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제 3 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사람의 본성 본질을 폭로한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의 패괴된 성품과 패괴된 진상을 똑똑히 볼 수 있고 진정으로 자신을 알게 되면 구원받는 길이 있지 않으냐?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폭로하는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 우선 하나님이 사람의 본성을 폭로한 말씀을 묵상하고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에서 폭로하는 것이 자신의 실제 내적 상태와 완전히 부합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네게 수확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 말씀을 다 읽고 타인과 대조하며 항상 그것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하나님 말씀이 아무리 엄해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이러면 문제가 된다.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모든 하나님 말씀을 자신과 대조하고 자신의 내적 상태와 사상, 관점, 행동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대조해서 맞아떨어지는 경우, 진리를 구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네게 수확이 있게 된다. 그런 다음 네가 깨달은 진리 실제로 남을 도와주어야 한다. 남들이 진리를 깨달아 문제를 해결하고, 또 그들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며, 그 일을 통해 자기 자신도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이로움이 있으니 이중 수확을 거두게 된다. 네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 집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또 네가 이런 진리 실제를 갖추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폭로한 다른 말씀들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한 뒤 자신을 분석하고 인식해야 한다. 너희가 이렇게 대조할 수 있겠느냐? (어느 정도 대조할 수 있습니다.) 만약 네가 너는 사탄이자 마귀이고, 패괴 성품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이런 큰 측면에서의 하나님 말씀은 자신과 대조할 수 있지만, 한 측면의 내적 상태와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근거로 너라는 사람을 규정한 것에 대해서는 대조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자기 자신을 진실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는 자기 자신을 진실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폭로한 ‘구더기’, ‘더러운 귀신’, ‘한 푼 가치도 없다’, ‘천한 놈’, ‘폐물’ 등과 같은 말들을 사람이 천천히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폭로하는 목적이 정죄하려는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이런 패괴를 벗어 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그런 것들을 폭로하는 목적은 네가 자신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네가 구더기이고, 천한 사람이고, 폐물이라고 폭로하면 너는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느냐? 가령 네가 이렇게 말했다고 치자. “하나님께서 저를 구더기라고 하시면 저는 구더기가 되고, 하나님께서 저를 폐물이라고 하시면 저는 폐물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한 푼 가치도 없다고 하시면 저는 한 푼 가치도 없는 천한 놈이 되고, 하나님께서 저를 더러운 귀신, 사탄이라고 하시면 저는 더러운 귀신이 되고 사탄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진리를 얻는 길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말씀을 하는 목적은,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고 폭로하는 그 모든 방식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로 가게 하려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이 길을 가는 동안 항상 하나님을 오해하고, 이런 심판과 형벌을 온전히 다 받아들이지 못하며, 거역하는 마음이 너무 크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너는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매번 닥치는 시련과 연단을 이겨 내야 하며, 하나님이 환경을 배치하여 너를 정결케 하도록 해야 한다. 사람은 깊이 패괴되어 하나님께 정결케 되어야 한다! 사람에게 이런 의지가 없이 늘 편안함을 탐하고 항상 흐리멍덩하고 진리를 전혀 구하지 않으면, 사람은 진리를 얻을 희망이 아득하다.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실제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사람의 이런 패괴 성품 속에 있는 것들을 폭로한 것에서 사람의 본성 본질에 속한 것은 하나님만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이 네게 알려 준 방식대로 살지 않으며, 하나님이 네게 알려 준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너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길에 들어설 수 없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도 없으며 하나님께 구원받기 어렵다. 이 말이 맞지 않느냐? (맞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방식에 따라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의 방식과 상상, 사람이 도출해 낸 작은 방식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어서는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다.

조금 전에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발전이 있는지 가늠하는 네 번째 기준에 대해 논했다. 바로 자신에게 닥친 사람, 일, 사물 앞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할 수 있는지는 무엇을 근거로 하느냐?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 네가 순종할 수 있겠느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결국 순종하기 위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으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것과 같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사람이 차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발전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일이 닥쳤을 때 네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진리를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너희 중 대부분은 어떤 일과 환경이 닥쳤을 때 그 속에서 진리를 얼마나 깨달을 수 있느냐? 그 속에서 진리를 얻을 수 있느냐? 대부분의 일에서 진리를 얻었느냐, 아니면 진리를 얻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지나갈 때가 대부분이냐? (흐리멍덩하게 지나갈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것이 너희의 실제 내적 상태다. 진리를 얻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아서 많은 일이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량도, 진리 실제도 없다는 것이다. 시련에 임하든 시험에 임하든 굳게 설 수 없으면 너는 진리 실제가 없는 것이다. 네가 자신의 문제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너는 철저히 실패하는 것이다. 다음번에 그런 시련이 또 닥쳤을 때 네가 흐리멍덩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해결하고 똑같은 태도로 대한다면, 이것은 발전이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의 지금 분량이 어떤 수준에 머물러 있느냐? 일이 닥치면 멍해진다. 그러고는 하나님 말씀과 찬양, 설교 교제, 또 평소에 사용하는 여러 측면의 원칙 중에서 급하게 찾거나 급하게 사람을 찾아 교제해야 한다. 이 정도 분량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너희의 분량이 큰 것이냐, 작은 것이냐? (작은 것입니다.) 그런 분량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겠느냐?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너희의 분량이 그 정도인데 교회 생활을 떠나고 형제자매와 떨어지고 본분을 이행하는 환경과 장소에서 멀어진다면, 너희가 하나님을 따를 수 있겠느냐? 끝까지 따를 수 있겠느냐? 그것은 미지수다. 3년이나 5년 후에도 따를 수 있겠지만, 행위나 사람됨, 추구 목표, 인생 방향, 일을 바라보는 관점, 사람이나 일을 대하는 태도 등 이 모든 것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이방인과 똑같을 것이다. 다른 점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색뿐일 것이다. 다시 말해, 명의상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있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라고 자처하지만, 실질적으로 마음속에 이미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의 도가 없으며, 하나님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네가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만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속에 하나님께 할 말이 없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일이 닥쳐도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며, 진리를 구하지도 않고 자기 상상대로 처리할 것이다. 이러면 영락없는 불신파가 된 것이 아니겠느냐?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무슨 뜻이겠느냐? 사람은 진리를 얻기 전까지 일이 닥치면 머리가 멍해지고 어떻게 진리를 운용해야 할지, 어떻게 처리하는 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환경이 좋든 열악하든, 그것이 네게 시험이든 시련이든, 너는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모른 채 소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며, 적극적인 태도로 진리를 통해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너는 어떤 환경이 임해도 거기에 맞설 면역력이 없으며, 주동적으로 진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 설령 그 당시에 진리를 구해 해결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일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너는 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럼 너의 일거수일투족, 너의 삶에서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것은 얼마나 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행위, 생활과 관련이 있는 것은 또 얼마나 되겠느냐? 형식적인 면에서, 마음속 주관적인 바람 측면에서 봤을 때 오직 1%만 하나님과 관련이 있고 99%는 진리와 무관하다면, “너희는 진리와 무관한 일들을 너무도 많이 하였다.”라고 한 하나님 말씀과 같은 것이다. 이는 너무도 무섭고 위험한 일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너무도 무섭고 위험한 일이다. 그럼 사람이 직면한 문제는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을 벗어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잃고, 하나님의 애쓰는 마음을 저버리며, 하나님이 고심해서 사람에게 배치해 준 공과를 사람이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장 상심케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기에 가장 적절한 환경을 배치한다. 사람이 본분과 진리 추구를 포기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너희도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너희의 실제 분량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결코 알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 주위에 어떤 환경을 배치하든 아예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고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면, 이런 사람의 분량은 어떠하겠느냐? 분량이 너무 작아서 진리도 추구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냐? 진리도 추구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주관적으로 볼 때 너는 네가 모든 것을 버렸고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참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너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도 아직 네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네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네가 많은 일에서 아직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수 있고,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네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의 상황이다. 너희에게 이런 말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겠느냐?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겠느냐? 너희에게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실제 분량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너희를 일깨우는 말이고 너희에게 이로운 말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얻지 못하면 너는 영영 하나님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도 너를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할 때는 반드시 진리 실행에 집중해야 한다. 진리 실행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겠느냐? 여기에는 규례가 없다. 네가 깨달은 진리가 있다면 그 부분의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했다면,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해라. 본분을 이행할 때 실행해야 하는 진리 또한 다양하니 네가 깨달은 부분의 진리를 실행하면 된다. 예를 들어, 너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솔직한 말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마음을 열면 된다. 부끄러워서 형제자매들에게 하지 못하는 말이 있다면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하여라. 하나님께 어떤 말을 해야 하느냐? 네 마음에 있는 말을 하되 형식적인 말을 삼가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마라. 먼저 정직한 사람이 되어라. 네가 연약하다면 연약하다고, 네가 사악하다면 사악하다고, 네가 간사하다면 간사하다고 말해라. 네 마음속 악독함과 음험함을 모두 하나님께 말해라. 네가 늘 지위에 목맨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께 말해라. 그리하여 하나님이 징계하고, 하나님이 네게 환경을 마련해 주도록 하며, 네가 그 모든 난관을 이겨 내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라.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야지, 닫아서는 안 된다. 설령 네가 마음을 닫을지라도 하나님은 감찰할 수 있다. 그러나 네가 마음을 활짝 연다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떤 길을 선택해야겠느냐?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솔직한 말을 해야지, 절대 거짓된 말이나 위장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먼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토록 오랜 시간 정직한 사람이 되는 방면에 관한 진리를 교제했건만 지금도 적지 않은 이들이 이에 무관심한 채 자신의 속셈과 욕망, 목적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며 회개할 줄도 모른다. 이것은 정직한 사람이 되려는 태도가 아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사람을 쉽게 장악하기 위해서냐?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고, 정직한 사람을 축복하기 때문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양심과 이성을 갖춘 사람, 신용을 지키는 사람,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정상 인성을 갖추고 진정으로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내는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 본 적 없고, 정직한 사람이 될 생각도 없는 자라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더욱이 진리를 얻지도 못한다. 못 믿겠으면 네가 직접 관찰하든가 스스로 체험해 보아라.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실행해야만 하나님께 마음을 열 수 있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진리가 네 마음속에서 생명이 될 수 있다. 언제나 마음을 닫은 채 누구에게도 열지 않고 마음속 말을 하지도 않아 너를 꿰뚫어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너는 꿍꿍이가 가득하고 가장 간사한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순수하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허풍을 치며 하나님을 기만한다면, 하나님께 마음을 터놓지 못한 채 말을 빙빙 돌리고 잔꾀를 부린다면, 결국 자신을 망칠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신경 쓰지 않고 네게 역사하지도 않을 것이며, 너는 어떤 진리도 깨닫거나 얻지 못할 것이다. 지금 너희는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느냐? 진리 추구의 첫걸음이 무엇이겠느냐?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추구해야만 자신의 패괴가 얼마나 깊은지, 자신에게 과연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지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실제 분량이나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실행할 때만이 자신이 하는 거짓말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고, 자신의 간사함과 기만이 얼마나 깊이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실행하는 체험 속에서만이 자신의 패괴된 진상을 조금씩 알 수 있고, 자신의 본성 본질을 알 수 있으며, 패괴 성품이 계속 정결케 될 수 있다. 사람은 패괴 성품이 계속 정결케 되는 과정에서만이 비로소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이 말을 천천히 체험해 보아라!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네 마음이 정직하지 않고,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너를 얻을 수 없으며, 너 또한 진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도 얻지 못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얻지 못한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얻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너는 하나님과 합할 수 없을 것이고 하나님과 맞서는 자가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과 합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네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네 하나님이 아니라면 너는 구원받지 못한다. 네가 구원받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구원받지 못한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로, 네 결말은 정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고 싶다면 먼저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지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성경 계시록에는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5)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그자들’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겠느냐? 바로 하나님께 구원받고, 온전케 되고, 얻어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어떻게 묘사했느냐? 이들은 사람으로서 어떤 특징과 모습을 갖추었느냐? 바로 흠이 없고 입에 거짓말이 없는 것이다.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정직한 사람을 의미함을 너희 모두 알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흠이 없다’라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악행이 없음을 의미한다. 악행이 없음은 무엇을 바탕으로 하느냐?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므로 흠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흠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만을 완전한 사람으로 본다. 따라서 흠이 없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며, 오직 완전한 사람만이 흠이 없는 사람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매일 거짓말을 하는 것이 흠이 아니냐? 말하고 일할 때 항상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흠이 아니냐? 일을 조금 했다고 공을 바라고, 툭하면 하나님께 상을 달라고 하는 것이 흠이 아니냐?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자신만을 증거하는 것이 흠이 아니냐?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무성의하게 대충 하고, 교묘한 수단으로 사욕을 채우고, 몸을 사리는 것이 흠이 아니냐? 드러내는 이 모든 패괴 성품이 전부 흠이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모를 뿐이다. 지금 너희는 이런 패괴 표출이 모두 흠이며 더러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진리를 조금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분별력이 생긴 것이다. 패괴 표출에 속하는 모든 것은 거짓말과 관계가 있다. 성경에 나오는 ‘거짓말이 없다’라는 말은 자신에게 흠이 있는지 성찰하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그러므로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에 진입이 있는지, 네 입에서 나오는 말 가운데 거짓말을 얼마나 찾아낼 수 있는지, 네 거짓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지 아니면 원래와 똑같은지 등이 사람의 생명이 성장했는지 판단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위장하고 속이는 말을 포함해 네 거짓말이 점점 줄어들었다면, 그것은 네가 실제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생명이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는 것이 실제적이지 않으냐? (실제적입니다.) 너는 스스로 이미 발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짓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이방인과 거의 같다면, 그것이 진리 실제에 진입한 정상적인 모습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면 최소한 거짓말을 거의 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된다. 네가 거짓말을 많이 하고 말에 과장이 많다면 그것은 네게 아무런 변화도 없고 아직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아니면, 네게 생명 진입이 없는 것이다. 그럼 네게 발전이 있을 수 있겠느냐? 네 패괴 성품이 계속 그대로이니 너는 곧 이방인이며 마귀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 성장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며, 사람 스스로 대조하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생명 진입에 발전이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모두 몇 가지나 교제했느냐? (여섯 가지입니다.) 그 여섯 가지가 무엇인지 너희가 정리해 보아라. (첫째,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믿는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옳고 당연한 것이며, 이 길이 인생의 바른길이라고 확실히 믿으며, 하나님을 계속 따르고 딴마음을 품지 않겠다는 결심과 의지가 있는지입니다. 둘째, 사람, 세계, 이 사회, 인생의 길, 인생의 목표와 방향, 사람이 생존하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관점의 변화가 생겼는지입니다. 셋째,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었는지입니다. 넷째, 자신에게 닥친 사람, 일, 사물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로 순종할 수 있는지입니다. 다섯째, 일에 임하여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진리를 얻을 수 있는지입니다. 여섯째,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에 진입이 있는지입니다.) 너희는 항상 이 몇 가지 기준에 자신이 진입했는지 성찰하고 살펴보며, 예배 때 교제해야 한다. 이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네 생명이 성장할 수 없고, 성품도 변화할 수 없다.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거나 어떤 측면에서 노력하면 그것을 얻을 수가 있다. 네가 항상 도리를 중시하면 도리를 얻을 수밖에 없고, 지위와 권력을 손에 넣는 것을 중시하면 지위와 권력이 탄탄해진다. 하지만 진리를 얻지 못하면 너는 도태된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생명 진입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느슨하게 대해서도 안 되고, 소홀히 대해서도 안 된다.

2017년 1월 31일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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