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하나님의 거룩함(3)

지난번 하나님의 거룩함이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하나님 자신의 어떤 부분에 관한 것이었느냐?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것 아니었느냐? (맞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본질과 관련해 어떤 주제를 나누었다고 했느냐? 하나님의 거룩함 맞느냐? 하나님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본질이다. 지난번 우리는 주로 어떤 내용을 나누었느냐? (사탄의 사악함을 분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인류를 패괴시키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사탄은 지식, 과학, 전통문화, 미신, 사회 풍조를 이용하여 사람을 패괴시킨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주요 내용이다. 사탄은 지식, 과학, 미신, 전통문화, 그리고 사회 풍조를 가지고 사람을 패괴시킨다. 이는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식으로, 모두 다섯 가지다. 너희는 사탄이 그중 무엇으로 사람을 가장 많이, 가장 심하게 패괴시킨다고 생각하느냐? (전통문화입니다. 사탄의 철학, 즉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과 같은 사상들이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문화라고 생각하는 형제자매들이 있구나. 다른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식입니다. 지식은 결코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주재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공부를 하도록 만듭니다.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아야만 좋은 미래와 운명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사탄이 지식을 이용해 너의 미래와 운명을 통제하면, 너는 거기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게 된다. 이것이 네가 사탄이 사람을 가장 심하게 패괴시킨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구나. 너희 대부분이 사탄이 지식을 이용해 사람을 가장 심하게 패괴시킨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 예를 들어, 과학이나 사회 풍조라고 하면 공감하는 사람이 있느냐?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다섯 가지 각기 다른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교제해 보도록 하자. 교제를 마치고 나면 너희에게 질문을 하겠다. 그럼 어떤 방법이 사람을 가장 심하게 패괴시키는지 보도록 하자.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다섯 가지 방식

1. 사탄은 지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명리로 사람을 통제한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이 다섯 가지 방식 중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이 지식이다. 그럼 지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자. 사탄은 지식을 미끼로 쓴다. 잘 듣거라. 지식은 다만 미끼일 뿐이다. 사람이 열심히 공부하며 매일 정진하도록 유도하고, 사람이 지식을 무기 삼아 자신을 무장하게 한 후 지식으로 과학의 문을 열게 한다. 그러면서 네가 지식을 많이 익힐수록 아는 것이 많아진다고 말한다. 이건 모두 사탄이 알려 주는 것들이다. 또한 사탄은 지식을 습득하고 원대한 이상(理想)과 포부를 가져야 한다고 속삭인다.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사탄은 이런 메시지들을 수도 없이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사탄의 메시지가 옳고 유익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사탄이 정해 놓은 길을 가고, 이상과 포부에 끌려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렇게 사람은 사탄이 주는 지식을 통해 자기도 모르게 위인과 유명인의 사상을 배우고, 사람이 보기에 영웅인 인물의 행적을 본받게 된다. 사탄은 ‘영웅’들의 행적을 통해 사람에게 무엇을 권장하느냐? 어떤 것을 주입하고자 하느냐?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의 지조와 영웅적 기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입한다. 사람은 역사 이야기나 영웅 전기를 통해 무엇을 배우게 되느냐? 의리가 있어야 하고 친구나 의형제를 위해서는 위험도 무릅써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사람은 사탄의 지식으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것을 많이 배우게 되고, 어느새 사람의 어린 마음에는 사탄이 미리 준비해 놓은 씨앗들이 심어진다. 그런 씨앗으로 인해 사람은 위인, 유명인, 영웅, 애국자, 가정적인 사람, 친구를 위해 위험도 무릅쓰는 의리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사탄의 꼬임에 넘어간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사탄이 준비해 놓은 길을 가게 된다. 사람이 그 길을 가는 동안 사탄은 자신의 생존 법칙을 강제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럼 사람에겐 부지불식간에 자신만의 생존 법칙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탄이 강제로 주입한 사탄의 생존 법칙이다. 사탄은 사람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생존 목표, 생존 법칙, 생존의 방향을 정하게 하며, 사탄에게 속한 것들을 주입한다. 이야기나 전기 등 각종 방식을 동원하여 사람을 조금씩 함정에 빠지게 만든다. 이렇게 학습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문학을, 어떤 사람은 경제를 좋아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천문 지리, 또 어떤 사람은 정치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물리나 화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신학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지식의 일부로,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또한 누구나 다 접해 봤던 것들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러한 지식들 중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유창하게 설명할 수 있다. 지식이 얼마나 사람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 이런 지식들이 사람 마음속에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사람이 특정 지식 분야에 흥미를 가지거나 깊이 빠지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꿈을 품게 된다. 작가나 문학가를 꿈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리나 정치인을 목표로 하는 사람도 있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가가 꿈인 사람도 있다. 또 영웅이나 위인, 유명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인물이 되길 꿈꾸든, 사람의 목표는 모두 배움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자신의 소망을 이루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이 지속적으로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가지는 목적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든가, 이번 생을 헛되이 살지 않기 위해서라든가, 큰 업적을 세우고 싶어서라든가 등의 말로 미화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너희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사탄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탄이 이런 것을 사람에게 주입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너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알아야 한다.

지금 사탄이 어떻게 지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먼저 사탄이 지식을 통해 사람에게 무엇을 전달하려는 건지 알아보자. 사람을 어떤 길로 끌고 가려고 하는 걸까?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만듭니다.) 그건 당연하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것은 네가 목격한, 지식 습득 후 생겨난 결과이다. 그렇다면 사탄은 어떤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건 잘 모를 것이다. 사람이 지식을 습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탄은 온갖 방식을 동원한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단순한 특정 지식을 활용하기도 하고,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거나 꿈을 이루게 만들기도 한다. 사탄은 대체 너를 어떤 길로 끌고 가려고 이러는 걸까? 사람은 지식 학습이 비난할 만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게 말해서,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가진다는 것은 패기가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삶의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크게 성공하는 게 더 멋진 삶 아닌가? 가문을 빛내고 이름을 후세에 떨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 이는 좋은 일이고, 정당한 일이고,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있는 사탄이 사람을 그러한 길로 유도하는 것으로 그칠까? 당연히 아니다. 사실,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든,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바람을 가지고 있든, 사람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 두 단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두 단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대체 무엇일까? 바로 ‘명예’와 ‘이익’이다. 사탄은 공격적인 방식 대신 부드럽고 사람의 사고방식에 맞고 온건한 방식을 써서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사탄의 생존 방식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인생의 꿈이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으로 귀결된다. 어떤 위인이나 유명인이든,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좇는 것은 ‘명예’와 ‘이익’ 두 가지뿐이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인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기꺼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확실하게 넘겨 버린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을 이렇게 의지하고 사탄에게 충성하게 된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그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면 광명도, 정의도, 아름다움과 선함도 더 이상 구하지 않게 된다. 사람에게 명예와 이익의 유혹이 너무나 강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사람이 평생 동안, 심지어 영원히 좇아도 끝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냐? 혹자는 “지식을 배우는 것은 시대나 세상에 뒤처져 도태되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모르는 것을 공부하는 것일 뿐이에요. 배움이란 자신의 직업, 미래, 생계를 위한 것일 뿐이죠.”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의식주나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동안 힘들게 공부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과 고된 시간을 견디는 것일까? 바로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다. 명예와 이익이 눈앞에서 손짓하며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고 고생하고 싸워야 명예와 이익을 향해 나아갈 수 있고, 이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평탄한 길을 가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그 정도 고생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지식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생존 법칙과 생존 철학, 예를 들어 ‘당과 국가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라.’ ‘시대의 흐름을 잘 아는 자가 걸출한 인물이다.’ 등이 아니겠느냐?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인생의 ‘원대한 이상’이 아니겠느냐? 위인의 사상, 유명인의 품격, 영웅의 기개,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협객이나 검객이 가진 강직함과 부드러움을 예로 들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러한 사상이 한 세대 또 한 세대에 영향을 미치고, 한 세대 또 한 세대가 이 사상을 받아들여 ‘원대한 이상’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분투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이를 위해 죽음도 아까워하지 않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지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식과 수단이다. 그렇다면 사탄에게 끌려 이러한 길을 가게 된 후에도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그것은 사탄이 사람을 잘못된 길에 들어서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우리 또 더 보자.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지식과 사상 관점, 이런 것에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진리가 있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진리가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조금이라도 있느냐? 진리에 속하는 내용들이 있느냐? 이런 것들이 다 없다. 조금이라도 없다.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킨 것에는 진리가 전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지 않느냐? 확신하지 못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명예’와 ‘이익’은 사탄이 사람을 사악한 길로 유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두 가지 주요 개념이라는 것만 알면 된다.

다시 복습해 보자. 사탄은 무엇으로 사람을 단단히 옭아매느냐? (명예와 이익입니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을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만 사로잡혀 이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치욕을 참고, 명예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 놓았다. 족쇄가 채워진 사람은 족쇄에서 벗어날 능력이나 용기가 없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족쇄를 차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신하며, 갈수록 사악해지고 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이 사탄의 명예와 이익에 넘어가 파멸한다. 지금 보니 사탄의 이런 음흉한 속셈이 가증스럽지 않으냐? 오늘은 너희가 아직 사탄의 음흉한 속내를 간파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명예와 이익이 없으면 삶이 끝난다고 생각하고, 명예와 이익이 없으면 앞으로 방향과 목표를 찾을 수 없고 칠흑같이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명예와 이익이 얼마나 큰 사탄의 족쇄인지 서서히 깨닫게 될 것이다. 너희가 이를 깨닫고 나면, 사탄의 통제와 사탄이 묶어 놓은 족쇄에 철저하게 맞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사탄이 주입한 것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사탄과 완전히 결별하고 사탄이 준 모든 것을 진심으로 증오하게 될 것이다. 그때야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모하게 된다.

2. 사탄은 과학으로 사람을 패괴시킨다

조금 전까지 사탄이 지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서 사탄이 과학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에 대해 교제해 보자. 우선, 사탄은 과학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의 호기심, 과학이나 비밀을 향한 탐구욕을 충족시킨다. 또한 과학이란 이름으로 사람의 물질적인 욕구, 갈수록 높아지는 삶의 질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킨다. 이런 것들을 명목으로 삼아 사탄은 과학을 내세워 사람을 패괴시킨다. 사탄이 과학을 통해 패괴시키는 것이 비단 사람의 생각과 머리뿐일까? 우리가 보았거나 접했던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을 생각해 보자. 사탄이 과학으로 또 무엇을 패괴시켰느냐? (자연환경입니다.) 그렇다. 너희도 큰 피해를 입어서 그런지 잘 알고 있구나. 사탄은 각종 과학 정설과 과학적 결론으로 사람을 미혹시킬 뿐만 아니라 과학적 수단을 이용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생존 환경을 함부로 개발하고 파괴한다. 과학을 연구하면 생존 환경이 점점 개선될 것이고 생활 수준이 지속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물질적 수요와 삶의 질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면서 내세우는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데 과학이 인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느냐? 우리의 생존 환경, 전 인류의 생존 환경이 다 오염되지 않았느냐? 인류가 마시는 공기가 오염되지 않았느냐? 우리가 마시는 물은 오염되지 않았느냐? 그리고 우리가 먹는 음식은 유기농이고 천연 식품이냐? 대부분의 알곡 작물과 채소 작물은 유전자를 변형시켜 화학비료로 키운 것이다. 또 어떤 것은 과학적인 변형을 통해 키운 것이다. 우리가 먹는 야채, 과일은 천연 식품이 아니다. 요즘에는 온전한 천연 상태의 계란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탄이 말하는 소위 과학적인 가공 과정을 거치면서 계란 본연의 맛이 다 사라졌다. 더 넓게 보면 공기가 망가지고 오염되었으며, 산천, 호수, 삼림, 강, 바다, 땅, 지하 모두 소위 과학적 성과에 의해 파괴되었다. 즉,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생태계와 생존 환경 전체가 소위 말하는 과학에 의해 훼손되고 못 쓰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질이 기대만큼 향상되었고 사람의 욕망과 육은 충족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사람이 생존해야 할 환경은 여러 과학적 ‘성과’에 의해 처참히 파괴되고 훼손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깨끗한 공기 한 모금 마실 권리조차 잃어버렸다. 이것이 인류의 비애가 아니겠느냐? 이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과연 행복을 논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살고 있는 이 공간, 즉 이 생존 환경은 본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창조한 것이었다. 사람이 마시는 물, 공기, 사람이 먹는 다양한 음식, 그리고 다양한 식물, 생물 그리고 산천, 호수, 바다까지, 이러한 생존 환경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것이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자연법칙에 따라 돌아가는, 자연 그대로의 환경이다. 과학이 없었다면,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방식대로 모든 것을 태초의 천연적 상태 그대로 누릴 수 있었고, 본디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사탄에 의해 파괴되고 훼손되었다. 사람의 기본적인 생활 환경은 이미 태초의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인지,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갈수록 많은 사람이 사탄이 주입한 생각을 바탕으로 과학을 이해하고 다룬다. 참으로 가증스럽기도 하고 또 불쌍하기도 하지 않으냐? 지금 사탄이 사람의 생존 공간과 환경을 이 모양으로 망쳐 놓았다. 인류가 이런 식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지구상의 인류를 친히 멸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런 식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인류는 어디로 가게 되겠느냐? (멸망입니다.) 어떻게 멸망하느냐? 사람은 탐욕스럽게 명예와 이익을 좇을 뿐만 아니라 과학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깊이 연구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물질적인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결과가 나타났느냐? 먼저 생태계가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인류의 오장육부는 모두 이런 환경 속에서 오염되고 망가졌으며, 각종 전염병과 유행병이 도처에 창궐하여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사탄을 좇아가며 지식으로 자신을 채우고, 과학을 이용해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인류는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 알 수 있느냐? 바로 자연히 멸망되는 것이다. 한 걸음씩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한 걸음씩 자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멸망을 자초하는 것 아니냐? 이는 과학을 발전시킴으로써 초래된 결과가 아니냐? 지금 보면, 과학은 사탄이 사람의 혼을 빼놓기 위해 조제한 약과 같아서 네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사리를 분별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이름으로 너의 흥미를 유발하고 너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인류가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지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렇게 사람은 인류의 멸망은 사탄이 초래한 것임을, 사탄이 바로 원흉임을 분명히 알게 된다. 그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방법이다.

3. 사탄은 전통문화로 사람을 패괴시킨다

세 번째 방법은 사탄이 전통문화를 이용하여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이다. 전통문화와 미신은 비슷한 점이 많다. 다만 전통문화는 이야기, 유례, 출처가 있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사탄은 수많은 이야기를 날조하여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역사책에 실어 전통문화나 미신과 관련된 인물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 예를 들면 여덟 신선이 바다를 건넌 이야기, 당나라 승려가 인도에 가서 불경을 구하는 이야기, 옥황상제 이야기, 정의로운 소년 나타와 악을 저지르는 동해 용왕 사이의 대결을 다룬 이야기, 봉신연의 등등, 이런 이야기들은 중국에서 사람들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지 않으냐?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 알고 있다. 대략적인 내용일지라도 마음과 머리에 아로새겨져 잊히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미리부터 마련해 둔 것이다. 사탄이 시대별로 퍼뜨리는 각종 사상이나 전설 이야기는 사람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갉아먹고 망가뜨리고, 사람들을 각종 마법과 저주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즉, 네가 그러한 전통문화와 이야기, 미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마음과 머릿속에 새기는 순간, 마치 마법과 저주에 걸린 것 같다. 즉, 그런 문화와 사상, 전통적인 이야기에 사로잡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너의 삶과 인생관에 영향을 미치고, 사물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삶의 길을 찾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것이 바로 네가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고 떨쳐 내려고 해도 떨쳐 낼 수 없는 마법과 저주이다. 게다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마법과 저주에 걸리면 무의식적으로 사탄을 경배하게 되고, 마음속에 사탄의 형상이 자리 잡게 된다. 즉, 사탄을 자신의 우상 또는 자신이 숭배하고 존경하는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부지불식간에 이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사람의 언행을 지배하게 된다. 너는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나 전설이 가짜라고 생각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이야기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대상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게 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사상과 그것들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마귀와 사탄, 우상을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이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법과 저주이다. 공감하느냐? (네.) 너희 중 향을 피우면서 부처를 숭배했던 사람이 있느냐? (네.) 어떤 목적으로 향을 피우고 부처를 숭배했느냐? (안녕을 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탄에게 안녕을 빈 것이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느냐? 안녕은 사탄이 가져다주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때 참 어리석지 않았느냐? 참으로 황당하고 어리석고 유치한 행동이었다. 그렇지? 사탄은 어떻게 너를 패괴시킬지에 대해 열중하지 안녕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일시적인 평온함을 느끼게 해줄 뿐이다. 하지만 너는 그래도 서원을 해야 한다. 네가 만약 약속을 어기거나, 서원을 저버리면 사탄이 너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사탄은 서원을 하게 해서 너를 지배하려 한다. 너희는 안녕을 빌어서 안녕을 얻었느냐? (아닙니다.) 안녕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입었고, 게다가 불행이 끊이지 않는다. 정말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사탄의 권세하에 안녕이란 없다. 이것은 진실이다. 이것이 바로 봉건적 미신과 전통문화가 인류에게 초래한 결과이다.

4. 사탄은 사회 풍조로 사람을 패괴시킨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통제하는 마지막 방법은 사회 풍조를 이용하는 것이다. 사회 풍조는 많은 것을 포함한다. 여기에 유명인이나 위인, 영화계나 연예계의 우상을 숭배하거나 스타를 쫓아다니거나 인터넷 게임을 하는 것 등도 포함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회 풍조의 일부이지만 여기서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사회 풍조가 사람에게 주는 사상, 처세 방식, 생존 목표와 인생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사람의 사상 관점을 좌우하고 그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풍조에는 사악한 기운이 들어 있다. 사람은 이런 사악한 기운에 물들어 계속해서 타락하고, 양심, 인성, 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도덕성, 인격과 품격도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사람은 인격과 인성, 양심, 그리고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 풍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풍조는 눈으로 볼 수 없다. 풍조라는 바람이 불 때 앞장서서 그런 일, 그런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풍조에 물들고, 매료되고, 동화된다. 그러면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풍조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매몰되거나 지배받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풍조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풍조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부할 힘이나 능력이 없거니와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면 이런 풍조들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내가 간단한 예를 들면 너희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장사를 할 때 고객이 누구이든 상도를 지켰고, 물건 가격을 제멋대로 부르는 일이 없었다. 조금이나마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 있지 않으냐? 신조를 지키며 장사를 했다는 것은 당시 사람에게 일말의 양심과 인성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사람은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갈수록 돈, 이익, 누림에 큰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돈을 더 중시하게 되지 않겠느냐? 사람이 돈을 매우 중시하면 자신도 모르게 명예, 명성, 신용, 인격을 간과하게 되지 않겠느냐? 네가 장사를 할 때 다른 사람이 사기 수법으로 돈을 벌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만 갈수록 많은 돈을 쓸어 담고, 그의 가족 또한 잘 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배가 아프다. 그럼 너는 ‘똑같이 장사하는데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돈을 벌 수 있는데, 나는 왜 큰돈을 벌지 못하지? 마음이 편치 않아. 나도 어떻게든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어.’라고 하면서 계속 돈 벌 방법을 궁리한다. 너는 ‘고객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 양심적으로 돈을 버는 것’, 이 신념을 포기한다. 너는 이익에 눈이 멀면서 조금씩 생각이 변하게 되고, 일하는 원칙도 변하게 된다. 처음 남을 속일 때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속으로는 ‘이번만 남을 속이고 앞으로는 사기를 치지 않을 거야. 늘 사기를 치면 죄받아!’라고 생각한다. 처음 사기를 칠 때는 양심의 작용으로 망설여지고 마음이 찔리기 때문에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사기 치는 데에 성공하고 평소보다 많은 돈을 손에 넣으면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지만 자신이 거둔 성공에 기뻐하며 자축한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그런 행동, 자신이 저지른 사기 행각을 합리화하게 된다. 사람이 도박에 물들면 도박꾼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기를 치는’ 것에 물들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사기 행각을 합리화하고 받아들이게 되며, 사기를 일종의 정당한 비즈니스 행위 또는 자신이 생존하고 생활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간주한다. 그렇게 해야 빨리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사기 행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런 행위와 방법을 경멸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직접 사기를 시도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런 행각을 벌이는 과정에서 마음이 점차 변하게 된다. 어떻게 변할까? 그러한 풍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사회 풍조가 주입하는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장사할 때 사기를 치지 않으면 뭔가 손해를 봤거나 뭔가를 잃었다고 느끼게 된다. 부지불식간에 ‘사기를 치는’ 것이 너의 영혼으로 자리 잡고, 너의 중심이 되며, 생존을 위해 꼭 해야 할 행위로 변질된 것이다. 사람이 그러한 행위와 생각을 받아들일 때면 마음이 변하지 않겠느냐? 마음이 변한다. 그럼 너의 인격은 어떨까? 인성은 어떠하겠느냐? 너의 양심은 또 어떻겠느냐? 네 마음과 생각이 변하고, 심지어 안팎으로 변화가 생기는데, 이는 질적인 변화이다. 그러한 변화로 인해 너는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갈수록 사탄과 마음으로 가까워지고 사탄을 닮아 가는 것이다. 결국 사탄은 너를 패괴시켜 마귀로 만든다.

너희가 보기에 현재 이런 사회 풍조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 사람에게 큰 해악을 초래하지 않느냐? 크나큰 해악을 초래한다! 사탄은 그런 여러 가지 사회 풍조를 이용하여 사람의 어떤 부분을 패괴시키느냐? 주로 사람의 양심, 이성, 인성, 도덕성, 생존에 대한 관점이다. 이 사회 풍조로 사람은 조금씩 타락되고 점점 더 패괴되지 않느냐? 사탄은 이런 사회 풍조를 이용하여 사람을 악마의 소굴로 조금씩 유인한다. 사회 풍조의 영향으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돈, 물욕, 사악함, 폭력을 숭상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마음에 자리 잡는 순간 사람은 어떻게 변하느냐? 사탄 마귀로 변한다! 사람에게는 어떤 것을 지향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냐? 사람이 무엇을 숭배하느냐? 사악함과 폭력을 좋아하게 되는 반면 아름다움과 선함을 싫어하고, 평화는 더욱 싫어하게 된다. 그리고 정상 인성을 가지고 평범한 삶을 살기보다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육적인 향락을 즐기고 자신의 육을 최대한 만족시키고 싶어 하며, 그 어떤 제약이나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한다. 사람이 이런 풍조에 빠지게 되면 그동안 습득했던 지식이 풍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느냐? 네가 잘 알고 있는 전통문화와 미신이 이런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전통적 윤리 도덕과 예의가 사람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논어≫, ≪도덕경≫이 그런 사악한 풍조에서 발을 빼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느냐? 당연히 그럴 수 없다. 그렇게 사람은 갈수록 사악해지고 교만해지며, 안하무인이 된다. 갈수록 이기적이고 악랄해진다.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지고, 가족 간의 사랑이 없어지며, 친척과 친구에 대한 이해심이 사라지고, 사람 사이엔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폭력적인 수단과 방식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밥그릇을 차지하고,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다. 또한 폭력적이고 사악한 방식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한다. 이 인류가 무시무시하지 않으냐? 이미 상당히 무서워졌다.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도, 하나님을 따르는 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는 것도 할 수 있다. 이 인류는 너무도 사악하기 때문이다. 내가 방금 한 말을 들어 보니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환경 속에서, 세상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섭지 않으냐? (무섭습니다.) 너희는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느냐? 지금은 조금 그렇게 느껴진다. 그렇지? (네.) 너희들의 말투를 들어 보니 ‘사탄이 갖은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틈만 찾으면 파고드는데, 과연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구나.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사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느냐? (아니요, 할 수 없습니다.) 옥황상제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느냐? 공자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느냐? 관음보살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느냐? (불가능합니다.) 누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느냐?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미쳐 날뛰면서 해를 가하는 사탄으로 인해 우리는 삶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잃었고 패괴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으니, 지금 우리 마음은 너무나도 무거워. 그런데 사탄이 우리를 패괴시키는 동안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던 거야?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우리는 느껴 본 적이 없어!’ 어떤 사람들은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희는 꽤 강렬히 이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말해 주는 내용을 깨달을수록 너희는 더욱 자신이 구원받을 가망이 없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너희는 조급해하지 마라. 우리가 오늘 이야기를 나눈 ‘사탄의 사악함’은 진짜 주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관련된 본질을 이야기하려면 어쩔 수 없이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법과 사탄의 사악함을 얘기해야 했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현재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확실히 알게 해야 했을 뿐이다. 이런 내용을 다룬 목적은 사탄의 사악함을 알게 하고, 무엇이 진정한 거룩함인지 더 깊이 이해시키고자 함이다.

방금 언급한 몇 가지 내용이 지난번보다 구체적이지 않으냐? 너희는 더 깊은 인식을 얻었느냐? (네.) 나는 지금 많은 사람이 도대체 하나님의 거룩함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우선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였는지 말하겠다. 집중해서 듣거라. 그다음 너희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이 무엇인지 물어보겠다. 나는 직접 말해 주지 않고 너희에게 생각할 공간을 주려 하는데 이런 방식은 어떠냐? (좋습니다.) 그럼 집중해서 듣거라!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아보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있을 때, 사람을 닥치는 대로 해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이 택한 사람을 내버려 두거나 못 본 척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사탄이 하는 모든 일을 분명하고 똑똑히 알고 있었다. 사탄이 어떤 일을 하거나 풍조를 만들 때마다,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조용히, 소리 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해 나갔다.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사역을 할 때나 누군가를 택할 때,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 누구에게도, 사탄에게도 선포하지 않고, 요란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우선 하나님은 네가 태어날 가정을 정해 주었다. 너의 가정 환경, 부모, 조상은 하나님이 일찍부터 정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했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태어날 가정을 정한 다음에는 네가 태어날 날짜도 정했다. 이어서 네가 울며 태어나는 모습, 네가 옹알옹알 말을 배우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모습까지 하나님은 다 지켜보았다. 한 걸음씩, 너는 달릴 수 있게 되었고, 뛸 수 있게 되었으며, 말을 할 수 있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사탄은 성장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을 호시탐탐 노린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일은 사람이나 일, 사물, 공간, 시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다. 그는 해야 할 일,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할 뿐이다. 너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좌절, 질병,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곁에서 너를 보호하고 돌보아 주었다. 그렇게 이 길을 걷는 너의 생명과 미래를 엄격하게 지켜 주었으며, 너의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어느새 너는 장성하여 새로운 사물을 접하게 되고, 이 세상과 이 인류를 알아 가기 시작한다. 모든 일이 새롭게 느껴진다. 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길 좋아하며, 자신의 인성으로 자신만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조금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가 조금씩 성장하고, 한 걸음씩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 지식을 습득하고 과학을 공부할 때에도 하나님은 너에게서 한 걸음도 멀어진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너도 세상을 알아 가고 접하는 과정에서 꿈을 키운다. 자신의 취미, 자신의 관심사를 가지게 되고,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늘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 본다. 그 과정이 어떠했든지 하나님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눈에 담고 있다. 어쩌면 너는 자신의 과거를 잊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너는 하나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살아가고, 자라고,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그 기간 하나님은 가장 중요한 일을 행한다. 이는 아무도 느끼지 못했던 일이고, 아무도 모르는 일이며, 하나님이 한 번도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렇다면 이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하는 이 일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일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이 일은 사람과 하나님 모두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 일이 무엇인지 너희는 아느냐? 너희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아무 개념도 없어 보이는구나. 그럼 내가 알려 주겠다.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는 동안 하나님은 너에게 수많은 일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했는지 일일이 알리지 않고, 네가 알게 하지도 않으며, 너에게 말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 일들이 어떤 것이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일들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가 다른 일들보다 훨씬 중요하다. 바로 사람이 태어나서 현재에 이를 때까지 그 사람의 안전을 보장해 준 것이다. 이 말이 너희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아 “안전이 그렇게 중요합니까?”라고 물을 수도 있다. ‘안전’은 문자적으로 보면 무엇을 말하느냐? 아마 너희는 평안함, 재앙도 화도 없는 것, 멀쩡하게 사는 것, 정상적인 삶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그 일은 도대체 무엇을 말할까? ‘안전’이 하나님 편에서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정말 너희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뜻일까? 아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일까? 여기서 말하는 ‘안전’이란 사탄에게 먹히지 않도록 지켜 준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일이지 않으냐? 사탄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너의 안전과 관련된 일이지 않으냐? 신변의 안전과 관련된 일이니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사탄에게 먹히는 순간, 너의 영혼과 육체는 더 이상 하나님께 속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너를 구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런 영혼, 그런 사람을 포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네가 사탄에게 먹히지 않도록 너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중요한 일이지 않으냐? 그런데도 너희는 왜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느냐? 아무래도 너희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느끼지 못했나 보구나!

하나님은 사람이 사탄에게 먹히지 않도록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 외에도 많은 사역을 하였다. 즉, 한 사람을 택하고 구원하기 위해 많은 예비 사역을 한 것이다. 우선,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이 어떤 성격을 소유할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 부모는 누구일지, 형제는 몇 명일지, 그 가정 상황과 경제적 여건은 어떠할지, 가정 환경이 어떠할지 등을 다 정성스럽게 마련해 놓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택할 사람들 대부분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알고 있느냐? 대단한 지위를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겠느냐?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매우 드물다. 그럼 억만장자, 천만장자의 집안처럼 특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있겠느냐? 거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도록 하겠느냐? (평범한 가정입니다.) 평범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느냐? 근로자 가정이 있다. 근로자는 급여로 생활하며,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지만 여유로운 생활을 하지는 못한다. 농민 가정도 있다. 농민은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먹을 것, 입을 것이 있어 배를 곯거나 추위에 떨지는 않는다. 자그마한 장사를 하는 가정도 있다. 부모가 지식인인 가정도 평범한 가정에 속한다. 부모가 기껏해야 회사원이거나 낮은 직급의 공무원인 가정도 상류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는데, 이는 다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다. 다시 말해, 네가 살아가는 그 환경이 생각처럼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정해 준 가정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가정에서 살고 있다. 사회적 지위는 어떻겠느냐? 대부분 경제력이 평범하고, 이렇다 할 사회적 지위가 없다. 직업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성장(省長)이나 대통령인 사람이 있느냐? 없다. 그렇지 않으냐? 기껏해야 작은 회사의 과장이나 사장으로 평범한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가정생활 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일단 부모의 영향으로 자녀가 무속인의 길을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부모가 평범한 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택함과 동시에 그 사람에게 이런 환경을 정해 주는데,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겉으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지 않고, 모든 일을 묵묵히, 소리 없이 조용하게 행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이 행한 모든 일은 네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고, 길을 예비하고, 각종 조건을 예비한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시점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한다. 그때가 바로 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시점이자,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때이다. 그때 어떤 사람은 이미 부모가 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아직 자녀의 신분으로 남아 있다. 즉, 결혼하여 자녀를 둔 사람도 있고, 아직 가정을 이루지 않고 미혼인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하나님이 너를 택할 시기,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너에게 다가갈 시기를 하나님은 이미 다 정해 놓았고, 환경까지 마련해 놓았다. 누구를 통해 혹은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시켜 너에게 복음을 전해 줄지, 그리고 네가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지를 정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위해 모든 조건을 예비해 두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 오게 되고,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따라 한 걸음씩 그의 사역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그의 사역 방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기간에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사역하겠느냐? 우선, 사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과 일, 사물을 마련하여 사람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 다른 이에게서 복음을 받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다. 특정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은 누가 마련한 것이냐?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병 때문에 온 가족 또는 가족 중 일부가 하나님을 믿게 된다. 겉보기에는 가족이 병에 걸린 것 같지만 사실 이는 네가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마련해 준 계기이며, 하나님의 은혜이다. 어떤 사람의 경우는 늘 가정에 평안이 없고 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에게서 “예수를 믿으면 가정에 평안이 깃듭니다.”라고 전하는 복음을 받게 되고,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매우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게 된다. 이것도 하나의 계기 아니겠느냐? 가정에 평안이 없었던 것도 하나님이 준 은혜 아니겠느냐? 또 다른 이유로 믿게 된 사람도 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와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게 된다. 네가 어떤 이유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든 사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안배와 인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에 다양한 방식으로 너를 택하고 하나님의 집까지 데리고 왔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은혜이다.

지금의 이 말세 사역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예전처럼 은혜와 축복만 주는 사역을 하지 않으며, 더 이상 사람을 달래면서 나아가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사람은 하나님 사역의 다양한 면을 체험하면서 무엇을 보게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도 보게 된다. 또한 이 기간에 하나님은 공급과 붙듦, 깨우침, 인도의 방식을 통해 사람이 그의 뜻과 그의 말씀, 그가 사람에게 준 진리를 조금씩 깨닫게 한다. 사람이 연약하거나 소극적이거나 길이 없는 것 같아 막막해할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위로하고 권면한다. 그리하여 유약한 사람의 분량을 조금씩 강하게 키워 주고,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며, 하나님과 협력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한다. 반대로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면서 패괴 성품을 드러내면, 하나님은 가차 없이 사람을 채찍질하고 징계한다. 그러나 사람의 우매함과 무지함, 연약함과 유약함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고 인내한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다양한 사역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하며, 조금씩 그의 뜻과 진리를 깨달아 가고, 무엇이 긍정적인 것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것인지, 무엇이 사악함이고 무엇이 어둠인지 알게 된다. 하나님은 무조건 사람을 채찍질하거나 징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관용을 베풀거나 인내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처한 시기, 사람의 분량과 자질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각 사람에게 공급한다. 그는 사람에게 많은 일을 하고 많은 대가를 지불하였다. 사람은 그러한 대가와 일들을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행한 것은 실제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실현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제적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번 또 한 번 화를 면하게 되었고, 연약함으로 인해 한 번 또 한 번 하나님의 관용을 받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인류의 패괴와 인류에게 있는 사탄의 본질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 깨우침, 인도를 통해 갈수록 진리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고,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사람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삶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행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유일한 취지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은 왜 그런 방식으로 사람에게 사역하겠느냐? 어떤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것이겠느냐? 즉, 그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고자 하느냐?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고자 한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사람에게 사역하여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과 영을 불러 깨우며,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사람을 인도해 주고 붙들어 주고 공급하고 있는지, 누가 사람을 지금까지 살 수 있게 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또한 누가 창조주이고, 사람이 누구를 경배해야 하며, 어떤 길을 가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와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준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소생시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깨닫게 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원 사역을 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알게 한다. 마음이 깨어나면 사람은 더 이상 타락한 패괴 성품으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으며,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자 한다. 사람은 마음이 되살아났을 때 사탄과 완전히 결별한다. 사탄에게 더 이상 해를 입지 않고,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사탄에게 우롱당하지 않게 된다. 또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고자 하는 사역의 취지이다.

방금 사탄의 사악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모두가 사람의 삶은 행복이 없고 매우 불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가 사람에게 행한 사역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오니, 기분이 어떠하냐? (너무나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세심하게 마련한 모든 것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행한 일에 오차가 없다는 것은 잘못이 없으므로 누군가 정정하거나 조언을 하거나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이를 위해 행한 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손을 잡아 이끌고 있다. 하나님은 시시각각 너를 보살피며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사람은 이런 환경과 배경에서 성장하니, 하나님의 손길 아래에서 자란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아직도 허전하냐? 여전히 소극적이냐? 하나님이 인류를 버렸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행하였느냐? (인류를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행하면서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하나님은 그 모든 사역을 행하면서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도 하나님이 치른 대가를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런 적이 있더냐? (없습니다.) 지금 이 나이까지 살다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일생에서 수많은 위험과 시험을 겪게 된다. 사탄이 네 곁에서 시시각각 너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네게 재난과 불행이 닥치거나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즐거워한다. 또한 네가 사탄이 던진 올무에 걸려드는 것을 즐긴다. 반대로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불행과 재난을 피하도록 너를 항상 지키고 보호한다. 그러므로 평안, 즐거움, 복, 신변의 안전 등 사람의 모든 것은 사실상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이다. 모든 이의 평생의 운명은 다 하나님이 인도하고 주재한다. 그런데 하나님께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지위라는 개념이 존재하겠느냐? 하나님이 “모든 사람 중에서 내가 가장 위대하니 내가 너희를 관리하겠다. 모두 나에게 용서를 구해라.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라며 인류를 위협한 적이 있더냐? (아니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패괴된 인류는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 그렇게 신경 쓰면서 안배해 줄 필요 없이 대충 챙기면 된다.”라고 말씀하거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냐? 하나님이 그렇게 하더냐? (아닙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은 매우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모든 사람을 대한다. 네가 스스로를 대하는 것보다 더 책임감 있게 말이다. 그렇지 않더냐? 하나님은 빈말을 하지 않는다. 지위를 점하고 거드름을 피우거나 사람을 무책임하게 대하거나 기만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진실하게,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행한다. 그렇게 행한 일들은 사람에게 복과 평안, 기쁨을 가져다주었으며, 지금처럼 무탈하고 행복하게 하나님 앞에, 하나님 집에 있게 해 주었다. 또한, 사람이 정상적인 이성과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그의 구원을 받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역하면서 사람을 겉 다르고 속 다르게 대한 적이 있느냐? 가식적으로 대하며 듣기 좋은 말로 얼버무리고 외면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언행이 불일치한 적이 있느냐? “너 대신 이 일을 해 주겠다. 저 일을 도와주겠다.”라고 공수표를 날리거나 큰소리를 치고 사라진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은 간사함이나 거짓됨이 없으며 신실하다.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진실하다. 그는 사람이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자 사람이 자신의 일생과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는 간사함이 없으니 가장 진실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지금 하나님을 ‘진실하다’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으나 사실 이는 하나님을 표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며, 인간의 관점에 치우친 단어이다. 그러나 인류의 언어가 가진 한계로 인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니 하나님을 진실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다소 부적절해도 잠시 이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자. 하나님은 신실하고 진실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고 있는 몇 가지 측면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은 인류와 다르고 사탄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느냐? 하나님에게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므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으냐? 아멘으로 화답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멘!) 하나님에게는 사탄이 드러내는 그 어떤 사악한 성품도 없다. 하나님이 행하고 드러내는 모든 것은 사람에게 이롭고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공급과 생명이 되고, 길이 되며, 방향이 된다. 하나님께는 패괴가 없다. 또한 우리가 지금 보게 된 하나님의 모든 행사로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인류의 어떤 패괴 성품도 없고,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질과 비슷한 점이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이 시각에서 봤을 때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패괴도 없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과정에서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로, 이는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한다. 너희는 이를 깨달았느냐? 일단 두 가지 측면에서 지금 알게 된 하나님의 거룩함의 본질을 말하겠다. 첫째, 하나님은 어떤 패괴 성품도 가지고 있지 않다. 둘째,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사역의 본질은 하나님의 본질을 보여 준다. 그 본질은 모두 긍정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모든 사역은 다 긍정적인 것만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우선,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이는 긍정적인 것 아니겠느냐? 사람으로 하여금 지혜를 가지게 한다. 이는 긍정적인 것 아니겠느냐? 사람으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긍정적인 것 아니겠느냐?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한다. 이는 긍정적인 것 아니겠느냐?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에 근거하여 사람, 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한다. 이는 긍정적인 것 아니겠느냐? 이는 긍정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거두게 되는 성과는 사람이 사탄에게 더 이상 미혹되지 않고, 잔혹한 해를 입지 않으며, 사탄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다. 즉,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로 조금씩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 너희는 이 길의 어디까지 걸어왔느냐? 대답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래도 이제는 최소한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패괴시키는지, 어떤 것이 사악한 것인지, 어떤 것이 부정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가 생기지 않았느냐? 적어도 이제 너희는 올바른 인생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냐?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관해서는 교제할 필요가 있는 화제이다. 너희가 듣고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거룩함이란 무엇이냐? 다시 되새겨 보거라. 하나님의 진실함은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하나님의 신실함도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하나님의 사심 없는 마음도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하나님이 자신을 낮춘 것도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사람에게 진리와 생명을 대가 없이 주는 것 또한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이런 것들은 다 거룩함이다. 하나님이 드러낸 이 모든 것은 다 유일무이한 것으로, 패괴된 인류에게는 존재하지도 보이지도 않으며,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과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 사탄의 본질과 본성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 이런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은 유일무이한 것으로,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러한 본질을 지니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러한 본질을 갖추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너희는 인류 중에서 그렇게 거룩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너희가 우러러보는 우상, 유명인, 위인 중에 그렇게 거룩한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유일무이하다고 얘기했는데, 이것은 명실상부하지 않으냐? 명실상부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면도 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거룩함이 너희가 그동안 생각하고 상상했던 거룩함과 차이가 있느냐? (차이가 있습니다.)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사람이 흔히 말하는 거룩함이란 무엇이냐?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입니다.) 행위 또는 특정 사물을 묘사하거나 서술할 때 거룩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깨끗하고 보기 좋고 이목을 끄는 것일 뿐, 거룩함에 대한 실제적인 내용은 없다. 그것이 도리적인 면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측면에서, 사람이 생각하는 ‘거룩함’의 실제적인 면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대부분 사람이 ‘거룩하다’고 상상하거나 판단하는 것들 아니더냐? 일례로, 불교 신자들이 수련하다 앉아서 잠든 상태로 세상을 떠나면 열반에 들었다면서 그들이 거룩해지고 승천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 또한 상상이다. 또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녀를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사람이 생각하는 ‘거룩함’이란 개념은 공허한 상상과 이론에 불과하다. 실제 내용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거룩함의 본질과도 무관하다. 거룩함의 본질은 진실한 사랑이며, 더 나아가 진리와 공의와 빛의 본질이다. ‘거룩함’이란 단어는 오로지 하나님께만 어울릴 뿐, 그 어떤 피조물도 거룩하다고 불릴 자격이 없다. 이는 사람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점이다. 그러니 앞으로 ‘거룩함’이란 단어는 하나님께만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좋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

다시 돌아와 사탄이 어떤 수단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우리는 방금 하나님이 사람에게 사역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는 너희 모두가 체험할 수 있는 것이므로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희는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에 대해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할 수 있다. 적어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좀 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지 않겠느냐? 알고 싶으냐? “왜 또 사탄 이야기를 꺼내십니까? 사탄 이야기만 들으면 화가 납니다. 듣고 있으면 온몸이 다 불편해져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편해도 사실을 마주해야 한다. 이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인식에 도움이 된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은 사탄의 권세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없다.

전에 우리는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다섯 가지 방식과 그것에 포함되는 수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식은 외적인 것에 불과하며, 그 뒤에 감춰진 수단이야말로 가장 음흉한 것이다. 사탄은 그런 수단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 그렇다면 사탄의 수단이란 무엇이겠느냐? 너희들이 요약해 보아라. (기만, 유인, 위협입니다.) 갈수록 적절한 표현을 구사하는 것을 보니 사탄에게 큰 해를 입어 느낀 바가 많은 모양이구나. (그 외에 감언이설, 악영향, 강제 점령도 있습니다.) 강제 점령이라, 참으로 인상 깊구나. 사람은 ‘강제 점령’될까 봐 두려워한다. 또 뭐가 있겠느냐? (폭력으로 사람을 해치고, 협박과 회유를 하며,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은 사탄이 하는 일 중 하나로, 그것을 통해 너를 기만한다. 이러한 수단은 어떤 성격을 띠느냐? 거짓말은 기만 아니겠느냐? 사실 거짓말을 하는 목적은 너를 속이는 데 있다. 또 무엇이 있겠느냐? 너희가 깨달은 것을 전부 말해 보아라. (유도, 해악, 눈속임, 미혹이 있습니다.) 미혹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또 어떤 것이 있느냐? (사람을 통제하고, 속박하고, 협박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제한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대충 알겠다. 모두 훌륭하구나. 너희 모두 조금씩은 알고 있으니 이제 총정리를 해 보자.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은 주로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통제와 협박이다. 사탄은 어떻게든 너의 마음을 지배하려 든다. ‘협박’이란 어떤 의미더냐? 위협과 강박으로 그것의 말을 따르게 하는 것이며, 어떤 결과를 연상하게 만듦으로써 두려움을 느껴 사탄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는 순순히 따르게 된다.

둘째는 기만과 현혹이다. ‘기만과 현혹’이란 무엇을 가리키느냐? 사탄은 전설과 거짓말을 지어내어 너를 속이고, 그 거짓말을 믿게 만든다. 또한 사탄은 절대로 너에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다고 알려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너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예 ‘하나님’이란 단어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다. 다른 것으로 이를 대체하고 너를 미혹해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이 ‘기만’이란 것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으며 여러 측면을 포함한다.

셋째는 강제 주입이다. 무엇을 주입하겠느냐? 강제 주입이 사람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겠느냐? 사람의 동의를 거친 것이겠느냐? 당연히 동의하지 않는다. 네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소용없다. 사탄은 네가 상황 파악을 전혀 못 한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 생존 법칙, 본질을 주입한다.

넷째는 위협과 회유이다. 즉, 사탄은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네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따르며,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만든다. 사탄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작은 선심을 베풀 때도 있고, 너를 범죄로 유인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괴롭힌다. 사탄은 온갖 방식을 동원하여 너를 공격하고 해를 가한다.

다섯째는 미혹과 마비이다. ‘미혹과 마비’란 사탄이 듣기에 그럴싸하고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는 사시이비한 말과 사상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엔 사람의 육적인 것과 삶, 미래를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너를 속여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게 마비시킨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꼬임에 넘어가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여섯째는 심신 파괴이다. 사탄이 사람의 무엇을 파괴하겠느냐?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여 거스를 힘을 앗아 간다. 즉, 너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씩 사탄 쪽으로 기울게 하는 것이다. 사탄은 매일 네게 그런 것들을 주입하고, 그러한 사상과 문화로 악영향을 끼쳐 너를 물들인다. 너의 의지를 조금씩 꺾음으로써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거나 소위 말하는 정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말끔히 없애 놓는다. 그렇게 되면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에게 맞설 의지를 상실하고 사탄의 뜻대로 흘러가게 된다. ‘파괴’란 사람을 괴롭혀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상태로 만든 후 기회를 틈타 집어삼키는 것이다.

사람을 패괴시키는 사탄의 이 모든 수단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어 반항하지 못하게 하고 사지로 내몬다. 즉, 사탄이 어떤 일을 하든, 동원하는 수단이 어떤 것이든 너를 타락시키고, 사탄의 지배를 받게 하며, 죄악의 늪에 빠지게 한다. 이것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사탄의 수단이다.

사탄이 사악하다고 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결과가 무엇인지, 사탄이 사람에게 어떠한 성품과 본질적인 것을 심어 주었는지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사탄의 사악함을 증명해야 한다. 너희 모두 내용을 조금은 알고 있으니 말해 보아라.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사람에게 어떤 패괴 성품이 나타나겠느냐? (교만함, 이기주의, 비열함, 교활함, 간사함, 음흉함, 악랄함, 인간성 상실이 나타납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성이 없는 것이다. 다른 형제자매들도 말해 보아라.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드러내는 전형적인 성품으로는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 잘난 체하는 것, 탐욕스러운 것, 이기적인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된 후 물질과 돈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대적하며 거역하지요.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양심과 이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너희가 말한 것은 대부분 비슷하고 지엽적인 내용이 많구나. 종합해 보면 패괴된 인류에게 드러나는 가장 두드러지는 성품은 교만함과 간사함, 악랄함, 이기주의다. 그러나 너희가 빠뜨린 것이 한 가지 있다. 너희는 사람이 양심, 이성, 인간성을 상실한다고 했는데, 굉장히 중요한 한 가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배반이다. 모든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갖게 되는 이 성품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배반이란 결과를 초래한다. 하나님이 아무리 사람에게 말씀하고 사역해도, 사람은 그것이 진리임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즉,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결과이다. 사람의 패괴 성품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식 중에, 즉 사람이 배우는 지식, 사람이 알고 있는 과학, 미신, 전통문화, 사회 풍조 중에 사람으로 하여금 정의와 불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거룩함과 사악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기준이 있느냐? (없습니다.) 기준뿐만 아니라 근거도 전무하다. 사람이 ‘거룩함’이란 단어는 안다 해도 거룩함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탄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그런 것들이 진리를 깨닫게 하겠느냐? 점점 더 사람다운 인성으로 살게 하겠느냐? 갈수록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게 하겠느냐? (아니요.) 분명 아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지도, 진리를 깨닫게 하지도, 거룩함과 사악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사람을 갈수록 타락시키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사탄이 사악하다고 하는 것이다. 사탄의 사악한 본질에 대해 많은 분석을 하였다. 사탄의 본질 중에, 그러니까 너희가 알고 있는 사탄의 본질 중에 거룩하다고 할 만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탄의 본질 중에 하나님과 비슷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사탄의 행위 중에 하나님과 비슷한 부분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이제 묻겠으니 너희만의 표현으로 대답해 보아라. 하나님의 거룩함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우선, 하나님의 거룩함이란 무엇에 대한 것이냐?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특정 성품에 대한 것이냐?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것입니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면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주제의 결론은 하나님의 본질이다. 먼저, 우리는 사탄의 사악함으로 하나님의 본질을 부각시켰다. 그럼 너는 하나님에게서 사탄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보았느냐? 인류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보았느냐?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하지 않으시고, 이기적이지 않으시며, 배반하지 않으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추가할 내용이 있느냐? (하나님은 사탄의 패괴 성품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십니다. 사탄에게는 부정적인 것만 있고 하나님께는 긍정적인 것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특히 저희가 막막해하고 실의에 빠졌을 때 줄곧 저희 곁에서 보살피고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간사함도 기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참된 본질입니다.) 훌륭하다! (하나님께는 사탄의 그 어떤 패괴 성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허풍을 치거나 헛된 약속을 하지 않으시며, 간사함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신실하고 진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직한 사람이 되고, 지혜를 가지게 하시며, 선과 악, 그리고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분별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 말했느냐? 너희가 이야기한 것에 만족하느냐?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 나는 너희 모두의 마음속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감성적인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느낄 수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하나님께 은혜, 축복, 깨우침과 빛 비춤, 심판과 형벌 등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얕게나마 알고 있다.

오늘 나눈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대부분은 생소하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만큼 앞으로 너희는 길을 가면서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체험하면서 조금씩 느끼고 알아 가야 한다. 지금 너희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인식은 오랫동안 체험하고, 증명하고,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날엔가 하나님의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본질이 흠 없다는 것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 즉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심 없이 모든 것을 내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흠잡거나 비난할 만한 구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본질은 하나님이 자신의 신분을 자랑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로 묵묵하고 진실하게 모든 사람을 대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본질은 공허하지 않고, 이론이나 학설이 아니며, 지식이나 사람에 대한 교육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님 자신이 일할 때 참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하나님 자신이 드러낸 소유와 어떠함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과 말씀은 모든 이에게 더없이 큰 가치와 의미를 가지기에 사람은 이러한 본질을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게 될 때, 너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게 될 때, 너는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란 말의 진실한 함의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너에게 예비해 준 모든 것을 더는 저버리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본질은 거룩하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너에게 밝고 바른 인생길을 걷게 하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너에게 진정한 인성으로 살게 하고 진리를 깨닫고 갖추게 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너에게 진리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한다. 또한,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멀리하고 사탄의 박해와 지배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도 네가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나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구원할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또 오직 하나님만이 사심 없이 너를 구원하고, 너의 미래, 운명, 인생을 끝까지 책임지며,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다. 이는 그 어떤 피조물과 비피조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본질을 지닌 피조물과 비피조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사물도 너를 구원하고 인도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질이 사람에게 갖는 중요성이다. 나의 이 말들이 너희에게는 그저 도리적으로 작은 도움을 받는 것 정도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네가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한다면 지금의 이 말이 앞으로 체험해 나가는 과정에서 네 운명을 바꾸고 올바른 삶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다. 이해했느냐? 그럼 이제 하나님의 본질을 알아 가는 데에 좀 관심이 생기느냐? (네.) 관심이 생긴다니 좋은 일이구나. 그럼 오늘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아 가는 것에 대한 주제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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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임을 시작할 때 너희가 보인 뜻밖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어떤 사람들은 감격하거나 감사한 마음 등 여러 가지 생각에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이는 비난할 만한 사안도 아니고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너희가 한 가지를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이겠느냐? 우선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가 아까 한 행동이 엎드린 것이냐, 아니면 무릎 꿇고 절한 것이냐? 말해 줄 사람이 있느냐? (엎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엎드렸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럼 엎드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경배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럼 무릎 꿇고 절하는 것은 무엇이냐? 여태까지 너희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으니 오늘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너희는 평소 예배 모임에서도 엎드리느냐? (아닙니다.) 그럼 기도할 때는 엎드리느냐? (네.) 여건이 되면 기도할 때마다 엎드리느냐? (네.) 좋구나. 그렇지만 나는 오늘 너희가 한 가지를 깨달았으면 한다. 하나님이 무릎 꿇은 것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두 부류의 사람에 한한다. 성경이나 영적 인물의 행위를 참고할 필요 없이 이 자리에서 너희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 주겠다. 먼저, 엎드리는 것과 무릎 꿇고 절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이 무릎 꿇고 엎드렸을 때, 하나님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누군가를 부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소명을 받은 사람에게 맡길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은 그가 엎드리게 하는데, 이것이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부류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엎드려 절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이것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두 가지 부류의 사람에게만 해당한다. 그렇다면 너희가 어떤 부류에 해당하는지 말할 수 있겠느냐? 이 말이 사실이긴 하지만 감정을 좀 상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도할 때 무릎을 꿇는 것은 따질 것이 없다. 그것은 정당한 것이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사람은 기도할 때 대부분 무언가를 간구하고, 하나님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교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에 치우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오늘 너희가 한 행동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너희가 이러한 원칙을 확실히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알겠느냐? (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럼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무릎 꿇을 기회는 없는 것이겠느냐? 영원히 없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알겠느냐? 서글픈 마음이 들지는 않느냐? (아닙니다.) 그럼 다행이다. 내가 한 말이 너희에게 힘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마음으로 이해하도록 깨달음을 줄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류가 많아지긴 했으나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도 멀다. 나는 너희가 조급한 마음에 이런 행동을 하거나 그런 바람이나 마음을 표출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 너희가 한 행동은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거나 표출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그 마음을 느꼈기에 너희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나서 너희에게 안부를 물으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너희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기에 말 한 마디, 일 하나를 할 때에도 최선을 다해 너희를 돕고 인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너희가 모든 일에 정확한 인식과 시각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겠느냐? (네.) 아주 좋다. 사람이 하나님의 여러 측면의 성품, 소유와 어떠함, 사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는 하나 대부분 문자적인 것, 도리적인 것, 생각에만 머물러 있다. 사람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실제 체험 과정에서 진정으로 알고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일깨우고는 있으나 사람의 마음이 어느 정도까지 되살아날지는 아직도 먼 길을 가 봐야 안다. 나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 냉대받거나, 버림받거나, 미움받는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사람이 굳은 의지를 가지고 아무 후회 없이, 또 주저함 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을 갔으면 한다. 어떠한 걱정도, 부담도 없이 말이다. 네가 이전에 어떤 잘못을 했든, 어떤 잘못된 길을 갔든, 어떤 과오를 남겼든 그것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에서 짐이나 부담이 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 중 가장 귀한 것이다. 이제 너희 마음은 좀 괜찮아졌느냐? (네.) 너희가 모든 일과 내가 한 말을 바르게 대하기를 바란다. 오늘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하자!

2014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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