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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경에 관한 논법 방면의 대표적인 말씀

1. 오랫동안 사람이 전통적으로 믿어 온 방식(세계 3대 종교 중 기독교의 믿음법)은 성경을 보는 것인데, 성경을 떠나면 주를 믿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떠나면 사교(역주: 사이비 종교)이고 이교(異敎)라고 하며, 설사 다른 책을 보더라도 반드시 성경 해석을 기초로 한 책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주님을 믿으면 성경을 보고 성경을 먹고 마셔야 하며, 성경 이외에 또 성경과 관련되지 않는 다른 책을 숭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라고 한다. 성경이 생긴 이래로, 사람이 주님을 믿는 것은 성경을 믿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기보다는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낫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고 하기보다는 성경을 믿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낫고, 주 앞에 돌아왔다고 하기보다는 성경 앞에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낫다. 이렇게,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자신의 목숨으로 여기는데, 성경이 없어진다면 생명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과 똑같이 높이 보고, 심지어 성경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 본다. 성령의 역사가 없고 하나님의 함께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살아갈 수는 있지만, 일단 그 성경책을 잃거나 성경의 유명한 장절이나 문구를 잃으면 마치 사람이 생명을 잃는 줄로 안다. 그리하여 사람이 주님을 믿으면서부터 성경을 보고 외우기 시작하는데, 성경을 잘 외우는 사람일수록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이 크다는 것을 더 잘 증명하고, 성경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다 훌륭한 형제자매라고 본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은 주님에 대한 사람의 충성심이나 사람의 믿음을 다 성경에 대한 이해 정도에 근거하여 가늠하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덮어놓고 성경 구절을 열 수 있는 실마리만 수집하고 있다. 그리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추구한 적이 없고, 지금까지 힘들게 성경만 연구하고 조사하고 있을 뿐, 성경 밖에서 성령의 더 새로운 역사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는데, 아무도 성경을 떠나지 못했으며, 아무도 성경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람은 오랫동안 성경을 연구하면서 많은 해석을 하였고,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성경에 대한 견해에 많은 차이를 보여 끊임없이 논쟁하다 보니 오늘날의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형성되었다. 사람은 모두 성경에서 고차원적인 해석이나 더 깊은 심오한 비밀들을 찾아내려고 하고 성경을 탐구하려고 하는데, 성경에서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했던 배경, 혹은 예수가 유대에서 역사했던 배경, 또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심오한 비밀을 찾아내려고 한다. 사람이 성경을 보는 시각은 모두 ‘수수께끼’이고 모두 ‘신뢰’이며, 성경의 내막과 실질을 완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와서까지도 사람은 여전히 성경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기한 느낌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성경에 더욱더 ‘빠져들고’, 성경을 더욱더 ‘신뢰’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 성경에서 말세 사역의 예언을 찾아내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말세에 어떤 사역을 하는지, 말세에는 모두 어떤 징조들이 있는지 찾아내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성경을 숭상하는 마음이 갈수록 강렬해졌고, 말세가 될수록 더욱 성경의 예언을 맹신하고 있는데, 말세에 관한 예언에 대해서는 특히 더 심하다. 사람이 그렇게 성경을 맹신하고 그렇게 신뢰하게 되면, 성령의 역사를 찾으려는 마음이 없어진다. 사람은 ‘오직 성경에서만이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고, 오직 성경에서만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으며, 오직 성경에만 하나님 역사의 심오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으며, 오직 성경에만 하나님의 모든 것과 모든 사역이 다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으며, 성경 외의 책이나 사람은 다 그렇지 못하다. 성경은 하늘의 사역을 땅에 가져올 수 있으며, 성경은 시대를 시작할 수 있고 시대를 끝마칠 수도 있다’라는 관념을 갖고 있다. 사람에게 이러한 관념이 있다 보니 성령의 역사를 찾으려는 생각이 없어졌다. 그러므로 성경이 지난날에 사람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든, 지금에 와서는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가로막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성경이 없었다면 사람은 별도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었겠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발자취는 다 성경에 ‘통제’되었다. 그러므로 최신 사역을 확장하는 것은 정말 설상가상에 첩첩산중이다. 이것은 다 성경의 유명한 장절과 문구, 많은 예언으로 초래된 것이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에서 우상이 되었고, 사람의 머리에서 ‘수수께끼’가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성경 밖에서 별도로 사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하고, 성경을 떠나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어 하며, 최종 사역에서 하나님이 성경을 떠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더 믿을 수 없어 한다. 이런 사실은 사람이 생각하기 어렵고, 믿을 수도 없거니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더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는 데에 걸림돌이 되었고, 하나님의 더 새로운 사역이 확장되는 데에 난관이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2. 성경은 도대체 무슨 책일까? 구약은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했던 사역에 관한 것이다. 즉, 구약성경은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했던 사역에서 세상을 창조한 사역까지를 기록한 책인데, 여호와가 했던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마지막에는 <말라기>로 여호와의 사역에 대한 기록을 마쳤다. 구약은 하나님이 했던 두 가지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하나는 창세 사역이고 하나는 율법을 반포한 사역이다. 그 사역들은 모두 여호와가 한 것이다. 율법시대의 사역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대표하는 사역인데, 전체 사역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여호와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신약은 예수의 사역을 기록한 것으로,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다. 예수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수가 했던 사역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는 대부분 신약에 기록되어 있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에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백성을 땅에서 살 수 있게 인도하였는데,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의 선민이고, 여호와가 땅에서 택한 자신의 뜻에 맞는 첫 번째 사람들이고, 여호와가 친히 이끌어 준 첫 번째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의 열두 지파가 바로 여호와가 택한 첫 번째 선민인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는 율법시대 사역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들에게 역사하였다. 제2단계의 사역은 바로 신약 은혜시대의 사역인데,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의 한 지파인 유대 족속에게 한 것이다. 사역 범위를 축소시킨 것은 예수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유대 전 지역에서만 사역하였고 그것도 3년 반 동안만 사역하였다. 그러다 보니 신약에 기록된 양이 구약에 기록된 양을 넘어서기에는 훨씬 부족했던 것이다. 은혜시대 예수의 사역은 주로 4복음서에 기록되었다. 은혜시대의 사람이 간 길은 가장 얕은 생명 성정 변화의 길인데, 그런 내용은 대부분 다 서신들에 기록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3.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을 기록한 역사책에 속한다. 그 안에는 수많은 옛 선지자의 예언들이 기록되었고, 여호와가 그 당시에 역사했던 말씀들도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그 책을 ‘거룩하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고 위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다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자 하나님을 앙모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그 책을 그렇게 칭한 것은 단지 피조물이 창조주에 대해 경모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였기 때문인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책을 ‘천서(天書)’라고까지 하였다. 사실, 그 책은 단지 사람의 기록일 뿐이지 여호와가 친히 명명하거나 친히 지도하여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성스러운’ 경전이라고 칭한 것은 다만 사람들이 그 책을 대하는 존칭일 뿐, 여호와와 예수가 공동으로 연구 토론한 다음 다시 결정한 것이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책은 여호와가 기록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예수가 기록한 것도 아니라 많은 옛 선지자, 사도, 예언자들의 기록을 후세들이 수집하여 편찬한,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거룩한 고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보기에 그 속에는 사람이 측량하기 어려운 많은 심오한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후세들이 풀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책을 더욱더 ‘천서’라고 여기게 되었다. 거기에다 신약성경의 4복음서 및 <계시록>까지 더해져, 그 책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는 그 어떤 책을 대하는 것보다 각별했다. 그러다 보니 감히 그 ‘천서’를 해부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그 책이 너무나 ‘신성(神聖)’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4. 지금의 사람들은 늘 성경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성경이라고 여긴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만큼만 말씀을 했고, 성경에 있는 그만큼의 말들이 전부 하나님이 한 말씀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신구약 66권은 비록 사람이 쓴 것이지만 다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고 성령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것은 사람의 치우치고 그릇된 터득 방식이고, 사실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구약에서 예언서를 제외한 대부분은 다 역사(歷史) 기록에 속한다. 신약 서신의 어떤 것은 사람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떤 것은 성령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면, 바울이 쓴 서신은 사람이 행한 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모두 성령이 깨우쳐 준 것으로, 바울이 여러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고 여러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주는 권면과 격려이지, 성령이 한 말씀은 아니다.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을 할 수 없고, 게다가 바울은 선지자도 아니고 이상(異象)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그 편지는 그 당시의 에베소, 빌라델비아, 갈라디아 등 여러 교회에 써 보낸 것이다. …바울이 사람에게 했던, 덕이 되거나 긍정적인 말은 다 옳은 것이다. 하지만 바울의 말은 성령의 말씀을 대표할 수 없고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사람이 만일 사람의 체험을 기록한 것과 사람의 서신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완전히 그릇된 인식법이고, 크나큰 모독이다! 특히 바울이 교회들에게 보내 준 서신이 그렇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 당시에 각 교회의 상황과 각 교회의 현실적인 정형에 근거하여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주 예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권유한 것이고, 당시의 형제자매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바울 본인이 져야 할 부담이었고, 성령이 그에게 더해 준 부담이기도 하였다. 어디까지나 바울은 그 당시에 교회들을 이끄는 사도였기에,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 권면하는 것은 그의 책임이었다. 바울의 신분은 그저 사역하는 사도이고 보냄받은 사도일 뿐 선지자도 예언자도 아니었기에, 그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할 수 없다. 바울이 했던 말은 성령의 말씀이 아니거니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왜냐하면 바울은 단지 피조물일 뿐, 성육신한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과 예수의 신분은 같지 않다. 예수의 말씀은 성령의 말씀이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신분은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을 어떻게 예수와 동등하게 볼 수 있단 말이냐? 사람이 바울의 서신이나 바울의 말과 유사한 것들을 성령의 음성으로 여기고, 게다가 하나님으로 삼아 경배한다면, 너무나 분별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바울의 서신과 신약의 다른 서신은 근대 영적 인물 전기(傳記)에 해당되는데, 워치만 니의 책 또는 로렌스의 체험 등등, 이런 사람들이 쓴 영적 전기와 함께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근대 인물들이 쓴 책은 신약성경에 편성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질은 같은데, 모두가 성령께 한동안 사용되었던 인물들로,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3)>에서 발췌

5. 이전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여러 서신을 쓰고 많은 예언을 하였는데, 후세 사람들이 일부만 선택하여 성경에 넣었고 또 일부는 이미 소실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한 말이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는가? 왜 선택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가? 정말 성령의 말씀이라면, 그래 사람이 골라서 선택할 필요가 있겠는가? 왜 예수의 말씀과 사역이 4복음서에 서로 다르게 기록되었는가? 그것은 기록한 사람의 실수가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6. 만일 4복음서가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면, 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그들 네 사람이 당시에 예수가 한 사역에 대해 말한 것이 서로 다른가? 믿어지지 않으면 너희가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아라.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부인한 내용도 다 다르고 각기 ‘특색’이 있다. …너희가 4복음서를 잘 보아라. 예수가 한 일과 말씀에 대해 그들이 기록한 것을 좀 보아라. 그야말로 사람마다 다 다른데, 제각기 자신의 견해가 있다. 만일 책의 저자가 쓴 것이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같아야 하고 통일적이어야 하는데, 왜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해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너무나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7. 그 당시에 예수가 많은 사역을 하였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고 예수 또한 해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가 떠난 뒤에 제자들은 곳곳에서 전도하며 사역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단계의 사역을 위해 서신을 쓰기 시작하고 복음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신약 복음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20~30년이 지난 뒤에 기록한 것이다. 예전에 이스라엘 사람이 보았던 것은 다 구약이다. 즉, 은혜시대 그 사람들이 보았던 것은 다 구약성경이다. 신약성경은 은혜시대가 되어서야 있게 된 것으로, 예수가 역사할 때에는 신약이 없었다. 예수가 부활 승천한 후에 후세들이 예수의 역사를 기록하여 4복음서가 있게 되었고, 거기에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 <계시록>까지 이런 책들이 더해지게 된 것이다. 예수가 승천하고 3백여 년이 지난 뒤에, 후세들이 다시 그 책들을 편집하여 하나로 묶으면서 신약책이 있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은혜시대 단계 사역을 끝낸 후에야 신약이 있게 된 것이지, 사전(事前)에 미리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고, 사도 바울도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다. 나중에는 바울과 베드로가 쓴 서신을 함께 모아 두었다. 그리고 요한이 기록한 밧모섬에서 본 가장 큰 이상을 맨 마지막 책으로 묶었는데, 그것은 말세에 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다 후세들이 계획한 것으로, 지금의 ‘말씀’과는 다르다. 지금은 역사 절차에 따라 기록하기 때문에,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친히 한 역사와 말씀이다. 사람이 손댈 필요 없이 직접 영으로부터 온 말씀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나열해 놓았는데, 사람이 기록한 순서와는 다르다. 그들이 기록한 것은 그들의 지식 수준과 소질에 근거한 것이고, 기록한 것은 사람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마다 기록 방식이 다르고,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인식이 있으므로, 기록된 것도 다 다르다. 그러므로 네가 성경을 하나님으로 여겨 숭배한다면, 너무나 우매하고 너무나 어리석다! 왜 오늘날의 하나님의 역사를 찾지 않는 것이냐? 오로지 하나님의 역사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지 성경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성경은 몇천 년이나 되었어도 변화가 전혀 없는데, 네가 성경을 숭배한다면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3)>에서 발췌

8. 성경의 기록 전체가 다 하나님이 친히 발한 음성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의 실제 기록이다. 그 가운데 일부분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기록한 것이고, 일부분은 역대에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들이 쓴 체험과 인식이다. 사람의 체험에는 자신들의 견해와 인식이 뒤섞여 있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많은 책에서 어떤 것은 사람의 관념에 속하고, 어떤 것은 사람의 편견에 속하며, 어떤 것은 사람의 그릇된 터득 방식에 속한다. 물론 대부분은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아 한 말이어서 정확한 터득에 속하지만, 완전히 정확한 진리의 발표라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일들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자신이 체험하여 얻은 인식이나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 그러나 선지자의 예언은 하나님이 친히 지시한 것이다. 그 당시에 이사야가 했던 예언, 다니엘, 에스라, 예레미야, 에스겔, 이들이 했던 예언은 성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다. 그들은 예언자에 속하고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들로, 모두 구약의 선지자들이다. 율법시대에 여호와의 묵시를 받은 그들은 많은 예언을 하였는데, 그것은 여호와가 직접 지시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3)>에서 발췌

9.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깨닫고 해석할 수 있으면 참 도를 찾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정말로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사람은 성경의 실제 내막이 어떤지를 잘 모르고 있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 사역에 대한 역사(歷史) 기록이고,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의 증거일 뿐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달을 수 없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율법시대와 은혜시대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인데, 창세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지가 기록된 것이다. 신약에는 예수가 땅에서 했던 사역을 기록한 4복음서도 있고, 바울이 한 사역도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모두 역사 기록에 속하지 않느냐? 지난날의 일을 오늘날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에 속하는데, 그것이 아무리 진실할지라도 역사일 뿐이다. 역사는 현 실정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를 뒤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성경만 알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현재 하려는 사역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네가 성경을 보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즉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한 역사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네가 오늘날 죽은 글귀 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역사를 알기 위해 추구하는 사람도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알려고 추구하는 사람인 이상, 하나님의 현시점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찾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10. 예수 시대에, 예수는 그 당시 성령이 자신에게서 하는 역사에 따라 유대인들을 이끌었고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이끌었다. 예수가 했던 모든 사역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역에 따라 말씀한 것이다. 예수는 성경에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든, 성경에서 길을 찾아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이끈 것이 아니었다. 예수는 사역을 막 시작했을 때 회개의 길을 전했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가 구약의 그 많은 예언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예수는 성경을 근거로 사역하지 않았을 뿐더러 더 새로운 길을 펼쳐 주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예수는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한 적이 없다. 율법시대에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의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예수의 사역, 예수의 교훈, 예수의 권병 역시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오로지 자신의 더 새로운 사역만 했다. 비록 많은 사람이 성경으로 예수를 정죄하고, 심지어 구약성경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지만, 예수의 사역은 오히려 구약성경을 초월하였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어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느냐? 그 원인은 예수의 교훈과 병 고치고 귀신 쫓는 능력이 다 구약에 전혀 기록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냐? 예수가 했던 사역은 더 새로운 길을 펼쳐 주기 위한 것이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성경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단지 자신의 직분을 하여 예수를 갈급해하며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새로운 사역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예수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러 온 것이 아니기에, 예수가 역사한 것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가 하는 사역은 성경의 근거를 전혀 고려할 필요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봤을 때는 예수가 아무 근거도 없이 사역하였고, 또 그의 사역은 성경 기록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그것은 다 사람의 불찰이 아니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느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하겠느냐? 성경이 크냐, 하나님이 크냐? 왜 하나님이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 역사해야 하느냐? 설마 하나님 자신에게 성경을 벗어날 어떤 권리도 없단 말이냐? 하나님은 성경을 떠나 따로 역사할 수 없단 말이냐? 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겠느냐? 예수가 안식일에 따라, 구약의 계명에 따라 실행했다고 한다면, 예수는 왜 와서 안식일은 지키지 않으면서 발을 씻겨 주고 수건을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겠느냐? 그런 것은 다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니냐? 예수가 구약대로 했다면, 왜 그런 규례들을 타파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먼저였는지, 성경이 먼저였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안식일의 주인은 되고 성경의 주인은 될 수 없단 말이냐?

신약 시대에 예수가 한 사역은 새 사역을 개척한 것이다. 예수는 구약 시대 사역에 따라 하지 않고 구약에 여호와가 했던 말씀에 따라 맞추지 않고 자신의 사역을 하였는데, 더 새로운 사역, 율법보다 더 높은 사역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하였는데, 그가 이룬 것에 따라 많은 규례가 타파되었다.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밀밭에 이르러 밀 이삭을 잘라 먹으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고, 게다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는 말까지 하였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법에 의하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돌로 쳐 죽였으나 예수는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다. 예수가 했던 사역은 여호와가 구약시대에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한 사역은 이미 율법을 뛰어넘은 것이고, 이미 구약 율법을 넘어선 것이다. 그리하여 구약 율법에 따라 하지 않은 것이다. 은혜시대에 이미 구약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고 이미 그런 규례들을 타파하였지만,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성경, 특히 구약 율법을 내세우고 있다. 그것은 예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은 성경이 거룩한 책이기에 반드시 보아야 한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은 어느 때든 폐할 수 없는 것이고,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이니 폐할 수 없는 것이므로 어느 때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너무 그릇되지 않으냐? 예수가 그 당시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던 원인은 무엇이냐? 설마 예수가 범죄라도 했단 말이냐? 누가 그것을 통찰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터득 능력으로는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본다 해도 하나님의 역사를 알 수 없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인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갈수록 관념만 많아져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다 자신의 관념에 망했을 것이고, 하나님의 형벌 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11. 역대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은혜시대 전부터 성경을 보았는데, 그때는 구약만 있었고 신약은 없었다. 구약성경이 있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 모세는 여호와가 다 이끌어 준 다음 <창세기>, <출애굽기>, <신명기> 등을 쓰게 된 것인데, 여호와가 그 당시에 했던 사역을 회상하며 기록하였다. 성경은 한 부의 역사책이다. 물론 그 안에는 선지자의 예언도 어느 정도 있다. 그리고 선지자의 예언은 당연히 역사(歷史)가 아니다. 성경은 몇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단지 예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가 했던 사역만 있는 것도 아니며, 바울이 쓴 서신만 있는 것도 아니다. 너는 성경에 몇 부분이 들어 있는지 알아야 한다. 구약은 <창세기>, <출애굽기>… 그리고 그들이 쓴 예언서도 포함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말라기>로 구약성경의 전체를 끝맺고 있다. 곧, 여호와가 이끌었던 율법시대의 사역이 기록된 것이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는 구약 율법시대의 전체 사역에 대한 종합적인 기록이다. 곧, 율법시대에 여호와가 이끌어 주었던 사람들이 그 당시에 체험했던 일들이 다 구약에 기록된 것이다. 구약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많은 선지자를 일으켜 자신을 위해 예언을 하게 하였는데, 각 나라, 각 족속에게 효유하게 하였으며, 자신이 하고자 했던 사역을 예언하게 하였다. 여호와가 일으킨 사람들은 다 여호와가 부어 준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호와로부터 환상을 볼 수 있었고 음성을 들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서 계시를 받아 예언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들이 했던 사역도 여호와의 음성을 발표한 것이고, 여호와를 대신해 예언 사역을 한 것이다. 여호와가 역사할 당시에는 오로지 영으로 사람들을 이끌었지 성육신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호와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많은 선지자들을 일으켜 자신의 사역을 하였는데, 그들에게 묵시를 주어 이스라엘 모든 족속에게 알리게 하였다. 그 사람들의 사역은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여호와가 그들에게 효유한 말씀을 다 기록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제공해 주었다. 여호와가 그 사람들을 일으킨 것은 예언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곧, 이후에 할 사역이나 그 당시에 아직 하지 않은 사역을 예언하여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기묘와 지혜를 볼 수 있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예언서들은 성경의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르다. 예언서는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 즉 여호와로부터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들은 사람이 했던 말이거나 그들이 기록해 놓은 말이다. 예언서를 제외한 나머지 책은 다 여호와가 사역을 마친 후에 사람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책들은 여호와가 일으킨 선지자의 예언을 대신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창세기>, <출애굽기>는 <이사야서>, <다니엘서>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예언은 사역을 하기 전에 한 말이다. 예언 이외의 다른 책들은 사역을 다 마친 후에 기록한 것인데,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12. 성경에 기록된 것은 모두 유한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대표할 수는 없다. 4복음서를 다 해 봤자 모두 100장도 되지 않는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것, 베드로가 세 번 주를 부인한 것,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 금식에 관한 것, 기도에 관한 것, 아내를 버리는 것에 관한 것, 예수의 출생, 예수의 족보, 예수가 제자를 정한 것… 그저 얼마 되지 않는 이런 것들만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보배로 삼으며 오늘날의 사역에 맞춰 보기까지 한다. 또한 예수가 일생 동안 한 사역이 그 정도뿐이라고 여기는데, 하나님이 그런 사역만 할 수 있고 더 이상의 사역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터무니없지 않으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13. 네가 율법시대의 사역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도를 어떻게 준행하였는지를 알려면 구약성경을 보아야 하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알고 싶다면 신약성경을 보아야 한다. 그러면 너는 말세에 하는 사역은 어떻게 보는가? 오늘날의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들이고 오늘날의 사역에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새로운 사역이고 성경에 아무도 미리 ‘기록’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육신하였고, 그 밖에 중국에서 또 선민들을 택하였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역사함으로 땅에서 하는 자신의 사역을 지속하고 있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이어 가고 있다. 오늘날의 사역은 이전 사람이 가 본 적이 없는 길이고, 또한 아무도 보지 못했던 도(道)이며, 지금까지 한 적이 없는 사역이다. 즉,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가장 새로운 사역이다. …이런 사역이 어떻게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될 수 있었겠느냐? 누가 오늘날의 사역을 사전(事前)에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록해 놓을 수 있었겠느냐? 어느 누가 일반 상식을 깨는 더 크고 더 지혜로운 이 사역을 곰팡이가 핀 그 묵은 책에 기록해 놓을 수 있었겠느냐? 현시점의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오늘날의 새 길을 가려면 성경에서 나와야 하는데,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역사서의 범위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새로운 길을 잘 갈 수 있고 새로운 경지에, 새로운 역사에 진입할 수 있다. 지금은 왜 성경을 보지 말라고 하는지, 왜 성경 이외에 또 다른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 왜 성경에서 더 새롭고 더 세밀한 실행을 찾지 않고 성경 이외에 또 더 큰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다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14. 비록 성경을 사람이 기록한 역사서라고 하지만, 그 책에는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섬겼던 원칙과 근대 사도들이 하나님을 섬긴 체험이 많이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참된 깨달음과 인식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 것은 모두 본시대에서 참 도를 추구하는 사람이 참고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그 안에서도 다른 책에서 얻을 수 없는 생명의 도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도는 모두 역대의 선지자나 사도들이 체험한, 성령이 역사했던 생명의 도이고, 또한 많은 말들은 상당히 귀하여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 성경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는 비밀스러운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 책을 바라보는 사람의 견해는 그 어떤 영적 위인의 저작물을 대하는 것과 같지 않다. 성경에는 신구약시대에 여호와와 예수를 섬긴 사람들의 체험과 인식이 기록되었고 한데 모아져 있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들은 그 책에서 많은 깨우침과 빛 비춤 그리고 실행의 길을 얻을 수 있었다. 성경이 그 어떤 영적 위인들의 저작물보다 훌륭한 까닭은, 영적 위인의 어떤 저작물도 다 성경에서 취한 것이며, 그들의 체험도 다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고 게다가 성경을 풀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사 사람이 어떤 영적 위인의 책에서 공급을 받을 수 있을지라도, 사람이 숭배하는 것은 여전히 성경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보기에, 성경은 너무나 높고 너무나 심오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비록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과 같은 생명에 관한 말씀 책이 일부분 모아져 있고, 또 사람들이 그런 책 속에서 공급을 받고 도움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책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고 또한 구시대의 책이다. 그런 책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한 시기에만 적용될 뿐, 영원까지 보존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기에 바울, 베드로가 있었던 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즉, 영원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은혜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책들은 은혜시대에만 적용될 뿐, 마지막인 하나님나라시대에는 적용되지 못하며, 은혜시대의 신자들에게만 공급이 되고 하나님나라시대의 성도들에게는 공급이 되지 못해 아무리 좋아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15.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얻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바뀌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이 고정불변한 것이고, 언제나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을 다만 율법 아래의 하나님으로, 다만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하나님으로 여기고, 하나님은 성경을 초월해서는 안 되고 초월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은 그들을 낡은 율법 아래에, 죽은 규례에 단단히 묶어 놓았다. 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한 단계 새로운 사역을 하든지 모두 예언의 근거가 있어야 하고, 또한 각 단계에 새 사역을 하는 동시에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계시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한다. 사람은 본래부터 하나님을 알기 어려운 데다가, 사람의 그릇된 마음과 자고자대(自高自大)하는 패역의 본성이 더해져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워졌다. 사람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자세히 알아보거나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멸시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하나님의 계시와 인도를 기다리는데,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표현이 아닌가?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16. 예수가 당시에 여호와의 사역은 은혜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오늘날 내가 예수의 사역이 뒤떨어졌다고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은혜시대가 없고 율법시대만 있었다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고, 전 인류를 구속할 수 없었다. 만약 율법시대만 있었다면 인류가 오늘까지 발전할 수 있었겠는가? 역사(歷史)는 바뀌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역사(歷史)는 곧 하나님이 사역하는 정상 법칙이 아닌가? 전 우주 아래에서 사람을 경영하는 화면이 아닌가? 역사(歷史)는 앞으로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앞으로 발전하며, 하나님의 뜻도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그가 한 단계 사역을 6천년이나 지속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도 다 알다시피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분이기에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과 같은 한 가지 사역을 계속 지속하면서 한 번, 두 번, 세 번 … 십자가에 못 박힐 수는 없다. 이것은 그릇된 사람이 인식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은 한 가지 사역을 지속하지 않는다.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바뀌고, 그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역사가 있다. 마치 내가 너희에게 날마다 새 말을 하고, 새 역사를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는 사역인데, 핵심은 새로울 ‘신(新)’ 자와 기묘할 ‘기(奇)’ 자에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17. 예수가 당시에 말씀하고 역사할 때, 그는 규례를 지키지 않았고, 성경 구약 율법시대의 사역에 따라 하지도 않았으며, 은혜시대에 해야 할 사역에 따라 하였다. 그는 그가 가지고 온 사역에 따라 한 것이고, 그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한 것이며, 그의 직분에 따라 역사한 것이지 구약 율법에 따라 역사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구약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가 역사한 것은 선지자의 말을 응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계마다 사역할 때, 전적으로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러 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러 오는 것이 아니지만, 그가 하는 것은 또 옛 선지자의 예언에 엇나가지 않고, 이전에 한 사역에 방해되지도 않는다. 그가 하는 사역의 가장 뚜렷한 점은 바로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는 선지자가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 ‘실천가’이다. 그는 아주 실제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여 그의 새로운 기원을 개척하고 그의 새 사역을 전개한다. 물론, 예수가 와서 한 사역도 적지 않은 구약 옛 선지자의 말이 응한 것이고, 현재에 하는 사역 역시 구약 옛 선지자의 예언이 응한 것이다. 다만 오늘 너와 그 ‘노황력’을 펼치지 않을 따름이다. 내가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하고, 너희에게 더 많은 말을 해야 하기에 이런 사역과 이런 말씀은 그 성경 장절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 사역은 너희에게 별로 큰 의의와 가치가 없기에 너희를 도울 수 없고, 변화시킬 수도 없다. 나는 새로운 사역을 할 것인데, 그것은 성경의 어느 장절을 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령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이 단지 성경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하기 위한 것이라면 네가 말해 보아라. 도대체 성육신 하나님이 큰가, 아니면 옛 선지자가 큰가? 도대체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옛 선지자를 지배하는가? 너는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18. 당시에 유대인들은 다 구약성경을 보았다. 그들은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도 알고 있었다. 왜 그들은 그런 예언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예수를 핍박하였는가? 그것은 모두 패역한 그들의 본성 때문이고, 또 그들이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한 연고가 아닌가?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한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 속의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다. 오늘날의 사람도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역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저버리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실질은 다 같은 것이 아닌가? 성령 역사라면 너는 일률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성령 역사라면 ‘흐름’이 옳은 것이므로 너는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지 선택해 가며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네가 하나님에게서 식견을 넓히려 하고 여러 가지 속셈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 아닌가? 너는 성경에서 더 많은 근거를 찾을 필요 없이, 성령의 사역이기만 하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이기에 너는 하나님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너는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내가 너에게 유익한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데려올 수는 없다.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일 뿐,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줄 수 없고,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도와줄 수도 없다. …하나님이 각 시대에 사역을 하는 데는 분명한 범위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본 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각 시대에서의 그의 대표적인 역사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시에 말세에 어떤 징조가 있다는 것만 말하였고, 어떻게 인내하고 어떻게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만 말하였지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한데, 네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찾는다면 그릇된 것이 아닌가? 네가 성경만 받쳐 들고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성경 해석가든, 설교자든 누가 오늘날의 사역을 미리 꿰뚫어 볼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19. 성경은 그 당시에 선지자가 전달했던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들이 쓴 말이니,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런 말씀을 해석할 수 있고, 오직 성령만이 그런 말씀의 뜻을 밝힐 수 있으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두루마리를 펼칠 수 있지요. 당신도 자신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고 저도 하나님이 아닌데, 누가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 말씀을 감히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설사 선지자 예레미야가 오고, 요한이 오고, 엘리야가 오더라도 그런 말씀을 감히 해석하지 못하죠. 그것은 그들이 다 어린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어린양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두루마리를 펼칠 수 있으며, 그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분의 말씀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20. 성경에 오직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대 이래, 그 큰 인물들 중에서 성경을 해석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러면 너는 그들을 모두 어린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너는 그들이 해석한 것이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단지 ‘성경 해석가’이다. 그들에게 어린양의 신분이 없는데 어찌 일곱 인을 뗄 자격이 있겠는가? “오직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라는 이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온 것은 단지 일곱 인을 떼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 일은 그다지 할 필요가 없기에 사역을 하면서 겸하여 할 뿐이다. 그 자신이 하는 사역은 자신이 분명히 알고 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겠는가? 6천년의 사역에 또 ‘어린양이 성경을 해석하는 시대’를 더할 리가 있겠는가? 그는 새로운 사역을 하러 왔는데, 이전의 사역은 조금 드러냈을 뿐이다. 사람에게 6천년 사역의 실정을 깨닫게 하면 되지, 지나치게 많은 성경 장절을 해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현재의 사역이다. 너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곱 인을 떼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 사역을 하러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21.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루는 전능하고 완전한 참 하나님이다! 그는 일곱 별을 가지고, 일곱 영을 지니고, 일곱 눈이 있고, 일곱 인을 떼고, 책을 펼칠 뿐만 아니라 더욱이 일곱 재앙과 일곱 대접을 주관하고, 일곱 우레를 떼며, 이미 일곱 나팔도 울렸다! 그가 창조한 만물과 이룬 모든 것은 마땅히 그를 향해 찬미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의 보좌를 높이 받들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4편 말씀>에서 발췌

22. 6천년의 전체 경영 계획에 관한 이런 역사 이상(異象)에 대해, 모든 사람이 다 꿰뚫어 보지 못하고 아무도 깨닫지 못하여 계속 수수께끼로 남았었다. 말세에는 말씀 사역만 하는 것으로 하나님나라시대를 전개하지만 모든 시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말세는 말세이고 하나님나라시대일 뿐, 은혜시대나 율법시대를 대표하지 않는다. 말세에만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을 너희에게 나타냈는데, 이것이 바로 심오한 비밀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런 심오한 비밀은 그 어떤 사람도 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경의 실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을 아무리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글귀에 불과하다. 사람은 성경을 보고 혹시 진리를 조금 터득하거나 글귀를 조금 해석할 수 있고 유명한 장절에 대해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포함된 뜻은 영원히 풀지 못한다. 그 까닭은 사람이 여호와나 예수가 역사한 장면을 본 것이 아니라 죽은 글귀만 본 것이고, 또 그런 사역의 심오한 비밀을 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천년 경영 계획의 비밀은 가장 심오하고 은밀하여 사람은 전혀 측량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직접 깨달을 수 없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사람에게 해석하고 풀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에게는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고, 영원히 닫혀 있는 심오한 비밀이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23. 성경은 역사책에 속한다. 네가 구약성경을 은혜시대에 가져다 먹고 마시며 구약시대에 요구한 것을 가져다 은혜시대에서 실행한다면 예수는 너를 내버릴 것이고 너를 정죄할 것이며, 예수의 사역을 구약의 틀에 맞춘다면 너는 바리새인이다. 만약 현재 네가 신약과 구약을 같이 묶어 먹고 마시며 실행한다면, 오늘날의 하나님은 너를 정죄할 것이며, 너 또한 오늘날의 성령의 역사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네가 구약도 먹고 신약도 먹는다면, 너는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자에 속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24. 더 높은 도가 있는 이상 굳이 낮고 시대에 뒤처진 도를 연구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더 새로운 말씀과 더 새로운 사역이 있는 이상 굳이 묵어 빠진 역사(歷史) 기록 속에서 살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새로운 말씀이 너를 공급할 수 있으면, 그것이 새로운 사역임을 증명한다. 낡은 기록이 너를 배불리지 못하고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사역이 아니라 역사(歷史)라는 것을 증명한다. 최고의 도가 곧 가장 새로운 사역이다. 새로운 사역이 있게 되면, 이전의 도가 아무리 높은 것일지라도 다 사람이 회상하는 역사(歷史)가 되고, 아무리 참고할 가치가 있다 해도 역시 낡은 도가 된다. 낡은 도는 ‘성서’에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역사이고, 새로운 도는 ‘성서’에 한 페이지도 기록되지 않아도 현실적이다. 이 도는 너를 구원할 수 있고, 이 도는 너를 변화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25. 성경을 고수하면서 예수만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자들아, 너희는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과 말씀을 준행하였는가? 예수에 대한 너희의 충성도는 얼마나 되는가? 당시에 구약의 가장 큰 예언서인 이사야서에도 신약시대에 ‘예수’라고 이름하는 이가 강생할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단지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할 것이고,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말하였을 뿐이다. 왜 ‘예수’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구약에는 그 단어가 전혀 없는데도 너는 왜 예수를 믿었는가? 설마 너는 예수를 본 후에야 예수를 믿게 되었단 말인가? 혹은 네가 계시를 받은 후에야 믿게 되었단 말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너에게 그렇게 은총을 베풀어 주었다는 것인가? 너에게 그렇게 큰 축복을 주었는가? 너는 무엇에 근거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왜 너는 오늘날의 성육신을 믿지 못하는가? 왜 너는 하나님이 너에게 계시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성육신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나님이 역사할 때 반드시 사람에게 먼저 알려야 하는가? 반드시 사람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가? 이사야는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고 하였을 뿐,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태어나리라고 예언하지 않았다. 너는 도대체 무엇에 근거하여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네가 흐리멍덩하게 믿었을 리는 없겠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26. 성경과 사람이 함께한 지 몇천 년의 역사(歷史)가 되었고, 또한 사람은 그것을 하나님으로 삼아 대하였으며, 심지어 말세에 이르러 사람은 성경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매우 혐오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간이 날 때 성경의 내막과 그 기원을 하나하나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지위가 계속 하나님을 대체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성경의 글귀로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정죄하고 가늠할 것이다. 하나님이 성경의 실질과 구조 그리고 그 속의 허점을 해석하는 것은 성경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정죄하는 것도 아니라 그것에 대해 적합하고 합당한 설명을 하여 성경의 본모습을 복원하는 것이고, 성경에 대한 사람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 모든 사람에게 성경에 대한 정확한 견해가 있게 하는 것으로, 더 이상 성경을 숭배하지 말고 더 이상 방향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즉, 성경을 맹신하는 것을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것이라고 잘못 여기고 심지어 성경의 실제 배경과 그 속의 허점에 감히 직면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성경에 대해 순수하고 올바른 인식이 있고 난 후에야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것을 버리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새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몇 편의 말씀으로 이루려는 목적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주려는 진리는 그 어떤 이론이나 사실도 하나님의 현실의 역사와 말씀을 대체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성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 올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려면 무엇보다 먼저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부 내용 소개>에서 발췌

27. 하나님은 새 사역을 할 때 더 이상 옛것에 미련을 두지 않았고, 더 이상 율법시대의 규칙을 고려하지도 않았으며, 지난 시대에 했던 사역의 영향을 받지도 않았고, 안식일에도 여전히 사역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도 배고프면 밀 이삭을 잘라 먹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보기에는 다 매우 정상이었다. 하나님께 있어 하나님이 하려고 하는 많은 사역과 많은 말씀은 다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 있다. 새 시작이 있을 때는 이전에 했던 자신의 옛 사역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더 이상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원칙으로 역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새 사역을 하려고 할 때가 바로 사람을 새로운 사역 절차로 이끌어 가려고 할 때이고, 또한 하나님의 사역이 더 높은 단계로 진입할 때이다. 그런데 사람이 낡은 논법이나 규칙을 계속 행하거나 계속 고수한다면, 하나님은 기념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이미 새로운 사역을 가져왔고 새로운 역사 단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새 사역을 가져올 때는 완전히 새로운 형상, 완전히 새로운 각도와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 자신의 각기 다른 면의 성품과 소유소시를 보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새 사역을 하는 목적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옛것을 지키지 않고, 옛길을 가지 않는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말씀하는 데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금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전부 해방이고 자유이며, 그 어떤 금기도 없고 그 어떤 속박도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전부 자유와 해방이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하나님이고, 진실하고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목석이 아니고 석상도 아니며, 사람이 공양하거나 숭배하는 우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분이며,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전부 생명과 광명이고, 전부 자유와 해방이다. 하나님께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고 길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사역을 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8. 사람이 만일 관념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여 규정하면서 하나님을 마치 영원히 변하지 않는 돌부처(직역: 흙부처)인 것처럼 완전히 성경에 규정하고 유한한 사역에 고정시킨다면, 너희가 하나님을 정죄했음을 증명한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마치 하나님은 메시아라고만 칭할 수 있고 메시아로 불려야 하나님인 것처럼 하나님을 마음속에 고정된 우상으로 삼고 돌부처(무생명)로 여겨 섬기고 경배했기 때문에, 당시의 예수를 사형 선고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하여 원래 죄 없는 예수가 죽을죄로 판결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무고한데,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놓아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것이다. 사람은 늘 하나님을 고정불변하다고 여기면서 한 권의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규정하는데, 마치 하나님의 경영을 꿰뚫어 본 것 같고,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장악하고 있는 것 같다. 인류는 극도로 터무니없고 거만하며, 사람은 모두 큰소리치기 좋아한다.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이 얼마나 높든지 간에, 나는 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가장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전혀 순복할 줄 모르면서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늘 흡족해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람이 언제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관념이 너무 많으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조금도 실정에 부합되지 않고 천편일률적이며 남의 것을 모방하고 억지로 끼어 맞추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에서 발췌

29.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당시의 예수와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구하지 않고, 율법의 모든 구절을 진지하게 대하다 못해 예수가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죄명으로 본래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이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들은 ‘성경’의 구절에만 마음을 기울였을 뿐, 나의 뜻에는, 나의 역사 절차와 역사 방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사수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다. 더 확실하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노예들이다.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성경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성경의 명망을 수호하기 위해 그들은 결국 인자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단지 성경을 두둔하기 위한 것이었고,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 구절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앞날을 망칠지언정, 속죄제를 얻지 못할지언정, 성경에 규정된 내용과 맞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설마 그들은 모두 성경 구절의 앞잡이가 아니란 말인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에서 발췌

30. 오늘날의 사람은 또 어떠한가? 사람은 모두 천국에 가기 위해, 은혜를 받기 위해 이미 와서 진리를 내놓은 그리스도를 인간 세상에서 몰아내려고 하였고, 성경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진리의 도래를 전부 말살해 버리려고 하였으며, 성경이 영원히 존재하게 하기 위해 두 번째 육신으로 돌아온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였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악독하고 본성이 그렇게 나와 적대되는데, 또 어찌 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어도 나의 존재를 모르고, 나의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 주었을 때에도 여전히 나의 존재를 모르며, 나의 진노가 사람에게 임할 때에는 나의 존재를 더욱 부인한다. 사람은 모두 글귀와 합하고 성경과 합하기를 추구하지만, 내 앞에 와서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모두 하늘에 있는 나를 앙망하고, 하늘에 있는 나의 존재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육신에서 살고 있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는 내가 그야말로 너무나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의 글귀와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 오직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은 나의 눈에 비천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숭상하는 것은 죽은 글귀이고, 숭배하는 것은 사람에게 거액의 재산을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의 지배를 받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서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에서 발췌

31. 성경의 글귀에만 관심을 두면서 오히려 진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나의 발자취를 찾는 데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그 사람들은 모두 나와 적이 되는 자들이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성경에 제한하고, 성경에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나에 대한 크나큰 모독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나의 앞에 올 수 있겠는가?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나의 행사와 나의 뜻, 그리고 진리가 아니라 글귀인데,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글귀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나와 합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에서 발췌

32. 나와 합하였다고 자칭하는 그 사람들은 모두 막연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비록 나의 이름을 거룩하다고 칭하지만, 그들이 행한 길은 오히려 나와 배치되고, 그들이 하는 말에는 교만과 자부심이 가득 차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본래 나와 적이 되는 자들이고, 나와 합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날마다 성경에서 나의 종적을 찾기도 하고, 마음대로 ‘적합한’ 구절을 한 단락 찾아 읽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며, 또한 ‘경전’으로 삼아 외우기도 한다. 그들은 어떻게 나와 합해야 하는지 모르고, 나와 적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저 ‘성경’만 읽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전혀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막연한 하나님을 성경에 제한해 놓고, 한가할 때면 꺼내어 본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에서 나의 존재를 신앙하고, ‘나’와 ‘성경’을 동등하게 보며, ‘성경’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나의 존재에 관심이 없고 나의 행사에 관심이 없지만, 각 성경 구절에는 아주 특별하게 관심을 가진다. 심지어 더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내 자신이 하려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성경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보는데, 그것은 그들이 글귀를 너무나 중요하게 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심지어 내 말의 마디마다 성경 구절로 가늠하고 성경 구절로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나와 합하는 도가 아니고 진리와 합하는 도가 아니라, 성경의 글귀와 서로 부합되는 도이다. 그들은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다 나의 역사가 아니라고 여기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 바리새인의 충실한 자손들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에서 발췌

33. 하나님 자신이 바로 생명이고 진리이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공존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생명도 얻지 못한다. 진리의 인도와 돌봄 그리고 공급이 없다면, 네가 얻는 것은 단지 글귀이고, 도리이며, 더욱이 사망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은 동시에 공존한다. 네가 만약 진리의 근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생명의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다. 네가 생명의 공급을 받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절대로 진리가 없을 것이며, 너의 온몸은 상상과 관념을 제외하고 너의 육체뿐인데, 비린내로 가득 찬 너의 그 육체이다. 너는 알아야 한다. 책의 글귀를 생명이라고 할 수 없고, 역사(歷史)의 기록을 진리로 삼아 섬길 수 없으며, 과거의 규례로 하나님의 현재 말씀의 실제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발표한 말씀만이 진리이고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역사 방식이다. 네가 하나님의 지난 시대의 말씀 기록을 오늘에 가져와 지킨다면, 너는 바로 고고학자이다. 그러므로 너를 역사문물 연구 전문가라고 하면 가장 적합하다. 네가 언제나 하나님이 이전에 역사할 때 남겨 둔 흔적만 믿고, 하나님이 이전에 인간 세상에서 역사할 때 남겨 둔 그림자만 믿으며, 하나님이 이전에 하나님을 따르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알려 준 도만 믿고, 오히려 하나님이 현재에 역사하는 동향은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현재 영광의 얼굴은 믿지 않고, 하나님이 현재에 발표한 진리의 도는 믿지 않기 때문에, 너를 뛰어난 비현실적인 공상가라고 해도 나무랄 데가 없다. 만약 지금 네가 여전히 사람으로 살게 할 수 없는 그 글귀를 지킨다면, 너는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쓸모없는 인간이다. 그것은 네가 너무나 옛것을 지키고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꽉 막혔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34.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長久)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 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만 지키려고 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원 상태만 유지하려고 하면서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歷史)를 도태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과 적이 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은 호호탕탕하여 용솟음치는 파도와 같고, 진동하는 우렛소리와 같은데, 네가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면서 만일의 요행을 바란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미 누렇게 된 너의 그 책 속의 글귀가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시대를 뛰어넘게 할 수 있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을 찾을 수 있게 하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천당에 가게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잡고 있는 것은 잠시 너에게 위안이 되게 할 수 있는 글귀일 뿐, 네게 생명을 얻게 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네가 읽는 글귀와 경문은 너의 혀를 충실케 하는 경문일 뿐, 인생을 알게 하는 철리(哲理)가 아니고 더욱이 너를 온전케 되게 하는 길도 아니다. 그런 차이가 설마 너를 반성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네게 그 속의 비밀을 깨닫도록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네 스스로 하늘에 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네가 스스로 천당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천륜지락(天倫之樂)을 누릴 수 있겠느냐? 지금 너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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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②효유(曉喩): 분명하게 알리고 직접 지시함.

③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④노황력(老黃歷): 오래되어 누렇게 된 달력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성경을 가리킴.

⑤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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