Ⅻ 패괴된 인류의 사탄 성품과 본성 본질을 폭로한 말씀

326)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본적 원인은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사람은 양심이 무감각하고 도덕이 부패하고 사상이 진부하고 정신 면모가 뒤처지게 된 것이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되기 전에는 본래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순종했으며, 이성과 양심이 건전하고, 인성이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이후로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이성과 양심, 인성이 무감각해지고 전부 사탄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사랑을 모두 잃게 된 것이다. 사람의 이성이 정상에서 벗어나고, 사람의 성품도 짐승처럼 변해 하나님에 대한 패역이 점점 많아지고 심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아직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무턱대고 대적하고 거역하기만 한다. 사람이 드러내는 성품은 곧 사람의 이성, 식견, 양심의 발현이다. 사람은 이성과 식견이 건전하지 못하고, 양심이 극도로 무감각해졌기 때문에 사람의 성품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성품이 된 것이다. 사람의 이성과 식견을 바꾸지 못하면 성품 변화는 물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것도 말할 나위가 못 된다. 사람은 이성이 건전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정상적인 이성이란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스러우며,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이고 양심적이며, 하나님에 대해 일편단심이고,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이성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사라졌으며,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게 되었다. 양심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할 뿐만 아니라, 뒤에서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인 줄 뻔히 알면서도 뒤에서 판단하며, 순종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이 계속 하나님께 달라고 하고 요구하기만 한다. 이처럼 이성이 비정상적인 사람은 자신의 비열한 행위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패역한 행위를 통회하지도 못한다.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이성이 조금은 회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면서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성이 더 건전하지 못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327) 사람은 수천 년의 패괴를 겪고 나서 모두 무감각하고 우둔해졌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가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 역사(歷史)는 모두 ‘사기(史記)’에 기록되었고, 심지어 사람의 패역한 행위는 사람 스스로도 다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패괴되었고, 이미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갈 곳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도 배반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도 배반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본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이성이 원래의 기능을 잃었고, 사람의 양심도 원래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한다. 내 눈에 보인 사람은 모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자 독사다. 사람이 내 앞에서 얼마나 가련한 척을 하든 나는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흑과 백의 차이를 전혀 모르고, 진리와 비진리의 차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성이 이렇게 무감각함에도 여전히 복을 받고 싶어 하고, 이렇게 비열한 인성을 가지고도 여전히 왕이 되어 권력을 잡고 싶어 한다. 이런 이성을 가지고 누구에게 왕 노릇을 하겠느냐? 이러한 인성으로 어떻게 보좌에 오를 수 있겠느냐? 정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모두 제 주제도 모르는 소인배로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하는 너희들에게 권하는데, 우선 거울을 찾아 자신의 추한 몰골을 비춰 보아라. 네가 왕이 될 재목이냐? 너는 복받을 만한 오관을 가졌느냐?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진리를 조금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아름다운 앞날을 생각하다니 참으로 망상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에 물들었고,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뒤처진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삶, 저속한 풍속과 생활, 이러한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심하게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심하게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사람의 성품은 나날이 더 악랄해져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거나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기꺼이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반면에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마음껏 쾌락을 찾아 즐기고, 진흙탕에서 마음껏 자신의 육체를 패괴시키고 있다.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설령 진리를 듣더라도 실천할 마음이 없고, 하나님이 이미 나타난 것을 보아도 찾으려는 마음이 없다. 이렇게 타락한 인류에게 구원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겠느냐? 이렇게 부패한 인류가 어떻게 빛 속에서 살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328) 사람의 패괴 성품이 드러나는 근본 원인은 사람의 무감각한 양심, 악독한 본성과 건전하지 못한 이성에 있다. 사람의 양심과 이성이 정상으로 회복된다면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의 양심이 줄곧 무감각한 상태에 있고, 사람의 이성이 한 번도 건전했던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말세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문전 박대 하며, 하나님의 육신을 정죄하고, 또 하나님의 육신이 비천하다고 여긴다. 사람에게 인간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이렇게 잔혹하게 대할 수 없고,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이렇게 악독하게 대할 수 없으며, 정말로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성육신 하나님께 이같이 ‘감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성육신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이 온 것을 욕하거나 하나님이 성육신한 사실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어쩌면 부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귀찮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나님이 온 것을 사람이 어떻게 대하든 하나님은 싫은 기색 없이 계속 자신의 사역을 한다. 사람이 그를 조금도 환영하지 않고, 그에게 계속 뭔가를 요구하더라도 말이다. 사람의 성품은 극도로 악독해졌고, 사람의 이성은 극도로 무감각해졌으며, 사람의 양심은 이미 악한 자에게 짓밟혀 원래 가지고 있던 양심은 진작에 사라져버렸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인류에게 베풀어 준 이처럼 많은 생명과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진리로 인해 하나님을 혐오하고, 진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하나님에게조차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서 ‘기름을 짜내고’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것보다 수십 배나 많은 이자를 달라고 요구한다. 사람은 이런 양심과 이성을 가졌으면서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것이 너무 많고 반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푼 것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물 한 그릇을 주고는 우유 두 그릇 값의 금화를 달라고 손을 내밀고, 내가 그의 집에서 하룻밤 묵으면 이보다 몇 배 넘는 숙박비를 요구한다. 너희는 이런 인성과 양심을 갖고도 생명을 얻으려 하느냐? 정말 비열한 소인배들이구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329) 사람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만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런 것은 신묘하기 그지없고, 상상하기도 어려우며, 평범한 사람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더 분석하며, 만사를 제쳐 두고 추구하면서 그것을 얻으려는 망상까지 한다. 또한, 그런 비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더 자세히 생각하고 분석하며, 심지어 치밀하게 구상하기까지 한다. 이와 반대로, 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심지어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날 행하는 나의 현실적인 사역에 대한 너희의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냐? 이렇게 현실적인 것일수록 너희는 더 경시하고, 그것을 알아볼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며, 아예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는다. 너희는 기준이 낮은 이런 현실적 요구를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심지어 가장 실제적인 하나님에 대해서도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그의 실제와 정상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너희의 믿음은 모두 막연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이전의 막연한 하나님은 그토록 굳게 믿었으면서도 오늘날의 실제 하나님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은 어제의 하나님과 오늘의 하나님이 다른 시대의 하나님이기 때문이 아니냐? 어제의 하나님은 위대한 하늘의 하나님이고, 오늘의 하나님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땅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냐? 사람이 숭배하는 하나님은 관념 속에서 탄생한 하나님이고, 오늘의 하나님은 땅에서 탄생한 실제적인 육신이기 때문이 아니냐? 결국, 오늘날의 하나님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사람이 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의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사람이 가장 하기 싫어하고 또 난감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난처하게 하고, 또 일부러 자신들의 허물만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래서 현실을 추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의 원수, 즉 적그리스도가 되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 중에서

330) 여러 해 동안의 사역을 통해 너희도 수많은 진리를 보고 접했다. 그러나 내 귀에 들리는 것들이 전부 무엇인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너희 중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자가 몇이나 되느냐? 너희는 하나같이 자신이 진리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를 의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진리를 위해 고난받은 자가 몇이나 되느냐? 너희의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는 불의뿐이다. 그래서 너희는 누구나 다 똑같이 간사하고 교활하다고 생각하며, 심지어는 하나님이 입은 육신까지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선한 마음과 인자한 사랑이 없다고 여긴다. 나아가 고상한 품성이나 인자하고 자비로운 본성은 오직 하늘의 하나님에게만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런 성인(聖人)은 존재하지 않고, 이 세상은 어둠과 사악이 권력을 잡고 있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아름다운 소망의 정신적 존재이자 사람이 만들어 낸 전설 속 인물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너희 마음속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매우 정직하고 공의로우며, 또한 너무도 위대하여 경배하고 앙망할 가치가 있는 분이지만, 땅에 있는 이 하나님은 그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대역이자 도구일 뿐이다. 너희는 이 하나님이 하늘의 하나님과 절대 동등한 분이 될 수 없으며, 같은 선상에서 논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의 위대함과 존귀함을 얘기할 때면 그것은 전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이고, 사람의 본성과 패괴에 대해 논할 때면 땅에 있는 이 하나님도 거기에 해당한다고 여긴다. 하늘의 하나님은 영원히 위대한 반면, 땅의 하나님은 영원히 하찮고 연약하며 무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은 사사로운 감정 없이 언제나 공의로운 반면, 땅의 하나님은 전혀 공평하거나 합리적이지 않고 사사로운 마음뿐이라는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은 전혀 교활하지 않고 영원히 신실한 반면, 땅의 하나님은 정직하지 못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은 사람을 지극히 아끼는 데 반해 땅의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보살핌이 부족하고, 심지어는 상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그릇된 인식은 너희 마음에 이미 오랫동안 자리해 왔으며, 너희는 앞으로도 이 잘못된 인식을 유지할지도 모른다. 너희는 불의한 자의 입장에서 그리스도가 하는 모든 일을 바라본다. 또한 악인의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 그의 신분과 본질을 평가한다. 너희는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고, 이전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지금껏 면류관을 쓴 하늘의 위대한 하나님만을 섬기고, 보잘것없어 눈에 띄지 않는 이 하나님은 ‘시중’조차 든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의 죄행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전형적인 사례가 아니겠느냐? 너희는 하늘의 하나님을 매우 숭배하고, 위대한 형상을 아주 숭상하며, 비범한 말재주를 가진 사람을 무척 존경한다. 너희 두 손에 재물을 가득 채워 주는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고, 무엇이든 너희 뜻에 딱 맞는 하나님을 그리워한다. 네가 유일하게 숭배하지 않는 대상은 바로 이 위대하지 않은 하나님이며, 유일하게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사람들도 높이 보지 않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며, 유일하게 원치 않는 것은 이렇게 지금껏 너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은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또한, 네가 그리워할 수 없는 대상은 바로 이 사랑스럽지 않은 하나님이다. 이런 하나님은 너의 시야를 넓혀 주지도, 너에게 보물을 얻은 것 같은 기쁨을 주지도 못하며, 네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지도 못한다. 그런데 너는 왜 그를 따르느냐? 너는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의 행위는 이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도 죄를 짓는 것이다. 내 생각엔 이것이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331) 그리스도와 만나기 전에 너는 자신의 성품이 완전히 변화되었고, 자신이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자라 여기며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기에 가장 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많은 길을 열심히 뛰어다녔고 많은 사역을 행하여 많은 결실을 맺었으므로 자신이 나중에 꼭 면류관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역, 대적은 그리스도를 만날 때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때 드러나는 패역과 대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적나라하다는 사실을 아느냐? 그리스도가 인자이며 정상 인성을 지닌 인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불경스레 대하고,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패역이 남김없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임함으로 인류의 패역이 모두 파헤쳐졌고, 그리스도의 임함으로 인류의 본성이 다 부각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맹수를 굴 밖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너는 감히 자신이 하나님께 충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너는 감히 자신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너는 감히 자신이 패역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어떤 자는 자신이, 하나님이 환경을 마련할 때마다 아무 불평 없이 순종하고, 하나님에 대한 고정 관념이 전혀 없다고 말할 것이다. 또 어떤 자는 자신이, 하나님이 맡긴 일을 건성으로 대한 적 없이 언제나 최선을 다해 완수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생활할 때 그의 마음에 합할 수 있느냐? 그런 날은 또 얼마나 오래 갈까? 하루? 이틀? 한 시간? 두 시간? 너희의 믿음은 가상하나 너희의 의지력은 결코 강하지 않다. 네가 정말로 그리스도와 함께 생활하게 될 때는 너의 독선과 자만이 언행에서 조금씩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 뒤를 이어 너의 사치스러운 욕망과 불복하고 불만스러워하는 마음 또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결국 교만함이 나날이 심해져 물과 불처럼 그리스도와 상극이 될 때면, 너의 본성이 전부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때 너의 고정 관념은 감출 수 없게 되고, 너의 불평도 자연스럽게 ‘표출’되면서 너의 그 비열한 인성이 전부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여전히 자신의 패역을 인정하지 않고, 그런 그리스도는 너무 냉혹하여 받아들이기 어렵기에 더 나은 그리스도가 있으면 완전히 순종할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패역에 이유가 있다고 여기며, 그리스도가 너희를 그렇게 거역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한다. 너희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그에게 순종할 마음이 없었음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한사코 그리스도에게 너의 뜻에 따라 사역하길 강조하며, 한 가지 일이라도 너의 뜻에 따라 하지 않으면 그를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으로 여긴다. 너희 중 많은 사람이 이렇게 그와 힘겨루기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믿는 이는 대체 누구이냐? 너희는 어떻게 추구했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332) 너희는 늘 그리스도를 만나길 원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자신을 너무 높이 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누구나 그리스도를 만날 수는 있지만 나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은 악과 교만, 패역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만날 때 그 본성이 너를 망치고, 네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네가 형제(자매)와 접할 때에는 너를 어떠하다고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접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너의 고정 관념이 수시로 뿌리를 내리고, 너의 교만함이 수시로 싹이 트고, 너의 패역이 수시로 무화과를 맺을 것이다. 너의 그런 인성으로 어찌 그리스도를 접한단 말이냐? 너는 진정 그를 언제나 하나님으로 대할 수 있느냐? 너에게는 정말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제가 있느냐? 너희는 마음속의 위대한 하나님을 여호와로 여겨 경배하고, 보이는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대하니 이성이 너무도 없고, 인간성 또한 몹시 저열하다! 너희는 가끔 기쁠 때에만 그를 끌어와 하나님으로 여겨 경배할 뿐, 영원히 하나님으로 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악당이라고 한다. 타인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도 보답을 받는데, 그리스도는 너희 가운데서 이렇게까지 사역하면서도 사람들의 사랑과 순종, 보상도 받지 못한다. 이는 마음이 미어지고 눈물이 날 일이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333) 어쩌면 네가 하나님을 여러 해 믿으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악담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네가 그리스도를 접했을 때 정직한 말과 일을 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다면, 나는 너를 세상에서 가장 음험하고 악랄한 사람이라고 한다. 네가 친지와 친구, 아내(남편)와 자녀, 부모에게 매우 자상하고 충실하며, 여태껏 다른 이를 상대로 부당한 이득을 챙긴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면, 너의 모든 것으로 이웃을 구제하거나 부모와 가족을 세심하게 돌본다 하더라도 나는 네가 여전히 악인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간계가 많은 악인이라고 할 것이다. 네가 사람들의 마음에 합한다고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 좋은 일을 좀 했다고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한다고 여기지 말라. 너는 선심을 쓰는 것으로 교묘하게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좋은 일을 좀 했다고 순종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모두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정상적인 인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면서도 입으로는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하는데, 너희들의 그런 믿음은 그에 상응하는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분량이 너무 작아서 그리스도를 만날 자격조차 없기 때문이다. 네가 패역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 때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책망이나 심판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너는 반드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 멸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하나님께 적대적이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된 존재이므로 만약 패괴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낸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언행 하나하나에서 패괴가 드러나고, 하나님을 접할 때 곳곳에서 패역을 드러내어 부지중에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기만하고, 저버리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때는 사람의 처지가 더욱 위험해지고, 그러다 보면 결국 징벌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334)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접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니 하나님과 거리를 두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이런 자가 하나님께 충실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접하는 것이 물론 어렵지만 이는 모두 사람이 패괴되었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사람을 접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너희들이 자신을 아는 진리에 공을 들이면 좋겠다. 하나님이 왜 너희를 알아주지 않을까? 왜 너희의 성품을 혐오할까? 왜 너희의 언사를 증오할까? 너희는 충성심이 좀 있으면 뽐내고 공헌을 좀 하면 보답을 바란다. 또 조금 순종하면 타인을 업신여기고 보잘것없는 사역을 좀 하면 하나님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너희는 하나님을 대접하고는 돈과 물질을 요구하고 칭찬해 달라고 하며, 동전 두 닢을 내놓고는 아까워하고, 동전 열 닢을 내놓고는 축복해 달라고 하며 특별 대우를 받으려 한다. 너희의 이런 인성은 정말 입에 담기 민망하고 듣기조차 거북하다. 너희의 언행에 자랑스러울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본분을 이행하는 자나 이행하지 않는 자, 인도하는 자나 따르는 자, 하나님을 대접하는 자나 하지 않는 자, 헌금하는 자나 하지 않는 자, 전도하는 자나 받는 자 등등의 모든 사람이 자기 자랑만 하는데 우습지 않으냐?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을 자랑하는데, 너희들의 이성이 자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되지 않는단 말이냐? 이런 이성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접할 수 있단 말이냐? 너희는 이런 자신이 걱정스럽지 않으냐? 너희의 성품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너희의 믿음이 우습지 않으냐? 너희의 믿음이 터무니없지 않으냐? 너는 너의 미래를 어떻게 대할 것이냐? 네가 가야 할 길을 어떻게 선택할 것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335) 세력이나 재물은 좋아하지만 심판은 물론, 진리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세력파라고 한다. 그들은 세상에서 세력이 있는 교파만을 골라 찾아다니고, 신학교를 나온 목사와 강사만을 찾는다. 그들은 설령 진리의 도를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반신반의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치지 못한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주시하는 사람은 대단한 목사와 강사일 뿐, 그리스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밖에 없다. 그들은 이렇게 작디작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정복할 수 있고, 이렇게 볼품없는 한 사람이 사람들을 온전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또한 먼지와 거름으로 뒤범벅된 이 변변찮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이라면 천지가 뒤집힐 일, 그야말로 배꼽 잡고 웃을 일이라고 여긴다. 또 그들은 하나님이 이들을 택해 온전케 한다면, 저 대단한 인물들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관점에는 불신의 요소가 섞여 있다. 어찌 불신뿐이겠는가? 그들은 진정 이치로는 깨우칠 수 없는 짐승들이다. 그들은 지위와 명망, 세력, 그리고 거대한 단체와 파벌만 중시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이끄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진리와 생명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배반자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336) 너는 높디높은 지위를 가진 저 거짓 목자들을 숭상하지, 그리스도의 낮춤을 앙모하지는 않는다. 또한 세상과 야합하는 저 음탕한 자들을 좋아하지,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움과 지혜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는 제물을 약탈하고 주색에 빠져 사는 저 시체들에 감탄할 뿐, 머리 둘 곳 없는 그리스도의 고통은 비웃기만 한다. 또한 제멋대로 행하는 저 적그리스도의 품에 안기길 원하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너에게 공급하는 것이 육체와 글귀, 그리고 통제뿐일지라도 말이다. 지금도 너의 마음은 여전히 그들에게 향해 있고, 그들의 명예와 지위, 세력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이유로 너에게는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믿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지금까지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다. 너의 마음속에는 높고 큰 형상이 우뚝 솟아 있다. 너는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잊지 못하고, 권세를 지닌 그들의 말과 두 손도 잊지 못한다. 너희 마음속의 그들은 영원히 지고지상한 영웅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네 마음속의 그는 영원히 초라하고 경외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권세도 거의 없으며, 너무도 위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337) 너희는 오만 방자한 본성 때문에 양심을 팔아먹었으며,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대적하였다. 또한 너희의 그 추악한 몰골이 드러나면서 너희의 속셈과 생각, 사치스러운 욕망과 탐욕스러운 두 눈도 빛 속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너희는 말끝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한평생 몸 바치겠다고 외치고, 그가 일찍이 말씀했던 진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 끊임없이 되뇐다. 이것이 곧 너희의 ‘믿음’, 바로 너희의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믿음’이다. 예로부터 사람에 대한 내 요구는 매우 엄격했다. 네 충성심에 다른 속셈이나 조건이 있다면, 나는 너의 그 소위 충성심을 차라리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저의를 지닌 채 나를 기만하고, 조건을 내밀며 뭔가 얻어 내려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나에게 변함없이 충실하고, 무슨 일을 하든 오직 ‘믿음’을 위해, 그리고 ‘믿음’을 검증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감언이설로 나의 환심을 사려는 것을 미워한다. 나는 언제나 너희를 진심으로 대했으므로 너희 또한 나를 참된 믿음으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이란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믿음’이 있으니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왜 구태여 이러한 고난을 받겠느냐’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묻겠다.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 왜 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느냐?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또한 조금도 없느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인정하면서 왜 그를 멸시하느냐? 왜 그에게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하느냐? 왜 그를 공개적으로 판단하느냐? 왜 늘 그의 행적을 캐느냐? 왜 그의 안배에 순종하지 않느냐? 왜 일을 할 때 그의 말씀을 준칙으로 삼지 않느냐? 왜 그의 제물을 강탈하고 훔치느냐? 왜 그리스도의 자리에 서서 말하느냐? 왜 그의 사역과 말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느냐? 왜 그를 뒤에서 모독하느냐? 이런 것들이 너희의 ‘믿음’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338) 관념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규정하면서 그를 영원히 변치 않는 조각상인 양 완전히 성경 안에 국한하고 유한한 사역 가운데 고정해 놓는다면, 이는 너희가 하나님을 정죄했다는 의미이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마음속에 고정화된 우상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오직 메시야라고 불려야만 하고, 또 그렇게 불려야만 하나님인 것처럼 말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조각상(생명이 없는 존재)처럼 여기면서 섬기고 경배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당시의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그리하여 죄 없는 예수가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죄가 없지만, 사람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뿐더러 기어코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하여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고불변의 존재로 생각하며 성경 한 권에 기대어 하나님을 규정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경영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파악한 것처럼 말이다. 인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터무니없고 교만하며, 모두가 과장해서 떠벌리기를 좋아한다. 네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안다고 생각하든, 내가 보기에 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을 전혀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하는 일을 왜 늘 못마땅해할까?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한 고정 관념이 너무 많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실제 사실에 완전히 어긋나고 천편일률적이고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중에서

339)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지식과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가늠했기 때문이 아니냐? 그들은 체험이 얄팍하면서도 천성이 교만하고 방종하여 성령의 역사를 가볍게 여기고 성령의 징계를 등한시한다. 또 자신의 미약하기 짝이 없는 낡은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입증’하고, 스스로 학식이 높다고 믿으며 온 세상을 주름잡을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런 자는 모두 성령께 혐오받아 버림받는 자이자 새 시대에 도태되는 자임을 어찌 알지 못한단 말이냐? 하나님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모두 얄팍한 지식으로 경망을 떠는 소인배들 아니냐? 얼마 되지도 않는 성경 지식으로 세상의 ‘학술계’를 휘어잡으려 하고, 겨우 사람이나 가르칠 수 있는 보잘것없는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돌려세우려 하고 자기 생각대로 주무르려는 야심을 품으며, 좁은 안목으로 하나님의 6천 년 사역의 풍모를 한눈에 다 꿰뚫어 보려고 한다. 그런 자에게 무슨 이성이 있다고 하겠느냐! 사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사역을 쉽사리 평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대한 인식을 좀 말할 뿐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교만하고 분수를 모르며, 또한 하나님의 어떠함에 대해 실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론만 멋대로 떠벌릴 뿐이다. 이런 사람은 가장 무가치한 자이다. 성령의 역사를 아이들 장난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모두 경박한 자들이다! 이들은 성령의 새 역사를 마주하고도 신중하게 대하기는커녕 함부로 지껄이고 멋대로 평가하며, 자기 성미대로 성령 역사의 정확성을 부인하고, 모욕적인 말과 모독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오만불손한 자들은 모두 성령 역사를 알지 못하고, 천성이 거만하며 방자한 사람이 아니냐? 그런 자는 언젠가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관용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그런 악당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사함 받지 못할, 영원히 지옥에 멸할 대상이다. 그 오만하고 방종한 자들은 또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건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일수록 하나님의 행정을 더 쉽게 거스른다. 천성적으로 방종하고 복종할 줄 모르는 교만한 자들은 모두 그런 길을 가지 않더냐? 모두가 이렇게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을 끊임없이 대적하지 않더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340) 너희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적하거나 자신의 관념으로 오늘날의 사역을 판단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역 원칙을 모르기 때문이며, 또한 성령의 역사를 너무 건성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 역사를 가로막는 것은 하나님이 일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너희의 관념과 태생적인 교만, 그리고 너무도 패역한 천성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감히 공개적으로 성령 역사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고 이야기하며, 또 성령의 새 역사가 있는 사도들을 훈계하고 이래라저래라 불손하게 말하니, 참으로 저급한 인성이요, 이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자들은 언젠가 성령 역사에 의해 버려지고 지옥의 불에 불살라질 대상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모르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평가하고, 나아가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며 지휘할 생각까지 하는데, 이렇게 비이성적인 자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느냐? 사람은 모두 찾고 구하며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지, 제멋대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줄어든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쉽게 대적한다. 너의 관념과 옛 성품, 인성, 품성, 도덕 사상은 모두 네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밑천’이다. 또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품성이 악랄하며 인성이 저급한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원수인 것이다. 관념에 심각하게 사로잡힌 자와 성품이 독선적인 자는 성육신 하나님의 원수로, 이런 부류의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네가 관념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 관념은 영원히 하나님과 적대될 것이며,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어긋나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341) 네가 무엇이든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게 알려 주겠다. 지금까지 네가 보고 체험한 것으로는 내 경륜의 천분의 일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런데도 네가 그렇게 오만하게 굴 것이 뭐가 있느냐? 네가 가진 보잘것없는 재능과 인식은 예수가 행하는 사역에 1초도 이용될 수 없다! 너의 체험은 얼마나 되느냐? 여태까지 네가 본 것에 네가 평생 듣고 상상한 것을 더해도 내 한순간의 사역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흠잡을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네가 아무리 교만하게 굴어도 개미만도 못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네 배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은 개미 배 속에 들어 있는 것보다도 적다! 네가 체험이 많고 관록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지껄여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 체험과 관록 또한 다 내가 한 말에서 비롯된 것 아니더냐? 설마 그게 너의 성실과 근면의 대가라 생각하느냐? 너는 오늘날 나의 성육신을 보았기에 그렇게 풍부한 상상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관념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내가 성육신하지 않았더라면, 너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그렇게 많은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의 관념 또한 그로 인해 생긴 것 아니더냐? 만약 예수의 첫 번째 성육신이 없었다면, 성육신에 대해 네가 알기나 했겠느냐! 너는 첫 번째 성육신을 알게 됐다고 그렇게 방자하게 두 번째 성육신을 평가하는 것 아니더냐? 너는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망정, 또 무엇을 따지는 것이냐? 네가 이 흐름에 들어와 성육신 하나님 앞에 온 이상 네가 연구하는 것을 그가 용납하겠느냐? 네가 네 집안의 가족사를 따져 보는 것은 상관이 없겠지만, 하나님의 ‘가족사’를 따져 보고자 한다면, 오늘날의 하나님이 그것을 용납하겠느냐? 너는 눈이 먼 것이 아니냐? 화를 자초하는 것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 중에서

342)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알면서도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대예배당에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성경을 외우지만,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깨닫거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들은 모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인배이고, 높은 곳에서 ‘하나님’을 가르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내세우면서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하에 사람의 살을 먹고 사람의 피를 마시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악마이며, 사람이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마왕이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의 걸림돌이다. 그들이 비록 ‘건장하고 튼튼할’지라도,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찌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사람을 이끌어 가는 적그리스도임을 알겠느냐? 어찌 그들이 전문적으로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산 귀신임을 알겠느냐?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자는 가장 비천한 자이며, 스스로를 천하게 여기는 자는 가장 귀한 사람이다. 스스로 하나님의 사역을 안다고 여기고, 또한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멋대로 전하는 자는 가장 무지한 사람이다. 이런 자들은 다 하나님의 증거가 없는 사람이며, 교만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343) ‘하나님’과 ‘사람’은 동일 선상에서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이 가장 측량하기 어렵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지도 말씀하지도 않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일지라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헛수고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간파’했다는 사람들은 다 무능한 자, 교만하고 무지한 자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해서는 안 되며, 더군다나 규정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실로 개미보다 작은 존재거늘 어찌 하나님의 사역을 측량할 수 있겠느냐? 입만 열면 “하나님은 이렇게 저렇게 사역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러저러하다”라고 하는 사람은 다 허황된 말을 늘어놓는 자 아니겠느냐? 육에 속한 사람은 전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과 대등해질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계책을 낼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인도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할 일이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사람은 그저 먼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이상, 자신의 관념을 하나님이 사역하는 데 참고해 달라며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패괴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의도적으로 극력 대적하는 것은 더 안 될 일이다. 이런 사람은 적그리스도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믿는 것을 논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이상,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을 보고 싶은 이상, 진리의 도를 찾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찾아야지, 목을 뻣뻣이 하고 하나님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 무슨 좋은 결과가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344) 오늘날의 길을 가면서 어떻게 추구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겠느냐? 너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간주하고 추구해야 하겠느냐? 너는 오늘날 네게 임한 모든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것이 시련이든, 고난이든, 무정한 형벌이든, 저주이든, 너는 그 모든 것이 임할 때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오늘 너에게 임한 것은 한 번씩 되풀이되는 짧은 시련이므로 정신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네가 이를 내팽개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소중한 자산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너는 조심성이 없기 짝이 없구나! 이 소중한 자산을 눈앞을 스쳐가는 구름이라고 생각하다니. 되풀이되는 호된 매질에 크게 아파하지 않고, 이를 일시적인 고통으로 치부하며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관심 없이 냉담하게 바라보며 어쩌다 직면한 한 차례의 난관으로 간주할 뿐이다. 너는 거만하기 짝이 없구나! 거듭하여 밀어닥치는 거센 비바람을 하찮게만 여긴다. 심지어 싸늘하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는 네가 계속 이런 ‘불행’을 겪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내가 오로지 너의 허물만 들춘다는 말이냐? 너의 생각이 내가 말한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해도 너의 그 ‘태연한’ 표정과 태도는 너의 내면을 여실히 드러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너의 마음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은 불만에 가득 찬(원문: 不近人意) 욕설과 사람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끝없는 슬픔일 뿐이다. 너는 시련을 겪는 것이 몹시 불공평하다고 느끼기에 욕설을 퍼붓는다. 시련으로 인해 세상의 쓸쓸함을 느끼고, 이로 인해 낙담한다. 연거푸 이어지는 매질과 징계를 최고의 보살핌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늘이 생트집을 잡거나 합당한 보응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무지하기 짝이 없구나! 너는 무정하게 절호의 시기를 어두운 곳에 봉하고, 되풀이되는 아름다운 시련과 징계를 원수의 공격으로 간주한다. 너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황에 적응할 생각도 없다. 네가 잔혹하다고 여기는 이 거듭되는 형벌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 하거나, 구하거나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식으로 운명에 맡길 뿐이다. 네가 잔혹하다고 여기는 채찍질은 너의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점유하지 못하고 네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너는 ‘잔혹한 형벌’을 금생의 원수라고 생각할 뿐 거기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너는 독선적이기 짝이 없구나! 너는 자신이 비열하기 때문에 이런 시련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법이 거의 없다. 도리어 자신이 더없이 불행하다고 여기고, 내가 항상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말한다. 이 지경에 이르렀건만 너는 도대체 내가 한 말과 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이냐? 네가 하늘보다는 약간 낮고 땅보다는 훨씬 높은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지 말라. 너는 결코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지 않다. 지구상의 어떤 이성적인 사람보다 어리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여 열등감을 느낀 적이 없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군다. 사실 너는 전혀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다. 너는 아예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도 하늘의 축복만을 바라보며 경작하는 농부만도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너는 네 인생을 몹시 하찮게 여기고, 자신의 평판도 알지 못하며, 주제 파악을 못한다. 너는 정말 ‘대단’하구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불학무식한 자는 짐승이 아닌가?> 중에서

345)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재난을 피할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의 사역과 경영을 언급하면 그들은 입을 다물고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지루한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메시지를 들어도 건성으로 대할 뿐 보배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생명의 일부로는 더더욱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그들의 목표와 전혀 무관한 일은 귀찮아하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또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속마음은 얼핏 들으면 아주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하고 희생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외지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미도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까지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꿈을 경영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며, 그 길이 얼마나 멀든,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까지 불사한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토록 끊임없이 바치게 하는 것이겠느냐? 그들의 양심이겠느냐?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이겠느냐?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심이겠느냐?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그들의 믿음이겠느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충성심이겠느냐? 아니면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는 그들의 희생정신이겠느냐?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심혈을 쏟아붓고 대가를 치를 수 있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바쳤는지는 차치하자. 그들의 행위만 해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다니, 거기에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겠느냐? 여기까지 말하다 보니, 우리는 지금껏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즉,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혈육의 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상황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느냐? 또 이런 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확신컨대, 모두가 복을 받는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난감하고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346) 인류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슬픈 일은 하나님의 사역에서 자기 경영을 하면서 하나님의 경영을 등한시한다는 사실이고, 가장 크게 실패한 일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종착지를 구상하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과 가장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모든 사람이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한 자신의 모습을 알았다 해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스스로를 위해 계산하지 않을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느냐?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그의 경영을 완성하는 데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이다. 날마다 하나님께 두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얼마간 헌신하고 빚을 받아 내려는 사람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얼마간 바친 뒤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기대 살아가려는 사람을 증오하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에 올라가 복받는 일에만 관심 있는 냉혈 인간을 증오한다.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기회를 틈타 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더더욱 증오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을 통해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사역하는 틈을 타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 자기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반감을 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 사역 밖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기억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으며, 더욱이 좋아하지도 않는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347) 내 행사가 해변의 모래알보다 많고, 내 지혜가 높디높아 모든 ‘솔로몬의 자손’을 능가하지만 사람은 나를 그저 하찮은 의사라고 믿고, 또 사람을 가르치는 무명의 스승이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348)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349)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자 했으나 그들의 ‘마음’이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탓에 뜻대로 하지 못했다. 또 많은 사람이 내가 준 시련 속에서도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지만 늘 내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저 공허함 속에서 나를 사랑했지, 내가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마음을 내 앞에 두고도 거들떠보지 않은 탓에 사탄에게 틈을 주어 마음을 빼앗겼고, 결국 나를 떠나가 버렸다. 많은 사람이 내가 말씀을 공급할 때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내 말을 귀하게 여기며 영 안에서 소중히 여기지 않고, 공공재처럼 아무렇게나 쓴 후 아무 때나 원래 있던 자리에 던져 버렸다. 사람은 고통 속에서 나를 찾고, 시련이 닥쳤을 때 나를 앙망하며, 평안할 때 나를 누리다가, 위험할 때 나를 부정하고, 바쁠 때 나를 잊고, 한가할 때 나를 무성의하게 대한다. 평생토록 나를 사랑하는 자는 없었다. 나는 사람이 내 앞에서 진지하기를 바란다. 나는 사람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를 진심으로 대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사람이 나를 기만하지 않고, 내게 진심을 주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에게 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퍼져 있고 내가 기울인 심혈이 스며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의 모든 행위의 ‘진상’과 나를 향한 기만이 차 있다. 마치 사람은 모태에서 ‘기만의 성분’을 갖고 나오고, 독특한 ‘사기술’을 타고난 듯하다. 그 ‘사기술’은 한 번도 정체를 드러낸 적이 없어 아무도 그 근원이 어디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기만 속에서 살면서 본인이 원해서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안배’였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나를 기만하는 근원 아니겠느냐? 사람의 간계 아니겠느냐? 나는 사람의 감언이설에 속아 우왕좌왕한 적이 없다. 사람의 본질을 일찌감치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핏속에 불결한 성분이 얼마나 많은지, 또 사람의 골수에 사탄의 독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세월을 거듭하며 그것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은 사탄의 괴롭힘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하게 사는 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1편> 중에서

350) 사람은 모두 자신을 정확히 아는 능력이 없는 것들이라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제 손금 보듯 한다. 마치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 모두 그의 앞에서 ‘검열’을 받았거나 먼저 그의 승낙을 받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심리 상태까지 모두 훤히 꿰뚫는 듯하다. 사람은 모두 이러하다. 오늘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본성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여전히 내 앞에서는 내가 하는 것을 하지만, 내 뒤에서는 또 자신만의 독특한 ‘사업’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도 내 앞에 왔을 때는 또 다른 사람인 양 거리낌도 두려움도 없는 듯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추태가 아니더냐? 많은 사람이 내 앞에서와 내 뒤에서 전혀 딴 사람 같다. 많은 사람이 내 앞에서는 갓 태어난 양 같지만 내 뒤에서는 사나운 호랑이 같고 또 산속의 새처럼 ‘신이 나서 깡충거린다’. 또 많은 사람이 내 앞에서 의지를 다지며 내 말을 찾고 갈망하지만, 뒤에서는 내 말을 싫어하고 포기한다. 마치 나의 말이 그들에게는 짐이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원수’에 의해 패괴된 인류를 바라보며 그들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또 사람들이 내 앞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내게 용서를 구하는 것도 수없이 보았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품위를 지키지 않고, 또 몇 번을 타일러도 고치지 않기에 그 마음이 아무리 진실하고 그 뜻이 아무리 간절해도 분노를 띠고 사람의 행위를 외면했었다. 나는 사람이 나와 협력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내 앞에서 내 품에 안긴 듯, 내 품의 따스함을 느끼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나는 선민들의 활발하고 순진하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어찌 그것으로 기뻐하지 않겠느냐? 사람은 내 손안에서 정해진 복을 누릴 줄 모른다. 이는 무엇이 ‘복’인지, 무엇이 ‘고통’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나를 참되게 추구하지 않는다.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희 중에 그 누가 내 앞에서 눈같이 깨끗하고 옥같이 순결할 수 있겠느냐? 나에 대한 사랑을 맛있는 음식으로 바꿀 수 있겠느냐?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옷으로 바꿀 수 있겠느냐? 높은 직위와 후한 급여로 바꿀 수 있겠느냐? 또는 너를 향한 다른 사람의 사랑과 맞바꿀 수 있겠느냐? 설마 사람이 시련 때문에 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게 되겠느냐? 설마 사람이 고난과 환난 때문에 나의 안배를 원망하게 되겠느냐? 그 누구도 내 입의 날 선 검을 진실로 깨닫지 못했다. 그저 그 겉면의 뜻만 알 뿐, 내면의 뜻은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다. 사람이 정말 날 선 검의 예리함을 봤다면, 모두 쥐가 땅굴을 파고 들어가듯 했을 것이다. 사람은 무감각해져서 내 말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므로 내 말의 엄준함을 모르고, 내 말이 사람의 본성을 얼마나 많이 드러내는지, 사람의 패괴를 얼마나 많이 심판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내 말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이해하여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5편> 중에서

351)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시련을 주든 하나님에 대한 충정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일단 하나님의 사역이 자기 육에 불리해지면 즉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간다. 이런 자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굳게 설 수 없는 자들이고, 복만 받으려 할 뿐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자신을 바칠 마음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소인배들은 사역이 끝날 때 모두 ‘쫓겨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조금도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인간성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지만,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결국 깨지게 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악마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우환이 되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352) 사람들은 생명 체험 과정에서 늘 이런 생각들을 하곤 한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가정도 직장도 내려놓았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주셨지? 그동안 내가 무슨 복을 받았는지 한번 계산해 보고 따져 봐야겠어.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헌신하고 노력을 들이며 많은 고난을 받았는데, 하나님은 그동안 내가 한 것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해 주실까? 하나님은 나의 선행을 기억해 주실까? 나의 결말은 도대체 어떨까? 복은 받을 수 있을지?’ 모든 사람은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계산하고, 저의와 야심을 품고, 또한 하나님과 거래하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으로부터 뭘 얻어 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상대로 계산하고, 자신의 결말을 두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논쟁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며 하나님께 구두 증거를 구걸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거래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에게서 뭔가를 얻어 내려고만 한다. 심지어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욕심이 한도 끝도 없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동시에, 또 끊임없이 하나님과 논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련이 임하거나 어떤 환경에 처하면 늘 나약해지고 일을 태만히 하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은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약속을 얻어 내는 것이 생득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고, 반면에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며 사람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해야 할 책임이라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한 가장 깊은 이해이기도 하다. 사람의 본성과 본질로부터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하나님께 경배한다’는 것과는 아예 관련시킬 수도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고,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러한 상태를 볼 때, 사람의 본질은 뻔한 것이다. 이 본질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씨가 악독하고 음험하고 간사하며,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지 않고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게다가 비열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태껏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으며, 사람의 경배를 받지 못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든지,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행하든지,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급하든지 간에, 사람은 봐도 못 본 척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시종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자신이 주관하고 자신이 결정하려고 한다. 그 뜻인즉,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고 싶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싶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사람들의 상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353) 인류의 희로애락은 이기적이다. 그것은 어두운 세계 속에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결코 하나님과 나란히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고지상하고 존귀하며, 사람은 영원히 미천하고 한 푼의 가치도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류를 위해 대가를 치르고 헌신하지만, 사람은 모두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요구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류의 생존을 위해 힘써 일하지만, 사람은 결코 정의와 광명을 위해 무언가를 바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잠시 노력한다 해도 작은 일에도 견디지 못한다. 사람의 노력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사심이 없다. 하나님은 모든 정의와 아름다움, 선함의 시작이고, 사람은 모든 추함과 사악함의 계승자요, 발현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정의롭고 아름다운 본질을 영원히 바꿀 리 없지만,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정의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354) 나를 따른 지 그렇게 오래되었으면서도 너희는 나에게 ‘충성한’ 적이 없었다. 너희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을 싸고돌며, 한순간도 버리는 법 없이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에 꽁꽁 담아두고 있기까지 했다. 나를 따르면서 심지어 내 말을 듣고 있을 때조차도 너희는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이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충성심을 가지고 너희의 ‘애완동물’에 충성하고 너희의 ‘애완동물’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다소 바쳤다고는 하나, 그것이 너희의 전부를 뜻하지도 않고,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충성함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너희는 열렬히 좋아하는 일에 몸담고 있다. 어떤 자는 자녀에게, 어떤 자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어떤 자는 금전이나 업무에, 어떤 자는 직속 상관이나 지위에, 어떤 자는 여자에게 충성한다. 너희는 자신이 충성하던 것들 때문에 피곤해하거나 번뇌한 적이 없다. 자신이 충성하는 것들을 더 많이, 더 쉽게 가질 수 있기를 더욱더 갈구하였고 또 이를 포기한 적도 없다. 여태까지 너희는 나와 내가 한 말을 너희가 열중하는 모든 것의 끝자리에 놓아두었는데 그것도 마지못해 마지막 자리에 놓아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자는 그 끝자리마저도 자신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충성하고 싶어질 것들을 위해 남겨 두었다. 그들 마음속에는 나에 대한 것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너희는 어쩌면 내 요구가 너무 지나치고 너희를 억울하게 한다고 여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워할 때 너희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충성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었느냐? 그때 너희는 이로 인해 괴로워했느냐?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수고의 대가를 받을 때 진리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해 낙심했었느냐? 너희는 나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느냐? 자녀를 위해서는 온갖 지혜를 짜내며 애쓰면서도 여전히 만족할 줄 모르며 여전히 자녀에게 정성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여기는데, 내게는 어떠하였느냐? 너희는 지금껏 늘 나를 건성으로 대했다. 단지 기억만 할 뿐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간직하지 않았다. 너희는 지금까지 내가 너희에게 기울인 심혈을 느낀 적도 이해한 적도 없이 단지 조금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런 ‘충성’은 내가 오래도록 기대해 온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증오해 온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이냐?> 중에서

355) 지금 너희 각자 앞에 돈을 얼마 놓아두고서 너희가 어떤 선택을 해도 정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너희 가운데 많은 자가 진리를 버리고 돈을 선택할 것이다. 그보다 좀 나은 자는 돈을 버리고 마지못해 진리를 선택할 것이고, 그 두 부류 중간에 있는 자는 한 손으로는 돈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진리를 붙들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참모습이 어떠할지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느냐? 자신이 충성스럽게 대하는 모든 것과 진리 사이에서 너희는 모두 이런 선택을 할 것이고, 너희 태도 또한 이럴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많은 자가 옳고 그름 사이에서 망설이지 않았느냐? 가정과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화목과 파탄, 부와 빈곤, 지위와 평범함, 지지받는 것과 버림받는 것과 같은 모든 정(正)과 반(反), 흑과 백의 싸움에서 너희가 무엇을 선택하였는지 너희 스스로 모를 리 없지 않으냐? 가정의 화목과 파탄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하는 데에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고, 금전과 본분 사이에서 또 전자를 선택했는데, 이를 뉘우치고 바른길로 돌아서려는 의지조차 없었다. 사치와 빈곤 사이에서도 전자를, 자녀, 아내, 남편과 나 사이에서도 전자를, 관념과 진리 사이에서도 전자를 선택하였다. 나는 너희의 온갖 악행에 너무나 놀랐고, 너희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다.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누그러지지 않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얻은 결과가 나를 포기하고 속수무책으로 구는 너희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모든 날들을 이미 너희 앞에 펼쳐 보였기 때문에 너희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너희는 지금도 어둡고 사악한 것을 추구하며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희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 너희는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그래도 전자를 택하겠느냐? 나에게 여전히 실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 주겠느냐? 너희의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그렇게도 작을까? 어떻게 해야 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이냐?> 중에서

356) 너희는 종착지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매우 진지하게 대하고, 개개인 모두가 종착지에 관한 일에 특별히 민감하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해서라도 좋은 종착지를 얻고 싶어 한다. 나는 너희의 간절한 마음을 알고 있으니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다. 너희는 그저 자신의 육체가 재난에 빠지지 않고, 더욱이 자신이 이후에 영원한 징벌에 떨어지지 않으며,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안락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종착지를 언급하면 특히 관심을 기울이며, 자칫 부주의로 하나님께 죄를 지어 그에 따르는 보응을 받게 될까 봐 매우 두려워한다. 게다가 너희는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서라면 굽실거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능구렁이 같던 자들도 종착지를 위해 갑자기 매우 성실해지고 온순해지는데, 그 성실한 모습은 실로 소름이 끼칠 정도다. 어찌 됐든, 너희의 마음은 다 ‘정직’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원망이든, 기만이든, 충성심이든 너희 마음속 비밀을 하나도 숨김없이 내게 털어놓았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너희는 가장 깊은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적인 것들을 내게 솔직하게 ‘고백’했고, 당연히 나 역시 그러한 것들을 피하지 않았다. 내게는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익숙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최후의 종착지를 위해서라면 불바다라도 뛰어들려고 하지만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머리카락 한 올 바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내가 너희를 너무 교조주의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내가 하는 모든 것을 너무 충성심 없이 대하는 것이다. 너희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간단히 설명을 하겠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진리와 생명, 사람됨의 원칙이 아니고, 내가 심혈을 기울인 사역은 더더욱 아니며, 너희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재물, 지위, 가정, 혼인 등등)이다. 너희는 내가 하는 말과 사역에 대해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두 글자로 너희의 믿음을 개괄하겠다. 그것은 바로 ‘건성’이다. 너희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달성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충성하고 상대적으로 진지하게 대한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지극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데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너희 가운데 실패한 사람이 많지 않으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 성공한 것은 그 자신의 행한 바에 의해서이고, 반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 역시 사람의 행위로 초래된 것이지 결코 다른 요인의 영향 때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나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일보다 더 어렵고 힘든 그 어떤 일도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해낼 것이고, 매우 진지하게 대할 것이며, 심지어 그 어떤 오차도 원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너희 개개인이 자신의 생활을 위해 부단히 기울이는 노력이다. 심지어 너희는 자신의 혈육을 속이지 않으면서 나의 육신을 속이는 짓도 해낼 수 있다. 이것이 너희의 일관된 행위이자 처세 원칙이다. 너희는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서, 아름답고 이상적인 종착지를 얻기 위해서 여전히 거짓된 모습으로 나를 속이고 있지 않느냐? 나는 너희의 충성심이 일시적인 것이고, 성실함도 일시적인 것임을 알고 있다. 너희의 의지와 대가도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더냐? 너희는 오로지 마지막 한 번의 노력으로 있는 힘을 다해 아름다운 종착지를 쟁취할 생각만 한다. 너희의 목적은 교환하는 것일 뿐, 진리에 부응하기 위함도 아니요, 나의 대가에 보답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머리를 써서 얻으려고만 할 뿐 노력으로 밀어붙일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심이 아니더냐? 스스로를 위장하지 말라. 더욱이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 식음을 잊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머리를 쥐어짜지도 말라. 결국 너희의 결말은 정해진 것이 아니더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종착지에 관하여> 중에서

357) 각 사람이 날마다 행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분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으며, 이는 또한 자신의 앞날을 위해 예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거쳐 가야 할 길이며, 내가 각 사람을 위해 예정해 놓은 것이다. 아무도 이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런 전례를 깨뜨릴 수도 없다. 나는 많은 말을 했고, 더욱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역을 했다. 나는 매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원래 본성과 심해지는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많은 사람이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 이 정상 궤도는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설정한 것이다. 나는 일찍이 각 부류의 사람을 모두 서로 다른 환경 속에 두었고, 그들은 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원래 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어느 누가 속박하지도, 유혹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자유로웠고, 드러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유독 그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말이었다.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죽지 않는’ 결말을 얻기 위해 나의 말을 억지로 읽어 볼 뿐 그대로 실천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또 다른 일부는 내 말의 인도와 공급을 받지 못하는 날들을 견디기 어려워 자연스럽게 내 말을 늘 받들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인생의 비밀과 인류의 종착지, 그리고 사람됨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게 되었다. 인류는 내 말 앞에서 이런 상태에 머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길 뿐, 내 말을 생존의 토대로 삼으라고 강요하는 어떤 사역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양심도, 생존할 가치도 없는 자들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과감하게 내 말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한다. 그들은 진리는 물론, 내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싫어하기 시작하였고, 내 집에 머무는 것은 더욱 싫어하였다. 그들이 힘을 쓴다 할지라도 그저 종착지를 위하여, 그리고 징벌을 피하기 위하여 잠시 내 집에 머무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바뀐 적이 없었고, 그들의 행위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복을 받으려는 그들의 욕망을 더욱 부채질했고, 단번에 영구히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는 생각, 심지어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 욕망을 더욱 부추겼다. 이렇게 나의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랄수록, 그들은 진리가 장애물과 걸림돌이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단숨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천국의 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도 되고, 심판과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되며, 더욱이 내 집에서 굽신거리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내 집에 들어온 것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나의 경영에 협력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다음 시대에 멸망되지 않는 일원이 되려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음속으로 진리가 무엇인지,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진리를 실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도, 또한 자신이 심하게 패괴되었다고 여기지 않으면서도 처음부터 내 집에 머무르며 ‘종’이 된 이유이다. 그들은 ‘인내심’ 있게 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내 사역 방식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든, 어떤 대가를 치렀든 그들이 진리를 위해 고난을 받고 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옛 시대를 폐하는 그날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하는 마음뿐이며, 내 능력과 권병이 얼마나 큰지 알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바꾸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서두른 적이 없다. 그들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며, 내가 증오하는 것을 소망하고 내가 혐오하는 것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이 사악한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을 증오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게다가 또 내가 그것을 멸해 버릴까 봐 몹시 두려워한다. 그들에게는 모순되는 마음이 있다. 내가 혐오하는 이 세상을 좋아하면서도 내가 이 세상을 하루빨리 멸하기를 ‘바라는’ 그것이다. 그들이 참도를 떠나기 전에 운 좋게 재난을 피할 수 있고, 한순간에 다음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모두가 바로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내게서 온 모든 것을 싫어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복을 잃지 않으려고 한동안 ‘순한 백성’이 될지도 모르지만, 복을 받으려는 다급한 심리와 멸망되어 불 못에 던져질까 봐 두려워하는 속마음은 지금껏 감추지 못했다. 나의 날이 임박할수록 그들의 욕망은 더욱 강렬해지고, 재난이 커질수록 그들은 더욱 안절부절못하며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내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 오랫동안 바라 마지않던 복도 잃지 않을 수 있는지를 몰라 한다. 나의 손이 일을 시작하면, 그들은 바로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해 선봉이 되려고 한다. 행여 내 눈에 띄지 못할까 봐 두려워 대오의 가장 앞쪽으로 나설 궁리만 하며,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진리와 무관하며, 그들의 행위가 내 계획을 파괴하고 방해한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비록 그들이 있는 힘을 다할지라도, 고통을 감내하려는 의지와 속내가 아주 진실할지라도,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은 나와 무관하다. 나는 그들의 행위가 선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느낀 적이 전혀 없거니와 그들이 내 제단에 무엇이라도 올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그 오랜 세월 동안 내 면전에서 행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 중에서

358) 사람은 내 오랜 사역 속에서 많은 것을 얻었고, 또 많은 것을 버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사람이 나를 진실로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은 입으로만 나를 하나님이라고 인정할 뿐, 내 입에서 나온 진리는 수긍하지 않고 내가 요구한 진리는 더욱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만 인정할 뿐, 진리와 생명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만 인정할 뿐 하나님의 본질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의 열정 때문에 사람을 혐오한다. 사람은 듣기 좋은 말로 나를 기만하기만 할 뿐, 진심으로 나를 경배하는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의 말은 독사의 유혹을 품고 있으며, 극히 교만하여 천사장의 ‘소리’ 같다. 너희의 행실은 썩어 빠졌고, 너희의 사치스러운 욕망과 탐욕스러운 속셈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너희는 모두 내 집의 좀 벌레, 내가 혐오하여 내치는 대상이 되었다. 너희는 전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늘나라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며, 그리스도가 땅에서 권세 잡는 장관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희같이 극도로 패괴되어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과연 하나님을 따를 자격이 있겠느냐? 너희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느냐? 전례 없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자격이 있겠느냐? 너희는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의 입에는 나를 기만하는 말과 더러운 말, 그리고 나를 배반하는 말과 교만한 말로 가득하다. 너희는 진실한 말로 나에게 간절히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거룩한 말도, 나의 말을 체험하여 나에게 순종하는 말도 한 적이 없다. 이런 너희의 믿음은 과연 어떠하냐? 너희의 마음속은 욕망과 돈으로 가득 찼고, 너희 머리는 물질로 가득 찼다. 너희는 날마다 어떻게 해야 내게서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 내게 얻은 돈과 물질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고 있으며, 더 많은 축복이 임하여 더 많고 좋은 물질을 누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너희가 매 순간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내게서 온 진리도 아니라, 너희의 남편(아내)과 아들딸, 그리고 너희가 먹고 입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더 잘 즐길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것을 즐길 수 있는지 등이다. 너희가 자신의 배를 가득 채운다고 해도 여전히 시체에 불과하지 않겠느냐? 너희가 겉으로 아주 화려하게 꾸민다고 해도 생기 없는 산송장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머리가 세도록 고생하면서도 내 사역을 위해서는 털끝 하나 바치려고 하지 않는다. 또 너희는 자신의 육체와 아들딸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고생하고 머리를 쥐어짜지만 내 마음을 생각하며 조급해하고 근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너희는 내게서 또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중에서

359) 내가 많은 말을 하고 내 뜻과 내 성품까지 나타내었건만, 사람은 여전히 나를 알지도, 믿지도 못한다. 혹은 나에게 순종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성경만 따르며 사는 사람, 율법만 따르며 사는 사람, 십자가에만 기대어 사는 사람, 규례만 따르며 사는 사람, 오늘날 나의 사역을 따르며 사는 사람, 이들 가운데 그 누가 내 마음에 합하겠느냐? 너희는 복받거나 상받을 궁리만 하였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와 적이 되지 않고 내 마음에 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너희가 너무나 실망스럽다. 너희에게 셀 수 없을 만큼 베풀어 주었지만, 내가 너희에게서 얻은 것은 너무나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너희의 기만과 교만, 너희의 탐욕과 사치스러운 욕망, 너희의 배반과 불복종,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내 눈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무성의하게 대하고 속이며 욕되게 한다. 또한 기만하고, 사기 치며, 나의 제물을 강탈한다. 이런 악행들이 어떻게 내 징벌을 피해 갈 수 있겠느냐? 이 악행들은 너희가 나를 적대시하며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너희는 저마다 내 마음에 합하는 부분이 아주 많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이 확실한 증거는 또 누구에게 해당하는 것이란 말이냐? 너희는 나에게 진심을 다하고, 변치 않는 마음으로 충성한다고 여긴다. 또한 너희는 자신들이 더없이 착하고, 동정심도 넘쳐난다고 여기며, 나에게 셀 수 없이 많이 바쳤고, 나를 위해 행한 것도 충분히 많다고 여긴다. 하지만 너희는 그런 생각들을 자신의 행위와 대조해 본 적이 있느냐? 내가 말해 주겠다. 너희는 교만으로 가득 찼고, 너무나 탐욕스러우며, 건성으로 하는 일이 많다. 게다가 나를 속이는 데 탁월하고, 비열한 속셈과 수단이 너무 많다. 너희는 충성심과 진심이 한없이 부족하고, 양심은 더욱 없으며, 마음씨 또한 너무나 악독하여 어떤 사람도 그냥 두지 않는다. 심지어 나에게도 예외는 없다. 너희는 자녀와 남편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를 문전 박대 한다. 너희의 가정과 자녀, 지위와 앞날, 그리고 누리는 데에만 관심을 둘 뿐, 나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너희가 말을 할 때, 일을 할 때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날이 추울 때도, 더울 때도 너희는 자녀와 남편(아내), 그리고 부모를 생각하지, 나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네가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과 신변 안전, 그리고 너의 가족이다. 네가 행한 일 중에 나를 위한 것이 있었느냐? 언제 나를 생각한 적이 있었느냐? 나와 내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한 적이 있었느냐? 내 마음에 합하는 증거는 어디에 있느냐? 실제로 나에게 충성하였느냐? 실제로 나에게 순종하였느냐? 복을 얻으려는 마음을 갖지는 않았느냐? 너희는 모두 나를 건성으로 대하며 기만하고 있다. 또한 진리를 우롱하고, 진리의 존재를 덮어 감추며, 진리의 본질을 배반하고 있다. 나를 이토록 적대시했으니, 너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너희는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며, 막연한 신앙만을 추구하지, 그리스도의 마음에는 합하지 않는다. 이런 악행을 저지르고 있으니 악인과 똑같은 보응을 받지 않겠느냐? 그때가 되면, 너희는 그리스도와 합하지 않은 자는 그 누구도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적대시하는 자가 어떤 보응을 받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360) 너희의 추구에는 개인의 관념, 기대와 미래에 대한 것이 너무나 많다. 현재 이렇게 사역하는 이유는 바로 지위에 대한 너희의 마음과 사치스러운 욕망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그러한 기대와 지위, 관념은 모두 전형적인 사탄 성품을 대변한다. 사람의 마음에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탄의 독소가 사람의 사상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종일관 사탄의 그 유혹을 벗어던지지 못하여 죄 속에서 살면서도 죄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사람은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알맞게 마련해 주셔야 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야 하는 거야. 어떤 사람보다도 지위가 높고 앞날이 밝아야 해.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축복을 주셔야 해.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잖아.’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생존의 토대가 된 사상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좀먹어 사람을 간사하고 나약하며 비열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람은 끈기도, 의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고 거만하게 변했다.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 흑암 권세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용기는 더더욱 없다. 사람의 사상과 삶은 썩어 문드러졌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관점 또한 추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해 말하자면 그야말로 듣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사람은 모두 나약하고 무능하며 비열하고 연약하다. 흑암 권세에 대해 어떤 증오심도 느끼지 못하고, 광명과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쫓아낸다. 현재 너희의 사상과 관점도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을 믿는 이상 복을 받아야 하고,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아야 하며, 믿지 않는 사람보다 높은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관점이 너희 내면에 자리 잡은 건 1~2년의 일이 아니라, 이미 꽤 오래되었다. 너희는 장삿속이 아주 발달했다.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지위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 채 계속 바득바득 ‘추궁’하고 있다. 게다가 매일같이 관찰하며, 언젠가 지위도, 명예도 모두 잃게 되지 않을까 심히 두려워하고 있다. 사람은 안락을 탐하는 마음을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다. … 네가 이렇게 추구할수록 얻는 것이 없다. 지위에 대한 욕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큰 책망을 받고, 더 큰 연단을 겪게 된다. 그런 사람은 너무나도 무가치하다! 많은 책망과 심판을 받아야만 철저하게 내려놓을 수 있다. 너희가 이런 식으로 추구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변화할 수 없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얻을 수 없다. 너는 자신의 변화와 진입을 추구하기보다는, 언제나 사치스러운 욕망이나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가까이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들을 중시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너를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 너를 하나님나라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중에서

361) 사람은 빛 속에 살지만 빛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빛의 본질도 모르고, 빛의 출처도 모르며, 빛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더 모른다. 나는 인간 세상에 빛을 내린 후 바로 세상의 모습을 관찰했는데, 모든 사람이 빛으로 인해 변화되고, 빛으로 인해 성장하고, 빛으로 인해 어둠에서 벗어났다. 온 우주 곳곳을 살펴보니 산은 안개 속에 잠겨 있고, 물은 혹한 속에 얼어 있었다. 사람은 빛의 도래로 동방을 바라보며 더 귀중한 것을 찾고자 했지만, 짙은 안개 속에서 좀처럼 방향을 구별하지 못했다. 온 세상이 짙은 안개로 덮여 있었기에 내가 구름 위에서 세상을 살필 때 내 존재를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모두 땅 위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먹을 것을 찾는 것 같기도 하고, 주의를 기울여 나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날을 모르기에 수시로 동방의 희미한 빛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만민 가운데서 진정 내 뜻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고자 만민 사이를 돌아다니고 만민과 함께 생활했지만, 땅에 있는 모두가 근심 없이 평안함에 빠져 있어 진정 내 뜻에 부합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가 하는 일을 관찰하지 못하고, 빛 안에서 행하며 빛 비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은 한때 내 말을 소중히 했으나 사탄의 간계를 꿰뚫어 보지 못했고, 분량이 너무 작아 자신이 마음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 내가 사람을 높여 주었을 때 모든 사람은 스스로 자격이 없음을 느꼈으나 그로써 나를 만족게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준 ‘지위’를 두 손으로 받쳐 들어 자세히 연구했고, 나의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지위의 복을 ‘탐할’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부족한 점 아니겠느냐? 산이 움직일 때 네 ‘지위’ 때문에 너를 피해 돌아가겠느냐? 물이 흐를 때 사람의 ‘지위’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겠느냐? 천지가 사람의 ‘지위’ 때문에 뒤집힐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에게 거듭 긍휼을 베풀었지만 사람은 그저 ‘이야기’ 삼아 듣고, ‘소설’ 삼아 볼 뿐 아무도 아끼거나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내 말이 사람의 심금을 울리지 못한 것이냐? 내 말이 아무 효과도 없는 것이냐? 설마 내 존재를 믿는 자가 없는 것이냐?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사탄과 영합하여 내게 반격하며, 사탄을 자신의 ‘자산’으로 삼아 나를 섬긴다. 나는 사탄의 모든 간계를 간파해 땅에 있는 사람이 다시는 사탄에게 미혹당하지 않고, 사탄의 존재로 인해 나를 대적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2편> 중에서

362) 많은 사람들은 내 뒤에서 지위의 복을 탐하고, 먹는 것과 자는 것을 탐하며, 늘 육체가 편하지 못할까 걱정하기에 급급하다. 교회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공밥을 먹거나 나의 말로 형제자매를 훈계하고, 높은 위치에 서서 사람들을 속박한다. 이런 사람들은 말끝마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고 떠들어 대고, 또한 자신을 하나님의 지기라고 한다. 이는 황당무계한 논리가 아니고 무엇이냐? 만약 네가 마음 자세는 바르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기지 못한다면, 너는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마음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 나는 이런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공짜로 밥을 먹고 항상 육적인 안락만을 탐하며, 하나님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도모한다. 또 하나님의 뜻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행동에서 하나님 영의 감찰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늘 간교하게 형제자매들을 기만하고, 사람들 앞과 뒤에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마치 여우가 포도원에 들어가 포도를 훔쳐 먹고 포도원을 짓밟는 것과 같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지기가 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자신의 생명과 교회에 대해 부담이 전혀 없는 네가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이런 자를 누가 과연 신뢰할 수 있겠느냐? 너처럼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이 더 큰 임무를 맡길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한다면 일을 그르치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중에서

363) 대다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도 조건을 내건다. 그런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인지 사람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조건만을 얘기하거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만 한다. 너희는 나에게 밥을 지어 주면 품값을 요구하고, 나를 위해 다리품을 팔면 수고비를 요구하며, 나를 위해 사역하면 사역비를 요구하고, 나에게 빨래를 해 주면 세탁비를 요구하며, 교회에 공급하는 일을 하면 몸보신 비용을 요구한다. 말하는 자는 강의료를 요구하고, 책을 배부하는 자는 책 배부 비용을 요구하며, 글을 쓰는 자는 원고료를 요구한다. 심지어 내게 책망받은 사람은 내게 보상금을 요구하고, 집으로 돌려보낸 사람은 명예 훼손 배상금을 요구하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혼수비와 청춘을 바친 대가를 요구한다. 또한 닭 잡은 사람, 요리를 만든 사람, 국을 끓인 사람 등 다 그에 따른 수고비를 요구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너희의 고상하고도 위대한 인성이며, 너희의 그 따뜻한 양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너희의 이성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의 인성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너희가 계속 이렇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너희들 가운데서 사역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에게 사역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 같은 인면수심의 무리들 때문에 고통받지 않을 것이고, 구원할 여지가 조금도 없는 이런 짐승들을 위해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등을 돌리는 날은 바로 너희가 죽는 날이고, 어둠이 너희에게 임하는 날이며, 광명이 너희를 버리는 날이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나는 너희처럼 짐승보다도 못한 무리에게 큰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일하는 데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너희의 인성과 양심이 이러하니 나는 더 많은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너무 양심이 없고, 나의 마음을 너무 많이 상하게 했으며, 너희의 비열한 행위는 나를 너무 역겹게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성과 양심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을 기회가 없다. 나는 이렇게 흉악하고 잔인한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날이 올 때, 나는 나를 크게 진노하게 했던 이 패역한 자식들에게 영원히 불사름의 불을 쏟을 것이고, 예전에 나를 욕하고 저버린 이 짐승들에게 영원히 징벌을 내릴 것이며, 나와 함께 먹고 함께 지냈지만 나를 믿지 않고 모욕하고 배반한 그 패역한 자식들을 영원히 나의 분노의 불길로 태울 것이다. 나를 분노하게 한 모든 사람을 나의 징벌 속에 내던질 것이고, 나와 동등해지고 싶어 하며 나를 전혀 경배하지 않고 내게 순종한 적이 없는 짐승들에게 나의 모든 분노를 쏟을 것이며, 내 입에서 나온 말의 비밀과 나의 보살핌을 누리고 나에게서 물질적인 누림을 다투었던 짐승들을 나의 채찍으로 칠 것이다. 나는 내 지위를 빼앗으려는 자는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나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투는 자는 그 누구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364) 잔혹한 인류야!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이냐? 하나님은 많고 많은 말씀을 했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정과 자녀, 직업, 앞날, 지위, 허영, 재산,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생각하느라 급급했다.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생각했느냐?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이 강제로 사형 선고를 받은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또 얼마나 많은 잔인한 재판관들이 하나님을 정죄하여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 모른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생각하여 의인이라 칭함 받을 자가 몇이나 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중에서

365) 오늘날 너희의 소행을 알고 있기는 한 것이냐? 너희는 제멋대로 행동하고, 아옹다옹 싸우며, 서로 속고 속인다. 서로를 기만하고 숨기며, 수치를 모르고, 진리를 알지 못한다. 또한, 교활하고 간사하며, 아부에 능하다. 독선적이고 거만하고 교만하며, 산짐승처럼 야만적이고, 백수의 왕처럼 난폭하다. 너희에게 사람의 면모가 있기는 하더냐? 너희는 상스럽고 경우가 없다. 나의 말을 진귀한 보물로 여기기는커녕 경멸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렇게 행동하는데 성과며 진정한 삶, 아름다운 소망이 어디에서 올 수 있겠느냐? 분에 넘치는 상상이 정말 너를 범의 아가리에서 구해 낼 수 있겠느냐?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너를 구해 낼 수 있느냐? 네가 정말 나의 사역을 더없이 귀중한 보물로 여긴다면 이 지경에 이르렀겠느냐? 네 운명은 정녕 바뀔 수 없다는 말이냐? 이렇게 억울하게 죽기를 원한다는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본질과 신분> 중에서

366) 너희 각자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높이 올라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 너희는 또한 매우 난폭하여 모든 구더기 속에서 제멋대로 활개 치며 안락한 곳을 찾고, 자기보다 작은 구더기들을 삼키려고 망상한다. 너희의 마음은 음험하고 악랄하기가 창해의 깊은 물 속을 떠도는 유령들보다도 더하며, 거름 더미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고 살면서 위아래의 모든 구더기들을 편안할 틈 없이 방해하고, 서로 살육전을 벌인 후에야 조용해진다. 너희는 자신의 지위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거름 더미 속에서 서로 공격을 일삼으니, 그렇게 싸운들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이냐? 너희에게 진실로 나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나를 등지고 서로 아귀다툼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네 지위가 아무리 높아 봤자 거름 더미 속에 사는 작고 더러운 버러지가 아니냐? 설마 날개라도 돋아 하늘을 나는 흰 비둘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낙엽이 뿌리로 돌아갈 때 네가 행한 모든 악행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중에서

367) 너희는 오늘 내 입에서 나온 날 선 검만 보았을 뿐, 내 손에 있는 채찍과 사람을 불사르는 불길은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는 계속 내 앞에서 교만하고 방종하며, 계속 내 집에서 나와 싸우면서 사람의 혀로 나의 말에 반박한다. 사람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늘날까지도 전혀 두려움 없이 나를 적대하고 있다. 너희 입에는 불의한 자의 혀와 이가 있고, 너희 언행은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한 독사와 같아 서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고, 내 앞에서 자신의 지위와 명리를 다투지만, 내가 너희 언행을 은밀히 관찰하고 있고, 너희가 내 눈앞에 오기 전에 내가 이미 너희 마음속을 다 들여다보았다는 것은 전혀 모른다. 사람은 늘 내 손에서 벗어나려 하고 내 눈의 감찰을 피하려고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사람의 언행을 피한 적이 없다. 오히려 사람의 불의를 형벌하고 사람의 패역을 심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람의 언행이 나의 두 눈에 띄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이 뒤에서 하는 말과 행동은 늘 나의 심판대 앞에 있고, 나의 심판은 지금까지 사람을 떠난 적이 없다. 이는 사람의 패역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나의 사역은 사람이 내 영 앞에서 하는 모든 언행을 불살라 정결케 하고, 내가 땅을 떠날 때에도 사람이 내게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게 하며, 나의 거룩한 종이 나를 섬겼던 것처럼 내 사역을 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사역이 끝나는 그날까지 땅에서 하는 내 사역이 지속되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중에서

368) 나는 타인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고,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특별히 보살피는데, 내 눈에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정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네가 매우 간사한 사람이라면 너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경계하고 추측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너의 믿음 역시 의심의 토대 위에 세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나는 영원히 인정할 수 없다. 참된 믿음이 없다면 참된 사랑은 더욱 논할 것도 못 된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제멋대로 추측하기까지 한다면, 너는 틀림없이 누구보다 간사한 사람일 것이다. 너는 ‘하나님도 사람처럼 죄 사함을 못 받지는 않을까, 사람처럼 속이 좁지는 않을까, 사람처럼 불공평하고 불합리하지 않을까, 사람처럼 정의감이 없지 않을까, 사람처럼 수단이 악랄하고, 음험하고 간교하지 않을까, 사람처럼 사악함과 흑암을 좋아하지는 않을까….’라고 의심을 한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 아니냐? 그러한 믿음은 그야말로 죄업을 쌓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내가 비위를 잘 맞추고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처럼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에서 환대를 받지도, 발을 붙이지도 못할 것이라고 여긴다. 이것이 바로 오랜 기간 동안 너희가 얻은 인식이더냐? 이것이 바로 너희가 얻은 수확이더냐? 너희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런 오해에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경우는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고 하늘을 능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그런 믿음이 너희가 내게서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너희가 나를 더욱 적대하게 만들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369) 많은 사람이 지옥에 떨어질지언정 정직한 말을 하거나 정직하게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별도로 처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나는 너희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너희는 너무도 ‘영악’하고,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생각을 헤아리는 것에 능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의 사역도 한결 쉬워졌다. 너희는 저마다 딴마음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좋다! 나는 너희 한 명 한 명을 모두 재난 속에 두어 불의 ‘가르침’을 받게 하겠다. 그러고 나면 너희는 ‘확고부동’하게 내 말을 믿을 것이다. 결국, 나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라는 말이 나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간교하구나!’라며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울 것이다. 그때 너희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지금처럼 거들먹거리고 득의양양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처럼 ‘짐작할 수 없는’ 모습은 더욱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착실하게 굴며 매우 ‘얌전’하지만, 영 앞에서는 매우 흉포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자들을 정직한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겠느냐? 만약 네가 위선자이고 ‘사교’에 매우 능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우롱하는 자일 것이다. 만약 네가 말에 변명이 많고 쓸데없이 설명을 늘어놓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진리를 행하려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네게 밝히기 힘든 사적인 일이 많다면, 자신의 비밀, 즉 자신의 어려운 점을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광명의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너는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며, 흑암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일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훈언 3칙> 중에서

370)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나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으며,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사람은 늘 하나님을 피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멀어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사실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간 것도 아니다. 자기가 간직한 채 하나님께 드리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보여 드리지도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저의 마음을 감찰하소서. 당신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라고 늘 기도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감찰을 받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하고, 그 서원을 어기면 벌을 받겠다고 맹세할지라도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감찰하라고 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앞날과 운명과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께 어떤 맹세를 하고 다짐을 했든지 간에, 하나님이 보기에 너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 있다. 너는 하나님께 너의 마음을 살피는 것만 허락했지, 너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너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놓지도 않았으며, 그저 듣기 좋은 말만 하고는 각종 간사한 속셈은 다 감춘 것이다. 너는 자신의 의도와 타산, 계획을 전부 숨기고, 앞날과 운명을 하나님이 빼앗아 갈까 두려워 자기 손안에 꼭 쥐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라 사람이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볼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으며, 사람은 마음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단지 살펴볼 권리만 있지 다스릴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주관적인 의식 안에 자신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길 생각이나 계획이 없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폐쇄적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갖은 방법을 다해 마음을 감추고, 감언이설로 허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신임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실한 모습은 감추어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하는 목적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고, 자신이 간수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일을 생각하든 다 자신이 계획하고 타산하며 결정하고 싶은 것이지 하나님의 ‘참여’와 간섭이 필요치 않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이나 당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대할 때는 자신의 속셈과 이익, 그리고 그 당시의 자신의 상태와 처한 환경에 따라 선택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늘 자신의 지식과 식견을 바탕으로, 자신의 머리로 자기가 나아갈 길을 판단하고 선택하며, 하나님이 간섭하고 다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본 사람의 마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371) 역대로 수많은 사람이 실망과 미련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 왔다. 나는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을 계획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내 손을 거쳐 갔다. 많은 영들이 저승에 떨어졌고, 많은 영들이 육신에서 살고 있으며, 많은 영들이 땅에서 죽었다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나라에서 복을 누릴 기회는 얻지 못했다. 내가 사람에게 준 것은 적지 않으나 사람이 얻은 것은 많지 않다. 사탄 세력의 공격으로 사람은 나의 모든 풍요로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바라만 볼 뿐 다 누리지는 못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하늘의 풍요로움을 받을 수 있는 보물 창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에 내가 내린 복을 놓쳐 버렸다. 사람의 영은 나의 영과 통하는 기관(器官)이 아니더냐? 왜 사람은 늘 영을 통해 나와 접촉하지 못하느냐? 왜 육신에서는 나를 가까이하면서 영을 통해서는 그러지 못하느냐? 설마 나의 본래 모습이 육신이기라도 하단 말이냐? 왜 사람은 나의 본질을 알지 못하느냐? 사람의 영 안에 나에 대한 기억이 조금도 없단 말이냐? 내가 사람의 영 안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냐? 사람이 영계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나의 뜻을 알 수 있겠느냐? 설마 사람의 눈은 영계까지 볼 수 있단 말이냐? 나는 영을 통해 수없이 사람을 불렀다. 그러나 사람은 나에게 자상이라도 입은 듯, 내가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할까 몹시 두려워하면서 먼발치에서 나를 바라만 보았다. 나는 사람의 영을 통해 사람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사람은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내가 사람의 집에 들어가 모든 물건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를 문밖에 세워 두었다. 내가 마주한 것은 굳게 닫힌, 차가운 ‘대문’뿐이었다. 나는 사람이 길을 잃었을 때, 사람을 수없이 구했다. 그러나 사람은 정신이 든 순간 나를 떠났다. 나의 자비에 감동하기는커녕 사람은 나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일 수 없었다. 사람은 감정이 없는 냉혈 동물이다. 나의 품에서 따뜻함을 느껴도 감동하지 않는다. 사람은 산속의 야만인 같아 내가 사람을 ‘아껴’ 주는 것을 귀하게 여긴 적이 없다. 나를 가까이하느니 차라리 산속에 묻혀 살기를 원한다. 산짐승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나에게 의지하고자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사역을 행할 뿐이다. 모든 사람이 망망대해에서 나의 곁으로 헤엄쳐 와 육지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바닷물에 삼켜질 위험에서 벗어날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0편> 중에서

372) 나는 너희 마음속에 자리한 간사한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너희 대부분은 호기심 때문에 나를 따르고, 공허함으로 인해 나를 찾는다. 너희의 세 번째 소망인 평안하고 행복한 삶이 산산조각 날 때 너희의 호기심도 함께 사라진다. 너희 모두가 품고 있는 간사한 마음은 언행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솔직히 말하면, 너희는 나에 대해 호기심만 느낄 뿐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말을 가려서 하거나, 행동에 신중을 기하는 법이 없다. 너희의 믿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진실한 것이냐? 너희는 내 말을 그저 근심을 해소하고,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 허전함을 채우는 데 쓸 뿐이다. 내 말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누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냐? 너희는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라고 외치지만 너희가 마음으로 부르짖는 하나님이 나이긴 한 것이냐? 너희는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냐? 이것이 너희가 내게 보답하겠다고 하는 사랑이란 말이냐? 너희가 말로는 많은 것을 바쳤다. 그런데 너희가 바친 ‘제물’과 ‘선행’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너희의 말이 내 귀에 상달되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너희를 이토록 증오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믿는다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궁색한 처지로 전락했겠느냐? 너희는 음부에서 심문을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낙담하여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맥없이 진심을 이야기하는데 온통 원망과 악담뿐이다. 너희는 내가 하는 일에 믿음을 잃은 지 오래고, 너희가 원래 가졌던 믿음조차 모두 사라졌다. 이래서야 어떻게 끝까지 따를 수 있겠느냐? 어떻게 ‘구원 얻을’ 수 있다는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나이 든 자와 젊은 자들에게 전하는 말> 중에서

373) 너희는 믿음이 아주 훌륭하여 내 사역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겠다느니, 기꺼이 목숨을 걸겠다느니 하는 말을 내뱉지만, 성품은 별로 변화하지 않았다. 그저 교만한 말만 할 뿐, 실제 행동은 형편없다. 마치 입술과 혀는 천상에 있고, 양발은 지상에 붙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사람의 언행과 명성은 여전히 볼품없기 짝이 없다. 너희의 명성은 망가졌고, 너희의 행동거지는 비천하며, 너희의 말은 저속하고, 너희의 삶은 천박하다. 심지어 너희는 인성마저 저열하다. 너희는 사람에 대해 속이 좁고 무슨 일이든 옥신각신 따지고 들며,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 다투고, 그것을 위해 지옥이나 불 못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늘날, 너희의 이런 언행만으로도 너희를 정죄하기에 충분하며, 내 사역에 대한 너희의 태도만으로도 너희를 불의한 사람으로 규정하기에 충분하다. 또 너희의 모든 성품은 너희를 가증스러운 것들로 가득 찬 더러운 영혼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며, 너희가 나타내는 모든 모습은 너희가 더러운 귀신의 피로 배를 채운 사람임을 보여 준다. 천국에 가는 일에 대해 말하면 너희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현재 너희는 그런 모습으로 나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게 언행을 검증받지 않고도 너희는 자유로이 내가 사역하고 말하는 성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누가 내 두 눈을 속일 수 있겠느냐? 너희의 비천한 행동거지와 저속한 말투가 어찌 내 눈을 피할 수 있겠느냐? 나는 너희의 삶을 더러운 귀신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삶이라 규정했다. 너희는 날마다 내 앞에서 그 더러운 귀신의 몰골을 흉내 내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앞에서 더없이 저열한 작태를 보이는데 내가 어찌 혐오감이 들지 않겠느냐? 너희의 말에는 더러운 귀신의 불순물, 즉 사기와 기만, 아첨이 들어 있다. 그것은 사술(邪術)을 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간사한 짓을 벌이며 불의한 자의 피를 마시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모든 모습이 극도로 불의한데, 어떻게 그런 자들을 의인들이 거하는 그 거룩한 땅에 들일 수 있겠느냐? 너는 그 비열한 행위를 보이면서도 불의한 자들 가운데서 거룩하게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독사 같은 혓바닥이 결국에는 너의 그 멸망의 가증한 육체를 망칠 것이며, 더러운 귀신의 피로 물든 네 그 두 손이 결국에는 네 영혼을 지옥으로 끌어갈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이 기회에 더럽혀진 두 손을 깨끗이 씻지 않는 것이냐? 어찌하여 이 기회에 불의한 말을 하는 네 혀를 ‘잘라 내지’ 않는 것이냐? 네 두 손과 혓바닥 때문에 지옥 불에 불사름 당하겠다는 것이냐? 내 두 눈은 만인의 마음을 감찰한다. 나는 인류를 만들기 전부터 사람의 마음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전부터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거늘,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어찌 내 눈을 피할 수 있겠느냐? 또 어찌 내 영의 불사름을 피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374) 네 입술은 비둘기보다도 선량하지만, 네 마음은 옛 뱀보다도 음험하다. 더 나아가 네 입술은 레바논의 여인처럼 아름답지만, 네 마음은 가나안 사람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레바논의 여인만큼도 선량하지 않다. 네 마음은 너무나 간사하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불의한 자의 입술과 마음이다. 사람에 대한 내 요구는 거룩한 자보다 높지 않다. 나는 다만 그 불의한 자들의 악행에 혐오감을 느낄 뿐이다. 나는 그저 그 불의한 자들이 더러움을 벗어던지고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나, 그 불의한 자들에게서 구별되고 의인들과 함께 거하며 함께 성결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너희는 나와 같은 경지에서 함께하지만 더러움으로 가득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태초에 지음 받았을 때의 모습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너희는 날마다 더러운 귀신의 꼬락서니를 흉내 내고, 더러운 귀신의 작태를 행하며, 더러운 귀신의 말을 입에 담는다. 그로 인해 너희의 온몸은 물론, 너희의 혓바닥까지 전부 그것의 오물로 더럽혀졌으며, 너희 전체가 그 얼룩으로 뒤덮였다. 너희에게는 내 사역에 사용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으니 참으로 가슴 아프구나! 그런데 너희는 이 짐승 같은 세상에서 살면서도 근심과 고뇌를 느끼기는커녕 환희로 가득 차 자유롭게 살고 있다. 또, 이 오물 속에서 헤엄치면서도 자신이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매일 더러운 귀신과 왕래하고, ‘분뇨’와 왕래하는 저질스러운 삶을 살고 있음을 모르는구나. 네가 정녕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너 스스로를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인생은 진작에 그 더러운 귀신에게 유린당했음을 왜 모른단 말이냐? 네 인격은 이미 오래전에 그 오물로 더럽혀졌음을 왜 모른단 말이냐? 너는 네가 인간 낙원에서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하느냐? 자신이 평생 더러운 귀신과 함께 살아왔고, 그 귀신이 너를 위해 예비한 모든 것들과 일생을 함께했음을 왜 모르는 것이냐? 네 삶이 의의가 있겠느냐? 네 인생이 가치가 있겠느냐? 너는 그 더러운 귀신 아비 어미를 위해 지금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녔으면서도, 너를 해한 자가 실은 너를 낳고 길러 준 그 더러운 귀신 아비 어미임을 모르고, 너의 더러움은 그것이 네게 공급해 준 것임은 더더욱 모르는구나. 네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네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뿐이다. 그것은 너를 형벌하지도 심판하지도 않으며, 더욱이 저주하지도 않는다. 또한 한 번도 네게 노발대발한 적이 없이 늘 ‘온화하고 상냥하게’ 대했다. 그것의 말은 네 마음을 적시고 네 정신을 쏙 빼 가 방향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게 빠져들어 기꺼이 그것을 위해 힘쓰게 되었고, 그것의 대변인, 그것의 노예가 되었다. 그럼에도 너는 어떤 원망조차 하지 않고 기꺼이 그것을 위해 온갖 충성을 다한다. 너는 그것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랬기에 내 사역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 그랬기에 줄곧 내 손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감언이설로 내 환심을 사려 했던 것이다. 너에게는 다른 타산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나, 전능자의 행사에 대해 얼마간 알고 있지만, 나의 심판과 형벌에 대해서는 추호도 알지 못한다. 너는 내 형벌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저 나를 기만할 줄만 알 뿐, 내가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375) 너희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 너희에게 소리친 적이 있더냐? 너희와 작은 일까지 시시콜콜 따진 적이 있더냐? 또 너희를 이유 없이 부당하게 훈계한 적이 있더냐? 대놓고 질책한 적이 있더냐? 내가 나의 사역을 위해 너희가 모든 시험을 면하도록 아버지께 간청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너희는 어째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냐? 내가 나의 권병으로 너희의 육을 친 적이 있더냐? 너희는 어째서 나에게 이렇게 보복하는 것이냐? 나에 대해 차가웠다가 뜨거웠다가 또 미지근하고, 나를 속이거나 나에게 뭔가를 감추곤 한다. 너희의 입에는 불의한 자의 타액이 가득하다. 너희의 혀가 나의 영을 기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의 혀가 나의 분노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의 혀로 나 여호와의 행사를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사람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이냐? 너희처럼 미천한 구더기가 나를 모독하는 것을 내가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이런 패역의 자식들에게 내가 어찌 나의 영원한 복을 내릴 수 있겠느냐? 너희의 언행은 이미 너희의 실체를 폭로했고, 너희 자신을 정죄했다. 나는 하늘을 펴고 만물을 창조할 때부터 나 외의 어떤 피조물도 함부로 내 일에 참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더욱이 그 어떤 존재도 제멋대로 나의 사역과 경영을 교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도, 어떤 존재도 용납하지 않았거늘, 나에게 잔인무도하게 구는 자들을 어찌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내 말을 배반하는 사람을 어찌 사해 줄 수 있겠느냐? 나를 거역하는 사람을 어찌 그냥 둘 수 있겠느냐? 사람의 운명이 나 전능자의 손안에 있지 않느냐? 내가 어찌 너의 불의와 패역을 거룩하게 여길 수 있겠느냐? 너의 죄악이 어찌 나의 거룩함을 더럽힐 수 있겠느냐? 나는 그 불의한 자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불의한 자의 예물도 누리지 않는다. 네가 나 여호와에게 충성한다면 어찌 내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자기 것인 양 차지할 수 있겠느냐? 어찌 그 독사의 입술과 혀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할 수 있겠느냐? 어찌 이렇게 나의 말을 배반할 수 있겠느냐? 어찌 나의 영광과 거룩한 이름을 사탄, 그 악한 자를 위해 힘쓰는 도구로 삼을 수 있겠느냐? 나의 생명은 거룩한 자에게 누리라고 주는 것이거늘, 그 생명을 함부로 가져다가 노리개 취급을 하고 너희끼리 싸울 때 사용하는 도구로 삼는 것을 내가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어찌 이렇게 나에게 무자비하며 선인의 도마저 저버릴 수 있단 말이냐? 내가 너희의 모든 악행을 이 생명의 말씀에 기록하였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애굽을 형벌하는 내 진노의 날을 너희가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이처럼 계속 대적하고 거역하는 것을 내가 어찌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노니, 그날이 오면 너희는 애굽이 받은 것보다 더 중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너희가 어찌 내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육에 속한 자는 누구도 그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없다> 중에서

376) 나는 너희 가운데서 몇 해를 다녔고, 또한 오랜 세월 너희 가운데서 생활하였다. 내가 너희와 함께 생활했는데, 너희의 비열한 행위가 내 눈앞에서 얼마나 사라졌느냐? 너희의 마음속 말은 내 귀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너희의 다짐은 내 제단 위에 첩첩이 쌓여 그 수를 셀 수도 없다. 그러나 너희의 봉헌과 헌신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너희의 진심은 내 제단 위에 전혀 놓이지 않았다. 나에 대한 너희 믿음의 열매는 어디에 있느냐? 너희는 나에게서 한없는 은혜를 얻고, 한없는 하늘의 비밀을 보았다. 나는 너희에게 하늘의 불길까지 보여 주었으나 차마 너희를 불사르지는 못했다. 그런데 너희는 내게 얼마나 돌려주었느냐? 너희가 기꺼이 내게 준 것은 얼마나 되느냐? 내가 베풀어 준 음식을 다시 내게 바치는 주제에, 힘들게 피땀 흘려 얻은 것이라느니, 너의 모든 것을 바친다느니 하며 지껄이는구나. 네가 ‘바친’ 것이 전부 내 제단에서 훔쳐 간 것임을 모른단 말이냐? 오늘 그것을 다시 내게 바치니 이는 나를 기만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오늘 내가 누리는 것은 전부 내 제단 위에 놓인 제물이지, 네가 피땀 흘려 얻은 것을 내게 바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어찌 모르는 것이냐? 너희가 이렇게 나를 기만하는데, 내가 어찌 너희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어찌 계속 참을 수 있겠느냐? 나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었다. 나는 전부 공개하며, 너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여 너희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 그런데 너희는 양심을 저버리고 나를 기만하는구나. 나는 사심 없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베풀어 주었다. 너희는 비록 고통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하늘에서 가져온 모든 것을 얻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희는 조금도 봉헌하지 않는구나. 설령 조금 공헌했다고 해도 조금만 지나면 또 내게 ‘장부를 들이대니’, 너의 공헌이 전부 헛되지 않겠느냐? 네가 내게 바친 것은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 한 톨이지만, 내게 요구한 것은 황금 만 냥이다. 이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냐? 나는 너희 가운데서 사역하지만, 많은 제물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십일조마저도 받지 못했다. 또 경건한 사람들이 바친 십일조마저 전부 악한 자들에게 빼앗겼다. 그러니 너희는 모두 나와 함께 모이지 않는 자들이 아니겠느냐?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이 아니겠느냐? 내 제단을 파괴하는 자들이 아니겠느냐? 그런 자들이 어찌 내 눈에 귀하게 보이겠느냐? 그런 자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혐오하는 개돼지가 아니냐? 내가 어찌 너희의 악행을 귀히 여기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377) 사람은 모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천박한 존재다. 사람은 자신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설마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망치는 짓이 가치 있는 것이란 말이냐? 사람은 모두 음녀처럼 스스로를 우롱하고, 자신을 임의로 다른 자의 손에 넘겨주어 유린하게 했다. 그럼에도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비천함을 모르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해 주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여 자신을 다른 사람이 장악하게 그들에게 넘겨 주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더러운 부분이 아니냐? 나는 인간 세상의 생활을 겪어 보지 않았고, 인생을 진정으로 체험해 보지도 않았어도 사람의 말과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는 오히려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다. 심지어 사람을 몸 둘 바 모를 정도로 해부할 수 있고, 나아가 두 번 다시 자신의 수작을 과시하지 못하고 두 번 다시 자신의 정욕을 방종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또한 달팽이가 껍질 안으로 움츠러드는 것처럼 두 번 다시 자신의 추태를 드러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사람이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가장 큰 허물은 바로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용모와 추악한 몰골을 자랑하기 좋아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장 혐오한다. 사람 간의 관계가 비정상이고, 서로 정상적인 대인 관계도 없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 말할 나위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한 주목적은 그것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사람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전 인류 가운데서 권세를 잡아 하나님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을 이룬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 해석ㆍ제14편> 중에서

378) 또 어떤 사람들은 외관을 번지르르하게 꾸민다. 자매들은 ‘한 송이 꽃’처럼 치장하고, 형제들은 귀공자나 부잣집 도련님처럼 멋을 내며 먹고 입는 등의 겉면의 것에 치중한다. 그러나 내적 세계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을 정도로 궁핍하기 그지없다. 이러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또 어떤 사람들은 밥 빌어먹는 거지들처럼 입고 다니는데, 그런 자들을 보면 딱 동아시아의 노예 상(相)이다! 너희는 정녕 너희에 대한 내 요구를 모르는 것이냐? 너희가 대체 무엇을 얻었는지 서로 교제하고 나누어 보아라! 그렇게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고도 너희가 얻은 수확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낯부끄럽지도 않으냐?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참도에서 몇 년이나 추구했음에도 너희의 분량은 여전히 이토록 보잘것없다! 너희 가운데 있는 잘난 아씨들을 보아라. 하나같이 꽃처럼 치장하고는 서로 비교하고 있다. 대체 무엇을 비교한단 말이냐? 누가 더 잘 누리고 있는지, 누가 더 많이 얻어 냈는지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내가 ‘모델’이라도 모집하러 온 줄 아느냐? 수치심도 없구나! 너희의 생명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추구하는 것은 모두 너희의 그 지나친 욕심이 아니더냐? 너희는 너희 스스로가 더없이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러나 제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할지라도 너는 분토 속에서 굴러다니는 구더기가 아니냐? 오늘날 너희가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된 것은 내가 너희를 전례 없이 높여 주었기 때문이지, 너희의 그 ‘잘난 얼굴’ 때문이 아니다. 네 출신을 아직도 모르느냐? 생명에 대해 말하면 너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 마디도 못하면서 앉아서 치장이나 하고, 얼굴에 분칠할 생각이 드느냐? 또 너희 가운데 있는 한량들을 보아라. 온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돼먹지 못하게 행동하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전혀 단정치 않다. 거기에 사람의 모양이 있느냐? 남녀를 막론하고, 너희 각자가 늘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너희가 누구 덕에 밥을 먹고 있는지 모르느냐? 네가 입고 있는 옷과 네 손에 들린 수확물, 그리고 너의 그 배를 만져 보아라. 이렇게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심혈의 대가로 얻은 결실은 무엇이냐? 그런데도 여기저기 놀러나 다니고 냄새 나는 몸뚱이를 꾸밀 생각이 드느냐? 거기에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이냐! 정상인이 되라고 했거늘, 지금의 너는 정상은 고사하고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그런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내 앞에 서는 것이냐?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육체를 드러내며, 늘 육체의 정욕 속에서 살고 있는 그런 인성을 보면 네가 바로 더러운 귀신과 악령의 후예가 아니냐? 나는 이런 더러운 귀신을 오래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네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를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 네가 정욕과 육체를 방종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네가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네 눈이 무엇을 탐내고 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으냐? 너희 아씨들이 꽃처럼 단장하는 이유는 자신의 육체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냐? 남자들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되느냐? 그들이 진정 너희를 이 고해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줄 수 있겠느냐? 또한, 너희 한량들이 번지르르하게 멋을 내는 것은 전부 자신의 ‘멋들어진 용모’를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냐? 그것은 또 누구를 위함이냐? 여인들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되느냐? 너희를 죄짓게 하는 근원이 아니더냐? 나는 너희 모든 남녀 족속들에게 적지 않은 말을 했지만, 너희가 듣고 따른 것은 극히 적다. 너희는 귀가 먹었고, 눈이 흐려졌으며, 마음은 강퍅하고, 나아가 온몸은 정욕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속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는구나. 오물 속에서 굴러다니는 너희 구더기들에게 누가 다가가고 싶겠느냐? 명심해라. 너희는 내가 분토 속에서 들어 올린 존재로, 원래 정상 인성이 없었다. 내가 너희에게 요구한 것은 정욕을 과시하라는 것도, 마귀에게 오랜 세월 조련된 그 냄새 나는 육체를 방종하라는 것도 아니라 너희가 원래 갖추지 못한 ‘정상 인성’을 갖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치장하는데, 더 깊이 빠질까 두렵지 않으냐? 너희는 본디 죄에 속한 자들이다. 그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온몸은 정욕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도 모른단 말이냐? 나아가 그 정욕이 너희의 옷을 적시며 스며 나와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귀신의 몰골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너희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 아니냐? 너희의 마음, 너희의 눈, 너희의 입술은 모두 더러운 귀신에게 더럽혀지지 않았느냐? 전부 불결한 것이 아니냐? 너는 일만 저지르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보다 성결한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겉으로 화려한 옷을 차려입으면 너희의 그 더러운 영혼을 가릴 수 있다고 여기느냐? 어림없다! 거짓을 꾸며 낼 생각도, 자신의 용모를 뽐낼 생각도 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라. 너희는 서로 정욕을 드러내지만, 그 대가로 얻는 것은 영원한 고통과 무정한 채찍질이다! 그런데 서로 추파를 던지며 연애질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것이 너희의 올곧음이냐? 그것이 너희의 강직이며 절개더냐? 나는 너희들 중 술객 따위들과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는 젊은 남녀들을 혐오한다. 그러니 가능한 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 너희에게 정상 인성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이지, 자신의 정욕을 드러내라고 허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는 틈만 나면 언제든 기회를 이용하려 하는데, 그것은 너희에게 육적인 것이 너무 많고, 정욕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7> 중에서

379) 내가 사역하는 동안 너희는 늘 내게 반기를 들었고, 한 번도 내 말대로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사역을 하고 너는 자신의 ‘사역’을 하며,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세웠다. 짐승 같은 너희들은 극력 내게 맞서 왔다! 언제나 너만을 사랑하는 사람을 품으로 끌어들이려 하는데, 너희의 경외심은 어디로 간 것이냐? 속임수뿐이구나! 기만과 모독뿐, 순종과 경외는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 음란한 것을 좋아하는 호색한들은 늘 요염한 음녀들을 품으로 끌어와 ‘누리려’ 한다. 나는 그런 음란한 귀신들을 절대로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처럼 더러운 귀신들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한다. 너희의 ‘색정’과 너희의 ‘요염’이 너희를 지옥에 떨어뜨릴 텐데,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더러운 귀신, 악령 같은 너희는 한없이 가증스럽다! 보기만 해도 역겹구나! 그런 천한 것들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죄 가운데 빠져 있으면서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오늘날 이러한 진리와 길, 생명은 너희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고, 오히려 그 죄악과 재물, 지위, 명리, 육체의 쾌락, 남자의 용모, 여자의 요염함이 너희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내 나라에 들어오겠단 말이냐? 너희의 형상은 하나님보다 크고, 너희의 지위는 하나님보다 높다. 사람들 가운데서의 위세와 명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너희는 사람들이 숭배하는 우상이 되었다. 그러니 너희가 천사장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결말을 드러낼 때가 되면, 즉 구원 사역이 막바지에 이르면, 반드시 너희 중 수많은 사람이 도태될 것이다.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시체들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7> 중에서

380) 나는 너희의 삶 속에 나타나지만 너희는 이를 알아차리는 법이 없고, 심지어 나를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하는 말의 거의 절반이 너희에 대한 심판이고, 효과는 절반에 불과한데도 너희는 모두 넋을 잃었다. 나머지 절반은 삶에 대한 것이나 올바른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이지만, 너희는 이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의 말을 들은 것처럼 언제나 ‘은근슬쩍’ 웃고는 그냥 넘어간다. 너희는 나의 말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고,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나의 행사를 살펴본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모두가 흑암에 빠져 빛을 찾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슬피 울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희의 순종, 무조건적인 순종을 원한다. 또한, 너희가 나의 말을 등한시하지 않고 굳게 믿기를 바란다. 나의 말을 이렇게 선별적으로 대하며 대충 넘어가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그러니 너희가 나의 말과 사역에 늘 무관심한 것은 어떻겠느냐? 나의 사역은 너희 가운데서 이루어졌고, 나는 말로 너희에게 수많은 것을 베풀었다. 그런데 너희가 이렇게 무성의하게 나를 대한다면 나는 너희가 얻은 적이 없거나 실행한 적이 없는 것 모두를 이방 족속에게 줄 수밖에 없다. 내 손안에 있지 않은 피조물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너희 중의 다수가 ‘연로하여’ 나의 사역을 받아들일 기력이 없다. 항상 한고조(寒苦鳥)처럼 계획 없이 살아갈 뿐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참답게 대하는 법이 없다. 또한, 젊은이들은 허영심과 방종함으로 가득하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잔칫상의 진수성찬을 맛보려 하지도 않으며, 새장을 벗어난 작은 새처럼 ‘타향’으로 멀리 날아가 버린다. 이런 노인과 젊은이가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나이 든 자와 젊은 자들에게 전하는 말> 중에서

381)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읽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을 마음에 새기며 귀한 보물로 여긴다. 또한,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도움을 준다. 그들은 이런 행동이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또 이런 행동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한 적이 없으며, 하나님이 폭로한 말씀에 자신을 비춰 본 적도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숭상과 신임을 편취하고, 개인적인 경영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사취하고 도둑질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기회를 이용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역사하게 하고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망상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를 찾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자신을 돕고 공급하지 못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거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이 생기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점점 더 깊어졌고, 하나님에 대한 추측이 점점 더 심해졌으며, 하나님에 대한 상상은 갈수록 과장되어 갔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이론적 공급과 인도하에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식은 죽 먹기인 것처럼, 그들의 인생 목표와 사명을 찾은 것처럼, 새 삶을 얻은 것처럼, 구원을 받은 것처럼 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낭랑하게 외우는 과정에서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을 찾은 듯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하나님과 대면하는 듯했고,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면서 늘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의 고심을 끊임없이 깨닫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경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을 알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도 알게 된 듯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확신한 듯했고, 하나님의 존귀함을 더욱 깨달은 듯했으며, 하나님의 위대함과 비범함을 더욱 느낀 듯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표면적인 인식에 심취되어 있으면서, 마치 그들의 믿음이 증가하고, 고난받겠다는 다짐이 견고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 듯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체험하기 전에 갖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생각은 다 그들의 일방적인 상상과 추측에서 비롯되었음을 그들이 어찌 알겠느냐?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어떤 검증도 견뎌 내지 못하고, 그들이 말하는 영적인 것과 분량은 하나님이 준 시련과 검증을 전혀 감당해 내지 못한다. 그들의 의지는 모래 위에 지어진 공중누각에 불과하며,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상상해 낸 성과에 불과하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많은 공을 들인’ 이 사람들은 무엇이 참된 믿음이고 참된 순종인지, 무엇이 참된 헤아림이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인지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이론, 상상, 지식, 은사, 전통과 미신, 심지어 사람의 도덕관까지 모두 가져다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밑천과 무기, 심지어 토대로 삼는다. 그러면서 또 그러한 밑천과 무기를 하나님을 알아 가는 비법으로 삼고, 하나님이 주는 검증과 시련, 형벌과 심판을 맞이하고 대처하는 비법으로 삼는다. 결국 그들이 얻는 것은 여전히 종교적 색채와 봉건 미신, 전설과 기괴함, 비밀스러움으로 가득 찬 하나님에 대한 정론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정의는 하늘과 하느님(원문: 老天爺)만 믿는 사람들과 찍어 낸 듯 똑같다. 반면에, 하나님의 실제,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등 진실한 하나님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은 그들의 인식과 어긋나고, 그 어떤 관계도 연관도 없으며, 심지어 완전히 상반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자양’ 아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 진정한 원인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과 알고 지낸 적이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접하고’ 사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며 경배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대하는 이러한 관점과 태도로 인해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갈 수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은 그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임을 뜻하고,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이다> 중에서

382) 너희는 깨닫지 못한 도가 너무 많고 알지 못하는 일도 한없이 많다. 너희는 너무 무지하다. 나는 너희의 분량과 부족함을 잘 알고 있기에 너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말씀이 많다 해도 너희가 지금까지 받아들인 적 없는 모든 진리를 알려 주고자 한다. 지금 너희의 분량으로 나를 위해 굳게 설 수 있을지 늘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너희를 얕보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모두 나의 정식 교육을 거치지 않은 우마 부류이며, 너희에게서 과연 어느 정도의 영광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많은 정력을 쏟아 너희에게 사역하였음에도 적극적인 요소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소극적인 요소도 손꼽을 정도로, 겨우 사탄에게 치욕을 주는 간증만 할 뿐이다. 나머지는 거의 다 사탄의 독소이니 내 눈에 너희는 구제 불능처럼 보인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러 나는 너희의 갖가지 표정과 태도를 보고 나서야 너희의 진짜 분량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늘 너희를 염려한다. 사람이 혼자 살아간다면 정말 오늘보다 낫거나 오늘과 비슷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자신의 작은 분량이 걱정되지 않느냐? 너희는 정말 이스라엘 선민처럼 언제나 나에게 일편단심일 수 있느냐? 너희가 드러내는 것은 부모에게서 벗어나려는 어린애의 장난기가 아니라 주인의 채찍을 벗어나기 위해 분출하는 우마의 야성이다. 너희는 너희의 본성이 너희, 모든 사람의 약점이자 공통적인 병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너희에게 하고 싶은 유일한 당부는 절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고 굳게 서서 나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증거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내 사역의 중심이다. 너희는 내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리아가 꿈에서 여호와의 계시를 받아들인 것처럼 믿고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결’이다. 너희는 나의 말을 가장 많이 들었으므로 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자들이다. 나는 너희에게 모든 귀중한 재산을 주었고, 모든 것을 베풀었다. 너희의 지위와 이스라엘 백성의 지위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지만 너희는 그들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얻었다. 그들은 나의 출현을 고대했으나 너희는 나와 함께 좋은 나날을 보내며 나의 풍성함을 누렸다. 그들과 비교했을 때 너희는 무슨 자격으로 나와 다투고 재산을 쟁탈하려 하느냐? 너희가 얻은 것이 아직도 적단 말이냐? 나는 너희에게 아주 많은 것을 주었지만 너희가 돌려준 것은 가슴 시린 슬픔과 걱정, 그리고 억누르기 힘든 울분이다. 나는 너희가 너무나 밉지만, 한편으로는 또 안쓰럽다. 그래서 모든 분노를 참으며 너희에게 거듭 저항할 수밖에 없다. 나는 수천 년 동안 사역하면서 한 번도 인류에게 항의한 적이 없다. 인류가 오늘날까지 발전해 오면서 나는 너희의 ‘기만책’만이 가장 유명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명성 높은 옛 ‘선조’가 너희에게 남겨 준 귀중한 유산 같다. 나는 이런 비인간적인 개돼지 부류를 실로 증오한다. 너희는 너무 양심이 없다! 너희의 인격은 너무도 저열하다! 너희의 마음은 너무나 강퍅하다! 나의 이런 말과 사역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 가져갔다면 벌써 영광을 얻었겠지만 너희 가운데서는 불가능하다. 너희에게는 무자비한 매장과 차가운 눈빛, 책임 전가만 있을 뿐이다. 너희의 감각은 지나치게 마비됐고 너무도 무가치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383) 너희가 오랜 세월 내 면전에서 행한 행위로 나는 지금껏 얻지 못했던 답을 찾았다. 그 답의 질문은 바로 ‘사람은 진리와 참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람에게 쏟은 심혈로 사람을 향한 내 사랑의 본질이 실증되었다. 또한 사람이 내 면전에서 행한 모든 행위로 진리를 증오하고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의 본질도 실증되었다. 나는 언제나 나를 따르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나를 따르는 각 사람은 언제나 내게서 비롯된 말을 깨닫지 못하며, 심지어 내게서 비롯된 ‘제안’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일이다. 내 태도가 진실했고 내 말이 부드러웠을지라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욱 없었다. 저마다 자기가 처음 생각한 대로 내가 맡긴 일을 하면서 나의 뜻을 찾지 않고, 나아가 나의 요구도 묻지 않는다. 그들은 다 나를 거역하면서도 충성을 다해 섬긴다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며, 자신이 실천하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서 나의 진리는 부인되고 버림받는 것이 되었다. 또한 나는 사람이 입으로는 하나님이라 인정하지만 진리, 길, 생명은 아니라고 여기는 제3의 존재가 되었다. 아무도 이런 이치를 모른다. 내 말은 영원불변한 진리이며, 나는 사람의 생명 공급자이자 인류의 유일한 인도자다. 또한 내 말의 가치와 의의는 인류가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말 자체의 본질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다. 설령 이 세상에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내 말의 가치와 인류에 대한 도움은 그 누구도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거역하고 반박하거나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나의 태도는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시간과 사실이 나를 증거하여, 내 말이 곧 진리이자 길이자 생명이며, 내가 한 모든 말은 옳은 것이고,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하고 또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실증할 것이다. 나는 나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즉, 나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사람, 나의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에서 목표를 찾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내 말에 정죄받을 사람이고, 더욱이 내 구원의 은혜를 잃은 사람으로, 내 채찍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 중에서

384) 사람의 본성과 나의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의 패괴된 본성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사람의 본성은 사탄에 의해 가공되고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사탄의 사악함과 추함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진리의 세상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광명 속에서 생존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본성에 선천적으로 진리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본질을 가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반대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며 진리를 싫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 본성이 바로 내가 말하려는 문제, 즉 배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385) 나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행위는 배반이고, 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지 못하는 행위는 배반이며, 나를 속이고 거짓말로 나를 기만하는 행위는 배반이다. 관념으로 가득하고 또한 이를 사방으로 퍼트리는 것은 배반이고, 나를 위한 증언과 이익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배반이며, 마음속으로는 나를 멀리하면서도 웃는 얼굴로 배웅하는 행위는 배반이다. 이는 너희가 으레 할 수 있는 행위이고,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행위이다. 너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배반하는 일을 애들 장난으로 치부할 수 없고,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다. 지금 내가 너희 가운데서 사역해도 너희가 이럴진대, 상관하는 이가 없는 날이 오면 너희는 산을 차지하고 왕 노릇을 하는 마적이 되지 않겠느냐? 그때 너희가 하늘이 무너져 내릴 정도의 큰 화를 부른다면 그 뒷수습은 또 누가 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중에서

386) 너희 모두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해서 자신에게 배반의 본성이 없지 않을까 하는 요행을 바라지 말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몹시 역겨운 일이다. 나는 매번 특정인이나 특정 부류의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상대로 말을 한다. 네가 어떤 일에서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일에서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결혼에 실패하여 진리 추구에 대한 믿음을 잃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정 파탄으로 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는 의무를 저버린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일시적인 쾌락과 짜릿함을 즐기고자 나를 떠나고, 어떤 사람은 어둠의 절벽에서 구르는 한이 있어도 광명 속에서 살며 성령의 역사가 주는 기쁨과 위안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돈 욕심을 채우고자 친구의 만류도 뿌리치고 지금도 여전히 길을 헤매며 올바른 길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도 있다. 나의 보호만을 노리고 내 이름 아래 잠시 머무르는 사람도 있고, 삶에 대한 미련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억지로 나에게 조금 봉헌하는 사람도 있다. 이같이 사람의 부도덕하고 비인격적인 행위가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배반하는 행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물론 나는 사람의 배반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닌 사람의 본성이 자연스레 드러난 것임을 알고 있다. 나를 배반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를 배반하는 일을 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으며, 오히려 전전긍긍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럼 너희는 이런 배반을 어떻게 만회할지, 오늘날의 상황을 어떻게 전환시킬지 생각하고 있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중에서

387)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도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위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관념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거역하는 사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증거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충고하겠다. 너희에게 이 길을 갈 수 있는 믿음이 정말 있다면 계속해서 따르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일찌감치 떠나라. 그러지 않으면 아주 위험할 것이다. 너희의 본성이 너무도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너희에게서는 충성심과 순종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공의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너희는 엉망진창인 상태로 하나님을 마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며,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자기의 기능마저 발휘하지 못하며, 마땅히 갖추어야 할 충성심과 양심, 순종, 의지도 없고, 겪어야 할 고난을 회피하고 마땅히 가져야 할 믿음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다. 좋은 점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으면서 너희가 무슨 낯짝으로 살아가고 있단 말이냐?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차라리 빨리 눈을 감으라고 하고 싶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더 이상 심려하지 않고 고난받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도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삶에 분투 목표도 없고,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간다. 사람임에도 일말의 양심도, 인격도, 신용도 없다. 이런데도 너희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의 돈을 욕심내며, 하나님의 제물을 먹는 것도 모자라 결국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인정 없이 대하고 일말의 양심도 없이 대하며, 하나님의 작은 요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런데도 너희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밥을 먹고, 하나님의 공기를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결국에는 하나님을 알기는커녕 하나님을 대적하는 쓸모없는 얼간이로 전락했다. 이것이 개보다도 못한 짐승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동물 중에 너희보다 더 악독한 존재가 어디 있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388) 인류는 내 원수요, 나를 대적하고 거역하는 악한 자요, 내게 저주받은 악한 자의 후예요, 나를 배반한 천사장의 후손이요, 일찍이 내게 버림받고 나와 첨예하게 맞서는 악마의 유산이다. 전 인류의 상공은 혼탁하고 어두워 맑은 느낌이 전혀 없으며, 인간 세상 또한 칠흑같이 캄캄해 거기서 살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고, 고개를 들어도 햇빛을 볼 수 없다. 발밑의 길은 질퍽거리고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하며, 도처에 송장이 즐비하다. 어두컴컴한 구석에는 죽은 자의 백골이 가득하고, 음산한 모퉁이에는 온갖 귀신이 머물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도처에 귀신들이 출몰한다. 더럽기 그지없는 온갖 짐승의 후손들이 서로 참혹하게 싸우고 죽이니, 그 소리가 간담을 서늘케 한다. 이러한 시대, 이러한 세상, 이러한 ‘인간 낙원’ 가운데 어디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겠느냐? 사람은 또 어디에서 인생의 종착지를 찾겠느냐? 이미 오래전에 사탄에게 짓밟힌 인류는 본래 사탄의 형상을 연기하는 존재이며, 나아가 사탄의 화신이자 사탄을 위해 ‘힘 있는 간증’을 하는 증거물이다. 이런 인류, 이런 인간 말종, 이런 ‘패괴된 인류 족속’의 자손이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느냐? 내 영광이 어디에서 나오겠느냐? 내 증거는 어디서부터 논하겠느냐? 나와 맞서며 인류를 패괴시킨 그 원수는 내가 창조한, 내 영광과 나를 살아 내는 모습이 충만했던 인류를 더럽히고 또 내 영광을 빼앗아 갔다. 그것이 사람에게 한 일이라고는 사탄의 추태로 가득한 독소와 선악과의 과즙을 채워 넣은 것뿐이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중에서

389) 너희는 본디 진흙에서 분리되어 나온 존재다. 어찌 됐건 너희는 더러운 악의 잔당 가운데서 골라낸 자들로, 원래부터 불결한 존재이며, 하나님이 혐오하는 자들이다. 너희가 원래 그것에 속했고, 그것에 의해 유린되고 더럽혀졌으므로 진흙에서 분리되어 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는 결코 성결하지 않으며, 일찍이 사탄에게 농락당한, 사람 같지도 않은 자들이다. 이런 평가야말로 너희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너희는 본디 고인 진흙탕 속의 불순물이지, 진흙 속에서 사는 물고기나 새우와 같은 좋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에게는 기쁨으로 삼을 만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툭 터놓고 말해서, 너희는 본래 가장 비천한 하류 사회의 개돼지만도 못한 짐승들이다. 솔직히 너희에게는 이런 호칭이 전혀 지나치지 않다. 이는 과장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단순화한 것이다. 이런 표현은 너희에게 존칭이라 할 수 있다. ‘사람’으로서의 식견이나 언행, 그리고 모든 생활과 진흙 속에 있는 너희의 지위만 봐도 너희의 신분이 ‘남다르다’는 것을 십분 증명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원래 신분과 가치는 어떠한가> 중에서

390)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자기 재물을 쓰려고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위해 자기 일생의 정력을 쓰려고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하나님이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사람의 생각에 맞지 않는 점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너희 같은 이런 인성으로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도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다. 너희는 자신이 인류 중의 불량품이라는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인성이 가장 비천하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존칭’이 무엇인지 모른단 말이냐?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너희를 늑대의 아비나 어미, 늑대의 자식이나 손자, 늑대의 후예, 늑대의 민족이라고 한다. 너희는 자기 신분을 알고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하며, 스스로를 상등 인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인류 가운데 가장 악랄한 한 무리의 비인류이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모른단 말이냐? 내가 너희들 가운데서 사역하면서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너희의 이성이 정상을 되찾지 못하고, 너희의 양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늑대’라는 호칭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고, 저주와 징벌의 날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너희는 출생이 비천하고, 본래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본래 한 무리 굶주린 늑대이고, 한 무더기 잡동사니나 쓰레기다. 내가 너희에게 사역하는 것은 너희처럼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역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계속 이렇게 거역한다면 나는 나의 사역을 그만둘 것이며, 앞으로 다시는 너희에게 사역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에게 옮겨 가서 사역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영원히 너희를 떠나게 된다. 나는 나와 적이 되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의 마음에 합하길 원하느냐, 아니면 나와 적이 되길 원하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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