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하나님 알아 가기 | 발췌문 81

2020.08.25

예수가 부활한 후 떡을 먹으며 사람에게 성경을 풀어 주다

(눅 24:30~32)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제자들이 예수께 구운 생선을 드리다

(눅 24:36~43)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이어서 위의 구절을 보자. 첫 번째 구절은 예수가 부활한 후 떡을 먹은 것과 성경을 풀어 준 것에 관한 기록이다. 두 번째 구절은 예수가 구운 생선을 먹은 것에 관한 기록이다. 이 두 구절이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겠느냐? 예수가 떡과 구운 생선을 먹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희는 어떤 장면을 연상했느냐? 예수가 너희 앞에 서서 떡을 먹는다면 너희는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혹은 예수가 너희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사람과 함께 생선과 떡을 먹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주님과 아주 가깝고 주님이 친근하게 느껴졌다면 그 느낌은 맞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부활한 후 사람들과 마주 앉아 떡과 생선을 먹음으로써 얻으려던 효과였다. 만일 예수가 부활한 후 사람과 대화만 나눠, 사람이 그의 뼈와 살을 느끼지 못하고 멀리 있어 닿을 수 없는 혼 같은 존재로 느낀다면 어떠했겠느냐? 사람이 실망하지 않았겠느냐? 사람이 실망감을 느끼면 버려진 기분이 들지 않았겠느냐? 주 예수 그리스도와 거리감을 느끼지 않았겠느냐? 그 거리감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겠느냐? 사람은 틀림없이 두려워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고, 경원시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친밀한 관계는 단절되고, 은혜시대 이전의 관계, 사람과 하늘의 하나님의 관계로 돌아가게 됐을 것이다. 사람이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영체는 하나님에 대한 친근감을 사라지게 한다.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에 거할 때 쌓아 놓은 사람과의 거리감 없는 친근한 관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영체가 두려워 피하려 들거나 말없이 바라만 볼 뿐,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지도 못할 것이다. 그를 따르고 의지하고 앙망하지 못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이렇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를 피하고 멀리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사람이 그를 알고 그에게 다가오며, 그와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예를 들어 너의 가족과 자녀가 너를 만나도 알아보지도, 다가오지도 않고 늘 너를 피할 때, 그들을 위해 네가 행한 모든 것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 너는 어떤 심정이겠느냐? 마음이 아프지 않겠느냐? 마음이 찢어질 듯 슬프지 않겠느냐?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피할 때 하나님이 느끼는 심정이다. 그래서 예수는 부활한 뒤에도 여전히 뼈와 살이 있는 형상으로 사람에게 나타났고, 사람과 함께 먹고 마셨다. 사람을 가장 가까운 존재로 여기는 하나님은 사람 역시 하나님을 가장 친한 존재로 여겨 주길 바랐다. 이렇게 해야 하나님은 진정으로 사람을 얻고,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배할 수 있다. 이제 너희는 내가 부활한 예수가 떡을 먹으며 사람에게 성경을 풀어 준 부분과 제자들이 예수에게 구운 생선을 드린 구절을 고른 이유를 알겠느냐?

예수는 부활한 후, 그야말로 각별히 마음을 쓰면서 일련의 일들을 하고 말씀을 했다. 거기에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들어 있고, 육신에 거하던 기간에 사람과 쌓은 친밀한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세심한 보호도 담겨 있다. 그리고 육신에 거하던 기간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과 함께했던 생활에 대한 그리움과 기대도 녹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그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것을 원치 않았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더구나 사람이 부활한 예수는 영계로, 사람이 영원히 볼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서 더 이상 사람에게 친근했던 주님이 아니고, 더 이상 사람과 함께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치도 않았다. 그는 사람에게 지위의 차이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를 따르고 싶어 하면서도 경원시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이는 사람의 마음이 그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그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몹시 어려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체로 나타난다면, 또 한 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가 생길 터였다. 더군다나 사람은 부활한 그리스도가 너무 높고 큰 존재이고 자신들과 같은 부류가 아니므로 더 이상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은 죄가 있고 더러우니 영원히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없다고 오해할 터였다. 사람의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해 예수는 육신에 거할 때 늘 했던 일들을 행했다. 예를 들면,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라는 성경 기록과 같은 것을 말이다. 또한,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기도 했다. 예수가 행한 이 모든 것을 본 사람들은 주님이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원래의 예수라고 느꼈다. 비록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부활했고, 사람을 떠나지 않고 다시 돌아왔으며, 그의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았다고 느낀 것이다. 사람들 눈앞에 서 있는 인자는 여전히 원래의 예수였다. 그의 행동과 말씀은 사람에게 참으로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는 변함없이 자비와 은혜와 포용으로 충만했으며, 여전히 사람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는 예수였다. 그는 예전처럼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었고, 함께 성경을 얘기하기도 했으며, 더 중요한 것은 예전처럼 피와 살이 있어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있었다. 사람은 이러한 인자를 아주 친근하고 편하게 느꼈고, 잃었다가 다시 찾은 기쁨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사람은 자신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인자를 마음 놓고 의지하고, 확신에 차서 앙망하기 시작했으며, 망설임 없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은혜와 축복,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그리고 그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기 위해 기도했으며,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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