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이름의 비밀을 깨닫고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다
저는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철든 아이였습니다. 부모님도 친척 친구들도 모두 저를 매우 귀여워해 주었지요. 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과 친절하고 살가운 성격으로 인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고등학교 입시에서 0.5점 차로 제1 여자고등학교에서 떨어지고 제2 여자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지요. 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방에 처박힌 채 이틀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에서 겪은 첫 번째 좌절이었기에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너무도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입학 후, 저는 의기소침한 상태로 신입생 설명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설명회 기간에 한 선배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후 계속 예배를 드리고 형제자매들의 체험을 들으면서 주님의 은혜는 참으로 신실하여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고 간구하면 주님의 보호와 보살핌을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요. 그렇게 제 마음은 평안을 얻었습니다. 우울하고 의기소침했던 성격도 조금씩 명랑해지고 적극적으로 변했지요. 저는 고2 때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성경의 진리를 더 많이 알고 싶어 기독교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교 1학년 때는 특별히 목사님이 강의하는 ‘종교 개론’ 수업도 들었습니다. 하루는 수업 중에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일무이한 구세주시자 신실하고 믿음직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언제 어느 때나 변하지 않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저는 오직 예수님의 구원이 있어야만 죄악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를 인도한 선배는 평소에 늘 기쁨과 믿음으로 충만했는데, 저는 그것이 바로 주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얻은 생명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수업이 끝난 후, 저는 예수님을 따르며 온 힘을 다해 섬김 사역을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남는 시간에 적극적으로 교류 모임, 성경 모임, 복음 모임에 참여하고 모든 설교와 예배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목회자들의 설교가 늘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거기에서는 새로운 빛을 찾아볼 수 없었고, 우리 신자들은 영적인 공급을 조금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연약함에 빠져 예배에 오지 않는 형제자매가 있어도 아무도 도와주거나 붙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졸면서 설교를 듣는 사람도 있었고, 예배가 끝나면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물건을 팔거나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또 선거 후보자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저는 속으로 ‘주님을 믿으면서 영적인 생명 성장은 추구하지 않고, 사적인 이익만을 바란다면 그런 사람을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목회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제지하지 않았어. 이게 주님의 뜻과 요구에 맞는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의 이런 모습은 제게 분노와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공급을 받지 못한 저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연약해졌습니다. 게다가 일이 너무 많아 주말에도 수시로 추가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예배도 드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성경을 읽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뿐이었지요. 희망도 목표도 없다는 생각에 제 마음은 아득하고 무기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6년 10월, 저는 인터넷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왕 형제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김 형제님을 비롯한 다른 몇 명의 형제자매들도 알게 되었고요. 김 형제님의 교제로 저는 그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성육신과 관련된 진리를 매우 실질적이고 분명하게 교제해 주었고, 그로 인해 저는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주님을 믿고 성경을 연구하며 영적인 인물이나 목회자들의 설교를 들었지만, 여태까지 이 부분의 진리를 이렇게 분명히 교제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 영은 공급을 얻었고, 동시에 찾고 구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후, 저는 자주 그들과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번은 예배 때 김 형제님이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철저히 구원하시기 위해 6천 년 경륜을 펼치셨습니다. 그 경륜은 총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님은 시대마다 한 단계씩 새로운 사역을 하셨지요. 하나님의 이름 또한 사역이 달라질 때마다 바뀌었고요. 예를 들어 율법시대에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사역하시면서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을 전개하셨을 때, 하나님은 더 이상 ‘여호와’가 아니라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리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말세에 이르러 하나님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기초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은혜시대가 끝나고 하나님나라시대가 열리면서 하나님의 이름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바뀌었고요.” 하나님의 이름이 바뀐다는 말을 들으며 저는 ‘성경에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고 나와 있는데. 내가 믿는 예수님은 유일한 참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의 이름은 영원히 변하지 않아.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이름이 바뀐다고 말하는 걸까? 만약 기도할 때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짖지 않고 다른 이름을 부른다면 그게 어떻게 성경에 부합하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형제님의 교제는 제 이런 생각에 대한 도전이었지요. 그는 비유를 하며 설명했습니다. “무전 자매님, 회사에서 자매님한테 1년 동안 기획부장을 시키고 그다음 1년은 경영부장을 시킨다고 생각해 보세요. 업무에 따라 자매님의 직함도 기획부장, 경영부장 하는 식으로 달라지잖아요? 사람들도 그에 맞춰 자매님을 ‘기획부장님’ 또는 ‘경영부장님’이라고 부를 테고요. 명칭도 직위도 다르지만 자매님이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죠. 자매님은 여전히 자매님인 거잖아요?” 저는 “맞아요.”라고 대답하고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변하지 않아.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나는 당신들의 말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 어쨌든 그냥 신경 안 쓰면 그만이지 뭐.’ 예배가 끝난 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하나씩 차단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를 차단한 다음 날의 일이었습니다. 저녁 8시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벨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처음 보는 여자 두 명이 서 있었고, 그중 한 명이 제게 무슨 종이를 건네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예의를 차렸지만, 종이 위에 크게 쓰여 있는 ‘그리스도의 재림 ─ 예수님은 이미 구름을 타고 돌아오셨다’라는 글씨를 보자 그들이 복음을 전하러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렸습니다. 당시 저는 예수님의 이름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매님들에게 반감이 생겨 그 종이를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요. 떠나기 전, 한 자매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자매님, 종이를 돌려주신 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교파가 달라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인가요? 혹시 진리를 자세히 알아보고 구해 본 적은 있으세요?” 하지만 무슨 말을 하든 저는 더 이상 그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설거지를 하면서도 귓가에 계속 “진리를 자세히 알아보고 구해 본 적은 있으세요?”라는 말이 맴돌았습니다. ‘맞아. 나는 확실히 진리를 자세히 알아보거나 구해 본 적이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왕 형제님을 비롯한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교제해 준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달랐지만, 저는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진리를 사모하며 구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고, 제가 무장한 성경 지식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들의 교제가 제 뜻에 맞으면 받아들이고, 맞지 않으면 구하지도 상대하지도 않는 식이었지요. 그제서야 저는 제 머릿속에 있는 성경 지식 때문에 순수한 마음을 잃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늘 독선적인 태도로 진리를 대하고 있었지요. 그런 제가 어떻게 진심으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마음을 가라앉힌 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자주 교제해 주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고 싶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무엇이 진리인지 알아야 해요.” ‘그들의 교제는 성경 말씀에 부합하는구나. 슬기로운 처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지. 은혜시대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 아니겠어? 하나님의 음성인 걸 알아듣고 주님을 따른 거잖아.’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급히 성경을 펼쳐 계시록 3장 20~22절의 내용을 보았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저는 이 구절을 자세히 묵상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이 발하시는 음성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하셨어. 지금 나는 감사하게도 주님이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 갈 기회를 얻었는데도 왜 스스로의 관념에 묶여 이해가 안 되고 내 관념과 맞지 않는다고 귀를 막는 거지? 하나님의 이름이 바뀐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면 찾고 알아보고 이해한 다음에 결정해도 되는 거잖아!’ 저는 다시 마태복음 7장 7절 말씀을 보았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만약 정말로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리시는데, 제가 관념에 눈멀고 귀 멀어 장님, 귀머거리가 된 채 그분을 문전 박대해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잃는다면 너무도 가련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날 밤, 저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녁에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았지요. ‘이곳에서 18년을 살았지만, 복음을 전하러 온 사람들은 처음 만나 봤어. 게다가 그 자매님은 내게 진리를 자세히 알아보고 구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지. 설마 주께서 복음을 전하는 그 두 자매님을 내게 보내 주신 걸까? 게다가 내가 그렇게 복음을 거부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성경에서 답을 찾으려고 할 때, 하나님은 내게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리는 성경 구절을 보여 주셨어. 내가 잘못한 걸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 돌아오신 예수님인 걸까?’ 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주님께 기도하며 저를 인도하고 깨우쳐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컴퓨터를 켜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공식 홈페이지 ─ 하나님나라 강림 복음 사이트에 들어가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된 말씀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뀌었겠느냐?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왔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이 왜 바뀌게 되었느냐? 이는 이미 했던 사역이 아니냐? 그런데 하나님이 오늘날 새로운 사역을 하면 안 된단 말이냐? 과거의 사역도 바뀌었다. 여호와의 사역은 예수가 이어 갔건만, 예수의 사역은 또 다른 사역으로 이어질 수 없겠느냐?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뀔 수 있으면 예수의 이름도 바뀔 수 있지 않겠느냐?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머리가 너무 단순한 탓에 그렇게 느낄 뿐이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그의 사역이 어떻게 변하든, 그의 이름이 어떻게 변하든, 그의 성품과 지혜는 영원히 변치 않는다. 하나님은 반드시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네 식견이 너무 부족한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중에서)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시며, 사역의 필요로 서로 다른 이름을 취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끄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하실 때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 문제를 이토록 분명히 밝혀 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진리를 선포하신 게 아니라면 또 누가 이러한 비밀들을 밝힐 수 있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는 것이 제 생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찾거나 알아보기를 거부했습니다.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 돌아오신 예수님이고, 그분이 한 번, 또 한 번 문을 두드리시는데 제가 마음의 문을 닫아 나중에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기회를 놓친다면 그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후, 저는 차단했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다시 추가해 그날 밤에 겪은 일을 털어놓았습니다. 예배 때, 형제자매들은 제게 성경 말씀 한 구절을 교제해 주었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마 18:12) 형제자매들은 제가 바로 길 잃은 양이라며, 하나님이 저를 찾아 하나님 앞으로 다시 데려오신 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길을 잃었을 때 하나님은 제가 다시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총이었지요. 저를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때, 시링(惜玲) 자매님이 말했습니다. “무전 자매님, 왜 갑자기 형제자매들을 차단하셨나요? 이해되지 않는 진리가 있어서 그러신 거죠?”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고 나와 있잖아요.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신다는 거죠. 말세에 주님이 돌아오실 때도 예수라고 불리실 테고요. 그 이름은 바뀌지 않아요. 그런데 김 형제님은 말세에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취하셨다고 교제해 주셨지요.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저는 세례를 받은 후로 늘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왔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다른 이름을 부를 수 있겠어요?” 제가 말을 마치자 시링 자매님이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이 영원불변함을 뜻한다. 그의 이름과 사역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며, 이 사실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다. 너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의 6천 년 경륜이 끝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이 또한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그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할 수 있었겠느냐? 그가 영원불변하다면 왜 두 시대의 사역을 했겠느냐? …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다’는 말은 그의 사역을 두고 한 것이고,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는 말은 그의 고유한 소유와 어떠함을 두고 한 것이다. 어찌 됐든 너는 6천 년 사역을 어느 한곳에 고정해 두거나 케케묵은 말에 묶어 놓아서는 안 된다. 이는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의 사역은 한 시대에 머물 수 없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사역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 이상 3> 중에서)
그녀는 계속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가리킨 것이지,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우시죠. 그분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그분의 이름 또한 그분의 사역에 따라 계속 달라져요.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뀌든 하나님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세요. 그런데 우리는 ‘영원불변’이라는 말이 실제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고, 나아가 하나님의 사역이 언제나 새롭다는 것 또한 모르면서 관념과 상상으로 너무 쉽게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대적해요. 지난날 바리새인들이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다. 여호와 이외에 구주는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요.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사역하시자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이 바뀐 것을 보고, 또 그 이름이 예언에 나온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부정했지요. 나아가 미친 듯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다가 결국에는 로마 정부와 연합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대역무도한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됐어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성경만을 고집하며 예수님의 이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우기면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부정한다면, 우리 역시 바리새인들처럼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닐까요?”
이어서 자매님은 또 제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 사역을 하고 새 이름으로 불린다. 시대가 다른데 어찌 같은 사역을 행하겠느냐? 그가 어찌 낡은 것을 지키겠느냐? ‘예수’란 구속 사역을 위해 취한 이름인데, 말세에 재림해서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느냐? 또다시 구속 사역을 하겠느냐?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도 왜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겠느냐? 사역한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더냐?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그렇기에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고, 이름으로 시대를 대변한다. 어떤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하게 대변할 수는 없으며, 시대성을 띤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만 나타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적합한 이름 하나를 택해 한 시대 전체를 대변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 이상 3> 중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를 지닌 예수라는 이 이름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해 전부 설명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예수라고만 불려야 하고 더 이상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말이야말로 모독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의 ‘예수’라는 이름 하나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많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중에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의 전부를 개괄할 수 없고,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이 많은 이름조차도 그의 모든 성품을 전부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너무나 많아서 사람이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특정한 단어 하나와 특정한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고정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그처럼 위대하고 거룩한데, 너는 그가 시대에 따라 이름을 바꾸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대마다 친히 사역할 때, 시대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지닌 특정한 이름으로 그의 해당 시대의 성품을 대변한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인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 이상 3> 중에서)
시링 자매님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의 계획 중 한 부분의 사역만을 행하시고 한 부분의 성품만을 선포하세요. 하나님이 취하시는 이름도 해당 시대에 하나님이 선포하신 성품과 행하신 사역만을 대표하지요. 예를 들어, 율법시대의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그 시대에 행하신 사역과 선포하신 위엄, 진노, 긍휼, 저주의 성품을 대표해요.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지요. 그로 인해 사람의 행위는 날로 규범을 갖추었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율법시대 후기, 사람들은 사탄에 의해 점점 더 깊이 패괴되어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못했고, 정죄되고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게 됐어요. 그러자 하나님은 사람을 율법 아래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행하셨지요. 그렇게 은혜시대를 열고 율법시대를 끝마치셨으며, 사랑과 긍휼의 성품을 선포하고 회개의 말씀을 전하셨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요. 그로 인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은 죄 사함을 받게 되었지요. 이를 통해 하나님이 각 시대에 취하시는 이름에는 다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한 가지 이름은 하나님의 한 부분 사역과 성품만을 대표할 뿐,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하지는 못해요. 은혜시대에 오신 주님이 예수가 아닌 여호와라고 불리셨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율법시대에 머물러 있었을 거예요. 그럼 패괴된 인류는 주님의 구속을 얻지 못하고 율법과 계명을 거슬러 정죄되고 처형당했겠지요. 마찬가지로 말세에 돌아오신 주님이 계속 예수로 불리신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은혜시대에 머물러 있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죄 사함만 받을 뿐, 여전히 죄를 짓고 죄를 자백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겠지요. 죄의 결박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지도 못할 테고요.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철저히 죄의 결박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도록 또 한 번 육신을 입고 말씀을 선포하심으로써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신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나라시대를 열고 은혜시대를 끝마치셨지요.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바뀌었고요. 이는 계시록 1장 8절에 예언한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거예요.”
형제자매들의 교제를 통해 저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는 말씀이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본질을 가리킨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이 율법시대, 은혜시대, 하나님나라시대의 세 시대로 나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행하실 때마다 새 이름을 취하시며, 그 이름으로 그 시대의 사역과 성품을 대표하고, 시대를 바꾸십니다. 하나님이 각 시대에 취하시는 이름에는 매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만약 제 생각대로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돌아오신 주님도 계속 예수로 불린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지 않겠습니까?
예배가 끝난 뒤 저는 다시 계시록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이 말씀들을 보며 저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예전에도 이 구절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왜 그때는 몰랐을까? 여기 분명히 말세에 돌아오신 주님은 예수가 아니라 새 이름, ‘전능자’라는 이름을 취하실 거라고 나와 있잖아. 그런데 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는 구절만을 고집하며 예수님의 이름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다른 구절은 찾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거부하고 대적했어. 정말이지 너무도 어리석었구나!’ 형제자매들의 교제, 그리고 하나님 이름과 관련된 성경의 예언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이 말세에 새 이름을 취하셨다는 것에 더 이상 의혹을 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예배를 드릴 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나는 여호와라고 칭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야로 불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 구주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예전에 알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와 시대를 끝내는 하나님이자 나의 모든 성품과 권병, 존귀, 영광을 가득 지니고 땅끝에서 나타난(원문: 興起)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도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이가 바로 말세에 사람들 앞에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는 사람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마치 뜨거운 해 같고 불꽃 같으며,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다. 세상의 온갖 것이 나의 말에 심판받고, 불사름 속에서 정결케 될 것이다. 최후에 만국은 반드시 나의 말로 말미암아 복을 받기도 하고 산산이 부서지기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말세의 모든 사람은 내가 바로 돌아온 구세주이고, 온 인류를 정복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된 적이 있지만, 말세에는 또 만물을 불사르는 뜨거운 해와 같은 불꽃이자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태양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세에 행하는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택하고 이런 성품을 지닌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이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뜨거운 해이자 불꽃임을 알게 하고, 유일한 참하나님인 나를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도 아니고 구속주만도 아니라, 천지와 바닷속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인 내 본래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시링 자매님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나라시대의 말씀 심판 사역을 행하시고, 인류에게 공의와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의 성품을 나타내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은 우리가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다는 사실과 진상,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드러내는 한편, 우리의 패역과 불의를 심판하지요. 또 우리에게 성품 변화의 길과 방향을 가리켜 주었고요. 우리가 매사에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로 스스로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며,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하기만 하면 조금씩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땅에서 하시는 사역이 끝날 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정결케 되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누리게 될 겁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거부하는 것으로 모자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고 비방하고 모독한 사람들은 모두 마지막 대재난 가운데 떨어져 하나님께 징벌받고 파멸되죠. 그래서 하나님은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취하신 거예요. 공의와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의 성품을 전 인류에게 나타내고 사람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기 위해서요. 또 하나님은 이 사악한 시대를 끝내고 6천 년 인류 구원 경륜의 모든 사역을 완성하세요. 우리에게 그분이 만유를 창조하고 주재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실 수도 있다는 것을, 나아가 사람을 온전케 하고 변화시키고 정결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거죠. 그분은 처음과 나중이세요.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취하신 데에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 성령 역사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의 사역만을 수호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령 역사를 얻고 생명수의 공급을 받을 수 있어요. 지금 은혜시대의 교회들에는 황량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요. 신자들의 믿음이 식어지고, 설교자는 설교할 말이 없으며, 기도해도 감동이 없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세태의 흐름에 이끌리지요…. 그 근원은 하나님이 새 사역을 하시고 성령 역사가 이미 은혜시대의 교회에서 하나님나라시대의 교회로 옮겨 갔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지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면 생명수의 공급을 얻지 못하고 어둠 속에 떨어져 길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자매님의 교제를 들으면서 저는 하나님이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의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말세에 행하시는 심판 사역과 선포하신 성품을 알게 됐지요. 이는 우리가 죄의 결박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구원받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예배하고 설교를 들어도 공급을 얻지 못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믿음은 약해졌고, 설교자도 마땅히 설교할 말이 없었지요. 이제 보니 그건 다 성령 역사가 옮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성령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사역만을 수호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새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않으면 어둠 속에 떨어지게 되지요. 그때,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돌아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은 또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분별하는 법, 성령 역사와 사탄 역사를 분별하는 법 등의 진리를 교제해 주었는데,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매번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하고 복음 영화와 동영상을 볼 때마다 제 영 안은 가득 채워졌고,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평안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제가 여태까지 주님을 믿으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의문들을 풀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삶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들까지 해결해 주었습니다. 저는 처음 주님을 믿을 때의 믿음을 되찾을 수 있었지요. 저는 하나님께 택함 받아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게 된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저는 매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밝아져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신하게 되지요. 또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확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여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정식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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