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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 7

너희는 인간성이 너무나 부족하고 너희의 삶은 너무나 천하다. 너희는 인간성이 없고 식견이 부족하므로 정상 인성에 관한 것들을 갖출 필요가 있다. 양심과 이성을 겸비하고 식견을 갖추는 것, 말솜씨를 다듬고 일을 판단하는 법을 아는 것, 청결에 신경 쓰는 것, 정상인의 풍격을 지니는 것은 모두 정상 인성에 관한 지식에 속한다. 이런 것을 올바르게 행할 수 있다면 너희의 인성은 합격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 너희는 영 생활의 모든 것을 갖춰야 한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행한 모든 사역을 인식하고, 그가 한 말씀을 체험해야 한다. 너는 그의 안배에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피조물의 본분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 네가 진입해야 할 두 측면이다. 하나는 인성 생활을 갖추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영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일부 터무니없는 자들은 인성에 관한 것만 갖춘다. 겉으로 보기에 그런 자에게서는 어떤 문제점도 발견할 수 없다. 그의 말과 말투는 모두 적절하며, 외관상의 차림새도 단정하고 바르다. 그러나 내면에는 갖춰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는 그저 표면적인 정상 인성만 갖춘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떻게 먹고 입고 말해야 할지만 신경 쓴다. 심지어 어떤 이는 바닥을 쓸고 이불을 개고 청소하는 등의 일에만 열을 올린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훈련이 잘 되어 있지만 그에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나 형벌, 심판, 시련, 연단에 대한 인식을 묻는다면 그는 아주 사소한 체험조차 말하지 못한다. 그에게 “하나님이 땅에 오셔서 주로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의 사역과 예수님의 사역은 어떻게 다릅니까? 여호와의 사역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그들은 모두 한 분이십니까? 그분은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아니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까?”라고 질문하면 그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외관을 번지르르하게 꾸민다. 자매들은 ‘한 송이 꽃’처럼 치장하고, 형제들은 귀공자나 부잣집 도련님처럼 멋을 내며 먹고 입는 등의 겉면의 것에 치중한다. 그러나 내적 세계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을 정도로 궁핍하기 그지없다. 이러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또 어떤 사람들은 밥 빌어먹는 거지들처럼 입고 다니는데, 그런 자들을 보면 딱 동아시아의 노예 상(相)이다! 너희는 정녕 너희에 대한 내 요구를 모르는 것이냐? 너희가 대체 무엇을 얻었는지 서로 교제하고 나누어 보아라! 그렇게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고도 너희가 얻은 수확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낯부끄럽지도 않으냐?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참된 길에서 몇 년이나 추구했음에도 너희의 분량은 여전히 이토록 보잘것없다! 너희 가운데 있는 잘난 아씨들을 보아라. 하나같이 꽃처럼 치장하고는 서로 비교하고 있다. 대체 무엇을 비교한단 말이냐? 누가 더 잘 누리고 있는지, 누가 더 많이 얻어 냈는지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내가 ‘모델’이라도 모집하러 온 줄 아느냐? 수치심도 없구나! 너희의 생명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추구하는 것은 모두 너희의 그 지나친 욕심이 아니더냐? 너희는 너희 스스로가 더없이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러나 제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할지라도 너는 분토 속에서 굴러다니는 구더기가 아니냐? 오늘날 너희가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된 것은 내가 너희를 전례 없이 높여 주었기 때문이지, 너희의 그 ‘잘난 얼굴’ 때문이 아니다. 네 출신을 아직도 모르느냐? 생명에 대해 말하면 너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 마디도 못하면서 앉아서 치장이나 하고, 얼굴에 분칠할 생각이 드느냐? 또 너희 가운데 있는 한량들을 보아라. 온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돼먹지 못하게 행동하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전혀 단정치 않다. 거기에 사람의 모양이 있느냐? 남녀를 막론하고, 너희 각자가 늘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너희가 누구 덕에 밥을 먹고 있는지 모르느냐? 네가 입고 있는 옷과 네 손에 들린 수확물, 그리고 너의 그 배를 만져 보아라. 이렇게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심혈의 대가로 얻은 결실은 무엇이냐? 그런데도 여기저기 놀러나 다니고 냄새 나는 몸뚱이를 꾸밀 생각이 드느냐? 거기에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이냐! 정상인이 되라고 했거늘, 지금의 너는 정상은 고사하고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그런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내 앞에 서는 것이냐?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육체를 드러내며, 늘 육체의 정욕 속에서 살고 있는 그런 인성을 보면 네가 바로 더러운 귀신과 악령의 후예가 아니냐? 나는 이런 더러운 귀신을 오래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네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를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 네가 정욕과 육체를 방종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네가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네 눈이 무엇을 탐내고 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으냐? 너희 아씨들이 꽃처럼 단장하는 이유는 자신의 육체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냐? 남자들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되느냐? 그들이 진정 너희를 이 고해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줄 수 있겠느냐? 또한, 너희 한량들이 번지르르하게 멋을 내는 것은 전부 자신의 ‘멋들어진 용모’를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냐? 그것은 또 누구를 위함이냐? 여인들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되느냐? 너희를 죄짓게 하는 근원이 아니더냐? 나는 너희 모든 남녀 족속들에게 적지 않은 말을 했지만, 너희가 듣고 따른 것은 극히 적다. 너희는 귀가 먹었고, 눈이 흐려졌으며, 마음은 강퍅하고, 나아가 온몸은 정욕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속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는구나. 오물 속에서 굴러다니는 너희 구더기들에게 누가 다가가고 싶겠느냐? 명심해라. 너희는 내가 분토 속에서 들어 올린 존재로, 원래 정상 인성이 없었다. 내가 너희에게 요구한 것은 정욕을 과시하라는 것도, 마귀에게 오랜 세월 조련된 그 냄새 나는 육체를 방종하라는 것도 아니라 너희가 원래 갖추지 못한 ‘정상 인성’을 갖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치장하는데, 더 깊이 빠질까 두렵지 않으냐? 너희는 본디 죄에 속한 자들이다. 그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온몸은 정욕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도 모른단 말이냐? 나아가 그 정욕이 너희의 옷을 적시며 스며 나와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귀신의 몰골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너희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 아니냐? 너희의 마음, 너희의 눈, 너희의 입술은 모두 더러운 귀신에게 더럽혀지지 않았느냐? 전부 불결한 것이 아니냐? 너는 일만 저지르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보다 성결한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겉으로 화려한 옷을 차려입으면 너희의 그 더러운 영혼을 가릴 수 있다고 여기느냐? 어림없다! 거짓을 꾸며 낼 생각도, 자신의 용모를 뽐낼 생각도 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라. 너희는 서로 정욕을 드러내지만, 그 대가로 얻는 것은 영원한 고통과 무정한 채찍질이다! 그런데 서로 추파를 던지며 연애질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것이 너희의 올곧음이냐? 그것이 너희의 강직이며 절개더냐? 나는 너희들 중 술객 따위들과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는 젊은 남녀들을 혐오한다. 그러니 가능한 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상 인성을 갖추라는 것이지, 정욕을 드러내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는 틈만 나면 언제든 기회를 이용하려 하는데, 그것은 너희에게 육적인 것이 너무 많고, 정욕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네가 겉으로 보이는 인성 생활은 그럴싸하게 잘 꾸미지만, 생명에 대한 인식을 말해 보라고 했을 때 한 마디도 못한다면 여전히 빈궁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인성 생활이 좋아지면 내면의 생명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너의 사상을 바꾸고, 하나님을 믿는 관점을 바꾸며, 내면의 인식과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인 인식을 바꿔야 한다. 책망과 폭로, 공급을 통해 너 자신과 네 인생,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인식을 점차 변화시키고, 그 인식을 순수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면 사상과 일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정신적 면모 또한 달라진다. 이것이 바로 생명 성품의 변화이다. 온종일 책만 잡고 읽으라는 것도, 아침부터 밤까지 빨래나 청소를 하라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정상 인성 면에서도 어느 정도는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다. 또한, 외적인 일들을 처리할 때는 식견과 이성이 갖춰져 있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에 관한 진리를 갖추는 것이다. 생명을 갖추려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인생에 대한 생각, 특히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한 인식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을 추구하는 한 이런 것들을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는 반드시 자신의 실제 상태와 결부시켜야 한다. 즉, 실제 체험 속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후에는 실행의 길을 찾고 자신의 그릇된 마음가짐과 관념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네가 늘 이런 면에서 노력하고 이런 일들에 마음을 쏟으면, 실행의 길이 생길 것이고 공허한 느낌이 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라야 자신의 생명에 부담을 갖고 있는 사람이자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핵심적인 것들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생명에 무책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핵심을 잡지 못하면 실행의 길도 없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도 자신의 상태에 결부시키지 못하고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 자신의 상태와 연관시켰습니다. 또한, 제가 패괴되었고 자질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런데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표면적인 것만 조금 알게 된 것이다. 육적인 즐김과 독선을 어떻게 내려놓아야 할지,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켜야 할지, 이런 것들에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자신의 자질을 높여야 할지, 어느 부분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등등 실제에 속하는 것들을 너는 전혀 모르고 있다. 단지 일부 외적인 것들만 잡아내고 자신이 확실히 패괴되었다는 것만 인식할 뿐이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을 만나 자신의 패괴에 대해 말을 하면, 자신을 인식한 것처럼 보이고 생명에 대해 부담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너의 패괴 성품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다. 이는 네가 실행의 길을 찾지 못했음을 말해 준다. 만약 네가 교회를 이끄는 자라면 너는 형제자매들의 상태를 짚어 주고 일깨워 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당신들은 정말 패역하네요. 뒤처졌어요!”라고만 말하면 되겠느냐? 도대체 어떤 면에서 패역한지, 어떤 면에서 뒤처졌는지, 구체적인 모습을 말해 줘야 한다. 즉, 그들의 패역한 상태와 사탄 성품을 지적해 그들이 진심으로 인정하게 해야 한다. 사실을 말하고, 예를 들어 문제를 설명하며, 대체 어떻게 해야 그러한 패역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말할 수 있고, 실행의 길을 가리켜 줄 수 있어야 설득력이 생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다른 이를 이끌 수 있으며,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적지 않은 진리를 교제하고 공급해 주었다. 하지만 너희는 그것을 잘 정리하여 전부 몇 개의 항목이 있는지 스스로 귀납할 줄 알아야 한다. 정상 인성에 마땅히 갖추어져야 할 몇 가지 측면, 생명 성품 변화의 몇 가지 주요 측면, 이상(異象)에 관해 더 깊이 인식하는 것, 역대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법과 체험법 등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스스로 분별하고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 궤도에 들어선 것이다. 종교계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처럼 여겨 숭배한다. 특히 신약의 4복음서를 예수의 네 측면으로 여기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전부 아주 편향되고 그릇된 인식이다. 너희는 이런 것들을 분명히 꿰뚫어 봐야 하며, 더구나 성육신한 하나님의 본질과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야 한다. 또한, 낡은 실행법, 즉 영 안에서 산다느니,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느니, 참고 견뎌야 한다느니, 권병에 순종해야 한다느니 하는 그릇되고 치우친 실행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어떻게 실행했는지, 또 지금은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리더와 일꾼은 여러 교회에서 사역할 때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어떻게 자신의 독선을 내려놓고 남 위에 군림하려는 마음을 버릴 수 있을지, 형제자매들과 함께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수립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정상적인 인성이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영 생활에는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먹고 마셔야 하는지, 하나님 말씀 중 어떤 것이 인식에 관한 것이고 어떤 것이 이상(異象)에 관한 것이며, 어떤 것이 실행의 길에 속하는지, 이런 것들을 전부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이러한 말씀은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이에게 활짝 열려 있으며, 그 누구도 편파적인 대우를 받지 않는다. 지금은 마땅히 독립적으로 생활할 능력을 키울 시점이다. 늘 남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언젠가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어지면 너희는 그때 내가 해 준 말들을 떠올릴 것이다. 환난이 오면 교회 생활을 할 수 없다. 형제자매들도 서로 교류하지 못하고 대부분 혼자 생활해야 한다. 기껏해야 현지 사람들끼리 모여서 교제를 할 텐데, 너희들의 현재 분량으로는 아직 역부족이다. 환난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굳게 서지 못한다. 오직 생명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를 충분히 갖춘 사람만이 계속 성장하면서 점차 정결케 되고 변화할 수 있다. 환난을 겪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너는 2~3일 안에 헤어 나올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그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너는 많은 글귀를 깨달은 것으로 굳게 설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의 본질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진리의 핵심을 잡지 못하며, 실행의 길이 전혀 없다면, 그때에 미망에 빠져 사탄의 유혹을 견디지도, 연단을 이겨 내지도 못하게 된다. 네게 진리가 없고 이상이 부족하면 너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족할 것이고, ‘어쨌든 죽을 것이 아닌가. 형벌을 받을 거라면 끝까지 받자! 형벌을 받든 불 못에 빠지든 할 말은 없어!’라며 자포자기할 것이다. 이런 태도는 봉사자의 시련이 왔을 때와 흡사하다. 그때 어떤 이들은 어차피 봉사자일 뿐이니 생명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흡연과 음주에 빠지고 육체를 방종하며 꺼리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아예 세상으로 돈 벌러 나갔다. 상황이 열악해지는 시기에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네가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라도 해이해지면 바로 다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고, 사탄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면 너도 모르게 사탄에게 끌려가 다시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마땅히 진리를 갖추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실행의 길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리더와 일꾼의 양육과 목양이 없더라도 너 스스로 실행할 길을 찾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며, 자신이 마땅히 갖추고 실행해야 할 진리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계속 사람과 함께하겠느냐? 어떤 이들은 관념적으로 ‘하나님, 당신이 저희를 어느 수준까지 온전케 하지 않으신다면 당신의 사역은 끝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당신을 참소할 것이니까요.’라고 생각하는데, 명심해라. 내가 말을 끝내면 곧 나의 사역도 순조롭게 완성된다. 내가 할 말을 다 했으면 나의 사역도 끝난 것이다. 사역의 완성이 바로 사탄을 물리친 증거이다. 그러면 대업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사탄의 참소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내 사역이 끝났을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희가 어떤 변화도 없다면, 그런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불필요한 사역을 하지 않는다. 내가 너를 정복하여 각 방면의 진리를 모두 명확히 깨닫게 하고, 자질을 높이며, 안팎으로 증거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야 땅에서의 내 사역이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날 내가 너희에게 행하는 사역은 너희를 정상 인성의 삶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새 시대를 여는 사역이자 사람을 새 시대의 삶으로 이끄는 사역이다. 지금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진행해 온 사역은 내가 직접 너희 가운데서 펼치고 전개했으며, 내가 직접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다 알려 주었고, 너희에게 없는 것을 전부 베풀어 주었다. 이 모든 사역이 너희에게는 생명의 공급이며, 또한 너희를 정상 인성이 있는 삶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적으로 말세의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이 모든 사역은 옛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를 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사탄을 두고 말하자면, 내가 말씀이 육신 된 것은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내가 너희 가운데서 하고 있는 사역은 현시점의 공급이자 즉각적인 구원이다. 하지만 이 짧고 제한된 몇 년 동안 모든 진리와 생명의 길, 나아가 이후의 사역까지 전부 알려 준다면, 너희는 앞으로 충분히 정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모든 말은 다 너희에게 하는 유일한 부탁이다. 내게 다른 부탁은 없다.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하는 이 모든 말이 바로 너희에게 하는 부탁이다. 현재 너희는 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말들에 내포된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언젠가 너희는 오늘의 말대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말들이 오늘은 너희에게 이상으로 자리 잡히고, 내일은 너희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 또한 오늘은 너희에게 생명의 공급이 되고, 앞으로는 너희에게 부탁이 될 것인데, 가장 좋은 부탁이 될 것이다. 내가 땅에서 사역하는 시간은 어디까지나 너희가 나의 말을 체험하는 시간만큼 길지 않기에 나는 그저 사역을 완성할 뿐이다. 그러나 너희는 생명을 추구하는 자들이므로 기나긴 생명의 여정이 필요하다. 많은 일을 겪은 후에야 생명의 말씀을 완전히 얻고, 오늘 내가 한 말들에 내포된 진정한 의미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너희의 손에는 내가 한 말과 내가 맡긴 사명이 있다. 나는 맡겨야 할 사명을 모두 맡겼으니, 그 결과가 어떻든 말씀 사역은 끝까지 한 셈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네가 생각한 것처럼 반드시 너를 어느 수준까지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너의 관념대로 일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은 하루 이틀 사이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신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으니 반드시 생명이 성장하는 체험을 해야 한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사람의 현재 자질로 어느 수준까지 이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일하고, 사람의 기본 자질에 따라 적절하게 요구를 한다. 만약 이 사역이 자질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면,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 진리 또한 너희에게 주는 것보다 높을 것이다. 또한 더 엄한 말씀, 사람에게 더 많은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말씀, 비밀을 더 잘 밝히는 말씀을 할 것이다. 그들 가운데서 하는 말씀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공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너희에 대한 요구는 너희에게 있어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만약 자질이 더 높은 사람에게 한다면 요구 또한 그것보다 높아질 것이다. 모든 사역은 다 사람의 기본 자질에 기반하여 한다. 지금 사람을 이 정도로 변화시키고 정복한 것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행한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관념으로 이 단계 사역의 성과를 가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너희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아야지, 스스로를 너무 높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처음에 너희는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거지들이었다. 너희를 네가 상상하는 수준까지 만들고, 큰 이상을 본 것처럼 모두 진심으로 탄복하여 땅에 엎드리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적을 보지 않고도 오롯이 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가 아무리 치밀하게 살펴본다 할지라도 완벽하게 믿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변화가 생기겠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원래 가지고 있던 믿음마저 줄어들고, 심한 경우에는 사라지기까지 한다. 너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말씀이 응하는 것을 보기 전에는 완전히 믿지 않으며, 이적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기 전에 하나님께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믿는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각 부분의 진리를 모두 분명히 말했으니 모든 진리가 다 갖춰졌고, 진리마다 서로 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너의 실행뿐이다. 내가 길을 가리켜 주었으니 앞으로는 너 스스로 실행해야 한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다 현실 상황에 기반한 요구 사항들이다. 나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 사람이 내면에 갖추고 있는 것에 근거해 일을 한다. 실제의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실제적인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실제 상황과 필요에 맞춰 사역하지,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일을 할 때 사람에게 강요하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네가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너 자신의 실제 상황에 근거한다. 나는 네게 모든 진리를 명확히 말해 주었으므로 너를 통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받는 핍박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결혼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결혼이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기존에 갖고 있던 것들마저 잃게 되는 경우가 된다. 이것은 너의 실제 상황과 너 자신의 의지에 달린 일이지, 규정이나 제도로 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온종일 “하나님의 사역은 현실적이고 우리의 실제 상황에 근거하기에 실제적이다.”라고 외친다. 그런데 그것이 대체 어떻게 실제적인지, 너는 알고 있느냐? 온종일 쓸데없이 말로만 외치지 말라! 하나님의 사역은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며, 어떤 규례도 없이 전부 자유롭고, 모든 것을 공개하고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몇 가지 원칙에는 어떤 세부 사항들이 들어 있느냐? 어떤 사역이 이러한지 말할 수 있겠느냐? 너는 반드시 구체적인 상황들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하며, 다방면의 체험 간증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을 확실히 깨닫고 인식해야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만약 누군가 네게 “말세에 성육신하여 땅에 오신 하나님은 어떤 사역을 하셨습니까? 당신들은 왜 그분을 실제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실제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까? 그분의 실제 사역과 구체적인 내용들을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하나님도 예수님처럼 말씀이 육신 되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두 분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공통점은 또 무엇입니까? 두 분이 한 사역은 각각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너는 여기에 대답할 수 있겠느냐? 이는 모두 증거와 관련된 일이다! 너는 이러한 일들을 소홀히 대해선 안 된다. 또 어떤 이는 “오늘의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실제적입니다. 그분은 이적과 기사를 전혀 나타내시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정말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느냐? 너는 정말 알고 있느냐? 내가 대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느냐?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의 사역과 말씀이 모두 이적이 아니냐? 이적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말하느냐에 달렸고 누구를 대상으로 한 말인지에 달렸다. 그는 교회에 가지 않고도 사람의 상태를 밝히 지적했으며,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 사람들을 움직였다. 이것이 이적이 아니겠느냐? 말씀만으로 사람을 정복하여 그 어떤 미래나 희망이 없다고 할지라도 진심으로 그를 따르게 만들었다. 이것 역시 이적이 아니겠느냐? 그는 말씀만으로 사람들이 환희 또는 슬픔을 느끼게 하거나 연단 또는 형벌을 받는 차원으로 이끌어 간다. 마음을 찌르는 말 몇 마디가 사람에게는 형벌이 되니 이것이 초자연적인 일이 아니겠느냐?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 너는 오랜 세월 성경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깨닫거나 밝히 알지 못했고, 어떻게 해도 낡은 전통적 믿음법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성경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으니 이것이 초자연적인 일이 아니겠느냐? 땅에 온 하나님이 어떠한 초자연적인 일도 하지 않는다면 너희를 정복할 수 있겠느냐? 그의 비범한 신성으로 역사하지 않았더라면 너희 중 누가 복종하겠느냐? 네 눈에는 평범한 사람이 사역하고 너희와 함께 생활하는 듯할 것이다. 그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반인의 외형을 하고, 정상 인성의 옷을 입었지만, 사실 사역할 때는 신성으로 한다. 정상 인성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 즉 하나님 자신이 사역한다는 것이다. 단지 정상 인성을 통해 사역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은 정상적이면서도 초자연적이다. 그가 하는 사역을 사람은 하지 못한다. 일반 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을 했다면 당연히 비범한 사람이 한 것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신성의 비범함이지 인성의 비범함이 아니다. 신성은 인성과 같지 않다.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 또한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이런 사역을 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차이점이다. 네가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신이 아니며, 초자연적인 일들은 절대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지극히 실제적으로 말씀하시고 지극히 실제적으로 교회에 가서 사역하십니다. 그분은 날마다 우리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상태를 짚어 주십니다. 정말 실제적입니다! 또, 그분은 우리와 함께 생활하십니다. 그분의 모든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어서 아예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 정도입니다. 가끔 분노를 표출하실 때면 우리는 그분이 분노할 때의 위엄을 볼 수 있고, 웃으실 때면 그분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그분은 형상이 있고 뼈와 살이 있으신, 지극히 실제적인 하나님 자신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완벽한 증거가 될 수 없다. 너의 그러한 증거가 다른 이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의 실상과 본질을 증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증거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너의 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그가 어떻게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며 변화시키는지, 어떻게 사람을 진리의 실제 속으로 이끌어 가는지, 따라서 그에 의해 정복되고 온전케 되며 구원받게 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증거한다는 것은 바로 그의 사역과 너의 모든 체험을 말하는 것이다. 그가 한 사역만이 그를 대변할 수 있고, 그의 사역만이 그의 모든 것을 명확히 공개할 수 있으며, 그의 사역만이 그를 증거할 수 있다. 그의 사역과 음성은 직접적으로 영을 대변한다. 그가 한 사역은 영이 한 사역이며, 그가 한 말씀은 영이 한 말씀이다. 그저 말씀으로 된 육신을 통해 선포된 것일 뿐, 사실상 그것은 영의 선포이다. 그가 한 사역과 말씀은 그의 본질을 대변한다. 만약 육신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 온 하나님이 말씀도, 사역도 하지 않으면서 너희에게 그의 실제와 정상적인 면, 전능을 인식하라고 한다면 알 수 있겠느냐? 영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그의 육신의 성질이 어떤지 알 수 있겠느냐? 너희가 그의 사역을 일일이 체험했기에 그를 증거하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너희가 어떤 체험도 하지 못했다면 그런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을 증거할 때는 정상 인성의 겉모습은 물론이요, 그가 한 사역과 인도한 길까지 증거해야 한다. 네가 그에게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어떤 면에서 온전케 되었는지를 증거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에 관해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어디를 가든 “땅에 오신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정말로 실제적입니다! 그분은 조금도 초자연적이지 않으시며, 어떤 이적과 기사도 나타내지 않고 우리를 얻으셨습니다!”라고 외친다면 다른 사람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건 대체 어떤 것입니까? 이적과 기사 없이도 당신을 정복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그 질문에 “어떤 이적과 기사도 없이 말씀만으로 우리를 정복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역으로 우리를 정복하신 거죠.”라고 대답한다면, 결국 본질적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구체적인 내용도 말하지 못한다면,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성육신한 하나님이 사람을 정복했다는 것은 그의 신성에서 나온 말씀으로 정복했다는 것이다. 이는 인성으로 이를 수 없는 일이며, 평범한 사람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정상인 가운데 최고의 자질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불가능하다. 그의 신성은 어떤 피조물보다도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에게는 비범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창조주는 피조물보다 높기 때문이다. 피조물은 창조주보다 높을 수 없다. 만약 네가 그보다 높다면 그는 너를 정복할 수 없다. 그가 너보다 높아야 너를 정복할 수 있다. 전 인류를 정복할 수 있는 이는 창조주뿐이다. 그 외에는 누구도 이 사역을 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증거이며, 네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측면의 증거이다. 네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형벌, 심판, 연단, 시련, 좌절, 환난을 겪고 정복되어 앞날에 대한 기대와 자신의 속셈, 그리고 모든 육체적 이익을 내려놓는다면, 너의 마음이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정복된 것이다. 너의 생명이 그가 요구한 정도까지 성장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네가 이러한 것들을 모두 깨닫고 그가 한 일을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증거이다. 이는 실제적인 증거인 것이다! 그가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러 온 것은 사람을 정복하기 위함이지만, 그는 또한 사역을 끝마치고 시대를 끝내며 마무리 사역을 하는 자이다. 그는 모든 시대를 끝내고 전 인류를 구원한다. 또한 인류를 죄악 가운데서 철저히 구원하여 그의 피조물인 인류를 완전히 얻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네가 해야 할 증거이다. 너는 하나님의 많은 사역을 직접 목도하고 직접 체험했음에도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못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복음을 확장할 때가 되면 너는 자신의 인식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얻은 것을 전부 증거함으로써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번 단계 사역의 의의는 대체 무엇인지, 어떤 성과를 내려고 하는지, 사람에게서 이뤄진 것은 얼마나 되는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성육신한 하나님이 땅에서 행한 모든 사역을 너희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완벽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그가 행한 사역의 의의와 내용, 본질, 그리고 대변하는 성품과 사역 원칙, 이 다섯 가지 측면을 전부 밝히 말할 수 있다면, 이는 네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고, 진실로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너희에 대한 내 요구는 그다지 크지 않다. 진심으로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를 수 있다. 하나님의 증인이 되겠다는 결심이 서 있다면, 너는 그가 증오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너 자신이 그의 사역을 얼마나 체험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역을 통해 그의 성품을 알고, 그의 뜻과 인류에 대한 그의 요구를 알아야 한다. 이것으로써 그를 증거하고, 너의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네가 “저희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심판과 형벌은 지극히 혹독하며, 그의 말씀은 정말로 엄합니다. 정말 공의롭고 위엄 있어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라고만 말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공급해 줄 수 있겠느냐? 사람들에게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너는 이 심판과 형벌의 사역이 좋다는 것을 참으로 인식했느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네 성품을 드러낼 수 있느냐? 네 패역을 폭로할 수 있느냐? 네 안에 있는 그러한 것들을 없애 버릴 수 있느냐? 만약 심판과 형벌이 없다면 너는 어떻게 되겠느냐? 너는 사탄이 너를 매우 심하게 패괴시켰다는 것을 정녕 깨달았느냐? 이러한 것들이 전부 현재 너희가 갖추고 깨달아야 하는 것들이다.

이제는 하나님을 믿는 일이 너희가 상상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춤추고, 본분을 이행하고, 정상 인성의 생활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단순할 리 있겠느냐? 관건은 성과이다. 네가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책을 들고 있을 때는 얼마간 인식을 말할 수 있지만, 책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면 이는 네가 글귀상의 도리만 알고 있을 뿐, 체험으로 얻은 인식은 없다는 뜻이다. 너는 지금 핵심을 잡아야 한다. 이는 실제에 진입하는 데에 있어 관건적인 부분이다! 먼저 다음과 같이 훈련해라. 일단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 안에 있는 영적 용어들을 확실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핵심적인 이상을 찾아라. 또, 실행해야 할 부분을 찾아 하나하나 귀납한 후, 체험하는 과정에서 적용하여라. 반드시 이 핵심적인 부분을 잡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한 편 다 보고 나면 핵심적인 이상 부분과 실행 부분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상을 토대로, 그리고 실행을 삶의 지침으로 삼아라. 이는 네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실행 방법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너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며, 너희의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하다. 너희는 이러한 것들을 거의 중요시하지 않는다. 너희는 일반적으로 나태하고 진취적이지 않으며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는 경우가 많고, 어떤 이는 심지어 원망을 하기도 한다. 또한, 하나님 역사의 목적과 의의를 모르고 진리 추구를 버거워한다. 이런 사람은 모두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므로 결국에는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아무도 온전케 되거나 살아남을 수 없다. 사탄의 세력에 대항하려는 결심이 전혀 없다면, 그런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

현재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따라 너희가 추구하는 것에 성과가 있는지를 가늠하고, 그것으로 너희의 결말을 정할 것이다. 즉, 너희가 치른 대가와 너희가 행한 것들을 통해 너희의 결말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나는 너희가 추구하는 것과 너희의 믿음, 너희가 행한 것으로 너희의 결말을 드러낼 수 있다. 너희들 중 수많은 사람이 이미 구제 불능 상태이다. 이제 사람의 결말을 드러낼 때가 되었으므로 나는 어리석게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전혀 구제할 방법이 없는 사람을 다음 시대로 인도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역도 결국엔 끝이 있는 법이다. 나는 전혀 구제할 방법이 없는, 썩어 빠져 영이 없는 시체에게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을 구원하는 마지막 때이니 그렇게 불필요한 사역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망이나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으며, 이는 필연적인 흐름이다. 일이 이미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사람이 막을 수도 없고, 바꾸고 싶다고 바꿔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제, 너는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대가를 치르지 않았고, 충성을 다하지도 않았다. 오늘은 이미 때가 도래했으니 너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 내일이 되면 너는 내쳐질 것이고, 그러면 구원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설령 내 마음이 약해져 온 힘을 다해 너를 구원한다고 할지라도 너 스스로가 자신을 위해 노력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데 내가 뭘 어쩔 수 있단 말이냐? 늘 자신의 육체를 위해 계산하고 안일을 탐하는 자, 반신반의하는 자, 더러운 주술과 사술(邪術)을 부리는 자, 행음하고 추하기 그지없는 자, 여호와의 제물을 훔쳐 먹고 여호와의 재물을 도둑질하는 자, 뇌물을 좋아하는 자, 천국에 가기를 꿈꾸는 자, 거만하고 건방지며 자신의 명리를 위해 싸우는 자, 망령된 말을 퍼뜨리는 자, 하나님 자신을 모독하는 자, 늘 하나님 자신을 논단하고 비방하는 자, 패거리를 짓고 독립을 꾀하는 자,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는 자, 음란한 짓거리에 빠진 경박한 젊은 남녀와 중·노년 남녀, 사람들 가운데서 개인의 명리와 지위를 탐하는 남자와 여자들, 죄악에 빠져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모든 자들이 다 구제 불능 아니겠느냐? 음란과 죄악, 주술, 사술, 모독의 말, 망령된 말이 너희들 가운데서 성행하고, 진리와 생명의 말씀은 너희들 가운데서 짓밟혔으며, 거룩한 말씀은 너희들 가운데서 더럽혀졌다. 더러움과 패역으로 가득한 이방의 족속들아! 너희의 결말이 어떨 것 같으냐? 육체를 탐닉하고, 육적인 사술을 부리며, 음란한 죄 가운데 빠진 자들이 무슨 낯짝으로 살아간단 말이냐? 너희들이 이미 구제 불능의 구더기임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저런 요구를 한단 말이냐?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오직 육체만 탐닉하는 자들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하겠느냐? 생명의 길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거나 증거하지 않으며, 자신의 지위를 도모하고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가 아니더냐? 그들을 구원할 가치가 있겠느냐?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얼마나 관록이 있는지, 얼마나 오래 사역했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며, 경험이 얼마나 풍부한지에 달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너의 추구에 결실이 있는지에 달렸다. 구원받는 사람은 꽃이 흐드러지고 이파리가 무성하더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아니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네가 오랜 세월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한들 그게 어쨌단 말이냐? 너의 증거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네 마음은 너 자신을 사랑하고 정욕을 탐하는 마음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인간 말종이 아니겠느냐? 그런 자가 어떻게 구원받는 표본이나 모델이 될 수 있겠느냐? 너의 본성은 바뀌기 힘들고, 너의 패역은 너무나 많아 구제할 방도가 없다! 이런 사람이 바로 도태될 대상이 아니냐? 나의 사역이 끝날 때가 바로 너의 마지막 날이 임할 때가 아니겠느냐? 나는 너희 가운데서 수많은 사역과 말을 했다. 너희는 그중 얼마나 귀담아들었느냐? 얼마나 순종했느냐? 내 사역이 끝날 때가 바로 나에 대한 너의 대적과 대립이 끝나는 시점이다. 내가 사역하는 동안 너희는 늘 내게 반기를 들었고, 한 번도 내 말대로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사역을 하고 너는 자신의 ‘사역’을 하며,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세웠다. 짐승 같은 너희들은 극력 내게 맞서 왔다! 언제나 너만을 사랑하는 사람을 품으로 끌어들이려 하는데, 너희의 경외심은 어디로 간 것이냐? 속임수뿐이구나! 기만과 모독뿐, 순종과 경외는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 음란한 것을 좋아하는 호색한들은 늘 요염한 음녀들을 품으로 끌어와 ‘누리려’ 한다. 나는 그런 음란한 귀신들을 절대로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처럼 더러운 귀신들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한다. 너희의 ‘색정’과 너희의 ‘요염’이 너희를 지옥에 떨어뜨릴 텐데,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더러운 귀신, 악령 같은 너희는 한없이 가증스럽다! 보기만 해도 역겹구나! 그런 천한 것들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죄 가운데 빠져 있으면서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오늘날 이러한 진리와 길, 생명은 너희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고, 오히려 그 죄악과 재물, 지위, 명리, 육체의 쾌락, 남자의 용모, 여자의 요염함이 너희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내 나라에 들어오겠단 말이냐? 너희의 형상은 하나님보다 크고, 너희의 지위는 하나님보다 높다. 사람들 가운데서의 위세와 명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너희는 사람들이 숭배하는 우상이 되었다. 그러니 너희가 천사장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결말을 드러낼 때가 되면, 즉 구원 사역이 막바지에 이르면, 반드시 너희 중 수많은 사람이 도태될 것이다.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시체들이기 때문이다. 구원 사역 기간에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와 온화한 얼굴을 보여 주겠지만, 사역이 끝나고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이 모두 드러나면 더 이상 그런 모습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결말이 전부 드러나고, 모두가 각기 부류대로 나뉠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시대가 지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므로 그때는 더 이상 구원 사역을 하는 게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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