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노예에서 깨어나다
어렸을 적 저희 집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부모님은 제 학비를 대줄 형편이 못 되셨는지라 저는 직접 엮은 울타리를 팔아 학비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한번은 농사일을 하다 새끼손가락을 다쳤는데 돈이 없어 치료를 못 한 탓에 지금까지도 새끼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습니다. 결혼 후에도 가난한 건 똑같았습니다. 친척과 친구들은 가난한 우리 부부를 깔보며 멀리했습니다. 주변의 돈 있는 사람들이 호의호식하며 남들의 존중과 아첨을 받고 사는 걸 볼 때마다 무척 부러웠던 저는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절대 안 된다.”, “돈만 있으면 종놈도 상전 노릇 한다.”라는 말을 더 믿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 말들이 참으로 옳다고 여겼습니다. 돈만 있으면 호의호식하며 남들의 존중과 부러움을 받을 수 있으니 돈은 정말로 중요해 보였습니다. 저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 반드시 이 가난에서 벗어나 풍족하게 살리라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저와 남편은 한 중학교의 교내 식당 운영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루 수백 명이 식사하는 식당이었지만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직원은 한 명만 두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새벽 4시부터 일을 시작해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쉴 수 있었습니다. 독감에 걸렸을 때도 일을 쉬지 않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온갖 농사일까지 했습니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농번기 때는 밤에 시간을 늘려서 파종과 수확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밤낮없이 일해서인지 자주 의식이 몽롱해졌고 채소를 썰며 조는 바람에 칼에 손가락을 베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베인 자리가 물이나 소금에 닿으면 너무 쓰라렸습니다. 비록 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점점 늘어나는 수입을 볼 때마다 무척 기뻤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그럴 가치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잘 먹고 잘사는 주변의 부유한 사람을 볼 때마다 저는 돈만 생각하자며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다 보면 언젠가 저도 잘살게 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찬물에 손을 담그며 일하다 보니 심각한 류마티스 관절염이 와서 크고 작은 관절들이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오랜 기간 피로가 쌓여 디스크까지 왔고 그게 또 골화과잉증에 좌골신경통까지 일으켰습니다. 의사는 수술하고 석 달은 입원해 있으라 했지만, 입원을 하면 돈을 벌 수가 없는지라 그 자리에서 거절했습니다. 석 달이 아니라 사흘도 안 될 소리였습니다. 그렇게 전 계속해서 밤낮없이 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랜 기간 불규칙한 식사와 수면 부족으로 위하수, 위장염까지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론 자궁근종에 자궁 탈출, 심장병, 심근염, 중증 빈혈까지, 온갖 병이 잇달아 저를 찾아왔습니다. 참을 수 없는 병마의 고통에 밤에는 잠을 이를 수 없었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설마 사람은 평생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건가?’ 저는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이 현실적인 사회에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쓰러지지 않는 이상은 돈을 벌어야 해.’ 그렇게 저는 계속해서 돈을 좇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검진받았다가 두 가지 종류의 암에 걸렸단 판정을 받았습니다. 초기 폐암과 유방암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저는 침상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 후로 치료를 위해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느라 모아둔 돈은 거의 다 써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병은 차도가 없었고 항암 치료 부작용 때문에 온몸이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매일 모두가 잠든 밤이면 침대에 누워 절망에 빠진 채 창밖만 바라봤습니다. 돈을 벌려고 반평생을 아등바등 살았는데 부자가 되긴커녕 병만 잔뜩 얻어 삶에 고통만 가득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고 다시는 예전처럼 기를 쓰고 돈을 벌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돈을 목숨처럼 아꼈습니다. “살아 있는 한 돈은 계속 벌어야 해!” 남편의 매정한 말은 저를 고통스럽고 절망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전 아직 사십 대이고 지금껏 행복하게 살아본 적도 없고 아들 장가가는 것도 못 봤는데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뭘 가지고 치료를 받겠습니까? 결국 살려면 계속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전 약을 먹으며 계속 일을 했습니다.
1년 후, 남편은 남는 돈으로 연탄 공장을 열었고 그다음 해엔 기름집도 열었습니다. 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두 사업장을 오가며 온갖 잡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고생한 끝에 돈을 좀 쥐게 된 우리 부부는 도시에 집과 차를 마련하고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변 지인들도 우리를 부러워하고 비위를 맞추려 들었습니다. 역시 돈이 있으면 신분과 지위가 달라진다 싶어 흐뭇한 기분이 들었고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날은 길지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과도한 노동을 해온 탓에 제 몸은 철저히 망가져 버렸습니다. “환자분의 병세는 너무 복잡하네요. 온몸에 멀쩡한 장기가 하나도 없어요. 저희로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의사의 말은 저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전 그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난 이제 집에 가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나? 돈도 생겼고 물질적으로도 풍족해졌지만, 인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 목숨을 구하지 못하는데! 병 때문에 사는 게 너무나 고통스러워. 이제 난 어떡해야 하지?’ 저는 저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하느님! 저 좀 살려 주세요!”
그렇게 제가 심한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 친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육신을 입고 인간 세상에 오셔서 사람을 구원하시고, 진리를 선포해 인생의 비밀을 밝히셨어. 세상이 악하고 어두운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사람의 삶이 왜 이렇게 공허하고 고통스러운지, 그 근원은 어디 있는지, 병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지, 사람의 운명은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지, 사람은 살면서 무엇을 추구해야 의미가 있는지 등등, 여러 비밀들을 말이야.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많이 보면서 진리를 깨달아 이런 일들을 꿰뚫어 보게 되면, 마음이 더는 이렇게 괴롭지 않을 거야.” 친구는 그러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읽어 주었습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생로병사의 고통은 어디서 오느냐? 사람은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 사람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그런 고통이 없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고통은 어디서 비롯되었겠느냐? 사람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육이 타락한 뒤 그러한 고통이 생겼다. 육의 고통, 육의 번뇌와 공허, 그리고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온갖 참혹한 일들은 모두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에 생겨났다.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이후로 사탄은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람은 점점 타락하고, 병이 점점 깊어지고, 고통도 점점 커져 갔다. 인간 세상의 공허와 비참함을 더욱 실감하면서 인간 세상에서 생존할 수 없어지고, 희망이라곤 찾을 수가 없어졌다. 그러므로 사람의 고통은 사탄이 준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이 인간 세상의 고통을 경험하는 의의> 중에서)
말씀을 다 읽은 친구는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만드셨을 때,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죽음과 병을 모른 채 근심과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았어. 하지만 인류는 사탄에게 유혹당하고 패괴되어 하나님을 배신했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잃고 말았지. 사람은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고 있어. 명예와 지위, 그리고 돈을 위해 서로 속이고, 다투고, 죽이고 있지. 거기서 병의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 슬픔들이 비롯되는 거야. 그런 고통과 번뇌들 때문에 사람은 모두 이 세상에서의 삶이 고통스럽고, 지치고, 고달프다고 여겨. 이게 다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킨 후 생겨난 것들이야. 사탄이 우릴 이렇게 해친 거지. 하나님께서는 우릴 구원하기 위해 직접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정결케 되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모든 진리를 선포하셨어.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잘 보고 그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게 되고 결국 패괴함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구원받아 아름다운 종착지로 들어가게 돼.” 그 말을 들으니 희망이 보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선 저를 고통에서 구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알아보겠다 답했습니다. 친구는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책을 제게 주었고 그 뒤로 전 매일 그 말씀을 보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묵상 시간에 하나님 말씀 낭송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배경이나 앞으로의 여정이 어떻든 하늘의 지배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이 같은 일은 오직 한 분, 즉 만물을 주재하는 이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류가 생겨난 후로 계속 이 일을 해 왔으며, 이 우주를 경영하고 만물의 변화 법칙과 운행 궤도를 다스려 왔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분을 공급받는다. 또한,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지배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으며,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모든 존재는 생명이 있든 없든 전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로워지며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중에서) 이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 모든 것을 주재하고 다스리십니다. 또한 전 인류를 공급하시고 키우십니다. 사람의 운명과 생사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정해져 있지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전 하나님의 주재를 몰랐기에 지금껏 줄곧 제 능력에 의지해 운명을 바꿔 부자가 되려고 애썼습니다. 결국 부를 얻긴 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고통은 물론, 몸도 철저히 망가져 버렸습니다. 그제야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한 채 야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운명에 맞서면 결국 얻는 건 고통과 허무뿐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 의지처는 오직 하나님뿐이란 걸 깨달은 저는 기도하며 제 병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제가 죽든지 살든지 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자주 교회 생활에 참여하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하나님 말씀을 보며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중시하고,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을 흡족게 해드리려 노력하는 걸 보니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저는 예전의 생존 방식에 이별을 고하고 새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예배와 본분 이행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길을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후 나라에서 도로 공사를 하게 되면서 기름집이 있던 부지가 토지 수용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두 사업장을 오갈 필요가 없어진 저는 더 많은 시간을 예배와 하나님 말씀 교제, 묵상에 쓸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가까이할 기회도 늘어나 매일을 참 충실하게 보냈습니다. 그러고 얼마 후, 제 병세는 눈에 띄게 호전되었습니다. 활력이 돌면서 몸에 기운이 나기 시작했고 가볍고 자유로워진 기분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가득 찼습니다.
이후 저는 또 하나님 말씀 낭송 영상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라는 말은 사탄의 철학으로, 인류에게서, 그리고 모든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주입되어 자리 잡고 있으므로 풍조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도 실생활에서 이 말을 접했을 때 차츰 묵인하게 되고 이 말이 사실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과정 아니겠느냐? … 그럼 사탄이 이런 풍조를 통해 사람을 패괴시킨 것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느냐? 너희는 돈 없이는 이 세상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질수록 높은 지위를 누리고 존귀해진다. 기를 펴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과 달리 부자는 높은 지위를 누리고 거만을 떨며 큰소리를 치면서 오만 방자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 말과 이런 풍조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 많은 사람이 돈을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지 않겠느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존엄성과 인격을 포기하지 않겠느냐? 더 나아가 수많은 사람이 돈 때문에 본분을 이행할 기회와 하나님을 따를 기회를 놓치지 않겠느냐? 이는 사람에게 손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탄은 이런 방식, 이런 말로 사람을 이 정도로 패괴시켰다. 사탄의 속셈이 음흉하지 않으냐? 이는 아주 악랄한 수법이 아니더냐?』(<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수십 년간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던 건 사탄의 패괴와 사회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류를 좇아 돈을 숭배하게 됐던 것입니다. 어렸을 적 가난 때문에 무시 받고 소외되기 일쑤였던 저는 호의호식하며 남들의 존중과 아첨을 받는 부자들을 보면서 이 세상은 돈이 없으면 안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돈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절대 안 된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종놈도 상전 노릇 한다.”, “돈이 최고다.”,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 등 이런 사탄의 그릇된 논리가 제 마음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제 생각을 지배했습니다. 전 돈만 있으면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남들의 부러움과 존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돈을 유일한 목표로 설정해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해 살았습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지칠 대로 지쳐 여기저기 병이 생기고, 몸이 견디지 못해도 언젠가는 부자가 돼 떵떵거리며 잘 살날만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심지어 암에 걸렸을 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돈이 있어야 병을 고치고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여겨 계속해서 돈을 벌기 위해 죽어라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사탄과 돈에 옴짝달싹 못 하게 걸려들어서 철저히 돈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돈을 벌어 집과 차를 마련하고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중을 받게 되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온몸이 아픈 데다 암까지 얻고 말았습니다. 손에 쥔 돈은 제 몸의 고통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했고 절 살릴 수도 없었습니다. 전 너무나 괴롭고 절망스러웠습니다. 그제야 아무리 돈이 있어도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에는 목숨으로 돈을 바꾸었다면 이젠 돈으로 목숨을 사야만 했습니다. 줄곧 돈을 위해 살았지만 결국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제야 돈을 추구하는 것은 인생의 바른길이 아님이 확실히 보였습니다. 돈은 사탄이 사람을 해치고 패괴시키는 수단이자, 사탄이 사람의 목에 씌워 둔 멍에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가 없었다면 전 지금도 사탄이 돈을 이용해서 사람을 옭아매고, 조종하고, 해치려는 음험한 속셈을 꿰뚫어 보지 못했을 겁니다. 여전히 계속 사탄한테 끌려다니면서 농락당하며 해를 입고 있었을 겁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면 그저 시류에 따라 돈을 목숨처럼 여길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참으로 가련한 인생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사탄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구원 덕분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그 후, 남편이 입고 때문에 자리를 비우면, 제가 공장 일을 처리하고 수금까지 해야 했는데, 예배 시간과 겹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예배에 참석하긴 했지만 마음을 평온히 하지 못해 무척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과거 죽자사자 돈을 버느라 건강을 잃고 의사에게 사형 판결과 같은 말까지 들었던 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에 이르렀던 저를 구해 주시고 두 번째 생명을 주셨는데 전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 또 디모데전서 6장 8절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라고 한 내용도 생각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봤자 목숨을 잃으면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예 공장을 임대를 줄까 생각도 했습니다. 임대를 주면 수입이야 줄겠지만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을 테고, 그럼 저는 하나님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 더 마음을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창업 초기 힘든 시간을 버틴 끝에 이제야 연탄 공장이 잘 되고 있는데 막상 이렇게 포기하려니 아쉬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던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하였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이런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생존 방식과 인생 목표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기존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목표, 소망과 꿈을 정리해 보고 분석한 다음,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뜻과 요구에 대조해 본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을 갖춘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생존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하다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들뿐, 하나같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의 주관과 안배에 네 삶을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의 지배와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말씀을 읽고 난 후,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며 줄곧 부자가 되려 애썼던 과거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절대 안 된다.”라는 말들을 믿었던 저는 주변의 존중을 받는 부유한 삶을 위해 이를 악물고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 나날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돈이 정말 만능인 건가? 돈이 내게 뭘 가져다줄 수 있지?’ 물론 돈으로 별장과 자가용을 살 수 있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서 남들의 존중도 받을 수 있지만 그런 건 잠깐의 육적인 안락함일 뿐이었습니다. 마음의 공허함과 고통을 해결해 주지도, 제게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주지도 못했고, 제가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지도, 제 목숨을 구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 있는 한 학교의 교장이 생각났습니다. 돈도, 지위도 가졌던 그였지만 결국 암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돈과 지위도 그를 고통과 죽음에서 구해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수많은 부자들이 공허하고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또한 돈 때문에 인간성과 양심을 저버리고 서로 싸우고 속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경험과 주변의 이런 일들을 보니 돈을 추구하면 사람은 점점 더 패괴되고 타락하며 하나님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죄만 늘어날 뿐이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문득 욥이 생각났습니다. 욥은 돈과 물질적 안락함을 추구하지 않고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행사를 알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를 추구해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를 부르시자 모든 걸 버린 채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길 추구했고 결국 하나님께 온전케 돼 의미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길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삶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렵사리 하나님을 믿고 인생의 바른길을 찾았는데 제가 계속 돈과 육의 안락을 좇느라 진리를 추구해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는 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더는 돈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후 남편과 상의해 연탄 공장을 임대주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한 계획과 안배 아래 연탄 공장은 임대가 나갔고 저는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2년 후, 남편이 갑작스럽게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슬픈 와중에 저는 생명의 나약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평생 뼈 빠지게 일하며 바쁘게만 살았던 남편이었습니다. 혈압 수치가 200이 넘어가도 사업을 쉬려 하지 않았고 넘어져 허리가 부러졌을 때도 다 회복이 안 된 몸을 이끌고 기어코 연탄 공장에 나가곤 했습니다. 좀 쉬라고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남편 역시 돈의 노예가 되어 평생 사탄에게 단단히 통제되고 해를 입었던 것이었습니다. 죽음이 코앞까지 왔음에도 포기를 못 했습니다. 돈을 벌어 이제 좀 편하게 사나 싶었는데 그렇게 세상을 떠버렸습니다. 부와 명성은 사람의 목숨을 구해 주지 못합니다. 병과 죽음을 피하게 해 줄 수도 없습니다. 다음 하나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돈과 명리가 자신을 구해 주는 생명 줄이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인 양 평생을 이것들을 좇는 데 쓴다. 이것들만 있으면 죽음도 피하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돈과 명리란 게 얼마나 요원한 것인지, 죽음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연약하고 쉽게 부서지는지,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얼마나 외롭고 무력한지를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은 돈이나 명리와 바꿀 수 없고, 아무리 재산이 많고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똑같이 가난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돈으로 목숨을 살 수 없고, 돈이나 명리로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사람의 수명을 1분 1초라도 연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돌이켜보면 저는 돈을 버느라 한평생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비록 주변의 존중과 부러움을 받게 되었지만 사탄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가 이르러 저를 돈의 구렁텅이에 구해 주시고 올바른 삶의 목표를 가지도록 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 전념을 다 하고 있는데 마음이 너무나 편안하고 홀가분합니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저를 구원해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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