에 있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에서 발췌

5. 수천 년의 패괴를 겪은 사람은 마비되어 둔해졌고,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가 되었다. 나아가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한 역사(歷史)는 ‘역사책’에도 기록되었고, 심지어 사람의 패역한 행위는 사람들 자신마저도 이루 다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탄에게 너무나 깊이 패괴되었고 사탄에게 유혹되어 이미 어느 지경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보고도 배반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도 배반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본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이지와 양심은 이미 원래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한다. 내 눈에 사람은 모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고 모두 독사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에서 발췌

6. 너희의 추구에는 개인의 관념, 소망, 앞날의 요소가 너무나 많다. 지금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너희의 지위심(地位心)을 다루고, 너희의 그 사치한 욕망을 다루기 위한 것이다. 그런 소망, 지위, 관념은 다 사탄 성정의 전형적인 대표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이런 것이 존재하는 것은 다 사탄의 독소가 계속 사람의 사상을 부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종일관 사탄의 그 유혹을 벗어 버리지 못하여 죄 속에서 살면서도 죄로 여기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은 또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하고, 반드시 우리의 모든 것을 적절하게 안배해 주셔야 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고 그 어떤 사람보다 지위와 앞날이 있어야 해.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끝없는 축복을 주셔야 해. 안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어.’라고 여긴다. 오랜 세월, 사람이 믿고 생존해 온 사상이 사람의 심령을 부패시켜 사람은 간사해지고 나약해지고 또 비열해졌다. 사람은 의지력과 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고 거만해졌으며, 자아를 초월하려는 심지가 전혀 없고, 더욱이 이 흑암 권세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용기도 전혀 없다. 사람의 사상이 부패되고 삶이 타락되어 하나님을 믿는 관점까지도 여전히 추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해 말하면 그야말로 듣기조차 민망하다. 사람은 모두 나약하고 무능하고 비열한 데다가 연약하여 흑암 세력을 혐오스러워하지 않고 빛과 진리를 사랑스러워하지 않으며 있는 힘껏 몰아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는가?>에서 발췌

7.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 훗날의 처소나 일시적인 누림을 위한 것이다. 어떤 책망도 거치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천당에 가기 위한 것이고 상을 받기 위한 것이지, 온전케 되기 위한 것이나 혹은 피조물의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신의 직책을 이행하거나 자신의 본분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사람이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것은 본래 천경지의이고 본래 사람의 천직인데도 말이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는 각기 다르지만 그 목적과 속셈은 다 유사하다. 그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놓고 말하면, 숭배하는 대상도 대체적으로 다 엇비슷하다. 수천 년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신도들이 죽었는지 모르고, 또 얼마나 많은 신도들이 죽었다가 부활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더욱이 1, 2천 명도 아니지만, 그들 대다수가 추구하는 것은 다 자신의 앞날을 위한 것이거나 혹은 이후의 아름다운 소망을 위한 것일 뿐, 그리스도를 위해 충성을 다한 사람은 오히려 얼마 되지 않는다. 적지 않은 경건한 신도들은 여전히 자신의 올무에서 죽어 가며, 승리한 사람은 더욱 보잘것없어 언급할 가치도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8.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에게 적합한 처소와 온갖 은혜를 받기를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람의 종이 되게 하기를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사람과 평화롭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어느 때든 충돌이 발생하지 않게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사람의 모든 요구를 승낙해 줄 것을 요구하는데, 사람이 구한 대로 하나님이 베풀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성경에서 본 “너희가 구하는 것이라면 내가 다 들어주리라”라는 이 말씀과 같다. 하나님께 사람을 심판하지도 훈계하지도 말라고 요구하고, 하나님이 언제나 인자한 구주 예수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사람과 좋은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믿는다. 즉,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요구할지라도 사람이 거역하든 아니면 순종하든, 하나님은 계속 사람에게 베풀어 주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빚을 독촉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아무런 반항도 없이 사람에게 빚을 갚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배로 갚아야 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뭘 얻든 얻지 못하든 다만 사람의 지배대로 해야지 사람을 임의대로 지배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오랫동안 감추었던 자신의 그 지혜와 공의 성품을 마음대로 ‘사사로이’ 사람에게 나타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되고, 하나님은 오로지 영원토록 사람의 죄를 사해 주어야지 싫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 “하나님이 온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섬기게 함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을 섬기려 하고 사람의 종이 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에게 시키기만 하면 되고 하나님은 오로지 순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너희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발췌

9.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 자신의 병을 고침받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다만 나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나의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인 부를 얻어 내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금생에서 무사히 지내고 내세에서도 별고 없기를 구하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당의 복을 얻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잠시 평안하기 위한 것이지 내세에 무엇을 얻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를 쏟았을 때,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사람에게 지옥의 고통을 주고 천당의 복을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분한 나머지 화를 내었다. 사람이 나에게 병을 고쳐 달라고 했을 때, 내가 오히려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혐오했더니, 사람은 나를 멀리 떠나 더러운 사술을 행하는 술객의 술법을 찾아다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시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모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까닭은 나의 은혜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고, 나를 믿어서 얻는 좋은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서 발췌

10.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실질은 종교적인 신앙이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은 로봇처럼 하나님을 따를 줄만 알고,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참되게 사모하는 정이나 애모(愛慕)의 정이 생겨나지 못하며, 단지 아무 말 없이 하나님을 따를 뿐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주 많으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아주 적다. 단지 재난이 닥치는 것이 두려워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높고 크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탄’할 뿐이다. 사람의 경외와 감탄 중에는 사랑이나 참된 사모가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사람은 모두 체험하는 중에서 진리의 지엽적인 부분을 찾거나 혹은 중요하지도 않은 비밀들을 좀 찾는다. 더 많은 사람들은 따르기만 할 뿐이고, 복받기 위해 기회를 틈타 한몫 챙기려 할 뿐이지, 진리를 찾고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생애는 전혀 의의가 없고 가치도 없으며, 모두가 자신의 타산과 자신의 추구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복받기 위해서 믿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제멋대로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전혀 하나님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진실한 믿음에도 이르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게 된다>에서 발췌

11.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이나 환난이 조금도 없고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네가 늘 가치 없는 그런 것들만 추구하면서 오히려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고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 앞에 놓는데, 너 같은 사람은 너무나 가치 없다! 네가 돼지처럼 살아간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짐승이 아닌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은 모두 산송장이 아닌가? 너희들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하였는가? 너희들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그래 적은가? 너희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공급한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너는 왜 얻지 못했는가? 너에게 또 무슨 불평이 있는가?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체를 너무나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닌가? 너의 생각이 너무나 사치스러운 탓이 아닌가? 네가 너무나 우둔한 탓이 아닌가? 네가 이 복을 얻지 못하였으면서도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하겠는가? 너는 하나님을 믿은 후 평안 얻기를 추구하는데,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가문에 시집가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일 년 내내 농사하기에 날씨가 좋은 이런 것만 바란다. 너는 사는 것이 편안하여 집에 일이 생기지 않고, 바람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고, 홍수가 나도 너의 집 곡식은 잠기지 않고, 재난은 다 너에게 미치지 않고,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추구한다. 너같이 못난 놈은 무턱대고 육체만 추구하는데, 네가 말해 보아라. 너에게 마음이 있는가, 영이 있는가? 너는 짐승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참 도를 값없이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닌가?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모르고 날마다 실컷 배불리 먹고는 잠만 잔다. 참 도를 베풀어 주었어도 네가 얻지 못하고 두 손이 텅 비어 있는데, 너는 돼지와 같은 그런 삶이 계속되길 바라는가? 그런 사람이 살아 있어도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삶이 비열하고 저속하며, 더러움과 음란 속에서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조금도 없는데,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이 아닌가? 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는가? 그렇게 체험해 나가면 여전히 아무런 소득도 없는 것이 아닌가? 참 도를 베풀어 주었는데, 최종에 네가 얻을 수 있는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12. 평소에 피하기 어려운 가정의 변고(아이가 병에 걸리고, 남편이 입원하고, 농작물 생산이 감소되고, 가족이 핍박하는 등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발생하는 이런 일들도 네가 감당할 수 없어 이런 일이 닥치면 언제나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또한 많은 경우에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이 하는 말씀이 다 너를 속이는 것이라고 원망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다 너를 조롱하는 것이라고 원망하는데, 이런 것은 다 너희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 너는 그런 일들이 너희들 가운데서 아직도 적게 발생했다고 여기느냐? 너희는 온종일 그런 일에만 빠져 살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을지는 아예 생각조차도 없다. 너희의 진실한 분량이 너무 작아 그야말로 병아리만큼도 되지 않는다. 남편이 장사하다가 손해를 보아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환경이 닥쳐 하나님의 보호가 없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며, 심지어 집의 병아리가 죽고 외양간의 소가 병이 들어도 원망하고, 아들이 결혼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 돈이 없어도 원망하며, 사역자가 너의 집에서 밥을 두 끼 더 먹었는데 교회에서 돈을 주거나 채소를 보내 주는 사람이 없어도 원망한다. 너의 뱃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은 다 원망이다. 때로는 그런 것 때문에 예배도 드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도 먹고 마시지 않는데, 얼마나 오래 소극적이 될지 모른다. 지금 임하는 그런 일들은 전혀 너의 앞날과 운명에 관련되지 않는다. 설사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일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지금 그런 일들의 책임을 다 하나님께 떠맡기고 하나님이 너를 도태시킨다고 억지를 부린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도대체 어떠하냐? 정말 목숨을 바쳤느냐? 만일 너희에게 욥과 같은 시련을 준다면 오늘 따르고 있는 너희 이 사람들은 아무도 굳게 서지 못하고 다 넘어질 것이다. 너희는 베드로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오늘 너희의 재산을 절반 빼앗아 간다면 너희는 감히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있고, 너희의 아들딸을 빼앗아 간다면 길거리에 주저앉아 욕설을 퍼부을 것이다. 얼마 안 되는 너의 생활 방도마저도 끊어 버린다면 너는 ‘하나님’에게 그 책임을 물을 것이고, 나에게 그 당시에 왜 그렇게 많은 말로 겁주었느냐고 물을 것인데, 그때가 되면 너희는 무슨 짓이나 다 저지를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3)>에서 발췌

13.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르면서 오직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난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경영을 언급하기만 하면, 침묵을 지키고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무미건조한’ 문제는 안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을 자라게 할 수 없고, 어떤 유익한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설령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말을 들었을지라도, 그것을 건성으로 대할 뿐 보배로 받아들이지 않고, 생명의 일부분으로는 더욱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한데, 그것은 단 하나의 목표, 즉 복을 받는 것이다. 그것 외에 그들은 자신의 목표와 전혀 상관없는 일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는 것은 가장 정당한 목적이고, 또한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가치라고 여긴다. 만약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현 상태이다. 그들의 목적과 속마음은 듣기에는 아주 정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동시에 다 헌신하고 봉헌하고 본분을 하고 있으며, 또한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심지어 오랜 세월 밖에서 동분서주하며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종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향을 바꾸고, 자신의 인생관을 바꾸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추구 방향도 바꾸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이 얼마나 멀든, 도중에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흔들리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뛰어다닌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렇게 계속 바칠 수 있게 하였을까? 그들의 양심인가?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인가?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려고 하는 그들의 의지인가?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고도 보수를 바라지 않는 그들의 믿음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는 그들의 충성심인가? 아니면 자신의 지나친 요구가 전혀 없는 그들의 봉헌 정신인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심혈과 대가를 바칠 수 있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바쳤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잠시 논하지 말자. 하지만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해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그 속에 사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이익을 제외하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우리는 사람이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단지 적나라한 이익 관계로,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로 대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일 뿐이다. 피고용인이 수고하는 것은 다만 고용인이 주는 삯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이익 관계에는 혈육 같은 친밀한 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주고 받는 사랑은 없고 베풀어 주고 불쌍히 여기는 것만 있으며,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으면서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사이는 없고 영원히 넘어갈 수 없는 깊은 골만 있을 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에서 발췌

14. 인류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가장 슬픈 일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자신의 경영을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경영을 본체만체하는 것이며, 가장 크게 실패한 일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하기를 추구하면서 그와 동시에 자신이 바라는 처소의 꿈을 만들어 가고 있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과 가장 좋은 처소를 얻을 수 있겠는지를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사람이 모두 자신이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누가 또 더 이상 자신을 위해 무엇을 타산하지 않도록 자신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그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그의 경영을 완성하는 사람과 그에게 순복하기 위해, 그의 경영 사역에 온 몸과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지, 날마다 그에게 두 손을 내밀어 구걸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그를 위해 좀 헌신하고는 그에게 빚을 받아 내려고 기다리는 사람을 원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봉헌을 조금 하고는 그것을 자격으로 삼는 그런 사람들을 증오하고, 그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에 올라가 복받는 일에 대해서만 말하기 좋아하는 그런 냉혈 인류를 증오하며,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이 기회를 틈타 사리사욕을 채우는 그런 사람들은 더욱 증오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에서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단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역사하는 기회를 빌어 복을 받을 수 있겠는지에만 관심을 가지며,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전심으로 자신의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에서 발췌

15. 생명 체험 중에, 사람은 늘 ‘난 하나님을 위해 가정과 직업을 버렸는데, 하나님은 내게 뭘 주셨지? 내가 이 기간에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 세어 보고 점검해 보아야지. 내가 그동안 헌신도 많이 했고, 수고도 많이 했고, 고난도 많이 받았는데, 하나님은 그런 표현에 따라 어떤 약속을 주지 않으실까? 하나님은 내 선행을 기념하실까? 내 결말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복을 받을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한다. 사람마다 마음속으로 수시로 항상 이렇게 따져 보며, 속셈과 야심을 품고 거래를 하면서 하나님에게 요구한다. 즉,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과 따지고, 또한 끊임없이 자신의 결말을 놓고 ‘도리를 따져 가면서’ 하나님에게서 진술을 받아 내려고 하고, 하나님이 사람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지를 보려고 한다. 사람 편에서는 하나님을 추구하고 있음에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시종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며, 심지어 점점 압박하기까지 하는데, 그 욕심은 밑도 끝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동시에 또 하나님에게 따지고 든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련이 오거나 환경이 임하면 늘 연약해지고 소극적이 되고 나태해지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부터 하나님을 보물단지, 만능 상자로 여기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최대 채권자로 여기며, 하나님의 손에 있는 축복과 약속을 요구하는 것은 사람의 타고난 권리와 직책이고, 하나님이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고 사람에게 공급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땅한 책임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각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에 대해 가장 기본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자, 또한 하나님을 믿는 각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해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 실질에서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까지를 놓고 봤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과 관련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과 연관시킬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경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해야 한다는 것조차도 모른다. 사람들의 이런 정형을 놓고 말하면, 사람의 실질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 실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의 마음은 악랄하고 음험하고 간사하며,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지 않고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게다가 비열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꽁꽁 봉해져 있고 하나님에게 전혀 맡겨지지 않아,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고 사람에게서 경배를 받지도 못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16. 처소를 언급할 때마다 너희는 다 매우 진지하게 대하고 있고, 게다가 너희 각 사람은 처소에 관한 일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큰절을 몇 번 해서라도 처소를 얻고 싶어 하는데, 나는 너희들의 절박한 심리를 알고 있다. 이런 것들은 말이 필요 없다. 너희는 단지 자신의 육체가 재난 속에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고 더욱이 자신의 앞날이 영구한 징벌 속에 떨어져 있기를 원치 않을 뿐이며, 좀 더 자유롭게 살고 더 안일하게 살려고 할 뿐이다. 그러므로 처소를 언급하면 너희는 특별히 솔깃해하는데, 자칫 실수로 자신이 하나님께 득죄하여 상응하는 보응을 받게 될까 봐 매우 두려워한다. 게다가 너희는 자신의 처소를 위해서라면 굽신거림도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처소를 위해 너희 가운데 한때는 능글맞던 자들도 갑자기 매우 성의 있고 매우 유순해지기 시작했는데, 성의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소름 끼치게 한다. 어쨌든, 너희의 마음은 다 진솔한 것인데, 원망이든, 기만이든, 충심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너희는 나에게 너희 마음속의 비밀을 조금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결론적으로 너희는 모두 나에게 너희의 가장 깊은 곳의 본질적인 것들을 매우 솔직히 ‘고백’하였으며, 물론 나 또한 지금까지 이런 것들을 회피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흔히 있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처소를 논하다>에서 발췌

17. 너희는 마지막 처소를 위해서는 불바다에 뛰어들지라도,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는 머리 카락 하나도 잃으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너무나 교조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내가 하는 모든 것을 너무 충성심 없이 대하는 것이다. 너희는 아마 이 말을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간단한 해석을 하겠다.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와 생명이 아니고 사람됨의 원칙이 아니고 더욱이 내가 정성을 쏟아 부은 사역도 아니라 너희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금전, 지위, 가정, 혼인 등등)이다. 너희는 나의 말이나 역사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두 글자로 너희의 믿음을 요약하는데, 그것은 바로 ‘건성’이다. 너희는 너희가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이룬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일에서는 모든 것을 내거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충성하고, 상대적으로 진지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나는 지극정성의 마음이 없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믿어도 실패한 사람이라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너희들 가운데 실패한 사람이 많지 않으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처소를 논하다>에서 발췌

18. 망망한 세상에서 어느 누가 직접 나의 검열을 받아들였더냐? 어느 누가 직접 내 영의 말을 들었더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흑암 속에서 모색하고 찾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환난 속에서 간구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앙망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매임 속에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갈지 몰라 하고, 행복 속에서 나를 배반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은망덕하고, 사탄의 궤계에 충성하고 있는지 모른다. 너희들 가운데 누가 욥이더냐? 누가 베드로이더냐? 내가 왜 여러 번이나 욥을 언급하고 베드로를 언급하겠느냐? 너희에 대한 나의 희망을 너희는 헤아린 적이 있더냐? 너희는 이것을 많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8편 말씀>에서 발췌

19. 사람은 모두 고통 속에서는 나를 찾고 시련 속에서는 나를 앙망하며, 평안할 때는 나를 누리다가 위험한 상황에서는 나를 부인하며, 바쁠 때는 나를 잊고 한가할 때는 나를 건성으로 대한다. 하지만 아무도 일생 동안 나를 사랑한 적은 없다. 나는 사람이 내 앞에서 진지하기를 바란다. 나는 사람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그저 모든 사람들이 나를 기만하지 않고 중시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사람의 진심을 얻을 수 있게 말이다. 모든 사람 가운데 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관통되어 있고, 나의 심혈과 대가가 관통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 가운데 또 사람의 모든 행위의 ‘진상’이 관통되어 있고, 나에 대한 사람의 기만이 관통되어 있다. 마치 사람은 모태에서 ‘기만의 성분’을 갖고 나온 듯하고, 독특한 ‘사기술’을 타고난 듯하다. 게다가 지금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 아무도 그 ‘사기술’의 근원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간파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도 모르는 기만 속에서 살고 있는데, 나를 속이려고 해서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배’라며 자신을 용서하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나를 속이는 근원이 아니냐? 이것이 바로 사람의 궤계가 아니냐? 나는 사람의 감언이설에 우왕좌왕한 적이 없다. 그것은 내가 사람의 본질을 일찍이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핏속에 불결한 성분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모르고, 사람의 뼛속에 사탄의 독소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모른다. 세월을 거듭하며 사람은 그것에 익숙해져 사탄의 괴롭힘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건강 생존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1편 말씀>에서 발췌

20. 나는 내 나라에서 왕이 되었지만, 사람은 나를 내 나라의 군왕으로 대하지 않고 ‘하늘에서 떨어진 구세주’로 대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내가 베풀어 주기를 바라면서도 나를 알기는 추구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와 거지처럼 ‘구걸’하는지 모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루’를 벌리고 내게 생존을 위한 먹거리를 달라고 하는지 모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탐욕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굶주린 늑대처럼 나를 한입에 삼켜 배불리려고 망상하는지 모른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오로 인해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내게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거나 나의 형벌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원하는지 모른다. 내가 음성을 발할 때, 사람의 각종 추한 모습은 천태만상이어서 빛 속에서 원형을 드러냈다. 빛 비춤 속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으므로 서둘러 내 앞에 엎드려 죄를 자백한다. 사람의 ‘진솔’로 인해 나는 다시 한 번 인류를 구원 열차에 끌어올렸다. 그때부터 사람은 감격하여 내게 연모의 눈길을 보냈지만 진심으로 내게 의탁할 생각은 없었는데, 마음을 완전히 내게 주지 않았다. 사람은 다만 나를 ‘칭찬’할 뿐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사람의 뜻이 아직 내게로 돌아서지 않았고, 몸은 내 앞에 있으나 마음은 내 뒤에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2편 말씀>에서 발췌

21. 사람의 상상 속에 나는 ‘만물박사’이고, 구하면 반드시 들어주는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오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려는 것 때문이지, 내 앞에서 나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병세가 위중할 때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내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환난 속에 있을 때는 역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내게 그 고충을 털어놓는다. 반대로 안일 속에서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평안과 행복 속에서 자신과 더불어 즐기자며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정’에 행복이 가득할 때, 사람은 일찍이 나를 한쪽에 제쳐 두거나 문전박대해 놓고는 즐겁게 가족의 행복을 누린다. 사람은 마음이 너무나 옹졸하여 이토록 자비롭고 긍휼이 많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하나님인 나마저도 수용하지 못한다. 사람의 즐거운 웃음 속에서, 나는 얼마나 많이 사람에게 버림받았는지 모르고, 사람이 넘어졌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이 사람의 지팡이로 쓰여졌는지 모르며, 사람이 병환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이 사람의 ‘의원’으로 불려 갔는지 모른다. 얼마나 잔인한 인류인가! 그야말로 이지가 없고 도의를 저버렸으며, 사람에게서 사람이 갖추어야 할 ‘인정’마저 조금도 볼 수 없었는데, 사람 냄새가 거의 없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4편 말씀>에서 발췌

22. 인성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전혀 있을 수 없다. 이 사람들은 평안한 환경에 있거나 얻게 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다가도 일단 그들의 욕망이 파괴되거나 최종에 물거품이 될 때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에서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변하여 아무런 까닭 없이 놀랍게도 어제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여긴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악마들을 만일 경계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어찌 마음의 우환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23. 사람은 지금도 육체에 속하는 것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데, 육체적인 누림, 세상, 돈과 재물 그리고 패괴된 성정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다 건성으로 추구하고 있다. 사실, 그 사람들은 마음속에 아예 하나님이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이 한 모든 것에 대해서도 꿰뚫어 보지 못하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더더욱 믿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육체적인 것이 너무 많고 너무 심하게 패괴되었으며, 진리가 전혀 없고 더욱이 하나님이 성육신하리라고는 믿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는 사람, 즉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 볼 수 있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은 모두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고,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인성과 이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갖추었다고 논할 여지도 없다.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은 미덥지 않고,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이야말로 가장 미더우며, 사람에게 가장 상쾌하고 날아갈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자극적인 것이지 현실적인 진리가 아니고, 인생의 참뜻도 아니며, 하나님의 뜻은 더욱 아니다. 그들의 욕망을 가장 잘 이루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이 신앙하고 추구하는 것이 된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일 뿐, 진리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은 아주 자신만만해하면서 하늘의 하나님이 그들과 같은 ‘좋은 사람들’을 멸한다고는 믿지 않으며, 도리어 자신들은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모두 남겨 둘 뿐만 아니라 큰 상까지 줄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을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일단 자신들의 욕망이 물거품이 되면, 그들은 곧바로 하나님에게 반격하거나 노발대발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소인배들’이지, 진리를 추구하는 ‘정인군자’가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발췌

24. 사람은 늘 세상을 좇는다. 소망이나 앞날, 사치스러운 요구가 너무나 많고, 늘 육체를 생각하고 육체를 위해 타산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도를 찾고 구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지만, 사람은 마음을 다 사탄에게 빼앗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일심으로 사탄을 위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증거를 잃게 되었는데, 곧 하나님의 영광을 잃게 된 것이다. 인류를 정복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영광을 빼앗아 오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설사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좀 있다고 하더라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사람은 앞날에 대해서는 아주 염려하지만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중요시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거역하기도 하고, 대적하기도 하고, 뒤에서 논단하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지금은 일단 이런 사람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이 부류의 패역한 자식들에 대해 어떤 처리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나중에 흑암 속에서 살면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25. 사람은 더럽기 때문에 나의 영광을 볼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수천 년 동안 나는 사람에게 공개되지 않았고 숨겨져 있었다. 그런 원인으로 나의 영광을 사람에게 나타낸 적이 없었고, 사람은 계속 죄의 심연 속에 타락되어 있었다. 내가 사람의 불의를 용서해 준 적도 있었지만, 사람은 모두 스스로 보호할 줄 모르고, 늘 ‘죄’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 놓아 ‘죄’가 자신을 해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것이 그래 사람이 자신을 존중할 줄 모르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란 말이냐? 사람 사이에 진실한 사랑이 있느냐? 사람의 충성은 몇 냥이나 되겠느냐? 소위 말하는 사람의 진실 속에는 가짜가 섞여 있지 않느냐? 사람의 충성은 다 혼합물이 아니냐?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순수한 사랑인데, 사람은 모두 나를 알지 못하고 있다. 비록 나를 알기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참되고 간절한 마음은 나에게 맡기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9편 말씀>에서 발췌

26. 사람은 모두 형벌받을까 봐 나를 ‘사랑’하는 것이지, ‘천성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중에 누가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느냐? 누가 나를 자기의 심장처럼 대했느냐? 그러므로 나는 인간 세상에 대한 격언을 하나 총결해 내었다. “사람들 중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38편 말씀>에서 발췌

27. 나는 큰소리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사람을 얕잡아 보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사람을 영원까지 사랑할 수 있고, 또한 사람을 영원까지 미워할 수 있는데, 게다가 이런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의지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이 의지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나에 대해 언제나 차가웠다 더웠다 하고, 언제나 내가 말할 때에야 나를 조금 주의한다. 내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을 때, 사람은 일찌감치 대천세계의 파도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러므로 나는 또 한 가지 격언을 총결해 내었다. “사람은 의지력이 부족해 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40편 말씀>에서 발췌

28. 사람이 왜 분수를 지키지 않는지, 왜 자신의 분량이 얼마만한지를 모르는지 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모르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분량이 몇 그램인지 아니면 몇 냥인지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여전히 나를 속이고 있다. 마치 내 사역은 전부 헛된 것 같고, 마치 내 말은 큰 산 골짜기에서 메아리치고 있을 뿐 아무도 내가 말하고 음성을 발하는 근원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기초로 하여 세 번째 격언을 총결해 냈다. “사람은 나를 본 적이 없기에 결코 나를 알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42편 말씀>에서 발췌

29. 그때 나는 사람의 마음속에 나를 미워하는 요소가 또 한 번 더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사람이 또 원망을 하기 시작하면서 항상 땅을 원망하고 하늘을 저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말 속에서 나는 사람이 자신을 저주하는 것을 발견한 적은 없다.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빌어 인생의 의의를 총결하였는데, 사람은 일생에서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한 탓에 비통하고 공허하며, 사람은 일생에서 나를 증오한 탓에 멸망을 자초한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46편 말씀>에서 발췌

30. 사람은 모두 내 말로 인해 크게 부르짖는데, 사람의 부르짖음에는 항상 나의 몰인정을 원망하고 있다. 사람은 사람을 향한 나의 진실한 ‘사랑’을 찾는 듯하지만, 사람이 어찌 나의 엄한 말에서 나의 사랑을 찾을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람은 늘 나의 말로 인해 실망한다. 마치 나의 말을 보면 ‘죽음의 신’을 보기라도 한 듯하는데, 그러다 보니 다 공포에 떨고 있다. 나 또한 이로 인해 즐겁지 않다. 사망 가운데의 육체 속에 사는 사람들이 왜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설마 사람과 죽음은 철천지원수란 말이냐? 왜 사람은 늘 죽음이 두려워 슬퍼하는 것이냐? 설마 사람이 일생의 ‘비범’한 체험에서 겪은 사망이 아직도 적단 말이냐? 사람은 왜 항상 나를 원망하는 말을 하느냐? 그러므로 나는 네 번째 인생 격언을 총결해냈는데, ‘사람의 순복 요소가 너무도 적다 보니 사람은 늘 나를 미워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45편 말씀>에서 발췌

31. 사람은 육신에 거하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육체에서 살고 있는 자신도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사람은 계속 나를 기만하고 계속 나를 나그네로 여기면서 얼마나 많이 ‘문밖’에 세워 두었는지 모르고, 내 앞에 서 있으면서도 얼마나 많이 나를 외면하였는지 모른다. 또 얼마나 많이 사람들 속에서 나를 저버리고 마귀 앞에서 나를 부인하였는지 모르며, 얼마나 많이 언쟁으로 나를 공격하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연약한 점’을 기억하지 않고 사람의 패역에 앙갚음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의 병에 맞는 양약을 주어 불치병을 고쳐 주고 건강을 회복시켜 나를 알게 할 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2편 말씀>에서 발췌

32. 오늘의 시간 속에서 사람은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 마음속에 전혀 나의 자리가 없는데, 설마 이후의 고난의 날에는 진심을 내놓고 나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이냐? 사람의 의는 여전히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무형지물(無形之物)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그것은 사람에게서 ‘마음’이 제일 귀하기 때문이다. 설마 내가 한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꿔 올 자격이 없단 말이냐? 왜 사람은 나에게 주지 않을까? 왜 사람은 늘 자기의 마음을 품에 꼭 껴안고 포기하려 하지 않을까? 설마 사람의 마음이 사람 일생의 평안과 기쁨을 보장할 수 있단 말이냐? 왜 사람은 내가 사람에게 요구할 때 언제나 땅에서 흙을 한 움큼 쥐어 내 몸에 뿌릴까? 이것은 사람의 기만술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36편 말씀>에서 발췌

33. 나는 영으로 사람을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내가 사람을 다른 세계로 데려갈까 심히 두려워하면서 마치 내게 찔려 상처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멀리 서서 나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나는 사람의 영 안에서 두드리며 얼마나 많이 물어보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전혀 감각이 없었고, 내가 사람의 집에 들어간 틈을 타 모든 물건을 전부 몰수해 가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 나를 문전박대하였다. 내가 마주한 것은 그저 꽉 닫혀 있는 차디찬 ‘대문’이었다. 사람이 낙담하였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이 구해 주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소생한 후에 즉시 나를 떠나갔는데, 나의 자비에 감동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나에게 경계의 뜻이 담긴 눈빛을 보내고 있어 나는 사람의 마음을 녹여 줄 수가 없었다. 사람은 모두 감정이 없는 냉혈 동물이다. 내 품이 따뜻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깊은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내가 그렇게 ‘아껴’ 주었는데도 사람은 산속의 야인처럼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다 나를 가까이하기 싫어한다. 차라리 산에서 살며 산짐승의 위협을 견뎌 낼지언정 내 앞에 와서 내게 의지하기는 싫어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0편 말씀>에서 발췌

34. 나는 너희 마음속에 품고 있는 궤사함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너희 대부분은 다 호기심 때문에 나를 따르고 있고 또 공허함 때문에 나에게 찾고 구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의 세 번째 소망 즉, 평안하고 행복한 삶이 산산이 부서질 때, 따라서 너희의 호기심도 사라졌다. 너희 각 사람이 마음에 품은 궤사함은 너희의 언행으로 다 드러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너희는 나에 대해 호기심만 가지고 있을 뿐 결코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혀를 경계하지도 않고 더욱이 자신의 행위를 단속하지도 않는데, 너희의 믿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진실한 것이냐? 너희는 단지 내 말로 답답함을 풀고, 내 말을 자기 삶 속의 남아 있는 빈자리를 메우는 데에 쓰고 있을 뿐, 실행에 옮긴 자가 누가 있느냐? 진실로 믿은 자가 누가 있느냐? 너희는 다 말끝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외쳐 대지만, 너희가 마음으로 부르짖는 하나님이 어디 나와 맞는 하나님이냐? 너희가 부르짖을 때는 이렇게 하면서, 행할 때는 왜 그렇게 하는 것이냐? 설마 이것이 바로 너희가 내게 보답하겠다는 사랑이란 말이냐? 너희의 혀로 봉헌한 것은 적지 않은데,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선행’은 어디 있느냐? 너희의 말이 내 귀에 상달되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찌 너희를 이렇게 증오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에서 발췌

35. 너희의 믿음은 아주 훌륭하여 그 무슨 나의 사역을 위해 자기의 일생을 바치고 간뇌도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하지만, 너희의 성정은 오히려 별로 변화되지 않았다. 말은 오만하게 잘하지만 너희의 실제 행동은 오히려 꼴불견이다. 마치 사람의 입술과 혀는 하늘에 있지만 사람의 두 다리는 땅에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사람의 언행과 사람의 명성은 여전히 볼품없다. 너희의 명성은 망가졌고, 너희의 행동거지는 천하며, 너희의 말투는 상스럽고, 너희의 생활은 비열하며, 심지어 너희에게 갖추어진 인성마저 저속하다. 사람 됨됨이는 너무나 도량이 좁아 언제나 일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고, 자기의 명예나 지위를 위해 다투는데, 심지어 지옥에 떨어지고 불못에 들어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너희의 오늘날 언행은 내가 너희를 정죄하기에 충분하고, 나의 사역에 대한 너희의 태도는 너희를 불의한 자라고 정하기에 충분하며, 너희의 모든 성정은 너희를 가증한 것이 가득 찬 더러운 영혼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하고, 너희가 표현한 것과 유로(역주: 흘러나옴)한 것은 너희를 더러운 귀신의 피로 배 불린 사람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에서 발췌

36. 나는 너희들 가운데서 몇 해를 다녔고, 또한 너희들 가운데서 오랫동안 생활하였으며, 너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너희의 비열한 행위가 내 눈앞에서 얼마나 많이 빠져 나갔느냐? 너희의 그 폐부지언(肺腑之言)이 나의 귓가에 계속 메아리치고 너희의 심지가 나의 제단 위에 무수히 많이, 심지어 헤아릴 수 없이 진설되었지만, 너희의 봉헌과 헌신은 전혀 없고 너희의 진심은 나의 제단 위에 아예 조금도 없다. 나를 믿은 너희의 성과는 어디에 있느냐? 너희는 나에게서 무진장한 은혜를 받았고, 무진장한 하늘의 심오한 비밀을 보았다. 나는 하늘의 불꽃까지 너희에게 나타내 보였어도 차마 너희를 불사를 수 없었다. 그러나 너희가 나에게 돌려준 것은 얼마나 되느냐? 너희가 기꺼이 나에게 준 것은 얼마나 되느냐? 내가 베풀어 준 식물(食物)을 가지고 도로 나에게 바치면서도 너 자신이 수고하여 흘린 땀으로 바꾸어 온 것이라 말하고 너 자신의 전부를 나에게 바친 것이라고 말하는데, 네가 어찌 나에게 ‘공헌’한 것이 모두 나의 제단 위에서 도둑질해 간 것임을 모른단 말이냐? 오늘 또 나에게 바치는데, 이것은 나를 기만하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 내가 누리는 것은 모두 내 제단 위의 헌물이지 네가 부지런한 노동으로 바꾸어 온 것을 내게 바친 것이 아님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감히 이렇게 나를 기만하는데, 내가 어찌 너희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내가 어찌 계속 인내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에서 발췌

37. 나는 날마다 우주 위에 서서 살펴보고 또 비미은장하여 내 처소에서 인생을 겪으며 사람의 모든 행위를 자세히 관찰하였는데, 참으로 나를 위해 내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나를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내 앞에서 심지(心志)를 세워 본분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나를 마음속에 거하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자신의 생명을 중히 여기는 것처럼 나를 중히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실제 속에서 내 신성(神性)의 모든 소시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실제의 하나님 자신과 접촉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4편 말씀>에서 발췌

38. 나는 얼마나 많이 말했는지 모르고, 나는 더욱 헤아릴 수 없이 사역을 많이 하였다. 나는 날마다 각 사람이 자신의 원래 본성에 따라, 본성이 발전함에 따라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 정상 궤도는 바로 내가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기 위해 설치해 놓은 것이다. 나는 일찍이 각 부류의 사람을 서로 다른 환경 속에 배치해 놓았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원래 속성을 연기하고 있는데, 그들을 속박하는 사람이 없고 그들을 유혹하는 사람도 없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자유롭고, 또한 매우 자연스럽게 유로(역주: 흘러나옴)하지만, 유독 그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말이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억지로 나의 말을 ‘읽어 보기’는 하지만 전혀 실행하지 않는데, 다만 ‘죽지 않는’ 그런 결말이나 얻기 위해 그럭저럭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내 말의 인도와 공급이 없는 날들을 견디기 어려워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항상 나의 말을 받들고 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인생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고, 인류의 처소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사람됨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게 되었다. 인류는 나의 말 앞에서 이와 같은 정형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길 뿐, 사람에게 나의 말을 생존의 토대로 하라고 강요하는 그 어떤 사역도 하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에서 발췌

39. 사람은 모두 나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게 자신의 목숨을 교환물로 내놓지는 않고, 자기 수중의 폐품을 내 앞에 가져와 이리저리 흔들며 나를 만족게 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나는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사람에게 요구할 뿐이다. 나는 사람이 기여하는 것을 기뻐하고, 사람이 토색하는 것을 증오한다. 사람에게는 모두 탐하는 마음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귀신에게 홀린 듯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나에게 마음을 바치지 못한다. 내가 말할 때, 사람들은 모두 온 정신을 집중하여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발하던 음성을 멈출 때, 사람은 또 자신의 ‘경영’을 시작하면서 내 말은 조금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마치 내 말은 그의 ‘경영’의 부속물인 듯하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을 느슨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 사람에게 인내하고 관용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관용으로 인해 사람은 모두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스스로 자신을 알지 못하고 반성하지 못하며, 나의 인내로 인해 나를 기만하기만 한다. 사람들 중에 아무도 나를 진심으로 헤아린 적이 없고, 아무도 나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아 귀하게 여긴 적이 없으며, 그저 한가할 때에 나를 조금 응대할 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9편 말씀>에서 발췌

40.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일상생활 속의 도구 같기에 전혀 중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실행해 내지 못하고, 모두가 진리를 알지만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천박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그 정도의 결점은 하나님이 한동안 혐오하기에도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언급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관념에는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있는데, 어찌 우리가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하실까? 이것은 우리를 억울하게 하시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한번 해부하자 사람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허리를 굽신거리기도 했는데, 마치 발바리처럼 주인의 말에 아부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은 모두 자격이 없음을 느끼고 눈물 콧물을 짜면서 개과천선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은 한동안 지나자 곧바로 양의 성질을 벗어 버리고 늑대의 성질로 바꾸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 놓고 항상 자기의 일은 첫 순위이고 하나님의 일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그런 행실 때문에 항상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한다. 사실이 임할 때는 다른 사람 편이 되는데, 그런 것을 배은망덕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내 집의 밥을 먹으면서도 ‘딴 길로 간다’.”라고 했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한 것은 거짓이 조금도 없이 완전히 사실이고 과장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은 축소시킨 것 같은데,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6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발췌

41.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그저 임시방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돕기 위해 갖추는 것이지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갖추는 것이 아니다. 우린 그런 사람을 ‘공평무사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은 그저 다른 사람을 진리의 꼭두각시로 여기고 자신은 진리의 주인으로 여겨 타인에게 진리를 잘 지키고 소극적이지 말라고 교육하면서 반대로 자신은 지켜 보기만 한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진리의 글귀를 좀 갖추어 다른 사람을 훈계하면서 자신은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이 얼마나 가련하냐! 그의 글귀가 다른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면서도 왜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걸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실제가 없는, 외식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진리의 글귀를 다른 사람에게 공급해 주어 실행하게 하면서 자신은 오히려 전혀 실행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너무도 비열하지 않으냐! 자신도 분명히 하지 못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압적으로 실행하라고 하는데, 이 얼마나 잔인한 수단이냐! 이런 사람은 실제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자상한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아갈 길이 있다>에서 발췌

42.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읽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에서 대표적인 부분을 다 마음에 새기고 귀중한 보물로 여기며, 또한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해 주고,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고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전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드러낸 것에 따라 자신을 비춰 보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숭상과 신임을 사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경영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하나님의 영광을 사취하고 가로채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기회를 이용해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칭찬을 얻으려고 망상한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표면 인식에 젖어 마치 믿음이 증가되고, 고난받으려는 심지(心志)가 견고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심화된 듯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체험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모든 인식과 생각은 다 그들의 일방적인 소망에서 온 상상과 추측임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그 어떤 검증도 이겨 내지 못하고, 그들이 말하는 영적인 것과 분량은 하나님의 시련과 검증을 전혀 이겨 내지 못한다. 그들의 심지는 다만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하고,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그들이 머리로 상상해 낸 성과에 불과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43.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꽤 공을 들인’ 그 사람들은 진실한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 진실한 순복이란 어떤 것인지, 진정한 헤아림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란 어떤 것인지를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이론, 상상, 지식, 은사, 전통과 미신 심지어 사람의 도덕관까지 다 가져다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본과 무기로 삼는데, 심지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토대로도 삼는다. 그와 동시에 또 그들은 그런 자본과 무기를 하나님을 알아가는 비법으로 삼고, 하나님의 검증과 시련,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맞이하고 대응하는 비법으로 삼는다. 최종에 그들이 얻는 것은 여전히 종교 냄새로 가득하고, 봉건 미신으로 가득하고, 전설과 기괴와 신비로 가득한 하나님에 대한 정론이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하늘만 믿고 하느님만 믿는 사람들과 똑같다. 그리고 그들이 인식한 것은 하나님의 실제,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 등등, 진실한 하나님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과 어긋나고, 아무런 관계도 몫도 없으며, 심지어 상반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비록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자양(滋養)’ 아래에 있을지라도,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는 들어설 수 없는데, 그 진정한 원인은 그들이 지금까지 하나님과 알고 지낸 적이 없었고, 지금까지 하나님과 진실로 ‘접한’ 적이 없고 교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잘 알 수 없었고,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따르고 경배할 수도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하나님을 대하는 그들의 그런 관점과 태도로는 그들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영원히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이 결정된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은 그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원수임을 뜻하고, 그들이 영원토록 구원받을 수 없음을 뜻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44. 그러므로 처음부터 양심이 없고 생존할 가치도 없는 그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지켜보다가 과감하게 나의 말을 내버리고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진리와 내게서 온 모든 것을 싫어하기 시작하였고, 더욱이 나의 집에 머물러 있기 싫어하였다. 설사 효력할지라도 그 사람들은 처소를 위해, 징벌을 피하기 위해, 잠시 내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고, 그들의 행위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하여 복을 받으려고 하는 그들의 욕망이 더욱더 커졌고 단번에 영구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심지어 영원한 천당에 들어가려고 하는 욕망이 커졌다. 그들이 그렇게 나의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랄수록, 그들은 진리가 그들에게 장애물과 걸림돌이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할 필요 없이,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일 필요 없이, 더구나 내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렇게 굽신거리며 내 심부름꾼이 될 필요도 없이, 한 걸음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천국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한다. 그 사람들이 내 집에 들어온 것은 진리를 찾고 구하려는 자신의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고, 나의 경영에 협력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다음 시대에 훼멸되지 않는 일원이 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음속으로, 무엇이 진리이고 어떻게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 사람들이 전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자신이 깊이 패괴되었다고 여기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내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종’이 된 원인이다. 그들은 ‘인내심’ 있게 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번거로워하지도 않으며 나의 역사 방식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큰 공을 들이고 어떤 대가를 치렀든, 아무도 그들이 전에 진리를 위해 고난받고 나를 위해 바쳤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내가 옛 시대를 폐하는 그날을 속히 보고 싶어 하고, 더욱이 나의 능력과 권병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조급하게 알고 싶어 하지만, 지금까지도 자신을 변화시키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며, 내가 증오하는 것을 소망하고, 동시에 또 내가 혐오하는 것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이 사악한 세상에서 살면서 지금까지 그것을 증오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그것을 멸해 버릴까 봐 심히 두려워한다. 그들의 모순되는 속셈으로는 내가 혐오하는 이 세상을 좋아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아직 참 도를 떠나지 않았을 때, 훼멸되는 그 재난을 운 좋게 피해 순간적으로 탈바꿈하여 다음 시대의 주인이 되도록, 내가 속히 이 세상을 멸하기를 ‘바란다’. 이런 것은 다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내게서 온 모든 것을 싫어하는 연고이다. 혹시 그들은 복을 잃지 않기 위해 잠시 잠깐 ‘순한 백성’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복받으려는 조급한 심리와 훼멸되어 불못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하는 속마음은 덮어 감출 수 없다. 나의 날이 임박할수록 그들의 욕망은 더욱 강렬해지고, 또한 재난이 커질수록 그들은 더욱 속수무책이 되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나의 기쁨을 얻을 수 있고 자신들이 오랫동안 바라던 복을 잃지 않을지 몰라 한다. 그 사람들은 일단 내 손이 일을 시작하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며 선봉에 나선다. 그들은 내가 보지 못할까 봐 대오의 제일 앞에서만 돌진하려고 하고,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들과 옳다고 여기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모든 행위가 전혀 진리와 무관하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들의 행위가 나의 계획을 파괴하고 방해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비록 그들이 있는 힘을 다할지라도, 그들이 고생하려는 심지와 속마음이 매우 진실할지라도, 그들이 한 모든 것은 다 나와 무관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의 선의적인 행위를 전혀 보지 못하였고, 더욱이 그들이 나의 제단에 무엇이라도 올려놓는 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여러 해 동안 내 앞에서 행한 것들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에서 발췌

45. 너희는 나에게 너희가 오랫동안 내 앞에서 해왔던 행위로 내가 지금까지 얻지 못했던 답을 주었는데, 그 답의 문제는 바로 ‘사람은 진리와 참 하나님 앞에서 도대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이다. 내가 사람에게 기울인 심혈에서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실질이 실증되었지만, 사람이 내 앞에서 한 모든 행위에서는 사람이 진리를 증오하고 나와 적이 되는 실질이 실증되었다. 언제든, 나는 나를 따르고 있는 각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 나를 따르는 각 사람은 내게서 온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내게서 온 ‘건의’를 아예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이것은 내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일이다. 설령 나의 태도가 진실하고 나의 말이 부드럽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고, 더욱이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다. 각 사람은 내가 맡겨 준 사역을 자신의 원래 생각대로 하면서 나의 뜻은 찾지도 묻지도 않고, 더욱이 나의 요구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나를 거역하고 있으면서 또 충심으로 나를 섬기고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고 여기고, 자신들이 실행하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고 여긴다. 나의 진리가 그 사람들에게서는 부인하고 저버리는 것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사람이 입으로는 인정하는 하나님이지만 진리, 길, 생명이 아닌 제3자가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에서 발췌

46. 너희의 충성은 입술에 있고, 너희의 인식은 사유와 관념 속에 있으며, 너희의 수고는 천국의 복을 위한 것이다. 너희의 믿음은 또 어떠한가? 오늘날 너희는 이 마디마디의 진리를 마주하였음에도 여전히 거들떠보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해야 하는지, 어떻게 성령 역사에 진입해야 하는지, 하나님 자신의 역사와 사람의 미혹을 어떻게 분별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하나님의 입으로 발표한 그 어떤 진리든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정죄만 한다. 너의 겸손은 어디에 있는가? 너의 순복은 어디에 있는가? 너의 충성은 어디에 있는가? 진리를 찾고 구하는 너의 태도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적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틀림없이 멸망될 부류이며,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틀림없이 지옥의 자손이고 틀림없이 천사장의 후예이며 틀림없이 영원히 멸망될 부류이다. …이적을 구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창조주의 품속에 안기게 되었다. 하지만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라는 신념을 고집하는 그 사람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예수만 믿으면서 엄한 심판을 발표하고 생명의 참 도를 베푸는 예수는 시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다시 올 때에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교만방자하며 지나치게 자신을 믿는데, 그런 쓰레기 같은 자들이 어찌 예수에게서 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꾸었을 때이다>에서 발췌

47.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하나님에게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부분 사람들을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부분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른 시간이 얼마나 되었든, 그들의 의식과 관점은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었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처세 원칙과 방식을 지키고 있고, 이방인과 같은 생존 법칙과 신념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믿은 적이 없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려고 한 적도 없고,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시인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여가 취미로만 여길 뿐이고, 하나님을 정신적 지주로만 여길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은 알아갈 가치도 없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모든 참된 것은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그들은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고 거들떠보는 것도 귀찮아한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강렬한 음성이 하나 있어 늘 그들에게 ‘하나님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라고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고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입으로만 시인하면서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그 어떤 실제적인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총명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볼까?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으로 여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48.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까닭은, 한 방면은 사람의 패괴 성정 때문이고, 다른 한 방면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 원칙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두 방면이 종합되어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한 역사(歷史)가 형성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49. 하나님의 역사는 늘 새롭기에 항상 규례가 되지 않으며, 또한 끊임없이 서로 다른 정도로 변화와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역사는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성품의 발표이다. 즉, 하나님의 고유한 역사 원칙이면서도 그의 경영을 완성하기 위해 하나님이 역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만일 이렇게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변화될 수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사탄을 패배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그의 역사는 불규칙적인 듯하지만 주기적으로 부단히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은 크게 다르다. 즉, 사람은 이미 익숙해진 낡은 규례와 제도를 고수하고, 더군다나 묵은 것일수록 더욱 입맛에 맞아 한다. 목석같이 아둔한 사람의 그 머리로 어떻게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이렇게 많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와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람은 늘 새로운 하나님을 싫어하면서 단지 케케묵고 거동이 불편하고 백발이 성성한 하나님만 좋아한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의 저마다의 ‘취향’으로 인해 사람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심지어 더 많은 갈등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되었다. 즉, 하나님이 6천년 가까이 새 사역을 한 지금, 이런 갈등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매우 완고해서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행정이 어떤 사람도 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종교 관원들과 ‘그 사모들’은 여전히 낡고 곰팡이가 핀 그 책들과 묵은 발행물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경영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적대적인 갈등이 있고 심지어 중재할 수 없는 정도지만, 하나님은 그런 갈등에 ‘무관심’한데, 마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믿음’과 ‘생각’을 확고히 하면서 전혀 내려놓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비록 사람의 ‘입장’은 확고하나 하나님의 ‘발자취’는 늘 옮겨지고, 늘 환경에 따라 그의 ‘입장’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마지막에 가서 오히려 싸우지 않아도 스스로 패할 대상이며, 하나님은 모든 패장(敗將)의 가장 큰 ‘원수’이고, 또한 모든 패한 인류와 불패한 인류의 ‘챔피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에서 발췌

50. 인류는 모두 하나님을 규정하는 착오를 범하기 쉽고, 모두 옛것을 지키기 좋아하고 규정하기 좋아한다. 분명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도 함부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는데, 사람의 본성은 정말 너무나 교만한 것이다! 사람은 늘 이전의 옛 관념을 지키고 이전의 것을 마음에 두기 좋아하며, 아울러 그런 것을 자본으로 삼아 교만자대하고 제 나름대로 모든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함부로 규정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논단하는 것이 아니냐? 그 밖에, 사람은 전혀 하나님의 새 역사를 알아보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마음대로 규정하는데, 사람은 정말 교만하여 이지조차도 없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하나님이 한 말씀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인데, 교만과 독선으로 가득 찼고 순복은 전혀 없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소유소시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에서 발췌

51. 사람은 일단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의 상징으로 정한다. ‘하나님에게는 사랑이 있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한량없기 때문에 사람이 무엇을 하든, 어떻게 행동하든,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든, 어떻게 거역하든 다 상관없어! 하나님은 사랑이 있기에 사람을 포용해 주시고, 사람을 긍휼히 여겨 주실 거야! 사람의 어리고 무지한 것을 긍휼히 여기고 사람의 패역도 긍휼히 여기실 거야!’ 정말 그러할까? 어떤 사람은 일단 하나님의 인내를 한 번 혹은 몇 번 체험해 보고 나면, 그것을 자신이 하나님을 인식한 자본으로 삼고 하나님이 그 한 번으로 영원히 자신을 인내해 주고 긍휼히 여겨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평생 하나님의 그 인내를 하나님이 자신을 대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관용을 한 번 얻으면 그 한 번으로 하나님은 영원히 관용하기만 한다고 정하고, 게다가 그 관용은 기한도 조건도 없고 심지어 아무런 원칙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그런 태도로 무엇이 초래되었느냐? 너희가 늘 하나님을 규정하게 된 것이다. 일단 조금만 알아도 아주 만족스럽게 여기고 하나님의 전부를 얻었다고 여긴다. 그다음 하나님을 거기에 정해 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데, 일단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하면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어느 날 하나님이 “나는 더 이상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더 이상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지 않는다. 나는 사람에게 더 이상 그 어떤 관용과 인내도 베풀지 않는다. 나는 사람에게 극도로 혐오감을 가지고 반감을 가진다.”라고 하면, 사람은 마음속으로 이런 표현에 저항한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당신은 더 이상 저의 하나님이 아니고, 더 이상 제가 따르려고 했던 하나님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저의 하나님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당신을 계속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저에게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지 않고 관용을 베풀어 주시지 않는다면 당신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기한 없이 저를 관용해 주시고 인내해 주시면서 당신이 사랑과 인내, 관용이 있는 분이심을 보게 해 주셔야만 당신을 따를 것이고, 또한 끝까지 따라갈 자신이 있습니다. 당신의 인내와 긍휼이 있어야만 저의 거역과 과오가 기한 없이 용서받고 사함받을 수 있으며, 또한 제가 언제 어디서나 죄를 짓고 언제 어디서나 죄를 자백하면 사함받을 수 있으니까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노하게 해도 당신은 저에 대해 그 어떤 견해나 규정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라고 한다. 비록 사람마다 마음속으로 이런 문제를 이렇게 주관적으로,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사람마다 하나님을 자신의 죄를 사함받을 수 있는 도구와 아름다운 처소를 얻을 수 있는 이용 대상으로 여길 때는 이미 무의식중에 살아 있는 하나님을 대립 면에 놓고 원수로 삼은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52. 하나님이 어떠한 형식이나 국가에도 구애받지 않고 나타나는 그 목적은 바로 그가 계획해 놓은 사역을 이루려는 데에 있다. 마치 하나님이 유대에서 성육신된 목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던 것과 같다. 그러나 유대인은 모두 하나님이 그렇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주 예수의 그런 형상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들의 ‘불가능’은 그들이 하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는 근거가 되어 결국 이스라엘의 망국을 초래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또 이런 잘못을 저질렀다. 그들은 하나님이 곧 나타날 것이라고 제멋대로 선전하는 동시에 또 하나님의 나타남을 정죄하였다. 그들의 ‘불가능’은 또 한 번 하나님의 나타남을 그들의 상상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고는 방자하게 큰 소리로 웃어 대는 것을 보았는데, 그 ‘웃음’은 유대인이 정죄하고 모독한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너희는 진리 앞에서 전혀 경건치 않고, 더욱이 간절히 사모하는 태도도 없으며, 무턱대고 연구하기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기다리기만 하는데, 그러한 연구와 기다림으로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설마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발하는 음성과 말씀마저도 분별하지 못하면서 너는 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에서 발췌

53. 너희는 알아야 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거나 자신의 관념으로 오늘날의 역사를 가늠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원칙을 인식하지 못하고 또 성령 사역에 대해 너무 경솔하였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 사역을 방해하는 것은 모두 너희의 관념과 너희의 천성적인 교만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고, 너희의 천성이 너무 패역한 탓이지, 하나님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도 확정하지 못하면서 성령 사역의 옳고 그름을 공개적으로 강연하면서 함부로 평가할 뿐만 아니라, 또 성령의 새 사역이 있는 사도들을 훈계하고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며 말로 상처를 주는데, 인성이 정말 너무나 비열하고 이지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 성령의 역사에 버림받아 지옥 불에 태워질 대상이 아닌가?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평가하고, 또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해야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지휘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이지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에서 발췌

54. 그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무엇으로 믿어 왔느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공기로 믿어 왔다. 그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이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느끼지도 의식하지도 못했고, 더욱이 분명한 깨달음과 인식은 말할 나위도 없으며, 잠재의식 속에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람으로 믿어 왔다. 즉,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은 하나님도 하지 못한다고 여기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에 대한 정의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목석으로 믿어 왔다. 그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에게는 희로애락이 없다고 여기고, 하나님은 석상 같아서 어떤 일이 생겨도 태도나 관점, 생각이 없고 사람의 지배대로 한다고 여긴다. 또한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을 수 있어 하나님이 위대하다고 하면 위대한 존재이고, 보잘것없다고 하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여긴다. 그리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할 때는 하나님이 마땅히 긍휼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부 사람들은 생각과 머리로 하나님을 상상해 내어 그 하나님으로 자신들의 필요를 공급할 수 있게 하고, 자신들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어떤 일을 하든, 다 그런 상상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사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믿든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만 하면,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부정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기간에 하나님 말씀 책을 아마 보배처럼 여기면서 날마다 보고 읽었겠지만, 진정한 하나님은 오히려 한쪽에 방치해 두면서 하나님을 공기로 삼고 하나님을 한 사람으로 여겼으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아예 목석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나는 너희에게 일이 임하든 아니면 어떤 환경이 닥치든,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과 속에서 나오는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무관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무관하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너는 그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의 관점이 무엇인지만 알고, 그다음 자신의 그 생각과 관점을 억지로 하나님에게 씌워 하나님의 관점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그 관점을 준칙으로 여겨 고수할 줄만 안다. 그렇게 오래 가다 보면 너는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55. 사람은 비록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사람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고,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르며, 하나님을 사랑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마음으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사람이 늘 하나님을 피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과 아주 멀어졌다.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사실, 사람의 마음은 옮겨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관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고, 보여 주지도 않았다. 설사 어떤 사람들은 늘 “하나님, 당신은 제 마음을 감찰하시니 제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십니다.”라고 기도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게 감찰받겠다면서 만약 자신이 맹세를 어기면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게 해 달라고 서원하기까지 할지라도 말이다! 사람은 비록 하나님에게 마음을 감찰하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운명과 앞날과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겨 주관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아무리 맹세를 하거나 입장을 밝혀도, 하나님이 보기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여전히 닫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만 허락할 뿐, 자신의 마음을 주관하는 것은 허용치 않기 때문이다. 즉, 전혀 마음을 내놓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단지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께 들려주기만 할 뿐, 여러 가지 간사한 속셈은 다 감추고, 자신의 의도와 자신의 타산과 계획도 다 숨기고, 앞날과 운명을 하나님이 빼앗아 갈까 심히 두려워 자기 손에 꽉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늘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진심을 볼 수가 없다. 비록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는 분이어서 사람이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볼 수 있고, 사람이 속에 어떤 것을 품고 있는지를 볼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사람은 그것을 하나님께 맡겨 주관하게 하지 않았다. 즉, 하나님에게는 살펴볼 권리만 있고, 주관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주관적인 의식에서,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에게 맡겨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기 싫어하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봉인하고 있는 것 외에,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또 갖은 방법을 다해 마음을 꽁꽁 싸매고, 듣기 좋은 말로 가상(假象)을 만들어 하나님의 신임을 사취하고,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자신의 진상을 감춘다. 하나님에게 보여 주지 않으려고 하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에게 자신의 실정을 보여 주기 싫고 마음을 하나님에게 맡기기 싫어 혼자 보관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뜻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일을 생각하든, 혼자 계획하고, 혼자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며, 하나님의 ‘참여’가 필요 없고, 하나님의 개입도 필요 없으며,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는 더더욱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분부에 대해서든, 하나님의 부탁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든, 다 자신의 속셈과 이익에 근거하고, 자신의 그 당시의 정형에 근거하고, 또 자신의 그 당시의 처지에 근거하여 선택을 한다. 사람은 늘 자신에게 익숙한 지식과 식견, 자신의 머리로 자기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선택하며, 하나님이 간섭하거나 주관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본 사람의 마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5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 12:6~8)… 예수가 그 말씀을 한 배경은 율법 아래의 사람들이 이미 성전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성전이란 장소를 경배한 것이지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지고지상한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배해야지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일러 주었던 것이다. …비록 지금의 사람들과 율법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각기 다른 역사를 체험했지만, 그 본성 실질은 똑같다. 오늘날의 이런 역사 배경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성전이 하나님보다 크다’는 것과 같은 성질의 일을 저지른다. 예를 들면, 본분을 직업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큰 붉은 용과 싸우는 것을 인권을 수호하고 자유와 민주를 쟁취하는 정치 운동으로 여기며, 기술 수준이 조금 있는 본분을 자신의 사업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일을 종교적인 교리로 삼아 지키는 등등이다. 사람의 이런 행위들은 ‘성전이 하나님보다 크다’는 성질과 같은 것이 아니냐? 다만 2천 년 전의 사람들은 형태가 있는 성전에서 개인의 경영을 하였고, 오늘날의 사람들은 무형의 성전에서 개인의 경영을 할 따름이다. 규례를 중히 여기는 자들은 규례를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기고, 지위를 좋아하는 자들은 지위를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기며, 사업에 몰두하는 자들은 사업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긴다… 사람의 각종 행위들을 보고 나는 “사람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지극히 높다고 칭송하지만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보다 크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사람이 일단 하나님을 따르는 도중에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찾으면, 일단 자신의 경영과 자신의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하나님을 천 리 밖으로 밀어내고 자신이 몰두하려는 사업에 온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탁과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는 일찍이 까맣게 잊어버렸다. 사람들의 이런 정형은 2천 년 전에 성전에서 개인의 갖가지 경영을 했던 사람들과 다른 점이 뭐가 있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57. 성경 본문에 기록된 예수와 예수가 한 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평가는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막 3:21~22)라는 것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논단한 것은 남이 말하는 대로 말하고 터무니없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예수가 행하는 일들을 보고 들은 후 예수에 대해 내린 정론이다. 비록 그들의 정론이 정의를 실현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어 사람에게 이치가 있고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를 논단하는 그들의 기고만장한 기세는 그들 스스로도 억제하기 힘들었다. 예수를 증오하는 그들의 광적인 기세는 그들의 야심을 드러냈고, 그들의 사악한 사탄 몰골도 드러냈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악랄한 본성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를 논단한 그런 말들은 그들의 야심과 질투, 진리를 적대시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추하고 악랄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말한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행한 일의 근원을 알아보지 않고 예수가 한 말씀과 행한 일의 실질도 알아보지 않고 예수가 행한 모든 것을 무작정, 일각도 지체할 수 없는 듯이, 미친 듯이, 의식적으로, 악의적으로 공격하고 비방했으며, 심지어 예수의 그 영, 즉 성령, 하나님의 영을 함부로 비방했다. 그것이 그들의 입에서 나온 “그가 미쳤다.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 하는 역사를 보고 미쳤다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고 모독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정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모독했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실질은 사탄, 악마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실질과 완전히 똑같다. 그들이 대표한 것은 패괴된 인류만이 아니라 또 사탄의 화신이며, 인류 가운데 있는 사탄의 대변자(직역: 출구)이자 사탄의 공범자이고 사탄의 심부름꾼이다.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훼방하는 실질은 하나님과 지위를 쟁탈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실질과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태도, 그들이 입으로 뱉은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영을 직접 모독하고 노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이 말하고 행한 것에 대해 합리적인 정론을 내놓아 그들의 모든 행위를 성령 모독죄로 정하였는데, 그 죄는 금세와 내세에서도 사함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다음 구절에서 말씀한 것과 같다.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58. 너희는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은가? 너희는 바리새인의 실질을 알고 싶은가? 그들은 메시아에 대해 환상으로 가득 찼고, 또한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것만 믿으면서 생명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우매하고 완고하고 그렇게 무지한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메시아를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것은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한 까닭이고, 예수가 말씀한 진리의 도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며, 더욱이 메시아에 대해 알지 못한 연고이다. 그들이 메시아를 본 적도, 메시아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란 이름만 헛되이 지키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메시아의 실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그 바리새인들의 실질은 완고하고, 교만방자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당신이 가르치는 도가 얼마나 높든, 당신의 권병이 얼마나 위대하든, 메시아로 불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들의 그런 관점은 매우 그릇되지 않은가? 너무나 황당하지 않은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꾸었을 때이다>에서 발췌

59.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것은 하나님의 다종다양한 역사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조금밖에 없는 자신의 지식과 도리로 성령의 역사를 가늠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그 사람들은 체험이 천박하면서도 천성이 교만하고 방종하여 성령의 역사를 경시하고 성령의 징계를 소홀히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잘것없는 그 낡은 도리로 성령의 역사를 ‘입증’하고, 또 일부러 자신의 학식이 해박하여 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고 티를 낸다. 그런 사람은 모두 성령께 버림받는 사람이고, 새 시대에 도태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하나님 앞에 와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모두 경망스럽게 구는 지식이 얄팍한 소인배들이 아닌가? 얼마 안 되는 성경 지식으로 천하의 ‘학술계’를 종횡무진하려고 하고, 사람이나 가르칠 수 있는 볼품없는 빈약한 도리로 성령의 역사를 돌려세우려 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려고 하며, 그 짧은 식견으로 하나님의 6천년 사역의 풍채를 한눈에 보겠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 또 무슨 이지를 논할 수 있겠는가? 사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사역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하나님의 현시 사역에 대한 인식만 조금 말할 뿐 제멋대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는 사람일수록 교만하여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소시를 더욱 제멋대로 선전하는데, 모두 도리이고 실제 증거는 조금도 없다. 그런 사람은 가장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에서 발췌

60. 성령의 사역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는 사람은 모두 경망스러운 사람이다!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만나서도 신중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고 제멋대로 평가하며, 자신의 성미대로 성령 사역의 정확성을 부인하고 또한 욕설하거나 모독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거만한 사람은 모두 성령 사역을 알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성적으로 교만하고 방자한 자들이 아닌가? 그런 사람은 어느 날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관용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을 모독하기까지 한다. 그런 악당은 금생과 내생에도 사함받지 못할 것이고, 그들은 영원히 지옥에 멸망될 대상이다! 거만하고 방종한 그 사람들은 또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건 사람들로, 그런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행정을 더 쉽게 범한다. 천성이 방탕하고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굽힌 적이 없는 그 교만한 자들은 모두 그런 길을 가고 있지 않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에서 발췌

61. 네가 하나님을 오래 믿었어도 지금까지 하나님께 순복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하나님으로 너에게 순복하여 너의 관념대로 하라고 한다면, 너는 가장 패역한 사람이고 불신파이다. 이런 사람이 사람들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하나님의 그런 역사와 말씀에 어떻게 순복할 수 있겠는가? 가장 패역한 사람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복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이고 적그리스도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대해 늘 적대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순복하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고 기꺼이 순복하거나 낮춘 적이 없다. 그들은 사람 앞에서는 자신이 가장 높다고 여기면서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순복할 줄 모르고,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도’를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고 또한 다른 사람의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보배를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가보로 삼아 섬기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데, 그것으로 자신들을 숭배하는 멍청이들을 훈계한다. 이런 사람이 교회에 확실히 일부 존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들은 ‘위풍당당하여 굴하지 않는 영웅 세가’로, 대대로 하나님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 그들은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자신의 최고 직책으로 삼아 한 해 또 한 해, 한 세대 또 한 세대 그들의 신성불가침의 직책을 이행하고 있기에, 아무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또한 아무도 감히 그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하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 집에서 ‘제왕’이 되어 각 시대에서 제멋대로 날뛰며 횡포를 부린다. 이 무리의 악마들이 연합하여 나의 사역을 허물어뜨리려고 시도하는데, 내가 어찌 이런 산 귀신이 내 눈앞에 존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에서 발췌

62. ‘하나님’과 ‘사람’은 같이 논할 수 없다. 그의 실질과 그의 역사는 모두 사람이 측량하기 가장 어렵고, 이해하기도 가장 어렵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하거나 말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 그렇다면 설령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라고 해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헛수고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사람들은 모두 무능한 자들이고, 모두 교만방자하고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해서는 안 되고, 더군다나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눈에 사람은 그야말로 개미보다도 작은데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측량할 수 있겠느냐? 말끝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지 않고 하나님은 저렇게 역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렇고 하나님은 저렇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광언(狂言)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냐?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모두가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고 본성이 다 하나님을 대적하기에,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에 어떤 계책도 내놓을 수 없다. 하나님이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인솔하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므로 사람은 마땅히 순복해야지 이런저런 견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단지 진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려고 하는 이상, 자기의 관념을 하나님의 역사에 내놓고 하나님께 참고하라고 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패괴 성정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극력 대적해서도 안 된다. 이런 사람은 바로 적그리스도가 아니냐?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 하고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하는 이상, 마땅히 진리의 도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과 합하는 길을 찾고 구해야지 목을 곧게 세워 하나님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무슨 좋은 열매를 먹을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63. 우매무지한 사람은 흔히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그리스도의 결점으로 본다. 그가 어떻게 신성의 소시를 표현하고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든지 사람은 그가 바로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또한 그리스도가 순복과 낮춤을 표현할수록 우매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더욱 경시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해 배척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위대한 형상이 있는 ‘위인’들을 책상 위에 놓고 공양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하나님이 성육신된 실질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데에 있고,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원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인성으로 가려지지 않고,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으며, 비범한 인성을 갖고 있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이 거역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항상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좋아하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에게는 인성이 없고 피조물의 속성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늘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항상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언제나 경멸하는 태도를 갖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64. 사람의 가장 큰 애로는 바로 사람이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이지만, 또 아주 신기하고 상상하기 어렵고 평범한 사람이 아예 닿을 수 없는 것들만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더욱 분석하고, 심지어 무작정 추구하면서 그것을 얻으려고 망상한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더욱 자세히 퇴고하고 분석하며, 심지어 빈틈없이 구상한다. 반대로, 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면서 전혀 그것을 눈에 두지도 않고 심지어 멸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너희는 내가 오늘날 하고 있는 현실적인 역사에 대해 이런 태도가 아닌가? 이런 현실적인 것일수록 너희는 더욱 경시하고, 그런 현실적인 것에 대해 알아볼 여지를 전혀 조금도 남겨 두지 않으며, 아예 내버려 두고 상관하지 않는다. 너희는 이런 현실적인 낮은 기준의 요구를 전혀 눈에 두지 않고, 심지어 가장 실제적인 하나님에 대해서 관념이 겹겹이 쌓여 그의 실제와 정상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너희의 믿음은 모두 막연한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전에는 너희가 막연한 하나님을 태산처럼 굳게 믿었지만, 오늘날 실제 하나님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제의 하나님과 오늘의 하나님이 서로 다른 두 세기(世紀)의 하나님인 까닭이 아닌가? 또 어제의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높고 큰 하나님이고, 오늘의 하나님은 땅에 있는 작디작은 사람인 까닭이 아닌가? 더욱이 사람이 숭배하는 하나님은 사람의 관념에서 생긴 하나님이고, 오늘의 하나님은 땅에 나타난 실제적인 육신이기 때문이 아닌가? 대놓고 말하면, 바로 오늘의 하나님이 너무나 현실적이기 때문에 사람이 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오늘의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라고 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사람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이 난감해하는 것인데, 이는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전적으로 사람의 허물을 폭로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현실을 추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성육신 하나님의 원수, 즉 적그리스도가 되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흡족해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65. 너는 네가 타고난 천재여서 하늘보다는 조금 낮고 땅보다는 아주 높다고 여기지 말라. 너는 결코 다른 사람보다 총명하지 않다. 심지어 너는 지구상의 이지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귀여울 정도로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다. 너는 자신을 너무나 높이 보기에 전혀 열등감을 느낀 적이 없는데, 마치 내가 한 것에 대해 지극히 세세한 것까지 다 알아낸 것 같다. 사실, 너는 그 무슨 이지 있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 너는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더욱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너를 인생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하늘의 축복에 의지하여 농사짓는 농부보다도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너는 너의 인생을 너무나 하찮게 여기고, 뜻밖에 지명도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더욱이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지도 못한다. 너는 너무나 ‘대단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배우지 않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은 짐승이 아닌가?>에서 발췌

66. 예를 들어, 네게 교만 자대(自大)가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해도 반드시 대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 자대하는 본성의 지배를 받아 하게 되는 것이다. 교만 자대로 네가 하나님을 경시하게 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되며, 교만 자대로 걸핏하면 자신을 높이게 되고, 곳곳에서 자신을 나타내게 되며, 교만 자대로 나중에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을 증거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뜻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관념에서 나온 것을 다 진리로 삼아 공양하게 된다. 사람이 이 교만 자대의 본성에 지배되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하게 되느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67.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패괴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유로한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과 분풀이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불만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불순물과 음모 그리고 간계가 가득 차 있고 또한 사람의 패괴와 사악도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사람의 야심과 욕망도 가득 차 있다. 정(正)과 사(邪)의 겨룸에서 사람은 정의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정의의 힘이 위협받고 박해당하고 공격을 받을 때, 사람의 태도는 냉대하거나 피하거나 뒤로 물러서는 것이지만, 사악한 세력을 대함에 있어서는 비위를 맞추고 비굴하게 아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분풀이하는 것은 사악한 세력의 출구이고, 혈기에 속한 사람의 악행이 범람하고 억제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표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68. 너희 각 사람은 다 뭇사람 가운데서 지극히 높이 올라 뭇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너희는 또 심히 난폭한데, 모든 구더기들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안락한 곳을 찾으면서 자기보다 작은 구더기들을 삼켜 버리려고 망상한다. 너희는 심보가 음험하고 악랄하기로 창해 속에 가라앉은 그 유령들보다 심한데, 거름 더미의 최하층에 거주하면서 위아래의 그 모든 구더기들을 편안할 틈도 없이 방해하며 서로 한바탕 싸우고 난 후에야 조용해진다. 너희는 자기의 지위도 모른 채 놀랍게도 그 거름 더미 속에서 서로 침략하는데, 다투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참으로 나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나의 얼굴을 등지고 서로 쟁탈할 수 있겠느냐? 너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거름 더미 속의 냄새가 지독한 작은 벌레가 아니냐? 그래 날개가 돋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흰 비둘기가 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낙엽귀근 시 너는 자신이 행한 모든 악행을 후회할 것이다>에서 발췌

69.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요구가 높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요구가 아주 높다. 자신에게는 인내하고 포용해 주어야 하고, 또 보살피고 공급해 주어야 하며, 웃는 얼굴로 대해 주어야 하고, 참고 양보해 주어야 하며, 다방면으로 돌보면서 조금도 엄격해서는 안 되고, 조금도 자극하거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이지는 너무나 부족하다! 사람이 마땅히 어떤 지위에 서야 하는지,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에 도달해야 하는지, 마땅히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마땅히 어떤 위치에 서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 마땅히 자신을 어떤 위치에 놓아야 합당한지, 사람은 이런 일들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 지위가 좀 있는 사람도 자신을 아주 높이 보거니와 지위가 없는 사람도 자신을 아주 높이 본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 너희에게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엄하든, 어떻게 외면하든, 너희가 믿고 따르면서 원망 없이 예전대로 본분을 할 수 있을 때면, 성숙되고 숙련되어 참으로 분량이 있게 되고, 정상 사람의 이지가 있게 되며, 하나님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게 된다. 또한 더 이상 사치한 욕망이 없게 되고, 더 이상 자신의 취향대로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요구하지 않게 된다. 이래야만 사람다운 모양이 조금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너희의 요구가 너무 많고 너무 지나치며, 사람의 뜻이 너무 많은 것은 선 위치가 틀리고 너무 높다는 것을 증명한다. 자신을 너무 존귀하게 보고 하나님에 비해 얼마 낮지 않은 것처럼 보는데, 그러면 너 같은 사람은 다루기 어렵게 된다. 이것은 사탄의 본성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늘 요구하는 사람은 가장 이지 없다>에서 발췌

70. 네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때, 너는 아마 하루 세끼 시중들며 차를 대접하고 물을 떠다 드리며 그의 생활을 돌보면서 마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여기는 것처럼 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발생할 때, 사람의 관점은 늘 하나님과 어긋나고, 사람은 늘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 비록 겉으로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와 마음이 합해졌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일단 일이 생길 때면 사람의 패역 본질이 나오게 된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적대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게 적대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을 적대시하려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과 대립되는 면에 놓고 대하는 것도 아니라 사람의 주관적인 의지 속에,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하나님과 대립되는 그런 실질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을 대하거나 하나님과 관련되는 것을 대할 때, 사람의 첫 반응은 먼저 추측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다음 사람은 아주 빨리 저항하는 태도를 취하여 하나님과 대립할 것이다. 잇따라 소극적인 감정을 품고 하나님과 ‘논박’하거나 겨룰 것이다. 심지어 이런 하나님을 따를 가치가 있냐고 의심하기까지 할 것이다. 설령 그 사람의 이성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 주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심지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끝까지 고수할 것이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느냐? 사람은 하나님과 대립된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원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실질 자체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71. 너희는 그리스도를 신선으로 여기고 성인(聖人)으로 여기지만, 그리스도를 신성의 실질이 있는 정상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때문에 자나깨나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하나님과 적이 되고, 하나님과 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이 사람의 잘못이 아니란 말인가? 너희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너희의 믿음과 충성심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기는데, 그래도 나는 너희가 실제적인 것들을 많이 쌓아가기를 권고한다! 그것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이후에도 그리스도와 접촉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 실패하고 모두 바리새인의 역을 맡기 때문이다. 너희가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너희의 관념 속에 너희가 앙모할 만한 크고 높은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높지도 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왜소하고,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며, 하늘에 올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를 보통 사람으로 대하였고, 그와 함께 지낼 때에 함부로 대하였으며, 그와 말할 때에도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여전히 ‘진정한 그리스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는 이미 돌아온 그리스도를 보통 사람으로 여겼고, 그의 말씀을 보통 사람의 말로 대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고, 자신의 추한 몰골을 빛 속에서 완전히 드러내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72. 네가 그리스도와 접촉하기 전에는 스스로 자신의 성정이 이미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여길 것이고, 자신은 그리스도를 충성스럽게 따르는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며,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기에 가장 자격 있는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고, 네가 많은 길을 달려왔고 또 많은 일을 하였고 많은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마지막에 꼭 면류관을 받을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러한 사실, 즉 사람의 패괴 성정과 거역과 대적은 모두 그리스도를 만날 때 드러나는데, 그때 드러나는 거역과 대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완전하고 철저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가? 그리스도가 인자이기 때문에, 곧 정상 인성이 있는 인자이기 때문에 사람은 그를 무례하게 대하고, 또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패역은 남김없이 생생하게 폭로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강림이 인류의 패역을 다 끄집어냈고, 그리스도의 강림이 인류의 본성을 다 부각해 냈다고 한다. 이것을 ‘호랑이를 유도하여 산에서 내려오게 하고, 늑대를 유도하여 굴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73. 네가 정말로 그리스도와 함께 지낼 때에는 독선적이고 자신을 높이는 것들이 너의 언행에 조금씩 묻어 나올 것이고, 그에 따라 너의 사치한 욕망과 불복하고 불만스러워하는 마음도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에, 너의 교만이 갈수록 심해져 그리스도와 수화상극(水火相剋)이 될 때면 너의 본성은 전부 드러나게 된다. 그때가 되면 너는 관념을 덮어 감출 수 없게 되고, 원망도 자연스레 ‘표출’하게 되며, 너의 그 비열한 인성도 다 드러나게 된다. 그때가 되면 너는 자신의 패역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그러한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너무나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여기고, 사람에 대해 너무 각박하다고 여길 것이며, 만일 더 괜찮은 그리스도로 바뀐다면 완전히 순복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거역하는 데에는 모두 원인이 있다고 여기며 너희가 거역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너희를 그 지경까지 몰고 갔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너희는 지금까지도 자신이 그리스도를 전혀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았고, 그에게 진심으로 순복하려는 마음이 없었으며, 그리스도에게 너의 생각에 따라 일하라고 무작정 강요하면서 일단 어떤 한 가지 일이라도 너의 생각대로 하지 않으면 그를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여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그와 겨루어 보지 않았는가? 너희는 도대체 누구를 믿고 있는가? 너희는 또 어떻게 추구하였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74. 너는 정말 매 순간마다 그를 하나님으로 대할 수 있는가? 너에게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실제가 있는가? 너희는 모두 마음속의 높고 큰 하나님을 여호와로 삼아 경배하면서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너희의 이지는 너무나 부족하고, 인성은 너무나 비천하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영원히 하나님으로 보지 못하고, 가끔 기분이 좋을 때에만 그를 끌어다 하나님으로 경배할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역할을 하는 악당 무리의 공범이라고 하는 것이다. 타인을 도와주는 사람도 보답을 받는데, 그리스도는 너희들 가운데서 이처럼 역사하였음에도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람의 보답과 순복을 받지 못하다니, 이것은 마음이 쓰라리고 눈물 날 일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75. ‘믿음’을 언급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믿음’이 있으니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고난을 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묻겠다.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왜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가?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가? 너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인정하면서도 왜 그에 대해 멸시하는 태도를 갖고 있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가? 왜 공개적으로 그를 논단하는가? 왜 언제나 그의 행적을 캐내려 하는가? 왜 그의 안배에 순복하지 않는가? 왜 일할 때 그의 말씀을 준칙으로 하지 않는가? 왜 그의 제물을 토색하고 훔치는가? 왜 그리스도의 자리에 서서 말하는가? 왜 그의 역사와 말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가? 왜 함부로 뒤에서 그를 모독하는가? 등등, 이런 것들이 바로 너희의 ‘믿음’인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에서 발췌

76. 너희의 언행에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성분이 유로(역주: 흘러나옴)되고 있고, 너희가 일하는 동기와 목표에는 불신의 성분이 가득 차 있으며, 심지어 너희의 눈길과 내쉬는 숨결에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성분이 섞여 있다. 바꾸어 말해서, 너희 각 사람은 매 일분 동안에도 ‘불신’ 성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언제든지 그리스도를 배반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너희의 온몸에는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성육신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혈액이 주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길에 디딘 발자국은 참된 것이 아니고, 너희가 착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충대충 때우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너희는 그리스도가 한 말씀을 언제나 반신반의하고 바로 실행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너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대해 언제나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너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행한 사역에 대해 언제나 믿기 어려워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언제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며, 그리스도가 어떤 일을 하든 다 견해를 가지고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 설명을 하든 관념을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등등, 이런 것들은 모두 너희 마음속에 섞여 있는 불신 성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에서 발췌

77. 겉으로 보기에는 너희가 땅에 있는 그리스도께 매우 복종하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너희가 그를 믿는 것이 아니고 그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가 진정으로 믿는 것은 너희 생각 속의 막연한 그 하나님이며, 너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너희가 밤낮으로 그리워하지만 지금까지 너희와 만난 적이 없는 그 하나님이다. 이 그리스도에 대한 너희의 믿음은 단지 1점이거나 2점이고, 그에 대한 사랑은 그저 빵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에서 발췌

78. 지금 너희의 믿음은 30%뿐이고, 의혹은 오히려 너희들 심령의 70%를 차지한다. 그리스도가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한 마디 말씀을 할 때마다 너희는 그에 대해 관념과 견해가 생길 수 있는데, 그 관념과 견해는 너희가 그를 전혀 믿지 않아 초래된 것이다. 너희는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앙모하고 두려워하며, 땅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데, 그것도 여전히 너희의 불신이 아닌가? 너희는 지난날에 사역했던 하나님만 그리워할 뿐,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마주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영원히 너희의 마음속에 섞여 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믿음’이다. 나는 결코 너희를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희에게는 불신 성분이 너무 많고, 해부해야 할 불순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불순물은 너희에게 ‘믿음’이 전혀 없는 상징이고, 너희가 그리스도를 저버리는 기호이며, 너희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낙인이고, 너희가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데에 가려진 수건이며,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얻어지는 데의 장벽이고, 너희가 그리스도와 합하는 데의 장애물이며,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칭찬받지 못하는 증거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에서 발췌

79. 아마 네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사람에게도 악담을 한 적이 없고, 한 번도 나쁜 일을 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가 그리스도와 접촉하면서 솔직한 말을 하지 못하고, 착실하게 일하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말씀에 순복하지 못한다면, 나는 너를 세상에서 가장 음험하고 악랄한 사람이라고 한다. 네가 너의 친척과 친구, 너의 아내(남편)와 아들딸과 부모에게는 아주 우호적이면서도 아주 충성하며, 지금까지 그 누구의 덕도 보지 않았을지라도, 네가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면, 설령 네가 너의 모든 것으로 이웃을 구제하거나 너의 부모와 가족을 살뜰하게 보살펴 주었다고 해도 나는 너를 악인이라고 할 것인데, 그것도 궤계가 많은 악인이라고 할 것이다. 너는 네가 사람과 합한다고 해서 그것을 그리스도와 합한 것이라고 여기지 말고, 네가 좋은 일을 좀 했다고 해서 그것을 그리스도와 합한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 너는 선심을 쓰는 교묘한 방법으로 하늘이 베풀어 주는 복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가? 너는 네가 한 좋은 일로 너의 순복을 대체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너희 각 사람은 모두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면서도 말끝마다 하나님께 순복한다고 말한다. 너희의 그런 신앙은 마땅한 보응을 받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80. 너희 마음속에는 악이 가득하고 배반과 기만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너희의 사랑에는 불순물이 얼마나 있겠는가? 너희는 나를 위해 이미 충분히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고 여기고, 나에 대한 사랑도 이미 충분하다고 여기는데, 너희의 언행은 왜 언제나 패역과 기만을 띠고 있는가?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데,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를 저버리는데,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는데,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신분에 따라 나를 대하지 않고 어디서든 나를 난처하게 하는데,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매사에서 나를 속이고 기만하는데,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나를 섬기면서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어디서든, 매사에서 나와 적이 되는데, 그것도 다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너희의 봉헌은 아주 많지만 내가 너희에게 요구한 것들은 너희가 지금까지 실행하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세히 따져 보면, 너희에게서는 나를 사랑하는 향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이렇게 오랜 역사에서, 이토록 많은 말씀의 공급에서 너희가 얻은 것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이것은 너희가 한번 자세히 되돌아볼 만하지 않은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에서 발췌

81. 너희의 입에는 나를 기만하는 말과 더러운 말이 가득하고, 나를 배반하는 말과 교만한 말이 가득하며, 지금까지 진실한 말로 나에게 간절히 말한 적이 없으며, 깨끗한 말이 없고 나의 말을 체험하며 나에게 순복하는 말이 없다. 너희의 믿음은 도대체 어떠한가? 너희의 마음속은 욕망과 돈으로 가득 찼고, 너희 머리는 물질로 가득 찼다. 너희는 날마다 어떻게 하면 나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고, 날마다 내게서 얻은 돈과 물질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고 있으며, 더 많은 축복이 너희에게 임하여 더 많고 더 좋은 물질을 누릴 수 있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에서 발췌

82. 너희의 기만, 너희의 교만, 너희의 탐심, 너희의 사치스러운 욕망, 너희의 배반, 너희의 불복, 이 중에 어느 것이 나의 눈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너희는 나를 대충대충 대하고 속이며, 나를 모욕하고 기만하며, 사기 쳐 나의 제물을 갈취하는데, 이런 악행들이 어찌 나의 징벌을 피할 수 있겠는가? 이런 악행들은 모두 너희가 나와 적이 되는 증거이고, 나와 합하지 않는 증거이다. 너희들 각자는 나와 아주 많이 합한다고 여기는데, 그렇다면 이런 확실한 증거는 또 누구에게 맞춘 것이란 말인가? 너희는 스스로 나에 대해 정성과 충성을 다하였다고 여기고, 너희들이 아주 선량하고 동정심이 풍부하다고 여기며, 나에게 바친 것이 너무나 많고 나를 위해 한 것이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너희는 각자의 행위를 대조해 보았는가? 여기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너희는 교만이 흘러넘치고, 탐욕이 아주 크며, 너무나 건성적이고, 나를 속이는 기교가 아주 뛰어나며, 비열한 속셈과 수단이 가득하고, 충성심은 너무나 적으며, 진심은 너무나 없고, 양심은 더욱 없으며, 너희의 마음 또한 너무나 악독하여 어떤 사람도 가만두지 않는데, 심지어 나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에서 발췌

83. 너희는 충성이 조금 있으면 자화자찬하고, 공헌이 조금 있으면 보수를 요구하며, 순복이 조금 있으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자그마한 일을 좀 하고 나면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는다. 너희는 하나님을 대접하고는 돈과 물질을 달라고 하고 칭찬해 달라고 하며, 동전 두 닢을 내놓고는 아까워하고, 동전 열 닢을 내놓고는 축복해 달라고 하며, 자신은 남달라야 한다고 요구한다. 너희의 이러한 인성은 그야말로 말하기조차 거북하고, 듣기조차 민망하다. 너희의 언행에 자랑할 만한 것이 어디 있는가? 본분을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 인솔하는 자와 따르는 자, 하나님을 대접하는 자와 대접하지 않는 자, 봉헌하는 자와 봉헌하지 않는 자, 전도하는 자와 전도 받는 자 등등, 모든 사람이 다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이 가소롭게 느껴지지 않는가?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자기를 자랑하는데, 너희는 너희의 이지가 이미 자제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 이지로 어찌 하나님과 접촉할 자격이 있겠는가? 지금 너희는 자신이 걱정되지도 않는가? 너희의 성정은 이미 하나님과 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너희의 믿음은 매우 가소롭지 않은가? 너희의 믿음은 너무나 황당하지 않은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84. 나의 오랜 역사에서 사람은 많은 것을 얻기도 하였고, 많은 것을 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사람이 나를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입으로만 나를 하나님이라고 시인하고, 오히려 내 입에서 나온 진리는 수긍하지 않으며, 더욱이 내가 사람에게 요구한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만 인정할 뿐 진리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있다는 것만 인정할 뿐 생명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만 인정할 뿐 하나님의 실질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의 열정으로 인하여 사람을 혐오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듣기 좋은 말로 나를 기만하기만 할 뿐, 아무도 나를 진심으로 경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의 말은 독사의 유혹을 띠고 있고 또한 극히 교만하여 그야말로 천사장의 ‘발표’이며, 너희의 행위는 더욱 볼품도 없고 너희의 사치한 욕망과 탐욕스러운 속셈은 더욱 듣기조차 민망하다. 너희는 모두 내 집의 좀벌레가 되었고, 내가 내버리는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너희는 모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천당에 가기 좋아하는 사람이며, 그리스도가 땅에서 권세 잡는 성황을 보기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에서 발췌

85. 너는 그리스도의 낮춤을 앙모하지 않고 지위가 혁혁한 그 거짓 목자들을 숭상하며, 사랑스럽고 지혜로운 그리스도를 좋아하지 않고 세상과 야합하는 그 음탕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너는 머리 둘 곳 없는 그리스도의 고통을 비웃기만 하면서 제물을 약탈하고 주색에 빠져 사는 그 시체들을 탄복한다. 너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기를 원하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는 그 적그리스도의 품속에 안기기를 원한다. 비록 그들이 너에게 공급하는 것은 육체, 글귀, 통제뿐일지라도 말이다. 지금도 너의 마음은 여전히 그들을 향하고 있는데, 그들의 명예와 사탄 마음속에 있는 그들의 모든 지위를 향하고 있고, 그들의 세력과 권세를 향하고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태도를 취하고, 또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믿음’이 없다고 말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에서 발췌

86. 일부 사람들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더욱이 심판도 좋아하지 않으며, 세력과 돈을 좋아하는데, 이러한 사람을 세력파라고 한다. 그들은 전적으로 세상에서 세력이 있는 그런 교파를 찾고, 전적으로 신학교를 나온 목사와 강사만 찾으며, 진리의 도를 받아들였다고 해도 반신반의하고 온 몸과 마음을 쏟지 못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는 글귀를 말하지만, 눈은 오히려 대단한 목사와 강사를 주시하고 있고, 그리스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의 마음속은 명리와 영예로 가득 찼다. 그들은 이토록 작디작은 이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정복할 수 있고, 눈에 차지도 않는 이 사람이 사람들을 온전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진토와 거름 더미에 있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선민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람들이 만약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라면, 하늘땅이 뒤집히고 사람들이 배꼽 잡고 웃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만일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택하여 온전케 한다면, 저 큰 인물들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의 관점에는 불신 성분이 뒤섞여 있는데, 어찌 불신뿐이겠는가, 그들은 그야말로 이치로 이해시킬 수 없는 짐승들이다. 그들은 단지 지위, 명망, 세력을 중요시하고 큰 단체와 파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인솔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예 눈에 두지도 않는다. 그들은 본래부터 그리스도와 진리와 생명과는 배치되는 배반자들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에서 발췌

87. 각 교파의 지도자들을 보면, 그들은 다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모두 성경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자신의 상상에 따라 해석하며, 모두 은사와 지식으로 사역한다. 만약 그가 아무것도 말해 낼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그를 따를 수 있겠느냐? 그는 어쨌든 지식이 좀 있어 도리를 좀 말할 줄 알고, 사람을 구슬릴 줄 알고, 수단도 좀 쓰기에 사람을 자기 앞으로 끌어가고, 사람을 다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사람들이 명의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은 그를 따르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참 도를 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그분께 물어봐야 돼요.” 봐라,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다른 사람을 거쳐야 하니 이러면 큰일이 아니겠느냐? 그럼 인솔자는 뭐가 되었느냐? 바리새인이 되고, 거짓 목자가 되고, 적그리스도가 되고, 사람이 참 도를 받아들이는 데의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니냐? 이 부류 사람들이 바로 바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88. 네가 매우 궤사한 사람이라면, 매사에 대해, 각 사람에 대해 모두 경계하는 마음과 추측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너의 믿음도 의심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인데, 이러한 믿음은 내가 영원히 인정할 수 없다. 진실된 믿음이 없는 이상, 더 참된 사랑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아직도 의심하거나 제멋대로 추측한다면, 너는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궤사한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도 사람처럼 죄사함을 받을 수 없지 않을까? 사람처럼 도량이 좁지 않을까? 사람처럼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 없지 않을까? 사람처럼 정의감이 없지 않을까? 사람처럼 수단이 악랄하고 음험하고 간교하지 않을까? 사람처럼 사악하고 어두운 것을 좋아하지 않을까?’ 등등 이런 의심과 추측을 한다.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까닭이 아닌가? 이런 믿음은 그야말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단지 환심을 살 줄 알고 아첨할 줄 아는 사람뿐이고, 이런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환영받거나 발붙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오랫동안 인식한 것인가? 너희가 얻은 수확인가? 나에 대한 너희의 인식은 어디 이런 오해뿐이겠는가? 하나님의 영에 대한 모독과 하늘에 대한 모욕은 더 많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의 이런 믿음은 다만 너희로 나와 더 멀어지게 하고, 나와 더욱 적대하게 할 뿐이라고 말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에서 발췌

89. 너희 속에 품고 있는 것은 다 불의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누구나 다 똑같이 궤사하고 교활하다고 여기며, 심지어 성육신한 하나님에게도 정상인처럼 선량한 마음과 인자한 사랑이 없다고 여기고, 심지어 고상한 품성과 긍휼 그리고 인자한 본성은 오직 하늘의 하나님께만 있다고 여긴다. 또한 너희는 이러한 성인(聖人)은 존재하지 않고, 세상에는 오로지 흑암과 사악만이 권세를 잡고 있으며, 하나님은 단지 사람이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데에 있어 의지가 되고, 사람이 꾸며 낸 전설적인 인물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너희의 마음속에서, 하늘의 하나님은 매우 정직하고 공의롭고 또한 매우 위대하여 사람이 경배하고 앙모할 가치가 있지만, 땅의 하나님은 단지 하늘의 하나님의 대리인이나 도구에 불과하여 이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과 동등하게 볼 수 없고, 더욱이 하늘의 하나님과 함께 논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함과 존귀함을 언급하면 그것은 다 하늘의 하나님의 영광이며, 사람의 본성과 패괴를 언급하면 땅의 하나님께도 몫이 있다는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은 영원히 높고 크며, 땅의 하나님은 영원히 보잘것없고 연약하고 무능하며, 하늘의 하나님은 사사로운 감정이 없고 공의만 있으며, 땅의 하나님은 사심만 있고 조금도 공평하거나 합리적이지 못하며, 하늘의 하나님은 교활함이 조금도 없고 영원히 신실하며, 땅의 하나님은 영원히 진솔하지 못한 면이 있으며, 하늘의 하나님은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며, 땅의 하나님은 사람을 세심히 보살펴 주지 못하고 심지어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그릇된 인식은 너희의 마음속에 이미 오랫동안 간직해 온 것이고, 또한 너희가 이후에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그릇된 인식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에서 발췌

90. 너희는 자신을 불의한 자의 위치에 놓고 그리스도가 행하는 매사를 대하며, 자신을 악인의 위치에 놓고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과 그의 신분 실질을 평가하고 있다. 너희는 매우 큰 잘못을 범하였고, 이전 사람이 한 적이 없는 일도 저질렀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모두 머리에 면류관을 쓴 하늘의 그 높고 큰 하나님만 계속 섬겼지, 너희에게 아예 보이지 않는 이런 보잘것없는 하나님을 전혀 ‘시중들’ 줄 몰랐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의 죄행이 아닌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전형적인 예가 아닌가? 너희는 하늘의 하나님을 매우 숭배하고, 높고 큰 형상을 매우 숭상하며, 말재주가 비범한 사람에 대해 매우 탄복하며, 너에게 재물을 가득 채워 주는 하나님에게 순종하기를 매우 원하며, 곳곳에서 너의 뜻을 이루어 줄 수 있는 하나님을 매우 그리워한다. 네가 유독 숭배하지 않는 분은 바로 높지도 크지도 않은 이런 하나님이고, 유독 싫어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높이 우러러보지 않는 이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며, 유독 원치 않는 것은 너에게 돈 한 푼 전혀 주지 않는 이런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것이고, 유독 너로 사모하게 할 수 없는 분은 바로 사랑스럽지 않은 이런 하나님이다. 이런 하나님은 너로 시야를 넓히거나 귀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해 주지 못하고, 더욱이 너로 소망을 이루게 해 주지도 못하는데, 그러면 너는 왜 그를 따르는가? 이러한 문제를 너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에서 발췌

91. 네가 행한 것은 이 그리스도께 득죄한 것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 득죄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기쁨을 얻고 싶어 하지만 너희들 자신은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너희는 그의 말씀만 받아들일 뿐 그의 훈계와 책망은 받아들이지 않으며, 더욱이 그의 하나하나의 안배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를 온전하게 믿을 수도 없다. 이것은 또 어찌 된 일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너희의 믿음은 속이 텅 빈 계란 껍데기로, 영원히 병아리가 나올 수 없다. 왜냐하면 너희의 믿음은 너희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거나 생명을 얻게 한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꿈과 환상 같은 의탁과 희망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이 의탁과 희망을 위한 것이지, 진리와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은 단지 굽실거리고 염치도 모르면서 하나님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과정에 불과하여 참된 믿음이라고는 전혀 논할 나위가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믿음으로 어떻게 병아리가 나올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이러한 믿음으로 어떻게 성과가 있겠는가?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너희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욱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사실이 아닌가? 너희는 하늘의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땅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데, 나는 너희의 관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땅의 하나님을 착실하고 견실하게 섬기는 그 사람들만 칭찬하고, 땅의 그리스도를 인정한 적이 없는 그 사람들은 전혀 칭찬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하든, 마지막에는 모두 악한 자를 징벌하는 나의 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사람들이 바로 악한 자들인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이고, 그리스도께 기꺼이 순복한 적이 없는 악한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더욱이 인정하지도 않는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이 악한 자들에 포함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에서 발췌

92. 많은 사람들은 지옥에 갈지언정 진솔한 말을 하기 싫어하고, 참된 일을 하기 싫어한다. 그러므로 내가 이 진솔하지 못한 사람들을 따로 처리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물론, 나는 너희가 진솔한 사람이 되는 어려움의 정도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매우 영악하며 소인배의 마음으로 군자의 마음을 가늠하는 일에 아주 능숙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공손하고 아주 ‘얌전’하지만 영 앞에서는 교만방자한데, 너희는 그런 사람을 진솔한 사람의 대열에 나열할 수 있겠는가? 만일 네가 위선자이고, ‘교제’에 매우 능한 사람이라면, 나는 네가 하나님을 농락하는 사람이라고 정한다. 만일 너의 말에 많은 변명과 쓸데없는 구실이 있다면, 나는 네가 진리를 실행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만일 너에게 입을 열기 어려운 비밀이 많이 있는데, 네가 자신의 비밀, 곧 자신의 애로 사항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고 광명의 길을 찾기 싫어한다면, 나는 너를 구원받기 매우 힘든 사람이라고 하고, 또한 너를 흑암 속에서 빛을 보기 힘든 사람이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훈언 3칙>에서 발췌

93. 너의 두 입술은 비둘기보다도 선량하지만 너의 마음은 오히려 그 옛 뱀보다도 더 음험하다. 심지어 너의 두 입술은 레바논 여자처럼 예쁘지만 너의 마음은 오히려 레바논 여자보다 선량하지 못하고 더욱이 가나안 사람보다도 아름답지 못하다. 너의 마음은 너무나 궤사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에서 발췌

94.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교회를 위해 한다는 간판을 내걸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속마음이 바르지 않고, 교활하고, 궤사하다. 그가 한 많은 일은 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할 리가 없으며, 그의 마음은 아직도 사탄에게 속하여 하나님께로 향할 수 없다. 하나님도 이런 사람을 얻을 수가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우러나오는 것이다>에서 발췌

95. 사람의 독선, 자만, 자족, 거만함이 가로막음이 얼마나 크냐? 실제에 진입할 수 없는데 원인이 누구에게 있느냐? 자신이 하나의 옳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잘 성찰해 보아라. 너의 속마음과 목적은 다 나를 위한 것이냐? 너의 언어와 행동은 다 나의 앞에서 사는 것이냐? 너의 마음과 생각을 나는 다 감찰한다. 너의 안에 책망이 없느냐? 네가 하나의 가면을 쓰고 와서 사람에게 보여 주고 또한 태연자약하게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모습으로 가장하여 사람에게 보여 주는데, 이것은 자신을 위해 감싸는 것이다. 너의 악을 감싸려 하고 심지어 갖은 방법을 다해 다른 사람의 몸에 책임을 미루려 하는데, 너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3편 말씀>에서 발췌

96. 많은 사람들은 내 뒤에서 지위의 복을 탐하고 누리며, 먹고 자는 것을 탐하고 육체를 헤아리면서 늘 육체가 살길이 없을까 걱정하며, 교회에서 정상적으로 역할을 다하지 않고 공밥만 먹거나 혹은 내 말로 형제자매들을 훈계하고 높은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을 속박한다. 이런 사람들은 말끝마다 자신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늘 자신이 하나님의 지기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릇된 논리가 아닌가? 너의 마음 자세가 바르다 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면, 그것은 네가 우매한 것이다. 그러나 네가 본심이 바르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하나님의 집에서 공밥을 먹으며, 늘 육체의 안일함을 탐하고 누리면서 하나님의 이익은 고려치 않고, 항상 자신의 복과 이익만 도모하면서 하나님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행위는 하나님 영의 감찰을 받지 않으며, 늘 교활하고 궤사하게 형제자매들을 기만하고 앞에서 하는 것과 뒤에서 하는 것이 다르며, 마치 여우가 포도원에 들어간 것 같이 늘 포도를 훔쳐 먹고 포도원을 짓밟는데,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지기일 수 있겠는가? 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네가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도, 교회에 대해서도 아무런 부담이 없는데,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겠는가? 너 같은 사람을 누가 또 신임할 수 있겠는가! 네가 그런 식으로 섬기는데, 하나님이 너에게 더 큰 임무를 맡길 수 있겠는가? 그러면 일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맞겠는가>에서 발췌

97. 만일 사람이 섬기는 중에 표현해야 할 것을 표현해 내지 못하고, 본능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내지 못하며, 속이고 대충 한다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게 된다. 그런 사람은 바로 소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고 쓸모없는 폐물이다. 그런 사람을 또 어찌 당당한 피조물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겉보기는 화려하나 속은 썩은 물건이 아닌가? …사람이 자기의 본분을 할 수 없으면 당연히 그로 인해 죄책감과 빚진 감을 느껴야 하고, 마땅히 자기의 연약과 무능 그리고 자기의 패역과 패괴를 증오해야 하며, 더욱이 하나님을 위하여 목숨을 돌보지 않고 충성을 다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피조물이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누릴 자격이 있고, 하나님의 온전케 함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 너희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 어떠한가? 너희는 너희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는 하나님을 또 어떻게 대하는가? 너희는 또 어떻게 그의 앞에서 너희의 본분을 하는가? 모든 성의를 다하고 목숨을 돌보지 않고 충성을 다하였는가? 너희의 봉헌은 어떠한가? 너희가 나에게서 얻은 것이 그래 적은가? 너희는 분별할 줄 아는가? 나에 대한 너희의 충성심은 어떠한가? 나를 섬기는 것은 또 어떠한가?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베풀어 준 것과 너희를 위하여 한 것은 또 어떠한가? 너희는 모두 가늠해 본 적이 있는가? 너희는 모두 너희의 조금밖에 없는 그 양심으로 가늠하고 비교해 본 적이 있는가? 너희의 언행으로 누구에게 떳떳할 수 있겠는가? 설마 너희의 조그마한 봉헌으로 너희에게 베풀어 준 나의 모든 것에 떳떳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너희에 대해 한결같은 마음이고 추호의 선택도 없지만, 너희는 나에 대해 오히려 음흉한 심보와 딴마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고, 조금밖에 없는 너희의 기능이다. 그렇지 않은가? 설마 너희는 자신이 피조물의 본분을 전혀 다하지 못하였음을 모른단 말인가? 그러면 너희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 자신이 모두 무엇을 드러내고 살아냈는지는 너희 스스로가 잘 알지 않는가? 너희는 자기의 본분을 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관용과 풍부한 은혜를 얻기 바라는데, 그런 은혜는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너희 이 소인배들을 위하여 예비한 것이 아니라, 바라는 것 없이 달갑게 헌신하는 그 사람들을 위하여 예비한 것이다. 너희 이러한 사람들과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은 하늘의 은혜를 아예 누릴 자격이 없는데, 오직 고난의 나날과 끝없는 징벌만이 너희를 따르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98.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높지 않다. 사람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원뜻대로라면 사람이 다 즐겁고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사람이 모두 고생하기 싫어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자녀들은 본래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부모에게 효도할 몫을 마련하여 자신의 본분을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잘 먹지 못하거나 너무 평범하게 입게 될까 봐 걱정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의 길러 준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마치 언젠가 큰돈을 번 다음 효도하려는 듯하다. 나는 거기에서 사람에게 부모를 사랑하는 효심이 전혀 없으며, 모두가 ‘불효자’임을 발견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8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발췌

99. 나는 사람이 어떤 일에 부닥치든, 어떤 일을 대하든 늘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육체만 고려하며, 늘 자신을 위해 이유와 핑계를 찾고 진리는 전혀 없으며, 모두 자신의 육체를 위해 변호하고 자신의 앞날을 위해 타산하며, 모두 하나님께 은혜를 요구하고 어떤 이득이든 다 얻으려고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왜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너무나 많을까?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매우 탐욕스럽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이지가 전혀 없음을 증명한다. 사람이 하는 모든 것, 기도하든 교통하거나 설교하든, 어쨌든 사람의 추구, 사람의 생각, 사람이 동경하는 것은 다 하나님께 뭔가 요구하고, 뭔가 토색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뭔가 얻어 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에서 발췌

100. 사람은 이전에 무엇으로 살았느냐?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이 말은 사람의 본성을 요약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자신을 위한 것이고, 복을 받으려는 것은 더욱 자신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여전히 자신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 것도 자신을 위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 자신이 복받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 있었을 때에도 다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을 믿어도 다 자신이 복받기 위한 것이다. 복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복받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것은 다 사람의 패괴 본성에 대한 실증 설명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겉면의 달라짐과 성정 변화의 구별>에서 발췌

101. 너희는 아들딸을 위해, 남편을 위해,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나를 문밖에 버려둔다. 너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의 가정과 아들딸, 너희의 지위와 앞날, 그리고 너희의 누림이다. 너희는 말을 하거나 일 처리하면서 언제 나를 생각해 보았는가? 추운 날에 너희가 생각하는 것은 아들딸, 남편, 아내, 부모이고, 무더운 날에 너희가 생각하는 것도 내가 아니다. 본분을 할 때에 네가 생각하는 것은 너의 이익과 너 자신의 안전이고, 너의 가족이다. 네가 언제 나를 위해 일을 했던가? 네가 언제 나를 생각한 적이 있던가? 네가 언제 나를 위해, 나의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은 적이 있던가? 네가 나와 합한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네가 나에게 충성한 실제는 어디에 있는가? 네가 나에게 순복한 실제는 어디에 있는가? 네가 복받기를 바라지 않은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에서 발췌

102. 나는 너희의 충심은 잠시적인 것이고, 너희의 성의도 잠시적인 것임을 알고 있다. 너희의 심지(心志)와 대가는 오직 이 시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다만 마지막 한 번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처소를 힘써 쟁취하려고 한다. 너희의 목적은 단지 맞바꾸려는 것이지 진리에 빚지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나의 대가에 보답하려는 것도 아닌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략으로만 취하고 강공은 쓰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진심이 아니냐? 너희는 자기를 포장하지 말고, 자신의 처소를 위해 식욕도 잃고 밤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머리를 쥐어짜는 일은 더더욱 하지 말라. 결국 너희의 결말은 다 정해진 것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처소를 논하다>에서 발췌

103. 너희는 여러 해 동안 나를 따랐지만, 나에게 털끝 만큼도 ‘충성’한 적이 없으며, 너희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심지어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에 단단히 간직하고 있고, 또한 지금까지 그것을 버린 적이 없다. 너희는 모두 나를 따르고 있으면서, 심지어 나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 또 너희가 좋아하는 것들에 열중하고, 너희가 사랑하는 것들을 열애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요구한 충성심을 이용하여 너희가 아끼는 것(원문: 寵物)에 충성하고, 그것을 귀중히 여기고 있다고 말한다. 비록 너희가 나를 위해 조금 바쳤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너희의 전부를 뜻하지 않고, 너희가 진정으로 나에게 충성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너희는 자신이 열애하는 사업에 몸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녀에게, 어떤 사람은 남편에게, 어떤 사람은 아내에게 충성하고, 어떤 사람은 금전에, 어떤 사람은 사업에, 어떤 사람은 상사에게, 어떤 사람은 지위에 충성하며, 어떤 사람은 여자에게 충성한다. 너희는 너희가 충성하는 것들을 위해 피로를 느낀 적이 없고, 고민한 적이 없으며, 갈수록 자신이 충성하는 것들을 더 많이, 더 잘 소유할 수 있기를 갈구하면서 포기한 적도 없다. 너희는 지금까지 나를, 그리고 내가 한 말을 너희가 열중하고 있는 모든 것의 뒷자리에 놓았는데, 그것도 마지못해 그렇게 한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뒷자리마저도 자신이 충성하려고 하는, 하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위해 남겨 두었다. 그들은 나에 관한 것을 마음에 둔 적이 전혀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인가?>에서 발췌

104. 너희는 혹시 너희에 대한 나의 요구가 지나치고 내가 너희를 억울하게 한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는 이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너희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워할 때, 너희는 나에게 한 번도 충성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때 너희는 이로 인해 괴롭지 않았는가? 너희가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수고의 대가를 받을 때, 너희는 자신이 진리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으로 인해 낙담되지 않았는가? 너희는 언제 나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인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는가? 너희는 자녀를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무진 애를 쓰면서도 여전히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녀에게 세심하지 못했고, 자신의 온 힘을 다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에게는 어떤가? 너희는 지금까지 나를 진지하게 대한 적이 없고, 단지 기억으로만 남겨 놓았을 뿐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지는 않다. 너희는 지금까지 너희에 대한 나의 애쓰는 마음을 느낀 적이 없고, 이해한 적이 없으며, 조금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이런 ‘충성’은 내가 오랫동안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증오해 왔던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인가?>에서 발췌

105. 지금 너희 각 사람 앞에 돈을 얼마 놓아둔 후,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고 또한 너희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너희 대다수는 돈을 선택하고 진리를 포기할 것이다. 그나마 좀 나은 사람은 돈을 버리고 마지못해 진리를 선택할 것이고, 중립적인 사람은 한 손에는 돈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진리를 붙들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진면모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너희는 너희가 ‘충성’하는 모든 것과 진리 사이에서 다 이렇게 선택할 것이고, 너희의 태도 또한 여전히 이럴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너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다 옳고 그름에서 배회하지 않았는가? 가정과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화목과 파탄, 부와 빈곤, 지위와 평범함, 옹호받는 것과 배척당하는 것 등등 모든 정(正)과 반(反), 흑과 백의 싸움에서 너희는 무엇을 선택하였는가? 너희는 모를 리가 없겠지! 가정의 화목과 파탄 사이에서 너희는 전자를 선택하였고, 게다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금전과 본분 사이에서 너희는 또 전자를 선택하였는데, 심지어 돌이킬 의지조차 없었다. 사치와 빈곤 사이에서 너희는 전자를 선택하였고, 자녀, 아내, 남편과 나 사이에서 너희는 전자를 선택하였으며, 관념과 진리 사이에서도 너희는 여전히 전자를 선택하였다.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누그러지지 않고, 또 너희의 온갖 악행 앞에 나는 정말로 너희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고, 정말로 너무나 놀랐다. 오랜 시간의 심혈로 바꿔 온 것은 놀랍게도 너희가 나를 포기하고 나에 대해 막무가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날이 이미 각 사람 앞에 전부 드러나 있기 때문에, 너희에 대한 나의 기대는 오히려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도 여전히 어둡고 사악한 것을 추구하면서 손을 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너희의 결말은 어떻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인가?>에서 발췌

106. 내가 역사하는 기간에 너희는 늘 나와 맞서고, 내가 한 말을 들은 적이 없으며, 나는 나의 사역을 하고 너는 너대로 자신의 사역을 하며 자기의 소왕국을 세우는데, 너희 이 무리 여우나 개 따위들은 나와 맞서기만 한다! 언제나 자기만 사랑하는 자들을 자기 품에 끌어당기려고 하는데, 너희의 경외심이 어디에 있느냐? 속임수만 부린다! 순복과 경외가 없고 다 기만이고 모독이다! 그런 사람이 그래도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음란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남자는 늘 요염한 음녀들을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겨 ‘누리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음란한 귀신을 절대 구원하지 않으며, 너희 같은 그런 더러운 귀신들을 몹시 미워한다. 너희는 너희의 ‘색’과 너희의 ‘요염’에 훼멸되어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데, 너희가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너희 이 더러운 귀신과 악령들은 너무나 가증스럽다! 사람을 역겹게 한다! 그런 천한 놈이 그래도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죄 속에 빠져 있는데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이런 진리, 이런 길, 이런 생명은 너희의 마음을 끌지 못했지만, 그런 죄악, 돈, 지위, 명리, 육체적 누림, 남자의 용모, 여자의 요염은 오히려 너희의 마음을 끌었는데, 너희가 어찌 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겠느냐? 너희의 형상은 하나님보다 더 높고 크며, 너희의 지위는 하나님보다 더 높고, 사람들 가운데서의 위세와 명망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데, 너희는 놀랍게도 사람들이 숭배하는 우상이 되었다. 그럼 너는 천사장이 된 것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7)>에서 발췌

107. 사람은 다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천박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설마 스스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짓밟는 자체가 가치 없는 것이 아니란 말이냐? 사람은 모두 음녀처럼 스스로를 우롱하고, 자신을 임의로 다른 자의 손에 넘겨주어 유린하게 두었다. 그럼에도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비천함을 모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일을 해 주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누림으로 삼으며, 그로 인해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장악하게 넘겨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의 더러운 부분이 아니냐? …사람이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최대 결함은 바로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의 자색(姿色)을 자랑하고, 자기의 추악한 몰골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 사이의 관계가 비정상이고, 사람 사이에 정상적인 대인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 말할 나위도 없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4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발췌

108. 너희는 본래 진흙에서 분해되어 나온 것들이다. 아무튼 오물 찌꺼기에서 골라낸 것에 속하는데, 원래는 더러움에 속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혐오받은 것이다. 다만 원래 그것에게 속하고 그것에게 짓밟히고 더럽혀졌기 때문에 진흙에서 분해되어 나온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성결한 것이 아니라 일찍이 사탄에게 우롱당한 적이 있는,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이다. 이것은 너희에 대한 가장 적합한 평가이다. 너희는 본래 고인 흙탕물 속의 불순물이지, 진흙 속의 좋고 많은 물고기나 새우 종류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에게는 그 어떤 누릴 만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툭 터놓고 말하면, 너희는 본래 가장 비천한 하층 사회의 개돼지만도 못한 짐승 따위들이다. 솔직히 말해, 이런 호칭은 너희에게 있어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과장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일찍이 문제를 간략하게 한 것이다. 이런 표현은 너희에 대한 존칭이라고 할 수 있다. 너희의 ‘사람’됨의 식견, 언사, 행동 및 모든 생활, 진흙 속에서의 너희 지위만으로도 너희의 신분이 ‘남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의 원래 신분과 사람의 가치는 어떠한가>에서 발췌

109. 내가 너희에게 한 것이 어찌 모두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오히려 한결같이 이렇게 나 여호와를 대한다. 즉, 나의 제물을 훔쳐 먹고, 내 제단 위의 헌물마저 빼앗아 자기 집으로 가져가 그 이리 굴의 이리 자손들에게 먹이며, ‘백성’과 ‘백성’ 간에 서로 싸우고 모두 눈을 부릅뜨고 총칼로 상대하며, 또 나 전능자의 말을 뒷간에 던져 배설물과 함께 더럽힌다. 너희의 인격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의 인성은 모두 짐승처럼 변하였다! 너희의 ‘마음’은 이미 단단한 돌처럼 굳어져 버렸다. 내 분노의 날이 임하는 때에, 오늘날 나 전능자에게 행한 너희의 악행을 심판한다는 것을 너희가 어찌 모르느냐? 너희는 이렇게 나를 속이면서 내 말을 진흙 속에 던지고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 그렇게 내 눈을 피해서 한다고 내 분노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느냐? 너희가 나의 제물을 훔쳐 먹고 재물(財物)을 탐낼 때, 나 여호와의 두 눈이 그것을 이미 보았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내 제물을 훔쳐 먹을 때는 다 제물을 바치는 그 제단 앞에 있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는 어찌 스스로 총명한 체하면서 이렇게 나를 기만할 수 있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혈기에 속하는 사람은 아무도 그 분노의 날을 벗어날 수 없다>에서 발췌

110. 너희 이 냄새가 지독한 작은 벌레들이 나 여호와의 제단 위의 제물을 훔쳐 먹는데, 그럼에도 땅에 떨어진 너희의 패망한 명성을 만회하여 이스라엘 선민이 될 수 있겠느냐? 수치도 모르는 천한 놈이다! 제단 위의 그 제물은 사람들이 나에게 바친 것인데, 그것은 나를 경외하는 사람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본래는 내가 지배하고 사용하라고 내게 바친 것인데, 네가 어찌 사람들이 내게 바친 작디작은 산비둘기를 갈취해 갈 수 있단 말이냐? 너는 유다가 될까 두렵지 않으냐? 너는 너의 밭이 ‘피밭’이 될까 두렵지 않으냐? 수치도 모르는 놈이다! 너는 사람이 바친 산비둘기가 모두 너 구더기의 배 속을 채우라고 준 것이라고 여기느냐? 내가 너에게 베풀어 주는 것은 내가 기꺼이 원해서 베푸는 것이고, 내가 너에게 베풀어 주지 않는 것은 당연히 내가 지배하기에 네가 함부로 나의 헌물을 훔쳐 먹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역사하는 이는 나 여호와, 곧 창조주이다. 사람들이 제물을 드리는 것은 나를 위한 연고인데, 너는 네가 뛰어다녔다고 주는 삯이라고 여기느냐? 너는 정말 수치도 모른다! 너는 누구를 위해 뛰어다녔느냐? 그것은 너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냐? 왜 나의 제물을 훔쳐 먹느냐? 왜 내 돈주머니의 돈을 훔쳐 가지느냐? 너는 ‘가룟 유다의 자손’이 아니냐? 나 여호와의 제물은 제사장에게 누리라고 공급하는 것이다. 네가 제사장이냐? 감히 득의양양하게 나의 제물을 먹을 뿐만 아니라 상 위에 차려놓기까지 하는데, 너는 너무나도 가치 없다! 가치 없는 천한 놈이다! 나 여호와의 불은 결국 너를 깨끗이 태워 버리고 말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낙엽귀근 시 너는 자신이 행한 모든 악행을 후회할 것이다>에서 발췌

111. 너희는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지키지 못하며,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삶의 분투 목표가 없고 가치나 의의가 조금도 없으며, 사람으로서 오히려 양심과 인격 그리고 신용이 조금도 없는데, 너희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의 돈을 탐하며, 하나님의 제물을 먹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도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양심도 지키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그마한 요구에도 이르지 못하는데, 너희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밥을 먹고 하나님의 산소를 호흡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만, 결국은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인식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밥통이 되었는데, 이것은 개보다도 못한 짐승이 아닌가? 동물 중에 너희보다 더 악독한 것이 있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112. 사람의 일생은 매우 슬프고 또 매우 분주하며, 사람의 일생은 또 공허하면서도 즐겁다. 사람의 일생에는 새로운 ‘발명과 창조’가 전혀 없다. 아무도 공허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고, 아무도 의의 있는 인생을 발견한 적이 없으며, 아무도 ‘실제적인 인생’을 체험한 적이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5편 말씀>에서 발췌

113. 내가 만물을 창조하였고 또 인류를 창조하였지만,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 임하니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반격하고 나에게 ‘보응’한다. 그래 내가 사람에게 한 것이 다 사람에게 무익한 것이란 말이냐? 그래 내가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단 말이냐? 왜 사람은 나를 저버리느냐? 왜 사람은 나를 얼음장처럼 차갑게 대하느냐? 왜 땅 위 도처에 시체가 널려 있는 것이냐? 그래 그것이 내가 사람에게 창조해 준 세상의 모습이란 말이냐? 내가 사람에게 비할 바 없는 풍부함을 주었는데도 왜 사람이 나에게 돌려주는 것은 텅 빈 두 손뿐이냐? 왜 사람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느냐? 왜 사람은 늘 내 앞에 있지 않느냐? 그래 나의 말이 전부 헛된 것이란 말이냐? 그래 나의 말이 물속의 ‘열기’가 되어 사라졌단 말이냐? 왜 사람은 나와 협력하기 싫어하느냐? 그래 나의 날이 임할 때가 바로 사람이 죽을 때란 말이냐? 그래 내 나라가 형성될 때에 내가 사람을 다 멸한단 말이냐? 왜 아무도 나의 전체 경영 계획에서 나의 마음을 더듬어 낸 적이 없느냐? 사람은 왜 내 입에서 발한 음성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혐오하며 버리느냐? 나는 그 어떤 사람도 정죄하지 않고, 다만 모든 사람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반성하게 할 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5편 말씀>에서 발췌

114. 우리가 태어난 국가는 각종 더러운 귀신이 모인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에는 더러운 귀신이 도처에서 횡행하며 패권을 잡고 있다. 그리하여 이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그것에게 더러워졌다. 생활 습관, 풍속과 인심, 사람의 사상과 관념이 다 뒤떨어지고 보수적이어서 하나님에 대한 각종 관념이 형성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쉽게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와 하나님 뒤에서 다른 수단을 부리며, 사탄을 공양하는 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여기는데, 이것은 가장 뒤떨어진 표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길 … (2)>에서 발췌

115. 몇천 년 동안 사탄에게 결박된 사람은 계속 그것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지금까지 벗어난 적이 없다. 사람은 계속 고생스럽게 모색하고 몸부림치고 있다. 이전에는 모두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며 사탄을 공양하였고, 가정의 얽매임, 세속의 얽매임, 사회의 교제가 사람을 단단히 묶어 놓아 벗어나기 어려웠다.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이런 사회 환경하에 어디에 가서 의의 있는 인생을 찾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길 … (2)>에서 발췌

116. 하나님은 날마다 꿈속에 있는 자민을 깨우며 구원하고 있는데, 모든 자민은 수면제를 먹기라도 한 듯 계속 혼미 상태에 놓여 있고, 잠시라도 일깨워 주지 않으면 또 잠이 들어 무감각해진다. 또 모든 자민은 전신의 2/3가 마비되기라도 한 듯 자기 자신의 필요를 모르고,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며, 심지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조차도 모르는데, 여기에서 큰 붉은 용이 많은 노력을 들여 사람을 패괴시켰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것의 추악한 몰골은 중국 곳곳에 두루 퍼졌고 심지어 사람으로 진저리 나 더 이상 이 부패하고 저급한 나라에 머물고 싶지 않게 한다.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는 것은 큰 붉은 용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노기 속에서 사람을 일깨워 주고,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의 분노의 눈길 아래에서 살고 있다. 그러한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찾을 줄 모르고 좌시하며 먹여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설령 굶어 죽을지라도 스스로 밥을 찾아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의 ‘양심’은 오래전에 사탄에게 패괴되어 ‘냉심’으로 변질되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일깨우지 않았다면 너희는 마치 ‘냉동’ 상태에 있기라도 한 듯, 또 마치 ‘동면’ 상태에 있기라도 한 듯, 여전히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였다. 사람은 모두 동면하는 동물이 겨울을 나는 것처럼 먹을 것도 요구하지 않고 마실 것도 요구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자민의 현재 상태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3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발췌

117.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자기의 재물을 쓰려고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일생의 에너지를 쏟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하나님이 너무 지나치게 했다고 말하며, 하나님에게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면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너희의 이러한 인성으로는 너희가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온몸의 힘을 다 쓴다 해도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다. 너희는 너희가 인류 중의 불량품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너희의 인성은 가장 비천한 인성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너희는 너희의 ‘존칭’이 무엇인지를 모르는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너희를 늑대의 아비나 어미, 늑대의 자식이나 손자라고 하고, 너희를 늑대의 후예라고 하며, 늑대의 민족이라고 한다. 너희는 마땅히 자신의 신분을 알고 항상 마음속에 기억해야지, 자신을 그 어떤 상등 인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인류 중에서 가장 악랄한 한 무리의 비인류이다. 이런 것들을 너희가 다 모른단 말인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에서 발췌

118. 너희는 오늘 내 입에서 나온 날 선 검만 보았을 뿐, 내 손에 있는 형벌의 채찍과 사람을 불사르는 불길은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는 여전히 내 앞에서 교만하고 방종하며, 여전히 나의 집에서 나와 싸우면서 사람의 혀로 나의 말에 반박한다. 사람은 나를 무서워하지 않고, 오늘까지 적대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너희의 입에는 불의한 자의 혀와 이가 있고, 너희의 언행은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하게 한 독사와 같다. 너희는 서로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고, 내 앞에서 자신의 지위와 명리를 다투지만, 내가 은밀한 곳에서 너희의 언행을 관찰하고 있음은 전혀 모른다. 너희가 내 눈앞에 오기 전에 나는 벌써 너희의 마음속을 다 들여다보았다. 사람은 늘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늘 내 눈의 감찰을 피하려고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사람의 언행을 피한 적이 없고, 일부러 사람의 언행을 나의 두 눈에 닿게 하였다. 그것은 내가 사람의 불의를 형벌하고, 사람의 패역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뒤에서 하는 말과 행동은 늘 나의 심판대 앞에 있는데, 그 심판대는 지금까지 사람을 떠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패역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에서 발췌

119. 너희가 오늘날 행한 것을 너희는 알고 있느냐? 세상에서 횡행하며, 암투를 벌이며, 서로 속고 속이며, 기만하고 숨기며, 뻔뻔스럽고 부끄러운 줄 모르며,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며, 교활하고 궤사하며, 아첨하여 떠받들며, 독선적이며, 스스로 높은 체하며, 교만방자하며, 산속의 야수같이 야만적이며, 짐승의 왕같이 난폭한데, 어디 사람다운 모양이 있느냐? 무지막지하게 굴면서 지금까지 나의 말을 진귀한 보물로 여긴 적이 없고 경멸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렇게 한다면 성과, 진정한 인생, 아름다운 소망이 어디서 오겠느냐? 사치한 상상이 정말로 너를 범의 아가리에서 구출할 수 있겠느냐? 정말로 너를 불의 불사름에서 구출할 수 있겠느냐? 네가 정말로 나의 역사를 더없이 값진 보물로 여긴다면 이와 같은 지경에 떨어질 수 있겠느냐? 설마 너의 운명이 정말로 바뀔 수 없단 말이냐? 너는 이렇게 억울하게 죽기를 기꺼이 원하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의 실질과 사람의 신분>에서 발췌

120. 잔혹한 인류야! 언제까지 서로 암투를 벌이고 쟁탈하며 서로 명리를 다투고 서로 싸우고 죽이겠는가? 비록 하나님이 무수히 많은 말씀을 하였을지라도 각성하는 사람이 없다. 가정과 자녀를 위하고 사업, 앞날, 지위, 허영, 돈을 위하며 먹고 입는 것과 육체를 위하는데,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하는가? 설령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불과 몇이 되지 않는다.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억누르거나 배척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강제로 사형 판결을 받았는지 모르고, 얼마나 많은 잔혹한 법관들이 하나님을 정죄하여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 모른다고 한다. 진정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의인이라 칭함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에서 발췌

121. 하나님의 불같이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기대에 돌아온 것은 뜻밖에도 얼음장같이 차가운 마음이고, 돌아온 것은 냉혹하고 무정한 눈길이며, 돌아온 것은 사람의 한번 또 한번의 훈계이고 한번 또 한번의 욕설이며, 돌아온 것은 풍자와 조소, 조롱, 폄하이고, 돌아온 것은 사람의 비웃음이며, 돌아온 것은 사람의 짓밟음과 사람의 저버림이고, 돌아온 것은 사람의 오해, 원망, 멀리함, 피함이며, 돌아온 것은 전부 기만이고, 돌아온 것은 전부 타격이며, 돌아온 것은 전부 쓴 열매이다. 따스한 말씀이 뜻밖에도 ‘매서운 눈초리와 만인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으니, 하나님은 ‘머리 숙여 어린아이의 소가 되는’ 고통을 참는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동안, 별을 대한 적이 얼마였고, 달을 이고 별을 진 적이 얼마였던가! 아버지와 헤어지는 것보다 천배가 넘는 고통을 참고, 사람의 공격과 ‘깨뜨림’을 참고, 사람의 ‘훈계’와 ‘질책’을 참으며 전전반측했다. 하나님의 ‘*비미은장’으로 바꿔 온 것은 뜻밖에도 사람의 경시와 사람의 불공평한 견해와 대우이며, 하나님의 침묵과 인내와 포용으로 바꿔 온 것은 뜻밖에도 사람의 탐욕스러운 눈길인데, 조금도 사정없이 하나님을 발로 짓밟아 죽이려고 꾀하고, 하나님을 땅 틈에 밟아 넣으려고 꾀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어쩌다 ‘이렇게 총명할’ 줄이야! 사람이 업신여기는, 사람이 깔보는 하나님을 만인의 발아래에 꾹 눌러놓고 자기를 높이 내세우는데, 마치 ‘산을 차지하여 왕 노릇을 하려는’ 듯하고, 마치 ‘대권을 독점하고’ ‘수렴청정’하여 하나님으로 온순하게 고분고분 ‘배후 감독’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반항하지 못하게 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으로 ‘마지막 황제의 배역’으로 분장시켜 ‘꼭두각시’ 역을 맡게 하고 조금도 자유가 없게 하려는 듯하다. 사람의 행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또 어찌 계속 하나님께 이런저런 요구를 할 자격이 있겠는가? 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건의’를 하겠는가? 또 어찌 계속 하나님께 사람의 연약을 이해해 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겠는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있겠는가? 어찌 하나님의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너그러움을 받을 자격이 있겠는가? 어찌 하나님의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사함을 받을 자격이 있겠는가? 사람의 양심은 어디에 있는가? 일찍이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였고, 일찍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뜨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9)>에서 발췌

122. 사람은 모두 진주를 어둠 속에 던지고, 언제나 흑백을 혼동하며 정의와 진리를 억누르고, 불공평과 불의를 공중에 높이 쳐들며, 광명을 몰아내면서 흑암 속에서 향락을 즐긴다. 진리와 정의를 찾는 사람이 오히려 빛을 쫓아내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을 발아래에 밟고 자기를 높이 떠받든다. 사람은 모두 도적 떼와 같은데, 무슨 이지(理智)가 있겠는가? 누가 시비를 분명히 가릴 수 있겠는가? 누가 정의를 지킬 수 있겠는가? 누가 기꺼이 진리를 위해 고난받으려고 하겠는가? 모두 극악무도하다!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는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미친 듯이 외치는데, 모두 개와 닭 같은 것들이다. 작당하고 독립왕국을 세우며, 주위를 방해하여 계속 떠들썩하게 하고, 눈을 감고 미친 듯이 계속 짖어 대는데, 닭도 울고 개도 짖으며 난장판을 이루어 ‘매우 시끌벅적하다’. ‘원칙과 주견이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 모두 그 조상의 ‘뛰어난 명성’을 높이 받들고 있다. 이 개와 닭 같은 것들은 일찍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떨지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사람은 모두 개와 닭 같아 남이 말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 한다.”라고 말씀한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을 오늘날까지 ‘기세 드높게’ 하였는데, 하나님의 사역이 어떠하든, 정의가 있든 없든, 하나님이 발붙일 곳이 있든 없든, 내일이 어떠하든, 자신이 비천하든, 자신이 더럽든, 사람은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내일을 위해 걱정하지 않았다. 모든 이익과 모든 보배를 전부 자신의 품속에 끌어안고, 하나님께 던진 것은 다만 먹다 남은 음식인데, 얼마나 흉악하고 잔인한 인류인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9)>에서 발췌

123. 하나님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고, 또한 발로 하나님을 밟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고 있으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또 하나님을 기만하고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받들고’ 하나님의 얼굴을 앙망하면서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전혀 겸양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 위에 앉아 하나님의 ‘불의’를 ‘심판’하고 있으며, 입으로 “하나님께 빚졌어요.”라고 말하고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비방하고 있고, 하나님을 ‘관용’하면서도 하나님을 압제하고 있고 또한 입으로는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요.”라고 말하고 있으며, 손으로 하나님의 물건을 쥐고 있고 입으로 하나님이 주는 음식을 씹고 있지만 눈으로는 냉혹하고 무정하게 하나님을 주시하고 있는데, 마치 통째로 삼키려는 듯하다. 진리를 보고는 기어이 ‘사탄의 궤계’라고 우기고, ‘정의’를 보고는 억지로 그것을 ‘자기 희생’으로 바꾸며, ‘사람의 행위’를 보고는 기어이 ‘하나님의 *소시’라고 우기려고 하며, ‘사람의 타고난 자질’을 보고는 기어이 ‘진리’라고 우기며,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는 기어이 ‘오만 자대(自大)’, ‘교만 독선’이라고 우기며, ‘하나님’을 보고는 기어이 그에게 ‘사람’이란 라벨을 붙여 그를 억지로 끌어다가 사탄과 한 패거리인 ‘피조물의 자리’에 놓으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사람의 글’이라고 말하며, ‘영이 육신에 실제화되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사탄의 후예’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비미은장(卑微隱藏)하였음’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사탄이 수치당하고 하나님은 이미 이겼다.”라고 말한다. 이런 폐물들! ‘집 지키는 개’의 기능보다도 떨어지다니! 흑백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부러 흑백을 전도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9)>에서 발췌

124. ‘배반’은 바로 서원을 어기고 도덕 규범을 위반하고 인간 윤리에 어긋나는, 인성을 상실한 행위이다. 사람으로서 네가 다른 사람을 배반했던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든 못하든, 혹은 네가 다른 사람을 배반하는 일을 이미 여러 번 했었든, 결론적으로, 너희가 인간 세상에 태어난 이상, 모두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네가 부모나 친구를 배반할 수 있는 이상, 다른 사람도 배반할 수 있으며, 더욱이 나를 배반하여 내가 혐오하는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배반은 겉면의 비도덕적 행위만이 아니라 더욱이 진리와 서로 대립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사람이 나를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원이다. 그러므로 내가 총결해 낸 말이 있다. 바로 배반은 사람의 천성이라는 것이다. 이 천성은 각 사람이 나와 합하는 데의 천적(天敵)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한 가지 매우 심각한 문제―배반 (1)>에서 발췌

125. 어떤 사람이나 다 자신의 말과 행위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대표할 수 있다. 그 본래 모습은 당연히 사람의 본성이다. 네가 말을 매우 교활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너의 본성은 바로 교활한 것이다. 너의 본성이 매우 궤사하다면 너는 일 처리를 매우 교활하게 할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으로 매우 쉽게 속임수에 빠지게 할 것이다. 너의 본성이 매우 악랄하다면 네가 말은 매우 듣기 좋게 할지 몰라도 행위는 오히려 너의 악랄한 수단을 가리지 못할 것이다. 너의 본성이 매우 나태하다면 네가 하는 말들은 모두 자신의 건성과 나태함의 죄책에서 벗어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너의 행위는 오히려 매우 굼뜰 것이며, 게다가 아주 잘 둘러맞추고 사실의 진상도 아주 잘 숨길 것이다. 너의 본성이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라면 네가 하는 말은 아주 합리적일 것이고, 게다가 행위도 진리에 잘 부합될 것이다. 너의 본성이 누구에게나 매우 충성스러운 것이라면, 너는 말을 틀림없이 아주 진실하게 할 것이고, 게다가 일도 착실하게 하여 주인이 마음 놓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너의 본성이 여색이나 돈을 탐하는 것이라면 너의 마음에는 늘 그런 것들로 가득 차 부지중에 도를 넘거나 부도덕한 일들을 저질러 한평생 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역겹게 만들 것이다. 바로 내가 말한 것처럼, 너에게 배반의 본성이 있으면 너는 거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너희는 자신이 남에게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없다 해서 배반하는 본성이 없다고 요행스럽게 생각하지 말라. 만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무나 역겹다. 내가 매번 한 말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부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네가 한 가지 일에서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해서, 그것으로 매사에서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증명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결혼으로 인해 좌절하여 진리를 찾고 구하려는 믿음을 잃었으며, 어떤 사람은 가정의 파탄으로 나에게 충성할 의무를 상실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일시적인 쾌락과 자극을 찾기 위해 나를 떠나갔으며, 어떤 사람은 흑암의 벼랑에서 쓰러질지언정 광명 속에서 성령 역사의 기쁨을 얻으며 살기를 원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돈을 차지하려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친구의 권고도 마다하고 아직까지도 잘못된 길에서 돌아설 줄 모르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다만 나의 비호를 받기 위해 잠시나마 나의 이름 아래에 머물러 있고, 어떤 사람은 죽음이 두려워 부득불 나에게 좀 봉헌하고 있는 등등, 이런 부도덕하고 더욱이 인격 없는 행실들은 다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벌써 나를 배반한 행위가 아니냐? 물론, 나도 사람의 배반은 미리 계획해 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 본성에서 자연적으로 유로(역주: 흘러나옴)된 것임을 알고 있다. 또 나를 배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더욱이 나를 배반하는 일을 하고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며, 반대로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다면 이런 배반을 어떻게 만회하고 또 오늘날의 국면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너희는 생각하고 있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한 가지 매우 심각한 문제―배반 (1)>에서 발췌

126. 사람의 본성은 나의 실질과 확연히 다르다. 왜냐하면 사람의 패괴 본성은 다 사탄에게서 왔고, 사람의 본성은 사탄의 가공을 거친 것이고 사탄에게 패괴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사탄의 사악하고 추함의 온상에서(직역: 추한 것에 물들며) 생존하는 것이지, 진리의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성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광명 속에서 생존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본성에는 선천적으로 진리가 갖춰져 있을 리가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실질을 가지고 태어날 리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본성이 갖춰져 있는데, 이 본성이 바로 내가 말하려는 문제, 곧 배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한 가지 매우 심각한 문제―배반 (2)>에서 발췌

127. 사람의 영혼은 모두 사탄의 손아귀에 장악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육체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사탄에게 침점(侵占)되었는데, 이러한 육체, 이러한 인류가 어찌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수 있겠고, 어찌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과 합할 수 있겠느냐? 사탄이 반공중에 쫓겨난 원인이 바로 나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라고 어디를 가겠느냐? 이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이 곧 배반이라고 하는 원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한 가지 매우 심각한 문제―배반 (2)>에서 발췌

128. 네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따른 사람이든 너의 본성은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이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생명 성숙이 없고 상대적인 성정 변화만 있기 때문이다. …너의 생명이 얼마나 크든, 너의 체험이 얼마나 깊든, 너의 믿음이 얼마나 크든, 네가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로 나아가든, 하나님을 배반하는 너의 본성은 언제 어디서나 터져 나올 것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천성이다.”라는 것을 알려 주려고 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부 내용 소개>에서 발췌

129. 나에게 절대적으로 순복하지 못하는 행위는 배반이고, 나에게 충성하지 못하는 행위는 배반이며, 나를 기만하고 거짓말로 나를 속이는 행위는 배반이고, 관념이 첩첩이 쌓인 데다가 사방에 퍼뜨리기까지 하는 것은 배반이며, 나의 증거와 나의 이익을 수호하지 못하는 것은 배반이고,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면서도 웃는 얼굴을 내게 선사하는 행위는 배반이다. 이런 행위는 다 너희가 일관되게 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너희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서 너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배반하는 일을 아이들 장난으로 볼 수 없고 더욱이 보고도 못 본 척할 수 없다. 오늘날 내가 너희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이러한데, 만약 어느 날 너희에게 묻는 사람이 없을 때가 되면, 너희는 모두 산을 점령하여 위세 부리는 마적이 되지 않겠느냐? 그때에 너희가 하늘을 노하게 하는 큰일을 저지른다면, 그 참극은 누가 수습하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한 가지 매우 심각한 문제―배반 (1)>에서 발췌

130. 사탄에게 패괴된 영혼들은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장악되어 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 구별되어 사탄의 진영에서 구원받아 오늘날의 하나님 나라로 오게 되었는데, 이 사람들은 더 이상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지 않는다. 이러함에도 사람의 본성은 여전히 사람의 육체에 뿌리박혀 있다. 다시 말해, 너희의 영혼은 이미 구원되었지만 너희의 본성은 여전히 옛 모습이며, 너희가 나를 배반할 가능성은 여전히 100%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역사가 이처럼 장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너희의 본성이 거의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기(직역: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지금 너희는 모두 본분을 하면서 힘을 다하고 고생하고 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바로 너희 각 사람은 다 나를 배반하여 다시 사탄의 권세 아래로 돌아가고 사탄의 진영으로 돌아가 옛 삶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너희가 지금처럼 이렇게 인간미가 좀 있고 사람의 모양이 좀 있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심각한 자는 멸망될 것이고, 또한 영원히 회복불가하여 영세토록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중형에 처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 앞에 놓여진 문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한 가지 매우 심각한 문제―배반 (2)>에서 발췌

131. 사람의 실질만으로도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 환경이 있어야 배반하고, 환경이 없고 핍박하는 사람이 없으면 배반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핍박하는 사람이 없어도 배반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패괴 실질 문제이고 본성 문제이다. 네가 지금 숨만 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이 내면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맞느냐? 왜 이렇게 말할까? 사람 안에 배반하는 것이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이 없고, 사람의 영과 혼에 모두 하나님의 성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베드로의 길을 가야 한다>에서 발췌

132. 왜냐하면 전 인류의 상공은 혼탁하고 어두워 조금도 맑은 느낌이 없고, 또 인간 세상은 캄캄하여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머리를 들어도 햇빛이 보이지 않으며, 걷는 길은 질퍽질퍽하고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하며, 도처에 송장이 널려 있고 어두운 구석에는 죽은 사람의 해골로 가득하며, 음산한 구석에는 온통 귀신 무리들이 기거하고, 인류 가운데에는 또 도처에서 귀신들이 출몰하며, 더러움이 가득한 각종 짐승의 후손들이 서로 죽이고 참혹하게 싸우는데 싸우고 죽이는 소리가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와 이러한 세계 그리고 이러한 ‘인간 낙원’인데 어디에 가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겠는가? 사람은 또 어디에 가서 인생의 처소를 찾겠는가? 일찍이 사탄에게 짓밟힌 인류는 본래 사탄 형상의 연기자이고, 더욱이 사탄의 화신이며, 사탄을 위해 ‘드높은 간증’을 하는 증거물이다. 이러한 ‘인류’와 이러한 인간쓰레기, 이러한 패괴된 ‘인류 가족’의 자손이 어찌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서 발췌

133. 왜냐하면 인류가 내 경영의 부속물인 것은 틀림없지만, 더 적절하게 말하면 인류는 나의 원수이고 나를 대적하고 거역하는 악한 자이며, 인류는 나에게 저주받은 그 악한 자의 후예이고 나를 배반한 그 천사장의 후손이며, 인류는 일찍이 내게서 버림받고 나와 첨예하게 맞서는 악마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서 발췌

134. “하늘에서는 사탄이 나의 적(원문: 天敵)고, 땅에서는 사람이 나의 철천지원수이다. 하늘과 땅의 연합으로 인해 나는 그들을 구족까지 연좌시킬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원수이다. 하나님의 원수라고 하는 까닭은 사탄이 하나님의 크나큰 은덕에 보답하기는커녕 ‘역류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탄은 하나님께 ‘효심’을 다하지 못했다. 사람도 그렇지 않으냐? 전혀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부모’의 길러 준 은혜에도 보답하지 않고 있는데, 땅에 있는 사람이 바로 하늘에 있는 사탄의 친척임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탄과 동심합의(同心合意)하여 하나님과 맞서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8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발췌

135. 너의 마음속에 매우 큰 비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네가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네가 광명의 비췸이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너의 마음과 너의 영은 그 악한 자에게 빼앗겼으며, 너의 두 눈은 흑암에 가려 하늘의 태양과 밤하늘의 반짝이는 그 별을 보지 못하며, 너의 두 귀는 기만하는 말에 막혀 천둥 치는 듯한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물소리도 듣지 못한다. 너는 본래 소유하고 있어야 할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전능자가 너에게 베풀어 준 모든 것도 잃어버렸으며, 끝없는 고해 속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할 힘도 없고, 살아 돌아올 희망도 없으며, 다만 몸부림치고 있고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 시각부터 너는 그 악한 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도록 운명 지어졌고, 전능자의 축복과 공급을 멀리하여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천만 번 불러도 너의 마음과 너의 영을 일깨우기 어렵다. 너는 악한 자의 손아귀에서 깊이 잠들어 있고, 그 악한 자에게 유혹되어 끝없는 지경에 들어가 방향도 없고 이정표도 없다. 그때부터 너는 시초의 천진무구함을 잃어버렸고, 전능자의 보살핌을 피하기 시작하였다. 그 악한 자가 너의 마음속에서 너의 모든 것을 이끌면서 너의 생명이 되어, 너는 더 이상 그 자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의심하지도 않으며 그 악한 자를 너의 마음속의 하나님으로 간주하였다. 너는 그 자를 공양하고 참배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자와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서로 생사를 약속하였다. 너는 네가 도대체 어디에서 왔고, 왜 살아야 하며, 왜 ‘죽는’지를 전혀 모른다. 전능자는 너에게 낯설게 보였으며, 너는 그의 근원을 모르고, 더욱이 그가 너에게 행한 모든 것도 모른다. 그에게로부터 온 모든 것이 너에게는 원수처럼 보였으며, 너는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그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너는 그 악한 자와 동행하면서 네가 전능자의 공급을 받던 날부터 시작하여 수천 년의 비바람을 그 악한 자와 함께 겪어 오면서 이전에 네 생명의 근원이었던 하나님을 ‘대항’하고도 회개할 줄 모르고, 더욱이 자기가 이미 멸망될 지경에 이른 것도 모른다. 너는 악한 자가 전에 너를 유혹하고 괴롭혔다는 것을 잊어버렸고, 너의 시초를 잊어버렸으며, 오늘까지 이렇게 한 걸음씩 그 악한 자에게 잔혹하게 해를 입었다. 너의 마음과 너의 영은 이미 마비되고 부패되어 더 이상 인간 세상의 고뇌를 원망하지 않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여기지도 않으며, 더욱이 전능자의 존재 여부도 개의치 않는다. 일찍이 그 악한 자가 너에 의해 너의 친 아비로 인정되었기에, 너는 이미 그 자를 떠날 수 없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네 마음속의 ‘비밀’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전능자의 탄식>에서 발췌

136. 사람은 그 서로 다른 시기에 하나님을 따라왔지만, 하나님이 만물 생령(生靈)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어떻게 만물을 지배하고 지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고 이전의 사람들까지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 은밀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이 아직 실현되지 않아서도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영이 하나님과 너무 멀어져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동시에 사탄을 섬기는 지경에 처했는데도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해서이다. 하나님의 발자취와 나타남을 자발적으로 찾는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도 없으며, 모두 사탄과 악한 자에게 잠식되어 이 세상에 적응하려고 하고, 이 사악한 인류의 생존 법칙에 적응하려고 한다. 이 지경에 처해 사람의 마음과 영은 사탄에게 바치는 진상물과 사탄의 먹이가 되었고, 더욱이 사탄이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 되었으며, 사탄의 당연한 놀이터가 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사람됨의 도리를 더 이상 모르게 되었고, 사람의 생존 가치와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모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의 마음에서 점차 모호해져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의의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과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온 율법과 법도에 저항하기 시작했으며, 사람의 마음과 영은 마비되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만든 사람을 잃게 되었고, 사람 또한 원래의 뿌리를 잃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 인류의 비애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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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③박삭미리(撲朔迷離): 일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구분하기 힘든 경우를 이르는 말.

④교회에 공급: 형제자매들을 양육.

⑤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⑥천경지의(天經地義): 하늘이 정하고 땅이 받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나 법칙을 뜻한다. 천경지위라고도 한다.

⑦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⑧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⑨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⑩간뇌도지(肝腦塗地): 간과 뇌를 땅에 쏟아낸다는 뜻으로 목숨을 돌보지 않고 힘을 다함.

⑪비미은장(卑微隱藏): 낮추고 드러내지 않다.

⑫소시(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⑬배은망덕: 원문은 '吃里爬外'로, 이쪽의 혜택(도움)을 받으면서 몰래 저쪽을 위해 일한다는 뜻이 들어 있음.

⑭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⑮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⑯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중국 상용어로 자신을 위해 살라는 뜻. 이기적인 것을 정당화하는 데에 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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