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하나님 알아 가기 | 발췌문 18
2020.07.26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작이다
방금 누가 “저희는 하나님에 대해 욥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데 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까요?”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선 전에도 살짝 언급한 적이 있다. 그렇지? 사실 우리는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도 얘기했었다. 당시 욥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했고, 하나님을 천지 만물의 주재자로 여겼다. 그는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지 않았고 창조주로 여겨 경배했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은 왜 하나님을 이렇게도 대적할까? 왜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할까? 첫 번째 원인은, 지금의 사람은 사탄에 의해 심히 패괴되었고, 사탄의 본성이 깊이 뿌리박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맞서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으로 결정된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는 있지만 하나님을 전혀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사람의 대립 상대로 여기고 사람의 원수로 여기면서 하나님과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이처럼 간단하다. 이것도 조금 전 교제할 때 언급하지 않았느냐?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이 원인이 맞지 않으냐? 설령 네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좀 있을지라도 너의 인식은 어떤 것이냐? 모두들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나님이 알려 준 것 아니냐? 너는 고작 이런 것과 관련된 이론과 도리만 알 뿐이다. 하나님의 진실한 일면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느냐? 주관적인 인식을 갖고 있느냐? 실제적인 인식과 체험이 있느냐? 하나님이 알려 주지 않는다면 알 수 있겠느냐? 이론을 알았다고 해서 진실한 인식을 갖추고 있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결론적으로 네가 어떻게 알게 되었든, 얼마나 알고 있든 하나님을 진실하게 알기 전까진 하나님은 너의 원수인 것이다. 또한 네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기 전까진 하나님은 여전히 너와 대립되는 지점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사탄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네가 그리스도와 함께할 때 너는 아마 하루 세끼 시중들며, 차를 대접하고 물을 떠다 드리며, 그의 생활을 돌볼 것이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 같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이 생기면 사람의 관점은 늘 하나님과 어긋나고, 사람은 늘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 겉으로는 그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그와 마음이 잘 맞음을 뜻하진 않는다. 일단 일이 생기면 사람은 거역하는 본색을 드러낸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대치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렇게 대치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과 대립하는 것도, 하나님이 사람을 적대시하는 것도,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과 대립되는 지점에 놓고 대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주관적인 의지와 잠재의식 속에 하나님과 대립되는 이런 본질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을 대하거나 하나님과 관련된 것을 대할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추측과 의심이다. 그런 다음 사람은 재빨리 저항하는 태도를 취하여 하나님과 대립할 것이다. 이어서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하나님을 ‘논박’하거나 하나님과 겨루려 들 것이다. 심지어 이런 하나님을 따를 가치가 있는지 의심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이 선택을 끝까지 고수할 것이다. 가령 하나님에 관한 어떤 유언비어나 비방을 들었을 때 사람의 첫 번째 반응은 무엇일까? ‘그 유언비어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르니 조용히 지켜봐야지.’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런 다음 ‘이 일이 정말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네. 이 유언비어는 진짜일까?’라고 생각해 본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런 태도도 취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이미 의심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부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태도와 관점은 어떤 본질을 지니고 있느냐? 배반이 아니냐? 이 일이 닥치기 전까진 그 사람의 관점이 보이지 않으니 그는 하나님과 대립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그 사람은 즉시 사탄의 편에 서서 하나님과 대립한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느냐? 사람은 하나님에게 대립적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이 사람을 원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질 자체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따른 시간이 얼마나 오래되었든, 지불한 대가가 얼마나 되었든,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억제하든, 심지어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할지라도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못한다. 이것은 사람의 본질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냐? 네가 그를 하나님으로 대하고 정말 하나님으로 여긴다면 그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 있겠느냐? 마음속에 그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겠지? 이 세상의 풍조가 이렇게 사악하고, 이 인류가 이렇게 사악한데 너는 왜 그들에 대해서는 관념을 가지지 않는 것이냐? 너 스스로가 그렇게 나쁜데 왜 관념을 가지지 않느냐? 몇 마디 유언비어나 비방으로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큰 관념과 그렇게 많은 생각을 갖는데, 너의 분량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모기나 역겨운 파리 몇 마리가 ‘앵앵거렸을’ 뿐인데 미혹되었단 말이냐?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느냐? 사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아주 분명하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차갑게 무시해 버린다. 아예 상대하지 않는다. 이 무지한 자들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는 그를 필사적으로 적대하려고 하고, 그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얻을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또 일부에게 상처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너희는 내가 계속 이렇게 너희에게 상처 주는 것을 원하느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쨌든 내 말은 사실이다! 내가 계속 이렇게 너희에게 상처를 주고 늘 너희의 흉터를 들춰내면 너희 마음속에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이미지에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애초에 너희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가 마음속으로 애써 지키고 보호하는 위대한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해 낸 것으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밝히는 편이 좋겠다. 그러면 ‘진상이 환히 드러나지’ 않겠느냐? 참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해 낼 수 있는 분이 아니니 너희 모두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그래야 너희가 하나님을 알아 가는 데에 유익하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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