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는 것에 관한 말씀

발췌문 10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 바빠지기만 하면 체험할 줄 모르고, 정상적인 내적 상태를 유지하지도 못하며, 늘 예배와 진리 교제를 요구한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이는 진리를 깨닫지도, 참도에 뿌리를 내리지도 못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저 열정만으로 본분을 이행하기에 오래가지 못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원칙이 없다. 그에게 일을 좀 시키면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또 일 처리가 비상식적이고, 원칙을 구하지도 않으며, 순종하는 마음도 없다. 이는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줄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무슨 일을 하든 먼저 왜 그 일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속셈에 지배받는지, 그 일을 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일은 어떤 성질에 속하는지, 긍정적인 사물에 속하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사물에 속하는지 등 이러한 것들을 다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는 원칙을 갖고 일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만약 그 일이 본분 이행에 속한다면, 너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이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대충 하지 않고 잘 이행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야 하며, 그 일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가가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바로 진리와 실행의 길,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를 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가까이하며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은 종교 의식이나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한 후에 진리에 따라 실행하기 위한 것이다. 일하지 않을 때는 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마치 매우 영적이어서 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일할 때는 여전히 자기 뜻대로 행하며 전혀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는 그런 말은 그저 입에 발린 말에 불과하고 영적인 척하는 것이다. 너는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이 본분을 어떻게 이행해야 할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가가는 것을 통해 일하는 원칙과 진리를 구하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원칙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 전부 자기 생각대로 하고, 그 일을 아주 간단하게 생각한다. 또 진리를 구하지도 않고 원칙이 전혀 없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할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자기 뜻대로만 일한다. 이런 사람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전혀 없다. 어떤 이들은 “저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래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웬만한 일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도 소용없으니까요.”라고 말하는데, 그런 사람은 마음에 하나님이 전혀 없다. 평소에 어떤 일을 하든 진리를 구하지 않고 그저 자기 뜻대로만 하는데, 그럼 그가 일을 처리할 때 원칙이 있겠느냐? 절대 없다. 그는 무슨 일이든 만만하게 생각해 누군가 진리 원칙을 교제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일할 때 전혀 원칙이 없기 때문에 마음속에 하나님 자리는 없고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그는 자기 뜻도 훌륭하고, 악을 행하는 것도 아니며, 진리에 어긋난 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이 당연히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그는 그 일에 관해 진정으로 하나님께 구하거나 기도하지 않았다. 그저 열정으로 자기 뜻에 따라 마구 행동했을 뿐,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도, 그런 바람도 지니지 않았다. 이것이 실행에 있어서 가장 큰 잘못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이는 하나님을 속이는 것 아니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슨 결실이 있겠느냐?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면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네가 진리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여 하나님이 매우 흡족해하지 않았다면, 너는 어떻게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해야 하겠느냐? 그 일을 할 때 하나님께 기도했느냐? ‘이렇게 하면 진리에 부합할까? 이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면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이 아시면 기뻐하실까, 아니면 반감을 느끼실까? 극도로 증오하고 혐오하지는 않으실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는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누군가 일깨워 주었다고 해도 너는 그 일이 별것 아니라고, 원칙에 어긋난 편이 아니고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진노를 사게 됐으며, 심지어는 하나님께 증오까지 받게 되었다. 이는 사람의 패역으로 초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마땅히 매사에 진리를 구해야 한다. 만약 먼저 진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기도한 다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리를 구했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진리 실행에 치우친 점이 있을지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며, 몇 번 체험하면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알면서도 진리대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임하든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일이 임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으면 진리를 구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진리를 깨달은 몇 사람을 찾아 진리를 교제해야 한다. 만약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없다면, 이해가 순수하고 올바른 몇 사람과 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모두가 진리를 사모하고 구하고 진리를 교제하면 언젠가는 누군가 좋은 방법을 떠올릴 것이다. 모두가 그 방법을 듣고 적절하다고, 좋은 길이 생겼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성령에게서 온 깨우침과 빛 비춤일 수 있다. 그때 모두 함께 비교적 정확한 실행의 길을 교제하면 진리 원칙에 부합할 것이다. 혹시 실행 과정에서 그 방법이 부적절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얼른 바로잡아라.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는다. 너는 일할 때 올바른 마음가짐을 지녔고 진리대로 실행했으나, 그 당시에 원칙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 실행에 약간의 실수가 생겼을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용서받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일할 때 자신의 머리와 상상대로 행동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떻게 실행해야 진리에 부합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지 묵상하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이로운지, 어떻게 해야 남들의 우러름과 감탄을 받을 수 있을지만 생각하며, 오로지 자기 뜻대로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하는데, 이는 문제가 있다. 이런 사람은 일할 때 진리에 부합할 수 없으며, 영원히 하나님께 혐오받는다. 정말 양심과 이성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임하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구하며, 자기 행동의 속셈과 불순물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어떻게 해야 적절한지 확실히 정해야 한다. 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증오하는지, 하나님은 사람의 어떤 행동을 인정하는지 등을 반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일들은 모두 반복적으로 묵상해서 확실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 일을 할 때 속셈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면, 자신이 그렇게 하는 속셈과 목적은 무엇인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것인지, 그러는 것이 자기에게 이로운지 아니면 하나님 선민에게 이로운지, 그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등을 반성해야 한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며 자꾸 묵상하고, 구하고, 스스로에게 더 많은 문제를 물으면서 진리를 구한다면 일할 때 실수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이는 네가 하나님 말씀의 요구에 따라 구한 것이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해 얻은 결론은 진리 원칙에 부합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진리에서 벗어난 일을 한다면 이는 믿지 않는 사람과 다름이 없다. 이런 사람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다. 이들은 하나님 집에서 고용주를 위해 일을 좀 하고 보수를 받으면 바로 떠나는 인부와 같을 뿐, 전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지는 네가 일할 때 가장 먼저 돌아보고 해내야 할 부분이다. 이는 네 일 처리의 원칙이자 범위가 되어야 한다. 일할 때 진리에 부합하는지 가늠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리에 부합할 경우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도 맞기 때문이다. 네게 일의 옳고 그름을 가늠하라는 것도, 그 일이 모두의 입맛에 맞는지, 너 자신의 욕망에 부합하는지 가늠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 일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교회의 사역과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가늠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고려한다면, 네가 하는 일은 갈수록 하나님의 뜻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만 한다면, 단언컨대 전부 그르칠 것이다. 사람의 뜻은 진리가 아니니 당연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진리대로 실행해야지, 너 자신의 뜻대로 행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본분 이행을 핑계로 자신의 사적인 일을 하다가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 형제자매들에게 질책을 받지만, 그 질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그 일이 사적인 일에 속하며 교회 사역과는 관련이 없다고, 교회의 돈이나 인력을 쓰지도 않았고 악행도 아니니 다른 사람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네가 보기에 어떤 일들은 사적인 일 같고, 어떤 원칙이나 진리와도 무관한 것 같지만, 네가 한 그 일을 봤을 때 네 개인적인 욕심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는 일할 때 교회의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흡족할지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했다. 이것은 성도의 품위에 관련되고 인성에 관련된 문제이다. 네가 하는 일이 교회의 이익이나 진리와 무관할지라도 본분 이행이라는 명목으로 사적인 일을 한다면 그것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든 네 사적인 일을 하든, 너는 항상 그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인성을 갖춘 사람이 해야 할 일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또 이렇듯 모든 일과 진리를 진지하게 대해야 성품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실행하라고 요구한다면 할 말 없지만, 사적인 일이라면 진리가 어떻든 내가 원하는 대로, 나한테 이로운 대로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원칙이 없다. 그저 자신에게 이로우면 그만일 뿐, 그것이 하나님 집에 미칠 영향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결과 일을 마쳤을 때 내면에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고, 마음이 어둡고 괴로운 것이다. 그런데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는 당연한 인과응보 아니겠느냐? 일할 때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면 너는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항상 자기 뜻대로 행동한다면, 언제나 하나님께 죄를 지을 것이며, 하나님께 버림받고 방임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일할 때 늘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징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발췌문 11

무슨 일을 하든 진리 원칙을 구해야만 일을 잘 해낼 수 있다. 일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에만 전념하며 하나님 앞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구해야 한다. 일하기 전에 다 같이 모여 교제해야 하고, 교제할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묵상하고 기도해서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는 것이다. 네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는 것은 아니다. 너는 일하면서 묵상하고, 구하고 기다리는 마음가짐을 갖고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적절히 처리할 수 있는지 구해야 한다. 네가 그 일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없다면 누군가에게 묻고 알아보아야 한다. 알아보는 동안 너는 어떤 태도이겠느냐? 사실 너는 하나님이 어떻게 할 것인지 구하고 기다리며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성령이 사람을 깨우치고 인도할 때 등불을 켜듯 네 마음을 단번에 환하게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종종 어떤 사람이나 일을 통해 네게 힌트를 주어 깨닫게 한다. 구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꼭 엄숙하게 무릎을 꿇고 몇 시간씩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면 모든 일이 지체된다. 어떤 때는 길에서 그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일이 닥치면 다 같이 서둘러 교제할 수도 있으며, 또 어떤 때는 상부에 구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볼 수도 있다. 일이 급하다면 서둘러 실제 상황을 알아본 뒤 진리를 구하고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구할 수도 있다. 너희는 이렇게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것이다! 일이 닥치면 긴장하고 속으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면 그것은 분량이 너무 작고 일을 겪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체험하고 훈련해야만 분량이 커질 수 있다. 너희는 몇 가지 방식으로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본분이 바쁠 때는 바쁜 상황에 따라 구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상황에 따라 구하고 기다리는 등 방식이 다르다. 시간이 충분해서 기다려도 된다면 좀 기다려라. 큰일을 할 때는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급하게 일을 처리하다가 실수를 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최고의 효과를 거두려면 기다리면서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혹은 속사정을 잘 알아서 네게 힌트를 줄 만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이 모두 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깨우칠 때 한 가지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하나님 말씀으로 너를 깨우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주변 사람이 너를 지도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네가 어떤 일에 문외한이고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널 어떻게 깨우치겠느냐? 때로는 다양한 사람과 일, 사물을 통해 깨우치기도 한다. 그러면 너는 전문가나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을 찾아 자문을 구해야 한다. 그 방면의 업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얼른 그를 찾아가 그에게서 실마리를 좀 얻은 뒤에 원칙에 따라 행한다면 일할 때 하나님이 너를 인도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면의 업무나 전공에 대해 네가 좀 알고 개념도 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바탕으로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우쳐 줄 것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 생각할 수 있고, 계획할 수 있고, 기획할 수 있고, 또 자문을 구할 수도 있고, 여러 방면으로 알아볼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실행 가능한 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 여부는 역시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 속담에 “일을 계획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라고 했는데 옳은 말이다. 이방인들이 경험을 통해 이 말을 정리해 낸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 사실을 통찰하지 못하면 너무 무지하고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정확히 알아야 한다. 사람이 하려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이다. 네 마음속에 이런 법칙이 있어야 하며, 이 모든 일을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 우선 하나님께 기도하여 마음속에 감동이 있는지 보고, 그런 후에 진리를 구하고, 진리에 부합하는지, 실행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즉시 확정할 수 없다면 반드시 기다려야 한다. 서둘러서 처리하지 마라. 그 일을 꿰뚫어 보면, 때가 무르익었고 더 기다릴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속으로 충분한 확신이 든다면 그때는 처리해도 된다. 계속 꿰뚫어 볼 수 없는 데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 일에 관심이 사라지고 성사시킬 자신도 없다면, 그것이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재빨리 포기해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사람이 계속 믿음을 유지할 수 있고, 어떤 상황이 일어나든 믿음이 줄어들지 않다가 나중에는 꿰뚫어 본 것처럼 마음이 점점 밝아진다. 이런 것이야말로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기다리게 한다면, 즉 하나님이 네게 드러내 보여 줄 때까지 기다리면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다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협력해야 하는 방면에서는 너도 직접 행하고 물어보아야 한다. 물어보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이나 일을 통해 네게 사실의 진상을 알려 줄 수도 있다. 네가 물어보지 않고 속으로 의심하고 불안해하기만 한다면, 그 사실 진상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물어보면 사실의 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이는 하나님이 네게 알려 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이 실제적이지 않으냐? 하나님은 사람과 일, 사물을 통해 너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며, 네가 체험하는 과정에서 그 일을 깨닫고 꿰뚫어 볼 수 있도록 인도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가르쳐 준다. 하나님은 네게 단 한 마디도 근거 없이 말하지 않고, 혹은 그 어떤 생각도 근거 없이 주는 법이 없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문을 구한 뒤에 진상이 밝혀지면 너는 그때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알게 될 것이고, 네 마음속으로 깨달을 것이다. 그러면 그런 결과는 자문을 구하고 나서 도출된 것이 아니겠느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네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므로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역하고 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기묘하면서도 실제적이며 조금도 초자연적이지 않다. 게으른 사람은 항상 초자연적인 것을 바란다. 그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직접 알려 주길 바라고, 하나님이 해 주기만을 바라며 지름길을 가려고 할 뿐, 자신이 자발적으로 찾거나 구하지 않고 조금도 협력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의 소망은 물거품이 된다. 경건한 사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매사에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 닥치면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구하며 하나님의 의중이 무엇인지 살핀다. 그에게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하나님은 그 일에서 그를 인도해 준다. 궁극적으로 결과가 나오면 사람은 하나님이 몸소 배치한 것을 보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네가 이런 일을 많이 체험하면 하나님이 전설이 아니고, 허구적이거나 공허하지도 않으며, 바로 사람 곁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이 몸소 배치하고 안배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의 진실함과 실제를 점점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체험할 줄 모르면 영원히 느끼지 못하고, ‘대체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긴 하는 거야? 어디에 계시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다들 말하는데 어째서 나는 아직 본 적이 없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나는 왜 느낄 수가 없는 거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네가 전혀 느낄 수가 없으면 항상 편치 않을 것이다. 네가 직접 느껴야만 남들이 하는 말과 남들이 한 체험이 하나님이 행한 것임이 증명될 것이다. 하나님의 행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기묘하지만 또 실제적이다. 너는 이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기묘한 것은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에 지혜가 깃들어 있고 사람이 그 경지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에 따라 결정된 일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행사는 매우 실제적이다. 실제적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겠느냐? 사람이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사고와 두뇌, 마음, 지능 그리고 사람이 가진 본능과 자질로써 닿을 수 있으며, 초자연적이지도 공허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네 행동이 옳다면 하나님은 그 행동이 옳다는 것을 알게 하고 증명해 줄 것이며, 네 행동이 잘못됐다면 하나님은 네가 점차 알게 하는데, 네가 그 방면에서 잘못했으며 그것이 패괴 성품의 표출임을 알도록 깨우쳐 줄 것이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에게 죄송한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제적’이라는 것이다.

발췌문 12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네가 진리를 구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진리를 실행하고 얻을 수도 있다. 네가 진리를 구하지 않고 항상 사람의 논리를 말하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면, 결국 자신의 패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다 알면서 고의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이다. 예를 들어, 본분을 이행하다가 책망과 훈계가 임했을 때 네가 진리를 구하지 않고 계속 자신에게 일리가 있다는 것만 강조하며 ‘나도 사역을 했고, 명백하게 나쁜 일은 하지 않았어. 그저 조금 실수를 한 것 가지고 한바탕 책망하고 폭로하고 내 체면을 세워 주지 않다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 있지? 나는 왜 볼 수가 없지?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신다고들 말하는데, 왜 다른 사람은 사랑하시면서 나는 사랑하지 않으시는 거지?’라고 원망을 터뜨리게 된다. 사람에게 이런 내적 상태가 있으면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없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해결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고, 자신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과 고집스러운 생각을 내려놓지 않은 채 줄기차게 하나님에게 대항하면, 결국에는 하나님이 너를 포기하고 너도 하나님을 배신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네가 하나님에게 원망을 가득 품고 하나님의 주재를 의심하고 부인하며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지 않으려 하고, 더 심하게는 하나님이 진리이고 공의임을 부인한다면, 이것은 가장 심각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실행할 길이 생긴다. 이렇게 행하면 네가 믿는 하나님이 진리, 길, 생명, 사랑임을 증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는 일은 언제나 옳으며, 사람에게 시련과 연단을 주는 것도 옳은 일이고 모두 사람을 구원하고 정결케 하는 것임을 증명할 수 있다. 또 너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인식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역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매우 크다는 사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수확이냐! 진리를 구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만 의지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대하면 이런 수확을 거둘 수 있겠느냐? 분명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되었기에 모든 행동과 드러내는 것이 사탄의 성품으로 점철되어 있다. 전부 진리에 어긋나고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들이다. 사람은 이토록 큰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자격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몹시 염려하여 매일 은혜를 베풀고,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배치해 시련과 연단을 줌으로써 사람을 변화시킨다. 또한, 여러 가지 환경으로 사람을 드러내 사람이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진리를 깨닫고 생명을 얻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매우 사랑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토록 진실하여 사람이 보고 만질 수 있다. 네가 그것을 전부 느낀다면, 하나님의 모든 행사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그것은 가장 진실한 사랑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실제적으로 사역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디까지 타락할지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보지 못한 채 명리와 지위를 좇고, 남들 앞에서 두각을 드러내고자 하며, 언제나 다른 사람을 우롱하고 통제하려 한다. 이는 하나님께 반기를 드는 것 아니겠느냐? 이대로 나간다면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 하나님은 심판 사역으로 사람의 패괴를 전부 드러내 사람이 인식하게 하는 한편, 사람의 그릇된 추구를 제지한다. 하나님의 행사는 너무도 훌륭하다! 비록 하나님이 사람을 드러내고 심판하지만 동시에 구원한다. 이것이 바로 진실한 사랑이다. 네가 이 정도까지 체험했다면 이 방면의 진리를 얻은 것 아니겠느냐? 사람이 여기까지 체험하고 인식하여 그 진리를 깨달았다면 하나님께 원망을 품겠느냐? 그렇지 않다. 사람은 기꺼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다. 다음에 다시 시련과 연단, 혹은 책망과 훈계가 임하면, 사람은 하나님이 행한 것이 옳으며 모두 사람을 드러내고 구원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금세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다. 또한, 자기 논리를 말하지 않고 관념과 원망도 품지 않고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다. 사람이 이 정도로 순종할 수 있게 된 것은 연단을 여러 번 거쳐 도달한 것이며, 성령 역사를 통해 온전케 된 것이다.

발췌문 13

지금 많은 사람이 진리 추구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할 수도 있다. 자기 내면의 옳지 않은 마음가짐과 비정상적인 내적 상태를 해결하고 싶다면, 반드시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우선 하나님 말씀에 따라 마음을 활짝 열고 교제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마음을 활짝 열고 교제하려면 상대를 선택해야 하는데, 최소한 진리를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인성이 비교적 좋고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당연히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더 좋다. 네가 그들과 교제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찾아 마음을 활짝 열고 교제함으로써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한다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릇된 사람,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은사와 재주만 가진 사람을 선택하면, 그는 너를 비웃고 멸시하고 깎아내릴 것이므로 이로움을 얻을 수 없다. 마음을 활짝 여는 것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땅히 가져야 하는 태도이며, 사람들과 진리를 교제할 때도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자신을 꽁꽁 싸맨 채 속으로 ‘내게 속셈과 어려움이 있고, 내적 상태도 좋지 않고 소극적이야.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속으로 삭힐 거야.’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속으로 삭히기만 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너는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하고 내적 상태도 다운되어 하나님에게 기도하기 싫어질 것이다. 그러면 되돌리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네 내적 상태가 어떻든 간에, 소극적이든 어려움이 있든 또는 어떤 속셈과 계산을 갖고 있든, 또는 무엇을 인식하고 성찰했든, 마음을 활짝 열고 교제할 줄 알아야 한다. 네가 교제하는 과정에 성령이 역사할 것이다. 성령은 어떻게 역사하겠느냐? 네게 깨우침과 빛 비춤을 주어 네가 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 문제의 근원과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한 다음, 조금씩 진리와 하나님 뜻을 깨닫고 실행의 길을 발견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한다. 사람이 마음을 활짝 열고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은 정직한 태도로 진리를 대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이 정직한지 정직하지 않은지는 그가 진리를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직한 사람은 어려움이 닥치면 아무리 소극적이고 연약해도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누군가와 교제하며 해결 방법을 구하며, 어떻게 하면 그 문제와 어려운 점을 해결할 수 있는지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려고 한다. 그는 마음이 괴로워서 누군가에게 토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결 방법을 구해 진리 실제 진입에서 직면한 어려움을 해결하고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사람의 마음속에 감춰져 있으면 본분 이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생명 진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나님에게 순수하게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하고 늘 마음속에 간사함을 품고 있으면 매우 위험하다. 간사한 사람은 어떤 일이 닥치든 위장하는 데 능하고, 마음속에 어떤 관념과 불만이 있어도 교제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아주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음속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소극적이어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너도 그 사실을 알아챌 수가 없고, 그와 교제해도 그는 네게 솔직히 말하지 않는다. 그의 내면에 원망과 오해, 관념이 많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항상 꽁꽁 싸맨 채, 누가 알아채서 그에 대해 견해가 생기고 그를 배척할까 봐 두려워한다. 비록 그가 본분은 이행하고 있지만 생명 진입이 없고, 무슨 일을 하든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으며, 겉보기에 태도가 미온적이고 제자리에서 맴돈다면, 이것은 위기가 닥친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마음에 병이 있는 것이다. 마음이 병들어서 환한 빛을 두려워하고 무슨 일이든 감추기에만 급급할 뿐 솔직히 털어놓지 못하며, 생명이 시원하게 흐르지 않아 악성 종양이 되면 사람은 위험해진다. 순수하게 활짝 열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떤 문제든 진리를 교제해 해결하지 못하면, 이런 사람은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없다. 드러나서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발췌문 14

어떤 문제를 만나든 반드시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하고, 절대 남에게 거짓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 그게 자신의 결점이든, 단점이든, 자신에게 있는 문제점이든, 혹은 패괴 성품이든 모두 솔직히 교제하고, 포장하지 마라. 자신의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생명 진입의 첫걸음이자 가장 공략하기 힘든 첫 번째 관문이다. 이 관문을 공략한다면 진리에 진입하기 쉬워진다. 그 한 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네가 마음을 열고 너의 모든 것, 즉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것을 모두 드러내 남들에게, 또 하나님에게 모조리 보여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숨기거나 가리거나 위장하지 않고, 간사하게 행동하거나 기만하지 않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진실하게 대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너는 빛 속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이 감찰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네가 원칙 있고 투명하게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너는 자신의 명예와 체면, 지위를 지키기 위해 어떤 수단을 쓰거나 자신이 잘못한 일을 위해 감추거나 꾸밀 필요가 없다. 이러한 부질없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을 내려놓는다면 너는 아주 홀가분하게, 속박도 고통도 없이 온전히 빛 속에서 살 수 있다. 솔직하게 교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생명 진입의 첫걸음이다. 그다음 너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서 어떤 것들이 잘못되었는지, 하나님이 어떤 것들을 싫어하는지 등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하고, 그때그때 돌려놓으며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바로잡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받아들이고, 사탄에게 속하는 네 내면의 것들을 없애고 진리로 대신하기 위함이다. 지난날, 네가 거짓말과 기만 같은 간사한 성품으로 일하며 거짓말하지 않고서는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진리를 깨닫고 사탄의 그런 수법을 혐오하여 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직함과 순수함, 순종하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매사에 마음을 열고 솔직히 털어놓아 감싸거나 꾸미거나 은폐하지 않고 숨김없이 형제자매들과 교제하여 그들에게 네가 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보여 주고 네 정직한 태도를 보여 주면, 진리는 서서히 네 내면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데, 조금씩 성과가 드러날 것이다. 네 마음이 점점 정직해지고 하나님을 향하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줄 알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양심이 불편해진다면, 그것은 진리가 너에게 작용했고 이미 네 생명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진리가 네게서 생명이 되었을 때, 만약 누군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 누군가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 누군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진리 원칙대로 대할 수 있다. 분별해야 할 것은 분별하고, 폭로해야 할 것은 폭로할 것이다. 만약 진리가 네게서 생명이 되지 않고 네가 계속 사탄 성품으로 살아간다면, 악인이나 마귀들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을 보았을 때,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으며 수수방관할 것이다. 심지어는 누가 교회 사역을 교란하든 너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회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이 아무리 크게 손해 보아도 신경 쓰지 않고, 상관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는다면, 이런 자는 바로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요, 불신파, 봉사자다. 너는 하나님이 베푼 것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누리지만, 하나님 집의 이익이 그 어떤 손해를 입든 모두 너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팔이 밖으로 굽은 것으로, 배은망덕한 인간이다. 네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고도 사람이냐? 이런 자는 바로 교회에 잠입한 마귀다. 하나님을 믿는 척하면서 하나님 선민을 사칭하여 하나님 집에서 밥이나 축내려 하고, 전혀 사람답지 않게 사는데, 불신파가 분명하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설령 진리 생명을 얻지 못했더라도, 최소한 말하거나 일할 때 하나님 편에 설 수 있고,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해 볼 때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버려둔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고, 마음이 편치 않아서 속으로 말할 것이다. ‘가만히 앉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일어나서 목소리를 내야 해. 책임을 다해야지. 나서서 이런 악행을 폭로하고 저지해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해 보지 않도록 수호하고, 교회 생활이 교란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해.’ 진리가 네 마음에서 생명이 된다면 너는 그러한 용기와 다짐을 갖는 걸로 끝이 아니라 그 일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 네가 짊어져야 할 그 책임을 다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너는 네 본분을 이행한 것이다. 네가 너의 본분을 자신의 책임과 의무로 삼고, 하나님이 맡긴 일로 대하며, 이렇게 해야 하나님에게 부끄럽지 않고 양심도 떳떳하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정상 인성의 인격과 존엄을 살아 내지 않겠느냐? 네가 행한 바는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다. 너는 이 말씀의 본질을 행한 것이고, 이 말씀의 실제를 살아 낸 것이다.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될 때, 사람은 이런 실제를 살아 낼 수 있다. 네가 아직 이 실제에 진입하지 않았다면, 네가 간사함과 속임수, 위장을 드러내거나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세력이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것을 보았을 때 너는 아무렇지도 않고 무감각할 수 있고, 심지어 그런 일이 네 눈앞에서 일어나도 웃고 마음 편히 잘 먹고 잘 자며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삶 중에서 너희는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자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이고, 어떤 것이 사악한 마귀 본성이며 부정적인 사물인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 않으냐? 진리를 생명으로 삼지 않으면 사람의 삶은 이렇게 애처롭고 슬프다. 진리를 실행하고 싶어도 실행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려고 해도 힘에 부쳐 스스로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 이것이 패괴된 인류의 가련함이자 비애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진리를 받아들이고 추구해야 하며, 진리를 마음속에 받아들여야만 새로운 생명이 생긴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생각을 하든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 겉으로 아무리 잘해도 역시 위장과 속임수이고 외식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많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기를 원하지만, 많은 경우 그런 의지와 소망만 있을 뿐, 내면에서 진리가 생명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사악한 세력과 악인, 못된 자들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가 원칙에 어긋난 일을 해서 교회 사역을 교란함으로써 하나님의 선민이 해를 입을 때, 너는 용기 있게 나서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왜 용기가 없겠느냐? 담이 작아서, 말주변이 없어서, 또는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해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다 아니다. 이는 주로 패괴 성품에 속박받아 초래된 것이다. 네가 드러내는 패괴 성품 중 하나는 간사한 성품이다. 일이 임하면 먼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먼저 그런 행동에 따른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할지 고려한다. 이는 간사한 성품 아니겠느냐? 또 다른 하나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성품이다. ‘저 사람이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입히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리더도 아닌 내가 왜 신경 써야 하지? 나랑 상관없는 일이고 내 책임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 이런 말은 네가 일부러 생각해 낸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이 생겼을 때 사람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이다. 이런 패괴 성품은 네 생각을 지배하고, 네 손발을 묶어 놓고, 네 입을 통제한다. 일어서서 말하고 싶은데도 한편으로는 우려가 돼서, 말을 꺼내더라도 에둘러 말하며 여지를 남기거나 아니면 말을 얼버무리며 참말을 하지 않는다. 눈치 빠른 사람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너도 속으로는 알고 있다. 네가 해야 할 말을 전부 다 하지는 않았으며, 효과도 내지 못했고, 그저 형식만 거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도 당당하게 자신은 책임을 다했다고, 혹은 그 당시에는 꿰뚫어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이 사실에 부합하느냐? 솔직한 말이냐? 이는 완전히 사탄 성품에 통제된 것 아니냐? 네가 한 말에서 일부는 사실에 부합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중요한 부분이나 핵심 문제에서는 거짓말을 하며 사람을 기만했다. 이는 네가 거짓말하는 사람이고 사탄 성품으로 사는 사람임을 증명한다. 네가 하는 말이나 생각은 언제나 머리로 가공을 거친 후 튀어나올 것이다. 그 결과 내뱉는 말은 죄다 거짓말이나 빈말뿐인데, 전부 사실에 어긋나는 말, 자기를 위한 궤변, 자기에게 유리한 말뿐이다. 사람을 미혹하여 다 믿게 하면 너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네가 말을 하는 방식으로, 네 성품을 대표하기도 한다. 너는 사탄 성품에 완벽히 통제되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제어할 수 없다. 진심이나 사실을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진리를 실행하고 싶어도 실행할 수 없고,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네 말과 행동은 전부 기만이고, 무성의한 것이다. 사탄 성품에 이미 완전히 속박되고 통제되어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고 싶지만 뜻대로 할 수 없다. 너는 사탄 성품에 통제되어 사탄 성품에 따라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완전히 패괴된 육의 꼭두각시, 사탄의 도구가 된다. 시간이 지난 후, 너는 또 패괴된 육을 따른 것에 대해 후회하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 너는 마음속으로 ‘내 힘으로는 육을 이겨 낼 수 없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해. 나는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사람을 보고도 일어서서 제지하지 않은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래, 결심했어. 또다시 이런 일이 닥치면 반드시 일어나서 제멋대로 본분을 이행해서 교회의 사역을 교란하는 사람들을 한번 책망해야겠어. 그렇게 해서 그가 좀 착실해지고 다시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할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겹게 용기를 내 말하지만, 상대가 화를 내고 탁자를 내리치자 깜짝 놀라 위축되고 만다. 너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있느냐? 네게 결심과 의지가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전부 소용없다. 너희는 이런 일들을 분명 적잖이 마주했을 것이다. 어려움을 만나면 자기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생각해 바로 자신과 타협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은 희망이 없다며 이번에 완전히 도태됐다고 여기며 자포자기해 버린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인정하면서 너는 왜 회개하지 않느냐? 진리를 실행했느냐? 너는 몇 년이나 설교를 들었으면서 설마 조금도 알아듣지 못한 것이냐? 어째서 진리를 조금도 실행하지 않느냐? 네가 전혀 진리를 구하지 않고 나아가 실행하지도 않으면서 속으로만 계속 기도하고 결심하고 다짐하고 맹세한다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느냐? 너는 여전히 무골호인이 된다. 문제를 보고도 말하지 않고, 악인을 보고도 신경 쓰지 않으며, 악을 행하고 교란하는 사람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또 너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은 나 몰라라 하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 일과 관련되지 않을 때는 언제나 입을 닫을 거야. 내 이익과 허영심, 체면에 해가 되지 않으면 절대 끼어들지 않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태도로 대할 거야. 모난 돌이 정 맞는 법, 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아!’ 너는 사악함과 간사함, 강퍅함, 진리를 싫어하는 등의 패괴 성품에 완전히 통제된다. 단단히 통제되어 삼장법사의 주문에 걸린 손오공보다 더 괴로워진다. 패괴 성품에 통제된 사람의 삶이 얼마나 피곤하고 고통스럽겠느냐! 말해 보아라.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패괴를 벗어 버리는 것이 쉽겠느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믿고, 몇 년 동안 설교를 듣고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 끝까지 믿어도 글귀와 도리를 조금 말할 줄 아는 것으로 사람을 속이는 전형적인 종교 사기꾼이자, 외식하는 바리새인으로서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결말이다. 이보다 더 안 좋다면 어떤 일에서 시험에 빠져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너는 낙오되고 도태되는 것이며, 이는 예측 불가능하고 위태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뭐니뭐니 해도 진리 추구가 가장 중요하고, 진리 실행이 그 무엇보다 좋다.

발췌문 15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것도 그러하다. 네가 가는 길, 너의 선택, 네가 마음속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저는 완벽함을 추구합니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목표냐? 어떤 사람은 “저는 아브라함을 따라 머리에는 천을 두르고 몸에는 두루마기를 걸쳤습니다. 아브라함은 시골에 살면서 양을 길렀는데, 저도 시골에서 양을 치며 자동차도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아브라함처럼 생활합니다. 매일 양젖을 짜고 들판에서 양을 치며 현대인들과는 접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똑같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제가 이런 생활 환경을 택했으니까요.” 이렇게 하면 되느냐? 겉모습만 흉내 내서는 안 된다. 선지자 옷을 입는다고 해서 네가 선지자인 것은 아니다. 네 이름이 아브라함이라고 해도 네가 아브라함은 아니다. 겉으로 따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도를 행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행하느냐? 그 말은 큰 틀이고 이론일 뿐, 실행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 네가 생활 속에서 접하는 모든 일, 생활 속에서 진리에 관계된 모든 일은 네가 추구하는 목표와 결부시켜야 한다. 즉, 네가 하는 일은 모두 네가 추구하는 목표를 향해 실제적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실제적인 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너에게 본분이 주어졌는데, 힘들고 위험 부담도 있는 데다 제대로 못 하면 책망을 받고, 잘못될 경우 심판과 형벌을 받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일이 임했을 때 네가 하는 선택은 너의 추구와 관련된다. 너는 고민할 것이다. ‘일이 주어졌는데 피하자니 너무 잔머리를 굴리는 거 같고, 안 하자니 명백히 도피하고 충성심이 없는 것인데, 이러면 유다가 아닌가? 만약 하면 힘들기도 하고 상부에서도 내가 한 걸 몰라줄 거야. 잘해도 칭찬해 줄 사람 없고 잘못해서 상부에 알려지면 좋을 게 없고 책망이나 받겠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하나님의 도를 행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이번에는 관두고 다음에 보자.’ 여러 가지 생각이 든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 네가 추구하는 목표는 자신의 이익 쪽으로 치우친다. 여러 생각이 들면 일반적으로 바른길을 가지 않는 사람, 정의감이 없는 사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길로 빠지기 쉬우냐? (비뚤어진 길입니다.) 비뚤어진 길이란 어떤 것이냐?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비뚤어진 길이냐?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그런 쪽으로 치우치고 애쓴다. 이것을 사악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평소에 틈만 나면 “우리는 하나님을 흡족게 해야 합니다.”라고 한다. 기도만 하면 열정에 불타고, 감동받아 통곡의 눈물을 흘린다. 자신은 한평생 헛살지 않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요 영광이라고, 하나님이 높여 준 것이라고 여긴다. 기도가 끝나면 하나님이 함께한다고 느껴져서 너무나 만족하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1초도 채 되지 않아, 일이 닥치면 바로 변한다. 방금 전 기도는 어디로 갔는지 전부 빈말이 돼 버린다. 사람에게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힘이 있고, 열심히 진리를 실행할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명리와 지위에 관련된 일은 더 당연히 내려놓을 것이다. 만약 내려놓지 않는다면 이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힘이 없다는 의미이다. 일이 임했을 때는 진리를 구하고 실행해야 한다. 진리를 실행해야 할 때마다 사심을 품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임해도 진리를 구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진리를 얻지 못한다. 언제나 명리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안배하든 ‘이 일이 내게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되면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데,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설사 악을 행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너는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지 않으며, 어떤 일이 임하든 늘 네 명예와 지위, 이익과 이점을 생각한다. 이는 오직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이자,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구원의 은혜와 진리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득을 취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불신파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를 구하고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리스도가 곧 진리임을 인정하기에 하나님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이 임했을 때 진리를 실행하려는 마음은 있어도 자신의 명예와 지위, 체면을 생각한다면 진리 실행에 어려움이 생긴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럴 때 기도하고 구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여 자신의 이익과 이점을 버리며,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체면과 허영을 지키려 한다면, 패괴 성품을 드러내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생명 진입도, 진실한 체험 간증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무척 위험하지 않겠느냐? 네가 언제나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조금의 체험 간증도 없다면 자연스럽게 드러나 도태될 것이다. 체험 간증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분명 어떤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어떤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자는 폐물 아니겠느냐? 사람이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언제나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불신파이고 악인이다. 언제나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점점 더 많은 과오를 범한다면, 네 결말은 정해진 것이다. 네 모든 과오와 네가 걸어온 그릇된 길, 그리고 결코 회개하지 않는 태도가 합쳐져 셀 수 없는 악행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너의 결말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 징벌받는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것이 작은 일이겠느냐? 징벌이 임하지 않았을 때는 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느끼지 못한다. 언젠가 정말 재난이 임해 죽음이 다가오면 그땐 후회해도 늦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어도 변화가 없다면, 마지막 결과는 도태되고 버림받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오를 범하는데, 중요한 것은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과오를 범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언제든 패괴 성품이 드러나는 즉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의지하며, 진리를 구해 해결하여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할 수 있다면, 악행까지는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패괴 성품의 문제를 이렇게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다고 할 수 있다.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지 않거나 진리를 깨닫고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겠느냐? 이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네가 제 아무리 교활하고 말재주가 좋아도 하나님의 감찰을 피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배치를 벗어날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똑똑한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에게 회개하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의지하며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고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 그러면 육과 사탄의 시험을 이겨 낼 수 있다. 몇 번 실패해도 버텨야 한다. 수없이 실패해도 굴하지 않으면 성공할 것이며,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 축복을 얻을 것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로 나아가고,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에게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사역을 지키는 경우가 많으냐?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자기 체면이나 이익을 지키고, 나중에 깨달아도 자신을 저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리를 교제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 힘이 나서 어느 정도 저버릴 수 있지만, 진리를 교제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항상 이런 내적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육을 저버리기도 어렵지만 진리를 실행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사탄의 본성이 가로막고 패괴 성품이 교란하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해결할 수 없다. 너희는 하루 중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평온히 있을 수 있느냐? 며칠 정도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으면 영적인 메마름을 느끼느냐? (저는 하루도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침에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읽고 묵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이가 좀 가까워진 기분이 듭니다. 어느 날 바쁘게 일만 하느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기도를 거의 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아주 멀어졌다고 느낍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멀어지면 안 된다고 느낄 수 있다면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수동적으로 누가 진리를 교제해 주기만 기다려서는 안 되며, 자발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진리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영 안이 어두워져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에게 기도한다면 현상만 유지하며 ‘믿음’이라는 두 글자만 지킬 수 있어도 괜찮은 것이다. 하지만 생명이 성장하지 않고 영이 메마르고 무감각하며 하나님과 너무 멀어지면 위험하다. 너는 시험이 닥치자마자 쓰러져 너무 쉽게 사탄의 포로가 될 것이다. 네가 조금도 체험하지 않고 아무런 진리도 깨닫지 못하며,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하지 않으면, 네 분량이 커지기 어렵고 성장이 매우 느릴 것이다. 성장이 너무 느린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느냐? 이런 것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패괴를 어떻게 폭로하든, 사람은 항상 순종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을 반성하고 하나님 말씀과 대조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을 인식하고 점차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며, 틀림없이 성령 역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항상 마음에 담고 현실 생활에서 문제가 닥쳤을 때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연관시켜 대조한다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모두 질병 없는 건강한 몸을 원한다. 그것은 누구나 추구하는 바이다. 그러면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겠느냐? 우선 규칙적으로 일하고 휴식을 취하고 건강에 나쁘거나 금해야 하는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하며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다. 이런 몇 가지 방식을 결합해서 항상 건강이라는 목표를 염두에 두고 실천한다면 차츰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3~5년 후 네 몸이 남들보다 건강해지며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효과는 어떻게 얻어진 것이겠느냐? 네 행동과 네가 추구하는 목표가 서로 결합하고, 네 실천과 이론이 서로 결합해서 얻어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그렇다. 네가 진리를 사랑하고 실행하는 사람, 성품이 변화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일이 닥쳤을 때 이것을 네가 추구하는 목표와 그에 관련된 진리에 연결시켜야 한다. 네가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믿을 때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자 목표이다. 예를 들어, 네게 하나님의 도를 행하겠다는,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겠다는 방향과 목표가 생겼다면, 바로 이어서 실행의 길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도를 행한다고 할 때, ‘하나님의 도’란 무엇이겠느냐?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란 무엇이겠느냐? 예를 들어, 네가 누군가를 평가할 때,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과 관계가 있다. 너는 어떤 식으로 평가하느냐? (정직한 사람이 되어 공정하고 공평하게 말해야 합니다. 감정에 치우쳐 말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한 것, 본 것을 그대로 말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먼저, 정직한 사람이 되는 실행은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에 부합한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르친 것으로, 바로 하나님의 도이다. 하나님의 도란 무엇이더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 중의 한 가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네가 본 것,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과 다를 것이다. 누군가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 사람은 교회 사역에 책임감을 갖고 있나요?”라고 물어봤을 때, 네가 “그 사람은 훌륭합니다. 저보다 책임감도 크고, 자질도 뛰어나죠. 인성도 좋고요. 성숙하며 진중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해 보자. 너는 마음속으로 정말 그렇게 생각했느냐? 사실 너는 그가 자질은 있지만 믿을 수 없으며, 간사한 편이고 꿍꿍이도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이것이 네 마음에 있는 말이지만, 너는 ‘진실을 말해 남에게 미움을 사지 말자.’라는 생각에 말꼬리를 돌려 듣기 좋은 말만 했다. 네가 한 말은 진심이라고는 한마디도 없는 거짓말, 가식적인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네가 행한 것은 사탄의 도, 마귀의 도이다. 하나님의 도는 무엇이더냐? 그것은 진리이자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근거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이다. 너는 사람을 상대로 말하지만 하나님 역시 듣고 있다. 하나님은 네 마음을 보고 감찰하고 있다. 사람들은 네가 한 말을 듣겠지만 하나님은 네 마음을 감찰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찰할 수 있겠느냐? 기껏해야 네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고 표면적인 것만을 알아챌 수 있을 뿐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네 마음속 깊은 곳을 꿰뚫어 볼 수 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계산하는지, 네 마음속에 어떤 꿍꿍이와 수작이 들어 있는지, 어떤 여러 가지 생각이 있는지 오직 하나님만이 볼 수 있다. 하나님이 네가 한 말이 진실이 아님을 보았을 때 너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와 평가는 어떤 것이겠느냐? 네가 그 일에서 하나님의 도를 행하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한다면 사실대로 “그 사람은 자질은 있지만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네 평가가 그 사람의 실제 상황에 완전히 부합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네 마음속 말, 진실한 말이며 네가 드러내야 하는 관점이자 입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하나님의 도를 행한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네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으면서도 스스로가 하나님의 도를 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네가 외치는 구호를 보겠느냐? 네가 어떻게 외치는지, 얼마나 크게 외치는지, 얼마나 큰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보겠느냐? 네가 몇 번이나 외쳤는지를 보겠느냐?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로지 네가 진리를 실행하는지,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진리를 실행하는지를 본다. 만약 네가 선택한 것이 인간관계를 지키고 네 이익과 체면을 지키는 것으로, 전부 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일이 닥쳤을 때 네가 이런 관점과 태도를 보이는 것을 지켜보고 너에게 ‘하나님의 도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릴 것이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도를 행하겠다고 했는데, 어째서 일이 닥쳤을 때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냐? 네가 한 말은 속마음에서 나온 말이고 네 뜻이자 소망이며, 네 마음이 감동받아 통곡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말했다고 해서 사람이 진리를 실행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사람에게 진실한 간증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듣기 좋은 말만 조금 하면 끝이다. 도리를 말하고 구호를 외치는 데 가장 능한 바리새인들은 항상 큰 거리 어귀에서 “위대한 하나님이시여!” “존귀한 하나님이시여!”라고 외쳤기에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경건해 보였으며, 그들은 율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칭찬했느냐? 칭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정죄했느냐? 하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라고 불렀다. 옛날에 이스라엘에서 존중받는 계층이었던 바리새인들이 어째서 지금은 그런 꼬리표가 붙은 것이겠느냐? 그들은 한 부류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됐는데 그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느냐? 외식하고 포장하고 위장하는 데 능하여 매우 고상하고 거룩하며 정직하고 떳떳한 사람인 척하고 그럴싸한 구호를 외치지만, 결과적으로 진리를 조금도 실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좋은 행위를 했느냐? 성경을 읽고 설교하고, 사람들에게 율법과 규례를 지키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런 것들이 모두 좋은 행위였다. 하지만 그들은 말만 번드르르할 뿐 뒤에서는 제물을 훔쳐 먹었다. 예수는 그들을 보고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 23:24)라고 했다. 바로 그들이 행한 것은 모두 외적인 좋은 행위라는 것이다. 그들이 당당하게 구호를 외치고, 거창한 이론을 얘기하며 말도 번드르르하게 잘했지만, 행하는 것은 모두 엉망이고 전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다. 외적인 행위는 모두 가식적이고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며, 속으로는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 하나님에게서 나온 모든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무엇을 사랑하겠느냐? 공의와 공평함을 사랑하겠느냐? (사랑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들이 그런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느냐? (예수께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지만 그들은 받아들이기는커녕 되레 정죄했습니다.) 그들이 정죄하지 않았다면 알아챌 수 있겠느냐? 알아챌 수 없다. 예수의 현현 사역으로 바리새인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들이 예수를 정죄하고 대적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로소 그들의 외식을 알아차렸다. 예수가 나타나 사역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바리새인을 분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외적인 행위만 보았다면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가식적인 좋은 행위로 사람을 속여 신뢰를 얻었다. 이것은 위선이자 간사함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간사한 사람이 진리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들이 이렇게 좋은 행위를 보여 주는 그 이면에 어떤 목적이 있겠느냐? 한편으로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회유해서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만들고 마지막에는 상을 받으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사기극이냐! 고단수가 아니냐? 이런 사람들이 공평함과 공의를 사랑하겠느냐? 분명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위와 명리를 사랑하고, 상과 면류관을 원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가르치는 그 말씀들을 그들은 한 번도 실행하지 않고, 진리 실제를 전혀 살아 내지 못한다. 모두 좋은 행위로 포장하고, 외식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속이고 회유해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확고히 한 다음, 이런 것들을 이용해 자본과 밥그릇을 손에 넣는다. 이것은 비루한 짓이 아니냐? 그들의 모든 행동을 통해 그들이 본질적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결코 진리를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보고 그들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느냐? 제일 큰 일은 이것이다. 예수가 구속 사역을 하러 왔고, 예수가 하는 모든 말은 진리이고 권병이 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대했느냐? 그들이 예수의 말에 권병과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정죄하고 모독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이겠느냐?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가 한 말이 옳고 권병과 능력이 있으며 틀린 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들은 그 어떤 꼬투리도 잡지 못했으면서도 예수를 정죄하려고 의논하고 음모를 꾸몄으며 “그를 못 박아 죽여라. 그가 있으면 우리는 없고, 우리가 있으면 그는 있을 수 없다.”라고 했다. 이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예수와 적이 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예수가 성육신한 하나님임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는 많은 진리를 선포하고 사람을 위해 귀신을 쫓고 병을 치료해 주었으며, 수많은 이적을 행하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였을 뿐 아니라,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사람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 이만큼 훌륭하고 의로운 사람이 없는데도 바리새인은 어째서 예수를 정죄하려고 한 것이냐? 어째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만 했던 것이냐? 그들은 죄인을 석방할지언정 예수는 풀어 주지 않았다. 이것으로 종교계의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사악하고 악독한지 알 수 있다. 이들은 너무 악하다! 바리새인이 드러낸 사악한 얼굴과 그들이 겉으로 위장한 선량함이 너무도 달라서,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수의 현현 사역을 통해 그 바리새인들을 완전히 드러낸 것이다. 바리새인이 평소에 얼마나 잘 위장하고 겉보기에 얼마나 경건하게 보였는지, 그들이 그토록 잔혹하게 예수를 대적하고 박해할 수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진상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면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는 사람을 너무도 명백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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