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케 된 사람만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은 사실 사람이 사탄을 저버리고 조상을 저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말씀의 심판은 사람의 패괴 성품을 들추어내고 사람에게 인생의 본질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한 차례 또 한 차례 계속되는 심판이 사람의 마음을 찌른다. 모든 심판은 사람의 운명에 직접 관련된 것으로, 의도적으로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하여 사람이 그런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사람은 인생과 이 더러운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알게 되며, 사탄이 패괴시킨 인류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이렇게 형벌하고 심판할수록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찌를 수 있고, 사람의 영을 불러 깨울 수도 있다. 이런 심판의 목적은 아주 깊이 패괴되고 가장 심하게 속은 사람의 마음과 영을 깨우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영이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의 영이 이미 오래전에 죽어 하늘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있는 줄도 모르며, 더욱이 자신이 죽음의 나락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자신이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 지옥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자신의 썩은 시체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죽음의 음부에 떨어진 존재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지상 만물이 이미 인류에 의해 파괴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오늘날, 창조주가 땅에 와서 구원 가능한 패괴된 사람들을 찾고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온갖 연단과 심판을 겪었지만 사람은 시종일관 무감각하여 거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사람은 너무도 타락하였다! 이러한 심판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자비한 우박과도 같겠지만 사람에게는 가장 이로운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심판하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고 고해의 심연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으며, 이렇게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을 음부에서 건져 내기 힘들다. 사람의 마음이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사람의 영이 사탄에게 짓밟혔기 때문이다. 극도로 타락한 너희들을 구원하려면 온 힘을 다해 불러 깨우고 심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차디찬 너희의 마음을 깨울 수 있다.

너희의 육, 사치스러운 욕망, 탐욕, 정욕이 너희 몸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이런 것들이 계속 너희의 마음을 통제하고 있어 너희는 이 봉건적이고 타락한 생각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너희는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도,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도 없고, 그저 이런 것들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너희는 이 같은 인생이 고통스럽기 그지없고 이런 세상이 너무나 어둡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런 삶을 변화시킬 용기가 없다. 그저 이런 실생활에서 벗어나고 영혼을 제도(濟度)하여 하늘나라같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너희는 고생을 겪으며 자신의 현재 삶을 바꾸려 하지 않고, 이러한 심판과 형벌 속에서 자신이 진입해야 할 인생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육체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실제적이지 못한 공상만 품고 있다. 너희는 아무런 고통도 없이 쉽게 누릴 수 있는 그런 삶을 동경한다. 그것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너희가 바라는 것은 육체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려는 것도, 진리를 얻는 삶을 살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너희는 진리를 위해 살고 정의를 위해 굳게 서는 것이 찬란한 인생이라 생각지 않으며, 그런 인생이 빛나고 의미 있는 인생이라 여기지 않는다. 너희는 평생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비록 지금 너희가 이 형벌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너희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살아 내기 위함이 아니라, 앞으로 육체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함이다. 너희는 진리를 찾지 않고, 진리를 위해 굳게 서지 않으며, 더욱이 진리를 위해 살지도 않는다. 너희는 지금 진입할 것을 추구하지 않고, ‘먼 훗날’에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괴로운 눈물을 흘리면서 언젠가는 하늘에 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 너희는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너희는 늘 구주가 큰 자비를 베풀어 언젠가는 세상에서 고난받고 있는 너를 데려갈 것이며, 틀림없이 억압을 당한 너를 위해 원한을 풀어 주고 복수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너의 죄가 적단 말이냐? 하늘 아래 고통받는 이가 어찌 너 하나뿐이겠느냐? 너 스스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고통받는 것인데, 하나님이 너를 위해 원한을 풀어 줘야 한단 말이냐?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냐?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의 좋은 행위가 그리 대단한 것이냐? 그렇다고 너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 네가 좋은 일을 조금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억압을 당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너를 위해 원한을 풀어 주고 복수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선을 행했지만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자도 형벌을 받지 않았더냐? 너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고, 하나님께 너를 위해 원한을 풀어 주고 복수해 주고, 너를 출세하게 해 달라고만 할 뿐, 진리를 거들떠보지 않고 진리를 살아 내길 갈망하지 않는다. 더욱이 고통스럽고 공허한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죄에 빠진 육적인 삶을 살면서 하나님이 너를 위해 원한을 풀어 주고 네 앞에 드리운 짙은 안개를 거두어 주길 바란다. 이것이 가능하겠느냐? 너에게 진리가 있으면 하나님을 따를 수 있고, 진리를 살아 내면 하나님 말씀을 나타낼 수 있으며, 생명이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진리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고난을 겪은 자들을 위해서는 원한을 풀어 주지만, 자신만을 사랑하면서 사탄의 속임에 빠진 자들을 위해서는 원한을 풀어 주지 않는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어떻게 선함이 있겠느냐? 오로지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에게 어떻게 의로움이 있겠느냐? 선함과 의로움은 모두 진리를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냐? 이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예비한 것이 아니냐?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썩은 시체를 가진 자는 모두 악을 품고 있지 않느냐? 진리를 살아 내지 못하는 자는 모두 진리의 원수가 아니냐? 너희들은 또 어떠하냐?

네가 이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정결하지 않은 것에서 벗어나 거룩해질 수 있다면 너에게 진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본성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육을 저버릴 수 있게 된 것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정결케 된 사람이 갖춘 모습이다. 정복 사역을 하는 주목적은 사람을 정결케 하여 진리가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깨달은 진리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은 가장 의의 있다. 너희는 어둠의 권세 아래에 떨어졌고 게다가 심각한 해를 입었다. 그러므로 이 사역을 하는 목적은 너희가 사람의 본성을 깨달아 진리를 살아 내게 하는 것이다. 온전케 되는 것은 모든 피조물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만약 이번 단계에서 온전케 하는 사역만 한다면 영국이든, 미국이든, 이스라엘이든 어느 국가의 사람에게 하든 상관이 없지만, 정복 사역을 하려면 다른 선택이 필요하다. 정복 사역의 첫 단계는 단기적인 것이고, 이를 통해 사탄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전 우주를 정복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정복 사역의 시작이다. 하나님을 믿는 피조물이라면 누구나 온전케 될 수 있다. 온전케 되는 것은 사람이 오랜 시간 변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복되는 것은 다르다. 정복 대상의 표본, 모형은 반드시 가장 뒤처지고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이어야 하고, 가장 미천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가장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며, 또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거역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람만이 정복된 간증을 할 수 있다. 정복 사역은 주로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지만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정복된 간증을 하도록 하기 위해 정복 사역을 이곳에서, 너희에게 하게 되었다. 이는 정복된 간증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정복된 사람을 통해 사탄을 부끄럽게 만드는 목적을 달성한다. 정복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형벌, 심판, 저주, 폭로인데 공의로운 성품으로 사람을 정복한다.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는 것이다. 말씀의 실제와 말씀의 권병으로 사람을 정복하여 진심으로 탄복하게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정복되는 것이다. 온전케 된 사람은 정복된 후에 순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판 사역에 대한 인식이 있고 성품이 변화되었다. 또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가며, 진리를 충분히 갖추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줄 알며,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을 수 있고 자신만의 굳센 의지가 있다. 온전케 된 사람은 하나님 말씀 체험을 통해 진리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이 생긴 사람이고, 정복된 사람은 진리를 알지만 진리의 참뜻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정복된 후 사람이 순종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순종은 심판을 통해 얻은 성과이다. 그러나 많은 진리의 참뜻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한 상태이다.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진리에 진입하지 못하고, 진리를 알기만 할 뿐 체험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온전케 되는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에는 형벌도 있고 심판도 있으며 생명 공급도 따른다. 진리 진입을 중시하는 사람은 온전케 될 사람이다. 온전케 된 사람과 정복된 사람의 차이점은 바로 진리에 진입했는지에 있다.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진입하고, 진리를 살아 낸 사람은 온전케 된 사람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 다시 말해 진리를 살아 내지 못하는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지금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면 그는 정복된 사람인 것이다. 만약 정복된 사람이 진리를 찾지 않고, 따르고는 있지만 진리를 살아 내지 못하고, 진리를 듣고 보기만 하고 진리를 살아 내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없다. 온전케 된 사람은 온전케 되는 경로 중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진리를 실행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여 온전케 된 것이다. 정복 사역이 끝나기 전에 끝까지 따라온 자는 정복된 자라 할 수는 있지만 온전케 된 자라고 할 수는 없다. 온전케 된 사람이란 정복 사역이 끝난 후에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며, 정복 사역이 끝난 후 환난에서 굳건히 서고 진리를 살아 낸 사람이다. 정복되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은 사역의 절차 및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진입한 정도에 따라 구분한다.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지 못한 자, 즉 진리가 없는 자는 결국 도태될 것이다. 진리가 있는 자, 진리를 살아 낸 자만이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베드로처럼 사는 사람은 모두 온전케 된 사람이고, 나머지는 모두 정복된 사람이다. 정복된 자에게는 저주, 형벌, 진노의 사역을 하고, 공의와 저주가 임하게 하며,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내면의 패괴 성품을 들추어내어 스스로 알고 진심으로 탄복하게 만든다. 사람이 완전히 순종하게 될 때 정복 사역은 끝이 난다. 설령 대부분 사람이 진리를 알고자 하지 않더라도 정복 사역은 끝이 난다.

온전케 되는 것에는 조건이 있다. 너의 의지, 끈기, 양심 또 너의 추구를 통해 생명 체험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네가 진입해야 하는 것이고, 온전케 되는 길에 필요한 요건이다. 누구나 온전케 하는 사역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추구하는 자는 누구나 온전케 될 수 있다. 모두에게 온전케 될 기회와 조건이 주어지며, 여기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 온전케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주로 사람의 추구에 달려 있다. 진리를 사랑하는 자, 진리를 살아 낼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온전케 될 수 있다. 하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 하나님이 칭찬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원하는 생명이 없다. 다시 말해, 온전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온전케 하는 사역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일 뿐,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 아니다. 반면 정복 사역은 단지 사탄과 싸우기 위한 것이다. 즉, 사람을 정복함으로써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다. 이것이 주요한 사역이며, 전례 없는 가장 새로운 사역이다. 이번 사역의 주된 목적은 모든 사람을 정복하고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 사역은 새로운 사역이 아니다. 육신의 사역 기간 동안 모든 사역의 목적은 주로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혜시대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 주된 사역이었다. 사람을 얻는 것은 육신으로 거할 때 추가적으로 했던 사역이며,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 했던 사역이다. 예수가 사역하러 온 주요 목적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죽음의 속박과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것, 즉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야 점차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물론 예수가 사역하는 시기에 그도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중 하나였으나 그때는 온전케 되지 않았다. 그는 예수가 사역을 끝낸 후에 조금씩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온전케 된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온 것은 단기간 내에 핵심적인 사역을 완성하는 것일 뿐, 오랜 시간 사람과 함께 살면서 의도적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런 사역을 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이 완전히 온전케 된 뒤에 사역을 끝내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가 성육신한 목적도 의의도 아니다. 그는 단지 사람을 구원하는 단기적인 사역을 할 뿐이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기나긴 사역을 하지는 않는다.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은 대표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고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지만,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을 그만한 수준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육신으로 사역하는 기간에 말씀한 진리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또한 따로 사도를 일으켜 오랜 시간 목양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온전케 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성육신 하나님은 이 사역을 하지 않는다. 그는 생명의 도를 말씀하여 사람이 깨닫게 하고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할 뿐이지 사람이 진리를 실천하는 동안 계속 동반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 진리를 완전히 깨닫고 진리를 완전히 얻는 날까지 사람과 함께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본격적으로 들어섰을 때, 온전케 되는 정상 궤도에 올랐을 때는 육신으로 하는 그의 사역이 끝나는 때이다. 물론 이때는 그가 사탄을 완전히 물리치고 세상을 이긴 때이다. 이때에 그는 사람이 진리에 진입했는지, 사람의 생명이 어느 정도 자랐는지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그의 육신이 관여할 일도 아니고, 성육신한 하나님이 해야 하는 사역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완수하고 육신의 사역을 끝낸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할 수 없는 사역을 할 뿐이며, 장기적인 사역이 아니라 단기간의 구원 사역을 한다.

너희의 자질을 높이는 것은 내 사역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너희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너희의 자질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온전케 하는 사역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너희에게 추가적으로 하는 사역이다. 지금 너희에게 하는 사역은 너희의 필요에 따라 한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하는 것이지 온전케 될 모든 사람이 진입해야 할 길은 아니다. 다만 너희가 과거에 온전케 된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자질이 부족한 관계로 너희에게 이 사역을 하는 데에 막히는 부분이 하도 많기 때문이다. 온전케 할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너희에게 별도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자기가 맡은 사역을 하기 위해 땅에 왔기 때문에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으며, 사람의 가정사와 사람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으며 그의 소관도 아니다. 하지만 너희의 자질이 내가 원래 요구했던 자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하기 때문에 사역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역은 반드시 중국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데, 너희의 지식수준이 너무나 낮아서 어쩔 수 없이 너희에게 기본 지식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별도의 사역이라고 말했지만 너희가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너희가 온전케 되는 데에 이로운 것이다. 사실 지식수준, 사람됨의 기본 상식, 생활 상식은 너희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 내가 말해 줄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것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것들을 채워 주기 위한 사역을 추가하게 된 것이다. 너희가 나에 대해 많은 관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자질을 높일 것을 요구하였다. 나는 일부러 이 사역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나의 사역은 너희를 정복하는 것이고, 다시 말해, 심판으로써 너희를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너희가 진입해야 하는 생명의 도를 분명히 알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말씀으로 너희를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너희의 지식수준이 어떠하든, 생활 상식이 있든 없든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정복 사역의 성과와 앞으로 온전케 될 것을 위해 추가한 것일 뿐, 정복 사역에 포함된 절차는 아니다. 지금 너희는 자질이 부족한 데다가 게으르고 태만하고 어리석고 무디며 미련하기까지 하여 너무도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먼저 자질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온전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마음과 생각이 맑아야 하며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해야 한다. 만약 네가 공허한 삶을 원치 않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모든 일을 다 참답게 대하는 사람, 매우 정상적인 인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너는 온전케 될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너희에게 하는 이런 사역은 사역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을 정복한 후에는 한 무리를 온전케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많은 사역도 너희를 온전케 하기 위해 예비하는 것이다.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온전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너희에게 정복의 사역만 하고 끝이 난다면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을 얻을 수 없지 않겠느냐? 지금의 사역은 앞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해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나는 정복하는 사역만 하지만 내가 말하는 생명의 도는 앞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해 예비하는 것이다. 정복 이후 사역의 중심은 바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며, 정복 역시 온전케 하기 위해 기초를 닦는 것이다. 사람은 정복된 후에야 온전케 될 수 있다. 지금은 정복에 초점을 맞추고, 이후에는 진리를 구하며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할 것이다. 온전케 되는 것은 사람의 적극적인 진입, 즉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이 길을 가면서 어느 정도로 체험했는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순결한지, 진리를 얼마나 정확하게 실천하는지와 관련이 있다. 온전케 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사람으로서의 상식이 갖춰져야 한다. 이것은 기본적인 조건이다. 정복된 후 온전케 될 수 없는 사람은 봉사만 하는 존재이며, 결국에는 유황불 못에 떨어지고 무저갱에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성품의 변화가 없고 여전히 사탄에게 속하기 때문이다. 온전케 될 조건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사용 가치가 없는 폐기물이자 도구에 불과하며 불의 시련을 통과할 수 없다! 지금 너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느냐? 사탄을 도대체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느냐? 너희의 의지는 굳건해졌느냐? 사람으로서의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느냐? 삶이 변화되었느냐? 새로운 삶이 생겼느냐? 인생관에 변화가 있느냐? 만약 이러한 변화가 없다면 설령 네가 물러가지 않는다 해도 정복만 되었을 뿐 온전케 될 수는 없다. 이후에 너를 검증할 때, 네가 진리를 갖추지 못했고, 인간성도 비정상적인 데다가 짐승처럼 미천하다면 너는 정복만 되었을 뿐이고 정복 대상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주인에게 채찍질을 당해 주인을 보면 두려워 감히 성질을 부리지 못하는 나귀와 같은 것이다. 네가 바로 그 정복된 나귀이다. 만약 사람이 적극적인 면이 없이 소극적으로 두려움만 갖거나, 모든 일에서 우유부단하고 어떤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하거나, 또는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고 언제나 실행 길이 없거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더더욱 없거나,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느냐? 이는 네가 아무 가치 없이 사는, 그저 정복된 나귀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정복되었다는 것은 그저 네가 큰 붉은 용을 저버릴 수 있고, 그것의 권세에 굴복하려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아무런 원망도 없이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기를 원한다는 뜻일 뿐이다. 적극적인 면에서는 어떠하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느냐?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느냐? 이러한 것들을 할 수 없다면 네가 하나님께 얻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너는 그저 정복된 나귀에 불과하다. 너에게 취할 수 있는 부분이 없고, 성령의 역사가 없으며, 인간성도 결핍하다면 너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없다. 너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하고 이방의 짐승이나 산송장보다 백배는 우월해야 한다. 그 정도가 된 사람이어야 온전케 될 자격이 있다. 인간성과 양심이 있어야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에 합당하다. 너희가 온전케 되면 그때야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온전케 된 사람이야말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만이 더 힘 있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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