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한다 (제 2 부)
하나님의 선민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반드시 분별하고, 폭로하고, 고발하고, 저버려야 한다. 그래야 확실히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사람을 미혹하여 리더 자리에 오르든 그는 네 리더가 아니다. 너는 그를 인정해서는 안 되고, 그의 인도를 받아들여서도 안 되며, 그를 분별하고 저버려야 한다. 그는 네가 진리를 깨닫도록 도와줄 수 없고, 붙들어 주거나 공급해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이다. 그는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끌어 줄 수 없기에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없다. 또 네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도록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그러니 너는 마땅히 그를 분별하고 폭로하고 저버려야 한다. 그의 모든 행동은 너를 미혹하여 그를 따르게 하기 위한 것이고, 네가 그의 패거리에 들어오게 하기 위한 것이며, 교회 사역을 망치고 교란하는 한편, 너를 끌어들여 그와 함께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너를 지옥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만약 분별하지 못한 채 그가 리더이니 그에게 복종하고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진리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받고 싶다면 큰 붉은 용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큰 붉은 용을 분별하고 큰 붉은 용의 추악한 몰골을 간파하고 큰 붉은 용을 철저히 저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관문 역시 통과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원수만이 아니라 하나님 선민의 원수이기도 하다.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모르면 쉽게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회유되어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하나님께 저주받고 징벌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철저하게 실패한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우선 진리를 많이 깨달아야 하고, 적그리스도의 본질과 성품, 적그리스도의 길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믿으면서 확실히 사람을 숭배하거나 따르지 않게 되고, 길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다.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증거하게 된다. 혹자는 “저는 지금 이런 측면의 진리를 갖추지 못했는데 어쩌죠?”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얼른 진리를 갖추고 사람과 일을 간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드시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가 저지르는 모든 일의 배후 음모와 수단, 속셈과 목적을 간파해야 한다. 그러면 너는 그에게 미혹되거나 통제되지 않고 굳게 설 수 있으며, 평온하게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는 길을 착실히 걸어 나갈 수 있다. 적그리스도,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네가 매우 위험하고, 또 쉽게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사로잡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너희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걸림돌, 방해물, 원수일지도 모른다. 너희는 이를 인정하느냐?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직면하고 인정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나 사실 교회에서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일은 실제로 존재하고 늘 존재해 왔다. 그저 사람이 분별하지 못했을 뿐이다. 적그리스도,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당하거나 적그리스도에게 고통과 괴롭힘을 당하고 배척당하고 억압당하고 학대당할 것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네 그 작은 생명까지 얼마 안 가서 시들 것이다. 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도 공의롭지 않아! 하나님이 어디에 있지? 이 세상에는 정의나 광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그런 일도 없고. 일해서 돈이나 벌고 생계나 유지해야지!” 너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떠나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된다. 네가 구원받을 희망이 철저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사탄을 꿰뚫어 보고 간파해야 하는 것이며, 일어나 사탄을 폭로하고 버리는 용기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사탄은 어디에 있겠느냐? 바로 네 옆, 네 주변에 있으며, 어쩌면 네 마음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네가 사탄 성품으로 살아간다면 너도 사탄에 속한 자라고 할 수 있다. 영계의 사탄이나 악령은 네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현실 생활 속의 사탄이나 살아 있는 마귀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진리를 싫어하는 자는 모두 악인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리더 일꾼은 모두 거짓 리더이고 적그리스도이다. 그들은 사탄, 살아 있는 마귀가 아니겠느냐? 어쩌면 이런 자들이 네가 숭배하고 앙망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너를 이끄는 사람일지도 모르며, 네가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앙모하고 신뢰하고 기다리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너에게 있어 그들은 네가 진리를 추구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자 방해물이며, 바로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이다. 그들은 너의 인생과 네가 걷는 길을 통제할 수 있으며, 네가 구원받을 기회를 망칠 수 있다. 네가 분별하지 못하고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언제든 미혹되고 사로잡힐 것이다. 그럼 너는 몹시 위험해질 것이다. 만약 이 위험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는 사탄의 희생양이 되고 말 것이다. 어찌 되었든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어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미혹되어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는데, 이는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스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허풍 아니겠느냐? 만약 누가 봐도 분명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이빨을 드러내고 나쁜 인성을 보이며 악을 행한다면 당연히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무척 경건하고 말투가 온화하며 사람도 좋아 보이고,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는 적그리스도라면, 너는 그를 분별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할 수 있겠느냐? 만약 분별하지 못한다면 너는 분명 그에게 탄복하고 호감을 가질 것이다. 그럼 그의 행위와 사상 관점, 행동 방식, 나아가 진리에 대한 이해 방법은 반드시 네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치겠느냐? 너는 그를 부러워하고 모방하고 본받고 따를 것인데, 이는 네 생명 진입에 영향을 줄 것이고, 진리를 추구하고 실제에 진입하는 것,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진실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는 것 등에 영향을 줄 것이다. 결국, 그는 네 우상이 되어 네 마음속에서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럼 너는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 정도로 미혹되면 네가 구원받을 희망은 막연해진다. 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이미 망가졌으며, 너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잃고 위험한 경계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네게 화겠느냐, 복이겠느냐? 당연히 재난이지 절대 복이 아니다. 몇몇 적그리스도가 사소한 일에서 너를 도와 약간의 이점을 안겨 주거나 글귀와 도리로 너를 지도해 줄 수는 있어도 네가 그에게 미혹되어 그를 숭배하고 따르는 순간 문제는 심각해진다. 너는 스스로를 망치고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는 사탄도, 악인도 아닙니다. 영적 인물 같아요.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요.”라고 하는데, 이 말이 성립하겠느냐? (성립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느냐?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을 인도하고 도와주고 공급해 줄 때 다음과 같은 영향과 이로움을 준다. 즉, 너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구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구하는 법을 배우게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가까워지게 한다. 반면, 네가 적그리스도와 점점 더 친근한 관계가 되어 그의 모든 말이나 계획을 그대로 따른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나쁜 길에 들어서고, 스스로를 망치게 된다. 적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가까워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멀어진다. 그로 인한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그는 너를 그의 앞으로 데려갈 것이고, 너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네 마음속에는 우상이 생기는데, 네가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에 관념을 품거나 하나님 말씀이 네 우상을 드러낼 때, 너는 즉시 하나님을 거역하고, 심하게는 대적하고 배반할 것이며, 네 우상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다.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어떤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가 교체되거나 출교되면 그의 졸개, 앞잡이들이 그를 위해 불평을 터뜨리고 원망을 쏟아 내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소극적으로 변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도 있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지 않더냐? 어째서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겠느냐? 그는 “리더조차 교체되고 출교되었는데 평범하게 따르는 저 같은 사람에게 어떤 희망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는 헛소리 아니겠느냐? 그의 말을 통해, 그는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며, 적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미혹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혹된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적그리스도는 그가 숭배하는 우상이 되고, 그의 조상 같은 존재가 된다. 그의 조상이 출교되었는데 그가 어찌 물러서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는 오직 적그리스도의 말만 들으며, 이미 적그리스도에게 완전히 통제되어 적그리스도의 모든 언행을 옳게 보고,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며 순종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집의 누구든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정죄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집에서 출교되는 순간, 적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교회를 떠난다. 이것이 바로 ‘나무가 쓰러지면 원숭이가 사방으로 흩어진다’는 것이다. 이 일은 적그리스도들이 사탄의 종이자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러 온 존재임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 하나님의 선민에게 간파당하고 폭로되고 버림받는 순간,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생애도 끝난다.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는 특징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누구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적그리스도의 말만 듣는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된 그들은 하나님 말씀도 듣지 않는다. 그들이 주인으로 인정하는 존재는 오직 적그리스도뿐이다. 이는 미혹당하고 통제된 것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만이 적그리스도를 위해 불평을 터뜨린다. 적그리스도가 폭로되고 드러날 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를 대신하여 초조해하고 눈물 흘리고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변호한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마저 잊어버린 채 하나님에게 기도하지도,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 오직 적그리스도를 위해 불평을 터뜨리고 머리를 쥐어짤 뿐 하나님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겠느냐? 그들이 믿는 존재는 과연 누구겠느냐? 여기에서 완전히 드러난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든, 이루려는 목적은 오직 하나, 사람들을 이끌고 사람들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순순히 그를 따르고 그에게 순종하게 해서 결국 그를 하나님으로 대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걸었던 길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바울은 마지막까지 사역한 후 마침내 그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마음속 말을 했다. 그가 이 말을 한 목적은 주를 믿는 모든 사람이 그를 본받고 따르며, 그를 하나님으로 대하게 하는 것이었다. 바울의 이 말에는 이런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 만약 적그리스도가 사역해서 정말 모두가 그를 숭배하고 그에게 순종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위를 잃게 될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은 적그리스도에게 점령당할 것이다. 바로 이런 결과이다. 네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될까 봐 걱정되지 않는다고,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될까 봐 두렵지 않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것은 헛소리이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사람을 숭배하고 따르면 부지중에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었어도 체험 간증이 전혀 없는 것,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 것,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를 따른 것의 마지막 결과이다. 너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 사실을 바꿀 수도 없다. 이는 사람이 감전됐을 때 전기 충격을 받는 것과 같다. “나는 믿지 않을 거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이 네가 믿고 안 믿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않고의 일이겠느냐? 일단 감전되면 ‘찌릿’ 하고 전기 충격이 온다. 믿지 않아도 소용이 없다. 믿지 않는다는 것은 무지한 것이고, 무책임한 소리다. 그러므로 네가 적그리스도를 따르길 원하든 원치 않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늘 명리와 지위에 골몰한다면 이미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또한, 그 결과는 조금씩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다. 이는 필연적인 일이다. 적그리스도의 행동은 사람들을 그들 앞으로 데려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통제와 지배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얻으려고 하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의 모든 선민을 통제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선민들을 손아귀에 틀어쥐면 그는 암거래 브로커가 된다. 적그리스도는 무엇으로 사람을 통제하려는 목적을 이루겠느냐? 그들은 사람이 숭배하는 영적인 도리를 이용하고, 사시이비한 이론을 이용하며, 이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패괴된 심리를 이용하여 과장하고 사탕발림하며 사람들을 미혹한다. 요컨대, 그들이 한 말은 모두 글귀와 도리이고 텅 빈 이론이며, 사시이비한 것들과 진리에 어긋난 것들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사람은 누구나 미혹당하고 만다. 최소한 한동안 미혹당한 후에야 정신을 차릴 텐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적그리스도의 본모습이 드러난 후로, 그때는 후회해도 늦다.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성령 역사를 잃었다. 그것은 그들이 마음속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사람을 따랐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고 한쪽에 내버려둠으로써 그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다.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한쪽에 내버려두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선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폭로하여 철저히 저버리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날이 도래할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모든 행동은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해치는 것 아니겠느냐? 그는 자기 혼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미혹하고 통제하여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또 자기 혼자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미혹하여 그를 따르게 한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지위와 권세를 도모함으로써 하나님에게 대항하고, 하나님의 선민을 두고 하나님과 겨루며, 마지막에는 독립 왕국을 세워 하나님과 공존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는 성육신 하나님의 철천지원수이며, 하나님이 파멸해야 할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당하고 통제된다면 이는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가장 위험한 일일 것이다. 사람이 이미 적그리스도를 따르고 완전히 적그리스도의 편에 서 있다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적대하는 사람에 속한다. 그런 사람의 결말이 어떠할지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것, 이 측면에 관해서는 거의 다 교제했다.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목적과 속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 수단,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적그리스도를 대할 때 지녀야 할 행동 방식 등 이 몇 가지 측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교제했으나 아직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앞으로의 교제에서 구체적인 상황이나 사례를 근거로 이러한 측면의 진리를 더 언급하게 될 것이다.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교제할 때, 일반적으로 설교를 듣는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느냐? 집중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되, 딴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측면의 진리에는 다 구체적인 말과 정의, 구체적인 내용과 실행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각 항목의 내용마다 서로 다른 각도와 방식으로 진리와 관련된 개념적인 것들, 사람이 깨달아야 할 진리와 실행해야 할 길을 설명하므로 묵상하고 교제하여 잘 이해해야 수확을 거둘 수 있다. 지금 이런 세부적인 교제를 통해 본분 이행과 관련된 진리 원칙은 사람의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기가 정말 힘들다. 진리를 깨닫는 것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다. 이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길이 생기며, 진리 실행을 훈련할수록 실행 과정에서 길이 넓어지고, 더 정확하게 원칙을 파악하게 된다. 반면, 네가 이런 구체적인 교제를 듣지 않은 채 그 두루뭉술하고 개념적인 것들만 이해한다면, 진리를 실행할 때 속수무책이 될 것이며, 진리 원칙을 구할 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고 아무리 해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자세히 정의하고 규범화하고 범위를 축소하고 진리를 구체화하면, 나중에 실행할 때 훨씬 자유로워진다. 세부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네게 공책을 한 권 사오라고 시킬 때 내가 공책의 사이즈나 두께, 가격 등 간단한 조건만 말해 준다면, 너는 그 원칙을 파악하고 실행하기가 조금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공책의 구체적인 색상, 치수, 장수, 구체적인 격식, 종이 품질 등 세부 내용을 모두 알려 준다면, 너는 더 구체적으로 원칙을 파악하게 되지 않겠느냐? 만약 내가 더 구체적으로, 네게 종이를 한 장 주고 그 종이의 품질과 두께, 색상, 칸 크기, 칸 수와 똑같은 것을 사 오라고 하거나 그 종이를 기준으로 각 규격의 차이가 얼마인지 등을 모두 자세히 정해 준다면, 공책을 구매할 때의 선택 범위가 더욱 줄어들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원칙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고, 실행하기가 점점 더 쉬워지지 않겠느냐? 이것이 네 실행에 도움이 되겠느냐, 아니면 교란이 되겠느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도움이 될 것이다. 각 측면의 진리를 더욱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말해 주었으며, 구체적인 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구체적인 행동과 실행 방법까지 전부 자세히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네가 실행하지 못한다면, 이는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지금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얻고 온전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중요하다. 지금 나는 다음과 같은 수준까지 말했다. 합격한 본분 이행 측면의 진리를 본분 이행 인원에 따라 여섯 부류로 나누었다. 부류마다 다시 구체적인 범주로 나누고, 또다시 작게 분류해서 자세히 교제했다.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고 이렇게 진리를 교제하면 너희가 진리를 더 잘 깨닫고 실행 과정에서 더욱 원칙이 생기겠느냐, 아니면 원칙을 찾기가 더 어렵겠느냐? (더욱 원칙이 생깁니다.) 더 잘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너희에게 도움이 되며, 너희가 점점 더 모호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명확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었는지에 달려 있다. 정말 자질이 좋고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점점 더 명확해진다고 느끼겠지만, 자질이 떨어지고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도달하지 못한 채 들으면 들을수록 모호해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들으면 들을수록 모호해집니다. 마치 내면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라고 말한다. 생명 진입에 관해 너무 상세히 설명할 경우, 체험이 없고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은 도달하기가 무척 힘들다. 상세히 설명할수록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은 점점 더 쉽게 멍해진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여기에는 몇 가지 상황이 있다. 한 가지 상황은, 영적인 이해력이 없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즉, 이 부류의 사람은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구체적인 내적 상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것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바로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마지막 방법 하나만 남아 있다. 즉,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상세히 알려 주는 것이다. 마치 로봇에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실행 명령어를 따르게 하는 것처럼 규례를 지키게 하면 된다. 이런 방법은 이 부류의 사람에게는 성과를 낼 수 있다. 이 방법 외에 다른 건 없다. 나는 지금 이 마지막 방법을 쓰고 있다. 즉, 가장 상세하게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나는 네게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 할지 직접 알려 줘서 규례를 지키게 한다. 너에게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기에 내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내적 상태가 완전히 같지는 않고 대동소이하다. 만약 너희가 한 사람 한 사람 구체적으로 분명히 말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게 돌볼 수 없다.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너무도 많기에 영적인 이해력이 있고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너희가 가서 이 측면의 사역을 해야 한다. 나는 이미 사역을 할 만큼 했고, 여기까지밖에 할 수 없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행하는 모든 사역과 말씀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고 닿을 수 있다. 정상 인성의 사유와 반응을 지닌 사람들에게 행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적을 나타내진 않으시나요?”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이적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런 일은 모두 실제적으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이 세 단계 사역을 한 것처럼 말이다. 처음 율법을 반포하여 인류의 삶을 이끈 것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 사역을 한 것까지, 또 말세에 육신을 입고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한 것까지 모든 단계는 실제적으로 행하였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마주해서 말씀하고 사역했다. 여기에 이적은 없다. 가장 큰 이적은 바로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고 사역하는 것이며, 게다가 어떤 방식을 쓰든 마지막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고 얻는 것이다. 이 일은 시간문제일 뿐 분명히 이루어진다. 이것이 가장 큰 이적과 기사이다. 이것 외에, 하나님은 어떤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진리를 사람 마음에 만들어 주지 않는다. 지금 이런 진리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교제하고 있다. 만약 네가 이해 능력을 지니고 정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진실로 마음을 쓰고 공을 들인다면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 원칙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진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오랜 세월 설교를 듣고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냐?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영적인 이해력이 전혀 없고,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도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네가 정말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며, 진리 추구에 공을 들여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원인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은 세월이 짧은 데다가 설교를 많이 못 듣고 체험도 적어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 또한 하나의 원인이다. 하지만 네가 정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믿은 햇수가 쌓여 감에 따라 진리도 점점 많이 깨닫게 될 것이며, 영적인 분량 역시 점차 자랄 것이다.
어떤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한두 마디 말로 완벽하게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모호하게 말하면 요즘 사람들에게는 도리이자 하나의 이론이 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람이 듣고 이해하며, 받아들인 후에 실행 과정에서 원칙으로 삼게 할 수 있겠느냐? 더 구체적으로, 더 자세하게 말해야 한다. 이야기를 해 주든 진리를 교제하든, 혹은 실행의 내용에 관해 다루든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너희에게 이롭다. 그래서 나는 늘 머리를 쥐어짜 너희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사례를 들어 더 잘 알아듣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진리를 하나하나의 사건에 실체화하며, 내가 교제하는 진리와 이야기하는 모든 사건을 결합함으로써 너희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으로 남게 한다. 그리하여 너희가 자신에게는 그런 행위가 없었는지, 자신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인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지, 그런 내적 상태에 빠진 적은 없었는지 대조해 보게 한다. 그리고 이런 진리를 듣는 동시에 끊임없이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마치 직접 그 상황에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야기를 해 주고 사례를 드는 이유이다. 혹자는 이야기만 들었다 하면 지겨워하며 “또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저를 세 살배기 어린애로 아시는 건가요?”라고 하는데, 네가 나이는 많아도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는 아직 세 살도 안 됐을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너희를 세 살도 안 된 어린아이로 취급하는 것은 모욕이 아니며, 조금도 과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조차 너희를 과대평가한 것이다. 세 살배기 어린애는 어른에게서 가위는 날카로우니 만지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그것을 원칙으로 기억해 두고 만지지 않으며, 심지어는 가위와 비슷한 도구나 칼 등을 전부 만지지 않는다. 그 아이는 그것들이 다 날카로운 도구임을 알고 있고, 이 원칙을 파악하고 있다. 그럼 사람은 몇 번의 연이은 실행과 체험 속에서 원칙을 찾을 수 있느냐? 하나님이 행사하는 뜻과 너에 대한 요구,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느냐? 정상인의 지능을 갖췄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럼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리 설명해 줘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주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한 측면으로는, 이는 지나치게 시끄러운 생활 환경과 관계가 있다. 사람은 번잡한 일, 얽매인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읽어 볼 마음이 안 생기고 진리에 공을 들이지 못한다. 이것이 한 측면의 원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사람이 진리를 갈망하고 좋아하는 정도가 너무 낮다. 만약 10점을 만점으로 하면, 지금 너희가 진리를 좋아하는 것은 기껏해야 3~5점 정도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마지막까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얻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바로 스스로 공을 들이지 않고 마음을 다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진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는 정도가 부족하며, 약간의 흥미만 있을 뿐 좋아한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 다만 세상에서 너무 많은 좌절과 고통을 겪어 살아갈 방도가 없는 데다가 하나님이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매일 진리를 교제하며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풍부하게 예비하는 것을 보고 역시 하나님이 좋다고 생각하며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정도의 흥미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 시간이 더 많겠느냐? 번잡한 일들에 잔뜩 얽매이고, 갖가지 감정 관계, 인간관계, 지위와 허영, 사회의 흐름 등 일들에 점령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먹고 입고 꾸미는 것, 육적인 즐거움에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붓는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시간을 이런 일들에 허비하면서도 말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라고 듣기 좋은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돌아보면,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말씀을 하고 무척 오랜 시간 사역했지만 사람은 진리를 얻지 못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이 진리를 이토록 많이 선포하는 것을 보고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에 공을 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오랜 세월 믿고도 진리와 생명을 얻지 못하고 결국 도태된다.
2019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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