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2) 제 1 부
2. 적그리스도의 이익
오늘은 이어서 적그리스도의 모습 중 제9조에 대해 교제하겠다. 그것은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 항목 중 일부를 교제했지만 그것은 서두에 불과하다. 먼저 첫 번째로 이익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교제했고, 두 번째로 사람의 이익이란 무엇인지, 사람의 이익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관해 교제했으며, 세 번째로 하나님의 이익이란 무엇인지, 하나님 이익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관해 교제했다. 대략적으로 이렇게 세 가지 측면의 내용을 이야기하였다. 지난번에 교제한 내용들은 기본적으로 개념적 진리로, 각 측면의 이익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사람이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했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다. 제9조에서는 적그리스도의 갖가지 모습을 두드러지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교제하겠다. 주로 자신과 관계된 각종 이익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와 모습을 해부함으로써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 성품은 과연 어떤 것인지 파악하게 하겠다. 이러한 각도에서 해부할 것이다. 먼저, 적그리스도의 눈에 비친 그 자신의 이익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교제해 보자.
적그리스도의 눈에 하나님, 하나님 집, 교회는 그저 하나의 호칭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저 하나의 명칭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것이 그에게 어떤 실제적인 존재 가치가 있지는 않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익, 하나님 집의 이익, 교회의 이익을 멸시의 눈으로 보고, 개의치 않으며,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반면, 적그리스도 자신의 이익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부류는 늘 교회의 이익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는 대가로 자신의 이익을 얻는다. 오늘은 적그리스도의 이익에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종류별로 상세히 해부함으로써 이익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관점이 과연 어떤 것인지 사람들이 분명히 알게 하겠다. 먼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부르든,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든, 악인이라고 부르든, 아니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나 진리를 적대시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든, 그들은 진공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 또한 육체에서 살면서 정상적인 인성 생활의 필요를 똑같이 갖고 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부류가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살고, 하나님 집이나 교회에서 사는데, 그들의 이익은 자신의 안위와도 연관된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첫 번째 이익인 자신의 안위이다. 적그리스도의 두 번째 이익은 자신의 명예와 지위이다. 이는 그의 권력과 연관된다. 적그리스도의 세 번째 이익은 혜택이다. 이 세 가지로 적그리스도의 이익에 관해 해부하면 틀에 박히고 직설적으로 교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해가 잘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너희에게 이 세 가지에 근거하여 교제하라고 한다면, 할 말이 있느냐? 어느 정도 인식을 교제할 수 있느냐? (두 번째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와 혜택 측면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지 못할 듯합니다.) 좋다. 그럼 내가 교제할 때 너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부분에 관해 보충하여라. 너희가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부분은 내가 교제하겠다. 어떠하냐? (좋습니다.)
1) 자신의 안위
먼저 적그리스도의 첫 번째 이익인 자신의 안위에 대해 교제하겠다. 이것의 의미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신변 안전이다. 중국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 위험한 환경 속에서 살게 된다. 하나님을 따르는 모두가 매일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되고 판결받고 잔혹하게 핍박받을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는 적그리스도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적그리스도로 규정되었지만, 큰 붉은 용은 종교계와 손을 잡고 줄곧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선민들을 극력으로 진압하고 박해하기에, 적그리스도도 자연히 이러한 거시적 환경에 처해 있어 체포될 상황이 오면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역시 수시로 자신의 안전 문제를 마주해야 한다. 이는 자신의 안전 문제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와 연관된다. 이 항목에서는 주로 자신의 안위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에 관해 교제하겠다. 그럼 그는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안전을 지킵니다.) 적그리스도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안전을 지킨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절대적으로 안전해야 해. 다른 누가 잡혀가도 나는 잡혀선 안 돼.’ 또 그는 이 일을 대함에 있어 수시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구한다. 어찌 됐든 자신이 교회 리더의 사역을 하니 하나님은 마땅히 자신을 지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잡혀가지 않기 위해, 모든 박해에서 벗어나 자신이 안전한 환경에 처하기 위해 적그리스도는 수시로 일신의 안전을 위해 간구하고 기도한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안위가 걸린 일에서만 하나님에게 진실로 의지하고 그 일을 진실로 하나님께 맡긴다. 이 일에서는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도 진실하다. 그들은 자신의 안전을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는 데 신경 쓸 뿐, 교회 사역이나 자신의 본분은 신경 쓸 겨를도 없다. 그들의 사역 원칙은 자신의 안전을 1순위에 두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안전한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사역한다. 겉으로는 무척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것 같고, 엄청난 ‘책임감’과 ‘충성’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역을 하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쉽게 문제가 생기거나 큰 붉은 용에게 들킬 수 있다면, 그들은 핑계를 대며 그 일을 거절하고 기회를 봐서 도망친다. 위험하거나 위험한 조짐이 있기만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을 빼려 한다. 본분을 내팽개치고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만 생각한다. 그들은 어쩌면 마음속으로 이미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위험이 보이는 순간 교회 사역이 어떻게 되든,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어떤 해를 입든 신경 쓰지 않고, 또한 형제자매들의 안위 역시 개의치 않으며 그들이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바로 내팽개칠 준비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도망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은 마음속으로 ‘가장 좋은’ 계획, 스스로를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이미 세워 놓았다. 바로 위험이 닥치거나 체포되면 자기가 아는 것들을 전부 털어놓고 깨끗하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 일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속에 이런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받는 것을 원치 않으며, 체포되고 고문받고 형을 선고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오래전에 사탄과 타협했다. 그들은 사탄 정권의 세력을 몹시도 두려워하며, 혹독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일이 자신에게 닥치는 것은 더더욱 두려워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모든 것이 순조롭고, 자신의 안위에 어떤 위협이나 문제도 없어 위험 요소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열정과 ‘충성’을 바치고, 심지어 자신의 재산을 바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환경이 좋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했다는 이유로 언제든 체포될 수 있고, 공직에서 파면될 수 있으며,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몹시 조심하는데, 복음을 전하지도 하나님을 증거하지도 않고,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는다. 주변에 약간의 변화라도 있으면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하나님 말씀 책, 하나님을 믿는 것과 관계된 물건들을 급히 교회에 돌려줌으로써 자신의 평안과 안전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런 사람은 위험하지 않겠느냐? 이런 사람이 체포되면 유다가 되지 않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위험해 언제든 유다가 될 수 있고, 언제든 하나님을 배반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적그리스도는 극도로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
혹자는 말한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큰 붉은 용의 나라, 중국이라는 사회적 배경에만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해외에서는 박해받고 체포될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안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 주제를 꼭 다룰 필요가 있을까요?” 그럴 필요가 없겠느냐?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수시로 이런 모습을 보인다. 국가 정권이나 이방인, 종교계가 하나님 집에 대해 어떻게 공격하고 비방하고 조치를 취하는지 언급하면, 마음속 깊이 강렬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더욱이 그들은 그럴 때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얼마나 자유로웠을지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는 내심 중도에 그만두자고 생각하며 믿음을 포기하고 물러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부류는 시시각각 자신의 안위를 신경 쓰며, 자신의 안위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목숨과 안전은 그들이 마음 깊이 가장 걱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세상과 온 인류가 교회와 하나님의 사역을 비방하고 멸시하고 정죄할 때, 이 부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편에 서지 않는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 하나님에 대한 비방과 정죄의 목소리를 들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며, 그때 하나님이나 하나님 집, 교회와 선을 긋지 못해 안달이 난다. 심지어는 그럴 때 그에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라고 하면, 그것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나 하나님 집, 교회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럴 때, 그는 자기가 하나님 집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끼며, 나아가 부끄러워하고 얼굴을 들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이라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수시로 핍박받고 체포될 위험에 놓이며, 자신의 안위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해외에서는 이렇게까지 환경이 열악하지는 않지만, 사람은 여전히 비슷한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종교계의 비방과 정죄를 마주하게 되며, 나아가 교회에 대한 각국 정부의 냉대나 몰이해의 말을 마주하게 된다. 이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도 있고, 더 심하게는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하나님의 사역이 진실한지 의심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옳고 그름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그들은 늘 자신의 안위를 고려하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집에서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 이들이 정말 목숨을 하나님께 맡겼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해외에 나오면 큰 붉은 용의 마수에서 벗어난다는 것 아니었나? 해외에는 종교 신앙의 자유가 있는 것 아니었나? 모든 게 자유롭고 편한 것 아니었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로 해외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는데, 왜 똑같이 열악한 환경을 마주해야 하는 거지? 왜 해외에서도 이런 공과를 배우고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거야?’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반발하며,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정말 참도이고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왜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불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안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이런 몰이해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의심으로 변한다. 이런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해외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위험을 감수하기를 두려워한다. 위험을 좀 감수해야 하는 본분을 안배하기라도 하면 “저는 이 본분의 적임자가 아닙니다. 제 고향은 중국이에요. 만약 큰 붉은 용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핑계를 댄다. 그들은 그런 본분을 거부한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것,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 자기 목숨을 지키고 퇴로를 마련해 두는 것이지, 자신을 완전히 내어놓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리면서 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기에 이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안위와 관계될 때 그들이 보이는 모습이다. 혹자는 마음속으로 불안해하면서 늘 이에 대해 기도한다. 또 혹자는 수시로 두려워하고 겁을 먹으면서 사탄의 세력이 너무 강한데 자기처럼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겁을 먹고 걱정하는 것이다. 더 심한 사람의 경우, 자기가 체포되어 일이 생기면 교회나 하나님 집도 어쩌지 못할 거라고, 정말 일이 터지면 아무도 도움이 안 될 테니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에 나서서 위험이 따르는 본분을 맡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숨어 버리는데 누가 불러도 꿈쩍하지 않는다. 자기는 그 본분을 감당할 수 없다는 둥 갖가지 핑계와 이유를 대면서 하나님 집에서 맡긴 중요한 본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만약 좋은 여건이 갖춰져 있다면 그런 사람은 대중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원입니다. 모두 참도를 알아보시길 바랍니다.”라고 외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안위와 관계되지 않은 일이라면 아무 두려움 없이 이렇게 행동한다. 하지만 조금만 기미가 안 좋아도, 자기 안위에 관련된 어떤 상황이나 돌발 상황이라도 나타나면 바로 열정이 사그라들고 ‘충성심’과 ‘믿음’도 사라진다. 그저 이리저리 숨어다니며 눈에 안 띄는 일과 주목받지 않는 사역이나 하면서 얼굴을 드러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역, 본분은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 하지만 환경이 좋아지는 순간, 광대가 날뛰는 것처럼 다시 튀어나온다. 튀어나와서 무엇을 하겠느냐? 스스로를 뽐내기 시작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게 하고, 하나님에게 자신의 열정을 보게 하며, 그 순간의 충성심을 하나님에게 알게 하는 한편, 여태까지의 행동 때문에 벌충하고 한시바삐 만회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기미가 안 좋아도,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며, 다시 숨어 버린다.
복음 사역이 갓 확장되기 시작했을 때, 복음 전파는 무척 어려웠다. 그때는 복음 전파 인원이 많지 않은 데다가 그들이 깨달은 진리도 얕아서 사람들의 종교 관념에 대해 분명하게 분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을 얻기가 무척 어려운 데다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인성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기껏해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이었다. 그가 너를 때리거나 욕하는 일은 없었고, 관계를 유지해 두면 앞으로 그를 얻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는 그래도 성과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악인이나 각 종교 각 교파의 목사, 장로들을 만나면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너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으면서 죄를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만약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너를 흠씬 두들겨 팰지도 모르며, 더 심할 경우 경찰에 신고해 너를 경찰서로 보낼 수도 있었다. 너는 언제라도 감옥에 수감될 위험에 직면할 수 있었다. 어떤 교회 리더는 이러한 일에 속박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해야 할 때는 이행했고, 또 어떤 리더는 앞장서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했다. 반면, 일부 소위 ‘리더’, 외식하는 리더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험이 닥쳤을 때, 자기는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냈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한 리더는 복음 대상이 어떤 교파의 수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을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골똘히 궁리했지만, 당장 적당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가는 게 그나마 적절해 보였지만 위험해질까 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18~19세의 어린 자매를 보냈다. 말해 보아라. 그 어린 자매를 보내야 했겠느냐? (보내지 말아야 했습니다.) 어째서 그러하냐? (복음 대상이 한 교파의 수장으로, 많은 종교 관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매는 분량이 작고 깨달은 진리도 얕아서 진리 교제로 복음 대상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상대에게 전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자기까지 미혹당할 수 있습니다.) 나이도 얼마 안 된 어린 자매가 진리를 얼마나 깨닫고 있겠느냐? 성경 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겠느냐? 그녀가 한 교파의 수장을 얻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 그 나이에는 분명 복음 전파 경험도 없을 것이다. 이 밖에도, 그녀는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사회 경험이 없다. 그런 그녀가 성인들에게 어떤 관념과 생각, 어려움이 있는지 간파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분명 간파하지 못할 것이다. 그 나이에는 불가능하다. 그녀는 결코 성인의 생각에 이르지 못한다. 말해 보아라. 그저 나이만 볼 때, 어린 자매가 최적의 인선이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최적의 인선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리더는 그 어린 자매를 보냈다. 그 심보가 올바르겠느냐?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심보가 비뚤어졌다. 그 어린 자매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얼마 후, 어린 자매는 그 교계의 수장을 만나자마자 상대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리더에게 보고했는데, 자기가 너무 무서워서 다시 가는 게 겁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리더는 어린 자매를 난처하게 하고 압박하며 말했다. “안 돼요. 이건 당신의 본분이라고요. 반드시 가야 합니다!” 압박을 받은 자매는 눈물까지 흘리며 말했다. “제 본분이니 가야겠죠. 하지만 저는 이 본분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정말 못한다고요.” 그런데도 리더는 고집을 부리며 계속 말했다. “못하더라도 가야 해요. 다른 사람이 없으니 당신이 가야 한다고요!” 이는 어떤 리더냐? 그녀는 위험이 닥쳤을 때 자기 자신을 지키고 물러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다른 사람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놀라서 계속 우는 상황에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이는 어떤 인간이냐? 이런 자가 사람이냐?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형제자매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했으며, 심지어 다른 사람의 안전과 자신의 이익을 맞바꾼다. 이는 도박꾼 부모가 돈을 다 잃자 빚을 갚는 대신 딸을 내놓는 것과 같은데, 난관을 해결하고 재난을 피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내놓고 자신의 행복과 맞바꾸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어떤 인간이냐? 이런 자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이 부류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혹자는 “그가 그렇게 한 건 교회 사역과 복음 전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좋은 뜻에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것 아닐까요? 어떻게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하실 수 있는 겁니까?”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말해 보아라. 이 일은 과연 어떤 성질의 문제냐? (그 리더는 자기 이익과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과 안전을 대가로 지불했습니다. 그러니까 속셈을 품고 다른 이를 불구덩이로 떠민 것이지요. 그녀의 인성은 더없이 악독합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그 리더는 어린 자매가 그 사역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스스로를 지키려고 그렇게 안배한 것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본분 이행에 대해 보고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의 이익과 안위를 희생함으로써 개인의 목적을 이루려고 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런 속셈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누가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지, 누가 그 복음 대상을 얻을 수 있을지, 누가 이 사역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최적의 인선을 찾지도 않았다. 이런 행동의 본질은 본분을 위한 것도, 충성심과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이의 이익을 희생하고, 나아가 남을 해하는 것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남을 해하는 행동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본질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본질은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이 리더의 행동은 적그리스도의 행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근원이 여기에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다. 적당한 사람이 없고, 그 어린 자매도 없어서 그녀에게 직접 그 교파 수장한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면 갔겠느냐? “합당한 사람이 없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얻기 위해서라면 제 목숨까지도 바치겠습니다. 이건 제 직책이고 본분이니까요.”라고 말했겠느냐? 그녀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느냐? 우리는 억측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에 근거하여 그녀가 그렇게 행동할 수 없다고 말하느냐? (그녀는 정말로 성과를 내고, 복음 대상을 얻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충 형식만 취하며 어린 자매를 보낸 거고요. 그 어린 자매가 없었다 해도 복음 상대를 얻기 위해 자기가 직접 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 바로 그런 것이다. 주변에 합당한 사람이 없다면 자기가 가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그녀가 정말 본분에 충성을 다하고 자기 안위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어린 자매를 보내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갔을 것이다. 그녀가 가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문제를 설명해 주느냐? (그녀가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지키려고 했음을 설명해 줍니다.) 그렇다. 바로 그런 것이다. 만약 그녀가 본분에 충성심이 있었다면 직접 그 중임을 짊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고 대신 가장 부적합한 사람을 보냈다. 가장 부적합한 사람을 가장 위험한 곳에 보냄으로써 자기는 위험을 피하고 스스로를 지키려는 목적을 이루려 했다. 이것이 그녀의 속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행위이다. 이는 사람을 안배하는 측면에 관한 것이다.
큰 붉은 용은 중국 대륙에서 줄곧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진압하고 체포하며 박해해 왔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늘 위험한 환경에 직면해 왔다. 일례로, 중국 정부는 갖가지 명목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수색하고 체포한다. 그 과정에서 적그리스도가 거주하는 지역을 찾아냈을 때 적그리스도는 가장 먼저 무엇을 생각하겠느냐? 그는 교회의 사역을 타당하게 안배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그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까 하는 생각을 한다. 교회가 진압당하고 신자들이 체포될 때, 적그리스도는 뒷수습을 하는 법이 없다. 교회의 중요한 물자나 인력을 안배하지도 않고 그저 갖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며 자기만 안전한 곳에 가서 정착하면 그만이다. 그 자신의 신변 안전이 보장되면, 교회의 사역, 인원, 물자 등 배치에 기본적으로 직접 개입하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으며, 나아가 구체적으로 안배하지도 않는다. 결국 적시에 안전한 곳으로 이동되지 못한 교회 물자와 돈이 큰 붉은 용에게 대거 갈취당하고 강탈당해 교회에 크나큰 손실이 생기고, 더 많은 형제자매가 체포되는 결과가 야기된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사역에 책임을 지지 않아 생긴 일이다. 적그리스도의 마음속 깊은 곳 1순위는 자신의 개인적인 안전이다. 이는 그가 시시각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일깨우는 문제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절대 일이 생겨선 안 돼. 다른 사람 누가 잡혀가도 나는 잡히면 안 된다고. 나는 편히 살다가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얻어야 한단 말이야. 내가 잡혀가면 유다가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다 끝장이야. 종착지는 사라지고 징벌을 받게 되겠지.’ 그래서 그는 어떤 지역에 가서 사역을 할 때마다 먼저 어느 집이 가장 안전한지, 어느 집이 세력이 있는지, 어디에 머물면 정부의 수색과 체포를 피하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지 알아본다. 그다음으로는 어느 집이 매끼 고기를 먹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히터를 켤 수 있는 좋은 생활 여건을 갖추었는지 알아본다. 이 밖에도, 누가 하나님을 믿는 데 비교적 열정적이며 토대를 갖추고 있는지, 일이 터졌을 때 누가 그를 지켜줄 수 있는지 등을 알아본다. 그는 가장 먼저 이런 것들을 알아본다. 다 알아보고 자신이 머물 만한 곳을 정한 뒤에는 어느 정도 표면적인 사역을 한다. 메시지를 보내고 말로 어떤 소식이나 사역지침을 전달하는 것이다. 네가 보기에 적그리스도가 사역할 줄 아느냐?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 이렇게 세심하고 적절하게 안배하는 것을 보면, 구체적인 사역을 할 줄 알고 마음속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심보가 곱지 못하고 오직 이익만을 꾀하며 진리를 싫어하기에 설령 자신의 행동이 진리에 어긋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고집을 부리며 막무가내로 행동하려 한다. 그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후, 자신에게 일이 생기거나 위협이 닥치지 않을 거라고 판단되면 그다음으로 얼마간 표면적인 일을 한다. 적그리스도는 몹시 세밀하게 일을 처리하고 안배하지만, 그것도 대상이 누군지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의 이익과 관계된 일은 아주 주도면밀하게 처리하지만, 교회 사역이나 그의 본분 범위 안에 있는 일을 할 때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무책임한데,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자질을 논하자면, 그는 자신의 안위를 이렇게까지 완벽하고 세심하게, 또 구체적으로 고려하니 자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머리도 좀 굴러갈 것이다. 하나님 집 사역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는 적그리스도라고 불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왜 그는 적그리스도라고 불리겠느냐? 이는 그의 본질에 따라 보아야 하는데,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는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는 자기가 머무는 환경,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자신의 안전 문제는 더없이 완벽하고 구체적으로 고려하지만, 하나님 집 사역과 관계되면 사람이 180도 달라져서 매우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굴며 하나님의 뜻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다. 이런 자는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사역이나 상부의 사역지침을 대할 때는 그저 거른다. 자기가 원하거나 원치 않는 것, 자기 안위와 관계가 있거나 관계가 없는 것 등은 꼼꼼하게 따지며 거른다. 그 후 좀 쉽고 위험하지 않은 사역을 하면서 그가 놀고먹는 것만 좋아하며 본업에 힘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부에서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또 적그리스도는 사역을 안배한 후 구체적으로 사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보거나 감독하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에서는 재물이나 각종 물자를 어떻게 안배할지, 어디에 둘지, 어떻게 보관할지, 어떤 사람들에게 보관하게 할지 등에 대해 다 구체적인 원칙과 규정이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입으로 말하기만 할 뿐, 안배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환경이 적당한지 신경 쓰지 않고, 현장에 가서 살펴보는 법도 없이 입으로 몇 마디 하기만 할 뿐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집의 그 물자들이 적절하고 안전하게 안배되었는지 속으로 전혀 알지도 못하고, 물어보지도 알아보지도 않으며, 관심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적그리스도가 리더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그의 사역 범위 안에서 하나님 말씀 서적이 악인들에게 압류되기도 하고, 보관을 잘못해서 곰팡이가 슬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서적이나 물자를 보관하는 장소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이 없을 때도 있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일을 구체적으로 안배하지 않으며, 나아가 물어보거나 알아보지도 않는다. 그저 안배하면 끝이고, 몇 마디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형식만 취할 뿐 성과를 내려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태도에 충성심이 보이느냐? (보이지 않습니다.) 충성심이 보이지 않는다. 교회의 각 물자 안배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관여하는 법이 없다.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안배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겠느냐?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 그도 형식적으로 안배는 한다. 그래야 누가 상부에 그를 고발하는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인 사역을 하는 법이 없다. 구체적인 사역이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그 물건들을 어디에 놓을지, 안전할지,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쥐가 파먹지는 않을지, 물에 잠기는 일은 없을지, 도둑맞지는 않을지, 보관하는 사람이 적합한지 등에 관한 사역을 의미한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것에 관해 물어보거나 알아보거나 걱정하는 법이 없다. 그는 ‘내가 그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나한테는 소중하지 않지. 내가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전부 다른 사람 거고 하나님 집 소유니까 나랑은 무관해. 그러니 마음을 졸이지도 않을 거야. 걱정하고 싶은 사람한테 걱정하라고 해. 나는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라고 생각하며 안배를 마치면 그것으로 끝이다. 심지어 어떤 적그리스도는 아예 안배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런 사역은 잘해도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잘못해도 추궁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겨우 이 정도 일로 상부에 보고하겠어? 하나님이 이 정도 일로 나를 징벌하시겠냐고.’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대할 때 그저 형식만 따르고 대충 넘어가는 관점과 태도를 취할 뿐이다. 이런 것들이 자기 지위와 안위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관리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물건이 분실되거나 적어지거나 망가져도 그와는 무관하다.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집의 물자는 공공재에 속하니 그것들을 전혀 걱정할 필요도, 신경 쓸 필요도 없으며,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어떤 에너지도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적그리스도는 리더 자리에 있는 동안 직무를 소홀히 하고 개인의 누림만 생각할 뿐 구체적으로 사역하는 법이 없기에 하나님 집의 각종 물자가 큰 붉은 용에게 점유되고 약탈당하거나 악인에게 강점당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혹자는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 누가 그렇게 많은 것을 챙길 수 있겠습니까?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작은 문제도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라고 하는데, 이것이 작은 문제가 생긴 것이냐? 단언컨대, 사람이 책임과 충성을 다했다면 물자 손실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며, 분명 손해를 줄이고 사역 성과는 훨씬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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