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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말하는 평안과 희락은 네가 여기고 터득한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전에 네가 여긴 평안과 희락은 온종일 즐겁다든가, 온 가족이 병도 없고 재앙도 없다든가, 마음이 언제나 흐뭇하고 우울한 심정이 전혀 없다든가, 개인의 생명이 어느 정도이든 마음속에 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락이 있다든가, 게다가 남편의 월급이 오르고 아들이 이제 막 대학에 입학했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고 너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보고는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계속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런 희락과 평안은 진정한 희락과 평안에 속하지 않고, 성령이 함께하는 평안과 희락이 아니라 너의 육체가 만족을 얻는 평안과 희락이다. 너는 오늘날이 어떤 시대인지 알아야 한다. 오늘날은 은혜시대가 아니고, 너를 떡으로만 살게 하는 때가 아니다. 너의 가정 만사가 뜻대로 이루어지니 아마 몹시 기뻐하겠지만 너의 생명이 오히려 사경에 이르렀다면 네가 얼마나 기뻐하든 성령의 함께함이 없는 것이다. 성령의 함께함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는 네가 해야 할 것을 다 하고, 사람의 본분과 해야 할 기능을 잘할 뿐만 아니라 네게 필요한 것을 장비(裝備)하여 너의 부족함을 보충해야 한다. 네가 언제나 자신의 생명에 부담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가지 진리를 밝히 알거나 오늘날의 하나님 역사를 알게 된 것으로 인해 기뻐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성령이 함께하는 것이다. 때로는 네가 어떻게 체험해야 할지 모르는 일에 부딪히거나 교통하는 진리가 분명하지 않아 속을 끓이게 되면, 이것은 너에게 성령의 함께함이 있음을 증명한다. 이것은 생명 체험 중에 흔히 있게 되는 정형이다. 너는 성령의 함께함이 있는 것과 성령의 함께함이 없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야지, 이것을 너무 간단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전에 성령의 함께함과 성령 역사는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성령이 함께하는 정상적인 정형의 표현은 사람의 사유가 정상적이고, 사람의 이지도 정상적이며, 인성도 정상적인 것이다. 전에 어떤 성격이었으면 지금도 여전히 그 성격인데, 다만 내면에 평안이 있고 겉면에 성도의 품위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성령의 함께함이 있는 것이다. 성령이 함께할 때는 사람에게 정상적인 사유가 있는데, 식사해야 할 때면 식사하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싶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싶고… 인성의 이런 정상적인 표현은 성령의 깨우침에 속하지 않고 사람의 정상적인 사유에 속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성령의 함께함이 있는 정상적인 정형이다. 또 어떤 사람은 성령의 함께함이 있으면 사람이 배고픈 줄도 모르고, 피곤한 줄도 모르며, 더욱이 가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거의 육체를 벗어나게 된다고 잘못 여긴다. 사실, 성령의 함께함이 있을수록 사람은 더욱 정상적이다. 즉,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헌신하고 충성을 다할 줄 알고, 버릴 줄 알며, 더욱이 식사할 줄도 알고, 옷을 입을 줄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있어야 할 정상 인성을 전혀 잃지 않고 특별히 이지가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책을 보며 하나님의 역사를 묵상하면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며 진리를 추구하기 원하게 되는데, 물론 성령 역사는 이 기초 위에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정상적인 사유가 없다면 이지 없는 것에 속하는데, 이것은 비정상적인 정형이다. 정상 사람의 사유가 있고 성령의 함께함이 있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정상 사람의 이지가 있는데, 정상적인 정형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에 성령이 역사하는 것은 다 때가 있지만, 성령의 함께함은 거의 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이지가 정상적이기만 하면, 사람의 상태가 다 정상적이고 사람 안의 사유가 정상적이기만 하면, 이것은 틀림없이 성령의 함께함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이지가 비정상적이고 사유가 비정상적이면 인성도 비정상적이다. 만약 지금 네 안에 성령 역사가 있다면 틀림없이 성령의 함께함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너에게 성령의 함께함이 있다고 해서 꼭 성령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역사하는 것은 다 특별한 때가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함께함은 단지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뿐이지만, 성령 역사는 때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자라면 교회에 양육하러 다닐 때 성령이 일부 말씀을 깨우쳐 주는데, 그것은 성령이 역사할 때이다. 때로는 네가 책을 볼 때 성령이 일부 말씀을 깨우쳐 주고 특별히 너 자신의 체험에 잘 결부시킬 수 있게 하여 너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고 깨우침이 있게 하는데, 이것도 성령 역사에 속한다. 때로는 내가 위에서 말하고 너희가 아래에서 듣다 보면 자신의 정형에 결부시킬 수 있게 되고, 때로는 감동을 받고 격려를 받게 되는데, 이것도 다 성령 역사에 속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 안에 늘 성령 역사가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그가 자신에게 늘 성령의 함께함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좀 현실적이다. 그가 시시각각 사유가 정상이고 이지도 정상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현실적이다. 그것은 성령의 함께함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만약 네 안에 늘 성령 역사가 있고 시시각각 하나님의 깨우침이 있고 성령의 감동이 있으며 시시각각 새로운 인식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비정상이다! 그러면 너무나 초자연적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100% 악령이다! 하나님의 영이 육신에 왔어도 가끔씩 쉬어야 하고 식사할 때도 있는데, 하물며 너는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악령이 들린 사람은 육체의 연약이 없는 것처럼 무엇이든 다 포기할 수 있고 다 버릴 수 있으며, 감정도 없고 고생도 잘 견디며, 전혀 지칠 줄 모른다. 마치 육체를 초탈한 듯한데, 그것은 너무나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냐? 악령 역사는 초자연적이어서 사람이 아예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분별이 없는 사람이 그런 사람을 보게 되면 부러워하며 “그 사람은 하나님을 정말 열정적으로 믿고 있어요. 얼마나 잘 믿는지 연약했던 적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사실, 그것은 악령 역사의 표현이다. 왜냐하면 정형이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꼭 인성의 연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의 정상적인 정형이다.

간증을 굳게 서는 것이란 어떤 것이냐? 어떤 사람들은 이대로 따르겠다고 말하면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상관하지 않고, 생명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물러가지도 않고, 단지 이 단계 사역이 모두 하나님이 한 것이라고 인정할 뿐이다. 이것은 간증을 잃은 것이 아니냐? 정복된 간증조차도 없다. 정복된 사람은 어떻든 따를 뿐만 아니라 생명을 추구하며, 실제의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할 줄 아는데, 이런 사람은 간증이 있는 사람이다. 간증이 없는 사람은 시종일관 생명을 추구하지도 않고, 오늘까지도 여전히 따르면서 허송세월하고 있다. 설사 네가 따를지라도 이미 정복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 오늘날의 하나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정복되는 것에도 조건이 있는 것이지, 따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정복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너는 마음속으로 왜 오늘날의 하나님을 따라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네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인지, 누가 너를 오늘날까지 지켜 준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어도 온종일 흐리멍덩하다. 그러므로 네가 따르고 있다고 해도 간증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도대체 진정한 간증이란 어떤 것이냐? 여기에서 말하는 간증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한 부분은 정복된 간증이고, 다른 한 부분은 온전케 된 간증이다(물론 이것은 장래에 더 큰 시련을 겪고 나서 하는 간증이고 환난을 겪은 후에 하는 간증이다). 다시 말해, 네가 환난과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으면 너에게 두 번째 부분의 간증이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관건은 첫 번째 부분의 간증을 하는 것이다. 즉, 네가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형벌과 심판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정복된 간증이다. 지금은 정복되는 기간이기 때문에(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지금, 즉 하나님이 땅에서 역사하는 기간에, 성육신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주요 사역은 그를 따르는 땅의 이 무리 사람들을 심판과 형벌로 정복하는 것이다.) 네가 정복된 간증을 해낼 수 있는지는 끝까지 따를 수 있는지에 달렸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네가 한 단계 한 단계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그 역사 중의 형벌과 심판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있는지에 달렸고, 네가 그 모든 역사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 있을 수 있는지에 달렸다. 네가 끝까지 따른다고 해서 얼렁뚱땅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반드시 이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형벌과 심판에서 기꺼이 항복할 수 있어야 하고, 네가 체험하게 되는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모두 인식과 순복이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너에게 요구하는 마지막의 정복된 간증이다 정복된 간증은 주로 너에게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한 인식이 있음을 가리킨다. 이 부분 간증의 관건은 하나님의 성육신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네가 세상 사람이나 권세 잡은 자들 앞에서 어떻게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있지 않고, 주로 네가 하나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지에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 간증은 사탄을 겨냥해 하는 것이고, 모든 원수 ― 하나님이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더 큰 사역을 한다는 것을 믿지 않고, 나아가 하나님이 육신으로 돌아온 이 사실을 믿지 않는 모든 마귀와 원수, 곧 모든 적그리스도,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는 모든 원수 ― 들을 겨냥해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생각하거나 하나님을 사모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정복되었다고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그분을 ‘도’가 ‘육신’ 된 분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 ‘말씀’이 ‘육신’ 된 분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 ‘영’이 ‘말씀’이 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분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에 달렸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간증이다. 그것은 네가 어떻게 따르는지에 있지 않고, 네가 어떻게 헌신하는지에도 있지 않다. 관건은 네가 그의 정상 인성에서 ‘말씀’이 이미 ‘육신’ 되었고, ‘진리의 성령’이 ‘육신’에 실제화되었음을, 즉 모든 진리와 모든 생명과 길이 모두 육신에 왔고, 확실히 영이 땅에 왔고 영이 육신에 왔음을 발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비록 영이 육신에 온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과 다르지만 역사 가운데서 영이 이미 육신에 실제화되었음을 더욱더 볼 수 있고, ‘도’가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났음을 더욱더 볼 수 있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참뜻을 깨달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너는 오늘날의 말씀이 하나님이고 도가 하나님임을 더욱더 알아야 하고, 또한 말씀이 육신 되었음을 보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너의 가장 좋은 간증이다. 그러면 네가 성육신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 있고, 그를 알고 그를 깊이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네가 오늘 가고 있는 길이 생명의 도(道)이고 ‘진리의 도’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예수가 한 단계 사역을 한 것은 단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라는 실질을 응하게 한 것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영이 육신과 함께하므로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하나님의 영과 함께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말씀이 육신 된 예수가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임을 더욱 증명할 수 있다. 이번 단계 역사는 바로 “말씀이 육신 되었다”라는 이 말에 내포된 뜻을 응하게 하였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에 내포된 뜻을 더욱 깊게 하였으며, 또한 너에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이 말씀까지도 확신하게 한다. 다시 말해, 창세부터 하나님께 말씀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하였으니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그의 말씀의 위력과 권병(역주: 권세)을 더욱더 나타내어 사람에게 그의 모든 도를 보게 하는데, 곧 그의 모든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하는 사역이다. 너는 이런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육신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육신과 말씀, 육신과 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이 해야 할 간증이고, 모든 사람이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두 번째 성육신의 사역인데, 마지막 한 번의 성육신으로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고,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전부 다 철저히 하고 발표하여 하나님이 육신에 있는 시대를 끝마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인식해야 한다. 네가 어떻게 뛰어다니거나 다른 외부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성육신 하나님 앞에 완전히 복종하여 너의 전인(全人)을 완전히 다 바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에 순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것이고, 네가 엄수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부분의 간증, 즉 네가 온전케 된 간증이 될 수 있는지는 네가 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터득한 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게 되어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살아내어 너에게 요구한 ‘베드로의 풍격’, ‘욥의 믿음’과 같은 기준에 도달하고, 더 나아가 죽도록 순복하고 자신을 완전히 바쳐 마지막에 합격된 ‘사람’의 형상, 즉 정복되고 형벌받고 심판받고 온전케 된 사람의 형상이 되면 그것이 바로 마지막 간증이고, 마지막에 온전케 될 사람이 해야 할 간증이다. 이것이 바로 해야 할 두 부분의 간증인데, 서로 연관되는 것이니 어느 한 부분도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알아야 한다. 오늘날 내가 너에게 하라고 요구한 간증은 세상 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그 어떤 사람을 겨냥한 것도 아니라 너에 대한 나의 요구를 놓고 말한 것이다. 가늠하는 기준은 네가 나를 만족게 할 수 있는지, 네가 너희 각 사람에 대한 나의 요구 기준에 완전히 부합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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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본분(本分): 피조물이 수행해야 할 의무와 천직.

② 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 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④ 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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