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6) 제 3 부

하나님은 말세에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고 또 이렇게 많은 말씀을 했다. 사람은 모두 그것을 체험했으며, 또한 하나님 사역의 각 단계를 직접 목도하였다. 어떤 각도에서 보든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며, 사람이 의구심을 품어서도 안 된다. 성육신이 아무리 평범하고 정상적이어도, 사람의 눈에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여야 한다. 혹자는 “성육신이 너무 보잘것없고 평범한 데다가 전혀 위대하지 않은데 저희가 어떻게 탄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평범한 육신이 어떤 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저희에게 큰 복을 주실 수 있습니까? 저희는 아는 게 없으니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요.”라고 말하고, 또 혹자는 “당신의 어떤 행사는 경탄스럽지 않고, 어떤 행사는 우리가 관념을 갖게 하며, 어떤 행사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하신 몇몇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당신은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끝까지 대항할 겁니다. 당신이 복음을 전하라고 하면 기어코 우리는 전하지 않을 것이고, 본분을 이행하라고 하면 기어코 이행하지 않을 것이며, 진리를 받아들이라고 하면 기어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라는 사람에게 끝까지 대항할 거예요. 당신이 우리를 어찌할 수 있을지 지켜보죠!”라고 말한다.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이 사람들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역을 부정하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부정하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부정할 천 가지, 만 가지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 하나가 있으니, 그들이 아무리 많은 이유를 대더라도 이 진리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네가 나라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네가 하나님의 이 말씀들이 진리임을 인정하지 않고, 이 말씀들을 진리로 여겨 실행하지 않는다면, 솔직히 말하건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히 천국의 문에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이 말씀들을, 이 진리들을, 사역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리 많은 도리를 깨닫고 아무리 많은 고생을 할지라도 진리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니, 그런 너는 폐물이다. 어떤 명분으로 하나님을 믿든, 어떤 목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든 너는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받을 수 없는 네가 어떤 복을 얻을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하늘의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하고, 어떤 사람들은 땅의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하며, 또 감히 하나님 말씀이나 진리와 힘겨루기를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결말과 종착지가 어떻게 될지 신경도 쓰지 않고 무관심하게 구는데, 이게 제정신이겠느냐? 이 행실이 나쁜 자들은 너무도 사악하다! 하나같이 악인이고 불신파이며 투기꾼이고 몰염치한 작자들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다.

방금 우리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교제하였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그 속에서 실행의 원칙이나 진리를 찾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道)에 이를지 깨달으려고 하지 않으며, 나아가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 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종착지와 각종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득에는 이번 생에 축복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은혜를 받을지, 내세에 백 배를 얻을 수 있을지 등이 포함된다. 이것들이 바로 그들이 하나님 말씀 속에서 찾으려는 내용이다. 그래서 어떤 각도에서 보든 적그리스도 부류는 결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삼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진리라고, 인류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그 말씀을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복과 종착지를 얻으며, 하나님 말씀을 도약대 삼아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를 얻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들이 추구하는 바와 걸어가는 길,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 그들은 한 무리 불신파이고 투기꾼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 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이득이나 종착지를 찾지 못하고, 혹은 하나님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말씀한 앞날과 운명,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찾지 못하면 실망한다. 욕망이 충족되지 못할 때, 그들은 가차 없이 전혀 망설이지도 않고 손에 있는 하나님 말씀을 내려놓으며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 그들이 원하는 삶을 추구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온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기를 원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을 진리로 여기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 말씀을 통해 그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그들 자신의 욕망과 야심을 충족하려고 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질리지도 않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결말과 종착지, 재난에 관한 내용, 비밀과 인류 발전에 대해 밝힌 내용, 그리고 하나님 사역의 내막 등을 찾는다. 그들이 관심 갖는 것은 이런 내용이다. 이런 내용들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 심지어는 늘 패괴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멸시하고 거부하며, 나아가 패괴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폭로를 싫어한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의 단어 사용이나 말씀하는 어조를 트집 잡으며 따지고 든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인류를 ‘음녀’나 ‘기생’이라고 드러내면 그는 “이게 무슨 하나님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 우아하고 부드러우며 사람을 헤아려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또 사람의 관념과 어법, 패괴된 인류의 상식에 맞지 않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 그들은 ‘이건 하나님 말씀이 아니야.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말씀하실 리가 없지! 하나님은 그렇게나 지고하고 위대하며 심오해서 헤아릴 수 없는데 말이야.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이렇게 평범할 수 있겠어? 어떻게 이렇게 상식에 어긋날 수 있겠냐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면 모든 사람이 높이 보고 숭배하고 우러러보아야 해. 심오해서 가늠할 수 없어야 하고. 그런 게 하나님 말씀이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갖은 관념을 갖고 있고, 갖가지 규정을 하며, 나아가 각종 요구를 한다. 그들의 요구와 규정으로 볼 때,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사탄의 본질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는 태도, 거부하고 판단하거나 트집 잡고 따지는 태도로 대한다. 또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에 전혀 공을 들이지 않고, 순종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실행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 바로 사탄과 악령의 본질인 것이다. 적그리스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는 바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며,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대표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한다. 이 말씀들이 육신을 통해 선포되었든 아니면 하나님의 영을 통해 선포되었든, 어떤 내용을 선포했든 의심할 여지 없이 하나님을 대표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거기에 관념을 갖는 것은 하나님에게 관념을 갖는 것과 같다. 그들은 하나님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나아가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믿지 않으며, 더욱이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적그리스도들은 이런 본질을 갖고 있다.

혹자는 말한다. “성육신 하나님은 너무 보잘것없고 평범합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사는 늘 제게 관념이 생기게 하고, 제 상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아요. 그래서 말씀과 행사를 통해 아무리 많은 진리를 선포할 수 있을지라도 그는 하나님 같지 않은 겁니다.” 이 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느냐? 이 말은 무엇을 대표하느냐? 사탄을 대표하지 않느냐? 사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결코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믿지 않으며,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법도 없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말하려고 한다. 그것이 말하는 방식은 하나님을 비웃고 희롱하고 기만하는 것이며, 그것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지위가 없다. 한편, 적그리스도의 언행은 사탄과 완전히 똑같다. 그들의 본질은 같다. 그저 사탄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적그리스도는 사람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인두겁을 둘러쓴 사탄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만약 사탄이 아니라면 그는 그런 일,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사탄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니 하나님의 말씀 역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또 사탄은 늘 사람을 기만하며, 교활하고 간사하고 사악하다. 그러니 그것은 하나님 말씀 또한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든 적그리스도는 늘 하나님 말씀에 자기 말을 보태고, 자기 뜻을 더해 함부로 해석한다. 더 심각한 경우, 하나님의 몇몇 말씀이 그들보다 대단하지 않고 레벨이나 수준이 떨어진다고, 패괴된 인류를 정복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방식과 어조, 내용을 몇몇 사람들 사이로 가져와 분석하고 판단하며, 나아가 비난하고 정죄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그들은 하나님을 따르는 동시에 그 하나님에게서 자신들이 원하는 앞날과 운명을 얻고자 하고, 또 그 하나님에게서 자신들이 원하는 종착지를 얻고자 기다린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그렇게 하겠느냐? 이는 자기 뺨을 때리는 짓 아니겠느냐? 이유는 딱 하나다. 그들의 눈에는 이런 하나님이 하는 말씀이 너무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보이며, 행사 또한 너무 일반적으로 보인다. 이런 하나님은 그들이 우러러보고자 하는 존재가 아니고, 그들의 상상 속 존재도 아니며, 그들과 맞지 않는다. 만약 이런 하나님을 따른다면 그들의 종착지와 앞날, 운명은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하나님을 극력으로 반대하며, 판단하고, 하나님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망치고 교란하고 파괴하여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려 한다. 그러면 그들의 목적도 달성된다. 혹자는 “그들의 목적이 달성되면 그들의 종착지도 사라지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이 부류는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아예 인정하지 않고, 나아가 하나님이 경영 사역으로 인류를 구원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이다. 만약 정말 그 하나님을 무너뜨린다면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하나님 집에서 그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다. 안심하고 대담하게 속세로, 사악한 흐름 속으로, 그들의 소위 그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재난이나 연단도 겪을 필요가 없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은 더더욱 겪지 않아도 된다. 이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고 이 세상은 예전처럼 돌아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꿈에 그리는 일이다. 그자들이 악하지 않으냐? 그들이 악한 근원은 무엇이겠느냐? (그들은 본질적으로 사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증오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적그리스도 악마들은 마음속 깊이, 영적으로 자신들 같은 부류가 하나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느끼고 있고 알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증오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합하지 못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인성과 본성 본질을 혐오한다. 그래서 그들이 아무리 공을 들여도, 아무리 복을 받고 싶어 해도 마지막 결과는 그들의 의지로 바뀌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사실도 바꿔 놓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한다. 그럼 그들의 마지막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모두 멸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결과를 그들도 마음속으로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하나님 집에 여전히 머물러 있겠느냐? 그들은 이렇게 좋은 복받을 기회를 선뜻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도박을 하려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걸면 어쩌면 복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얼렁뚱땅 빠져나가 살아남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하나님이 눈치채지 못하는 새에 천국의 문에 슬쩍 들어설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는 이 몇 개의 ‘어쩌면’이라는 요행 심리를 품고 하나님 집에서 계속 허송세월을 보내지만, 그의 관점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는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말씀과 진리, 모든 긍정적인 사물을 멸시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준이 너무 낮은 것 아닌가?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는데 왜 겨우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만 말씀하시는 거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말씀이라면 심오해야지. 점점 더 고매하고 예측하기 어렵고 사람이 이를 수 없어야 한다고. 우리는 높은 요구 기준이 필요해. 평범해서 공개 석상에 내놓을 수 없는 낮은 기준의 요구는 필요하지 않단 말이야.’ 이런 사람은 진리 실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이런 설교를 들으면 마음이 좀 언짢아진다. 하지만 교제와 체험, 한동안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한 내용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된다. 어째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하겠느냐? 사람은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정직한 자가 한 명도 없으며, 온 세상은 거짓말로 점철되어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두가 매일 거짓말을 거듭하며, 말에는 사탄의 거짓말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가장 간단명료한 요구를 한 것이다. 사람이 한동안 체험하면 하나님 말씀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요구와 뜻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깨닫는 바가 생긴다. 또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지도 아래에서 점점 더 하나님 말씀이 매우 실제적이라고, 모든 구절이 사람이 깨닫고 진입해야 하는 내용이며 의미 없는 말은 없다고, 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들이라고,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꿰뚫어 보고 있으며 사람의 패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정상인의 체험 과정이다. 반면,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한 말씀을 볼 때부터 무시와 조롱, 비웃음, 심지어는 반항하는 마음가짐으로 그 요구를 바라본다. 이 말씀에 대해 편견이 생긴 후, 그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뇌리 한편에 치워 두고 하나님을 더더욱 멸시하며, 경멸의 태도로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바라보고, 심지어는 깊이 연구조차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자신이 어떻게 간사한 성품을 드러내고 어떻게 회개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는지 등의 체험을 얘기하면, 그는 속으로 반발심과 반감, 멸시하는 마음을 품는다.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가 교제한 체험적 인식에 맞서고 반감을 가지고, 심지어는 많이 교제하고 잘 인식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증오하고 멸시한다. ‘바보들 같으니라고. 하나님이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했다고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하네. 어쩜 그렇게 말을 잘 들어? 내가 하는 말은 왜 안 듣는 거지? 나를 봐, 지금까지 내 속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내가 얼마나 간사한지, 얼마나 꿍꿍이가 많은지 아무도 모른다고. 나는 당신들과 말하지 않을 거야. 당신들한테 그런 내 말을 들을 자격이 있겠어?’ 그는 하나님의 요구에 이런 태도를 보인다.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맞서고 정죄한다. 이것이 불신파의 모습 아니겠느냐? 이는 전형적인 불신파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공개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정죄한 적이 없고, 하나님 말씀을 불 속에 던져 태워 버리지도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매일같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으며, 예배 때 교제도 하지만, 사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말씀을 깊이 혐오하고 거부하고 저버린다. 즉, 하나님 말씀에 관념을 가졌을 때 그는 이미 하나님 말씀을 저버린 것이다. 혹자는 “하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기 전까지는 저버리지 않은 겁니까?”라고 말하는데, 그때까지는 아직 저버리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그가 하나님에게 품고 있는 숱한 상상과 관념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앙모하게 하며, 위인으로 여기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하나님에 대한 그의 생각은 철저히 바뀌었다. 그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이렇게나 평범한 거였다니!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이렇게나 간단하고 직설적이며 이해하기도 쉬운 거였어. 그럼 나도 말할 수 있겠네. 모두들 하나님이 위대하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하나님은 왜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거지? 하나님이 위대하고 지고지상하다면 사람에게 이렇게 낮고 보잘것없는 요구를 하셔서는 안 돼!”라고 말한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은 깊이가 없다고, 사람의 관념과 하나님의 위대한 이미지, 신분에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부터 그는 하나님 말씀에 관념을 갖는다. 관념이 생긴 후 그는 하나님 말씀을 깊이 혐오하게 되며, 이어서 하나님에 대한 상상과 관념의 둑이 완전히 무너진다. 둑이 무너진 후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느냐? 마음속 깊이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정죄하게 된다. 그러니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들은 방관자가 되어 관망한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찬미하거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을 교제할 때 그도 옆에서 관망하지만 마음속으로 아멘 하는 일이 없다. 때로는 남들을 비웃기도 한다. ‘당신이 정직한 사람이 되어서 얻은 게 뭐죠?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꼭 당신을 구원하는 건 아니고 100% 복을 받는 것도 아니죠.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고요. 만약 내가 복을 받지 못한다면, 당신들도 복을 받지 못할 겁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을 적대하는 본성 본질을 지니고 있다. 이런 본성 본질이 있기에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데 체험이 생길 리 있겠느냐? 그럴 리 없다. 그럼 그가 말하는 개인의 인식은 무엇이겠느냐? 전부 상상이나 추측이고, 도리이자 이론이며, 심지어는 부화뇌동하는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 그들은 절대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부류는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각종 태도 때문에, 또 본성 본질 때문에 하나님을 10년, 20년, 혹은 더 오랜 세월 믿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을 찾아볼 수도, 들어볼 수도 없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인식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말투에서 너는 그가 하나님에게 관념이나 오해를 품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폭로를 통해 깨우침을 얻어 마침내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게 되고 관념이 사라졌다는 것을 파악할 수 없다. 그에게는 이러한 체험도, 인식도 없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 부류가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는 데 아무리 공을 들여도 진리를 얻지 못하고 자신의 체험이나 인식을 전혀 말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는 그저 형제자매들이 자주 인용하는 하나님 말씀에서 유명한 단락을 그대로 따라 하며 읽고 외우며, 형식만 취하고 대세를 따를 뿐이다. 그 후에는 마음속으로 자기 멋대로 생각한다.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아무리 많이 생겨도, 그와 하나님 사이에 아무리 큰 갈등과 문제가 생겨도 그는 해결하지 않으며, 이런 관념과 문제는 늘 그의 곁에 머문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마음속에 점점 더 깊은 원한이 쌓이고, 하나님에 대한 증오도 점점 더 커진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믿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어떤 결과가 야기되겠느냐? 이 쌓인 원한과 관념이 그들로 하여금 앞날과 운명, 복받으려는 속셈을 내려놓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생기겠느냐? (폭발할 것입니다.) ‘폭발’이라는 단어는 무척 직설적이구나. 어떻게 폭발하겠느냐? 몇 가지 방식이 있겠느냐? (예전에 본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기도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어떤 배경 속에서 망나니가 되겠느냐? 복받으려는 욕망이 물거품이 되면, 그는 안면몰수하고 말할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잘 지낼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 저도 더 이상 숨기거나 감출 필요는 없겠지요. 저는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습니다. 복을 받을 수 없다면 진작에 떠났을 거예요!” 마음속 말을 전부 내뱉으면서도 정죄될까 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정죄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느냐? 어째서 안면몰수하고 폭발하는 것이겠느냐? 더는 믿고 싶지 않으며 떠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줄곧 자신의 목적을 위해 고난과 굴욕을 견뎌 왔다. 이 말을 실행하고 정신적인 지주로 삼아 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복받을 희망이 보이지 않자 아예 안면몰수한 채 대놓고 할 말을 다 하게 되었다. “저는 불신파입니다. 저는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고 세상을 추구하는 것과 사악한 흐름을 좋아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고, 하나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그런 게 왜 보이지 않을까요? 저는 왜 체험하지도, 느끼지도 못할까요?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무엇을 변화시켰죠? 제가 보기에 하나님 말씀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장 실리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을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뿐이죠. 이 말은 사실입니다. 만약 복을 받으려는 목적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면 왜 사람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혔겠습니까? 그는 자기 자신조차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음속 말을 한 것인데 여기에서 추악한 몰골이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 이는 그동안 쌓여 온 관념과 원한이 폭발한 것으로, 적그리스도가 마침내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어떤 적그리스도는 늘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가정과 일을 버렸습니다.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르고 그렇게 많은 고생을 했는데, 제가 무엇을 얻었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까?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냐고요. 그럼 저는 무엇을 얻었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진리를 공급해 주었고, 아무 대가도 없이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다. 또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그 많은 대적과 패역도 기억하지 않고 여전히 사람을 구원하러 왔다. 적그리스도는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는지 보지 못한다. 그가 말하는 ‘무엇을 얻었습니까?’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무엇이든 가지려고 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러 왔는데 그는 승산이 있다고, 수지가 맞다고 생각했다. 속세와 앞날을 버렸으니 장차 온 세상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가 대가로 얻으려는 것은 그가 버린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는 그런 것들보다 더 가치 있고, 자신에게 더 실리적인 것이어야 교환한다. 말해 보아라, 적그리스도가 폭발하면서 내뱉은 말들이 한때의 분노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그 말을 오랫동안 참아 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폭발한 것이다. 폭발한 후, 그가 생각했던 것, 그동안 그가 추구하던 것들이 전부 드러났으며, 그동안 그가 꾸며 왔던 겉모습도 전부 까발려졌다. 그가 한 말의 중점은 무엇이겠느냐? “지난 세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제가 무엇을 얻었습니까?”라는 것이다.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는 진리나 생명, 성품 변화, 하나님의 구원을 원치 않는다. 그는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얻으려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 세상에서 얻은 것보다 더 큰 복이다. 즉, 그는 자기가 세상에서 버린 것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한 복,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최고의 복을 얻으려 한다. 그러다가 욕망이 충족되지 않고 희망이 없음을 알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다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될 때 그가 거기에서 그만두겠느냐? 그렇지 않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는데 가족 중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경우도 있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이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족들까지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교란할 것이다. 이것이 가족이겠느냐? 표면적으로 육적인 관계나 혈연관계를 보면, 그 가족은 너무도 가깝다. 하지만 그들이 걷는 길을 보면, 똑같이 하나님을 십여 년간 믿었지만, 누구는 적그리스도로 드러났고, 누구는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며, 누구는 평범하게 진리를 추구하는데, 사람의 본성 본질이 드러난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형편없는 자는 적그리스도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하나님 집에서 출교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것이 가족이겠느냐? 진정한 가족이 이렇겠느냐? 그들은 같은 부류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오랜 세월 마귀와 살면서 그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내려놓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그들이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뭐가 가족이란 말이냐? 적그리스도는 본모습이 드러난 후 어떤 악행이든 저지를 수 있다. 심지어 가족들 중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할 수도 있고, 더 심할 경우 자기 가족을 사악한 정부에 넘기기도 한다. 어떤 부모는 자식을 팔아먹고 어떤 자식은 부모를 팔아먹는 등 적그리스도는 관계가 아무리 가깝고 친밀해도 어떤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 적그리스도가 가족들 중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팔아먹고 박해할 수 있으니 이것은 원수가 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교회에 적그리스도가 한두 명 나타나면 형제자매들이 위험해진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이 복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을 알게 되면 자포자기하여 안면몰수하며, 다른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교란할지 골몰할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연약하고 분량이 작아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인터넷상의 유언비어를 보여 주고는 선동하고 말을 덧붙여 해석한다. 그럼 그들은 교란되고 미혹되며 망쳐진다. 물론, 분별력이 있는 일부 사람들은 그가 적그리스도임을 알아챈다. 공개적으로 그를 처리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지혜로운 방식으로 그를 격리시키는 데서 그칠 뿐, 적그리스도에게 교란되거나 해를 입지는 않는다. 사탄을 대할 때는 지혜가 필요하다.

적그리스도는 앞날과 운명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 그들은 복받으려는 욕망과 자신들만의 야심을 갖고 하나님 집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받아들이고 전하며, 또 앞날과 운명 때문에 하나님 집에서 몸을 굽히고, 고난과 굴욕을 견뎌 낸다. 그들은 오랫동안 관망하다가 희망이 물거품이 되면, 앞날과 운명 때문에, 복받으려는 욕망과 속셈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회와 하나님 집을 떠난다. 이런 부류의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도태되는 것이다. 그럼 그는 왜 도태되겠느냐? 그가 하나님 집에 왔을 때부터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지 않기로 정한 것이겠느냐, 아니면 그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겠느냐? (그 자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에 올 때, 밀 속의 가라지처럼 섞여 들어온 것이다. 혹자는 “그럼 하나님은 모르셨던 겁니까?”라고 묻는데, 하나님은 알고 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감찰한다. 이 부류는 변화하지 못한다. 설령 그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보고 하나님이 밝힌 비밀과 사람의 종착지, 사람의 각종 패괴 성품을 폭로한 말씀을 모두 읽었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다. 누구에게도 숨겨져 있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그 말씀을 보고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는 결코 얻지 못한다. 그는 적그리스도이고 마귀, 사탄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그렇게 오랜 세월 하나님 곁에 있었는데도 변화하지 않았다. 적그리스도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네가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게 한다고 해도 그는 얻지 못한다. 그는 적그리스도이고,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이익과 앞날, 운명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돼지한테 나무를 타라고 하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그리스도는 눈앞의 이익을 보고, 미래의 영원한 이익도 본다. 만약 그중 어느 이익도 얻지 못하고 충족되지 못한다면 그는 금세 태도를 바꾸고 멋대로 떠나 버릴 것이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하나님 말씀의 행간 속에서 하나님의 어조와 억양을 듣고 하나님 말씀의 의미와 하나님의 의도를 추측함으로써 그들이 원하고 관심을 갖는 갖가지 이익을 가늠한다. 이런 태도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데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말하든 적그리스도 부류는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 대립하는, 불구대천의 존재인 것이다. 혹자는 “그 사람은 여태까지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떻게 그렇게 된 걸까요?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고 난 뒤 그는 이해했다고 하고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변화하지 못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데, 내가 사실대로 말해 주겠다. 그는 지금만 변화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변화하지 못한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변화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양을 잡아먹지 못한 늑대는 너무 배가 고파서 어쩌다 한두 입 풀을 뜯거나 물을 마셔 허기를 채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늑대의 본성이 변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지 않고 한동안 좋은 모습을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가 변화했고 진리를 받아들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엄한 책망과 훈계가 임해 그의 권력이나 지위를 건드리는 순간, 자신은 희망이 없고 도태될 거라고 깨닫는 순간, 그는 바로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며, 즉시 본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누가 이런 사람을 바꿔 놓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할 생각이 없고, 오직 사실로 그들을 드러내고 도태시킬 뿐이다. 그러니 이 사탄의 종들은 모두가 분별하고 버려야 할 대상이다.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는 것은 악인과 사탄을 분별하는 것과 같고, 적그리스도를 해부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탄 마귀를 해부하는 것과 같다. 오늘 우리가 해부하는 적그리스도는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의 언행과 태도 또한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고, 그들의 뜻을 가늠할 수도 있다. 영계의 사탄 마귀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기에 너에게는 영원히 하나의 개념이자 호칭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해부하는 적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살아 있는 마귀 사탄으로, 형태가 있으며 뼈와 살로 이루어진 마귀 사탄이다. 이 마귀, 사탄은 영계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저버리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싫어한다. 오늘날 교회에 와서도 적그리스도는 여전히 이런 일을 저지르는데, 똑같이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고 싫어하고 저버리며, 심지어는 늘 멸시한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이라면 마음속으로 의문을 품고 연구하고 분석하며, 자기 머리로 가공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에게 하나님 말씀은 그들이 믿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실제적이고 진실하고 신실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이 몇 가지 면으로 볼 때,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원수 아니겠느냐? 그들은 진리의 원수로 타고난 것 아니겠느냐? 이 부류는 날 때부터 하나님의 원수로, 진리를 싫어한다. 또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대하거나 지키지 않는다. 이 부류는 그 본질과 하나님에 대한 각종 모습,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갖가지 태도 때문에 결국 전부 하나님 말씀에 의해 정죄될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는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럼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익인 앞날과 운명을 그들이 얻을 수 있겠느냐? 절대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한, 사람에 대한 약속과 축복, 사람을 위해 예비한 종착지는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겠느냐? 거기에 적그리스도의 몫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약속한 인류의 아름다운 종착지는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에게 주어지며, 하나님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 진리로 삼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하나님 말씀을 사기꾼의 거짓말로 생각하는 적그리스도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2020년 4월 11일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