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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평안과 희락은 네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너는 평안과 희락을 하루 종일 기쁘게 보내는 것, 온 가족이 우환 없이 지내고 아무런 슬픔 없이 언제나 즐겁게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사람 생명의 크기와 상관없이 마음에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흐르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게다가 급여가 인상되거나 아들이 막 대학에 입학하는 등의 일들을 떠올릴 때면, 하나님께 큰 은혜를 입은 것 같아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계속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이런 평안과 희락은 성령의 함께함으로 생긴 참된 것이 아니라 너의 육이 만족을 얻음으로 생긴 것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알아야 한다. 오늘날은 은혜시대가 아니며, 떡으로 배를 불리는 시대가 아니다. 어쩌면 너는 집안의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 한없는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너의 생명이 위태롭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든 성령의 함께함이 없는 것이다. 성령의 함께함을 얻는 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네가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사람의 본분과 역할을 다하며, 네게 필요한 것을 채워 부족함을 보완하면 된다. 항상 자신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며, 진리를 분명히 깨닫게 되거나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이해함으로 기뻐한다면 이는 참으로 성령이 함께하는 것이다. 때로는 어떻게 체험해야 할지 모르는 일에 직면하거나, 교제하는 진리를 잘 이해하지 못해 몹시 애가 탄다면 그것도 성령이 너와 함께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는 생명 체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태다. 너는 성령의 함께함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야지, 이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전에 성령의 함께함과 성령의 역사는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성령이 함께하는 상황에서는 사람의 사유, 이성, 인성이 모두 정상적이다. 성격은 예전과 같으나 내면에 평안이 깃들고 외적으로 성도의 품위를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성령이 함께할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성령이 함께할 때, 사람의 생각도 정상적이다. 배가 고프면 밥이 생각나고, 목이 마르면 물이 생각나는 등등이다. 이러한 인성의 정상적인 현상은 성령의 깨우침이 아니라 사람의 정상적인 생각에 속하며, 성령의 함께함이 있는 사람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성령이 함께하면 육에서 거의 벗어난 것처럼 배고픔이나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고, 가정이 있다는 것도 망각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사실 성령이 함께할수록 사람은 더욱 정상적이 된다. 즉, 어떻게 먹고 입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물론,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고, 다 버리고 헌신하며, 충성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가져야 할 정상적인 인간성을 전혀 잃지 않으며, 굉장히 이성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사역을 되새기다 보면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고, 진리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성령의 역사는 당연히 이를 토대로 이루어진다. 사람이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성을 잃은 것이고, 이러한 상태는 비정상적이다.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정상인의 이성을 갖고 있다. 즉, 이것이 정상적인 상태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역사는 때가 있다. 반면 성령의 함께함은 일반적으로 언제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이성, 생각, 상태가 정상적이면 분명 성령의 함께함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이성과 생각이 비정상적이면 인간성도 정상적일 수가 없다. 지금 네 안에 성령이 역사하고 있다면 분명 성령의 함께함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함께함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성령은 특별한 경우에만 역사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함께하면 사람은 다만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성령의 역사는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네가 리더나 일꾼이라고 하자. 교회에서 공급하고 양육을 할 때, 어떤 말씀에서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교제하면 듣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형제자매들의 실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이는 성령이 역사하는 경우이다. 때로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다가 성령의 깨우침으로 유난히 자신의 체험에 잘 비춰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자신의 상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데, 그런 것도 성령의 역사다. 때로는 너희가 나의 말을 듣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태와 잘 결부시키고, 내 말에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 격려를 받기도 하는데, 그것도 성령의 역사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언제나 성령 역사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에게 언제나 성령의 함께함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현실적이다. 또한 언제나 정상적인 생각과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 역시 현실적이다. 이는 그에게 성령의 함께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만약 그에게 언제나 성령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깨우침과 성령의 감동이 따르며, 시시각각 새로운 깨달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정상이다! 그런 것은 너무나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악령이다!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어도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할 때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느냐? 악령이 들린 사람은 감정이 없고 육의 연약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무엇이든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 있으며, 육을 초월한 것처럼 고통에 강하고, 힘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냐? 악령의 역사는 초자연적이어서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그런 자를 보면 부러워한다. 또한 하나님을 정말 열성적으로 믿고, 믿음이 굳건하며, 연약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이는 악령이 역사하는 현상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인간적인 연약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의 정상적인 상태이다.

굳게 서서 간증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신경 쓰지 않고 그런 대로 따르겠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생명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나가지도 않는다. 그저 이 단계의 사역이 모두 하나님이 행한 것이라고 인정할 뿐이다. 이는 간증이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은 정복된 간증조차 할 수 없다. 정복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따르고, 생명을 추구한다. 실제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한다. 이런 사람이 간증이 있는 사람이다. 간증이 없는 사람은 생명을 추구하는 법이 없고 지금까지도 허송세월하면서 따르고 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따른다고 해도 정복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정복된 것에도 기준이 있다. 따르는 사람이라고 다 정복된 것은 아니다. 너는 자신이 오늘날의 하나님을 따라야 하는 이유도 전혀 모르고, 또한 자신이 어떻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지, 또 누가 지금까지 올 수 있게 잡아 주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늘 엉터리인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따른다고 할지라도 간증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도대체 참된 간증이란 무엇이냐? 여기에서 말하는 간증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정복된 간증이고, 다른 하나는 온전케 된 간증이다(물론 이것은 미래에 더 큰 시련이나 환난을 겪은 후의 간증을 말함). 즉, 네가 환난과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다면 두 번째 부분의 간증을 하는 것이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첫 번째 부분을 간증하는 것이다. 즉, 연이은 형벌과 심판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복된 간증이다. 지금은 정복되는 기간(너는 지금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성육신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주된 사역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심판과 형벌로 정복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이기 때문이다. 네가 정복되었음을 간증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다. 또한, 더 중요하게는 네가 각 단계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는지, 이 모든 사역을 진정으로 알 수 있는지에 달렸다. 끝까지 따른다고 해서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한번 또 한번 반복되는 형벌과 심판에 기꺼이 복종하고, 네가 체험하는 단계별 사역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최종적으로 해야 할 정복된 것에 대한 간증이다. 정복되었음을 간증한다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해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간증의 핵심은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한 것이다. 네가 세상 사람이나 집권자들 앞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사역에 순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이 단계의 간증은 사탄과 모든 원수를 ―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하여 더 큰 사역을 한다는 것과 하나님이 육신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모든 마귀와 원수, 즉 모든 적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는 모든 원수를 ―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하거나 바란다고 해서 하나님께 정복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복됐다는 것은 그가 곧 ‘도’가 ‘육신’이 되고 ‘말씀’이 ‘육신’이 되고, ‘영’이 ‘말씀’이 되었으며,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났음을 믿을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중요한 간증이다. 네가 하나님을 어떻게 따르는지, 얼마나 헌신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정상적인 인성을 통해, ‘말씀’이 ‘육신’이 되고 ‘진리의 성령’이 ‘육신’에 실체화되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즉, 모든 진리, 길, 생명이 모두 육신으로 임했고, 하나님의 영이 확실히 땅에 왔으며, 영이 육신으로 왔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성령으로 잉태된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사역을 통해 영이 육신에 실체화되었고, ‘도’가 ‘육신’ 되었고,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났음을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 따라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란 말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다. 너는 오늘날의 말씀이 하나님이고, 도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달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말씀이 육신 되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 이것이 너의 가장 좋은 간증이다. 이러면 네가 단순히 성육신 하나님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가고 있는 길이 생명의 도, 진리의 도임을 깨달았기에 진정으로 그에 대해 알게 되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예수가 한 단계 사역을 했지만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는 본질적 의미만 이루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영은 육신과 함께하므로 둘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즉, 육신을 입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과 함께하므로 성육신한 예수가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이라는 증거가 더 뚜렷해지는 것이다. 이번 단계의 사역은 ‘말씀이 육신 되었다’는 말의 함의를 이룬 것이다. 또한,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말의 의미와 더 깊게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말까지도 확신하게 만든다. 즉, 천지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으며, 그의 말씀은 그와 함께하였으므로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그의 말씀의 위력과 권병을 한층 더 명확하게 드러내어 그의 모든 말씀을 보게 한다. 즉, 그의 모든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하는 사역이다. 너는 이런 것을 밝히 알아야 한다. 육신을 어떻게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육신과 말씀, 육신과 도의 관계를 어떻게 알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마땅히 해야 할 간증이자 모든 이가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두 번째로 성육신하여 하는 사역이자 마지막 성육신이다. 즉,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철저하게 하여 선포하고, 하나님이 육신에 있는 시대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따라서 너는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알아야 한다. 열심히 뛰어다니거나 다른 외적인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육신 하나님 앞에 완전히 복종하여 자신을 온전히 바치며, 그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것이자 어김없이 지켜야 할 것이다.

마지막 단계의 간증은 네가 온전케 될 수 있는지를 간증하는 것이다. 즉, 네가 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이해한 다음, 하나님을 알고, 확신하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살아 냄으로 하나님이 너에게 요구하는 ‘베드로의 풍격’, ‘욥의 믿음’, 이런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죽기까지 순종하고 자신을 온전히 바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겪어 정복되고 온전케 된 사람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종적인 간증이고, 궁극적으로 온전케 될 사람이 해야 할 간증이다. 이는 사람이 두 차례에 거쳐 해야 할 간증으로, 이 두 단계는 연결되어 있으므로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오늘날 너에게 요구하는 간증은 세상 사람이나 어느 특정 인물 앞에서 간증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요구한 것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내가 만족스러워할 수 있는지, 내가 너희 각 사람에게 요구한 기준에 완전히 합치할 수 있는지에 근거한다. 이는 너희가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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