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작은 깨달음

2022.07.11

사이판 리샹

올해 초쯤의 일인데요, 금방 들어온 새 신자분인데, 두 번이나 예배에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팀장한테 물어봤는데 답장을 바로 안 하는 거예요. 그 후에 그분이 또 예배에 나왔길래 팀장한테 더 묻지 않았죠. 그냥 새 신자가 예배를 제대로 드리면 됐지 지금 할 것도 많은데 그런 것까지 다 체크하면 시간이나 에너지 소모가 크니까 나중에 다시 보기로 했죠. 그러다 이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또 한번은 그 새 신자가 예배 도중에 가더라고요. 팀장한테 물어보니까 답장이 없었어요. 그러니 더 묻지 않고 새 신자한테 무슨 어려움이 있는지 직접 묻지도 않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부터 그 새 신자분이 연속 몇 번이나 예배에 보이질 않는 거예요. 그제서야 새 신자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요. 근데 답장이 없더라고요. 전 그분이 실족됐을까 걱정돼서 팀장한테 연락했죠. 혹시 연락이 닿을 수 있는지 해서요. 근데 팀장이 그러는 거예요. 그분이 친구 수락을 안 해 줘서 연락을 못 한다고요. 후회가 됐어요. 제가 조금만 일찍 알아봤다면 조치를 취했을 텐데, 근데 이미 늦은 거예요. 제가 사역을 제대로 못 한 탓이었죠. 그래서 얼른 새 신자와의 채팅 기록을 다시 뒤지면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려고 했어요. 근데 그분하고 인사말 몇 마디 한 거 말고는 대화를 한 게 없더라고요. 전혀 아는 게 없었어요. 그분과 다시 연락할 수 있는 희망은 이미 날아갔죠. 다 제가 건성으로 임한 탓이었어요. 근데 전 여기서 정말 깊이 반성해 보지 않았어요. 그냥 단순하게 제가 소홀히 한 탓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죠.

그러다가 책임자가 새 신자분이 왜 실족하게 됐는지 저한테 상황을 물어보는데 너무 긴장됐어요. 이제 들통나겠다, 큰일 났다, 분명 건성으로 일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할 텐데 이러다 해임되면 어떡하나 싶었죠. 역시나 책임자가 채팅 기록을 보고 지적했어요. 그저 형식적으로만 하고 새 신자한테 전혀 관심 갖지 않는다고 했죠. 그러니 저는 얼른 변명했어요. 그분이 제때 답장을 안 해서 대화하기 어려웠다고요. 그러니 그런 게 아니라 아예 새 신자한테 신경을 안 쓴 거라고 책망하더라고요. 전 제가 건성으로 했단 걸 인정하면 책임을 질까 봐 얼른 또 해명을 했어요. 그 새 신자는 팀장이 맡은 사람이라 그동안 계속 연락을 하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제때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죠. 팀장한테 물어봐도 제때 답장을 안 해 줬고요. 팀장한테 보낸 메시지를 책임자한테 보여주면서 신경 썼다는 걸 증명하려 했죠. 또 새 신자한테 메시지 보낸 것도 보여주면서 그분이 예배에 나오지 않은 걸 알고 나서 연락하려고 했는데 답장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어요. 또 다른 이유는 그때 전도자가 연락처를 주지 않아서 새 신자한테 연락할 수가 없었다고 했고요. 그땐 어떻게든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생각에 객관적 이유를 잔뜩 댔죠. 제 잘못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보여 주면서 혼자 책임지지 않으려고 했던 거예요. 제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자꾸 떠미니까 책망했죠. 그 새 신자가 여러 번 예배드린 걸 보면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는 건데, 그 사람의 어려움을 빨리 파악하지 않고도 연락처가 없어서 연락 못 했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예요. 책임자가 저의 문제점을 훤히 꿰뚫고 있어서 어떻게 책임을 피해 갈 수 없었죠. 걱정됐어요. ‘책임자가 날 어떻게 볼까? 실제 사역을 안 했다고 보지는 않을까? 해임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복잡했고 안정이 안 되더라고요. 그 후에 이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돌이켜 봤는데, 제가 정직하지 못했고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보이더라고요. 분명 제가 건성으로 임하고 제대로 못 한 건데, 간사하게 굴면서 어떻게든 변명하려고 했어요. 전도자가 연락처를 안 준 탓만 했고, 제가 본분을 건성으로 한 건 인정하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았던 거예요. 제 행동을 생각해 보니까 괴롭더라고요. 매일 말씀을 먹고 마시지만 실제 상황과 책망이 저한테 닥치게 되니 패괴 성품대로 살면서 진리를 거부한 거예요. 전 제가 너무 깊이 패괴돼서 변화될 수 없다고 단정지었고 소극적으로 변했어요.

그 후에 말씀을 보게 됐어요. 『진리 추구는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다. 네가 진리를 사랑한다면 성령이 역사할 것이다. 진리에 대한 사랑을 토대로 일이 임했을 때 자신을 성찰하고 인식하는 것, 주동적으로 진리의 원칙을 구해 마지막에 진리의 원칙대로 실행하게 되는 것, 이 일련의 태도와 진입은 전부 사람이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지, 누군가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부가적인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행하면 마지막에 진리를 얻을 것이요,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것이다. … 네 이유가 무엇이든, 그 이유가 합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또 그 이유가 공개 석상에 드러낼 수 있는 것이든 그렇지 않든,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하나님은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다. 네 이유는 성립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감안하지 않는다. ‘감안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겠느냐? 하나님은 너의 그 이유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하고, 이치를 따지려면 따져라. 하나님이 너를 신경 쓰겠느냐? 하나님이 너 같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변론하고 토론하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상의하겠느냐? 답은 무엇이겠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네 이유가 아무리 합리적이어도 그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며, 갖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하나님은 네가 다양한 환경 속에서, 그리고 네게 임한 모든 일 가운데서 진리를 구하며, 마지막에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고 진리를 얻으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네게 어떤 환경을 배치했는지, 네가 어떤 사람과 일들을 마주했는지, 어떤 환경에 놓이게 되었는지 등은 진리를 추구하면서 배워야 할 공과이니,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만약 늘 이유를 찾으며 회피하고 도망치고 거부하고 저항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포기할 것이다. 억지 부리고 훼방 놓고 이치를 따져도 아무 소용없다. 하나님은 너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 중에서) 그때 깨달았죠. 패괴를 해결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중요한 건 본인의 선택이더라고요. 진리를 구하고 행하는지가 중요한 거죠. 어떤 상황이 생기든지, 책망을 받든, 실패를 겪든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고 진리를 구하면서 깨달은 만큼 실행에 옮기고 진리 원칙대로 일하면 발전하고 변화할 수 있는 거예요. 근데 책망받게 될 때, 늘 회피하고 거부하고 벗어나려고만 하면 진리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께도 버림받는 거죠. 절 보니까 책망받을 때 순종의 태도가 없고, 성실하게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았고, 패괴 성품을 해결하려고 진리를 구하지도 않았어요. 또 난 변화될 수 없다고 소극적으로 반항했어요. 이건 억지를 부리고 하나님이 주신 상황을 거부한 거죠. 그건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니잖아요. 이걸 깨닫고 전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 않고 진리를 구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죠.

반성해 봤어요. 평소에 말은 정말 잘하는데, 왜 정작 책망을 받으면 거부하고 소극적이 되는 건지 이건 어떤 성품인 건지요. 그러다 말씀을 봤어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마귀이자 사탄, 큰 붉은 용의 자손임을 인정하며, 스스로를 인식할 때 더없이 듣기 좋은 말을 하지만, 막상 패괴 성품을 드러내 누군가가 폭로하고 책망하고 훈계하면, 자신을 위해 온 힘을 다해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여기에서 사람은 철저히 드러난다.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할 때는 그렇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왜 책망과 훈계 앞에서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이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흔히 있지 않으냐? 이런 일을 분별하기가 쉬우냐, 쉽지 않으냐? 사실 분별하기 쉽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인식할 때 스스로 마귀이자 사탄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회개하고 바뀌지 않는다. 그럼 자신을 인식하는 그 말은 과연 진실한 것이겠느냐, 아니면 거짓된 것이겠느냐? 진실한 인식이겠느냐, 아니면 외식하며 남을 기만하는 것이겠느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진실로 자신을 인식했는지를 알려면 그가 말하는 인식만 들어서는 안 된다. 책망과 훈계가 임했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핵심이다. 무릇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또한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냈든 남들이 책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책망하고 훈계하는 이가 누구여도 안 된다. 그 스스로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것은 괜찮으며,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만약 다른 사람이 폭로하고 질책하고 책망한다면, 아무리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말해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드러낸 성품 중 어떤 측면에 관해 폭로하든 그는 극도로 싫어하며, 한결같이 스스로를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조금도 참되게 순종하지 않는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 중에서) 『진리를 싫어하는 주된 모습은 진리를 들었을 때 반감을 갖는 것만이 아니다. 진리를 실행하기 싫어하는 것도 포함한다. 진리를 실행할 때가 되면 뒤로 물러나는데, 진리는 그와 무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배에서 교제할 때 적극 나서서 글귀나 도리, 고상한 이론을 입에 올리며 사람들을 농락한다. 그때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기분이 한껏 들떠서 거침없이 떠들어 댄다. 어떤 사람들은 온종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을 듣고, 필기하는 등 하나님 믿는 일로 바쁘다. 마치 한순간도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본분 이행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정말 진리를 사랑하느냐? 그들에게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이 없느냐? 언제 그들의 실제 내적 상태를 알 수 있느냐? (진리를 실행해야 할 때가 되면 도망치고, 책망과 훈계가 임하면 이를 받아들이기 싫어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거나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것이냐? 다 아니다.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이는 바로 성품의 문제이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자 긍정적 사물이고, 진리를 실행하면 사람은 성품이 변화될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지도 않고 실행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싫어하는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여섯 가지 방면의 패괴 성품을 알아야 진실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중에서)

이 말씀을 보니까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에서 나오는 모습은 진리와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는 거고 진리도 행하지 않는 거예요. 제가 매일 말씀을 먹고 마시고 본분도 하고 예배 때는 말씀에 결부해 저한테 패괴 성품이 있고 사탄에게 속하는 큰 붉은 용의 자손이라고 인정도 해요. 마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정작 본분에 건성으로 임해서 책망받을 때는 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행하지도 않고 있더라고요. 진리를 싫어하는 사탄 성품만 드러내고 있었죠. 양육자라면 책임감과 인내심을 기본으로 가져야 한다는 걸 잘 알거든요. 새 신자들은 갓난아기 같은 사람이고 아직 참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라 생명이 연약하죠. 그래서 예배에 빠지면 빨리 붙들어 주고 양육해야 해요. 이 원칙을 다 알면서도 정작 실천에 옮기고, 제가 대가를 들여야 할 때는 그렇게 안 했어요. 진리를 알고도 행하지 않았죠. 전 그 새 신자랑 몇 번 인사말을 건넨 게 전부였고, 양육을 해 준 적도 없었어요. 예배에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어떻게 하면 빨리 그분하고 연락을 취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보지 않았어요. 새 신자 양육의 중요한 부분에서 제가 소홀히 하고 무책임해서 나오지 않게 됐죠. 그런데도 전 반성을 안 했어요. 책임자가 문제를 지적할 때도 전 건성으로 안 했다는 말을 들으려고 이유만 찾았고 모든 책임을 팀장과 전도자한테 넘기려고 했어요. 진리를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세가 전혀 없고 온통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만 드러낸 거죠.

나중에 말씀을 봤어요. 『어떤 상황에서 책망과 훈계가 임하든,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무엇이겠느냐?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누가 너를 책망하는지, 왜 책망하는지, 그의 말이 듣기 거북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의 어조나 어휘 선택이 어떤지 등은 신경 쓰지 말고 전부 받아들여서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잘못했고,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냈는지, 그 일을 할 때 진리의 원칙대로 행동했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먼저 보여야 할 태도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이런 태도를 보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는 언제나 반발심과 반감을 보인다. 이런 태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마음을 평온히 하며 열심히 듣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그럼 그는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먼저 온 힘을 다해 설명하고 변명하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자신이 드러낸 패괴 성품에 대해 변호하고 해명하면서 사람들의 이해와 관용을 얻어 내고자 한다. 그리하여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자신을 책망하고 훈계하는 말들을 받아들이지도 않으려는 것이다. 그가 어떤 태도로 책망과 훈계를 대하겠느냐? ‘나는 죄가 없어. 잘못한 게 없다고. 설령 잘못이 있다고 해도 거기엔 이유가 있어. 고의가 아니었단 말이야. 또 잘못이 있다고 해도 내가 책임을 질 필요는 없어. 세상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는 이런 주장과 말을 고집하며 놓지 않는다. 진리를 구하지 않고, 자신이 그 과오를 저지르는 동안 드러낸 패괴 성품을 인정하지도 않으며, 자신에게 그러한 본질이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인정하지 않는다. … 그의 패괴 성품이 어떻게 사실로 드러났든 그는 인정하지 않으며 한사코 반항하고 맞선다. 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해도 받아들이거나 인정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누가 말로 날 이기나 보자. 누가 더 말을 잘하는지 보자고.’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이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8)> 중에서) 이 말씀에서 깨달았죠. 정상 사람은 책망을 하나님께로 받아들이고 일단 순종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하고 변화를 얻게 돼요. 당장은 받아들이지 못해도 그 후에 계속 구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책망 속에서 공과를 배우게 돼요. 근데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니까 책망과 훈계를 받아도 반성을 하지 않아요. 완전히 반항하고 거부하고 증오하는 태도밖에 없어요. 그리고 절 비춰 봤어요. 분명 제가 새 신자 문제를 건성으로 대해서 실족하게 된 거잖아요. 그건 과오죠. 정말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은 자책감을 가지고 문제를 반성하면서 반박하지 않죠. 근데 전 죄책감도 없고 잘못도 인정하지 않았어요. 뻔한 사실이 이렇게 눈앞에 놓여 있는데도 대놓고 책임을 회피했어요. 처음엔 새 신자가 답장이 없었다고 했다가 나중엔 팀장이 무책임한 탓이라고 했다가 마지막엔 전도자 탓을 했어요. 책임을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면서 책임자가 알아 주길 바랐죠. 하나님의 드러내심과 책망 앞에서 전혀 반성도 안 하고 오히려 반항하고 각종 이유를 찾아서 변명하고 해명하면서 책임을 피하려고 했어요. 인성과 이성이 없었죠. 오로지 강퍅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어요. 하나님을 오래 믿었지만 성품의 변화가 전혀 없는 걸 보니까 너무 괴로웠어요.

그 후에 말씀을 보면서 책망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조금 깨닫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전형적인 태도는 바로 죽어도 받아들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악을 저지르고, 하나님 집 사역과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 아무리 큰 손해를 끼쳐도 마음속으로 조금의 후회도 자책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면을 볼 때, 적그리스도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절대 없다. 그가 하나님의 선민에게 입힌 해악과 교회 사역에 가져다준 피해를 하나님의 선민은 모두 밝히 보았으며, 적그리스도가 악행이 많다는 사실을 보았다. 적그리스도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또한 끝까지 그것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싫어하는 모습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진리를 싫어하고 수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음에도 죽어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스럽게 군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집의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러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사탄의 종으로,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러 온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마음속에는 오직 명예와 지위뿐이다. 그는 자신이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할 테고, 그러면 그의 명예와 지위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는 한이 있어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대항한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폭로하고 해부해도 그는 기를 쓰고 부인한다. 그가 고의로 부정하든, 무의식적으로 부정하든, 여하튼 한 측면으로는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 드러난 것이다. 다른 한 측면으로는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명예와 지위, 이익에 몹시 연연함을 뜻한다. 반면, 교회의 사역과 이익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이겠느냐? 무책임하고 경시하는 태도이다. 그에게는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다. 적그리스도가 책임을 미루는 데서 이 문제들을 볼 수 있지 않으냐? 책임을 미루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그가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본성 본질을 뜻하고, 또 다른 한 측면으로는 양심과 이성이 없고 인성이 없음을 뜻한다.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이 그의 교란과 악행으로 인해 얼마나 큰 손해를 입었든, 그는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어떤 존재겠느냐? 그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래도 약간의 양심과 이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 정도의 인성조차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이런 부류의 사람은 어떤 존재겠느냐? 적그리스도 부류 사람의 본질은 바로 마귀이다. 하나님 집의 이익이 그로 인해 아무리 큰 손해를 입어도 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조금의 괴로움과 가책도 느끼지 못하며, 죄스러운 마음은 더더욱 없다. 이는 결코 정상인의 모습이 아니다. 이런 자가 바로 마귀이다. 마귀에게는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3)> 중에서) 이때 깨달았죠. 적그리스도가 책망을 거부하는 건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본성 때문이고,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자기 명예나 지위에 조금 손해가 생길 것 같으면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 변명하면서 책임을 피하려고 해요. 하나님 집의 이익과 형제자매의 생명에 피해 주는 일을 하더라도 미안함이나 가책이 없죠. 들켜도 절대 인정하지 않고요. 인정하면 책임져야 하고, 명예도 실추될까 걱정하는 거죠. 적그리스도는 정말 이기적이고 인성이 없는 마귀더라고요. ‘마귀’라는 말을 볼 때, 저도 양심이 찔렸어요. 제가 드러낸 성품과 행동은 적그리스도와 같았거든요. 분명 제가 잘못해서 교회 사역에 지장을 줬는데, 인정도 않고 책망받을 때, 오히려 변명거리를 찾아서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거든요. 사실 누구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나님이 예비하신 적합한 상황과 인도가 있어야 하고, 형제자매들의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얻게 되는 결과죠. 하나님은 각 사람을 책임지세요. 양 백마리 중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길 잃은 하나를 찾아다닌다고 하셨죠. 하나님은 모든 이의 생명을 굉장히 아끼세요. 근데 전 새 신자 양육을 책임지고도 너무 소홀히 대했어요. 새 신자가 예배에 안 보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형식적으로 묻기만 했어요. 게다가 팀장의 사역을 체크할 때도 무책임하게 건성으로 대했어요. 팀장이 여러 번 답장이 없어도 더 캐묻지 않고, 무슨 어려움이 있는지 제때 알아보지도 않았어요. 전 새 신자에 대해 소홀하고 무책임한 태도였고, 새 신자의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고도 죄책감도 전혀 없고 수습할 생각도 없었죠. 또 제가 무책임하다고 지적받았을 때도 어떻게든 책임 안 지려고, 계속 변명하기 바빴어요. 인정하면 책임이 따르는 게 겁이 났고 책임자가 절 안 좋게 보고 해임시킬까 봐 걱정했어요. 전 끝까지 교회 사역을 생각하지 않았고, 새 신자의 생명에 대해서 고민도 안 했어요. 그저 제 이익이 손해 볼까 걱정하기 바빴고, 제 체면을 살릴 방법만 생각했죠. 전 정말 이기적이었어요. 제 이익만을 지키려고 했으니 인성이 없었어요. 하나님도 증오하시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본분을 건성으로 해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도 인정 안 했습니다. 전 새 신자의 생명을 생각하지 않고 제 명예만 생각했어요. 인성이 전혀 없었어요. 하나님, 회개하고 싶습니다.”

그 후에 또 말씀을 보면서 실행할 길을 찾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언제나 진리를 싫어한다면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너는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리를 싫어하는 네 내면의 상태를 성찰해야 하며, 네게 진리를 싫어하는 어떤 모습이 있는지, 어떤 행동이 진리를 싫어하는 것인지, 어떤 일이 임했을 때 진리를 싫어하는 태도를 보이는지 살펴야 한다. 수시로 이러한 것들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범사에 진리를 구해야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중에서)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자 한다면 먼저 네 뜻에 맞지 않는 일이 임했을 때 충동적으로 굴어서는 안 된다. 일단 냉정을 유지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며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해야 한다. 제멋대로 굴지 말고 먼저 순종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을 견지하며, 어떤 일이 임하든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할 수 있다면, 또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일들을 대할 수 있다면, 네가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냈든, 혹은 예전에 어떤 과오를 저질렀든 상관없이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시련이 임하든 굳게 설 수 있을 것이다. 네 마음가짐이 올바르고, 진리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완벽히 가능하다. 때때로 약간의 패역과 반발심을 품고, 자신의 이치를 따지며 순종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패역한 상태에서 돌아설 수 있으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 왜 패역과 반발심이 생겼는지 반성하며 원인을 찾은 다음 진리를 구해 해결한다면, 이 측면의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실패와 좌절을 몇 번 반복하다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게 되면 패괴 성품을 조금씩 벗어 버릴 수 있다. 그때는 진리가 네 안에서 권력을 잡아 네 생명이 될 것이다. 그때 진리를 실행하면 어떤 방해도 없을 것이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진리의 실제를 살아 낼 수 있을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알았어요.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을 해결하려면 늘 반성해야 하더라고요. 나의 어떤 언행이나 자세, 태도가 진리를 싫어하는 것인지 성찰해 보는 거죠. 내 뜻에 맞지 않는 일들이 생길 때도 일단 마음을 차분히 해야죠. 상대방의 지적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변명하고 싶을 때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서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찾아보고 그에 비춰 반성해야 하죠. 진리를 아는 형제자매와 교제해도 좋고요. 그럼 조금씩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제에 진입할 수 있고 패괴 성품을 벗을 수 있어요. 실행의 길이 보이니까 변화해야겠다 다짐했죠.

그리고 새 신자 상황을 제때에 파악하지 않아서 과오를 남기게 됐으니 얼른 바로잡았죠. 제가 맡은 새 신자 중에 아직 파악 못 한 사람이 누군지 살폈죠. 그 후에 한 새 신자랑 채팅을 했는데, 그분이 아직 주의 재림과 3단계 사역에 관한 진리를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리더한테 전도자가 교제해 줘야 하지 않겠냐고 했죠. 근데 리더가 저보고 하라는 거예요. 새 신자의 문제는 그때그때 해결해 줘야 하는 것도 제 책임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왠지 리더의 말에 반감이 들고, 순종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이건 복음을 전한 사람의 문제인데, 왜 내가 보완해야 하나 싶은 거예요. 또 새 신자가 많아서 저도 시간이 부족하니 전도자가 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 그 순간, 제 생각이 잘못됐다는 게 느껴졌어요. 리더의 말도 맞는데, 왜 난 옳은 제안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유만 달고 순종 못 하나 돌아봤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죠. 제가 순종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시고 새 신자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제 육을 버리게 해 달라고요. 사실 사람마다 이해하는 능력이 다르잖아요. 전도자한테 교제를 들었어도 그땐 이해하지만 지나면 모호해질 수도 있어요. 그럼 양육자가 체크하고 보완을 해 줘야 조화로운 협력이 되죠. 전 양육자로서 문제를 발견하면 제때 해결해야 돼요. 이것저것 따지면서 쉬운 것만 하고, 어려운 건 떠넘기고 혼자만 편해선 안 되죠. 조건을 따지며 본분해선 안 되고요. 저한테 맡겨진 새 신자에 대해선 잘 양육해 진리를 알게 하고 참도에 뿌리내리게 하는 게 제 책임이잖아요. 이게 하나님의 부탁이자 제 본분이고 그래야 진리를 행한 거고, 회개한 모습인 거죠. 그러니 마음이 밝아졌어요. 예배가 끝나고 얼른 그 새 신자한테 모호한 부분을 교제해 줬어요. 그렇게 실행하니까 마음에 반감은커녕 기쁘더라고요. 진리를 실행하는 건 겉에 보여지는 행동이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리 원칙대로 행하고 하나님 말씀 진리를 사람됨과 일을 보는 기준으로 삼는 거였어요. 그러면 자신의 잘못된 관점과 패괴 성품이 서서히 말씀으로 대체될 수 있죠.

나중에 돌아보니까 이런 책망은 꼭 필요한 거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건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과 강퍅한 성품 때문이라고 하셨잖아요. 전엔 저한테 이런 성품이 있단 걸 몰랐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드러내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심판하지 않으셨다면 전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을 전혀 몰랐을 거고, 회개도 안 했을 거에요. 그건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이 자라는 데도 큰 걸림돌이 되죠.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은 너무 유익해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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