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너희는 지금 자신을 인식하는 일에 대해, 생명 진입에 대해, 하나님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는 일에 대해 길이 있느냐? 목표와 방향이 있느냐? 우리가 교제를 꽤 했으니 아마 대강의 윤곽은 잡혔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정직한 사람이 되는 방면, 자신을 인식하는 방면,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먹고 마시는지, 어떻게 진리를 교제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본분 이행할 때는 어떻게 조화롭게 협력해야 하는지, 형제자매 간에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수립해야 하는지 등등 여러 방면을 교제했다. 너희는 지금 하나님 믿는 각 방면의 진리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실제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다. 전에는 물어보면 어느 방면이든 아주 모호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지금은 많이 나아졌느냐? (지금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점점 명확해지는 것이 옳다. 사실, 어느 방면의 진리를 실행하든 상관없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도 좋다. 혹은 형제자매들과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 것인지,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 낼 것인지 등도 상관없다. 어느 방면의 진리에 진입하려고 추구하든, 우선은 자신을 인식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자신을 인식하는 문제와 관련되지 않느냐? 네가 자신이 간사하고 정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천할 수 있다. 스스로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실천하거나 혹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를 구하게 된다. 네가 만약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네가 원하는 것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든, 구원받는 것이든 모두 빈말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은 패괴 성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방면의 진리를 실행하든 모두 그렇게 쉽지 않고, 패괴 성품이라는 불순물과 장애물이 존재한다. 네가 각 방면의 진리를 실행하려 할 때면 반드시 패괴 성품이 흘러나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을 가로막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가로막고, 형제자매들에게 인내와 포용을 베풀지 못하게 가로막을 것이다. 네가 그 패괴 성품들을 반성하지 않고 파헤치지 않고 해부하지 않고 인식하지 않은 채,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서 진리를 실행한다면, 그것은 단지 규례를 지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지켜야 할 진리 원칙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방면의 진리를 실행하고 무슨 일을 하건, 우선은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의 언행, 일거수일투족을 인식하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 속셈, 관념, 상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사탄의 처세술, 사탄의 여러 가지 독소, 그리고 전통문화의 지식을 인식해야 한다. 반드시 진리를 구하여 이런 것들을 확실히 분별해야 진리를 깨닫고, 참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 좋은 행위를 많이 갖추어도 아직 많은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나아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좋은 행위가 많아졌기 때문에 자신이 이미 진리를 실행하고 있고, 이미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고, 이미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만족게 했다고 착각할 뿐이다. 아무 일도 닥치지 않았을 때 너는 시키는 대로 일하고, 본분을 이행하라고 해도 주저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라고 해도 아무런 원망 없이 그 방면의 고통을 감내하며, 사역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거나 혹은 어떤 일을 하라고 시켜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들은 너로 하여금 스스로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너에게 진지하게 따지며 “당신은 정직한 사람입니까?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당신은 성품이 변화한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를 근거로 모든 사람에게 대조해 본다면, 합격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도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패괴된 인류는 모두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사람은 모두 어떤 성품으로 살아가는지, 사람의 행동은 모두 어떠한 사탄 철학과 논리, 어떠한 사탄의 사설과 궤변에 근거하는지, 사람이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 사람이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본질은 무엇인지, 사람은 과연 무엇에 기대어 살고 누구를 위해 사는지 등을 돌아봐야 한다. 진리로 대조해 보면 사람은 모두 정죄받을 것이다. 이것은 무슨 까닭이냐? 바로 인류가 너무 깊이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탓에 패괴 성품에 따라 살면서 자신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늘 사람의 관념 상상대로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기호와 방식대로 본분을 이행하고, 종교 이론대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그것이 믿음이 넘치고 매우 일리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에는 자신이 커다란 수확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행했다고, 이미 하나님 마음을 완전히 만족게 했다고, 이미 하나님 요구에 이르렀다고, 이미 하나님 뜻대로 행하고 있다고 믿는다. 만약 네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이미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어서 어느 정도 수확을 거두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런 상황일수록 하나님 앞에 와서 열심히 성찰해야 한다. 자신이 몇 년째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했던 행동이 하나님 뜻에 완전히 부합했는지, 어떤 모습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고, 어떤 모습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었는지, 자신이 한 일이 과연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렀는지, 하나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이런 것들을 잘 알아야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이 잘했거나 옳게 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거나 자신을 자랑할 만하다고 여기는 부분일수록, 더욱 자신을 인식할 필요가 있고, 더 깊이 파헤쳐 그 안에 대체 어떤 불순물이 있는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없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바울을 예로 들어 보겠다. 바울은 배운 지식이 무척 많았으며, 전도하고 사역할 때도 많은 고난을 겪었다. 이에 수많은 사람이 그를 매우 우러러보았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역을 한 후, 자신을 위해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여겼다. 이로 인해 그는 잘못된 길에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 당시에 그가 스스로를 반성하고 해부할 수 있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바울은 예수의 말씀 속에서 진리를 구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만을 믿었다. 좋은 방식과 행위만 있으면 하나님께 인정받고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그의 관념과 상상이 그의 마음을 가렸고, 그의 패괴된 본모습을 숨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분별하지 못하고 이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밝히기 전까지 사람들은 계속 바울을 자신들의 목표, 본보기로 삼았으며, 바울이야말로 자신들이 동경하고 추구해야 할 우상이라고 여겼다. 바울의 사례는 모든 하나님 선민에게 하나의 경고다. 특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섬길 때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면 자신이 충성을 다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몹시 필요한 일이다. 네가 좋다고 생각한 것을 옳다고 규정해 의심도 반성도 하지 않을 것이고, 거기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없는지 해부해 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기 마음이 매우 선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여태껏 남을 미워한 적도, 해친 적도 없고, 형제자매들 집에 일이 생기면 언제나 가서 도우며 다른 사람에게 일이 생길 때 해결해 주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는 선한 마음을 많이 지니고 있으며, 온 힘을 다해 모든 사람을 돕는다. 하지만 한 번도 진리 실행을 중요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생명 진입이 없다면 결국 사람들을 도와주더라도 어떻게 되겠느냐? 자신의 생명에 지장을 주고도 득의양양해하며 자신이 한 모든 일에 더없이 만족한다. 또 그것을 뿌듯하게 여기며 자신이 한 모든 일이 진리에 어긋나지 않으니 분명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기야말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타고난 선의를 밑천으로 삼았고, 그러고 나서 아주 당연하게 그것을 진리로 여겼다. 사실,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인위적인 호의로, 진리 실행이 전혀 아니다. 그는 그 일들을 전부 사람 앞에서 했지 하나님 앞에서 하지는 않았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요구와 진리대로 실행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행한 그 모든 일은 다 헛수고에 불과하다. 그가 행한 그 모든 일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의 선의와 좋은 행위로 남을 돕는 것이었다. 종합해 보자면, 그는 그 모든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하지도 않았다. 사람의 이런 좋은 행위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것은 정죄받는 것이고, 기억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아주 중요하다. 이것은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와 같은 큰일에 직접적으로 관계된다. 그러니 이 일을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라.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행위를 인식하는 것도, 방법을 인식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고, 사람이 패역한 근원과 본질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사람이 왜 진리를 실행할 수 없는지, 진리를 실행할 때 모두 어떤 것이 튀어나와 사람을 교란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자신을 인식하는 몇 가지 주요 측면이다. 예를 들어,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불효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주입받았으며,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렇게 교육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야.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을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이 옳으냐? 하나님이 선포한 그 많은 진리를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진리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느냐? 그런 내용은 없다. 하나님은 몇몇 원칙들만 교제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만약 네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믿는 것이 올바른 길이고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사람일 것이며,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증오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도 당연히 그들을 혐오하고 증오할 것이다. 너는 이런 부모를 혐오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욕한다면, 틀림없이 마귀이자 사탄일 것이다. 너는 그들을 증오하고 저주할 수 있겠느냐? 이는 다 현실적인 문제이다. 네 부모가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막는다면, 너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라.”라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대해야 한다. 은혜시대에 예수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했다. 은혜시대에 벌써 이 말씀이 있었고, 오늘날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라.”라는 말씀은 더욱 명확하고 단도직입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하나님이 한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가령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사람이 너의 부모나 가족이라면, 그가 겉으로는 악인 같아 보이지 않고 네게도 잘해 준다면, 너는 그를 미워할 수 없으며, 심지어 가까이 왕래하며 변함없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을 증오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너는 마음이 괴롭다.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하고 모질게 그들을 버리지 못하며 정에 얽매여 여전히 그들과의 인연에 연연하는데, 이는 무엇 때문이겠느냐? 네 정이 너무 깊어 그것이 네가 진리를 실행하는 걸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를 잘 대해 주므로 네가 증오할 수 없는 것이다. 네게 해를 끼쳤을 때 그제야 증오하기 시작한다면, 너의 그 증오가 진리 원칙에 맞겠느냐? 이 밖에도, 너의 내면은 전통 관념에 얽매여 있다. 너는 너의 부모나 가족인 그들을 증오하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여론의 질타를 받을 것이고, 인간이 아닌, 양심 없는 불효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며, 벌을 받고 벼락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들을 미워하려고 해도 양심에 찔리는 것이다. 그런 양심적 반응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냐? 어려서부터 가정의 유전과 부모의 교육, 전통문화의 영향이 너에게 일종의 사상을 심어 놓았고, 이 사상이 네 마음에 깊이 뿌리내린 탓에 너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옛 조상의 유전이 영원히 좋은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네 마음속에 먼저 들어가 주인이 된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크게 교란하고 방해한다. 또한, 네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못하게 한다. 사실, 너는 속으로는 너의 생명이 부모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기까지 하는 네 부모를 하나님이 증오하므로 네가 마땅히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너는 증오하려 해도 그럴 수 없다. 마음이 거기서 돌아서지 못하고 마음을 모질게 먹지도 못하고 진리를 실행하지도 못한다. 근본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사탄은 그런 전통문화와 도덕관념으로 너의 사상, 생각, 마음과 영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너는 이미 사탄의 그런 것들에 점유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면 너의 내면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작용해 방해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맞서게 한다. 너는 전통문화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다. 너는 발버둥 치다 얼마 못 가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전통적 도덕관념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거나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기대 생활해야 출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전통적 도덕관념과 사탄의 권세에 항복할지언정, 하나님께 죄를 지을지언정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은 가련하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으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일을 여전히 간파하지 못하고 진리를 정말 모른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속적인 관계를 타파하지 못하는데, 그에게는 그런 용기와 믿음도 없고, 그런 의지는 더더욱 없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경지에 이를 수 없다. 이 일을 간파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부모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제가 하나님 믿는 것도 방해합니다. 그들은 마귀입니다.”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 대단하다. 이방인들은 모두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했다는 사실도 믿지 않고,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사실도 믿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생명은 부모가 주셨으니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지요.” 이런 사상 관점은 어디서 온 것이냐?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냐? 몇 천 년의 전통문화는 이렇게 사람을 교육하고 미혹해서 하나님의 창조와 주재를 부인하게 한다. 만약 사탄의 미혹과 통제가 없다면 인류는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볼 것이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고 사람의 생명을 주셨고 사람의 모든 것을 주셨으니 사람이 감사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우리 부모가 우리를 낳아 키운 것은 모두 하나님의 안배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 것이다. 사람은 단지 힘쓰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부모를 내려놓거나 남편(아내), 자식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비교적 굳세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이 국가의 교육, 전통문화의 사상 관념, 도덕적인 말의 속박을 깨뜨리게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사탄의 독소, 사탄의 철학이 이미 사람 마음에 뿌리내렸고, 사람에게 생겨난 온갖 패괴 성품이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가로막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전혀 진리를 실행하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행하고자 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할 수 있으며, 언제든 하나님을 배반하고 버릴 수 있다. 사람 내면에 이런 패괴 성품들이 존재하고, 이런 사탄 독소와 사탄 철학이 존재하는데,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겠느냐? 결코 쉽지 않다. 하나님이 친히 심판 사역을 하지 않으면, 심하게 패괴된 인류는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사람 내면의 온갖 사탄 성품이 정결케 될 수 없다. 설령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기 원하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경지에는 다다를 수 없다. 사람에게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이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를 추구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인식하기를 추구해야 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면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쉬워질 것이다. 자신을 인식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만이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사람은 패괴 성품이 있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고,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구원에 이르고자 한다면 자신의 패괴 성품과 본성 본질을 알아야만 진실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글귀와 도리를 얘기할 줄 아는 것에 만족하고, 그것이 진리를 깨달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깨닫고 얻으려면 자신을 인식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나 우리 모두가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파헤쳐 해부하며, 자신을 인식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 대한다면, 우리는 분명 수확을 거둘 것이고, 점점 깊이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실천하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실천하고, 갈수록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진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명이 된다. 하지만 네가 만약 자신을 인식하는 일에 전혀 진입하지 못한다면, 네가 자신이 진리를 실행한다고 하는 말은 거짓이다. 많은 표면적인 현상이 너를 기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스스로의 행위가 좋아졌다고 여기고, 자신이 예전에 비해 양심과 이성을 갖추고, 예전보다 상냥해지고, 다른 사람을 헤아리고 포용할 줄 알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인내하고 관용을 베풀 줄 안다고 여기게 되면, 너는 이제 정상 인성을 살아 내고 있다고, 자신이 무척 좋은 사람,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볼 때 너는 하나님의 요구 기준과 한참 동떨어져 있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기에도 한참 멀었다. 이것은 네가 진리를 얻지 못하고 실제가 조금도 없어서 구원받는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뜻이다. 과연 어떤 진리를 갖추어야 하나님의 요구에 다다를 수 있는지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일이다. 과연 무엇이 표면적인 좋은 행위이고 무엇이 진리 실행인지 사람은 아직도 제대로 볼 줄 모른다. 사람이 지금 갖춘 것은 그저 외적인 행위가 조금 바뀐 것뿐이다. 지금 많은 사람이 자주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듣고, 형제자매들과도 정상적으로 지내고 왕래하며 다투지도 않고, 또 서로 포용하고 인내하고 본분 이행에도 예전보다 마음을 들인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너무 얕다. 많은 일에 대한 사상 관점이 아직도 진리와 거리가 있고, 진리에 어긋나고, 심지어 어떤 관점은 하나님께 적대적이다. 이것은 사람이 아직 진리를 얻지 못했음을 충분히 설명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인식하는 모든 방면의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더 깊이 자신을 인식하기를 구해야 한다. 이렇게 교제하는 동안 너희는 자신을 인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느냐? 방금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을 예로 들었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직면해야 하는 큰일이다. 만약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전통적인 사상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속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발버둥 쳤는지 모른다. 또 언제 비로소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고 육적인 정, 전통적인 사상 관념의 속박과 올가미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게 될지’ 모른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정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육적인 가족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하나의 난관이다. 가정과 육의 정을 타파하고, 전통문화 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상황을 마련해 우리가 진리에 진입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특히 우리 가족에 대해서는 그들의 진면목을 간파하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본성 본질을 간파해야 한다. 동시에 자신이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냈고, 마음속에 아직 남아 있는 사탄의 이단 사설은 어떤 것인지 진리에 근거해 반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이 각종 상황을 마련해 우리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합하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인식하고, 진리를 구해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적합한 상황을 안배해서 우리의 패괴를 드러내고 우리의 분량을 드러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하나님과 협력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해야만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일하기 전에 우리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은 사람 내면의 사탄 독소를 인식하고, 전통문화의 사상 관념이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유전과 교육, 사회로부터 받은 사탄에 속하는 것들이 과연 하나님을 얼마나 심각하게 대적하고, 진리에 얼마나 많이 어긋나는지 인식해야 한다. 이런 것을 간파해야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부모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해 보았다. 이것은 인생에서 커다란 일이라고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큰일이기도 하다. 이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 이제 또 다른 주제인 자녀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 교제해 보자. 자녀를 어떻게 대하고 부모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는 네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은 네 마음속의 관점, 네가 그들을 대하는 관점, 태도와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녀가 생기면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한테 이런 교육을 받게 하고, 어느 대학에 진학시키자. 그런 다음 좋은 직업을 찾으면 사회에 발붙이고 지위도 생기겠지.’ 사람들은 모두 인생을 살아가려면 우선은 지식과 학력이 있어야 사회에 나가 직업을 구해서 밥그릇을 얻고, 그러면 앞으로 먹고 사는 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자녀를 대함에 있어, 부모는 모두 자녀들이 고등 교육을 받고 언젠가는 출세하기를 바란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도 있고 안정적인 고소득이나 명예와 지위가 있어야 가문을 빛낸다는 관점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아들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다.”, 이 관점이 옳으냐? 누구나 자녀를 이름 있는 대학에 보내고 공부를 계속 시키고 싶어 하며, 높은 학위를 받으면 남보다 훌륭해질 거라고 믿는다. 마음속으로 지식을 숭상해서 “모든 게 다 쓸모없고, 오직 공부만이 최고다.”라고 여기는 데다, 현대 사회는 경쟁이 무척 치열해서 학위가 없으면 먹고살기도 어렵다. 이것이 모든 이의 사상과 관점이다. 높은 학력만 있으면 훗날 밥벌이와 진로가 해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람이 자녀에게 첫 번째로 요구하는 큰일이 바로 대학교에 입학하고 고등 교육을 받는 것이다. 사실, 사람이 받아들인 교육과 지식, 사상들은 전부 하나님이나 진리와 어긋나며, 하나님이 증오하고 정죄하는 것들이다. 이것은 사람의 관점이 모두 틀렸고, 그만큼 황당하다는 뜻이다. 사람은 알아야 한다. 만약 사람이 이런 교육을 받는다면 약간의 쓸모 있는 문화 지식을 배우는 것 외에, 얼마나 많은 사탄 독소가 주입되고, 얼마나 많은 사탄의 사상 이론, 각종 사설과 궤변이 주입될지, 또 그것이 사람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말이다. 사람은 이 점을 누구도 생각해 본 적 없고, 꿰뚫어 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식이 고등 교육기관에 진학하면 장래가 유망해지고, 그것이 곧 조상을 빛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식이 돌아왔는데, 네가 하나님 믿는 것에 대해 얘기하면 그들은 반감을 품을 것이다. 진리를 교제하는 너를 바보 같다고 비웃고, 네가 하는 말을 무시하면서 말이다. 그제서야 너는 자식을 고등 교육기관에 보내 고급 교육을 받게 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느끼지만, 후회해도 늦었다. 일단 사탄의 철학과 관점을 받아들인 이상, 그것이 마음에 뿌리내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마치 악성 종양이 생긴 것과 같아서 하루 아침에 없애거나 바꿀 수 없다. 그때가 되면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고, 구원에 이를 방법이 없다. 이것은 사탄에게 독살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어느 누구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이가 학교 다닐 때는 간단히 글자나 배우게 해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게 할 겁니다. 나중에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면서 유용한 전공을 배운 다음 좋은 직업을 찾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으면 마음이 놓이겠지요. 그 아이가 자질이 좋고 인성도 좋아서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으면 더 좋지요. 만약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스스로 밖에서 밥벌이를 해서 식구들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에 오염되거나 물들지 않고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에게서 온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죠.” 사람은 자식을 하나님 앞에 데려올 믿음은 없고 오로지 자식이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해 창창한 앞날을 맞이하지 못할 것만 걱정한다. 즉 자식을 대하는 일에서 기꺼이 자식을 하나님 앞에 데려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리에 따라 살아가고 하나님 요구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자식이 사회에서 밥벌이도 못하고 전망도 없을까 봐 그럴 마음도, 그럴 용기도 없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무엇을 증명하느냐? 사탄에 깊이 패괴된 사람이 하나님 믿는 일에도, 진리에도 관심이 없음을 증명한다. 설령 하나님을 믿더라도 그저 복을 받기 위한 것일 뿐,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속으로 숭배하는 것이 물질과 금전이고 사탄의 권세인 까닭이다. 너는 이런 말을 할 만한 믿음이 없다. “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어. 그분께서 사람에게 살아갈 길을 주실 거야.” 너에게는 이런 믿음이 없다. 지식을 숭배하는 잘못된 관점이 이미 네 안에 뿌리내려 너의 언행 하나 하나를 통제하고 있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이거나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는 더욱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사람의 사상 관점은 하나님에게 적대적이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부정하며 진리에 합하지 않는다. 진리를 깨달을 때 사람은 이 문제를 간파할 수 있다. 또 자기 내면에 하나님에게 적대적인 것이 많고, 그것은 아예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라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 사역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효과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이 없었다면,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은 후 일부 행위에 변화가 생겼을 때 너는 자신이 이미 성결해졌다고, 자신이 하나님을 아주 사랑하고 하나님께 강한 믿음이 생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리를 이해한 지금은 갑자기 이런 인식이 생겼다. ‘사람에게는 어째서 아직도 패괴한 것들이 있을까? 어째서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을까? 사람은 너무나 어리석고 무지하구나!’ 그때는 하나님이 사람의 패괴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또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드러내지 않고 심판하지 않으면 사람은 영원히 인식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꾸미고 위장하는 데 능해서 겉모습을 잘 위장하거나 훌륭하게 가리고 포장한다. 하지만 사람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 사람의 사상 안에 깊이 뿌리내린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 점을 폭로하려는 것이고, 사람도 이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은 종종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도 하지 않고, 이성도 생겼어. 도를 넘는 행위도 하지 않고 말이야. 본분도 이제는 제대로 이행하고 있고, 무슨 눈에 띄는 문제도 없어. 그런데 또 무슨 자신을 인식한다는 거지? 아직도 자신을 인식해야 하나?’ 이것이 사실에 부합하는 관념이냐? 사실에 부합한다면 어째서 사람은 아직도 늘 하나님 앞에 죄를 인정하느냐? 어째서 사람은 늘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그것도 모자라 과오를 범하느냐? 그래서 내가 너에게 자신이 괜찮다고 느끼는 부분일수록 진리를 구해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진실로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 사역을 통해 이루려는 효과다.

많은 이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 축복하는 일인 줄 알고, 부모에게 효도하면 하나님이 분명 좋아할 것으로 생각한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양심이 있고 근본을 잊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전통 관념에 따르면 이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효자다. 효자라고 하면 누구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좋아해 주고, 부모도 좋아하니까 너는 너무도 당연하게 하나님도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믿고 김칫국부터 마신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분명 좋아하시겠지. 좋아하고 말고!” 그래서 본분도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 그것도 갈수록 의욕적으로 효도하고, 효도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진리를 실행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본인이 이미 하나님을 만족게 했다고, 하나님이 칭찬하고 기뻐하고 인정할 만한 자본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고 있다고 지적하거나, 혹은 너에게 아무런 변화도 없다고 한다면, 너는 하나님에게 반항하고 하나님을 판단할 것이다. 하나님 말이 틀렸다며 하나님 말을 부정할 것이다. 이것은 무엇이 문제냐? 너는 하나님이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네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다고 폭로하는 것은 부정하고 거부한다. 심지어 반항하며 하나님을 판단할 것이다. 이것은 무슨 성품이냐?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는 점이다. 평소에 누구나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고 인정하고 자신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폭로할 때는 아무도 하나님 말씀을 신경 쓰지 않고, 누구도 매사에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대조해 보지 않는다. 다들 입으로만 몇 마디 내뱉고는 그걸로 끝이다. 혹은 예배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몇 구절 암송하고 교제만 몇 마디 나누면 끝이다. 사실 너는 무슨 일을 할 때 결코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네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교제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너에게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대체 왜 하나님 말씀을 읽느냐? 그건 그저 형식만 갖추는 것이 아니냐? 그런 식으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느냐? 진리를 얻을 수 있느냐?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읽고 글자 그대로만 이해하고, 또 글귀와 도리를 조금 얘기할 줄 알면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진리 실제가 생긴 줄 안다. 누군가는 말한다. “제가 교제한 것이 하나님 말씀이지, 어째서 글귀와 도리입니까?” 너는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했고, 실행하지도 못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과 인식은 더더욱 없다. 그렇다면 네가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는 것은 그저 글귀와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이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너는 진리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실행해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네가 이해한 것은 도리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이런 말을 들으면 상처를 건드리는 느낌이 들지 않느냐?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으면 대역무도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시는 요구가 사람 생각과 어긋난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겠느냐? 너희들이 보기에 하나님이 요구하는 기준이 높으냐? 사실 높지 않다. 사람의 양심과 이성을 놓고 볼 때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다. 단지 사람이 정에 이끌리고, 또 사람 마음 깊이 뿌리내린 전통 문화가 굳건히 자리잡았기에 하나님 요구가 너무 높게 느껴지고, 정말 닿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다. 만약 정말로 진리를 깨닫고, 일의 실상을 간파하면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보고 처리할 수 있다. 수천 년 이어져 온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마음에는 사탄의 철학과 처세 법칙이 뿌리내렸다. 그 사상에 따라 살아가는 네가 과연 무엇을 살아 낼 수 있다는 말이냐? 정상 인성을 살아 냈느냐? 진정한 인생을 살아 냈느냐? 이건 인식하고 해부해 볼 일이다. 네가 과연 전통문화, 사탄의 철학과 관점으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 그것들이 과연 진리인지, 너에게 무얼 가져다주었는지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이 일들을 교제하고 해부한다면, 진리를 발견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일단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뜻을 헤아린다면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요구가 사람의 양심과 이성으로 도달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사람에게 너무 높은 요구를 한다는 원망은 사라지고, 대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희는 이제 원칙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이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실행 길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깨닫는 과정이다.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의 사상 관점 가운데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 패괴 성품에 속하는 것, 하나님에게 맞서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인식하는 것이다. 사람의 교만함, 독선, 거짓말, 간사함과 같은 패괴 성품은 모두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진리를 몇 번 교제하거나, 혹은 자주 교제하거나, 또는 형제자매가 상태를 짚어 주기만 하면 조금 알 수 있다. 게다가 교만함이나 간사함은 정도와 경중에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지니고 있으므로 비교적 쉽게 인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의 사상 관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분별이 쉽지 않다. 패괴 성품을 인식하는 것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의 행위, 겉으로 드러난 행동에 변화가 생길 때 사람은 자신이 변화되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행위의 변화일 뿐, 그 사람의 사물 보는 관점이 진실로 변화된 것이 아니다.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는 아직도 관념 상상에서 비롯된 것, 각종 전통문화적인 사상 관점과 독소가 많이 있다. 또한 사람 내면에 숨겨져서 아직 파헤쳐지지 않은, 하나님에게 적대적인 것들도 많다. 이런 것들이 바로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근원이고, 사람의 본성 본질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너는 하나님이 하는 일이 관념에 맞지 않으면 반발하고, 반항하고, 하나님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도 못한다. 하나님이 하는 일에는 모두 진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또 순종하려고도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왜 순종할 수 없느냐? 왜 반발하고 반항하느냐? 바로 사람의 사상 관점에 담긴 많은 것들이 하나님에게 적대적이고, 하나님이 일하는 원칙과 하나님의 본질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것들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교제했으니 너희는 깨우침을 얻고 어느 정도 인식이 생겼을 것이다. 너희가 어떤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관념이 생기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셨을 리가 없어. 만약 하나님이었다면 이렇게 하지 않고, 이런 말도 안 했을 거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사랑이고, 사람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옳지 않아.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 사람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부분에는 구할 만한 진리가 있다고 말이야. 그러니 나 자신을 반성하자. 내 마음속에 있는 관념 상상이 훼방을 놓아서 하나님 사역을 규정하게 만들고 있는 거니까, 하나님을 오해해선 안 돼.’ 이렇게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은 옳다. 하나님 사역과 말씀이 네 관념에 맞지 않아 보일 때는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서둘러 하나님 말씀 안에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과 맞춰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한다면, 이것이 곧 길이 생긴 것이 아니냐?

지금까지 부모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해 교제했다. 많은 사람들이 항상 부모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느낀다. 부모는 평생 나를 위해 고생도 많이 하고, 나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해 준 존재다. 어느 날 부모가 아프면 네 양심에 걸리고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갑작스레 너는 부모 곁을 지키면서 열심히 효도하고, 만년을 즐겁게 보내도록 부모에게 위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식으로서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가 그 의무를 이행하는데 하나님이 너에게 요구를 한다든가 생각지 못한 시련을 내린다면, 그것은 네가 그래서는 안 되고, 하나님 믿는 것,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이다. 가령 하나님이 너에게 네 부모에게 그런 식으로 효도하지도 말고, 네 부모를 그런 식으로 대하지도 말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한다면 너는 속으로 어떻게 하겠느냐? 전통적인 관념으로 이 일을 바라보고, 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다. 네 생각에 하나님이 그러는 것은 인정에 어긋나고, 하나님이 그러는 것은 네 효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너는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이 효심이 가득하고, 인성이 가득하고, 양심이 가득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네 양심, 네 효심을 따르도록 하지 않을 때, 너는 반항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많이 한 이유는, 사람의 패역한 본성의 근원과 본질이 주로 사람의 사상 관점에서 비롯되었고, 이 사상 관점은 바로 가정에서의 교육, 사회에서의 교육을 받아들이고 전통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것들이 가정에서의 유전, 사회의 영향, 학교 교육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 조금씩 심어진 뒤로 사람은 이런 것들에 의지하며 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이런 전통문화는 올바른 것, 나무랄 데 없고 비난할 데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반드시 전통문화의 요구에 따라 행동해야 진정한 사람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양심을 잃어버리는 것, 인성에 어긋나거나 인성이 없는 것이고, 스스로도 넘어갈 수가 없다. 사람의 이런 사상 관념은 진리와 차이가 매우 크지 않으냐? 사람의 사상 관점, 사람이 좇는 목표는 세상을 향하고 사탄을 향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리를 추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이고, 광명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향, 두 가지 목표는 다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린 목표와 요구를 따른다면 너는 갈수록 정상 인성을 되찾고, 사람다워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것이다. 만약 네가 전통문화적 사상 관점을 따른다면 갈수록 양심과 이성을 잃고, 거짓으로 위장하고, 세상의 풍조를 좇아가서 사악한 세력의 구성원이 되고 말 것이다. 그때는 완전히 흑암 속에서 살고 사탄의 권력 아래 살게 되는데, 그러면 너는 진리에 완전히 어긋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 현실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다.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사람의 사상 관점에는 전통문화의 요소가 적지 않다. 특히 전통문화는 여자에게 남편을 내조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현모양처가 될 것을 요구한다. 여자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남편과 자녀를 위해 살아가며, 가족들 세끼 식사 준비와 뒷정리를 비롯한 모든 집안일을 훌륭히 해내야 한다. 이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현모양처의 표준이다. 여성들도 모두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렇지 않으면 좋은 여자가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양심에 어긋나고 도덕 기준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도덕 기준에서 벗어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남편과 자식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좋은 여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네가 하나님을 믿은 후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서 진리를 이해하고 일을 간파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피조물이니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 이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과 현모양처가 되는 일이 부딪히지 않느냐? 현모양처가 되려면 본분에만 전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본분에만 전념하려면 현모양처가 될 수 없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책임 있게 교회 사역을 대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을 택한다면 현모양처가 되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데, 이럴 때 너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네 사상에는 어떤 파동이 일겠느냐? 네 자식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는 않겠느냐? 너의 그런 미안함과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네가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드느냐? 미안함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면 그것은 네 마음과 네 사상 속에 진리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네가 이해한 바는 무엇이냐? 전통문화이고,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네 사상 속에는 현모양처가 못 되면 좋은 여자가 아니고, 바른 여자가 아니라는 관념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너는 이 관념에 얽매이고 사로잡혀 하나님 믿고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여전히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본분 이행과 현모양처 되는 일이 부딪혔을 때, 너는 비록 마지못해 본분을 택하거나 하나님께 충성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하다가 틈이 생기면 자식과 남편에게 더 많이 보상해 주려는 마음에 여전히 그들을 챙길 기회를 찾는다. 설령 본인이 더 고생스럽더라도 마음만 편하면 된다. 이것은 전통문화 중에서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 이론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일이 아니냐? 너는 지금 양다리를 걸친 채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고 싶고 현모양처도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책임과 의무, 너희의 사명은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 하나뿐이다. 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였느냐? 어째서 또 다른 길로 빠지려 하느냐? 설마 네 마음속에 죄책감도 참소도 없단 말이냐? 진리가 아직 마음에 단단히 뿌리내리지 않고, 마음에서 진리가 권세를 잡지 못한 까닭에 너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다른 길로 빠진다. 비록 지금 본분을 이행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사실 진리의 기준, 하나님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느냐? ‘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라고 했던 하나님 말씀은 무슨 뜻이냐?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영혼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오고,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부모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고, 대자연에서 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단지 우리 육만 부모를 빌려서 나왔고, 우리 자식은 우리를 빌려서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두 하나님에게 달렸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기회이자 하나님이 정한 운명,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래서 너는 어떤 사람에게도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다할 필요가 없고, 오로지 하나님에게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장 당연히 해야 할 일이요, 사람의 일생에서 반드시 완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일생일대의 과업이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너는 합격된 피조물이 아니다. 사람이 볼 때 너는 현모양처이자 훌륭한 주부, 효녀, 사회의 선량한 시민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 자신의 의무와 본분을 전혀 다하지 않은 사람, 하나님의 부탁을 받고도 완성하지 못한 사람, 도중에 포기한 사람일 뿐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이런 사람은 눈곱만큼의 가치도 없다. 네가 아무리 훌륭한 현모양처이고, 사회적 도덕 기준이 아주 높아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해도, 그것은 네가 진리를 실행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고, 네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네가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네가 양심과 이성이 없고, 정상 인성이 없는 사람, 마음속에 아예 하나님이 없는 사람임을 증명할 뿐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요구와 너무 거리가 멀지 않으냐?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 전통문화적 사상과 이론에만 의지해 살아가고 사회 풍조만 좇느라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빈곤하고 불쌍한 자가 아니냐? 어리석고 무지한 자가 아니냐? 네가 현모양처가 되고 사람이 좋아하는 좋은 여자가 되는 것이 여전히 자랑하고 우쭐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

사람 마음에 존재하는 것들은 사실 모두 다 진리와 어긋나고 하나님에게 맞서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긍정적인 것, 좋은 것,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포함된다. 심지어 우리 모두는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 사람이 진입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혐오스러운 것일 뿐이다. 사람이 생각하는 올바른 관점과 긍정적인 사물은 하나님이 말하는 진리와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 그 차이는 너무나 커서 가늠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를 인식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문화 교육에서부터 우리의 추구, 기호에 이르는 모든 것, 우리의 사상 관점에서부터 우리가 선택하고 걸어가는 길에 이르는 모든 것을 깊이 파헤치고 해부할 가치가 있다. 이것들 중 일부는 집안에서 유전된 것이고, 일부는 학교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고, 일부는 사회 환경으로부터 영향받고 감화된 것이고, 일부는 책에서 배운 것이고, 또 일부는 우리의 상상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것들이 가장 무섭다. 그것이 우리의 사상을 통제하고, 우리가 일하는 동기와 속셈, 목표를 통제하고, 우리의 언행을 옭아매고 통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파헤쳐서 끊어 내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일도 없을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 요구를 온전히 받아들여 실행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내면에 자신만의 사상 관점,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있으면 너는 온전히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곧이곧대로 실행하지 않고, 분명 자기 내면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공하고 자기 관념에 맞춘 다음 실행할 것이다. 너는 이렇게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그 사람도 네 방식을 따르도록 만든다. 이것은 비록 겉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불순물에 속한다. 그러나 자신은 아직 모르면서 자기가 진리를 실행한다고 생각하고, 벌써 진리 실제에 진입해서 진리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품이 아니냐? 이런 상태가 두렵지 않으냐? 진리를 실행하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면 오류가 나타나고, 늘 자기 상상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게 된다. 그러면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 이를 수 없다. 진리 실제에 진입하려면 반드시 자신에게 아직 어떤 관념 상상이 남아 있고, 또 자신이 사물을 보는 관점 중에 어떤 것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해부하려면 몇 마디 말로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물론 생활 속에는 더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전에 정리한 사탄 독소 백여 가지를 너희는 글자 그대로는 이해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에게 맞추어 보느냐? 반성해 보았느냐? 이 독소들에 너 역시 몫이 있지 않으냐? 너는 이 독소들을 모두 인정하지 않느냐? 네가 뭔가를 행할 때도 이 독소들에 따라 행동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네 개인적 체험에서 파헤쳐 보고 맞춰 보아야 한다. 너희가 하나님이 사탄 독소를 폭로하는 말만 골라 읽으면서 쓱 훑어보거나, 혹은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들이 정말 사탄 독소이고, 사람을 패괴시키고 해를 끼칠 수 있겠다고 인정한 다음 한쪽으로 제쳐 놓는다면 네 패괴 성품은 해결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실제에는 결부시키지 않는다. 그저 단순하게 글자만 읽으면서 쓱 훑어본다. 문자적인 의미만 알면 하나님 말씀을 이해한 줄 알고, 심지어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패괴 성품은 한 번도 반성하지 않는다. 패괴 표출이라는 것을 알고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 말씀이 폭로하는 내적 상태가 모두 옳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또 패괴 성품을 드러낸 것을 인정하면 그걸로 끝이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패괴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많은 이들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결국 일, 이십 년을 믿어도 성품이 변화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데, 그 근본 원인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 노력을 쏟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실행하는 과정에서 규례를 지키고 커다란 악행만 저지르지 않으면 진리를 실행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실행상의 오류가 아니냐?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냐? 사람은 생명을 지닌 존재이고, 다들 사상을 가지고 있다. 특히 누구나 패괴 성품이 마음에 뿌리를 내렸고, 모두 사탄 본성의 지배를 받아 온갖 사상 관점을 지니게 되었다. 이런 사상 관점은 모두 사탄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를 근거로 해부하고 인식하지 않으면 사람은 자신의 패괴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면 패괴 성품은 정결케 될 수 없다. 어째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모두 교만하고, 독단적이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느냐? 바로 여러 가지 사물을 대할 때마다 다양한 사상 관점을 지니고, 또 그들을 이끌 몇몇 사상과 이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행동하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진리를 교제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내면에 담긴 사상 관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것이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네가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일종의 사상 관점이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어떤 방향으로 하도록 지배한다. 만약 이 점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자주 반성하도록 해라. 그러면 네 내면에서 어떤 사상 관점이 계속 네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지금 네가 스스로의 사상 관점을 성찰해 보면 하나님에게 맞서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자신은 아주 정직하고 충성스러운 데다가 본분도 기꺼이 이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할 수 있어서 모든 게 다 괜찮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정말 너를 진지하게 대하며 너에게 네 관념과 어긋나는 일을 하도록 했는데, 그 일이 네가 하기 싫은 일이라면 너는 어떻게 대할 것이냐? 그때는 네 사상 관점과 패괴 성품이 봇물 터지듯 나와서 제어하기 힘들고, 그것이 네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을 가로막을 것이다. 너는 말한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럴까? 왜 하나님께 대적하고 싶지 않은데도 대적하는 거지? 하나님을 판단할 마음도 없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념을 가지고 싶지 않은데, 왜 난 여전히 하나님을 판단하고 관념을 가질까?” 이럴 때 너는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네 내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현재 행하는 사역에 맞서고 엇나가는 것은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성찰한 뒤에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로써 해결한다면 너는 생명이 자라나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중국은 무신론을 주장하는 정당이 통치하는 국가이다. 중국인들은 모두 무신론 교육과 진화론 교육을 받았고, 그 영향으로 만물은 대자연에서 유래했다느니,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라느니 하는 말이 널리 퍼졌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읽은 뒤에야 천지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했고, 사람도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진실임을 믿게 되었다. 대자연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므로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생겨날 수 없다. 특히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인류 역사가 생겨난 뒤 어떤 원숭이도 사람으로 변한 예는 볼 수 없고, 증거도 없다. 이것은 모두 사탄의 거짓말이자 속임수이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으면 사탄의 허튼소리와 사설과 궤변을 부정하고 성경 말씀, 하나님 말씀을 깊이 신뢰한다. 하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완전히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은 의혹을 품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었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을까? 어째서 나는 보지 못했지? 내가 못 봤으니 믿을 수 없어.’ 그는 눈으로 보아야 하나님을 믿는데, 이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인류를 이끌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계속해서 인류의 운명을 주재했다. 이것이 사실이다. 말세에 이르러 하나님이 이 비밀을 모두 드러내며 말하길, 사람은 윤회하고 환생하며 사람의 생명과 영혼은 하나님이 준 것,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진리다. 그러나 이 방면의 진리를 볼 때마다, 너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진리라고 믿지 않기에 본인의 사상 관점으로 이 말씀을 가늠한다. ‘사람이 원숭이가 변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왔다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에게서 온 것일까?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에게 생명을 주셨을까?’ 너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할 능력도, 지혜도, 권병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숨을 불어 넣거나말 한 마디로 인류가 생겨난 일이 사실이라는 것도, 진리라는 것도 믿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의혹을 품는 순간 하나님의 이 말씀에 반발한다. 입으로는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속마음은 일종의 반발하는 상태, 반발하는 태도이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면 듣지 않으려 하고 속으로 반감을 품고 하나님 말씀에 ‘아멘’이라고 답하지도 않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이 과연 어떻게 사람을 창조했는지, 사람은 언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는지, 그걸 누가 목격했는지, 증언할 사람이 있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 이런 걸 연구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정말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행사를 알고 나면, 스스로가 그것을 증거할 수 있다. 지금 사람이 눈여겨볼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나님 사역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을 경영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고 계신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한 분이 사역하고 말씀하며 인류를 가르치며 이끌고 계신다. 이 하나님은 존재한다. 지금껏 하나님이 이토록 많은 말씀을 하시는 동안 우리는 직접 하나님을 보았다. 우리는 그분이 말씀하시는 걸 듣고, 그분 사역을 체험하고, 그분 말씀을 먹고 마시고, 그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았다. 게다가 그 말씀들은 계속 우리를 이끌고 변화시키고 있다. 이 하나님은 확실히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했다는 그 사실을 믿고, 하나님이 최초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다는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말이다. 네가 이 하나님이 존재함을 믿고 지금 하나님 앞에 왔는데, 그래도 여호와가 하신 그 사역이 바로 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증거가 필요하냐? 만약 증명할 수 있는 사람도, 목격한 사람도 없다면 못 믿겠다는 말이냐? 아니면 은혜시대 사역의 경우, 네가 예수를 못 봤다면 예수가 성육신 하나님임을 못 믿겠다는 말이냐? 지금의 이 하나님, 그분 말씀, 그분 사역, 그분의 성육신을 직접 보지 않으면 너는 믿지도 않겠다는 말이냐? 그 일들을 네가 하나도 보지 못했거나, 혹은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인이 한 명도 없다면 너는 하나도 믿지 않겠느냐? 이것이 바로 사람 내면에 있는 황당한 관점이고,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이 많다. 무슨 일이든 꼭 직접 봐야만 하고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데, 이것은 틀렸다. 정말 하나님을 안다면 보지 않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믿을 수 있고 검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이 한 이 말씀들을 보고 하나님 음성을 들었는데, 이는 우리가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따라가고,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사역과 말씀을 믿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더 이상 분석하고 연구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이성이 아니냐?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했을 때 이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 성육신이 진리를 선포하여 인류를 구원하고, 실제로 사역하고 있는 광경, 교회들을 다니며 인류 가운데서 일하는 광경은 많은 사람이 보지 않았느냐?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본 것도 아니지만 너는 믿는다. 왜 믿으려 하느냐? 너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모두 진리라고 생각해서, 그것이 참도이고 하나님 사역이라고 생각해서 믿는 것이 아니냐? 너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이번 사역을 하실 때, 저는 그분이 말씀하시는 걸 듣고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도 보았습니다. 과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하셨는데, 저는 그분의 못 자국을 만져 보지 않았기에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하신 그 사역들을 보지 못했고, 율법을 반포하신 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모세가 그걸 듣고 모세 5경을 썼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쓰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제정신이냐?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불신파이다. 마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민 12:2)라고 한 것과도 같다. 그들의 뜻은 바로 ‘모세가 하는 말은 듣지 않겠으니,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라’는 것이다. 마치 은혜시대에 누군가가 자기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도, 죽음에서 부활한 것도 보지 못했으니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도마라고 하는 제자가 예수의 못 자국을 꼭 만져 봐야겠다고 하자 예수가 그에게 뭐라고 했느냐?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니, 어찌된 일이냐? 정말 보지 못한 것이냐? 사실 예수의 말씀과 사역에서부터 이미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으니 사람은 마땅히 이를 믿어야 한다. 그가 이적과 기사를 더 나타내지 않아도, 말씀을 더 하지 않아도, 그의 못 자국을 만져서 확인하지 않아도 믿는 것이다. 정말로 믿음이 있다는 것은 눈으로 봐야만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검증되면 끝까지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도마는 눈으로 본 것만 믿는 불신파이다. 너희는 도마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

교회에는 확실히 일부 도마 같은 사람들이 있다. 속으로 늘 성육신에 대해 의문을 품고, 땅에서 삼층천으로 돌아간 하나님의 참모습을 봐야 믿는 사람들이다. 그는 하나님이 성육신한 시기에 한 말씀을 믿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믿기 시작할 때는 모든 게 늦었다. 그때는 이미 하나님께 정죄되어야 할 때이다. 예수가 도마에게 말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말은 바로 예수가 이미 그를 불신파로 정죄했다는 뜻이다. 네가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주님이 한 모든 말을 믿는다면, 너는 복되다. 네가 주님을 그렇게 오랫동안 따르고도 주님이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믿지 않는다면, 너는 진실된 믿음이 없는 것이고, 복을 받을 수 없다. 믿어야 얻을 수 있고, 믿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이 네 앞에 친히 나타나 보여 주고 납득시켜 주어야 믿을 수 있겠느냐? 사람인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에게 친히 네 앞에 나타나라고 요구한단 말이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에게 너처럼 패괴된 사람한테 친히 말씀하라고 한단 말이냐? 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에게 모든 일을 분명히 말해 줘야 믿겠다고 한단 말이냐? 네게 이성이 있다면, 하나님의 이 말씀들을 보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네게 진실한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든 어떻게 말씀하든 신경 쓰지 않고 이 말씀들이 진리임을 보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행사임을 마음으로 오롯이 믿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의심 많은 사람은 지나치게 간사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믿지 못하면서 비밀만 알고 싶어 하고, 그 비밀을 완전히 알고 나면 그제서야 믿는다. 그가 하나님을 믿기 위한 전제는 바로 모조리 아는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어떻게 왔는지, 언제 왔는지, 와서 얼마나 있다가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가는 과정은 어떤지, 성육신 하나님은 어떻게 사역하고 어떻게 떠나는지…. 이런 비밀들을 알아야 한다. 그는 진리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비밀을 캐러 왔다. 그 비밀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믿지 못하고, 그것이 마치 그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처럼 느낀다. 그가 이런 관점을 지니고 있으면 곤란하다. 그는 비밀을 연구하려 할 뿐, 진리를 살펴볼 마음도 없고, 하나님 말씀을 살펴볼 마음도 없다. 이런 사람이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그가 자신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이것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진실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귀에 매달리고, 비밀에 매달리고, 구석진 일,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일에 매달린다. 하지만 어느 날 하나님이 그를 깨우치거나 형제자매가 진리를 자주 교제하며 도와준다면 그도 돌아설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는 과거 자신의 관점이 너무나 황당하고 자신이 지나치게 교만한 나머지 스스로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했음을 깨닫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말을 하든 무조건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정 시간 겪다 보면 하나님 말씀이 다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갈수록 믿음이 커진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영이 통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믿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2008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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