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관한 말씀
발췌문 72
리더는 사역에 너무 치중하거나 항상 자기 지위를 중시해서는 안 되며,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설정한 뒤 온갖 방법을 짜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는 모두에게 이렇게 알려서도 안 된다. “나는 리더로서 그런 신분과 지위가 있고, 자질과 재능도 갖췄으므로 당신을 인도하고 당신에게 공급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한다면 곤란하다. 왜 곤란하겠느냐? 네 방향이 틀렸고 일 처리에 원칙이 없으므로 네가 무슨 일을 하든 잘못되고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네 출발점이 틀렸으므로 무엇을 하든 다 틀리게 된다. 네가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깨닫고, 이상(異象) 진리의 본질을 깨닫고, 이 측면의 원칙을 파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옳다. 일이 닥쳐 문제를 처리할 때 이 범위를 벗어나지만 않으면 너는 남들을 도와줄 수 있고, 사람의 어려움도 해결될 수 있다. 그러면 너는 리더로서 합당한 자격을 갖춘 것이다. 하지만 네가 몇 가지 도리만 이해하고, 그저 리더가 되기 위해 도리를 조금 갖추고, 설교를 조금 많이 듣고, 글귀를 조금 많이 파악하여 누구의 문제를 해결해 주든 항상 도리와 글귀를 말한다면, 결국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면 너는 리더로서의 실제를 갖추지 못한 허울일 뿐이다. 이런 자는 어떤 리더이냐? (거짓 리더입니다.) 이런 자는 거짓 리더이고,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가 없다. 거짓 리더는 설령 누구에게 폭로당하고 고발당하지 않더라도, 교회에 있는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이 성장하지 못하고 문제가 점점 많이 쌓일 것이기 때문에 그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인책 사임하게 된다. 너는 거짓 리더이며,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거짓 리더이다. 지금 네가 실제 사역을 할 수 있든 없든, 거짓 리더이든 아니든,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지금 너는 서둘러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 진입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너 자신에게 생명 진입이 생기고 성품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자신의 잘못된 내적 상태를 해결할 수 있고, 타인의 문제도 쉽게 해결하게 된다. 네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했는데 남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할까 두려워하겠느냐? 너는 이 리더직을 잘 수행할 수 없을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진리 실제가 생기면 저절로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너는 이 일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오로지 리더라는 지위를 지키고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생각만 한다면, 네 마음가짐은 틀렸으며, 당연히 망신당하고 실패하게 될 것이다. 네가 진리를 사랑하고 자신의 생명 진입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람의 야심과 욕망, 잘못된 추구를 내려놓고 이런 것들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자연스레 각 항목의 진리를 차츰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남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지위를 지키지 마라. 그것은 쓸모없는 허울일 뿐이고, 네게 아무런 이득도 안겨 줄 수 없다. 네가 진리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네가 잘못된 일을 하도록 오도하고 치우친 길로 이끌 수 있다. 패괴된 인류에게 지위는 곧 함정이다. 하지만 이 고비는 누구도 피해 가지 못하고 반드시 겪어야만 한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일은 사람의 방법으로 억제하거나 저버릴 수 없고, 반드시 진리로 해결해야 한다. 진리는 이런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 네가 진리를 구할 수 있다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네가 진리로 해결할 줄 모르고 오로지 억제하고 저버리려고만 하며, 견해가 있어도 저버리고, 행동이 있어도 저버리고, 생각이 있어도 저버리는 등 항상 이렇게 저버리기만 한다면, 이것이 무슨 방법이겠느냐? 이것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행동이다. 너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진리로 해결하고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우선 그 적그리스도와 거짓 리더들이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고 허영과 체면을 지키려는 온갖 행동을 보아라. 똑똑히 보았다면 ‘어이쿠, 추해라. 정말 추해! 나도 저렇게 행동했나?’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얼마 안 가서 ‘어이쿠, 나도 그런 행동을 많이 했군. 저들과 다를 바가 없어.’라고 후회하게 될 것이고, “절대 다시는 지위를 지키려고 추태를 보이지 않겠어.”라고 말하며 다짐하고 교훈을 얻을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는지, 네가 남들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는지, 누가 네 말을 듣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더 이상 집중하지 마라. 항상 이런 생각을 품고 있으면 네 마음이 산란해지고 그 영향을 받아 진리를 추구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너의 유한한 에너지와 귀중한 시간을 모두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는 야심과 욕망에 쏟아붓는다면, 결국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지위를 얻고 야심과 욕망을 채워도 생명 진입이 없고 성령 역사를 잃는다면, 최종적으로 어떤 결말을 맞이하겠느냐? 도태되고 징벌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 때문에 초래된 결과이겠느냐? 네가 잘못된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바울만큼 나아간다면 너는 결국 징벌을 받게 될 것이고, 바울만큼 나아가지 않고 즉시 되돌린다면 만회할 여지가 있고 구원받을 희망도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어떤 문제가 존재하든 간에, 지위와 명리, 재물을 추구하든, 개인적인 야심과 욕망을 채우든, 어쨌든 모든 문제는 진리 추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어떤 문제도 진리를 피해 갈 수 없고, 어떤 일도 진리를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을 믿을 때 일단 진리에서 벗어나면 공허해진다. 다른 그 어떤 것을 추구해도 소용없다. 어떤 본분을 이행할 때 빛이 나고 영예로워서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면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은 너의 마지막 결국도 아니고, 최종적으로 받는 상도 아니며, 너의 종착지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은 그저 일시적이며 영원하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이 너를 칭찬하는 것도 아니고 네게 상을 주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얻었는지, 최종적으로 자기 장래와 운명을 고려치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배치에 따르며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될 수 있는지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이며, 이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판단한다. 이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니 너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이 기준을 마음에 굳게 새기고 어떤 경우에도 다른 방법을 찾거나 다른 비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구원받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너는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 따라 하나님을 믿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다른 방법을 찾아 막연한 것을 추구하고 요행으로 성공하겠다는 환상을 품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하는 사람이므로 틀림없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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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일꾼이 본분을 잘 이행하고 하나님이 맡긴 사역을 잘하려면 우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얼마나 큰 사역을 하고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는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사람에게 생명 진입이 있는지, 성품의 변화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이것이 리더 일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다. 너희는 지금 성품 변화에 대해 알고 있느냐? 성품 변화란 무엇이냐? 행동 변화는 무엇이고 성품 변화는 무엇인지 너희가 분별할 수 있느냐? 어떤 내적 상태일 때 생명 성품에 변화가 있는 것이고, 어떤 내적 상태일 때 외적 행위가 변화한 것이냐? 외적 행위의 변화와 사람의 내재적인 생명의 변화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 이런 일을 분별할 수 있느냐? 너희는 교회에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헌신하거나 집과 직업을 버린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에 변화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너희는 사람의 성품에 변화가 없다면 그렇게 버릴 수 있겠느냐고 여긴다. 너희 가운데 대다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관점이 올바른 것이냐? 더 황당한 이들은 집과 직업을 버린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오늘은 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내일은 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또 청산유수처럼 줄줄 설교하는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진리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그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너희가 이렇게 일을 바라보지 않느냐? 대다수 사람은 이렇게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사람에게 면류관을 씌우며 치켜세운다. 오늘은 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면류관을 씌우고, 내일은 저 사람에게 ‘하나님을 인식한 사람’,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사람’이라는 면류관을 씌운다. 너희는 모두 면류관을 씌우는 ‘전문가’이다. 날마다 사람들을 치켜세우고 면류관을 씌워 결국 사람을 해치면서도 너희 스스로는 의기양양해한다. 너희가 그렇게 사람이 우쭐해지도록 칭찬하면, 칭찬받은 사람은 스스로 ‘내게 변화가 생겨 면류관을 얻을 수 있게 됐어. 난 천국에 들어갈 가망이 있어!’라고 생각한다. 더 심각한 사람들은 바울처럼 자신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고 얼마나 많은 간증을 했는지 자화자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자기 관념과 취향에 따라 말한다. 자기에게 성품 변화가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이 그를 본받게 하여 결국 하나님을 믿으면서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 특히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을 전부 곤경에 빠뜨리고 잘못된 길로 오도한다. 그는 아직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지 못했고, 그저 열정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고생하며, 체포되어 감옥에 가도 유다처럼 배신하지 않았을 뿐이면서 자신이 굳게 서서 증거했으니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자그마한 체험을 간증으로 삼아 여기저기 자랑한다. 이것이 자신을 과시해 사람을 현혹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많은 사람이 이런 ‘간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오도했느냐? 사람이 그들을 이긴 자로 대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는 알고 있느냐? 이긴 자가 무엇인지 너는 분명히 알고 있느냐? 이렇게 거짓 간증을 하면 하나님에게 저주를 받는다. 너희가 이런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느냐? 너희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없고, 사람의 내적 상태를 해부할 줄도 모르면서 사람에게 면류관만 씌우다가 결국 사람을 망친다. 패괴된 사람은 칭찬에 약하다는 것을 모르느냐?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아도 거만하기 이를 데 없고 엉덩이가 하늘을 찌르는데, 누군가 이렇게 칭찬해 주면 더 빨리 죽지 않겠느냐? 너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너희는 이런 것을 알지 못한 채 표면적인 현상만으로 일을 바라본 뒤 사람을 판단하고 면류관을 씌우고 치켜세운다. 너희는 많은 사람을 오도하고 해쳤으며, 이런 짓을 많이 저질렀다. 많은 사람이 너희에게서 이런 칭찬을 듣고 시행착오를 겪거나 넘어졌다. 일어선다 해도 이미 생명의 성장이 크게 지체되고 손실을 입은 것이다. 현재 대다수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고, 진리를 추구할 줄도 모르며, 그저 자기 자신을 조금 인식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칭찬을 들으면 모두 자만에 빠져 더 발전하려 하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정상 궤도에 진입하고 진리 실제도 조금 있으며 말에 힘이 생겼다는 착각에 교회에서 사람들을 훈계하고 횡포를 부릴 것이다. 네가 이렇게 사역하면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망치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겠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어야 하고, 온전케 된 사람이어야 한다. 또 하나님을 따라 길 끝까지 간 뒤에야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므로 하나님만이 누가 그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규정할 수 있다. 사람은 꿰뚫어 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사람을 규정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만이 누가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안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감히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베드로 자신은 한 번도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사람이 아무렇게나 칭찬할 수 있는 문제이겠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본분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 생겼다고 해서 스스로 자랑하기 시작하면, 너무 이성적이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서 남을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것은 더욱 정신병에 가까울 정도로 비이성적인 행동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직 하나님만 알고, 하나님만 말할 수 있다. 그 말이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사람은 잘못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지위에 서서 사람을 칭찬하고 치켜세우는 것은 누구를 대표해서 하는 일이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을 치켜세우지 않고 칭찬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온전케 한 뒤 말세의 이 단계 사역에 이르러서야 이 본보기를 내놓았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베드로가 하나님을 사랑했다.”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이 단계 사역을 할 때 비로소 그렇게 말했다. 말세에 하나님의 심판을 체험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해 세운 모범이자 본보기라고 말이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제멋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이냐! 너무 황당한 일이다. 첫째, 사람이 잘못된 위치에 섰다. 둘째, 그것은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치켜세우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사람을 현혹하고 우롱하고 해치는 것이다. 셋째, 객관적으로 볼 때 사람을 정상 궤도로 이끄는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의 생명 진입을 방해하고 사람의 생명을 손상시킨다. 네가 항상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거나,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을 버릴 수 있다거나,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다고 말하는데, 그러면 다들 그의 표면적인 행위를 모방하지 않겠느냐? 너는 사람을 정상 궤도로 이끌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표면적인 방식으로 이끌어 사람들이 표면적인 방식만으로 면류관을 얻게 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울의 길로 나아가게 했다. 이런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 네가 그런 말을 할 때 이 몇 가지 문제를 인식했느냐? 네가 어떤 위치에 선 것이냐? 어떤 역할을 맡은 것이냐? 객관적으로 어떤 작용을 했느냐? 결국, 사람을 어떤 길로 이끌었느냐? 어느 정도로 해친 것이냐? 사람이 이렇게 사역하면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게 된다.
어떤 리더 일꾼은 교회에서 체험을 말해 간증하거나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항상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책망과 훈계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소극적이 되지 않고 본분 이행을 계속했는지 등을 간증한다. 바울처럼 항상 자신을 증거하고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 하나님의 선민들이 감탄하며 그를 우러러보고 앙망하게 한다. 또 그들은 글귀와 도리를 유창하게 말하고 설교를 잘하는 사람을 치켜세우고, 바울과 같은 리더 일꾼들을 칭찬해 사람들이 그들을 숭배하게 한다. 그들은 양육하고 공급하는 사역을 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괴하고 교란하는 일을 하여 사람들을 바울의 길로 이끌었으면서도 스스로 능력 있고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에게 상을 받고 싶어 한다. 너희 중 대다수가 이런 내적 상태에 있지 않으냐? 너희가 지금 하는 대로 글귀와 도리를 말하고 사람들을 격려하는 데만 치중해서 사람을 정상 궤도로 이끌 수 있겠느냐? 사람을 어떤 길로 이끌게 되겠느냐? 바울의 길로 이끄는 것이 아니겠느냐? 내가 보기에 이것은 사실이며, 전혀 지나친 얘기가 아니다. 너희는 모두 바울식 리더로서 사람들을 바울의 길로 이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너희가 정죄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인데 또 무슨 면류관을 얻겠다는 것이냐? 이런 행동으로 보면 너희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이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결국에는 거짓 목자, 거짓 일꾼,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나라의 훈련 시기이다. 진리에 공을 들이지 않고 사역에만 치중하면 자기도 모르게 바울의 길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바울에 속한 무리를 이끌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정상 궤도로 이끌지도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 두 가지 길이 있다. 베드로의 길은 진리를 추구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성공하는 길이고, 바울의 길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복과 상을 받기만을 추구하는 실패의 길이다. 지금 베드로가 성공한 길로 나아간 사람은 아주 적고, 바울이 실패한 길로 나아간 사람은 아주 많다. 리더 일꾼인 너희가 계속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모두 거짓 리더와 거짓 일꾼이 될 것이며, 모두가 적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정상 궤도로 방향을 틀기 시작해 진정으로 베드로의 길에 들어선다면, 너희는 하나님이 칭찬하는 훌륭한 리더와 일꾼이 될 수 있다. 너희가 온전케 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기를 추구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다. 너희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으로 볼 때, 너희는 체험이 너무 적고 얕은 데다가 분량도 너무 작고 미숙해서 그저 진리를 많이 교제해 주어 인식하게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리를 얻을 수 있는지는 너희 개개인의 추구에 달려 있다. 오늘날은 베드로와 바울의 시대와 다르다. 그때 예수는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방면의 사역을 하지 않았다. 지금 성육신한 하나님이 진리를 이렇게 분명하게 말했는데도 사람이 바울의 길에 들어선다면, 그것은 사람의 이해력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더욱이 바울처럼 악한 인품과 교만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 시대와 지금은 다르고, 배경도 다르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분명하고 명확해서 직접 손을 잡아 가르치고 이끌어 주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네가 잘못된 길을 걷는다면 사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지금 베드로와 바울처럼 각각 옳음과 그름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두 인물이 있어서 본보기로 삼고 경계할 수 있는데도 네가 잘못된 길을 걷는다면 잘못 선택한 것이고 네가 너무 악한 것이므로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만이 사람들을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끌 수 있고, 진리 실제가 없는 사람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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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리더 일꾼이 사역할 때는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을 주의해야 한다. 첫째, 사역지침에서 규정한 원칙대로 정확히 행하되, 원칙을 어기거나 마음대로 상상하거나 자기 뜻대로 행동해선 안 된다. 모든 일에 있어 교회 사역을 생각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시해야 한다. 둘째, 매사에 성령의 인도를 따르도록 신경 쓰고, 엄격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 이것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성령의 인도마저 어기고, 고집스럽게 자기 뜻과 상상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가장 심각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다. 늘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를 어기면 막다른 길에 들어서게 된다. 성령 역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사역을 할 수 없게 된다. 설령 사역할지라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리더 일꾼이 사역할 때는 이렇게 두 가지의 원칙이 있다. 하나는 정확히 상부의 사역지침에 따라 사역하고 상부에서 안배한 원칙에 근거하여 일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내면의 성령 인도를 따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을 파악하면 사역할 때 쉽게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교회 사역을 하는 부분에서 아직 체험이 많지 않아 사역할 때 자기 뜻이 많이 섞인다. 때로는 내면에서 성령이 깨우쳐 주거나 인도해 줘도 깨닫지 못하고, 때로는 깨달은 것 같아도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기가 쉽다. 너희 내면에는 늘 사람의 상상과 추측이 있으며, 스스로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한다. 성령의 뜻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전적으로 자기 뜻을 따르며 성령의 깨우침은 한쪽에 내버려둔다. 이런 내적 상태가 자주 나타난다. 성령의 내적 인도는 초자연적이지 않고 더없이 정상적이다. 즉,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하는 게 적절하고,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좋은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매우 분명한데, 결코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도 왜 그렇게 하려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된다. 이는 보통 성령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일은 체험이 있는 사람에게 가장 자주 발생한다. 성령은 네가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도록 너를 인도한다. 이는 네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 이런 느낌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좋다고 느끼고, 네 마음은 왠지 모르게 이렇게 하기 좋아한다. 이는 아마 성령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자기 뜻은 대부분 사유와 생각을 통해 나오며, 게다가 모두 자신의 뜻이 섞여 있다. 늘 자신에게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고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작심하고 하는 일에는 다 이런 것들이 들어 있다. 성령의 인도에는 절대 이런 불순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령의 깨우침이나 인도에 대해 세심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일에서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파악할 수 있다. 머리 쓰는 걸 좋아하고 자기 뜻을 잘 따르는 사람은 무시하고 소홀히 하기가 쉽다. 합당한 자격을 갖춘 리더 일꾼에게는 성령 역사가 있고, 게다가 그들은 항상 성령 역사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고, 성령에게 순종하는 사람이며, 모두 하나님께 경외심을 지니며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고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증거하려면 반드시 본분 이행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가짐과 불순물을 살피고,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얼마나 되는지, 성령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은 얼마나 되는지, 하나님 말씀에 부합하는 것은 얼마나 되는지 살펴야 하며,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언행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늘 이렇게 실행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기려면 반드시 진리 실제를 갖춰야 한다. 사람은 진리를 깨달아야 비로소 분별력이 생기고, 무엇이 자기 뜻에서 나온 것인지, 무엇이 사람의 속셈에서 비롯된 것인지, 무엇이 사람의 불순물이고 무엇이 진리대로 행하는 것인지 분별할 수 있다. 분별할 수 있어야 진리 실행을 보장하여 하나님 뜻에 완전히 부합할 수 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분별할 수 없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평생 믿어도 무엇이 패괴를 드러내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의 머리에는 그런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자질이 너무 부족한 사람은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줘도 깨닫지 못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고 그저 얼마간 힘만 쓸 뿐이다. 리더 일꾼이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자질이 너무 떨어져서는 안 된다. 최소한 영이 통하고 이해가 순수하고 올발라야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기 쉽다. 어떤 사람은 체험이 너무 얕아 진리에 대한 이해가 치우칠 때가 있어 실수하기 쉽다. 이해가 치우치면 진리 실행에 이르지 못한다. 이해가 치우칠 때 규례를 지키기 쉬우며, 규례를 지키면 실수하기도 쉽고 진리 실행에 이르지도 못한다. 이해가 치우치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이용당하기도 쉽다. 그래서 이해가 치우치면 여러 실수를 야기할 수 있어 결국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치우친 길로 빠져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 피해를 입힌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게 무슨 가치가 있느냐? 그야말로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실패의 교훈도 모두 새겨야 한다. 그러므로 리더 일꾼이 하나님이 맡긴 사역을 잘하려면 반드시 다음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엄격하게 상부의 사역지침대로 본분을 이행하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성령의 인도에 순종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사역에 성과가 생기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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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들은 어떤 부류이겠느냐? 그들이 어떤 교만한 행동을 하겠느냐? 어떤 일에서 그들의 교만함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느냐? 너희가 분별할 수 있겠느냐? 사실 교회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들은 악인과 적그리스도들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교만하고, 심지어 비이성적일 정도로 교만하다. 이것은 어떤 일에서 가장 쉽게 알 수 있겠느냐?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그들의 교만한 성품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적그리스도는 얼마나 큰 악행을 저질렀든 간에 누구에게 책망을 당하면 마음속에서 화가 끓어올라 입을 함부로 놀린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를 나무라고 가르치는 겁니까? 당신이 몇 사람이나 이끌 수 있습니까? 설교를 할 줄이나 알아요? 진리를 교제할 수 있어요? 당신은 나만큼 이 사역을 잘할 수 없을 걸요!” 너희는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에게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조금이라도 있느냐? 너희가 책망과 훈계를 이렇게 대한다면 곤란하다. 이것은 너희에게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고 생명 성품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증거다. 이렇게 심하게 패괴된 옛 사람이 리더 일꾼이 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섬기는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리더 일꾼이 될 자격조차 없다. 리더 일꾼이 되는 것은 최소한 진실한 체험이 좀 있고,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실제도 좀 있고, 가장 기본적인 순종이 있어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최소한 책망과 훈계는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어야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있다.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고,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이치를 따지고 반항하며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면 어떻겠느냐? 그들은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무슨 일을 하든 진리를 실행할 리 없고, 원칙에 따라 일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그러므로 진리 실제가 전혀 없는 사람이 리더 일꾼이 되면 틀림없이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될 것이다. 많은 리더 일꾼이 조금만 본분을 이행해도 드러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적그리스도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너희 모두가 그 속에 포함된다. 너희에게 교회 한 곳의 책임을 맡기고 반년 동안 내버려두면 너희는 비뚤어진 길로 나아가 자기 뜻을 따라 제멋대로 일할 것이다. 1년 동안 내버려두면 너희는 사람을 치우치게 이끌어서 모두가 글귀와 도리를 말하는 실력을 겨루는 데만 치중할 것이다. 2년 동안 내버려두면 사람들을 자기 앞에 데려다 놓고 하나님이 아닌 너희에게 순종하게 할 것이며, 이런 교회는 타락해 종교가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너희는 이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이렇게 교회를 이끌면 어떤 길을 가는 것이겠느냐? 적그리스도의 길이다. 너희가 이렇게 하지 않겠느냐? 너희가 지금 깨달은 그 정도 진리로 사람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공급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겠느냐? 하나님 선민이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면 너희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교제하여 해결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글귀와 도리만 얘기한다면 사람들이 한두 번 듣는 것으로 충분하고, 그 이상 얘기하면 사람들은 싫어하고 분별해 낼 것이다. 그러면 너는 또 사람들에게 무엇을 얘기하겠느냐? 이성적인 사람은 사람들에게 도리를 얘기하거나 높은 자리에 서서 사람을 훈계하지 말고, 사람들과 평등한 위치에서 하나님 말씀을 함께 먹고 마시고 체험해야 한다. 이것이 이성적인 행동이다. 매우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은 이성을 잃고 뻔뻔스럽게 사람들에게 글귀와 도리를 얘기하거나 더 깊이 있는 영적인 이론을 찾고 공부해 자신을 과시하기 쉽다. 그러면 사람을 미혹하는 자가 되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네가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알고 있느냐? 네가 사람들을 어디로 이끌어 가게 될지 알고 있느냐? 네가 적그리스도의 길로 나아가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데려다 놓고 너를 숭배하고 너에게 순종하게 한다면, 이것이 어떤 성질의 문제이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의 선민을 놓고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 아니겠느냐? 본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네 앞에 데려다 놓고, 네게 순종하고 네 말을 따르고 너를 하나님으로 대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이겠느냐?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구원받기 위함이었는데, 결국 네게 미혹되어 구원을 받기는커녕 모두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네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을 망쳐 심한 곤경에 빠뜨리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너는 무슨 죄를 감당해야 하느냐?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갚을 것이냐? 너는 이제 막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들을 속여서 손에 넣고, 그들을 네 수하의 양으로 삼아 네 말을 듣고 너를 따르게 하고는 ‘이제 내가 실권을 쥐었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내 말을 들으니 나는 비바람도 부릴 수가 있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내면에 이런 배반 본성이 있으니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허수아비로 취급하고 스스로 종파나 파벌을 형성하게 된다. 각 종교, 각 교파가 어떻게 생겨난 것이겠느냐? 바로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각 종교, 각 교파의 우두머리들을 보아라. 그들은 모두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성경을 해석할 때 일부만 잘라 내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며,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은사와 지식에 기대어 사역한다. 그들이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그들을 따를 수 있겠느냐? 그들은 지식이 있어서 도리를 좀 얘기하거나 사람들을 회유할 줄 알고 술수를 쓸 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을 속여서 자기 앞에 데려다 놓는다. 사람들이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은 그들을 따르는 것이다. 참도를 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믿는 일은 리더에게 물어봐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봐라.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참도를 받아들이는 데 사람의 동의와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그러면 교회의 리더는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바리새인, 거짓 목자, 적그리스도가 되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참도를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겠느냐? 이런 사람들은 바울과 같은 부류에 속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느냐? 바울의 그 편지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2천 년을 전해 내려오고 은혜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동안, 주를 믿는 사람들은 항상 그가 쓴 말을 읽고 그의 말을 준칙으로 삼았다. 이를테면 고통을 받는다든가,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킨다든가, 마지막에는 의의 면류관을 받는다는 그런 말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가 한 그 말들과 도리에 따라 하나님을 믿었다. 이 2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바울을 본받고 숭배하고 따랐으며, 예수의 말 대신 바울의 말을 경전으로 삼았고, 하나님 말씀은 실행하지 않았다. 이것은 치우친 것이 아니냐? 크게 치우친 것이다. 사람이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인식할 수 있었겠느냐? 그때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적었고, 예수를 아는 사람은 더욱 적었다. 몇몇 제자들도 진정으로 그를 안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성경에서 빛을 조금 보았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조금 깨우침을 얻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인식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은 모두 교만하고 방자하며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고, 도리를 조금만 깨달으면 스스로 파벌을 만드는 바람에 많은 종파가 생겨난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따지지 않았다. 예수의 이름 안에 있는 각 종교, 각 교파는 모두 성령 역사가 어느 정도 있었다. 악령 역사가 없는 교회라면 모두 성령이 역사하였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다. 과거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든 거짓으로 믿든, 또 사람을 따르든 아니면 진리를 추구하지 않든, 하나님은 일절 사람에게 진지하게 따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예정하고 택한 이들은 이 마지막 단계에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사람을 숭배하며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복과 면류관을 얻고자 한다면 용서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바울과 같은 말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내가 어째서 항상 바울과 베드로의 예를 들어 말하겠느냐? 이는 두 가지 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는 베드로의 길 아니면 바울의 길로 나아간다. 이 두 가지 길뿐이다. 네가 따르는 사람이든 리더이든 마찬가지다. 베드로의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네가 가는 길은 곧 바울의 길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며, 제3의 길은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인식하지도 못하고 진리를 깨닫고자 하지도 않으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없다면 결국에는 바울과 같은 말로를 맞이하게 된다. 너는 하나님을 인식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하지 않고, 그저 글귀와 도리, 영적인 이론만을 얘기한다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모두 틀림없이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은 사람이 보기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비록 진리에 따라 하지 않은 일들이 있기는 하지만 악을 저지르거나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맞는 말이냐? 네가 진리에 따라 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진리를 위배한 것이고, 진리를 위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그저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네 성질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지 않더라도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진리와 무관한 일만 하며 자기 뜻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설령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 한들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겠느냐?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하면 여전히 패괴 성품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일 리 없다. 이런 사람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